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수필 (1257) 썸네일형 리스트형 흐드러지다 2/박이화 간밤 그 거친 비바람에도 꽃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도리어 화사하다 아직 때가 안 되어서란다 수분(受粉)이 안 된 꽃은 젖 먹은 힘을 다해 그러니까 죽을힘을 다해 악착같이 가지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단다 그러나 으스러질 듯 나를 껴안고 있던 그대 팔이 잠들면서 맥없이 풀어지듯 .. 개와 나의 위생적인 동거/유계영 기분은 어제를 좋아하니까 헛짖는 것이다 냉장고에 매달린 포스트잇이 내일을 향해 킁킁거릴 때 너는 도대체가 관심이 없겠지만 국 데워먹어라 사랑한다 이 문을 열면 네가 좋아하는 신선한 바다 너는 맛있는 냄새가 나는 쪽으로는 가지 않지 밤나방이 흔드는 팔랑개비를 쫓아 바다까지 .. 환장하겠다/이봉환 한 머스마가 달려오더니 급히 말했다 선생님 ‘끼’로 시작하는 말이 뭐가 있어요? 끼? 쫌만 기다려 나는 사전을 뒤졌다 ‘끼니’가 얼른 나왔다 녀석은 단어를 찾는 동안 신이 나서 지껄인다 서연이하고요 끝말잇기를 했는데요 걔가 ‘새끼‘라고 하잖아요 곧 내가 말했다 응, ‘끼니’.. 한낮의 체위/ 정운희 손을 뻗으면 과자가 있고 만화책이 있다 컵라면과 나무젓가락, 양말과 속옷, 모자와 우산 나른한 사건 현장 같아서 말캉해지다가 딱딱해지다가 자주 사용되는 소화제처럼 치명적이다 컴에서 쓰다만 시를 꺼버렸다 베란다는 삭제하기 좋은 곳 목욕용 의자를 놓고 뒤 돌아앉아 등이 따끈 .. 구혼/ 함민복 불알이 멈춰 있어도 시간이 가는 괘종시계처럼 하체에 봄이 오지 않고 지난한 세월을 출근한 얼굴 장미꽃이 그 사내를 비웃었다 너는 만개하지 못할 거야 그 후, 시든 장미꽃이 다시 그 사내를 비웃었다 그래도 나는 만개했었어 - 시집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창작과비평사, 1996) 이.. 양성우 ‘살아있는 것은 아름답다’ 살아있는 것은 아름답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살아있는 것은/ 아름답다...바람도 없는 어느 한 여름날,/ 하늘을 가리우는 숲 그늘에 앉아보라... 나무들의 깊은 숨소리... 무수한 초록잎들이 쉬지않고 소곤거리는 소리...” 김광규 ‘능소화’ “7월의 어느 골목길/ 어디선가 해피 버스데이 노래를/ 서투르게 흉내내는/ 바이올린 소리/ 누군가 내 머리를 살짝 건드린다/ 담 너머 대추나무를 기어 올라가면서/ 나를 돌아다보는/ 능소화의/ 주황색 손길/ 어른을 쳐다보는 아기의/ 무구한 눈길 같은” 손광세 ‘땡볕’ “7월이 오면/ 그리 크지않는 도시의 변두리쯤/ 허름한 완행버스대합실을/ 찾아가고싶다...떠가는 흰 구름을 바라보며/ 행려승의 밀짚모자에/ 살짝 앉아 쉬는/ 밀잠자리...7월이 오면/ 시멘트 뚫고 나온 왕바랭이랑/ 쏟아지는 땡볕 아래/ 서 있고 싶다.” 이전 1 ··· 70 71 72 73 74 75 76 ··· 15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