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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찬송가를 통해 본 크리스천 헤도니즘(Christian Hedonism): 니체의 현대음악사상과의 비교고찰/서나영( 미드웨스턴 침례신학大)

 

Ⅰ. 서론: 연구 주제와 한계

 

크리스천의 기쁨은 찬송으로 나타난다. 찬송가(21세기 찬송가, 통합 찬송 가)는 믿음의 선조들의 초대교회 이단과 싸우기 위해 만들었던 노래부터 시작해 역사를 지나며 투철하게 지켜온 신앙고백으로 ‘크리스천의 삶과 그 본질’을 나타낸다.

즉 그들이 즐거워 노래 부르는 이유는 고난과 투쟁 속에 찾은 하나님과의 동행과 그로 인한 친밀함이다.

따라서 찬송가 속 에 나타난 크리스천의 삶의 본질은 진정한 희락의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 을 돌리는 일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크리스천은 어떤 찬송을 부르고 있는가?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추구해야 하는 기쁨과 행복을 잘못 이해하고 있지는 않은가?

신나는 비트에 오락적인 요소를 가미해 춤을 출 수 있는 것이 크리스천이 즐겨야 하는 음악인가?

성경적 희락을 자세 히 들여다 볼 마음과 갈망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닐까?

기쁘고 행복한 삶 을 찾아 헤매는 현대인들의 삶에는 보이지 않게 깊이 침투한 현대사상들 이 있으며, 크리스천의 삶에도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찬송가는 한국교회의 토대가 되는 역사적 문헌으로, 지금까지 예배, 신학, 교육, 경건생활의 도구로 연구되어져 왔다.

그러나 찬송가의 중요 성과 가치에도 불구하고 현대음악의 화려함에 가려져 좀처럼 그 중요성 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본 연구는 찬송가에 숨 겨진 새로운 가치를 드러내고 재조명하고자 한다.

찬송가는 시대적으로 유행하는 현대 음악사조를 이길 크리스천의 희락의 본질을 보여주며, 생 명력 넘치는 기쁨의 삶으로의 초대이며 신앙의 실체를 나타낸다.

이를 위해 ‘크리스천 헤도니즘(Christian Hedonism, 기독교 희락주의)’1 이라는 현대 신학적 용어를 채택해, 찬송가가 이 가치를 가장 잘 드러내 줄 통로라는 것을 말할 것이다.2

먼저 연구의 시대적이며 학문적 배경을 통해 연구의 당위성을 밝힐 것이며, 특히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Nietzche)3의 음악사상과 영적으로 침체된 현재 한국교회와 크 리스천의 상황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것이다.

 

    1 크리스천 헤도니즘(Christian Hedonism; 기독교 쾌락주의/희락주의)이라는 용어는 미국 의 저명한 설교가이자 신학자인 존 파이퍼(John Piper)가 주로 사용했다. 본 연구에서는 ‘기독 교 희락주의’라는 번역된 용어 대신 원문 그대로 ‘크리스천 헤도니즘’이라고 사용할 것이다. 쾌락이라는 단어에 불편함을 느끼는 개신교 전통에 맞서, 그는 설교와 그의 저서를 통해 “기 독교 희락주의는 우리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행복(궁극적으로는 하나 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이고 궁극적으로 그것이 우리에게 가장 큰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 라고 선포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가장 즐겁고 만족스러운 상태이며, 이 상태에 있는 우리를 통해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가장 영화롭게 된다는 것이다. 존 파이퍼, 하나님을 기뻐하라(Desiring God: Meditations of a Christian Hedonist) (서울: 생명의 말씀사, 2판 2009), 26.

   2 이 연구의 추가적 목적은 존 파이퍼가 주장한 크리스천 헤도니즘에 대한 이론을 크 리스천의 찬송의 본질적 의미를 파악함으로 인해 확장 및 강화함에 있다.

  3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che, 1844-1900)는 근대 독일철학자로 무신론 적 실존주의를 확립했다. 그가 주장한 주요 철학적 사상에는 ‘신은 죽었다,’ ‘힘에의 의지,’ ‘위 버멘쉬,’ ‘영원회귀,’ ‘운명을 사랑하라’ 등이 있으며 포스트모더니즘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쳐 현대 대륙철학의 근간을 마련했다. 그의 삶과 관련한 니체의 생애는 다음 책을 참고하라. 수 프리도, 니체의 삶, 박선영 역 (서울: 비잉, 2020). 

 

 

이어서 연구의 주요 목적 인 ‘크리스천 헤도니즘’의 정의와 의미를 규명함으로 찬송가가 함의한 기 독교 희락주의의 본질과 그 목적을 찾아갈 것이다.

본 연구에는 지면으로 인한 한계들이 존재한다.

현대 음악 사조의 뿌리와 현상을 다 자세히 다루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니체의 광대한 사상을 모두 다 자세히 다루지는 못한다. 영적 침체와 음악의 영 향에 대한 심리와 감정에 문제는 선택된 학자들의 조언을 중심으로 이어 갈 것이다.

찬송가는 현재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한국 21세기 찬송가 를 주로 다룰 것이며, 육백여곡에 달하는 찬송들의 작사 작곡의 분석에 대한 지면의 한계로 특징을 규명할 수 있는 선택된 곡들과 작사 작곡자 를 다룬다.

 

 

Ⅱ. 연구 배경과 문제제기: 음악과 영적 침체

 

본 장에서는 크게 다음 세 영역의 현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문제를 제기 한다:

 (1) 무신론 위에 세워진 강력한 니체의 실존적 음악사상,

 (2) 기독 교 내의 찬송가의 쇠퇴현상, 그리고

 (3) 이 시대 한국교회의 과제인 영적 침체의 상황이다.

이 세 배경은 각자 다른 영역의 문제제기 같지만 본질 의 문제는 서로 이어져 있다.

그것은 바로 ‘음악과 깊이 관련된 깊은 영 적 침체 현상’이다.

성경은 창세기 4장 21절부터 전체에 걸쳐 음악의 중요성에 대해 언 급하고 있다.

시편은 예배를 위해 불려지는 노래로 되어 있으며, 그 외에 음악이 가진 선한 목적들을 가르친다.

사울 왕이 번민할 때 다윗의 연주 로 인해 영적으로 회복될 수 있음을 대한 암시하고(사무엘상 16:14-17, 23),4 마음의 기쁨을 얻을 수 있으며(창 31:27; 전 2:8, 10; 습 3:17; 엡 5:19),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찬양의 표현으로(대상 16:4-6; 느 12:27; 시 28:7; 33:2; 57:7, 9; 71:22; 92:1-3; 95:2, 108:1-3; 147:7; 150:3-5) 하나님과 의 관계가 더 가까워지는 통로로 표현된다.

반대로 음악은 술취함과 방 탕한 삶과 연관되기도 하며(사 24:7-9), 요용되어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통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5

 

     4 하재송, “사무엘상 16:14-23의 사례와 음악치료에 대한 개혁주의적 고찰”, 「성경과 신 학」 98 (2021): 139-172, 65. 그는 “첫째, 음악치료는 음악의 힘이나 영향보다 하나님의 주권적 인 역사(役事)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이다. 둘째, 음악치료는 하나님의 의도를 나타내기 위 한 하나의 수단이다. 셋째, 음악치료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넷째, 음악치료는 인간의 질병 에 대한 근본적인 치료방법이 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5 자세한 내용은 필자의 다음 논문을 참고하라. 서나영. “신앙과 예술: 기독교 예술에 관한 성경적 이해”, 「신앙과 학문」 23(4) 2018: 63-98. 64.

 

현대 사회를 하나님을 아는 것에 둔감하게 만들고 크리스천을 영적 으로 침체하게 만드는 도구로서의 음악의 힘은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

고대 철학자들은 음악이 인간 영혼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듯이, 음악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또한 무겁다는 것을 지적했다.

플라톤(Plato)은 “개인 이나 사회의 영적 온도를 측정하려면 음악에 주목해야 한다”라고 주장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 이유를 알기도 전에,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음악 교육을 받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6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역시 음악에 대해 긍정적인 견해를 가졌던 소크라테스(Socrates)의 말에 주목했는데,

“어떤 음악적 혁신도 국가 전체에 큰 위험을 초래하며 금지 되어야 한다… 음악 양식이 변하면 국가의 기본법도 항상 함께 변한다” 라며 음악의 힘에 대해 무겁게 경고한 바 있다.7

성경과 주요 철학자들의 통찰은 오늘날에도 적용된다.

특히 10대와 20대의 젊은 층은 유튜브, 멜론, 애플뮤직 같은 음악 스트리밍앱(music streaming app)이 그들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것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들에게 음악은 자신들의 가치를 전달하는 주요 수단이기 때문이 다.

음악신학자 제레미 벡비(Jeremy Begbie)는 “음악은 어디에나 있을 뿐 만 아니라 강력하다.

분위기를 조성하고, 기억과 이미지를 불러일으키고,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고, 심지어 우리 중 가장 음치인 사람들에게도 표 현의 출구를 제공한다”8고 말하며 음악의 힘에 대해 간과하지 말 것을 경고한다.

 

     6 Plato, The Republic of Plato, trans. Benjamin Jowett (Oxford, UK: Clarendon Press, 1888), 88.

     7 Aristotle, The Politics, trans. T. A. Sinclair, rev. T. J. Saunders (London, UK: Penguin, 1981), 466.

     8 Jeremy S. Begbie, Resounding Truth: Christian Wisdom in the World of Music (Engaging Culture), ed. Robert K. Johnsom (NY: Baker Academic, 2007), back cover. 

 

따라서 이 장은 ‘찬송가를 통해 본 크리스천 헤도니즘’ 고찰을 위해, 음악으로 인한 현 시대의 영적 침체의 원인과 배경을 정리하고 문 제를 인식한다.

 

1. 니체의 현대음악사상에 대항하여

 

니체가 현대음악에 끼친 영향은 음악 이상의 것이다.

니체는 서구 전통 형이상학을 뒤집고 신 없이 새롭고 강력한 사유체계를 제공했는데, 그 중심에 처음부터 끝까지 음악이 있었다.9

 

    9 임건태, “음악을 하는 가운데 삶을 긍정하기,” 니체의 미학과 예술철학(경기: 북코 리아, 2017): 103-136, 105. 임건태는 “이러한 사실은 니체의 처녀작이자 핵심적인 사상을 담고 있는 비극의 탄생의 원래 부제가 ‘음악정신으로부터(aus dem Geiste der Musik)비극의 탄생’ 이라는 점이로부터 볼 때도 분명하다”고 확신한다.

 

따라서 니체는 현재까지고 음악과 예술 뿐 아니라 현대를 지배하는 사상체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니체는 스스로 작곡을 하며 많은 작품을 남겨놓기도 했고, 아르투 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의 “음악이란 사물의 본질을 반영하는 최고의 직접적 매체”라고 보는 음악관에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바그너 와 그의 아내 코지마(리스트의 딸)와 깊이 교류해 예술을 통해 근대문명 의 병리현상을 극복하고자 자신만의 독특한 사유를 펼쳐나간 인물이다.10

먼저 직접적으로 현대음악 장르나 스타일에 끼친 영향은 강력하다.11

데이비드 대처(David S. Thatcher)의 연구에 따르면, “약 219명의 작곡가들 이 420개의 작품에서 니체의 텍스트나 시에 음악을 붙여 작곡을 하거나 그의 음악이념 혹은 예술정신에 영향을 받으며 작곡”했다고 한다.12

예를 들어 리처드 바그너(Richard Wagner)의 조카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Richard Strauss)의 경우니체의 글들에 큰 영향을 받아 니체의 저작 제목 을 그대로 음악작품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 op. 30, 1896>를 작곡했다.13

그의 음악은 후에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감독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2001: A Space Odyssey, 1968)> 에 주제음악으로 채택됨으로써 최근에 니체와 슈트라우스의 관계 는 다시 한 번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14

 

  10 프리도, 니체의 삶, 13장.

  11 김정현, “니체 철학의 해석들,” 니체의 미학과 예술철학(경기: 북코리아, 2017): 207-240, 213.

  12 David. S. Thatcher, “Musical Settings of Nietzches Texts: An Annotated Bibliography(I),” in Nietzche Studien 4(1975), 284-323; “Musical Settings of Nietzches Texts: An Annotated Bibliography(II),” in Nietzche Studien 5(1976), 355-383; “Musical Settings of Nietzches Texts: An Annotated Bibliography(III),” in Nietzche Studien 15(1986), 440-452. 김정현, “니체 철학의 해석 들,” 105.

   13 니체는 “종교적, 과학적 단계를 거처 극복인(Übermensch)의 이상에 도달하는 인류의 다양한 발달단계를 그 기원으로부터 시작하여 음악으로 그리고자 했는데, 이때 니체의 극복인 사상이 그의 관심을 끌었으며, 니체의 주저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그 실증적 사례를 찾았던 것”이다. 김정현, “니체 철학의 해석들,” 213-14. Thatcher, “Musical Settings of Nietzches Texts: An Annotated Bibliography(II),” 367.

   14 Thatcher, “Musical Settings of Nietzches Texts: An Annotated Bibliography(II),” 380.

 

최근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100’에서 1위를 기록한 한국가서 지드래곤의 앨범 이름이 ‘위버멘쉬’(Übermensch, ‘초인’ 또는 ‘극복인’이라는 뜻으로 니체사상의 핵 심용어)’인 것을 볼 때, 니체가 끼친 현대음악에의 영향력은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니체 학자들은 음악에서의 표현주의, 12음기법, 신음악이 니체로부터 직접적으로 영향받은 것이라고 평가하며, 바그너와 아르놀트 쇤베르크 (Arnold Franz Walter Schönberg),15 에두아르트 한슬리크(Eduard Hanslick) 와 같은 작곡가들과의 연관성을 연구하고 불협화음의 철학적 의미를 심 도 있게 연구해왔다.16

이러한 음악적 사유는 그의 철학적 사유와 다르지 않았는데, 즉, 니체는 그의 사유가 곧 음악적 사유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음악에 기초한 사상을 펼쳤다.17

니체가 말하고 있는 ‘음악’은 우리가 생 각하는 보편적인 음악의 개념보다 훨씬 더 심오하고 인간의 삶을 포괄하 는 총체적 개념인 것이다.18

니체의 방대한 사상 중 중요한 핵심을 정리해보자면, 기독교가 말하 는 진리가 아닌 “음악을 함으로 긍정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19

그는 “음 악이 없다면, 삶은 오류일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20

 

    15 무조음악(Atonale Musik)을 창시한 쇤베르크 역시 니체와 친한 거리에 있었다. 쇤베 르크와 니체의 관계는 다음 논문을 참고하라. 홍사현, “니체의 음악적 사유와 현대성,” 니체 연구제 10집 (한국니체학회, 2006. 가을), 69-104.

