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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이야기

사찰의 가람 조영에 함의된 정토 신앙과 유토피아- 금산사․법주사․동화사 서사 전승의 ‘장소성’을 중심으로-/ 장재진.동명大

 

 

Ⅰ. 시작하는 말

Ⅱ. 금산사․법주사․동화사의 미륵․지장 신앙과 가람 조영

Ⅲ. 금산사․법주사․동화사의 가람 조영과 정토 신앙

Ⅳ. 금산사․법주사․동화사의 장소성에 내재한 정토 신앙과 유토피아

Ⅴ. 마무리하는 말

 

 

 

Ⅰ. 시작하는 말

 

본 연구는 우리나라 사찰 가운데 미륵․지장 신앙과 깊은 관련을 지닌 금 산사․법주사․동화사에 반영된 정토 신앙과 유토피아 사상을 ‘장소성’1)을 중심으로 고찰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 세 사찰은 미륵․지장 신앙의 서사를 중심으로 조영되었으며, 그 특징이 가람 구성에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이 들 사찰 조영에 담긴 미륵․지장 신앙의 사상적 배경과 특징을 살펴보고, 이 를 통해 전개된 유토피아 사상의 내용을 ‘장소성’의 맥락에서 탐색하고자 한다. 1)

본 고에서 ‘장소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사찰의 가람 조영에 반영된 ‘장소’가 보편 적인 ‘공간’에 발생한 특정한 사건의 연속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수행자나 신앙인 의 행위와 경험이 집적되어 있으므로 역사적으로 이러한 장소는 질서를 부여하는 가치 공 간이 되기 때문이다.

공간에 사건이 발생하여 가치 부여가 되면 이는 장소가 되며, 이러한 장소는 현실 공간과 추상공간을 이어주는 매개적 기능을 수행하는 신성한 지리가 된다. 132 佛敎學報 第108輯 ‘공간(space)’이 중립적이고 무한한 개념이라면, ‘장소(place)’는 인간의 경 험과 기억, 의미가 부여된 구체적 지점을 의미한다.

또한, 장소는 단순한 물 리적 위치를 넘어서 인간의 감정과 기억과 상징적 의미가 축적된 존재론적 공간이다.2)

케이시(Casey)는 장소를 “기억이 축적된 공간”으로 정의하며, 기억의 회상 과정에서 장소는 감정과 특정한 움직임과 연관되어 재현3)된 다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정토 신앙을 지닌 수행자나 신도에게 장소는 신앙적 체험을 매개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정토와 미륵 신앙이 사찰의 가람 조영에 미친 영향을 건축학적 관점에서 고찰한 선행 연구들4)은 불교 신앙의 공간적 구현 양상을 해명하는 데 중요 한 학술적 기반을 제공한다.

금산사․법주사․동화사 모두 미륵․지장 신앙 을 상징하는 전각이나 불상 또는 탱화를 모시고 있으며, 이외의 다양한 전 각과 불상들이 함께 봉안되어 복합적인 신앙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

이들 사찰은 창건 시기와 배경은 다르지만, 공통으로 진표율사(眞表律師, 718~?)에 의해 중창되었거나 그와 깊은 관련이 있는 사찰로 전해진다. 비록 진표율사와 관련된 서사 전승에는 차이가 있으나5), ‘망신 참회법’과 『점찰 선악업보경』을 바탕으로 정토 신앙을 실천하고자 했다는 점은 공통으로 인 정된다.

 

     2) 에드워드 렐프 지음, 김덕현 외2(2005), pp.67-73.

     3) 김지희․조 한(2016), pp.25-26.

     4) 洪潤植(1986), 「⾦山寺의 伽藍과 彌勒信仰」, 『馬韓․百濟文化』第9輯; 朴漢圭․南海鯨 (1987), 「人文的 因子에 의한 ⾦山寺의 建築解釋에 관한 硏究」, 『大韓建築學會論文集 計劃系』3卷5號 通卷13號; 安瑛培(1992), 「視知覺的 分析에 의한 ⾦山寺伽藍配置에 관 한 考察」, 『大韓建築學會論文集 計劃系』8卷3號 通卷41號; 鄭英喆(1999), 「⾦山寺의 ⽴ 地 및 配置 解釋에 關한 硏究」, 『慶一大學校論文集』; 오광석․장재진(2012), 「금산사 가 람 조영에 내재된 미륵신앙의 유토피아 개념에 관한 연구」, 『大韓建築學會論文集 計劃 系』 제28권 제12호. ; 장현석 ․ 최효승(2005), 「俗離山 法住寺 伽藍配置의 變遷에 관한 硏 究」, 『건축역사연구』 14권, 한국건축역사학회. ; 한지만(2021), 「팔공산 동화사의 가람 구 성 변천에 관한 연구」, 『대한건축학회논문집』 37권 5호, 대한건축학회. ; 신은영(2020), 「법주사 용화보전 석조물 배치의 내러티브와 ‘石蓮池’」, 『한국미술사교육학회지』 40권, 한국미술사교육학회.

     5) 『三國遺事』 眞表傳簡」 「關東楓岳鉢淵藪石記」 「心地繼祖」의 내용과 『宋⾼僧傳』의 「唐 百濟國⾦山寺眞表」「關東楓岳山鉢淵藪眞表律師眞身⾻藏⽴石碑銘」에 수록된 내용에 차이가 있어서 이에 대한 해석에 이견이 있다. 사찰의 가람 조영에 함의된 정토 신앙과 유토피아 133 

 

이러한 점에서 세 사찰은 미륵․지장 신앙을 대표하는 또는 깊은 연관성이 있는 사찰로서 장소적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본 연구는 사찰의 건축 구조나 형식을 대상으로 하는 건축학적 분석이 아 니라6), 가람 조영에 담긴 서사적 전승, 불교 교리, 정토사상의 구현 양상을 고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확장된 유토피아 개념7) 속에서 나타나는 ‘장소’ 의 상징성에 주목한다. 이를 통해 금산사․법주사․동화사 등 세 사찰에 공 통으로 나타나는 신앙 전승의 요소와 각 사찰이 지닌 고유한 차별성을 비교 분석8)하고자 한다.

 

     6)사찰의 가람배치에 관한 연구는 창건 당시부터 수차례에 걸쳐서 변모되었기 때문에 이 내 용만 해도 하나의 연구과제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금산사의 가람배치에 대한 과제만 해도 기존의 『금산사지』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검증과 새로운 평가가 필요하 다는 견해도 대두되고 있다. 다른 사찰의 가람배치에 대해서도 현재의 모습이 형성되기까 지의 과정과 원형에 대한 더욱 상세한 조사와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7)유토피아(Utopia)는 단일한 개념이 아니라, 시대적․문화적․종교적 맥락 속에서 다양한 의미로 확장되어 온 복합적인 사유의 지평이다.본래 ‘존재하지 않는 장소(U+Topie)’라는 어원에서 출발한 유토피아는, 점차 인간이 지향하는 이상적 공동체와 삶의 질서를 상징하 는 상상적 공간 또는 미래적인 시간으로 재해석되어 왔다.다른 한편으로는 유토피아 (Eu+Topie)는 그리스에 의하면 ‘최상의 곳’으로 번역된다. 이러한 유토피아는 단순한 현실 비판이나 도피적 공간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적 욕구와 사회적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 는 존재론적․정치 철학적 기획으로 이해될 수 있다.

     8)본 연구는 사찰의 창건 및 중건 과정을 모두 다루는 것이 아니라, 개산 당시와 현재를 기준 으로 가람 조영에 반영된 정토사상을 추정하는 데 목적이 있다. 전각 배치나 주불 구성의 변화를 포괄적으로 분석하기보다는, ‘미륵․지장․미타’ 관련 전각, 불상, 탱화, 조각의 변 모를 중심으로 이에 전승된 장소적 상징성을 고찰하고자 한다.

