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 차 •
Ⅰ. 들어가는 말
Ⅱ. 정토 염불과 실상염불선
1. 염불수행과 왕생정토
2. 무주청화의 정토염불과 왕생
3. 무주청화의 실상염불선 체득
Ⅲ. 나가는 말
한글요약
본 논문에서는 염불과 실상염불선에 대해서 고찰하였다. 염불의 목적
은 왕생이고 왕생은 삶의 현장에서 수행자가 본래 진여불성을 발현하는
것이다. 그 방법에는 칭명(稱名)과 관상(觀像), 관상(觀想), 실상(實相) 등
의 염불이 규봉종밀로부터 유래하였음을 고찰하여 두 선지식이 주창한
실상염불선의 체득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먼저 금타와 청화는 염불수행의 목적인 왕생정토에 대해서 법계가 나
와 불가분리(不可分離)한 연기적 관계 속에 동체라는 자각을 통해 염불
수행을 통해서 왕생이 가능하다고 역설함을 고찰하였다. 정토신행은 믿
음과 발원, 그리고 염불이다. 다음은 사종염불(四種念佛)에서 지향한 왕
생은 방편과 실상으로 분류하고, 그 본질은 같은 것임을 고찰하였다. 끝
으로 청화가 주창한 실상염불선의 실천과 체득은 바로 우리의 삶에 적용
시켜 살아가는 것이다. 수행자는 「보리방편문」을 베껴 쓰고 외워서 그
내용을 일상생활에 적용시켜 살아가는 것임을 고찰하였다.
주제어
정토, 염불, 실상염불선, 금타, 청화, 칭명, 관상(觀像), 관상(觀想), 실
상, 보리방편문.
정토 염불과 실상염불선 / 정광균(법상) 241
Ⅰ. 들어가는 말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개체의 의식과 인식체계가 결합하여 삶
의 환경을 선택적으로 조성하고 스스로 책임을 감당한다. 이러한 인
간에게 가장 이상적인 상태의 환경을 불교문화에서는 수행결과로써
정토구현을 체계화시켜 만인으로 하여금 공유하도록 권유하는 경전
을 집성하였고, 그 결과로 청정한 문화현상을 드러내려고 역사시켜왔
다. 나아가 인간 삶의 방식인 수행의 궁극적 목적에서도 이에 준하여
드러내려고 노력하면서 오랜 인류의 성상(星霜)을 아로새겨왔다. 이
에 대해서 모든 사람들의 공유화가 진행되었고 실제로 적용하려는
노력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것은 결국에 최상의 깨달음을 실현한
화평한 안락과 행복의 실현인 것이다. 이것이 정토교학에서 추구하는
최상의 목적이고 실현하려는 인간 의식의 발현인 것이다.
이처럼 불교의 모든 교학에서 추구하는 최상의 목적은 완전한 깨
달음을 체득하여 무아인 자기의 무자성한 불성을 개현하여 완벽한
행복을 누림과 동시에 본래 없는 자타의 행복도 도모하는 것이다. 모
든 존재의 본질에서 보면 본래 둘이 아닌 인연생기(因緣生起)의 관계
로 대자대비의 실현은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이것이 아마도 붓다의
최고최상의 의도이고, 불자가 추구할 지상목적이며 지상명령인 것이
다. 불교의 수행자가 그런 목적을 도외시하고 무아인 개인의 이기적
만족만을 추구한다면 붓다의 본래 목적과는 동떨어진 삶의 패러다임
에 매몰되고 말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혁신불교가 대승불교라는 획
기적인 발달불교의 이념을 성립시키고 나아가 끊임없이 무상(無常)을
동반한 무아(無我)의 비실체성을 체득하여 실현하려고 추구하여 왔다.
이것이 현실의 일체개고(一切皆苦)를 극복하는 단초를 제공함과 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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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변화의 유동성을 늘 언제나 인정하면서 본래적인 붓다의 의도에
부합한 반성을 촉구한다. 2천6백여 년이란 오랜 인류의 역사 속에서
불교는 이처럼 반성과 채찍을 놓지 않았고 개혁불사가 역사를 장식
하였다. 그런 측면에서 근대와 현대의 한국불교도 예외는 아니다. 근
대와 현대의 불교역사는 지금도 그 파란을 잠재우지 못하고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과정이다.
부파승단은 현실에 안주해서 정통과 전통을 고수하려는 부파교단
과 불교 본래의 본질에서 반성을 동반한 개혁의 기치를 내세운 대승
불교는 어쩌면 양립할 수 없는 주의주장으로 매몰될 우려를 증폭시
킬 수 있는 소지도 배태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보다 명확한 붓다의
본래 의도와 목적 그리고 본질에 대해서 반조해 보고 성찰하여 확고
한 정통과 전통을 확립해야할 것이다. 삼국에 전해진 고대 한국불교
는 단순한 이식이 아니라 불교의 본질을 탐구하고 발전시켰으며, 고
려의 중세 한국불교는 세 차례의 반성을 통해서 수행의지를 다졌으
며, 나아가 근세의 조선에서도 한국불교는 끊임없는 반성과 함께 새
로운 대안을 적시하였다. 뿐만 아니라 근대와 현대에서도 한국불교의
올바른 정체성이 무엇이고 글로벌 시대에 만민을 대상으로 삼아 공
존하는 불교, 또는 정체된 불교가 아니라 변화에 호응하고 상응하는
희망의 미래를 열어가는 불교, 그러면서 사부대중이 공동체로 살아가
는 회통불교를 지향하는 성찰의 선각자들이 있었다. 그분들 중에 근
대와 현대를 살다가 입멸하신 금타와 청화도 선각자로서 그 역할을
빛내신 분들이다.
따라서 금번 청화사상연구회에서 금타와 청화의 사상과 수행체계
를 고찰함에 대주제로 삼은 “실상염불선,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논
제 하에서 본 발표자는 “정토 염불과 실상염불선”이라는 소주제를 부
여받아 발표에 참여하기로 하였다. 여기서 본 발표문은 ‘염불수행의
목적인 왕생정토’에 대해서 두 선각자가 제시한 넓은 의미의 정토개
정토 염불과 실상염불선 / 정광균(법상) 243
념을 개관해 보고, 왕생의 의미를 간략히 살펴서 청화선사의 염불과
실상염불선을 관련시켜 고찰하면서 일반적으로 말해지는 ‘염불과 실
상염불’에 대한 검토를 통해서 차이점을 고찰해 보려고 한다. 이를 고
찰함에 청화선사의 ?정토삼부경?과 ?금강심론?1)과 ?실상염불선?2)에
드러난 내용을 중심으로 각각의 연구된 논문3)과 대장경을 검토하여
입증하면서 만인을 위한 만인의 염불수행법에 대한 정통성과 정체성
을 드러내보고자 한다.
1) ?金剛心論?의 구성은 청화선사의 머리말을 비롯하여 총 4편 23장으로 구
성되었다. 4편 가운데 본 논문과 관련된 부분은 제1편의 「보리방편문」을
금타의 핵심사상을 명시한 것이다. 제3편에서는 제1장의 一行과 一相을
밝히고, 제6장의 三身과 四土를 기술한 내용을 참고한다.
2) ?實相念佛禪?의 구성은 총 11장으로 구성되었다. 제1장에서는 청화선사와
금타대화상의 佛陀觀과 淨土觀을 기술하였다. 다음 제2장에서는 ?반야심
경?의 간경수행을 통한 문자반야와 실상반야와 관조반야의 체득을 바탕
으로 5대연기법을 조명하였고, 無我의 요인과 인생의 실상을 피력하였다.
제3장에서 참선의 개념과 종류, 방법을 먼저 조명하고, 제4장에서는 염불
의 의미 등 종류, 異名, 염불삼매 등을 서술하였다. 제5장에서는 달마대사
의 二入四行을 필두로 도신의 염불, 혜능의 사상인 ?육조단경?을 요약하
였다. 제6장에서는 심성과 법계를 피력하여 심성론을 설명하였으며, 제7
장에서는 중국불교의 교상판석과 돈오돈수와 돈오점수를 적시하였다. 제8
장에서는 수도의 위차를 유식과 九次第定, 천태의 六卽까지의 수행계위를
검토하고, 제9장에서는 ?금강심론?의 해설과 제10장에서는 현상과 본체의
관계를 구명하고, 제11장에서는 계율론의 본질을 밝혔다.
3) 박선자, 「禪수련과 人間실존의 문제-實相念佛禪수련법을 바탕으로」, ?大
同哲學? 제44집, 대동철학회, 2008.9.; 정광균, 「念佛에 내재한 禪的要因에
대한 一考」, ?정토학연구? 11, 2008.; 대주, 「念佛禪修行에 대한 재조명」,
보조사상 제88차 학술대회, 2009.; 안준영, 「念佛禪에서의 깨달음의 문제」, ?정토학연구? 12, 2009); 정광균, 「禪과 淨土」, ?한국선학? 22, 2009.; 조준
호, 「달마어록에 나타난 염불선」, ?정토학연구? 18, 2012.; 조준호, 「초기
부파불교에 나타난 염불과 선」, ?청화사상? 2014.; 정광균, 「염불선과 염
불」, ?청화사상?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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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정토 염불과 실상염불선
1. 염불수행과 정토왕생
인간의 삶의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만약 67억의 인구가 있다
면 삶의 방식도 67억의 방식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수많은 인류가
동일한 삶의 방식을 채택한다면 그 결과도 같아질 개연성이 짙어진
다. 우리 인간은 다행스럽게도 지금 이 세상에 태어나 사람의 몸을
받았고, 문명의 중심에 거주하면서 만나기 어렵다는 불법도 만났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 강렬한 생명에너지가 존재한다는 것도 이해한
다. 더구나 이 생명에너지는 본래 부처와 내가 둘이 아니란 진실과
대면하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수행이란 패러다임에 나아갈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셈이다. 나아가 불교의 최상최고의 스승인 붓다
께서 제시한 삶의 방식을 따라 가다보면 최상의 완전한 깨달음의 목
적에 도달하여 해탈열반의 평화로운 행복을 향유할 수 있다는 기대
가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손쉽고 보편적으로 활용할 방식이 염불법
문4)이다.
이처럼 정토법문은 왕생극락이 주요 핵심이다. 염불법문이야말로
바로 광명의 지혜인 마음의 시력을 회복하는 최고최상의 첩경이다.
모든 존재의 참다운 모습[諸法實相]을 보려거든 마땅히 이 법문에 의
지해서 수행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고 금타와 청화는 강조한다. 왜냐
하면 일체중생이 본래부처인 진여불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
서 석가세존께서는 염불을 수행하여 서방 극락세계에 왕생할 것을
무문자설(無問自說)하였다.5) 이것은 아미타불의 본원력에 의지하여
4) 청화 역주, ?淨土三部經?, 서울: 광륜출판사, 2007, pp.12-13 참조.
