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는 말
오늘날 공공신학(public theology)은 기독교가 공공 영역에서 갖는 의 미와 교회의 공적 책임을 재정립하려는 신학적 시도로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교회는 포스트모더니즘과 다원주의 사회에 비친 자기 모습을 성찰 하는 한편, 공론장에서 사회적 담론을 어떻게 복음에 기초해서 소통할지 도전에 서 있다.
공공신학이란 복음이 신자의 내면이나 예배당 안에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우주적 통치를 드러 내는 총체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2)
2) 이승구, 『광장의 신학』 (수원: 합신대학원출판부, 2010), 41.
따라서 공공신학자는 모든 사람이 이 해하고, 평가할 수 있게 어떻게 기독교 신앙이 공적 삶과 공동선에 이바지할 수 있는지 알리는 방법을 찾고 그렇게 함으로써 기독교인과 비기독교 인 모두가 행동하도록 설득한다.3)
3) Harold Breitenberg, “To Tell the Truth: Will the Real Public Theology Please Stand Up?,” Journal of the Society of Christian Ethics 23/2 (2003): 66.
미국 칼빈대학교의 철학 교수이자 개혁주의 전통을 따르는 제임스 스 미스(James K. A. Smith, 1970-)는 포스트모던 철학자와 사회학자들과 학 문적으로 조우하며 학제 간 연구를 지속해 왔다.
그는 ‘문화 예전 기획’ 3 부작을 통해 다원주의 세속 사회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다.
1권 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라에서는 인간이 근본 적으로 사유하는 존재가 아니라 욕망하는 존재라고 규정하며, 인간의 문 제를 인식의 오류가 아니라 잘못된 사랑의 질서(ordo amoris)로 본다.
따 라서 신앙의 핵심은 지성의 교정이 아니라, 욕망의 방향 전환이며, 이러 한 욕망의 재형성이 이루어지는 현장이 바로 예배(liturgy)이기에, 스미스 는 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는 공동체 예전의 실천과 기독교 교육을 강조한 다.
2권 하나님 나라를 상상하라에서는 예배 가운데 하나님께 사로잡히 고 그리스도와 연합에 이끌린 신자는 사회적 상상력을 통해 하나님 나라 의 비전을 몸으로 체화(embody)하고 세상에서 그 질서를 구현하도록 보 냄 받았다고 설명한다.
3권 왕을 기다리며에서는 교회가 단순히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넘어서, 존재 자체로 하나님의 왕되심을 선포하는 정치체 (폴리스, polis)라고 규정한다.
신자는 개인적 신앙을 넘어 하나님 도성의 시민(citizen of the City of God)으로서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질서 를 몸으로 증언하는 공적 삶을 살아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스미스는 세속화 시대의 특징으로 개인의 진정성에 대한 갈망, 욕망적 소비, 그리고 사회적 상상력을 강조한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 1931-) 에 주목하며,4) 인간은 이성적 존재(Homo sapiens) 이전에 욕망하는 존재 (Homo desiderans)라고 주장한다.
4) Charles Taylor, A Secular Age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2007), 481; Mordern Social Imaginaries (Durham, NC: Duke University Press, 2004), 23.
모든 인간은 그가 욕망(사랑)하는 대상을 예배함으로 삶을 형성하는 예전적 존재(Homo liturgicus)라는 것이 다. 스미스는 이러한 주장이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우리는 사랑하는 것을 예배한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가르침과 맞닿아 있다고 설명한다.5)
스미스는 이 가르침을 다시 현대 교회에 적용하여 몸으로 드리는 예배와 훈련을 강조한다.
또, 기독교 세계관 교육이 다분히 지성적이라고 비판하 며, 습관의 형성과 공동체성이 보완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는 스스 로를 ‘카이퍼리안’이라고 소개하며 신칼빈주의 입장에서 적극적 문화 변 혁을 강조한다.6)
동시에 전통적 개혁주의와 거리가 있어 보이는 자크 데 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 장프랑수아 리오타르(Jean-François Lyotard, 1924-1998), 미셀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의 이론을 개 혁주의 관점에서 비평적으로 전용(appropriation)함으로써 오늘날 유행처 럼 번지는 공공신학을 개혁파 전통과 긴밀하게 연결하려고 하였다.7)
5) Augustine, The City of God, 조호연 & 김종흡 역, 『하나님의 도성』 (고양: 크리스천다이제스트, 2016), 14.28; James K. A. Smith, Awaiting the King, 박세혁 역, 『왕을 기다리며』 (서울: IVP, 2019), 67-68; Desiring the Kingdom, 박세혁 역, 『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라』 (서울: IVP, 2019), 67; On the Road with Saint Augustine: A Real-World Spirituality for Restless Hearts, 박세 혁 역, 『아우구스티누스와 함께 떠나는 여정』 (파주: 비아토르, 2020), 136-137; 스미스가 아우구스 티누스 전통을 계숭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다음의 글을 참조하라: 김승환, “급진정통주의의 인간 이해와 성만찬 정치체에 관한 연구,” 「신학과 실천」 78 (2022): 19; 오경환, “제임스 스미스의 아비 투스를 통한 몸의 욕망과 형성: 뉴노멀 시대의 고찰,” 「신앙과 학문」 26(2) (2021): 65-66; 현기상, “제임스 K. A. 스미스의 예전적 정치신학에 대한 연구 및 평가,” 「조직신학연구」 35 (2020): 153; 전 희준, “아우구스티누스와 에드워즈의 감정 신학: emotion과 affection의 차이를 중심으로,” 한국개 혁신학 86 (2025): 11.
6) Smith, 『왕을 기다리며』, 17.
7) Smith, Who’s Afraid of Postmodernism?, 설요한 역, 『누가 포스트모더니즘을 두려워하는가?』 (파주: 도서출판 100, 2023).
그러나 그의 신학적 기여는 공공신학적 관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스 미스가 예전과 교회 중심적 해법을 강조한 나머지, 제도적 정의, 정책적 대안, 구체적 실행안은 미비하다.
기독교 세계관과 공공신학의 핵심적인 차이점은 ‘이중언어’라고 할 수 있는데, 스미스가 강조한 기독교적 가치가 공론장에서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시장 또는 현장의 언어로 번역되지 않 는다면, 비신자들과 소통은 어려워져 다시 교회 내 언어로 환원될 수 있다.8)
또, 스미스가 제시한 문화 예전 기획이 비서구권이나 아시아권에서 도 얼마나 활용될 수 있을지도 의문인데, 이는 공공신학의 특징인 지역적 상호맥락성에 대한 고려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미스는 현존하는 비교적 최근의 신학자로서 그에 대한 논의가 활발 히 진행되고 있다.
국내에서 유은희는 스미스가 제시한 예배를 통한 사회 적 상상력의 회복, 기독교 공동체의 감수성을 회복하는 기독교 교육의 필 요성을 주장하였다.9)
오경환은 인간 형성의 주요 감각으로 스미스가 강 조한 아비투스(habitus) 개념을 고찰하고, 그것이 기독교 교육학 관점에 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제언한다.10)
정재후는 스미스가 개인주의 와 합리주의로 특징지어지는 모더니즘보다, 오히려 포스트모더니즘 안에 신학적으로 수용할 만한 통찰이 더 많다고 본 점에 주목했다. 그는 기존의 제자 훈련이 지성에 치우쳤다면, 앞으로는 몸과 마음을 아우르는 전인적 훈련과 예전적 공동체를 통해 지역사회 안에서 덕과 정의를 세워가야 한 다는 결론을 도출하였다.11)
김승환은 스미스가 수용하는 급진정통주의자 가 근대적 세속화를 비판하고 존재의 신성함을 회복하며 성만찬적 예전 공동체가 세속 사회의 대안적 모델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급진정 통주의가 근대의 이원론을 경계하여 근대 이전의 일원론적 사고로 돌아 가지만, 세속성과 종교성을 다시 극렬하게 구분하는 더 심한 이원론에 빠 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12)
8) 김민석, “하인리히 베드포드-슈트롬이 제시한 공공신학의 특징,” 「한국조직신학논총」 63 (2021): 45-50.
9) 유은희, “James K. A. Smith가 제안하는 기독교 교육 및 형성에 관한 고찰,” 「기독교 교육 논총」 60 (2019): 153-193.
10) 오경환, “제임스 스미스의 아비투스를 통한 몸의 욕망과 형성: 뉴노멀 시대의 고찰,” 「신앙과 학 문」 26(2) (2021): 63-83.
11) 정재후, “‘급진정통주의’(Radical Orthodoxy)의 포스트모더니즘 담론 수용에 대한 비판적 연구 - 제임스 K. A. 스미스(James K. A. Smith)의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수용을 중심으로,” 「장 신논단」 56(1) (2024): 129-162.
