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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야기

송⋅원 화본소설에 투영된 민속신앙으로서 인과응보 고찰/박완호.전남대

송⋅원 화본소설에 투영된 민속신앙으로서
인과응보 고찰




< 目 次 >
1. 들어가는 말
2. 민속신앙으로서 선악유보와 인과응보의 결합
3. 여의치 않는 현실을 추스르는 매체로서의 인과응보
4. 나오는 말

1. 들어가는 말
인류는 수많은 시련과 고난을 겪으면서도 자신이나 집단의 생존과 안녕을 갈구하며 기나
긴 역사를 이어왔다. 그러는 동안 소원처럼 그렇게 되지 않는 상황들을 사람들은 기꺼이 수
용하는 동시에 심지어 합리화하려는 방식들을 생각해 내었다. 만물유령설(萬物有靈說)과
영혼사상(靈魂思想), 선악유보(善惡有報)와 권선징악(勸善懲惡) 등이 이러한 방식이자 관
념들이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위로하는 한편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함에도
그 마땅함이 실현되지 않는 현실에 대해 지속적으로 회의(懷疑)하거나 심지어 해결의 실마
리를 찾지 못하는 답답함으로 절망하였다. 그렇다고 삶의 현장을 포기할 수 없는 일반대중
들에게 인과응보(因果應報)와 삼세인연(三世因緣) 등으로 무장한 불교의 동진(東進)은 오
랫동안 해결할 수 없었고, 이해되지 않았던 답답하고 절망스러운 현실의 제반현상들에 대해

일정 부분 답을 내 놓았다.
인과응보는 사람들의 도덕 신앙적 역량을 공고히 한다는 차원에서 중국 전래의 선악유보
관념과 너무도 흡사하다. 이런 이유로 불교의 토착화를 위한 방편인 격의(格義)의 과정을
경과하면서 선악유보와 인과응보는 상호 흡수되어 더 이상 다른 개념이 아닌 동일한 목표를
추구하는 이원동류(異源同流)로 대중들에게 다가섰다. 격의를 통해 하나 된 인과응보와 선
악유보는 더 이상 특정 종교의 믿음이나 사상으로서가 아니라 대중들에게 현실적 삶의 가치
를 부여하는 보편적인 믿음인 민속신앙으로 자리하였다. 때문에 대중들은 인과응보에 대한
믿음이 신앙적 행위인지 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민속신앙이 그러하듯 극히 현실적이고 실용
적인 차원으로 접근하고 해석하였다. 이러한 경향으로 인해 인과응보는 후세의 문예작품 중
여의치 않는 현실에서 구체적인 효험을 제시하는 매체로 활용되었다.
본고에서는 인과응보가 특정 종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대중들의 희망과 기대를 현실적
으로 충족시키는 보편적인 믿음인 민속신앙1)으로 자리 하였음을 전제로 어떻게 문예에 투
영되었는지 송⋅원 화본소설을 통해 확인하고자 한다. 굳이 송⋅원 화본소설을 텍스트로
택한 것은 누구나 주지하다시피 송⋅원 화본소설은 문예가 특정계층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일반 대중들의 삶의 모습을 그려내기 시작한 시점의 산물이라는 점에 주목하였기 때문이
다. 송⋅원 화본소설 출현이전 문언소설 작가들의 창작은 소일거리 측면이 강하였지만, 설
화예인이나 서회(書會)의 문인들이 대부분인 화본 작가들은 생계를 위해 창작활동에 참여
하였다. 때문에 돈벌이를 위해 대부분이 일반대중 집단인 독자나 청중들의 흥미와 만족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강렬한 오락성과 대중의식을 담아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오락성과
대중의식의 중요한 작용을 일으키는 것이 바로 대중들의 신앙 관념인 민속신앙이다.2) 때
문에 화본소설의 주요한 이야기거리로서 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강사(講史)
류나 여타 유형의 화본소설까지도 민간신앙에 근거한 것들이 적지 않다. 이러한 측면에서
송⋅원 화본소설 텍스트의 고찰을 통해 민간신앙으로서 인과응보에 대한 대중들의 사유 형
태와 인과응보의 작품내적 전개 양상을 확인하려고 한다. 이는 필자가 이전 논문3)에서 밝
혔던 유⋅불⋅도(儒⋅佛⋅道) 삼교(三敎)에 집중되어 민간문학의 주체 의식과 사상적 성향


1) 개방성과 비계통성을 본질적 특징을 바탕으로 여타 종교의 사상들까지 흡수하여 생활 속 믿음으
로 민중들의 생활 속 습속이 되어 버린 민속신앙에 관한 논의는 拙稿, <현실과 이상을 넘나드는
황금키 민속신앙>(《中國小說論叢》 第31輯, 2010年 3月, 179-207쪽)를 참조.
2) 朱迪光, <民间信仰与中国小说的演变>(《东亚人文学》 第3辑, 东亚人文学会编, 2003년), 169-170쪽.
3) 졸고, <현실과 이상을 넘나드는 황금키 민속신앙-송⋅원 화본소설에 나타난 영혼신앙과 민물유령
설>(《中國小說論叢》 제31집, 2010, 3. pp179 - 20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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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분석하였던 기존 연구의 틀에서 벗어나 민속신앙 역시 삼교처럼 대중들의 삶과 사유체계
를 결정하는 요소로 자리하고 있었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2. 민속신앙으로서 선악유보와 인과응보의 결합
고대 중국인들은 위대한 자연의 변화무쌍함이 가져다 준 수많은 시련과 고난으로부터 스
스로 나약한 존재이며,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대자연의 기이한 현상과 위력에 마냥 두려워
하는 많은 자연물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지하였다. 자연 현상에 대한
공포는 그 자연만물을 주관하는 하늘에 대한 경외심과 그 경외로부터 신변에 일어나는 자신
도 어쩌지 못하는 일들 그 모두를 하늘이 주관한다는 ‘천명(天命)’관이 잉태되었다. 천명은
누구도 거역하거나 거역할 수 없다는 숙명(宿命)론과 숙명에 따라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운명(運命)론으로 이어졌다. 이는 오랜 역사속의 체험을 통해 확립된 관념으로, 모든 사람
의 바람이나 소원대로 그렇게 되어져야 함에도 그렇게 되지 않는 상황을 이해하고, 여의치
않는 인간 자신의 삶을 합리화하려는 방식의 산물이다.
열심히 일한 사람은 그 노동의 대가로 더 풍요로운 삶을 누려야하며, 일하지 않는 자는
상대적으로 궁핍한 삶을 살아야 한다. 또한 착한 일을 행하면 좋은 결과가 나쁜 일을 행하면
그에 상응하는 좋지 않은 결과가 따라야 한다는 것이 인간 누구나 갖는 보편적 가치이자
생각이다. 이러한 보편적 사고가 실현되지 않을 경우, 사람들은 삶에 회의를 느끼거나 심지
어 절망하기에 이른다. 그럼에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삶을 붙잡으려는 인간의 의지는 보편
적인 사고로 이해하기 힘든 상황을 수용할 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갈구한다. ‘사람
의 일을 다 한 후에 하늘의 명을 듣는다(盡人事而聽天命)’거나, ‘일을 꾀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렸지만 일의 성사는 하늘에 달렸다(謀事在人, 成事在天)’거나 혹은 ‘생과 사는 명에 달려
있고 부귀는 하늘에 달려 있다(死生有命, 富貴在天)”라고 하는 인명(認命: 운명으로 여긴다)
이 바로 그것이다. 인명은 결코 개인적인 분발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불가사의하고
불가항력적인 당면한 상황에 대한 해석일 뿐이다. 즉, 불합리한 현실의 이해를 바탕으로 현
실적 삶을 위로하는 차원으로 사람들의 도덕적 자율을 환기시킴으로써 사람들에게 자각적
으로 악을 피하고 선을 추구하도록 한다. 이는 세상을 인도하고 교화한다는 종교의 윤리 사
명 의식을 구현한 것이자 사회 규범에 대한 광범위한 심리적 기대를 반영한 것이다. 또한
일종의 도덕 사유로 “하늘의 도는 선을 상주고 음탕함을 징벌한다(天道賞善而罰淫<國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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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나 “화복은 선악에 따른다(禍福隨善惡 <韓非子>)”는 등의 실천을 강조한 도덕 사유의 체현
이다.
사람들의 도덕 신앙적 역량을 공고히 하였다는 차원에서 선악유보는 불교의 인과응보 관
념과 너무도 흡사한 기능을 지니고 있다. 더욱이 불교는 중국 토착화 과정에서 기존의 중국
전통사상을 빌어 불교 사상을 중국인들에게 관념화 시키는 격의(格義)를 진행하였다. 이는
중국 전통사상과 불교사상의 일정 부분 혼재를 초래하는 계기가 되었다. 비단 유교와 불교
뿐 만아니라 유교와 불교 도교 상호간에 작용(三敎論爭)하여 삼교의 사상적 혼재 상태인 삼
교합일(三敎合一)에 이르게 되었다.4) 결국 이에 대한 유가의 반발로 송대에 이르러 신유학
(新儒學)이 출현하게 되었다. 사상적 혼재를 통해 선악유보와 인과응보는 이원동류(異源同
流)로 인식되면서 이전부터 몸에 걸쳤던 옷처럼 익숙하고 보편적인 사유체계로 대중들의 삶
과 함께하였다.
고대 중국인들의 보편적인 생사관에서 영혼의 최종 귀착지는 누구나 공감하는 저승이며,
염라대왕이 이곳을 주관한다. 이승을 떠난 사람은 누구든지 孟婆婆(맹 노파)5)가 제조한 미
혼탕(孟婆湯: 영혼의 기억을 잃게 하는 저승의 탕약)을 먹고 전생의 좋고 나쁜 모든 기억들
을 잊게 된다. 기억을 상실하지만 그러나 저승에서의 운명을 결정짓는 기준은 그가 생전에
행했던 선악의 행위이다. 선악의 정도에 따라 지옥이나 극락으로 가든지 아니면 인간으로
환생하게 된다. 선행과 악행에 따른 결과를 칭하는 선악유보는 불교의 핵심사상인 인과응보
와의 관계 속에서 이해되고 있지만, 불교의 유입이전부터 중국인들의 심성에 자리 잡고 있
던 중국 고유의 전통사상이다. 선악유보의 관념이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역경易經》의 “積
善之家, 必有餘慶, 積不善之家, 必有餘殃.(선을 쌓은 집은 반드시 경사가 있고, 불선을 쌓은
집에는 반드시 재앙이 있다)”6)에서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보응의 주체에 관한 것으로,
선악유보의 관념에서 보응의 주체는 자신이 아닌 가족이나 자손 혹은 집안이라는 것이다.


4) 兪晓红 《佛敎与唐五代白话小说硏究》, 人民出版社, 2006年, 358-362쪽.
5) 人死后阴间有一种汤叫“孟婆汤”, 喝下去就能忘掉尘世间的所有苦与愁⋅哀与乐. 人死后, 出了鬼门关就
是奈何桥. 奈何桥上, 守桥的婆婆姓孟, 她老早就做好了令人遗忘前世的汤药, 只要喝了她的汤, 前世的
宿怨将会忘记的一干二净, 来世重新做人, 不恋今世, 这汤人们称作“孟婆汤”. 맹노파는 망자가 전생의
일을 잊도록 하기 위해 약탕을 마시게 하는 신이다.
6) “积善之家 必有馀庆, 积恶之家 必有馀殃”은 六朝시대 吳나라의 遜皓가 불교의 포교 금지와 사찰
폐쇄를 명하자, 당시의 고승인 康僧會가 그를 만나 불교에 대해 선전하던 과정에서 인과응보를
선양하는 근거를 묻는 질문에 답하였던 문구로, 불교에서는 악을 행하면 지옥에 가서 오랫동안
고통을 받고, 선을 닦으면 극락에 가서 오랫동안 기쁨을 누린다고 설명하면서 《易經》의 본 구절을
활용하여 불교의 전파뿐만 아니라 사찰의 보존까지 가능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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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애써 선을 행하는 것은 자신이나 더 나아가 자손을 위해 공덕을 쌓게 하는 동인(動
因)이 되지만, 자신과 무관하다면 굳이 선을 행하려고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보응의 주체에
대한 사고와 논의는 정치 사회 경제적 여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삶의 형태와 가치관 등 다방면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확고한 상하위계질서를 바탕으로 사회적 안정을 추구하는 중국의 전통적 사고에 따라 사
회 정치 경제적 지위를 독점한 통치계층은 우월적 지위가 지속되기를 희망한다. 더 나아가
통치계층은 자신이 누리고 있는 현재의 상황이 후손들에게 연장되고, 피통치계층의 지속적
인 복종과 성실한 복무를 소원하며, 현재 보다는 미래, 자신 보다는 가족과 자손들에게 보응
이 미치기를 바란다. 반면 만족스럽지 못한 현실에 처한 일반대중들은 미래의 행복에 대한
환상이나 가족과 특히 자손들의 행복보다는 자신이 처한 현실적 고통에서 벗어나 자신의
행복한 삶을 희망한다. 이러한 양자 간의 희망에 대한 괴리현상은 사회적 안정기에는 별 문
제가 되지 않지만 정치 사회적 격변기에는 심각한 문제로 작용한다.
불교가 전래될 당시 중국은 안정기에서 혼란기로 전환하는 한말-위진남북조 시기였다.
격동기에 사람의 목숨은 쉽사리 경시되어,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지켜야만 했기에 윤리와
도덕은 중요한 것이 되지 못하였다. 더욱이 윤리적 도덕적 행위의 실천을 강조하며 안정기
에 사람들의 심성을 지탱하였던 유교는 급박한 생사문제에 대해 직접적인 답변을 회피하였
다. 도교 역시 현실과는 동 떨어진 불사(不死)의 신선을 꿈꾸며 환상의 세계를 피난처로 제
시할 뿐이었다. 별도의 피난처로 떠나지 못하고 현실 속에서 살아야만 했던 대중들에게 불
교만이 연기(緣起)에 의한 인과론(Causality)으로 보응설(인과응보)을 내세워 마음의 안식
을 제공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이승과 저승을 불문하고 업을 짓는 주체와 보응의 주체가 동
일한 인과응보를 현실적 존재인 자신의 안식을 위한 보편적인 사유체계이자 믿음으로 수용
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사람들은 현세나 내세에서 자신이 선한 보응을 받기 위해 선을 행하
고 쌓아야 한다는 적선(積善)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이에 따라 보응설에 적선 기능이
강화되었다.
