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인도철학사상 핵심 쟁점이었으며, 시대를 막론하고 철학적 논
의에서 첫걸음일 수밖에 없는 ‘나’ 곧 ‘자아’의 개념을 밝히는 데 우선적
인 목적이 있다. 이 문제에 관해 붓다가 침묵 내지는 부정으로 일관했
기 때문에, 고대 용어의 풍부한 철학적 종교적 함의를 현대적 개념으로
풀어내는 일은 난해한 작업일 수밖에 없다. 붓다의 역설적인 태도로 인
해 본래 의도가 어떻든건 간에 무아설(anātmavāda)은 불교의 대표사상
으로 자리매김되어 버렸다. 소위 「무아상경」에는 ‘자아’에 대한 가설로
서 다섯 skandha가 소개되었으며, 다시 이 skandha는 ‘자아’가 아닌 것
으로 부정된다. 이 「무아상경」의 콘텍스트에서 다섯 skandha의 의미와
역할 그리고 그 상관관계를 분석하여, 현대철학이 정리한 ‘자아’의 정의
와 대비함으로써 자아에 대한 붓다의 근본적인 시각 차이를 부각시키도
록 한다. 여기서 rūpa의 구성요소인 upādāyarūpa가 집중 조명된다. 이
개념으로 인해 불교의 자아 정의는 기존의 서양 철학적 관점과는 근본
적으로 다른 독특한 특징이 추가된다. 곧 자아는 인식주체인 동시에 그
인식대상까지 포괄한다. 이는 불교의 자아관은 곧 세계관이고, 인식론이
곧 존재론이라는 통설의 근거를 제공한다.
Ⅰ. 서론
우빠니샤드(Upaniṣad) 이래로 인도인들의 사고는 자아와 세계
의 주관적 탐구라는 그들의 사상적 전통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
고 있었다. 불교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그들의 관심사는 인간에 대
한 객관적 이해보다는, 외부 세계와의 소통을 가능케 하는 경험의
주체로서의 ‘나’라는 존재에 대한 성찰이 주요 관심사였던 것이다.
이는 초기불교 니까야(Nikāya)에서 보이기 시작한 새로운 전문용
어(technical term) 스깐다(skandha, 蘊)의 역할과 니까야에서의
그 비중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오온(pañcaskandha, 五蘊)・십이처(dvadaśāyatana, 十二處)・십팔
계(aṣṭadaśadhātu, 十八界)로써 이해되는 현상세계의 분류법에서
엿볼 수 있듯이 니까야는 자아의 개체성보다는 현상세계의 존립
근거로서의 자아와 세계의 연결고리에 더욱 비중을 둔 듯한 모습
을 보인다. 반면, 아비달마불교에서는 자아의 개체성과 지속성에
근거한 자기동일성의 문제에 천착하는 양상을 보인다. 즉 인식의
발생, 지속, 축적 등의 문제가 주요관심사가 된다. 니까야에서 보
여 지는 붓다의 대표적인 자아에 대한 입장은 무아설(anātmavāda)
로1) 일컬어진다. 이로 인해 야기된 자기동일성의 규명 문제는 아
비달마불교의 최대의 쟁점 가운데 하나가 된다.
본 논고는 먼저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자아’에 대한 개념
정의를 현대철학자의 정리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이는 오늘날
의 불교철학과 인도철학의 이해가 서양학문적 접근방법이 그 근
간이 되어 이루어졌다는 점을 감안할 때 우리에게 보다 친숙한
현대학자의 개념정의와 초기불교 니까야에 나타난 개념을 대비하
여 분석 조명해 보는 것이 보다 보편적인 이해의 틀을 제공해 주
는 역할을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바탕위에 ‘자아’와 ‘개인’
의 의미와 그 상관성을 초기불교를 중심으로 인도사상의 연속선
상에서 재조명함으로써 고대의 용어를 해석하는데 당면하게 되는
1) 무아설(無我說)로 널리 알려지기는 했으나, 이는 anātmavāda를
단정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으므로 이후로는 원어그대로 표기하도록
한다. 본 논고는 개념정의와 관련된 고찰인 만큼 산스끄리뜨의 경우 처음
등장했을 때만 원음을 한글로 표기하고 그 이후는 원어로 표기한다.
자아(self)와 개인(person)에 대한 정의 고찰 ∙ 87
용어 선택의 혼란스러움을 해소함과 동시에 그 개념들이 인도철
학사에서 갖게 되는 그 철학적 의미를 고찰해 보고자 시도한다.
Ⅱ
1. ‘나’ 그리고 ‘자아’ — 철학적 정의
우리는 먼저 ‘나’는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1인칭인 ‘나’를 두고,
일반적인 의미에서 ‘나’가 무엇인지 묻는 다는 것은 처음부터 무
리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나’가 무엇인지를 알고 싶
다면 우선 ‘나’라는 말을 객관화 시킬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
는 ‘나’라는 용어는 ‘자아(self)’라는 용어로 교체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인간으로서 육체적인 존재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나’는 자신(self)이 인간이며 육체적인 존재라는 것을 아는 주체이
다. 그렇다면 이 ‘나’는 자아(self)인가? 이러한 ‘나’ 또는 ‘자아’는
다수일 수 있는가? 상식적으로 ‘자아’라는 것이 다수가 될 수는
있을지언정 ‘나’가 다수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아는 다
수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이는 물론 자아를 어떻게 정의하느냐
에 달려 있다. 학자들은 이 자아(self)라는 말이 놀라울 정도로 모
호하며 그 용어의 쓰임이 강요당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현대 철학
자이자 심리학자 스트로슨(G. Strawson)은 자아(self)의 조건으로
서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i) 총괄적인 인간과는 다른 것.
ii) 경험의 주체.
iii) 총괄적인 인간과는 별개의, 의식의 내부에 현존하고 자리하는,
내부에 있는 경험의주체.
88 ∙ 印度哲學 제28집
iv) 적어도 주체가 될 만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다른 어떤 것의 대
상으로서 존재하는 것.
v) 일생 동안 일정하게 지속되는 또는 적어도 어느 만큼의 기간 동
안 지속되는 어떤 것.
vi) 매개자, 행위나 의도적인 행위를 할 수 있는 것.
vii) 어떠한 특징이나 성품을 가지고 있고 단순히 의식과 인식이 일
어나는 장소가 아닌 것.
viii) 자아의식이 있는 존재.
이러한 조건을 주장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가설을 든다.
i) 주체와 객체와 같은 것은 존재한다.
ii) 인간은 어쨌거나 주체 아니면 객체이다.
iii) 논리적 실증주의(physicalism)는 타당하다.
iv) 인간은 육체적 객체이다. 육체적 객체이거나 주체이다.
v) 만일 복수의 인간 자아가 존재한다면, 그 또한 육체적 객체이거
나 주체이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자아에 대한 이상의 스트로
슨의 정리(자아에 대한 조건과 그에 대한 가설2)에 필자는 동의한
다. 자아에 대한 조건으로 굳이 개체성・물질성 등이 전제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3) 그러나 자아의 조건을 위한 가정으로서 우리
는 인간 존재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고, 이 인간은 주체이거나 객
체이며 육체적이며 다수이다. 또한 생명이 유지 되는 동안 존속
2) Strawson(2009) pp. 541-8.
