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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일본 현대사회의 병리적 공간성과 회생의 공간적 전이-2010년대 이후 영상콘텐츠를 중심으로-/신현선.전북大

 

 

 

1. 들어가며

 

공간은 우리의 일상이 일어나는 물리적 장소이면서 세계와 상호 작용을 일으키면서 실존을 지각하는 관념적 영역이기도 하다.

인간 은 경험의 영향으로 공간을 조직화하며 공간에 대한 인식을 구성해 간다.

즉 우리는 일상의 장소에 경험, 정서 등을 부여하여 개별적인 의미를 생성하게 되며, 이를 통해서 장소는 공간으로 변모한다.

하 이데거가 공간을 인간과 사물 간의 관계 형성에 의한 조직(서도식, 2008:74)으로 보았듯이, 공간으로 인해 인간은 실존의 의미를 잃고 고립의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이 경우에 공간은 개인의 정서와 의 미화가 체화하는 장소로 전환된다.

사회 구성원은 일상과 경험의 배치가 이루어지는 체험공간에서 권력, 폭력 등을 체험하기도 하고 일방적으로 주어진 공간 표상에 대해 나름의 저항을 보여주기도 한다.(앙리 르페브르, 2011:39)

즉 공간은 사회관계와 이데올로기를 구성의 요소로 포함한다. 르페브 르(Henri Lefebvre)는 공간이 사회적 산물이자 사회관계를 담은 용 기이며, 복잡한 사회 발전 과정에서 관계와 생활의 변천이 물질적 공간을 변화시켰다고 보았다.1)

현대사회의 삶이 가속화될수록 공간 은 객관적인 공간의 개념보다는 주관적 장소의 개념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러나 개인화와 주변화로 변모하는 현대의 삶에서 신체가 거주하는 장소도 중요하지만, 세계를 인식하는 틀로서 공간을 사유 하는 것도 시대적 의의가 있을 것이다.

일본의 영상콘텐츠에서 주로 영화의 공간에 대한 연구는 대부분 영화의 배경이 되는 지역의 장소성을 밝히고 있다.2)

 

     1) 본고에서 다루는 공간 개념은 르페브르의 공간 개념을 기반으로 한 ‘사회적 공간’ 을 큰 테두리로 설정한다. 그는 공간을 ‘현상이 아니라 사회적 생산물’로 간주하 여, ‘자연적인 동시에 사회적이며, 실천적인 동시에 상징적인 것’이라고 설명한다.

    2) 김려실(2014) 「<도쿄 이야기>의 공간 표상 연구」/황우현(2018) 「고레에다 히 로카즈 감독 영화의 공간 연구」/문정미(2019) 「가족 서사와 공간 재현-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를 중심으로」/진은경(2020) 「일상성으로 본 농촌영화 비교 한 국과 일본의 『리틀 포레스트』를 중심으로」/조경숙(2022) 「<카모메식당> <달 팽이식당> <심야식당> 고찰: 소통과 힐링의 공간적 관점으로」/김순주(2023) 「 1930년대 ‘식민 도시’ 경성(京城)의 영화 소비의 장 전환」등의 연구가 있다.

 

이와 같은 연구들은 대체로 현대 연구의 방향이 공간에서 장소로 전환하고 있는 것과 궤를 같이 하고 있는데, 관념적인 공간이 구체적인 장소로 변 화하는 과정, 도쿄와 같은 영화의 배경이 되는 특정 지역의 지역성, 도시와 농촌을 배경으로 서사가 진행되는 영화의 공간성 등을 분석 하고 있다.

본고는 일본의 영상콘텐츠에 나타나는 공간성을 살펴볼 것이다. 연구의 규모와 한계를 감안하여 본고에서는 연구의 대상을 2010년 대 이후에 만들어진 ‘영화’와 ‘드라마’로 한정한다.

일본은 2010년대 이후 경제침체에 따른 경제불안과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3)

또한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른 잠재적 사회 불안도 팽배해졌다. 이 와 같이 불안이 또 다른 불안을 낳고 있는 현실공간의 현상을 영화 나 드라마의 서사가 담아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수많은 작 품을 다룰 수 없기에 일본 현대사회의 단면을 서사로 지니고 있으 며 그 속에서 등장인물과 사건의 영향관계를 공간으로 풀어낼 수 있는 몇 작품을 선정하였다.4)

 

     3) 특히 2011년 동일본대지진,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심각한 피해를 안긴 큰 재난이 었다. ‘안전신화’의 붕괴와 함께 일본사회는 총체적으로 액상화 되어갔으며 사회 불안과 위기는 심화했다.

   4) 분석 작품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한자와 나오키>(2013, 2020), <백엔의 사 랑>(2014),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2017), <강변의 무코리타>(2021), <아침이 오면 공허해진다>(2022), <치히로상>(2023), <퍼펙트 데이즈>(2023), <52헤르츠 고래들>(2024), <선셋 선라이즈>(2025) 

 

최근 영상콘텐츠는 로케이션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지역과 결 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선택된 지역은 배경으 로 기능하는 경우도 있거나 혹은 의미화된 장소성을 부여받기도 한 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의미가 구체화된 장소성을 포함하여 실존과 같은 내면의 문제까지도 다룰 수 있는 공간성에 집중하고자 한다.

 영상콘텐츠에서 공간은 등장인물과 사건의 영향관계에 놓인다.

이 에 따라 먼저 일본사회의 현실을 허구적으로 직조해낸 서사의 흐름 속에서 공간이 획득하는 속성을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그 공간에 놓인 등장인물의 경험과 정서가 공간에 어떠한 속성을 부여하는지 도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서사의 흐름에 따라 이동하는 공간이 표 상하는 의미를 분석할 것이다.

본고에서는 선정된 작품의 등장인물과 사건의 네트워크를 선(線) 으로 전제하고 그 선이 직조하는 공간의 속성과 의미를 분석하고자 한다.

