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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寄李白(기이백)/杜甫

寄李白(기이백)

<이백에게>

杜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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昔年有狂客(석년유광객) 號爾謫仙人(호이적선인)

筆落驚風雨(필락경풍우) 詩成泣鬼神(시성읍귀신)

聲名從此大(성명종차대) 汨沒一朝伸(골몰일조신)

文彩承殊渥(문채승수악) 流傳必絶倫(유전필절륜)

龍舟移棹晩(용주이도만) 獸錦奪袍新(수금탈포신)

白日來深殿(백일래심전) 靑雲滿後塵(청운만후진)

乞歸優詔許(걸귀우조허) 遇我宿心親(우아숙심친)

未負幽棲志(미부유서지) 兼全寵辱身(겸전총욕신)

劇談憐野逸(극담연야일) 嗜酒見天眞(기주견천진)

醉舞梁園夜(취무양원야) 行歌泗水春(행가사수춘)

才高心不展(재고심불전) 道屈善無隣(도굴선무린)

處士禰衡俊(처사예형준) 諸生原憲貧(제생원헌빈)

槄粱求未足(도량구미족) 薏苡謗何頻(의이방하빈)

五嶺炎蒸地(오령염증지) 三危放逐臣(삼위방축신)

幾年遭鵩鳥(기년조복조) 獨泣向麒麟(독읍향기린)

蘇武先還漢(소무선환한) 黃公豈事秦(황공기사진)

楚筵辭醴日(초연사예일) 梁獄上書辰(양옥상서진)

已用常時法(이용상시법) 誰將此義陳(수장차의진)

老吟秋月下(노음추월하) 病起暮江濱(병기모강빈)

莫怪恩波隔(막괴은파격) 乘槎與問津(승사여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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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날 광객(狂客) 하지장(賀知章) 있었으니

그대를 적선(謫仙)이라 하였지

.

붓을 들어 글씨 쓰면 비바람 놀라게 하고

시 지으면 귀신들 곡하게 하였네.


명성이 이로부터 커지니

묻혀 살던 몸 하루아침에 유명해졌다오.


아름다운 문장 특별한 총애 받으니

세상에 유전(流傳)함 반드시 크게 뛰어나리라

.

천자(天子)의 용주(龍舟) 노 저음을 더디게 하였고

짐승 무늬의 비단 도포 새로 하사받았네

.

대낮에도 깊은 궁전으로 드나들었고

청운(靑雲)의 선비들 뒤따라오느라 먼지 가득하였네.


초야로 돌아가기 원하자 우대하는 조칙(詔勅)으로 허락하니

나를 만나 오랜 친구처럼 대하였네.

숨어 살려는 뜻 저버리지 않고

총애와 욕됨을 겸하였네.

재미있게 이야기 나누며 시골의 편안함을 그리워하고

술 좋아하니 천성의 참됨 볼 수 있네.


취해서는 양원(梁園)의 밤잔치에 춤 추고

사수(泗水)의 봄경치 구경다니며 노래하였다오.

높은 재주 지녔으나 마음대로 펴지 못하고

앞길이 굽혀지니 착하여도 이웃이 없네.


처사(處士)禰衡(예형)처럼 준걸스럽고

공자의 제자 중에 원헌(原憲)처럼 가난하다오

.

벼와 조 구하는 것도 풍족하지 못한데

이의(薏苡)의 비방은 어찌 잦은가.


오령(五嶺)의 무더운 고장에

삼위(三危)로 추방된 신하라오.


몇 년이나 鵩鳥(복조) 만났는가

홀로 기린(麒麟)을 향해 울고 있네.

소무(蘇武)가 한()나라로 돌아온 것보다 이르고

하황공(夏黃公)이 어찌 진()나라 섬기겠는가

.

()나라 잔치에 단술이 없다고 하직하던 날이요

()나라 옥에서 글 올릴 때라오.


이미 당시의 법 적용하였으니

누가 이 바른 뜻을 말해 주겠는가.


나는 늙어 가을 달 아래에서 읊고

병든 몸 저무는 강가에서 일으켜보네.


황제의 은혜 물결 멀리 있다 괴이하게 여기지 마오

뗏목 타고 그대와 나루터 물어 하늘에 오르리라

 

禰衡(예형) : 자가 정평이니 평원의 처사였다.

諸生原憲貧(제생원헌빈) : 孔門의 제자 중에 원헌(原憲)이 지극히 가난하였으니, 예형과 원헌처럼 李白이 재주가 있으면서 녹봉이 없음을 비유한 것이다.

薏苡謗何頻(의이방하빈) : 마원이 교지(交趾)를 정벌하고는 율무를 싣고 돌아오자 사람들이 비방하여 명주라고 하였으니, 李白이 모함을 만났음을 비유한 것이다. 薏苡(의이):율무. 볏과의 한해살이풀

五嶺(오령) : 大庾始安臨賀桂陽揭陽五嶺이라 한다. 李白이 야랑으로 멀리 유배가니, 오령과 삼위는 바로 야랑과 접경지역이다.

三危(삼위) : 삼위산은 중국(中國) 감숙성(甘肅省) 돈황현 남쪽에 있다.

幾年遭鵩鳥(기년조복조) : 가의(賈誼)가 장사왕(長沙王)의 태부(太傅)가 되어 뜻을 얻지 못하였는데, 수리 부엉이가 집에 앉아있었다. 鵩鳥(복조) : 수리부엉이

獨泣向麒麟(독읍향기린) : 孔子가 기린을 보고 울면서 말씀하기를 좋은 때가 아닌데 나왔으니, 우리 가 궁해질 것이다.” 하였다.

黃公(황공) : 상산(商山) 사호(四皓) 중의 한 사람인 하황공(夏黃公)으로, 이들은 진()나라 말기 어지러운 세상을 피하여 상산(商山)에 들어가 은둔하였다.

楚筵辭醴日(초연사예일) : 李白이 영왕(永王) ()의 처소에 있음은 목생(穆生)이 초왕(楚王)이 단술을 베풀지 않는 것을 보고는 하직하고 떠나간 것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야랑(夜郞)은 이백(李白)이 역적 영왕 인(永王 璘)의 부하로 있다가 영왕이 패한 뒤에 귀양 갔던 곳임

梁獄上書辰(양옥상서진) : ()나라 때 추양(鄒陽)이 옥중에서 상서(上書)한 고사를 들어 李白이 자신의 억울함을 밝혔음을 말한 것이다. 추양(鄒陽)은 제()지방 사람으로 오왕(吳王) ()를 섬겼는데, 오왕이 반란을 획책하자 양효왕(梁孝王)을 섬기기 위해 양()나라에 갔으나 모함을 받고 감옥에 갇혔다. 이에 그는 옥중에서 글을 올려 풀려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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