12) 김승환, “급진 정통주의의 인간 이해와 성만찬 정치체에 관한 연구,” 「신학과 실천」 78 (2022): 25, 27; 임형권은 급진정통주의와 개혁신학이 창조신학과 성례전적 세계관을 공유하지만, 급진정통주 의는 동방 기독교의 핵심 개념인 ‘신성화’(deification)를 중요 모티브로 삼고 있기에 창조와 구속 의 관계, 칭의와 성화, 기독론적 측면에서 차이를 보인다고 지적한다. 임형권, “급진정통주의 신학 에 대한 개혁신학적 평가와 비판: 존 밀뱅크를 중심으로,” 「개혁논총」 29 (2014): 167-211.
한편, 비평적 입장도 없지 않다.
안덕원은 예배를 통한 사회 참여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문화적 예전 기획’이 지닌 지나친 낭만성과 공공신학적 모호성을 지적한다.13)
백광훈은 교회가 세상 을 변화시킬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관념의 영역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을 추동하는 문화의 영역이라는 스미스의 지적에 동의하지만, 그 방식에 있 어서 크리스텐덤에 대한 열망이 지역사회와 협력을 어렵게 한다고 비판 한다.14)
국외에서 스콜디노(J. Scordino)는 스미스가 세속 사회 이해에 대 한 찰스 테일러의 독법(讀法)을 활용하여 자기중심적, 소비지향적인 현 대 기독교의 병폐를 진단하고, 예전적 인간을 통한 문화 변혁을 제시하였 다고 평가한다.15)
랄슨(J. Larson )과 맥레놀즈(C. McReynolds )는 스미스 의 You Are What You Love와 팔크(C. Falke)의 The Phenomenology of Love and Reading 두 책을 비교하며 우리가 무엇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우 리의 정체성이 결정된다는 공통점을 밝힌다.16)
13) 안덕원, “한국 개신교회의 상황에서 고찰하는 James K. A. Smith의 예배신학,” 「복음과 실천신학」 54 (2022): 133-165.
14) 백광훈, “제임스 스미스의 문화적 예전 기획(Cultural Liturgies Project)에 대한 비판적 연구,” 「선교와 신학」 62 (2024): 231-262.
15) Anthony J. Scordino, “Liturgical Animals in a Secular Age: On Charles Taylor and James K. A. Smith,” Horizons 50(2) (2023): 325-364.
16) J. Larson and C. McReynolds, “You Are What You Love: The Spiritual Power of Habit by James K. A. Smith, and: The Phenomenology of Love and Reading by Cassandra Falke,” Christianity & Literature 68(2) (2019): 351-354.
스미스는 사랑과 예배 습 관을 통한 문화 변혁을 목표로 하며, 팔크는 문학을 통한 사랑과 타자 이 해를 강조한다고 했다. 본 논문은 이러한 선행연구를 토대로 스미스의 개혁파 공공신학적 기 여를 평가하고, 그것이 현대 공공신학 논의에서 갖는 한계를 조명하는 동 시에, 한국교회에 주는 시사점을 추출하고자 한다.
스미스에 대한 선행 연구는 많지만, 공공신학적 평가는 국내외적으로 거의 없는데, 이것이 본 논문의 가치와 기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공공신학에 대한 논의 와 관심이 고조되면서 자유주의신학이나 다양한 배경의 공공신학이 등장 하는 상황에서 아우구스티누스와 칼빈과 카이퍼 전통을 따르는 스미스를 통해 개혁파 공공신학의 특징을 확립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비상계엄과 탄핵으로 혼란하고 양분화된 한국 사회에서 교회의 공적 역할을 제시한 다는 점에서 목회적이고 시의적절하다는 점에서 본 논문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Ⅱ. 스미스의 개혁파 공공신학적 기여
1. 예전을 문화 변혁의 기초로 놓음
인간은 무엇에 따라 움직이는 것일까? 스미스는 인간이 생각, 신념, 신 앙이 아니라 욕망에 따라 움직인다고 설명한다. 인간이란 근본적으로 욕 망하는 피조물이므로 자신이 욕망하는 대상을 예배하는 예전적 존재라 는 것이다.17)
스미스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 우리가 누구인지를 규정하 므로, 우리의 궁극적 사랑의 대상이 예배하는 대상이 된다고 한다. 그러므 로 우리의 욕망과 궁극적 사랑의 방향이 아우구스티누스의 표현을 빌리 자면, 지상 도성을 향할 것이 아니라, 천상 도성 곧 진정한 예배의 대상인 하나님을 지향하도록 형성시켜야 한다는 것이다.18)
스미스는 아우구스티 누스의 유명한 말 “당신은 우리가 당신을 향하도록 만드셨기에 우리 마음 은 당신 안에서 쉬기까지 안식할 수 없습니다”19)는 말을 인용하면서, 이것 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을 욕망하는 피조물’임을 말해주는 증거라 고 설명한다.20)
17) Smith, 『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라』, 56.
18) 여기서 스미스는 지상 도성과 천상 도성이 공간적 개념이라는 것을 거부한다(Smith, 『하나님 나라 를 욕망하라』, 65). 이에 대해서는 본 논문 6쪽 이하에서 다룰 것이다. 보다 자세한 논의는 아래 졸 고를 참조하라. 황경철, “제임스 스미스와 데이비드 반드루넨의 공적신학 비교연구,” 철학박사학 위논문,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2022, 63-64.
19) Augustine, The Confessions (London: Penguin Classics, 1961), 1.1.1.
20) Smith, 『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라』, 111.
예전은 우리를 특정한 사람으로 만든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 우리를 규정 한다. 예전이 이런 기능을 하는 까닭은 우리는 세상에 대한 우리의 방향 설 정이 머리로부터 아래로 내려가며 이루어지기보다는 몸으로부터 위로 올라 가며 이루어지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예전은 우리의 몸을 통해 우리 마음을 훈련시킴으로써 우리의 사랑을 다른 방향으로 향하게 만든다. 예전은 우리 로 하여금 특정한 방식으로 세상에 다가가게 하고, 특정한 물건의 가치를 평 가하게 하며, 특정한 목표를 추구하게 하고, 특정한 꿈을 좇게 하며, 특정한 일을 이루기 위해 협력하게 한다.21)
문제는 욕망 자체가 아니라 욕망의 방향이다. 스미스는 세속적 쾌락 을 향해 추동되는 인간의 욕망이 창조주 하나님께로 조정되고 훈련받는 현장이 예배의 자리라고 말한다.
예배하는 가운데 머리보다 몸이, 의식적 판단보다 습관적 성향이 하나님께 향하도록 연마되고 빚어지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예배는 내용만큼이나 형식이 중요한데, 이유는 성경의 이야 기와 성령으로 가득한 예배가 세속적 예전으로 형성된 독소를 제거하고, “대항 형성적 실천”(counter-formative practices)과 공동체적 제자도를 형 성하기 때문이다.22)
한 걸음 더 나아가 스미스는 우리의 시선을 욕망과 예전에만 한정하지 않고, 문화적 변혁으로 확장한다.
예배와 성만찬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 의 삶에 사로잡히며, 그리스도와 연합으로 이끌려 들어가, 창조 세계 가운 데 삼위일체 하나님의 일하심에 참여하게 된다.23)
21) Smith, 『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라』, 35-36.
22) Smith, You are what you love, 박세혁 역, 『습관이 영성이다』 (파주: 비아토르, 2018), 125-127.
23) Smith, Imagining the Kingdom, 박세혁 역, 『하나님 나라를 상상하라』 (서울: IVP, 2018), 262.
결국 예전적 인간은 하나님을 욕망하는 실천과 습관을 형성함으로써 일상의 거룩과 가정의 성 화를 이루어 가도록 초대된다.24)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것은 단순한 복음 전도를 넘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고, 하나님 나라의 샬롬을 지향 하는 방식으로 일상 속 자신의 소명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인의 행동인데, 이 행동이 예배를 통해 형성된 우리의 아비투스(성향 및 습관)를 통해 흘 러나온다는 것이다.25)
스미스의 ‘예전적 인간관’은 그의 ‘문화 예전 기획’ 3부작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이다.
1권에서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이므로 욕망을 훈련하여 기 독교 세계관을 형성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실천할 수 있다고 말한다.
2권 은 몸의 실천과 습관의 형성을 강조하며 세계를 회복하는 삶의 이야기로 예배의 현장과 범위를 확장한다.
3권에서 정치가 국가에 대한 일종의 예 배이듯, 그리스도를 왕으로 예배하는 것이 정치적 행위요, 교회 자체가 정 치적 폴리스(political polis)라는 공공신학적 논의로 이끌어 간다.
이처럼 스미스의 예배에 대한 일관된 강조는 한국교회가 개혁파 공공신 학으로 나아가는데 최소한 두 가지 점에서 기여한다.