3) 자아(self)에 대한 철학자들의 견해는 다양하다. 데카르트를 비롯한 근대
철학자들은 대부분 인간을 영혼(soul)과 육체의 이분법적 구도로
이해했으며, 또한 영혼은 육체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따라서
영혼은 비물질적인 것이며 인간의 본질은 육체보다 영혼에 있는 것이므로
결국 인간의 결정은 비물질적이라는 견해가 팽배했다. 근현대철학은
이러한 이분법적 관점과 거리를 두고 있다. 불교 철학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 아니면 자생적인 전개 발전인지 알 수 없지만, 신학자와 종교에
치우친 철학자가 아니고서는 더 이상 영혼을 거론하지 않는다.
자아(self)와 개인(person)에 대한 정의 고찰 ∙ 89
한다.
데카르트(Descartes) 이래 로크(Locke)나 버클리(Berkely) 등의
철학자들은 자아를 설명함에 있어 가장 결정적인 요소로 의식(co
nsciousness)을 든다. 흄(Hume)은 결국 자아는 서로 다른 다양한
지각의 꾸러미나 모음에 불과하며 간단없이 지속되는 지각(percep
tion)의 흐름(flux)이라고 해석한다.4) 흄 보다 더 급진적인 경험론
자라고 알려진 제임스(James)는 인간의 의도적인 행위는 의식이
나 사고의 실재를 시사하며.5) 의식은 물질적인 것만도 정신적인
것만도 아닌 ‘사고의 흐름(the stream of thought)’일 뿐이라고 주
장한다.6)
이상의 학자들의 지적과 같이, 자아를 정의하는데 의식(conscio
usness)이 결정적 요소라면, 의식이 없는 상태(unconscious)에 처
한 자아는 성립될 수 없을 것이다. 만일 의식이 없다가 다시 생긴
다고 가정할 경우, 그 존재는 간헐적(intermittent)이라고 할 수 있
다. 그러나 간헐적인 존재는 자기동일성이 증명되어야만 한다. 또
한 의식이 무시간적(atemporal)으로 존재한다면, 그 존재도 간헐
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무시간적 존재에는 자기
동일성이 성립 불가능하다. 따라서 자아는 간헐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이와 같이 시간의 개념이 자아의 정의에 개입될 때 자아는
부정적인 결론을 도출하게 된다.7)
4) Hume(1969) p. 300
5) The Penguin Dictionary of Philosophy, pp. 286-287
6) http://plato.stanford.edu/entries/james/
7) 필자는 Robinson(2007) 글에서 힌트를 얻었지만 그의 견해에는 동의하지
않음을 밝힌다. Robinson(2007) pp. 55-58.
90 ∙ 印度哲學 제28집
2. 용어선택의 문제
불교철학을 논함에 있어 우리는 ‘나’, ‘자아’, ‘인간’, ‘개인’ 등과
같은 용어의 사용에 불편함을 느낀다. 이는 불교철학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당면할 수밖에 없는 언어와의 충돌에서 기
인한다. 한국에서 불교철학의 연구는 주로 중국한자로 번역된 한
역경전을 저본으로 해서 이루어졌다. 최근에 이르러 빨-리어, 산
스끄리뜨어 그리고 티벳어 경전에까지 그 연구영역이 확장되어
갔고 이러한 가운데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산스끄리뜨, 빨-리, 중
국고대한자, 한국한자 그리고 영어번역어까지 두루 거쳐 가야 한
다.
위에서 언급된 용어 중에 ‘나’를 제외한 용어들은 이미 우리말
화 된 한자어이자 외래어이다. 영어에서도 ‘self’라는 용어의 모호
성이 지적되지만 ‘자아’라는 용어는 더더욱 혼란스럽다. 영어에서
‘self’는 명사(또는 재귀대명사)로서 단지 문법적인 실사에 불과하
며 사실 ‘Self’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된다. 반면 ‘자
아’라는 한국말은 그 형태가 어떠하던 그것을 실체시하여 지시하
는 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자아’는 재귀대명사로서의 ‘self’와는
다르다. Self는 ‘나’와 ‘자아’를 포괄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나’는
인간이다. 인간은 영어의 ‘human being’으로도 ‘person’으로도 번
역 가능하다. ‘나는 인간이다’라고 할 때 ‘나는 동물과 구별되는 인
간이다’라는 의미가 강하다. 즉 being으로서 human이라는 것이다.
반면 ‘나는 person이다’라고 할 때는 다른 무엇과 구분되는 객관
화된 인간으로서의 개별적 자아(individual self), 즉 개인을 의미
하는 경향이 강하다. ‘나’, 즉 ‘I’는 ‘자아(self)’라는 용어를 통해 객
관화・활용화가 가능하고, 이 ‘자아(self)’가 다시 개체로서 객관화
될 때 ‘개인(person)’의 의미가 성립된다. ‘나’는 인간(human being)
이며 개인(person)인 것이다.
말을 바꾸어 ‘최경아는 인간이며 개인이다’는 성립된다. 지시하
자아(self)와 개인(person)에 대한 정의 고찰 ∙ 91
는 바가 확연하기 때문이다. 다시 ‘나 자신은 인간이며 개인이다’
도 성립된다. 자신은 나에 속해 있음이 시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자아는 인간이며 개인이다’라고 할 때 이 말은 성립되는가?
이 등식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먼저 ‘자아’가 무엇인지 규명되어야
한다. ‘나’, ‘최경아’, ‘나 자신’, ‘자아’ 모두 영어의 self라는 용어 한
가지로 지시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상에 언급된 한국어나 영어의 용어 모두를 포괄하는 산스끄
리뜨 용어 ātman은 어떠한가? 그 산스끄리뜨 동의어들 가운데 āt
man이 의미하는 바가 가장 포괄적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영어로 ‘soul’과 ‘self’ 등으로 주로 번역 되는데
문맥에 따라 때로는 단순히 ‘육체’의 의미로 쓰이기도 하는 등 다
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불교를 제외한 여타 인도 문헌에서 이 단
어는 ‘soul’의 의미가 더 농후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불교에서만큼은 self로 이해되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데
동의한다.8) 우빠니샤드 현자들의 최대의 화두가 바로 이 ātman이
었으며 브라흐만(brahman), 뿌루샤(puruṣa)등과 관련하여 다양한
탐색이 시도되었다. 불교발생기는 이러한 ātman에 대한 형이상학
적인 탐구가 절정에 이르렀던 시기로서, 한편으로 브라흐마니즘
(Brahmanism)의 교조적인 횡포와 지나친 제식주의가 지식인들의
반감을 샀던 것으로 보인다.9)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슈라마나
8) Norman(1997) pp. 35-6, Collins(1982) p. 96, Williams(2000) p. 56.