적선 기능의 강화는 ‘외 심는데 외 나고 콩 심는데 콩 난다(種瓜得瓜,種豆得豆)’는 고착화
된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관념을 지닌 대중들에게 착한 사람이 화를 당하고 나쁜 사람이 영
화를 누리는 수긍하기 어려운 상황까지도 이해하게 하는 터전을 제공하였다. 즉, 목도된 사
실과 다른 보응의 전개를 현세가 아닌 전생의 행위에 따른 보응으로 이해하기에 이르렀다.
때문에 현실의 불평등을 수긍하는 동시에 현실에 대해 불만을 품거나 바꾸려하기 보다는
내세의 행복을 위해 현실에 순응하며 선을 쌓는 자세를 지니게 되었다. 물론 사회구조상 순
응하지 않고 불만을 표출할 뚜렷한 대안이 없기도 하였지만, 설혹 표출한다고 해도 해결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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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궁극적으로 절대적 봉건통치의 공고함을 바탕으로 수직적 윤리체계
를 수립한 유가의 윤리관에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용납되지도 않았다. 따라서
현실 정치의 불안을 만백성의 불행으로 간주한 유가는 정치적 불안 자체를 용인하지 않고,
세상의 안정을 위해 현실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입세(入世)주의를 지향하였
다. 반면 불교는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을 고해(苦海)로 간주하고 온갖 괴로움의 바다에서
벗어나 해탈을 추구하는 출세(出世)주의를 지향하였다.7) 입세주의와 출세주의는 근본적으
로 대립될 수밖에 없는 믿음의 체계이지만, 불편부당(不偏不黨)한 세상을 극복하고 사회적
정의가 실천되는 세상을 구현하기 위해 양자는 대립을 넘어 공동전선을 펼쳤다. 즉, 선인선
과(善因善果)와 악인악과(惡因惡果)의 실천을 한 목소리로 내었던 것이다.
불교의 중국 전입이전까지 중국인들의 사유세계를 점유하고 있던 유가는 선악유보에 따
른 권선징악의 당위성을 강조하였지만, 불교만큼 권선징악의 결과에 대해 뚜렷한 현상을 제
시하지는 못했다. 이는 불편부당할지라도 기존의 질서가 무너진 혼란한 현실은 더 큰 불행
으로 이어지기에 조금의 불편은 감내할지언정 문제 삼지 않는 현실 중심의 가치를 추구한
유가의 사유체계에 기인한다. 또한 현실적 고난을 극복하는 방편으로 미래지향적인 가치 체
계를 보여주었던 불교에 비해 자신의 내적 수양과 질서를 강조할 뿐 악에 대한 징계에 철저
하지도 치밀하지도 못한 측면을 노출시켰다. 반면 현세의 행복과 불행을 전생의 숙원(宿願)
과 업보(業報)로 규정한 불교는 현세의 업보에 따라 내세의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는 철저
한 인과률로 개개인의 행복과 불행을 설명하였다. 이 인과율이 바로 “전세-현세-래세”의 삼
세윤회(三世輪廻)이며, 삼세윤회의 동인(動因)이 바로 인과응보이다. 인과응보는 윤회처럼
불교의 교리를 대표하는 사상이지만, 불교만의 독자적 사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근본적으
로 인과응보는 불교 설립이전부터 존재한 인도의 오랜 사상으로, 불교가 자신들의 윤리체계
를 설명하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하였을 뿐이다.8) 부처가 인생의 현실적 문제에 대해 고민
하기 이전부터 존재하였던 수많은 사상 중 이미 존재하였던 해답 가운데 하나였던 것처럼
중국에서도 동일한 차원에서 현실적 문제에 대한 해답들이 불교 전래 이전부터 이미 존재하
였다. 단지 중국에서는 선악유보라 명칭 하였을 뿐이지 인과응보와 동일한 관념으로, 인과
응보는 선악유보에 비해 논리적이고 체계적인데 반해 선악유보는 삼세에 따라 윤회된다는
구체적인 논리적 사상체계가 없었을 뿐이다.
불교의 인과응보가 쉽게 일반 대중들에게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은 기왕에 존재하였던 중국


7) <유가의 입세주의와 불교의 출가주의에 대한 비교고찰>, 전희식, 학위논문(석사), 대구가톨릭대
학교, 2004.
8) 박찬두, 《불교문학입문》, 동화출판공사, 1991년, 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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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의 보응(報應)과 천인감응설(天人感應說) 그리고 승부설(承負說)9)이 토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토대를 바탕으로 선악유보는 불교의 십이인연(十二因缘)과 육도윤회(六
道輪會)와 결부되었고, 위진(魏晉)의 혼란기를 통해 비약적으로 대중화에 성공한 불교의 발
전에 따라 점차 삼세윤회의 논리로 체계화 되면서 대중들에게 널리 보급되었다. 결정적으로
당대이후 삼교논쟁(三敎論爭)을 통한 사상적 교류와 합류(三敎合一) 과정을 경과하면서 선
악유보와 인과응보는 하나 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리하여 인과응보는 더 이상 특정 종
교의 사상이라는 고착화 된 틀에서 벗어나 대중들이 믿고 의지하며 그들을 삶을 풍요롭게
하고 계도하는 보편적인 믿음인 민속신앙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러한 민속신앙으로서 인
과응보는 대중들의 삶과 이상이 표현된 초기화본소설의 이야기를 전개하는 주된 골간으로
작용하였지만, 그 이전부터 지괴(志怪)와 전기(傳奇)류 소설을 중심으로 한 문예작품에 투
영되었다.
불교의 영향을 받은 소설들은 일반대중들이 쉽게 수용할 수 있는 인과응보사상을 근간으
로 이야기를 엮었으며, 인간의 심리적 공포감을 자극하는 지옥의 형상 묘사가 이야기의 중
심에 있었다. 지옥은 비록 특정 종교의 신앙적 배경을 지니고 있지만, 불교의 대중화에 따라
불자(佛者) 여부를 떠나 누구나 쉽게 수용한 보편적 관념이었다. 이를 반영하듯 위진대의
“석씨보교서(釋氏輔敎書)”10)에는 대량으로 지옥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타난다. 유의경(劉義
慶)의 《선험기宣验记》, 왕염(王琰)의 《명상기冥祥记》, 안지추(颜之推)의 《원혼지冤魂志》,
후백(侯白)의 《정이기旌异记》 및 작가미상의 《상이기祥異記》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 대
부분은 불경이나 불상 관련 이적(異蹟)과 보응(報應) 및 감응(感應) 영험(靈驗) 등의 존재
사실을 기술11)함으로써 대중들에게 충격을 주어 신앙심을 환기시키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9) 착한 일을 하면 좋은 보응을 악한 일을 하면 나쁜 보응을 받는다는 보응관념이 들어 맞지 않는 보응
불일치에 해답을 시도한 도교가 현세의 불행을 선대의 과오로 돌렸던 이론이 승부설이다. 이는 도교
의 경전인 《太平经⋅解承负诀》에서는 “天地开闢以来 凶气不絶, 絶者而后復起, 何也? … 凡人之行,
或有力行善, 反常得恶, 或有力行恶, 反得善, … 力行善反得恶者, 是承负先人之过, 流灾前后积来此人
也. 其行恶反得善者, 是先人深有积蓄善大功, 来流及此人也.”(《太平经⋅解承负诀》, 王明编, 中华书
局, 北京, 1992)으로 정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적선자와 보응자의 불일치로 인해 사람들에게
적선을 적극적으로 유도하지 못하였고,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바로 불교의 삼세인연과 인과율을
바탕으로 한 인과응보설이다.
10) 释氏辅教之书는 魯迅이 《中国小说史略》 第6篇 六朝之鬼神志怪书(下) (동방출판사, 1996. 37
쪽)에서 “着录九家, 在子部及史部, 今惟颜之推 《冤魂志》 存, 引经史以证报应, 已开混合儒释之端
矣, 而余则俱佚. 遗文之可考见者, 有宋刘义庆 《宣验记》, 齐王琰 《冥祥记》, 隋颜之推 《集灵记》,
侯白 《旌异记》 四种, 大抵记经像之显效, 明应验之实有, 以震耸世俗, 使生敬信之心, 顾后世则或
视为小说.”이라 하여 불교포교 활동을 돕기 위해 쓴 책으로 제시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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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오계(五戒)와 육도윤회(六道輪回) 등의 불교 교의를 선전하기 위해 일반대중들이 쉽게
수용할 수 있는 인과응보의 인과율을 활용하여, 선악에 대한 상벌의 보편적 가치 실현을 제
시함으로써 대중들의 심리를 자극하였다.
현실적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면서도 사후세계에 대해 덤덤하였던 중국인들에게
사후세계의 한 단면으로 인과응보의 실천적 현장인 지옥의 제시는 사상불허의 세계로 충격
그 자체였다. 위진 소설 중 일부에서도 지옥을 언급하였지만, 석씨보교서의 그것과는 차이
가 있다. 즉, 죽어 다시 살아나는 서사구조를 채용하면서 부활 자체를 하나의 기이한 현상으
로 취급한 반면 석씨보교서는 부활한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사후 세계의 경험을 회상하는
서사구조를 상용하였다.
진의 조태는 자가 문화이고, 청하군 패구현 사람이다. ……나이 35세가 되었을
때, 갑자기 가슴에 통증이 오더니 곧 죽고 말았다. 주검을 땅에 두었는데, 심장은
따뜻하여 식지 않았고, (사지도) 마음대로 굽혀지고 펴졌다(움직이는 대로 움직였
다). 주검을 10일 동안 두었는데, 어느 날 아침, 목에서 빗비 오는 듯한 소리가 나더
니 얼마 후 소생하였다. 처음 죽었을 때부터 이야기를 하는데, …출 《명상기》. (晋赵
泰字文和, 清河贝丘人也, ……年叁十五时, 尝卒心痛, 须臾而死. 下尸于地, 心暖不已,
屈伸随人. 留尸十日, 平旦, 喉中有声如雨, 俄而苏活. 说初死之时,…出 《冥祥记》)12)
《명상기》에 실린 조태에 관한 이야기로, 갑자기 죽은 그는 죽은 지 10일 만에 부활한다.
부활 후 그는 흡사 먼 곳에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 여행을 경험담을 이야기 하듯 사후의 세계
를 사실감 넘치게 이야기한다. 그가 직접 목도한 사후 세계는 불교가 지향하는 이상세계인
서방극락정토가 아닌 공포 그 자체인 지옥이었다.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이 큰집 아래 앉아 차례대로 이름을 부르며 물었다. “살아
있을 적에 무슨 일을 했는가? 어떤 죄를 지었는가? 어떤 선행을 행하였는가? 너희
들 말을 헤아릴 테니 있는 그대로 말하라! 여기에서는 항상 육부의 사자들을 인간
세상에 파견하여 선악을 낱낱이 기록하여 상세한 상황이 갖추어져 있으니, 거짓말
을 해서는 안 되느니라.” 하였다. (有人着绎衣坐大屋下, 以次唿名, 问 “生时所事? 作
何孽罪? 行何福善? 谛汝等辞, 以实言也! 此恒遣六部使者常在人间, 疏记善恶, 具有
条状, 不可得虚.”)13)


11) 孙昌武, 《佛敎与中国文学》, 上海人民出版社, 1988年, 263쪽,
12) 李昉 等编, 《太平广记⋅卷377》, 文史哲出版社, 民国76年(1987), 2996쪽.
송⋅원 화본소설에 투영된 민속신앙으로서 인과응보 고찰 / 93


저승의 판관은 망자 본인이 생전에 짓은 업에 의거하여 그의 극락행과 지옥행을 결정한
다. 판관은 망자의 생전 행적을 모두 간파하여 기록한 보고서를 근거로 판결을 한다. 때문에
망자는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진실만을 고할 수밖에 없다. 확인된 사실은 인과응보
에 입각하여 착한 일을 한 자는 극락으로 향하지만, 악한 일을 한 자는 아비귀환의 지옥에
떨어진다.
후에 조태는 水官都督知诸狱事로 승진되어 병졸과 말을 받고 지옥의 순찰을 명
받았다. 그가 돌아 본 여러 지옥에서 겪은 고초는 각각 달랐다. 어떤 곳은 바늘로
사람들의 혀를 꿰뚫어 온 몸에 피가 흘렀고, 어떤 곳은 봉두난발을 한 체 맨몸과
맨발인 채로 끌고 가면서 큰 몽둥이를 든 자가 뒤에서 그들을 재촉했는데, 쇠 침상
과 구리 기둥을 벌겋게 달구어 놓고 그 사람들을 몰아가서 그 구리기둥을 끌어안거
나 쇠 침상 위에 눕게 하면, 다가가는 즉시 살이 타서 문드러졌다가 금세 다시 살아
났다. 또 어떤 곳은 뜨거운 화로에 커다란 가마솥을 얹고 불을 때서 죄인을 삶았는
데, 죄인의 몸과 머리가 부서져 떨어지면 끓는 물을 따라 마구 뒤집어졌다. 귀신은
작살을 들고 그 옆에 기대어 서 있었고, 300-400명의 사람들은 한 쪽에 서 있다가
차례대로 가마솥으로 들어가면서 서로 끌어안고 슬피 울었다. 어떤 곳은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높고 넓은 칼 나무가 있었는데, 뿌리와 줄기, 가지와 잎까지 모두
칼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사람들이 서로 헐뜯으며 마치 즐겁게 경주라도 하듯이 스
스로 붙잡고 올라가면 몸뚱이가 베어져 마디마디가 떨어져 나갔다. (后转泰水官都
督知诸狱事, 给泰兵马, 令案行地狱. 所至诸狱, 楚毒各殊; 或针贯其舌, 流血竟体; 或
被头露发, 裸形徒跣, 相牵而行, 有持大杖, 从后催促, 铁床铜柱, 烧之洞然, 驱迫此
人, 抱卧其上, 赴即焦烂, 寻复还生; 或炎炉巨镬, 焚煮罪人, 身首碎坠, 随沸翻转. 有
鬼持叉, 倚于其侧. 有叁四百人, 立于一面, 次当入镬, 相抱悲泣. 或剑树高广, 不知限
量, 根茎枝叶, 皆剑为之, 人众相皆, 自登自攀, 若有欣竞, 而身首割截, 尺寸离断.)14)
시뻘겋게 달구어진 쇠기둥과 쇠침대로 살이 타고, 끓은 가마솥에 들어가 살이 문드러지
고, 칼나무에 몸뚱이가 갈기갈기 찢겨지는 지옥의 형상은 생각만으로도 대중들에게 공포감
을 조성하기에 충분하다. 생전에 착한 일을 했으면 모르지만 혹시라도 생전에 나쁜 짓을 하
였다면 그 악업으로 지옥에 떨어져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형벌을 받고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
야 한다. 뿐만 아니라 육도(六道)15)를 윤회하는 가운데 인간으로 환생하지 못하고 축생이


13) 李昉 等編, 앞의 책, 3997쪽.
