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들어가는 말
코로나-19의 위력은 실로 대단하여 인간 일상의 패러다임을 바꿔놓 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시적 세상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침투는 죽음이 더 이상 특정 개인이나 공동체의 불운이 아닌, 우리 모두의 삶 가까이에 있는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현실임을 각인시켰다.
매일같이 발표되는 사망자 수,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온전히 치러지지 못하는 장례 절차 그리고 언제든 자신과 사랑하는 이들이 죽음의 문턱에 설 수 있다는 불안감은 현대 인간 사회가 오랫동안 외면해 왔던 동물적 취약성 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의 가시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이 시대는 동시에 죽음을 가장 격렬하게 부정하는 죽음 부정의 문화를 여실히 드러냈다.
현대 사회는 죽음을 의료 기술의 실패로 간주하거나 위생적으로 처리하고 격리해야 할 대상으로 취급하며 삶의 영역에서 철저히 소외시켜 왔다.1)
노화와 죽음은 극복해야 할 장애물로 여겨졌고, 생명 연장과 기술만능주의적 낙관론은 죽음을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가 아닌 피해야 할 비극으로만 규정했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 팬데믹이 가져 온 죽음의 일상화는 사회적 외상으로 작용했을 뿐, 그것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묻는 성찰의 계기로 삼으려는 노력은 미미했다.
우리는 죽음을 마주하기보다는 통계와 데이터 뒤로 숨거나 백신과 치료제라는 기술적 해결책에 기대를 거는 방식으로 그 실존적 무게를 회피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진단 속에서 본 논문은 19세기 덴마크의 철학자 쇠렌 키에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의 Three Discourses on Imagined Occasions(상상된 경우들을 위한 세 편의 담론, 1845)에 수록된 세 편의 담론 중의 하나인, “무덤가에서”(At a Graveside)를 주목하고자 한 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담론은 무덤이라는 “특정한 사건과 상황”에서 시작한다.2)
물론 여기서 다뤄지는 죽음은 단지 유기체의 종결 사건이나 관념적 사유의 대상이 아니다.
죽음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닌, 다만 사유하는 것이다.
그러나 죽음의 사유는 이 덴마크 철학자에 게 있어서 독특하다.
키에르케고르는 그것을 죽음에 대한 진지함(Alvor, earnestness)3)함으로 설명한다.
1) 이희은, “사회적 참사와 타인의 죽음: 이태원 참사의 고통과 죽음은 왜 일상으로부터 배제되었나?,” 「문화연구」 11 (2023): 32-33.
2) Søren Kierkegaard, Three Discourses on Imagined Occasions, trans. Howard V. Hong, Edna H. Hong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9), ix.
3) 덴마크어 Alvor는 고대 노르드어 alvara에서 유래한 말로, “모두”를 뜻하는 al(all)과 “진실한”(true)을 의미하는 형용사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사전적 의미로는 자신 의 진정한 의견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뜻하며, 그 신념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태도를 가리킨다. 이 단어는 때로는 엄숙함이나 중요함의 뉘앙스를 가지지만, 주된 의미는 어떤 문제나 과업을 진지함과 중요성을 가지고 대하는 자세를 의미한다. 또한 약속을 지키고 진정으로 노력하는 행동을 포함하며, 부사적으로는 ‘진심으로’, ‘참으로’라는 뜻으로 자신의 견해와 의도를 분명히 드러내는 것을 표현하기도 한다. John J. Davenport, “Earnestness,” in Kierkegaard‘s Concepts Tome II: Classicism to Enthusiasm, eds. Jon Stewart and William MacDonald (Burlington: Ashgate, 2014), 219.
그것은 무의미와 허무를 이겨내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로 설 수 있게 하는 영적 훈련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무덤이라는 구체적인 장소를 통해 독자로 하여금 죽음의 필연성을 직면하게 하고, 이를 통해 생의 끝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후회가 아닌, 살아있는 동안 “지금, 바로 여기서”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실존적 결단을 촉구한다.
이런 점에서 본 논문은 궁극적으로 키에르케고르의 손을 빌려, 무덤 가 옆에 서는 것을 피하는 대신 그곳에서 삶의 가장 진지한 교훈을 배우는 길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연구자는 우선 팬데믹 이후 더욱 심화된 현대 사회의 죽음 부정 문화를 어너스트 베커(Ernest Becker)의 진단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어서 키에르케고르의 “죽음 옆에서”에 나타 난 ‘죽음의 진지함’이라는 개념을 고찰함으로써, 이 진지함이 어떻게 현 대인의 죽음 회피적 태도에 대한 전환을 이끄는지를 규명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죽음을 망각하고 오직 삶의 연장에만 몰두하는 현대 문화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드러내고, 역설적으로 죽음을 진지하게 사유 함으로써 얻게 되는 삶의 충만함과 진정성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II. 죽음에 관한 진지함
1. 죽음 부정 문화
죽음은 인간 실존의 가장 확실한 사실이지만, 오늘날의 인간은 그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으려 한다.
태어난 순간부터 사실 모든 유기 체는 죽음을 향해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치 죽음이 자신과 무관한 일인 것처럼 행동한다.4)
왜 그런가? 진보와 성취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현대 사회에서, 죽음은 이 모든 것을 일순간에 무(nothingness)로 돌리는 궁극적 모순이다.
과거 종교나 공동체가 부여했던 초월적 의미가 사라진 자리에서, 죽음은 개인의 소멸이자 모든 기획의 끝이라는 공백으 로만 남는다.
이러한 실존적 공허함을 마주할 용기가 없기에 현대인은 죽음을 외면하고 삶의 표면에만 집착한다고 볼 수 있다.5)
그렇다면 이러한 죽음을 대하는 인간의 대응을 보다 구체적인 세 가지 유형으로 살펴보자.
첫째, 가용한 자원을 모두 동원하여 죽음에 저항하는 태도이다.6)
4) 어네스트 베커/김재영 역, 죽음의 부정 (서울: 한빛비즈, 2019), 33. 베커는 필연적 운명(죽음을 맞이해야 하는)임에도 자신은 죽지 않을 것이란 생각은 자기애 관념관 연관되어 있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인간이 무의식은 죽음이나 시간을 알지 못한다.
5) W. Glenn Kirkconnell, “Earnestness or Estheticism: Post 9/11 Reflections on Kierkega ard’s Two Views of Death,” Florida Philosophical Review, Vol. III, Issue 2 (2003): 74-75.
6) 박중철, “죽음을 대하는 현대의학의 태도 비판: 어네스트 베커의 실존주의 심리학의 관점에서,” 「의철학연구」 24 (2017): 40-41.
이것은 수명 연장을 과제로 삼는 현대의 의학과 같이, 죽음을 기술적으로 정복하려는 시도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둘째, 철학적 사유를 통해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려는 시도이다.7)
사실 죽음 은 고대부터 이어져 온 철학의 궁극적 질문 중의 하나였다.
여기서 죽음은 단순한 ‘생’의 종결이 아닌, 그것의 의미를 규정하는 철학적 핵심으로 간주되었다. 소크라테스가 “철학은 죽음의 연습”이란 명언을 남긴 이 래8) 수많은 철학자는 죽음의 본질을 탐구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삶의 가 치를 재고하고 죽음에 대한 불안을 지성적으로 해소하고자 하였다.9)
셋째, 죽음의 필연성을 의도적으로 부정하고 망각하는 태도이다.
일상의 분주함에 몰두하거나 심리적으로 억압하여 망각하는 태도이다.
이러한 경향성은 인간이 자신의 신체적 유한성이 야기하는 근원적 불안을 회피 하기 위해 사용하는 가장 보편적인 기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제시된 세 유형은 어네스트 베커의 관점을 통해 하나의 근원적 동기로 수렴될 수 있다.
베커는 그의 저서 죽음의 부정에서 이 모든 행위가 결국 죽음이라는 필멸의 공포를 부정하려는 인간의 필사 적인 시도라고 주장한다.10)
7) 베커, 죽음의 부정, 47.
