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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군사이야기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4/blog.daum.net/bluros

604년 수 양제가 즉위하자 고구려 정벌론이 다시 대두하게 되었다. 양제에게 고구려 원정의 명분을 제공해 준 것은 백제와 신라가 수에게 고구려 출병을 요청한 것이었다. 이즈음 한반도 안에서는 한강 유역의 지배권 쟁탈을 둘러싸고 삼국 간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리하여 고구려와 적대관계에 있던 백제 무왕(武王)이 607년에 사신을 수에 보내 고구려 출병을 요청하였다. 다음해인 608년 신라의 진평왕도 수에 고구려 원정을 제의하였다. 이에 수 양제는 고구려 정벌에 대한 명분을 가지게 되어 고구려 정벌계획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한다.

     수양제는 고구려 정벌에 앞서 변방의 수비를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만리장성을 보수하는 대공사를 벌인다. 그리고 대대적인 신무기 개발을 명령하였다. 당시 개발된 공성무기에는 소차, 전호피차, 발석차, 운제, 당차, 팔륜누차 등이 있었다. 소차는 엘리베이터처럼 움직이면서 성안의 동태를 살피는 정찰용 차량이다. 전호피차는 성벽 가까이에 접근해서 땅을 팔 수 있도록 만든 장갑무기이다. 터널을 만들어서 성안으로 몰래 진입하려 한 것이다. 발석차는 수백가닥의 줄을 한꺼번에 잡아당겨서 거대한 돌을 날려 보내는 무기이다. 운제는 높은 성벽을 오르기 위해 40미터의 사다리를 펼칠 수 있도록 고안한 무기다. 당차라는 강력한 무기도 개발됐다. 당차는 거대한 쇠망치를 앞뒤로 흔들어 성벽이나 성문을 파괴한다. 또 수십 명의 군사가 함께 싸울 수 있는 팔륜누차도 개발했다.

     그리고 610년 1월에 대운하가 완성되었다. 이것은 동도의 낙양을 중심으로 북쪽은 탁군, 남쪽은 여항에 이르는 전장 2천Km의 남북을 연결하는 대공사로, 이를 통하여 전국 각지에서 소집된 군사들과 전쟁물자들이 탁군으로 소집되었다. 이러한 4년여의 준비 끝에 612년 정월 113만 3천 8백 명의 대군이 탁군을 출발했다. 군량을 수송하는 인원은 그 2배에 달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