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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이야기

한국인의 天神思想속의 鳳凰形象 硏究(민병삼/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

Ⅰ. 서 론
Ⅱ. 봉황의 상징적 의미
Ⅲ. 봉황의 五彩形象
Ⅳ. 봉황의 形象변천
1. 삼국시대의 봉황
2. 고려시대의 봉황
3. 조선시대의 봉황
Ⅴ. 결 론
【국문요약】
본 연구는 한국인의 천신사상 속에 내재한 봉황의 형상과 의미를
고증하고, 삼국시대에서부터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쳐 현재 대한민국
에서 사용하고 있는 봉황형상의 변천과정을 연구하였다.
삼국시대의 봉황은 한국인의 천신사상 속에 내재한 신령스러운 瑞
鳥의 수호신이었다. 이러한 봉황의 모습은 통치자의 무덤이나 향로
에서 주로 발견되었다. 고려시대에는 불교의 영향으로 부처가 수호
신의 역할을 대신하였고, 봉황은 부처를 보호하기 위한 땅의 지명이
나 주변문화의 소재로 변화하였다. 중국송명대의 봉황은 공작새 꼬
리를 가진 화려한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중국의 봉황은 날개를 접
고 있는 靜形이지만, 한국인의 전통 봉황은 날개를 활짝 펼치고 있는
活形이다. 조선시대의 봉황은 中國의 봉황처럼 공작새의 꼬리를 그
려 화려하지만 본래 모습은 잃어버렸다. 대한민국의 청와대를 상징
하는 봉황문양도 화려한 民畵같은 중국풍의 鳳이 되고 말았다.

Ⅰ. 서 론
한국인의 천신사상은 새와 관련이 깊다. 대표적인 천신사상으로
봉황과 삼족오는 상서로운 동물로써 숭배되었다. 이는 동아시아의
문화와 한국의 고구려 고분 벽화 속에서 다양하게 찾을 수 있다.1)
동아시아국가에서 華夏族은 용을 토템으로 삼았고 東夷族은 새를
토템으로 삼았기 때문에,2) 화하족을 조상으로 하는 중국의 漢族은
용을 천자의 상징으로 삼았고, 동이족을 조상으로 하는 韓民族은 상
서로운 삼족오나 봉황를 토템으로 삼았다. 봉황은 4가지의 신령스런
동물 중의 하나이다. 四靈은 기린, 봉황, 거북, 용을 의미하는데, 이중
에서 봉황, 용, 기린은 현존하지 않는 상징적 동물이다.
한국인의 天神思想은 천신을 숭배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통치자는
하늘의 자손이라는 天孫認識을 백성들에게 각인 시키는 것이다. 한
1) 봉황과 주작은 고구려고분벽화 : 무용총, 쌍영총, 덕흥리고분, 장천1호분 등
에서 보이는 데, 강서대묘의 주작 翔舞形이 가장 활동적이다.
2) 이형구, ?발해연안에서 찾은 한국고대문화의 비밀?, 김영사, 2004,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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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은 새를 토템으로 삼아서 천신으로 삼았다. 그 중에는 삼족오,
주작, 서조, 봉황 이 있다. “고대인들은 새를 태양과 천자, 신생과 풍
요, 조영과 영혼 승천의 사자 등으로 인식하였다. 새의 이러한 상징
성은 우리나라 고대 건국신화의 왕권 상징 및 제천의식과 관련된 유
물에 나타나고 있다.”3) 고대 천신숭배사상은 제천의식과 함께 부족
장의 권위를 신성시하고 부족을 다스리는 통치자의 상징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통치자는 천신을 상징하는 새 모양의 장식과 紋
樣을 사용하였다. 고대국가 건국 시조의 신화가 새와 관련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신라의 박혁거세, 김알지, 고구려의 주몽 등이
새의 알에서 태어났다는 說話를 가지고 있는 것 역시 한국인의 天孫
思想을 말해준다. 한민족의 천신사상 중에서 영혼불멸사상은 새와
관련 되어있다. 그래서 새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악귀로부터 보호하
고, 영혼을 천상으로 옮길 수 있다는 인식이다. 이는 고대 한국인의
天神思想과 스스로 天孫이라고 부르고 주인의 영혼을 보호하는 영혼
불멸사상과 함께하는 고대 한국인의 토템사상이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주로 발견되는 새는 삼족오, 봉황, 주작이다.
삼족오는 발이 세 개가 달린 새로서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을 향해
날고자 하는 활동적인 活形을 하고 있다. 삼족오는 태양을 상징한다.
고구려 고분 벽화의 주작은 항상 날개를 활짝 펴고 있는 活形인데
대부분 봉황형상이다.4) 벽화에는 天人의 수레로 활용되는 화려한 공
작의 꼬리를 지닌 새도 보인다.5) 이때 天人의 이동수단인 새는 날개,
머리, 꼬리 모양이 봉황과 확연히 다르다. 꼬리는 봉황의 물고기 지
느러미 모양이 아니고, 머리는 일반적인 학모양의 머리이고, 날개는
3) 김주미, 「鳳凰紋과 韓 民族의 天神思想 : 高句麗 古墳壁畵를 중심으로」, ?문
화사학?, 2004, p.137.
4) 전호태, ?고분벽화로 본 고구려 이야기?, 풀빛, 2010, pp.76-77, 덕흥리고분벽
화의 주작; p.128, 퉁구사신총; p.129, 쌍영총 ; p.130, 강서대묘의 주작.
5) 위의 책, p.71, 무용총 신선, 오회분 4호묘의 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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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이상 활짝 펼쳐지지 않은 그림이다. 이것들은 후에 중국과 한국
의 봉황그림에서 발견되는 중요한 차이점이다.
본 논문은 한국인의 천신사상과 천손사상에 내재한 봉황에 한정하
여 연구하고자 한다. 봉황은 날개 달린 百鳥의 왕이다. “봉황은 깃
있는 무리의 신령스런 새이고, 어짊과 상서로움을 상징한다. 그 수컷
은 鳳이고, 그 암컷은 凰이다.”6) 또한, 봉황은 五彩色을 하고 있다.
?산해경?에서는 五彩色을 가진 새는 세 가지로서, 皇鳥, 鸞鳥, 鳳
鳥을 말한다.7) 이들은 모두 오색을 띠며 五音을 울어대는 신령스런
새 이고, 꼬리가 다르다. 鳳鳥는 꼬리가 물고기 지느러미 같고, 鸞鳥
는 꿩처럼 긴 꽁지가 있다. 봉황은 동이족의 새 토템 문화를 형성하
는 수호신이자 한민족의 천신사상을 이루는 주된 상징이다.
봉황에 대한 선행연구를 살펴보면, 1.김주미는 고구려고분 벽화에
나타난 봉황그림을 한민족의 천신사상과 연계하여 연구하였다. 鳳凰
紋은 동이족의 玄鳥 숭배에 불을 숭상하는 炎帝族의 붉은 색 요소가
가미되어 현조인 까마귀가 붉은 색인 주작으로 변화하였다고 주장한
다.8) 2.유병례는 봉황을 오동나무와 함께 군자의 도도한 의미를 상징
하는 풀이로 해석하였다.9) 3.이지영은 중국과 한국의 봉황문양에 대
하여, 중국의 수당시대와 한국의 통일신라말기까지의 봉황문양은 주
작의 모양을 하고 있었지만, 그 이후 조선시대에는 꼬리와 깃털이 가
미되어서 장식성이 있도록 유연하게 변화되었다고 하였다.10) 4.박현
숙은 벽화그림이나 장신구에 나타난 봉황무늬에 대한 우리민족의 상
6) ?毛詩正義? 「大雅⋅生民之什」卷阿: 鳳凰靈鳥, 仁瑞也。雄曰鳳, 雌曰皇。
7) ?山海經? 「大荒西經」, 有五彩鳥三名:一曰皇鳥,一曰鸞鳥,一曰鳳鳥。
8) 김주미, 「鳳凰紋과 韓 民族의 天神思想」, ?문화사학?, 2004. ; 「三足烏⋅朱雀
⋅鳳凰 圖像의 성립과 친연성고찰」, ?역학민속학?, 1997.
9) 유병례, 「한⋅중 고전시가에 나타난 오동나무 이미지 비교」, ?중어중문학?
44, 한국중어중문학회, 2009.
10) 이지영, 「朝鮮朝 服飾類에 나타난 鳳凰문양에 관한 연구」, 서울여자대학교
석사논문,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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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성을 시대별로 구분하여 봉황무늬가 회화에서 어떻게 반영할 되는
가를 연구하였다.11) 5.김백현은 대재예기 오제덕에서 동방의 夷人은
새를 토템으로 삼았다.12)라고 연구하였다.
한국문화 속에서 봉황형상은 다양하게 변화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한국인의 천신사상 속에 내재한 봉황이 가지는 본래 의미와 형상을
살펴볼 것이다. 봉황의 각 부위를 구성하는 오채색을 문헌적으로 고
증하여 봉황의 본래 형상이 무엇인가 확인하고, 삼국시대부터 근현
대까지 대표적인 鳳凰圖象을 분석하고, 고대 천신사상에 내재한 한
국인의 봉황형상의 시대적 변화를 밝혀서, 한국인의 천신사상에 내
재한 올바른 봉황을 찾는 데 목적이 있다. 또한, ?산해경?과 ?설문해
자?에서 서술하는 봉황의 형상은 삼국시대의 고분 벽화에 그려 있는
봉황형상과 동일하다는 것을 밝혀본다.