8) 플라톤/전헌상 옮김, 파이돈 (서울: 이제북스, 2013), 64a, 81a.
9) 이러한 철학적 전통의 연장선상에서 20세기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인간 실존이 죽음의 가능성을 “자기를-앞질러”(미리) 직면함으로써 오히려 본래적이고 주체적인 자아를 회복하고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역설하였다. 그는 죽음을 “가장 고유하고, 비타자적이며, 능가할 수 없는 가능성”으로 규정하며, 이를 회피하지 않고 선구적 결단을 통해 미리 받아들일 것을 역설한다. 이러한 유한성의 직시를 통해서만 현존재는 타자의 시선에서 벗어나 본래적 자아를 회복하고 진정한 역사성의 주체로 설 수 있다. 마르틴 하이데거/이기상 옮김, 존재와 시간 (서울: 까치글방, 2025), 370-367(제52-53절).
10) 베커, 죽음의 부정, 56.
그러한 시도는 인류 역사 속에서 문화 형태로 등장한다. 말하자면 인간의 모든 문화적 행위는 하나의 근원적인 동력,곧 죽음 공포를 억압하고 초월하려는 무의식적 시도에서 비롯된다.
베커의 문화 이론은 인간이 지닌 근본적인 피조물로서의 이중성, 실존적 딜레마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한편으로는 상징과 언어를 통해 자신을 우주적 존재로 인식하고 영원을 사유하는 정신적 존재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썩어 없어질 육체를 지닌, 필멸하는 동물에 불과하 다.11)
이 모순적 존재가 자신의 죽음을 자각할 때 발생하는 압도적 불안 을 감당하기 위해 인류는 문화라는 정교한 방어기제를 구축한다.
그러므 로 베커에게 문화란, 개인에게 상징적 불멸성을 약속함으로써 죽음의 공포를 잠재우는 거대한 영웅주의 체계이다.12)
인간은 스스로의 한계를 초월하는 영속적인 가치 체계(종교, 국가, 사상, 예술 등)에 자신을 투신 하고 기여함으로써, 자신의 유한한 생명이 소멸 이후에도 의미를 지닐 것이라는 믿음을 얻는다.
코로사-19 팬데믹은 바로 이 문화라는 갑옷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노출시켰다.
비가시적 바이러스가 가하는 가시적 위협 앞에서 죽음은 더 이상 노년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나 타인의 비극이 아니었다.
그것은 언제든 누군가의 호흡을 정지시킬 수 있는 즉각적이고 비인격적인 현실 로 들이닥쳤다.
최첨단 의료 기술이 죽음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한 믿음은 충격에 휩싸였다.
이것이야말로 베커가 말한 피조물성의 공포가 일상으로 침투한 사건이며, 인류가 애써 외면해 온 자신의 동물적 취약성을 강제로 직시하게 만든 거대한 사건이었다.13)
11) 앞의 책, 67-68.
12) 앞의 책, 36-38.
13) 앞의 책, 69.
이러한 집단적 외상 이후 현대인의 죽음 부정 방식은 더욱 필사적이 고 역설적인 형태로 진화하였다.
팬데믹이 종식 국면에 접어들자 사회는 억눌렸던 생의 에너지를 폭발시키며 죽음의 기억을 지우려는 집단적 열망에 휩싸였다.14)
14) 송상연, “엔데믹 시대의 여행상품 보복소비행동에 관한 연구,” 「한국항공경영학 회지」, vol. 20 (2022): 130-140.
“보복 소비”15)와 “보복 여행”이라는 신조어16)는 단순히 억압된 욕구의 분출을 넘어,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영웅주의적 몸짓에 가깝다.
15) 다양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부정적 감정, 이를테면 걱정, 우울, 불안, 공포, 스트레 스, 권태, 외로움, 분노 등의 감정 해소를 목적으로 나타나는 소비를 보복 소비라고 정의한다. 송상연, “엔데믹 시대의 여행상품 보복소비행동에 관한 연구,” 134.
16) 윤지원, “‘보복 여행’의 해? ⋯ 코로나19 이전 수준 회복한 해외여행,” 「경향신문」 2024. 1. 8.
그것은 죽음의 그림자에 맞서 생명력을 과시함으로써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려는 처절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웰빙과 자기-계발 문화는 더욱 정교 한 형태의 영웅주의 체계로 자리 잡았다.
명상, 식단 관리, 피트니스, 정신 건강 케어 등은 자신의 마음과 신체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최적화하려는 기획이다.
이는 늙고 병들어 가는 육체의 필연성에 저항하며 스스로를 죽음의 무작위성으로부터 보호받는 특별한 존재로 구축하려는 시도와 맞닿아 있다.
그러나 베커의 관점에서 이러한 영웅주의적 시도는 필연적으로 실 패하고 공허함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죽음 공포를 외부의 대상(소비, 건강, 타인의 시선)에 투사하여 해결하려는 모든 노력은 근본적으로 자 기-기만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베커의 분석이 도달하는 지점은 바로 이 실존적 교착 상태다.
인간은 죽음의 공포를 감당할 수 없기에 그것을 부정하지만, 그 부정의 방식이 오히려 삶의 진정성을 훼손하고 만다.
죽음을 외면한 채 영웅주의 놀이에 몰두하는 것은 결국 공허한 자기 소외 로 귀결될 뿐이다.
그렇다면 죽음을 직시하되 절망에 빠지지 않고, 오히 려 이를 통해 주체적 실존으로 나아갈 길은 없는가?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키에르케고르가 말하는 “죽음의 진지함”이라는 개념으로 눈을 돌려야 할 필요성을 발견하게 된다.
2. 키에르케고르의 죽음 사유
죽음에 관하여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베커의 분석에 따르면, 인간 에게 죽음은 공포이자 불안의 근원이다.
죽음은 또한 실존이 경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다가갈 수 없는 주제에 평생토록 사유를 집중한 사람이 바로 키에르케고르였다.
그의 수많은 저작은 ‘아 무것도 없음’에 대한 사유로 일관하며, 이러한 사유는 “죽음에 대한 놀라 울 만큼 일생을 통한 [그의] 집요한 몰두”17)를 잘 보여준다.
키에르케고르 에게 죽음은 삶 속의 한 사건이 아니라 오히려 그로부터 삶 전체가 해석되 는 시점이다.18)
그런 점에서 그는 “죽음이야말로 진지함의 교사”라고 말한다.19)
17) Patrick Stokes and Adam Buben, “Introduction,” in Kierkegaard and Death, eds. Patrick Stokes and Adam J. Buben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2011), 1.
18) Kierkegaard, “At a Graveside,” 72-74.
19) Kierkegaard, “At a Graveside,” 75.
그러므로 “무덤가에서” 죽음은 은폐되지 않는다.
삶의 유한성은 인간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근원적 물음을 던진다.
키에르 케고르는 이 물음의 필연성을 죽음에 대한 진지한 사유 속에서 찾는다.
죽음은 인간이 자신의 유한성을 정직하게 직면하도록 요구하며, 그 직면 이야말로 진정한 회복이 시작되는 지점임을 가르친다.
1) 19세기 덴마크 교회 새로운 도전
키에르케고르의 철학적 기획은 당대의 지배적인 두 거인, 즉 헤겔의 체계적 관념론과 제도화된 덴마크 국교회에 대한 전면적인 저항에서 출발한다.
19세기 유럽 지성계가 계몽주의의 유산을 이어받아 이성, 관 찰, 객관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헤겔의 거대하고 보편적인 철학 체계에 몰두하고 있을 때, 키에르케고르는 철학의 방향을 정반대로 틀었다.
그 는 보편성에 결코 포착할 수 없는 인간 내면의 고유한 영역, 말하자면 감각, 감정, 불안, 주관성에 주목하며 철학의 중심을 세계에 대한 객관적 설명에서 고독한 개인의 실존 문제로 되돌려 놓았다.20)
이러한 그의 철학 적 여정은 “내가 알아야 할 바가 아니라 내가 해야 할 바를 아는 것” 그리고 “나에게 진리인 진리, 내가 그것을 위해 기꺼이 살고 또 죽을 수 있는 이념을 찾는 것”이라는 젊은 시절의 고백에 모든 것이 압축되어 있다.21)
20) 안상혁, 불안은 감각을 잠식한다 (서울: 사람의무늬, 2020), 39.
