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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야기

사르트르 실존주의와 앙가주망론의 한국적 반향(정명교/연세대)


1. 실존주의의 편재성
2. 실존주의와 앙가쥬망에 대한 상이한 수용면
3. 앙가주망에 대한 논리적 비판의 풍경
4. 사르트르를 넘어간다는 것의 의미


<국문초록>
해방 이후의 한국인 및 한국문학에 실존주의가 끼친 영향은 아주 크다
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영향은 오늘날까지도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이 논문은 실존주의의 한국적 영향력이 사르트르에 집중되고 있음을 밝
히고 사르트르 실존주의 및 그 문학적 이론인 앙가주망론이 수용되거나
이해된 경로를 추적하여 그 이해 양상을 밝히고자 했다. 사르트르 실존주
의는 해방 이후 세 가지 경로를 통해서 수용되었다. 첫째는 해방 직후
새로운 이념형을 모색하는 차원에서였고, 두 번째는 6.25 전쟁의 참화가
가져다 준 정신적 공황을 대변할 수 있는 철학을 만났기 때문이었고, 세
번째는 참여문학론의 목청이 드높아지는 정황 속에서 참여문학론의 대
표격으로서 앙가주망론이 검토된 경우였다. 이 아주 이질적으로 보이는

세 가지 경로에서 한국인들은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동일한 의지에 의해
실존주의로 이끌렸으니, 그것은 새로운 생의 의지를 실존주의가 제공해
준 덕분이었다. 따라서 ‘허무’, ‘절망’의 철학적 대응물로서의 실존주의라
는 종래의 상투적 인식은 수정되어야 한다. 다른 한편, 실존주의, 특히
사르트르 실존주의는 첫 번째 경로와 세 번째 경로에서 모두 비판되었는
데, 그 근거는 모두 ‘주관적 관념론’이라는 판단에 의해서였다. 그런데 이
판단의 정치적 배경은 극단적으로 상이했는데, 첫 번째 경로에서의 사르
트르 비판은 공산주의에 근거한 것이었던 데 비해, 세 번째 경로에서의
사르트르 비판은 그의 앙가주망론이 공산주의에로 경사될 것을 우려한
반공주의적 태도에 의한 것이었다. 이 정치적으로 상극인 두 입장이 함께
찾아낸 사르트르 실존주의의 ‘주관적 관념론’은 따라서 그 실내용의 부실
성을 의심케 하였으니, 첫 번째 입장은 막연한 유토피아주의에 근거한
졸속적 인식에 그치고 있었으며, 세 번째 입장 역시 공동체적 결속에 대
한 심리적 집착이 촉진한 주관적 편견에 의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피상적 이해가 오늘날까지도 한국 지식인들의 심리를 장
악하고 있다는 것으로서, 그것은 사르트르 실존주의가 출현한 계기, 즉
개인과 집단을 동시에 구출하고자 하는 논리를 세우려 했던 의도와 그
실천을 정당히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사르트르 이전의 정신적 수준에
머물게 하고 있다. 따라서 사르트르를 온당하게 극복하기 위해서는 개인
과 집단에 대한 근본적으로 새로운 논리적 사유가 요청된다고 할 수 있다.


주제어: 실존주의, 사르트르, 앙가주망, 생의 의지, 주관적 관념론, 한국
지식인의 정신적 수준


1. 실존주의의 편재성
바깥으로부터 들어 온 생각, 특히 근대 이후의 사유 중 사르트르와 실
사르트르 실존주의와 앙가주망론의 한국적 반향 197
존주의만큼이나 한국인들에게 영향을 준 것은 없을 것이다. 해방 직후
실존주의가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하면서 실존주의는 아주 광범위한
수용자층에게 전이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로 사그러들기는커녕 꾸준한 형세를 유지해 온 것으로 보인다. 가령 ‘실
존’과 더불어 20세기 후반기에 중요한 철학적 개념으로 떠오른 세 가지
개념을 구글 검색 엔진을 통해 출현 빈도수를 살폈더니 다음과 같은 결과
가 나왔다.


