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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이야기

초기불교 문헌에 나타난 자살 –사례를 중심으로-/ 김재성. 능인대학원大

 

I. 머리말

II. 불교의 죽음관과 자살문제

III. 초기불교의 자살론

IV. 맺음말

 

 

 

I. 머리말

 

한국은 OECD국가에서 자살율이 높기로 유명하다.

이처럼 자살 은 현대한국 사회의 심각한 사회문제이다.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끊는 자살을 불교에서는 어떻게 보는가.

자살해도 문제가 없는가. 자살하면 안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자살을 용인하는 경우는 없는가. 등의 문제에 대해서 초기불교 문헌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불교는 생사윤회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에 대한 붓다의 가 르침이다.

붓다는 초기경전에서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만을 천명 한다고 하였다.1)

생사윤회는 괴로움의 진리와 괴로움의 원인의 진리로 설명하고, 괴로움에서 벗어남과 그 길은 괴로움의 소멸의 진리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의 진리로 설명한다.

이것이 초 기불교의 진리론인 사성제이다. 괴로움의 진리 가운데 죽음은 누구나 맞이할 수 밖에 없는 괴 로움인데, 이 죽음을 불교에서는 어떻게 설명하며, 괴로움의 원인 인 갈애 가운데 비존재의 갈애와 자살의 의미, 경전에 보이는 자 살 사례와 율장에서 설명하는 자살, 그리고 아라한과 자살에 대한 문제를 고찰해보고자 한다.

먼저 불교에서 보는 자살에 대한 선행연구와 그 내용을 간단히 살펴본다.

먼저 백도수(2002), 「불교에 나타난 자살에 대한 고찰 - 율장을 중심으로」2)는 불교의 살생과 살인, 불교의 자살에 대한 의미와 자살의 유형, 동기, 방법, 자해, 자살 금지의 입장으로서 악 한 과보, 불교에서의 자살에 대한 입장을 다루고 있다.

 

     1) 훌륭하다! 훌륭하다 아누룻다여, 이전에도 현재도, 아누룻다여, 나는 괴로 움과 괴로움의 소멸만을 천명한다. SN. III, 118. Sādhu sādhu, anurādha! Pubbe cāhaṃ, anurādha, etarahi ca dukkhañceva paññapemi, dukkhassa ca nirodha’’nti.         2) 백도수(2002). 

 

안양규(2002), 「붓다의 입멸과 관련한 아라한의 자살」3)에서는 붓다의 수 명 포기와 아라한의 자살 문제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박광준 (2013), 「불교의 자살관에 대한 사회복지적 해석」4)에서는 초기경 전에 나타난 왁깔리, 고디까, 찬나의 자살에 대한 상황을 고찰하 며 붓다는 그들이 처한 상황을 수용하였지만, 자살이 바른 태도라 고 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이문성(2007), 「자살에 대한 불교적 관 점과 해결책 : 윤회론적 입장을 중심으로」5)에서는 불교의 윤회론 의 입장에서 자살과 그 해결책을 모색한다. 그리고 불교생명윤리 에 입장에서 자살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있었다.6)

최혜선(2015), 「불교에서의 자살인식과 대안 연구」7)에서는 한국사회에서의 자살 문제와 현대의 제 관점, 불교에서 본 자살, 현대 한국사회의 자살 문제에 대한 불교적 대안을 4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3) 안양규(2002).

    4) 박광준(2013).

    5) 이문성(2007).

    6) 박건주(2010); 박병기(2013); 허남결(2013).

    7) 최혜선(2015).

    8) Peter Harvey(2000); 허남결 역(2010).

    9) Alexander Wynne(2022).

 

Peter Harvey(2000), Introduction to Buddhist Ethics8)의 7장에 서는 자살과 안락사의 문제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다루며, 자살에 대한 반대의 입장, 자살과 계율에 대해서 자세히 논의하고 있다.

Alexander Wynne(2022), Suicide: An Exploration of Early Buddhist Values9)에서는 초기경전에서 자살한 찬나(Channa), 왁 깔리(Vakkali), 고디까(Godhika)에 대한 이야기를 빠알리 경전과 한역 경전을 자세히 분석하고 있다.

경전에서는 세 사람 모두 아 라한이었다고 결론짓지만, 그 경전 기록은 보이는 것과 다르다는 점을 지적한다.

두 경전은 자살하려는 비구들을 최후의 열반으로 결론짓기 전에 깨달음을 얻지 못한 자들로 취급하는 반면, 다른 경전은 매우 비정통적이라고 하며, 이 논문에서는 경전이 실제로 자살에 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불교 사상의 영향을 받아 열반에 대한 이해를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杉本卓洲(1999), 오계의 주변(五戒の周辺)10) 3장에서 초기불 교에서 자살관-무유애(죽음에의 충동)와 자살을 다루고 있다.

즉 초기경전에 보이는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의 하나로 무유애와 초 기경전에 나타난 비구들의 자살문제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다.

藤田宏達(1988), 「원시불전에 보이는 죽음」11)에서도 자살문제 를 다루며, 왁깔리, 찬나, 고디까의 자살 사례를 자살을 긍정하는 이야기로 보며 자세하게 고찰하고 있다.

 

     10) 杉本卓洲(1999).

     11) 藤田宏達(1988). 

 

이상의 선행연구들을 참조해 가면서 본고에서는 불교에서의 자 살에 대해서 고찰해보고자 한다.

 

Ⅱ. 불교의 죽음관과 자살문제

 

1. 불교의 죽음관

 

불교는 생로병사(生老病死)를 포함한 모든 괴로움을 소멸시키기 위한 가르침이다. 네 가지 고귀한 진리[사성제]로 대표되는 초기 불교의 가르침의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괴로움의 소멸의 진리’인 고멸성제 즉 열반의 실현에 있다. 열반은 죽지않음(不死, amata), 고요함(寂靜, santi), 죽음없음(無死, amaccu)과 동의어이다.12)

 

    12) Sn. 204게. 이 세상에서 욕망과 탐욕을 버린, 지혜 있는 수행승은 불사(不 死), 적정(寂靜), 무사(無死)의 열반의 경지에 도달했다.

 

열 반의 동의어에서 볼 수 있듯이 불교의 궁극 목적인 열반은 바로 죽음을 극복한 상태이다. 따라서 죽음은 불교의 핵심적인 가르침 과 직결되어 있다.