    16 김정현은 니체 현대철학의 해석 연구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맺는다. “현대예술에 대한 니체의 영항은 지대한 것이었다. 미술에서의 유겐트스틸, 다다이즘, 큐비증, 미래주의, 표 현주의, 초현실주의, 플럭서스운동, 그리고 무용에서의 표현주의, 포스트모던 무용 등 현대의 음악, 미술, 무용의 영역은 직간접적으로 니체의 미학이나 사상의 영향을 받았고, 그 정신적 모태 속에서 태어났다. 니체 사상의 자양분을 흡수하며 현대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예술세계를 구축하거나 작품으로 표현해 냈고, 이를 통해 시대와 대면하기도 하고 현대 문명을 찬양하거 나 비판하는 작업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김정현, “니체 철학의 해석들,” 236-37. 홍사현, “니체 의 음악적 사유와 현대성” 참조.

    17 “니체에서 음악과 삶의 동근원성(Gleichursprünglichkeit)”에 대해 임건태의 논문을 참 고하라. 임건태, “음악을 하는 가운데 삶을 긍정하기,” 108. 18 니체의 음악적 입장을 간결하게 정리한 다음 논문을 참고하라. Kathleen Marie Higgins, “Nietzsche on Music” Journal of the History of Ideas 47(4) 1986: 663-672. 임건태, “음악 을 하는 가운데 삶을 긍정하기,” 108.

   19 임건태, “음악을 하는 가운데 삶을 긍정하기,” 117-19.

   20 프레드리히 니체, 우상의 황혼, 박찬국 역 (서울: 아카넷, 2015), 11-26; F. Nietzsche, Götzen-Dämmerung. Sprüche und Pfeile 33, KSA 6, 64.

 

그는 음악 관을 이해하려면 쇼펜하우어와 바그너와의 관계 속에서 발전한 그의 사상 변화를 관찰해야 한다. 특히 음악관에 관해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많 이 받았는데, 쇼펜하우어는 음악을 표상되거나 모사될 수 있는 ‘의지’로 보았다.21

쇼펜하우어는 베토벤을 비롯한 대가들의 음악은 의지의 직접적 모사로 간주될 수 있다고 말하며, “우리는 세계를 구체화된 음악으로 또 한 구체화된 의지로 칭할 수 있다.”고 말한다.22

니체는 그의 관점에서 더 나아가 음악의 기원이 의지보다 먼저인 근원적인 상태에 있다고 믿었 으며, 그것은 그리스 신화의 비극적, 즉 ‘디오니소스적’ 상태라고 표현했 다.23

그리고 그 디오니소스적 상태가 나타나는 표상이 소크라테스의 아 폴론적 언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디오니소스적인 음악은 그 어떤 아폴 론적 서사보다 우선하며 절대로 어떤 메시지의 수단이 될 수 없다고 믿 었다. 그의 이러한 생각은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Tristan und Isolde)>에서 완벽하게 재현한다고 확신했다.24

  첫 번째 이유는 바그너의 작품이 ‘신화’를 소재로 했기 때문이다.

바그너는 신화와 음악의 공속성 에 대해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이 이를 잘 나타내 준다고 믿 었다.25

 

    21 쇼펜하우어는 칸트의 ‘물자체’와 ‘현상’을 그대로 받아들여 ‘의지’와 ‘표상’의 세계로 불러 구별한다. 니체는 이것을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으로 수용한다. “아폴론적 인 것의 ‘개체화의 원리’와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개체화 파괴의 원리’는 쇼펜하우어의 개념 을 차용한 것이다.” 니체가 쇼펜하우어 철학에서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은 것은 단연코 쇼펜하 우어의 음악에 대한 생각이다. 다음 논문을 참고하라. 정낙림, “예술 생리학과 미래 예술,” 니 체의 미학과 예술철학(경기: 북코리아, 2017): 171-206, 184.

   22 웨인 D. 보먼, 음악철학, 서원주 역 (서울: 까치글방, 2011), 175.

   23 니체의 말대로 비극이 근원적이며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아폴론적인 형상화라면, 디 오니소스적인 것과 상응하는 예술은 음악이다. 니체는 그의 저서 비극의 탄생24절에서 “자 신의 예술가 형이상학을 대변하는 핵심 명제인 ‘미적 현상으로서 세계의 정당화’란 세계 자체 를 제외하고는 오직 음악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Richard Schacht, “Nietzsche, Music, Truth, Value, and Life,” International Studies in Philosophy 35(3), 2003, 141-42.

    24 Tom Baumeister, “Stationen von Nietzches Wagnerrezeption unt Wagnerkritik(니체의 바 그너 수용과 비판의 단계),” in Nietzche Studien, Bd. 16(1987), 289. 정낙림, “예술 생리학과 미 래 예술,” 184에서 재인용.

    25 정낙림, “예술 생리학과 미래 예술,” 185.

 

  두 번째 이유는 ‘음악이 모든 서사를 이끄는 주인공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이유는 오페라에 주로 나타난 ‘불협화음’ 때문 이었다.

그는 “비극적 신화가 산출하는 쾌락은 음악에서 불협화음에 대 해 느끼는 즐거움과 같은 고향에서 유래한다”26고 말하며, 이 불협화음으 로 인해 디오니소스적 지혜를 청중에게 전달한다고 믿었다.

즉, 삶이 아 무리 고단하고 슬퍼도 “파괴할 수 없이 강력하며 즐거운”27 것이라는 감 정을 전달한다는 것이다.

후에 바그너 후기 작품 <파르치팔(Parsifal)>28을 통해서 바그너의 음 악이 디오니소스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기독교의 구원이 주제인 이 오 페라는 “연극이 목적이고, 음악은 언제나 수단일 뿐”29이라고 여기고, 그 의 음악이 몰락하고 쇠퇴하는 삶을 갈망하게 되는 전형적인 ‘데카당 (dekadent)’한 음악이라고 비판한다.30

니체는 구원의 욕구를 “데카당스에 대한 가장 솔직한 표현 형식이고, 데카당스에 대한 섬세한 상징들과 그 실행 방법에 의해 보인, 데카당스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고 가장 고통스 러운 긍정인 것”31이라고 말했다.

즉 그가 가장 적대시 했던 문제는 기독 교적 진리였다.32

결론적으로 니체에게 중요한 것은 ‘힘에의 의지’에서 나오는 ‘예술적 삶’이었다.

‘힘에의 의지’는 “주인이 되고자 하며 보다 더 크고, 강력하고 자 하는” 즉, “살아 있는 모든 것의 내적 역동성”을 말한다.33

 

    26 F. Nietzsche, Nachlaß, in Sämtliche Werke. Kritische Studienausgabe in 15 Bänden, Berlin/Ne York, G. Colli und M. Montinari(Hg) 1980, 152. 정낙림, “예술 생리학과 미래 예술,” 185에서 재인용.

   27 Nachlaß, in Sämtliche Werke, 152.

   28 오페라 파르치팔은 타락한 삶의 구원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순수한 영혼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며, 즉 기독교적 구원을 주제로 담고 있다.

  29 정낙림, “예술 생리학과 미래 예술,” 187.

   30 데카당은 ‘퇴폐’, ‘쇠락’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프랑스 단어로서, 단어 자체는 16세기 부터 있던 단어이지만, 보통 이 단어를 말할 때는 19세기 프랑스에서 시작한 문예사조를 가리 키는 말로 쓰인다. 이 사조에 속한 프랑스 예술가들은 기괴하고, 인위적이고, 비뚤어지고, 이 국적인 감각과 경험들을 주제로 예술을 했는데, 같은 시대 사람들이 보기에 이러한 예술은 그 사회와 제도가 쇠퇴하는 전조 증상이라고 생각했다. 즉, 사회가 쇠퇴하기 전에 문화가 먼저 쇠퇴하는 증상을 보이는데, 그 증상이 바로 데카당스식 예술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니체에 게 데카당스식 예술은 기독교적 결론을 맺는 예술을 뜻한다. Decadance, Cambridge Dictionary, https://dictionary.cambridge.org/ko/사전/영어/decadence 

   31 정낙림, “예술 생리학과 미래 예술,” 191; Nietzsche, Nachlaß, in Sämtliche Werke. Kritische Studienausgabe, 6:431f.       32 Nietzsche, Nachlaß, 6:11f. 니체는 데카당스를 실존하는 생명의 원리에 반하는 가장 퇴행적인 것이고 생명감과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매우 위험한 것으로 본다. 

    33 니체는 힘에의 의지가 근본적으로 예술적임을 강조하고, 예술 중에서도 특히 음악이 본질임을 주장한다. 정낙림, “예술 생리학과 미래 예술,” 198. 34 정낙림, “예술 생리학과 미래 예술,” 199; Nietzsche, Nachlaß, in Sämtliche Werke. Kritische Studienausgabe, 89:(2)66. 

 

내면의 힘 을 극대화하는 모든 활동 자체를 예술로 보았던 니체에게 예술가란 “자 기 자신을 조형하는 자(der Sich-selbst-Gestaltende)”이다.34

니체의 이러한 사상은 전통적 예술관을 해체했고, 예술의 의미를 뒤집어 놓았으며, ‘삶 이 예술이 될 수 있는’ 현대예술 사상의 근간을 마련했다.

즉, 모든 개인 은 숨어있는 예술 창조의 능력이 있으며, 그것을 깨워야 한다고 믿었다. 외부로부터 정해진 또는 가해지는 가치나 이론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삶의 가치의 주체가 되라’는 말이다. 따라서 그가 추구하는 인간 은 삶을 음악처럼 또 예술처럼 창조하며 사는 사람이 초인이며 극복한자 다.

세상의 주인이 자신이 되어 자신의 방식으로 조형해가는 모든 삶의 과정은 예술창작의 과정이며 ‘예술적 삶’이라는 것이다. 그의 음악에 기반한 사상은 오늘날까지 엄청난 힘을 발휘하고 있다.

각종 문학과 예술 등 미디어와 기업의 자기계발서에서 말하는 자신이 주 인공이 되는 삶은 앞으로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강력한 기반이 되었다.

무엇보다 강력하게 기독교 사상을 부인하면서, 신 없이 고통을 극복하는 인간상을 섬세하고 강력하게 제공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음악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니체는 자신의 삶을 통해 인간의 고통스런 최악 의 삶조차 기꺼이 긍정할 수 있다는 중요한 계기를 음악 속에서 통찰했 다는 사실 말이다.

이는 크리스천이 놓친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데, 그리스도인이 삶의 갖가지 고통을 이기는 방식에 대한 것이다.

‘과연 오늘의 크리스천들은 어떤 통로나 방식의 즐거움으로 긍정하는 삶을 살 고 있는가,’ ‘크리스천이 추구하는 행복의 본질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 을 던져야 한다.

 

2. 찬송가 쇠퇴 문화에 대항하여

 

찬송은 니체가 말한 전형적인 ‘데카당’한 음악이다.

그러나 한국의 교회 음악자 김은희가 올바로 지적했듯, “인간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영화롭게 해 드리기 위해 창조되었기에 하나님 아닌 다른 대상을 예배하는 것은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일이다.”35

그렇지만 니체가 말한 예술적 삶, 음악으로 긍정하는 삶은 크리스천이 숙고해야 하는 중요한 시사점을 던 진다.

삶으로 살아내는 행복한 음악에 관한 필요성이다. 찬송가는 그리스도인의 총체적 삶을 담고 있다.

제임스 사이드너(James Rawlings Sydnor)는 기독교인들이 찬송가를 부름으로

  “(1) 그들의 느낌과 생각을 표현하고, (2) 다른 이들에게 그들이 믿는 것을 이야기 할 수 있 으며, (3) 더 친밀한 교제 안에 묶여지고, (4) 그들의 신앙 원리에 정통하 게 되고, (5) 매일의 삶에서 유진된다”고 확신한다.36

하재송 또한 그의 논문 “교회음악의 교육적 기능과 찬송가 교육의 필요성”에서 찬송가 교 육의 주요 이유들을 제시했는데, 결국 “기독교적인 삶을 장려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주장했다.37

즉, 크리스천이 가장 아름답게 살 수 있는 예술적 삶은 좋은 찬송을 부르는 삶이다.

그러나 교회음악학자들과 기독교학자들의 찬송가의 가치를 설명하고 설득하려는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찬송가는 전통적 예배시 간에 한 두곡 불러지는 장년세대의 기독교 문화유산처럼 남아있다.

물론 예배와 크리스천의 삶에 찬양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타일과 장르가 바뀌고 젊은 세대가 즐기는 찬양은 유행하는 음악과 많이 닮아 있을 뿐 이다.38

 

    35 김은희, “한국 신학교육에서 찬송 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고찰,” 「성경과 신학」 97 (2021): 143-166, 156.

    36 James Rawlings Sydnor, Hymns & Their Uses (Carol Stream, IL: Agape, 1982), 16-22; 하 재송, “교회음악의 교육적 기능과 찬송가 교육의 필요성,” 「성경과 신학」 75 (2015): 379-405. 391에서 재인용.

    37 하재송, “교회음악의 교육적 기능과 찬송가 교육의 필요성,” 397-98.