9) 이러한 상황은 자따까에 보여 지는 붓다의 Brahmā에 대한 조소적인
시구에도 나타난다. “…이 비참한 광경을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왜
브라흐마는 그의 피조물들을 올바로 두지 못했을까? 그의 광대한 위력이
한량이 없다면 왜 축복의 손길이 다 미치지 못할까? 왜 그의 피조물들은
모두 고통을 호소할까? 왜 그는 모든 이에게 행복을 주지 않는가? 왜
속임수와 거짓말, 무지가 더 지배적일까? 왜 거짓이 이기고 진리와 정의는
패할까? 너의 신 브라흐마는 부당하다. 세상을 이따위로 만들어
놨으니.”(… ādāya satthāni caranti brāhmaṇā, tan tādisaṁ
saṁkhubhitaṁ vibhinnaṁ kasmā Brahmā n' ujjukaroti lokaṁ sace hi so
issaro sabbaloke Brahmā bahūbhūtapatī pajānaṁ māyāmusāvajjamadena
cāpi lokaṁ adhammena kimatth' akāsi. Sace hi so issaro sabbaloke
92 ∙ 印度哲學 제28집
(Śramaṇa) 전통이 흥기하고 자아와 세계에 대한 사변은 유물론과
불가지론 등으로 까지 확산된다.
리그베다 이래 자아를 의미하는 다양한 용어가10) 시대나 문헌
등에 따라 적절하게 사용되었지만, ātman만큼 통시대적이며 지시
하는 바가 포괄적인 용어는 드물다. 르누(Renou)는 ātman이라는
용어는 리그베다 이래 모든 생류에 있어 ‘생기’의 근원이 되는 어
떤 것을 의미했으며, 따라서 처음부터 person을 의미하는 기능이
있었다고 주장 한다.11) 그러므로 ātman은 인도철학 전반에 있어
‘자아’와 ‘개인’의 두 측면을 포괄하는 대표적인 용어라고 할 수 있
겠다.
Ⅲ
1. 초기불교의 입장: 무아상경(無我相經,
Anattalakkhaṇasutta)의 용례 분석
붓다는 누구보다도 용어상에서 오는 이러한 혼란을 잘 파악하
고 있었다. 붓다는 결코 ātman이 어떠한지 정의를 내린 적이 없
Brahamā bahūbhūtapatī Ariṭṭha dhamme satī yo vidahī adhammaṁ Kītā
paṭangā uragā ca bhekā hantvā kimiṁ sujjhati makkhikā ca, ete hi
dhammā anariyarūpā Kambojakānaṁ vitathā bahunnan ti) Jātaka, vol.
VI, p. 208; The Jātaka, trans. E.B. Cowell, vol. VI, p. 110.
10) 상히따(Saṁhitā)에는 동의어로 Puruṣa, Haṁsa, Suparṇa, Ajobhāga,
Prāṇa, Jīva, Satya, Viśvakarman, Bṛhaspati, Prajāpati, Hiraṇyagarbha
등이 있으나, 우빠니샤드에서는 Brahman, Puruṣa, Haṁsa 등으로
줄었고 드물게 Suparṇa, Jīva, Prāṇa와 Satya 등이 교차되면서 쓰였다.
Sharma(1972), p. 14.
11) Renou(1952) p. 151.
자아(self)와 개인(person)에 대한 정의 고찰 ∙ 93
다. 또한 ātman이 skandha라고 분명히 언급한 적도 없다. 이러한
사실은 니까야의 도처에 있는 소위 「무아상경(無我相經, P. Anatta
lakkhaṇasutta)」을 통해 확인된다. 이 경들의 대부분은 각각의 다
섯 skandha (rūpa, vedanā, saṃjñā, saṃskāra, vijñāna)에 대한
일정 형식의 질의와 응답으로 구성되어 있다. 무아상경의 전형적
인 유형은 다음과 같다.
“rūpa는 영원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무상한 것은 만족스러운가, 불만스러운가?” “불만스럽습니다.”
“무상하고, 불만스럽고, 변질되는 것을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
은 나이다’, ‘이것은 나의 아뜨만이다’라고 간주할 수 있는가?” “아닙니
다.” … “그러므로 rūpa가 과거이거나, 미래이거나, 현재이거나, 내적
이거나, 외적이거나, 조대하거나, 미세하거나, 저열하거나, 수승하거나,
멀거나, 가깝거나 모든 rūpa는 올바른 지혜로 여실히 다음과 같이 알
아야 한다.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아뜨만이 아니다’라고”12)
가장 단순한 형태의 「무아상경」에서는 다섯 가지 skandha를 열
거하며 각각의 skandha는 무상하고(anitya), 불만족스러우며(duḥk
ha), ātman이 아닌 것(anātman)이므로 이들 각각이 ‘내 것’도 아
니고(P. netam mama), ‘나’도 아니고(P. neso ham asmi), ‘나의 āt
man’도 아니라고(P. na meso attā)만 간단히 한다.13)
또한 많은 경우 이상의 각각의 다섯 skandha에 관해서 이들이
12) SN II pp. 124-125(rupaṃ niccaṃ va aniccaṃ vāti aniccaṃ bhante yaṃ
panāniccaṃ dukkhaṃ vā taṃ sukhaṃ vāti duhkkhaṃ bhante yaṃ
panāniccaṃ dukkhaṃ vipariṇāmadhammaṃ kallaṃ nu taṃ
samanupassitum etam mama eso ham asmi eso me attāti … yam
kiñci rūpaṃ atītānāgatapaccuppannaṃ ajjhattaṃ vā bahiddhā vā
oḷarikaṃ sukhumaṃ vā hīnaṃ vā paṇītaṃ vā yaṃ dūre santike vā
sabbam rupaṃ netam mama neso ham asmi na me so attāti evam
etam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daṭṭhabbaṃ); SN III pp. 19, 22, 49,
68; MN I p. 139.
13) SN III p. 22.
94 ∙ 印度哲學 제28집
“과거이거나, 미래이거나, …, 가깝다”고 일괄적으로 다섯 skandha
의 양태를 기술하고 있다.14)
붓다는 「무아상경」에서 이들 다섯 skandha가 모두 ‘내 것(mama)
도 아니고, ‘나(aham)’도 아니고 ‘나의 ātman도 아닌 것’이라는 정
형화된 문장을 거의 예외 없이 사용하고 있다. ‘자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는 새로운 용어 skandha를 설명하는데 기존의 용어
ātman 을 사용하면서, 이 각각의 다섯 skandha가 ‘나’도 아니고
ātman도 아니라고 부정하는, 모순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
다.