Ⅱ. 봉황의 상징적 의미
봉황의 상징적 의미는 태평성대, 청렴한 선비, 화목한 짝이다. 봉
황이 상징하는 의미들을 하나씩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첫째, 봉황은 왜 태평성대를 의미하는가? 새는 하늘을 나는 동
물이다. 새 중에서 으뜸은 봉황으로 여기었고, 봉황은 五德을 갖춘
새라고 설명한다. ?山海經?에서는 “어떤 새는 모양이 닭과 비슷한데,
오채색의 무늬가 있고, 부르기를 봉황이라고 한다. 이 새의 머리 무
늬는 德, 날개 무늬는 義, 등의 무늬는 禮, 가슴무늬는 仁, 배 무늬는
信을 의미한다. 이 새는 먹고 마시는 것이 스스로 자연의 법도에 맞
11) 박현숙, 「韓國 鳳凰圖의 造形性 硏究」, 홍익대학교 석사논문, 2009.
12) 김백현, 「신선사상의 연원으로 본 동이족의 봉황문화」, ?중국학보 47집?, 한
국중국학,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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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스스로 노래하고, 스스로 춤을 춤추는데, 이 새가 나타나면 천하
가 태평해진다.”13)라고 봉황의 형상과 상징을 설명한다. 동양 사상에
서는 다섯 가지의 기운을 모두 가지고 있는 사물을 신성시 여긴다.
봉황은 오덕을 갖추고 있으니, 하늘의 기운이 순조로워서 오행이 조
화를 이루는 태평할 때에 봉황이 출현한다.
봉황이 가지고 있는 오색에서 木은 청색, 火는 붉은 색, 土는 황색,
金은 흰색, 水는 검정색을 의미한다. 또한 五德에서 목은 仁, 화는 禮,
수는 智, 토는 信, 금은 義이다. 목이 왕한 사람은 인자하고, 화가 왕
한 사람은 예의가 바르고, 토가 왕한 사람은 믿음이 있고, 금이 왕한
사람은 의리가 있고, 수가 왕가 사람은 지혜가 발달되어 있다. 이 모
든 것을 갖추고 있으면 성인의 반열에 이른다. 그래서 봉황은 오덕을
모두 갖춘 길조이다.
봉황머리의 붉은색은 禮를 의미하는 德을 상징하고, 날개 무늬에
흰색은 義, 등 무늬에 붉은 색은 禮, 가슴에 푸른색은 仁, 배 무늬에
황색은 信을 상징한다. 봉황은 오채색을 갖추고 있어서 목⋅화⋅토⋅
금⋅수 오행을 갖춘다. 이것은 봉황이 仁⋅義⋅禮⋅德⋅信의 덕목을
모두 갖추고 있음이다.
하늘에서 먼저 순조로운 기운이 나타나면 땅에도 그러한 조짐이
보인다. 이것은 천지가 하나로 이루어져 기운이 同調하기 때문이다.
성인의 도가 행해질 때는 하늘에서도 상서로운 징조가 보인다. 그래
서 태평성대에는 하늘의 기운이 조화롭게 운행하여 사시가 바르게
세워지고, 좋은 인재가 모여들어 성군의 뜻을 받들어 훌륭한 정치를
한다. 하늘이 순조로우면 백성들이 秋收冬藏라 가을에 풍성한 곡식
을 수확하여 따뜻한 겨울을 지내고 나라가 평안하다.
?荀子?에서 성군이 출현하여 “고대 임금의 정치가 생명을 사랑하
13) ?山海經? 「南山經」: 有鳥焉,其狀如雞,五釆而文,名曰鳳凰,首文曰德,翼
文曰義,背文曰禮,膺文曰仁,腹文曰信。是鳥也,飮食自然,自歌自舞,見
則天下安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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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죽임을 멀리하면 봉황이 나무에 줄지어 나타난다.”14)라고 하였다.
舜임금 때에는 봉황이 와서 춤을 추었고, 文王 때에는 岐山에서 봉황
이 울었고, 복희시대에는 황하에서 신령스런 거북이 나타나서 신령
스런 그림을 지고 나왔다. 이것은 모두 성군이 나타났다는 단서를 의
미한 것이다. 봉황이 나타나서 춤을 추고 우는 것은 성군이 출현하고
태평성대가 다가온다는 좋은 징조이다.
?論語?에서 공자는 “봉황새가 오지도 않고, 황하에서 하도가 나오
지 않으니, 나는 이제 그만인가 보다!”15)라고 하였다. “성군이 오시면
태평성대가 이루고, 태평성대가 오면 봉황이 나타나고 황하에서 河
圖가 출현하였다. 지금 성군이 나타나지 않아 봉황과 하도가 응하지
않으니, 마음이 슬프고 스스로 비통하여 내가 이제 쓸모가 없는가라
고 탄식한 것이다.”16)
?毛詩正義?즉 ?시경?⋅「대아」편에서는 천자에게 조회하기 위하여
모여든 제후들이 봉황이 나타나서 울어대니 훌륭한 성군이 나타나서
태평성대를 부르는 노래이다.
둘러쳐진 언덕 위로 남풍이 불어오네
인자하신 우리성군 유유자적 노래하네
여러 가지 말씀 벌려놓고 계시네
태평하게 누시며 유유자적 쉬고 있네
인자하신 우리성군 오랫토록 사시어서
조상들이 이루신일 더욱더욱 빛내시리
하늘에 받은 명이 기니 목록으로 편안하리
즐거운 그대여, 그대 수명 다 마쳐서 큰 복 항상 누리시길
14) ?荀子? 「哀公篇」 : 古之王者, 其政好生惡殺, 鳳在列樹。
15) ?論語?, 「子罕」: 子曰: 「鳳鳥不至, 河不出圖, 吾已矣夫!」
16) ?論衡?, 問孔 第二十八 : 孔子曰 : “鳳鳥不至, 河不出圖, 吾已矣夫!” 夫子自傷
不王也. 己王致太平, 太平則鳳鳥至, 河出圖矣. 今不得王, 故瑞應不至, 悲心自
傷, 故曰“吾已矣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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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하고 보좌하고 효도하고 덕이 있어 기댈 자 있고
인도하고 도우시니 즐거운 그대여, 사방이 본 받으리
온화하고 높고 밝아 구슬같이 깨끗하며
좋은 소문 덕망 높네. 즐거운 그대여, 사방의 벼리되리  
봉황새가 날아서 푸득푸득 깃을 치다가
또 다시 모여 와서 이곳에 앉는다네
수많은 왕의 신하 주렁주렁 늘어섰네
그이들은 모두가 군자다운 신하라서
오로지 충성하여 임금님을 잘 따르네
봉황새가 날아가네 푸득푸득 깃을 치며
허공 높이 날아서 하늘 위로 올라가네
왕의 신하 좋은 사람들이 주렁주렁 늘어섰네
그들이 모두가 군자다운 명 받들어
그대가 명령하니 사람으로 백성들을 인도하네
봉황새가 울어대네 저 높은 언덕 위에서
오동나무 생겨낳네 아친 햇살 뜨는 곳에서
오동나무 무성하니 봉황 소리 화답하네
성군의 끄는 수레는 어찌 그리 많으며
성군의 말들도 길이 들어 잘 달리네
읊은 시가 많지 않으니 노래지어 부르네17)
봉황이 나타나서 춤을 추니 수많은 신하가 모여든다. 봉황이 깃을
치니 그대가 명령하여 수많은 제후가 백성들을 사랑하네. 봉황이 언
17) ?毛詩正義? 「大雅⋅生民之什」 卷阿, 召康公, 戒成王也, 言求賢用吉士也. 有
卷者阿, 飄風自南. 豈弟君子, 來游來歌, 以矢其音. 伴奐爾游矣, 優游爾休矣.
豈弟君子, 俾爾彌爾性, 似先公酋矣. 爾土宇昄章, 亦孔之厚矣. 豈弟君子, 俾爾
彌爾性, 百神爾主矣. 爾受命長矣, 茀祿爾康矣. 豈弟君子, 俾爾彌爾性, 純嘏爾
常矣. 有馮有翼, 有孝有德, 以引以翼. 豈弟君子, 四方爲則. 顒顒卬卬, 如圭如
璋, 令聞令望. 豈弟君子, 四方爲綱. 鳳皇于飛, 翽翽其羽, 亦集爰止. 藹藹王多
吉士, 維君子使, 媚于天子. 鳳皇于飛, 翽翽其羽, 亦傅于天. 藹藹王多吉人, 維
君子命, 媚于庶人. 鳳皇鳴矣, 于彼高岡. 梧桐生矣, 于彼朝陽. 菶菶萋萋, 雝雝
喈喈. 君子之車, 旣庶且多. 君子之馬, 旣閑且馳. 矢詩不多, 維以遂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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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에서 울어대니, 아침 햇살에 오동나무 무성하고 봉황소리에 화답
한다. 덕망 높은 좋은 소문에 즐거운 그대여, 사방의 벼리가 되리라!