하지만 살아있는 인간이나 존재가 죽음을 극복 한다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다면, 우리가 상식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죽음은 아닐 것이다. 즉, 직접적으로 이 생에서의 죽음을 극복 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더 이상의 윤회에서의 재생(再生)이 없기에 또 다른 죽음은 없다는 의미에서 죽음의 극복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사고팔고(四苦八苦) 등의 괴로움 가운데 죽음은 모든 존재가 누 구나 겪어야만 하는 실존적인 문제이며, 붓다는 바로 자신과 중생 들의 죽음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출가수행을 하였다고 한다.

출 가하기 전의 고타마 붓다는 늙음과 병듦과 죽음이라는 괴로움으 로부터 벗어나는 길13)을 찾고자 젊음, 건강, 수명에 대한 도취를 버리고, 29살에, 세속의 부귀영화가 정해져 있던 왕좌를 떨쳐버리 고 궁극의 선(善, kusala)을 구하기 위해서 가족과 왕국을 버리고 출가한다.14)

궁극의 선(善)은 최고 행복, 안온, 괴로움의 소멸, 죽 음 없음, 열반을 가리킨다. 이처럼 붓다는 죽음이라는 실존적 한 계상황에 대한 극복을 최대과제로 생각해서, 출가하여, 스승의 지 도와 6년 고행을 보내고, 35세 나이에 스스로 완전한 깨달음을 얻 으면서 그 문제를 해결했다고 선언하였다.

즉 죽음을 포함한 모든 괴로움을 극복했다.15)

초기경전에서 사성제(四聖諦)의 첫 번째 진리인 괴로움의 고귀 한 진리(苦聖諦)에서 태어남과 죽음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태어남(生)이란 무엇인가. 중생들이 이런저런 중생(衆 生)의 부류에서의 태어남, 출생, 입태(入胎), 나타남[abhinibbatti, 변화 해서 태어나는 존재[化生]16)로 현현하는 것], 다섯 무더기들[五蘊]의 생겨남, 여섯 감각기관들[六入]의 발생이 있다.

 

       13) AN. V, 144. 태어남, 늙음, 죽음의 세 가지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여래, 응공, 정등각자가 세상에 출현하였다고 한다. 藤田(1988), 63.

       14) DN. I, 114-115; MN. I, 163; MN. II, 151.

       15) 금강대불교문화연구소편(2006), 18.

       16) 여섯 가지 존재의 세계(六道: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인)에서 태생(胎生)과 난생(卵生)으로 태어나는 인간과 동물의 세계를 제외한 모 든 존재들은 화생(化生)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태어남이라고 한다.17) 비구들이여, 죽음(死)이란 무엇인가. 중생들이 이런 저런 중생(衆生) 의 부류에서의 죽음, 죽는 것, 파괴, 소멸, 사망, 사(死), 목숨이 다함, 다섯 가지 무더기[五蘊]의 파괴, 신체를 버림, 생명기관[命根]의 끊어 짐18)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죽음이라고 한다.19)

 

      17) DN. II, 305, 6-9; Vibh. 99, 13-15. 잡아함경에서는 「云何為生. 若彼彼 衆生, 彼彼身種類一生。超越和合出生。得陰得界得入處得命根, 是名為生」(T2, 85b11-13)이라고 하며, 아함부에 속한 緣起經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云何為生. 謂彼彼有情, 於彼彼有情類, 諸生等生趣, 起出現蘊, 得界得處得諸 蘊, 生起命根出現, 是名為生」(T2, 547b24-26)

     18) 생명기관[命根]의 끊어짐 jīvitindriyassa upacchedo이라는 표현은 4 니까 야에서는 자주 쓰이지 않으며, 소부에서 논서의 성격이 많은 경전(Paṭis. I, 38, 4; Nd. I, 211, 16)과 논서(Vibh. 99, 23-24; 137, 26)에서 등장하는 말이다. 藤田(1988), 71 참조. 상윳따 니까야에는 여근(女根), 남근(男 根)과 함께 명근(命根)이라는 용어가 제시되어 있다. ‘tīṇimāni bhikkhave indriyāni. katamāni tīṇi. itthindriyam purisindriyaṃ jīvitindriyaṃ’ SN. Ⅴ, 204, 14-15. 잡아함경에서는 「云何為死. 彼彼衆生, 彼彼種類沒, 遷移, 身壞, 壽盡, 火離, 命滅, 捨陰時到, 是名為死(T2, 85b16-18)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명근(命根)을 육체적인 측면과 정신적인 측면으로 나누는 점은 후 대의 남방상좌부의 입장이며, 설일체유부의 구사론 등에서는 색법도 심법 또는 심소법도 아닌 심불상응행법으로 분류하고 있다. 藤田(1988), 73, 86, 주 12, 13 참조.

      19) katamañ ca bhikkhave maraṇaṃ. yam tesaṃ tesaṃ sattānaṃ tamhā tamhā sattanikāyā cuti, cavanatā, bhedo, antaradhānaṃ, maccu maraṇaṃ, kālakiriyā, khandhānaṃ bhedo, kaḷebarassa nikkhepo, [jīvitindriyassa upacchedo]. idaṃ vuccati bhikkhave maraṇaṃ. MN. I, 24-26; MN III, 249, 23-25; DN. II, 305, 14-18; SN. II, 3, 1-3; Vibh. 99, 21-24. 50∙佛敎硏究제60집 

 

위의 정의는 태어남이란 인간을 위시로 한 생명들의 육체[色]와 정신[名]이라는 오온이 생겨나는 것이고, 죽음이란 육체와 정신이 라는 오온의 소멸, 생명기관[命根]의 끊어짐을 의미한다 또한 수명(壽命, aˉyu)과 체열(體熱, usmaˉ)과 의식(意識, vin˜n˜aˉ ṇa)의 세가지 요소가 육체를 떠날 때, 의식 없는 나뭇조각처럼 되 며20), 이 수명(壽命, aˉyu), 체열(體熱, usmaˉ), 의식(意識, vin˜n˜aˉṇa) 이 버려지면, 죽은 육체는 단지 고기덩이로서 동물을 위한 희생물 로 버려진다21)고 하며 이 세 가지 요소가 있고 없음에 따라 생사 여부가 정해진다.

죽음은 괴로움[死苦]이자 생명 있는 존재들[衆生]이 당면하고 있 는 실존의 문제이다.

다시 말하면, 불교는 죽음의 문제를 진지하 게 사색하고 탐구한 종교이다.22)

초기불교문헌에서는 죽음에 대 해서 많은 사유를 하고 있다. 먼저 죽음은 위기적인 상황이다.