5) 청화 역주, ?淨土三部經?, 서울: 광륜출판사, 2007, p.37, “정토법문은 석가
모니불께서 아미타불과 극락정토에 대한 교의를 세우시고, 문수보살과 보
정토 염불과 실상염불선 / 정광균(법상) 245
불생불멸(不生不滅)한 즐거움을 향유하라는 것이다. 극락에서는 남이
없는 남으로 중생의 몸 그대로 연꽃 봉오리 안에 자연스레 태어나서
[蓮花化生] 생로병사의 고통을 벗어나고, 아미타불의 본성에 걸맞은
공덕으로 이루어져 성주괴공의 변화도 초월한다. 그래서 우리 중생은
다만 부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가르침대로 받들어 수행하기만
하면 저절로 진실한 최상의 이익을 얻게 된다고 청화선사는 강조한
다.
그런데 여래께서 스스로 이 정토법문을 일체 세간의 중생들이 믿
기 어렵다고 말씀하신 까닭은 무엇인가? 신원행(信願行)이야말로 신
행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성공률이 매우 높으며 별로 힘들이지 않고
도 효과가 매우 빠르다. 이 때문에 수행자들이 함부로 여길 수 있다
는 염려에서 적은 선행으로 왕생하기 어렵다는 경계심을 ?아미타경?
에서 드러낸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믿음과 발원과 염불의 방편만으로
왕생이 가능하다는 이행도(易行道)인 것이다. 이 신원행의 법문에는
근기의 상하 구분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학식의 유무의 경계가 없고,
계급과 빈부의 차이도 없다. 그저 단지 존재의 본질에서 나와 너, 우
리가 진여불성의 본래 부처였다는 실상을 확실하게 믿고 간절하게
발원하여 일심불란(一心不亂)하게 염불수행을 실천하기만 하면 의식
의 전환을 이루어 정토에 왕생하거나 성불하게 된다. 여기서 왕생의
의미는 살아서는 전미개오(轉迷開悟)하여 정토를 구현하고, 죽어서는
정토에 실제로 가는 것이다. 이처럼 모든 인간의 행위가 어떤 목적을
지향하듯 불교의 염불수행도 정토(淨土)에 왕생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수행한다.
현보살,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중생들로 하여금 수행하도록 지도하
였으며, 인도에서는 마명과 용수, 세친 논사, 중국에서는 여산 혜원과 담
란, 도작과 가재, 선도와 회감 등, 그리고 신라에서는 원효와 법위, 현일
과 의적, 경흥, 나옹, 휴정, 금타, 청화 등 역대 조사들이 정토법문에 대한
중요성을 극력하게 역설하여 왕생정토를 실천하도록 권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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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믿음에 대해서 ?화엄경?에서는 "믿음은 도(道)의 으뜸이요,
공덕의 어머니가 됨이라, 일체 모든 선법을 증장하여 일체 모든 의혹
을 제거하여 소멸하여 위없는 도를 개발함을 드러낸다."6)고 하였다.
곧 믿음은 도의 으뜸이면서 모든 공덕을 갖추고 있는 것이 본래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이다. 따라서 마음으로 믿는 그 속에 일체 제
불보살과 역대 조사와 삼라만상의 온갖 조화가 다 깃들어 있다. 일심
정토 염불신행은 자기 자신의 진여불성을 믿음으로써 행해지는 실천
이다. 나아가 간절한 신행이 바탕이 될 때, 우리는 유정 무정의 경계
를 벗어나 서로 소통할 수 있다. 그것은 현대 사회가 바라는 사소한
쟁점을 합의하는 수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이상적인 평등
과 평화로 실현된다.
다음에 발원은 현생의 삶 속에서 매일 쌓는 크고 작은 선업의 공
덕, 아미타부처님께 예배하고 염불한 공덕, 남에게 베풀고 이롭게 한
공덕, 이 모든 공덕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회향하여 정토에 왕생하려
고 발원한다. 그 원력의 힘으로 한 찰나에 해탈하거나 극락에 남이
없는 남이 되는 것이다. 이는 나와 남의 경계가 사라진 상태에서 함
께 극락에 왕생하면 아눗따라삼먁삼보디(anuttara samyaksaṃ bodhi)
에서 불퇴전을 얻고 아미타불을 친견하며 무생법인을 증득하여 구경
에 일생보처에 이르러 성불하는 첩경이다.
그리고 신원행(信願行)에서 행은 삼배왕생행과 삼복왕생을 포괄하
고 특히 염불수행을 의미한다. 염불수행은 사종염불(四種念佛)로 갈
무리되고 그 중에 일반적으로 칭명염불을 수행하는 것이고, 관상(觀
像)과 관상(觀想) 그리고 실상(實相) 등의 염불을 칭명과 겸수하는 것
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절에서 자세하게 논할 것이다.
그 다음에 정토의 개념7)에 대해서다. 극락정토는 과연 있는 것인
6) 佛馱跋陀羅譯, ?大方廣佛華嚴經? 卷六(大正藏9, 433,상), “信爲道元功徳母
増長一切諸善法除滅一切諸疑惑示現開發無上道”
7) 淨土의 개념은 매우 복잡하다. 동사와 형용사로 나누어 해석하면 ‘국토를
정토 염불과 실상염불선 / 정광균(법상) 247
가? 제불정토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이에 대해서 청화선사는 자
기 마음속이기도 하고 타방정토이기도 하며, 우리가 구경에 돌아갈
마음의 고향이라고 갈파하였다.8) 이것이 바로 금생에 당장 왕생하여
곧바로 해탈열반을 체득한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서 신행의 주체로서
애벌레가 허물을 벗고 나비로 거듭나듯 자기의 본질을 체득하는 일
이다. 이러한 정토의 체득은 견도(見道)나 견성(見性)이나 견불(見佛)
이라는 넓은 왕생의 개념과 차원에서 정토종의 정토염불과 금타와
청화의 염불, 특히 실상염불선과의 관계에 깊은 연관을 맺는다. 즉 정
토종의 정토염불은 실제의 왕생극락을 추구하지만 금타와 청화의 실
상염불선인 염불선은 염불자가 바로 본래 붓다임을 체득하는 것이라
고 강조한다.
하여튼 이처럼 정토(淨土)에 왕생하려는 목적은 매우 단순해 보이
지만 정토에 대해서 자세히 말하자면 아주 복잡하고 미묘하다. 이에
대해 대별하면 넓은 의미의 정토와 좁은 의미의 정토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정토를 정(淨)과 토(土)로 분류하여 논하면 청정과 국토이다.
청정에도 좁은 의미의 극락정토와 넓은 의미의 법신과 보신, 화신 등
삼불의 정토가 있고, 또 유심과 실유, 화현의 정토로 분류한다. 그런
데 금타는 삼신(三身)과 사토(四土)를 설명하면서 천태의 사토설을
도입하면서 단순하게 화엄의 일진법계(一眞法界)라는 개념을 도입하
여 모든 불신과 불토설을 총합하여 설명한다. 9)
청정하게 하다’와 ‘청정한 국토’로 해석된다. 후자인 청정한 국토는 無相
과 有相의 정토, 唯心과 實有의 정토에서 有相의 實有하는 정토는 아미타
불의 극락정토와 아촉불의 묘희국도로부터, 유리광세계 또는 시방정토와
연화장세계, 도솔정토, 범신론적 정토 등을 말하고, 無相과 唯心의 정토는
유심정토와 밀엄정토 등 다양하게 설해진다. 또 유정의 계위에 따라서 부
처님만이 거주하는 정토, 8지 이상의 보살이 머무는 정토를 말한다. 정토
에 대해 엄격하게 말하면 7지 이하의 보살이 머무는 곳은 정토가 아니라
는 것이다. 하지만 唯心의 입장에서 보면 법계를 총괄하는 정토와 예토가
동일시된다. 말하자면 마음이 청정하면 국토가 청정하다는 것이다.
8) 청화 역주, ?淨土三部經?, 서울: 광륜출판사, 2007, pp.42-4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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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가 말하는 정토의 개념은 대승불교의 법계관을 관통시켜 보다
선명하게 이해시킨다. 법계(Dharma-dhātu)란 진리의 세계인 일체의
모든 존재를 의미하기도 하고, 현상 세계의 본질이며 근본인 진여불
성(眞如佛性)이 구현된 진리의 세계라는 것이다. 구체적인 사물로 살
펴보면 법(法)은 모든 존재와 진리를 뜻하고, 계(界)는 존재가 거쳐하
는 공간을 구분하는 경계를 뜻한다. 모든 존재는 각자 자기 바탕을
지니고 있으면서 서로 구분되는 경계가 있어서 독립된 법계를 이루
어 삼라만상의 총체도 역시 법계라는 것이다.
그리고 추상적인 이치에서 청화선사는 실상관(實相觀)의 관점에
서10) 진여(眞如)의 이성(理性)이 법계라고 언급하면서 자성청정심과
진여(眞如), 법성(法性), 중도실상(中道實相), 불성(佛性), 여래장(如來
藏), 열반, 불(佛), 실제(實際), 진공묘유(眞空妙有), 제일의제(第一義
諦), 본래면목, 주인공 등이라고11) 표현하기도 하였다. 달리 말하자면
법계란 일체 중생의 몸과 마음의 본바탕을 의미하는 해석이다. 이것
이 일심정토이고 아미타불 자체가 우주로 확장된 것이다. 그런데 이
것을 대승불교와 더불어 천태와 화엄에서는 네 가지 범주로 구분하
였다. 말하자면 천태는 일념삼천세계의 네 가지 범주인 범성동거토와
방편유여토, 실보장엄토, 상적광토이다. 화엄에서는 중중무진법계인
사법계(四法界)가 바로 그것이다. 이런 네 가지 범주에 극락정토가
포함되고 정토는 법신의 법성토와 보신의 실보토, 화신의 변화토를
포괄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우주는 하나의 생명의 실상이라
9) 釋金陀著ㆍ淸華編, ?金剛心論?, 서울: 광륜출판사, 2009, pp.204-261 참
조.
10) 청화 역주, ?淨土三部經?, 서울: 광륜출판사, 2007, pp.177-179에서 참
조하면 여러 종문과 경론을 인용하여 나와 천지우주가 본래 텅 빈 제법
실상이라는 관점에서 입증하고 있다.
11) 청화대종사 저, ?실상염불선?, 서울: 광륜출판사, 2012, pp.184-288에서
본래 깨달은 분상에서는 一眞法界이지만 중생의 입장에서 천태의 十法
界(四聖六道)라고 설명한다.
정토 염불과 실상염불선 / 정광균(법상) 249
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법계는 근본적으로 모든 존재가 소통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핵심은 바로 법계가 근본적으로 중중무진하게 서로 연기
하면서 소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우주 법계가 공(空)의
원리인 연기로서 소통하고 있기 때문에 무한한 능력도 발휘할 수 있
다는 관점이다. 만약 우주 법계가 개별마다 윤곽이 뚜렷하게 막혀있
는 존재들이라면 아무리 높은 경지의 수행과 신행을 하더라도 원융
하게 공명하는 현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형이상학적으로 보아
그 어떤 고행으로도 차원 높은 득도를 체득할 방편도 없을 것이다.