21) Søren Kierkegaard, Kierkegaard‘s journals and notebooks, vol. I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7), 19-20.
그가 추구한 “나에게 진리인 진리”, 말하자면 주체적 진리는 객관적 지식 의 축적을 넘어 한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키는 역동적인 힘을 의미 한다.22)
그의 관점에서 당대의 문화와 정신은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려 있었다.
헤겔 철학으로 대표되는 지성주의는 인간 개인의 독특성과 가능 성을 보편 정신(Spirit)의 발전 과정에 해소시켜 버렸고, 기독교 세계는 신앙을 문화적 관습이자 사회적 체면치레로 전락시켰다.
교회에 출석하 고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누구나 기독교인이 될 수 있었고, 하나님 앞에 홀로 서는 실존의 엄숙함이나 죄, 고뇌, 구원의 문제는 더 이상 삶의 중심에 있지 않았다.
신앙은 개인의 삶에 열정적인 결단이 아닌 안락함과 안정감을 보장하는 제도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모두가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려 있는데, 죽음인 줄 모른다.
이처럼 안락한 군중 속에서 잠들어 있는 개인의 영혼을 깨우기 위해 키에르케고르는 이성적 논의가 아닌 충격적이고 간접적인 방법을 동원 해야만 했다.
그는 자신의 독자들이 텍스트를 이성으로 분석하기보다 감각과 감정으로 경험하기를 원했다.
이를 위해 그는 자신의 이름을 숨긴 채 여러 익명의 저자들을 내세우고 저작들에 심리학적 실험이라는 부제 를 달았다.23)
22) 카프토는 키에르케고르의 주체성의 강조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어떤 시조를 보여 준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근대성이 보편적 규칙과 동일한 것을 강조하였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개개인의 차이와 다양성을 강조하는 각각의 사조를 지닌다. 키에르케고르의 단독성은 ‘혼자’의 의미뿐만 아니라 그 자신만이 갖는 차이, 독특 성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카푸토의 주장은 부합한다. 존 D. 카푸토, (How to read) 키에르케고르 (서울: 웅진씽크빅, 2008), 30.
23)반복(1843)의 부제는 “실험적 심리학의 시도”, 인생길의 단계들(1845), 제3 부 “유죄냐? 무죄냐?”의 부제는 “수난 이야기, 프라테르 타키투르누스에 의한 심리 학적 실험”, 죽음에 이르는 병의 부제는 “교화와 깨달음을 위한 그리스도교적인 심리학적 탐구”, 불안의 개념은 “원죄라는 교의학적 문제에 관한 심리학적 관점 에서의 단순한 연구”라는 부제를 달았다.
당시 그의 스승 시베른(Frederik C. Sibbern, 1785~1872)이 “심리학자는 시인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듯,24) 키에르케고르가 말하는 심리학은 물론 오늘날의 과학적 분과와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결코 이성 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절망, 불안, 열정과 같은 심층적 정서를 문학적이 고 현상학적으로 탐구하는 인간학에 가까웠다.25)
또한 익명의 글쓰기는 저자와 텍스트 사이에 의도적인 간극(gap)을 만들어, 독자가 수동적 지 식 수용자가 아닌 주체적 참여자로 그 공간에 참여하도록 초대하는 장치 였다.
독자는 이 간극 속에서 상상력을 동원해 텍스트를 스스로 해석하 고, 자신의 실존적 가능성을 탐색하며 잠재된 자기-의식, 정신(spirit)을 각성해야만 했다.26)
24) 키에르케고르가 1830년 코펜하겐대학에 입학했기 때문에 1813년부터 교편을 잡은 시베른의 영향을 가정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25) 김옥주, “키에르케고르와 정신분석학에서의 불안이해” (협성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23), 20.
26) Michael Strawser, “Between Mood and Spirit: Kierkegaard’s Conception of Death as the Teacher of Earnestness,” (German) Kierkegaard Studies Yearbook, Vol. 28 (2023), 144. 키에르케고르는 헤겔과 유사하게 정신(spirit)의 우위를 주장한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정신은 절대정신이 아니라 육체에 의해서 구속되어 있는 정신 이다. 그리고 그러한 육체는 철저하게 성적인 차이를 통해서 규정된 육체이다.
이러한 실존적 각성을 위한 가장 근본적이고 효과적인 충격요법으 로서 키에르케고르가 제시한 것이 바로 죽음에 대한 진지한 사유이다.
그가 죽음의 진지함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진지함을 상실한 기독교 세계 와 헤겔의 관념론 모두에 대한 필연적인 도전이었다.
어머니를 비롯한 다섯 형제자매의 죽음을 목격하며 그 그림자 속에 살았던 키에르케고르 에게 죽음은 결코 관념이 아니었다.
이 고통스러운 실존적 체험은 그에게 죽음이 누구에게나 닥치는 구체적이고 피할 수 없는 현실임을 각인시켰고, 죽음마저 관념화하고 제도 속에 길들여버린 동시대인들의 위선을 폭로하는 가장 정직한 도구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죽음의 진지함은 당대의 피상적인 사유 방식과 정면으 로 충돌한다.
특히 헤겔 철학은 죽음을 역사와 이성이 발전하는 과정 속 필연적인 한순간으로 포섭함으로써 그 실존적 충격을 제거한다.27)
개인의 죽음은 전체 정신의 전진을 위한 논리적 기능으로 환원되어 ‘나’ 의 죽음이라는 대체 불가능한 사건의 고유성과 절박함은 자취를 감춘다.
키에르케고르에게 이러한 체계적 사유는 죽음의 진지함을 회피하고 그 것을 안전하게 길들이려는 기만적인 태도에 불과했다. 마찬가지로 문화 적 관습이 되어버린 신앙 안에서 죽음은 내세에 대한 막연한 믿음으로 무마될 뿐, 현재의 삶을 뒤흔드는 실존적 사건으로 다뤄지지 않았다.
따라서 덴마크 철학자에게 죽음의 진지한 사유란 바로 이러한 관념적, 제도적 회피에 맞서 죽음을 ‘나의 것’으로, 나에게 ‘끝’을 선언하는 절대적 사건으로 받아들이는 행위 그 자체였다.28)
따라서 죽음이라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절대적 사건 앞에서야 비로소 인간은 문화적 관습으로서 의 신앙, 추상적인 철학 체계를 넘어 자신의 유한성을 직시하고 하나님과 의 개인적인 관계를 모색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그는 믿었다.
죽음의 진지 한 사유를 통해 군중 속에서 깨어난 개인은 고독한 ‘단독자’로서 자신의 실존을 심화하는 여정을 시작한다.29)
27) 구인회, “헤겔과 쇼펜하우어의 죽음관,” 「인격주의 생명윤리」 3권 1호 (2013): 3-5.
28) Leonardo F. Lisi, “Killing Time: Death and Being in Kierkegaard’s At a Graveside,” Discipline Filosofiche 34 (2024): 216.
29) 이러한 각성을 통해 개인은 자신의 실존을 심화하는 여정을 떠나게 된다. 키에르케 고르는 이를 미학적-윤리적-종교적 실존의 3단계로 제시했다. 순간의 쾌락을 좇는 미학적 단계는 결국 권태와 절망에 부딪히고, 개인은 보편적 도덕과 책무를 선택하는 윤리적 단계로 도약(leap)한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유한성으로 인해 윤리 법칙을 온전히 지킬 수 없다는 한계 속에서 더 깊은 죄의식과 무력감을 느낀 다. 이 절망의 끝에서 인간은 이성과 윤리를 넘어서는 최종적인 결단을 요구받는 다. 바로 신 앞에 홀로 서는 종교적 단계로의 신앙의 도약이다. 이 단계에 이른 인간이 바로 키에르케고르 철학의 최종 목표인 “단독자”이다.