가장 초기형태의 승단의 모습과 붓다의 교설을 기록한 것으로
보이는 ?비나야? 「마하박가」에는 붓다의 깨달음 전후의 상황과
첫 법문 내용들이 생생히 기록되어 있다. 붓다는 깨달음 이후에
오비구에게 최초의 설법을 하게 된다. 알려진 대로 팔정도와 사제
등으로 시작되는 최초의 법문을 듣고 오비구는 법안(dharmacakṣus)
을 얻게 되었고 붓다에게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는다. 그 후에 붓
다는 이들 다섯 비구에게 삼법인과 함께 anātmavāda를 설했다.
오비구는 그 교설을 들은 후에야 비로소 세상에 대한 집착을 버
리고 아라한이 되었던 것이다.15) 초전법륜을 다룬 Dhammacakka
ppavattanasutta16)에는 실제로 오비구가 법안을 얻기까지의 교설,
즉 anātmavāda를 제외한 교설들만이 다루어져 있다. 이는 불교의
여타 근본교리를 체득하지 않고서는 anātmavāda를 제대로 이해
할 수 없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마하박가」에서 붓다가 오비구에게 설법하는 내용을 보면 그들
은 이미 ātman에 대한 정착된 관념이 있었던 듯하며 skandha에
대해서도 잘 숙지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생략된 채, 바로 직접적인 문답 형식으로 교설을 전개하고
있음에서도 추론된다. 붓다는 rūpa로부터 차례로, “비구들아, 만약
14) SN II p. 125, SN III p. 49, 68.
15) Vin I pp. 7-14.
16) SN V p. 420ff.
자아(self)와 개인(person)에 대한 정의 고찰 ∙ 95
rūpa가 ātman이라면 이 rūpa는 병에 걸리지도 않을 것이고 ‘내
rūpa는 이렇게 되어라’, 또는 ‘이렇게 되지 마라’고 할 수 있을 것
이다.”라고 설명한다.17)
또한 “다섯 skandha는 무상하고, 불만족스럽고, 변질되는 것(vi
pariṇāmadharma)”18)이므로 ‘내 것’도 아니고, ‘나’도 아니고, ‘나의
ātman’도 아니라고 한다. 이는 소위 삼법인으로 알려져 있는 anitya,
duḥkha와 anātman 사이에 vipariṇāmadharma가 첨가된 것이다.
현상세계의 실상이라 할 수 있는 유위의 특성(saṃskṛta-lakṣaṇa)
인 일어남(P. uppāda), 사라짐(P. vaya) 그리고 지속하면서 달라지
는 것(P. ṭhitassa aññathatta)이19) ‘전이법’(vipariṇāmadharma)이라
는 용어에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무상하다거나 불만족스럽다는 것은 가치론적 판단이지만, 생겨
난 것이 변질 돼 가고 멸해가는 것은 사실로서 누구에게나 드러
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모해 갈 수 밖에 없는 skandha는 궁
극적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가 이러한 서술법에 함축
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것을 ‘나(aham)’ 또는 ‘나의 것
(mama)’이라고 집착해서도 안 되고 이를 ‘나의 ātman(meso attā)’
이라고 여겨서도 안 된다고 니까야의 도처에서 일관되게 강조한
다.20) 여기에 無我도 有我도 논해지지 않는다. 다섯 skandha로 이
루어진 경험하는 자아(empirical self)만이21) 상정될 뿐이다.
니까야는 skandha의 실상을 수레에 비유하며 단지 이름일 뿐임
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부속물들이 모여서 수레라는 말이 있듯이
17) Vin I pp. 13-14(rūpaṃ bhikkhave anattā, rūpañ cah’ idam bhikkhave
attāabhavissa, na yidaṃ rūpaṃ ābādhāya saṃvatteyya, labbhetha ca
rūpa evaṃ me rūpaṃ hotu, evaṃ me rūpaṃ mā ahosīti).
18) SN III p. 49(yaṃ panāniccaṃ dukkhaṃ vipariṇāmadhammaṃ ... .).
19) AN I p. 152.
20) SN III pp. 48-49, p. 67; Vin I pp. 13-14.
21) 왜 경험하는 자아라고 했는지는 다음 절에서 시사된다.
96 ∙ 印度哲學 제28집
skandha들이 있어 중생이라는 속칭이 있다.”22)
2. Skandha의 정의
Skandha라는 용어는 물론 붓다에 의해 고안된 것이 아니다. 이
미 불교문헌 이전에 쓰여졌던 용어이다. 의미론과 어원론을 다룬
인도의 가장 오래된 저작인 Nirukta에 따르면 베다에서 skandha
의 의미는 ‘나무의 가지’이다23). 또 다른 의미는 ‘어깨’이다. 모두
중심이 되는 몸통과 붙어있는 데서 기인한 것이다. 어근은 skand
(to leap)이다. 이 용어는 불교 전후의 우빠니샤드에서 모두 발견
된다24). 빨-리 문헌에서도 오온을 나타내는 말로만 쓰이는 것이
아니며, 사람에게 적용될 경우에는 ‘어깨’나 ‘등’을 의미하고, 나무
일 때는 ‘줄기’ 등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연계’ 또는 ‘결합’과 같
은 기능을 암시한다. 마치 나무의 본줄기가 여러 다른 잔가지들과
연결되어 있듯이 이 모든 줄기들이 상호 연결되어 skandha, 즉
자아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자아에 대한 붓다의 독특한 관점이 이
단어를 통해 시사되는 것이다. 니까야에서 오온 즉, 빤짜칸다 (P.
pañcakkhandha)는 오취온(五聚蘊) 즉, 빤쭈빠다나칸다(P. pañcupā
dānakkandhā)와 혼재되어 사용된다. 의미상 오온은 곧 오취온일
수밖에 없어서인지 이 두 용어는 동의어로써 구분 없이 쓰여 진
다.25)
오온이 언급될 때마다 예외 없이 항상 rūpa가 가장 먼저 나타
난다. 일반적인 의미로 이는 ‘물질’을 일컫는다. ‘보여 진다’는 의
22) SN I p. 135(yathā hi aṅgasambhārā hoti saddo ratho iti evaṃ
khandhesu santesu hoti satto ti sammuti).
23) The Nighaṇṭu and the Nirukta 6.17, p. 102.
24) Chandogya Upaniṣad 2.23.1; Maitrāyanīiya Upaniṣad 7.11.
25) Bisvert(1997) p. 20.
자아(self)와 개인(person)에 대한 정의 고찰 ∙ 97
미에서 ‘형태’라고도 번역된다. 또는 ‘육체’라고도 번역되는데26) 그
러나 이는 rūpa의 포괄적인 의미를 왜곡할 소지가 있다.
니까야에는 이 rūpaskandha에 대한 정의가 명료히 나타난다.