하늘에 명을 받아서 큰 복록을 받으신 그대여 큰 복을 누리시라! 우
리가 의지하고 기댈 임금이 있어서 사방이 본받는다. 성군이 나타나
니 봉황이 나타나고 훌륭한 신하들이 모여들어 태평성대가 왔으니
성군을 찬양하는 노래이다.
봉황을 육축으로 삼으면 하늘을 나는 새들이 꼼짝 못하였다. 성인
이 법을 만드는데 천지를 근본으로 삼았기 때문에 법칙은 만물을 모
두 간직할 수 있고, 음양을 시초로 삼아서 감정을 알 수 있고, 四時를
자루로 삼아서 일을 서로 전하여 할 수 있고, 해와 별로 기강을 삼아
서 일을 분별할 수 있고, 달을 도량으로 삼아서 모든 일을 다스리고,
귀신으로 무리를 삼은 까닭에 일을 지켜 나갈 수 있고, 오행으로 본
질을 삼아서 일을 회복할 수 있고, 예의로 그릇을 삼아서 일이 이루
어지게 하고, 인정으로 밭전을 삼아서 四靈을 다스릴 수 있었다.18)
四靈은 용으로 육축을 삼으면 물고기가 감히 숨지 못하고, 봉황으로
육축을 삼으면 새들이 도망하지 못하고, 기린으로 육축을 삼으면 짐
승들이 도망하지 못하며, 거북으로 육축을 삼으면 인정에도 실수가
없었다. 이와 같이 봉황은 하늘의 기운이 순조로워서 지상에 태평성
대가 도래함을 예견하는 상서로운 길조로 인식된다.
② 둘째, 봉황은 뛰어나고 청렴한 선비를 상징한다. 봉황은 새 중
에 으뜸이다. ?莊子?는 장자가 청렴한 선비와 썩은 재상을 원추[봉
황]와 소리개[솔개]의 예를 들어서 세속적 썩은 먹이에 혈안이 되어
있는 관리를 輕視하는 처세관을 나타내고 있는 寓話이다. 징자는 봉
황을 청렴한 선비로 비유하였고, 솔개를 부패한 관리를 지칭하였다.
18) ?孔子家語? 「禮運」, 卷七 : 聖人作則,必以天地爲本故物可擧, 以陰陽爲端故
情可, 以四時爲柄故事可勸, 以日星爲紀故業可別, 月以爲量故功有藝, 鬼神以
爲徒故事有守, 五行以爲質故事可復也, 禮義以爲器故事行有考, 人情以爲田四
靈以爲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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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의 우화에서 당시의 사회적으로 인식되는 봉황의 상징을 읽어
낼 수 있다.
“혜자가 양나라의 재상으로 있을 때, 장자가 그를 찾아가 만나고자 했다.
그 때 어떤 사람이 혜자에게 이르기를, 장자가 오는 것은 그대를 대신하여
이 나라 재상이 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혜자는 놀라서 사람들을 시
켜서 사흘 밤낮으로 전국에 장자를 찾도록 하였다. 그 후 장자가 혜자를 찾
아와 만나서 하는 말이, 남쪽에 새가 있는데 그 이름을 ‘원추’(봉황의 일종)
라고 하는데 당신은 그 새를 아는가? 그 원추는 남쪽 바다에서 출발하여 북
쪽 바다로 날아가는데, 오동나무가 아니면 쉬지 않고, 대나무의 열매가 아
니면 먹지 않으며, 단물이 나오는 샘이 아니면 마시지도 않습니다. 때마침
솔개가 썩은 쥐를 낚아채 가지고 가는데, 원추가 그 위를 날아갔다. 그랬더
니 솔개는 썩은 쥐를 빼앗길까봐 ‘꿱’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와 마찬가지로
지금 당신은 재상 자리 때문에 나를 겁내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19)
장자는 혜자를 세속에 썩은 먹잇감을 즐기는 솔개에 빗대어 탐욕
에 지배당하고 있는 부패한 관리로 묘사하고 자신은 청렴한 선비라
는 것을 봉황에 빗대어 나타내고 있다.
봉황은 竹實을 먹는다. 대나무 열매가 죽실이다. 대나무는 하늘로
곧게 솟아오르는 선비의 기상이다. 대나무는 비록 속이 비어 있지만
꼿꼿한 절개와 기상을 갖고 있다. 이는 이리저리 힘을 가하면 다른
나무와 다르게 부러지지 않고 잘 견디어낸다. 내면에 자신의 절개를
간직하고 있는 것은 대나무가 상징하는 선비의 꼿꼿한 기상이지만,
대나무는 바람이 흔드는 것을 함께 즐기는 여유도 있다. 그래서 대나
무를 선비에 비유하는 것 같다. 이것은 고루한 선비가 아이고 함께
어울리며 풍류가 있는 선비를 의미한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19) ?莊子? 「秋水」: “惠子相梁, 莊子往見之。 或謂惠子曰, 莊子來, 欲代子相。於
是惠子恐搜於國中, 三日三夜。 莊子往見之曰, 南方有鳥, 其名鵷鶵, 子知之
乎? 夫鵷鶵發於南海, 而飛於北海, 非梧桐不止, 非練實不食, 非醴泉不飮。於
是鴟得腐鼠, 鵷鶵過之, 仰而視之曰, 嚇。今子欲以子之梁國而嚇我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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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이다. 대나무는 타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듯이 바람에 몸을 맡겨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내면에는 심지가 흔들리지 않는 곧은 기상을
간직한 선비를 의미한다.
또한, 대나무는 약한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마디마디 짧게
節節이 마디로 매듭지어 마무리를 하였기 때문에, 가늘지만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거대한 힘이 있다. 대나무가 끝없이 위로 솟아오르
고 있는 것은 마치 하늘의 이치를 뚫으려하는 선비의 학문적 탐구심
과 같다. 대나무는 곧은 절개와 푸른 기상을 간직하고 있는 고고한
선비의 상징을 갖고 있다.
대나무는 사시사철 푸른 청색을 띠고 있다. 청색은 동방을 의미하
고, 동쪽에서는 매일매일 하루를 시작하는 태양이 떠오른다. 태양은
새로운 희망의 상징한다. 어두운 밤을 지나고 세상에 광명을 주기 시
작하는 동쪽은 새로운 희망을 상징한다. 태양이 동쪽에서 떠오를 때
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그래서 동방에는 희망이라는 의
미를 부여하였다. 푸른색은 고고함과 상서로운 희망을 상징한다. 대
나무의 푸름이 동방을 상징하니 대나무가 희망을 상징하는 이유다.
대나무는 봉황과 관련한 상서로운 기운을 함유하고 있다. 만물은
모두 體와 質의 형체를 가지고 있는데, 성인이 만물의 형상을 분류하
여 그에 부합되게 이름을 지었다.20) 즉, 氣가 겉으로 드러나면 象으
로 나타난다. 吉象은 瑞氣가 있는 곳에서 형성되어 드러난다. 그래서
특별히 좋은 기운으로 이루어진 상징을 사신으로 지정하였다. 사신
은 봉황, 기린, 거북, 용이다. 봉황, 용과 기린은 실제 현존하지 않는
상징적 동물이지만 상서로운 의미를 부여하였다. 다만 지극한 陰氣
는 너무 탁해서 象이 위로 뜨지 못하니 象으로서는 드러내지 못한다.
이것은 실존하는 거북을 취하여 四神의 기운을 완성하였다.
이렇게 상서로운 四靈 중에 하나인 봉황은 오동나무 숲에서 둥지
20) ?五行大義? : 夫萬物自有體質, 聖人象類而制其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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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틀고 대나무의 열매인 竹實이 아니면 먹지 않는다. ?莊子?에서는
봉황, 오동, 죽실의 관계가 더욱 명확하게 나타나고 있다. “봉황이 가
지는 특성은 오동나무가 아니면 거처하지 아니하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를 아니한다.”21)라고 하였다. 대나무는 신령스럽고 상서
로운 기운의 상징인 봉황의 먹이를 생산하는 나무이다. 그래서 대나
무는 그저 나무가 아니고 상서로운 기운을 상징하고 상서로운 봉황
이 먹는 상서로운 열매를 생산하니, 또한 대나무를 상서롭지 않다고
할 수 없다.
봉황은 대나무 열매 竹實을 먹으며, 예천의 샘물을 마신다. 그래서
성인의 덕이 위로는 하늘에 미치고 아래로는 땅에 이를 때 봉황이
나타나서 예천수를 마신다. 또한, 봉황은 아침에 태양이 빛날 때 나
타나서 ‘오동나무’22)에 깃든다.
이러한 봉황의 의미는 신라하대 이후 당나라를 유학하고 새로운
불교인 無念無說의 禪을 전파하기 선승들이 토착신앙과 교합하면서
새로운 전환기를 만난다. 신라인들이 새로운 불교인 선종을 배타하
자 천신사상속의 봉황을 땅에서 찾아서 불상을 보호하는 발상이다.