실존 구조 해체 구성
4,490,000 20,700,000 1,980,000 30,300,000
주의 897,000 226,000 811,000 260,000
주의 문학 119,000 97,600 317,000 69,900
주의 문화 137,000 129,000 640,000 120,000
주의 예술 295,000 83,400 388,000 54,700
주의 철학 402,000 102,000 369,000 73,400
(Google 검색, 2015.11.04., 16:00-18:00, 왼쪽 칸의 어휘는 해당 개념에 붙여서 검색
했다는 것을 가리킨다. 즉 ‘실존’의 경우 ‘실존’이라는 단어만으로 검색하면 4,490,000
건이 확인되지만, ‘실존주의’라는 단어로 검색하면 897,000건이 확인되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표 1>


이 도표는 이제 학문적이거나 문학·예술적인 ‘경향’으로서는 시절이 지
났다고 평가되고 있는 실존주의가 여전히 자주 사용되고 있음을 잘 보여
준다. 실존주의 이후 세계 사상에 굵은 자취를 남긴 다른 세 사상과 비교
를 해 보면, ‘구조주의’와 ‘구성주의’는 상대적으로 쓰이는 정도가 희박하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가어 없이 그 어휘 자체만으로 검색하면 ‘구조’와
‘구성’의 쓰임새가 압도적으로 많은 걸 볼 수 있는데, 이는 일상어로서는
그 단어들이 그만큼 자주 쓰인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철학이나 예
술, 문화, 문학 등에서는 오히려 ‘실존’과 ‘해체’가 훨씬 많이 쓰이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 실존과 해체는 유사한 빈도수를 보여주고 있는데, 자
세히 보면 ‘해체’는 비교적 문화·예술 쪽에서 더 많이 쓰이고 ‘실존’은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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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2권의 잡지에서 조사된
어휘(한자, 유럽어 포함)
+ 주의, 철학
실존 1582권 중 8808번 363 권 중 955번
해체 868권 중 2335번 143 권 중 248번


학 쪽에서 약간 많이 쓰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학·문화·예술’
쪽에서의 차이는 의문점을 던져준다. ‘해체’ 쪽의 빈도수가 압도적으로
많은데 이는 오늘날의 문화·문학·예술의 포스트모던한 현상을 반영한다
고 가정해 볼 수 있다. 그런데 다른 조사는 이와는 좀 다르다. 필자는
소유하고 있는 문학잡지들 중 디지털화한(OCR 기술의 불완전성으로 인
해 완벽한 조사는 불가능하지만, 어쨌든 유용한 관찰에 쓰일 수는 있는
정도다) 2682권을 대상으로 ‘실존’과 ‘해체’의 어휘가 출현하는 빈도수를
두 가지 경우로 나누어 살폈다. 하나는 ‘실존’ 혹은 ‘해체’ 다음에 ‘주의’나
‘철학’이 붙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순수하게 ‘실존’ 또는 ‘해체’라는 단
어가 발견되는 빈도수이다.
<표 2>
그랬더니 여기에서는 두 가지 경우 공히 ‘실존’ 쪽의 빈도수가 압도적
으로 많았다. 이는 적어도 ‘문학’ 쪽에 관련된 한국인들은 ‘실존’이라는
단어에 깊은 애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조사된 문학잡지 중
2/3가 ‘실존’이라는 어휘를 한 번 이상 포함하고 있으며, 평균 잡아 실존
이라는 단어가 권 당 5번 이상 되풀이된다는 것은 개념에게 드리워진
지복이라고 할 만하다.
실로 실존은 사방에서 애호되고 있는데, 가령 그것은 1950년대에 김동
리가 「실존무」에서 “부라뽀야,부라뽀오! 실존주의가 무엇인지 이제는
아는 거야!1)”라고 외쳤을 때의 그 ‘실존’에 대한 강렬한(혹은 허망한) 느
낌에서부터, 2012년 한 작가의 소설에서