즉 네 가지 대종(大種, mahābhūta; (地界. 水界. 火界. 風界)과 그로
부터 파생된 rūpa(所造色; upādāyarūpa)이다.27) 모든 rūpa는 과거,
현재, 미래이거나, 내부이거나 외부, 거대하거나 미세하거나, 크거
나 작고, 멀거나 가깝다고 한다.28) 다른 skandha에도 이들 성질은
모두 적용된다. 반면, upādāyarūpa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정의
는 니까야에 나타나지 않는다. 이 개념은 아비달마에 이르러서야
주목을 받은 것으로 보여 지는데, 그에 대한 해석이 논서에 따라
상이하다.
남전 테라바다의 경우 Visuddhimagga에서야 upādā(ya)rūpa에
대한 정의가 확인된다.
“4대종(mahābhūta)으로부터 파생한 rūpa (upādārūpa, 所造色)는 24
가지가 있다. 곧, 안, 이, 비, 설, 신, 색, 성, 향, 미, 여근, 남근, 명근, 심
사(心事), 몸의 암시, 말의 암시, 공계, 물질의 가벼움, 물질의 부드러
움, 물질의 업지성(業智性), 물질의 생성, 물질의 지속, 물질의 늙어감,
물질의 무상성, 음식이 있다.”29)
26) 물론 니까야에는 rūpa가 많은 경우 육체를 의미하며, 사실 남방
상좌부에서는 일반적으로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Karunadassa는
빨-리문헌에 나타나는 rūpa를 다음과 같이 분류했다. (1) rūpakkhandha
– the material aggregate (2)sarīra – the physical body of a living
being (3)vaṇṇa – colour (4) saṇṭhāna – form, figure, configuration
(5) kasiṇa-nimitta – the ‘meditation’ object (6) paccaya – condition,
cause (7) sabhāva – nature ... Karunadasa(1989) p. 1.
27) MN I(Mahāhatthipadopamasutta) p. 185(katamo c'āvuso
rūpupādānakkhandho cattāri ca mahābhūtāni catunnañ ca
mahābhūtānaṁ upādāya rūpaṁ katame c'avuso cattāro mahābhūtā
paṭhavīdhātu āpodhātu tejodhātu vāyodhātu).
28) SN III p, 47, p. 68; Vin I p. 14.
29) Visuddhimagga, p. 444(upādārūpānaṃ catuvīsatividhaṃ : cakkhu,
sotaṃ, ghānaṃ, jivhā, kāyo, rūpaṃ, saddo, gandho, raso, itthindriyaṃ,
98 ∙ 印度哲學 제28집
이는 의근(意根; manaindriya)과 법경(法境; dharmadhātu)을 제
외한 다섯 감각기관과 그 대상을 포괄하고 있다(촉의 경우는 다시
세분하여 분류한 듯하다). 반면 북전 아비달마에서는 아상가의 A
bhidharmasamuccaya에 다음과 같은 정의가 나온다.
“무엇이 upādāyarūpa인가? 안근, 이근, 비근, 설근, 신근, 색・성・향・
미・촉 등의 일부, 법처에 속해있는 색 등이다.”30)
바수반두의 Pañcaskandhaka-prakaraṇa31)에도 이에 대한 정의
가 보인다.
“사대종으로부터 파생된 색들은 무엇인가? 안근, 이근, 비근, 설근,
신근, 색・성・향・미・촉 등의 일부, 무표색 등이다.”
이들 아비달마 논서에 따르면, 나머지 다른 네 skandha가 정신
적 기능인 반면 rūpa는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와 더불어 다
섯 가지 육체적 감각기관과 그에 상응하는 대상들을 지시한다.
Rūpa의 범위에 각 감각기관의 대상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형
purisindriyaṃ, jīvitindriyaṃ, hadayavatthu, kāyaviññatti, vacīviññatti,
ākāsadhātu, rūpassa lahutā rūpassa mudutā, rūpassa kammaññatā,
rūpassa upacaya rūpassa santati, rūpassa jaratā, rūpassa aniccatā,
kabaḷinkāro āhāro ti). Dhs p. 125.
30) Abhidharmasamuccaya, p. 3(upādāya rūpānaṃ katamat cakṣurindriyaṃ
śrotrendriyaṃ ghrāṇendriyaṃ jihvendriyaṃ kayendriyaṃ rūpa śabda
gandha rasa spraṣṭavyānām ekadeso dharmāyatana samgrhītaṃ ca
rūpaṃ). 해당 한역인 玄奘 번역의 ?大乘阿毘達磨集論?에는 다음과 같이
번역되어 있다.
“云何所造色。謂眼根耳根鼻根舌根身根。色聲香味所觸一分。及法處所攝色”
大乘阿毘達磨集論(TD 31) p. 663b.
31) Pañcaskandhaka-prakaraṇa 산스끄리뜨본은 소실되었고 해당 한역
현장의 ?大乘五蘊論?은 다음과 같다.
“云何四大種所造諸色。謂眼根耳根鼻根舌根身根。色聲香味所觸一分無表色等”
大乘五蘊論(TD 31) p. 848b.
자아(self)와 개인(person)에 대한 정의 고찰 ∙ 99
태가 없는 소리나 냄새, 맛 등도 포괄한다는 의미로 그 범위 안에
이미 인식 전개 과정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즉, rūpa에는 이미
정신작용이 연류 되어 있으며, 따라서 나머지 네 skandha와 분리
되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오온에서 rūpa의 범위는 십이처의 경우 manas를 제외한 11처
를 모두 포괄하며, 십팔계의 경우 manas와 여섯 식을 제외한 11
계에 이른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붓다의 자아에 대한 입
장을 다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초기불교에서는 현상계를 오
온・십이처・십팔계 등으로 분류한다. 이 현상계가 펼쳐지는 근거로
서 자아의 존재도 이 분류법에 적용된다. 이러한 분류법은 이 현
상세계의 성립근거를 인식전개과정과 연계하여 설명한 것으로, 초
기불교철학의 인식론적 세계관을 시사하고 있다. 또한 rūpa의 범
위가 오온의 경우와 십이처・십팔계의 경우가 다르다는 것에 주목
해야 한다. 십이처・십팔계의 경우는 단순히 눈이라는 감각기관의
대상으로서의 rūpa에 불과하다. 오온의 rūpa에 몰려있었던 색・성・
향・미・촉・법의 일부 등의 감각 대상들이 하나씩 분리되어 각각의
감각기관의 대상으로 분산되어 있는 것이다. 오온의 경우, 물질과
연계되어 감각기관이 rūpa에 편입되고, 그 각각의 감각기관이 집
착하고 추구하는 대상도 rūpa에 편입된다. 오온의 동의어로서 오
취온이라는 개념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 존재의 속물적 근성은 rū
pa의 정의로 mahābhūta와 함께 거명된 upādāyarūpa에서도 유추
된다. 곧, 자신의 육신을 포함해 외계의 물질적 비물질적 인식대
상을 포괄하는 오온에서의 rūpa의 개념은 인간존재를 단지 육체
에 한정하지 않고, 감관이 활동하는 한, 외계대상의 영역까지 그
범위가 확대될 수 있다. 따라서 십이처·십팔계와 더불어 현상세계
를 설명하는 기준이 됨은 타당하다 할 것이다. 여기서 upādāyarū
pa(혹은 upādārūpa)에 대한 해석이 남방과 북방계 아비달마 논서
에서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32) 남방
32) 이상 논서의 저자 가운데 붓다고샤는 남방상좌부를 대표하는 논사이며,
아상가는 대승의 논사이고, Pañcaskandhaka-prakaraṇa의 저자가
100 ∙ 印度哲學 제28집
아비달마의 분석서(Analysis)라고 할 수 있는 ?비방가(Vibhaṅga)?