 

   첫째, 금산사․법주사․동화사 세 사찰의 창건 및 중창에 관련된 역사적 맥락을 서사 전승을 중심으로 고찰하고, 이를 통해 가람 조영에 내포된 미 륵 및 지장 신앙과의 연관성을 분석한다.

  둘째, 사찰 공간이 지닌 장소성을 중심으로 그 속에 구현된 정토 신앙의 양상을 탐색한다. 이를 위해 전각, 불 상, 계단, 조각 등을 중심으로 전승 또는 중창된 가람 조영을 모색한다.

  셋 째, 세 사찰의 정토 신앙이 미륵․지장 신앙의 확장된 장소성을 지니면서 통 합 불교적인 양상을 형성하여, 유토피아적인 시공을 내포하고 있음을 현재 사찰의 조영에 반영된 서사 전승과 교리를 중심으로 모색하고자 한다. 인류는 고대로부터 고통이 없고 정의가 실현되는 이상적 세계를 추구해 왔으며, 이는 동서양 사상 전통에서 ‘유토피아(Utopia)’로 개념화되어 왔다.

불교 전통에서는 이를 ‘정토(淨土)’9)로 표상하며, 정토 신앙은 고통의 세계 를 초월하여 해탈에 이르고자 하는 수행자가 지향하는 이상향으로서, 내세 적 성격과 함께 현실적 실천성을 동시에 내포한다.

 

    9) ‘淨土’는 본래 ‘청정한 국토’ 또는 ‘정화된 국토(kṣetraṁ viśuddhaṁ)’를 뜻하며, 동시에 ‘국 토를 청정하게 한다(kṣetraṁ viśodhayati)’는 능동적 의미도 지닌다.『대지도론』에서는 보 살이 자신의 몸과 중생의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을 ‘淨佛世界’라 정의한다. ‘정토’는 원래 범어 원전에는 없으며, ‘불국토(buddhakṣetra)’나 ‘정불국토(buddhakṣetra-pariśuddhi)’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정토’라는 용어가 형성되었다. 이는 주로 구마라집(鳩摩羅什)의 번역 에서 나타나며, 그 역시 ‘정토’를 반드시 ‘극락정토’로 이해하지는 않았다. 예컨대『법화 경』에서는 ‘뛰어난 국토’ 또는 ‘영산정토’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고, 『유마경』에서도 극락 의 의미는 없었다. 구마라집이 번역한『아미타경』에서는 ‘정토’라는 용어조차 등장하지 않 는다. 따라서 ‘정토’가 곧바로 ‘극락정토’를 의미하게 된 것은 북위 시대 담란(曇鸞) 이후의 일로 볼 수 있다.(강동균(2005), 참조) 

 

본 논문은 불교의 정토 개념이 종교적 이상향을 넘어, 구체적 공간과 장 소를 통해 시각화되며 장소적 유토피아로 구현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를 위해 불교 사찰의 가람 조영을 정토 신앙과 연계하여 분석하고, 공간과 장 소의 상징성이 정토 세계 구현에 미치는 영향을 고찰한다.

궁극적으로 정토 는 현실 속에서 실현이 가능한 장소화 된 유토피아로 해석될 수 있는 종교 적 이상세계임을 모색고자 한다.

 

Ⅱ. 금산사․법주사․동화사의 미륵․지장 신앙과 가람 조영

 

미래불인 미륵불은 아미타불과 함께 법상종 신앙의 주요 대상이며, 금산 사․법주사․동화사에서도 그 신앙 전통이 확인된다.

금산사와 법주사는 현 재까지 미륵불을 주불로 봉안하고 있으나, 동화사는 미륵불 전각이 현존하 지 않고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시고 있다.

다만, 창건 당시 미륵불 봉안처로 추정되는 금당암을 비롯해 금당선원, 극락전(아미타 삼존불 및 후불탱화 봉안), 수마제전(금동 아미타불 봉안) 등이 남아 있어 신앙의 연속성을 보여준다.

각 사찰의 가람 조영에 반영된 미륵․지장 신앙은 비록 시기와 장소에 따 라 차이를 보이지만, 그 신앙적 맥락은 일관되게 전승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특히 진표율사와의 인연은 미륵․지장 신앙을 중심으로 한 공통의 전승 기반을 형성하며, 이후 통합 불교적인 성격을 띠게 됨으로써 정토 신 앙 및 유토피아적 사유와도 연계되는 상징적 장소성을 내포하고 있다.

 

1. 금산사(⾦⼭寺)의미륵․지장신앙과가람조영

 

진표율사에 의해 중창된 금산사는 초기 가람배치에 있어 방등계단을 중 심으로 남북 축선을 이루며, 중문․금당․강당․종루․경루․회랑 등을 갖춘 전형적인 통일신라 시대 사원 구조를 지닌 것으로 추정10)된다.

금산사는 이 후 여러 차례 중창되었으나, 미륵․지장 신앙을 대표하는 사찰로서의 정체 성은 크게 변하지 않았으며, 전체적으로는 초창기의 신앙적 맥락이 지속적 으로 전승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금산사지』와 『금산사사적』에 따르면 금산사는 백제 법왕 즉위년인 599 년에 창건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정확한 창건 연대는 분명하지 않 다.11)12)

 

     10) 오세덕(2019), p.102.

     11) 韓國學文獻硏究所(1982), p.12. “或云孝順王蹟文帝開皇十九年巳未帛位詔禁殺生明 年度僧三十八扵⾦山又創王興寺時都泗泌城.”(『⾦山寺誌』)

     12) 編輯部(1966), p.7. “寺新羅惠恭王⼆年丙午五月一日開山始祖眞表律師 開山”(『⾦山 寺事蹟』) 136 佛敎學報 第108輯 

 

다만, 금산사의 본격적인 조영과 사찰의 신앙 체계는 진표율사에 의해 중창되면서 형성된 것으로 이해된다.

금산사의 가람 조영과 그에 반영 된 미륵․지장 신앙의 배경은 진표율사의 수행과 신앙적 실천, 그리고 그와 관련된 행적을 중심으로 설명될 수 있다.

진표는 12세에 출가를 원했고, 아버지와 조부의 허락을 받아 금산사의 순 제 법사에게 가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다.

순제는 진표에게 사미계를 주 고 『공양차제비법(供養次第秘法)』 1권과 『점찰선악업보경(占察善惡業報 經)』 2권을 전하며, 미륵과 지장보살 앞에서 간절히 기도하고 계법을 받아 널 리 전하라고 하였다.

진표는 순제의 가르침에 따라 명산을 떠돌다 27세(760년, 경덕왕 19)에 변 산 부사의방(不思議房)에 들어가 수행에 전념하였다.

3년 넘게 간절히 기도했으나 수기를 받지 못하자, 바위 아래로 몸을 던졌고, 청의동자가 그를 구해 바위 위에 올려놓았다.

그는 다시 수행을 다짐하고 3․7일을 기약하여 밤낮 으로 참회하며 바위를 두드렸고, 3일 만에 손과 팔이 부러졌다.

7일째 밤, 지 장보살이 나타나 그를 어루만져 상처를 낫게 하며 가사와 바릿대를 주었다.

진표는 더 정진하여 만 3․7일이 되자 천안(天眼)을 얻고 도솔천의 광경을 보았다.

이때 미륵과 지장보살이 나타나 미륵은 진표의 이마를 어루만지고 칭찬하며, ‘9자’와 ‘8자’가 적힌 간자(簡子)를 주었고 지장은 계본을 전하였 다.

미륵은

“이 패는 내 손가락뼈로, 시각(始覺)과 본각(本覺)을 뜻한다. 9자 는 법성이고 8자는 성불의 종자다. 너는 이후 대국왕으로 태어나 도솔천에 오를 것이다.”

라고 하였다.

두 보살은 곧 사라졌고, 이는 762년 4월 27일의 일 이었다.13)

위의 내용은 진표율사가 발심하여 미륵불과 지장보살을 친견하게 되는 과정을 서술한 것으로, 금산사가 미륵․지장 신앙의 중심 사찰로 자리매김 하고 신앙의 성지로 성립하게 된 서사를 담고 있다.