첫째, 공공신학이라 는 용어가 매우 최근에 등장한 까닭에26) 공공신학 개념에 대한 일치된 정의 가 없고 신학적 배경에 따라 그 주장과 강조점이 천차만별인 상황에서27) 공공신학의 주체인 교회가 어디에 닻을 내려야 할지 일깨운다.28)
24) Smith, 『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라』, 304.
25) Smith, 『하나님 나라를 상상하라』, 268.
26) ‘공공신학(Public Theology)’이라는 용어는 시카고 대학의 마틴 마티(Martin E. Marty)가 1974 년, “Reinhold Niebuhr: Public Theology and the American Experience,” The Journal of Religion 54/4 (1974): 354-355에서 처음 사용하였다.
27) 가령, 데이빗 트레이시(David Tracy)를 주축으로 한 시카고학파는 텍스트보다 콘텍스트를 강조하 며, 콘텍스트를 위해 텍스트를 수정할 수 있다고까지 주장하는 수정주의(Revisionist) 입장이다. 이에 대응하여 조지 린드백(George A. Lindbeck)과 로널드 띠먼(Ronald F. Thiemann)을 위시 한 예일학파는 그러한 방식이 진리의 절대성과 기독교의 고유성을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고 수정주 의에 반대한다. 공공신학은 성경적 내러티브와 기독교 공동체의 예배와 신앙생활에 기반할 때, 다 원주의 문화 속에서도 공적인 목소리를 되찾을 수 있는 자원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학자들 의 신학적 전제에 따라 공공신학의 스펙트럼이 다양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자, 개혁파 공공신학 개념의 학문적 정립이 절실히 필요한 까닭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로 다음을 참조하라: 김은 득, “공적으로 신학하기(Doing Theology Publicly): 헤르만 바빙크를 중심으로,” 「조직신학연구」 44 (2023): 150-185.
28)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에베소서 1장 23절 은 예배당을 넘어 만물을 충만하게 하는 공공신학의 주체로 교회를 지목한다. 황경철, 『어서 와, 공 공신학은 처음이지』 (서울: 세움북스, 2023), 18.
민중신 학, 해방신학, 진보신학, 여성신학, 퀴어신학, 자유주의신학에서 ‘공공신 학’이라는 용어는 동일하게 사용하지만, 그 주장하는 내용과 신학적 전제 는 말 그대로 동상이몽이다.
교회가 먼저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고 온전히 예배할 때, 비로소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는 그 분의 몸으로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엡 1:23).
둘째, 예배 중에 선포되는 말씀으로 성도는 교회의 담장을 넘어 가정, 직장, 일상, 피조계 전체를 회 복하는 거룩한 사회적 상상력을 발휘하고 실천할 수 있다.
작금의 한국교 회가 사회적 담론에 대하여 공론장에 참여하는 모습은 어떤가?
개별 지역 교회에 대한 헌신과 강조로 사회 문제에는 소극적인 반(反)문화적 행태를 띠거나, 일부 극우적 교회처럼 복음을 정치적 이념으로 환원시키는 양 갈 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형국이다.
스미스의 예전 신학과 사회적 상상 력은 반문화도 정치과몰입도 아닌 둘 사이의 적당한 지점에 개혁파 공공 신학의 자리를 찾도록 활로를 마련한다.
2. 지성적 세계관 훈련보다 습관 형성을 통한 전인적 제자도 강조
스미스는 종래의 기독교 세계관 교육이 주지주의(主知主義)에 기반하 여 다분히 지성 중심의 교육으로 쏠려 있었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기독 교 세계관 교육의 방식과 강조점이 앎에서 욕망과 실천과 공동체적 제자 도를 포괄한 방식으로 조정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29)
29) Smith, 『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라』, 123-124, 330-336.
그는 기존의 세 계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 정향이 사고나 신념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사실 을 이해하지 못하는 다소 미숙한 인간론에 머물러 있다고 안타까워한다.
그래서 몸과 감각의 욕망 교육을 통해 습관을 형성하고 문화적 실천을 병행하는 통합적인 세계관 교육이 필요하다고 대안을 제시한다.30)
스미스의 이 같은 욕망하는 존재로서의 인간론은 언뜻 개혁주의 인간론과 긴장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개혁주의 전통은 인간을 인간 전체, 즉 영혼과 몸으로 구성된 ‘영-육 통일체’로 설명하기 때문이다.31)
그리하여 지성보다 마음의 욕망과 몸의 습관을 강조하는 스미스의 주장이 생경하 게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스미스의 의도는 인간의 본질인 지성과 육체를 분리하거나, 지성을 배제하려는 것이 아니다. 신자가 아무리 올바른 기독 교 세계관을 배웠더라도 욕망의 성향이나 습관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결국 배운 세계관과 모순된 방식으로 행동할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32)
스미스도 자신이 기독교 세계관 자체를 거부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성적 측면에만 집중함으로써 정서적 측면의 중요성이 소홀해진 것에 대한 ‘비 판적 지지’로 생각해달라고 읍소한다.33)
안토니 후크마도 교회가 교리에 대한 기계적인 “지식” 이상의 것을 주어야 한다면서 운동과 옥외활동들이 온전한 크리스챤의 삶의 한 국면으로서 권장되어야 한다고 말했다.34)
김기현은 세계관은 ‘세상을 바라보기’일 뿐 아니라 ‘세상을 살아내기’ 라고 적시하며, 몸과 삶으로 드리는 예배를 옳게 강조한 스미스에 찬동한 다.35)
30) Smith, 『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라』, 64-65.
31) Herman Bavinck, Gereformeerde Dogmatiek, 박태현 역, 『개혁교의학 Ⅱ』 (서울: 부흥과개혁 사, 2020), 700; Anthony A. Hoekema, Created in God’s Image, 류호준 역, 『개혁주의 인간론』 (고양: CLC, 2204), 359-360. 32) Smith, 『하나님 나라를 상상하라』, 40.
33) Smith, 『하나님 나라를 상상하라』, 39, 강조는 스미스의 것; 스미스는 그의 책 『칼빈주의와 사랑에 빠진 젊은이에게 보내는 편지』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1)에서 자신이 기독교 세계관의 유익을 분 명히 인정했다고 밝힌다, 『하나님 나라를 상상하라』, 39, 각주 16에서 재인용.
34) Anthony A. Hoekema, 『개혁주의 인간론』, 369.
35) 김기현, “기독교 세계관 개념을 재정의하기: 세계관을 몸으로 살아내기 위하여,” 「신앙과 학문」 29(3) (2024): 217, 220.
성경은 지식과 사랑, 머리와 마음의 역동적 관계로 엮인 통전적 인 간관을 제시하고, 그리스도는 우리의 지성뿐 아니라 우리 감정의 근원인 ‘내장(腹)’까지도 사로잡으신다.36)
그러므로 우리 몸의 신체성을 배제한 교육은 아무리 지적으로 정교하고 풍부할지라도 지나치게 정태적(情態 的)이어서 우리의 삶을 변혁할 만큼 충분히 역동적이지 못하다고 스미스 는 지적한다.37)
1990년대 이후 기독교 세계관 운동은 지성인들과 대학생 선교단체를 중심으로 활발히 전개되었다. 기독교 세계관은 부흥과 성장, 구령의 열정 에만 쏠린 한국교회에 현실 사회와 세상을 보도록 균형 있고 거시적인 안 목을 제공하였다.
한 영혼의 구원도 중요하지만, 사회의 구조적 부조리와 악에 대해서도 교회가 선지자적 사명으로 책망하고 기도해야 한다는 균 형 잡힌 시각을 갖게 하였다.
기윤실, 복음과 상황,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 회, 한국 라브리 등 일군의 단체들이 그 열매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 내 기독교 세계관 운동에 대한 반성도 없지 않은데, 다분히 철학 적이어서 실천적 삶과 괴리되었고, 일반 성도보다 지성인들의 전유물이라 는 비판을 받았다.38)
이러한 문제의식에 대하여 스미스가 제시한 기독교 세계관 교육은 지성뿐 아니라 감정과 신체를 포괄한 전인적 교육을 통한 일상 속 실천을 강조한 통합적 접근이라 할 수 있다. 스미스는 기독교 교육의 구체적 방안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욕망의 대상을 중독된 대상에서 하나님에게로 지향하도록 예전 가운데 행동의 실천, 반복적 습관, 거룩한 성례로 우리의 감각과 성향과 상상력이 빚어져 야 한다는 것이다.
부패한 인간은 ‘자연스럽게’ 특정한 형태의 왕국을 욕 망하지 않기 때문에 더 좋은 삶의 특정한 형태를 지향하도록 예배와 공동 체를 통해 훈련되어야 한다.39)
36) Smith, 『습관이 영성이다』, 26.