에는 upādāyarūpa가 언급만 되어 있을 뿐 이에 대한 명확한 정의
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Visuddhimagga에서야 그 24가지 법수가
나타나는데 그 범위가 인식기능과 인식대상을 포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전 아비달마와 같은 인식주관과 객관이라는 명백한
대비의 구조를 보이지는 않고 있다. 오히려 여근과 남근이라는 두
생식기능과 육체(rūpa)의 다양한 성격 등을 열거하며 인간의 생리
적 측면을 보다 강조하고 있다.
Skandha의 동의어로 간주되는 nāmarūpa는 불교 이전에 우빠니
샤드에도 나타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우파나샤드에서는 양수로서
취급되어진 반면 (nāmarūpābhyām), 불교에서는 복합어로서 단수
로 취급된다.33) 이는 정신과 물질(name and form)의 두 원리로
현상계가 펼쳐진다는 우빠니샤드의 사상과, 정신과 물질은 결코
이분될 수 없다는 불교의 세계관이 반영된 것이다.
남방상좌부에서는 nāmarūpa를 인간으로 범위를 축소시켜서 정
신과 육체(mind and body)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했다. 이와 같이
협소한 의미의 nāmarūpa를 skandha의 동의어로서 자리매김함으
로써 북전 아비달마와는 다른 전개를 보이게 되는 것이다. 물론
nāma는 rūpa를 제외한 나머지 지분 vedanā, saṃjñā, saṃskāra,
vijñāna에 해당된다. Nyanatiloka의 Buddhist Dictionary를34) 비
롯한 여러 문헌에서 그렇게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정작 니까야에
는 nāma가 감수작용 (P. vedanā), 통각작용 (P. saññā), 의지 (P.
cetanā), 부딛침 (P. phassa), 주의 (P. manasikāra) 등으로 정의되
어 있다.35) 반면, ?비방가?의 주석서에는 vijñāna를 제외한 나머
Abhidharmakosa의 저자인 바수반두임은 시사 하는 바가 크다. 필자는
대승과 소승의 자아와 세계를 보는 근본적 입장의 차이가 이 점에
관해서는 추후에
33) Varma(1973) p. 86.
34) Nyanatiloka(1950) p. 103.
35) SN II p. 3; MN I p. 53.
자아(self)와 개인(person)에 대한 정의 고찰 ∙ 101
지 3가지를 nāma로 설하고 있다.36) 이는 곧 vijñāna를 다른 nāma
의 지분과 달리 취급하는 것으로, vijñāna가 정신작용 가운데서도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고가 반영된 것이다.37) 반면
saṃskāra는 단순한 의지작용에서부터 과거로부터의 관성으로까
지 의미가 확대된다. 여기서 saṃskāra는 cetanā의 동의어이며38),
결국 karma와 같은 의미로 확산된다.
Vijñāna의 경우는 인식작용의 역할과 인식주체의 역할을 함께
하고 있다. 따라서 다른 세 가지 정신작용을 하는 skandha와는
달리 자아인식의 기능이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사고는 연
기(pratītyasamutpāda)의 한 지분으로서의 vijñāna의 역할에 대한
이해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부파불교에서는 이 vijñāna를 윤회
의 매개자로서 간주하여 학파마다 다양한 해석을 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초기불교는 기존의 ātman을 대체하는 자아개념으
로 skandha를 재조명하여 부각시켰다. 이상의 다섯 skandha의 기
능과 역할을 통합해 볼 때 다음과 같이 정의될 수 있다.
1) 육체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2) 감각기관과 그 대상을 포괄한다.
3) 인식주체이면서 그 인식대상도 포괄한다.
4) 적어도 인식활동이 지속되는 동안 존재 한다
5) 의도적인 행위를 할 수 있고, 조건에 따라 어떠한 특징이나 성품
을 나타낼 수 있다.
6) 자아 인식을 한다.
이상의 정의는 불교 발생기의 여타 다른 종교 철학에 비해 확
연하게 체계화된 양상이다. 여기에 서양철학에서 보여지는 이분법
적인 세계관은 처음부터 설자리가 없다. 이는 rūpa를 정의하는
mahābhūta와 upādāyarūpa 가운데 upādāyarūpa의 기능 역할에서
36) Sammohavinodani p. 169.
37) SN III p. 9, p. 53.
38) SN III p. 60.
102 ∙ 印度哲學 제28집
시사된다. 일상적으로 물질 또는 육체라고 믿어지는 rūpa가 내적
으로는 감각기관의 장소를 제공하는 mahābhūta로 이루어진 육체
를 의미하지만, 외적으로는 단순히 그 외의 사물이나 타인의 육체
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upādāyarūpa는 감각기
능이 닿는 그 대상 모두를 rūpa의 범주에 귀속시킴으로써 물질의
영역 밖까지 그 범위가 확대 된다. 따라서 다섯 skandha의 정의
에 반영된 초기불교 자아관의 범주는 우리에게 보다 친숙한 서구
식 개념 정의와 중대한 점에서 구분이 된다. 곧, 자아는 ‘나’ 자신
의 육체에만 국한되지 않고 ‘나’의 감관에 포착되는 모든 대상까
지 포괄한다는 것이다. ‘나’와 ‘남’을 다르게 보지 않는 대승적인
세계관이 이미 초기불교 자아관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초기불교에서 우리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인간존재를 파악할 수
있다. 즉, 자아라고 할 수 없는 것과 자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Anātmavāda에서 보여 진 바와 같이 기존의 우빠니샤드식의 형이
상학적이거나 자재신적인 ātman은 철저히 부정된다. 반면 현상적
자아는 다시 오온・십이처・십팔계로 분류된다. 이 가운데 붓다가
오온을 다루는 방식과 십이처・십팔계를 다루는 방식은 확연한 차
이가 있다. Skandha는 집착의 당체로서 부정되어야 할 어떤 것인
반면, 십이처・십팔계는 현상계가 유지되는 근간으로서 그 존재성
이 잠정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것이다. 초기불교에서 자아가 부정
되고 있다면, 그것은 먼저 기존의 우빠니샤드적인 ātman이 철저
히 거부되고 있는 것이고, 그 다음은 인식주체로서 외계대상과 끊
임없이 소통하고 있는 경험하는 자아(empirical self)인 skandha가
집착의 당체로서 거부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이 형이상학
적 자아이던지 현상적 자아이던지 간에 자아가 개입할 여지는 어
디에도 없으며, 그런 의미에서 비아와 무아의 논쟁도 무의미해진
다.