 첫 번째 공간은 자본주의 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선들의 구성 체로, 그 안에서 인간군상이 벌이는 갈등, 욕망, 좌절 등의 정서가 구현되는 ‘병리적(病理的) 공간성’5)을 살펴볼 것이다.

 

     5) 병리학(Pathology)은 질병의 원인과 발생 과정, 변화 양상, 결과를 연구하는 학 문으로 '왜 아픈지', '어떻게 아프게 되었는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과학적 으로 밝혀내는 분야이다. 본고의 병리적 공간성은 현대사회의 과잉 생산, 과잉 축적, 그리고 인간 소외 등 병리적 현상이 드러나는 공간적 환경, 현대 도시의 구조적 문제와 인간 심리의 불안이 교차하는 공간적 현상, 정신적·사회적 병리의 반영을 내포한다. 상술하자면, 한병철은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 이 있다.”며 21세기의 시작은 병리학적으로 ‘신경증적’이라고 말한다. 그는 현대 사회를 병리학적 관점으로 분석하여 현시대를 면역학적 부정성에서 긍정성의 과 잉 시대로,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활동사회에서 피로사회로 전환하는 패러다 임을 제시한다. 이 같은 논점은 시대를 병리학적 현상을 통해 분석함으로써 주 목해야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류미향(2017) 참조)

 

예컨대 빌딩과 획일화된 사무실과 관계의 네트워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 이에 해당한다.

또한 밀려나거나 배제된 인물들의 생활공간과 정서 의 공간화를 관계의 네트워크로 구축된 공간에서 다룰 것이다.

수 평의 공간은 사건에 의해 공간을 이동한 등장인물이 공간에 속한 인물들과 교류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공간이다.

마지막으로 과거의 기억과 마주하고 감정을 풀어내고 삶을 회복 하는 실존의 문제, 즉 내면공간을 다룰 것이다.

이 장에서의 공간은 바다와 지평과 같은 자연의 선들과 더불어 연립주택, 선술집(식당) 과 같이 개인의 공간에 불쑥 선을 넘어 ‘말 걸기’를 시도하는 등 공간의 간섭이 이루어진다.

그로 인해 공간이 내면의 공간에 영향을 주어 삶의 회복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분석할 것이다. 영화와 드라마와 같은 영상콘텐츠는 인물관계와 서사가 공간을 통해 이미지화된다.

영상콘텐츠의 공간이 지닌 특성을 밝히는 것은 인물 간의 소통과 갈등을 살피는 일이며 더불어 서사의 의미적 속 성을 밝히는 일일 것이다.

이를 통해 현대 일본사회가 지닌 불안과 현실 인식의 내용 또한 사유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2. 자본주의 네트워크와 병리적 공간성

 

본 장에서는 규정(폐쇄)된 공간에서 고투하다가 벗어나려는 몸부 림이 보이는 작품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것은 단순히 주어진 환경 에 순응하고 파멸하는 모습이 아니라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내려 는 몸짓이자 자유를 향한 열망이라고 할 수 있다.

공간적으로는 수 직·직선·하강성이 특징이며, 규범·질서·프레임 속에 갇힌 캐릭터들 의 강박·회의감·고독·절망의 감정이 두드러진다.

또한 위계와 위상 에 따른 강력한 수직문화, 약자에 대한 편견과 프레임, 장시간 근무 에 낮은 임금, 경직되고 강압적인 회사 분위기, 희생 강요 등의 특 징이 발견된다. ‘빌딩’, ‘사무실’은 자본주의 질서 체제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기능 한다.

이곳은 경제 이데올로기 등을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도구적 공간이자 그 결과물 자체인 공간이다.

특히 등장인물이 갈등하는 상황에서 뒤로 배경처럼 쓰이는 빌딩의 외관 모습은, 등장인물과 갈등하는 대상 혹은 욕망, 권력, 체제의 속성을 상징적으로 이미지 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자본주의 질서 체계의 지속적인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추동력은 자본주의라는 이데올로기와 권력이다.

그 중 ‘사무실’은 그 생산물을 만들기 위해 공동체적 노력을 기울이는 곳이다.

사무실에서 근 무하는 인물들은 자본주의 체계 안에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본 주의 체계를 유지하는 결과물을 생산하는 것을 삶의 보편성으로 인 식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인식이 이 권력 공간의 인물들에게 폭력 적이고 파괴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권력의 폭력성이 발현되는 ‘사 무실’은 자본과 기회의 불고정, 불균형, 배제, 폭력 등의 자본주의 모순과 마주하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6)

 

     6) 이러한 공간성을 토대로 바라본 일본사회는 경제 상황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버블붕괴 뒤 일본 사회는 젊은이들의 고용 유동화로 인해 ‘잃어버린 세대’가 형 성되었고, 이는 ‘고용 불안의 일상화’를 초래했으며 블랙 기업과 가혹한 노동의 횡행, 격차와 빈곤의 확대를 가져왔다. 

 

 <그림 1> 사무실 풍경 : 생략 (첨부논문 파일참조)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ちょっと今から仕事やめてくる, 2017)나 <한자와 나오키>(半沢直樹, 2013)7) 속 ‘사무실’ 공간은 권력에 의한 폭력 그리고 그에 따른 감시와 통제를 자리 배치의 모습으로 보여 주고 있다.

 

      7) 이케이도 준(池井戸潤)의 소설이 원작으로, 일본의 버블경제 붕괴 전후를 배경으 로 하고 있다, 매회 영화 같은 서사와 퀄리티로 최종화 시청률은 42.2%를 경신 했으며, <시즌2>(2020)는 은행에서 증권사로 좌천된 한자와가 초대형 IT기업이 신흥 IT기업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계략과 음모를 파헤치고, 파산직전 의 항공사를 재건하는 초대형 안건까지 맡게 되면서 정부 내각의 압력과 권력 남용에 맞서는 내용이다.