그들은 봉황 모양의 산 아래 사찰을 조성하고 뒷산을 봉황산이라고
이름하였다. 봉황산 아래에 주변 땅에는 봉황이 날아가지 않고 깃들
어 있도록 오동나무의 지명을 붙여서 비보하였고, 또한 竹實과 관련
하는 대나무의 지명을 붙여서 봉황이 떠나지 않도록 하는 톡특한 自
生風水사상을 개발하였다. 봉황의 땅에는 봉황산이 있으면, 그 주변
에 ‘梧桐里’란 마을의 지명이나 ‘竹實里’라는 지명을 넣어서 봉황이
항상 깃들어 있도록 마을 이름을 붙인 곳이 있다.23)
21) ?莊子? : 鳳凰之性、非梧桐不棲, 非竹實不食。
22) 오동나무는 고아한 품격을 지닌 나무이다. 오동나무는 높은 신분의 관을 만
드는데 사용되었고, 거문고나 장롱을 만드는 재료로는 최고이다.
23) 천인호, 「지명형성의 풍수담론: 봉황형국을 중심으로」, ?지명학 17?,한국지
명학회, 2011. :영천군의 지세가 봉이 날아가는 모양이라 함은 飛鳳形을 의
한국인의 天神思想속의 鳳凰形象 硏究ㆍ민병삼 415
Ⅲ. 봉황의 五彩形象
봉황은 새 중에 으뜸이고 오채색을 모두 갖추고 있는 신령스런 동
물이다. 이러한 봉황의 모습에 오색을 배속하여 표현하는데, ?山海經?
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山海經?에서는 봉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동쪽으로 오백리 丹穴之山이 있는데 금과 옥이 많이 나온
다. 그 산에서 丹水가 나오고 물이 남쪽으로 흘러 발해로 흘러간다.
그 곳에 새가 있는데, 모양이 닭과 같고, 오채색의 문양을 하고 있고,
이름을 봉황이라고 부르며, 머리 무늬는 德, 날개의 무늬는 禮, 등의
무늬는 義, 가슴의 무늬는 仁, 배의 무늬는 信이다.”24) 오행설의 영향
으로 봉황에는 5가지 상징과 의미를 부여하고 오덕을 배당하였다. 우
리는 봉황에 붙인 五德을 통하여 봉황의 중요한 다섯 부위에 五彩色
을 배속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찾아서 봉황의 형상을 완성할 수 있다.
봉황의 주요부위에 있는 오채색을 찾기 위하여 오색의 배당을 오
행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황제소문?에 이르기를, 풀의 성질이
다섯 가지가 있어서 드러나면 오색이 된다. 동방 목은 푸른 색이니
만물을 부드럽게 한다. 남방 화는 붉은 색이니 태양이 뜨겁게 타오르
는 상이다. 중앙 토는 황색이니 땅의 색이다. 서방금은 흰색이니 가
을의 살벌한 기운이 있어서 이슬이 하얗게 서리가 된다. 흰 것은 상
복의 상이다. 북방 수는 검은 색이니 먼 곳을 바라보면 어두워서 음
침하고 어렴풋한 상이다. 바다는 아득하고 멀어서 검고 어두워 끝이
없고, 물은 태음의 물질이기 때문에 음침하고 어둡다고 한다.”25)
미한다. 이 경우 봉이 날아가지 않도록 하는 지명이 유래된다. 留鳳山과 이
산에서 기인한 鳳亭里, 鳳洞, 凰井, 鳳竹里, 竹防山, 朝陽閣 등 봉황과 관련
한 지명을 마을에 붙이었다.
24) ?山海經? 「南山經」 : 又東五百里曰丹穴之山,其上多金玉。丹水出焉,而南
流注于渤海。有鳥焉, 其狀如雞, 五采而文, 名曰鳳凰, 首文曰德, 翼文曰義, 背
文曰禮, 膺文曰仁, 腹文曰信。
416 仙道文化 제 18 권
?五行大義?에서 “五常은 인⋅의⋅예⋅지⋅신 다섯 가지이다. 항상
잊지 않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常’ 이름을 하였다. 또한 五德이라
고 한다. 이것을 행하여 덕을 이루기 때문에 오덕이라고 하고 오덕에
오행을 배속한 것이다. 鄭玄이 ?예기?와 ?중용?을 주석하면서 목의
神은 仁, 금의 신의 義, 화의 신은 禮, 수의 신은 信, 토의 신은 智라
고 하였다. 그러나 毛公이 훈고한 ?시경?과 京房의 설은 모두 토로써
信, 수로써 智를 삼았다.”26) 오상에 배속한 것은 信과 智를 서로 다
르게 배속한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정현과 경방의 설이다. 정현의 설
을 채용하면, 봉황의 배의 무늬는 오덕이 信이므로 信은 오행이 水이
고 까마귀처럼 검정색이다. 경방의 설을 채용하면, 봉황의 배 무늬의
오덕은 信이 오행으로 토이고 황금색을 나타낸다. 봉황의 등 무늬는
義이고 오행은 金이며 고니두루미처럼 흰색이다. 봉황의 가슴 무늬
는 仁이고 오행은 木이며 공작처럼 푸른색 무늬이다.27)
문제의 두 가지를 배속하기 위하여 분석해야 할 오행은 화와 토이
다. 정현의 설을 위주하면 火는 禮이고 土는 智이다. 오덕에서 봉황
은 주작이고, 주작은 남방을 의미하니, 봉황이 상징하는 대표적인 남
방의 붉은 색을 머리에 하고 있다.
봉황머리의 벼슬 무늬는 닭의 붉은 색이다. 닭의 대표적인 속성이
오행으로는 닭의 벼슬이 상징하는 붉은 색의 火이지만, 닭은 전체적
으로 오덕을 모두 가지고 있는 동물이다. 닭은 文⋅武⋅勇⋅仁⋅信
25) ?五行大義? 「論配五色」: 黃帝素問曰, 爱性有五, 章爲五色者,東方木爲蒼色, 萬
物發生, 夷柔之色也。.南方火爲赤色, 以象盛陽炎燄之狀也。中央土黃色, 黃者
地之色也, 故曰天玄而地黃。 西方金色白, 秋爲殺氣, 白露爲霜, 白者喪之象
也。北方水色黑, 遠望黯然, 陰闇之象也。溟海淼邈, 玄闇無窮, 水爲太陰之物,
故陰闇也。
26) ?五行大義? 「論五常」 : 五常者仁義禮智信也。行之終久, 恒不可闕, 故名爲常,
亦云五德。以此常行, 能成其德, 故云五德, 而此五德, 配於五行。鄭玄注禮記
中庸篇云, 木神則仁, 金神則義, 火神則禮, 水神則信, 土神則智, 詩緯等説亦
同。毛公傳説及京房等説, 皆以土爲信, 水爲智, 漢書。
27) 정현의 설을 채용하여 信을 水에 배속하고, 봉황의 무늬를 채색한다.
한국인의 天神思想속의 鳳凰形象 硏究ㆍ민병삼 417
다섯 가지 덕을 가지고 있다. 닭은 酉이고 오행으로 金이 되므로, 용
맹무쌍함이 먼저이니 적을 보았을 때 반드시 싸우는 것이 본성이
다.28) 닭이 머리에 冠을 쓰고 있는 것은 文의 덕이고, 발에 날카로운
발톱은 武의 덕이고, 목숨을 걸고 싸움은 용맹한 勇의 덕이고, 먹이
를 보았을 때 서로 불러서 함께함은 어진이 仁의 덕이고, 시간을 어
기지 않고 울어 알리는 것은 믿을 信의 덕이다. 그래서 ?山海經?에서
‘봉황의 머리 무늬를 德이라 한 것’은 닭이 가지고 있는 文⋅武⋅勇⋅
仁⋅信 오덕의 상징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봉황의 네 가지 부위 날개, 가슴, 배, 머리벼슬 무늬가
상징 하는 오덕을 목, 금, 수, 화를 오행에 배속하여 五彩를 배당하였
다. 끝으로 ‘?山海經?에서 봉황의 날개 무늬를 禮’로 표현한 것을 나
머지 오행 토에 배속하면 봉황의 날개무늬에는 황금색이 배속된다.29)
즉, 정현의 설을 채용하여 봉황의 주요 부위에 오색을 배속하면,
봉황의 가슴은 목의 덕 仁이고 공작새의 푸른색이다. 봉황의 머리는
화의 덕이고 닭 벼슬처럼 붉은색이다. 봉황의 등 무늬는 토의 덕이고
황금색이다. 봉황의 날개는 금의 덕 義이고 두루미⋅학의 흰색이다.
봉황의 배는 수의 덕 信이고 까마귀의 검정색 모양이 배속된다.
이렇게 봉황의 각 부위에 위에서 분석한 자연계의 새들의 대표적
인 오채색을 배속하면 다음과 같다. “머리는 닭의 머리이고, 목은 뱀,
제비의 턱, 거북이 등, 물고기 꼬리 모양, 오채색이고, 육척의 높
이”30) 이다. 이에 학의 가느다란 다리를 추가하면 전체적인 봉황의
28) ?五行大義? 「論三十六禽」: 酉爲金, 威武之用, 有五德, 以武爲先, 見敵必鬭, 是
其本性。
29) 시대별 학설에 따라서 오행의 배속이 상이하여 봉황의 모습을 구성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일차적으로 오상이 분명한 목, 금, 수, 오행을 오덕에 배속하
고 봉황의 날개, 가슴, 배의 무늬의 분류하였다. 닭 벼슬처럼 현존하는 동물
이 가진 확실한 색채를 구분하여 배속하였고, 나머지 한 개의 오행을 날개
무늬에 배속하여 전체적인 봉황무늬의 오채색을 배속할 수 있다.