1) 김동리, 「실존무」, ?실존무?, 인간사, 1958.
사르트르 실존주의와 앙가주망론의 한국적 반향 199


‘거장의 얼굴’이라는 제목의 세번째 섹션에는 작가가 찍은 유명 인
사의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처음 우리를 맞은 건 사르트르였다. 안
개에 젖은 다리를 배경으로 서 있는 사르트르는 파이프를 입에 문
채 뭔가 못마땅한 듯 찡그린 얼굴이었다2).
와 같은 대목에서 보이는 ‘사르트르’를 작품 내용의 장신구로 사용하는
태도에까지 폭넓게 퍼져 있다. 한말숙의 소설 「신화의 단애」(?현대문학?,
1957.6)를 둘러 싼 김동리와 이어령의 ‘실존주의’ 논쟁3)은 또한 어떠한가?
한 소설가는 “광웅이 형한테서 까뮈와 사르트르를 얻어들은 것이 고등학
교 때였4)”다고 회고하고 있는데, 필자 역시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
님이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를 요약해 소개해 주셔서 대학교에 입
학하자마자 제일 먼저 읽은 책이 그것이었다. 더 나아가, 영어권 문헌을
통해서 자신의 문학관을 벼려 온 김수영이 “우리는 우리들 자신의 문학
(문학이라고 해둡시다)을 신용하지 않소. 이것이 현대의 명령이오5)”라는
말이 카뮈의 것임을 여러 번 언급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인데,
더 나아가 그에게 뚜렷한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이는 극작가 에드워드 올비
(Edward Albee)6) 역시 “기독교적 실존주의자7)”의 범주에 포함된다는 점


2) 서하진, 「현대의 토템」, ?자음과 모음? , 2012년 가을, 자음과모음, 90쪽.
3) 이어령, 「영원한 모순 – 김동리씨에게 묻는다」, ?경향신문? 1959.02.09.-10, 김동
리, 「좌표 이전과 모래알과 – 이어령씨에게 답한다」, ?경향신문?, 1959.02.18.-19,
이어령, 「논쟁의 초점 – 다시 김동리씨에게」, ?경향신문? 1959,02.26-28, 김동리, 「초점, 이탈치 말라-비평의 윤리와 논리적 책임」, ?경향신문? 1959,03.06-7, 손세
일 편, ?한국논쟁사. II. 문학/어학?, 청람문화사, 1980
4) 송하춘, 「도스토예프스키 집의 시절」, ?쿨투라?, 2010 봄, 184쪽.
5) 김수영, 「글씨의 나열이오」, ?김수영 전집 2?, 민음사, 2007, 115쪽.
6) 김수영의 요설조 시, 「전화 이야기」(?김수영 전집 1?, 민음사, 2003)는 “여보세요.
앨비의 아메리칸 드림예요. 절망예요.”로 시작한다. 그 시에서의 ‘앨비’가 바로
올비임은 영어 철자의 일치(시 안에 나온다)와 올비의 작품 중 「아메리칸 드림」
이 있다는 것으로 확신할 수 있다. 또한 산문, 「반시론」(?김수영 전집 2?, 민음
사, 2007)의 마지막 문단에서 그는 “앨비와 보즈네센스키의 싸움”을 자신이 해결
해야 할 큰 과제로 언급하였다.
7) 안규완, 「에드워드 올비(Edward Albee) 극의 기독교 실존주의적 접근」, ?신영어영
문학? 21호, 신영어영문학회, 2002.
200 비교한국학 Comparative Korean Studies Vol. 23 No. 3


도 실존주의의 파급이 의외로 한국문인들의 속 깊은 곳까지 다달았다는
점을 암시한다.
그리고 실존주의는 무엇보다도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였다. 비록 그 용
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세상에 널리 퍼뜨린 게 사르트르이긴 하지만,
유럽의 정신사에서 보자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하이데거 철학의 특
이한 변이종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실존주의란 용어
는 사르트르만의 독점물이 아니고 야스퍼스, 키에르케고르, 카뮈, 메를로
-퐁티에 의해 공조적으로 실천된 새로운 생각의 흐름이었다8). 그러나 한
국에서는 누구보다도 사르트르가 실존주의의 대변자로 이해되어 왔다.
다음 조사표 역시 그러한 사정을 잘 보여준다.
실존주의 이름 경음 포함
existentialisme
(인물이름 유럽어)
사르트르 53,400 82,100 415,000
하이데거 28,400 452,000
야스퍼스 38,300 244,000
키에르케고르 17,400 395,000
카뮈 23,400 30,700 409,000
메를로-퐁티 28900 183,000
(Google 검색, 2015.11.04., 16:00-18:00) (오른편의 어휘와 왼편의 어휘를 함께 적고
검색했을 경우의 빈도수이다.)
<표 3>
유럽어 사이트에서 실존주의와 연관된 사상가로서 포착된 이름들이
사르트르, 하이데거, 키에르케고르, 카뮈에게 공평하게 분포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한국의 경우에는 사르트르가 압도적이다. 더욱이
이미혜의 조사에 의하면 1896년에서 1990년까지 한국에 번역 소개된 프
랑스 작가의 작품 건수는 카뮈가 195개로 압도적이었다. 지드(173건), 모
빠상(157건)에 이어서 사르트르가 109건으로 네 번째에 해당하였다9). 그