현실적으로도 그 어떤 치유로도 가벼운 병증하나도 고칠 수 없을 것
이다. 하지만 공의 연기이기에 병도 낳을 수 있고 중생이 부처로 환
원할 수 있는 계기가 주어진다. 왜냐하면 모든 존재는 공(空)하기 때
문에 인연생기(因緣生起)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청화선사는 5가지 연기를 현상적 인과에서 본질적인 연기법
을 자세하게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12)
그런데 청화선사는 여기서 우주가 ‘공(空)’하다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무(無)’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공’은 고정불변의 존재가 아니라
는 개념이다. 이 무한한 우주는 인연생기하기 때문에 존재 자체의 실
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상호 의존한 텅 빔의 꽉 참, 꽉 참의 텅
빔으로 서로 의존하고 서로 관계하면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만약 ‘우
주에는 아무 것도 없다’라는 생각이 팽배해 있다면 그것은 허무주의
거나 염세주의적 발상이지 결코 부처님의 가르침은 아니다.
제법무아(諸法無我)란 상일주재(常一主宰)하는 고정불변의 자아가
없다는 의미이지 나 자체가 아애 없다는 말이 아니다. 반대로 제법무
아이기 때문에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한 말이다. 여기서 상일성(常一
性)이란 변하지 않는 성질을 말하고, 주재성(主宰性)이란 자기 마음대
12) 청화 역주, ?淨土三部經?, 서울: 광륜출판사, 2007, pp.66-9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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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스스로의 존재를 좌우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것은 주지하
듯이 누구나 알 수 있는 내용으로 영원히 변치 않으면서 내 마음대
로 할 수 있는 어떤 것은 그저 상상의 산물일 뿐 실제로 존재하지 않
는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무상함은 상일성이 없기 때문이고, 괴로움
은 주재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화는 삼법인(三法印)에 입각하여 무아의 실현을 제시한다.
이것이 영고불변의 진리로 수행자가 체득할 내용이고, 실현할 방아착
(放我着)의 실제다. 무상하기 때문에 일체가 괴로움이고, 괴로움인 것
은 ‘나와 내 것’이라는 집착을 내려놓으라는 것이다. ‘색은 무상하고,
무상하기 때문에 괴로움’이라는 것이다. 영원할 것 같은 즐거움도 결
국은 끝이 있다. 이 끝에서 중생들은 괴로움을 맛보며 좌절한다. 그러
나 괴로움이란 내가 아니며 내 것도 아니다. 이 ‘고(dukkha)’란 괴로
움을 뜻하는 인간의 욕망이 만족되지 못한 상태를 의미한다. 우리가
흔히 이해하는 고(苦)란 원래 석가세존이 의도했던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므로 인간의 여덟 가지 고통[八苦]이란 것은 우리와 우주가
오온(五蘊)의 결합물이라는 것을 인정할 때 저절로 해결되는 문제이
고, 불교에서 수행하는 또 하나의 목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진공묘유(眞空妙有)란 정예(淨穢)의 상대적 존재를 떠난 청
정한 열반의 세계와 동일한 개념이다. 나와 우주는 분명히 연결된 하
나의 불이(不二)한 연기의 세계라는 것이다. 따라서 정토는 중생의
입장에서는 없어 보이지만, 깨달은 분상에서 보면 하나로 연결된 무
한하게 생명활동을 전개하고 영원의 세계를 실현할 가능태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무명에 가려졌기 때문에 믿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
나 그것이 본질적인 자각을 갖추게 되면 믿지 않을 수 없는 우주 자
체가 일념삼천세계와 사사무애법계로서 근본에서 서로 소통하고 있
기 때문에 깨달음의 체현이 가능한 정토실현이다.
정토의 실현이 어쩌면 허무맹랑한 소리 같지만 우리는 이 오근의
정토 염불과 실상염불선 / 정광균(법상) 251
본래적인 능력을 발현하는 수행을 통해서 자기가 살아가는 환경을
정화하면 가능하다. 그래서 청화선사는 도를 배우는 사람은 모름지기
커다란 원력을 발하고 육근을 닦아서 깨달으면 내 삶의 환경이 정화
되어 정토임을 자각한다고 강조하였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삶의 방
식이 바로 구차제정(九次第定)과 염불삼매를 통해서 구품연대(九品蓮
臺)의 단계적인 수행단계와 맞닿아 있다고 간파한 것이다. 그렇지 않
고 수행의 과정에서 조그만 이익을 얻어서 만족해 버리면 반드시 큰
손해를 당하여 나락의 길을 걷는다는 경계의 말씀도 놓치지 않았다.
설사 일시적으로 몸과 마음의 안정을 얻었다고 할지라도 오히려 윤
회의 나락을 모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를 내버리는 방하착
(放下着)을 하고서 그냥 간절하게 수행만 하다보면 비로소 누진통(漏
盡通)에까지 다다를 수 있는 방아착(放我着)에 도달함을 중시한다. 왜
냐하면 수행하는 사람은 반드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진여불성(眞如佛
性)에 결정신심을 유지하여 일심불란하게 일도양단하여 오직 간절하
게 수행하여 순간을 살아갈 뿐이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이 금타와 청화는 염불수행의 목적인 왕생정토에 대해서
법계가 나와 불가불리(不可分離)의 연기적 관계 속에 동체라는 자각
을 통해 최상의 가치를 부여하였다. 이러한 실현은 신원(信願)과 염
불수행을 통해서 가능함을 역설한다. 그래서 다음은 사종염불과 실상
염불선에 대해서 검토해 보기로 한다.
2. 무주청화의 정토염불과 왕생
정토는 앞에서 간략히 살펴보았지만 다시 간략히 언급하면 일반적
으로 경론에서 지방입상(指方立相)적 관점에서 언급하는 부처님만이
거주하는 정토, 7지 이상의 보살이 거주하는 정토, 4지 이상의 보살이
거주하는 정토, 초지 이상의 보살이 거주하는 정토 등 다양한 이론을
252 淨土學硏究 29집(2018. 6)
다양하게 전개한다. 다음에 유심정토(唯心淨土)의 선적인 입장에서
‘보살의 마음이 정청하면 국토가 청정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유심정
토에 대해서 청화는 본래 부처의 입장에서 중생을 바라보고 중생이
바로 본래 자성이 청정한 마음의 부처라고 인식하고 자각하면서 사
종염불을 수행하는 것이 진정한 실상염불이라고 주창한다. 만약 10만
억국토를 지나서 극락정토가 있다고 믿고 왕생발원하면서 염불하는
것은 방편염불에 불과하다고 적시하였다.
청화는 염불에 대해서, “본래시불(本來是佛)이니 자성청정심(自性淸
淨心)을 염(念)함을 의미함. 일체만유가 부처요, 둘이 아닌 불이불(不
二佛)이기 때문에 언제나 부처를 여의지 않는 불리불(不離佛)이다.” 13)
라고 정의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염불에 대해서 청화는 기존의 사종
염불에 대해서,
1) 칭명염불(稱名念佛); 부처님의 명호를 외우는 염불
2) 관상염불(觀像念佛); 부처님의 원만한 덕상(德像)을 관찰하면서
하는 염불
3) 관상염불(觀想念佛); 부처님의 무량공덕을 상념(想念)하면서 하는
염불
4) 실상염불(實相念佛); 실상(實相) 곧 진리를 관조(觀照)하면서 하는
염불14)
이라고 청화는 규봉종밀로부터 유래된 전통적인 사종염불에 대해서
적시하여 자세하게 설명한다. 그런데 종밀선사가 설정한 사종염불은
본래 참회를 위해서 생사의 마음에 수순하는 것을 뒤집어 타파하는
10가지 수행 가운데 9번째로 시방의 부처님을 염하는 것이었다. 여기
서 주목되는 것이 칭명염불과 실상염불의 전거로 삼은 경전이 바로 ?문
13) 청화대종사 저, ?실상염불선?, 서울: 광륜출판사, 2012, p.162.
14) 청화대종사 저, ?실상염불선?, 서울: 광륜출판사, 2012, p.166.
정토 염불과 실상염불선 / 정광균(법상) 253
수반야경?이고, 체득할 내용이 바로 일행삼매를 통해서 법계일상(法
界一相)에 도달하는 반야바라밀의 체현이다. 그 내용을 보면,
시방의 부처님을 염한다는 것은 옛적에 아주 절친한 악한 벗으로
인해서 그 말하는 것을 받아 믿었다. 이제 시방의 부처님을 염함에
동등함이 없는 자비를 염하여 청하지 않아도 벗이 되고, 동등함이
없는 지혜를 염하여 대도사라고 믿는다. 생사의 악연을 거스르고자
함에 모름지기 깨달음의 바른 길을 따르기 때문에 모름지기 부처님
을 염한다. 그래서 염불의 일문은 수행의 요긴한 나루로서 마음을
섭수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것으로 인해서 염불의 의미를 간략히 밝
혀 말하자면 염(念)이란 ‘명확하게 기억하여 잊지 않는 것을 의미로
삼은 본체는 바로 혜(慧; 반야)’이다. 이제 염이라 부르는 것은 곧
가깝게 명칭을 밝힌다. 그러나 염불에는 같지가 않아 총괄하면 네
가지가 있다. 첫째, 칭명염(稱名念)이고, 둘째, 관상염(觀像念)이며,
셋째, 관상염(觀想念)이고, 넷째, 실상염(實相念)이다.15)
라는 내용이다. 여기서 염(念)이란 명기불망(明記不忘)한 그 본체가
반야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부처님의 명호를 분명하게 기억하여
잊지 않는 것을 의미로 삼은 그 본질이 바로 반야라는 것이다. 이러
한 반야는 문자반야와 관조반야, 실상반야를 포괄한다. 그러므로 명호
는 바로 문자반야에 해당하고 그 명호에는 무량무변한 부처님의 공
덕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성불하거나 왕생극락하고, 업장이 녹아난다
고 청화는 설명한다. 그런데 첫째, 칭명염에 대해서16) 종밀이 규정한
15) 宗密述, ?大方廣佛華嚴經行願品別行疏鈔?(卍新纂續藏5, 280,하), “念十方
佛者昔因親狎惡友信受其言;今念十方佛念無等慈作不請友;念無等智
信大導師;欲違生死之惡緣須順菩提之正路故須念佛。然念佛一門修行
之要津攝心之關鍵因此略明念佛之義。言念者明記不忘為義體即是慧。
今名念者即鄰近彰名也。然念佛不同總有四種:一稱名念二觀像念三觀
想念四實相念”
16) 이하는 정광균, 「念佛에 내재한 禪的要因에 대한 一考」, ?淨土學硏究?
11, 2008.)를 참고한다.