    38 필자는 ‘복음과 도시’ 칼럼에서 선교를 위한 음악의 노력의 긍정성과 우려점을 함께 평가했다. 다음은 문제제기의 문단이다. “최근 한국의 한 유명한 워십팀의 ‘게임방 시리즈’ 편 곡을 들었다. 게임 슈퍼마리오와 카트라이더의 음원 또는 BTS의 다이너마이트의 음원 등을 전통찬송의 간주에 넣어, “장로님들 뒷목 잡고 쓰러지는 편곡”이라는 제목으로 유튜브에 올려 수준 높은 공연실력을 보였다. 또 다른 잘 알려진 CCM 그룹의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찬 송가 편곡이 화제다. 기존 찬송가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의 재즈화성의 반주에, 악기팀과 보컬 전원 썬글라스를 끼고, 메인 보컬은 미니스커트에 다리를 꼬고 앉아 다리를 흔들며 부르는 영 상이 ‘세상 힙한 찬양’으로 찬사를 받고 있다.” 서나영, ”진짜 기독교 문화일까? “ 「복음과도시」

 https://www.gospelandcity.org/news/articleView.html?idxno=2050 

 

화려하고 신나는 크리스천 힙합, EDM 음악들은 같은 복음적 가 사, 같은 기독교신앙의 내용을 담고 있지만 찬송가와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그것은 노래를 부르는 즐거움의 본질에 대한 미묘한 차이다.

천상의 찬송을 보여주고, 찬송의 완성과 본질을 보여주는 성경은 요 한계시록이다.

요한계시록에 네 번 등장하는 “할렐루야(19:1,3,4,6)”는 말 그대로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히브리어 단어다.39

미국의 영성신학자 유진 피터슨(Eugene H. Peterson)은 그의 모든 저서에 예술과 음악의 영성을 중 요시 여기고 있는데, 그의 요한계시록 설교집에서 ‘할렐루야’ 찬송의 본 질에 대해 잘 기술하고 있다.

할렐루야를 세계 여러 민족에게 전한 사람들은 매일 고문과 죽음의 위 협을 받던 이들이었습니다.

요한 계시록의 노래를 부른 사람들은 로마 라는 경찰국가의 지독한 괴롭힘 아래 살던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요 한계시록에서 할렐루야 노래를 부른 교회의 구성원은 대부분 가난한 사 람들, 착취당하는 사람들, 감옥에 갇힘 사람들과 순교자들이었습니다.

이것은 이 단어가 표현하는 것에 근본적 진정성이 있음이 분명하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할렐루야를 말하는 것은 소화상태가 좋거나 연수 입이 보장되기 때문이 아닙니다. 건강하거나 안전하기 때문도 아닙니다.

사람들이 이 단어를 외치는 이유는 하나님이 여기 계시고 영원한 선을 위해 삶을 빚으시기 때문입니다.40

 

   39 “성경의 최고의 기쁨의 표현은 ‘할렐루야’다.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의미의 할렐루 야는 시편에 23번, 계시록에 4번 나오며, 그리스도인의 기쁨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 잘 보여준 다.” 서나영, “진짜 기독교 문화일까? ”

  40 유진 피터슨, 요한계시록 설교, 홍종락 역 (서울: 복 있는 사람, 2021), 144-145. 

 

피터슨의 정확하게 지적했듯, 찬송의 선조 다윗을 포함한 성경 속 믿음 의 크리스천들은 그저 신나고 즐거워서 찬양한 것이 아니다. 삶 속에서 실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본질적 즐거움이자 기쁨의 반영이다. 반면 엔터테인먼트, 즉 오락성 기쁨은 다른 종류의 기쁨이다.

물론오락성 놀이가 나쁜 것은 아니다.41

다만 크리스천의 기쁨은 좋고 신날 때 춤추며 노래하는 단면적인 기쁨만을 말하지 않는다. 찬양 중간에 게 임음원을 넣어 신나게 놀며 찬양하는 모습을 볼 때 오락성이 보인다고 우려하는 것은, 크리스천의 고난 속 피어나는 기쁨을 아는 자들의 충고 이며, 찬송의 본질을 축소할 가능성에 대한 경고다.42

 

    41 즐거움과 희락은 기독교의 본질을 설명할 귀중한 가치다.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 의 핵심신학이 담긴 놀이의 신학(Theology of Play)을 참고하라. Jürgen Moltmann, Theology of Play (NY: Harper & Row, 1972).

   42 “할렐루야를 가장 진지하게 외쳤던 다윗과 요한의 상황적 깊이를 이해하는 것은 우 리의 진정성을 점검하기에 적합하다. 기쁠 때 찬양하는 것은 이방인들도 한다. 기독교의 참된 기쁨은 고난 속에서 피어나는 최고의 감정상태다.” 서나영, “진짜 기독교 문화일까?”

 

찬송가학의 광대한 지식과 그 안의 빛나는 가치를 짧은 언어로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1) 음절과 운율이 규칙적이고 (2) 보편성을 지닌 회중적 음악으로서 (3) 가 사의 내용이 총체적인 기독교의 신앙을 다루고 있는 유일한 문헌은 찬송 가다.

무엇보다 찬송가의 대부분의 곡들은 (4) 고난 중에 하나님의 실재 하심에 근거한 즐거움을 노래한 자들의 시들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찬송가의 쇠태 문화에 대한 안일함은 크리스천의 가장 중요한 사명의 본 질을 흐릴 수 있는 중대한 문제로 제기될 수 있다.

 

3. 영적 침체에 대항하여

 

소요리문답이 말해주고 있는 크리스천 인생의 가장 큰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43

그러나 실제로 하나 님을 즐거워하며 기쁜 삶을 사는 크리스천들도 있지만, 낙담하거나 침체 된 상태로 사는 크리스천들이 많다.

마틴 로이드 존스(Martyn Lloyd-Jones) 의 말처럼, “크리스천도 근심하며 슬퍼한다.”44

로이드 존스는 그의 저서 영적 침체(Spiritual Depression)서론에서, 우울하고 절망에 빠져 산다고 해서 크리스천이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45

 

     43 존 파이퍼, 하나님을 기뻐하라, 33. 44 마틴 로이드 존스, 영적 침체, 정상윤 역 (서울: 복있는사람, 2014), 310.

     45 로이드 존스, 영적 침체, 25. 이 책은 로이드 존스의 21편의 설교를 묶은 책으로, 영적 침체라고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상태의 원인을 진단하고 치료의 방법을 제시한다.

 

그는 크리스천이 영적 침 체(우울과 불안 낙담과 낙심된 상태) 속에 지속해서 살아가는 이유에 대 해 추적했는데, 개인의 기질과 뇌파와 몸의 상태와의 관련성을 인정하면 서도 주요 원인은 ‘영적인 세계의 문제’라고 확신한다.46

그는 “영적 침 체의 유일한 한 가지 원인은 결국 우리 영혼의 원수 마귀의 존재”이며 따라서 “궁극적 원인은 불신앙”임을 전제한다.47 로이드 존스의 저서의 가장 강력한 설득력은, ‘그리스도인이 왜 행복 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설명에서 나온다.48

다시 말하면, 무기력하게 살 아도 크리스천이라는 정체성이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왜 크리스천이 우 울한 채로 지내면 안되는가?’에 대한 답이다.

  (1) 그 첫번재 이유는, 선물 같은 이 땅의 삶을 맛보지 못한 채 주님의 옷자락 끝에 머리를 붙들고 겨우 구원을 받는 안타까움 때문이다.49 “삶 속에 우울함이 지속될 때 놓 치는 것은 단순한 가치가 아니라 삶 자체”다.50

  (2) 두 번째 이유는 우울 이 지속되고 있는 상태에서는 얼굴에 드러나고(시 42:5,11), 인류에게 가 장 기쁜 소식인 복음을 전할 수 없게 된다.51

늘 침체되어 보이거나 불행 한 얼굴로 사는데 타인에게 구원의 소망이 보일 리 없다(벧전 3:15).

  (3) 세 번째 이유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지속적으로 친밀해질 수 없기 때문이 다.52

불안하고 불행하며 비참하게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근원적인 이 유는 불신앙이기 때문이고,53 이는 결국 하나님에 대한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믿음이 없는 것이다.

 

     46 로이드 존스, 영적 침체, 23.

     47 로이드 존스, 영적 침체, 31, 42, 62. 로이드 존스에 의하면, 낙담의 원인은 “그리스 도인의 삶을 실제로 살아가는 일과 관련된 문제”다. Ibid., 231. 이들은 “맹인처럼 밝히 보지 못 하는 탓에 불안하고 불행하며 비참하게 사는 그리스도인들”이며,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 지 못하면 결국 행복도 없고 평안도 없고 기쁨도 없다.”

    48 서나영, “우울하고 불안한 당신에게,” 「크리스천투데이」 2025. 02.13. https://www.chris tiantoday.co.kr/news/366511. 

    49 로이드 존스, 영적 침체, 38. 로이드 존스는 이에 대해 세익스피어의 표현을 인용 했는데, “평생을 깊은 물에는 한 번도 나가보지 못하고, 얕은 물에 갇혀 불행하고 비참한 삶을 사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50 서나영, “우울하고 불안한 당신에게.”

    51 로이드 존스, 영적 침체, 81.

    52 로이드 존스, 영적 침체, 42.

   53 로이드 존스, 영적 침체, 31.

 

즉, 침체된 상태의 크리스천은, 복음의 신비와비밀을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부분만을 받아들이거나 크신 하나님을 축소할 가능성이 크다.

결론적으로 크리스천에게 우울과 영적인 침체 현상은 치명적인 병이 다.

시편의 저자 다윗은 침체된 자신을 향해 외쳤다.

 

“내 영혼아 네가 어 찌하여 낙심하여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 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 42:5).”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그로인해 입술에 주신 찬송의 능력은 오늘 날 크리스천이 잡아야 할 가장 중요한 유산 중 하나다.

피터슨은 크리스 천의 모든 삶의 핵심은 찬송으로부터 얻는 기쁨이라는 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다윗이 왕으로서 했던 첫 번째 일은 음악 연주를 통해, 혼돈에 빠진 사울의 정신과 감정에 다시 하나님의 질서를 세우려고 시도하는 것이었 다. 혼돈 가운데 질서를 세우는 일이야말로 왕업의 기초다. 왕업을 하는 이들이 갖는 가장 기본적인 경험은 아마 음악일 것이다. 음악-리듬과 화 음과 조화를 만들어 내는 일-은 모든 일의 핵심이다. 왕업을 행하는 사 람들은 어떤 작업에 종사하든지 휘파람을 불며 일한다.”54

 

      54 유진 피터슨,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이종태 역 (서울:IVP, 1997), 61. 

 

즉, 왕 같은 제사장(벧전 2:9)의 삶을 살아내야 하는 크리스천의 가장 중 요한 자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즐거워하는 것이며, 그 찬송으로 이해 혼돈 한 세상의 질서를 잡아가고 치유하는 일이다. 크리스천에게 영적 침체는 싸워서 이겨야 하며 기쁨으로 찬송을 부르며 끝내야 할 주요 과업이다.

각자마다 고단한 크리스천의 순례의 삶의 그 원대한 이야기들 속에서 하 나님은 찬양받으시는 것을 참으로 기뻐하신다. 

 

Ⅲ. 크리스천 헤도니즘의 의미와 당위성 고찰

 

‘크리스천 헤도니즘’은 직역하면 그 뜻이 ‘기독교 희락주의’ 혹은 ‘기독교 쾌락주의로’로 이 시대의 존경받는 신학자이자 설교자 존 파이퍼(John S. Piper, 1946∼)55가 강력하게 주장하고 발전시킨 용어다.56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며 그의 남은 고난을 채워가는(골1:24) 크리스천이 쾌락 을 우선순위로 추구하는 듯 하는 이 용어는 강력한 인상을 남긴다.57

 

    55 파이퍼는 휘튼대학 학부와 풀러신학교에서 공부했고, 독일 무니히 대학에서 신약신 학 박사학위를 받고 베델 대학에서 6년을 가르쳤다. 1980년부터 지금까지 미네소타 주 미네아 폴리스의 베들레헴 침례교회의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으며 국내에도 잘 알려진 베스트셀러 작 가다. 2009년 3월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지(Time Magazine)는 세계를 지금 변화시티고 있는 10가지 개념들 가운데 세 번째 것으로 ‘새로운 칼빈주의’(new Calvinism)를 소개하면서 파이퍼 를 이 운동의 개척자로 지목했다. Collin Hansen, Young, Restless, Reformed: A Journalist's Journey with the New Calvinist, 조현학 역 신세대 개혁주의 새바람: 현대미국 개혁주의 부활(서울; 부흥과 개혁사, 2010), 32. 박찬호, “존 파이퍼의 ‘기독교 희락주의’: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1번과 관련해서,” 과학과 신학 그리고 영성(서울: 도서출판 대서, 2010): 179-209, 179.

    56 파이퍼는 자신의 크리스천 헤도니즘이 “시편 기자들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며, 예수님 만큼이나 오래된 것이고, 초대 교회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그의 목록은 어거 스틴, 칼빈, 토마스 왓슨(Thomas Watson)같은 청교도들, 조나단 에드워즈, 할스 핫지(Charles Hodge, 1797-1898), 게할더스 보스(Geerhardus Vos, 1862-1949), C. S. 루이스(1898-1963)로 이어 지고 있다. 파이퍼, 하나님을 기뻐할 수 없을 때, 전의우 역 (When I don't Desire God: Fight for Joy) (서울: 기독학생회, 2005), 18-22.