이러한 신앙적 배경을 토대로 금산사의 가람이 조영되기까지의 구체적인 과정은 『진표율사진신 장골탑비명』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당시 사찰의 조영에 반 영된 종교적 의미와 상징성을 확인할 수 있다.

진표가 금산사를 세우기 위해 산에서 내려와 대연진에 이르자, 갑자기 용 왕이 나타나 옥으로 된 가사를 바치고 8만 명의 무리를 데리고 그를 호위하 며 금산사까지 함께 갔다.

사방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어 며칠 만에 절이 세워 졌다.14)

 

    13) 「眞表律師眞身藏⾻塔碑銘」

    14) 「眞表律師眞身藏⾻塔碑銘」

 

다시 미륵보살이 감응하여 도솔천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와 진표에게 계법 을 주었다.

이에 진표는 신도들에게 권하여 미륵장육상을 만들게 했고, 미륵 보살이 내려와 계법을 주는 장면을 금당 남쪽 벽에 그렸다.

이 불상은 764년 에 만들기 시작해 766년에 금당에 모셔졌다고 전해진다.

따라서 금산사가 다 시 세워진 시기는 진표가 미륵에게 수기를 받은 762년부터 불상이 완성된 766년 사이로 볼 수 있다.15)

금산사의 가람이 조영되기까지의 배경과 그 진행 과정은 불보살의 가피 (加被), 용왕의 호응16), 그리고 인연 있는 인물들의 참여를 통해 중창이 이루 어졌음을 보여준다.

 

     15) 「眞表律師眞身藏⾻塔碑銘」

     16) 노종상(2021)의 연구 참조 

 

이후 금산사는 미륵불의 현현을 자처하는 인물들이 등 장하거나, 미륵과 관련된 정토 및 유토피아 사상이 주장되는 역사적 사건들 과 연관성을 지닌 상징적 장소로 기능하게 되었다.

 

2. 법주사(法住寺)의미륵․지장신앙과가람조영

 

법주사는 통일신라 혜공왕 12년(776년)에 진표율사에 의해 대대적으로 중창된 사찰이다.

법주사는 533년 의신 조사(義信祖師)가 창건한 것으로 전 해지며, 이후 진표율사가 속리산 일대를 중심으로 계법을 설하고 신앙 활동 을 전개하면서 본격적으로 중창하였다.

또한, 진표율사는 금강산에 발연사 (鉢淵寺)를 함께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며, 가람 조영과 관련된 내용은 『삼국 유사』 권4 「관동풍악발연수석기」에 기록되어 있다. 진표율사는 금산사를 떠나 속리산에 들렀고, 그곳에서 길상초가 난 자리 를 표시해 두었다.

이후 금강산으로 가서 발연사를 짓고 7년 동안 머물렀다.

그 후 금산사와 부안의 부사의방(不思議房)에 머무를 때, 속리산에 살던 영 심, 융종, 불타 등이 찾아와 진표에게 법을 배우고자 했다.

이때 진표율사는 그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속리산에 가면 내가 길상초가 난 자리에 표시해 둔 곳이 있으니, 그곳에 절을 세우고 이 교법을 따라 사람들을 구제하고 널리 퍼뜨려라.”

이에 영심 스님 일행은 속리산으로 가서 표시된 자리를 찾아 절을 짓고 ‘길상사’라 이름 붙였으며, 처음으로 점찰 법회를 열었다.17)

 

    17) 『三國遺事』 「關東楓岳山鉢淵藪眞表律師眞身⾻藏⽴石記銘」 「眞表傳簡」

 

법주사에서는 과거 미륵불을 주불로 봉안한 용화보전(⿓華寶殿)이 중심 법당의 기능을 수행하였으며, 이 전각 내부에는 미륵장육상이 모셔져 있었 다.

이후 해당 공간에는 ‘금동미륵입상(⾦銅彌勒⽴像)’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되었다.

의신 조사에 의해 창건된 법주사는 진표율사에 의해 중창되었고, 금강산의 발연사, 모악산의 금산사와 함께 미륵․지장 신앙을 대표하는 사 찰로 자리매김하였다.

이러한 위상은 법주사가 ‘미륵하생신앙’과 ‘미륵상 생신앙’ 모두와 연관된 장소적 상징성을 지니고 있음을 시사한다.

 

3. 동화사의미륵․지장신앙과가람조영

 

동화사(桐華寺)는 신라 소지왕 15년(493년), 극달화상(極達和尙)에 의해 ‘유 가사(瑜伽寺)’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으며, 이후 통일신라 흥덕왕 7년(832년) 에 심지 조사(心地祖師)에 의해 중창되면서 현재의 이름인 동화사로 개칭되 었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동화사가 미륵․지장 신앙과 관련된 사 찰로 자리하게 된 배경에 대한 서사 전승이 있다.

이는 금산사와 법주사의 창건 및 중창 과정에서 드러나는 미륵․지장 신앙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전승에 따르면, 진표율사로부터 불골간자(佛⾻簡子)를 전수 받은 영심(永 深)이 이를 다시 심지 조사에게 두 개의 간자를 전하였으며, 이로 인해 동화 사가 중창되었다는 내용이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오늘날 동화사에 는 미륵불을 봉안한 전각은 남아 있지 않으나, 동화사가 미륵신앙의 사찰로 인식되게 된 신앙적 배경은 이와 같은 기록에 근거한다.

 

심지 조사는 간자를 모실 땅을 찾기 위해 팔공산의 두 산신과 함께 산꼭대 기에 올라 서쪽을 향해 간자를 던졌다.

간자는 바람을 타고 날아가 동화사 근 처의 작은 개울을 건넌 뒤, 참당 북쪽에 있는 작은 우물에 떨어졌다. 심지 조 사는 그 자리에 강당을 지어 간자를 모셨고, 그곳이 지금의 동화사 금당선원 (또는 금당암)이다.18)

 

    18) 『三國遺事』 「關東楓岳山鉢淵藪眞表律師眞身⾻藏⽴石記銘」 「眞表傳簡」

 

동화사 창건 당시의 가람 위치로 추정되는 금당선원(금당암)의 가람 구성 은 아미타불을 본존불로 삼아 주불전과 부속 전각에 모두 봉안한 점에서 아 미타 신앙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한편, 동화사의 창건과 관련된 내력은 『삼국유사』에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전해진다.

헌덕왕의 아들 심지는 15세에 출가해 팔공산에서 수행하던 중, 진표로부 터 불골간자를 전해 받은 속리산의 영심이 과증법회(果證法會)를 연다는 소 식을 듣고 찾아갔다.

그는 온몸을 바닥에 던지는 오체투지로 간절히 참회하 며 수행한 끝에, 영심에게서 간자(簡子)를 받았다. 심지는 간자를 가지고 팔 공산으로 돌아와 산신과 함께 간자를 던져 사원을 지을 자리를 정했고, 간자 가 떨어진 곳에 절을 세웠다.

이 절은 헌덕왕 재위 시기인 9세기 중반에 세워 졌으며, 처음에는 동수(桐藪) 또는 동사(桐寺)라고 불렸다.19)

 

   19) 『三國遺事』 「關東楓岳山鉢淵藪眞表律師眞身⾻藏⽴石記銘」 「眞表傳簡」 20) 한지만(2021), pp.110. 21) 한지만(2021), pp.111. 

 

 

진표율사는 금산사․법주사․동화사 등에서 미륵․지장 신앙의 중심인 물로, 간자(簡子)와 참회(懺悔)의 상징성을 통해 해당 신앙 사찰의 성립에 깊 이 관여하였다.