 숫타니파타 「대품」의 화살경(Salla-sutta)23)을 보자.

 

이 세상에서 인간의 수명은 정해져 있지 않아, [언제까지 살지] 알 수 없고, 비참하고, 짧으며 고뇌로 얽혀있다. 태어난 존재에게 죽음을 피할 방도는 없다. 늙음에 이르러 죽음을 맞이한다. 정말로 생명 있는 존재에게 이것 은 정해진 이치다. 익은 과일은 떨어질 두려움이 있는 것처럼, 이와 같이 태어난 자는 항상 죽음 때문에 두려움이 있다.24)

 

「팔게송품」의 늙음경(Jarā-sutta)은 이와 같이 말하고 있다.

 

아아 짧구나, 인간의 목숨이여! 백 년도 못되어 죽어버린다. 아무리 오래 산다고 해도 늙어서 죽는다.25)

 

    20) MN. I, 295-296.

    21) SN. III, 143. 불교생명윤리정립연구위원회(2006), 193에서 재인용.

    22) 정진홍(2008), 27.

    23) 전재성 역(2004), 320-321; 中村 元(1988)등의 번역을 참고하였으나 필요에 따라 필자가 수정하였다. 24) Sn. 574-576게.

    25) Sn. 804게. 藤田宏達(1988), 57. 

 

 

종교인이나 수행자(사문, 바라문), 신, 마라, 범천 그 누구도 ‘다 섯 가지 얻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즉, (1) 늙지 말라는 것, (2) 병 들지 말라는 것, (3) 죽지 말라는 것, (4) 부서지지 말는 것, (5) 끝 나지 말라는 다섯 가지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죽지 말라는 것’이 있는데, 누군가 죽음을 원치 않는다고 해서 그에게 죽음이 오지 않을 수 없음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얻을 수 없는 것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근심의 화살이라고 하며, 피할 수 없는 근심은 담담 하게 수용하라고 한다.

무지한 범부가 이 다섯 가지 얻을 수 없는 것을 경험할 때, 그 는 현명하게 숙고하지 않는다.

‘오직 나에게만 늙음, 병, 죽음, 부 서짐, 끝이 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중생들에게 늙음, 병, 죽음, 부 서짐, 끝이 찾아온다.

그런데 이 늙음, 병, 죽음, 부서짐, 끝이 찾아 올 때 내가 만약 근심하고 상심하며 슬퍼하고 가슴치며 울부짖고 광란하게 되면, 음식도 나를 즐겁게 하지 못할 것이고, 몸도 추하 게 될 것이고, 일도 할 수 없을 것이고, 적들은 기뻐하고, 친구들 은 우울하게 될 것이다.’라고. 그는 늙고, 병들고, 죽고, 부서지고, 끝날 때 근심하고, 상심하고, 슬퍼하고, 가슴치며 울부짖고, 광란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늙음, 병, 죽음, 부서짐, 끝은 다가온다.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현명하게 숙고하여, 늙고, 병들고, 죽고, 부 서지고, 끝날 때 근심하지 않고, 상심하지 않으며, 슬퍼하지 않고, 가슴치며 울부짖지 않고, 광란하지 않게 된다.

이들을 근심의 독 화살을 뽑아버린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라고 한다.26)

인생은 오래 산다 해도 백년이며, 결국은 늙어서 죽는다고 하는 자각은 삶이 무가치하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불 교에서는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얻기 어려운 기회를 얻은 것 이라고 한다.

유명한 <눈먼 거북이[盲龜遇木]>의 비유는 인간으로 태어난 삶의 소중한 가치를 느끼게 해준다.

이 이야기는 맛지마 니까야에 나오며, 한역 잡아함경27)에도 같은 내용이 있다.

 

       26) 대림스님역(2007), 앙굿따라 니까야 3, 142. AN5:48.

       27) 雜阿含經卷第十五 (四○六)T2, 108c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구멍이 하나 있는 멍에를 큰 바다에 던졌다고 하자. 그것을 동풍이 서쪽으로 옮기고, 서풍이 동쪽으로 옮긴다. 북풍이 남쪽으로 옮기고, 남풍이 북쪽으로 옮긴다. 거기에 눈먼 거북 이가 있어, 백년에 한 번 씩 바다 속에서 떠오른다고 하자. 비구들이 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눈먼 거북이는 그 구멍이 있는 멍에에 목 을 집어넣을 수 있겠는가? 세존이시여, 만일 가능하다고 한다면 언젠가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일 것입니다. 비구들이여, 눈먼 거북이 구멍이 있는 멍에에 목을 넣는 것은 오히 려 빠른 것이다. 그것보다 한 번 악처(惡處)에 떨어진 중생이 인간의 상태를 얻는 것은 더욱 어렵다고 나는 말한다. 그것은 그들에게 법에 맞는 행위(dhamma-cariyā 法行), 바른 행위(sama-cariyā 正行), 유익 한 행위(kusala-cariyā, 善行), 공덕이 되는 행위(puñña-cariyā 功德行) 가 없기 때문이다.28)

 

 

이 비유는 좋지 않은 행위 때문에 한 번 지옥 등의 악처(惡處) 에 떨어진 중생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은 아주 어렵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이 비유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에 따라 이 생에 인간으로 태어난 것은 얻기 어려운 귀중한 삶을 얻은 것이 라고 생각한다면, 인간 생명의 소중함을 되새길 수 있을 것이다.

불교는 이처럼 피할 수 없는 사건으로서 죽음과 그 절박함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인간으로 태어난 삶의 가치를 자각시켜 소중 한 인생을 마음의 정화를 위한 수행의 기회로 삼으라고 가르치며, 이는 죽음 명상29)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28) 어리석은 자와 현자의 경(Bālapandita Sutta No. 129) MN. III, 169, 9-24.

    29) 김재성(2007). 

 

2. 초기불교의 비존재의 갈애와 자살문제

 

사성제의 두 번째는 괴로움의 발생(일어남)의 진리이다.

이는 괴로움의 원인의 고귀한 진리(苦集聖諦)로 갈애(渴愛)를 말한다. 

갈애란 또 다른 생존을 초래하며, 쾌락과 탐욕을 동반하는, 이른 바 감각 욕망의 갈애(欲愛), 존재의 갈애(有愛), 비존재의 갈애(無 有愛)30)를 말한다.31)

감각 욕망의 갈애(kāma-tanhā, 欲愛)는 다섯 가지 감각기관(눈, 귀, 코, 혀, 몸)의 대상에서 감각적 쾌락을 얻고자 하는 갈망32)을 말한다.