30) ?爾雅注疎? 「釋鳥」, 卷十, 北京大出版社, p.345, : 瑞應鳥, 鷄頭, 巳項, 燕頷,
418 仙道文化 제 18 권
특징적 형상을 구성할 수 있다. 봉황의 모습에 오채색을 배속하여 한
국인의 천신사상 속에 내재한 봉황의 참된 형상을 도출 할 수 있다.
봉황의 외적인 모양은 後漢代 허신이 기록한 ?說文解字?에서 잘
나타나 있다. 허신은 “봉황은 신령스런 조류이다. 천로가 말하기를
봉황의 象은 앞에서는 보면 큰 기러기 같고, 뒤 모습은 기린 같고, 뱀
의 목을 하고, 물고기의 꼬리이고, 용의 비늘처럼 호랑이 배 같고, 제
비의 부리를 닮았고, 닭의 머리의 형상을 하고 있다.”31)라고 하였다.
이것은 여러 동물의 외형적 특징을 조합한 모양이다. 그런데 중국의
한대 화상석의 鳳은 이상하다.
[그림 1] <羽人飼鳳>, 강소 서주 출토, 한대 화상석
중국의 강소 서주에서 출토된 한대 화상석 <羽人飼鳳>에 조각되
어 있는 봉조는 ?說文解字?에서 기록한 봉황의 모습과 다르다. 우선,
머리가 일반적인 새의 모습이지 닭의 머리를 닮지 않았고, 꼬리 또한
물고기 지느러미 같지 않고 마치 동물의 꼬리 모양이다. 날개의 형태
도 또한 한국의 삼국시대 고분에서 발견되는 봉황이 날개를 펼친 모
양과는 전혀 다르게 참새처럼 날개를 접고 있는 靜形이다. <羽人飼
鳳>란 명칭에서 鳳은 새조로 바뀌어야 온당하다. 중국에서 발견된
한대 화상석의 봉 그림은 동이족을 조상으로 하는 한국인의 천신사
龜背, 魚尾, 五彩色, 故六尺許。
31) ?說文解字?, 鳳神鳥也。天老曰, 鳳之象也,鴻前麐後,蛇頸魚尾,鸛顙鴛思,
龍文虎背,燕頷雞喙,五色備舉。
한국인의 天神思想속의 鳳凰形象 硏究ㆍ민병삼 419
상에 내재한 참된 봉의 형상이 아니다. 그래서 ?說文解字?나 ?山海
經?에서 설명한 봉황은 중국의 그림에서 보이는 鳳이 아니고, 동이
족을 조상으로 하는 한국인의 鳳을 묘사했다고 할 수 증거이다.
Ⅳ. 봉황의 形象변천
1. 삼국시대의 봉황
고구려시대의 봉황은 고분벽화 속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데,32)
고전에서 설명한 봉황의 형상을 하고 있다. 머리는 닭의 벼슬 모양을
하고 있고, 꼬리는 물고기 꼬리모양이 세 가닥으로 되어 있고, 날개
는 길지 않고 짧다. 고구려시대에는 봉황을 신성시 여기어서 천상의
사신으로서 생각했다. 그래서 봉황은 부족장 같은 특권층의 사후의
안녕을 기리는 수호신으로서 고구려 고분의 벽화 속에 널방의 四神
의 형태로 그려져 있다.
[그림 2] 무용총 벽화속 봉황주작
[그림 3] 강서중묘의 주작
32) 고구려시대 여러 고분에서 주인의 널방의 수호신인 四神으로서 봉황주작은
발견된다. 무용총, 쌍영총, 삼실총, 강서대묘, 약수리고분 등이다.
420 仙道文化 제 18 권
백제시대의 봉황문양은 백제금동대향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동
탁은잔과 왕비의 頭枕, 부영 외리에서 출토된 산수봉황문전 등이 있
다. 백제금동대향로는 부여 능산리 사찰터에서 1993년 발굴되었는데,
땅을 파서 만든 공방에 매장되어 있었다. 백제금동대향로는 받침과
몸통 그리고 뚜껑 등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받침부분은 용이
머리를 들어 금동대향로 몸체의 하부를 입으로 물고 있고, 용의 입에
물린 棒을 향로 몸통 내부의 관에 끼워 결합하였다. 금동대향로의 몸
통은 겹쳐진 연꽃잎이 양각되어 사실적인 연잎으로 표현되어 있고, 2
명의 인물상, 27마리의 물고기, 새 둥의 동물이 조각되어 있다. 그리
고 뚜껑 부분에는 중첩된 산악으로 묘사된 74개의 봉우리, 5명의 樂
士, 17명의 인물, 42마리의 호랑이, 코끼리를 비롯한 각종 동물들과
나무, 바위 등이 표현되어 있고, 금동대향로의 뚜껑 정상에는 날개를
활짝 펴고 정면을 응시하는 한 마리의 새가 위치하고 있다.33)
백제금동대향로의 상단에 위치한 瑞鳥는 닭 벼슬모양의 머리이고,
세 가닥으로 물고기 꼬리 모양을 하고 있다. 이 새는 봉황을 형상이
고, 고구려 시대의 벽화 속의 봉황의 형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림 4] 금동용봉대향로
[그림 5] 금동용봉대향로의
상단부분 봉황상
33) 이내옥, 「백제금동대향로의 사상」, ?진단학보?, 2010, p.4.
한국인의 天神思想속의 鳳凰形象 硏究ㆍ민병삼 421
이것을 불교의식 때 사용하는 향을 피우는 향로로 보는 견해도 있
지만, 뚜껑에 조각된 선, 상서로운 새, 상서로운 동물 등을 볼 때 국
가의 대사에서 사용하기 위한 왕실의 祭器로 보는 견해도 있다.34) 향
로는 향을 피워서 해충이나 악취를 제거하는 기능도 있지만, 종교적
제의 의식에서 신과의 소통을 위한 향의 신비적인 기능이 더 강조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국가의 행사에서 통치자가 하늘의 천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기 위한 향로일 가능성이 더 많다. 향
로에서 봉황은 제천의식 때 기원하는 바가 하늘의 天界 곧바로 도달
할 수 있도록 하기위한 전달자이고 수호신의 의미이다. 그래서 봉황
은 하늘을 상징하는 매개체로써 향로의 상단에 위치하고 있다. 여기
에는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볼 수 있듯이 봉황이 무덤의 주인의 영혼
을 보호하고 인도하여 하늘의 천계에서 편안하게 있기를 기원하는
고대 한국인의 천신사상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림 6] 신라, 서봉총의 금관
[그림 7] 신라, 금동봉황장식
신라시대의 봉황은 瑞鳳冢에서 출토된 금관과 운산용호1호의 금동
봉황장식에서 볼 수 있듯이,35) 금관위에는 여러 마리의 새가 있는데
34) 서정록, ?백제금동대향로?, 학고재, 2001, pp.325-326.
35) 신라시대의 발견된 금관은 모두 5가지가 있다. 금관총, 금령총, 서봉총, 황남
대총, 천마총에서 금관이 발굴되었다. 특히 서봉총의 금관에는 봉황문양의
422 仙道文化 제 18 권
이들은 천상의 세계에서 무덤주인의 영혼을 인도하는 형상이다. 서
봉총에서 발굴된 금관위에는 3 마리의 새가 장식되어 있다. 머리는
닭의 벼슬을 모양하고, 꼬리는 세 가닥으로 물고기 모양을 형상하고
있다. 그러나, 고구려시대의 봉황이 사후세계를 수호하는 하늘의 사
신으로서 고분벽화 속에서 발견되는 것과 다르게, 신라시대의 봉황
은 통치자가 스스로 하늘의 아들이라는 天孫思想을 상징하기 위하여
금관의 장식품에 사용되었다. 신라시대의 봉황문양은 최고 권력자의
장식품으로서 하늘을 대신 한 권위의 상징이다.
삼국시대 고분에서 벽화나 부장품으로 발견되는 봉황의 형상은 머
리와 꼬리의 형상이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모두 비슷하다. 머리에는
닭 벼슬의 모양을 하고 있고, 꼬리는 세 가닥으로 되어서 마치 물고
기의 꼬리처럼 되어 있고, 날개는 활짝 펼치고 있지만 길지 않고 짧
은 형상이다.
삼국시대에 발견되는 봉황의 형상은 ?설문해자?와 ?산해경?의 문
헌에서 묘사한 봉황의 형상과 일치하고 있다. 삼국시대의 봉황은 고
대 한국인의 전통적 수호신으로서 고구려 고분벽화와 백제의 금동용
봉대향로에 내재한 천신사상과 신라의 금관에 나타나는 천손사상을
특징을 갖고 있다.
삼국시대의 전통적인 봉황상은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점차 다른 모
양으로 변화한다. 중국 명대의 봉황그림처럼 공작의 꼬리를 닮은 형
상으로 변화되고, 이후 한국의 봉황은 삼국시대의 전통적인 봉황형
상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고 말았다. 이것은 조선시대 봉황에서 자세
히 다루기로 한다.
장식이 금관 상단에 장식되어져 있어서 瑞鳳冢이라 지칭하였다.