     57 그리스어로 헤도네(hedone)는 쾌락을 뜻한다. 헤도니즘은 고대 기원전 6세기에 등장 한 인도 학파 카르바카(Charvaka)로 시작된 것으로 추적된다. 그는 “천국의 쾌락이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젊은 여성과 어울리고, 좋은 옷과 향수, 화한, 신발을 사용하는 것이다. 바보들은 고행과 단식으로 스스로를 괴롭힌다(The Sarvasiddbanta Samgraba, verses 9-12)”고 말했다. 그로 부터 한 세기 뒤에, 소크라테스의 제자 중 한 사람인 북아프리카 키레네 출신 아리스티포스 (Aristippus)는 ‘쾌락적 이기주의(hedonistic egoism)’라는 윤리학 체계를 내놓았다. 아리스티포스 는 모든 사람이 결과에 대한 걱정 없이 최대한 빨리, 그리고 많이 신체적, 감각적 쾌락을 경험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오랜 시간이 흘러 제러비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을 시 작으로 여러 공리주의자들이 등장해 도덕적 판단과 올바른 행동의 기준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고 주장하면서, 쾌락주의는 다시 한 번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 후 지금까지 다방면으로 쾌락과 행복에 관한 정량적 주관적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쾌락주의의 간략한 역 사와 행복에 관해 가장 잘 정리함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 개념은 다음 저서를 참고하 라. 에디스 홀, 열 번의 산책: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함께하는 행복에 대한 사색, 박세연 역 (서울: 예문아카이브, 2020), 9-10. 

 

그 러나 위에 언급했듯이, 현대사회와 교회와 크리스천이 당면한 문제들은 ‘크리스천 헤도니즘’이라는 용어의 진정성을 가슴에 품을 필요가 있다.

따라서 본 장에서는 이 용어가 가지는 의미를 이해하고, 이를 둘러싼 신 학적 논란을 살펴 당위성을 고찰하고자 한다. 

 

1. 크리스천 헤도니즘이란?

 

1) 크리스천 헤도니즘의 본체: 행복과 기쁨

 

그 자체이신 하나님 세계관 전문학자 제임스 사이어(James W. Sire) 또한 그의 대표 저서 기 독교 세계관과 현대사상의 결론에서 세계관 선택에 중요한 네 가지 기 준을 제시할 때 그 중 ‘주관적 만족’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고 말했다.58

따라서 우리가 왜 하나님 안에서만 최고의 강한 만족감은 느낄 수 있는 지 그 근거가 중요하다. 행복 또는 기쁨(happiness)에 대해 다루고 있는 파이퍼의 저서 하나님의 기쁨 (The Pleasure of God)의 첫 여섯 장은 하 나님의 본성인 기쁨과 행복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다.59

그가 말하려는 것은 “가장 근본적인 진리”로,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성삼위의 교제 가운데 지극히 행복하시다는 사실”이다.60 하나님께서 다른 피조물의 도움이나 지원을 필요로 하지 않으시며 스스로 충족하시는 완전하신 분이라는 사실은 크리스천 헤도니즘의 가장 중요한 출발이다.61

이 행복의 기초는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드리 고 보탤 때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를 기다릴 때 하나님께서 우리 를 기뻐하신다는 소식”이며, 무력한 죄인임에도 아무 힘이 없어도 “말할 수 없이 기쁜 소식이 주권적이고 자족하시며 자유로우신 하나님의 모습 에 확고히 기초한다.”62

 

    58 사이어는 세계관을 선택할 때 ‘겸손한 태도, 실제적 자료의 신빙성, 설명 가능한 이 야기’ 등을 그 기준으로 제시하며 마지막 가장 중요한 ‘주관적 만족’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고 말했다. 제임스 사이어,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사상확대개정 6판, 김헌수 역 (서울: IVP, 2024), 439-441.

    59 책의 나머지 세 장에서는 인간의 마음을 만족시키고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 는 인간의 반응을 다루고 있다. 이 순서는 파이퍼의 크리스천 헤도니즘을 설명하기 위해 중요 한 순서다. 존 파이퍼, 하나님의 기쁨 The Pleasure of God, 이상준 역 (서울:은성출판사, 2004).

   60 그는 “스스로 채우시는 기쁨의 고갈되지 않는 샘에서 흘러나오는 하나님의 자유는 그의 모든 주권적인 일과 우주 창조의 사역과 그의 명성을 퍼뜨리는 일과 그의 백성을 선택하 는 일과 그의 아들을 상하게 하신 일 가운데 흐른다”고 설명한다. 파이퍼, 하나님의 기쁨, 21.

   61 파이퍼, 하나님의 기쁨, 247.

   62 파이퍼, 하나님의 기쁨, 248. 

 

파이퍼는 우리가 왜 하나님에게 가장 큰 만족감 과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지를 이해하게 될 때 믿음이 강해지며, 곧 “우 리가 그에게 가장 만족을 느낄 때, 우리에게서 가장 영광을 받으신다”고 선포한다.63

하나님의 창조와 그 영광에 집중했던 신학자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에 의하면 하나님의 충만함의 본질은 ‘하나님의 행복’이다.

그는 “하나님의 행복은 하나님 자신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말한 다.64

따라서 에드워즈에게는 창조의 주된 신학적 목적이 즐겁고 유쾌한 하나님의 행복이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뜻하며,65

그렇기 때문에 피 조물의 행복 또한 하나님의 행복에 참여하는 것이며, 하나님과 하나님의 행복한 상태가 피조물의 행복의 객관적인 기초가 된다.66

카톨릭 학자인 존 내본(John Navone) 또한 하나님을 행복 그 자체임을 강조한다.

그는 “창조주, 곧 행복 그 자체이신 분은, 진리를 알고 선을 사랑하며 아름다 움을 즐기는 분이심으로, 결과적으로 창조주로부터 온 모든 것들을 알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으며 즐길 수 있다...우리는 모든 것을 알고 사랑하 고 기뻐함으로써 행복 그 자체와 교제할 수 있는 것”67

이라고 확신한다.

 

    63 파이퍼, 하나님의 기쁨, 247.

    64 조나단 에드워즈, 조나단 에드워즈가 본 하나님의 천지창조 목적, 정일오 역 (서 울: 솔로몬, 2003), 227.

    65 Ralph G. Turnbull, Jonathan Edwards, The Preacher (Grand Rapids: Baker, 1958), 77.

    66 Turnbull, Jonathan Edwards, 77.

    67 John S. J. Navone, Toward a Theology of Beauty (Collegeville, MN: Liturgical, 1996), v. 

 

그러므로 자족하시는 행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크리스천 헤도니즘의 출 발이다.

 

2) 하나님의 창조 원리: 행복 전달의 기쁨

 

행복 자체이시며 자신을 즐거워하시는 하나님은 이러한 즐거움을 그의 피조물에게 전달하기를 원하신다. 에드워즈에 의하면, 하나님은 피조물에 게 자신을 전달하시는 분이다.

그는 자신의, 지식, 덕, 거룩하심을 전달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자신의 행복 또는 기쁨의 전달하신다는 것이다.68

 

    68 에드워즈, 조나단 에드워즈가 본 하나님의 천지창조 목적, 227. 

 

에드워즈는 이에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은 영원토록 전달되는 하나님에 대한 증가하는 지식이요, 그분을 행한 증가하는 사랑이요, 그리고 그 분 안에 증가하는 기쁨이라고 생각할 많은 이유들이 있다.

그러한 하나 님의 전달들이 피조물 가운데 증가할수록, 그것은 하나님과 더욱 하나가 될 것이라고 생각되어야 할 것”이라고 설명한다.69

그러므로 ‘행복을 전 달하시고 그의 피조물이 행복하길 원하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즐거워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으로 가장 큰 기쁨을 누리신다 는 크리스천 헤도니즘의 가르침이 성립된다.70

 

    69 에드워즈, 조나단 에드워즈가 본 하나님의 천지창조 목적, 229.

   70 존 파이퍼 & 조나단 에드워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열심, 백금산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03), 125. 

 

3) 피조물로부터의 기쁨의 응답: 웨스트민스트 소요리문답과 하 이델베르트 문답

 

행복을 전달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은 피조물의 반응을 기뻐하신다.71

 

    71 파이퍼는 “하나님을 바라는 소망의 반응은 기도 속에서 말로 표현되며 순종함을 통 해 행동으로 나타난다. 하나님께 소망을 둘 때, 우리는 깊고 지속적인 기쁨의 샘이 되시는 하 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파이퍼, 하나님의 기쁨, 439. 

 

따라 서 크리스천 헤도니즘은 다음의 다섯 가지 전제로 시작한다.

 (1) 행복을 갈망하는 마음은 보편적인 인간의 경험이며 선한 것이지 죄 가 아니다.

 (2) 우리는 그것이 나쁜 충동이라도 된 듯이 행복해지려는 갈망을 부정하거나 저항해서는 안 된다.

도리어 이 갈망을 더욱 강화하 려고 하고 더 깊고 더 오래도록 지속되는 만족을 제공하는 것은 무엇이 든 그것으로 이 갈망을 키워야 한다.

  (3) 가장 깊고 가장 오래도록 지속 되는 행복은 하나님 안에서만 찾을 수 있다. 하나님에게서(from)오는 것 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in) 있다.

  (4)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발견하는 행 복은 그 행복을 다양한 사랑의 방식으로 이웃과 나눌 때 완성된다.

  (5) 우리 자신의 기쁨 추구를 포기하는 한 그만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을 못하게 된다.

이것을 좀 더 긍정적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기쁨의 추구는 모든 경배와 미덕의 필수 요소다. 즉 인간 의 제일 되는 목적은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워함으로써(by)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72

위 다섯 가지 전제 중에 마지막 명제는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1번으 로, 파이퍼는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은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워함으 로써(by)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의 섬세한 해석에 집중한다.

그는 ‘제일 되는 목적’이 단수임을 강조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이 하나의 목적이었지 두 목적이 아니었다”73고 확 신하며, 이 해석이 크리스천 헤도니즘의 핵심이다.74

파이퍼의 해석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첫째 질문의 답과도 다르 지 않다.

그 질문은 “삶과 죽음에서 당신의 유일한 위안은 무엇인가?”인 데, 이에 대해 파이퍼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첫 부분 “사나 죽으나 내 몸과 영혼은 내 것이 아니요 내 신실한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했 다”는 사실이 이미 크리스천의 만족에 대한 갈망을 말해준다고 밝힌다.75

크리스천의 ‘행복’에 대한 갈망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둘째 질문에 서 더 명확히 나타나는데, “당신이 이 위안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거나 죽기 위해서 꼭 알아야 할 것은 얼마나 많은가?”

그러므로 파이퍼가 보 기에 하이델 베르크 요리문답 전체가 행복하게 살고 죽는 법에 관한 답 변이다.76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전체가 이미 만족, 행복, 위안을 향한 관심 아래 놓여 있기 때문이다.77

 

     72 파이퍼, 하나님을 기뻐하라, 33. 박찬호, “존 파이퍼의 ‘기독교 희락주의,’” 182.

     73 파이퍼, 하나님을 기뻐하라, 19.

    74 파이퍼 & 에드워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열심, 16.

    75 파이퍼, 하나님을 기뻐하라, 32.

    76 파이퍼, 하나님을 기뻐하라, 32.

    77 파이퍼, 하나님을 기뻐하라, 31.

전체 129문항으로 이루어져 있는 하이델베르크 요 리문답을 우르시누스(Zacharias Ursinus, 1534-1583) 자신은 3부분으로 나누고 있는데, 이것은 본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자체의 분류이기도 하다. 첫째로, 사람의 비참함을 다루고,   둘째로, 이 비차함으로부터 사람을 구원해 내는 문제를 다루고, 셋째로 감사를 다루고 있다. 자카 리우스 우르시누스, 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 해설, 원광연 역 (고양: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6), 55. 파이퍼가 보기에 “이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전체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 내가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쓰였다는 뜻이다.” 파이퍼, 하나님을 기뻐하 라, 32.

 

파이퍼는 우리가 하나님으로 누리는 즐거움과 그 반응의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하나님의 모든 사역은 그분이 구속하신 백성들의 찬양을 통해 완성된다.

하나님의 행복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탁월하심을 찬양하는 소리를 듣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때 절정에 이른다.

이 찬양은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누리는 기쁨의 완성이기도 하다.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가 드리는 찬양 을 추구하는 것과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을 추구하는 것은 똑 같다.

이는 위대한 복음이다.

이것이 바로 크리스천 헤도니즘의 토대다.78

 

       78 파이퍼, 하나님을 기뻐하라, 62.

 

4) 고난과 역설을 포함하는 크리스천 헤도니즘

 

크리스천 헤도니즘은 기독교적 삶의 기준을 행복이라는 개념으로 축소하 거나 낮추는 것이 아니라 그 개념의 기준을 오히려 불가능해 보일 정도 로 확대하고 높인다.79

파이퍼는 크리스천 헤도니즘을 정립한 후 “오히려 이제는 다루기 쉽고 정해진 의무가 있으며 결심과 의무를 중요시하는 기 독교가 편해 보였고, 진정한 기독교는 불가능해 보였다”고 말하며, “이제 희망은 단 하나, 곧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뿐”이라고 고백한다.80 파이퍼는 그의 용어 크리스천 헤도니즘에서 말하는 행복 또는 쾌락 의 개념의 포괄성에 대해 분명히 밝힌다.

그는 “기쁨(joy), 행복(happiness), 즐거움(delight), 유쾌함(pleasure), 흡족(contentment), 만족(satisfaction), 갈망 (desire), 갈구(longing), 목마름(thirsting), 열정(passion) 등의 단어를 엄격하 게 구분하지 않고 사용할 것”을 말하고 있다.81

 

     79 박찬호, “존 파이퍼의 ‘기독교 희락주의,’” 200.

     80 파이퍼, 하나님을 기뻐할 수 없을 때, 15.

     81 박찬호, “존 파이퍼의 ‘기독교 희락주의,’” 186. 