3. 죽음의 특성
키에르케고르는 “무덤가에서”의 담론을 통해 죽음의 사유가 어떻 게 인간을 무의미한 농담(jesting)과 자기 기만적 삶으로부터 구출하여 참된 진지함으로 이끄는지를 탐색한다.
이를 위해 그는 죽음이라는 사건 이 지닌 고유한 특성을 파고드는데, 이는 크게 결정성(decisiveness), 정의 불가능성(indefinability) 그리고 설명 불가능성(inexplicability)이라 는 세 가지 범주로 심화된다.
이 세 가지 특성은 개별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하며 인간의 모든 지적, 문화적 방어기제를 무력화 시킨다. 우선 키에르케고르는 죽음의 결정이 지닌 절대적 결정성을 강조한 다.
그가 말하는 “afgørelse”(결정적)는 영어로 decisive로 번역되지만, afgørelse는 문자 그대로 ‘없애다’, ‘처리하다’, ‘없애버린다’라는 의미를 지닌다.30)
30) Lisi, “Killing Time,” 217.
영어 번역의 decisive는 마치 어떤 사건에서 무언가가 뒤따라 나온다는 인상을 주는데, 키에르케고르의 문맥에서는 사실 적절하지 않다.
물론 그는 죽음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진정한 삶의 가능성이 따라온다고 믿지만, 여기서의 핵심은 아니다.
오히려 그가 말 하고자 하는 죽음이란 모든 것을 종결시키는 순간, 그 이후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다.
이를테면 죽음이 결정적(afgørelse)이라는 것은 더 이상 미래가 존재하지 않게 되는 순간을 뜻한다.
우리는 일상을 살면서 수많은 선택과 결정을 하고, 나아가 인생의 다른 결정들은 수정, 보완 혹은 철회 의 가능성을 남겨두기도 한다.
하지만 죽음의 개입은 그 모든 가능성을 일거에 소멸시킨다.
죽음이 도래하는 순간 “들려오는 말은 여기까지, 그 이상은 없다; 모든 것이 끝나고, 한 글자도 추가되지 않으며, 의미는 종결되고 더 이상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31)
바로 이 절대적 종결의 선언이야말로 베커가 말한 인간의 불멸성 프로젝트가 정면으로 맞서는 대상이다.
우리는 부, 명예, 예술, 자녀 등 다양한 문화적 상징을 통해 죽음의 “여기까지”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자신의 서사를 한 글자라도 더 이어가려는 필사적인 노력을 한다.
그러나 키에르케고르는 이러한 모든 시도가 죽음의 불변성 앞에서 무력함을 드러낸다.
세상의 모든 것은 시간 속에서 변하고 희석되지만, 죽음만은 “창백해지지도, 늙지도 않는 다.”32)
죽음은 인간의 논리나 문화적 성취에 전혀 동요하지 않는 냉혹한 힘이다. 둘째, 죽음은 “정의 불가능”하다.33)
31) Kierkegaard, “At a Graveside,” 78-79.
32) Ibid., 79.
33) Ibid., 85.
키에르케고르는 죽음을 인간 개념, 흔히 말하는 평등 혹은 불평등의 정의로 환원할 수 있다는 생각을 철저히 거부한다.
인간은 종종 죽음의 평등성, 말하자면 죽음 앞에서는 부자와 빈자, 청년과 노인, 선인과 악인의 비교 및 구분이 사라진다는 사실에 위로를 얻으려 한다.34)
그러나 죽음은 이를 실체 없이 만든다. 죽음 앞에서는 그 누구도 타인에 대한 특권을 가지지 않는다.
진정한 평등은 죽음이 각 사람을 철저히 개별자로 고립시킨다는 데 있다.
“죽음 은 각 사람을 따로 데려간다-그리고 그는 침묵한다.”35)
무덤의 문이 닫히 고, 그곳은 죽은 자들이 다수로 모여 있는데도 “어떤 형태의 사회도 구성 하지 않는 바로 그곳”이다.36)
죽음 앞에서 인간은 모두 철저히 고립되며, 이 고립이야말로 죽음의 진정한 평등이다.
키에르케고르는 “죽음의 결 정이 평등으로 정의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또한 불평등으로 도 정의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37)
죽음의 시점, 방식, 대상은 예측 불가능 하며, “어떠한 나이도, 어떠한 환경도, 어떠한 삶의 상황도 그것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다.”38)
결국 키에르케고르는 죽음의 핵심적 속성 을 “유일한 확실성이며, 동시에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은 유일한 것,”39)
즉 불확실한 확실성이라는 역설로 요약한다.
34) David R. Law, “Learning to Face Death Earnestly: Kierkegaard’s Critique of Inauthentic Conceptions of Death in “At a Graveside,” International Journal on Humanistic Ideology Vol. 11 (2021): 67.
35) Kierkegaard, “At a Graveside,” 86.
36) Ibid., 89.
37) Ibid., 91.
38) Ibid., 93.
39) Ibid., 91.
우리의 문화와 사회 시스템 은 바로 이 불확실성을 통제하고 예측 가능한 것으로 만들려는 시도 그 자체이지만, 죽음은 이 모든 시도를 근원적으로 좌절시킨다.
마지막으로 죽음은 설명 불가능성을 지닌다.
죽음은 인간 지식의 한계 때문에 설명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어떤 해명이나 의미도 제공하지 않는 사건이기 때문에 그렇다. 키에르케 고르는 죽음을 “낫에 몸을 기대어 있는 창백하고 음침한 수확자”로 묘사 하며, 만일 우리가 죽음에게 “자신을 설명하라”고 요청해도 그는 “당신이 자신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말을 걸었다는 것조차 알아채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40)
베커의 관점에서 보면, 인류의 종교와 신화, 세계관은 모두 죽음이라는 가장 큰 미스터리를 설명하려는 거대한 서사들이다.
그것들 은 삶의 의미와 사후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제공함으로써 죽음의 침묵을 견딜 수 있게 해 준다.
그러나 키에르케고르는 죽음 자체가 이 모든 서사 만들기를 근원적으로 차단하는 완전한 침묵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죽음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기 때문이다.”41)
이유와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의 모든 문화적, 종교적, 철학적 노력은 결국 죽음의 침묵 앞에서 일방적인 외침으로 끝날 뿐이다.
이러한 죽음의 결정성, 정의 불가능성 그리고 설명 불가능성은 인간 에게 근원적 혼란과 현기증을 던진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이 절대적 이고 불가해한 죽음을 마주할 수 있는가?
키에르케고르는 진지함이라는 태도를 제시한다.
그러나 여기서의 진지함은 죽음을 또 하나의 정의로 환원시키는 시도가 아니라 죽음이라는 근원적 현상을 자기 자신, 즉 ‘나’ 에게 적용하여 자기화(appropriation)하는 과정이다.42)
40) Ibid., 96.
41) Ibid., 96.
42) Adam Buben, “Heidegger’s Reception of Kierkegaard: the Existential Philosophy of Death,” British Journal for the History of Philosophy Vol. 21 (2013): 974.
“죽음은 실재적 인 것이 아니며, 사람이 죽은 그 순간에는 진지해지기에는 이미 너무 늦기 때문이다.”43)
43) Kierkegaard, “At a Graveside,” 74.
진지함은 죽음 자체에 있지 않고, 내가 살아 있는 지금 이 죽음의 현실을 자기 삶에 적용하고, 죽음의 끝 앞에서 인위적 정의, 설명, 농담을 내려놓으며, 존재의 본질을 깊이 숙고하는 내면의 태도에 서 비롯된다.
여기서 본 연구자는 키에르케고르의 통찰이 현대 인간에게 주는 실존적 의미에 깊이 공감한다.
죽음을 살아 있는 한 일상성, 농담 또는 제도적 언어로 희석하는 관행은 오히려 죽음이 지닌 결정적이며 설명 불가능한 진실 그리고 각자의 철저한 고립성을 보이지 않도록 숨긴다.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예외 없이, 언제든,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들이 닥치며, 그 앞에서 우리는 고독하고, 오직 자신의 내면으로만 응답할 수 있다.