현재 금당암 일곽의 극락전은 창건 당시 금당의 기단과 초 석이 잔존하며, 당시 법상종의 주불인 미륵불이 봉안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초기 가람은 금당 뒤편에 강당, 그 사이에 삼층 석탑이 배치된 전형적 구조 로 조성되었으며, 이후 금당 서쪽에 새로운 삼층 석탑이 세워지고 기존 석 탑이 동쪽으로 이전되면서 금당을 중심으로 동․서 양측에 탑이 배치되는 현재의 형태가 형성20)되었다.

동화사가 진표계 법상종 계열에 속함을 고려할 때, 창건 당시 강당에는 지장보살이 봉안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고려시대에는 금당이 ‘미륵당’ 으로 불렸고, 아미타불을 봉안한 무량수전이 부불전으로 구성되었다.

무량 수전은 본래 지장보살을 봉안하던 강당이 전환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러한 가람 구성은 미륵을 주불로 삼으면서도 아미타 정토를 신앙한 고려시대 법 상종의 신앙적 특징을 반영21)한다. 이 배치는 조선 전기까지 유지된 것으로 보인다.

 

Ⅲ. 금산사․법주사․동화사의 가람 조영과 정토 신앙

 

1. 금산사의가람조영과정토신앙

 

개산 당시 미륵․지장 신앙을 중심으로 형성된 금산사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다양한 신앙 요소가 융합된 복합적 성격의 사찰로 전개되었다.22)

이러 한 변천 양상은 ‘대적광전’과 ‘미륵전’의 전각 구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금산사에서의 정토 신앙은 방등계단과 미륵전을 중심으로 이해될 수 있다.

방등계단은 도솔천에 태어나기 위한 상생(上生) 신앙을, 미륵전은 미래에 강림할 미륵불의 구원을 기다리는 하생(下生) 신앙을 상징한다.

이러한 이원 적 구조는 초월적 공간인 도솔천과 현실 세계라는 장소성의 대비를 통해 구 원 인식의 차이를 드러낸다.

금산사의 방등계단과 미륵전은 상생과 하생을 지향하는 수행과 기도의 상징적 장소로 기능하며, 실천적 신앙 공간으로서의 장소성을 형성해 왔다.

이에 따라 진표율사로부터 전승된 미륵․지장 신앙은 승속을 초월한 수행 자 중심의 신앙 실천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도솔천 왕생’은 미륵 상생 신앙의 목표이지만,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계율을 지켜야 하므로 이는 곧 지장 신앙 등과 연계된 계율 신앙으로 접목 된다.

따라서 점찰 신앙과 관련이 있는 밀교 수행과의 연관성23)을 함께 모 색해 볼 수 있다.

금산사는 진표율사에 의해 창건된 이후 천 년에 걸쳐 가람의 축선이 남북 을 중심으로 유지되었으며, 임진왜란의 참화 속에서도 법의 맥이 단절되지 않았다.

초창기 미륵․지장 신앙을 사상적 기반으로 삼으면서도 시대별 가 람배치의 변화를 수용24)하였으며, 조선 후기에는 유일하게 후원자를 확보25)한 사찰로서 건축사적 의의가 크다.

 

     22) 특히 조선시대 금산사의 변모에 관해서는 황인규(2015)의 논문에서 상세하게 연구되어 있다.

     23) 이에 관한 내용은 박광연(2006)의 「眞表의 占察法會와 密敎 수용」에 상세하게 연구되어 있다.

    24) 『금산사지』에 따르면 조선 초기 금산사는 대사구, 광교원구, 봉천원구(大寺區, 廣敎院 區, 奉天院區)의 세 구역을 중심으로 약 80여 채의 건물과 40여 개의 암자를 갖춘 대규모 사찰이었다. 임진왜란으로 대부분이 소실된 후 미륵전, 대적광전, 대장전 등이 복원되었 으며, 이 중 방등계단과 미륵전은 원형이 유지된 반면, 대적광전은 복원 과정에서 중요한 변화를 겪었다. 특히 대사구에 위치했던 대웅광명전, 약사전, 극락전 등 삼불전이 대적광 전으로 통합되어 봉안되면서, 가람의 공간 구성과 장소성에 변모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정영철(1999), 참조)

     25) 오세덕(2019), pp.118-119.

 

가람 배치상 주요한 장소성은 미륵전, 방등계단, 대적광전, 대장전, 명부 전에 부여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개산 당시와 현재 간의 장소성 부여 방식 에 차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시대 변화에 따른 신앙 중심의 이동 과 장소성의 재구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초기에는 미륵과 지장을 중심으로 한 장소성이 두드러졌으나, 이후에는 대장전의 석가모니불, 대적광전의 아미타불․석가모니불․비로자나불․노 사나불․약사여래와 문수․보현․대세지․관음․일광․월광보살 등의 봉안 이 통합 불교적 신앙의 면모를 보여주는 장소성의 전환을 이룬다.

이는 다 양한 불보살 신앙이 포괄되는 복합적 공간 구조로의 재편을 의미한다.

 

    표1. 금산사가람배치평면도 (https://blog.naver.com/hanmun2014/220299865454) : 생략 (첨부 논문파일 참조)

 

2. 법주사의가람조영과정토신앙

 

법주사의 가람은 불국토 사상에 근거하여 구성되었으며, 미륵․지장 신 앙 및 아미타 정토 신앙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팔상전(八相殿)은 오층 목 탑으로, 석가모니의 일생을 그린 팔상도가 봉안되어 있으나 조형적으로는 미륵 정토를 상징하는 불탑과 유사한 구조를 지닌다.

미륵전은 정토적 이상세계의 실현을 상징하고 석련지(石蓮池)는 정토의 연화세계(蓮花世界)를 상징하는 조형 요소이다. 가람의 배치 자체가 수직적 불국토 구성을 반영하며, 탑-불전-강당 순으로 이어지는 불국정토 구조를 갖추고 있다.

따라서 법주사는 미륵 상생과 하생 신앙, 그리고 아미타 정토 신앙이 혼융된 통합 불교적 장소로 정토 신앙의 핵심인 아미타불․미륵불 모두를 봉안한 전각이 존재하며, 이로써 현실 세계의 수행과 내세 구원이라 는 이중 구조의 정토관을 나타내고 있다.

법주사의 가람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정토 신앙의 수용 양상을 반영하는 공간 구조를 지닌다.

팔상전과 같은 목탑형 전각은 정토 신앙의 시각적 상 징성을 극대화한 사례로 평가되며, 불국정토 구현을 위한 공간 배치가 가장 충실히 유지된 사찰로서 건축사적 의의가 크다.

 

   표2. 법주사가람배치평면도 (https://m.blog.naver.com/amir18/221829618506) : 생략 (첨부 논문파일 참조)

 

3. 동화사의가람조영과정토신앙

 

법주사와 금산사는 고려시대까지 미륵․지장 신앙 중심의 사찰로 기능 하였으나, 조선시대를 거치며 정토․화엄 사상이 융합된 통합 불교적 성격 의 가람으로 변모하였다.

이에 반해 동화사는 창건 당시의 미륵불 중심 신 앙 구조가 현저히 희박해졌으며, 현재는 아미타불 중심의 정토 신앙이 두드 러진다. 특히 금당선원(금당암)은 ‘금당-강당-석탑’이라는 불국토의 전형적 배치를 갖추고 있어, 정토 신앙이 현실 공간에 구현된 사례로 평가된다.

현존하는 동화사의 가람 구성은 대웅전, 비로전, 지장전, 삼성각, 금당선 원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석가모니불, 비로자나불, 아미타불, 약사불 등 이 봉안되어 있다.

미륵불은 현재 영산전에서 협시불로 존치되어 있으며, 지장보살은 성보박물관에 지장 삼존도의 형식으로 봉안되어 있다.

이러한 구성은 초기 미륵․지장 신앙의 전통이 유지되면서도, 시대 변화에 따른 통 합 불교적 세계관이 공간적으로 구현된 양상을 보여주는 사례로서 의의를 지닌다.