존재의 갈애(bhava-tanhā, 有愛)는 주로 섬세한 물질의 세계(色 界)나 순수한 정신적인 세계(無色界)에 대한 갈망33)으로 삼매 경 험의 행복한 상태가 계속되기를 바라는 갈망이며, 영생의 갈망도 의미한다.

죽은 후에도 영속하는 영혼과 같은 것이 있다고 주장하 는 영원주의인 상견(常見)과 관련있다.

비존재의 갈애(vibhava-tanhā, 無有愛)는 죽음 이후에는 아무것 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허무주의, 단견(斷見)이라는 사견에서 나온 갈망34)이다.

 

     30) 杉本卓洲(1999), 78-81에서 8명의 일본을 대표하는 초기불교 연구자들의 무유애에 대한 해석을 소개하며, 본인은 무유애를 비존재, 생명의 정지, 절멸에 대한 갈애로 이해하고 있다고 한다. 藤田宏達(1988), 74에서도 무 유애는 자신의 생존을 부정하는 것 즉 자살이라는 현상이 상정되어있다 고 보아도 좋다고 하였다.

    31) SN. V, 426. Katamañca, bhikkhave, dukkhasamudayaṃariyasaccaṃ? Yāyaṃtaṇhāponobhavikānandirāgasahagatātatratatrābhinandinī, seyyathīdaṃ: kāmataṇhā, bhavataṇhā, vibhavataṇhā. Idaṃvuccati, bhikkhave, ‘dukkhasamudayaṃariyasaccaṃ.’

     32) DN-a. III, 987. Kāmataṇhāti pañcakāmaguṇiko rāgo.

     33) DN-a. III, 987 Rūpārūpabhavesu pana rāgo jhānanikantisassatadiṭṭhisahagato rāgo bhavavasena patthanā bhavataṇhā.

     34) DN-a. III, 987. Ucchedadiṭṭhisahagatorāgo vibhavataṇhā. 

 

자아와 육체를 동일시하는 잘못된 유물론에 근 거하여 죽음으로 모든 것은 끝이라고 생각하여, 괴로움에 처해 있 는 자신을 비관하여 파괴하고, 죽고자 하는 갈망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비존재에 대한 갈애는 사후단멸론자의 갈애이다.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여 죽으려고 하는 갈애는 자살의 한 원인이 될 수 있다.

비존재에 대한 그러한 갈망은 강제로 삶을 끝내도록 동기부여하는 그러한 유형의 갈망이라는 의미에서 자살 의도를 포함 한다.35)

 

    35) Analayo, Bhikkhu(2009), 560–561.

 

 

III. 초기불교의 자살론

 

1. 초기경전의 자살 사례

 

초기불교 경전에 보이는 자살의 이유는 무엇일까?

자살의 이유 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며, 초기경전에 제시된 사례에 의하면, 어 리석음, 분노, 집착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중생들은 모두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하지만, 분노에 휩싸이게 되면 자살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중생들은 자신을 본보기로 삼아서, 각자 자신을 가장 사랑한다. 성 난 범부는 여러 대상에 혹해서 자신을 죽이나니, 칼로 자신을 죽이고, 미쳐서 독약을 먹고, 밧줄로 자신을 묶어서 죽고 산의 협곡에 떨어져 죽는다.

성난 자는 중생을 죽이고 자신을 죽이는 업을 짓고서도 그것 을 깨닫지 못하고 파멸을 부른다.36)

 

    36) 대림스님 역(2007), 앙굿따라 니까야 4, 484; AN. IV, 97. Attūpamā hi te sattā, attā hi paramo piyo; Hanti kuddho puthuttānaṃ, nānārūpesu mucchito. ‘‘Asinā hanti attānaṃ, visaṃ khādanti mucchitā; Rajjuyā bajjha mīyanti, pabbatāmapi kandare. ‘‘Bhūnahaccāni kammāni, attamāraṇiyāni ca; Karontā nāvabujjhanti, kodhajāto parābhavo. 

 

이 경전에서는 자신을 사랑하지만, 분노 때문에 자살을 하는 경 우가 있다는 의미이다.

또한 자신과 아내를 사랑한 나머지 그 부부를 헤어지게 하려는   친척들의 반대에 무릅쓰고 다음 생에서 다시 만나자고 하며, 아내 를 죽이고, 자결하는 사례도 있었다.

 

바라문이여, 예전에 이 사왓티에 어떤 여인이 친척집에 갔다. 그녀 의 친척들은 그녀를 남편과 이혼시키고 다른 사람에게 주려고 했지만 그녀는 원치 않았다. 그러자 그녀는 그 사왓티에 사는 남편에게 이렇 게 말했다. ‘서방님 저의 친척들이 저를 당신과 이혼시키고 다른 사람 에게 주려고 하는데 저는 원치 않습니다.’ 그러자 그 남자는 ‘우리는 저 세상에서 함께 삽시다.’라고 하면서 그 여인을 두 토막으로 살해하 고 자신도 자결해버렸다.37)

 

    37) 대림스님 역(2012), 맛지마 니까야 3, 354-355. 

 

한편 계를 갖추고 유익한 법을 지닌 이 사문·바라문 존자들이 자신들의 선행으로 죽어서 더 좋게 될 것이라고 안다면 이들은 독약을 먹고 칼로 자결을 하며, 목을 매달아서 죽을 것이고, 낭떠 러지에서 떨어지는 등 자살을 해서 빨리 더 좋은 다음 세상에 갈 것이라고 반문하는 경전이 있다.

이런 각도로 자살에 대해 언급하 는 경전은 디가 니까야의 빠야시 경이다.

이 경에서 다음과 같 이 말한다.