14) 李昉 等编, 앞의 책. 3997쪽.
15) 중생의 업인(業因)에 따라 태어나는 존재 양상 여섯 가지를 마하며, 높은 곳에서부터 시작하여
94 / 中國小說論叢 (第 35 輯)


나 아귀로 환생하여 결국 인간에게 자신을 희생하게 된다. 때문에 지옥에 대한 부활자의 경
험적 제시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선악보응의 후과(선보와 악보)에 대한 공포와 더불어
선의 강력한 실천을 권하는 효과를 지녔던 것이다. 이러한 지옥의 형상 묘사는 불경의 그것
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구사론俱舍論》, 《대지도론大智度論》, 《십팔지옥경十八地獄經》 등의
경전에 묘사된 지옥은 고대 인도의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人惡果)에 따른 윤회
관념을 받아들여 생사를 반복하는 세계로서 지옥⋅아귀(餓鬼)⋅축생(畜生) 아수라(阿修
羅)⋅인간⋅천상의 6도(六道)를 상정하고 있다. 이 지옥에는 근본지옥으로서 8열(八熱: 八
大)과 8한(八寒)지옥이 있으며, 8열지옥의 주변에는 각각 16유증(遊增)지옥이 있다. 8열
지옥은 죄인이 서로 죽이며 고통을 받다가 찬바람이 불어 살아나면 다시 뜨거운 고통을 받
는 등활(等活)지옥, 뜨겁고 검은 밧줄로 신체를 묶이고 수족이 묶이는 고통을 받는 흑승(黑
繩)지옥, 여러 가지 고통이 한꺼번에 닥쳐와 몸을 핍박하는 중합(衆合)지옥, 많은 고통이
엄습하여 슬픈 고함소리를 지르게 되는 호규(號叫)지옥, 심한 고통으로 큰 비명을 지르는
대규(大叫)지옥, 뜨거운 불길이 몸을 둘러싸 견디기 어려운 염열(炎熱)지옥, 내외⋅자타의
몸이 모두 맹렬한 불꽃을 내며 서로 태우는 극열(極熱)지옥, 고통이 쉴새 없이 닥치는 무간
(無間) 또는 아비(阿鼻) 지옥 등 문예 작품에 묘사된 형상과 다를 바 없다.
선악유보는 당연히 선인선과(善因善果)와 악인악과(惡因惡果)를 포괄하고 있지만, 불교
의 동진이전까지 중국에서는 선악양보(善惡兩報)를 같은 비중으로 묘사하거나 선유선보(善
有善報)에 치중하였다.16) 그러나 불교 전래 후 인과응보를 선전한 석씨보교서를 비롯한 소
설들은 지옥의 형상 묘사를 통한 악보(惡報)의 참담함에 서술의 중심을 두었다. 이는 불교
경전 자체가 선악양보의 균형적 안배보다는 악보에 편향되어 있는 점과 관계가 있다. 선인
선과의 긍정적인 묘사 보다 악인악과에 의해 고통 받는 형상 묘사를 통해 얻는 효과가 더
자극적이고 크기 때문이다. 즉, 인과응보가 상식화된 일반대중들에게 악인악과의 실천적 마
당인 지옥은 공포 그 자체로 개념화 되어 악행에 대한 반성과 권계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도구였다. 때문에 더 이상 지옥의 난장판을 제시하지 않더라도 지옥의 이미지는 사람
들의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각인되었다. 그러나 인간은 그 누구나 잘못이나 실수로 인한 과
오를 범할 수 있기 마련이며, 한번 잘못으로 지옥에 가야만 한다면 너무도 억울할 것이며,
천(天)⋅아수라(阿修羅)⋅인간(人間)⋅축생(畜生)⋅아귀(餓鬼)⋅지옥(地獄)의 세계로 분류된
다. 육도 중 비교적 좋은 세계인 인간과 아수라와 천상의 세계는 삼선도(三善道)라 하고, 축생과
아귀와 지옥은 삼악도(三惡道)라고 한다.
16) 위진대의 소설인 <수신기> 중의 <董永> 고사나 <白水素女>에서 남자 주인공의 효행과 근면성실
함이 선인(善因)이 되어 선녀의 보살핌을 받는 선보(善報)가 실현되는 이야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송⋅원 화본소설에 투영된 민속신앙으로서 인과응보 고찰 / 95


그 억울함으로 인해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할 뿐만 아니라 굳이 선을 행하려 하지 않게 된다.
때문에 참담한 지옥의 형상을 제시하는 동시에 이미 지은 죄의 소멸 방법까지 제시함으로써
권선의 효과를 극대화하였다.
잠시 후에 세 사람이 지옥에서 나오는 것이 보였는데, 그들은 이미 자연스러운
옷을 단정하게 입고 있었다. 그들은 남쪽으로 개광대사라고 하는 문에 이르렀는데,
삼중으로 된 문에서 붉은 빛이 환하게 빛났다. …(중략)…. 또 보았더니 한 선인을
보았는데, 자태와 용모가 유난히 훌륭하고 특별히 비상해 보였으며, 이 자리 위에
앉아 있었고, 옆에는 아주 많은 승려들이 서 있었다. …(중략)…. 잠시 후에 세존은
악도(지옥, 아귀, 축생의 삼악도)에 있는 사람들에게 모두 나와서 블경을 듣게 했
다. 당시 1만 9천명이 모두 지옥에서 나와 백리성으로 들어 갔는데, 그곳에 도착한
사람들은 모두 불법을 받드는 중생들이었다. 그들은 품행에 비록 결함이 있긴 했지
만 아직은 마땅히 제도될 수 있었기 때문에 강경하고 설법을 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7일 동안 (그곳에 있으면서) 본래 지었던 선악의 적고 많음에 따라 차등을 두어 죄
를 사면 받고 지옥에서 벗어났다. 조태는 아직 그곳을 나오지 않았을 때 이미 10명
이 하늘로 올라 떠나가는 것을 보았다. …(중략)…. 조태가 주사인에게 묻길: ‘사람
이 어떤 행동을 해야 죽어서 좋은 응보를 받을 수 있습니까?’하자 주사인은 ‘불법을
받드는 불제자가 정진하며 계율을 지킨다면 좋은 응보를 받고 징벌을 받지 않을 수
있다네.’하였다. 조태가 다시 묻길: ‘사람이 불법을 섬기지 않았을 때 저지른 죄과도
불법을 섬긴 후에 없앨 수 있습니까?’라고 하자, 주사인은 ‘모두 없앨 수 있네.’라고
하였다.(俄见叁人, 自狱而出, 已有自然衣服, 完整在身. 南诣一门, 名开光大舍. 有叁
重门, 朱彩照发. …(중략)…. 见一神人, 姿容伟异, 殊好非常, 坐此座上. 边有沙门, 立
倚甚众. …(중략)…. 有顷, 令恶道中人, 皆出听经. 时有万九千人, 皆出地狱, 入百里
城. 在此到者, 奉法众生也. 行虽亏殆, 尚当得度, 故开经法. 七日之中, 随本所作善恶
多少, 差次免脱. 泰未出之顷, 已见十人, 升虚而去. …(중략)…. 泰问主者曰; ‘人有何
行, 死得乐报?’ 主者言;‘唯奉法弟子, 精进持戒, 得乐报, 无有谪罚也.’ 泰复问曰;‘人未
事法时, 所行罪过. 事法之后, 得以除否?’. 答曰;‘皆除也.’17)
비록 불법을 받드는 중생이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을 달고 있지만, 제도의 가능성과 죄를
지은 사람들에게 지옥이 아닌 극락에 올라갈 수 있는 가능성까지 열어 두었다. 중생의 구제
를 위해 세존(世尊)이 저승에서 강경(講經)을 펼치고, 그의 설법을 7일 동안 들으면 선악의
많고 적음에 따라 업장이 소멸 되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설법을
17) 李昉 等编, 앞의 책, 3997쪽.
96 / 中國小說論叢 (第 35 輯)
듣고 실제로 지옥에서 벗어나는 사람들까지 목도했음을 구체적으로 제시함으로써 구제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말고 부단히 선업을 쌓도록 권하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옥은 여전히 공포의 대상이자 인과응보가 실현되는 현장이다.
불교의 대중화와 더불어 여타 종교와의 부단한 교류가 진행되면서 인과응보는 불교의 교
리와 공능을 선전하는 단계에서 점차 인간의 바른 도리를 지키고 유지하게 하는 방향으로
전환한다.18) 즉, 인생의 경험이 더해지고 유교와 도교의 윤리적 관념이 융합되면서 지옥은
인성의 깊은 곳으로 파고 들어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여 경계 심리를 자극하는 도구가 아
니라 인간의 정도(正道) 실천을 촉구하는 풍자의 대상으로 변하였다. 풍자의 대상으로서 저
승은 인간세상과 다름없이 위계질서가 존재하며, 위계질서의 정점에는 염라대왕이 있다. 그
의 수하에는 황제 밑에 수많은 문무백관들이 있듯이 많은 판관들이 있다. 이들 판관들은 염
라대왕의 판결을 도와주거나 명을 받아 망자가 생전에 했던 모든 선악에 근거하여 망자의
지옥과 극락행의 여부를 판단한다. 이 심판의 과정은 저승에서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과정이기에 공명정대해야 하지만, 권력이 있는 곳에 비리가 상존하는 인간세상처럼 부당한
압력이나 청탁 이권 등의 부정부패가 자행될 개연성을 안고 있다. 이런 개연성을 바탕으로
저승의 불편부당한 재판을 소재로 삼은 대표적인 이야기가 돈황화본소설(敦煌話本小說) 중
<唐太宗入冥記당태종입명기>19)이다.
<당태종입명기>는 부왕의 축출과 玄武門(현무문)에서 형제들을 학살한 사건 그리고 수많
은 전쟁을 일으킴으로써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염라대왕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며 진정한 소
송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사건의 진상 파악을 위해 저승에 끌려온 당태종의 무사귀환 욕구
와 이를 이용하여 높은 벼슬자리를 얻으려는 최자옥의 욕심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이야기는
정점을 향한다. 정점에서 저승의 심판 역시 인간세상의 사법현장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
여준다. 공명정대해야 할 재판이 정상적인 인과관계나 객관적인 정황보다는 청탁과 욕망의
이해득실(권력추구, 수명연장) 등에 따라 결판나는 난장(亂場)판으로 변한다. 이처럼 이승
의 그것과 별다르지 않는 난장판인 저승의 재판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이승과 저승을 동일시
하는 연결고리가 필요하다. 이 연결의 실마리가 바로 영혼불멸과 선악유보의 사유체계이다.
영혼불멸이 직접적으로 이승과 저승을 동일시하여 저승에서의 재판을 성립하게 하는 요소
라면, 선악유보(善惡有報)는 재판의 과정과 결과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아수라장20)
18) 吴光正, 《中国古代小说的塬型与母题》, 社会科学文献出版社, 2004年, 82쪽.
19) 黄征 张涌泉 校注, 《敦煌变文校注》, 中华书局, 1997年, 319-332쪽.
20) 아수라(阿修羅)는 산스크리트 ‘asur’의 음역(音譯)이다. ‘아소라(阿素羅)’, ‘아소락’, ‘아수륜(阿須
侖)’ 등으로 표기하며 약칭은 ‘수라(修羅)’라고 하는데, ‘추악하다’라는 뜻이다. 아수라는 본래 육
송⋅원 화본소설에 투영된 민속신앙으로서 인과응보 고찰 / 97
이 되게 하는 요소이다.