 

그 공간에서 등장인물이 시선의 폭력에 무기력하게 당 하는 서사를 보여주고 있다면, 그와 상반된 위치에서 폭력을 행사 하고 부정함의 이익을 취하는 집단 또는 체계를 ‘사무실’이라는 공 간으로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공간은 ‘자본주의 욕망’, ‘권력’, ‘감 시’, ‘통제’ 등의 상징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도구로 기능하면서 인 물과 갈등하는 대척점의 서사를 지닌다.

블랙기업8)의 사무실 또한 그 예이다.

 

       8) 불법과 편법적인 수단을 이용해서 노동자에게 비상식적이고 가혹한 노동을 강요 하는 악덕 기업을 말한다. 

 

이곳도 자본주의의 중심부 에서 삶을 유지하기 위해 생산물을 생산해내는 것을 소명으로 여기 는 이해집단의 공간이다.

여기에서 ‘소명’은 권력의 폭력성을 정당 화하기 위한 장치일 수 있다.

이 ‘소명’ 의식에 의해 개인은 집단의 모순을 인식하면서도 저항하지 못한다. 일본은 기본적으로 수직적 통합의 사회이다.

사회 시스템도 철저 히 종적 관계이고, 수직 통합형 사회구성이 과거 일본의 성장을 견 인하는 동력이기도 했다.

생존이 최우선인 구조에서 실패를 허용하 지 않는 문화는 결국 “남보다 못하면 안 된다.”는 강박으로 이어진 다.

이와 같은 공간수직성을 여러 캐릭터의 활약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

그 중 <한자와 나오키>는 수직적인 조직문화, 상명하복, 체면 중시(체면사회), 책임회피의 현실 불합리성을 드러내 준 드라마로 주인공 한자와(사카이 마사토)는 은행 내 부패세력을 향해 맞선다. 

 

    <그림 2> 도심 속 빌딩 풍경 : 생략 (첨부논문 파일참조)

 

한자와가 부패 세력과 대결을 결심하거나 갈등의 양상을 보일 때 한자와의 배경으로 ‘빌딩’의 수직성이 강조된다.

드라마 속에는 도 쿄 빌딩숲, 고층빌딩의 회사와 사무실로 상징되는 수직과 직선의 공간이 강조되는데 이 수직의 기저에는 규범, 프레임, 강박, 자기책 임이라는 무형의 선이 작용한다. 한자와를 비롯해 ‘취직빙하기세대 (就職氷河期世代)’는 버블붕괴 후 경제적 불안이 격화된 세대로 ‘위 로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가 없는 세대’라고도 불린다.

부동산 가격 이 끝없이 하락하고, 주가는 급격히 추락했으며 회사의 도산과 대 대적인 구조조정으로 생존경쟁이 치열해진 시기이기도 하다.

이들 은 불안정한 고용에 내몰렸을 뿐만 아니라 이를 자기책임으로 돌리 는 사회의 희생양이 되어 생존을 위해 고투한다.

이러한 상황의 대척점에 한자와가 자리하고 있다.

드라마 속에서 그는 “나는 더 높은 곳으로 갈 거야. 높은 곳으로 가서 해야 할 일 이 있어.” “당한 만큼 갚아준다.”라고 외친다.

특히 상무의 비리와 악행을 폭로하여 일본 특유의 ‘도게자(土下座)’9)를 보여주는 등 한 자와의 활약은 작중 캐릭터뿐만 아니라 시청자에게도 영향을 미쳐 ‘통쾌함’, ‘대리만족’이라는 공간 경험을 제공해주고 있다.

 

     9) 土下座는 땅 위에 바짝 엎드려서 절하며 사죄하는 행동을 뜻하는 사죄의 자세 로, 주로 상대방에게 사과하거나 죄송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취하는 동작이다. 

 

조직의 압력, 부조리와 맞서 싸운 한자와와 달리 이런 구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버티는 캐릭터도 있다.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의 다카시(구도 아스카)는 연속된 취업 실패 후 가까스로 입 사했지만 회사가 악덕 기업이었다.

그는 상사의 폭언과 폭행에 시 달리다가 수직의 맨 꼭대기인 빌딩 옥상에서 자살(추락)을 시도한 다.

“만약 살기 위해 일하는 거라면 나는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 을까?”라는 그의 고백은 기업문화에 대한 회의와 좌절감을 나타낸 다. 여기서는 수직적 공간성, 상사의 권위적인 태도와 수직적 조직 문화의 특징을 알 수 있다.

회사는 강압적이고 경직된 분위기 속에 서 끝없이 경쟁을 붙이고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면서 오직 실적으로 직원들을 평가한다.

날카로운 수직선상에서 전력투구하던 다카시는 강압적 프레임 속에서 에너지를 소진해버린 현대 젊은이의 표상이 기도 하다.10)

 

     10) 현재 비정규고용과 정규고용의 대우의 격차가 문제시 되고 있다. 비정규직은 생 활의 불안정성이 크고 불경기에는 가장 먼저 해고 위험이 있어 블랙기업에서 버 티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가혹한 노동이 횡행하고, 과로사, 과로자살로 내몰리는 ‘노동의 파괴’에 이르렀다.(가네코 마사루, 2016:97) 극단적 생각을 했던 영화 속 주인공(다카시)은 “아직 넌 젊어. 얼마든지 실패해도 괜찮아.”, “인생이 란 살아있기만 하면 어떻게든 풀리는 법이다.”라는 말에 용기를 얻는다.

 

한편 다른 방식의 하강적 공간성이 드러나는 작품으로 <치히로 상>(千尋さん, 2023)이 있다.

치히로(후루사와 아야)는 성노동자에 대한 편견과 프레임 속에서 “우리는 인간이라는 상자 속에 담긴 외계인”이라며 하강과 침잠을 통한 정신적 고요함을 추구한다.

물속 에 깊이 가라앉다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 행위는 자신만의 생 존방식이다. 옥상에 올라간 장면을 통해 그녀가 과거에 죽음 직전 까지 갔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영화는 도시 빌딩 숲에 존재하는 침잠과 떠오름의 하강성, 추락의 공간성을 보여준다.