 

[빠야시 태수] 깟사빠 존자시여,여기서 저는 계를 갖추고 유익한 법을 지닌 사 문·바라문들이 살기를 바라고 죽기를 바라지 않으며 행복을 바라고 괴로움을 혐오하는 것을 봅니다. 깟사빠 존자시여,그런 제게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만일 계를 갖추고 유익한 법을 지닌 이 사문·바라문 존자들이 ‘우리는 여기서 죽어서 더 좋게 될 것이다.’라고 이와 같이 안다면 계를 갖추고 유익한 법을 지닌 이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독약 을 먹을 것이고 칼로 자결을 할 것이며,목을 매달아서 죽을 것이고,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계를 갖추고 유익한 법을 지닌 이 사문·바라문 존자들이 ‘우리는 여기서 죽어서 더 좋게 될 것이다.’ 라고 이와 같이 알지 않기 때문에 계를 갖추고 유익한 법을 지닌 사 문·바라문들은 살기를 바라고 죽기를 바라지 않으며 행복을 바라고 괴로움을 혐오하여 자살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38)

 

[꾸마라 깟사빠 존자] 태수여, 계를 갖추고 유익한 법을 지닌 사문·바라문들은 아직 익지 않은 것을 설익게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익기를 기다립니다. 태수여, 계를 갖추고 유익한 법을 지닌 사문·바라문들이 삶을 영위하는 것은 참으로 현명합니다. 태수여, 계를 갖추고 유익한 법을 지닌 사문·바라 문들이 오랜 세월을 머무르면 머무를수록 그들은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하고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고 세상을 연민하고 신과 인간의 이 상과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많은 공덕을 쌓습니다.39)

 

    38) 각묵스님 역(2006), 디가 니까야 2, 566. DN. II, 329. Idhāhaṃ, bho kassapa, passāmi samaṇabrāhmaṇe sīlavante kalyāṇadhamme jīvitukāme amaritukāme sukhakāme dukkhapaṭikūle. Tassa mayhaṃ, bho kassapa, evaṃ hoti – sace kho im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īlavanto kalyāṇadhammā evaṃ jāneyyuṃ – ‘ito no matānaṃ seyyo bhavissatī’ti. Idānim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īlavanto kalyāṇadhammā visaṃ vā khādeyyuṃ, satthaṃ vā āhareyyuṃ, ubbandhitvā vā kālaṅkareyyuṃ, papāte vā papateyyuṃ. Yasmā ca kho im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īlavanto kalyāṇadhammā na evaṃ jānanti – ‘ito no matānaṃ seyyo bhavissatī’ti, tasmā im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īlavanto kalyāṇadhammā jīvitukāmā amaritukāmā sukhakāmā dukkhapaṭikūlā attānaṃ na mārenti.

    39) 각묵스님 역(2006), 디가 니까야 2, 568. DN. II, 331. Na kho, rājañña, samaṇabrāhmaṇā sīlavanto kalyāṇadhammā apakkaṃ paripācenti; api ca paripākaṃ āgamenti. Paṇḍitānaṃ attho hi, rājañña, samaṇabrāhmaṇānaṃ sīlavantānaṃ kalyāṇadhammānaṃ jīvitena. Yathā yathā kho, rājañña, samaṇabrāhmaṇā sīlavanto kalyāṇadhammā ciraṃ dīghamaddhānaṃ tiṭṭhanti, tathā tathā bahuṃ puññaṃ pasavanti, bahujanahitāya ca paṭipajjanti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ṃ. .

 

빠야시 태수의 논리는 다음 생이 있다면, 계를 갖추고 유익한 법이 있는 수행자들이 더 좋은 다음 생을 위해 자살을 할 것인데, 자살하지 않은 것을 보니, 다음 생은 없다고 하는 것이다.

깟사빠 존자는 계를 갖추고 유익한 법이 있는 수행자들은 현명해서 자살 로 죽음을 앞당기지 않고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세상에 머 문다고 답하고 있다.

이 경전에서는 현명한 수행자는 이 생에서 오래 머물면서 많은 사람를 이롭게 한 후, 죽을 때를 기다리지, 행복한 다음 생을 위해 자살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2. 율장의 자살 사례

 

자살은 자신을 죽이는 일이므로 자살 이전에 살인에 대해 율장 은 어떻게 설명하는지 살펴본다.

불교에서 살인이 성립하기 위해 서는 죽이려는 의도가 있고, 자신이 직접 또는 남에게 시켜서 죽 이는 행동이 있고, 그 결과 대상이 죽어야 한다.

살인죄가 성립하 는 조건을 다음과 같이 율장에서 볼 수 있다. 어떠한 수행승이든 의도적으로 인체의 목숨을 빼앗거나, 무기를 가 진 자를 구하거나 죽음에 대하여 찬미하거나 죽음을 권유하면서,

'이 보시오, 그대에게 이러한 악한 고통스러운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대는 살기보다는 죽는 것이 낫다.'라고 일부로 의도적으로 여러 가 지 방편으로 죽음에 대하여 찬미하거나 죽음을 권유하면, 그도 승단추 방죄를 범하는 것으로 함께 살 수 없다.40)

 

  40) 전재성 역주(2015), 602. Vin. III, 73. ‘‘Yo pana bhikkhu sañcicca manussaviggahaṃ jīvitā voropeyya satthahārakaṃ vāssa pariyeseyya maraṇavaṇṇaṃ vā saṃvaṇṇeyya maraṇāya vā samādapeyya – ‘ambho purisa, kiṃ tuyhiminā pāpakena dujjīvitena, mataṃ te jīvitā seyyo’ti, iti cittamano cittasaṅkappo anekapariyāyena maraṇavaṇṇaṃ vā saṃvaṇṇeyya, maraṇāya vā samādapeyya, ayampi pārājiko hoti asaṃvāso’’ti.

 

자살은 스스로 자신을 죽일 의도가 있고, 자살 시도를 하며, 목 숨이 끊어진 경우에 해당한다. 율장의 자살 정의는 다음과 같다. 

'자살'이라는 것은 몸으로 혹은 몸에 부착된 것으로 혹은 던져질 수 있는 것으로 자신을 죽이는 것(sayaṃ hanati)을 뜻한다.41)

법구경(Dhp. 405게)에는 죽이지도 죽게 하지도 말아야 한다고 하며, 주석서에서 죽이는 것은 자신을 죽이는 것(sayaṃ hanati)이 라고 한다.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는 존재들에게 폭력을 내려놓아야 한다. 죽이지도 않고, 죽게 하지도 하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고 부 른다.42)

 

    41) 전재성 역주(2015), 604. Vin. III, 74. Sāmanti sayaṃ hanati kāyena vā kāyapaṭibaddhena vā nissaggiyena vā.

    42) Dhp-a. IV, 175. ‘‘Nidhāya daṇḍaṃ bhūtesu, tasesu thāvaresu ca; Yo na hanti na ghāteti, tamahaṃ brūmi brāhmaṇa’’nti. Tattha nidhāyāti nikkhipitvā oropetvā. Tasesu thāvaresu cāti taṇhātāsena tasesu, taṇhāabhāvena thiratāya thāvaresu ca. Yo na hantīti yo evaṃ sabbasattesu vigatapaṭighatāya nikkhittadaṇḍo neva kañci sayaṃ hanati, na aññe ghāteti, tamahaṃ brāhmaṇaṃ vadāmīti attho. 