 

파이퍼는 이 포괄적인 기 쁨에 대한 용어가 “미래가 아닌 현재에 존재하는 것을 누릴 때 경험하는 그 무엇”이며, “갈망에 대한 용어들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미래에 주 어지리라고 소망하는 것에 대해 경험하는 것”이 우리가 가진 일반적인 생각임을 지적하면서 세분화된 구분은 하나님의 말씀에는 적용될 수 없다고 밝힌다.82

예를 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즐거움을 누리는 순간에 도 그 말씀에 대한 더욱 완전한 이해와 누림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파이 퍼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을 때라도, 그 말씀에 대한 갈망은 그것을 즐거워 하는 한 형태다.

말씀을 기억하고 갈구하는 중에 기쁨이 있는 것이다. 그러 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갈망과 기쁨은 분리될 수 없다”83고 말한다.

무엇보다 이 용어의 포괄성은 고난에 대해 깊은 통찰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크리스천 헤도니즘의 본질은 고난의 가치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하게 때문이다.84

골로새서 1장 24절에는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 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고 말씀하며 크리스천의 삶이 고난을 피 할 수 없음을 말해준다.

이에 대해 파이퍼는 “바울의 고난은 그리스도의 고난의 가치에 무언가를 더함으로써가 아니라, 그 고난을 구원을 받아야 할 사람들에게 알림으로써 그리스도의 고난을 완성한다”고 설명하며,

“하 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고난을 통해서 세상에 그리스도의 고난을 알리 기 원하신다”

고 말한다.85

그 이유는 “인간이 사는 최고의 목적은 하나님 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며,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가장 최고로 만족할 때 하나님께서도 우리 안에서 가장 큰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은 다른 어 느 곳에서보다도 고난 중에 더 사실이다”라고 확신한다.86

 

   82 박찬호, “존 파이퍼의 ‘기독교 희락주의,’” 200.

   83 파이퍼에 의하면 “하나님을 향한 갈망과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을 구별하는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영적으로 맛본 우리 같은 유한한 피조물은 항상-영원에서조하-하나님 에 대해 현재 경험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원하리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 주기 때문이다. 하 나님에 대해 누려야 할 것은 끝이 없다. 이것은 거룩한 갈망이 언제나, 영원히 있으리라는 뜻 이다.” 파이퍼, 하나님을 기뻐할 수 없을 때, 35.

  84 파이퍼, 하나님을 기뻐하라, 10장(“고난: 기독교 희락주의의 희생”)

  85 파이퍼, 하나님을 기뻐하라, 352-54.

  86 파이퍼, 하나님을 기뻐하라, 378. 

 

고난과 역설을 포함하는 크리스천 헤도니즘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하나님 중심적 세계관87을 정립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파이퍼는 다 음과 같이 욥의 행복을 예로 든다.

 

  87 존 파이퍼 & 저스틴 체일러, 편집, 하나님 중심적 세계관: 조나단 에드워즈의 유산 A God-Enhanced Vision of All Things, 이용중 역 (서울: 부흥과 개혁사, 2007), 33-43.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그분의 영광을 음미하고 그분의 영 광을 찬양하려면, 크나큰 악을 만나더라도 하나님의 주권 앞에서 흔들 리지 말라. 그분의 책을 붙잡고 성령님의 조명과 겸손과 신뢰를 간구하 라. 그래서 재난의 날이 찾아와도 흔들리지 않도록 이 문제를 해결하라. 나는 이 부록을 통해 모든 독자의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이 더욱 깊어지 고, 또 상실의 날이 찾아올 때 자녀를 다 잃고서도 땅에 엎드려 예배하 면서 ‘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 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고백했던 욥과 같이 되기를 기도한다.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원히 즐거워함으로써(by)그분을 영 화롭게 하는 것이다.88

 

    88 파이퍼, 하나님을 기뻐하라, 492. 

 

즉 진정한 크리스천 헤도니즘은 역설을 포함하며, 고난 중에 하나님과의 친밀함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5) 쾌락의 대상과 목적

 

크리스천의 헤도니즘의 역설은 그 대상과 목적에도 나타난다.

단순히 자 신의 안위와 쾌락을 좆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것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파이퍼는 이 역설적 쾌락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크리스천 헤도니즘은 자의식(self-consciousness)이 기쁨을 잃게 하고 따라 서 예배도 질식시킨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여러분 자신에게 시선을 돌려 자신이 기쁨을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는 순간, 기쁨은 사라지 고 만다.

크리스천 헤도니즘 기쁨의 비밀은 자기망각임(self-forgetfulness) 을 알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그림 감상하는 기쁨을 위해 미술관에 간 다. 하지만 크리스천 헤도니즘은 이렇게 조언한다.

 

여러분의 모든 관점 을 그림에 기울이고, 여러분의 감정을 기울이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여 러분의 모든 경험을 망칠 것이다. 따라서 예배를 드릴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향해서만 전격적으로 향해야 한다.89

 

즉, 파이퍼는 크리스천 헤도니즘이 뜻하는 우리의 갈망이나 행복의 유일 한 대상은 하나님이심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철학적 헤도니즘이 ‘우리가 원하는 것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궁극적인 심 리적 행복을 경험하는 것’이라면, 크리스천의 헤도니즘이 “최종적으로 추 구하는 것은 아름다움 안에서 발견하는 기쁨이 아니라 기쁨 그 자체”인 것이다.90

파이퍼는 그 대상의 오해가 우리가 매우 흔하게 저지르는 실수 임을 지적하며,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가 추구하는 최종적이며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강조한다.91

그는 계속해서 설명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수 안에 두신 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기쁨의 대 상뿐이다. 내가 기쁨을 위한 싸움을 말할 때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 없는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뻐하는 기쁨이다. 내가 행복에 대 한 열망을 말할 때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없는 신체적 심리적 경 험으로서의 행복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수 안에 두신 모든 것에서 누리는 행복이다. 우리가 갈망하든 기뻐하든 간에, 그 경험의 목 적은 하나님이다.92

 

같은 맥락에서, C.S. 루이스도 정확히 크리스천 헤도니즘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내가 관능적 쾌락과 미적 쾌락을 전혀 구분하고 있지 않고 있다는 것을 너도 알고 있을 것이다. 왜 내가 그것을 구분해야 하는가? 선을 긋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며, 또 설사 선을 잘 그었다 해도 그게 무 슨 유익이란 말인가? 이것이 크리스천 헤도니즘라면, 그것은 또한 다소 고된 훈련이다”93

 

    89 파이퍼, 하나님을 기뻐하라, 118.

    90 파이퍼, 하나님을 기뻐할 수 없을 때, 38.

    91 파이퍼, 하나님을 기뻐할 수 없을 때, 38.

    92 파이퍼, 하나님을 기뻐할 수 없을 때, 40. 

   93 C.S. Lewis, Letters to Malcolm: Chiefly on Prayer (New York: Harcourt Brace Jovanovich, 1963), 90. 파이퍼, 하나님을 기뻐하라, 427에서 재인용.

 

즉, 그가 말하는 크리스천 헤도니즘의 목적은 하나님을 기뻐하는 훈련이다.

 

2. 크리스천 헤도니즘의 용어적 논란과 당위성

 

크리스천 헤도니즘은 그 용어의 어근 때문에, 그리고 금욕주의(asceticism) 를 크리스천의 미덕으로 생각하는 전통 때문에 비판을 받아 왔다.

‘하나 님이라는 기쁨과 행복을 바탕으로 만족을 추구하는 신앙이 과연 옳은가’ 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어 온 것이다.

근대 유신론적 실존주의에서 말하 는 ‘인간에서 시작’하는 행복의 갈망인지, ‘하나님에서 시작’해 그의 행복 이 인간의 행복으로 전달되는 것인지 그 방향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용어적 표현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비판을 받아왔다: (1) 헤도니 즘이라는 말이 풍기는 뉘앙스로 인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바르게 이 해하지 못하고 하는 이런저런 우려와 염려, (2) 철학이나 윤리학의 역사 속에서 헤도니즘 용어 지니고 있는 난점을 파이퍼의 크리스천 헤도니즘 에 그대로 적용해 비판, (3) 하나님의 영광보다 사람의 유익을 더 중시하 고 하나님의 명예보다 사람의 행복을 더 우위에 둔다는 뉘앙스에 대한 비판, 그리고 (4) 그저 이 세상에서 즐겁고 기쁘게 살라는 식의 일종의 심리적 위안을 가르치는 것이라는 비판들이다.94 파이퍼는 이에 대해 그의 저서 하나님을 기뻐할 수 없을 때에서, 그가 “이 책을 쓰면서 일깨우고 싶은 기쁨은 자비와 선교와 순교를 가능 케 하는 힘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결코 “어떤 행동은 그것이 쾌락을 가 져다주기 때문에 옳다”라고 말한 적이 없음을 분명히 한다.95

 

   94 파이퍼, 하나님을 기뻐하라, 205. 박찬호, “존 파이퍼의 ‘기독교 희락주의,’” 199에 서 재인용. 크리스천 헤도니즘에 대한 강렬한 비판을 한 학자는 풀러 신학교 총장 리차드 마 우(Richard Mouw)였다. 그는 “일반적인 도덕적 정당화 이론(a general theory of moral justification)”이라고 비판했다. 제레미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이나 존 스튜어트 밀 (John Stuart Mill, 1806-73)의 공리주의적 쾌락주의(utilitarian hedonism)과 연계성이 있다고 비판 했으며, 논리적으로 파이퍼가 크리스천 헤도니즘을 포기하게 해야 할 상당한 이유들이 있다고 비판했다. Richard Mouw, The God Who Commands: A Study in Divine Command Ethics (Notre Dame: Notre Dame Press, 1990), 33-35.

    95 파이퍼, 하나님을 기뻐할 수 없을 때, 23. 

 

그는 “내가 말하려는 건 하나님을 사랑하면 기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선하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서 기쁨을 찾으라고 명령하신다”라고 명확히 말하고 있다.96

파이퍼는 그의 변증에서 루이스 의 글을 인용하고 있는데, “모든 기쁨joy(pleasure, amusement와도 구별되 는 것)은 우리의 순례자적인 상태를 강조하며, 항상 갈망(desire)을 연상시 키고 인정하고 일깨워 준다. 우리의 최고의 소유는 결핍”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킨다.97

기독교 윤리학자 스탠리 그랜츠(Stanley Grenz)또한

 

“이러한 비판은 어느 정도 그럴듯하지만 정곡을 찌른다고 볼 수는 없다...쾌락주의자 하 면 우리는 대개 저급하고 난폭하며, 술에 젖어 있고 방탕하며, 흥청망청 노는 사람이라는 선입견을 갖지만, 쾌락주의자가 꼭 그런 삶에 탐닉하기 만 하는 것은 아니다. 쾌락주의자들은 사실 법을 철저히 준수하는 시민 일 수도 있다. 어떤 면에서, 그리스도인들도 쾌락주의자라고 할 수 있 다”98 고 반박했다.

 

그랜츠에 의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세속적 쾌락은 피 하지만, 그렇다고 쾌락 그 자체를 피하지는 않는다.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이 그들에게 쾌락을 줄 수도 있다. 혹은 그리스도인들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영원의 쾌락을 학수고대하는 ‘영원한 쾌락주의자들’일 수도 있다.”99

 

    96 파이퍼, 하나님을 기뻐하라, 23, 29.

    97 Warren Hamilton Lewis, ed., Letters of C.S. Lewis (London: Geoffrey Bles, 1966), 289. Mouw, The God Who Commands, 37.

    98 스탠리 그랜츠, 기독교 윤리학의 토대와 흐름, 신원하 역 (서울: 기독학생회, 2001), 43.

    99 그랜츠, 기독교 윤리학의 토대와 흐름, 43. 100 그랜츠는 “이런 점에서 ‘세속적인’ 쾌락주의자들처럼, 그리스도인의 궁극적인 목적 도 쾌락이다. 단지 무엇이 쾌락을 가져다 주느냐에 대한 이해가 다를 뿐”이라고 말한다. 그랜 츠, 기독교 윤리학의 토대와 흐름, 43.

 

즉, 크리스천은 의도적으로 영원한 쾌락의 보장을 위해 움직이며, 그것이 그들이 모든 행위의 동기가 되고, 판단의 근거가 된다는 말이다.100 따라서 크리스천 헤도니즘이라는 용어 사용과 신학적 당위성은 다음 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1) 헤도니즘은 즐거움(pleasure)을 위한 삶 또는 즐거움에 몰두함이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만약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 거워하는(enjoy) 것이라면, 인간의 삶은 즐거움을 위한 삶이어야 한다 (should).’

 (2) 헤도니즘은 단 하나의 범주에 들어맞는 철학이 아니다. 즐 거움을 매우 높이 고양시키는 다양하고 광범위한 가르침을 포괄하는 일 반적인 용어로, ‘그것이 자기 자신을 더 기쁘게 하거나 혹은 덜 불쾌하 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그렇게 생각할 때만, 한 상태보다 다른 상태를 더 선호하여 그것을 만들어 낼 동기를 갖게 된다는 이론’ 이다.

 (3) 자신보다 지혜롭고 더 나아가 많은 사람들(예컨대 C.S. 루이 스)도 마찬가지로 기독교적 삶의 방식으로 헤도니즘이라는 말을 사용했 다.

  (4) 크리스천 헤도니즘이라는 용어가 담고 있는 인상적이고 강력한 효과가 있다. 그것은 쉽거나 안락한 철학이 아니다. 그것은 의미상 그리 스도인들에게는 매우 도전적이고 위협적이다.

  (5) 헤도니즘이라는 용어 가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세상적이라는 반론이 있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재림을 ‘도적’이 오는 것으로 묘사하셨다.

  (6) 놀랍게도 사도 바울은 자 신의 약함과 고난의 경험을 영어 단어 헤더니즘의 어근이 되는 헬라어 단어를 사용해 묘사하고 있다(고후 12:9, 15).

 (7) 헤도니즘에 기독교라는 형용사를 덧붙임으로써 합성어서의 완벽한 다른 용어가 되었고, 이것이 통상적인 쾌락주의와는 다른 것임을 분명히 그리고 명확하게 보여주었 다.

크리스천이란 단어는 다음과 같은 함의를 담고 있다.

