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는 말
현대 신학에서 해석학의 문제는 단순한 방법론적 논의를 넘어 신학 의 학문적 정체성과 공적 정당성을 규정하는 핵심 과제로 자리 잡았다.
특히 20세기 중반 이후, 역사적 비평학과 실존주의 철학의 도전 속에서 신학은 계시의 역사성, 텍스트 해석의 객관성, 그리고 신앙 진술의 검증 가능성이라는 삼중의 난제에 직면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Wolfhart Pannenberg)는 신학을 역사성(Geschichtlichkeit), 합 리성, 공공성(Öffentlichkeit)의 맥락에서 재정립함으로써 전통적 계시주 의와 역사주의적 상대주의 사이 제3의 길을 모색한 대표적 신학자로 평 가받는다.
그의 신학적 기획의 핵심에는 계시로서의 역사라는 독창적 통 찰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역사적 사건이자 종말론적 선취로 파악하는 해석학적 틀을 통해 구체화된다.
판넨베르크 신학의 방법론적 특징은 해석학을 단순한 텍스트 이해의 기술이 아니라 신학 전체의 인식론적 기초로 파악한다는 점에 있다.
그 에게 해석학은 역사적 사건의 재구성, 현재적 이해의 투사, 종말론적 기 대의 반영이라는 세 가지 상호작용적 과정을 통해 의미를 생성하는 복합 적 구조다.
이러한 접근은 19세기 말 빌헬름 딜타이(Wilhelm Dilthey)가 확립한 정신과학의 해석학적 전통, 20세기 초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가 전개한 실존론적-존재론적 해석학, 그리고 한스-게오르크 가다머(Hans-Georg Gadamer)가 완성한 철학적 해석학과의 비판적 대화 속에서 형성되었다.
특히 판넨베르크는 하이데거의 죽음 개념과 선구 개 념, 그리고 역사성 이론을 종말론적 관점에서 재구성함으로써, 개인 실 존의 유한성에 제한된 하이데거 해석학의 한계를 극복하고 보편사의 지 평으로 확장하려는 독창적 시도를 전개한다.
본 연구는 판넨베르크의 하이데거 해석학 비판을 체계적으로 분석하 고, 그 철학적, 신학적 정당성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다.
이러한 연구 문제에 답하기 위해 본 논문은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Ⅱ장에서는 판넨베르크의 해석학적 입장을 딜타이, 가다머와의 대화 속 에서 구성한다.
먼저 판넨베르크가 딜타이의 부분-전체 순환 원리를 수 용하면서도 그것이 역사주의적 상대성에 갇혀 있다고 비판하고, 이를 종 말론적 완성의 관점에서 보편사로 확장하는 방식을 검토한다.
다음으로 가다머의 지평 융합과 영향사적 의식(wirkungsgeschichtliches Bewußtsein) 개념에 대한 판넨베르크의 비판, 즉 그것이 개인 지평에 국한되어 하나님의 계시의 객관적 차원을 상실했다는 지적을 분석한다.
Ⅲ장에서는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에 나타난 죽음과 죽음에로의 선구(vorlaufen zum Tode) 개념을 상세히 분석한다. 하이데거가 죽음을 현존재의 가장 독자적이고 몰교섭적이며 뛰어넘을 수 없는 가능성으로 규정하는 방식, 죽음을 가능성으로서 선취함으로써 현존재를 본래성(Eigentlichkeit)으로 이끄는 선구의 구조, 그리고 이것이 시간성(Zeitlichkeit) 의 구조 특히 미래와 우선적으로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검토한다.
Ⅳ장에서는 판넨베르크의 하이데거 비판이 신학적으로 타당했는지를 논증한다. 판넨베르크가 보기에 하이데거의 죽음의 해석학은 다섯 가 지 측면에서 한계를 갖는다.
첫째, 하이데거의 죽음 개념은 추상적이고 공허하기에 삶의 구체적 내용을 제공하지 못하며,
둘째, 죽음이 삶을 완 성하는 것이 아니라 중단시키기에 전체성의 근거가 될 수 없으며,
셋째, 보편사를 배제하고 개인 현존재로 후퇴하기에 역사적 이해의 본질을 왜 곡했으며,
넷째, 미래가 우선적이라고 통찰했으나 이를 종말론적 완성의 맥락에서 규정하지 못했으며, 마지막으로, 선구를 보편사(Universalgeschichte)와 통합하여 역사의 전체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필자는 종말론적 관점에서 하이데거의 실존론적 해석학을 넘어서려는 판넨베르크의 보편 사적 탐구를 상세히 분석한 후, 그의 시도가 적절했는지를 평가할 것이 다.
Ⅱ. 해석학 전통과 판넨베르크 해석학의 이론적 배경
1. 딜타이의 부분–전체의 순환적 해석학과 그 한계
딜타이의 해석학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인간과학의 방법론을 정 초하며, 이해를 자연과학의 설명과 구별되는 핵심 개념으로 확립하였다.
딜타이는 이해를 생명의 표현으로 규정하며, 표현에서 표현된 것으로의 관계를 통해 정신적 삶을 재구성할 수 있다고 보았다.1)
1) Wilhelm Dilthey, Introduction to the Human Sciences: An Attempt to Lay a Foundation for the Study of Society and History, trans. Ramon J. Betanzos (Detroit: Wayne State University Press, 1988), 49-61.
그의 저작 『정신 과학 입문』에서 딜타이는 해석학을 인간과학의 보편적 타당성 이론으로 확장하며, 헤겔의 이성적 역사 구성에 반대하여 역사를 생명의 무한한 생산성으로 파악한다.2)
즉, 딜타이의 해석학은 부분과 전체의 순환을 통 한 이해라는 구조로 제시된다.
텍스트의 부분을 전체 맥락에서 이해하고 전체를 부분을 통해 확인하는 과정은 역사적 현실을 텍스트로 취급하여 경험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역사적 의식은 상대성을 초월하여 객 관성을 달성할 수 있으며, 이는 생명의 안정성 추구에서 유래한다고 딜 타이는 주장한다.
그러나 딜타이의 접근은 심리학적 재경험에 의존함으 로써 주관주의의 위험을 내포한다.
판넨베르크는 딜타이의 이러한 한계를 신학적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계승한다.
판넨베르크는 딜타이의 부분-전체 원리를 수용하여 역사적 사건을 보편사의 맥락에서 이해하지만, 딜타이의 방법론이 역사주의의 상대성에 갇혀 있다고 지적한다.
판넨베르크에게 딜타이의 이해 개념은 주관의 내면적 체험으로 환원되며, 역사적 보편성 대신 개별적 체험의 재구성에 머문다는 근본적 한계를 갖는다고 비판한다.
왜냐하면 딜타이 가 제시한 전체라는 의미가 경험적으로 구성되는 삶의 총체이지만, 판넨 베르크에게 전체는 하나님이 계시를 통해 드러내는 보편사이기 때문이 다.3)
판넨베르크의 딜타이 수용은 생명철학을 신학적으로 활성화하는 방 식으로 나타난다.