254 淨土學硏究 29집(2018. 6)
것은,
또한 칭명염(稱名念)이란 ?문수설반야경?17)에, ‘다시 일행삼매(一行
三昧)가 있는데,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이 삼매를 수행하는 자는 부
처님의 깨달음을 속히 얻을 수 있다. 삼매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마
땅히 텅 비고 한가한 곳에 거처하여 모든 산란한 생각을 버리고 모
양을 취하지 말고, 마음을 한 부처에 매어두어 오로지 명자(名字)를
일컬으면서 부처님 쪽을 따라서 단정히 앉아 바로 향하여 능히 한
부처님을 생각 생각에 상속하게 하면 곧 생각 가운데 능히 과거ㆍ
미래ㆍ현재의 모든 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다. 한 부처님을 염한 공
덕은 무량무변하여 일체 부처님의 공덕과 둘이 아니다. 이와 같이
항하강 모든 부처님의 법계에 차별이 없는 모습을 다 알 수 있다.18)
라고 논하였다. 종밀은 ?화엄경보현행원품소초?의 참회에 관한 내용
에서 참회하는 방편으로 위의 내용을 언급한 것이다. 그는 ?문수반야
경?의 내용을 칭명염(稱名念) 즉 칭명염불(稱名念佛)로 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칭명염불에 대해서 좀 더 살펴보기로 한다. 정토삼부
경에서는 칭명염불을 매우 중시한다. 이와 더불어 ?십주비바사론?에
서도, “아미타불의 본원은 다음과 같다. 만약 어떤 사람이 나를 염하
17) 曼陀羅仙譯, ?文殊師利所說摩訶般若波羅蜜經?(大正藏8, 731,상-중)에서
인용한 일행삼매는 먼저 도신이 ?능가사자기?에서 인용하였고, 혜능도
역시 ?육조단경?에서 인용한 것을 금타와 청화도 역시 ?금강심론?과 ?
실상염불선? 등에서 一相三昧와 一行三昧를 중시하였다. 여기서 금타와
청화가 적시한 내용에서 一相은 法界一相에 해당하고, 一行은 염불수행
에 해당하여 觀而念之한 頓悟漸修이고 頓悟는 解悟이고, 漸修는 證悟라
고 이해된다.
18) 宗密述, ?大方廣佛華嚴經行願品別行疏鈔?(卍新纂續藏5, .280,하-281,중),
“且稱名念者如?文殊般若經?云:復有一行三昧若善男子善女人修是三
昧者速得佛菩提。欲入三昧應處空閒捨諸亂意不取相貌繫心一佛專稱
名字隨佛方所端坐正向。能於一佛念念相續即是念中能見去來現在諸佛
念一佛功德無量無邊與一切佛功德無二。;如是盡知恆沙諸佛法界無差別
相。”
정토 염불과 실상염불선 / 정광균(법상) 255
고 명호를 일컬으며 스스로 귀의하면 곧 반드시 선정에 들어가 아눗
따라삼막삼보디를 얻으리라.”19)라고 하였다. 또 이르길, “아미타불 등
의 부처님과 모든 위대한 보살의 명호를 일심으로 일컬어 염하면 또
한 불퇴전(不退轉)을 얻으리라.”20)라고 하였다. 그 이유는 여래10호인
응공과 정변지, 명행족, 선서, 세간해, 무상사, 조어장부, 천인사, 불,
세존의 무량무변한 공덕이 서려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보리방편문?21)에서 금타가 주창한 아미타불이란 명
호에는 법신과 보신, 화신을 갈무리한 삼신일체(三身一體)의 제불의
공능이 설여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칭명염불은 중생으로 하여금 잡
념 혹은 혼잡하고 오염된 상태를 벗어나도록 독려하고, 정념(正念)이
유지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염불의 정념은 바로 선수행에
서 추구하는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다. 염불은 중생들로 하여금 망상
을 멀리하여 정념(正念)이 삶의 현장에 오롯이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참선의 목적도 역시 망상을 벗어나 마음이 한 곳에 머물러
푹 쉬면서 자기의 본질을 깨닫는 것이다. 다음은 관상염불(觀像念佛)
에 대해서22) 종밀선사는,
둘째, 관상염(觀像念)은 이른바 여래의 소조(塑造)와 회화(繪畫) 등
의 형상을 관하는 것이다. 저 ?대보적경?에, ‘부처님의 본래 인행(因
行) 가운데 큰 정진을 하였다. 보살도 인행할 때에 비구가 부처님의
형상을 그린 것을 보고 발심하고 출가하였다. 모직물에 그린 형상을
가지고 산에 들어가 관찰하여 이 그려진 형상을 관찰함에 여래와
다르지 않는 오신통(五神通)을 성취하여 보광삼매(普光三昧)23)를 얻
19) 鳩摩羅什譯, ?十住毘婆娑論? 卷五(大正藏26, 43,상), “阿彌陀佛本願如
是。若人念我稱名自歸。即入必定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故常應憶念”
20) 鳩摩羅什譯, ?十住毘婆娑論? 卷五(大正藏26, 42,하), “阿彌陀等佛 及諸
大菩薩稱名一心念 亦得不退轉”
21) 釋金陀著ㆍ淸華編, ?金剛心論?, 서울: 광륜출판사, 2009, p.59 참조.
22) 정광균, 「念佛에 내재한 禪的要因에 대한 一考」, ?淨土學硏究? 11, 2008
참조.
256 淨土學硏究 29집(2018. 6)
어 시방의 부처님과 같음을 보았다.’고 설한 것과 같다.24)
라고 명시하였다. 여기서 부처님과 보살이 과거에 수행하여 오신통과
보광삼매(普光三昧)를 얻어 시방삼세의 모든 부처님과 같음을 얻었다
는 것이다. 상기한 ?대보적경?은 바로 ?무량수경?의 다른 번역으로
보광삼매를 체득한다는 것은 아미타불의 광명을 섭수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관무량수경?에 설해진 16관법(觀法)25) 가운데 13관법을 관하
면서 삼배구품의 칭명염불을 실천하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대
해서 청화는 매우 간략하게 부처님의 자비롭고 만덕을 갖춘 원만한
상호인 32상60종호를 우러러 보면서 명호를 외우며 염불하는 것이라
23) 청화 역주, ?淨土三部經?, 서울: 광륜출판사, 2007, p.89에서 아미타불의
제45 공불견고원(供佛堅固願)으로 “제가 부처가 될 적에, 다른 세계의
보살들이 제 이름(아미타불)을 들으면, 그들은 모든 부처님을 두루 뵈올
수 있는 삼매를 얻을 것이며, 매양 이 삼매에 머물러 성불하기까지 언제
나 불가사의한 일체 모든 부처님을 뵈올 수 있으리니, 만일 그렇지 않다
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보광삼매는 모든 부처님을 두
루 친견할 수 있는 삼매라는 것이다.
24) 宗密述, ?大方廣佛華嚴經行願品別行疏鈔?(卍新纂續藏5, 280,하-281,중),
“二、觀像念,謂觀如來塑畫等像,如?大寶積經?說:佛本因中,為大精進
菩薩,因見比丘畫佛形像,發心出家。持畫㲲像,入山觀察,觀察此畫像不
異如來,成就五通,得普光三昧,見十方佛等”
25) 1. 서쪽 하늘에 지는 해를 북처럼 관하는 日想觀, 2. 그 지는 해에 비친
저녁노을의 물을 관하는 水想觀, 3. 황금색으로 빛나는 대지를 관하는
地想觀, 4. 七寶로 莊嚴된 보배로운 나무를 관하는 寶樹觀, 5. 금모래가
깔려 있고 八功德水를 갖춘 연못을 관하는 蓮池觀, 6. 그 연못 옆에 칠
보로 장식되어 있는 누각을 관하는 寶樓觀, 7. 연못 속의 연화대를 관하
는 華座觀, 8. 모든 부처님의 德相을 생각하며 관하는 像想觀, 9. 아미타
불의 眞身을 관하는 眞身觀, 10. 아미타불의 左補處인 관세음보살을 관
하는 觀音觀, 11. 아미타불의 右補處를 관하는 勢至觀, 12. 자신의 왕생
을 관하는 普觀, 13. 정토의 여러 가지 현상을 관하는 雜想觀, 14. 극락
의 上三品에 왕생할 수 있는 대승행자를 관하는 上輩觀, 15. 극락의 中
三品에 왕생할 수 있는 소승행자와 선행하는 자를 관하는 中輩觀, 16.
극락의 下三品에 칭명염불로 왕생하는 자를 관하는 下輩觀등이다. 이
가운데 8. 像想觀과 9. 眞身觀, 10 觀音觀, 11. 勢至觀, 13. 雜想觀등이
觀像念佛에 해당한다.
정토 염불과 실상염불선 / 정광균(법상) 257
고26) 하였다. 이어서 관상염불(觀想念佛)에 대해서 종밀선사는,
셋째, 관상염(觀想念)이란 저 가운데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일상(一
相)을 밝힘에 32상(相) 가운데 일상(一相)을 따라 관하는 것이다. 모
두가 무거운 죄를 소멸하는 것이다. 저 ?관불삼매해경?에, ‘부처님께
서 부왕(父王)을 위해서 백호관(白毫觀)을 설하셨다. 다만 미간백호
의 모습이 오른쪽으로 돌아 순환하여 구르는 것을 관할뿐이다. 마치
저 가을달의 완전한 위광(威光)과 같아서 내외가 통명(通明)함을 성
취한다. 마치 하얀 유리잔과 같고, 또한 마치 어두운 밤중에 밝은
별과 같다. 관(觀)이 이루어지고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모두가 90억
나유타 항하사 미진수 겁의 생사의 무거운 죄가 항상 덮여 있지만
섭수되어 소멸한다.’고 하였다.
둘째, 온 몸을 밝히는 것이다. 저 ?좌선삼매경?에, ‘만약 불도(佛道)
를 구하여 선정(禪定)에 들어가려면, 먼저 마땅히 마음을 매어두어
부처님의 생신을 염한다. 지수화풍과 산과 수풀과 초목과 천지만류
와 모든 나머지 법을 생각하지 말고, 다만 부처님의 몸이 처한 곳이
허공에 있다고 염하여 대해가 청정한 때와 같아서 금산왕의 상호가
원만하게 있어서 무량한 청정한 광명을 내어서 이 허공의 청색 가
운데 밝아 항상 부처님의 몸을 염한다. 문득 시방삼세의 모든 부처
님을 얻어서 모두가 목전에 있다. 만약 마음에 나머지 반연을 돌이
켜서 섭수(攝受)하여 머물게 하면 무량한 겁의 죄를 소멸하리라.’고
한 것과 같다.27)
26) 청화대종사 저, ?실상염불선?, 서울: 광륜출판사, 2012, p.168 참조.
27) 宗密述, ?大方廣佛華嚴經行願品別行疏鈔?(卍新纂續藏5, 281,중), “三、觀
想念,於中有二:一、明一相,於三十二相中,隨觀一相,皆滅重罪。如?觀
佛三昧海經?說:佛為父王說白毫觀,但觀眉間白毫之相,右旋婉轉,猶如
秋月,十稜成就,內外通明,如白瑠璃筒,亦如暗夜中明星。觀成不成,皆
滅九十億那由他恆河沙微塵數劫生死重罪,常蒙攝受也。二明全身者,如?