‘크리스천 헤 도니즘의 깃발 아래서 나부끼는 진리에 대한 모든 주장은 반드시 기독 교 성어, 즉 성경에 견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성경 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워함으로써 하나님 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101

 

    101 파이퍼, 하나님을 기뻐하라, 426-432. 

 

그러므로 본 연구의 주요 주제인 크리스천 헤도니즘은 성경 신학적으로 주요 문제가 없으며 파이퍼와 루이스의 맥락을 이해한다면 비판할 수 없 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존 파이퍼의 크리스천 헤도니즘”을 정리하고 비 판과 변증의 내용을 섬세히 살펴본 박찬호 또한 “어느 반론도 결정적이 라 여겨지지는 않는다”고 말하며 그 당위성을 입증한다.102

 

     102 박찬호, “존 파이퍼의 ‘기독교 희락주의,’” 208-209.

 

필자는 여기 에서 더 나아가, 크리스천 헤도니즘은 찬송의 개념 없이 온전히 설명되 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에 다음 장에서 크리스천 헤도니즘에 대한 강력한 변증을 찬송가를 통해 이어나갈 것이다.

 

Ⅳ. 찬송가에 나타난 크리스천 헤도니즘

 

‘찬송을 통해 고난도 행복이 되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삶으로 영원의 행 복을 추구하고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을 ‘찬송가’를 통해 재조명 하는 것 이 본 장의 목적이자 본 연구의 주제다.

특히 역사를 통해 우리에게 주 어진 소중한 유산인 찬송가를 크리스천 헤도니즘을 경험케 할 찬송의 기 준이자 토대로 전제한다. 보통 ‘찬송의 기쁨(the joy of hymns)’를 검색하 면 대부분 알고리즘을 통해 ‘기쁨의 찬송(hymns of joy)’이 소개되고, 크 리스천의 승리나 성탄의 기쁜 찬송들을 주로 소개한다.

앞서 크리스천 헤도니즘의 의미와 본질을 살펴보았듯이, 본 장은 비트가 빠르고 장조화 성을 진행되는 ‘신나는’ 찬송에 관한 연구가 아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안 에서 고난과 역설을 품고 포괄적인 행복을 경험하는, 즉 ‘크리스천의 삶’ 을 노래하는 찬송가에 대한 것이다.

먼저 크리스천 헤도니즘을 이해하기 위해 찬송과 음악이 절대적인 이유와 근거를 설명하고, 현대음악사상을 지배하고 있는 니체의 사상과의 비교고찰을 통해 ‘찬송가의 대체될 수 없는 가치’를 재조명할 것이다.

 

1. 찬송과 크리스천 헤도니즘: 왜 슬픔과 고난 속에 노래해야 하는가?

 

파이퍼는 최초의 크리스천 헤도니즘의 개념은 시편 기자들에서 시작했다고 믿는다.103

실제로 시편의 70%는 애가(슬픔의 노래)이며, 역설을 포함 하는 총제적 의미의 영원한 행복을 설명하기에 가장 좋은 예는 시편의 찬송일 것이다.

파이퍼는 또한 성경의 곳곳의 노래들과 C.S. 루이스, 어 거스틴(St. Augustine), 존 칼빈(John Calvin), 토마스 왓슨(Thomas Watson) 과 청교도들 등 음악과 찬송에 조예가 깊은 믿음의 선조들을 언급하며 그의 크리스천 헤도니즘 사상을 이어간다.104

특히 C.S. 루이스의 저서 시편사색(Reflections on the Psalms)중 9장은 “찬양에 관한 한 마디”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그는 시편 여기저기에 나오는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선포의 더 깊은 의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찬양을 찬사나 동의, 혹은 경의를 표하는 일로만 생각했다. 모든 기쁨은 자연스럽게 찬양으로 흘러넘친다는 사실에 한 번도 주목하지 못 한 것이다. 알고 보면 세상은 온통 찬양 소리로 가득하다....나는 진실로 겸손하며 도량이 넓고 균형감이 있는 사람들일수록 칭찬을 많이 하고, 괴짜요 적응하지 못하는 자요 불평만 늘어놓는 사람들일수록 칭찬에 인 색하다는 사실을 놓친 것이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에 대해 내가 가진 문제는, 이렇듯 다른 모든 가치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기쁘게 하는-실로 하지 않을 수 없는-일을 어리석게도 하나님이라는 최상의 가치 있는 존 재에 대해서는 거부한 데 있었다.105

 

루이스가 말하는 핵심은 ‘모든 행복과 즐거움은 곧 찬양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며, 그 이유는 “우리가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들을 찬양하기 좋 아하는 까닭은, 찬양이 단순히 우리의 즐거움을 표현할 뿐 아니라 완성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106

 

    103 파이퍼, 하나님을 기뻐할 수 없을 때, 18-22.

    104 파이퍼, 하나님을 기뻐할 수 없을 때, 18-22.

    105 C.S. Lewis, Reflection on the Psalms (New York: Harcourt, Brace & World, 1958), 94; 파이퍼, 하나님을 기뻐하라, 25에서 재인용.

    106 Lewis, Reflection on the Psalms, 94. 

 

왜 모든 즐거움이 음악에 기반한 노래로 나타나야 하는지에 대해,  존 웨슬리의 ‘생명력’에 대한 설명은 그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한다.

우리 가 가진 찬송가의 수많은 곡을 쓴 웨슬리는 그의 저서 인간의 영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The Life of God in the Soul of Man)에서 크리스천 헤도니즘의 비밀을 앞서서 말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를 진정한 크리스천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의 ‘행복의 다른 말 이 생명력’인 이유는 그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행복의 근원이시기 때문이다.107

그리고 생명력을 ‘가장’ 잘 표현하는 인간의 행위 중 하나는 ‘노래하는 행위’다.

그 어떤 언어도 노래의 에너지와 비교할 수 없으며, 노래가 가진 생명력에 비할 수 없다.

즉, 오직 하나님 안에서 그를 즐거 워하고 찬양할 때 우리는 가장 행복하고 진짜 살아가는 게 무엇인지 알 게 된다.108

 

     107 파이퍼, 하나님의 기쁨, 247-48.

     108 서나영, “우울하고 불안한 당신에게.” 109 피터슨,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178. 

 

그렇다면 마음이 슬프고 화가 날 때도 노래해야 하는가?

만약 크리 스천 헤도니즘이 고난과 역설을 품는 영원을 향한 쾌락추구라면, 우리는 슬픔을 노래해야 하는가?

피터슨은 크리스천 헤도니즘을 찬송으로 연결 한 신학자다.

그는 ‘다윗의 영성’을 연구하며 사무엘하 1장을 통해 ‘마땅히 슬픔을 노래해야 하는 필요성’에 대해 자세히 관찰했다.

사울왕과 요나단의 죽음으로 다윗은 비탄의 노래를 부르는데, 고난 중 부르는 이 노 래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응답하며 하나님을 풍성히 누리며 살고자 하는 사람이 반드시 알아야 할 체험에 다가가게 한다”

는 것이다.109

삶을 완전히 누리기 위해서는 죽음과 완전히 대면해야 한다.

기묘하고 심지어 모순처럼 들릴지 모르나, 이것은 진실이다. 열정적으로 살았던 다윗은 또한 격렬하게 비탄에 젖어들었다.

그는 넘치는 열정과 비탄은 동일한 인생관, 동일한 가치관의 양면이었다.

즉 삶은 소중하다는 생각 말이다.

다윗은 인간의 삶-인간 삶의 사실 자체-을 넘치는 열정으로 존 중했다...시편 70%는 비탄의 노래다.

이 비가들은 다윗의 기도하는 삶에서 직접적으로 또 간접적으로 나온 것들이다. 다윗은 거듭해서 상실과 실망과 죽음에 직면했다. 그러나 그는 그 어떤 고난도 회피하거나 부인 하거나 경시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것에 정면으로 대면했으며 모든 것 을 놓고 기도했다.

다윗의 비탄은 다윗의 장대하고 장중한 생명력의 표 출이었다.110

이어서 피터슨은 다윗이 자신의 슬픔을 노래로 불렀을 뿐 아니라, 사람 들에게 그 노래를 배우라고 명령했다는 사실에 집중한다(삼하 1:18).

그 이유는 “그들 자신의 경험으로 삼도록” 한 것이며, 슬픔은 결코 사적인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문제”로 문화의 양상을 정 하기 때문이다.111

피터슨은 우리가 “죽음을 비롯한 여러 상실을 하나님 의 주권이라는 맥락속에서 다룰 줄 아는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것”이라 강조한다.112

피터슨에 의하면 “크리스천의 삶은 다른 것들과 더불어 이 비탄의 노래를 배우는 것, 잘 배우는 것과 관련이 있다.”113

왜냐하면 크리스천 의 삶은 “그 고통들로 인해 빈곤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어지” 며, “그 고통들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아름다움을 발견할 줄 알게 되기” 때문이다.114

 

     110 피터슨,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178-179.

     111 피터슨은 “우리가 개인적으로 상실을 대하는 방식이 모여 사회의 문화적 분위기가 되며, 그에 따라 우리는 고귀함과 아름다움을 아는 백성이 되기도 하고 못 되기도 한다”고 말 한다. 피터슨,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185.

    112 피터슨,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186.

    113 피터슨은 “‘(다윗이) 유다 사람들에게 가르치라고 명령하였다(삼하 1:18).’ 다시 말 해 우리 삶의 일부가 되게 하라는 것이다. 단순히 하나의 정보가 아니라 내면에 동화된 진리 가 되게 하라는 말”이라고 강조한다. 피터슨,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185.

   114 피터슨,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185-86.

 

즉 고통을 다루는 과정에서 크리스천의 진정한 행복 함이 드러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행복은 결국 부활을 믿는 종말론적 신앙에서 나온다.

그래서 피터슨은 이 고통을 노래하라고 외친다.

 

“그 고 통들에 형식과 운율과 노래를 부여하라. 고통은 최악이 아니다...최악은 현실과 대면하지 못하고 겉도는 것이다...최악은 존귀한 것을 하찮게 여기고 신성한 것을 모독하는 것이다...그 주권은 최종적으로 부활로서 드 러날 것이다.”115

 

고통을 부활과 영원의 시각에서 보지 않으면 길을 잃게 된다. 피터 슨은 현대인들의 우울증의 원인은 고통을 다루지 못하고 회피하기 때문 이라고 말하며 찬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116

슬픔 속에서 하나님을 찬송 하는 방법을 모르면 인간은 우울할 수밖에 없으며, “우울증은 오랜 세월 상실과 죽음, 실패와 실망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대면하지 않고 축소시 켜 온 것이 축적된 결과로” 우울증이 만연해진 이 상황은 ‘개인이 아닌 사회적인 문제’이며, ‘영원의 서사 가운데 비탄하는 방법을 모르는 무지 의 문제’라고 지적한다.117

하재송 또한 “음악의 힘과 영향에 대한 역사 적인 논의와 음악치료의 개념에 대한 이해를 기초로 사무엘상 16:14-23의 문맥”을 연구했다.

그는 사울이 다윗의 음악으로 인해 치유된 것처럼 보 이는 이 상황을 분석하고, 그 “과정에서 분명하게 드러난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라고 확신한다.118

 

    115 피터슨,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185-86.

    116 제럴드 메이(Gerald May)는 우리로 하여금 문화적으로 자연스럽게 용납되고 있는 여러 가지 죄의 본질을 영적인 차원에서 예리하게 분석한다. Gerald May, Addiction and Grace (San Francisco: HarperCollins, 1990). 피터슨,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186.

    117 고통, 거절, 실패 등과 대면할 줄 모르거나 대면하기를 거부하는 증상,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거나 뜻대로 안 되는 것을 견디지 못하거나 견디기를 거부하는 증상이 사회 전체에 만연해 있다. 피터슨,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187-88.

     118 하재송, “사무엘상 16:14-23의 사례와 음악치료에 대한 개혁주의적 고찰”, 165-66. 

 

따라서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의 주권에 기대 슬픔도 노래하는 사람들이다.

생명력 있는 음악에 하나님께 슬픔을 노래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믿음을 표현하기 힘들어지고, 결과적으로 그의 주권적으로 부어지는 크리스천의 행복은 누리기 힘들어 진다.

피터슨에 의하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믿음으로 노래할 수 있는 행복은 ‘부활을 사는 크리스천’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특권이 자 기쁨이다.

그는 오늘날의 영적 침체와 우울증을 예방하기 위해 다음 과 같이 권유한다.

 

이것이 바로 다윗의 비가가 야살의 책에 기록된(삼하1:17)이유다. 우리 는 슬퍼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비가를 지으며 슬퍼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우리는 그때 그때의 기분을 좋게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고 믿게 될 것이다. 그러면 거절당할 때마다 그 현실을 부인하려 할 것 이며, 그럼으로써 결국 타인의 거절 여하에 좌지우지될 것이다. 실패할 때마다 그 현실을 회피할 것이며, 그럼으로써 결국 그 실패는 우리의 삶을 빈곤하게 만들 것이다....그러니 비탄하는 법을 배우라. 다윗처럼 비탄하는 법을 배우라. 결국 우리는 죽게 되어 있는 인간이다. 우리와 주변 사람들은 모두 언젠가는 반드시 죽게 되어 있다. 이를 받아들이라. 당신의 십자가를 지라. 이것이 바로 부활을 준비하는 것이다.119

 

슬퍼하는 법을 배워 그것을 생명력 넘치는 음악으로 하나님께 찬송을 올 려드리는 것,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이야기 속에 있는 크리스천이 하 나님 안에서 사는 대단히 중요한 방식이다.120

피터슨의 말을 빌려, 하나 님은

“이 (슬픈) 이야기를 삭제 편집하는 것을 탐탁하지 않게 여기신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가 그 안에서 시를 노래하는 것을 참으로 기뻐하신 다.”121

 

    119 피터슨은 “다윗 식의 비가가 중독증과 우울증에 대한 치유책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 니다. 두 증상 중 하나(혹은 흔히 그렇듯이 둘 다)가 극심할 경우, 회복은 오랜 시간에 걸친 어 렵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비탄이야말로 그런 증세들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예방책이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히 확신”한다고 말한다. 피터슨, 다윗: 현실에 뿌리 박은 영성, 187-188.