37) Smith, 『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라』, 67.
38) 김기현, “개혁주의 세계관 비판과 변혁 모델의 다양성,” 「기학연-복상 공동포럼 자료집」 (2003): 37; 유경상, “21세기 기독교 세계관 운동의 방향과 기독교 세계관 교육,” 「통합연구」 20(1) (2018): 51, 53.
39) Smith, 『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라』, 90 (강조는 스미스의 것).
스미스의 이러한 주장은 개혁파 공공신학에 어떤 기여를 남길까?
첫째, 지성적 훈련에 치우친 교회 교육이나 제자 훈련이 전인적으로 이루어지도록 방향을 조정한다.
수많은 세미나, 세계관 교육, 교리 교육 등이 매우 주지주의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도 못할 만큼 한국교회 안 에 오랫동안 이루어져 온 것이 사실이다.
스미스는 그러한 교육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교리와 함께 실천, 지성을 넘어 전인(全人), 일대일 과 함께 공동체적 접근의 중요성을 촉구한다. 이는 스마트폰과 소셜미디 어에 몰입되어 은둔형 외톨이로 고립된 생활을 지속하는 ‘불안 세대’(The Anxious Generation)에게 신체적·공동체적 회복의 통로를 제공한다.40)
예배는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규칙적으로 이루어지는 몸의 실천이라는 면에서 습관과 뗄 수 없다.
몸의 활동을 통한 경험의 축적과 습관의 형성 은 코로나로 무너진 대면 예배의 회복, 성만찬, 성도의 교제, 교회학교 교 육의 측면에서도 중요한 자원이 된다.41)
둘째, 세상에 귀를 닫고 교회 생활에만 열심인 소위 믿음 좋다는 성도 들의 초자연주의적인 영지주의와 다른 한편으로 물질주의적이며 무기력 한 자연주의 양쪽 모두에 저항할 힘을 키워준다.42)
그것은 공교회의 예배 뿐 아니라, 함께 식사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봉사하고, 함께 생각하고 독서하는 공동체적 실천을 통해 형성되고 자라가는 것이다.43)
40) Jonathan Haidt, The Anxious Generation, 이충호 역, 『불안 세대』 (서울: 웅진지식하우스, 2024), 60.
41) 김은주, “습관 형성으로서의 예배에 대한 기독교 교육적 이해,” 「기독교교육논총」 70 (2022): 240.
42) Smith, 『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라』, 215.
43) Smith, 『습관이 영성이다』, 253-54.
그럼으로써 창조명령이자 문화명령을 십자가 복음과 성령의 능력으로 감당하는 급진 적인 제자, 성숙한 시민을 세워가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 되도록 이끈다.
3. 이원론적 사고보다 사회적 상상력을 통한 믿음과 삶의 통합
하나님의 은혜에 힘입어 한국교회는 70년대 이후 급속한 부흥과 성장 을 경험하였다.
그러나 그 이면에 성(聖)과 속(俗)의 분리, 주일과 주중의 삶이 괴리된 이원론적 신앙은 오늘날 교회가 세상에 지탄을 받는 빌미가 되었다.44)
성속이원론은 초대교회 당시 영지주의, 중세의 수도원주의, 종 교개혁시대의 신비주의, 근대의 이신론(Deism) 등으로 이어지며, 양상과 정도만 바뀌었을 뿐 교회의 역사만큼이나 오랫동안 바른 복음을 훼손시 켜 왔다.
스미스는 자기 역시 아브라함 카이퍼의 복음을 듣고서 자신을 가르친 선생님들이 끊임없이 천국만 강조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고 회고한다.45)
이전까지 편협하고 확고한 북미 복음주의의 이원론적인 분파 안에서 자 신이 회심하고 성장했던 까닭에, 도시 계획이나 개발도상국의 수자원 확 보에 관해 어떻게 혹은 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지 할 말이 거의 없었고, 차라리 휴거에 대비하는 천국 중심의 경건을 추구했다고 말한다.46)
44) 최승기, “몸을 존중하는 영성,” 「신학과 실천」 78 (2022): 106.
45) Smith, 『왕을 기다리며』, 160.
46) Smith, 『왕을 기다리며』, 159.
그러 나 카이퍼를 통해 문화에 대한 이원론적 관점이 획기적으로 변화되었다 고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카이퍼의 복음을 들었을 때, 나는 큰 충격을 받은 동시에 약간 화가 났다.
나 는 죄와 영혼 구원뿐만 아니라 창조, 문화 만들기, 정의에 대한 관심을 포함 하는 구속에 대한 통전적 이해를 아우르는, 성경 서사에 대한 더 풍성한 이 해를 접하게 되었다. 나는 하나님이 비물질적인 영혼에만 관심을 기울이시 는 것이 아니라 만물을 속량하시며 피조물을 갱신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이 이 세상의 구속도 성취했다. 복음은 우리의 영혼을 위한 탈출 장치에 관한 선언이 아니라 샬롬의 틈입이다.47)
스미스는 ‘문화명령’(창 1:26-31)과 ‘대위임령’(마 28:18-20)이 서로 별 개가 아니라 연속선상에 놓여있다고 확언한다.48)
대위임령을 통해 죄 사 함과 구원을 확신한 신자는 문화명령을 따라 그 나라의 온전한 도래를 대 비하고, 문화적 대리인으로 살아가며 하나님 나라를 연습한다.
그렇다 면 스미스는 문화명령과 대위임령, 주일과 주중, 공예배와 일상, 성과 속 을 어떻게 통합시킬까? 스미스는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성례전적 상상 력’을 훈련해야 한다고 답한다.49)
예컨대, 신앙고백은 믿음의 좌표를 설정 하는 것이요,50) 기도는 하나님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것이며,51) 성경과 설 교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대본이자 이들의 정체성을 알려 주 는 이야기이다.52)
성만찬은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미리 맛보는 왕과 함께 하는 종말론적 만찬이며,53) 봉헌은 하나님 나라의 감사와 나눔 경제의 실 천적 구현이 된다.54)
성만찬에 참여하며 떡과 포도주가 우리의 배를 건드 리듯이, 봉헌 시간은 우리의 지갑을 건드린다.
이 점에서 스미스는 예배가 얼마나 ‘세속적’인지를, 그리고 예배당이라는 공간이나 종교적 영역 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55)
47) Smith, 『왕을 기다리며』, 159-60.
48) Smith, 『하나님 나라를 상상하라』, 259, 277.
49) Smith, 『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라』, 208.
50) Smith, 『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라』, 290.
51) Smith, 『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라』, 294.
52) Smith, 『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라』, 298.
53) Smith, 『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라』, 302, 306.
54) Smith, 『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라』, 311.
55) Smith, 『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라』, 312.
신자는 성례전 가운데 사회적 상 상력을 발휘함으로써 예배에서 만난 삼위 하나님과 일상을 회복하고, 사 회·정치 공동체 안에 화해와 용서가 회복되며, 분배와 소비를 재편성하 는 하나님 나라의 대안적 경제를 꿈꾸게 된다.56)
상상력은 세속 문화와 지배 현실에 도전하여 싸울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라는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n) 지적대로 스미스는 결은 다르지만, 예전 가운데서 예배당 을 넘나드는 사회적 상상력을 자극시켰다.57)
스미스의 이원론 극복에 대한 관점은 아우구스티누스의 두 도성 읽기 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지상 도성과 천상 도성 사이의 대립의 핵심은 두 도성 사이의 공간적, 영역적 대립이 아니라, ‘내면의 사랑의 대립이요, 의지의 방향에 있어서 대립’이라는 것이다.58)
즉, 교회와 국가, 영적인 것 과 정치적인 것은 깔끔하고 단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복 잡하게 혼재되어 있는데, 이 ‘혼재성’이 오히려 교회가 세속 국가에 복음 을 선포하고 복음의 분화구를 만드는 기회의 틈이라고 설득한다.59) 그러 므로 성도가 물어야 할 질문은 교회냐 국가냐, 기독교냐 정치냐, 지상 도 성이냐 천상 도성이냐와 같이 ‘어디’에 관한 질문이 아니라 하나님 사랑이 냐, 자기 사랑이냐와 같이 ‘어떻게’ 하나님 나라에 참여할까에 관한 것이 다.60)
56) Smith, 『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라』, 313.
57) Walter Brueggemann, The Prophetic Imagination, 김기철 역, 『예언자적 상상력』 (서울: 복있 는 사람, 2009), 100. 브루그만이 예언자적 상상력을 통해 사회적 부정의와 부조리에 대한 비판과 희망적 대안을 강조했다면, 스미스는 예전적 상상력에 무게중심을 두었다.
