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유학 : 조선시대(후기)
조선 후기는 밖으로부터 새로운 문물을 접하고 정치*문화적으로 변화와 충격을 받으면서
근대로 접어드는 복잡한 시대였다.
영*정조시대는 침체했던 국운을 쇄신해 융성을 도모했던 문예 부흥기였다. 영조는 탕평책을
써서 당쟁을 완화시켰고, 정조는 규장각을 세워 당색과 계층에 관계없이 학자들을 모아 국정과
학술문화에 기여하였다. 일반 학계에서도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학풍이 일어나고 있었다.
영조 조에는 이익의 성호학파가 나왔고, 정조 조에는 중국의 연경을 오가며 청조문화(淸朝文化)의
영향을 받아 북학파(北學派)가 형성되었다.
영*정조시대에는 실학과 함께 천주교가 들어와 남인 학자들을 중심으로 관심을 끌게 되었다.
천주교를 사학(邪學)으로서 비판하거나, 유교와 천주교를 절충해 이해하거나, 천주교를 신봉해
유교 의례를 거부하는 등 여러 가지 현상이 나타났다. 서학이 들어와 논쟁이 벌어지고 사회 문제화
되었던 것은 전 시대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현상이었다.
순조로부터 철종 대까지는 왕실의 인척에 의해 세도 정치가 행해져서 나라의 기강은 무너지고
국정은 극도로 황폐화되었다. 크고 작은 민란이 사방에서 일어났고 도둑떼가 들끓는 가운데
천주교의 신봉자들은 날로 늘어났다. 대규모의 교옥(敎獄)들에도 불구하고 천주교는 계속 번졌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정약용과 김정희 같은 대실학자가 탄생했고, 위정척사와 척양척왜를
주장하는 이항로 및 그를 계승한 화서학파(華西學派)가 형성되었다.
고종*순종 조는 조선 말기의 풍운이 겹치는 시대였다. 1910년 급기야 국권을 빼앗기는 비극을
맞게 되었다. 이러한 난국에 대해 당시의 지성들은 크게 두 가지 입장으로 나뉘어졌다.
보수적 의리학파는 주권 수호를 위해 이념적*정치적으로 외세를 배격했고, 개화파는 국제
문물을 받아들여 개혁과 자강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최근세의 한국은 서양이 침투하면서 대혼란의 시대를 겪었다. 이러한 격변기를 맞이해
조선 후기의 실학과 의리학, 그리고 근대 의식이 단합된 역량으로 포용*승화되었더라면
새로운 철학을 창출하고 나라 발전을 이룩해 민족의 앞날을 개척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소망은 성취되지 못한 채 역사는 흘렀다. 이제 후세들은 선조들의 저력과
가능성을 거울삼아 남아 있는 과제들을 풀어야 할 것이다.
-- 이상 한국학 홈에서 퍼왔습니다.--
조선 후기는 밖으로부터 새로운 문물을 접하고 정치*문화적으로 변화와 충격을 받으면서
근대로 접어드는 복잡한 시대였다.
영*정조시대는 침체했던 국운을 쇄신해 융성을 도모했던 문예 부흥기였다. 영조는 탕평책을
써서 당쟁을 완화시켰고, 정조는 규장각을 세워 당색과 계층에 관계없이 학자들을 모아 국정과
학술문화에 기여하였다. 일반 학계에서도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학풍이 일어나고 있었다.
영조 조에는 이익의 성호학파가 나왔고, 정조 조에는 중국의 연경을 오가며 청조문화(淸朝文化)의
영향을 받아 북학파(北學派)가 형성되었다.
영*정조시대에는 실학과 함께 천주교가 들어와 남인 학자들을 중심으로 관심을 끌게 되었다.
천주교를 사학(邪學)으로서 비판하거나, 유교와 천주교를 절충해 이해하거나, 천주교를 신봉해
유교 의례를 거부하는 등 여러 가지 현상이 나타났다. 서학이 들어와 논쟁이 벌어지고 사회 문제화
되었던 것은 전 시대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현상이었다.
순조로부터 철종 대까지는 왕실의 인척에 의해 세도 정치가 행해져서 나라의 기강은 무너지고
국정은 극도로 황폐화되었다. 크고 작은 민란이 사방에서 일어났고 도둑떼가 들끓는 가운데
천주교의 신봉자들은 날로 늘어났다. 대규모의 교옥(敎獄)들에도 불구하고 천주교는 계속 번졌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정약용과 김정희 같은 대실학자가 탄생했고, 위정척사와 척양척왜를
주장하는 이항로 및 그를 계승한 화서학파(華西學派)가 형성되었다.
고종*순종 조는 조선 말기의 풍운이 겹치는 시대였다. 1910년 급기야 국권을 빼앗기는 비극을
맞게 되었다. 이러한 난국에 대해 당시의 지성들은 크게 두 가지 입장으로 나뉘어졌다.
보수적 의리학파는 주권 수호를 위해 이념적*정치적으로 외세를 배격했고, 개화파는 국제
문물을 받아들여 개혁과 자강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최근세의 한국은 서양이 침투하면서 대혼란의 시대를 겪었다. 이러한 격변기를 맞이해
조선 후기의 실학과 의리학, 그리고 근대 의식이 단합된 역량으로 포용*승화되었더라면
새로운 철학을 창출하고 나라 발전을 이룩해 민족의 앞날을 개척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소망은 성취되지 못한 채 역사는 흘렀다. 이제 후세들은 선조들의 저력과
가능성을 거울삼아 남아 있는 과제들을 풀어야 할 것이다.
-- 이상 한국학 홈에서 퍼왔습니다.--
출처 : 동양철학 나눔터 - 동인문화원 강의실
글쓴이 : 권경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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