딜타이의 이해는 판넨베르크에게 역사적 사건의 부분 을 전체 보편사로 연결하는 도구로 기능한다.
딜타이가 생명의 내재성에 서 이해를 도출하나 상대성을 초월하지 못했다면, 판넨베르크는 이를 종 말론적 완성으로 해결하려 한다.
딜타이의 순환은 판넨베르크의 신학에 서 보편사의 전체로 확대되며, 역사적 사건의 의미는 오직 하나님의 계 시라는 전체 속에서만 온전히 파악될 수 있다.4)
2) Ibid., 200-226.
3) Wolfhart Pannenberg, Revelation as History (London: Macmillan, 1968), 12-15.
4) Wolfhart Pannenberg, “Hermeneutics and Universal History,” Brice R. Wachterhauser ed., Hermeneutics and Modern Philosophy (Albany: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1986), 125- 130.
딜타이의 생명철학은 판 넨베르크에게 계시를 역사 전체의 과정으로 보는 철학적 기반을 제공하지만, 이를 신학적으로 완성하지 못했다. 그래서 판넨베르크는 『계시로 서의 역사』에서 딜타이의 이해를 빌려 역사적 사건을 표현으로 취급하 며, 이를 하나님의 자기 계시로 해석한다.5)
또한 판넨베르크는 딜타이가 거부한 헤겔의 전체성 개념을 변형하여 수용한다. 그는 전체는 부분들로부터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궁 극적 완성에서 비로소 부분이 해석된다고 주장하며, 딜타이의 경험적 이 해를 종말론적 시점에서 완결되는 해석의 전단계로 간주한다.6)
그는 이 를 소급적 계시의 개념으로 구체화되는데, 과거의 사건이 미래의 완성 속에서 비로소 그 의미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예수의 부활은 역사적 부 분 사건으로서 전체 역사를 소급적으로 조명하는 사례가 된다. 그렇다고 판넨베르크는 딜타이의 실증적 접근을 완전히 폐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역사적 사건의 경험적 검증 가능성을 유지하면서, 이를 신학적 해 석의 틀 안에 통합한다. 이는 판넨베르크가 자연신학적 입장에서 계시를 역사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것으로 보는 태도와 연결된다.
2. 가다머의 지평 융합의 해석학과 그 한계
판넨베르크는 딜타이와 마찬가지로 가다머의 해석학을 비판하며 자 신의 해석학을 전개한다.
가다머는 딜타이의 방법론적 해석학을 비판적 으로 계승하며 해석학을 철학적 차원으로 승화시킨다. 그의 『진리와 방 법』에서 가다머는 딜타이를 역사주의의 문제에 갇힌 인물로 평가함과 동 시에 딜타이는 해석학을 인간 과학의 방법으로 축소했으나, 이해는 주체 의 방법적 행위가 아니라 존재론적 사건으로 재정의되어야 한다고 본다.7)
5) Wolfhart Pannenberg, Revelation as History, 21-25.
6) Wolfhart Pannenberg, “Hermeneutics and Universal History,” 140-145.
7) Hans-Georg Gadamer, Truth and Method, trans. Joel Weinsheimer & Donald G. Marshall, 2nd rev. ed. (London/New York: Continuum, 2004), 267-270.
가다머는 딜타이가 헤겔의 절대적 입장을 피하고자 경험적 역사 건 설을 시도하나, 이는 형식적인 다양성의 공허한 이상으로 끝난다고 비판 한다.
가다머는 딜타이가 역사의 형이상학적 가치와 역사적 삶의 생산성 을 간과했으며, 자연과학의 방법론적 사고를 인간 과학에 적용하여 이해 의 진리를 소외시켰다고 지적한다.
가다머의 비판은 딜타이의 반지성주 의적 생명철학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방법론적 반성으로 발전시키지 못 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가다머는 이해의 역사성을 효과 역 사적 의식으로 강조한다.8)
이해는 과거와 현재의 지평 융합으로, 선입견 은 이해의 조건이 된다.9)
가다머는 계몽주의의 편견에 대한 편견을 비판 하며, 전통을 이해의 매개로 삼는다.
역사성은 유한성과 경험의 구조를 드러내며, 이해는 과거를 재건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적용하는 사건이 다.
이러한 가다머의 해석학에 대해 판넨베르크는 풍부함을 인정하면서 도, 그것이 보편적 진리의 근거를 상실한 역사 상대주의로 기울었다고 비판한다.10)
판넨베르크는 가다머의 해석학이 개인 지평에 국한되어 보 편사의 전체성을 포착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가다머가 이해를 언어적, 역사적, 조건성 속에 한정함으로써, 하나님의 계시가 역사 속에서 객관 적으로 드러난다는 신학적 차원을 폐기했다는 것이다.11)
왜냐하면 판넨 베르크에게 이해는 단순한 지평의 융합이 아니라, 역사의 전체가 궁극적 으로 하나님 안에서 해석되는 종말론적 지평의 융합이기 때문이다.12)
가 다머가 전통과 선입견의 생산적 역할을 강조하지만, 판넨베르크는 이러 한 관점을 종말론적 완성에 대한 신학적 기대가 결여된 문화적 보수주의 로 간주한다.13)
8) Ibid., 284-287.
9) Ibid., 305-310.
10) Wolfhart Pannenberg, Revelation as History, 38-40.
11) Ibid., 45-47.
12) Ibid., 50-52.
13) Wolfhart Pannenberg, “Hermeneutics and Universal History,” 134-135.
가다머의 전통 개념은 역사의 유한성에 갇혀 신적 진리의 초월적 성격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 판넨베르크의 비판이다. 판넨베르크의 해석학은 이해의 조건을 현재의 역사성 안에서 찾지 않고, 미래의 완성 속에서 파악한다.
미래는 단순한 시간적 나중이 아니 라, 모든 역사적 사건을 포괄적으로 해석하게 하는 신학적 원리로 기능 한다.14)
가다머의 지평 융합은 판넨베르크에게 미래의 종말에서 역사의 전체성을 확인하는 수단이 된다.
또한 판넨베르크는 가다머가 언어를 이 해의 본질로 간주하는 것에도 반대한다. 그는 계시는 언어를 통해 전달 되지만, 언어를 초월하는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실재를 가진다고 주장한 다.15)
그는 언어는 계시의 매개이지만 계시 그 자체는 아니라고 본다.
이 러한 입장은 가다머의 언어 중심 해석학이 갖는 해석의 내재성을 극복하 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가다머의 해석학에 대한 판넨베르크의 비판은 구속사적 유비를 통해 부활의 역사성을 설명할 수 있음을 제안하며, 철 학적 해석학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한다.16)
14) David Zehnder, “The Origins and Limitations of Pannenberg’s Eschatology,” Journal of the 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 53/1 (2010), 124-125.
15) Linn Marie Tonstad, “Pannenberg, Particularity and Eschatology,” International Journal for Systematic Theology 17/2 (2015), 203-204.
16) 이용규외 1인,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Wolfhart Pannenberg)의 유비 이해와 송영, 그리 고 그 비 판적 적용으로서의 송영적 유비,” 「한국개혁신학」 제42집 (2014/여름), 171-172.