 

한 비구가 욕구불만으로 괴로워하다가 산 위에서 자신을 투척 했지만, 자신은 죽지 않고 다른 사람을 덥쳐 죽게 한 경우가 있었 다. 이 경우에는 자기 자신이 죽을 의도로 몸을 던졌지만 죽지 않 았기에 살인이 성립하지 않은 것이므로 승단추방죄가 아니라 악 작죄가 된다고 한다. 만약 자살이 성공해서 죽었다면 이미 죽은 그에게 적용될 계율은 없다. 한때 어떤 수행승이 욕구불만으로(anabhiratiyā) 괴로워하다가 깃자 꾸따 산에 올랐다가 절벽에서 자신을 투척했는데,어떤 죽세공인을 덥쳐서 죽게 했다. 그에게 후회가 생겨났다. 세존께 그 사실을 알렸다. [세존] “수행승이여,그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가?” [수행승] “세존이시여,저에게는 죽일 의도가 없었습니다. [세존] “수행승이여,죽일 의도가 없었다면 무죄이다. 그러나 수행 승들이여, 자신을 투척하지 말라. 자신을 투척하면,악작죄를 범하는 것이다.43)

‘욕구불만’으로 번역된 anabhirati는 싫증, 불쾌감을 의미한다. 경전에서는 출가한 수행승이 법과 율에서 싫증을 내는 것으로 나 온다.

 

“도반 사리뿟따여, 이 법과 율에서는 무엇이 행복이고 무엇이 괴로 움입니까?" “도반이여, 이 법과 율에서는 싫증을 냄이 괴로움이고 기뻐함이 행 복입니다. 도반이여 싫증을 내면 다음과 같은 괴로움이 예상되나니, 갈 때도 설 때도 앉을 때도 누울 때도 행복과 편안함이 생기지 않고 마을에 가거나 숲에 가거나 나무 아래에 가거나 빈 집에 가거나 노지 에 가거나 비구들 사이에 있을 때에도 행복과 편안함이 생기지 않습 니다. 도반이여, 싫증을 내면 이러한 괴로움이 예상됩니다.”44)

 

     43) 전재성 역주(2015), 617. Vin. III, 82. Tena kho pana samayena aññataro bhikkhu anabhiratiyā pīḷito gijjhakūṭaṃ pabbataṃ abhiruhitvā papāte papatanto aññataraṃ vilīvakāraṃ ottharitvā māresi. Tassa kukkuccaṃ ahosi…pe… ‘‘anāpatti, bhikkhu, pārājikassa. Na ca, bhikkhave, attānaṃ pātetabbaṃ. Yo pāteyya, āpatti dukkaṭassā’’ti.

    44) 대림스님역(2007), 앙굿따라 니까야 6, 249. AN. V, 121. ‘‘Kiṃ nu kho, āvuso, sāriputta, imasmiṃ dhammavinaye sukhaṃ, kiṃ dukkha’’nti? ‘‘Anabhirati kho, āvuso, imasmiṃ dhammavinaye dukkhā, abhirati sukhā. Anabhiratiyā, āvuso, sati idaṃ dukkhaṃ pāṭikaṅkhaṃ – gacchantopi sukhaṃ sātaṃ nādhigacchati, ṭhitopi… nisinnopi… sayānopi… gāmagatopi… araññagatopi… rukkhamūlagatopi… suññāgāragatopi… abbhokāsagatopi… bhikkhumajjhagatopi sukhaṃ sātaṃ nādhigacchati. Anabhiratiyā, āvuso, sati idaṃ dukkhaṃ pāṭikaṅkhaṃ. 

 

이렇게 법과 율에서 싫증이 나서 괴로워하다가 산에서 몸을 던 진 것이 위의 율장의 사례이다.

이는 자살하려는 의도로 절벽에서 몸을 던졌다고 볼 수 있다.

율장에서는 부정관(不淨觀)을 실천하던 수행승들이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붓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수행승들이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고, 서로 서로 목숨을 끊어주고, 사이비 수행자 미갈란디까를 찾아가서 이와 같 이 '벗이여, 우리의 목숨을 끊어주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발우들과 옷 들이 그대의 것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한 것이 사실이란 말인가?" [수행승들] “세존이시여, 사실입니다." 존귀한 부처님께서는 견책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그 수행들은 적절하지 않고, 자연스럽지 않 고, 알맞지 않고, 수행자의 삶이 아니고, 부당하고, 해서는 안 될 일을 행한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수행승들이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고, 서로서로 목숨을 끊어주고, 사이비 수행자 미갈란디까를 찾아가서 이 와 같이 '벗이여, 우리의 목숨을 끊어주면 감사하겠다. 이 발우들과 옷 들이 그대의 것이 될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수행승들이 여, 그것은 아직 청정한 믿음이 없는 자를 청정한 믿음으로 이끌고, 이 미 청정한 믿음이 있는 자를 더욱더 청정한 믿음으로 이끄는 것이 아 니다. 수행승들이여, 그것은 오히려, 아직 청정한 믿음이 없는 자를 불 신으로 이끌고, 이미 청정한 믿음이 있는 자 가운데 어떤 자들을 타락 시키는 것이다.“45)

 

    45) 전재성 역주(2015), 598; Vin. III, 70. saccaṃ kira, bhikkhave, bhikkhū attanāpi attānaṃ jīvitā voropenti, aññamaññampi jīvitā voropenti migalaṇḍikampi samaṇakuttakaṃ upasaṅkamitvā evaṃ vadanti – ‘sādhu no, āvuso, jīvitā voropehi, idaṃ te pattacīvaraṃ bhavissatī’’’ti? ‘‘Saccaṃ, bhagavā’’ti. Vigarahi buddho bhagavā – ‘‘ananucchavikaṃ, bhikkhave, tesaṃ bhikkhūnaṃ ananulomikaṃ appaṭirūpaṃ assāmaṇakaṃ akappiyaṃ akaraṇīyaṃ. Kathañhi nāma te, bhikkhave, bhikkhū attanāpi attānaṃ jīvitā voropessanti, aññamaññampi jīvitā voropessanti, migalaṇḍikampi samaṇakuttakaṃ upasaṅkamitvā evaṃ vakkhanti – ‘sādhu no, āvuso, jīvitā voropehi, idaṃ te pattacīvaraṃ bhavissatī’ti. Netaṃ, bhikkhave, appasannānaṃ vā pasādāya…pe….