지괴류 단계에서 벗어나 의식적으로 허구를 활용하여 이야기를 만들어 낸 당대 전기소설
중에는 여전히 소재의 기이함에서 벗어나지는 못한 이야기들이 있다. 그러나 서사의 동기와
목적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전기의 원류는 대개 지괴로부터 나온 것이긴 하지만 거기에다 수식을 덧붙이고
이야기의 곡절이 확대되었음으로, 그 성과가 뛰어났다. 그 중에는 비록 풍자나 우의
에 기탁하여 우울한 심사를 펼치거나 화복을 이야기하여 권선징악의 의도를 기탁한
것도 있지만, 대체로 귀납해 본다면 결국은 문장의 수사와 풍부한 상상에 있었기에,
옛날의 귀신을 권하고 인과를 밝히는 외에 다른 의도가 없었던 이야기와는 그 흥취
가 매우 다르다.(传奇者流, 源盖出于志怪, 然施之藻绘, 扩其波澜, 故所成就乃特异,
其间虽亦或托讽喻以纾牢愁, 谈祸福以寓惩劝, 而大归则究在文采与意想, 与昔之传鬼
神明因果而外无他意者, 甚异其趣矣.)21)
풍자와 우의(寓意)에 기탁한 길흉화복의 제시와 권선징악에 대한 추구는 석씨보교서를
비롯한 여타 소설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작가의 의도적 창작 의지에 따라 기이함에 수식과
다양한 모티브를 가미함으로써 ‘옛날의 귀신을 권하고 인과를 밝히는 외에 다른 의도가 없었
던 이야기와는 그 흥취가 매우 다르다’라고 한 점은 더 이상 인과응보가 이야기의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자리하였음을 의미한다. 즉, 인과응보는 중국 고유의 선악유보를 아우르는
개념으로 이미 일반 대중들의 보편적 관념이자 믿음으로 자리하였기에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작가에게 인과응보는 이야기가 전개될 수 있게 하는 기본 요소였으
도 팔부중(八部衆)의 하나로서 고대 인도신화에 나오는 선신(善神)으로 후에 하늘과 싸우면서
악신(惡神)이 되었다. 아수라는 얼굴이 셋이고 팔이 여섯인 흉칙하고 거대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는 증오심이 가득하여 싸우기를 좋아하므로 전신(戰神)이라고도 한다. 그가 하늘과 싸울 때
하늘이 이기면 풍요와 평화가 오고, 아수라가 이기면 빈곤과 재앙이 온다고 한다. 인간(人間)이
선행을 행하면 하늘의 힘이 강해져 이기게 되고, 악행을 행하면 불의가 만연하여 아수라의 힘이
강해진다. 아수라(阿修羅)를 물리치는 것은 결국 인간(人間)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인간(人間)이 선행을 행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이룰 때 악의 상징인 아수라(阿修羅)는 발을 못
붙이게 되며, 그렇게 되면 자연히 피비린내 나는 아수라장(阿修羅場)도 자취를 감추게 된다. 인
도의 서사시 ‘마하바라타’에는 비슈누신의 원반에 맞아 피를 흘린 아수라들이 다시 공격을 당하
여 시체가 산처럼 겹겹이 쌓여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를 아수라장이라
부르는 것도 여기에서 유래(由來)되었다. 그러므로 눈뜨고 볼 수 없는 끔찍하게 흐트러진 현장
을 가리키는 말이다.
21) 魯迅, 《中国小说史略》, 东方出版社, 1996년, 52쪽.
98 / 中國小說論叢 (第 35 輯)
며, 작가는 이를 바탕으로 다른 목적(주제 의식)을 달성하고자 했다.
당나라 대중연간(847-860)말에 신주 귀계현 유구진에 동안우라는 사람이 있었
는데, 마을에서 부자였다. 처음에는 몹시 가난하였는데, 같은 마을 사람인 곽공과
서로 친하게 지내었다. 곽공이 돈 6-7만 전을 빌려주었기에 그것으로 장사를 하여
동안우는 마침내 부자가 되었다. 이내 곽공이 빌려준 돈을 달라고 하자, 동안우는
거절하며 돈을 빌린 사실조차 잡아땠다. 곽공은 향을 사르며 하늘에 고하길; “동안
우가 배은망덕하게도 돈을 빌리고 갚지 않으니, 만약 하늘에 도리가 있다면 이렇게
무고한 일을 모른 체 하지 않을 터, 원컨대 동안우가 죽으면 소가 되어 대가를 치르
게 해주십시오.”라고 하였다. 그의 말이 너무도 간절하자, 동안우 역시 거짓으로 이
르길; “제가 만약 진실로 곽공의 돈을 빚졌다면, 원컨대 죽어 흰 소가 되어, 곽공에
게 대가를 치르게 해 주십시오.”하였다. 한 달도 넘지 않아서 동안우가 죽었다. 죽은
지 반년이 지나 곽공 집의 암소가 흰 송아지 한 마리를 낳았는데, 그 송아지 왼쪽
옆구리에 검은 털로 ‘동안우’라는 글씨가 너무도 뚜렷하게 씌어있었다. …(중략)….
동안우의 처자와 더불어 친족들은 함께 가서 그 소를 보고는 매우 부끄럽게 여겨
금과 비단을 후하게 바치면서 그 소를 데려가게 해달라고 청하였다. 곽공은 그가
속였던 것에 분해 끝까지 허락하지 않고 어미소와 새끼소를 각각 다른 우리에 넣고
키웠다. 동안우의 집안에서는 하인을 거느리고 와서 흰 몽둥이를 들고 위협하여 그
소를 빼앗아 가려고 했으나, 곽공이 많은 사람을 배치하여 지켰기에 결국 그 소를
빼앗을 수 없었다.(唐大中末, 信州贵溪县乳口镇有童安玗者, 乡里富人也. 初甚贫窭,
与同里人郭珙相善, 珙尝假借钱六七万, 即以经贩, 安玗后遂丰富. 及珙征所借钱, 安
玗拒讳之. 珙焚香告天曰; “童安玗背惠忘义, 借钱不还, 倘神理难诬, 愿安玗死后作牛,
以偿某.” 词甚恳苦, 安玗亦绐言曰; “某若实负郭珙钱, 愿死作一白牛, 以偿珙债.” 未
逾月, 安玗死. 死后半年, 珙家牸牛, 生一白牯犊, 左肋有黑毛寂, 作字曰童安玗, 历
历然。 …(中略)… . 玗妻子并亲属等往视之, 大以为耻, 厚纳金帛, 请收赎之. 郭珙愤
其欺负, 终不允许, 以牛母并犊, 别栏喂饲. 安玗家率童仆, 持白梃劫取. 珙多置人守
御, 竟不能获.(出报应录)22)
위의 고사는 《보응록》에 실린 당대소설 <동안우童安玗>로, 채무를 갚지 않을 뿐만 아니
라 채무관계 조차 부정한 것이 악인(惡因)이 되어 소로 환생하는 이야기이다. 비록 불교적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보응을 책 이름으로 사용하였지만, 이 역시 인과응보처럼 불교만의 전
유물 단계에서 이미 일반화된 개념으로 대중들에게 자리하였다. 인과응보의 기능과 역할을
파악하기 위해 <동안우>를 재구성하면, ‘채무관계 설정⇒ 부자되기⇒ 채무관계 해소 거절 ⇒
22) 李昉 等编, 앞의 책, 957-958쪽,
송⋅원 화본소설에 투영된 민속신앙으로서 인과응보 고찰 / 99
하늘에 호소와 거짓 맹서 ⇒ 채무자의 죽음 ⇒ 소로 환생 ⇒ 채무관계 증거 노출 ⇒ 변재
희망과 채권자의 거절 ⇒ 협박과 실패’로 정리할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채무관계가
인(因)이 되어 축생인 소(牛)로 환생하는 과(果)로 이어지는 인과응보가 이야기를 성립하게
하는 기본 요소로 작용할 뿐, 이야기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주제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
되었기에 채무자의 거짓에 대한 단죄와 환생의 과정에서 저승의 재판이나 지옥에 관한 어떠
한 언급도 없이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엮어진다. 즉, 인과응보의 실현 현장인 저승을 통하지
않고도 권선징악을 제시할 수 있을 정도로 언급하지 않아도 인지하는 보편적 관념으로 인과
응보가 대중들의 뇌리에 자리 잡았음을 의미한다.
인과응보가 목적이 아닌 이야기의 내재적 전개 요소로 자리한 당대의 소설을 지나 대중들
의 애환을 본격적으로 담아낸 화본소설단계에 이르러 인과응보는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전
개된다. 악행을 저지르면 다시 자신이 받게 된다는 보응의 주체화를 적시한 민속신앙으로서
인과응보는 권선징악의 틀에서 벗어나 고통스런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의
아픔 상처를 치유해주는 상비약으로 다가선다.
3. 여의치 않는 현실을 추스르는 매체로서의 인과응보
고착화된 신분사회에서 생명을 위협하는 전화(戰禍)와 관의 혹독한 착취에 시달리며 살
아가는 대중들에게 고등종교(유⋅불⋅도교)들이 추구하는 정신적 윤리성이나 내세적 구원
이라는 미래의 문제는 생각지도 못할 사치에 불과하였다. 어떻게 하면 굶지 않고,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지지 않고 단란하게 살 수 있을까하는 생활상의 현실적 당면문제가 그들에게는
해결해야 할 시급한 문제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대중들에게 삶의 불안감을 해소해 주는
동시에 행운을 주고 재난을 면하게 해 줄뿐만 아니라 남들 보다 더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주는 그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에 의지하려는 것이 대중들의 본심이다. 이러한 희망을 위
해 대중들은 그것이 고등종교의 특정 사상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의 믿음 영역 안으로 그것을
끌어 들인다. 즉, 현실적 필요에 따라 고등 종교의 특정한 사상들은 고착화된 특정 종교적
사고와 틀에서 벗어나 대중들이 믿고 의지하는 민속신앙으로 흡수 정착되었다. 이는 민속신
앙만이 지니는 개방성과 비계통성의 특성이다. 이러한 특징은 불교의 인과응보가 더 이상
불교만의 사상으로 머무는 것을 좌시하지 않고, 대중들의 현실적 필요에 따라 중국 고유의
사상인 선악유보 관념과 융합하여 대중들의 행위를 결정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100 / 中國小說論叢 (第 35 輯)
민속신앙으로서 인과응보는 선행과 악행을 불문하고 그 대가를 현실에서 자신이 받게 된
다는 인식을 기초로 하고 있다. 이는 업의 주체를 자신으로 명확하게 규정한 불교의 인과응
보와 보응의 주체를 자신에게서 자손으로까지 연장한 전통적인 선악유보의 현실적 수용이
다. 즉, 불교의 인과응보사상은 양심을 속이고 제 멋대로 하거나, 재물을 탐하고 여색에 빠
져 선한 일을 하지 않으면 그에 대한 대가는 당장이 아닐지라도 언젠가는 치르게 되며, 업
(業)을 행하는 행위자는 육도(六道)를 윤회하는 자신이기 때문에 행위의 결과는 반드시 행
위의 주체인 자신이 받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반면 중국 전통의 선악유보는 보응의 주체
를 행위의 주체로 한정하지 않고 그 자손들에게로 연장하는 계승적 관계로 규정하였다. 이
러한 현실과 미래라는 시점의 차이와 나와 후손 혹은 가족이라는 대상의 차이는 현실과 나
를 중심으로 하는 민속신앙의 틀에서 융합되었다. 이러한 융합을 바탕으로 삼세윤회에 의한
인과응보의 해결과 후손으로의 계승적 보응이 아닌 현실에서 자신이 보응의 결과를 받게
되는 극히 현실적인 민속신앙으로서 인과응보 관념은 송⋅원소설화본 중 거의 없는 곳이
없을 정도이다.
인간의 도덕성에 기초한 선악유보의 원론에서 벗어나 행위의 구체적인 결과를 제시하는
것은 직⋅간접적으로 권선의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악보의 결과에
대해 항상 두려움을 갖게 한다. 이는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실없는 농담의 참담함을 통해 농
담마저도 경계해야 함을 제시한 공안(公案)류 화본인 <착참최녕錯斬崔寧>23)에 그대로 적용
23) 程毅中 辑注, 《宋元小说家话本集》(齐魯书社, 2000年)의 248-271쪽을 참조하여 내용을 개괄하
면 다음과 같다. “조상대대로 명문가 출신인 유귀는 서생으로 독서에 매진하였으나, 가세가 점
차 기울자 장사를 시작한다. 그러나 시운이 따르지 않아 장사도 되지 않았고, 장인의 생신날 처
갓집에 간 그는 장인으로부터 장사 밑천으로 15관의 돈을 얻어 첫째 부인을 두고 혼자 집으로
돌아온다. 술도 취한 그는 둘째부인이 문을 늦게 열어주자 그녀를 15관에 저당 잡히고 오는 길
이며, 사업이 번창하지 못하면 그녀 찾기를 포기할 것이며, 전당잡힌 사람에게 술을 취하도록
술을 얻어먹었으며, 첫째 부인(대낭자)은 그녀가(소낭자) 끌려가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 오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고는 당황해하는 소낭자의 모습을 즐기며 잠들어 버린다. 이에 놀란 소낭
자는 눈앞에 돈을 보고 믿을 수밖에 없었고, 돈과 남편을 둔채 친정으로 가기 위해 옷가지를
정리하여 집을 나선다. 소낭자가 떠나던 그날 밤 도적이 들었고, 상의 돈을 훔치려할 때 유귀는
잠에서 깨어난다. 강도로 변한 그는 다투다 유귀를 도끼로 살해하고 돈을 챙겨 달아난다. 집을
나선 소낭자는 이웃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고 친정집으로 가던 도중에 최녕을 만나 동행한다.
동행하던 두 사람은 유귀의 살인사건에 연류된 것으로 지목된 소낭자를 잡기 위해 뒤 쫒아온
이웃집 사람에게 붙잡힌다. 죄 없이 끌려온 최녕과 소낭자는 살인자의 누명을 쓰고 처형된다.
유귀의 첫째 부인인 대낭자는 남편의 일년 상(喪)을 마치고, 아버지의 명을 따라 재가하기 위해
친정집 하인 왕노인과 친정으로 향한다. 도중에 산 속에서 정산대왕이라는 강도를 만나 저항하
던 왕노인은 그에게 죽임을 당하고, 대낭자는 거짓으로 꾀를 써서 임시방편으로 그의 부인이
되어 죽임을 면한다. 대낭자의 권유로 정산대왕은 강도질을 그만두고 잡화점을 개업하여 순탄
송⋅원 화본소설에 투영된 민속신앙으로서 인과응보 고찰 / 101
되고 있다. 이야기는 모티브별로 ‘농담 ⇒ 둘째부인의 친정행 ⇒ 도적에 의한 살해 ⇒ 무고
한 죽음 ⇒ 첫째부인의 친정행 ⇒ 정산대왕24)과의 만남 ⇒ 왕노인의 죽임과 부인되기 ⇒
고백 ⇒ 고소 ⇒ 처형’으로 정리할 수 있다. 무심코 재미로 던진 농담이 원인이 되어 둘째
부인이 친정으로 가게 되는 결과로 이어지고, 문단속을 잘못한 채 친정으로 간 것이 원인이
되어 강도도 들어 살인사건이 발생하는 결과를 낳고, 그 살인 사건은 또 다른 억울한 죽음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이처럼 인(因)이 과(果)를 초래하고, 과(果)가 다시 인(因)이 되어 또
다른 과(果)를 초래하는 인과의 연속으로 인해 비극적 결말에 이르게 되지만, 정작 인과응
보는 이야기의 주제가 아니다.
