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rdinand Hodler는 스위스 베른에서 태어난 상징주의 화가입니다.
그는 1873년 제네바 미술학교에서 미술 공부를 하면서 바르텔레비 맨에게 사사했고, 초기에는 한스 홀바인과 알브레흐트 뒤러의 그림을 연구했다고 합니다.
1878년에 마드리드로 여행을 가서 몇 달 동안 머물면서 프라도 미술관에서 티치아노, 푸생, 벨라스케스와 같은 거장들의 작품을 연구했다고 합니다.
1880~81년에 그는 자화상 '분노한 사람'을 그렸는데 이 그림에서 그의 표정은 계속되는 가난과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분노를 드러냅니다.
이 그림은 제네바에서 전시되었을 때 많은 조롱을 받습니다.
그는 이 그림을 파리 살롱전예 출품했지만, 비평가들로부터 외면당합니다.
그는 1885년 첫 개인전 이후 1887년에 베른의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가졌고,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첫 수상을 합니다.
그는 개인적 경험과 세기말에 만연한 종말론에서 시작된 인간의 운명에 대한 고민을 종교를 통해서 해결하고자 하였고, 자신의 삶에 대한 사색의 과정을 작품에서 표현하고자 한 화가였습니다.
그가 작품에 종교성을 반영한 회화를 그린 것은 본질적으로 그 정신이 종교적인 것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그는 자신의 화풍이 상징주의인지 표현주의인지에 대해 확실하게 규명할 수 없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는 그 시대의 흐름에 따라 상징주의 화가들의 형식적인 요소를 취한 바 있고, 내적 감정을 표현했지만 동시대의 상징주의자들과는 좀 차이가 있습니다.
세기말의 대부분의 상징주의자들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동요된 인간의 모습, 도시 생활의 부정적 이미지, 위협적인 여성이나 도피적인 환상 등은 그의 작품에서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단지 자신의 철학을 표현하기 위해 당시의 신비주의에 영향을 받아 기복적인 의미를 함축한 것 뿐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호들러는 초기에는 사실주의 기법으로 초상화와 인물화, 그리고 풍경화를 그렸습니다.
그러나 그의 화풍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점 다양해지기 시작합니다. 그의 작품에 낭만주의가 들어왔는가 하면, 19세기가 끝나기 10년 전부터는 상징주의와 아르누보 그리고 표현주의까지 여러 장르가 그의 작품 안에서 엮이기 시작했습니다.
1890년에 그는 자신이 상징주의자로 전환했음을 보여주는 작품인 '밤'(여기서 첫 번째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이 작품은 여러 명의 누워있는 인물들을 묘사하는데, 모두 편안하게 잠들어 있는 모습이지만, 검은 천으로 덮인 인물에게서 위협받는 불안한 남자는 예외입니다. 그는 이 검은 천을 죽음의 상징으로 본 것입니다.
그가 1891년 제네바 미술전에 이 작품을 출품했을 때 시장은 이 작품이 외설적이라고 판단하여 전시회에서 이 작품을 철수시켰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작품을 몇 달 후 파리 살롱전에 출품하었고, 거기에서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는 대칭과 리듬을 강조하는 "평행주의"라는 스타일을 개발하기도 하였습니다.
오늘날 그의 작품 대부분은 스위스의 공공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시카고 미술관 등에도 그의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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