    120 다윗처럼 슬픔과 비탄에 빠짐으로써 하나님 이야기 안에 머물렀던 (그래서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게끔 도움을 주는) 저서는 니콜라스 볼테스토프(Nicholas Woltestorf)와 루시 쇼 우(Luci Shaw)의 저서를 참고하다. Nicholas Woltestorf, Lament for a Son (Grand Rapids, MI: William B. Eerdmans, 1987); Luci Shaw, God in the Dark (Grand Rapids, MI: Zondervan. 1989).      121 피터슨,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188-189. 괄호는 필자의 부연설명이다. 

 

2. 찬송가에 나타난 기독교적 삶: 크리스천 헤도니즘의 실재

 

삶의 모든 상황을 노래하는 습관이 되어 있지 않으면 크신 하나님으로부 터 오는 온전한 행복을 맛볼 수 없다.

찬송가는 고난과 평안의 그 어떤 상황에도 관계없이 하나님을 노래하며 친밀함을 누리는 기쁨의 노래다.

현대에 만연한 CCM(Christian Contemporary Music)이 아니라 찬송가를 크 리스천 헤도니즘을 실현할 노래로 제안하는 주된 이유는 세 가지로 살펴 볼 수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찬송가는 회중이 함께 누릴 수 있는 보편화되고 표 준화된 신학과 신앙의 총체적 노래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교회음악자 김용화는 그의 “존 웨슬리의 두 가지 예배음악적 속성 연구”에서 회중찬송 을 “표준화(Standardization)와 신학적 기억(Theological Memory)”이라는 적 절한 용어로 축약했다.122

김용화는 존 웨슬리가 찬송지침들을 내놓게 된 배경에 대해 이야기하며, 웨슬리 찬송을 연구하는 칼튼 R. 영과 ST 킴브 로우 2세의 설명을 인용해 당시 시대적으로 중구난방식으로 혼란스러웠 던 찬송 방식이 표준화되고 회중화되는 과정을 고찰했다.

김용화에 의하 면 “가사와 선율이 조화되어 나오는 찬송의 힘은 신앙과 신학, 선교와 사회봉사의 과제를 분명히 알리고, ‘신학적 기억’이 되었다.”123

 

       122 김용화, “존 웨슬리의 두 가지 예배음악적 속성 연구,” 「성경과 신학」104 (2022):135-162, 150-51.

       123 칼튼 R. 영, 마음의 음악Music of the Heart, 박은규 역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0), 109-111. “결정적으로 회중찬송을 표준화하려는 그의 결심은 아마도 1760년경 조지 벨 (George Bell)과 토마스 맥스필드(Thomas Maxfield)가 인도하던 런던 메소디스트 집회에서, 소 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광신적으로 노래하던 은사주의자들 때문이라 여겨진다.” 박창훈, “웨슬 리안 부흥운동과 찬송(시),” 「성경과 신학」 52 (2009), 156-157. 김용화, “존 웨슬리의 ‘음악의 힘에 대한 생각(Thoughts on the Power of Music)’에 나타난 예배음악 고찰,” 「성결교회와 신학」 44(2020), 95-111에서 재인용. 

 

절제된 시편가에 머물던 회중찬송가는 “전통성을 내세우며 예전만을 위한 구약 성서의 시편가와 캔티클(Canticle) 음악에 갇혀 있다가 보다 획기적인 것 으로서, 하나님의 창조와 성령의 역사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고난, 죽음과 부활, 구원과 재림에 대한 인간의 감사와 응답으로서의 복 음적이고 경험적인 찬송들을 마음껏 부를 수” 있게 만든 선물 같은 유산 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감성 만족에 초점을 맞춘 음악이 아니라, 모두 함 께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그에게 영광 돌릴 수 아름다운 음악이란 무엇일 까?

음악은 듣기에 좋고 우리에게 만족을 주는 힘이 있는데, 찬송가가 지닌 음악적 만족은 어떤 만족이란 말인가?

김용화는 그의 연구 “존 웨 슬리의 ‘음악의 힘에 대한 생각(Thoughts on the Power of Music)’에 나타난 예배음악 고찰”에서 찬송가가 가진 음악의 독특한 만족에 대해 언급 한다.

당시 웨슬리 시대에 “영혼 구원과 개혁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모 든 회중들이 부르기 쉽고 메시지를 기억하기 좋은, 또한 소박하지만 보 편적이고 감동적인 회중찬송들”을 사용했고, “왜 모든 좋은 곡들은 악마 가 가져야 하는가?(Why should the Devil have all the good tunes?)”124라는 물음에... “찬송이 좀 더 보편적 회중성 안에서 포용적으로” 발전되었음을 상기시켜 준다.125

즉 김용화의 분석에 의하면, 찬송가 음악의 특징은 메 시지를 기억하기 좋은 보편성, 소박함, 감동을 전해주는 포용적 음악이 다.126 필자는 이러한 찬송가 음악의 특징이 개인경건시간에 기도의 노래 로서도 적합한 음악적 진정성을 담고 있다고 확신한다.

무엇보다 찬송가는 검증된 찬송들로 회중과 함께 부를 수 있어야 하 는데, 미국과 캐나다의 찬송가 공회가 정의한 바로는

“독실하고 경건하 게 진술된 서정시로, 노래되도록 고안된 것”이며, “형식에 있어서 단순하 고 운율적이어야 하며, 양식에 있어서 진정으로 감정적이고 시적이고 문 학적이어야 하며, 질에 있어서 영적이어야 하고, 그 사상에 있어서는 매 우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명백하여 그것을 부를 때 ‘회중을 통일시킬 수 있어야’ 한다.”127

앞서 언급했듯이, 하나님께 노래를 제대로 부르는 일은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 공동체적이고 사회적인 일이다.

피터슨이 제 대로 지적했듯이, 크리스천의 삶은 공동체로서 서로가 서로를 가르치고 한 성령 안에 함께 만들어나가는 하나님의 나라 구현이다.128

 

       124 칼튼 R. 영, 마음의 음악, 141; 김용화, “존 웨슬리의 ‘음악의 힘에 대한 생각,’” 101-102.

       125 김용화, “존 웨슬리의 ‘음악의 힘에 대한 생각,’” 95.

       126 김용화, “존 웨슬리의 두 가지 예배음악적 속성 연구,” 150-151.

        127 “Sing with Understanding,” http://singwithunderstanding.com/ 참조; 하재송, “교회음악의 교육적 기능과 찬송가 교육의 필요성,” 398. “찬송에 대한 ‘미국과 캐나다 찬송가 공회(The Hymn Society in the United States and Canada)’의 공식적인 정의(definition)로서 1937년 칼 프라 이스(Carl F. Price, 1881-1948)가 쓴 ‘찬송이란 무엇인가?(What Is a Hymn?)’라는 글에 정의”된 내용이다.

      128 피터슨,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186. 

 

   두 번째 이유는 찬송가는 다른 종류의 찬양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고실제적인 크리스천의 삶의 영역들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하재송은 그의 찬송가 교육의 필요성 연구에서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우리나라 찬송가(2006)만 보더라도, ‘제목 분류’에서 직접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제목 아래 무려 205곡의 찬송가가 수록되어 있고, 그 세부 제목들은 은혜와 사랑, 소명과 충성, 시련과 극 복, 분투와 승리, 기도와 간구, 인도와 보호, 평안과 위로, 성결한 생활, 감사의 생활, 주와 동행, 제자의 도리, 신유의 권능, 화해와 평화, 자연 과 환경, 미래와 소망 등 기독교적인 삶과 관련된 대부분의 주요 주제 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교회’라는 제목 아래 있는 ‘헌 신과 봉사’(8곡), ‘성도의 교제’(5곡), ‘구원’이라는 제목 아래 있는 ‘거룩 한 생활’(4곡), 그리고 전도, 세계선교, 전도와 교훈, 부르심과 영접, 믿 음과 확신 등의 세부 제목을 포함하는 ‘전도와 선교’(55곡), 그리고 ‘행 사와 절기’ 중 ‘감사절’(8곡) 등도 기독교인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생각할 때 일단 285곡 정도가 기독교인의 삶과 보다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물론 보다 세밀하게 관찰하면 그보다 더 많은 찬송가가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이처럼 많은 찬송가가 기독교인 의 삶에 대해 다루고 있기에, 기독교적인 삶을 장려하기 위해서는 찬송 가를 가르치고 부르게 하는 것이 매우 효과적이다.129

하재송에 의하면, 크리스천의 삶을 장려하기 위해 교회음악 지도자는 음 악의 아름다움 보다는 “기독교 교육적인 측면에서 바라보고 평가하고 적 절히 사용할 수 있는 깊은 안목과 능력”이 중요하다.130

 

    129 하재송, “교회음악의 교육적 기능과 찬송가 교육의 필요성,” 380, 387-98. 하재송의 논문 서문은 찬송 속에서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의 본질을 말하고 있 다. “교회음악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음악의 우 선적인 관심은 하나님이며, 교회음악을 하는 모든 이들은 하나님께 최고의 영광을 돌려드리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교회음악 연구와 실제에 있어서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이 러한 목적은 지금까지 충분히 강조되어 왔고, 대부분의 교회음악인들은 그러한 분명한 인식 가운데 그들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130 하재송, “교회음악의 교육적 기능과 찬송가 교육의 필요성,” 390. 

 

왜 음악의 화려 함과 선율적 감성보다 신학적이고 삶의 포괄적 영역의 가사가 중요한가?

그것은 찬송가의 목적과 크리스천 헤도니즘의 본질이 인간의 감성의 만 족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 은 하나님에서 시작한다.

즉, 편협된 음악의 텍스트로 크신 하나님을 축 소하지 말아야 하며, 인간의 감성만을 우선적으로 자극하고 만족시키는 방향의 음악을 피해야 한다.

찬송가는 크리스천이 전인적 삶의 노래를 축소하는 고질적 습관을 고쳐주는 유일한 종합적 문헌이다.

 마지막 세 번째 이유는 찬송가는 고난과 역설을 품고 노래한 작사가 들의 곡들로, 그 ‘가사의 내용이 크리스천 헤도니즘의 정수(精髓)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음악자 이선령은 그의 찬송가 분 석 연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토대로 한 믿음의 확신 속 에 앞으로 남은 이 땅에서의 삶의 여정에서부터 본향에 이르러 영원한 하나님과의 교제를 이루게 되는 그날까지 예비되어 있는 모든 장래의 은 혜를 기대하며 충만한 삶을 살아가도록 권면하고자 했던 진정한 설교자, 목회자 뉴턴의 마음이 어김없이 드러났다”고 평가했다.131

즉, 작사가이 자 설교자였던 뉴턴은 당시 ‘고통 가득한 삶’을 살아갔던 성도들을 향해

“단순히 위로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심오한 성경적 진리와 은혜의 교 리를 바탕으로 모든 성도들에게 올바른 성경관과 신앙관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찬송시를 지었다고 밝힌다.132

다른 어떤 찬양 장르보다 찬송가에 담긴 가사들은 고난과 슬픔을 하 나님 앞에 노래하고 있다.

예를 들면 감리교 목사였던 허버트 버펌 (Herbert Buffum, 1879-1939)의 찬송시 “내가 매일 기쁘게(I’m rejoicing night and day, 191장)”는 그의 기쁨 넘치는 순례길을 표현하며 “좁은 길 을 걸으며” 기뻐한다고 노래한다.133

 

     131 이선령, “Amazing Grace에 대한 찬송 해석학적 연구”, 「성경과 신학」 101 (2022): 99-125. 118.

     132 이선령, “Amazing Grace에 대한 찬송 해석학적 연구”, 118.

     133 (재)한국찬송가공회, 아가페 찬송가(서울: 예장출판사, 2018), 191장. 

 

또한 감리교 목사였던 헨리 젤레이 (Henry J. Zelley, 1859-1942)의 찬송시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Walking in sunlight all of my journey, 445장)”은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캄캄한 밤에 다닐지라도,” “하늘의 영광 하늘의 영광 나의 맘 속에 차고도 넘쳐 할렐루야를 힘차게 불러 영원히 주를 찬양하리”라고 노래하고 있 다.134

시각장애인 작사자로 유명한 패니 크로스비(F.J.Crosby, 1820-1915) 는 고난 중 노래한 대표적인 시인이다.

그의 찬송시 “나의 영원하신 기 업(Thou, my everlasting portion, 435장)”은 3절에 “어둔 골짝 지나가며 험 한 바다 건너서 천국문에 이르도록 나와 동행하소서”라고 노래하며 어둔 골짝길을 지나는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135

한국 작사가 최봉춘은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 570장”의 즐거운 찬송 을 첫째 딸을 잃은 직후 시를 지어 노래했으며, 호라시오 스패포드 (Horatio Spafford)는 네 명의 딸을 한꺼번에 잃고 절규하던 중 놀라운 평 안 중에 “내 평생에 가는 길 (It is well with my soul, 413장)” 찬송시를 쓰게 된다.136

이 외에도 대부분의 찬송시는 고난 중에 영광을 보고 감사 하고 찬양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역설을 품는 하나님 안의 행복은 찬 송가 그 자체이다.

무엇보다 찬송가의 찬송들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이는 찬송가 안에 삼위일체 하나님을 깊게 묵상하게 하는 내용의 찬송시 의 비율로 알 수 있다.

21세기 찬송가의 경우, 645곡 중에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주제를 제외하고 ‘예배, 성부, 성자, 성령, 성경, 교회, 성례, 천 국, 구원, 전도와 선교, 행사와 절기, 각종 예식, 경배와 찬양, 영창과 기 도송’에 대한 주제의 시가 총 340곡으로 약 삼분의 이를 넘어선 수치를 보인다.137

 

   134 (재)한국찬송가공회, 아가페 찬송가, 445장.