Ⅲ. 하이데거의 죽음에로의 선구
1.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에서의 죽음에 대한 실존론적 분석
하이데거 이전의 형이상학 철학에서 죽음은 흔히 영혼과 육체의 분리, 생물학적 종말, 혹은 도덕적 문제로 다루어졌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죽음을 영혼과 육체의 분리로 보려는 전통적 시도를 거부하고, 현존재의 고유한 본질로서의 죽음을 존재론적으로 이해하려 시도한다.17)
그에게 죽음은 단순한 생물학적 사건이 아니라, 현존재가 자신의 전체적 가능성 을 이해하고 직면하게 하는 존재론적 이해다.18)
죽음은 현존재의 시간상 으로 삶을 닫아버리는 외적 사건이 아니라, 현존재의 존재 구조에 내재 한 한계 가능성으로서 전체성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기능한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죽음을 존재론적 차원으로 끌어올리면서 동시에 타자와 공유될 수 없는 가장 독자적인 가능성으로 파악한다.
이는 그에 게 죽음이 단순한 생명 현상이 아니라 현존재의 자기 이해와 실존을 구 성하는 근본 계기라는 점을 뜻한다.
죽음은 삶 이후의 사건이 아니라, 삶 의 구조 속에 이미 내재되어 있는 실존론적 가능성이다.
그래서 하이데 거는 현존재가 그 자신의 가능성 전체를 이해함과 동시에 죽음을 획득하 는 방식으로 자신의 본래적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에게로 기투한다고 본다.
그런데 하이데거는 죽음을 네 가지 본질적 성격으로 규정한다. 이러한 존재론적 위치로서의 죽음 이해는 죽음이 갖는 특유의 네 가지 성격을 통해 보다 명확히 드러난다.19)
첫째, 죽음은 가장 독자적 가능성이다. 즉 죽음은 누군가가 나를 대 신해 죽어줄 수 없는 나의 죽음으로서 존재한다. 현존재는 타자의 죽음 을 대신 경험할 수 없기에, 타자의 죽음을 통한 나의 죽음 이해는 본질적 으로 불가능하다.
이 점은 죽음이 현존재의 각자성을 규정하는 핵심 요 건임을 보여준다. 현존재가 자기 죽음을 자기에게로 온전히 소유하지 못 하는 한, 그 존재는 세인의 빈말에 포섭되어 비본래적 상태에 머물게 된 다.20)
17) 정기철, “하이데거가 말한 죽음에 대한 비판적 고찰,” 「범한철학」 제47집 (2007/겨울), 209-210.
18) 마르틴 하이데거/소광희 옮김, 『존재와 시간』(서울: 경문사, 1998), 357.
19) Ibid., 357.
20) 박찬국,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강독』(서울: 그린비, 2010), 337-338.
타인의 죽음은 우리에게 충격과 상실을 주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관찰되는 사건일 뿐, 나의 죽음 그 자체가 될 수 없다.
타자의 죽음은 나에게 죽음이라는 가능성을 상기시키는 계기일 수는 있지만, 실존론적 자기 전유를 대신하지 않는다.
이 나누려 해도 나눌 수 없는 죽음은 가장 독자적 가능성으로 규정하게 만드는 핵심 근거다.
둘째, 죽음의 몰교섭성은 죽음이 타자와의 어떠한 공유나 논의로 결 정되거나 이해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21)
죽음은 개별자인 현존재를 강조 하며 그러한 단독화가 단순한 고립이 아니라 존재의 근원적 단독성으로 서 나타난다.
이에 따라 현존재는 자신의 가능성 전체를 타자의 관점 혹 은 공동존재적 해석으로부터 분리하여, 오직 자기 자신만의 방식으로 직 면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셋째, 죽음은 뛰어넘을 수 없는 가능성이다.22)
하이데거는 현존재를 가능 존재로 파악했고 현존재를 통해 존재자들의 존재가 규정된다고 했 지만, 죽음은 현존재가 규정할 수 없는 즉, 근원적 불가능성의 가능성이 다.
다른 모든 가능성은 선택하거나 회피할 수 있지만, 죽음만은 피할 수 없는 절대적 가능성이다.
하이데거는 바로 이 점에서 선구를 문제 삼는 다.
넷째, 죽음은 확실성과 무규정성의 역설적 결합을 지닌다.23)
21)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357. 22) Ibid., 375-377. 23) Ibid., 368.
죽음은 확실히 온다는 점에서 확실하지만, 언제인지는 모르는 무규정이다.
이는 죽음에 이르는 존재라는 현존재가 자기의 죽음에 대한 ‘언제까지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관한 근원적 물음을 제기하게 한다.
또한 이 결합은 일상성의 은폐 기제를 촉발한다. 즉 세인은 죽음의 확실성을 애매하게 시인하면서도 죽음의 무규정성을 평균적이고 일반적인 것으로 환원하여 당장은 나의 문제가 아니라는 식으로 회피한다.
이런 방식으로 죽음의 촉구는 일상적 관습 속에 흡수되어 실존적 계기가 소거된다.
이러한 죽음 이해는 현존재의 전체성 문제를 통해 더욱 명확해진다.
하이데거는 현존재의 존재를 항상 이미 아직-아님이라는 구조로 파악한 다.24)
현존재의 존재가 탄생과 죽음 사이의 연장으로 구성된다고 보지 만, 일상성에서 현존재는 자신의 전체를 파악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살아 있는 한, 현존재는 항상 아직-아님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은 항상 미래의 가능성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완결된 전체로서 파악될 수 없다. 이 미제의 구조 속에서 죽음은 단순한 마지막 사건이 아 니라, 전체성을 드러내는 역할로 기능한다. 따라서 죽음은 현존재가 자 신의 전체성을 가능성의 불가능성으로서 직면하는 순간으로, 이는 현존 재의 존재를 근원적으로 드러낸다.25)
죽음은 현존재의 끝에 와 있음으로 규정되며, 이는 현존재가 자신의 존재 이해를 파악할 수 있는 본래적 태 도 중 하나가 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현존재가 비본래적 태도를 취하고 있을 때 죽음은 타인의 죽음으로 외면화되거나, 아직-아님으로 미루어지며, 현존재가 자신의 유한성을 직면하지 못하게 하는 세인의 지배 아래 놓인다.
일상성 속에서 죽음은 흔히 은폐된다.
세인은 죽음의 확실성을 평균수명, 일반적 기대치, 관습적 표현 등으로 환원함으로써 죽음을 당장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는다.26)
24) Ibid., 360.
25) Ibid., 449.
26) Ibid., 369-370.
비본래적 태도를 지닌 이들에게는 죽음은 언젠가 는 일어날 것이지만 지금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처리된다.
이 와 같은 일상적 언어의 작용은 죽음의 실존론적 의미를 제거하고, 죽음 을 하나의 객관적 사실로 만들며, 실존적 촉구를 무력화시킨다.
하이데 거는 이러한 일상성의 구조를 분석함으로써 죽음이 세인에 의해 어떻게 탈주체화되는지를 보여준다.