한국인의 天神思想속의 鳳凰形象 硏究ㆍ민병삼 423
2. 고려시대의 봉황
삼국시대 수호신으로 여기던 봉황의 천신사상은 고려시대에는 불
교로 대체되었다. 봉황의 문양은 고려청자, 연화문, 비천문, 화영문,
와당 같은 일상생활의 물품이나 건축에 사용되는 물건에 문양을 찍
어 넣어서 상서로운 기운이 깃들게 기원하는 불교적 장식품에 사용
되었다.36) 특히, 고려시대의 쌍봉화수경, 쌍봉문경, 쌍봉장반경, 쌍봉
문병경에 그려진 봉황문양은 삼국시대의 천신사상을 내재한 고구려,
백제, 신라시대의 고분에서 출토된 봉황의 모습과 전혀 다르다. 봉황
의 꼬리부분은 물고기 지느러미 모양대신 마치 공작새의 꼬리처럼
화려하게 변하였다. 봉황의 날개도 활짝 펼쳐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삼국시대의 봉황형상과 다른 전형적인 중국풍의 새가 대체하고 있
다. 한국의 전통적인 봉황의 참 모습을 찾을 수 없다.
[그림 8] 쌍봉화수경, 고려시대
국립박물관 소장
[그림 9] 쌍봉문경, 고려시대
국립박물관 소장
36) 왕대유著, 임동석譯, ?龍鳳文化原流?, 동문선, 1988, pp.266-269.
424 仙道文化 제 18 권
[그림 10] 쌍봉장반경, 고려시대
국립박물관 소장
[그림 11] 쌍보문병경, 고려시대
국립박물관 소장
삼국시대에는 봉황을 천상에서 찾았다면, 고려시대에는 봉황을 지
상에서 찾았다. 특히 ‘지리산을 중심으로 한 선종사찰’37)은 봉황을 상
징하는 땅을 찾아서 입지하고 봉황과 관련하는 지명을 주변의 마을
에서 찾을 수 있다.38) 지리산 문화권과 연계가 쉬운 선종 사찰은 봉
황의 형상을 한 산천에 사찰을 짓고 오동나무, 대죽, 봉황산 등의 지
명을 주변에 붙인 것이 특징이다. 선종사찰의 禪門을 살펴보면, 봉황
과 관련하는 山水와 地名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泰安寺(桐裏山門)는 惠哲39)이 전남곡성의 桐裏山에 泰安寺(桐裏山
門)을 창건하였다. 태안사의 주산은 鳳凰山이다. 泰安寺가 위치한 桐
裏山에서 ‘桐裏’란 오동나무가 우거진 숲속 깊은 곳이라는 의미이다.
37) 지리산권에 인접한 선종사찰은 창원의 봉림사, 문경의 봉암사, 장흥의 보림
사, 남원의 실상사, 곡성의 태안사, 광양의 옥룡사가 있다.
38) 도선의 스승 惠哲이 창건한 鳳林寺에는 桐裏山에 있고, 도선이 창건한 玉龍
寺는 鳳凰山을 주산으로 삼아서 봉황에서 부처를 보호하고자 하였다.
39) 惠哲은 憲德王 6년(814) 唐에 가서 西當智藏의 心印을 받고 神武王 원년
(839)에 귀국하였다. 혜철은 처음 雙峰蘭若에 있다가 谷城의 桐裏山의 泰安
寺 駐錫하여 동리산파를 제창하였다. 혜철은 도선국사의 스승이다.
한국인의 天神思想속의 鳳凰形象 硏究ㆍ민병삼 425
태안사는 그곳에 봉황이 집을 짓고 거쳐하는 곳에 부처가 곳 天孫이
라는 상징을 내재하고 있는 의미이다. 그래서 그 속에는 불상과 불법
을 봉안하였다. 삼국시대에는 통치자가 천손이었다. 선종불교에는 부
처가 스스로 봉황이 보호하는 천손이 되었다. 이것은 부처의 위상이
왕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음을 간접적으로 상징한다. 따라서 국가를
통치하는 국왕도 부처의 보호 하에 있어야 마땅하니, 불교의 위상은
국가의 권력위에 있게 되는 대단한 발상이다.
태안사가 위치한 ‘桐裏’와 더불어 삼국시대 봉황과 함께하는 봉황
이 좋아하는 오동나무, 대나무 죽실 등을 주변의 땅에 지명으로 갖추
었다. 태안사가 있는 곳은 봉황의 먹이가 되는 대나무 열매 죽실을
생산하기 위하여 竹谷面이라는 물형론의 지명으로 대나무가 심어 있
는 계곡이라는 의미이다. 읍면단위에 지명으로 대나무를 심어 놓았
으니 풍수물형에서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큰 대나무 밭이라는 의미이
다. 그곳에서 봉황이 즐겨먹는 竹實이 얼마나 많이 생산 될 것인지
규모를 상상해 볼 수 있다. 태안사는 전체적으로 봉황⋅대나무⋅오
동의 지명을 붙여서 봉황이 날아가지 않고 영원히 있도록 물형론의
봉황국을 만든 땅에 개창한 것이다.
桐裏山에 泰安寺(桐裏山門)는 오동나무와 대나무를 땅의 지명 이
외에 주변에 봉황과 관련하는 이름을 붙여 놓았다. 봉황산의 동쪽에
는 황전면 鳳德里을 이름하였다. 봉황의 큰 덕이다. 동남쪽에 竹內里
이다. 대나무 밭 안쪽이라는 의미이다. 서북쪽에 桐溪里는 오동나무
가 우거진 숲속에서 흘러 내려오는 시냇가를 의미한다. 이것은 땅의
형상을 풍수에서 물형론의 상징으로서 봉황국을 완성한 것이다.
“鳳林寺(鳳林山門)는 경남창원시 봉림동에 위치하고 있으나, 임진
왜란 때 소실되어 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 봉림사는 완만한 구릉지에
위치하고 정병산에서 뻗어온 鳳林山이 주산이고, 朝山은 닭 벼슬모
양을 하고 있는 장풍이 잘 되어 있는 鳳형상의 主山아래에 위치하고
426 仙道文化 제 18 권
있다.”40) 鳳巖寺(羲陽山門)는 881년 지중국사 도헌(824-882)이 심충의
제안을 받아들여 창건하였다. 이곳은 산의 형세가 날아오르는 봉
황 같다고 하여 봉암사라고 이름하였다. 寶林寺(迦智山門)는 전남 장
흥군 유치면 鳳德里에 위치하고, 보림사의 주산은 가지산이고 산골
짜기에 물이 사찰을 감싸 돌고 있으며, 鳳德里는 봉황의 은덕이 있는
산중에 넓고 보배로운 땅이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발상은 삼국시대의 전통적인 한국인의 천신사상에 내재한
토템신앙을 통하여 불상을 보호하고자하는 인식에서 시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삼국시대는 봉황은 천상을 날아다니는 새 토템에서 선종
이 들어오면서 봉황을 땅에서 찾아다는 점이 특징이다. 한국의 봉황
에 대한 전통사상과 풍수를 현실적으로 접목하고 있다.
3. 조선시대의 봉황
조선시대 봉황의 그림은 삼국시대부터 한국인의 천신사상 속에서
내려오던 봉황의 모습이 더 이상 아니었다. ?조선왕조실록⋅세종실록
?에서 세종은 예조와 공조에게 중국으로 가는 보자기에 용과 봉의 문
양을 세심히 살펴서 그릴 것을 명령한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이미
조선 초기에 중국으로부터 용과 봉을 잘못 표현하였기 때문에 중국으
로부터 견책 받은 것을 상기시키었다. 이는 조선시대의 봉황의 그림
이 중국의 명나라의 화풍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조선의 봉황그림이 완전이 중국풍의 봉황 그림으로 변질 되었다.
예조와 공조에 전지하기를, “대저 그림에서 細畫이 있고 없는 것을 사람
40) 성동환, 조성구, 「신라말 구산선문의 사찰입지의 입지선정 연구」, 한국지역
지리지학회, 제6권, 2000, pp.62-74.
한국인의 天神思想속의 鳳凰形象 硏究ㆍ민병삼 427
들이 쉽게 알지 못하여, 중국에 보내는 表箋의 통 및 보자기에 그린 龍鳳이
몸통과 날개 등을 한 畫도 틀림이 없어야 할 것인데, 國初에 중국에게 이미
견책을 받았으나, 그 뒤에 혹은 눈알을 그리지 아니하고 혹은 발톱을 그리
지 아니하여, 拜表하는 날에 이르러서야 그릇됨을 알고 관리들이 탄핵을 입
은 자가 있으니, 금후로는 표전의 통과 보자기에 그린 용의 몸⋅발톱⋅머리⋅
뿔⋅귀⋅눈⋅코⋅입 따위와 그린 鳳의 발⋅발톱⋅털⋅날개⋅입⋅눈 따위
를 다시 자세히 살피고 검열하여 착오가 없게 하라.”41)
조선시대 초기부터 정치경제문화가 명나라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봉황은 용과 함께 명나라로 가는 선물 보
자기의 자수를 놓는 문양으로서도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世宗 즉위년인 1418년 12월22일, 실제 세종이
어린 나이에 즉위하고 경연에 나아가서 “중국에 봉황새가 나타났다”
는 말에 대하여 신료들에게 묻는다.