죽음에 대한 키에르케고르의 진지한 사유와 침묵의 엄격함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죽음의 농담, 합리화, 문화적 은폐와 날카롭게 구별 된다.
따라서 그의 통찰을 통해 죽음만이 줄 수 있는 삶의 심연, 말하자면 모든 자기기만을 벗겨내어 삶을 진정으로 엄숙하게 살아가야 할 깊은 근거를 발견하게 된다고 믿는다.
4. 죽음 사유의 변증법
키에르케고르의 “무덤가에서” 담론이 던지는 물음은 단순히 죽음 을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가 아니다.
그에게 핵심은 죽음을 기분으로 느낄 것인가 아니면 진지함으로 사유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다.
그것은 감정의 선택이 아니라 실존의 선택이다.
“무덤가”라는 장소는 단지 슬픔이나 장엄한 분위기의 표상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 존재의 태도를 결정해야 하는 정동적(affect) 시험대다.
여기서 기분(mood)은 죽음을 “느낀다”는 차원에 머무르지만, 진지함은 그 감각을 결단의 자리로 전환시킨다.
키에르케고르는 이 두 차원을 분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기분을 진지함 으로, 농담을 진지함으로 매개하는 변증법적 경로 속에서 독자를 훈련시 킨다.
그의 글쓰기 전략은 언제나 선택을 유예하듯 반복되고, 아이러니를 통해 감정의 중심을 흔들며, 결국 독자로 하여금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를 체감하게 함으로써 삶에 대한 헌신을 강화하도록 고안하였다.”44)
44) Strawser, “Between Mood and Spirit,” 145.
1) ‘기분’에서 ‘진지함’으로의 이행
키에르케고르의 기독교적 저작들 가운데 “무덤가에서”가 수록된 상상된 경우에 대한 세 편의 담화는 성경에 근거하지 않고 ‘상상된 경우’라는 허구적 장치를 도입했다는 점에서 독특한 위상을 차지한다.45)
그는 이 허구적 설정을 통해 독자가 단순히 교리를 수용하는 것을 넘어 특정한 실존적 상황 혹은 공간에 스스로를 대입하고 그 의미를 주체적으 로 사유하도록 이끈다.
이를 위해 “무덤가에서”는 먼저 ‘기억’에 대한 요청으로 시작한다.46)
45) Kirkconnell, “Earnestness or Estheticism,” 63.
46) Kierkegaard, “At a Graveside,” 71-3.
산 자는 죽은 자를 기억할 수 있지만, 죽은 자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이 명백한 비대칭성은 살아있는 자에게 주어진 시간의 긴급성과 책무 를 환기시킨다.
그러나 키에르케고르가 궁극적으로 요청하는 기억은 망자에 대한 추억이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한 개인이 삶의 파편적인 순간들을 꿰뚫는 통일성과 연속성 을 획득하는 길은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기억하고 심화하 는 데에만 있다.47)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상에서 하나님 없이 살아 가는 사람은 곧 자신에게 지루해지며, 이를 거만하게 표현하자면 모든 삶에 지루해진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 있는 사람은, 가장 하찮 은 것조차 무한한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48)
이처럼 하나님에 대한 기억은 삶 전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근원적인 힘이 지만, 문제는 인간이 어떻게 이 망각의 시대를 거슬러 그 근원적인 기억에 이를 수 있는가이다.
키에르케고르는 그 결정적 통로가 바로 “죽음의 실재를 기억하는” 것에 있다고 단언한다.49)
여기서 키에르케고르가 말하는 죽음의 실재를 기억하는 것, 이를테 면 죽음에 대한 사유는 결코 병적인 우울이나 감상적인 슬픔이 아니다.
이를 구체적으로 구분하기 위해 그는 죽음을 대한 인간의 두 가지 태도, 기분과 진지함을 들어 설명한다.
그는 죽음에 대한 피상적 접근, 말하자면 기분의 차원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장송곡을 듣거나 장례식에 참석하며 느끼는 일시적인 엄숙함, 죽음을 떠올리며 느끼는 막연한 슬픔 등은 모두 실존적 변화를 동반하지 않는 미학적 감정에 불과하다.50)
47) Ibid., 72.
48) Ibid., 78.
49) Kirkconnell, “Earnestness or Estheticism,” 64.
키에르케고르에게 기분은 본질적으로 수동적이고 변덕스러우며, 개인을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시킨다.51)
이에 반해 죽음에 대한 진지한 사유는 능동적이고 명확하며, 한 개인의 삶 전체를 재구성하는 힘을 지닌다.
왜냐하면 진지함은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이 아니라 오히 려 죽음을 내적으로 끌어와 사유하고 자기화하여 자신을 고양시키는 것 자체가 진지함이기 때문이다.52)
이를테면 진지함의 핵심은 죽음을 모든 생명은 죽는다는 보편적 사실로서 아는 데 그치지 않고 바로 ‘나’ 자신이, ‘당신’이 죽을 것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절대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이는 데 있다.53)
그것은 언제든 닥칠 수 있으며, 그 순간 자신의 모든 희망과 계획, 욕망이 영구히 단절된다는 냉혹한 명확성을 동반하는 사유이다. 따라서 개인은 죽음에 대한 사유를 자기화해야만 한다.54)
50) 키에르케고르가 경계하는 점은 바로 이러한 기분이 그/그녀를 윤리적 차원으로 인도하기보다 미학적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일이다. 그의 저널 중 한 구절은 이를 잘 보여준다. 초고(Papirer) 중 한 구절은 이 점을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죽음에 대한 담론 속에는 오해된 도약이 있다. 그것은 윤리적 차원에서 미학적 차원으로 의 잘못된 도약이다. ⋯ 우리가 우리의 죽음이 아닌 벗들의 죽음이 가장 고통스럽 다고 말할 때, 바로 그러한 전환이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오직 참된 진지함은 ‘나는’ 죽는다와 심판대 앞에 서야만 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Kierkegaard, Papers and Journals, VI B 120, Law, “Learning to Face Death Earnestly,” 63 재인용.
51) Kierkegaard, “At a Graveside,” 73-75.
52) Ibid., 74, 76.
53) Ibid., 83.
54) Kirkconnell, “Earnestness or Estheticism,” 64.
그 과정은 여러 가지 기만적인 회피 기제를 극복하는 투쟁이다.
예를 들어 어떤 이는 자기 죽음을 생각하며 모든 노동에서의 쉼이나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을 떠올리고, 심지어 인생의 종말을 기꺼이 기대하고 기다리기까지 한다.55)
그러나 키에르케고르에 따르면, 이러한 태도 역시 죽음을 진지 하게 사유하지 않은 것이다.
죽음을 안식이나 탈출구로 여기는 것은, 죽음이 가진 절대적 단절의 성격을 무화시키고 그것을 자신의 욕망에 맞게 각색하려는 미학적 태도에 지나지 않는다.56)
죽음에 대한 사유 속에 단 하나의 추상성, 비개인성, 불분명함이 남아 있는 한, 그것은 여전히 기분의 차원에 머물러 있다.57)
오직 자신의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신의 유한한 집착들이 죽음에 의해 남김없이 끊어질 수밖에 없다는 그 궁극적 허무함을 냉철하게 숙고할 때, 비로소 개인은 진지해질 수 있다.
이러한 진지함은 개인을 미학적 존재 방식과의 근본적인 단절로 이끈다.58)
55) Kierkegaard, “At a Graveside,” 81-82,
56) Law, “Learning to Face Death Earnestly,” 70-71.
57) Strawser, “Between Mood and Spirit,” 152.
58) Kirkconnell, “Earnestness or Estheticism,” 65.
죽음이 유한성의 최종적이고 반박 불가능한 확증으로 인식될 때, 삶의 과제는 마침내 진지하게 제기된다.
이는 결정성에 대한 담화이 기도 하다.