 

    표3. 동화사가람배치평면도(한지만(2021), p.104) ; 생략 (첨부 논문파일 참조)

 

Ⅳ. 금산사․법주사․동화사의 장소성에 내재한 정토 신앙과 유토피아

 

불교의 정토사상은 사후 구원을 넘어 현실 속 이상향 구현을 지향하며, 사찰은 이를 공간화․장소화하는 상징 체계로 기능한다.

금산사는 미륵 정 토의 상생․하생 구조를 통해 입체적 유토피아를 구현하고, 법주사는 가람 축선26)과 팔상전의 융합구조27)를 통해 미륵․아미타 신앙의 통합 정토를 시각화한다.

 

     26) ‘탑-불전-강당’의 구성은 불교의 핵심 요소인 신앙-수행-교학을 일직선으로 연결함으로 써, 사찰 전체를 불국토적 공간 질서로 정렬한다. 탑은 법신불의 상징으로 불국토의 중심, 불전은 불보살의 현존 공간, 강당은 수행과 교학의 실천 공간을 의미한다. 이러한 배치는 불국토의 질서와 이상세계 실현의 구조적 표현으로 이해된다.

    27) 법주사 팔상전은 석가모니의 생애를 중심으로 하면서도, 도솔래의와 하생 개념을 통해 미륵신앙의 미래 구제를 암시하고, 아미타불에 대한 현세 정토 신앙도 함께 담고 있다. 이 전각은 두 정토 신앙의 융합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조선 후기 불교의 신앙적 다층성과 불 국토 구현 의지를 응축한 대표적 사례이다.

 

동화사는 미륵․지장 신앙에서 아미타 중심의 정토 신앙으로 변모하며 통합적 장소성을 형성하였다.

세 사찰은 정토 신앙을 구체적 공간 으로 구현한 사례로서, 수행자에게 현실 속 유토피아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1. 사찰가람조영에반영된점찰(占察) 신앙의수용적요소와장소성

 

사찰의 가람 조영은 불교 교리에 따른 특정 붓다를 중심으로 장소성이 형 성되며, 이는 사건과 결합하여 신앙의 장으로 전개된다.

금산사․법주사․ 동화사는 창건 초기 미륵․지장 신앙을 기반으로 조성되었고, 이후 아미타 신앙을 포함한 통합적 정토 신앙을 수용하면서 가람과 신앙 구조에 변화를 이루었다.

세 사찰은 모두 미륵불을 주불로 봉안한 공통점을 가지며, 통합 적 신앙 전개 속에서 유기적인 변모 과정을 보여준다.

사찰은 성속(聖俗)의 경계를 초월하는 불이(不⼆)의 공간으로서, 현실 문 제를 해소하는 정토 구현의 장이자, 이상세계로의 이행을 매개하는 장소로 기능한다.

진표율사의 신앙 대상인 미륵과 지장은 금산사의 미륵전․방등 계단․명부전 등에 공간적으로 구현되어, 두 신앙의 관계성과 정토사상의 구체적 장소화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로 작용한다.

미륵 신앙은 『미륵상생경』, 『미륵하생경』, 『미륵성불경』, 『관미륵보살 상생도솔천경』을 통해, 지장 신앙은 『점찰경』28)을 통해 그 사상적 기반을 확인할 수 있다.

지장 신앙은 시왕전의 확대 개념으로 명부전 또는 지장전 의 형태로 정착되었으며, 전각․불상․탱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세 사찰에 봉안되어 신앙의 장소를 구성하고 있다.

미륵과 미타의 정토 신앙에 타방 정토 또는 현실 정토의 의미가 함의되어 있지만, 넓은 의미에서 보면 유심 정토와 영장 정토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 다고 볼 수 있다.

염불삼매의 실천을 통해 정토왕생의 길을 안내한 『점찰선 악업보경』과 출가자의 수행 규범을 자세히 알려준 『공양차제법』29)은 진표 율사가 스승에게 받은 책30)이다.

 

    28) 『占察經』은 『占察善惡業報經』의 약칭으로 『地藏菩薩業報經』, 『地藏菩薩經』, 『大乘 實義經』, 『漸刹經』 등으로 불린다.

    29) 『大毗盧遮那供養次第法疏』

   30) 이러한 내용은 『三國遺事』 「眞表傳簡」 「關東楓岳鉢淵薮石記』, 『宋⾼僧傳』 「唐百濟國 ⾦山寺眞表」에 수록된 것으로 진표율사에 대한 일관된 기록이 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따 라서 이에 대한 해석도 다양하여 유식학, 법상종, 미륵신앙, 지장 신앙 등 다양한 관점에 서 이해되고 있다.

 

진표율사에 관한 여러 서사에도 불구하고, 순제가 진표에게 두 권의 『점 찰경』을 전하며 “미륵과 지장 두 성인 앞에서 간절히 참회하라”는 당부를 남긴 사실은 명확히 확인된다.

이에 따라 진표율사는 망신 참회를 통해 미 륵과 지장을 친견하였으며, 칭명 염불과 망신 참회를 통해 미륵 정토에 왕 생하고자 하는 수행 목표를 제시하였다.

이러한 수행 방식은 진표율사가 중 창 또는 중창에 관여한 세 사찰의 당시 정토 신앙을 유추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비록 시대적 변화에 따라 가람은 변화하였으나, 현재에도 전각․불상․탱 화를 통해 미륵․지장․미타 중심의 정토 신앙이 지속적으로 계승되고 있 다. 이러한 공간 구성은 사찰이 현실 정토의 구현과 타방 정토의 매개라는 이중적 기능을 수행하는 장소임을 보여주며, 불이(不⼆)의 인식 아래 신성과 속성이 통합된 실천적 유토피아를 형성한다.

 

   표4. 점찰․간자를통한미륵․지장신앙의전개와가람의전각․불상․탱화․조각 : 생략 (첨부 논문파일 참조)

 

경북 대구 세 사찰이 기존의 가람 양식에서 미륵․지장 신앙 중심의 사찰로 전환된 직접적 계기는 진표율사로부터 불골간자(佛⾻簡子)가 전수된 사건에 기인한 다.

이를 기점으로 ‘진표-영심-심지’로 이어지는 법의 맥이 형성되었고, 이 에 따라 금산사․법주사․동화사에 이르는 미륵․지장 신앙의 장소성이 점 차 확립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각 사찰의 중창 서사 속에서 미륵․지장 신앙 을 중심으로 한 공간 구성의 전개 과정을 통해 확인된다.

 

2. 금산사․법주사․동화사의전각․불상․조각․탱화에함의된 정토신앙의장소성

 

세 사찰의 전각․불상․조각․탱화를 정토 신앙의 관점에서 비교하면, 현 재 모두 미륵불과 아미타불을 봉안하고 있으며, 지장보살을 모신 명부전․ 탱화가 신앙 축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지장 신앙은 현실과 불국정토를 연결하는 매개적 장소성을 지니며, 수행자에게는 직접적인 왕 생 혹은 현실 속 정토 구현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부여한다.

이는 공간적 시 간적 유토피아가 통합된 시공간적 정토 개념으로 해석된다. 금산사의 ‘방등계단-미륵전-명부전’, 법주사의 ‘청동 미륵대불․마애미륵불-팔상전-명부전․마애 지장보살’의 구성을 통해 미륵․지장 신앙이 유 기적인 서사 구조 전승으로 형상화되었을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동화사의 금당선원, 아미타 삼존상, 명부전의 지장보살은 미륵․지장․미타 신앙이 통합된 신앙 체계를 반영한다.

이는 각 사찰의 가람 조영에 있어 미륵․지장 ․ 미타 신앙이 통합적으로 전승․구현되었음을 시사한다.

전통 불탑이 일반적으로 내부에 불상 없이 사리 또는 유물을 봉안하는 구 조인 데 반해, 법주사의 팔상전은 팔상도 벽화와 함께 불상 및 영산전․나한 전을 봉안함으로써 탑의 기능과 전각의 기능을 겸비한 복합 구조로 해석된 다.