임금이 경연에 나아가서 묻기를, “지금 듣건대, 봉황새가 중국에서 나왔
다고 하니 사실인가.” 하니, 탁신이 아뢰기를, “위에 舜 임금과 文王 같은
덕이 있어야만 봉황새가 와서 춤추는 것인데, 지금 중국에서는 백성들이 편
안히 잘 살 수 없으니, 비록 봉황새가 있더라도 祥瑞가 될 수 없사오며, 이
제 그 말을 듣잡건대, 사람의 힘으로써 묶어 잡아 날아가지 못하게 하였다
하오니, 어찌 참 봉황새이겠습니까. 하물며 임금은 이른 아침과 깊은 밤에
공경하고 두려워하여 마땅히 民生의 즐거움과 근심을 생각할 것이며, 상서
를 念頭에 두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고 하였다.42)
세종 때 신료들이 봉황의 신화적인 얘기를 거론하면서, 중국의 백
41) ?世宗實錄? 卷85, 世宗 21年(1439) 6月 19日條; ?국역조선왕조실록?, 한국고
전종합 DB 참조(
http://db.itkc.or.kr). 검색일 2015.1.29.
42) ?世宗實錄? 卷2, 世宗 卽位年(1418) 12月22日條, “上御經筵問曰: 今聞, 鳳凰
出於上國, 然乎, 卓愼曰: 上有舜, 文之德, 然後鳳凰來儀. 今上國, 民不聊生, 雖
有鳳凰, 不足爲瑞也. 今聞其語, 以人力縛執之, 使不能飛, 豈眞鳳凰乎 況人主
夙夜敬畏, 當念民生休戚, 不可以祥瑞爲念也.” ?국역조선왕조실록?, 한국고전
번역원, 한국고전종합 DB 원문 참조(
http://db.itkc.or.kr).
428 仙道文化 제 18 권
성들이 편안하지 못한 현실을 전하고 있다. 여기에서 중국의 ‘송명시
대의 봉황 그림’43)을 살펴서 삼국시대의 봉황형상과 비교한다.
[그림 12] 작자미상,
<仙女乘鸞圖>,
南宋, 북경고궁박물원
[그림 13] 張路,
<鳳凰仙女圖>,
明, 상해박물관
송대의 <仙女乘鸞圖>에서 볼 수 있듯이 그림속 새는 하늘의 선녀
나 천인이 타고 다니는 수레와 같은 역할을 한다. 중국에서 천자의
수레를 鸞이라고 한다. 鸞鳥는 스스로 노래하고 鳳鳥는 스스로 춤을
춘다. … 봉조가 나타나면 천하가 화평해진다.44) ?說文解字?에서는
鳳鳥와 鸞鳥을 구분하였다. 鳳鳥는 신령한 새이고, 鸞鳥도 역시 신령
스런 정신이고, 색깔은 오채색을 한 꿩의 형상이고, 울음소리에 오음
을 낸다.45) 난조와 봉조는 모두 오채색을 갖고 있고 오음을 내면 울
지만 鳳鳥 즉 鳳은 부리가 제비와 같이 넓적하다. 그리고 鸞鳥는 꼬
리가 공작새처럼 화려한 모양을 하고 있어 봉황과 다르다. ?山海經?
에서 鸞鳥는 형상이 마치 꽁지가 꿩같고 오채색 문양이 있고 이 새
43) 그림출처: 김현지, 「한국과 중국 봉황도의 도상과 상징연구」, p.21.
44) ?山海經? 「南山經」, 有鸞鳥自歌,鳳鳥自舞。鳳鳥 … 見則天下和。
45) ?說文解字?, 鳳神鳥也. 鸞亦神靈之精也。赤色五采雞形。鳴中五音。
한국인의 天神思想속의 鳳凰形象 硏究ㆍ민병삼 429
가 나타나면 천하가 안녕하다고 한다.46)
송대 <仙女乘鸞圖>의 제목은 선녀가 鸞鳥를 타고 이동하는 그림
이란 의미이다. 그림에서 새의 꼬리는 꿩의 꼬리 모양과 비슷하다.
선녀가 새를 수레같이 타고 하늘을 이동한다. 이러한 것을 통하여 그
림의 제목에서도 있지만 鸞鳥의 형상을 이해 할 수 있다. 란조의 꼬
리는 분명히 물고기 지느러미 모양이 아니고 꿩의 꼬리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한국인의 천신사상 속에서 나타나는 삼국시대의 봉황은 꼬
리가 물고기 지느러미와 같다. 여기에서 꼬리를 특히 주목하는 이유
는 삼국시대로부터 전해오는 천신사상에 내재한 봉황의 꼬리는 물고
기 지느러미 같은 형상을 하고 있어 중국 송명시대에 그려진 봉황을
공작새의 꼬리 행태의 그린 그림과 쉽게 구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를 토템으로 삼은 한국의 삼국시대 봉황은 鳳鳥이다. 고구려 고
분벽화에 주작은 봉조이다. 天人이 타고 다니는 새는 鸞鳥이다. 모두
吉鳥이고, ?산해경?과 ?설문해자?에서 태평성대를 의미한다. 중국은
용이 토템이다. 이에 중요성을 무시하고 수레 같은 鳥로 표현했다.
그런데, 명대<花鳥>, <五倫圖>, <鳳凰圖>, <五倫圖>의 그림에서
새들의 꼬리는 더욱 화려한 공작새의 꼬리 모양이다. 머리도 닭 벼슬
모양이 아니고 공작새의 모양이다. 鸞鳥도 아니다. 새의 날개는 또한
모두 접고 있는 靜形이다. 새가 날아갈 것을 우려하는 듯하다. 중국
명대 그림에서 보이는 봉이라고 하는 새의 형상이다. 이것은 봉황의
참 모습이 아니고, 봉황의 의미도 전혀 부여되지 않는 공작새 그림이
다. 중국의 봉 그림은 한국인의 천신사상과 천손사상에 내재한 봉이
아니고 무늬만 아름답게 그려진 한 마리 공작새를 닮을 아름다운 날
짐승에 지나지 않는다.
46) ?山海經? 「西山經」, 其狀如翟, 而五采文, 名曰鸞鳥, 見則天下安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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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4] 작자미상, <花鳥>,
明, 상해박물관
[그림 15] 작자미상,<五倫圖>,
明, Honolulu Academy of Arts
[그림 16] 작자미상,<鳳凰圖>,
明, 日本 Suntory 美術館
[그림 17] 작자미상, <鳳凰圖>, 明,
日本 Suntory 美術館
한국인의 天神思想속의 鳳凰形象 硏究ㆍ민병삼 431
[그림 18] 경복궁, 광화문의
천장의 봉황
[그림 19] 창덕궁, 선정전
천장의 봉황
조선시대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천장47)의 봉황과 임금이 정사를
베풀던 창덕궁의 선정전의 천장에 그려진 봉황은 머리 모양도 이상
하고, 중국 명대의 봉황 그림처럼 공작새의 꼬리와 날개를 접은 형상
을 하고 있다.
[그림 20] 청와대
봉황문양
[그림 21] 청와대 광장
[그림 22] 청와대 정문
47) 조선시대 궁궐 정전의 경복궁의 천장에는 용을 그리지 못하고 봉황을 그렸
었다. 조선시대 말기고종이 대한제국(大韓帝國)을 1897년10월 12일 선포하고
황제가 된 이후 경복궁 근정전의 천장과 용상(龍床)의 뒤에 봉황 그림이 황
제의 상징인 용 그림으로 바뀌었다.
432 仙道文化 제 18 권
대한민국 대통령을 상징하는 청와대의 봉황무늬도 조선시대의 중국
풍의 봉황 그림을 따른 것이지 고대 전통적인 동이족의 봉황이 아니다.
이것은 한국인 천신사상 속에 담겨있는 봉황의 참 모습이 아니다.
단지 중국의 송명시대에 화공들은 아름답고 화려한 꼬리가 공작을
닮은 새를 그려 넣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인이 그린 봉황은 ?설
문해자?이나 ?산해경? 등 고전 속에서 고증하고 있는 鳳鳥의 모양이
아니다. 이것은 봉황이 한국인의 전통사상속의 수호신이지 중국인의
토템은 아니기 때문에 의도적 卑下이다. 조선시대 사용한 봉황은 한
국인의 천신사상 속에 내재한 상서로운 봉황과 형상이 일치하지 않
다. 단지, 중국 畵工이 그린 붓끝에서 천자의 수레를 끄는 보기 좋은
공작새 꼬리를 한 새일 뿐이다.48)
이러한 새문양은 조선시대 궁중의 의례용 복식, 궁중의 의례용 장
식병풍 도안이나, 왕실이나 귀족들은 봉황의 형상을 비녀, 분통 등에
이르는 장신구의 문양으로서 이용되었다. 이는 잘못된 봉황을 가지
고 성군이 출현했을 때만 출현한다는 瑞鳥로서 의미로 착각하고 있
었다. 조선시대 궁중에서 사용한 봉황의 형상은 태평성대에 나타나
서 오동나무위에 울어내는 鳳鳥가 아니고 공작새 꼬리를 하고 있는
화려한 잡새가 대신하고 말았다.