전직 성노동자 치히로는 추락사를 시도할 만큼 고독하고 힘든 시 절을 보냈다.

그녀는 여전히 수면 아래에 잠긴 물고기 같은 모습이 지만 “사람의 몸은 물 위에 뜨게 되어 있어.

몸부림치지 않으면 물에 뜨지만, 버둥대면 가라앉고 말지.

다시 떠오르면 그때 보자.”라는 점장의 조언을 듣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가라앉지 않는 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이후 치히로는 그곳을 떠나 새로운 동 네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영화는 마무리된다.

물속에 갇힌 채, 수직의 극단에서 홀로 견뎌야만 했던 치히로는 마침내 수면 위 로 올라와 숨을 쉬게 된 것이다.

‘빌딩’과 ‘사무실’로 상징화된 자본주의 체계의 위압적 견고함을 부각시킬수록 개인의 감정이입의 강도는 높아진다.

‘옥상’은 ‘빌딩’과 ‘사무실’에서 전력투구하던 인물이 에너지를 소진하면서 자리하게 되는 공간이다.

여기에서는 빌딩 숲으로 펼쳐지는 화려한 도시공간 과는 대조적으로 침잠하고 절망하는 인물의 내면정서가 부각된다.

 

3. 부유하는 존재들의 잉여 공간

 

어느 사회에서든 집단과 공간에서 소외되고 밀려난 구성원이 선 택할 수밖에 없는 공간이 존재한다.

실패를 경험한 인물은 중심부 에서 벗어난 주변이나 배제된 공간에 머무르게 된다.

이 장에서는 자본주의 경쟁 체제에서 패자에게 부여된 ‘잉여의 공간’에 대해 다 룰 것이다. 일본사회의 구조적 특징에 대해 나카네 지에(中根千枝)가 ‘종적사 회(タテ社會)’라고 규정한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본은 ‘資格보다 場’ ‘서열의식’ 등 수직의 구조에서 발생한 사회문제가 복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中根千枝, 2019:16)

그러나 중심에서 밀려난 사람들 은 그주변의 공간에서 배회하며 정서적 마비 증상을 겪기도 한다.

현대사회는 불확실성과 긴장 속에서 많은 이들이 불안·우울·무기 력감을 경험한다. 이러한 증상은 경제적·사회적 환경과 밀접하게 연 결되어 있으며 사회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일본 청년층 전반에도 사회적 무기력이 만연해 있는데 주요 원인으 로 경제적 불안과 저성장, 고용 불안, 경제적 좌절감 및 압박, 관계 단절, 경쟁 회피를 들 수 있다.

앞 장이 자본주의 네트워크에 기반한 수직적 공간, 규범과 프레 임에 갇힌 인간군상, 수직적 상승 욕망, 강박형 치열한 생존경쟁 속 고독과 절망감을 살펴보았다면, 본 장에서는 살아내기에 지친 이들 에게 찾아온 번아웃11), 욕망 상실, 무기력의 속성을 지닌 공간을 다 룰 것이다.

 

    11) 번아웃(burn out)은 미국의 정신의학자이자 정신분석가 프로이덴버거(Herbert Freudenberger)가 처음 사용한 용어로, 업무에 몰두하는 과정에서 극심한 신체 적,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무기력증에 빠지는 현상을 일컫는다.(이은수, 2022) 소진 증후군이란 일에 지나치게 몰두하던 사람이 갑자기 모두 불타버린 연료와 같이 정신적 탈진을 느끼는 것을 의미하는 현대사회의 병리적 징후를 표현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극도의 피로감과 무기력증, 다양한 신체증상이 나타나며 세계 보건기구(WHO)는 2019년 번아웃을 직업적 현상으로 공식 분류했다

 

이 공간을 점유하여 살아가는 이들은 ‘부유하는 존재’들 이다. 보통의 규범과 질서 속에서 직선적이고 수직적인 공간 프레 임에서 분투한 이들에게서는 무기력·허무·좌절감 증상이 나타나기 도 한다.

이들은 성공의 반대편에서 연속된 실패감과 좌절, 무시, 멸시, 열등감으로 인해 ‘잉여 인간’이라는 존재감을 안고 사는 무기 력한 이방인들이다.

등장인물은 대도시라는 치열한 공간에서 주변부의 공간으로 밀려 난다. 더불어 개인의 일상 및 일터 규모도 협소해지고 거대한 회사, 빌딩이 아니라 편의점, 백엔샵, 복싱장 등 작은 공간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곳은 주류의 중심부에서 밀려난 공간이지만 기존 체제에 균열을 내거나 대안적 가치를 모색하는 기능을 지니기도 한다.

특히 자본주의로 상징되는 공간에서의 욕망과 굴절의 정서가 어 떻게 의미화되는지를 다룰 것인데 <아침이 오면 공허해진다>(朝が くるとむなしくなる, 2022)의 이이즈카(가라타 에리카)가 이를 대변하고 있다.

주인공은 자신을 정상 공간에서 이탈한 존재로 인식하고, 낙 오자 취급하며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녀는 취업 후 적응 하지 못해 회사를 그만두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는 캐릭터다.12)

 

    12) “회사 다녔을 때 거의 매일 야근을 했어. 나는 매일혼나기만 했어. 그런데 다른 사람들 은 잘해내는거지. 일을못하는내가문제인가? 그런생각만들었어. 너무괴로워서왜 이렇게까지힘들게살아야하나싶더라.” (주인공의대사) 

 

편의점 근무에서도 어려움을 겪는 그녀에게 ‘집’은 가 장 편한 장소로 기능한다.

 

   <그림 3> 이이즈카의 공간들 : 생략 (첨부 논문 파일참조)

 

직장을 그만둔 후 이이즈카의 아침은 공허해졌다. 자취방의 ‘망가 진 커튼레일’이 그녀를 상징한다.