8) 주지하다시피, 실존주의를 요령있게 소개하고 있는 풀키에(Paul Foulquié)의 ?L’existentialisme?
(P.U.F. 1947)는 실존주의의 현대적 흐름을 키에르케고르–하이데거–사르트르의 순서
로 잡고 있다.
사르트르 실존주의와 앙가주망론의 한국적 반향 201


러니까 순수한 문학적 선호도로 보자면 사르트르는 카뮈나 지드에 미치
지 못했는데10), 실존주의에 관한 한 사르트르가 단연 그 제왕으로 간주되
어 온 것이다.
이상의 정보로부터 무슨 지식을 추출해낼 것인가? 다행스럽게도 우리
는 일상적으로는 익숙하면서도 지각하지 못하고 있고, 의식적으로는 거
꾸로 이해하고 있는 하나의 문제를 교정할 기회를 얻게 된다. 즉 ‘실존주
의’가 한물간 유행 사조가 아니라는 것이다. 실존주의는 최근의 유행 철
학만큼이나 ‘인문학’으로서의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특히 문학 쪽에
서의 작용은 훨씬 더 강력하다. ‘실존’이라는 단어의 압도적인 사용량에
비추어 보면, 실존주의는 아예 한국인의 해마 안에 깊숙이 저장되어 하나
의 체질화된 정신적 조각이 되었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이는 ‘실존인물’
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상당수 그 사용량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도 그렇다.) 고은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시대[=50년대]를 산 사람이면
거의 한 번씩은 사르트리앵이 되었던 것이11)”고, 오늘날까지도 그 여파
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듯이 보인다.
물론 이러한 실존주의와 사르트르의 한국적 ‘존속’이 정확하고 올바른
것이었느냐는 의심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문화 접변의 양상에서는 꼭
정확한 것만이 유의미한 것은 아니다(그리고 정말 정확하게 말하면 ‘정확


9) 이미혜, 「한국의 불문학 수용사」, 서울대학교박사학위논문, 1992, 18쪽.
10) 지영래의 「작품별 번역 양상을 통해서 본 사르트르의 국내 수용 연구」(?불어불
문학연구? 76집, 한국불어불문학회, 2008)는 2007년까지의 사르트르 번역 양상
을 살피고 있는데, 이미혜의 조사 이후, 즉 1990년 이후 재번역이 8권 9건, 신역
초역이 1권, 완역이 1권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009년의 ?변증법적 이성비판?까
지 포함시키면 신역이자 완역이 1권 추가된다. 이러한 현황으로는 본문의 상황
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다른 작가의 경우, 최근의 조사가 있는지 알 수 없
으나, 경험적인 관찰로 보자면, 지드는 오늘날 거의 읽히지 않는다. 반면 카뮈
는 연전에 번역 전집이 출간되었을 정도로 독자가 많다. 사르트르의 소설이 거
의 읽히지 않는다는 건 학생들과의 대화를 통해 얼마간 짐작이 된다. 반면 철
학자로서의 사르트르에 대한 인지도는 매우 높은 편이다.
11) 고은, 「서정주 문학의 시대」, ?고은전집 제 18권, 산문 3?, 김영사, 2002, 450쪽.
202 비교한국학 Comparative Korean Studies Vol. 23 No. 3