죽음은 삶의 시간을 무한정 유예할 수 없도록 제한함으로써 지금 이 순간의 결단과 행동을 더없이 소중하게 만든다.
키에르케고르는 시간의 가치를 설명하기 위해 상인의 비유를 든다.
사실, 시간 또한 하나의 상품(good)이다. 한 사람이 외적 세계에서 희소성(scarcity)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는 분명 분주해질 것이다. ⋯ 죽음 그 자체가, 임종을 앞둔 자에게는 시간의 희소성을 만들어 낸다. 누구나 들어 본 적이 있지 않은가? 임종을 앞둔 사람이 죽음과 흥정할 때, 하루, 때로는 한 시간조차도 그 가격이 얼마나 치솟는지! 누구나 들어 본 적이 있지 않은가? 죽음이 시간의 가치를 올렸기 때 문에, 하루, 때로는 한 시간이 무한한 가치를 얻게 되었다는 사실을! 죽음은 이런 일을 해낼 수 있다. 그러나 죽음을 진지하게 사유하는 사 람, 진지한 자는, 죽음의 사유만으로도 그와 같은 희소성을 만들어 낼 수 있다 ― 그래서 해(year)와 날(day)은 무한한 가치를 얻게 된다. 그리고 희소성이 있는 시기에는, 상인은 시간을 사용하여 이익을 얻 는다. 그러나 만약 공공의 안전이 위협당할 때, 상인은 자신의 이윤 을 아무렇게나 쌓아두지 않고, 도둑이 침입해 약탈하지 못하도록 자 신의 보물을 지켜본다. 아아, 죽음 또한 한밤중에 들이닥치는 도둑과 같다!59)
59) Kierkegaard, “At a Graveside,” 83-84.
죽음은 시간에 절대적인 희소성을 만들어 내는 가장 확실한 사건이 다.
임종을 앞둔 자에게 하루 혹은 한 시간의 가치가 무한히 치솟듯, 죽음 을 진지하게 사유하는 자는 죽음의 사유만으로도 살아있는 모든 날에 무한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죽음의 확실성을 통해 시간의 유한성을 깨닫는 순간, 모든 순간이 귀중해지며 삶을 허비할 수 없다는 긴박감이 생겨난다.
2) 농담에서 진지함으로 사유
에피쿠로스는 “내가 존재할 때 죽음은 없고, 죽음이 도래할 때 나는 없다”는 유명한 명제로 죽음의 본질을 단순한 소멸로 파악하면서, 죽음 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였다.60)
그의 논리는 언뜻 명쾌해 보이 지만, 키에르케고르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는 죽음이라는 궁극적 사건의 무게를 회피하려는 정교하고 세련된 농담에 불과하다.
우리는 오직 죽음 과 그 결과에 대한 진지한 자각 속에서만 죽음을 죽음으로써 인식할 수 있다. 죽음을 내적인 삶 안에서 받아들여야 할 어떤 것으로 이해할 때, 그것은 결코 삶의 한 과정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사건으로는 파악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철학적 농담이 옳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죽음이 실제로 도래할 때, 그 죽음과 관계를 맺을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역설은 오히려 핵심을 드러낸다.
죽음은 올바로 이해될 때, 인간의 전 생애를 통해 그 내면적 존재를 형성하는 근본적인 힘으로 작용한다.61)
에피쿠로스주의자들 그리고 들을 따르는 현대인들 은 죽음을 무시하거나 최소한 무력화하려 하지만, 이는 마치 인간 자신이 진정 무엇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실마리를 감추고 억압하려 는 시도처럼 보인다.
이러한 억압을 통해 에피쿠로스적 죽음관은 인간이 자기 문화가 정의하는 일상에 길을 잃게 만드는 경향을 조장한다.62)
60) Ibid., 73.
61) Charles Guignon, “Heidegger and Kierkegaard on Death: The Existentiell and the Existential,” in Kierkegaard and Death, eds. Patric Storkes and Adam Buben (Bloomington Indiana: Indiana University Press, 2021), 215.
62) Buben, “Heidegger’s Reception of Kierkegaard,” 982-983.
이런 점에서 리시(Leonardo F. Lisi)가 키에르케고르는 죽음이 존재의 완전한 소멸이라는 형이상학적 사실 자체에는 에피쿠로스와 동의하면서도, 그 사실의 양태(modality), 그것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를 문제 삼았다는 지적은 옳다.63)
에피쿠로스에 관한 키에르케고르의 비판은 죽음을 소멸 로 보는 관점이 아니라 그것을 농담으로 다루는 태도에 있다.
삶과 죽음은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존하는 관계에 있다.64)
키에르케고 르는 “무덤가에서”의 담론에서 영혼 불멸에 의지하지 않고 “죽음 이후에 는 모든 것이 끝난다”65)는 것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으며, 바로 그 때문에 죽음의 절대적 진지함만이 요구된다고 역설한다.
그것은 마치 “나는 존재하고, 죽음 또한 존재한다”라는 엄연한 사실 말이다.66) 키에르케고르가 비판하는 농담의 시대정신은 그의 관점에서 삶의 진지함이라 불리는 것이 얼마나 쉽게 기만으로 전락하는지를 통해 명확 해진다. 그는 “삶의 진지함은 너무도 쉽게 자기기만을 허용한다”고 말한 다.67)
63) Lisi, “Killing Time,” 213.
64) Kierkegaard, “At a Graveside,” 75.
65) Ibid., 74.
66) Buben, “Heidegger’s Reception of Kierkegaard,” 976. 아담 부벤(Adam Buben)에 따르면, 키에르케고르와 하이데거는 플라톤과 기독교 전통(사후 강조)의 토양에 뿌리를 내렸으나, 에피쿠로스적 통찰(사후 세계 부정, 죽음에 대한 무감각화 권 장)에 반응함으로써 실존주의적 죽음 철학이라 명명할 수 있는 독특한 사유 방식 을 제안하였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플라톤적, 에피쿠로스적 접근의 주요 결함을 피하면서 죽음과 공존하는 방식을 규정하는 식이다. Ibid., 968. 67) Kierkegaard, “At a Graveside,” 74.
우리가 삶에서 무언가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라고 할 때, 그것은 종종 사건의 본질에 대한 내면적 응답이 아니라 사회적 역할과 상황이 요구하는 외적인 반응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는 상황의 직접적인 재현 에 가깝다.
가령 수많은 인명 피해를 낳은 대규모 사회적 참사가 발생했다 고 가정해 보자.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고위 공직자는 즉각 현장을 방문하 고, 카메라 앞에서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며 대국민 사과를 발표한 다.
그는 총력 대응을 지시하고, 특별조사위원회를 꾸려 진상을 규명하 며, 제도적 개선을 약속한다.
베커의 시각에서 보면, 이러한 행위는 사회 적 혼돈을 수습하고 죽음의 무의미를 가리기 위한 영웅주의 체계의 작동 이다.
키에르케고르의 관점에서 이는 “삶의 진지함”이 지닌 기만의 전형 이다. 고위 공직자의 행동은 수많은 개인의 삶이 무참히 쓰러져 간 그 비극의 실존적 무게 자체에 대한 응답이 아니다.
그것은 책임자라는 사회 적 역할, 문화적 불멸성 프로젝트의 한 배역에 따라 국민적 분노를 잠재우 고, 상황이 요구하는 바를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것에 가깝다.
그의 진지 함은 죽음의 본질이 아닌, 그것을 둘러싼 사회적 맥락에 대응하는, 문화 적으로 약속된 ‘농담’의 또 다른 형태일 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죽음의 진지함은 삶의 진지함과 근본적으로 구별된다.