삶의 생기를 잃은 채 매일 똑같은 일상, 반복되는 생활로 인해 텅 빈 마음은 점점 더 공허로 채워졌 다.

그러나 “어떻게 항상 맞는 길로만 가겠어?

그게 누구든.”이라며 다독여주는 친구 오오토모(이모우 하루카)를 통해 그녀는 심적 변 화를 겪은 뒤 고장 난 커튼도 직접 고치고, 아르바이트도 활기차게 하는 등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해간다.

영화 <백엔의 사랑>(百円の恋, 2014)의 주인공도 상승이 억제된 공간에서 무력하게 살아가는 인물이다.

이치코(안도 사쿠라)는 서른 이 넘도록 부모에게 얹혀사는 무기력한 백수이다.

홧김에 독립해 백엔샵(100円ショップ)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그녀는 서로의 어깨 두드려주는 게 멋있어 보여 복싱을 시작했고, 시합까지 나간다.

그 러면서 ‘백엔샵(일터)-복싱장-집’이라는 공간의 단순한 일상의 반복 구조에서 자신을 발견해 간다. 

복싱은 자기만족을 위한 도구가 아니지만 그녀는 꼭 이겨보고 싶 었다.

결국 링 위에서 맞기만 했지만 그녀는 끝까지 링에서 내려오 지 않고 포기하지 않았다.

복싱 경기가 벌어지는 링 위는 냉혹한 현실의 삶을 방증한다.

복싱을 한 이유에 대해 “승자가 되고 싶었 어.”, “딱 한 번이라도 이겨보고 싶었다고.”라고 말하는 그녀의 심정 을 영화의 엔딩 OST가 드러내주고 있다.13)

 

     13) 노래 가사: “곧 이 영화도 끝이 나니 시시한 내 얘기는 잊어주세요. 지금부터 시 작될 매일매일은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아도, 평범한 날들이라도 괜찮아요. 아파 아파 아파 그래도 살 거야, 살 거야. 보신 것처럼 서 있기도 힘들어요. 뜻대로 안 되는 일들만 가득. 초점 없는 눈에 희미하게 보이는 건 너무나 보잘 것 없는 나. 힘들게 찾아낸 나만의 그곳. 시작을 했기에 끝이 난 거죠. 싸울 수 있었기에 질 수도 있었죠. (중략) 왜 어째서 잘 풀리지 않는 걸까. 살 거야 살 거야 살 거야.” 

 

스스로를 ‘100엔짜리 여 자’로 치부하던 이치코는 링 위에서 존재감을 획득한다.

 

   <그림 4> 히라야마의 공간들 :생략 (첨부 논문 파일참조)

 

 

화장실 청소 영화 <퍼펙트 데이즈>(Perfect Days, 2023)의 히라야마(야쿠쇼 코지)는 일터(화장실)와 집(방)을 오가며 반복되는 일상을 보내는 도쿄 시부야의 공중화장실 청소부다.

영화 속 하늘 높이 솟은 도쿄의 ‘스카이트리’는 현대기술의 집약체로 수직적 상승 욕망의 상징처 럼 보이며 히라야마의 생활공간과는 대척점에 위치한다.

“건축 공 간은 사회적 질서를 표현”(이-푸 투안, 2020:127)하면서 끊임없이 인간의 감각과 감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는 과거 부잣집 아들 로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는 화장실 청소부이다.

표면적으 로는 추락·하강한 패배자의 모습이지만 그는 연연해하지 않는다.

히 라야마는 남들이 기피하는 청소일을 하면서도 남들이 보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발견해 낸다.

영화는 스카이트리와 히라야마가 지켜내 는 일상의 공간 대비를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자신만의 정 갈한 질서 속에서 살아가는 히라야마의 일상을 통해 평안과 불안 사이의 미세한 간극을 조명한다.

그는 집을 나설 때 현관문을 열면서 항상 하늘을 올려다본다.

필 름 카메라로 햇살(木漏れ日)을 찍고, 자전거를 타고 단골 식당에 가 서 술 한잔을 마시고, 헌책방에서 산 소설을 읽으며 하루를 마무리 하는 등 영화는 반복과 규칙 속에 내재된 불안을 공간적 대비, 빛 과 그림자의 대비를 통해 드러내주고 있다.

햇살을 올려다보는 장 면, 해뜨는 하늘을 바라보며 출근하는 장면, 특히 영화 후반부 팝 송’14)을 들으며 변화하는 그의 표정은 공간에 대한 다중적 함의와 서사를 제공한다.

 

     14)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팝송(‘Feeling Good) 가사 : “새로운 새벽. 새로운 날입니 다. 새로운 삶인 거죠. 나를 위한. 그래요, 난 기분이 좋습니다.”

 

영화에서 그는 수직의 하단에서 극도로 단순한 삶을 이어가지만 그러한 일상은 존재의 모든 감각을 포괄하면서 ‘지금, 여기’의 현재성을 포착해낸다.

르페브르의 지적처럼, “보이는 것의 표면(현재)을 넘어 존재의 심연(현존)으로 시선을 가져가는” 것이다.(Lefebvre, Henr·정기헌, 2020:21)

그에게 살아내기란 오랜 습관을 반복하는 일에 지나지 않지만, 그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면서 일상의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마치다 소노코(町田そのこ)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52헤르츠고래들>(52ヘルツのクジラたち, 2024)은 영케어러, 가정폭력, 싱글맘 등 현대 일본사회 전반의 문제가 내포되어 있다.

주인공 기코(스기사키 하나)는 어머니의 재혼 이후 가족에게 착취당하며 살아온 여성으로, 어머니의 집착과 학대 속에서 양부의 간병까지 홀로 떠안으며 무력 한 나날을 보내는 인물이다.

안고(시손 쥰)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기 코의 52헤르츠 울음을 간파하고 그녀가 새롭게 생을 살아가도록 돕 는다.