한’ 유입은 실제론 불가능하다.). 1950년대의 실존주의 수용이 “철학적·인
식론적으로 생산, 운위된 것이 아니라 ‘정서적 분위기’ 속에서 증폭되었
다12)”는 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 정서적 증폭이 생산한 모종의 정신적
새로움은 그 나름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온전한 유입을 통해서 일어난
과학적인 이해가 한국사회에 어떤 정신적 쇄신을 주었는가 역시 따져
봐야 할 일이다.
어느 프로축구팀의 공격적 경향을 두고 ‘닥공’이라고 흔히 부른다. ‘닥
치고 공격’의 축약어라고 한다. 한편 오페라 공연에서 마지막 공연을 뭐
라고 할까? ‘마공’이라고 할 것 같지만 ‘막공’이라고 한다. 프로이트는 「꿈
의 작업」(?꿈의 해석?)에서 이런 종류의 축약을 ‘압축condensation13)’이라
고 불렀고, 야콥슨은 이 압축을 다시 문학이론의 무대로 불러와서 ‘은유’
에 일치시켰다14). ‘닥공’과 ‘막공’에서 볼 수 있듯이 은유에는 엄격한 규칙
이 없다. 첫음절이든 뒷음절이든 ‘유사성’의 원칙에 맞기만 하면 은유에
동원될 수 있다15). 그리고 은유가 하는 일은 새로움의 발생이다. 그 새로
움이 한 때의 사랑이 장미를 남발하듯 얼마 후 후회하게 될 과장에 지나
지 않고 꿈속에서는 조직적으로 은폐된 소원 성취에 불과할 수도 있겠지
만 그에 대한 결산은 꼼꼼히 살펴봐야 할 문제이지, 부분으로 전체를 호
도했으니 가짜라는 식으로 치부될 수는 없다.
12) 김건우, ?사상계와 1950년대 문학?, 소명출판, 2003, 108쪽.
13) Freud, S., “OEuvres Complètes - IV.” 1899-1900, “L'interprétation du rêve”, Paris:
P.U.F.,(2003), 321-348;?꿈의 해석·상?, 김인순역, 열린책들, 1997, pp.367-396.
14) Roman Jakobson, Essais de linguistique générale, Paris: Les Editions de Minuit, 1963,
pp.43-67;로만 야콥슨, ?문학 속의 언어학?, 신문수 역, 문학과지성사, 1989,
pp.92-117쪽.
15) 프로이트는 압축의 가장 기본적인 절차가 “밝혀낸 꿈-사고 가운데 최소한의 것
만이 꿈속에서 표상요소를 통해 표현된다”는 점임을 포착하였다. - Freud, S.
op.cit., p.323;김인순 역, 앞의 책, 369쪽.
사르트르 실존주의와 앙가주망론의 한국적 반향 203
2. 실존주의와 앙가쥬망에 대한 상이한 수용면
실존주의가 한국에 유입될 때도 비슷한 ‘압축’이 벌어졌으리라는 건 능
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니 우리가 사르트르 실존주의의 우세라는 현상
앞에서 던져야 할 질문은 그것의 성격이다. 실존주의의 무언가가 한국인
들의(적어도 문학인들의) 심성 혹은 인지체계를 뒤흔들었고 그것은 한국
인들을 자극한 사르트르의 무언가와 공통집합을 이룬다고 짐작할 수 있
다. 우리가 실존주의의 핵심 용어들을 ‘신(혹은 선험적 본질)의 부정’, ‘본
질에 선행하는 존재’, ‘피투성(被投性)’, ‘불안’, ‘한계상황’, ‘투기’, ‘선택’,
‘앙가주망’ 등으로 나열할 수 있다면, 사르트르가 다른 실존주의자들과
비교해 특별히 강조한 용어는 ‘선택’과 ‘앙가주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
니, 문학의 현실 개입이라는 의미에서의 앙가주망(참여)이 한국문인들에
게 특별히 끌렸던 것이 아닐까, 하는 짐작을 해볼 수 있다.
그런데 실존주의가 본격적으로 회자된 것은 1950년대 전후해 세 가지
통로를 통해서였다. 첫 번째는 해방 이후 6.25 전까지, 특히 1948년에 집
중된, ?신천지? 등의 잡지에서 소개되고 논의된 실존주의이다16). 두 번째
는 6.25 종전 후 문인들이 ‘한계상황’과 ‘실존’이라는 어휘에서 자신들의
절망적이고 허무한 심사의 상관어를 찾았을 때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1950년대 말부터 시작된 실존주의에 대한 비판적 논의가 1967년 ‘세계문