키에르케고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진지함은 바로 여기에 있으며, 이것이야말로 죽음의 진지함 을 삶의 진지함과 구별되게 하는 것이다. 삶의 진지함은 너무도 쉽게 자기기만을 허용한다. 누군가가 고난, 고통, 질병, 인정받지 못함, 어 려움, 암담한 전망 속에서 고개를 떨구고 걸어간다고 해서, 그 사람 이 곧바로 진지하다고 결론짓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진지함이란 단순한 직접적 재현이 아니라 고양된 것, 즉 여기서 다시 말하자면 내 면의 존재, 사유, 자기화 그리고 고귀하게 승화된 그것이 바로 진지 함인 것이다.68)
이를테면 “우리는 보통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그것의 전후 맥락을 고려하여 적절히 반응한다고 믿지만, 이러한 태도는 죽음에 있어서는 완전히 잘못된 대응일 뿐 아니라 죽음을 다루는 것 자체가 아니다.”69)
그/그녀가 죽음을 세계 속의 하나의 사건으로 생각하는 순간, 그/그녀는 이미 자신의 죽음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나’의 죽음은 고위 공직자가 대응하는 사회적 참사처럼 관리되거나 수용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무언가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러한 외적인 고려 사항들과 무관하게 오직 ‘나’라는 개인으로서 그 사건과 관계 맺는 것이다.
“그것은 사건을 사회적 관계망 속의 한 요소로 파악하 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오직 한 번만 일어나는 고유하고 단독적인 발생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70)
이런 의미에서의 진지함은 ‘나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 있지 않고, 오히려 그 사건이 ‘나’와의 관계 안에서,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묻는 것이다.
사회가 미리 규정해 놓은 행동 규범은 여기서 무효가 되며, 각 주체는 그 사건의 의미를 마치 처음으 로 마주하듯이 고유하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발견해야만 한다.
이처럼 키에르케고르가 말하는 진지함은 인간이 의지하던 모든 기준이 무너지 고 길을 잃은 듯한 혼란과 철저한 고독 속에서 시작된다.71)
68) Ibid., 74.
69) Ibid., 74-75.
70) Lisi, “Killing time,” 215.
그는 “예를 들어 특정한 고난이 실제적인 것과 같은 방식으로 실제적인 것이 아니 다”72)라고 말하며 진정한 실존의 경험이 사회적 보편성으로 환원될 수 없음을 강조한다.
한 사람의 죽음은 세계 속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 중 하나가 아니라 그 존재에게 있어 세계 전체의 종말이다.
그래서 키에르 케고르는 “나의 죽음 그리고 너의 죽음은 세계 전체의 종말이다”73)라고 단언한다.
죽음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곧 세계의 사라짐을 사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죽음의 진지함은 삶의 진지함과 같은 자기기만과 역할 수행 을 원천적으로 허용하지 않는다.
바로 이 순간 베커가 말한 모든 문화적 방어기제와 불멸성 프로젝트는 그 효력을 잃는다.
죽음의 순간 나는 더 이상 고위 공직자도, 부모도, 시민도 아니다. “수많은 군인을 지휘하거나, 많은 책을 저술하거나, 고위직에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모든 사회 적 역할과 업적은 절대적 소멸 앞에서 무(nothingness)가 된다.74)
죽음은 더 이상 대응할 상황 자체를 없애버리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오해하거 나 기만할 수 없다.
키에르케고르의 말처럼 “세속적이고 지상적인 방식 으로 감각을 채우는 모든 것들은 죽음 속에서 소멸한다.”75)
죽음 앞에서 는 그 어떤 사회적 역할을 연기하거나 상황에 맞춰 대응하는 농담이 불가 능하다. 진정한 진지함은 바로 이 모든 외적 조건이 소멸된 자리에서 시작 되는 “내면의 존재, 사유, 자기화 그리고 고귀하게 승화된 그것”76)이다.
71) Kierkegaard, “At a Graveside,” 75.
72) Ibid., 74.
73) Ibid., 74-75.
74) Ibid., 74.
75) Ibid., 76.
76) Ibid., 74.
5. 교사로서의 죽음
죽음은 인간에게 가장 가혹하지만, 동시에 가장 정직한 교사이다.77)
키에르케고르에게 있어 죽음은 단순한 유기체적 종말이나 슬픔의 대상 이 아니라 인간이 더는 자기기만을 지속할 수 없도록 강제하는 실존적 계기이다.
그는 “무덤가에서” 죽음을 통해 인간이 삶의 본질로 회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죽음은 모든 가면적 자아와 사회적 정체성을 벗겨내고 오직 하나님 앞에 선 단독자로서 인간을 마주하게 만든다.
그는 분명히 말한다: “죽음은 삶의 진지함이다.”78)
여기서 죽음은 단지 심각한 주제가 아니라 삶 자체의 진실성과 무게를 회복하게 만드는 절대적 거울이 된다.
그렇다면 인간은 죽음이라는 교사에게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첫 번째 교훈은 자기기만의 불가능성이다.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이 자신 을 타인 앞에서 꾸미거나 스스로를 속이는 데 익숙하다고 지적한다.
그러 나 죽음 앞에서는 이러한 모든 기만이 무력해진다.
“사람은 타인과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있고, 자신이 아닌 다른 무언가라고 스스로를 착각하게 만들 수 있지만, 죽음은 속일 수 없다.”79)
77) Ibid., 75.
78) Ibid., 95.
79) Ibid., 94.
죽음은 인간 존재의 핵심을 폭로하고 인간을 있는 그대로의 실존으로 되돌려 놓는다. 그것은 인간이 궁극적으로 책임져야 할 유일한 존재, 곧 하나님 앞에서의 단독자로 자신 을 마주하게 만든다
두 번째로 죽음은 인간에게 진지함을 가르친다. 키에르케고르에게 진지함이란 단순히 비장하거나 슬퍼하는 감정이 아니라 자신의 죽음을 자신의 삶 속에 능동적으로 통합하는 실존적 태도이다. 그에 따르면, “진지함이란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고, 그것을 자신의 운명으로 생각하 는 것이며, 그런 다음 죽음이 결코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것이다 ― 네가 존재하고 죽음도 존재하는 것.”80)
진지함은 타인의 죽음을 감상적으로 소비하거나 죽음을 피상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죽음’을 ‘나의 존재’ 속에서 성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키에르케고르는 사람들이 죽음 을 언급하거나 설교하면서도 정작 그 진지함에는 이르지 못하는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말한다. 실로 그것에 대해 설교하기도 한다. 그러나 설교자의 진지함이 고갈되기까지 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죽음에 지루해진다.”81)
이처럼 죽음을 피상적 주제로 전락시키는 문화는 동시에 삶의 본질적 진지함도 상실한다.
진지함은 죽음을 단지 무거운 주제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삶의 중심에 위치시키는 사유의 전환이며 실존 전체를 재구성하 는 삶의 자세다.
세 번째로 죽음은 인간에게 삶을 소급적으로 되돌아보게 하는 힘, 소급성(retroactivity)을 부여한다.82)
80) Ibid., 75.
81) Ibid., 91.
82) Lisi, “Killing time,” 216-217.
키에르케고르는 죽음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죽음을 “자신의 삶 속에 통합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83)
그에 따르면, 죽음의 불확실성자체가 현재의 삶을 날마다 점검하기 때문에, 인간은 죽음이라는 마지막 종착지로부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84)
이러한 소급적 사유는 시간의 끝에서 현재를 비추는 존재론적 반성의 힘이며 진지함의 구체적 인 작동 방식이다.
그 결과, 죽음은 인간을 외부의 평가나 사회적 인정이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책임의 자리로 인도한다.
진지함은 단지 죽음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죽음을 마주한 자로서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묻는 태도이다.
그런 점에서 키에르케고르는 “진지함의 표현은 매일을 마지 막 날처럼 그리고 긴 삶의 첫날처럼 사는 것”85)이라고 말한다.
이는 죽음 을 통한 절망이나 체념이 아니라 오히려 죽음을 통해 다시 삶을 발견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실존적 도약이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 죽음을 생각하 는 것, ⋯ 모든 것이 끝났고 삶과 함께 모든 것을 잃었음을 생각한 다음, 삶 속에서 모든 것을 얻는 것 ― 이것이 진지함”86)
이라고 강조한다.
83) Kierkegaard, “At a Graveside,” 99.