죽음은 나의 고유한 가능성임에도 불구하 고 통계적 사건으로 환원되어 실존적 의미를 잃어버린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죽음을 현존재의 가장 고유한 가능성으로 강조한 다.
이는 죽음이 대체 불가능하며, 관계 불가능한 것으로, 현존재가 타자 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신의 고유성을 회복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죽음은 불안을 촉발한다.
여기서 말하는 불안은 특정 대상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존재 전체가 근본적으로 드러나는 마음씀(Sorge)이 다.27)
그리고 이 불안은 일상적 세계의 자명성을 해체하고, 현존재를 세 인(das Mann)의 집합인 공동현존재에서 자기에서 떼어내 단독화 시키며, 타자와의 동일시나 세인의 언어적 위안으로부터 분리시킨다.28)
그러나 이러한 단독화는 단순한 고립이 아니라 자기의 가장 독자적 가능성을 직 면하게 하는 계기이다.
이 단독화 경험 속에서 현존재는 자기의 전체적 가능성들을 직면하고, 선구적 결의29)를 통해 그 가능성들에 응답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불안은 선구의 토대이며, 선구는 불안을 통해 본래적 의미로 전환시키는 실천적 방식이라 볼 수 있다.30)
27) 소광희, 『존재와 시간 강의』(서울: 문예출판사, 1998), 153-155.
28) 박찬국,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강독』, 344.
29)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현존재의 본래성은 죽음과 양심을 통해 가능하다고 주장하며 죽 음을 선구, 양심을 결의라 하여 현존재가 선구적 결의를 통해 본래성을 획득할 수 있다고 한다. 본 논문에서는 양심 또는 결의성은 연구하지 않고 죽음과 선구만을 집중적으로 연구한다.
30) 권수현, “죽음에 대한 두 가지 이해,” 「동서철학연구」 제115집 (2025/봄), 237.
2. 선구적 결의성(vorlaufende Entschlossenheit)과 시간성
하이데거에게 선구는 하이데거의 죽음 개념과 결합하여 실존의 본래 성을 구성하는 핵심 구조다. 선구는 기대나 예측과 엄격히 구별되어야 한다.31)
31)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371.
기대가 어떤 구체적 사건의 도래를 바라거나 그 실현을 기다리는 심리적 태도라면, 선구는 가능성을 가능성으로서 선취하고 그 가능성 앞 에 현존재를 미리 내세우는 실존적 개시다.
다시 말해 선구는 가능성을 도구적 대상으로 삼지 않고, 가능성 그 자체를 통하여 현존재를 본래적 으로 만든다. 선구는 죽음의 가능성을 실현하려는 의지도, 그것으로부터 도피하려는 의지도 아니다. 오히려 선구는 현존재가 죽음으로 앞질러 나 감으로서, 죽음을 가능성으로서 직면하는 태도를 의미한다.32)
왜냐하면 현존재는 일상성에서 죽음을 기다림으로 왜곡하지만, 선구는 이러한 죽 음을 받아들이려는 수동성을 넘어 죽음을 앞당겨 자신의 존재를 재구성 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선구는 죽음의 무규정성을 본래적으로 떠안는 것이며, 이를 통해 현존재는 타자와 세인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 신의 가장 고유한 가능성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
하이데거는 이를 ‘죽음 으로 향하는 자유’로 표현하며, 현존재가 타자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신의 가능성을 본래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한다고 본다.33)
그런데 이러한 죽음을 현존재가 선구를 통해 현재 경험하게 된다면 이때 시간은 자연과학적 시간이 아니라 볼 수 있다.
죽음과 선구의 결합 은 하이데거가 주장하는 시간성의 근본 구조를 드러낸다. 그의 선구적 결의성과 시간성에서 장래는 단순한 예정이나 미래 사건의 축적이 아니 라, 현재의 자기 이해를 규정하는 근원적 시간이다.
또한 그의 시간성은 마음씀의 존재 의미로 해명되며, 죽음은 그 도래의 한계이자 최후 지평 으로서 시간성의 구조를 정의하며, 선구적 결의성은 그 한계를 본래적으 로 수용함으로써 현존재가 자기의 시간을 통일적으로 이해하게 한다.34)
32) 박찬국,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강독』, 394.
33)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379.
34) 소광희, 『존재와 시간 강의』, 196.
이때 하이데거에게 시간성은 자연과학에서 말하는 단순한 과거-현 재-미래의 흐름이 아니라, 장래(Zukunft)에서 기존(Gewesenheit)을 거쳐 현전화(Gegenwart)로 이해되는 구조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시간성을 과 거-현재-미래라는 자연과학적 구조보다 더 근원적이라고 본다.
그에게 시간성은 탈자적으로 자기를 향해 돌아와 만나게 함의 현상적 성격을 지 닌다.
자세히 설명한다면 자연과학에서의 미래는 현상학적으로 장래이 며, 현존재가 가장 독자적 가능성에 도래하는 옴이다.
선구는 본래적 장 래를 가능하게 하며, 죽음을 향한 선구에서 현존재는 극단적 가능성으로 도래한다. 이 장래는 유한하며, 불가능성을 이해하게 한다.35)
선구는 죽 음이라는 궁극적 가능성을 선취함으로써 현존재가 자기 자신에게 도래하 도록 만든다.
기존은 과거가 아닌, 피투적 존재자로서의 이미이다. 선구 적 결의성에서 기존성은 피투를 인수하며, 장래로부터 돌아온다.
현존재 는 실존하는 동안 기존으로 있다.
현전화는 결의성에서 상황을 개시한 다.
순간은 본래적 현재의 양상이며, 장래와 기존으로부터 이해된다.36)
즉, 선구적 결의성은 장래로부터 자신을 규정하는 시간성의 본래적 구조 를 활성화시키는 행위다. 이때 죽음은 시간성의 마지막 사건이 아니라 그 구조를 열어주는 기능을 한다.
그래서 하이데거의 죽음은 현존재의 존재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제한 하는 부정적이며 소극적인 조건인 반면, 선구는 이러한 한계를 본래적으 로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실존의 자유로 전환하는 적극적 조건이다.37)
35)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461.
36) Ibid., 465.
37) Ibid., 425.
그 래서 죽음과 선구는 하이데거 철학에서 상호 보완적 관계를 맺는다고 볼 수 있다.
그에게 선구적인 결의는 현존재가 퇴락(Verfallen)에서 벗어나 본래적 존재로 기투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선구 없는 죽음은 단순한 공 포로 남지만, 선구를 통해 죽음은 현존재의 자유로 전환된다.
죽음 없는 선구는 가능하지 않으며, 선구 없는 죽음은 단순한 공포나 회피로 남는 다.
그러므로 하이데거에게 선구는 죽음이라는 뛰어넘을 수 없는 가능성 을 본래적으로 수용함으로써, 현존재를 세인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키고 자신의 가장 고유한 가능성으로 향하게 한다.
이 과정에서 불안은 단순한 부정적 정서가 아니라, 현존재를 단독화시키고 본래적 자기 이해로 이끄는 실존적 계기가 된다.