정신적 윤리성이나 내세적 구원문제에 역량이 집결된 고등종교에서는 인생을 고해(苦海)
의 바다로 규정하고, 생을 살아가면서 죄를 지을 수밖에 없기에 항상 회개하고 뉘우치는 삶
을 살도록 요구한다. 회개하고 착한 일을 실천하면 내세에 구원의 길이 열리기에 끊임없는
정진을 요구하는 것이 바로 종교적 제도이다. 그러나 종교적 제도는 심리적 안정을 줄 순
있어도 현실적이거니 실질적이지 못하다. 항상 정의가 실천되지 않는 불편부당한 현실을 살
아가는 일반대중들에게 미래의 행복보다는 현재의 불행을 타개할 수 있는 그 무엇이 더 절
실하고 중요하다. 때문에 최소한 원죄를 저지른 사람의 어떠한 회개와 참회가 있을지라도
반드시 지금 현실에서 단죄되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살인이라는 원죄는 결국 단죄를 통한
정의의 현실적 실현으로 복수가 진행되는데, 정산대왕의 종말이 이에 해당한다.
가) 뜻밖에 그날 밤, 도적질하려는 자가 있었는데, 그는 낮에 도박으로 돈을 잃고
해결할 방법이 없자, 밤에 나와 물건을 훔치려 하였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유관
인의 문 앞에 도달하였는데, 소낭자가 나갈 때 문을 잘 닫지 않았기 때문에, 그
도적이 약간 밀치니 문이 확 열렸다. 가만가만 접근하여 바로 방안까지 들어가
는데, 알아채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침대에 도달하여, 등불이 아직도 밝아, 주
위를 돌아보니, 결코 가져갈 물건이 하나도 없었다. (不想却有一个做不是的, 日
间赌输了钱, 没处出豁, 夜间出来掏摸些东西, 却好到刘官人门首. 因是小娘子出
去了, 门儿拽上不关. 那贼略推一推, 豁地开了. 捏手捏脚, 直到房中, 并无一人知
하게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정산대왕은 유귀를 살해한 일과 그로 인해 무고한 소낭자와 최
녕을 죽게 하여 마음이 편하지 않음을 고백한다. 남편의 살해범임을 알게 된 대낭자는 괴로움에
탄식하며 정산대왕을 관에 신고하고, 이에 정산대왕은 처형을 당한다.”
24) “정산대왕은 설화에서 강도의 보통명사로, 본 편 뿐만 아니라 <간첩화상簡帖和尙>과 후대 소설
에서 등장하는 강도들 대부분이 이 이름을 쓰고 있다. 이는 당시 설화인들의 격식과 언어습관
및 여타소설에서의 모방 형태를 반영한 것이다,” 兪曉紅, 《古代白話小說硏究》, 安徽人民出版社,
2005年, 61쪽 참조.
102 / 中國小說論叢 (第 35 輯)
觉. 到得床前, 灯火尚明. 周围看时, 并无一物可取,25)
나) 두 눈으로 유관이 죽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呜唿哀哉라! 삼가 명복을 비나이
다! 그가 곧 말하길; ‘일단 일을 시작하였으면 철저하게 마무리 해야지. 네가 나
를 쫓아왔지, 내가 너를 찾아온 것은 아니야.’라며, 아예 몸을 돌려 방으로 들어
가더니 15관의 돈을 집어 들고는 홑이불을 펼펴 돈을 잘 싸가지고 단단히 묶고
는, 문을 나서 대문을 잡아당겨 바로 떠났다. (眼见得刘官人不活了, 呜唿哀哉,
伏惟尚飨. 那人便道; “一不做, 二不休, 却是你来赶我, 不是我来寻你.” 索性翻身
入房, 取了十五贯钱. 扯条单被, 包裹得停当, 拽扎得爽俐, 出门, 拽上了门就
走.)26)
다) 하루는 집에 한가로이 앉아 있다가, 대낭자에게 “나는 비록 강도출신이지만, ‘원
한에는 각기 상대가 있고, 채무에는 각기 빚쟁이가 있다’라는 속담을 알고 있소.
매일 남을 놀라게 하고 속여, 물건을 강탈해서 생활을 해 왔소. 후에 당신을 알
게 되어, 계속 그다지 반듯하지 못하였는데, 오늘날 이미 악행을 고치고 선함을
쫓고 있소. 한가로울 때면 과거를 추념하는데, 공교롭게도 억울하게 죽은 두 사
람과 또 무고하게 죽게 된 두 사람이 항상 마음에 걸려, 생각 같아선 공덕을 행
하여 그들을 제도(극락왕생 기원)하고 싶었으나, 줄곧 당신에게 말하지 못했
소.”라고 말하였다.(忽一日在家闲坐, 对那大娘子道; ‘我虽是个剪径的出身, 却也
晓得冤各有头, 债各有主. 每日间只是吓骗人东西, 将来过日子, 后来得有了你,
一向买卖顺熘, 今已改行从善. 闲来追思既往, 止曾枉杀了两个人, 又冤陷了两个
人, 时常挂念. 思欲做些功德超度他们, 一向未曾对你说知.)27)
라) 나중에 이 사건으로 그 집의 첩과 최령이라는 한 젊은이가 연루되어, 그 사람이
재물을 탐하여 인명을 해쳤기에 모두 국가의 형법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소.
나는 이 시대의 내노라는 강도지만, 오직 이 두 사람을 해친 일만은 하늘의 도
리와 사람의 양심으로써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일이기에, 조석으로 그들을 제
도(극락왕생 기원)하려고 함은 당연한 것이지요.”라고 말하였다. (后来打听得
他, 却连累了他家小老婆, 与那一个后生, 唤做崔宁, 说他两人谋财害命, 双双受
了国家刑法. 我虽是做了一世强人, 只有这两桩人命, 是天理人心打不过去的. 早
晚还要超度他, 也是该的.)28)
25) 程毅中 辑注, 앞의 책, 254쪽.
26) 程毅中 辑注, 앞의 책, 255쪽.
27) 程毅中 辑注, 앞의 책, 264쪽.
28) 程毅中 辑注, 앞의 책, 264-265쪽.
송⋅원 화본소설에 투영된 민속신앙으로서 인과응보 고찰 / 103
노름으로 돈을 탕진한 정산대왕이 남의 집에 들어가 도둑질을 하다가 유귀를 죽이고 돈을
훔쳐 달아나는(가) 죄를 범하며, 살인을 저지른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 하지만(나), 그가 저
지른 살인으로 인해 항상 불안해하다가 결국 과거 과오에 대해 고백(다)하고 회개(라)한다.
자신의 행위에 대한 합리화나 고백 그리고 죽임을 당한 자에 대한 극락왕생 기원 등은 그의
어깨를 짓누르는 엄중한 인과에 대한 두려움이 무의식에 투영되어 행동화된 현상이다. 둘째
부인 이저(二姐)와 최녕이 자신이 저지른 살인 사건과 관련되어 살해 누명을 쓰고 처형당한
사실을 안 정산대왕은 자신 때문에 세 명의 무고한 사람이 죽은 일에 대해 항상 마음속에
담아두고 참회하려고 한다. 그의 참회는 인과의 엄중함과 두려움에 대한 자연스런 표현이
다. 이는 인과응보를 더 이상 드러내지 않아도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보편적
사유(思惟)였기에 결국 악은 반드시 응징을 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으로 이어진다. 비록 정산
대왕이 과거 자신에 의해 살해당한 사람과 그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무고하게 죽은 사람들을
위해 명복을 빌며 극락왕생을 기원하지만,29) 정의의 현실적 실현을 갈망하는 대중들의 여
망에 따라 처형당한다.
대낭자는 다 듣고서, 속으로 괴로움을 탄식하길 ‘원래 나의 남편도 이놈이 살해했
으며, 또 집의 이저와 그 젊은이도 함께 연루되어 무고하게 죽게 되었었구나! 생각
해 보니, 당초 그들 두 사람의 목숨의 대가를 집정하지 말았어야 했구나. 그들 두
사람이 나를 저승에서 만난다면, 나를 가만히 놓아두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하였
다. (那大娘子听说, 暗暗地叫苦; ‘塬来我的丈夫也吃这厮杀了, 又连累我家二姐与那
个后生无辜被戮. 思量起来, 是我不合当初做弄他两人偿命, 料他两人阴司中, 也须放
我不过.’)30)
대낭자는 유귀의 첫째부인으로, 죽은 지아비를 위해 일 년 동안 상을 치루고 나서, 친정아
버지의 명에 따라 개가하기 위해 친정으로 향한다. 가는 도중에 도적이자 강도인 정산대왕
을 만나게 되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그의 아내가 되지만, 그를 개과의 길로
인도하여 평안한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자신의 과오를 항상 마음에 담아 두고 있던 정산대
왕의 고백을 통해 과거 그의 행적이 자신의 주변 사람들과 연관되어 있음을 아는 순간 상황
은 180도 반전된다. 저승에 가서 죽은 두 사람을 볼 면목이 없음을 상기하며, 그에 대한 더
이상의 기대를 포기하고, 관부에 정산대왕을 살인자로 고발한다. 그녀가 정선대왕에 대한
29) 程毅中 輯注, 앞의 책, 263쪽, “那大王早晚被他劝转, 果然回心转意, 把这门道路撇了, 却去城市
间赁下一处房屋, 开了一个杂货店. 遇闲暇的日子, 也时常去寺院中, 念佛持斋.”
30) 程毅中 輯注, 앞의 책, 265쪽.
104 / 中國小說論叢 (第 35 輯)
개과에서 고발로 마음을 바꾼 반전은 삼세를 윤회하더라도 소멸되지 않는 인과응보의 두려
움을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그녀만의 사유가 아니라 당시 일반대중들의 보편적인
심성을 표현한 것이며, 그녀의 고발에 의한 정산대왕의 처형은 현실적 행복을 지향하는 대
중들의 믿음에 대한 보상인 것이다. 당시 대중들의 현실적인 행복 지향은 대낭자의 고발로
이루어진 재조사와 이를 바탕으로 하달된 천자의 명에 의해 구체적으로 실현된다.
60일이 기한이 되길 기다리자, 천자의 명이 하달되었는데; “정산대왕은 남의 재
물을 탐하여 인명을 해쳤으며, 무고한 생명까지 연루케 하여 죽였음을 조사하여 판
결을 내리노라: 죄를 짓지 아니한 일가족 3명을 무고하게 죽게 한 자는 등급을 올려
극형에 참하되, 결코 때를 기다리지 말라(지체하지 말라). 원래의 법관은 송사의 판
결에서 진실을 밝히지 못하였으니, 관직을 박탈하여 평민으로 환원한다. 최령과 진
씨는 억울하게 죽어 불쌍하니, 관원은 그 집을 방문하여 후하게 부조하라. 왕씨는
강도가 위협하여 비록 혼인은 하였으나, 전 남편의 원한을 깨끗이 씻을 수 있도록
하였으니, 강도의 재산 중 반은 정부에 몰수하고, 반은 왕씨에게 주어 평생토록 생
계를 보장하라”고 명하였다. (待六十日限满, 倒下圣旨来; ‘勘得静山大王谋财害命,
连累无辜, 准律: 杀一家非死罪叁人者, 斩加等, 决不待时. 塬问官断狱失情, 削职为
民. 崔宁与陈氏枉死可怜, 有司访其家, 谅行优恤. 王氏既系强徒威逼成亲, 又能伸雪
夫冤, 着将贼人家产, 一半没入官, 一半给与王氏养赡终身.’)31)
대낭자의 고발에 의해 사건의 재조사가 이루어지고, 재조사의 결과는 누구나 소원하고
납득할 수 있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타난다. 죄인은 죄 값을 받아야 한다는 응징의 차원을
넘어서 사건과 관련된 모든 문제에 대해 현실적이면서도 소원(所願)스러운 결과가 도출된
다. 재판과정에서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억울한 죽음을 만들어낸 판관의 파면이 이루어 질
뿐만 아니라 평민으로 환속된다. 엄격한 계급 사회에서 감히 처다 보지도 못했던 사법기관
의 수장인 판관의 신분 하락은 대중들에게 통쾌함을 주는 동시에 평민으로서의 동질의식을
갖게 하였으며, 여타 소송사건에서 부당하게 억울함을 당한 대중들에게 사법의 정의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였다. 억울하게 죽은 취령과 진씨(소낭자)의 집에 관원을 파견하게 후하게
부조토록 한 것은 비록 억울하게 죽었지만, 힘 없는 대중의 죽임이 그대로 묻혀버리지 않고
규명 받는다는 위로와 안도감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다. 또한 혼자 남게 된 왕씨(대낭자)에
대한 금전적인 배려 역시 의지할 곳 없이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그녀로 대변되는 대중들의
현실적인 삶에 대한 배려 차원이다.
31) 程毅中 輯注, 앞의 책, 265쪽.