84) Ibid., 100.
85) Ibid., 148.
86) Ibid., 76.
그러므로 궁극적으로 키에르케고르에게 있어 죽음은 절망의 종말 이 아니라 실존의 시작이다. 죽음이 주는 교훈은 인간을 무력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의 삶을 책임지게 만드는 내면의 각성 이다.
진지함을 배운 사람만이 타성에 젖어 삶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실상을 꿰뚫는 시선으로 살아갈 수 있다.
죽음을 존재의 방식으로 삼을 수 있을 때, 인간은 비로소 자기 자신이 될 준비를 마치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죽음은 가장 날카롭고 가장 진실한 스승으로 서 우리 곁에 조용히 자리하게 된다.
III. 나가는 말
본 연구는 전례 없는 팬데믹 현상이 역설적으로 드러낸 현대 사회의 죽음 부정 문화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며, 이에 대한 실존적 대안을 키에르 케고르의 “무덤가에서”를 통해 모색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먼저 죽음 이 지닌 특성, 곧 결정성, 정의 불가능성, 설명 불가능성이자 모든 인간의 필연적 운명이라는 본질적 특성을 규명하였다.
이어서 이러한 죽음의 특성 앞에서 대부분의 인간이 보이는 회피와 기만의 전략, 말하자면 베커 가 지적한 영웅주의 체계와 같은 태도들을 비판하며, 키에르케고르가 제시하는 죽음의 진지함이라는 개념을 분석하였다.
특히 죽음의 사유가 소급성을 통해 현재의 삶을 성찰하게 만드는 강력한 추진력으로 작용하 는 기제임을 고찰함으로써, 죽음 사유가 인간에게 주는 실존적 교훈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논의 통해 키에르케고르의 “무덤가에서”는 단순한 철학적 담론이나 염세주의적 고찰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 삶의 방식을 가르치는 탁월한 실존적 훈련서로 볼 수 있다.
현대 사회가 죽음을 위생적으로 격리하고 기술로 극복하려 하며 그 실존적 무게를 끊임없이 지워버리려 한다면, 키에르케고르는 정반대의 길을 제시한다.
그는 우리를 의도적으 로 무덤가로 이끌어, 죽음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자기화 하고 내면화함으로써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음을 역설한다.
이런 점에서 키에르케고르가 말하는 진지함은 죽음이라는 종착지 로부터 현재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소급적 성찰의 힘이다.
이 힘은 그/그녀로 하여금 더 이상 군중 속에 숨어 익명으로 살아갈 수 없게 하고, 회피와 자기기만에서 벗어나 자신의 유한한 실재를 정직하게 마주 보도 록 이끈다.
따라서 이 덴마크 철학자가 제시하는 진지한 사람은 비범한 영웅이 아니다.
그는 죽음의 사유를 통해 교만이 아닌 겸손을 배우고, 평범한 일상에서 자신의 자리를 성실히 지키는 사람이다.
죽음을 망각한 삶이 방향을 잃은 채 가벼운 유희에 머물 위험이 있다면, 죽음을 내면화한 삶은 유한성 속에서 매 순간의 무게와 충만함을 발견하는 힘을 얻는다.
“무덤가”에 서는 행위는 염세주의로의 추락이 아닌 죽음이라는 절대적 한계를 통해 삶의 가치를 긍정하는 변증법적 도약이다.
이는 성숙한 신앙 으로 나아가는 여정의 시작점이며, 포스트-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우 리에게 실존적 공허를 넘어설 귀중한 신학적, 철학적 통찰을 제공한다.
죽음을 정직하게 사유하는 그 순간, 우리는 비로소 삶을 얻는다.
흥미롭게도, 키에르케고르의 설명에 따르면, 죽음에 대한 진지한 사유는 오히려 위로와 힘을 줄 수 있다.
그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유기체로 서의 유한성 그리고 그와 함께 오는 위험을 삶의 불가피한 일부로 받아들 이도록 가르친다.
동시에 죽음에 대한 진지한 사유는 삶을 영원히 붙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어진 것을 허망하게 낭비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일깨운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사유는 키에르 케고르가 말한 “하나님 앞에서의 단독자”의 자리로 우리를 부른다. 죽음 앞에서 인간은 더 이상 군중 속의 한 명이 아니라 절대자 앞에 홀로 선 자기 자신이 된다.
그곳에서만 참된 진지함이 가능하며, 그 진지함은 단순히 초연한 태도나 기분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스스로 책임 지는 실존적 결단으로 변모한다.
그런 점에서 죽음에 관한 사유는 “살아 가는 법”을 배우는 실존의 훈련이다.
그러한 진지함은 불안한 시대일수 록 더욱 필요하며, 어떤 이들에게는 그 교훈을 더 깊이 받아들이게 만들 수도 있다.
반면 그것은 누구에게도 쉬이 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한 번 “배웠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소급해서 되새기고 길러야 하는 덕목이다.
“지금, 바로 여기서” 바로 그 진지함을 다시 훈련해 야 할 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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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초록
죽음에 관한 진지함― 키에르케고르를 중심으로 코로나19 팬데믹은 인간의 일상과 세계관을 근본적으로 뒤흔들며 죽음 이 우리 삶과 밀접한 보편적 현실임을 각인시켰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죽음이 일상에 침투한 이 시기, 현대 사회는 오히려 죽음을 더욱 부정하 고 기술적, 의학적 관리의 대상으로 소외시켰다. 본 논문은 이러한 죽음 부정의 시대적 현상을 문제의식으로 삼아, 쇠렌 키에르케고르의 『상상 된 경우들을 위한 세 편의 담론』 중 “무덤가에서”가 제시하는 죽음에 관 한 진지함 개념에 주목한다. 키에르케고르에게 죽음은 단순한 생물학적 소멸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로 서도록 이끄는 실존적 성찰의 계기이자 영적 훈련이다. 본 연구는 어니스트 베커의 죽음 부정 진단을 통해 현대 사회의 문제를 조망하고, 이어 키에르케고르의 죽음의 진지 함이 어떻게 죽음을 회피하는 현대인의 태도에 전환을 가져오는지 탐구 한다. 이를 통해 삶의 연장과 기술 낙관주의에 갇힌 현대 문화가 놓치고 있는 실존적 가치를 비판적으로 드러내고, 죽음을 진지하게 사유함으로 써 오히려 삶의 충만성과 진정성이 회복될 수 있음을 제시한다.
주제어 ‖ 쇠렌 키에르케고르, 죽음-부정, 죽음의 진지함, 단독자, 소급성
Abstract
Earnestness concerning Death: focusing on Kierkegaard
Kim, Okjoo(Ph.D. Professor Baird University College, Soongsil University Seoul, Korea)
The COVID-19 pandemic has fundamentally reshaped everyday life and human perspectives, confronting society with the reality that death is a universal and immediate aspect of existence. Paradoxically, despite the heightened visibility of death during the pandemic, con temporary society has reinforced its culture of death-denial, treating death as a hygienic, medicalized failure to be concealed and avoided. This study addresses this cultural phenomenon by examining Søren Kierkegaard’s concept of “earnestness concerning death” presented in “At a Graveside”, one of the discourses in Three Discourses on Imagined Occasions. For Kierkegaard, death is not merely a biological end but a spiritual and existential practice that enables the individual to stand as a single individual before God. Drawing first on ErnestBecker’s critique of modern death-denial, this paper explores how Kierkegaard’s notion of earnestness invites a transformative stance toward death that counters avoidance and detachment. It ultimately argues that contemporary culture, fixated on prolonging life through technological optimism, neglects the profound existential value that emerges from a sincere contemplation of death. By recovering this earnest reflection, the fullness and authenticity of life may be restored.
Keywords ‖ Søren Kierkegaard, Death-Denial, Earnestness of Death, Single Individual, Retroactivity
투고접수일: 2025년 11월 11일 ∙ 심사(수정)일: 2025년 11월 19일 ∙ 게재확정일: 2025년 12월 04일
한국조직신학논총 제81집 129-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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