 

이 율장의 이야기는 상윳따 니까야 「웨살리 경」(SN54:9)과 같은 내용이다.

이 경의 주석서에 의하면 과거생에 사냥꾼이었던 500명이 붓다 시대에 태어나 붓다의 제자가 되었는데, 그 가운데 성자가 된 이들도 있었지만, 범부도 있었기에 그들을 위해 부정관 을 가르쳤다고 한다.

이 사건이 있었을 때, 예류자 이상이 된 성자 들은 남을 죽이지 않았고 남에게 죽이라고 하지 않았으며 죽이는 것에 동의하지도 않았으며, 범부들이 그렇게 하였다고 한다.46)

 

    46) 각묵스님 역(2009), 상윳따 니까야 6, 218-219. 

 

성 자들은 자살하거나 타살하거나 남에게 자신을 죽이라고 하지 않 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3. 아라한의 자살 사례

 

초기경전에 의하면, 아직 아라한이 되지 못한 수행승이 자살을 시도했는데, 생명이 끊어지기 전에 아라한이 된 경우가 세 건이 나온다. 고디까의 경우는 삼매 수행에 의해 일시적으로 마음의 해 탈을 6번 경험하다가 자살을 한 경우이다. 주석서에 의하면, 그는 선(禪)으로부터 떨어지지 [않고 임종한 자]의 태어날 곳은 분명하 나니 그는 범천의 세계(brahma-loka)에 태어날 것이라고 생각해 서 칼을 사용해서 자결을 단행한다.47)

칼로 목의 경정맥을 끊은 고디까에게는 고통스런 느낌이 생겼지만, 그 느낌을 가라앉히고 그 느낌을 잘 파악한 뒤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근본 명상주제를 명상하면서 아라한과를 증득함과 동시에 완전한 열반에 들었다.48)

 

    47) 각묵스님 역(2009), 상윳따 니까야 1, 442.

    48) 각묵스님 역(2009), 상윳따 니까야 1, 443.

 

고디까의 경우에는 삼매 수행에서 벗어나지 않고 죽으면 범천 에 태어날 것이라는 생각으로 자살을 시도한 것은 잘못된 동기이 지만, 죽음과 동시에 아라한이 되었기에 붓다는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현자들은 더 이상 삶에 연연하지 않고, 이와 같은 행위를 짓기도 하 나니 고디까는 이미 갈애를 뿌리 뽑아, 완전한 열반의 경지에 들었도다."49)

 

“지혜를 구족한 그 현자, 선(禪)을 닦고 항상 선정을 기뻐하였나니 목숨에도 탐착하지 않고, 밤낮으로 정진했도다. 죽음의 군대를 철저하게 정복하고, 다시 태어남[再生]으로 되돌아오 지 않으며 갈애를 남김없이 뿌리 뽑은 뒤, 고디까는 완전한 열반에 들었도다".50)

 

왁깔리 존자의 경우에는 중병에 걸려 고통에 시달리다가 마지 막 병상에서

‘왁깔리여, 두려워하지 말라. 왁깔리여, 두려워하지 말라. 그대의 죽음은 죄악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대는 죄짓는 자 로 임종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다른 수행승이 전한 붓다의 말씀 을 듣고 나서, 자신이 아라한이라고 생각하여 자살을 시도했는데, 자살시도 후, 아직 자신이 아라한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고, 죽 음이 오기 전 수행하여 아라한과를 얻는 순간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장로는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삼매와 위빳사 나로 오염원들을 억압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염원이 출몰하는 것 (samudacara)을 보지 못하고 ‘나는 번뇌 다한 자다.’라는 인식을 가져 서 ‘내가 이 괴로운 삶을 사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나는 칼을 사용해서 죽음을 택할 것이다.’라고 날카로운 칼로 목의 핏줄을 끊었 다 그러자 그에게 괴로운 느낌이 일어났다. 그는 그 순간에 자신이 범 부의 상태임을 알고 즉시 자신의 근본 명상주제를 취해서 명상을 하 여 아라한이 되자마자 임종을 하였다.”51)

 

    49) 각묵스님 역(2009), 상윳따 니까야 1, 444.

    50) 각묵스님 역(2009), 상윳따 니까야 1, 445-446.

    51) 각묵스님 역(2009), 상윳따 니까야 3, 353.

 

이처럼 왁깔리는 스스로 아라한이라고 생각하여 자살을 시도했 지만, 자신이 범부라는 사실을 깨닫고 죽기 직전에 수행을 해서 죽음의 순간에 아라한이 된 경우이다.

다음에 찬나의 경우는 임종 직전에 극심한 몸의 통증으로 고통 을 겪고 있었는데, 문병을 온 사리뿟따 존자에게 칼로 자살을 하 려고 하며, 사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사리뿟 따 존자는 아직 아라한이 되지 못한 찬나가 자살을 하지 말고 삶 을 영위하라고 말했지만, 자신이 아라한이 되었다고 생각52)해서 자살을 시도한다. 자살 시도 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해오 자 자신이 범부임을 알고 바로 위빠사나를 확립하여 죽기 직전에 아라한이 되었다.53)

이 경의 마지막 부분에서 붓다는 이렇게 말씀 하신다.

 

사리뿟따여, 나는 이 몸을 내려 놓고, 다른 몸을 거머쥐는 자를 비 난받아 마땅한 자라고 말한다. 찬나 비구에게는 그러한 것이 없었다. 찬나 비구는 비난받지 않고 칼을 사용해서 [자결을 하였다]. 사리뿟따 여, 그대는 이와 같이 호지하라.54)

 

찬나가 자살을 시도했지만, 다음 생을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 며, 비록 스스로 아라한이 되었다고 착각해서 자살을 시도했지만, 죽는 동안에 스스로 범부임을 알고 짧은 시간이지만 수행해서 아 라한이 되는 동시에 임종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라한들은 죽음도 기뻐하지 않고, 삶도 기뻐하지 않으며, 고용 인이 급료를 기다리는 것처럼, 담담하게 때를 기다린다고 하였 다.55)

 

     52) 각묵스님 역(2009), 상윳따 니까야 4, 191.

     53) 각묵스님 역(2009), 상윳따 니까야 4, 193.

     54) 각묵스님 역(2009), 상윳따 니까야 4, 195.

     55) 장로게, Th. 606, 654, 685, 1003게; 藤田(1988), 92, 101 재인용. 