송⋅원 화본소설에 투영된 민속신앙으로서 인과응보 고찰 / 105
이야기는 농담이 불러온 재앙을 인과응보의 틀에서 다루고 있지만 결코 인과응보를 주제
로 다루진 않았다. 살인자로 몰려 억울하게 관에 의해 죽임을 당한 최녕과 소낭자의 죽음을
통해 당시 관리들의 전횡과 잔혹함을 폭로하고, 봉건 전제의 폭력적인 위협(淫威)에도 아무
런 보호를 받지 못하는 소시민들의 참담한 상황 표현을 주제로 하고 있다. 이야기의 전개과
정에서 비록 불교적 용어들이 정절 깊숙이 관여하고 있지만, 신앙적인 선전이나 계도가 아
닌 현실적 삶의 행복을 지향하고 염원하는 대중들의 소원을 담아내었다. 이는 인과응보가
종교적 의미나 관념이 아닌 이미 대중들의 의식 속에 보편화⋅잠재화 된 사유방식으로 자리
잡았음을 표현한 것이다.32)
송⋅원 화본소설에는 인과응보관념의 다른 한 축인 숙명론을 이야기 전개의 기본 구조로
활용하였다. 숙명론은 지금 생애에 어떠한 행위를 하던 상관없이 사람의 운명은 이미 정해
져 있으며, 사람이 행하는 것은 단지 이미 정해진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일은
운명대로 되는 것이지 조금치도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그 길이 험난하고 소원스
럽지 못하면 인간은 자칫 삶을 포기하게 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러한 숙명론 역시 전적으
로 인과률(因果律)에 의해서 결정되며, 그 중심축은 생사윤회와 삼세업보이다. 불교에서는
‘전세의 업인을 알려면, 현세에서 받은 것이 이것이며, 내세의 과보를 알려면 현세에 지은
것이 이것이다.’33)라고 하여 업보를 강조한다. 전세에 지은 업인에 대한 현세의 응보에 의
해 그렇게 되어지는 것이 바로 숙명이기에, 숙명론은 인과응보의 다른 표현일 뿐 상대적 개
념도 부정적 개념도 아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숙명론을 이야기 전개의 주요 매체로
활용한 것으로 야수가 여인을 납치한(野獸竊女人) 것을 모티브로 한 <진순검매령실처기陳
巡檢梅嶺失妻記>34)가 있다. 영괴(靈怪)류 화본으로 분류된 <진순검매령실처기>는 “과거급
제⇒ 발령과 부임 ⇒ 부인납치 ⇒ 숙명 인지 ⇒ 수색 포기 ⇒ 부임과 귀환 ⇒ 스님의 구출
노력 ⇒ 실패 ⇒ 자양진인의 구출 활동 ⇒ 성공과 부인의 귀환”의 모티브로 엮어져 있다.
부인의 납치는 이야기 중 구체적으로 그 원인에 대해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전생의 업보
때문이며, 그녀의 숙명은 과거 급제 후 부임을 받고 현지로 떠나기 전 도관에서 정성스럽게
시주를 올리는 진신을 어여삐 여긴 자양진인에 의해 간파된다.
가) 각설하고, 대라선계에 진인이 한분 계셨는데, 호를 자양진인이라 하였다. 선계
32) 孙昌武, 앞의 책, 268-269쪽.
33) 《叁世因果经》 “欲知前世因, 今生受者是, 欲知来世果, 今生作者是”
34) 洪楩 编辑, 石昌渝 校点, 《淸平山堂话本》 <陈巡检梅岭失妻记>, 江苏古籍出版社, 1994年,
145-161쪽.
106 / 中國小說論叢 (第 35 輯)
에서 진신이 시주를 받드는데 너무도 지극정성임을 살피고서, 이제 남웅순찰사
를 재수 받았는데, 어찌하랴 그 처에게 천일의 재앙이 있었으니. (그래서) 진인
을 불러 도동으로 변하게 하고는 “나의 취지를 받들어 진신과 동반하여 부부 그
사람을 보호하라. 그의 처가 만약 요정(요괴)을 만나거든 너가 보호할 수 있을
것이야.” 하였다. 도동은 (자양진인)의 취지를 듣고 진군과 함께 진신의 집에 이
르러 진순검과 서로 대면하였다.(且说大罗仙界有一眞人, 号曰紫阳眞人, 于仙界
观见陈辛奉眞斋道, 好生志诚, 今投南雄巡检, 争奈他妻有千日之灾, 叫一眞人,
化作道童:“听吾法旨, 权与陈辛做伴当, 护送夫妻二人. 他妻若遇妖精, 你可护
送.” 道童听旨, 同眞君到陈辛宅中, 与陈巡检相见.)35)
진신은 과거에 합격하고 발령을 받아 임지로 떠나기 전에 도관에 가서 정성스럽게 시주를
올린다. 이를 기특하게 여긴 자양진인은 전생의 업보 때문에 진신의 처가 재앙을 당할 것이
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재앙을 막기 위해 도동(꼬마도사)으로 변신한 진인으로 하여금 임지
로 떠나는 진신 일행과 동행하게 한다. 자양진인의 이러한 배려에도 불구하고 진신의 부인
여춘은 원숭이 요괴인 제천대성(齊天大聖)에게 납치당한다.
각설하고, 진순검 부부 두 사람이 여관방에 이르러 저녁을 먹는데, 일경인 것 같
은데 이경처럼 보였다. 진순검은 먼저 옷을 벗고 누었는데, 한바탕 바람이 이는 것
을 보았다. …(중략)…. 한바탕 바람이 지난 곳에 바람이 불자 등불이 거의 꺼지려다
다시 밝아졌다. 진순검은 크게 놀라 급하게 옷을 입고 일어나 보니, 방안에는 부인
장여춘이 보이지 않았다. 방문을 열고 왕길을 부르자 왕길은 잠결에 일어난지라 영
문을 알지 못하고 허둥지둥하였다. 진순검이 왕길에게 말하길: “방안에 한바탕 광풍
이 일더니 부인 장씨가 보이지 않아!”하였다. 주인과 노복 두 사람이 급하게 객잔
주인을 부르는데, 응답이 없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객잔의 방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자, 왕길은 순간 겁을 먹었다. 보아하니, 두 사람은 황량한 들판 위에 서 있었으
며, 단지 책상과 짐꾸러미 그리고 말만이 앞에 있을 뿐 등불도 없었으며, 객잔과
주인 모두가 종적이 없었다.(且说陈巡检夫妻二人到店房中吃了些晩饭, 却好一更.
看看二更, 陈巡检先上床脱衣而卧, 只见就中起一阵风, (중략). 那阵风过处, 吹得灯
半灭而復明. 陈巡检大惊, 急穿衣起来看时, 就房中不见了孺人张如春. 开房门叫得王
吉, 那王吉睡中叫将起来, 不知头由, 慌张失势. 陈巡检说与王吉:“房中起一阵狂风,
不见了孺人张氏!” 主僕二人急叫店主人时, 叫不应了, 仔细看时, 和店房都不见了,
王吉也吃一惊. 看时, 二人立在荒郊野地上, 止有书箱⋅行李幷马在面前, 幷无灯火;
客店⋅店主人, 皆无踪迹.)36)
35) 洪楩 编辑, 石昌渝 校点, 앞의 책, 147쪽.
송⋅원 화본소설에 투영된 민속신앙으로서 인과응보 고찰 / 107
일행이 객잔에 들기 전, 진신은 임무를 망각하고 꾀병을 부리며 동행에 힘들어 하는 라동
(꼬마 도사의 바뀐 이름)을 돌려보내고, 일행과 함께 제천대성(齊天大聖)이 가설(假設)한
객잔에 투숙한다. 부인의 변고를 방지하기 위한 안전장치인 라동을 돌려보낸 상황은 부인에
게 변고가 생길 것이며, 동시에 변고의 발생은 어쩔 수 없는 정해진 수순임을 암시한다. 결
국 한 바탕의 광풍이 불고, 여춘과 객잔 그리고 객잔주인(제천대성이 변신한 노파) 등 그
모든 것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허허벌판에 달랑 둘만 남게 된 진신 일행은 부인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 하지만 찾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부임지로 향한다. 임지로 향하던 중 한
촌락에서 점쟁이 양전간을 만나고, 부인에게 닥친 재앙과 재앙의 해소 방안에 관한 이야기
를 듣게 된다.
양전간이 간단히 이르길: “나리께서는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부인은 천일의 재앙
이 있으니 3년 후에 다시 자양(진인)을 만나고, 부부는 (다시 만나) 단란해집니다.”
하였다. 진순검은 생각에 잠겨: 동경에서 일찍이 자양진인을 만나 라동을 빌어 동
반하도록 하였는데, 라동의 구토기운으로 인해 그를 돌아가도록 했었지. 여기와 수
천리 떨어져 있는데, 어떻게 자양진인이 이곳에 올 수 있단 말인가?“하며, 마침내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졌으며, 복채를 주어 양전간에게 사례하고, 말에 올라 왕길과
더불어 많은 사람들과 함께 매령으로 올랐다.(杨殿干断曰:“官人且省烦恼, 孺人有
千日之灾, 叁年之后, 再遇紫阳, 夫妇团圆.” 陈巡检自思:‘东京曾遇紫阳眞人借罗童
为伴, 因罗童呕气, 打发他回去. 此间相隔数千里路, 如何得紫阳到此?’ 遂乃心中少
宽, 还了卦钱, 谢了杨殿干, 上马同王吉幷衆人上梅岭来.)37)
양전간에게서 부인 여춘에게 닥친 3년의 재앙에 대해 듣게 된 진신은 부인 찾기를 단념하
고 임지로 향한다. 진신은 임지에서 소임을 마치고 3년 만에 돌아오던 길에 홍년사(紅蓮寺)
에 머물게 된다. 그 곳에서 대혜선사를 만나 3년 전 부인과 헤어지게 된 사연을 들려준다.
사연을 접한 선사는 부인을 강탈해 간 신양공(申陽公)의 신분과 내력에 대해 진신에게 알려
주고, 자신이 그를 설득하여 부인이 풀려나도록 하겠으니 기다려줄 것을 청한다. 그러나 선
사와 신양공의 대화를 듣고 격분한 진신은 무모하게 칼을 휘두른다.
진순검은 크게 노하여 차고 있던 보검을 뽑아 머리를 향하여 배려하였다. 신양공
이 손으로 가리키자, 그 검은 몸(칼집)에 달라붙었다. 신양공이 ‘내가 장노의 체면
36) 洪楩 编辑, 石昌渝 校点, 앞의 책, 150-151쪽.
37) 洪楩 编辑, 石昌渝 校点, 앞의 책, 154쪽.
108 / 中國小說論叢 (第 35 輯)
을 보지 않았다면, 너를 작살 냈을터. 이 억울함은 반드시 갚겠노라!’라고 말을 마치
고는, 신양공이 장로에게 작별하고는 떠나 버렸다.(陈巡检大怒, 拔出所佩宝剑, 匹
头便砍. 申阳公用手一指, 其剑自着身. 申阳公曰:“吾不看长老之面, 将你粉骨碎身.
此寃必报!” 道罢, 申阳公别了长老, 自去了.)38)
신양공은 본시 원숭이 요괴로 신통력이 뛰어나고 변화가 무쌍하며, 여러 동굴의 산도깨비
들을 굴복시키고, 모든 산의 맹수들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제천대성(齊天大聖)이
다. 이런 초능력을 소지한 요괴에게 아무런 대책도 없이 의욕만 앞세워 칼을 휘두른다. 물론
그가 3대째 장군을 지낸 집안의 자제로 무예에 통달하여 늑대와 호랑이 도적 따위를 두려워
하지 않는39) 자신감의 소유자이지만, 결국 인간의 나약함을 노출시키는 동시에 구출 실패
의 당위성을 제시한 설정이다. 인간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요괴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인간 이상의 절대적인 힘을 가진 존재의 출현을 필요로 한다.
각설하고, 자양진인은 대라선계에서 라동에게 이르길: ‘나는 3년 전에 그 진순검
이 임지로 떠날 때 그 처에게 천일의 재앙이 있다 했는데, 이제 이미 기간이 다 되었
느니라. 나는 그가 도를 받들고 진실을 수양하여 너무나도 경건한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가엾이 여기었느니라. 나는 지금 너와 함께 인간계로 내려가 매령에 가서
그 처를 구하여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하겠다.’하였다. 라동은 취지를 받들어 함께
인간계로 내려갔다.(且说紫阳眞人在大罗仙境, 与罗童曰:“吾叁年前, 那陈巡检去上
任时, 他妻合有千日之灾, 今已将满. 吾怜他养道修眞, 好生虔心, 吾今与汝同下凡间,
去梅岭救取其妻回乡.” 罗童听旨, 一同下凡.)40)
요괴를 물리치는 존재로 아내의 재앙을 막기 위해 힘을 실어 주었던 자양진인이 재등장한
다. 자양진인의 주술로 나타난 두 명의 신장(神將)에 의해 신양공은 제압당하고 진신의 아
내뿐만 아니라 함께 잡혀 있던 여인네들도 구출된다. ‘납치에서 구출’까지의 과정에는 도교
의 진인과 불교의 스님, 자혜대사의 설법과 그 설법을 듣는 신양공, 자혜대사의 설득과 실
패, 자양진인의 도력의 의한 구출 등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한다. 특히 실패와 제압의 안배는
불교에 대한 도교의 비교 우위를, 불법을 듣던 신양공이 스님의 요청을 거절한 것은 불법의
38) 洪楩 编辑, 石昌渝 校点, 앞의 책, 158쪽.
39) 洪楩 编辑, 石昌渝 校点, 앞의 책, 150쪽. “小官叁代将门之子, 通晓武艺, 常怀保国之心, 豈怕狼
虎盗贼.(저는 3대째 장군 집안의 자제로 무예에 통달하여 항상 보국의 마음을 가슴에 품고 있는
데, 어찌 늑대와 호랑이 도적 따위를 두려워하리오)”
40) 洪楩 编辑, 石昌渝 校点, 앞의 책, 159-160쪽.
송⋅원 화본소설에 투영된 민속신앙으로서 인과응보 고찰 / 109
무기력함을 넌지시 보여주는 측면이 있으나,41) 이는 이야기의 흥미를 이끌기 위한 안배로
보아야 할 것이다. 대중들에게 납치된 여인의 구출은 구출 자체가 중요한 문제이지 구출에
효과적인 것이 도교의 도술인지 스님의 법력인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야기의 주요 흐
름은 인간의 부단한 노력에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숙명론의 제시이다.
재앙을 감지하고 대비책을 세워보지만 라동(꼬마 도사)의 직무유기로 인해 여춘은 원숭
이에게 납치되고, 납치될 수밖에 없는 숙명을 지니고 있지만 천일의 재앙이 다하자 그녀는
구출된다. 구출과정에서 진신의 노력은 하늘이 정한 인간의 운명을 바꿀 수도 거슬릴 수도
없기에 실패하지만 결국 숙명이 다하면서 제삼자인 진인의 술법에 의해 구출된다. 숙명은
인과응보를 근기로 작용하지만 그렇게 될 수밖에 없기에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
다. 인간의 운명은 하늘의 뜻을 거를 수 없지만 인간의 부단한 자발적인 노력이 가해지면
주어진 숙명은 언젠가 풀리게 된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다. 영원히 풀리지 않고 정해진 대
로 그렇게 되어 진다면 주어진 현재가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 인간은 삶의 의미와 의지를
상실할 것이다. 결국은 풀어지는 숙명이기에 이야기는 현재의 불만족스러운 삶을 극복하려
는 자발적 의지의 분발을 촉구하는 동시에 숙명을 가져온 인과의 엄중함을 제시하고 있다.