또한 선구를 통해 열리는 시간성은 통속적 인 과거-현재-미래의 선형적 시간이 아니라, 장래로부터 현존재 자신에 게로 도래하는 탈자적 구조로서, 현존재의 존재 의미를 근원적으로 해명 한다.
결국 하이데거의 죽음과 선구 개념은 현존재가 자신의 유한성을 직면하고, 그 유한성을 통해 오히려 본래성을 획득할 수 있는 길을 제시 한다.
이는 죽음을 회피하거나 망각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가능성으 로서 선취함으로써 현재의 삶을 본래적으로 살아가는 실존적 태도를 요 청하는 것이다.
Ⅳ. 선구적 결의성의 한계와 종말론적 해석학
1. 하이데거 죽음 개념의 한계
판넨베르크의 하이데거 해석학 비판은 하이데거가 인간 실존의 전체 성을 죽음과 연관시킨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로부터 시작된다.
하이데거는 딜타이의 통찰을 계승하면서도 중요한 전환을 시도한다.
딜 타이는 “오직 삶의 마지막 순간에만 그 의미의 균형이 잡힐 수 있으며, 따라서 그것은 한 순간 동안만 이루어질 수 있거나, 혹은 그 삶을 되짚는 다른 사람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38)고 주장했다.
38) Wilhelm Dilthey, Pattern and Meaning in History: Thoughts on History and Society, ed. and intro. H. P. Rickman (London: Allen and Unwin, 1961), 74-75.
이는 삶의 전체 성이 오직 그 종결 시점에서만 파악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딜타이 는 더 나아가 “삶의 끝에서 그리고 죽음의 시간에 전체를 조망하고 전체 와 부분들 사이의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삶의 끝을 기다려야만 할 것이 며, 역사의 의미를 결정하는 데 필요한 모든 자료를 갖기 위해서는 역사 의 끝을 기다려야만 할 것”39)이라고 주장한다.
하이데거는 딜타이의 이러한 통찰을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죽음이 라는 것을 수동적으로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전개한다. 그는 『존 재와 시간』에서 현존재가 자신의 미래 죽음을 선취함으로써 전체성에 도 달할 수 있는 고유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능 가될 수 없는 가능성의 선취는 또한 그 가능성 앞에 놓인 모든 가능성들 을 개시하기 때문에, 이러한 선취는 인간 존재 전체를 실존적으로 미리 취하는 가능성을, 즉 전체 가능성-존재로서 실존하는 가능성을 포함한 다.”40)
고 말한다.
자신의 다가오는 죽음을 아는 유일한 존재로서 인간은 항상 미리 인간으로서 전체일 가능성에 있다는 것이다.
판넨베르크는 이러한 하이데거의 입장에 대해 두 가지 근본적이고 체계적인 비판을 제기한다.
첫째로 죽음에 대한 선취적 이해가 실제로 죽음 이전 삶의 가능성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내용을 제공하지 못 한다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죽음의 불가피성에 대해서만 말하고 그 죽음 에 도달하기까지 실현될 수도 있는 구체적인 삶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말 하지 않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자신이 죽음에 대해 현존재가 가지는 예 견적 지식은 추상적인 것으로 남는다.
이는 하이데거의 죽음 선취 개념 이 형식적 차원에서는 전체성에 대한 통찰을 제공할 수 있을지 몰라도, 실제 삶의 구체적 내용과 방향성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는 공허하다.
판 넨베르크에 따르면 죽음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사건들은 우연적이기에, 결코 죽음의 방향에서 우리에게 닥쳐오는 것이 아니다.41)
39) Ibid., 106-107.
40)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376-377.
41) Wolfhart Pannenberg, “Hermeneutics and Universal History,” 125.
삶은 우연성과 예측 불가능성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실존의 실제 과정을 적절하게 예견할 수 없다.
그것은 우리에게 오직 회고적으로만, 그 끝이 실제로 나타났을 때만 접근할 수 있게 된다.
둘째로 판넨베르크는 죽음이 인간 실존을 전체로 완성한다는 하이데 거의 전제 자체를 겨냥하여 비판한다.
판넨베르크는 “죽음이 우리의 삶 을 중단시키는 것이 아니라서, 가장 좋은 경우에는 성공적인 삶이 부분 적으로나마 우리에게 남는 것이 아닌가? 다시 말해 인간은 죽음을 넘어 전체적인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가?”42)하는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한다.
이는 단순한 수사적 질문이 아니라, 인간 실존에 대한 존재론적 이해의 핵심을 건드리는 비판이다. 왜냐하면 판넨베르크가 보기에, 죽음은 삶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중단시키는 것이기이 때문이다.
따라서 개 인 실존의 전체성은 그의 죽음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오직 개별 인간 존 재의 유한성을 초월하는 규정의 관점에서만 시야에 들어올 것이다.
여기 서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사회적 삶의 그물망 또는 공동체성이다. 그러 나 개별 인간 존재의 목적지는 가족, 민족, 또는 사회와 같은 어떤 종류 의 집단에 대한 희생으로 자신을 소진하는 것과 절대 일치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적 진보의 기준은 사회적 삶의 형식들이 개인의 자유를 요구 하는 정도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따라서 인류의 목적은 개인이어야 하고 동시에 사회이어야 하며, 둘 다 상호 조건적이다.
판넨베르크가 보기에, 하이데거의 실존주의는 개인주의적이다. 그가 보기에 인간 실존의 전체성은 사회적이고 역사적 차원을 필연적으로 포 함해야 한다.
인간 존재의 전체성에 관한 질문은 개인이 자기 죽음을 넘 어 공동체가 역사적으로 참여를 지향할 때만 만족스러운 답을 찾을 수 있다.43)
42) Ibid., 125.
43) Ibid., 126.
이러한 맥락에서 판넨베르크가 보기에 하이데거의 가장 큰 잘못은 역사성 분석에서 보편사의 문제를 배제했다는 점이다. 이국헌은 “판넨베르크에게 있어서 보편사는 역사의 어느 한 시점을 기준으로 하는 역사적 이해를 지양하고 전체적으로서의 역사, 즉 미래로부터 과거와 현재를 연 결하는 포괄적 역사를 지향하는 것을 의미한다.”44)라고 하며 판넨베르크 의 보편사를 이해한다. 그래서 판넨베르크는 하이데거가 딜타이의 상대 주의를 피하려다 오히려 개인 현존재로 후퇴했다고 비판하는데, 이는 하 이데거의 역사성 개념이 보편사의 지평을 상실했다는 비판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45)
하이데거의 역사성을 분석하며 판넨베르크는 “의미의 범주 에 대한 논의를 개별 인간 존재의 기술에 국한시킨다.”46)라고 비판한다. 판넨베르크는 이러한 하이데거의 제한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딜타이 자신의 성찰에서 찾는다.