특히 5층 목탑형 구조는 도솔천에 머무는 미륵보살을 상징하며, 팔상전 은 미륵 정토를 가시적․공간적으로 구현한 사례로 평가된다.

 

    <표5/6/7/8> : 생략 (첨부 논문파일 참조)

 

  표5. 금산사방등계단․미륵전․명부전 금산사방등계단 오층석탑 금산사미륵전 금산사미륵불상  금산사명부전내부

    표6. 법주사미륵대불․팔상전․명부전 법주사미륵대불 금산사명부전 법주사마애미륵불 법주사팔상전 법주사팔상전평면도 사찰의 가람 조영에 함의된 정토 신앙과 유토피아 149 법주사명부전 법주사명부전내부

    표7. 동화사금당선원․아미타삼존상․비로자나불․명부전 동화사금당선원(금당암) 동화사영산전삼존불 동화사아미타여래삼존상 금당아미타극락회상도  동화사지장삼존도

    표8. 지장아미타병존도, 염중섭(2022), p.75. 지장시왕․아미타정토도 동화사비로자나불  아미타 ․ 지장병립도 10C 中國 五代 프랑스파리기메뮤지엄 14C 고려 미국메트로폴리탄뮤지엄

   

     

불교적 정토 세계는 내세적 이상향을 넘어, 구체적인 공간으로 상징화되 며 현실의 장소성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는다.

이때 ‘공간’은 추상적이고 관 념적인 범주로서 정토의 구조와 체계를 설명하는 철학적 기반이며, ‘장소’ 는 그 공간이 특정한 의미를 갖고 현실 세계에 현현하는 구체적인 지점으로 기능한다.

정토는 서방 극락정토(아미타불), 도솔천 내원 정토(미륵불), 유리광정토(약사불) 등 다양한 형식으로 설정되며, 이들 각각은 고통이 소멸하고 깨달음이 실현되는 이상세계로 제시된다.

이는 고통과 윤회의 현실을 초월하고자 하 는 인간의 궁극적 지향점을 구현한 종교적 유토피아로 해석될 수 있다.

‘미륵․지장 신앙’의 결합은 진표율사의 서사에 기반하며, 지장은 조상 숭배와 결합하여 사후 구원의 존재로 인식되었다.

진표율사의 지장 신앙은 참회를 바탕으로 미륵의 도솔 정토에 왕생하는 통합적 신앙 구조를 형성하 였으며, 이는 이후 ‘미타․지장 신앙’의 병립31)이 수용되어 동아시아 불교 의 통합 신앙 양상을 보여준다.

 

     31) 미타불과 지장보살이 대등하게 병치된 사례로는 프랑스 기메박물관 소장 10세기 오대 시 대의 ‘지장시왕․아미타정토도’와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고려 말 14세기의 ‘아 미타․지장병립도’를 들 수 있다. 이들 불화는 지장보살의 지옥 중생 구제와 아미타불의 극락 인도라는 두 신앙이 병존하는 도상 구성을 보여주며, 지장보살은 시왕과 함께 지옥 의 심판과 구제를, 아미타불은 극락정토로의 인도를 상징한다. 특히 고려시대 불화에서 는 드물게 지장과 아미타가 대등한 위치에 병립하여 표현되어, 두 존재의 위상이 동등하 게 인식되었음을 시사하며, 병존 신앙의 도상적 증거로서 주목된다.(염중섭(2022), p.75.) 

 

불교사찰의 가람 구성은 이러한 정토의 공간적 구현을 의도한 상징 체계 로 작동한다.

불전과 탑, 계단, 강당 등은 정토 세계의 구조를 축소적으로 재 현하며, 수행자의 몸과 마음이 정화되어 정토로 나아가는 과정을 공간적으 로 안내한다.

이처럼 불교의 정토 세계는 단지 신앙의 대상으로 머무는 것 이 아니라, 특정 장소를 통해서 실현이 가능한 이상향으로 구체화 된다. 이 는 곧 종교적 유토피아로서의 정토와 철학적 유토피아 개념 사이의 연결고 리를 형성한다.

따라서 공간과 장소의 상징성은 정토 신앙의 시각적․건축적 구현을 통 해 구체화 되며, 이는 이상향으로서의 유토피아 개념과 상호 호응하는 구조 를 지닌다.

불교적 정토는 단순한 내세의 세계를 넘어, 현실에서 구현이 가능한 ‘장소적 유토피아’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3. 금산사․법주사․동화사의현재가람조영에반영된 정토신앙의장소성

 

현재 금산사는 미륵전, 대적광전, 대장전, 명부전, 나한전, 삼성각 등을 중심으로 가람이 조성되어 있으며, 방등계단, 석탑, 석련대 등 주요 유구가 배치되어 있다.

미륵전․방등계단․명부전은 미륵․지장 신앙의 서사 전승 과 장소성을 함의하며, 정토를 향한 기억과 의미가 축적된 상징적 장소로 기능한다.

가람의 변형에도 불구하고 이들 장소는 전통 신앙의 자취를 유지하고 있 으며, 대적광전에 봉안된 5불 6보살은 화엄 신앙을 포함한 다양한 여래 신 앙을 통합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금산사는 통합 불교적 성격을 지닌 사찰로 자리매김하지만, 그 중심에는 여전히 개산 당시의 미륵․지장 신앙의 장소 성이 유지되고 있다.

현재 법주사의 주요 전각은 청동 미륵 대불, 용화전32), 용화보전지33), 팔 상전, 원통보전, 대웅보전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과거 법주사가 가장 번 성했던 시기34)에 비해 그 규모는 축소된 양상을 보인다.

현존하는 유일한 목탑인 팔상전은 내부에 영산전과 나한전의 기능이 통합되어 있으며, 대웅 보전35)에는 석가모니불, 비로자나불, 노사나불이 봉안되어 있으나, 주불은비로자나불이다.

 

     32) 지금은 사라진 法住寺 ‘⿓華寶殿’은 법주사의 상징이자 주전각이었다. 수정봉 아래 산호 대 앞에 있었기에 ‘珊瑚殿’으로 불렸고, 미륵불이 봉안되어 있었기에 ‘彌勒殿’으로도 불 렸다. 원래 신라시대에 조성된 “⾦身丈六像”, 즉 금동미륵장육존상이 봉안되어 있었으 나 정유재란(1597~1598)때 전각과 함께 소실되었다.(신은영(2020), p.33.) 지금의 용화전 은 1990년에 조성된 신축 불사이다.

    33) 원래 ⿓華寶殿에 丈六尊像이 봉안되어 있었다고 한다.(『朝鮮王朝實錄』, “仁祖 13年 乙 亥 ⼆月 ⼆十三日. 報恩縣 俗離寺 丈六佛, 流汗如瀉, 監司以聞.)

    34) 『俗離山大法住寺事蹟記』에 의하면 법주사가 가장 번창한 시기에 건물이 60여 棟, 그리 고 그 주변 계곡에 70여 개의 암자 등이 있었다고 한다.(장현석․최효승(2005), p.80.)

    35) 주불이 비로자나불이므로 전각의 이름을 ‘대적광전’으로 명명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하 는 주장이 있다. 조선 후기 통 불교 사찰의 주 건물이 석가모니를 주불로 하는 대웅전이었 으므로 이에 응하여 지어진 것으로 이해한다. 원래의 이름이 ‘대웅대광명전’으로 기록되 어 있다.(최현각 외(2022), p.62.)

 

관세음보살을 봉안한 원통보전, 과거 적멸보궁의 기능을 하였으나 현재는 영산전 또는 나한전의 기능을 수행하는 능인전, 청동 미륵 대불의 기단부 내부에 설치된 용화전36) 등이 법주사의 주요 법당으로 자리 하고 있다.

현재 동화사의 가람 구성은 전통 불교 교리와 현실 기복 신앙이 공존하는 통합적 구조를 이룬다.

대웅전에는 삼존불(석가․아미타․약사)과 함께 삼장탱 화, 지장보살탱화가 봉안되어 교리적 통합성을 나타내며, 영산전과 산신각 은 각각 불교 교리와 민간 신앙을 반영한다.

