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유교 : 삼국시대(신라)
신라의 건국은 삼국 가운데 가장 이른 서기전 57년으로 되어 있으나, 율령의 반포, 백관(百官)
공복의 제정, 국사 편찬, 대학 설립 등 문물 제도의 정비에서 고구려와 백제에 비해
대체로 200~300년의 후진성을 보이고 있다. 신라는 삼국 가운데 중국 대륙과의 문화 교류도
가장 늦었고, 고구려나 백제와의 관계도 일찍부터 개방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신라는 꾸준히 발전해 삼국통일을 바라보는 150년간은 뚜렷이 흥륭지세(興隆之勢)의
진취적 기상을 보였다. 외래 문물에 쉽사리 동화되지 않고 고래의 기질과 풍습을 오래 보존해
고유한 정신을 저력으로 유교와 불교 등 외래 문화를 섭취*융화시켰다.
신라는 발전해가면서 국가적 체통을 확립시키기 위해 유교 문화를 이용하였다. ≪춘추전≫과
삼례(三禮) 등의 경전에 있는 사상을 국가 제도에 적용했던 것이다. 또한 재래의 고신도적
요소와 함께 수기치인이라는 유교의 정교이념(政敎理念)이 드러나는 진흥왕 순수비,
≪주역≫이 국가적 차원에서 응용된 경주 태종무열왕의 능비 등도 유교사상의 영향을 보여준다.
신라의 화랑도 정신을 대표하는 원광법사의 ‘세속오계’에서도 유교적 색채를 볼 수 있다.
삼국통일 후 신라는 중국과의 문화 교류를 보다 직접적으로 확대시켜 갔고, 신문왕 대에 설치한
‘국학’에서의 경전 교육과 유교적 학술 문화 진흥은 설총(薛聰) 등의 유학자를 배출하기도 하였다.
신라 후기로 갈수록 경술과 문장을 익히기 위해 입당 유학하는 일이 잦아지고 수많은 문인*
학자들이 나오게 되었다. 유교의 학술적 연마는 상층 계급과 지식층의 일이었지만 유교의
윤리적 규범은 민간에까지 널리 영향을 주어 계층이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깊이 침투하였다.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여러 사상과 융합되어 있었던 유교는 개인의 교양*가정 도덕과
사회 윤리*정치 제도*교육*문화*국가의 방위 등 실질적인 측면에서 기여하였다.
한국사상의 유교화인가? 아니면 유교의 한국화인가?
또 중국 유교와 한국 유교는 사상사적으로 어떤 특징이 있는가?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이러한 질문에 정확한 답을 내리기는 어렵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오랜 기간을 거쳐 유교는 이미 한국에 토착화되고 체질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신라의 건국은 삼국 가운데 가장 이른 서기전 57년으로 되어 있으나, 율령의 반포, 백관(百官)
공복의 제정, 국사 편찬, 대학 설립 등 문물 제도의 정비에서 고구려와 백제에 비해
대체로 200~300년의 후진성을 보이고 있다. 신라는 삼국 가운데 중국 대륙과의 문화 교류도
가장 늦었고, 고구려나 백제와의 관계도 일찍부터 개방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신라는 꾸준히 발전해 삼국통일을 바라보는 150년간은 뚜렷이 흥륭지세(興隆之勢)의
진취적 기상을 보였다. 외래 문물에 쉽사리 동화되지 않고 고래의 기질과 풍습을 오래 보존해
고유한 정신을 저력으로 유교와 불교 등 외래 문화를 섭취*융화시켰다.
신라는 발전해가면서 국가적 체통을 확립시키기 위해 유교 문화를 이용하였다. ≪춘추전≫과
삼례(三禮) 등의 경전에 있는 사상을 국가 제도에 적용했던 것이다. 또한 재래의 고신도적
요소와 함께 수기치인이라는 유교의 정교이념(政敎理念)이 드러나는 진흥왕 순수비,
≪주역≫이 국가적 차원에서 응용된 경주 태종무열왕의 능비 등도 유교사상의 영향을 보여준다.
신라의 화랑도 정신을 대표하는 원광법사의 ‘세속오계’에서도 유교적 색채를 볼 수 있다.
삼국통일 후 신라는 중국과의 문화 교류를 보다 직접적으로 확대시켜 갔고, 신문왕 대에 설치한
‘국학’에서의 경전 교육과 유교적 학술 문화 진흥은 설총(薛聰) 등의 유학자를 배출하기도 하였다.
신라 후기로 갈수록 경술과 문장을 익히기 위해 입당 유학하는 일이 잦아지고 수많은 문인*
학자들이 나오게 되었다. 유교의 학술적 연마는 상층 계급과 지식층의 일이었지만 유교의
윤리적 규범은 민간에까지 널리 영향을 주어 계층이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깊이 침투하였다.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여러 사상과 융합되어 있었던 유교는 개인의 교양*가정 도덕과
사회 윤리*정치 제도*교육*문화*국가의 방위 등 실질적인 측면에서 기여하였다.
한국사상의 유교화인가? 아니면 유교의 한국화인가?
또 중국 유교와 한국 유교는 사상사적으로 어떤 특징이 있는가?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이러한 질문에 정확한 답을 내리기는 어렵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오랜 기간을 거쳐 유교는 이미 한국에 토착화되고 체질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출처 : 동양철학 나눔터 - 동인문화원 강의실
글쓴이 : 권경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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