송⋅원 화본소설 중 공안(公案)류에 속하는 <보살만菩薩蠻>42) 역시 숙명론을 이야기 전
개의 주요 매체로 활용하고 있다. <보살만>은 모티브별로 “출가 ⇒ 군왕과의 만남 ⇒ 군왕의
총애 ⇒ 신하와의 만남 ⇒사상병 ⇒신하의 임신 ⇒ 억울한 누명 ⇒ 처벌 ⇒ 신하의 이실직
41) 拙稿, <傳奇와 話本小說에 투영된 민간문학 모티브-野獸竊女人의 모티브를 중심으로>(《中國小
說論叢》 第20輯, 2004년 9), 49쪽 참조.
42) 程毅中 / 程有庆 校点, 《京本通俗小说》 <菩萨蛮>, 江苏古籍出版社, 1994年, 15-24쪽. “세 차례
과거에 낙방한 진가상은 과거를 포기하고 영은사에서 출가한다. 뛰어난 문재로 지닌 그는 자신
의 불우한 처지를 원망하는 시를 절의 복도에 적어둔다. 단오날 절에 시주하러 온 황제의 외삼
촌인 오칠군왕이 그의 시를 읽고 감탄하며,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의 추천으로 승려가 되며, 그
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보살만>를 지어 받친다. 군왕의 총애를 받은 그는 이듬해 군왕부에 놀러
갔다가 가녀 신하조에게 반하여 <보살만>을 지어 그녀의 노래하며 춤추는 아름다운 자태를 예찬
한다. 그 이듬해 단오날 장대비로 인해 절에 갈 수 없게 된 군왕은 진가상을 부에 오도록 하지
만, 그는 <보살만>를 지어 상사병으로 몸져누워 있어 갈 수 없음을 전한다. 군왕이 詞를 읽은
직후 공교롭게도 신하의 임신 사실이 발각되고 경위를 조사하자 가상에 대한 군왕의 총애를 빌
어 위기를 모면하려는 신하의 거짓 진술을 한다. 마침 진가상이 군왕에게 보낸 보살만이 증거가
되어 누명을 쓰고 재판을 받은 후 형 집행을 기다린다. 진가상의 평소 덕행을 알고 있던 인철우
주지스님의 호소로 형량이 감해져 곤장 백대를 맞고 풀려난다. 그러던 중 진범인 전원(錢原)이
신하와의 약속을 지키지도 않고 그 부모까지 모욕을 주자, 신하는 군왕에게 이실직고한다. 진상
을 알게 된 군왕은 진가상이 누명 쓴 사실을 알고 그를 모셔오도록 사람을 보낸다. 풀움막에서
건강을 회복한 진가상은 입적을 준비하고, 부에서 온 원공의 보고로 급하게 달려온 군왕 일행이
보는 앞에서 입적한다.”
110 / 中國小說論叢 (第 35 輯)
고 ⇒ 진범체포 ⇒ 입적”으로 정리할 수 있다. 과거 낙방과 어머니의 태교가 원인이 되어
출가하게 되고, 출가한 뒤 그의 뛰어난 시재(詩才)가 원인이 되어 군왕의 총애를 받게 되며,
군왕의 총애에 힘입어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는 일련의 과정은 인과률에 의해 진행이다. 비
록 출가할 수밖에 없는 그의 숙명이 이야기의 발단을 제공하고 있지만, 그가 누명을 벗고
입적하는 과정은 전생에 지은 업의 소멸인 인과응보의 실현이다. 여기에 죄를 지은 사람은
반드시 죄 값을 치러야 한다는 대중들의 현실적 요구가 결합되어 있다. 이야기의 발단을 제
공한 숙명론은 진가상이 점쟁이의 점괘와 어머니의 태몽을 들은 후 과거응시를 포기하고
출가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성은 진이고 이름은 의이며, 자가 가상으로 나이는 24세였다. 생김새는 눈과 눈
썹이 맑고 수려하며, 게다가 총명하여 읽지 않은 책이 없었으며, 역사에 통하지 않
음이 없었다. 소흥 년간에 세 차례나 과거에 낙방하게 되자, 즉시 임안부 중안교에
있는 운명소(점집)에 가서 자신의 운세를 점쳤다. 그 점술가 이르길 “운수에 화개
(華蓋: 승려나 도사가 될 점괘)는 있으나 관운이 없으니, 출가하는 도리 밖에 없소
(출가하는 것이 좋겠소).”라고 말하였다. 진수재는 어려서부터 어머니에게 그가 태
어날 꿈에서 존금신나한(尊金身羅漢)이 가슴으로 뛰어드는 것을 보았다는 말을 들
어왔는데, 지금 입신양명의 꿈이 좌절되었고, 또한 점쟁이의 이런 말을 듣자, 분노
가 치밀어 올랐으며, 여관으로 돌아와 하룻밤을 지내고는 일찍 일어나 숙박비를 계
산하고 일꾼에게 짐을 짊어지게 하고는 곧 바로 영은사로 가서 인철우(印鐵牛) 장
노을 찾아가 출가하여 행자가 되었다.(姓陈, 名义, 字可常, 年方二十四岁. 生得眉目
清秀, 且是聪明, 无书不读, 无史不通. 绍兴年间, 叁举不第, 就于临安府众安桥命铺,
算看本身造物. 那先生言:"命有华盖, 却无官星, 只好出家." 陈秀才自小听得母亲说,
生下他时, 梦见一尊金身罗汉投怀. 今日功名蹭蹬之际, 又闻星家此言, 忿一口气, 回
店歇了一夜, 早起算还了房宿钱, 雇人挑了行李, 径来灵隐寺投奔印铁牛长老出家, 做
了行者.)43)
점쟁이의 점괘가 그로 하여금 출가를 결심하게 하는 동기로 작용하지만 결정적인 단서는
어머니의 태몽이다. 태몽은 단순히 임신이나 태아의 성별을 암시하는 정도가 아니라 평소
바람과 소망이 꿈으로 나타나듯이 임부(姙夫)의 생각이 무의식의 형태인 꿈에 투영된 것이
다. 임부는 임신기간 동안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태아에 대해 지극정성을 다하며, 순조
로운 출산과 순탄한 성장과 원만한 일생 등을 소원하게 된다. 이러한 것들이 사회 문화적
43) 程毅中 / 程有庆 校点, 앞의 책, 15쪽.
송⋅원 화본소설에 투영된 민속신앙으로서 인과응보 고찰 / 111
사고에 걸맞은 꿈인 태몽으로 표현된다. 때문에 태몽에 나타난 상징물은 아이가 성장하여
상징물과 관계있는 인물로 자랄 것이며, 아이의 성품이나 직업 나아가 일생의 여정 등을 암
시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믿음이 일반대중들 사이에서 민속신앙 내지는 산속(産俗)의 일부
로 폭넓게 자리 잡고 있다.44) 그래서 누구나 태몽이 길조(吉兆)이기를 바라고, 설사 꺼림직
하더라도 긍정적으로 해석하려고 한다. 이런 점에서 “온 몸을 금으로 장식한 나한(尊金身羅
漢)이 가슴을 파고들었다.”는 어머니의 태몽은 진가상의 일생이 불교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결국 그는 스님이 될 수밖에 없는 숙명의 소유자처럼 출가하여 스님
이 된다. 그러나 운명의 수레바퀴는 그의 출가에서 그치지 않고 출가 후 스님으로서는 있을
수 없고 있어서는 안 될 여인에 대한 상사병에 그를 시달리게 한다.
주지스님은 “요즘 가상은 마음의 병을 얻어 승방 밖에 나오지 않는다오. 우리 함
께 그에게 물어보러 가봅시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리하여 원공과 주지스님은 함께
가상의 처소로 갔다. 가상은 처소에서 잠을 자다 말고, 원공에게 부탁하길 “은혜로
운 군왕님께 절 올리며 아뢰건대, 소승은 마음에 병이 생겨 갈 수가 없습니다.” …
(중략)…. 군왕이 찢어 펼쳐 보니, <보살만> 사 한 수가 쓰여 있었는데, “작년엔 다함
께 창포주(菖蒲酒) 마셨는데, 금년엔 오히려 승방(僧房)만 지키고 있네. 좋은 일엔
마(魔)가 더욱 많은 법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어쩔 수 없게 한다네. 군왕님은 은총
깊으시니, 이 마음 속의 고통 아시리! 만약 신하에게 (이 사를) 감상하게 한다면,
병이 낫게 될지 어찌아랴?”(长老说:“近日可常得一心病, 不出僧房, 我与你同去问
他.” 院公与长老同至可常房中. 可常睡在床上, 分付院公:“覆恩王, 小僧心病发了, 去
不得.” …(중략)…. 郡王拆开看, 又是 《菩萨蛮》词一首:“去年共饮菖蒲酒, 今年却向
僧房守. 好事更多磨, 教人没奈何. 主人恩义重, 知我心头痛. 待要赏新荷, 争知疾愈
幺?”)45)
단오날 장대비로 인해 절에 시주를 갈 수 없게 된 군왕이 가상을 부로 오도록 하지만,
가상은 마음의 병으로 인해 갈 수 없음을 고하고 사를 지어 군왕에게 보낸다. 여기서 가상이
언급한 마음의 병은 지난해 단오날 군왕의 처소에서 보았던 가녀(歌女) 신하로 인해 생긴
상사병이다. 신하에 대한 마음을 한편의 사(詞)를 통해 표현한 가상은 출가한 스님이다. 출
가승의 첫 번째 계행이자 덕목은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 위로는 보리를 추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한다)’으로, 속세의 인간에 대한 연정 때문에 상사병까지 걸린
44) 박상란, <비극적 태몽담과 죄의식의 문제>(《한국어문학연구》 제 55집, 2010), 200쪽.
45) 程毅中 / 程有庆 校点, 앞의 책, 18-19쪽.
112 / 中國小說論叢 (第 35 輯)
상황은 분명 출가승의 도리가 아니다. 이는 출가한 스님이지만 여전히 인간적 감정을 소유
하였기에 인간사와 관련된 모종의 사건에 연루될 것임을 암시하는 설정이다. 결국 신하에
대한 속마음을 담아낸 <보살만>은 이후 스님으로 해서는 안 되는 부도덕적인 행위(신하와의
사통과 임신)를 한 것으로 오해 받는 증거가 되고, 이로 인해 곤경에 처하게 된다.
신하는 임신사실이 들통 나자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진범인 전원과 짜고 거짓으로 가상과
간통했노라 자백한다. 신하의 자백에 근거한 추궁과 매질에 굴복한 가상은 간통을 인정하는
거짓자백을 하게 되고, 분노한 군왕은 가상을 당장 처단하려고 하지만, 주지스님의 간청으
로 그를 죽이지 못하고 감옥에 가두어 버린다. 그러나 무고의 진실은 시간이 지나더라도 반
드시 밝혀져 누명을 벗게 되고, 죄를 지은 자는 언젠가 그 죄 값을 치러야 한다는 것이 대중
들의 상식이며, 인과응보의 정당한 실현이다. 진가상의 누명에 얹힌 인과응보의 실현은 뜻
하지 않은 것에서 출발한다.
다음날이 되자, 신하와 그 부모는 군왕부 앞에 이르러 계속 소리치며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이에) 군왕은 즉시 사람을 잡아오도록 하니, 바로 신하와 부모였다.
군왕은 다그치며 “너의 딸이 대역죄를 지었는데, 오히려 부 앞에 억울하다고 하다
니!”라고 말하자, 장노인은 무릎을 꿇고 앉아 “은혜로운 군왕님! 소인의 여식이 복
이 없어 큰일을 저질렀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사람은 무고합니다. 군왕님께서
이 일을 관장해 주시길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군왕이 “누가 무고하단 말이냐?”라
고 묻자, 장노인은 “소인은 상세히 모르니 천박한 딸년에게 물으시면 곧 명백해질
것이옵니다.”라고 고하였다. 군왕이 “딸년은 어디 있느냐?”라고 묻자, 장노인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고하자, 군왕은 그녀를 들어오라고 하여 그녀에게
상세한 내용을 물었다. 신하는 부의 법정에 들어와서 무릎을 꿇자. 군왕이 “천박한
계집 같으니! 나쁜 짓 한 주제에 누가 무고하다고 말하려는 것이냐?”라고 묻자, 신
하는 “은혜로운 군왕님, 이 천한 계집이 비록 간통을 범하였지만, 가상 스님은 억울
하옵니다.”라고 고하였다.(至次日, 新荷跟父母到郡王府前, 连声叫屈. 郡王即时叫人
拿来, 却是新荷父母. 郡王骂道:“你女儿做下迷天大罪, 到来我府前叫屈!” 张老跪
覆:“恩王, 小的女儿没福, 做出事来, 其中屈了一人, 望恩王做主.” 郡王问:“屈了何
人?” 张老道:“小人不知, 只问小贱人便有明白.” 郡王问:“贱人在那里?” 张老道:
“在门首伺候.” 郡王唤他入来, 问他详细. 新荷入到府堂跪下. 郡王问:“贱人, 做下不
仁之事, 你今说屈了甚人?” 新荷:“告恩王, 贱妾犯奸, 妄屈了可常和尚.”)46)
전원의 계책으로 가상에게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씌웠던 신하는 자신을 강간했던 전원의
46) 程毅中 / 程有庆 校点, 앞의 책 21-22쪽.
송⋅원 화본소설에 투영된 민속신앙으로서 인과응보 고찰 / 113
배신에 진실을 밝히기로 결심하고 부모와 함께 부에 출두하여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녀의
이실직고는 군왕의 총애를 받고 있던 가상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위기를 모면하려던 전원의
약속 불이행과 신하의 부모 욕보이기가 초래한 것이다. 이는 현실적 이익을 위해 정의에 눈
감아 버렸던 보통의 사람들이 현실적 이익을 얻지 못했을 때 그 실망감과 배신감으로 진실
을 발설하는 심리상태의 여과 없는 표현이다. 전원에 대한 배신감과 가상에 대한 죄책감으
로 관에 억울함을 호소한 신하와 그 부모가 군왕을 만나는 장면은 악인은 죄를 선인은 복을
받아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가 실현되는 순간이다.