58) Smith, 『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라』, 65; 『왕을 기다리며』, 39, 41; Augustine, The City of God, 14.4. 아우구스티누스의 두 도성에 대하여 데이비드 반드루넨은 두 도성 사이의 ‘대립성’을 강조하 여 이를 자신의 ‘두 왕국론’의 논거로 채용한다. 스미스는 이에 대하여 아우구스티누스 사상의 핵 심적 양상을 제거하였을 뿐 아니라, 반드루넨의 말대로 점진적·점증적 전환이 아니라 치환(置換)이 라고 강하게 비판한다. 자세한 논의는 황경철, “제임스 스미스와 데이비드 반드루넨의 공적신학 비 교연구,” 70-78을 참조하라.
59) Smith, 『왕을 기다리며』, 50, 191.
60) Smith, 『왕을 기다리며』, 56.
스미스의 이러한 통찰 아래서 교회의 역할을 전망한다면 교회는 복 음에 충실한 그리스도의 제자를 세우는 동시에 성도들이 자신과 관계된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욕망하고 예배하는 시민으로 파송하도록 힘써야 한다.
그것은 설교의 언어를 넘어서, 밥을 먹는 방식, 아이를 키우는 방식, 소비의 방식, 이웃과의 대화, 직장에서의 태도, 투표의 선택 속에 녹아든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등지는 도피주의도 아니고, 세 상의 모든 것을 변혁할 수 있다는 승리주의도 아니다.
스미스의 관점은 이 양극단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가는 교회로 하여금 통합적 안목과 겸허한 자세로 이원론적 신앙을 극복하도록 돕는다.
4. 포스트모더니즘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도 성경과 개혁파 전통에 천착
스미스는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이 기독교 신앙에 도전이 아닌 기회와 자극이 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모더니즘의 철저한 개인적 자율성과 이성 주의, 합리주의보다 그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포스트모더니즘이 기독교 적 본질을 회복하는데 훨씬 부합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스미스가 문화신 학과 공공신학을 논의함에 있어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콘텍스트를 액면 그대로 수용한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을 밀어내거나 방어하는 대 상으로 삼지 않고 비판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의미이다.61)
61) Smith, 『누가 포스트모더니즘을 두려워하는가?』, 15.
스미스는 Who’s Afraid of Postmodernism? 에서 데리다, 리오타르, 푸코를 소환하여 그들 의 이론을 개혁파 공공신학적 관점에 전용한다.
가령, “텍스트 바깥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데리다의 주장에 대해 초월 자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텍스트 바깥에 있는 실재를 부정 할 수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한다고 하자.
그러나 이것은 맥락을 인식하지 못한 오해라며 스미스는 데리다의 통찰을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해체가 주장하는 “텍스트 바깥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종교개혁의 ‘오직 성 경’(sola scriptura) 원리를 철저하게 번역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데리다 의 통찰력은 교회의 두 가지 핵심 강조점을 회복하도록 다그친다. (a) 세계 전체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매개하는 성경의 중심성과 (b) 성경을 해석할 때 공동체의 역할이다.62)
또, 리오타르의 “포스트모더니즘은 메타 내러티브를 불신하는 것이다” 의 주장에 성경의 방대한 내러티브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사람이 어 떻게 메타 내러티브를 거부할 수 있냐고 반박할 수 있다.
스미스는 기독교 신앙은 메타 내러티브와 같은 사상의 집합이 아니라 내러티브적 성격을 회복해야 하고, 그 내러티브 안에서 성도는 자신을 발견해야 한다고 설명 한다.
“권력은 지식이다”는 푸코의 주장도 교회는 형성과 훈육을 통해 양 성된 제자들이 세속 사회에서 대안 문화를 형성하는 힘을 발휘하도록 이 끌어야 한다고 그의 통찰을 채용한다.63)
스미스의 포스트모더니즘 주요 사상가들에 대한 독해 방식이 옳은 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지만, 그가 현대 교회를 위협하는 것처럼 보이 는 다양한 시대사조를 외면하지 않고 담대한 질문들을 통해 그것의 맥락 을 밝히고 전제를 드러낸 것은 획기적이다.
그리하여 신학과 실천 둘 다 에서 교회에 주는 함의를 제시한다.
그 외에도 스미스는 현상학자인 후 설(Edmund Husserl, 1859-1938)과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Ponty, 1908-1961)의 ‘지각의 현상학’ 개념을 가져와 인간은 세상에 대해 단순히 주체와 객체의 관계가 아니라, “세계-내-존재”(Being-in-the-world, In-der Welt-sein)라고 규정한다.
즉, 우리는 습관을 통해 세계-내-존재로 살아 가는 방식을 만들며, ‘습관화된 몸’ 안에 그 방식을 형성(form)하고 개혁 (reform)하며 변화(transform)시킨다.64)
62) Smith, 『누가 포스트모더니즘을 두려워하는가?』, 35. 63) Smith, 『누가 포스트모더니즘을 두려워하는가?』, 36. 64) Smith, 『하나님 나라를 상상하라』, 88-95.
그래서 몸은 그저 우리의 정신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세상과 소통하는 수단”이자, 우리의 생각보다 앞선 지평이다.
물론 여기서 “세계-내-존재” 개념은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 (Martin Heidegger, 1889-1976)로부터 차용한 것이다.65)
또한 그는 예배자 가 성례전적 존재이며, 참된 예배는 성만찬적 환대가 이루어져야 함을 강 조하기 위해 성공회 사제로 전향한 한스 부어스마(Hans Boersma, 1961-) 의 글을 인용하기도 한다.66)
데리다의 해체주의적 해석학을 도입하여 폭력적인 ‘강한 신학’이 아니라 환대적인 ‘약한 신학’(Weak Theology)을 주 장한 존 카푸토, 급진정통주의를 주장하는 존 밀뱅크와 그레이엄 워드, 이 머징 교회를 주도한 브라이언 맥클라렌, 레너드 스윗, 그 밖에도 판넨베르 크, 하버마스, 가다머 등등 다양한 경계를 넘나들며 성경의 빛 아래서 비 판적으로 활용하면서도 개혁신학 전통에 충실하려는 스미스의 태도는 개 혁파 공공신학을 추구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67)
오경환은 스미스를 개혁주의 전통을 충실하게 따르는 신학자로서 급진 정통신학, 공공신학을 두루 섭렵했을 뿐 아니라,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를 통해 창의적 이고 새로운 인간론에 기반한 실천적 제언을 추구해 온 학자요, 근대적 기 획을 넘어 철학과 사상, 그리고 독특한 문화적 전례를 통해 실천·목회· 교회 지향적인 특성과 또한 다양한 생각과 사고와 철학을 일관성 있는 논 리로 대중에게 쉽게 전달한다고 평가한다.68)
65) Smith, 『하나님 나라를 상상하라』, 92.
66) Smith, 『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라』, 253; Hans Boersma, Violence, Hospitality, and the Cross: Reappropriating the Atonement Tradition, 윤성현 역, 『십자가, 폭력인가 환대인가』 (고양: CLC, 2014).
67) 이와 관련해서는 스미스의 다음의 책들을 참조하라: James K. A. Smith, The Fall of Interpretation, 임형권 역, 『해석의 타락』 (대전: 대장간, 2015); Who’s Afraid of Postmodernism?, 설요한 역, 『누가 포스트모더니즘을 두려워하는가?』 (파주: 도서출판 100, 2023); Jacques Derrida, 『자크 데리다』, 윤동민 역 (서울: 책세상, 2024).
68) 오경환, “제임스 스미스의 아비투스를 통한 몸의 욕망과 형성: 뉴노멀 시대의 고찰,” 「신앙과 학 문」 26(2) (2021): 64.
스미스는 이 광범한 자신의 논의를 개혁파 전통 위에 긴밀하게 정초시 킨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강조한 인간이 가져야 할 올바른 ‘사랑의 질서’ (ordo amoris)는 무엇인가?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해서는 향유하고(frui), 인간 이외의 사물들은 이용해야(uti)한다.69)
죄는 다름 아닌 이 사랑의 질서가 뒤바뀐 것이다.
스미스는 우리의 그릇된 욕망의 방향이 사랑의 질서 를 따라 하나님을 향하도록 재조정되어야 하는데, 그 현장이 예배라는 것 이다.70)
우리의 궁극적 사랑이 우리가 예배하는 대상이다.
