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여년 만에 중국에 나타난 통일 왕조. 이것은 그동안 고구려를 중심으로 했던 동아시아의 질서에 새로운 위협을 의미했다. 새롭게 세력을 키우려 하는 수나라와 전통의 강국 고구려. 두 나라 간에 긴장감이 높아갈 무렵, 수나라로부터 한 장의 국서가 날아들었다.
"넓은 하늘 밑은 다 짐의 신하가 되는 것이니, 이제 고구려왕을 내쫓고 관리를 보내 다스리고자 한다. 그러나 왕이 이제라도 마음을 고쳐먹고 행실을 바꾼다면 짐의 좋은 신하이니 어찌 달리 관리를 두랴. 짐이 왕의 허물을 문책하려 한다면 장군 하나만 보내도 족하지만, 그래도 개과천선할 기회를 주려하니 왕은 반드시 짐의 뜻을 알고 스스로 많은 복을 구하도록 하라." - <수서>
수나라의 황제인 문제가 고구려왕을 신하로 칭하며, 수나라에 굴복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고구려가 마치 자신들의 속국인양 거만한 태도를 취한 이 국서는, 사실상 수나라의 선전포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이 같은 수나라의 행동에 대해, <조선상고사>에는 당시 고구려의 상황을 전하는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기원전 597년은 고구려 영양왕 8년이요, 수의 문제가 진을 병합하여 중국을 통일한지 17년 되는 해이다. 수는 이즈음에 고구려와 자웅을 다투고자 고구려를 지극히 업신여기는 내용의 오만하기 이를 데 없는 글을 보내왔다. 영양왕이 이 모욕적인 글에 크게 노하여 여러 신하들을 모아 회답의 글을 보낼 것을 의논하니, 강이식이 이같이 오만무례한 글은 붓으로 회답할 것이 아니라 칼로 회답할 것입니다 하고 곧 개전하기를 주장하였다."
수 문제의 국서가 온 이듬해인 598년. 고구려의 군대는 요하를 건너 수나라로 진격한다. 고구려와 수나라의 16년 전쟁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2. 전쟁 원인
(1) 조양지역의 중요성
수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출발한 고구려 군대는, 요서로 향한다. 목표가 된 지역은 영주. 지금의 조양이었다. 고대에 조양은 여러 나라가 쟁탈전을 벌인 요지였다. 조양이 중요했던 첫 번째 이유는 경제적인 이권 때문이었다. 6세기 무렵, 조양에는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큰 국제시장이 들어서 있었다. 조양을 차지하게 되면, 이처럼 거대한 시장권과 교역권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곳은 동북아시아를 분할하고 있던 각 나라간의 세력 다툼에서도 중요했다. 특히 고구려와 수나라에 있어서, 영주(지금의 조양)를 중심으로 하는 요서 지역은 완충 지대인 동시에 끊임없는 충돌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공간이었다. 요서를 장악하는 것이 곧, 세력의 확장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조양은 진출 내지는 반드시 장악해야만 하는 곳으로 그렇지 못하면 다음단계에 본토나 내륙이 침범 내지는 위협을 받을 수 있는 전략적인 공간이다. 차지를 안 하면 반드시 그보다 몇 배의 댓가를 치를 수밖에 없고 거기를 잃는다는 것은 곧바로 경계선이 안으로 후퇴하게 되는 그런 의미를 갖고 있었다. 그러니까 진출과 방어라고 하는 의미에서 조양은 대단히 의미가 중요한 곳이었다. - 이성제 교수(전쟁기념관 선임연구원)
그런데 수나라가 등장하기 전까지, 요서는 고구려의 세력권 아래 있었다. 597년 수 문제가 보낸 국서에도, 이 같은 정황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 있다. 당시 요서가 고구려의 영토는 아니었지만, 고구려는 이곳을 차지하고 있던 말갈과 거란에 대해 지배력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요서지방이 고구려의 세력권이었다는 또 하나의 증거는 고구려성의 존재다. 중국의 사서인 <자치통감>에는, 요수 서쪽에 고구려 성 무려라가 있다고 기록돼 있다. 고구려가 이 성에서, 요수를 건너는 자들을 감시했다는 것이다.
중국남북조시대 때 고구려는 요동을 거의 다 장악했었고 요서는 고구려 영토는 아니었지만 소수민족이 지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수민족의 힘이 약했기 때문에 영주를 중심으로 한 요서지방이 고구려의 영토는 아니지만 그 세력권 아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 왕소부 교수(북경대 사학과)
중국의 역사서 신당서는 조양의 옛 지명인 유성에 고구려 시장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이곳 유성에서 고구려는 북방민족에게 농산물이나 철을 수출하고 말과 가죽류를 수입했다. 중국과는 말, 황금, 화살 등을 수출하고 비단 장신구등을 수입했다. 중개 무역권도 고구려가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6세기 후반, 수나라가 고구려의 지배 아래 있던 요서지방의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하였다. 수나라의 거점이 된 곳은, 전략적 경제적 가치가 높은 조양이었다. 583년, 수나라는 조양의 소수민족 세력을 토벌한 뒤 영주 총관부를 세운다. 이후에 문제는 넷째아들 양을 병주 총관으로 임명한 뒤 52주를 다스리게 하고, 여기에 영주를 포함시켰다. 수나라 4대 총관의 하나였던 병주의 군사력이 영주총관을 직접 지원할 수 있게 함으로써, 영주의 군사력을 키운 것이다. 당시 이미 개전논의가 한창인데 수나라가 갑자기 확장 증강하는 것을 보고 고구려는 위협을 느끼게 되었고 598년, 고구려의 영주 공격은 수나라가 요서의 지배권을 넘보도록 묵과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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