그러나 정작 기코는 안고의 울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영화 속 ‘52헤르츠 고래’15)의 외로운 울음은 ‘안고→기코’에서 ‘기 코→소년(구와나 도리)’으로 이동한다.

 

    15) 실제로 다른 고래들과 소통이 불가능한,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고래를 의미한다. 이 고래의 존재는 누구에게도 닿지 않는 외로운 신호, 즉 자신의 아픔을 말할 수 없는 이들의 상징으로 그려진다. 

 

비로소 울음소리를 듣게 된 기코가 이전의 수혜자에서 시혜자로, 위로자·포용자의 역할로 변화 한 것이다.

아울러 안고와 기코가 도쿄에서 관계를 이어갔다면, 이 관계의 축이 변환되는 과정에 맞춰 공간 또한 전환된다.

즉 ‘안고’ 와 ‘기코’의 관계가 도시 공간을 배경으로 했다면 ‘기코’와 ‘소년’의 관계는 바닷가 마을(오이타)을 배경으로 형성된다.

이러한 공간 전 환은 ‘바닷가’와 ‘52헤르츠 고래’와의 상관성을 강화하여 주제를 부 각하고 심화하는 데 기여를 한다.

 

   <그림 5> 영화 속 공간 (오이타) : 생략 (첨부 논문 파일참조)

 

바다는 고래가 헤엄치며 살아가는 곳으로 52헤르츠 고래는 고립 과 고독, 그리고 소통 욕구를 상징한다.

“딱 한 명 내 목소리를 들 어주는 사람이 있었어.”라는 기코의 말에는 치유와 연대, 실존의 경 험을 내포한다.

“공간에 가치를 부여할 때 그곳은 장소”(이-푸 투 안, 2020:11)가 된다.

그리하여 추상적이고 낯선 공간은 개개인의 삶 의 경험과 감정을 통해 구체적인 장소로 전환된다.

장소는 결국 인 간화된 공간인 것이다.

가파른 수직의 공간에서 상처받고 삶의 의 지를 잃어가던 기코는 공간 이동을 거치며 고립과 고독에서 탈피하 게 된다.

소통과 관계의 실패로 끝난 도쿄와 달리 오이타에선 타인 에 대한 관심과 생의 의지가 접목된 관계의 변화를 시도한다.

 

4. 치유와 상생의 공간 네트워크

 

앞 장에서는 공간적 선 위에 놓인 인물의 궤적을 통해 내면의 울 림과 파장을 알 수 있었다.

이 공간에서는 인물들의 경제적·사회적 지표뿐만 아니라 그들이 처한 상황과 내면의 변화를 묘사하고 이를 통해 현대사회의 다양한 문제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각 공간은 단 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물들의 삶과 감정을 반영하고, 그들이 마주 하는 현실의 복잡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본 장에 서는 물리적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지층을 구축함으로써 공간에 새 로운 깊이를 부여하는데, 공간의 간섭과 삶을 회복하려는 의지가 공간으로 전이되는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연립주택 혹은 선술집과 같은 공간에서 인물들 간에 이해가 발생 하게 된다.

이때 이해는 인물들 각각 살아온 삶의 역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즉 인물이 한 인물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삶의 역 사라는 선입견이 발동하게 된다.

이해는 대화를 통해 시작된다.

살아 온 서사가 다른 두 인물이 ‘말 걸기’를 통해 이해를 시작하게 된다.

가로막힌 공간을 뚫고 이 ‘말 걸기’의 이행을 보여주는 예가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川っぺりムコリッタ, 2021)이다.

영화의 등장인물 야 마다(마쓰야마 겐이치)는 과거를 지우고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한적 한 바닷가 마을에 새로운 주거지를 마련한다.

작은 어촌마을 공장에 취직한 그는 연립주택을 선택하고 낡은 무코리타 하이츠에 입주한다.

 

   <그림 6> 야마다 방의 공간 : 생략 (첨부 논문 파일참조)

 

이미지 영화에서 빈번하게 나타나는 것은 ‘개인 공간에 대한 간섭’이다.

연립주택의 공간에서는 벽과 벽을 사이에 두고 그 경계를 넘나드는 간섭이 일어난다.

연립주택에는 등장인물이 구획된 공간에 배치됨 으로써 각자 다른 삶의 형태를 지닌 인물들이 분리와 연결의 공간 구조에서 생활한다.

이런 방식의 공간과 프라이버시의 적절한 붕괴 는 자연스럽게 타인과의 소통과 관계 형성이 가능하도록 만든다.

무너진 공간의 경계 위에서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의 이웃이 된다.

영화에서 이웃들은 야마다의 영역으로 비집고 들어와 그의 욕실을 쓰거나 밥을 같이 먹으며 닫힌 공간에 균열을 내고 있 다.

이러한 순간들이 축적되면서 그의 일상에는 관계의 친밀함이 생 겨난다.

‘친밀함’은 관계의 깊이를 의미하며 정서적 유대감을 증대시 키는 요소이다.

반대로 ‘거리감’은 자기방어를 위해 설정하는 경계로 과거의 상처, 신뢰 부족 등의 이유로 발생할 수 있다.

친밀함과 거리 감은 상반된 개념이지만 동시에 상호작용하며 우리의 관계를 형성한 다.

따라서 친밀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관계 사이에 놓인 벽을 허물고 경계를 넘나드는 소통이 중요하다.

“사람은 결국, 누구나 다 외롭잖아.”, “혼자는 괜찮지만, 혼자만은 싫은 거야.”라는 영화 속 대사가 마음을 열고 교류하고자 하는 이들의 내면을 대변한다.

공간과 내면은 연동된다.

개인이 공간을 자각한다는 것은 공간의 내면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상통한다.

이때의 내면은 공간의 감각과 성찰이 내재된 곳으로 볼 수 있다.(이승민, 2015)

공간과 개인은 긴 밀히 연계되어 있어서 새로운 전이를 일으키기도 한다.