조선시대에는 이러한 중국풍의 봉황 형상을 명나라의 영향권 아래
에서 그대로 사용하면서도, 임금이 정치를 잘해서 태평하다는 덕치
를 증명하는 용도로서 활용하게 되었다.
“봉은 신령스런 새이다. 天老가 이르기를, …. 동방의 군주나라에서 출발
해서 날개를 활짝펴고 하늘을 빙빙 돌며 온 천하에 날고 곤륜산을 거쳐 황
하 가운데의 지주산을 마시고, 약수에서 깃털을 씻는다. 풍혈이 아니면 잠
자지 아니하며, 봉황이 나타나면 천하가 태평해져 편안하다.”49)
48) 이러한 모습의 봉황의 형상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상징하는 청와대의 봉황
문양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한국인의 天神思想속의 鳳凰形象 硏究ㆍ민병삼 433
[그림 23] 朝陽鳳凰圖
朝陽鳳凰圖에는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과 오동나무, 그리고 한 쌍
의 봉황이 그려져 있다. 봉황은 아침에 이슬
을 떨치며 뭇새를 이끌고 하늘산인 곤륜을
지나 태양의 구멍인 丹穴에서 잔다. 그래서
봉황을 태양새라고도 부른다. 조양봉황도의
朝陽은 ‘鳳鳴朝陽’의 줄임말이다. ?詩經?의
“鳳凰鳴矣, 于彼高岡, 梧桐生矣, 于彼朝陽”50)
에서 나왔다. 성군이 나타나서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노래이다. 즉 “저 높은 언덕에서
봉황이 울어대고, 저 아침 해가 뜨는 곳에
오동나무가 자라는 구나”이다. 봉황이 울어
대니 태평성대가 도래함을 알리는 것이고,
봉황이 오동나무에 깃드니 동쪽에 아침 해
가 뜨는 곳에 오동나무를 심어서 봉황이 날
아가지 않고 머물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봉
황의 머리는 양기로 가득 찬 닭의 벼슬모양
을 하고 있다. 같은 종류의 것은 서로 감응
한다. 봉황이 아침에 태양이 떠오를 때 감응
하여 함께 운다. 그래서 봉황을 그릴 때에는
아침의 朝陽과 함께한다. 여기서 태양은 나
라의 임금을 상징한다. 봉황이 조양과 함께 그려지는 것과 함께 ‘鳳
鳴朝陽’은 성군이 나타나서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노래이다. ‘白鳥朝
鳳’은 태평성대가 도래하니 만조백관들이 임금을 만나러 朝廷에 등
정한다는 임금을 칭송하는 사자성어이다.
봉황도에서 항상 봉황은 암수가 쌍으로 다닌다.51) 그래서 鳳이 있
49) ?說文解字?: 鳳神鳥也。天老曰鳳之像也, … 出於東方君子之國, 翱翔四海之
外,過崑崙,飮砥柱,濯羽弱水, 莫宿風穴, 見則天下大安寧。
50) ?詩經?大雅 卷阿, 鳳凰鳴矣 于彼高岡 梧桐生矣 于彼朝陽.
434 仙道文化 제 18 권
으면 凰이 있다. 또한 봉황이 깃드는 오동나무, 동쪽에서 태양이 떠
오르는 朝陽의 화제가 함께 그려지는 장면이 있다. 봉황의 그림에는
반드시 이러한 조연들이 따라다닌다.
조양봉황도는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 오동나무아래 한 쌍의 암수
가 함께 그려있는 소재이다. 그림에서 봉황의 머리는 닭의 모습이고
붉은 색, 봉황의 가슴은 푸른색이나 평범한 갈색으로 처리하였다. 목
은 뱀처럼 길게 그려지고, 봉황의 등은 전체적으로 거북이의 등 같
다. 날개는 두루미처럼 흰색이지만 몇 가지 색을 조합하였다. 이것은
한국인의 천신사상에 담겨있는 삼국시대의 봉황의 형상이 아니다.
고려시대부터 변화된 공작의 꼬리를 한 중국풍의 鳳 그림처럼 고구
려 고분 벽화에서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림 24] 日月桐下群鳳圖
日月桐下群鳳圖는 해와 달이 오동나무를 중심으로 東西로 그려져
있고, 2 쌍의 봉황 4마리를 한 폭에 담았다. 봉황은 태양이 뜨는 동쪽
에서 나타나서 소리를 낸다. 봉황의 머리는 닭을 닮았고, 꼬리는 물
51) 鳳凰이 두 마리가 그려지면 雙鳳圖, 봉황이 아홉 마리의 새끼를 거느리고
있으면 九雛圖라 부른다.
한국인의 天神思想속의 鳳凰形象 硏究ㆍ민병삼 435
고기와 비슷하다. 이것은 봉황의 전형적인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반
면에 달이 걸려 있는 쪽은 봉황의 머리는 닭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꼬리는 공작새의 꼬리 형태이다. 이 그림에서 표현된 봉황의 목은 짧
고, 봉황의 부리는 제비의 부리처럼 넓쩍하지 못하다. 마치 닭의 모
습을 그린 것 듯하며, 봉황도에서 달이 그림의 소재로 나오는 것은
봉황과 함께 어울리지 않는다.
조선시대 이후의 봉황도는 미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할 뿐이다. 봉
황은 본래의 한국인의 천신사상 속에 내재된 태평성대를 상징한 참
된 봉황형상을 아니고 공작새 꼬리에 날개 접은 정적인 잡새의 형상
을 그려 넣어버렸다. 더 이상 하늘과 교감할 수 없고, 태평성대를 기
대할 수 없게 되었다.
Ⅴ. 결 론
본 연구는 한국인의 천신사상 속에 내재한 봉황의 형상과 의미를
고증하고, 삼국시대에서부터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쳐 현재 대한민국
에서 사용하고 있는 봉황형상의 변천과정을 연구하였다.
봉황은 기린, 봉황, 거북, 용의 신령스런 동물중의 하나이다. 봉황
은 날개 달린 百鳥의 왕이다. 봉황도에서 봉황은 오채색을 모두 갖추
고 있으며, 오덕을 모두 갖추고 있다. 봉황이 높은 언덕에서 출현하
면 정치를 잘하는 어진 임금이 나타나서 태평성대의 시대가 온다는
상징이다.
봉황은 육척의 높이의 크기이며, 닭의 머리, 목은 뱀, 제비의 턱,
거북이 등, 물고기 꼬리 모양의 형태이다. 자연에 현존하는 대표적인
오채색을 띠고 있다. 봉황의 가슴은 仁을 상징하는 木의 덕이며, 공
작새의 푸른색과 같다. 머리는 火의 德이고, 닭 벼슬처럼 붉은색이
436 仙道文化 제 18 권
배속된다. 봉황의 등 무늬는 禮을 상징하고, 土는 황금색이다. 날개는
義이고, 金은 두루미⋅학의 흰색을 의미한다. 봉황의 배는 信이고, 水
는 까마귀의 검정색을 배속한다.
삼국시대의 봉황은 한국인의 천신사상 속에 내재한 신령스러운 瑞
鳥의 수호신이었다. 이러한 봉황의 모습은 통치자의 무덤이나 향로
에서 주로 발견되었다. 고려시대에는 불교의 영향으로 부처가 수호
신의 역할을 대신하였다. 봉황은 부처를 보호하기 위한 땅의 지명이
나 주변문화의 소재로 변화하였다. 중국송명대의 봉황은 공작새 꼬
리를 가진 화려한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중국의 봉황은 날개를 접고
있는 靜形이지만, 한국인의 전통 봉황은 날개를 활짝 펼치고 있는 活
形이다. 조선시대의 봉황은 中國의 봉황처럼 공작새의 꼬리를 그려
화려하지만 본래 한국인의 천신상상에 내재한 전통적인 봉황의 모습
을 잃어버렸다. 대한민국 청와대를 상징하는 봉황도 화려한 民畵같
은 중국풍의 鳳이 되고 말았다. 더 이상 한국인의 봉황에 내재한 태
평성대와 하늘과 교감하는 상서로운 의미가 없게 되고 말았다.
한국인의 天神思想속의 鳳凰形象 硏究ㆍ민병삼 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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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e Study of Aesthetic Symbol of Phoenix
Min, Byeong Sam
(University of Brain Education)
This study is the historical research the changes of Phoenix shape and
meaning to the idea inherent in the Korean worship of sky God.(天神思
想). Phoenix investigated the changes of shape in the consideration from
Three Kingdoms Period to the Joseon Dynasty through Goryeo Dynasty.
Phoenix painted on the Three Kingdoms period was found in the
tomb of the ruler of Incense ‘neolbang’(널방) or spiritual sense as
meaning auspicious for the new spirit of the Korean people in Korean
worship of sky God. But, Consider the impact of age, the patron saint
instead of a Buddha and Buddhism phoenix began to be reduced to a
material living accessories in Buddhist culture.
Joseon Dynasty era was transformed into a colorful folk style as the tail
of the tail fin of a fish-shaped peacock phoenix picture of the Influence
of China Ming. Phoenix is a symbol of the presidential office of the
Republic of Korea which is fellowing by the shape of the Joseon Dynasty
Chinese style. Therefore, the genus Phoenix shape of Korean traditional
splendor is gone and fell, and the style of folk-inspired Chinese phoenix.
Key Words : Oriental phoenix, Korean Sundo(仙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