참된 예배는 하 나님께 바치는 것으로 “전체 그리스도(totus Christus) 사상”에서 그리스도 를 사랑함과 그리스도인을 사랑함이 나눠질 수 없기 때문이다.71)
또한, 스 미스는 아우구스티누스를 인용하면서 자신이 부름을 받은 직업적 현장에 신실하게 응답하되, 자신이 장차 올 왕국을 앞당기거나 도래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72)
왜냐하면, 이것은 ‘이미와 아 직’ 사이의 종말론적 긴장을 놓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거를 이해하 고 미래를 고대하는 가운데 현재에 충실한 시간 안에 사는 법을 배워가야 한다.73)
공공신학자 가운데 시민사회를 도덕적으로 중립적인 것으로 이해하여 공공선의 회복과 공익 도모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기대하는 주장 들이 있다.74)
69) Augustine, De Doctrina Christina, 김종흡 역, 『기독교 교육론』 (고양: 크리스천다이제스트, 2010), 31-32.
70) Smith, 『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라』, 72-73.
71) 우병훈,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에 나타난 사랑의 갈등,” 「한국개혁신학」 70 (2021): 203.
72) Smith, 『왕을 기다리며』, 333.
73) James K. A. Smith, How to Inhabit Time: Understanding the Past, Facing the Future, Living Faithfully Now, 박세혁 역, 『시간 안에 사는 법』 (파주: 비아토르, 2024), 47.
74) 대표적으로 다음의 책들을 보라: Charles T. Mathewes, The Republic of Grace: Augustinian Thoughts for Dark Times (Grand Rapids: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10), 211; A Theology of Public Lif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2007), 211; Eric Gregory, Politics and the Order of Love: An Augustinian Ethic of Democratic Citizenship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8), 373-374. 264 조직신학연구 제51권 (2025년)
이에 대하여 김풍룡은 매튜(Charles T. Mathewes)가 아우구 스티누스가 강조한 ‘악한 세속(saeculum)’ 개념과 종말론적 급진성을 충 분히 소환하지 않고, 세속 정치의 구조적 폭력이나 악의 치명성을 간과하 였다고 비판한다. 또한 그레고리(Eric Gregory)가 시민의 질서와 덕성이 공공신학의 토대라고 주장한 것에 상응하여 김풍룡은 사탄의 영향으로 오염된 인간의 의지와 사랑과 사회정치적 덕성이 오직 몸된 교회의 예배 를 통해서만이 회복될 수 있다고 역설함으로써 스미스의 주장에 힘을 실 어준다.75)
칼빈은 교회의 전통을 중시하여 교부들과 교회 철학자들을 인용하면 서도 인문학과 과학과 법학적 지식을 활용하여 복음과 신앙의 원리를 설 명하였다. 칼빈이 제네바 도시의 변혁을 위해 이중언어를 통해 공공신학 적 목소리를 내었듯이, 스미스는 공공신학적 주장을 펼치기 위해 포스트 모던 시대의 개념과 용어를 비평적으로 활용하여 개혁파 전통에 연결하 고 있다.76)
또, 카이퍼의 가르침대로 하나님이 영혼 구원에만 관심을 기 울이시는 것이 아니라, 만물을 속량하고 갱신하신다 것에 동의하며 문화 변혁을 위해 사회 모든 영역에 복음의 분화구 자국을 내야 한다고 촉구한 다.77)
기독교가 감소하고 교회의 공적 책임이 요구되는 작금에 공공신학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자, 시대적 요청일 것이다.
그 러나 그러한 노력과 활동이 개혁신학적 전통에서 단절된다면 안전한 신 학적 토대와 성경적 가치관 모두를 상실한 채 인본주의적 열심만 남게 될 위험이 있다.
이승구는 다양한 공공신학적 주장에 대하여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지만, 진정한 개혁파 공공신학을 철저하게 추구하는 것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하였다.78)
75) 김풍룡, Agustine’s Apocalyptic political theology in the Evil saeculum (Lanham, Maryland: Fortress Academic, 2024), 207-225.
76) James K. A. Smith, Letters to A Young Calvinist: Invitation to the Reformed Tradition, 장 호준 역, 『칼빈주의와 사랑에 빠진 젊은이에게 보내는 편지』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1), 88; 김민 석, “공공신학의 관점에서 본 존 칼빈의 신학,” 「한국개혁신학」 69 (2021): 24-60.
77) Smith, 『왕을 기다리며』, 167, 191.
78) 이승구, “건전한 공적신학의 토대로서의 일반은총,” 「제 44차 한국복음주의조직신학회 정기학술 대회: 공공신학」 (2023): 9-10. 여기에서 이승구는 경계해야 할 공적신학의 특징 5가지를 지적한 다. 첫째, 기독교적 진리가 포기되는 형태의 공적신학, 둘째, 보편구원론적 함의를 지니는 것, 셋 째, 만유재신론적 방향으로 나가는 것, 넷째, 상징이나 개념과 은유만을 말해서 하나님이라는 말은 사용해도 결국 하나님을 모호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이 삼위일체 하나님이 아닐 수도 있 다는 것,다섯째, 이 세상의 문제를 인간의 힘으로 다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것이다.
스미스가 다양한 포스트모던 사상가, 철학자, 신학 자들의 글을 과감하게 인용하면서도 성경 본문과 개혁신학 전통에 천착 하려는 자세는 목회자와 성도들에게 신학적으로 안정한 토대 위에서 시 대사상과 문화를 전망하도록 돕는다.
Ⅲ. 스미스의 개혁파 공공신학적 한계
지금까지 스미스가 기여한 개혁파 공공신학적 요소를 논의하였다. 이 제는 그 주장의 한계와 보완점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스미스 가 문화 변혁의 기초를 교회와 예전 중심에서 출발한 것은 개혁파 전통에 충실한 것이지만, 거기에만 그치지 않았느냐는 아쉬움과 한계를 남긴다.
교회 예전을 통하여 내면의 욕망이 하나님께로 조정되고, 아비투스와 습 관이 형성되어 예전적 인간이 사회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문화를 변혁한 다는 것은 자못 이상적이지만,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 다.
그것은 스미스의 한계일 수도 있지만, 개혁파 공공신학을 궁구하는 우 리의 과제이기도 할 것이다.
스미스의 지적대로 하나님의 통치가 피조세 계 전체에 구현되고, 사회의 다양한 영역마다 복음의 분화구 자국을 내기 위해서는 현실적 제도, 정책적 입법, 실천적 방안과 같은 복잡한 공공 영 역에 설득력 있는 전략이 따라와야만 한다.
스미스가 옳게 강조한 대로 성 도의 삶은 예배당 안이냐 밖이냐의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일상적 삶과 현 실 세계에서 살아내는 삶의 태도와 방식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구체적으 로 어떻게 정치에 참여하고 시민으로서 감시해야 할지, 특별히 사회적으 로 논의가 뜨거운 기후 위기, 양극화 문제, 전쟁과 난민, 반려동물, 장애인 이동권, AI와 윤리 등의 사안에 대하여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바라보 고, 공론장에서 설득력 있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작업이 요구된다.
안덕원은 예전이 개인의 습관을 형성한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구 조적 악에 대한 현실적 대안이 부족해 스미스의 논지가 지나치게 낭만적 이라며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79)
둘째, 기독교 중심적 언어가 비신자에게 납득되도록 ‘이중언어’로 번 역될 필요가 있다. 하인리히 베드포드-슈트롬(Heinrich Bedford-Strohm) 은 공공신학의 특징 6가지로 성경적-신학적 특징, 이중언어 능력, 간학문 적(間學問的, interdisciplinary) 연구, 정치적 방향성 제시, 예언자적 속성, 그리고 상호맥락적 본질을 꼽았다.80)
김민석은 공공신학이 오늘날 다원화 된 공론장에서 이해될 수 있도록 이중언어 즉 신앙의 언어와 세상의 언어 를 동시에 구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81)
스미스의 주장이 개혁파 공공신 학에 더욱 효과적인 기여로 이어지려면 목회자와 교회와 성도 개인의 이 중언어 능력 함양이 절실하다.
왜냐하면, 한국교회가 교회 밖 비판 수용 준비가 얼마나 되었느냐는 설문조사에서 “준비되었다”(매우2.2% + 약간 13.2%) 15.4%, “준비되지 않았다” 80.0%(별로36.7% + 전혀43.3%)로 5명 중 4명은 한국교회가 세상과 소통할 준비가 되지 않았는지를 보여주기 때 문이다.82)
79) 안덕원, “한국 개신교회의 상황에서 고찰하는 James K. A. Smith의 예배신학,” 「복음과 실천신학」 54 (2022): 156.
80) Heinrich Bedford-Strohm, “Nurturing Reason: The Public Role of Religion in the Liberal State,” in Liberation Theology for a Democratic Society: Essays in Public Theology, ed. Michael Mädler and Andrea Wagner-Pinggera (Zürich: LIT Verlag, 2018), 24.
81) 김민석, “하인리히 베드포드-슈트롬이 제시한 공공신학의 특징,” 「한국조직신학논총」 63 (2021): 47.
82) 정병오, 『2023년 한국교회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 결과발표 세미나』 (서울:기윤실, 2023), 36.