무코리타 연립주택의 사람들은 저마다 상처를 지니고 있으며, 이들은 교류를 통해 마음의 문을 열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삶의 의미를 찾아 간다.

‘삶-죽음’ 경계에서 각자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던 이들은 길 게 늘어진 단칸방 ‘무코리타’ 공동주택에서 삶의 의지를 키워내고 있다. “누구든 다시 시작할 기회는 있는 법이야.”, “살아가려면 서로 돕고 살아야 돼.”라며 영화는 수직과 수평의 교직 구조 속에서 발 생하는 존재의 에너지를 간과하지 않는다.

이러한 공간의 확장을 통해 일상의 것들에 새로운 깊이를 부여하고, 과거의 상처를 가진 이들을 천천히 소통과 이해의 경지로 이끌어간다.

작은 어촌마을을 배경으로 농촌의 빈집문제 등 사회적 이슈를 다 루는 영화 <선셋 선라이즈>(サンセット・サンライズ, 2025)16)도 공간적 고민이 내포되어 있다.

 

     16) <선셋 선라이즈>는 동일본대지진 재해 발생지역인 미야기현(宮城県) 게센누마 (気仙沼) 오시마(大島)에서 촬영이 이루어졌다.

 

오랜 세월 방치된 집은 마을에 닥친 쓰나미 로 가족을 잃고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았던 모모카(이노우에 마오)의 내면을 투영한다. 3.11 재난과 코로나가 만들어낸 비극에 이어 도시 과밀화에 따라 시골 인구 소멸의 상황은 절망적이지만 ‘빈집 프로 젝트’를 통해 인간관계와 삶의 방식을 변화시킨다.

도쿄의 대기업에 근무하던 니시오 신사쿠(스다 마사키)는 회사의 리모트 워크제도를 활용하여 도호쿠 산리쿠 지역의 해안가 마을로 이동하게 된다.

그는 방을 임대하고 바다낚시를 즐겼는데 그가 직면한 것은 지역에 드리워져 있는 지진의 상흔이었다.

도쿄에서 온 외지인과 재해의 상흔을 안고 있는 마을 사람들 사이에 가로놓인 ‘거리감’은 좁히기 힘든 부분이었다.

 

      <그림 7> 음식 나눠 먹는 장면 : 생략 (첨부 논문 파일참조)

 

<그림 7>과 같이 외지인(도쿄)과 마을사람의 접촉 장면을 비롯 해 재해 피해자들이 모여 음식을 먹으며 각자의 내면을 분출하는 장면은 소통의 중요성, 화해의 가능성을 보여준다.17)

감독인 기시 요시유키(岸善幸)는 인터뷰에서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비록 허구일지라도 사람들이 어떻게 일어설 수 있는지, 재건을 이루기 위해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에 대한 기록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18)고 영화 제작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모두가 진심으로 자기 일만 생각하면 다들 행 복해지지 않을까?”라는 영화 속 대사 또한 영화 주제가(태양은 뜨 고 다시 가라앉네)19)에 힘을 실어준다.

 

      17) 동일본대지진은 2011년 3월 11일 미야기현 산리쿠 앞바다에서 발생한 규모 9.0 의 초대형 지진으로, 지진 자체뿐 아니라 쓰나미와 후쿠시마 원전사고까지 포함 한 대규모 재난이다. 당시 사망자는 1만 5899명, 실종자는 2527명으로 집계됐다.

     18) 2024.12.24. 岸善幸監督 インタビュー https://lab.smout.jp/sunsetsunrise (검색일 2025.10.15.)

     19) “태양은 떴다가 다시 가라앉고 이제 곧 아침이 밝아오면 꽃도 곧 피어나리. 선 셋 선라이즈” 290 日本語文學 第107輯 

 

정리하자면, <강변의 무코리타>의 공간에서는 ‘말 걸기’를 통해 간섭이 발생한다.

여기에서 빈번하게 나타나는 간섭은 공간 분리로 나타나는 거리감을 줄이고 상호이해의 관계로 발전하도록 이끄는 요인이다.

<선셋 선라이즈>에서 ‘빈집’은 폐허의 공간에서 회생과 상생의 희망을 재건하려는 노력을 실행하는 공간으로 의미화된다.

 

5. 나오며

 

지금까지 2010년대 이후 영화와 드라마를 대상으로 공간성을 살 펴보았다.

공간은 관계와 서사의 네트워크로 의미화된다. 이런 측면 에서 최근 일본 영상콘텐츠에 나타난 공간성을 살펴보는 것은 일본 사회라는 현실 공간에서 일어나는 불안의 일면을 들여다보는 일일 것이다.

본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먼저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된 생활공간인 ‘빌딩’, ‘사무실’, 그리고 ‘옥상’의 공간성을 살펴보았다.

여기에서는 <한자와 나오키>, <잠깐 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치히로상>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빌딩’과 ‘사무실’은 등장인물과 갈등 관계에 있으면서 수직적인 조직문화, 상명하복 등 불합리성을 시각적 이미지로 보여주는 도구적 기능을 하고 있다.

‘빌딩’과 ‘사무실’로 상징화된 자본주의 체계의 위 압적 견고함을 부각시킬수록 구성원 개인의 고투에 감정 이입의 강 도를 높이게 된다.

‘옥상’은 ‘빌딩’과 ‘사무실’에서 전력투구하던 인물 이 에너지를 소진하면서 자리하게 되는 공간이다.

‘옥상’ 공간에서 는 빌딩 숲으로 펼쳐지는 화려한 도시공간과는 대조적으로 침잠하 고 절망하는 인물의 내면정서가 부각된다.

다음으로 ‘부유하는 존재’들이 현대사회에서 살아가는 공간의 속 성을 살펴보았다.

이 공간은 번아웃, 욕망 상실, 무기력의 속성을 지녔다.

여기에서는 <아침이 오면 공허해진다>, <백엔의 사랑>, <퍼펙트 데이즈>, <52헤르츠 고래들>의 작품을 대상으로 하였다.