화자유회의’에서의 ‘작가와 사회’에 대한 원탁토론에서 발표된 김붕구 교
수의 「작가와 사회」를 촉매로 꽤 시끄럽고 장기적인 논쟁을 유발하는
데까지 이르는 일련의 사건의 추이를 가리킨다.
이 세 가지 통로의 성격은 저마다 다르다. 첫 번째 통로는 해방과 더불
어 한반도의 지식인들에게 닥친 근본적인 과제, 즉 이른바 ‘조국 건설’의
일환으로서 한국사회의 이념형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그 이념형에 대한
하나의 가능한 양분으로 실존주의가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국제신문은
16) 자세한 목록은 전기철, 「해방후 실존주의 문학의 수용양상과 한국문학비평의
모색」, ?한국현대문학연구? 1집, 한국현대문학회, 1991.
204 비교한국학 Comparative Korean Studies Vol. 23 No. 3
1948년 9월 23-25일에 걸쳐 ‘고뇌하는 지성’이라는 주제 하에, 「사르트르
의 실존주의」(김민철 씀17))를 다루었다. 월간지 ?신천지?는 1948년 10월
호에서 양병식, 김동석, 박인환 등의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에 대한 저마다
의 의견을 실었고, 사르트르의 「문학의 시대성」 그리고 단편 「벽」을 번역
해 실었다. 여기에서 ?국제신문?과 ?신천지?의 김동석의 글이 매우 비판
적이라는 점을 우선 기억해두자.
두 번째 통로는 전후의 허무의식과 연관되어 있다. 사르트르의 ?구토?
와 거제도 수용소 포로 체험기를 읽고 영감을 얻었다는 장용학의 「요한
시집」이 그러한 정서를 대표했다. 이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거의 비슷하
게 전후의 “절망, 불안, 허무, 부조리 등이 전후문학의 주제로 부상한 것
은 어떤 면에서 당연한 결과18)”라고 판단하였다.
한편 고은은 “근대적인 개아가 전쟁, 집단에 의해서 말살되었을 때의
당연한 자아 사상으로서의 실존주의가 환영19)” 받았다고 썼다. 그런데
이 진술은 허무에 대한 반작용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조금 다른 생각을
보여준다. 이 반작용의 구체적인 실체는 무엇인가? 이 문제에 대한 분명
한 대답을 얻으려면 고은이 ‘근대적인 개아’라고 지칭한 것에 대한 한국
인들의 이미지가 무엇이었는가를 밝혀야 한다. 이 자리에서 거기까지 가
보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만 이 진술이 실존주의가 절망, 불안, 허무
의 정서에 침닉하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런 부정적 감정들을 극복하
려는 노력에 영감을 주었다는 뜻 정도로 받아들일 수는 있을 것이다. 「요
한시집」의 ‘작가의 말’은 소설가 역시 실존주의로부터 순수한 부정적 정
서의 개념적 상응물을 발견한 게 아니라는 것을 시사한다.
“주제는 자유를 ‘요한(john)’적인 존재로 본 데에 있다. 예수가 올 길을
17) 김동석은 “김민철이라는 필명으로 몇 편의 글을 발표”하였다.(이희환, ?김동석
과 해방기의 문학?, 역락, 2007, 53쪽.
18) 최성실, 「장용학 소설의 반전(反戰)인식과 개인주의적 아나키즘 특성연구」, ?우
리말글? 37호, 우리말글학회, 2006, 392쪽.
19) 고은, 「어느 실존주의자 작가의 체험」, ?고은 전집? 18, 김영사, 2002.
사르트르 실존주의와 앙가주망론의 한국적 반향 205
닦고 요한이 죽은 것처럼 그 ‘무엇’이 오려면 ‘자유’가 죽어야 한다.
그래서 자유를 죽이려고 한 것이 이 작품이다.”(「실존과 요한 시집」)
이 의미심장한 진술 역시 차후에 음미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다만
인용 직전의 가정을 확인하는 것으로 족하자. 이러한 생각은 「실존무」의
엉뚱한 실존주의 타령을 두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작가가 실존주의를