坐禪三昧經?云:若求佛道入禪,先當繫心念佛生身,莫念地水火風、山樹
草木、天地萬類,及諸餘法,但念佛身處在虛空。如大海清時,有金山王,
相好圓滿,出無量清淨光明,於此虛空青色之中,常念佛身,便得十方三世
諸佛悉在目前;若心餘緣,還攝令住,除無量劫罪”
258 淨土學硏究 29집(2018. 6)
라고 설명하였다. 여기서 관상염(觀想念)은 관상염불(觀想念佛)에 해
당하고 여러 가지 경전에서 설하고 있지만 가장 자세하고 세밀하게
설한 것은 응당 ?관무량수경?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관무량수경?에
설해진 내용을 앞에서 언급한 관상(觀像)의 내용을 제외하면 일상관
(日想觀)ㆍ수상관(水想觀)ㆍ지상관(地想觀)ㆍ보수관(寶樹觀)ㆍ연지관
(蓮池觀)ㆍ보루관(寶樓觀)이다. 이에 대해서 청화선사는 간략하게 부
처님의 지혜와 자비공덕의 공능을 상상하면서 칭명염불을 하는 것으
로 설명하였다. 그런데 이 관상(觀想)염불은 제법의 공성을 체득하는
중요한 수행이다. 저 중국의 여산혜원 법사는 당시 사회 지도층 123
명을 대동하고 여산(廬山)에서 염불결사를 단행하면서 ?반주삼매경?
에 의거해서 견불(見佛)과 왕생을 목적으로 정토왕생업을 닦았다. 이
는 반야의 공능과 직결되는 수행으로 주목할 수행법이다. 말하자면
제법은 공성으로 청정하고 보배로운 극락세계를 상상하는 의보총상
관(依報總相觀)이다.
다음에 화좌관(華座觀)과 진신관(眞身觀)ㆍ관음관(觀音觀)ㆍ세지관
(勢至觀)ㆍ보관(普觀)ㆍ잡상관(雜像觀)으로 이른바 앞의 관상(觀想)을
이루어 마치고 나아가 자기 마음을 일으키어 서방의 극락세계에 왕
생하여 연꽃 가운데 결가부좌하고 연꽃이 합쳐진다는 생각을 짓거나
연꽃이 핀다는 생각을 한다. 연꽃이 필 때에 오백 색깔의 광명이 도
래하여 몸을 비춘다는 생각을 하여 눈을 뜬다고 생각하여 부처님과
보살이 허공 가운데 가득함을 보고 물과 새와 수풀과 나무 및 모든
부처님께서 음성을 내어 모두 묘법을 연설해 주신다. 이러한 현상을
보아 마치면 각기 무량수불과 극락세계를 본 것이다. 이것이 보관(普
觀)이라 하고 또 극락세계의 정보장엄관(正報莊嚴觀)이라고도 한다.
이에 대해서 정영사(淨影寺) 혜원은 ?관무량수경의소?에서 이 16관
을 대별하여 두 가지 유형으로 삼았다. 처음의 7문(門)은 의보를 관
하는 것으로, 뒤의 9문은 극락국의 정보(正報)를 관하는 것으로 삼았
정토 염불과 실상염불선 / 정광균(법상) 259
다.28) 또 뒤의 10관 가운데 처음의 5문은 부처님과 보살을 관하는 것
이고, 다음에 1문은 스스로 왕생하는 관이며, 다시 다음의 1문은 불보
살을 관하는 것이고, 뒤의 3문은 극락에 왕생하는 관임을 밝혔다.29)
천태지의(天台智顗, 538∼597)는 ?관무량수경소? 권하에서 세 가지로
분류한다. 처음의 6관은 의보(依報)를 관하는 것이고, 다음의 7관은
정보(正報)이며, 뒤의 3관은 삼배구품(三輩九品)의 왕생임을 밝힌다.
혜원과 여러 대가는 모두 이 16관으로써 정선(定善)의 관법으로 삼았
다. 하지만 선도(善導, 613∼681)는 오직 처음의 13관만을 정선으로
삼았고, 뒤의 3관인 삼배구품은 산선(散善)이라고 하였다. 또 정선 가
운데 처음 7관은 의보관(依報觀), 다음의 6觀은 정보관(正報觀)으로
삼았다.30)
이에 대해서 세친은 ?무량수경우바제사왕생게?에서31) 오념문(五念
門)으로 나누어 종합한다. 먼저 「왕생게」를 설하고 나서 3엄(嚴) 29종
(種) 장엄 가운데, 처음의 불국토장엄공덕은 중생이 극락정토에 태어
나고자 하는 왕생을 바라는 마음에 응해서 정토의 모습을 설하고, 불
장엄(佛莊嚴)의 공덕은 왕생정토가 아미타불께서 발원한 마음에 의해
가능함을 나타내며, 마지막의 보살장엄은 정토에 왕생한 보살이 발원
한 마음은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곳에 태어나 중생구제하기를 원하
고 있다. 산문부분에서 게송의 의미를 하나하나 해석하고 있는데, 정
28) 慧遠撰, ?觀無量壽經義疏?(大正藏37, 178,하), “定善生中觀別十六。一是
日觀二是水觀三是地觀四是樹觀五是池觀六是總想觀一切樓樹池等七
華座觀八佛菩薩像觀九佛身觀十觀世音觀十一大勢至觀十二自往生觀
十三雜明佛菩薩十四上品生觀十五中品生觀十六下品生觀。此十六中初
之七門觀其依報。後之九門觀彼正報”
29) 慧遠撰, ?觀無量壽經義疏?(大正藏37, 179,c), “第四佛説餘十觀中相從爲
四。初五。一分佛菩薩觀次有一門自往生觀次一復明佛菩薩觀後三明其
他生之觀。就前五中初之一門作佛座觀次一作彼佛二菩薩三像之觀後三
作彼佛二菩薩眞身之觀”
30) 정광균, 「念佛에 내재한 禪的要因에 대한 一考」, ?淨土學硏究? 11, 2008
참조.
31) 菩提流支譯, ?無量壽經優波提舍願生偈?(大正藏26, 230,하-233,상) 참조.
260 淨土學硏究 29집(2018. 6)
토에 왕생하기 위한 5인문(五因門)의 실천방법으로서 1) 예배문(禮拜
門), 2) 찬탄문(讚歎門), 3) 작원문(作願門), 4) 관찰문(觀察門), 5) 회
향문(廻向門)의 오념문을 설한다. 이것이 ?정토론?에서 가장 중요한
골자이다. 또한 산문 후반부분에서는 왕생의 과보로서 1) 근문(近門),
2) 대중회문(大會衆門), 3) 택문(宅門), 4) 옥문(屋門), 5) 원림유희지문
(園林遊戱地門)의 5과문(五果門)을 설하고, 보살은 5과문에 이르기 위
한 수행인 오념문을 닦아 자리리타하여 신속히 아눗따라삼먁삼보디
를 성취할 수 있다고 설한다. 여기서 작원문을 사마타라 하고, 관찰문
을 위빳사나라고 하여 선(禪)으로 연결 지어 볼 수 있다.
그런데 가장 주목할 염불의 방식이 실상염불이다. 실상염불(實相念
佛)은 이른바 자신을 포함한 우주의 일체제법에 대한 진실한 모습을
관하는 것이다. 참다운 모습은 형상도 없고 색상도 없어서 마치 허공
과 같다. 그래서 부처와 중생이 무차별해서 마음에서 결국 부처와 중
생이 본래 평등한 하나라는 것이다. 이러한 염(念)이 바로 참다운 염
인데 만약 생각 생각이 상속하여 마음이 집중되면 삼매가 현전하다
는 것이다.
그래서 실상염불은 사실 근기가 예리한 수행자가 수행하는 상품(上
品)의 염불이다. 이것은 유심(有心)으로 바꾸어 염하는 것도 아니고,
무심(無心)으로 수행하지만 염하는 것도 아니다. 나아가 유심(有心)과
무심(無心)으로 염하는 것도 아니다. 또한 유심과 무심이 아닌 것으
로 염하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만약 유심으로써 염하면 상견(常見)
에 빠지고, 만약 무심(無心)으로 염하면 사견(邪見) 떨어져버린다. 또
한 유(有)이면서 무(無)는 단견과 상견이고, 유(有)도 아니고 무(無)도
아닌 것은 우치이며, 만약 4구(四句)를 갖추면 여러 견해를 갖추어
일으킨 것이다. 모두 4구가 없으면 문득 큰 단견을 이룬다. 만약 이러
한 것들의 헤아림을 여윌 수 있으면 마음에 의지하는 것이 없어서
무(無)라고 한다. 만약 반야가 현전하면 지혜로써 관조하는 모습이
정토 염불과 실상염불선 / 정광균(법상) 261
없는 모습으로 이것이 제법실상(諸法實相)의 염이라고 말한다. 만약
이렇게 염불한다면 현생에 반드시 견불(見佛)할 것이다. 이에 대해
종밀은,
넷째, 실상염(實相念)은 또 법신(法身)을 이름한다. 이른바 자신과
및 일체법의 진실한 자성을 관하는 것이다. ?문수설반야경?에 이르
길, ‘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으며,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으며, 이
름도 아니고 모습도 아닌 이것을 불러서 부처라고 한다.’라고 한다.
만일 스스로 몸의 실상(實相)을 관하는 것처럼 부처님을 관함도 역
시 그와 같다. 또 이르길, ‘법계(法界)의 일상(一相)을 반연하여 매어
두는 이것을 일행삼매라고 이름한다.’고 하였다. 또 ?대지도론?에,
‘색신(色身)과 상호로써 염하지 않는 것은 부처님 몸 자체가 없기
때문에 기억할 것도 없으므로 이것을 염불이라 한다.’고 하였다. 또 ?점찰선악업보경?32)에, ‘제법의 평등한 법신을 사유한 것이 일체의
선근 가운데 그 업이 가장 수승하다.’고 하였으며, 또 ?대방광불화엄
경?33)에, ‘일체제불의 몸은 오직 하나의 법신뿐"이라고 하였기에 한
부처를 염할 때에 곧 일체의 부처이다.34)
32) 菩提燈譯, ?占察善惡業報經?(大正藏17, 908,c), “若人欲生他方現在淨國
者,應當隨彼世界佛之名字,專意誦念,一心不亂。如上觀察者,決定得生
彼佛淨國,善根增長,速獲不退。當知如上一心[1]係念思惟諸佛平等法身,
一切善根中,其業最勝。所謂勤修習者,漸漸能向一行三昧。若到一行三昧
者,則成廣大微妙行心,名得相似無生法忍。以能得聞我名字故,亦能得聞
十方諸佛名字故”
33) 實叉難陀譯, ?大方廣佛華嚴經? 卷13(大正藏10, 68,c), “文殊法常爾, 法王
唯一法, 一切無礙人, 一道出生死。一切諸佛身, 唯是一法身, 一心一智
慧, 力無畏亦然”
34) 宗密述, ?大方廣佛華嚴經行願品別行疏鈔?(卍新纂續藏5, 281,중), “四實相
念,亦名法身,謂觀自身及一切法真實自性。?文殊般若?云:不生不滅,不
來不去,非名非相,是名為佛。如自觀身實相,觀佛亦然等。又云:繫緣法
界一相,是名一行三昧。又?智度論?云:不以色身及相好念,以佛身自無所
有故,以無憶故,是為念佛。又?占察經?云:思惟諸佛平等法身,一切善根
中,其業最勝。又?大經?云:一切諸佛身,唯是一法身,念一佛時,即一切
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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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네 가지 경론을 전거로 실상염불의 개념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
데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칭명염불에서 전거로 삼았던 ?문수설반야
경?을 전거로 삼아 실상염불을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종
밀은 칭명염불과 실상염불을 동일시하였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금타
가 제시한 관이염지(觀而念之)는 바로 법계일상(法界一相)인 일상(一
相)을 통관(通觀)하여 일상삼매(一相三昧)를 체득하여 돈오(頓悟)하고,
염불의 삼신일불(三身一佛)의 아미타불을 상념(常念)하여 일행삼매(一
行三昧)를 점수(漸修)하여 구경각을 체득하여 증오(證悟)한다는 것이
다.35) 이것이 두 선지식이 제시한 올바른 수행의 지침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칭명염불과 실상염불은 종류만 다를 뿐 그 목적에서 동일한
수행으로 간주된다고 하겠다. 이러한 내용에 대해서 ?관무량수경소묘
종초? 권3 중에서 실상을 명확하게 천명하여 기술한다.