즉시 임안부에 분부하여 전원을 잡아다 법정으로 끌고 와 심문하도록 하였다. 자
백이 명백하자, 백일을 만기일로 하여 척장(脊杖: 척추를 매질하는) 80대를 가하
고, 사문도(沙門島: 송대 가장 혹독한 유배지)의 뇌성(牢城) 감옥으로 보내 감금시
켰고, 신하는 원금 천관을 면제받고 집으로 돌아갔다.(就着人分付临安府, 拿钱塬到
厅审问拷打, 供认明白. 一百日限满, 嵴杖八十, 送沙门岛牢城营料高. 新荷宁家, 饶
了一千贯塬钱.)47)
신하의 자백으로 전원은 법정에 끌려나와 고문을 받고 자백함으로써 척추를 매질하는 척
장(脊杖=杖脊)의 형벌에 처해지는 동시에 당시 가장 혹독한 유배지인 사문도(沙門島)로 유
배당하는 중형에 처해진다. 반면 신하는 원금 천관을 면제 받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는 일반인들의 상식에 어긋나는 판결이다. 즉, 전원의 계책이라고 하지만 보상을 약속 받
고 거짓 진술을 함으로써 무고한 가상을 범인으로 몰아 고초를 당하게 한 그녀 역시 위증의
죄가 있기에 단죄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관용이 베풀어진 것은 동병상련이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그녀 역시 전원에게 강간당한 피해자이자 부에 소속된 힘없는 가녀
(歌技)로 일반대중에게 그녀는 자신들과 같은 약자라는 인식과 사실을 자백하여 자칫하면
숨겨질 수 있었던 진실이 밝혀지도록 했다는 점이 참작되었던 것이다. 가상의 무고함은 명
백히 밝혀지지만, 그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업보임을 대중들에게 밝히며 입적한다.
각설하고, 가상은 풀움막에서 건강을 되찾았다. 또한 마침 오월 오일이 다가와,
가상은 종이와 먹 붓을 가져다가 <사세송> 한 수를 지었는데, “태어난 날도 단오요,
승려 된 날도 단오라네, 죄 얻은 날도 단오요, 죽는 날도 단오라네. 전생에 그에게
진 부채 때문이니, 만약 당시에 죄를 시인하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이 고통 받을까
두려웠네. 오늘에서야 일이 분명해졌으니, 몸을 빼어 저승으로 돌아감이 좋겠네!
47) 程毅中 / 程有庆 校点, 앞의 책 22쪽.
114 / 中國小說論叢 (第 35 輯)
오월 오일 오시(午時)의 글로 오해는 다 사라졌고, 오월 오일 단오절에 여러 오해는
다 사라졌네.…(중략)…. 모든 사람들은 불빛 속에 나타난 가상을 보고 합장하여 인
사하자, “군왕과 부인, 장노와 여러 승려들께 감사하며, 이르길 “저는 전생에 진 부
채 때문에, 이승에 왔다가 돌아갑니다. 제가 이제 선경으로 돌아가면, 다시는 인간
세상에 올 수 없습니다. 저는 오백 나한 중 이름이 상환희존자입니다.”라 하였다.
(却说可常在草舍将息好了, 又是五月五日到. 可常取纸墨笔来, 写下一首 <辞世颂>:
“生时重午, 为僧重午, 得罪重午, 死时重午. 为前生欠他债负, 若不当时承认, 又恐他
人受苦. 今日事已分明, 不若抽身回去!五月五日午时书, 赤口白舌尽消除; 五月五日
天中节, 赤口白舌尽消灭.” …(중략)…. 众人只见火光中现出可常, 问讯, 谢郡王⋅夫
人⋅长老并众僧; “只因我前生欠宿债, 今世转来还. 吾今归仙境, 再不往人间. 吾是五
百尊罗汉中名常欢喜尊者.”)48)
단오절에 승려가 되고, 단오절에 죽게 된 자신의 운명은 전생의 부채 때문임을 밝힘으로
써 인과의 실천적 결과임을 드러내었다. 죄가 없음에도 거짓 자백을 한 것은 자신이 자백하
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고초 당할 것을 염려하여 그러하였음을 <사세송>에 밝힌다. 이는 하
화중생(下化衆生)을 서원으로 세운 스님으로써 다른 사람이 고통 받느니 자신이 고통을 감
내하겠다는 구도자로써의 실천적 행동을 보여준 사례이다. 또한 자신은 5백 나한(羅漢) 중
상환희존자(常歡喜尊者)로 선계에 돌아가면 다시는 인간 세상에 올 수 없다며 열반에 든다.
열반에 드는 그 자체가 깊고도 두터운 인과응보의 윤회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한다. 나한은
불제자가 도달하는 최고의 경지로 온갖 번뇌를 끊고 사제(四聖堤)의 이치를 바로 깨달아 세
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만한 공적을 갖춘 성자로서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 존재이다. 가상
이 전생의 악업을 소멸하고 열반에 들어 나한이 되는 일련의 과정은 녹녹치 않는 현실(과거
실패와 출가처럼)에서 숙명처럼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과 뜻하지 않는 현실적 고통(모함
과 체벌처럼)으로 괴로워하는 대중들에게 윤회의 사슬을 끊고 영원한 안식을 취할 수 있다
는 희망을 제시함으로써 삶의 의미와 의욕을 제공하였다.
<진순검매령실처기>의 여춘(진순검의 아내)이나 <보살만>의 진가상은 납치와 출가라는
숙명으로 인해 납치되고 출가하지만 그들의 숙명은 결국 타계된다. 숙명은 전세에 지은 업
인에 의한 현실적 응보라는 점에서 인과응보의 다른 표현일 뿐 상대적 개념도 부정적 개념
도 아니다. 숙명의 근원인 업과 숙명의 실천인 윤회는 주어진 운명을 개척해가는 자율의지
(自律意志)적 요소와 함께 운명에 따르는 숙명론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49) 궁극적으로
48) 程毅中 / 程有庆 校点, 앞의 책 22-24쪽.
49) 허남결, <업과 윤회 사상의 일상적 수용 태도>(《印度哲學》 제26집, 2009), 128-131쪽.
송⋅원 화본소설에 투영된 민속신앙으로서 인과응보 고찰 / 115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어떤 조건이나 환경의 영원한 포로가 아니라 그것을 바꾸기
위해 생각하고 말하며 또한 행동할 수 있는 윤리적 존재이다. 때문에 장산대왕에게 납치된
여춘이나 출가하여 스님이 된 진가상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숙명을 뛰어넘어 이를 극복한다.
인과응보는 중국인들의 사유방식으로 진입한 뒤에 원래 추구하던 권선적 기능의 수행에
서 점차 멀어져 세속적인 욕망을 추구하고 실현하는 도구로 변한다. 이는 현실적 이익을 추
구하고 갈망하는 욕구를 충족시키는 민속신앙의 속성과 맞닿아 있다. 때문에 인과응보는 고
등 종교(유⋅불⋅도)의 추상적인 이론을 필요로 하거나 종교적 가치를 실현하는 이념이 아
니라 현실적 필요로 의해 지속적으로 대중과 호흡하는 현장성을 지닌 민속신앙으로 자리하
였던 것이다.
4. 나오는 말
선악유보가 관념적 도덕적 윤리 관념이라면 인과응보는 논리적 종교적이다. 그러나 이들
이 추구하는 결과는 동일한 것으로 종교적 신념이나 혹은 일반 대중들의 보편적인 믿음으로
생활 속에 상존하는 반드시 그렇게 되어져야 하는 불변의 법칙이다. 이들 불변의 법칙은 대
중들의 만족스럽지 못한 현실의 제반현상에 유⋅무형으로 답하면서 민중들의 상처받은 마
음을 어루만져 주며 녹녹치 않는 삶에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동기를 제공한
다. 격의를 통해 인과응보는 어렵지 않게 대중들에게 접근하여 중국인들의 사유 체계로 기
왕에 자리 잡고 있던 선악유보와 합류하였고, 이들은 마치 동일한 근원으로부터 출발한 표
현상의 차이만을 지닌 개념으로 이해되었다. 그로부터 인과응보는 더 이상 불교만의 종교적
개념이 아니라 일반명사로서 대중들의 생활 속에 자리 잡은 민속신앙의 영역으로 진입하였
다. 민속신앙으로 자리 잡은 인과응보는 지괴를 비롯하여 당대 전기소설에 투영되기도 하지
만, 일반 대중들의 생활을 그려낸 송⋅원 화본소설에 본격적으로 반영된다. 대중들의 애환
을 담아낸 송⋅원 화본소설의 출현은 소설 창작자의 전이가 이루어진 획기적 계기를 제공하
였다. 소일거리로 소설을 창작했던 기존 문인 작가군과 달리 생계를 위해 이야기를 팔던 설
화예인이나 서회 소속 문인들의 작가군 참여는 이야기의 흐름과 유형을 바꾸어 버렸다. 그
들은 돈벌이를 위해 대부분이 일반대중 집단인 독자나 청중들의 흥미와 만족을 이끌어 내야
만 했고, 이를 위해 강렬한 오락성과 대중의식을 담아낼 수밖에 없었다. 대중의식 중 가장
중요한 작용을 일으키는 것이 바로 민속신앙이며, 그 기본적인 중심축은 만물유령설과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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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관념 그리고 선악유보를 아우른 인과응보이다.
송⋅원 화본소설에는 비록 종교 신앙을 주요 정절로 삼지 않았을 지라도 대중들의 현실적
이익에 답하는 민속신앙에 근거한 이야기들이 적지 않다.50) 이는 송대 이학이 사상의 영역
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확정된 이후 불교 사상이 민속신앙의 조속한 형식으로 민중들에게
전파되었기 때문이다.51) 송⋅원소설화본 중 민속신앙은 당시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반영한
것이다. 그들의 정신세계는 결코 고상한 것이 아니며, 경우에 따라서는 졸렬하고 저속하기
까지 하다. 은혜를 입으면 은혜에 보답하려고 하는 것, 과거에 합격하기 위해 시제를 몰래
훔치는 것,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시험 볼 때 과장(科場)에서 커닝을 하는 것, 재앙을
피하기 위해 남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는 것 등은 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진솔하기까지 하
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진솔한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는 민중들의 사유세계를 대변하는 민
속신앙 중 흔히 불교사상으로만 이해하고 있는 인과응보에 대해 살펴보았다. 중국 전통적인
선악유보와 합류된 인과응보는 인과응보 자체가 이야기의 목적이었던 지괴류와 석씨보교서
단계를 지나, 송⋅원 화본소설에 이르러 이야기를 엮어가는 기본 매체로 작용하면서 대중들
의 심리를 반영하였다. 그 누구로부터 보호 받지 못하지만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답답한 현
실에서 정의가 실현되고, 죄 지은 자가 현실에서 죄 값을 치루고, 숙명이 인생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자율적 의지에 의해 해소되는 이야기를 통해 대중들은 위로 받고 마음의 상처
를 치유 받으며, 삶의 의욕을 불태우는 계기를 삼았던 것이다.
본 논문은 송⋅원 화본소설에 투영된 사상과 시대성을 유⋅불⋅도의 관점에서 분석하던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이야기의 주체자인 민중들의 사유체계에 주목하여 고찰을 시도하였
다. 특히 인과응보를 불교적 울타리에서 파악한 기존의 연구 틀에서 벗어나 민속신앙 측
면으로 접근하여 분석함으로써 분석 틀의 외연 확대를 기하고자 하였다. 물론 민속신앙은
송⋅원 화본소설에만 국한되지 않고 이후 삼언양박(三言兩拍)이나 明⋅淸대 단⋅장편백화
소설과 문언소설에서도 지속적으로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때문에 어떠한 형태로 대중들의
현실적 기대와 희망을 대변하였으며, 이를 위해 어떻게 서사구조에 투영되었는지에 대한 지
속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이며, 이후 본 연구자의 연구 과제이기도 하다.
50) 朱迪光, <民间信仰与中国小说的演变>(《东亚人文学》第3辑, 东亚人文学会编, 2003년), 169-170
쪽.
51) 孫昌武, 앞의 책, 2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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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文提要>
宋元話本小說是宋元代市井文學的代表, 它不但反映了當時一般大衆的思想觀念, 而且它展現
了一幅幅立體生動的民俗生活與市井百態, 濃厚的一般大衆生活氣表現的畵卷。 由此我們可以看
到流行於當時民衆的情神面貌。 民衆精神生活中占有重要地位就是民俗信仰。 它主要有靈魂信仰,
萬物有靈觀念, 善惡有報, 因果應報等等。 善惡有報和因果應報是兩種旣有區別又有連系的觀念,
區別在于其思想來原不同, 受報的主體也不同。 善惡有報是中國傳統思想, 受報的主體有時是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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己, 而大部分是連續的家族子孫。 而因果應報卽來自佛敎的觀念, 受報的主體不是家族子孫, 而是
在六道輪回的主體本人。 宋元話本小說中體現的報應觀念是自作自受的, 而且有着現實與實用的
作用。 大部分民衆信仰中善惡有報和因果應報觀念沒有明確地區別。 佛敎轉入之後, 它爲土着化
以活用於格義過程中兩者互相吸收而混一的現象。 小說中因果應報以外還有宿命論, 宿命就是前
世作業之露出瞭現世的應報, 所以它不是與因果應報的相對的槪念, 其實與因果應報觀念也是一
脈相乘的而有表現的差異而已。 因果應報觀念在宋元話本小說中幾乎無處不在, 它有一定的勸世
效果, 令人對結果心存畏懼而志向道德社會的正義實現。 綜而論之, 宋元話本小說中的民俗信仰
展現了當時大衆的精神世界。 其實大衆精神境界幷不高尙, 有時卑微和庸俗, 比如對施恩圖報, 轉
嫁災禍等, 但它是自然而且眞實的。 這就是民俗信仰的特色。
關鍵詞: 宋元 話本小說, 善惡有報, 因果應報, 民俗信仰, 地獄, 宿命, 釋氏補敎書, 開放
性과 非系統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