오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렇게 오해할 만큼 그물의 삶이 막바
지에 밀려 와 있었다는 점이20)”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나, “한국전쟁 이후
[…] 모더니스트들이 허무, 절망 등의 실존주의적 인식과 ‘황무지’로 표상
되는 전통에의 단절 의식을 ‘종말론적인 환멸감’이라는 용어로 동일시하
고 있다21)”는 해석들이 과잉된 혹은 고착된 시각의 결과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물론 이런 해석의 뒤에는 늘 ‘50년대의 작가·시인들은 이
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모종의 노력을 기울였다’ 정도의 진술이 빈번
히 따라 다니는데, 그때 작가·시인들은 이미 ‘실존주의’를 떠난 것으로 간
주되기 일쑤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현실 극복의 노력 자체를 “팔루스
부재의 시대에 주체 스스로 팔루스가 되고자 하[여] 상상계에 머무22)”는
것으로 해석하는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김윤식의 다음과 같은 관찰은 실존주의 자체가 현실 극복을
위한 실천의 매개물이 되었음을 논증하는 데 바쳐져 있다. 그는 비평가
고석규와 소설가 장용학을 함께 논하면서, 고석규와 장용학이 방법과 내
용, 또한 도달점도 다르지만 둘 다 “던져진 존재로서의 인간이라는 피동
적 자리에서 적극적 행동으로 자기를 형성해 갈 수 있음을 내세23)”웠는
20) 김병익, 「분단의식의 문학적 전개」, ?상황과 상상력?, 문학과지성사, 1979, 15쪽.
21) 박윤우 · 윤재웅, 「해방기 전후 시론에 나타난 현실성 인식의 양상」, 제36회 한
국시학회 학술대회 논문집, 한국시학회, 2009.6, 69쪽.
22) 이연숙, 「장용학 <요한시집>의 정신분석적 고찰」, ?라깡과 현대정신분석? 8호,
한국라깡과 현대정신분석학회, 2006, 175쪽.
23) 김윤식, 「한국 전후문학과 실존주의」, ?오늘의 문예비평?, 제12호, 오늘의 문예
비평, 1993, 232쪽, 240쪽.
206 비교한국학 Comparative Korean Studies Vol. 23 No. 3
데, 그 매개항이 ‘사르트르’ 였다는 것을 날카롭게 논증내고 있다. 날카롭
다는 것은 고석규가 표면적으로 수용한 건 하이데거였는데, 이 하이데거
가 “너무나 사르트르적”인 하이데거였음을 짚어냈기 때문이다. 이러한
김윤식의 논증에 뒤이어 조가경의 해석을 보태 보자. 그는 “현존하는 것
을 극단히 비판하고 새로운 시대를 초래하게 하려는 일련의 사상들”을
‘결단주의’라고 부르면서 이에 근거한 “실존철학[…]은 미래 역사의 의미
를 비로소 가능케 하는 점에서 현재 순간의 결단이 절대적인 것이 된
다24)”고 판단하는 생각이라고 해석한다. 이 점을 유념할 때, “문학이든
철학이든 결국 1950년대 한국 지식인 담론의 지형에서 보면, 현실에 대
한 ‘비판’과 ‘창조’의 당위성을 제공하는 데에 ‘실존주의’의 의미가 있었
다”25)는 판정이 설득력을 갖는다.
마지막 세 번째 통로는 참여론이 한참 기승을 벌일 때 김붕구 교수의
발제를 도화선으로 폭발한 ‘앙가주망’ 논쟁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실존
주의 유입의 초창기에 열렸던 세 번의 통로가 아주 상이했는데도 불구하
고 실존주의를 ‘욕망’한 까닭에 있어서는 실질적으로 동일했다는 점을 발
견하게 된다. 해방 직후의 이념형 찾기, 전후의 ‘자기 형성’ 혹은 ‘비판과
창조’를 위한 매개물, 그리고 ‘앙가주망’ 개념은 한국 사회에 대한 지적
개입의 지렛대로서 실존주의가 검토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건
사실상 예기치 않은 발견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실존주의에서 통상적으
로 ‘절망’과 ‘불안’, ‘허무’ 등을 떠올려 왔기 때문이다. 실상은 정반대였던