   135 (재)한국찬송가공회, 아가페 찬송가, 435장.

   136 오소운, 알기 쉽게 쓴 21세기 찬송가 해설, (경기: 성서원: 2011), 751-52, 965-67.

   137 (재)한국찬송가공회, 아가페 찬송가, 6-7. 

 

찬송가를 부르는 것은 인간의 얄팍한 쾌락과 음악으로 인한 감정의 만족이 아닌 ‘삼위일체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고 노래함으로 행복 을 누리는 행위’다.

즉 찬송가로 노래하는 것은 ‘고난과 역설을 품는 행 복을 표현할 가장 실제적인 크리스천 헤도니즘의 경험’이다.

 

3. 음악과 고난, 그리고 행복: 니체 음악사상과 찬송가의 비교 고찰

 

연구 배경에서 언급했듯이, 현대의 음악은 니체음악사상이 지배하고 있다.

가장 문제되는 것은 교회와 크리스천에게도 흡수된 니체의 지대한 영향력 이다.

니체의 주된 사상인 “음악으로 고통의 삶을 긍정하는 것”은 ‘영원과 부활의 시각으로 역설과 고난을 품는 포괄적 의미의 행복’을 노래하는 ‘크 리스천의 삶으로의 음악(찬송가)’을 대체하고 있다.

무엇보다 니체는 음악이 메시지(특히 기독교 진리의 메시지)를 나르는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을 전략 적으로 비판해, 음악을 숭고하고 행복한 본질의 자리(즉 행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자리)에 앉혔고, 그것이 세련이고 시대의 지식이라는 생각이 들게 미혹한다.

다음 표는 본 연구의 내용을 바탕으로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는 니체의 현대음악사상과 찬송가의 헤도니즘의 차이들을 비교한 것이다.

 

   <표 1> 니체의 음악사상과 찬송가로 본 크리스천 헤도니즘 비교표 : 생략(첨부 논문파일참조)

 

표1에 나타나듯이, ‘고난의 삶을 음악으로 노래하고 행복을 추구한 다’는 동일성은 니체음악사상으로부터 발전한 현대의 음악의 종교적 힘 을 암시한다.

찬송을 대체할 강력한 사상적 프레임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찬송가가 추구하는 행복과 니체가 말하는 음악으로의 행복은 미 묘하고 구체적인 많은 차이를 보인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1) 니체는 음악을 함으로 삶의 고통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하지 만, 찬송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고통마저 행복하게 노래하는 행위다.

  (2) 니체로부터 영향 받은 세상은 음악을 하는 예술적 삶을 추구하지만, 찬송가에 나타난 크리스천 헤도니즘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영광을 돌리 고 찬양하는 삶을 추구한다.

  (3) 니체의 음악의 근원은 디오니소스적 음 악이며, 찬송은 신학적 음악이다. 즉, 니체는 음악을 수단으로 놓는 것을 가장 위험하다고 말했고, 크리스천의 행복은 음악을 통해 전달된다.

  (4) 현대음악은 자신을 주인삼지만 크리스천의 찬송은 하나님을 주인 삼는다.

  (5) 현대의 음악은 개인의 만족이 중요하고 떼창을 할 때에만 함께 부르 지만 찬송가는 회중의 연합이 가장 중요하다.

  (6) 현대음악의 토대는 허 무한 실존의 슬픔을 마취하는 것이지만, 찬송은 영원을 보고 부활의 기 쁨을 노래한다.

  (7) 현대음악은 고통의 삶을 극복한 자신을 섬기며 노래 하지만, 찬송가는 오직 하나님을 기쁨삼아 노래한다.

  (8) 따라서 음악 스 타일도 달라지는데, 현대음악은 감성을 자극할 온갖 화려한 음악적 사운 드를 환영하며, 찬송가는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에 집중해 우리의 목소리가 중요하다. 특히 개인경건시간에 기도로서의 찬송에 적합할 진 정성 있는 노래가 찬송가다. 마지막으로

  (9) 현대의 음악은 오락적이고 쾌락을 추구하는 비트, 감성적 목소리, 선율을 추구하고, 찬송가는 서정 적이고 소박한 감동의 선율과 진정성 있는 목소리로 노래하는 것이 중요 하다.

오늘날 이러한 분별력이 없는 크리스천은 진정한 음악적 행복이 무 엇인지 알기 어렵다.

한국교회문화에 편만해 있는 갖가지 음악 스타일의 찬양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언제나 돌아갈 말씀이 있 는 것처럼, 크리스천이 지속적으로 그리고 정기적으로 돌아가야 할 음악은 찬송가다.

크신 하나님의 세계를 사는 크리스천은 현대음악도 품고 갖가지 새로운 음악도 하나님의 음악 영역으로 돌려놓아야 하는 선교적 사명이 있다.

그리고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크리스천 헤도니즘을 이해해야 한다.

찬송가가 그 사역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니체가 말했듯, “괴물과 싸우다가 내가 괴물이 되어 버린다.”138

 

    138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박찬국 역 (서울: 아카넷, 2018), 146. 

 

즉 현대 음악으로 선교를 꾀하는 모든 이들이 니체사상의 영향력에 침몰되지 않 을 방법은 찬송가를 주기적으로 부르고 가르치는 일이라는 뜻이다.

찬송가를 부르는 행위는 그 누구보다 행복하고자 함이다. 감성적이 고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사운드의 음악에 큰 행복을 느끼는 크리스천들 은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크리스천의 헤도니즘이 무엇인지, 찬송가를 통 해 알아가야 한다.

 

Ⅴ. 결론

 

크리스천은 어떤 음악으로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하는가?

오늘날 크리스천 들이 즐기는 음악은 무엇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크리스천들은 과연 현대음악사상의 위험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오늘날 한국교회와 크리스천들은 왜 우울한가?

음악의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왜 크리스천은 찬송가로 돌아오고 주기적으로 찬송가를 불러야 하는가?

찬송가는 어떤 노래인가?

왜 크리스천은 슬픔과 고난 속에도 기쁨의 노 래를 해야 하는가?

왜 찬송가가 크리스천의 행복의 본질을 경험하게 해 주는가?

본 연구는 위의 질문들에 대한 답을 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먼저 시대적 배경을 설명하고 문제의 위험성을 제기했다.

무신론적 실존주의자 니체에 의한 강력한 현대음악사상의 내용과 위험성 에 대해, 그리고 기독교 내의 찬송가 쇠퇴현상에 대항하여, 마지막으로 음악사상과 긴밀하게 연관된 민족적 영적 침체 현상에 대해 추적했다.

연구의 주요 주제인 ‘찬송가로 본 크리스천 헤도니즘’을 발전시키기 위해 다음으로는 존 파이퍼가 강력하게 주장하고 체계화한 신학사상인 ‘크리 스천 헤도니즘’의 용어적 의미와 당위성을 논했다.

이를 위해

  (1) 크리스 천 헤도니즘의 본체, 즉 행복과 기쁨 그 자체가 되시는 하나님의 속성,

  (2) 행복을 전달하시며 얻는 하나님의 기쁨이라는 창조 원리,

  (3) 웨스트 민스트 소요리문답을 토대로 우리의 기쁨의 응답의 중요성,

  (4) 고난과 역설을 포함하는 크리스천의 영원한 행복, 그리고

  (5) 크리스천 행복의 대상과 목적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또한 헤도니즘이라는 용어 때문에 생 기는 비판들을 정리하고 평가하여 신학적 용어로서의 당위성을 논했다.

마지막으로 ‘찬송가에 나타난 크리스천 헤도니즘’을 분석하고, 크리 스천 헤도니즘 사상을 발전시키는 동시에, 현대 크리스천들에게 찬송가 의 본질과 필요성의 중대함을 강조하려 했다.

크리스천이 슬픔과 고난 속에서 노래하는 이유와 신앙 원리에 대해 설득하고, 실제로 찬송가에 나타난 기독교적 삶이 왜 음악으로 크리스천 헤도니즘을 추구하는지 규 명했다.

그리고 니체의 현대음악사상과 찬송가에 나타난 행복을 추구하 는 방식의 차이를 고찰하고 이를 통해 크리스천이 분별해야만 하는 근거 를 제공했다

. 본 연구는 현대의 크리스천들이 오락적이고 화려하고 신나는 EDM 음악을 듣거나 연주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 님이 시대적으로 허락하신 음악들을 품고 선교의 도구로 사용할 수도 있 고, 그 음악들을 신나고 재미있게 즐길 수도 있다.

그 음악들로 인해 잠 시 마음이 위로받고, 감성이 부드러워지는 효과를 경험할 수도 있다.

그 렇지만 크리스천의 음악적 행복이 무엇인지 분명한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여러 음악을 즐기는 크리스천들에게 그 즐거움의 기 쁨과 쾌락, 또는 행복과 도취, 그 무엇이든지 중요한 것은 ‘그 행복이 어 떤 종류인지 분별력을 갖기 위해’ 찬송가로 꾸준히 돌아오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 없이 즐기고 예배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음악들에 대한 세계관적 지식은 너무 중요하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만연한 가치들 속에 지쳐 있다가도 말씀으로 수시로 돌아와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듯이, 여러 인문학 책을 읽다가고 다시 성 경을 펼쳐 진리를 확인하는 것처럼, 그렇게 ‘찬송가로 정기적으로, 예배 시간에, 그리고 개인기도시간에 돌아와서 부르라’는 외침이 본 연구의 숨 은 목적이다.

교회음악자 양정식은 그의 블랜디드 워십 연구를 통해, 기 성세대와 다음세대의 음악문화적 차이의 심각성을 말하고 서로 거리감을 좁히기 위한 제안들을 했다.139

 

    139 양정식, “현대 예배와 찬양의 흐름 연구 - 블렌디드 워십(Blended Worship),” 「신학 과 선교」53, 2018: 243-284, 268. 

 

그가 말하는 진정성 있는 노력의 일환으 로, 필자의 노력은 ‘자칫 자신의 마음과 감성이 주인이 되어 즐기는 음악 의 위험성’을 ‘니체의 사상의 내용과 편만함’으로 알리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진짜 행복의 음악이 시대적 영적 침체를 이길 열쇠가 될 수 있음 을 제안한 것이다.

찬송가는 크리스천의 모든 삶을 다룬다.

그 삶의 모든 이야기는 영원한 행복을 향한다.

크리스천 헤도니즘은 찬송가를 부름으 로 경험할 수 있다. 오늘날 크리스천의 매일의 기도시간과 그들이 모이 는 회중예배에 ‘찬송가를 부르는 것’이 어쩌면 가장 행복한 삶을 사는 가 장 좋은 습관 중 하나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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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초록

본고는 오늘날 현대를 살고 있는 크리스천들의 음악적 삶의 현상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재조명하고자 했다.

젊은세대를 중심으로 한 크리 스천들의 음악문화를

(1) 니체의 사조로부터 현대까지 이어진 음악관의 영향 과

(2) 찬송가 쇠퇴 현상, 그리고

(3) ‘영적 침체 현상’을 분석하고 연결해 문 제제기를 한다.

또한 본고의 주제로 이끌기 위해 존 파이퍼가 정립한 ‘크리 스천 헤도니즘’ 사상의 용어적 의미와 당위성에 대해 논하며, 크리스천이 추 구해야 할 기쁨의 본질에 대해 정립한다.

이어 찬송가에 나타난 크리스천 헤 도니즘의 의의와 중요성에 대해 논지를 펼친다.

크리스천의 삶의 진정한 만 족감과 행복이 어디에서 오는지에 대해 깨달을 수 있는 강력한 통로로서의 찬송가 찬양을 강조하며, 니체의 ‘음악적 삶’에 맞설 크리스천 찬송의 신학 적 본질과 중요성에 대해 비교분석하여 정리한다.

따라서 본고는 현대의 크 리스천 문화의 위기를 그들의 ‘음악문화’를 통해 살펴보고, 그들의 예배와 삶 속에 ‘찬송가를 부르는 것’이 성경적이며 올바른 선택이 될 수 있다고 주 장한다. 

주제어: 크리스천 헤도니즘, 음악과 영성, 음악과 기독교문화, 니체의 음악관, 찬송가의 중요성

 

 

Abstract

Exploring Christian Hedonism through Hymns: A Comparative Reflection on Nietzsche's Modern Philosophy of Music Seo, Na Young( Mid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Adjunct Professor, Christianity & the Arts )

This study reexamines the current state of musical life among contemporary Christians and explores the direction it ought to take. Focusing particularly on the younger generation, it critically analyzes the Christian musical culture through three lenses: (1) the influence of philosophical perspectives on mu sic from Nietzsche to the present day, (2) the decline of traditional hym nody, and (3) the phenomenon of spiritual stagnation. As a foundation for this discussion, the study introduces and defends the terminology and neces sity of “Christian Hedonism” as articulated by John Piper, establishing a theological framework for the joy that Christians are called to pursue. Building on this, the significance and theological depth of hymns are ex plored in relation to Christian Hedonism. The study highlights hymns as a vital and powerful means of realizing true satisfaction and happiness in the Christian life. Furthermore, it offers a comparative analysis of Nietzsche's concept of the “musical life” and the theological essence of Christian hymnody, asserting the latter as a robust alternative. Ultimately, this study argues that the crisis in contemporary Christian culture can be understood through its musical practices, and that the act of singing hymns  within worship and daily life is a biblically faithful and spiritually re storative choice. Key-Words: Christian Hedonism, Music and Spirituality, Music and Christian Culture, Nietzsche's Philosophy of Music, The Importance of Hymns

 

논문 접수일: 2025. 08. 18. 수정 접수일: 2025. 09. 20. 게재 확정일: 2025. 10. 13. 

「성경과 신학」 116 (2025): 115-163

 

찬송가를 통해 본 크리스천 헤도니즘(Christian Hedonism) 니체의 현대음악사상과의 비교고찰.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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