제법의 당처는 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으며,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으며, 주관도 없고 객관도 없으며, 언설의 개념을 여의고, 명자의
개념을 여의며, 마음을 인연한 개념을 여의고, 이러한 등의 관념을
여의는 것을 실상이라고 이름하고, 모습이 없는 모습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도 갖추지 않았으니 어떤 법도 그렇지 않겠는가? 만약 논
증하여 알아질 것 같으면 오직 모든 부처님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
므로 ?법화경?에 이르길, ‘오직 부처와 부처만이 이에 제법실상(諸法
實相)을 궁구하여 다할 수 있다.’고 하였다. 위의 내용을 이어받아
원만하게 설하면 처음에 마음은 곧 부처의 지혜를 써서 경계를 관
조하기 때문에 능히 제법실상을 신해(信解)하여 이미 실상(實相)을
알았다. 또한 제법의 실성(實性)과 실체(實體)ㆍ실력(實力)ㆍ실인(實
因)ㆍ실연(實緣)ㆍ실과(實果)ㆍ실보(實報)ㆍ실본말구경(實本末究竟)
등을 알 수 있다. 10법이 이미 진실함에 곧 진실한 중생과 진실한
부처와 진실한 의보(依報)와 진실한 정보(正報)로 일색일향(一色一
香)이 중도 아닌 것이 없어 일체법 모두가 불법이다. 이미 일체가
35) 釋金陀著ㆍ淸華編, ?金剛心論?, 서울: 광륜출판사, 2009, pp.58-60 참조.
정토 염불과 실상염불선 / 정광균(법상) 263
다 진실이고 진실 외에 나머지는 없다.36)
이는 반야공관(般若空觀)과 ?법화경?의 십여시(十如是)를 운용하여
제법실상의 이치를 설명하였다. 이것은 오직 부처님과 부처님만이 아
는 것이라 중생의 입장에서는 각득(覺得)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것이
염불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염하느냐가 관건이다. 이에 대해서 ?서방
합론(西方合論)? 권5의 「이제문(理諦門)」에서 해답을 제시한다. 즉,
“그대가 염불할 때에 조금의 생각도 취하지 말고, 희론도 내지 말며,
분별도 내지 말라. 왜냐하면 이 법은 모두 공(空)하여 체성이 없고
생각할 수 없는 일상(一相)으로 이른바 무상(無相)인 이것이 진실한
염불이라고 이름한다.”37)라고 언급한다. 그 다음에 ?지관(止觀)?의 문
구를 인용해서 염불삼매를 밝힌 염(念)에 대한 견해를 구체적으로 논
하길,
다시 염하는 나는 마음을 따라 부처를 얻는가? 몸을 따라 부처를
얻는가? 부처는 마음을 써서 얻을 수 없고, 몸을 써서도 얻을 수 없
다. 마음을 써서 부처의 색신을 얻을 수 없고, 색을 써서 부처의 마
음을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마음이란 부처에게는 마음이 없고, 색
이란 부처에게는 색이 없기 때문에 색과 마음을 써서 완전한 깨달
음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부처는 색이 이미 다하였고 더 나아가
알음알이가 이미 다하였다. 부처가 설한 것을 다했다는 이것은 어리
36) 知禮述, ?觀無量壽經疎妙宗鈔? 권3(大正藏37, 209,상), “諸法當處。不生
不滅非有非空。無能無所。離言說相。離名字相。離心緣相。離此等相。名
為實相無相之相也。誰人不具何法不然。若論證知唯有諸佛。故法華云。
唯佛與佛乃能究盡諸法實相。稟圓說者初心即用佛智照境。故能信解諸法實
相。既解實相。亦解諸法實性。實體, 實力, 實作, 實因, 實緣, 實果, 實報,
實本末究竟等。十法既實。即是實生實佛。實依實正。一色一香無非中道。
一切諸法皆是佛法。既一切皆實。實外無餘”
37) 袁宏道撰述, ?西方合論?(大正藏47, 403,하), “汝念佛時,莫取小想,莫生
戲論,莫有分別。何以故?是法皆空,無有體性,不可念,一相,所謂無
相,是名真實念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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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은 사람은 알지 못하고 지혜로운 자만이 밝게 알 수 있다. 몸과
입을 써서 부처를 얻을 수 없고, 지혜를 써서도 부처를 얻을 수 없
다. 왜냐하면 지혜는 찾아도 얻을 수 없고, 스스로 찾아도 나는 마
침내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볼 수도 없기에 일체제법은 본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본래 무너지고 본래 끊어졌다. 만약 이와 같이
염한다면 이것이 실상염불의 관문이고 또한 절대의 관문이다.38)
라고 무소유(無所有)이고 무소득(無所得)한 염불을 논하였다. 이는 ?
금강경?의 「사구게」에서 설한 “무릇 있는 형상은 모두 허망하다. 만
약 모든 형상이 형상이 아님을 본다면 곧 여래를 보리라.”하였고, “만
약 현색으로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 나를 구하는 이런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함으로 여래는 친견하지 못하리라.”하였으며, “일체 유위의 법
은 꿈과 환상, 물거품, 그림자와 같고,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갯불과 같
으니, 응당 이와 같이 관해야 한다.”39)라고 법신여래를 체득하는 내
용과 부합한다. 이처럼 실상염불은 모든 흔적을 남기지 않는 청정함
이 없는 청정한 마음의 발현이다. 또한 육념(六念)을 설하는 ?불장경
(佛藏經)? 권상에서 제법실상(諸法實相)의 실상염불에 대해 설하길,
사리불이여! 무엇을 이름하여 염불이라고 하는가? 있는 바가 없는
것을 보는 것을 이름하여 염불이라고 한다. 사리불이여! 모든 부처
님은 무량하여 불가사의하고 불가칭량이다. 이러한 뜻이기 때문에
38) 袁宏道撰述, ?西方合論?(大正藏47, 403,하), “為復念我當從心得佛?從身
得佛?佛不用心得,不用身得,不用心得佛色,不用色得佛心。何以故?心
者佛無心,色者佛無色,故不用色心得三菩提。佛色已盡,乃至識已盡,佛
所說盡者,是癡人不知,智者曉了。不用身口得佛,不用智慧得佛。何故?
智慧索不可得,自索我了不可得,亦無所見,一切法本無所有,壞本絕本。
若如是念者,是名實相念佛之門,亦名絕待門”
39) 鳩摩羅什譯, ?金剛般若波羅蜜經?(大正藏8, 749.상 752,상 752,중), “凡所
有相,皆是虛妄。若見諸相非相,則見如來”; “若以色見我,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不能見如來”; “一切有為法,如夢、幻、泡、影,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정토 염불과 실상염불선 / 정광균(법상) 265
있는 바가 없는 것을 보는 것을 이름하여 염불이라고 하기에 실다
운 이름의 분별이 없고, 모든 부처님도 분별이 없다. 이 때문에 염
함에 분별이 없는 것이 곧 염불이다. 다시 다음에 제법실상(諸法實
相)을 보는 것을 견불(見佛)이라고 이름한다. 무엇 등을 제법실상이
라고 이름하는가? 이른바 제법은 필경에 공하여 있는 바가 없기에
이는 필경에 공하여 무소유(無所有)라는 법이 염불이다. 다시 다음
에 이와 같은 법 가운데 더 나아가 적은 염은 오히려 얻을 수 없다
는 이것이 염불이다. 사리불이여! 이 염불하는 법에는 언어의 길이
끊어져 모든 염을 지나 초월하여 염을 얻을 수 없는 이것이 염불이
다. 사리불이여! 일체 모든 염은 모두 적멸한 모습으로 이 법을 따
라가는 이것이 곧 이름이 염불을 수습하는 것이라고 한다. 색으로써
염불할 수 없다. 왜냐하면 색을 염하여 상을 취하는 것은 맛을 탐하
여 식(識)을 삼기 때문이다. 형상도 없고 색상도 없으며, 인연도 없
고 성품도 없는 이것이 염불이다. 그러므로 알라. 분별이 없어서 취
할 것이 없고 버릴 것이 없는 이것이 참다운 염불이다. 40)
라고 무분별(無分別)의 제법실상의 염불을 논하였다. 즉, 실상염불은
반야공관(般若空觀)의 체득이라는 것이다. ?반야심경?에서도 삼세의
모든 부처님도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기 때문에 아눗따라삼막삼보디
를 얻는다고 하였다. 이것이 실상염불이 된다. 실상염불은 염불사상
을 가지고 고도의 구경처(究竟處)로 이끌고 또한 말하자면 반야사상
과 일체화시켜 나타낸 것이다. ?중론?에서, “모든 부처님은 이제(二
40) 鳩摩羅什譯, ?佛藏經?(大正藏15, 785,중), “舍利弗!云何名為念佛?見無
所有名為念佛。舍利弗!諸佛無量不可思議、不可稱量,以是義故,見無所
有名為念佛。實名無分別,諸佛無分別,以是故言念無分別即是念佛。復
次,見諸法實相名為見佛。何等名為諸法實相?所謂諸法畢竟空無所有,以
是畢竟空無所有法念佛。復次,如是法中,乃至小念尚不可得,是名念佛。
舍利弗!是念佛法斷語言道,過出諸念不可得念,是名念佛。舍利弗!一切
諸念皆寂滅相,隨順是法,此則名為修習念佛。不可以色念佛。何以故?念
色取相貪味為識,無形、無色、無緣、無性,是名念佛。是故當知,無有分
別、無取、無捨,是真念佛”
266 淨土學硏究 29집(2018. 6)
諦)에 의지해서 중생을 위해 법을 설하시는데, 하나는 세속제(世俗諦)
이고, 둘은 제일의제(第一義諦)이다. 만약 사람들이 알 수 없으면 이
제에서 분별하면 곧 깊은 불법에서 진실한 의미를 알지 못하기에, 만
약 속제에 의지하지 않으면 제일의를 얻을 수 없고, 제일의를 얻지
못하면 열반을 얻지 못한다.”41)고 하였다.