 

아라한이 되면 할 수 없는 9가지 경우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의도적으로 살아있는 생명을 죽일 수 없다는 것이다. 도반들이여, 아라한이어서 번뇌가 다하고 삶을 완성했으며 할 바를 다했고 짐을 내려놓았으며 참된 이상을 실현했고 삶의 족쇄가 멸진되었으며 바른 구경의 지혜로 해탈한 비구는 아흡 가지 경우들을 범할 수가 없습니다. 도반들이여, 번뇌 다한 비구는 의식적으로 산 생명의 목숨을 빼앗을 수가 없습니다.56)

 

  56) 각묵스님 역(2006), 디가 니까야 3, 242. DN. III, 133. Yo so, āvuso, bhikkhu arahaṃ khīṇāsavo vusitavā katakaraṇīyo ohitabhāro anuppattasadattho parikkhīṇabhavasaṃyojano sammadaññā vimutto, abhabbo so nava ṭhānāni ajjhācarituṃ. Abhabbo, āvuso, khīṇāsavo bhikkhu sañcicca pāṇaṃ jīvitā voropetuṃ.

 

불교에서 자살은 일반 범부들의 경우 허무주의인 단견에 기반 한 비존재의 갈애에 의해 자신의 목숨을 끊는 경우, 분노에 의해 자살하는 경우, 부부간의 애착으로 배우자를 죽이고 자살한 경우, 부정관 명상에 의해 자신의 육체에 대한 혐오감으로 자살을 한 경우, 병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으면서, 스스로 아라한이 되었다고 생각해서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 출가생활의 싫증으로 자살을 시 도한 경우, 그리고 삼매 수행의 결실로 범천에 태어나리라고 생각 해서 자살을 시도한 경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자살을 시도한 모든 이들은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하였다는 공 통점이 있다.

일부 수행승(고디까, 왁깔리, 찬나)의 자살 시도는 다행스럽게 죽음 직전에 아라한이 되었기에 문제가 없었지만, 부 정관 수행 도중에 일어난 자살 사건에서 붓다는 자살이 잘못된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IV. 맺음말

 

현대 한국 사회의 심각한 자살문제를 불교의 입장에서는 어떻 게 보아야 하는지, 자살을 부정하는지 용인하는지 이해하기 위해 초기불교의 경전과 율장에 보이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 자살 문 제를 살펴보았다.

생사윤회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행을 해서 그 목적을 달성한 아라한의 경우, 죽음을 앞당기지 않고 많은 사람들의 이익 을 위해 활동을 하다가 자연스런 죽음을 맞이한다.

어떤 이유로든 죽음의 시기를 앞당기는 자살은 부정되었다고 볼 수 있고, 일부 수행승들의 자살 시도 사례의 경우 죽는 순간에 아라한의 깨달음 을 이루었기에 붓다는 그런 죽음에 대해서는 용인하였다.

하지만 이들의 자살행위에 대해서는 별다른 판단을 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간으로 태어난 소중한 기회를 생사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로 삼아 죽음이 오기 전까지 바른 정진을 하라는 것 즉 ‘실로 모든 형성된 것은 무상하니, 불방일로 정진하라’가 붓다의 유훈이 었음을 상기해서 자살이 아닌 죽음의 순간까지 번뇌의 소멸을 구 해야 한다고 불교는 가르친다.

초기불교에서 죽음의 불가피성과 긴박성을 강조하는 죽음 명상은 불교의 중요한 수행방법의 하나 이다. 하지만 탐진치의 번뇌 때문에 자신을 죽이는 자살에 대해서 는 반대의 입장에 있었다. 

 

약호 및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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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문

자살은 현대 한국사회의 심각한 사회문제이다. 자살을 포함해서 초기 불교는 죽음에 대한 가르침이 자주 제시된다.

죽음의 괴로움은 대표적인 실존적 괴로움이며, 죽음에 대한 명상은 중요한 수행법이다.

초기불교문 헌의 경전과 율장에는 다양한 자살사례가 나온다. 살인의 일종인 자살은 인간으로 태어난 기회를 의도적으로 끊어버리는 악행으로 보며, 자살의 배경에는 비존재의 갈애라는 죽음에의 갈망이 있다.

보통 인간들은 탐진 치에 의해 자살을 선택한다.

하지만 성자들은 의도적인 살인을 하지 않 으며, 자살을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극심한 병고에 시달리는 수행승이 아라한이 되었다고 잘못 생각해서 자살을 하거나, 선정 수행 도중에 선 정의 결과로 천상에 태어나기 위해 자살을 한 경우가 있는데, 이들은 자 살 시행 후 생명이 끊어지는 순간 아라한이 되면서 임종하였기에 붓다는 아라한이 되어 죽음을 맞이했다는 점만을 말하며, 자살의 잘못에 대해서 는 업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초기불교 문헌의 다양한 사례에서 볼 때, 자살은 살인의 한 방식이어서 악행으로 금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제어 : 초기불교문헌의 자살, 부정관, 비존재의 갈애, 죽음명상, 아라한의 자살

 

Abstract

Suicide in early Buddhist Literatures – Focusing on cases

Kim, Jae Sung (Nungin Univ.)

Suicide is a serious social problem in modern Korean society. In early Buddhism, including suicide, teachings about death are frequently offered. The agony of death is a typical existential distress, and meditation on death is an important practice. Various suicide cases appear in the scriptures and chapters of early Buddhist literature. Suicide, a type of murder, is seen as an evil act that intentionally cuts the chance of being born as a human being, and the background of suicide is the desire to die, which is the love of non-existence. Usually, humans choose to kill themselves by means of indulgence. However, saints do not commit murder intentionally, nor do they commit suicide. However, there are cases where a monk who suffers from severe illness accidentally commits suicide because he thinks that he has become Arahan, or during the selection process, he commits suicide to be born in heaven as a result of selection. The Buddha only died as Arahan when his life was cut off after committing suicide, and he did not pay for the wrongdoings of suicide. However, various examples of early Buddhist literature show that suicide is prohibited as an evil act because it is a method of murder.

 

Key words : Suicide in early Buddhist literature, Meditation of Impurity, Craving for non-existence, meditation of death, suicide of Arahat.

 

 

투고일 2024. 01. 14 | 심사기간 2024. 01. 31 - 02. 15 | 게재확정 2024. 02. 17

佛敎硏究제60집 (2024),

 

KCI_FI003055287.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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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doi.org/10.34275/kibs.2024.60.0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