개혁파 공공신학자와 목회자는 복음의 본질은 훼손하지 않으면 서 비신자가 이해하고 수긍하도록 세상의 언어로 번역하는 애씀이 필요 하다. 비록 그러한 노력이 교회의 성장이나 기독교의 증가로 직접적으로 이어지지는 않을지라도, 교회의 대사회적 신뢰도를 높이고 목회 생태계와 토양을 다지는 필요한 작업인 것만은 분명하다.
셋째, 비신자와 세속 사회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일반은총적 사역이 상대적으로 간과되었다. 예전을 통한 습관의 형성, 전인적 세계관 교육과 제자도 훈련은 기독교적 가치를 공고히 하고, 공공신학의 주체로서 교회 의 책임을 부각했다는 점에서 정당하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만을 견지한 다면, 자칫 교회가 세속 문화를 주도하고 변혁해야 한다는 크리스텐덤적 승리주의에 경도될 위험이 있다.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비신자들 가운데서도 다양한 문화적 스펙트럼을 허용하시며, 예술과 문화를 통해 그분의 창의성과 아름다움을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내신다.
정치와 법규, 도덕과 양심을 통해 악을 억제하고 질서를 유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물 론 이러한 일반은총이 비신자들로 하여금 구원을 얻게 하는 결과를 촉발 하지는 않는다.
다만, 교회와 신자의 일반은총에 대한 진지한 이해는 세상 을 변혁하려는 과도하거나 무례한 힘을 빼고, 긍휼한 시선으로 세상을 존 중할 수 있는 여유를 준다.83)
83) Michael Frost & Christiana Rice, To Alter Your World: Partnering with God to Rebirth Our Communities, 송일 역, 『일주일 내내 교회로 살아가기』 (서울: 새물결플러스. 2020), 109 114. 마이클 프로스트는 교회가 세상을 향해 의제를 내려놓고 변혁가의 자세가 아닌 ‘산파’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금 당장 복음 전도나 문화 변혁이나 자선 사업이 아니어도 비신자와 협력할 수 있는 겸손과 유연함을 갖추게 한다.
그런 면에서 스미스의 논의는 일반은총에 대한 넉넉한 자리를 내주지 못 한 듯한 아쉬움을 남긴다.
넷째, 스미스의 문화 예전 기획이 비서구권이나 아시아권에서도 얼마 나 활용될 수 있을지도 의문인데, 이는 공공신학이 가지는 지역적 ‘상호 맥락성’(intercontextuality)에 대한 고려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 문이다.
교회는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교회이지만, 개 교회들은 전 세계 의 도처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다양한 문화적 맥락에서 공교회성을 프리 즘처럼 빛깔을 발산한다.
만약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아시아 또는 유 럽 국가에서 빈곤과 차별의 문제를 논의한다면, 그 복음적 원리는 공통적 일지라도 구체적 기획과 적용은 상호맥락적 특성을 띨 수밖에 없다. 따라 서 공공신학자들은 서로를 모방하려는 그리고 공공신학이라고 불리는 것 을 포괄적이고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하나의 방법론으로 축소하려는 시도 없이, 다른 맥락에서 일어나는 일들로부터 그리고 서로에게 배워야 한 다.84)
84) D. Smit, “Does It Matter? On Whether There Is Method in the Madness,” in A Companion to Public Theology, ed. by Sebastian Kim and Katie Day (Boston: Brill, 2017), 85–86.
Ⅳ. 스미스의 한국교회에 대한 시사점
스미스의 주장이 개혁파 공공신학에 주는 기여와 한계가 무엇인지 우 리는 살펴보았다. 스미스의 ‘예전적 인간관’과 ‘문화 형성(변혁)적 공공신 학’은 코로나 이후 예배가 약화되고 대사회적 신뢰도가 추락한 한국교회 에 세 가지 실천적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째, 예배에 확고한 기반을 둔 공공신학적 실천이다. 코로나가 끝났 지만, 현장 예배로의 복귀율은 여전히 낮고, 교회학교는 감소했으며, 교회 를 이탈한 소위 ‘가나안 성도’는 증가하였다. 교회마다 이러한 상황을 타 개하기 위해 온라인 예배 송출을 유지하거나, 공식적으로 온라인 교회까 지 설립하여 한 사람이라도 더 교회로 인도하려는 것이 목회 현장의 현실 이다. 물론 목회자의 이러한 수고는 분명 귀중하나 그것이 성경과 신학이 지향하는 바와 일치하느냐는 또 다른 문제이다. 스미스는 예배에 있어서 몸으로 드리는 신체성과 공동체성을 강조함으로써 온라인 예배가 담보하 지 못한 성경적 예배의 본질적 요소를 확보하였다. 예컨대, 성만찬과 성도 의 교제, 구제와 섬김을 포함한 봉사활동은 온라인으로는 온전히 수행할 수 없는 신체적이고 공간적인 요소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스미스는 단 순히 ‘예배가 중요하다’를 넘어서 ‘어떤 예배가 중요한지’를 예전의 실천, 습관의 형성, 공동체적 제자도를 강조함으로써 제시하였다. 특별히 비상 계엄과 탄핵으로 국민이 첨예하게 대립했을 때, 일부 교회는 복음이 강설 되어야 할 강단을 이데올로기와 진영의 언어로 환원시킴으로써 심각하게 예배의 본질을 훼손하였고, 갈등을 봉합하기보다 오히려 갈라치는 자리 에 서기도 하였다. 극히 일부이지만 교인들을 태극기부대로 동원하여 세 력을 규합하고 광장정치를 강행한 모습은 교회의 본질적 사명이 무엇인 지 묻게 한다.
교회가 삶을 변혁하려는 ‘문화-언어적 신학’도 필요하지만, 그것이 도리어 성경의 권위를 훼손할 수 있음을 우려하며 ‘정경-언어적 신 학’을 추구해야 한다는 케빈 벤후저의 제언을 새길 필요가 있다.85)
85) Kevin J. Vanhoozer, The Drama of Doctrine, 윤석인 역, 『교리의 드라마』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7), 43-44.
스미스 는 포스트모던과 다원주의 사회에서 교회가 공적 영역에서의 책임을 회 피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예배를 중심에 둔 예전적 공공신학(liturgical public theology)의 틀을 분명히 제시하였다.
둘째, 이성보다 감각을 중시하는 현시대와 MZ세대 문화에 대한 신학 적 대응이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사람들은 ‘정보’가 아니라 ‘상상’을 통해 진리를 느끼고, 감각과 직관에 반응한다.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라는 스 미스의 인간관은 감각적이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MZ세대에게 복음이 어떻게 다시 ‘복음’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신학적 자산이다.
스미스는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을 회피하거나 단순히 배척하지 않고, 개 혁주의 전통 위에서 이를 비판적으로 수용함으로써 공공신학에 접목하였 다.
이는 교회가 바깥 세계의 철학적 사상과 문화적 조류에 어떻게 응답해 야 할지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오늘날 우리는 단 순히 ‘해체와 파괴’를 강조했던 포스트모던 시대를 지나, 이른바 ‘비욘드 포스트모던’ 혹은 ‘포스트-포스트모던’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정다은은 포 스트-포스트모던 시대의 특징으로 다음 네 가지를 지적한다.
첫째, 가짜와 위선을 혐오하고 진정성을 추구하는 경향,
둘째, 종교 제도에는 거리를 두 지만 초월적 의미를 향한 갈망(SBNR: Spiritual But Not Religious),
셋째, 개인주의적 고립보다 소속감과 공동체적 연대를 추구하는 흐름,
넷째, 상상력과 메타 서사를 통해 삶의 의미를 재구성하려는 시도이다.86)
이러한 시대적 감수성은 개혁파 공공신학이 다가가야 할 접점을 제시 해 준다.
교회는 이러한 변화를 민감히 감지하고, 진정성을 추구하는 세대 의 갈증에 응답할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가령, 오늘날 성도들이 다원주의 적 사회의 공론장에서 비신자와 의미 있게 소통하려면, 세속적 세계관에 대한 이해와 토론 능력, 그리고 대화의 품격을 갖추도록 돕는 교육이 절실 하다.
실제로 젊은 세대는 일상에서 접하는 다양한 현상과 문화에 대해 고 민하며 의문을 제기한다.
‘오직 기도와 말씀에 전념하라’는 권면만으로는 이들의 입을 닫게 할 뿐 아니라, 마음까지도 멀어지게 할 수 있다.87)
그러 므로 교회의 응답은 보다 정직하고 적실해야 한다.
때로는 “나도 잘 모르 니 좀 더 알아보고 얘기해 줄게. 함께 공부해 보자”는 겸손한 대응이, 이해 를 추구하는 신앙인에게 훨씬 더 진정성 있게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목회자의 공공신학적 감수성 함양이다.