이로 미루어 볼 때에 염불과 참선을 겸수(兼修)하면 궁극에 일치
(一致)됨이 검증되어지고 있다. 즉, 염불의 체득이 바로 선의 체득이
며, 염불이 바로 선이요, 선이 바로 염불인 것이다. 다만 근기를 따라
서 선택할 뿐이다. 그리하여 인간이 살아가는 패러다임으로 삼아서
살아가다보면 삶의 환경은 저절로 정화될 것이다. 이것은 금타와 청
화가 제시한 수행의 체계와 맞닿아 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두 선지식의 저술에 드러난 구성내용에서 ?반야심경?의 수행체
계를 적시하여 체득하게 한 다음에 구체적으로 개인에게 걸맞은 수
행을 실천하라고 교시한다. 이것이 바로 오정심관(五停心觀)과 지정
의(知情意)을 통해서 자기의 성향과 기질을 파악한 다음에 조화로운
중도적 염불수행을 실천하라는 것이다.
이상의 네 가지 염불에서 참선과 염불이 다르지 않는 수행의 목적
이 내재하고 일치함을 간파해내기는 어렵지 않다. 칭명(稱名)과 관상
(觀像)과 관상(觀想)의 염불은 모두 청정한 관념으로써 오염된 관념
을 바꾸는 것이다. 즉, 청정한 생각으로써 저 오염된 생각을 바꾸는
것은 유상(有相)이나 유위(有爲)의 수행에 속한다. 그러나 실상염불
(實相念佛)은 그렇지가 않아 아예 오염이 없는 청정한 관념마저도 없
애는 것으로 마음 자체는 맑고 청정하여 공(空)과 무상(無相), 무원
(無願)의 무심(無心)한 무념무상(無念無想)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실상(實相)에는 무상(無相)도 얻을 수 없지만 고요한 광명이 현전한
41) 鳩摩羅什譯, ?中論? (大正藏30, 32,하), “諸佛依二諦為眾生說法一以世
俗諦二第一義諦若人不能知分別於二諦則於深佛法不知真實義若不依
俗諦不得第一義不得第一義則不得涅槃”
정토 염불과 실상염불선 / 정광균(법상) 267
이것이 진실한 현상이기에 이러한 염불의 염은 법신(法身)과 더불어
상응한다. 그래서 실상염불은 부처님의 법신에 계합하여 있는 것도
아니고 공한 것도 아닌 실상의 이치를 통관하는 것이다. 다만 세 가
지 관을 성취하는데 반드시 요구되는 것은 청정한 정념정견(正念正
見)을 갖추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참선은 깨닫기 어렵고 염불은 이루기 쉽다고 말한
다. 왜냐하면 참선의 요구사항은 망상을 여의는 것이지만, 염불은 오
로지 생각이 없는 생각에 둔다. 부처님에게는 무량한 공덕이 있기 때
문에 한 구절의 부처님 명호(名號)인 “나모아미타불”에 갖추어진 공
덕은 본래 “무량한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시
방삼세의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고 공양하며 존중하고 공경한다는 것
이다. 그리고 부처님과 중생 전체가 본래 한 마음으로 마음에 무수한
공덕을 내포하여 진여불성(眞如佛性)과 보리열반(菩提涅槃)인 10만억
의 명호의 공덕을 포섭하여 다하지 않는 것이 없다. 따라서 우리 중
생은 불교를 배움에 무량한 교법과 행법이 있지만 모두가 청정한 마
음을 밝히는 가르침이다. 지금에 집지명호(執持名號)하는 일법(一法)
에 족히 그것을 모두 갖추었다. 그러므로 명호를 가지는 것이 곧 이
일심(一心)을 가지는 것이고 마음에 온갖 행법을 갖추어 난해한 사제
(四諦)의 관법과 십이연기(十二緣起), 나아가 육도만행(六度萬行) 더
나아가서는 8만4천 항하사 미진수의 일체법문을 포섭하여 다하지 않
는 것이 없다고 하겠다.
이상 사종염불(四種念佛)에서 왕생을 지향하는 칭명(稱名)과 관상
(觀像)과 관상(觀想)의 염불은 방편이고, 제법의 실상에 계합하는 것
은 실상염불(實相念佛)로 분류하지만, 그 반야공관에 의한 진여불성
에 맞닥뜨려 믿고 절실하게 염불하면 본질은 같다고 하겠다. 일반적
으로 참선에서는 주로 상상근기(上上根者)만을 위한 수행이라고 한다.
하지만 정토문에서는 하나의 염불하는 수행방법으로부터 무상(無上)
268 淨土學硏究 29집(2018. 6)
의 대도를 모두 깨달아 들어갈 수 있다. 비록 근기가 하열한 사람이
라도 네 가지 중에 어느 하나의 방편을 활용하여 실상의 제법을 통
달하여 법신에 계합하는 것이다.
3. 무주청화의 실상염불선 체득
앞에서 우리는 정토와 염불, 그리고 실상염불에 대해서 고찰해 보
았다. 그런데 청화의 제자는 실상염불(實相念佛)에 선(禪)자를 첨가하
여 실상염불선(實相念佛禪)이라고 명명하였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청화는 염불이든 참선이든 간경이든 주력이든 수행하는 전제 조건에
서 ‘나는 본래 진여불성(眞如佛性)을 갖춘 본래 부처라는 심즉시불(心
卽是佛)42)을 확실하게 결정적 신심을 구족해야 모든 수행이 진정한
참선으로 귀결된다.’고 강조하였다. 그래서 만약 진여자성이 바로 나
라는 것을 확신하고 수행한다면 화두나 염불이나 주력이 진정한 참
선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실상염불선이란 용어에 대해서 청화가 붙인 용어가 아니라 후학들
이 선(禪)자를 첨가하였다는 이견을 제시하는 학자도 있다.43) 그러나
실상염불선이란 청화만의 독특한 반야의 공관을 철저하게 통달해서
제법실상의 공(空)한 도리를 체득하라고 강조한 용어다. 실상44)은 제
법이 공한 이치이고, 염불이 바로 참선이어서 둘이 아니라는 의미를
42) 심즉시불(心卽是佛)과 본래시불(本來是佛)의 내용
心
卽是=空=淸淨無爲心=本來心眞如, 如來, 如來藏, 涅
槃, 菩提, 法, 中道, 法性,
法界, 實相, 大我, 眞我,
主人公, 本來面目, 眞諦,
第一義諦, 甚麽物, 極樂,
本覺, 淨土
淸淨法身毘盧遮那佛虛空心界陀
圓滿報身盧舍那佛 淨滿性海 彌 佛
千百億化身釋迦牟尼佛漚相衆生阿
43) 한보광, 「純禪時代의 念佛禪에 대한 몇 가지 문제」, ?정토학연구? 18,
2012, pp.45-49 참조.
44) 청화대종사 저, ?실상염불선?, 서울: 광륜출판사, 2012, pp.177-179 참조.
정토 염불과 실상염불선 / 정광균(법상) 269
드러낸 염불선이다. 따라서 염불과 참선이 다르다는 견해에서 구분하
는 것은 청화의 본래 의도를 왜곡하는 것이다. 청화는 애초에 염불과
참선을 구분하지 않고 조사선의 수행방법을 회통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반드시 갖추어야할 수행의 내용에서 ‘본래시불(本來是佛)’이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자기의 소질과 성향에 따라서 수행방법을 선택해서
간절하고 절실하게 끊임없이 불퇴전의 정진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것은 어떤 측면에서 인간의 삶을 수행으로 삼아
살아가라는 것이라 하겠다. 말하자면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생활이 바
로 수행과 직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상염불선의 체득은 어떻게 수행해야 가능한가? 이는
매우 중요한 과제다. 이미 우리는 그 체득할 내용의 이치와 진리를
간파하였고, 이제 실제로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시키느냐이다. 이
것은 바로 즉심염불(卽心念佛)과 본원염불(本願念佛), 그리고 지혜염
불(智慧念佛)이다. 여기서 즉심염불은 마음에 부착해서 부처를 관조
하는 염불이고, 본원염불은 아미타불의 제18대원인 본원 45)을 믿고 의
존해서 칭명염불을 통해 아미타불의 본질에 계합하는 공덕성취다. 다
시 말해서 사람의 긍정마인드를 활용한 인력으로 진여불성인 생명의
실상을 간절하게 각인하고 흠모하면서 부처님의 명호를 외우고 아미
타불의 본원에 편승하는 것이다. 지혜염불은 아미타불의 광명이 바로
진실하고 원만한 지혜이기 때문에 아미타불이란 명호를 외우는 것이
지혜염불이라는 것이다.46) 왜냐하면 아미타불의 광명은 지혜이고 지
45) 청화 역주, ?淨土三部經?, 서울: 광륜출판사, 2007, p.82,; 청화대종사 저, ?실상염불선?, 서울: 광륜출판사, 2012, pp.180-181을 참조하면 "제가 부
처가 될 적에, 시방 세계의 중생들이 저의 나라에 태어나고자 신심과 환
희심을 내어 제 이름(아미타불)을 다만 열 번만 불러도 제 나라에 태어
날 수 없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라고 원에 대해서
선도대사(613-680)는 극락세계에 태어날 수 있는 염불이고, 아미타불의
본원의 행이며, 아미타불을 찬양하는 것을 本願功德聚라고 하였다.
46) 청화대종사 저, ?실상염불선?, 서울: 광륜출판사, 2012, pp.179-18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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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는 아미타불의 생명이기 때문에 염불이 바로 생명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즉심염불(卽心念佛)에 대해서 좀 더 살펴보면 유심(唯心)이
아미타불이고, 내 몸이 정토라고 알아서 관조하면서 자기 마음 가운
데 부처를 염한 것을 일컫는다. 마음은 법계에 두루 편만하여 아미타
불은 10만억 불토를 지나서 있다고 방편을 설하지만, 오히려 나의 마
음에 부처가 드러난다고 알아차림이 중핵이다. 왜냐하면 본래 우리
마음의 본성은 청정한 부처의 법체인데 무명(無明)의 번뇌에 가려졌
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는다. 그 드러나지 않는 것을 일컬어 10만억
국토나 떨어져 있다고 했을 뿐이다. 그래서 ?관무량수경?에서 “시심
작불(是心作佛)이면 시심시불(是心是佛)”이라고 하였다.47) 왜냐하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이고, “불신은 법계에 충만하여, 일체중생들
앞에 두루 나타나니, 인연을 따라 나아가서 감응함이 두루하지 않는
것이 없지만, 그러나 이는 깨달음의 자리에 항상 거처하네.”48)라는
불신이 법계에 충만하기 때문에 진리에 계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바로 ?관무량수경?의 제8 상관(像觀)에 설해진 문구로 마음과
부처가 동체로서 마음 외에 부처가 없다고 이해하여 마음을 따라서
부처를 관하라고 설한 것이다. ?관무량수경?에서 부처를 관하는 것은
마음을 따라서 부처를 관함으로서 본래 구족한 아미타불의 의보와
정보를 관하여 내 마음의 본성에 훈습하고 관이 이루어지면 곧 본래
구족한 일념삼천이 진정으로 드러난다. 이것이 바로 관상과 칭명을
쌍수(雙修)하는 염불이다. 이러한 내용은 바로 사명지례(四明知禮:
960∼1028)가 말한 즉심염불이고 삼제가 원융한 중도실상의 안심결정
의 실상염불선이다.49)
여기서 수행자가 처음에 염불하는 그 체계는, 먼저 칭명염불로 시
47) 청화대종사 저, ?실상염불선?, 서울: 광륜출판사, 2012, p.179 참조.