자아(self)와 개인(person)에 대한 정의 고찰 ∙ 103
3. 인도사상사에서 그 용어 개념의 변천
불교이전의 베다의 관심사는 인간보다는 신의 세계였다. 따라
서 인간 개인에 대한 성찰보다는 자연의 위력과 신의 권능에 대
한 찬미와 경외가 주를 이루었다. 베다 전통에서 인간은 ātman
이외에도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었다.39) 그 가운데 Puruṣa라는 개
념은 후대의 인간관과 세계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잘
알려진 리그베다의 Puruṣa-sūkta는40) 신인동형동성설(anthropom
orphism)의 기원을 보여준다. 여기서 Puruṣa는 최초의 인간으로
나타난다. 그를 재물로 제사가 행해지고 그의 사분의 일만이 세상
에 전개 되고 나머지 사분의 삼은 상승한다. 오직 그의 사분의 일
만이 이 우주를 형성하고 사분의 삼은 알 수 없는 영역에 속한다
는 것은 우리의 상상력을 유발한다. 또 한편으로는 그 분할된 Pur
uṣa가 애초에는 한 몸이었다는 것은 현상과 피안의 불가분성을
시사하며 결국 puruṣa 자체가 현상과 피안의 연결 통로가 될 수
밖에 없음도 암시한다. 초기 우빠니샤드에서 Puruṣa는 Ātman과
Brahman 사이에서 중개자의 역할을 하기도 하고 또한 이들과 교
차하면서 동일시되기도 하였다.41)
반면 불전 이후에 많이 쓰여졌던 용어 pudgala는 Veda 전통에
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는 불교와 동시대에 나타난 자이나교에
서는 물질을 의미한다. 즉, 보다 포괄적인 의미인 ātman과 구별하
여 공간과 시간을 점유하는 실체(spatio-temporal entity)로서 취
급되었던 것이다. Rhys Davids에 따르면 pudgala (P. puggala)는
기원전의 빨-리 문헌에서 보여 지기 시작했다고 한다.42) 빨-리불
전에서는 복합어 purisa-puggala(man, human character)의 형태
39) 각주 10 참조.
40) RV X.90 pp. 422-426.
41) 최경아(1989) pp. 15-19.
42) Rhys Davids(1978) p. 214.
104 ∙ 印度哲學 제28집
로도 자주 나타난다. 현대 힌디어, 마라티어 등에서도 일반 남성
을 지칭하는 말로 puruṣa가 쓰이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 puruṣa
나 pudgala가 영어의 person의 의미를 띤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
다.
Puruṣa는 한역에서 주로 人, 男子, 丈夫, 士夫 등으로 번역되었
다. 빨-리 purisa의 상대어는 itthi, 즉 여자이다. 동의어인 pudgala
도 거의 유사한 번역형태를 보이지만, 사용된 용어가 어느 문헌과
시대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차이가 난다. Puruṣa가 남성으로서의
인간을 주로 의미하는데 비해, pudgala는 공간과 시간을 점유하는
실체로서의 개인의 의미가 강하다. 실제로 pudgala는 불전에서 대
개 일상적인 개인을 나타내는 용어로 쓰여졌다.
그러나 부파불교에 이르러서는 다양한 의미를 나타내게 된다.
특히 생을 반복하는 윤회하는 개인으로서의 모습이 부각되는데,
부파불교 가운데 독자부는 그들의 주 교리에 이 pudgala라는 용
어를 채용, 이를 마치 우파니샤드의 ātman 개념처럼 활용하여 큰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4. 자아와 개인: 정체성의 문제
개인이라는 용어는 영어의 person에 해당된다. 한국어로는 사람
또는 인간이라고도 번역될 수 있지만, 이 경우 individual self의
의미보다는, 다른 생류와 구분되는 인간으로서의 human being에
더 가깝다. 자아(self)라고 할 때는 그 단어가 가진 재귀적 기능으
로 인해 1인칭적인 의미가 강한 반면, 개인(person)은 3인칭적 이
다. 즉, 동일한 대상에 그 주관성을 부각시켰을 경우 우리는 자아
라고 부르고 객관성을 부각시켰을 경우 개인이라고 부른다. 결국
동전의 양면인 것이다. 일단 대상화 된 자아는 정체성(identity)의
문제를 수반한다. 그렇다면 ‘개인(person)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자아(self)와 개인(person)에 대한 정의 고찰 ∙ 105
은 ‘개별적인 자아(individual self)는 어떻게 구분 되는가’라는 질
문으로 대체될 수 있을 것이다. 정체성(identity)은 공시적(共時的;
synchronic)과 통시적(通詩的; diachronic)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는데, 각각 횡적인 면에서의 자기정체성과 종적인 면에
서의 자기동일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정체성은 비동일한 사건이
나 사물 가운데 지속적으로 작용하는 어떤 것, 즉 기체나 또는 통
합군과 같은 것을 요구한다. 개인의 자기동일성을 이해하기 위해
서는 그 기간이 어떻든 간에 지속적인 인간 존재를 상정할 수밖
에 없다. Locke는 개인의 정체성은 인간의 사고 기능과 분리될 수
없는 의식(consciousness)이라고 주장한다.43) 과거의 행위로부터
현재의 행위까지 계속되는 동일한 의식이 바로 동일한 자아로 간
주된다고 본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개인의 정체성이다. 반면, Hu
me은 정신작용(mental process)이 바로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한
다고 주장한다.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정신 또는 생각하는 인간이
있다고 가정될 때, 기억에 의해 보조되는 유사한 지각들 간의 관
계와 인과관계는 간단없이 전개되는 우리의 사고형성에 책임이
있다고 간주된다.44) 서두에 언급 했듯이 그에 따르면 ‘자아(oneself)’
는 여러 다른 지각의 무리 또는 모임에 불과하다.