극락전과 수마제전에는 아미타 불이 봉안되어 있으며, 통일약사대불은 약사 신앙37)의 지속성을 보여준다.

약사여래 신앙이 미륵․지장 신앙과 직접 연결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진표율사 관련 기록38)에 근거해 연관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러한 구성은 동 화사의 신앙 통합성과 복합적 장소성을 반영한다.

세 사찰에서 미륵․지장 신앙이 담당해 온 ‘장소’는 통합 불교적 신앙이 반영된 공간으로 변모하였으며, 이는 단순한 종교적 배경을 넘어 철학적 의 미를 지닌 장소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장소성은 “인간 실존이 외부 세계와 맺는 유대를 드러내는 동시에, 인간 존재의 자유와 실재성을 확 인”39) 하는 구조 속에서 형성된다.

 

     36) 옛 용화보전 뒤 절벽인 산호대 앞에 놓였다고 하여 산호보전(珊瑚寶殿)이라고 불렸다. 대 웅보전보다 규모가 컸으며 법주사의 주불전 이었다고 한다.(최현각 외(2022), p.76.)

     37) 팔공산을 중심으로 현존하는 불상 다수가 약사여래불임을 주목할 수 있다. 약사 신앙은 왕실 사람들의 질병 치유를 기원하는 의례로서, 『점찰경』과 『인왕경』을 소의 경전으로 하여 점찰 법회 또는 백고좌법회를 거행하면서 유래하였다. 이 과정에서 점찰 신앙은 약 사 신앙과 지장 신앙으로 발전하였으며, 세 신앙은 동일한 신앙 체계 내에서 상호 연관된 형태로 인식된다. 결국 점찰 신앙이 대중화되면서 약사 신앙과 지장 신앙으로 정착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동화사․법륜불자교수회(2001), p.61.)

     38) 『楡岾寺本末寺誌』에 실린 「⾦剛山鉢淵寺開刱祖師眞表律師事跡碑」에 의하면 진표가 발연사에 머물면서 약사여래를 도량주로 삼아 수행하여 국가를 도왔다고 한다.(“又於鉢 淵藪 審卜地 或鑄成□⽴像 藥師如來爲道場主 依⽽修⾏ 以補邦家”(『乾鳳寺本末事蹟 楡岾寺本末寺誌』) 실제로 진표가 약사여래를 鑄成하여 수행했는지 알 수 없으나 이 일 화도 당시 가뭄과 기근이라는 사회적 위기를 극복하고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 진표의 행적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박미선(2008), p.249.)           39) 에드워드 렐프 저, 김덕현 외 2명 옮김(2005), p.25에서 재인용 

 

불교의 정토는 이러한 철학적 장소성의 구조를 지니며, 단순한 내세의 공간이 아니라 의례와 수행, 가람 구조를 통해 실재화 된 이상향으로 구현된다.

 

Ⅴ. 마무리하는 말

 

불교의 정토 개념은 추상적 이상향을 넘어, 사찰의 가람 조영과 신앙 실 천을 통해 구체적 장소로 구현된다.

금산사․법주사․동화사는 미륵․지장 신앙을 기반으로 하여 아미타 신앙을 수용하고, 통합 불교적 가람 구조로 변모하였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개산 당시 정토 신앙의 공간적 서사는 물리적 구성에 반영되어 장소화가 지속되었으며, 이는 정토가 수행을 통해 현실에서도 실현 가능한 윤리적 유토피아로 기능함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본 연구에서는 다음의 세 가지 측면에서 분석을 진행하였다.

  첫째, 금산 사․법주사․동화사 세 사찰의 창건 및 중건과 관련된 역사적 맥락을 고찰 함으로써, 각 사찰의 가람 조영에 내포된 미륵 및 지장 신앙과의 연관성을 규명하였다.

세 사찰 모두 진표율사와의 관련성 속에서 창건 또는 중창되었 으며, 초기부터 미륵․지장 신앙의 서사 전승을 신앙적 기반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공통된 흐름을 보였다.

   둘째, 개산 당시의 신앙 전통을 계승한 세 사찰의 공간은 미륵․지장 신앙 의 확장을 바탕으로 범 정토 신앙으로 통합된 불교적 장소성을 형성하고 있 으며, 이는 다양한 불교 교학의 병존이라는 통합 불교적 특성을 반영한다.

이러한 통합적 구조 속에서도 전각, 불상, 계단, 조각 등의 형성 시기와 이전 경위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견이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다.

금산사의 방등계단과 오층탑은 조성 배경과 시기에 대한 확실한 기록이 없어 다양한 견해가 제기40)되어 왔다.

 

    40) 박광연(2018)의 연구에서 문제 제기와 연구 방향이 제시되고 있다.

 

미륵전 또한 반복된 화재와 중창을 거치며 불상과 전각의 원형에 대한 논의가 지속되었으며, 최근 중창된 대적 광전에 봉안된 다수의 불보살에 대한 장소화의 존재성 역시 향후 규명되어 야 할 주요 연구과제로 지적된다.

법주사의 가람 조영에 있어, 소실된 용화보전을 중심으로 한 신앙 공간에 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일부 연구자들은 용화보전 전면에 마하가섭상 이 일렬로 배치되었음을 근거로, ‘용화보전-마하가섭상-불단-사천왕석 등’41)의 구도를 통해 미륵신앙의 상징적 구조로 조영되었음을 주장한다.

이는 ‘용화보전-희견보살상-석연지-사천왕석등’42) 구도와 대조되며, 미륵 의 강림과 가섭의 부촉에 대한 교리적 해석 차이를 반영한다.

이러한 견해 의 차이에도 가람의 조영 구조는 법주사가 미륵신앙 실현의 장소로 기능했 음을 시사하는 중요한 근거로 평가된다.

동화사는 초창기 진표율사 관련 미륵․지장 신앙의 서사 전승의 신앙 형 태가 가람으로 구현되는 ‘대현(大賢) 계통’43)의 방식에서는 주불전인 금당 에 미륵을 안치하고 강당에는 아미타를 봉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 시대 동화사의 창건 가람은 미륵을 주불로 하는 미륵당과, 아미타불을 봉안 한 무량수전으로 구성되었으며, 무량수전은 본래 지장보살을 모신 강당으 로 추정된다.

이는 대현계․진표계 법상종의 미륵․아미타 병존 신앙을 반영하며 조선 전기까지 유지되었다.

이후 금당암 일대는 재건 과정에서 극락전이 신축되 고, 아미타불은 수마제전에 이안되어 아미타 신앙 도량으로 변모하였다.

이 러한 변화는 임진왜란 이후 휴정계의 주도, 군사적 활용, 전란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염원한 신앙 실천에 기인44)한다.

 

       41) 신은영(2018)의 연구에서 상세하게 논의되고 있다.

       42) ‘희견보살상’이 『법화경』에 근거한 이름이고, ‘석연지’의 용도를 “연꽃을 심었던 연지” 라는 인식이 조선 중기부터 이어져 오다가 근래 불교 사상적 차원에서 ‘향로, 발우, 다기’ 라는 주장이 제기되었지만, ‘희견보살상’을 ‘마하가섭상’으로 ‘석연지’를 ‘불단’으로 보 아 ‘용화보전-마하가섭상-불단’의 구조로 보는 신은영(2018)의 주장에 ‘진표율사의 미륵 ․ 지장 신앙’의 서사 전승에 대한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43) 신라시대 법상종은 대현과 진표의 두 계통으로 나뉘며, 대현 계통은 왕실 후원 아래 교학 중심의 정토 신앙을 전개했고, 진표 계통은 참회와 점찰법을 바탕으로 미륵․지장 신앙을 실천 중심으로 민중 교화를 펼쳤다.

     44) 한지만(2021), pp.110-111. 

