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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

[스크랩] 제1장 상고사의 쟁점 - (3) 사마천의 사기 - 나. 항우본기

나. 항우본기 

1. (항우가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공로봉작을 주었는데 하  북성과 산서성 북부에 관련된 부분을 발췌하여 보면 아래와 같다)
조왕 헐(趙王 歇)은 대왕(代王: 산서성 북부)에 봉하고, 장이(張耳)를 상산왕(常山王: 하북성 중부의 서쪽, 산서성 중  부의 동쪽 산악지대)으로 하여 조(趙)땅을 주고 도읍을 양국(襄國: 하북성 남부 형대시 서남쪽)에 정하게 하고, 연나라 왕 한광(燕王 韓廣)을 요동왕(遼東王)으로 옮기게 하고, 연나라 장수였던 장도를 연왕으로 세우고 계(薊: 현재의 계가 아니고 북경시 서남방 100여리 지점, 이수북쪽)에 도읍하게 했다. 
----성안군 진여(陳餘)는 평소 현능하다는 명성이 있었고 조나라에 대해서도 공이 있었으므로 남피(南皮: 하북성과 산동성의 경계인 황하하류 북서쪽 남피현 지역)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 부근의 세 현을 봉지로 주었다.   (항우본기, 고조본기, 같음)

2. 장도는 봉국(연나라)으로 가서 한광(연왕)을 요동으로 쫓아내려고 하였으나 한광이 듣지 않자 무종(無終: 북경 근처)에서 격살하고 그 땅을 빼앗아 봉지로 삼았다.   (항우본기, 고조본기, 내용같음. BC.206년 8월)

 

※①계(薊)와 요동; 당시 연나라 도읍 계는 북경 서남쪽 100여리 앞의 이수(易水) 북쪽에 있었는데 후세에 북경 북쪽 100여리 되는 곳으로 이동하여 200여리나 밀어냈다. 당시의 북경남쪽 100여리 되는 도성인 계에서 동쪽지역에 요동과 요서가 있었으니 그 경계는 지금의 북경남쪽에서 천진으로 흐르는 영정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때의 요수(遼水)는 영정하 였다. 장도는 본래의 연나라 서울인 계를 찾이하고 한광은 영정하 북쪽으로 쫓아내려고 한 것이다.
갈석은 제5장 5절 (1) 오제본기 참조.

출처 : 한밝회 : 한국상고사연구회
글쓴이 : 유완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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