그러나 인간은 살아가면서 의식이 없는 상황(unconscious)도
경험하게 된다. 만일 의식을 포함한 정신작용이 개인의 정체성을
이룬다고 한다면 이러한 무의식의 상황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
인가? 깊은 수면 상태는 말할 것도 없고, 재생을 논할 경우 어떻
게 이전 생의 의식의 주체와 다음 생의 의식의 주체가 동일하다
고 주장할 수 있는가?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불만족스럽고
따라서 ātman일 리도 없다는 니까야의 인간에 대한 이해는 유위
의 특성(saṃskṛṭa-lakṣaṇa)과 결부되어 현상세계의 실상과 맥을
같이 하게 된다. 변모하며 멸해가는 일정기간의 시간이 부파불교
에 이르러 급진적인 순간성을 강조하는 찰나설(kṣanikavāda)로
43) Locke(1975) p. 211.
44) Hume(1969) pp. 308-310.
106 ∙ 印度哲學 제28집
체계화 되어 가면서 급기야 찰나에 생멸하는 요소에 불과한 인간
이 어떻게 자기동일성을 확보하는지가 부파불교의 주요 쟁점이
되었다.
아울러 그 설명과는 별개로 ātman이란 궁극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어지게 된다. 이는 시간성이 자아에 적용되었을 때 야
기될 수밖에 없는 귀결임을 전장의 서양철학의 관점에서도 소개
한 바 있다. 초기불교가 사제·팔정도라는 실용적이고 윤리적인 수
행법을 강조했다면, 부파불교에 이르러서는 현상세계의 본질이자
동시에 수행의 궁극적 목표인 anātman이 강조되고, 그에 따른 정
신세계의 분석과 단계적 수행법에 대한 세밀한 연구가 행해졌던
것이다.
Ⅳ. 결론
‘나’는 객관화될 수 없다. 따라서 논쟁거리가 아니다. 이렇듯 객
관화될 수 없는 ‘나’는 주관적 탐구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수정
주의적 동일화’라는 우빠니샤드 시대의 사상적 조류에 힘입어 초
월적 ‘자아’와 동일시 된다. 결국 ‘나’를 구성하는 모든 것은 경험
적이고 개별적인 ‘자아’라는 포장 하에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자
아’와 다르지 않다고 하는 사상적으로 정형화된 틀을 형성하게 된
다. 같은 바라문 전통에서 ātman보다 유력하게 ‘개인’에 합당한
개념으로 이해된 puruṣa는 현상과 피안의 불가분성을 시사하며
그 연결 통로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비추어졌다는 점에서 ātman
보다는 유리한 입장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ātman이 anātmavād
a의 직접적인 논박의 대상이 되는 반면 puruṣa는 그로부터 면제
되었다는 뜻에서이다. 심오한 주관적 성찰을 반영해주는 ātman과
우주창조의 원리로 출발한 puruṣa의 초기불교를 전후로 한 인도
자아(self)와 개인(person)에 대한 정의 고찰 ∙ 107
철학사에서의 실제적인 행보는 용어들이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는
양면성이 어떻게 전도된 양상으로까지 발전하는지를 보여주는 대
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초기불교 니까야에서 붓다는 기존의 우빠니샤드적인 초월적 자
아와 현상세계의 경험적 자아를 분리시킴으로써, 나 자신과 나를
둘러싼 현실을 직시하라고 경종을 울린다. 경험적 자아에 해당하
는 다섯으로 분류된 skandha라는 정신물리학적 작용(psycho-phy
sical process)이 있을 뿐 그 가운데 어떤 것도 초월적 자아인 ātm
an과 동일시되지 않는다. 우리가 ‘자아’나 ‘개인’이라고 부르는 것
은 따라서 계속해서 일어났다 사라지는 정신물리학적 작용의 흐
름에 불과한 것이 되며 고정불변하며 영원한 실체와의 연결성은
배제되게 되는 것이다. Anātmavāda로 무장한 불교는 이후 아비
달마불교를 거치면서 우빠니샤드철인들의 전철을 되밟는 듯한 모
습을 보이게 된다. 기본적으로 anātmavāda를 인정하면서도 skan
dha를 깊이 분석하는 과정에서 ātman적인 요소를 도외시할 수만
은 없었을 것이다. 일체의 모든 것을 법으로 분류하여 객관화하는
과정은 주관과 객관과의 연결고리에 대한 초점을 흐려놓게 만들
고 나아가 정체성의 문제가 불거지게 하는 결과를 낳게 하였다.
주관과 객관의 문제는 우리가 태생적으로 지니는 근본적인 문제
이며, ‘나’, ‘자아’, ‘개인’ 등의 용어에 함축되어 철학적 탐구에 혼
란스러움을 가중시켜준다고 할 수 있다. 재귀대명사 ātman은 고
대인도철학사에서 ‘나’와 ‘개인’을 포괄하는 강력한 철학적 개념으
로 자리매김하였다. 또한 인도철학 일반에서 볼 때, ātman은 현상
에서 피안으로 전환되는 매개이고 기체일 수밖에 없으므로 그 두
경지를 통과하는 ātman에 고정적인 상을 부과할 수 없다. 붓다는
ātman의 이러한 특성을 간파하고 ātman에 대한 해설을 기피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skandha라는 용어를 새롭게 활용하여 단지
부인으로만 일관할 수 없는 자아의 경험적 측면을 설명하려 시도
했던 것이다.
108 ∙ 印度哲學 제2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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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self)와 개인(person)에 대한 정의 고찰 ∙ 111
Abstract
Some Thoughts on the Definition of Self and
Person : Centered on Early Buddhism
Choi, Kyung Ah
(Dongguk Univ.)
It has been believed that the Buddha strongly rejects
the concept of self. Subsequently, anātmavāda has been
regarded as the most distinctive feature of Buddhism.
Whether it is the existence of self or the idea of self that he
denies, his attitude towards 'self' seems to be basically
negative. This paper is intended for figuring out what it
really is that the Buddha tried to reject whenever he
preached anātmavāda. Besides, it should be discerned what
'I', 'self', 'person' and ātman exactly mean when they are
used in common usage as well as in the context of early
Buddhism.
The definition of the term ‘I’ cannot be analyzed
objectively unless it becomes an objectified 'self'. In other
words, 'I' come to be objectified and can be utilized when it
is called 'self'. Again, this 'self' could be established as a
term 'person' when it specifies the individuality. This
content has been implied by the term skandha in the
Nikāya. The definition of self has been studied throughout
the history of philosophy. The contemporary philosophy
defines it in this manner: i) not the same thing as a whole
human being, ii) a subject of experience, iii) an inner
presence or locus of consciousness, and so on.
In the context of early Buddhism, the term skandha
112 ∙ 印度哲學 제28집
represents the meaning of self as well as person. Through
the textual study of the Nikāya, the definition of skandha
can be summarized as the following: 1) It is based on
materiality (body). 2) It comprehends the sense faculty and
its object. 3) It is a subject of consciousness and also
comprehends its object. 4) It goes as far as its mental
activity persists. 5) It acts with intention and shows some
character or personality depending on the condition. 6) It is
a self-conscious being.
Key words: definition, self, person, anAtmavAda, Atman,
skandha, nikAya, rUpa, upAdAyarU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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