 

   셋째, 세 사찰의 정토 신앙이 미륵․지장 신앙을 기반으로 한 이상세계보 다 확장된 장소성의 지향성을 보여주며, 이는 전통적인 정토 개념을 넘어서는 확장된 유토피아 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정토는 내세의 구원 공간이 자 현실에서 실현이 가능한 윤리적 이상향으로, 세 사찰은 이를 장소적으로 구현한 대표적 사례로 평가된다.

논자는 세 사찰의 가람 조영에 반영된 정토의 이상세계를 유토피아 개념 으로 규정함으로써, 정토 신앙이 지닌 장소성을 보다 광의적․상징적 의미 로 확장하고자 하였다.

초기 가람 조영은 ‘미륵․지장’ 신앙을 중심으로 전 개되었으나, 점차 ‘미타․지장’, ‘‘미륵․미타’45), ‘미륵․지장․미타’에서 통 합 불교적인 장소로 확장되며 당대의 사회․정치적 변화를 반영한 신앙 구 조로 변용되었다.

공간 속의 방향과 장소가 고유의 특성을 갖는다는 사실은 다른 측면에서 공간을 이해할 때도 중요하다.

신화적인 세계관이 완전히 사라지고, 공간의 고유성이 개인을 초월한 객관적 타당성과 신화적 바탕의 유효성을 상실한 지금도 개인의 삶에서 장소와 방향은 특별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46)

 

     45) 『삼국유사』에 따르면, 경덕왕은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의 성불 전승에 따라 757년 백월산 남사를 창건하고, 금당에는 미륵존상(現身成道彌勒之殿)을, 강당에는 아미타불상(現身 成道無量壽殿)을 봉안하여 양불 병립의 신앙을 제도적 공간으로 구현하였다.(『三國遺 事』 南白月⼆聖)

     46) 오토 프리드리히 볼노 지음․이기숙 옮김(2011), p.86. 

 

이와 같은 정토의 장소성은 사찰의 가람배치, 전각 구조, 수행 공간의 형식에 구 체적으로 반영되어 있으며, 정토가 종교적 유토피아로서 현실과 내세를 연 결하는 공간으로 기능함을 시사한다.

유토피아 개념은 서양에서 플라톤의 『국가』를 기원으로 하는 이성 중심 의 합리적 이상 국가에서 비롯되었으며, 동아시아에서는 유교의 대동세계 와 도가의 무릉도원을 통해 공공성과 자연의 조화를 지향하는 이상세계로 전개되었다.

기독교 전통에서는 천국과 천년왕국을 통해 종말론적 구원의 시간적 질서를 포함한 유토피아가 구현된다.

불교에서 유토피아는 ‘정토(淨土)’로 대표되며, 이는 아미타불의 서방극 락정토를 중심으로 ‘유심 정토’, ‘현실 정토’, ‘타방 정토’, ‘영장 정토’ 등으 로 확장되어 왔다.

특히 미륵불의 상생 도솔천과 하생 용화세계는 공간적․ 시간적 이중 구조의 유토피아로 주목된다.

이러한 불교의 정토는 마음속 수행과 현실 공동체 구현을 통해 실현되는 정신적․존재론적 유토피아로, 불 교 사상과 긴밀히 결합된 총체적 이상세계로 이해된다.

유토피아는 시대, 문화, 종교 전통에 따라 이상적 삶의 구조를 상징하는 공간이자 시간이며, 존재론적 해방의 가능성을 내포하는 상상적 기획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금산사․법주사․동화사는 단순한 역사적 공간을 넘어, 미륵․지장․미타 신앙의 서사적 전승 구조를 통해 과거의 개 산(開山) 의미와 미래 지향적 신앙 전망이 복합된 유토피아적 장소로 해석된 다.

이들 사찰은 현실과 초월,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매개하는 수행과 신행 의 상징적 장(場)으로 기능하며, 전통 유토피아 사유가 불교적 수행과 신앙 실천을 통해 구체화 된 대표적 사례로 자리매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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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요약

사찰의 가람 조영에는 창건 당시의 사상과 교리 체계가 반영되어 있으며, 이후 시대적 변화에 따라 해당 사상과 교리에 기반한 문화 요소가 가미되어 새로운 담론과 상징성을 형성하게 된다.

한국의 전통 사찰은 자연환경과 불 교 교리가 융합된 복합적 공간으로 구성되며, 가람은 불(佛) ․법(法) ․승(僧) 이 통합된 신성성과 현실성이 공존하는 장소로 기능한다.

금산사․법주사․동화사는 미륵․지장 신앙의 서사에 기반하여 조영된 대표적인 사찰로, 해당 신앙은 경전과 수행 전승을 통해 구체화 된 교리적 배경을 지닌다.

이들 사찰은 현실에서의 구원과 이상세계에 대한 열망이 중 첩된 공간으로서, 불교의 정토 신앙과 더불어 유토피아적 상징성을 내포하 고 있다.

본 연구는 금산사․법주사․동화사의 가람 조영에 반영된 미륵․지장 신 앙의 서사 전승과 역사적 맥락을 고찰하고, 이들 사찰의 ‘장소성’을 중심으 로 정토 신앙의 구현 양상을 분석하고자 한다.

나아가 미륵․지장 신앙의 확 장된 정토사상과의 연계를 통해 각 사찰에 내포된 유토피아적 장소성의 의 미를 비교 고찰함으로써, 현실적 유토피아로서의 장소성과 내세적 이상세 계로서의 타방 정토가 지닌 성속(聖俗) 불이(不⼆)의 조화 가능성을 모색한 다.

 

주제어 금산사, 법주사, 동화사, 정토, 진표율사, 유토피아장소성, 가람조영

 

Abstract

The Pure Land Faith and Utopian Ideals Embodied in the Architectural Layout of Buddhist Temples: The Spatial Significance in the Narrative Transmission of Geumsansa, Beopjusa, and Donghwasa

Jang, Jae-Jin

 

The architectural layout of Buddhist temple complexes reflects the ideological and doctrinal systems at the time of their founding. Over time, these foundational elements have been shaped by cultural influences appropriate to each historical period, giving rise to new discourses and symbolic meanings. Traditional Korean temples are structured as complex spaces in which natural landscapes and Buddhist teachings are harmoniously integrated. The temple complex (garam) thus functions as a place where the Three Jewels ―Buddha (佛), Dharma (法), and Sangha (僧)― are unified, embodying both sacred and secular dimensions. Geumsansa, Beopjusa, and Donghwasa are exemplary temples whose spatial constructions are grounded in the narrative traditions of the Maitreya and Kṣitigarbha faiths. These religious narratives, systematized through scriptures and ritual practices, form the doctrinal basis for the temples' development. These sites embody overlapping aspirations for salvation in this world and the pursuit of an ideal realm, thereby encompassing both the Pure Land faith and utopian symbolism within Buddhist cosmology. This study investigates the historical contexts of Maitreya and Kṣitigarbha beliefs as manifested in the spatial configurations of Geumsansa, Beopjusa, and Donghwasa. Focusing on the -sense of place- embodied in these  temples, this study analyzes how Pure Land beliefs are spatially realized. Furthermore, by examining the utopian implications of the -place-based sacredness- derived from the extended Pure Land worldview of the Maitreya faith, this study explored the possibility of reconciling the sacred and the secular through both the this-worldly utopia and the other-worldly ideal of the Pure Land.

 

Key Word Geumsansa, Beopjusa, Donghwasa, Pure Land, Monk Jinpyo, Utopia-place nexus, Architectural Layout of the Temple Complex 

 

 

논문투고일: 2025. 5. 29❙심사완료일:2025. 6. 28❙게재확정일: 2025. 7. 4

佛敎學報 第108輯

 

사찰의 가람 조영에 함의된 정토 신앙과 유토피아 - 금산사&middot;법주사&middot;동화사 서사 전승의 &lsquo;장소성&rsquo;을 중심으로 - (1).pdf
7.16MB

http://dx.doi.org/10.18587/bh.2025.07.108.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