딜타이는 개인의 삶의 의미가 무엇으로 이루어 지는가는 그러한 의미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의해 명확하게 결정되지 않 는다고 언급하면서, 궁극적 의미는 삶의 끝에서만, 나아가 역사의 의미 를 결정하는 데 필요한 모든 자료를 갖기 위해서는 역사의 끝을 기다려 야만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47)
이를 판넨베르크는 부분들이 전체보다 더 많이 드러낼 수 없으므로 하이데거의 실존을 통한 죽음 이해의 해석학은 전체를 해석하지 못하는 온전하지 못한 해석학이라 비판한다.48)
44) 이국헌, “판넨베르크의 희망의 종말론 이해,” 「한국교회사학회지」 제35집 (2013/가을), 144.
45) 박영식, “판넨베르크 신학의 신정론,” 「신학사상」 제199집 (2022/겨울), 138-139.
46) Ibid., 122.
47) Wilhelm Dilthey, Pattern and Meaning in History, 106.
48) Wolfhart Pannenberg, “Hermeneutics and Universal History,” 124.
더 근본적으로, 부분들 자체가 전체에 대한 지식 없이는 확고한 기반 을 얻을 수 없는 주된 이유는, 오직 전체에 대한 지식만이 부분들이 실제로 가질 자격이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순환 논리는 역사 전체의 접근 불가능성에 대한 통찰은 상대주의의 막다른 골목으로 이끈다는 결론을 낳는다.
바로 이 지점이 판넨베르 크가 하이데거의 역사성을 비판하는 지점이다.
그는 하이데거가 자신의 역사성 분석에서 개인을 넘어서는 역사의 전체성에 관한 질문을 더 이상 제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쉽게 이해될 수 있다고 본다.49)
하이데거 는 보편사의 전체가 우리의 파악을 넘어선다는 딜타이의 통찰 앞에서, 개인 현존재의 역사성 분석으로 후퇴한 것이다. 그러나 판넨베르크가 보 기에 이는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회피에 불과하다.
개인 인간 존재의 전 체성에 대해 말하는 것조차도 보편사를 포괄하는 전체가 우리의 파악을 넘어서 있는 한 문제적인 것으로 나타나야 한다.
왜냐하면 개별 인간 존 재는 그가 속한 포괄하는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만 그의 전체성을 구성하 는 의미를 받기 때문이다.
2. 미래의 우선성과 종말론적 선취
그런데도 판넨베르크는 하이데거의 핵심 통찰 중 하나를 높이 평가 한다.
그것은 바로 미래가 역사성에 대해 갖는 우선성의 인식이다. 판넨 베르크는 딜타이를 넘어서는 하이데거의 이러한 단계는 특별히 인간적인 가능성, 즉 자신의 미래 죽음을 선취하고 그로써 인간 실존의 전체성을 획득하는 가능성에 대한 지식과 결합되어 있다고 지적한다.50)
하이데거 는 딜타이가 받아들였던 역사를 힘들의 연결로 보는 개념에 반대했고, 시간성과 인간 실존의 역사성을 미래와의 관계를 분석했다.51)
판넨베르 크는 하이데거의 미래 우선성 통찰을 긍정하면서도, 그것을 죽음이 아닌 하나님의 종말론적 계시로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52)
49) Ibid., 123.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은 비본래성, 본래성, 시간성, 역사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하이데거는 시간성까지만 분석하고 역사성은 분석하지 않는다. 이러한 하이데거의 모순 을 판넨베르크는 지적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50) Ibid., 124.
51) Ibid., 123-124.
52) 이정배, “판넨베르크의 자연신학 연구 - 보편사의 얼개에서 본 과학과 종교의 공명론,” 「신학사 상」제119집 (2002/겨울), 153-154.
이 점에서 판 넨베르크의 종말론적 선취 개념은 하이데거의 선취를 보편사와 기독교 종말론의 지평으로 확장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53)
그러나 판넨베르크는 하이데거의 선취 개념을 죽음의 맥락에서 분리 하여 종말론적으로 재해석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자신의 미래 죽음 에 대한 지식은 인간이 자신의 목적지에 대한 질문의 진지함을 의식하게 만들 수 있지만, 그 자체로는 인간의 최종 목적지에 대한 지식일 수 없으 며, 그것으로부터 인간 존재의 전체성이 구성될 수 없다고 본다.54)
이는 하이데거의 개념으로부터 전체성에 대한 말이 오직 선취적 방식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통찰을 더욱 명료하게 만든다.
판넨베르크는 하이데 거의 『존재와 시간』에서 인간의 전체성 즉, 현존재는 누구인가는 오직 그 미래를 선취함으로써만 파악될 수 있다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그러나 이 통찰을 완전히 전개하기 위해서는 죽음이 인간 존재의 최종 가능성이라는 딜타이로부터 유래한 생각을 제거해야 한다고 판넨베르크 는 이해한다.55)
왜냐하면 『존재와 시간』에서 하이데거의 실존론적 분석론의 원래 의 도된 일반적 존재론적 범위에 따라, 현존재의 분석을 통한 존재 이해는 모든 존재자들의 존재 이해 즉, 현존재의 죽음을 통한 미래의 선취를 통 해 모든 존재자들의 존재 이해를 생각하는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는 선취 개념을 단지 개인 현존재의 실존론적 구조로만 보는 것이 아 니라, 모든 존재자의 존재론적 구조로 확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판넨베르크는 하이데거의 죽음이라는 개인의 선취가 아니라 종말론적 해석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의 가장 독창적인 부분은 하 이데거의 선취 개념을 보편사의 맥락에서 재구성하는 것이다.56)
53) 오승성, “하이데거의 ‘전회’가 갖는 철학적인 의미의 신학적인 수용: 슐라이어마허와 틸리히의 주 체중심적인 중재신학을 넘어서,” 「신학사상」 제153집 (2022/여름) 15-20.
54) Wolfhart Pannenberg, “On Historical and Theological Hermeneutic,” in Basic Questions in Theology, vol. 1, trans. George H. Kehm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70), 167.
55) Ibid., 166.
56) 오승성, “불트만의 실존론적 이해에 대한 판넨베르크의 비판,” 「한국조직신학논총」 제19집 (2007/가을), 190.
그는 개인과 인간 보편적으로, 인간 존재에 관해서는 오직 그러한 선취를 통해 서만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명확해졌다고 주장한다.57)
이는 인간 실존의 전체성뿐만 아니라 역사 전체의 의미도 선취적 방식으로만 접근 가능하 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개인은 고립된 존재가 아니다. 개인이 자신 의 인간 존재의 전체성을 선취할 수 없다는 것은 개인이 서 있는 사회적 연관성 때문이지만, 또한 모든 개인의 인간적 목적지의 공통성 때문이 다. 따라서 개인은 동시에 희생하고 봉사하며 그것을 통해 자신을 넘어 서 사회의 전체를 포함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인간 존재의 전체성을 선취 할 수 없다.58)
더 나아가 개별 사회는 더 포괄적인 역사적 맥락 안에 서 있다.