오늘날 교회가 사회로부 터 지탄을 받고, 공적 영역에서 설득력 있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근본 적인 원인 중 하나는 성도를 세우는 목회자의 책임에 있다.
목회자는 예 배와 교육을 통해 성도를 하나님 나라의 제자이자 세속 사회의 성숙한 시 민으로 파송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참 목자상으로 잘 알려진 청교도 리처드 백스터는 복음 전도, 교리 교육, 설교, 심방에 헌신한 목회자였을 뿐 아니라, 의회파와 왕당파로 국론이 양분되었던 영국 내전(Civil War, 1642-46, 1648-52) 시 국가의 통합과 교회의 일치를 위해 힘썼다.
그는 또 한 성도들이 일상에서 공공선을 실천하도록 끊임없이 가르친 공공신학적 목회자였다.88)
86) 정다은, “비욘드-포스트모더니즘 공연예술 분석,” 「드라마 연구」 70 (2023): 39–70.
87) 오성민, 『교회 구석에서 묻는 질문들』 (서울: 복있는사람, 2022), 11.
88) 황경철, “청교도와 공공신학 - 리처드 백스터의 공공신학적 면모와 시사점,” 「갱신과 부흥」 35 (2025): 203-204.
이와 같은 역사적 모범은 오늘날 스미스가 보여주는 통찰 과도 맞닿아 있다.
예전과 문화, 콘텍스트와 텍스트, 교회와 세속 사회 사 이의 균형을 추구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복음과 예배에 우선순위를 고수 하는 스미스의 입장은 목회자에게 묵직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세상에서 교회가 신뢰를 잃어가는 때에 목회자가 공공신학적 감수성을 회복한다면 교회의 예배와 교육과 성도들은 훨씬 공적이며 성육신적 형태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Ⅴ. 나가는 말
본 논문은 스미스의 문화 예전 기획을 바탕으로 한 공공신학적 주장이 개혁파 공공신학에 대한 기여와 한계가 무엇인지를 논구하였다.
연구자 는 4가지 기여점을 밝혔는데,
첫째, 예전을 문화 변혁의 핵심 기초로 삼았 고,
둘째, 지성적 세계관 훈련보다 습관 형성을 통한 전인적 제자도를 강 조했으며,
셋째, 사회적 상상력으로 믿음과 삶을 통합하여 이원론적 신앙 을 극복하고자 했으며,
넷째,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을 비판적으로 수용하 면서도 성경과 개혁파 전통에 충실하였다는 점이다.
동시에 스미스의 주 장은 공공신학적 한계를 보였는데,
첫째, 예전과 교회 중심의 해법은 제 시하였지만, 공공 영역에서 구체적인 방안과 설득력 있는 전략을 제시하 지 못한 것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둘째, 기독교 중심적 언어가 비신자에게 이해되도록 ‘이중언어’로 번역되어야 할 과제를 남겼으며,
셋째, 비신자와 세속 사회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일반은총적 사역을 상대적으로 간과하 였다는 점이다.
스미스의 한계는 향후 연구 과제로 남겨둔다.
본 논문이 충분히 논의하지 못한 한계도 분명히 있다.
스미스가 던진 시사점을 기반으로 한국교회와 목회자가 다원주의 사회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복음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공론장에 참여할 수 있는지 그 방식과 대안을 충분히 다루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스미스가 우호적으 로 수용한 급진정통주의(Radical Orthodoxy)가 근대의 세속주의와 이성 중심주의를 비판하고 예전과 습관의 형성을 강조한 것은 좋지만, 교회 중심주의의 결과로 공적 영역 참여를 약화하고, 신성화(Deification)를 강조 한 나머지 칭의와 성화의 명확한 구별을 모호하게 한 점 등에 대해서는 개 혁신학으로 더 정교한 평가가 요구된다.
연구자가 언급한 스미스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에 몇 가지 시 사점을 던져준다.
코로나 이후 약해진 성례전, 친교, 구제, 봉사 등 몸으로 드리는 예배의 회복에 힘쓰는 한편, 포스트모던 시대를 비판적으로 이해 하여 공공신학에 접목할 수 있는 역량과 공공신학적 감수성을 키워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가 신학적 보수주의와 개혁파 전통을 수호하려는 것은 귀한 일이지만, 대사회적으로 반(反)문화적 경향을 띠는 근본주의나 정치적 극우화에 치닫지 않도록 경계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불신자들의 마음 을 열고, 교회에 대한 공적 신뢰를 회복하며, 나아가 그들과 복음을 나눌 수 있는 복음의 생태계를 구축하는 선순환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렇다고 자유주의 신학이 표방하는 사회복음(social gospel)이나 문화 변혁적 유토 피아 건설도 올바른 대안이 될 수 없다.
스미스의 문화 예전 기획은 이러 한 정황에 놓인 한국교회가 예전과 개혁파 전통을 철저히 따르면서도, 그 토대 위에서 하나님 나라의 문화를 회복하게끔 사회적 상상력을 열어 주 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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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초록]
본 논문은 제임스 스미스의 ‘문화 예전 기획’을 중심으로 그의 개혁 파 공공신학적 기여와 한계를 밝힌다. 스미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전통 을 따라 인간을 욕망하는 존재로 규정하며, 하나님을 욕망하는 예배가 문 화 변혁과 사회 회복의 기초임을 강조한다. 그의 기여는 네 가지로 요약된 다. 첫째, 예전을 문화 변혁의 핵심으로 삼았고, 둘째, 지성 중심의 세계관 교육을 넘어 습관 형성을 통한 전인적 제자도를 강조했으며, 셋째, 사회적 상상력을 통해 이원론적 신앙의 극복을 도모하였고, 넷째, 포스트모더니 즘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도 개혁파 전통에 충실했다. 반면 그의 공공 신학적 한계는 예배와 교회를 중심에 두었지만, 구체적 방안과 정책적 대 안이 부족하였고, 그의 기독교적 주장과 논리가 비신자와 소통되도록 ‘이 중언어’로 번역되지 못한 과제를 남겼다. 또한 비신자와 세속 사회에서 일 하시는 하나님의 일반은총적 사역을 상대적으로 간과했으며, 지역적 상호 맥락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아 문화 예전 기획이 비서구권에서도 적용 될 수 있을지에 의문을 남긴다. 그럼에도 스미스는 한국교회에 중요한 시 사점을 제공한다. 코로나 이후 무너진 예배를 온라인이 아닌 몸으로 회복 할 것, 포스트모더니즘을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공공신학에 접목할 것, 현 사회와 세대를 복음의 상상력으로 바라보도록 공공신학적 감수성을 촉진 한다. 비상계엄과 탄핵 이후 교회의 공적 책임이 다시 요구되는 이 시점에 서, 본 논문은 개혁파 공공신학의 방향을 제시하는 시의적절한 연구로 사 료된다.
[주제어: 제임스 스미스, 공공신학, 문화, 예배, 포스트모더니즘]
Abstract
James K. A. Smith’s Contributions and Limitations to Reformed Public Theology
Kyeong Cheol Hwang (International Institute for Gospel and Public Theology, Director)
This paper explores the contributions and limitations of James K. A. Smith’s Reformed public theology, focusing on his “Cultural Liturgical Project.” Following the Augustinian tradition, Smith defines humanity as homo desiderans(beings of desire) and emphasizes that worship desiring God provides the foundation for cultural transformation and social restoration. His contributions can be summarized in four points. First, he places worship at the heart of cultural transformation. Second, he emphasizes holistic discipleship through habit formation, moving beyond intellectually centered worldview education. Third, he seeks to overcome dualistic faith through the cultivation of social imagination. Fourth, he critically engages with postmodernism while remaining faithful to the Reformed tradition. Conversely, several limitations appear in his public theology. These include a focus on worship and the church without sufficient concrete strategies or policy alternatives, and a lack of translation of his Christian arguments into a “bilingual approach” accessible to non-believers. Furthermore, he relatively overlooks God’s common-grace work amongnon-believers and within secular society. His insufficient consideration of regional intercontextuality also raises questions about the applicability of his cultural liturgical project in non-Western contexts. Nevertheless, Smith offers valuable insights for the Korean church. He calls for the restoration of post-pandemic worship through embodied participation rather than virtual engagement, the critical appropriation of postmodernism within public theology, and the cultivation of a public theological sensibility that views contemporary society and generations through the imaginative lens of the gospel. At this historical juncture when the church’s public responsibility is again being demanded following martial law and impeachment, this study serves as a timely contribution, offering direction for Reformed public theology. [Key words: James K. A. Smith, public theology, culture, worship, postmodernism]
논문 투고일: 2025.10.13. 수정 투고일: 2025.11.15. 게재 확정일: 2025.11.18.
조직신학연구 제51권 (20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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