48) 實叉難陀譯, ?大方廣佛華嚴經? 卷六, 「如來現相品」第二(大正藏10, 29.
하), “佛身充滿於法界,普現一切眾生前,隨緣赴感靡不周,而恒處此菩提座”
49) 청화대종사 저, ?실상염불선?, 서울: 광륜출판사, 2012, pp.179-180 참조.
정토 염불과 실상염불선 / 정광균(법상) 271
작해서 관상(觀像)염불을 수행하고 이어서 관상(觀想)염불로 나아가
실상염불을 수행한다. 그러면서 모든 수행에서 칭명염불을 겸수하는
것이다. 즉 색신염불에서 법신염불로, 법신염불에서 실상염불로 점차
깊은 본질적 상태에 접근하는 것이다. 그래서 수행자는 삶의 현장에
서 헐떡이는 마음을 내려놓고 푹 쉬면서 노는 입에 염불함에 삼라만
상의 두두물물이 나와 별개가 아니라고 자각하면서 끊임없이 염불하
는 것이다. 실상염불선의 수행으로 진리를 깨닫는 중핵이 되는 지침
인 「보리방편문」에서,
마음은 허공과 같을 새, 한 조각구름이나 한 점 그림자도 없이 크고
넓고 끝없는 허공 같은 마음세계를 관찰하면서 청정법신인 비로자
나불을 생각하고, 이러한 허공 같은 마음세계에 해와 달을 초월하는
금색광명을 띤 한없이 맑은 물이 충만한 바다와 같은 성품바다를
관찰하면서 원만보신인 노사나불을 생각하며, 안으로 생각이 일어나
고 없어지는 형체 없는 중생과 밖으로 해와 달과 별과 산과 내와
대지 등 삼라만상의 뜻이 없는 중생과 또는 사람과 축생과 꿈틀거
리는 뜻이 있는 중생 등의 모든 중생들을 금빛 성품바다에 바람이
없이 금빛파도가 스스로 뛰노는 거품으로 관찰하면서 천백억화신인
석가모니불을 생각하고, 다시 저 한량없고 끝없이 맑은 마음세계와
청정하고 충만한 성품바다와 물거품 같은 중생들을 공(空)과 성품
(性)과 현상(相)이 본래 다르지 않는 한결같다고 관찰하면서 법신[法
身;陀]ㆍ보신[報身;彌]ㆍ화신[化身;阿]의 삼신(三身)이 원래 한 부처인
아미타불을 항시 생각하면서, 안팎으로 일어나고 없어지는 모든 현
상과 헤아릴 수 없는 중생의 덧없는 행동들을 마음이 만 가지로 굴
러가는 아미타불의 위대한 행동 모습으로 생각하고 관찰할지니라. 50)
50) 청화대종사 저, ?실상염불선?(서울: 광륜출판사, 2012) pp.29-30; 청화선
사의 번역 釋金陀著ㆍ淸華編, ?金剛心論?(서울: 광륜출판사, 2009)
pp.58-59에 기재하고 있다.
272 淨土學硏究 29집(2018. 6)
라고 제시하였다. 이것을 사경하면서 외우고51) 마음에 되새기면서 끊
임없이 수행해 나아가면 보리의 방편문이 바로 내 삶으로 연결되는
것이다.52) 그러면 인행(因行)의 삼매와 과성(果成)의 삼매를 성취한
다. 다시 말해서 인행삼매는 일심(一心)으로 부처님의 명호를 일컫든
지 일심으로 부처님의 상호를 관하던지 또는 일심으로 부처님의 법
신의 실상을 관조하여 수행한 결과가 염불삼매이다. 과성삼매는 인행
의 염불삼매가 성숙되면 마음이 선정에 들어가거나 혹은 시방의 부
처님이 수행자 앞에 나타나거나 혹은 삼신일체의 실상에 계합하는
숙독요의(熟讀了義)하여 관이염지(觀而念之)하는 것이다.53)
따라서 수행자에게 있어서 자기 적성에 걸맞은 열린 마음으로 수
행방법의 구심점을 채택하는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목적이
열반의 평화와 행복이듯이 수행방법에서도 이에 준해서 깨달음을 관
통한 해탈열반이 지상목적이고 지상명령이라고 다짐하여 수행하는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자기 적성에 맞추어 채택하고
살아가면 그것이 가장 빠른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다만 인간은 본
래 본질이 진여불성의 존재임을 확고하게 믿고 간절하고 절실하게
수행하면 그 자체가 열반이고 행복의 조건이다. 나아가 우리는 본래
51) 보리방편문의 독해방법(사단법인 참수레 참조)
소리 내용
보기 빠르기
目讀; 보고 읽기 暗毒; 외워 읽기
徐讀; 서서히 또박또박
速讀; 빠르게 또박또박
連讀; 끊이지 않고 빠
르게
有
聲
高聲고성목독 고성암독
中聲중성목독 중성암독
微聲미성목독 미성암독
無
聲
動說동설목독 동설암독
靜說정설목독 정설암독
52) 「보리방편문」의 수행의 내용은 먼저 ?반야심경?의 신해행증(信解行證)으
로 숙독요의(熟讀了義)하여 제법개공(諸法皆空)의 이치를 신증심오(身證
心悟)한 다음에 사단법인 「참수레」를 참고하여 여실하게 관이염지(觀而
念之)를 수행하여 체득한다.
53) 청화대종사 저, ?실상염불선?, 서울: 광륜출판사, 2012, p.182 참조.
정토 염불과 실상염불선 / 정광균(법상) 273
성불하였다는 것을 확신하는 삶이 바로 열반의 세계인 정토의 구현
이라고 하겠다.
이상에서 실상염불선의 실천과 체득은 바로 우리의 삶에 적용시켜
살아가는 것이다. 수행자는 「보리방편문」을 베껴 쓰고 외워서 그 내
용을 일상생활에 적용시켜 살아가는 것이다. 다만 수행자는 진여불성
을 구족한 본래부처이기에 이것을 확신하고 확인하는 것이 바로 우
리네 삶이고 수행이다. 그러므로 해서 우리는 언제나 해탈열반의 상
태를 유지하여 행복한 환경을 조성한 정토를 구현하는 것이다.
Ⅲ. 나가는 말
이상과 같이 ‘정토 염불과 실상염불선’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여기
서 정토는 반야지혜로 본래 자성이 청정한 마음을 체득하여 삶의 현
장에 실현하는 것이다. 불교의 모든 수행방법은 다양하지만 본 논문
에서는 염불과 실상염불선에 대해서 고찰하였다. 염불의 목적은 왕생
이고 왕생은 삶의 현장에서 수행자가 본래 진여불성을 발현하는 것
이다. 그 방법에는 칭명(稱名)과 관상(觀像), 관상(觀想), 실상(實相)
등의 염불이 규봉종밀로부터 유래하였음을 고찰하여 두 선지식이 주
창한 실상염불선의 체득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에 대해서 다시 간
략히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금타와 청화는 염불수행의 목적인 왕생정토에 대해서 법계가
나와 불가분리(不可分離)한 연기적 관계 속에 동체라는 자각을 통해
최상의 가치를 부여하였다. 이러한 실현은 염불수행을 통해서 가능하
다고 역설함을 고찰하였다. 왕생의 전제는 신원행(信願行)인 믿음과
발원, 그리고 염불이다. 왕생은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하나는 실제로
274 淨土學硏究 29집(2018. 6)
정토에 왕생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현생에서 수행자 자신이 바로
진여불성의 법성정토인 본래불임을 자각하는 것이다.
다음은 사종염불(四種念佛)에서 지향한 왕생은 방편과 실상으로 분
류하고, 그 본질은 같은 것임을 고찰하였다. 일반적으로 참선에서는
주로 상상근기(上上根者)만을 위한 수행이라고 한다. 하지만 정토문
에서는 하나의 염불하는 수행방법으로부터 무상(無上)의 대도를 모두
깨달아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근기가 하열한 사람이라도 칭
명(稱名)염불과 관상(觀像)염불, 관상(觀想)염불, 실상(實相)염불 등의
수행방법 중에 어느 하나의 방편을 써서 실상의 제법을 통달하는 것
임을 고찰하였다.
끝으로 청화가 주창한 실상염불선의 실천과 체득은 바로 우리의
삶에 적용시켜 살아가는 것이다. 수행자는 「보리방편문」을 베껴 쓰고
외워서 그 내용을 일상생활에 적용시켜 살아가는 것임을 고찰하였다.
다만 수행자는 진여불성을 구족한 본래부처이기에 이것을 확신하고
확인하는 이것이 바로 우리네 삶이고 수행이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
나 해탈열반의 상태를 유지하여 행복한 환경을 조성한 정토를 구현
하는 수행이 바로 우리네 삶이라는 것에 대해서 논하였다.
이상과 같이 우리네 삶의 방식 가운데 염불수행을 채택하여 살아
가면 우리는 언제나 행복한 환경을 조성하여 정토를 나의 일상생활
공간에 실현할 수 있다. 정토는 저 먼 곳에 있기도 하지만, 우리네 마
음에 십악팔사가 없으면 그것이 바로 정토이고, 행복한 열반의 실현
이다. 사람이 살아서 행복하고 평화를 유지한다면 바로 죽어서도 행
복한 열반의 평화를 이룰 것이다. 우리가 살아감에 중요한 것은 금타
와 청화가 강조하였듯이 우리는 본래부처임을 확실하게 믿고 간절하
고 절실하게 염불을 끊임없이 수행한다면 그 자체가 열반이요, 평화
이며, 행복이다.
정토 염불과 실상염불선 / 정광균(법상) 275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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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 淨土學硏究 29집(2018. 6)
Abstract
The Pure Land Buddha-Chanting and the True Nature Chanting
Meditation
Jung, Kwang-gyun(Bup-sang)
(Joong-Ang sangga Univ.)
In this paper, we investigate the Buddhism and the true nature
chanting meditation. The purpose of the Buddha-chanting is the
crown, and the crown is the manifestation of the original nature of
the performer in the field of life. Buddha-name, Buddha's image,
Buddha's virtue, Buddha-nature, Buddha-chanting examined the true
nature chanting meditation which was advocated by two prepositions.
First, Gutta and Cheonghwa examined the fact that the Buddhist
priest was able to do the Buddhist priesthood through the Buddhist
practice through the awareness of the flesh in the actual relation that
can not be separated (inseparable) from the priest of the Buddha. The
practice of Jodo is a faith, an origin, and a prayer. Next, we
considered that the elementary Buddhist priest is divided into a
method and a reality, and that the essence is the same. Finally, the
actual practice of Cheonghwa advocated is to practice and acquire the
Buddhist sutra, and apply it to our lives. The practitioner thought that
he copied and wrote the "Bodhiupayamoon" and applied the contents
to his daily life.
Key words
The pure land/ the name of Amita buddha, the true nature
정토 염불과 실상염불선 / 정광균(법상) 277
chanting meditation, Gumta, Cheonghwa, Buddha-chanting,
Buddha's image, Buddha's virtue, Buddha-nature, Bodhiupaya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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