이는 정치적 또는 사회적 전체성에 대한 선취가 항상 그 전체 역사 속의 인류 전체에 대한 선취를 함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판넨베르크에 따르면, 기존의 사회적 삶의 형태를 전복하거나 확증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인간적인 것에 호소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것이 의도하는 것은 어떤 현재 시점에서 모든 사람들 사이의 삶의 형태가 아니라, 항상 진정한 인 간을 향한 인간들의 여전히 실현되지 않은 목적지였다고 주장한다.59)
57) Wolfhart Pannenberg, “On Historical and Theological Hermeneutic,” 167.
58) Ibid., 168.
59) Ibid., 168.
이 러한 통찰은 하이데거가 주장하는 선취의 범주를 넘어서 사실적 사건 과 정의 미완결된 성격을 건너뛰지 않으면서도 최종 목적지를 향해 질서 지 워진 인류의 역사를 생각할 수 있게 만든다.
이는 하이데거가 딜타이의 상대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현존재로 후퇴했던 것과는 달리, 보편사의 주제를 유지하면서도 역사적 상대성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것 이다.
그래서 판넨베르크가 보기에 자신의 인간 존재의 전체에 대한 선취 가 삶에 대한, 또는 이 사람 또는 저 사람의 실존에 대한 모든 방식으로든 항상 이미 전제된 것처럼, 보편사의 전체도 이미 선취되고 이 사건 또 는 저 사건과 그 의미에 대한 모든 대화에서 전제되어 있다. 따라서 판넨 베르크는 왜 이러한 암묵적 선취가 성찰되고 주제화되어서는 안 되는지 알 수 없다고 반문한다.60)
판넨베르크의 해석학적 기획에서 가장 독특한 점은 기독교 종말론을 역사 이해의 구조 안으로 통합하는 방식이다.
보편사의 전체는 완결되지 않았지만, 그런데도 선취 될 수 있다.
마치 개별 인간의 삶이 그 자신에 대한 이해하는 태도를 위해 그러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 두 질문은 단지 평행한 것이 아니다.
개별 인간이 자신의 실존의 여전히 미해결된 전체성에 자신을 관계시키기 때문에, 그는 세계와 그 역사의 전체에 자 신을 관계시킨다.61)
더 나아가 이러한 방식으로 그는 또한 항상 부재하는 전체성을 구성하는 신비로운 힘으로서 하나님께 자신을 관계시킨다.
이 는 조직신학의 신론과 보편사가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판넨베르크에 따르면, 모든 선취는 그것의 관점에 의해 조건 지워지고, 역사 속에 위치해서 구속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것은 단순한 선취이 지, 전체 자체가 아니다. 그런데도 그것이 선취인 한, 그것은 미래에 의 해 구성된 전체의 현존이다.
그는 내재적으로 성찰된 선취만이 역사적 상대성을 내재적 요소로 포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오직 내재적으로 성찰된 선취의 양식에서만 역사의 전체가 미래의 개방성에 폭력을 가하지 않고, 따라서 기본적으로 자신의 태도를 상대성을 인식하는 데 실패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생각될 수 있다.
이성이 연루된 상대성과 유한성은 본질적 내용들의 단순한 지 칭으로부터, 인류의 역사로서 그리고 보편사에 이르기까지 전체를 선취 속에서만 생각할 수 있게 하며, 개념들 속에서 확정적으로는 생각할 수 없게 한다.62)
60) Ibid., 168.
61) Ibid., 169. 211
62) Ibid., 170.
그러나 이것이 회의주의나 상대주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개념 자체는 실제로 일어나는 것에 대한 성찰에서 단순한 선 취로서 제시될 수 있다.
3. 보편사적 계시로서의 예수 부활
그리고 판넨베르크의 종말론적 해석학에서 결정적인 것은 예수 그리 스도의 역사가 바로 이러한 궁극적 미래의 선취로 이해된다는 점이다.
예수의 사역과 운명의 독특한 선취적 구조는 철학적 상황 자체의 문제들 이 그러한 해결을 향해 수렴하는 것처럼 보이는 가운데, 존재론, 인식론, 그리고 역사철학에 대한 함의들을 숙고하려는 시도를 정당화한다.63)
예 수의 부활은 유대 묵시문학이 역사의 끝에 기대했던 사건이 그에게서 미 리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의 부활에서 일어난 사건은 그 자체 로 단지 끝의 선취일 뿐, 끝 자체가 아니다.
판넨베르크는 예수의 부활과 일반 부활의 종말론적 미래 사이의 차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양적 인 것이지, 질적인 것이 아니다.64)
63) Ibid., 174.
64) Ibid., 179.
이러한 의미에서 예수의 부활에서 일어난 선취의 방식은 그것의 고 유한 현실과 더 이상 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미리 일어났기 때 문에, 원시 기독교는 예수가 하나님의 종말론적 계시자라고 선포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역사의 종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가 이러한 의미에서 완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항상 그의 통치가 여전히 오고 있는 역사 속 하나님의 계시는 항상 새롭게 이해되 어야 한다.
이러한 종말론적 구조는 기독교 전통의 전승 과정 자체를 가 능하게 한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계시 전승 과 정에서 역사 전체는 계속해서 새롭게 구성될 것이다.
이는 하이데거가 개인 현존재의 역사성 분석으로 제한했던 것을, 판넨베르크가 보편사의 차원으로 확장하면서도 역사적 상대성과 미래에 대한 개방성을 유지하는 방식을 보여준다.65)
65) Ibid., 158.
Ⅴ. 나가는 말
판넨베르크의 보편사적 해석학의 토대는 인간의 주관적 실존이 아닌 역사 그 자체이다. 하이데거에게 역사는 사실상 역사성으로서 역사를 가 능하게 하는 현존재의 역사적 성격을 가리키는 반면 판넨베르크에게 역 사는 하나님이 활동하시는 객관적인 무대이자 계시가 발생하는 장이다. 따라서 하이데거에서서 역사가 내재적이고 주관적이라면, 판넨베르크에 게서 역사는 외재적이고 객관적이다. 객관적인 역사적 사건들의 연관성 속에서 하나님의 계시가 간접적으로 발생한다고 주장하는 판넨베르크는 실제로 발생한 인류 역사의 우연적 사건들 속에서 보편적 의미를 찾아가 는 방식으로 신학을 역사적으로 정립한다. 판넨베르크는 역사의 의미를 전체적으로 확정하는 결정적인 열쇠로 서 역사의 종말을 제시한다. 그러나 판넨베르크는 하이데거처럼 죽음에 로의 선구를 통해 전체성을 실존적으로 확보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아 직 도래하지 않은 역사의 종말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통해 현 재의 역사 안에서 미리 발생했다고 본다. 즉, 예수의 부활은 역사의 종말 이 앞당겨져 선취된 사건이며, 이 종말론적 사건이 과거와 현재의 모든 역사적 사건에 궁극적인 의미를 소급적으로 부여한다.