이 작품들에서는 편의점, 백엔샵, 복싱장, 집, 공중화장실 등의 공간 이 등장한다.

앞에서 언급한 공간의 특징은 굴절의 정서와 상처를 지닌 인물의 생활공간이라는 점이다.

이런 측면에서 공간은 등장인 물의 불안, 무기력, 좌절, 분노 등의 정서로 채워진다.

다만 이러한 공간성을 표출하면서도 등장인물의 삶에 대해서는 ‘쓸모없음’과 같 은 절망적이고 고립적인 모습과는 상반되는 자족의 모습과 살아있 음의 가치를 담아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강변의 무코리타>와 <선셋 선라이즈>를 통해 공간 성을 살펴보았다.

<강변의 무코리타>에서 나타나는 것은 공간의 간섭이다.

이 영화에서는 연립주택과 선술집이 등장하는데 이 공간 에서는 ‘말 걸기’를 통해 간섭이 발생한다.

여기에서 빈번하게 나타 나는 간섭은 공간 분리로 나타나는 거리감을 줄이고 상호이해의 관 계로 발전하도록 이끄는 요인이다.

<선셋 선라이즈>에서 ‘빈집’은 폐허의 공간에서 회생과 상생의 희망을 재건하려는 노력을 실행하 는 공간으로 의미화된다.

 

 

◀참고문헌▶

가네코 마사루. 일본병: 장기 쇠퇴의 다이내믹스. 한국: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2016): 97. 류미향. "권도옥과 김채원 소설 속 병리와 문학치료 연구." 국내박사학위논문 경북대 학교 대학원, (2017): 46. 서도식. 공간의 현상학. 한국: 철학논총 4.54 (2008): 335-358. 앙리 르페브르. 양영란 역. 공간의 생산. 한국: 에코리브르, (2011): 39. 이승민.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의 공간성 연구." 국내박사학위논문 중앙대학교 첨단 영상대학원, (2015): 48. 이은수. "자기돌봄 일상화에 관한 소고: 번아웃 회복을 중심으로." 인문사회 21 13.4 (2022): 914. 中根千枝. タテ社會と 現代日本. 일본: 講談社現代新書, (2019): 16. Lefebvre, Henri. 정기헌 역. 리듬분석: 공간, 시간, 그리고 도시의 일상생활. 한국: 갈 무리, (2020): 21. Tuan, Yi-fu. 윤영호·김미선 역. 공간과 장소. 한국: 사이, (2020): 11, 127. 292 日本語文學 第107輯 <52헤르츠 고래들>(2024), 나루시마 이즈루, 136min. <강변의 무코리타>(2021), 오기가미 나오코, 120min. <백엔의 사랑>(2014), 다케 마사하루. 113min. <선셋 선라이즈>(2025), 기시 요시유키, 139min. <아침이 오면 공허해진다>(2022), 이시바시 유호, 75min.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2017), 나루시마 이즈루, 114min. <치히로상>(2023), 이마이즈미 리키야, 131min. <퍼펙트 데이즈>(2023), 빔 벤더스, 124min. <한자와 나오키>(2013, 2020), 후쿠자와 가츠, TBS드라마(각 10부작) 

 

< 要 旨 >

本稿は現代日本の映像コンテンツに見られる空間性の意味を考察する。現代の日本社会の 断面を描いた2010年代以降の映画やドラマを研究対象として選定した。空間性は作品の登場 人物と事件のネットワークに影響を受ける。本稿では、登場人物と事件のネットワークを「線」と し、その線が築き上げる空間の形を垂直と水平の「空間」とした。 垂直の空間は、資本主義のネットワークをベースとする線たちの構成体であり、中心部からは ぐれ、排除された人物らの生活空間と情緒の空間化を考察する。次に、垂直空間から締め出さ れたその周辺空間を水平空間として設定した。ここでは資本主義を象徴する空間における欲望と 屈折の感情が、いかに空間性として意味化されるかを観察する。最後に、登場人物が過去と 向き合い、自分らしい生き方を見つけようとする内面空間と実存の空間性を考察する。 映像コンテンツは、人物の関係性と物語が空間を通じてイメージ化される特徴を持つ。映像コ ンテンツの空間が持つ特性を明らかにすることは、人物同士のコミュニケーションと葛藤を考察する ことであり、これは「現代の日本社会」という空間が有する空間性を考えるきっかけともなるだろう。

 

〈 Abstract 〉

This paper examines the meaning of spatiality in contemporary Japanese video content. The study analyzes films and television dramas produced since the 2010s, which together showcase a cross-section of modern Japanese society. Spatiality is influenced by the network of characters and events, here conceptualized as "lines." These lines construct two primary forms of space: vertical and horizontal. The vertical space consists of lines structured by capitalist networks. It represents the living environments and emotional spatialization of characters who are pushed to the periphery or excluded. The space that emerges outside this vertical structure is designated as the horizontal space.In this horizontal realm, the emotions of desire and deflection, produced within a capitalist symbolic order, take on meaning as spatiality. Finally, the paper examines characters' inner space, where they confront the past and attempt to regenerate their lives, revealing a form of existential spatiality. Because video content visualizes character relationships and narratives through space, uncovering its spatial characteristics requires close observation of communication and conflict between characters. Such analysis offers a lens through which to reconsider the spatiality of modern Japanese society as a whole.

주제어:일본현대사회(Contemporary Japanese Society), 공간성(Spatiality), 영 상콘텐츠(Video Content), 병리적(Pathological), 회생(Regeneration) 

 

 

 

논문접수일 : 2025. 10. 15. 논문심사일 : 2025. 12. 05. 게재확정일 : 2025. 12. 09.

日本語文學 第107輯

 

일본 현대사회의 병리적 공간성과 회생의 공간적 전이 -2010년대 이후 영상콘텐츠를 중심으로-.pdf
2.98MB

 

 http://dx.doi.org/10.18704/kjjll.2025.12.107.2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