이렇게 실존적이 아니라 종말론적으로 보편적 계시는 발생한다. 판 넨베르크는 역사적 인간 예수의 삶과 운명, 특히 그의 부활이라는 구체 적 사건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입증한다. 예수의 부활은 특수한 사람에게 만 허락된 비밀스러운 지식이 아니라 누구나 검증 가능한 사건이기에 보 편적 진리다. 기독교 신앙은 맹목적인 비약이 아니라, 역사 안에서 선취 적으로 일어난 종말 사건을 근거로 미래의 완성을 신뢰하는 역사적 행위 가 된다. 판넨베르크의 시간 이해는 하이데거의 실존론적 시간성을 넘어 종말론적 관점에서 재구성된다는 점에서 신학적 중요성을 가진다. 즉, “판넨베르크의 시간 이해는 하이데거의 미래 우선성을 종말론적 완성으 로 확장함으로써, 역사의 전체성을 보편사적 관점에서 파악한다.”66)
66) 정기철, “판넨베르크의 시간과 종말론,” 「한국개혁신학」제3집(1997/가을), 309-310.
판넨베르크의 해석학적 기획은 하이데거의 실존론적 해석학이 빠질 수밖에 없었던 주관주의를 역사로서의 계시를 통해 객관주의적인 방식으 로 극복한다. 개인의 실존적 죽음 대신에 종말론적 관점에서 예수의 부 활에 주목함으로써 판넨베르크는 해석학의 중심을 인간의 내면에서 누구 에게나 입증가능한 역사로 이동시킨다. 이러한 판넨베르크의 보편사의 신학은 현대 신학이 직면한 계시와 역사의 이원론을 극복하고, 기독교 진리를 사적 영역에서 공적 역사의 영역으로 복귀시켰다는 점에서 지대 한 공헌을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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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초록
본 논문은 판넨베르크의 신학적 해석학이 하이데거의 실존론적 해석 학, 특히 『존재와 시간』에 나타난 죽음 개념을 어떻게 비판적으로 재구성 하는지를 체계적으로 분석한다. 하이데거는 현존재의 시간성 및 죽음에 대한 선취를 통해 개별 실존의 전체성을 확보하려 하지만, 판넨베르크는 이러한 접근이 의미의 지평을 유한한 개인의 선이해로 한정함으로써 역 사 바깥에서 기원하는 초월적 계시 가능성을 구조적으로 차단한다고 진 단한다. 이에 판넨베르크는 계시를 보편사적 사건으로 재정의하며, 역사 의 종말이 과거 사건들의 의미를 소급적으로 확정하는 해석학적 원리로 작동한다고 주장한다. 본 연구는 먼저 딜타이와 가다머의 해석학 논증 속에서 판넨베르크 의 해석학적 입장을 구성한다. 판넨베르크는 딜타이의 부분-전체 순환 원리를 수용하되 그것이 역사주의적 상대성에 갇혀 있다고 비판하며, 가 다머의 지평 융합 개념이 개인 지평에 국한되어 하나님의 계시라는 객관 적 차원을 상실했다고 지적한다. 이어 하이데거의 죽음 개념을 존재론적 시간성의 맥락에서 상세히 분석한 뒤, 판넨베르크의 하이데거 비판을 죽 음 개념의 추상성과 공허함, 죽음이 삶을 완성하지 못하고 중단시킨다는 점, 보편사 배제로 인한 역사 이해의 왜곡, 미래 우선성을 죽음이 아닌 종말론적 완성으로 재구성해야 한다는 주장, 선취 개념의 보편사적 확장 가능성으로 체계화한다. 판넨베르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의 종말을 선취하는 사 건으로서, 과거 사건들의 궁극적 의미를 드러내는 해석학적 열쇠가 된 다. 부활은 단순히 개인 구원의 약속이 아니라, 보편사 전체의 방향과 의 미를 결정하는 종말론적 사건이다. 이로써 모든 인간적 선이해는 미래적 종말에 의해 상대화되며, 진리의 최종 검증은 주관적 구성이나 언어적해석 순환이 아니라 종말 사건 자체에 의해 주도된다. 결론적으로 판넨 베르크의 종말론적 해석학은 하이데거의 철학적 통찰을 비판적으로 계승 하면서도, 개인 실존의 유한성을 보편사의 지평으로 확장하고, 역사성과 합리성 그리고 공적성의 통합을 통해 신학적 진리 주장의 방법론적 정당 성을 복원한다. 본 연구는 현대 해석학 논쟁 속에서 신학적 종말론의 철 학적 타당성을 재평가하고, 해석학과 신학의 교차점에서 계시와 역사의 관계를 새롭게 조명한다.
주제어 판넨베르크, 하이데거, 해석학, 종말론, 보편사적 계시, 선취
Abstract
Pannenberg’s Eschatological Hermeneutics — A Critique of Heidegger’s Concept of Death and Its Reconstruction in Universal History
JinHun Kim (Pastor, Christian ethics Jea Jesus Korea Sungkyul Church )
This paper systematically analyzes how Pannenberg’s theological hermeneutics critically reconstructs Heidegger’s existential hermeneutics, particularly the concept of death as expressed in Being and Time. While Heidegger seeks to secure the totality of individual existence through the temporality of Dasein and the anticipation of death, Pannenberg diagnoses that this approach structurally blocks the possibility of transcendent revelation originating outside of history by limiting the horizon of meaning to the preunderstanding of a finite individual. Pannenberg, therefore, redefines revelation as a universal historical event and argues that the end of history functions as a hermeneutic principle that retroactively confirms the meaning of past events. This study first constructs Pannenberg’s hermeneutic position within the context of Dilthey and Gadamer’s hermeneutic arguments. Pannenberg accepts Dilthey’s part-whole circulation principle, but criticizes it for being trapped in historicist relativity. He also argues that Gadamer’s concept of horizon fusion, limited to the individual horizon, loses the objective dimension of God’s revelation. Following a detailed analysis of Heidegger’s concept of death within the context of ontological temporality, this paper systematizes Pannenberg’s critiques into the abstractness and emptiness of the concept of death, the argument that death does not complete life but rather interrupts it, the distortion of historical understanding due to the exclusion of universal history, the argument that the priority of the future should be reframed as eschatological completion rather than death, and the possibility of a universalhistorical expansion of the concept of anticipation. For Pannenberg, the resurrection of Jesus Christ is an event that anticipates the end of history and thus serves as a hermeneutic key to revealing the ultimate meaning of past events. The resurrection is not simply a promise of individual salvation, but an eschatological event that determines the direction and meaning of universal history as a whole. Thus, all human preunderstanding is relativized by a future end, and the final verification of truth is driven not by subjective construction or a cycle of linguistic interpretation, but by the eschatological event itself. In conclusion, Pannenberg’s eschatological hermeneutics critically inherits Heidegger’s philosophical insights, while extending the finitude of individual existence to the horizon of universal history. It also restores the methodological legitimacy of theological truth claims through the integration of historicity, rationality, and publicness. This study reassesses the philosophical validity of theological eschatology within the context of contemporary hermeneutic debates and sheds new light on the relationship between revelation and history at the intersection of hermeneutics and theology.
Keyword Pannenberg, Heidegger, Hermeneutics, Eschatology, Revelation as Universal History, Anticipation
논문 접수일: 2025년 11월 30일 논문 수정일: 2025년 12월 29일 논문 게재 확정일: 2026년 3월 20일 66)
神學思想 212집 · 2026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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