것이다. 절망, 불안, 허무를 이해하는 데 실존주의가 유용하게 쓰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유용성은 감응의 리트머스가 곧 극복의 징후로서 기능했
다는 데에서 배가되었던 것이다. 즉 실존주의는 절망으로부터 비판을,
불안으로부터 창조를 출현시키는 반전의 회전판으로 기능하였으니, 하
나의 사상이 이렇게 두 개의 정서에 동시에 관여하여 집단의식의 마당에
24) 조가경, ?실존철학?, 박영사, 1961, 180쪽. 조가경의 이 발언은 본래 김건우, 위
의 책, 108쪽에서 발견한 것이다
25) 김건우, 앞의 책, 109쪽.
사르트르 실존주의와 앙가주망론의 한국적 반향 207
강력한 요동을 야기한 경우는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3. 앙가주망에 대한 논리적 비판의 풍경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재래의 상투적인 이해가 무작정 잘못 되었
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이렇게 창조적인 방향으로 기능한 사르
트르적 실존주의의 면모를 ‘실존주의적 참여’란 용어로 요약할 때, 이 실
존주의적 참여에 대한 한반도 지식인들의 심사가 아주 미묘하기 때문이
다. 우선 앞에서 보았듯, 전후의 지식인 사회에서(세 계기 중 두 번째 경
우) 이런 류의 ‘참여’가 의식되지 않았던 데 비해 무의식적 차원에서 긴밀
하게 기능했다면, 해방 직후나 1960년대 후반의 경우에는 이 ‘참여’가 의
식적으로 이해되었지만, 그 감정은 아주 부정적이었다. 그런데 더욱 흥미
로운 것은 해방 직후와 1960년대의 부정적 판단의 방향이 완전히 거꾸로
나 있었다는 것인데, 거기에 더 흥미를 보태는 건 그 두 방향의 시각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선 앞에서 해방기의 실존주의에 대한 판단이 매우 부정적임을 잠
시 보았었다. 다시 말하면 해방 후 가장 시급히 닥친 과제인 조국 건설
을 위한 이념형으로 실존주의가 적합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경향이 우
세했던 것이다. 김동석의 다음 규정은 그런 판단의 이유의 일단을 설명
해준다.
人民과 民主主義와 歷史에서 孤立한 自我의 主觀을 神主로 모시는
實存主義26)
그러니까 ‘자아의 주관’이 문제였던 것이다. 개인적 주관주의는 “인민과
민주주의와 역사”와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다른 지면에
26) 「실존주의 비판」, ?신천지? 1948.10. 81쪽.
208 비교한국학 Comparative Korean Studies Vol. 23 No. 3
서 이렇게 말한다:
實存圭義란 별것이 아니오 佛蘭西의 아니 世界의 社會的 危機가
낡은 自田主義로서는 어찌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생겨난 苦悶하는
自由主義의 한 表情에 不過한 것이다27).
이런 판단을 이해하려면 당시 지식인의 정신적 분위기를 살필 필요가
있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의 종전의 결과로 해방이 “도둑같이 왔28)”을
때, 한반도의 지식인들에게 당장 닥친 과제는 국가 건설이었다. 그런데
지식인들에겐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으니, 거의 대부분이 36년간의 식민
지 기간 중에 일제에 협력하였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어진’ 해방이
었던 만큼 조선인들의 국가 건설의 역량이 미비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전자의 문제는 대부분의 당시의 식자들이 화두로 삼았던 것
인 반면에 후자의 문제에 대해서는 야릇한 시각이 지배하고 있었다. 당시
지식인들의 ‘부족함’에 대해 제출된 대답은 크게 두 개로 나눠 볼 수 있는
데, 하나는 채만식이 「민족의 죄인29)」에서 제출한 ‘참회록’이고 다른 하
나는 이태준이 「해방전후30)」에서 제안한 ‘봉합론’이었다. 채만식은 그 소
설에서 자신이 친일을 하게 된 경위를 낱낱이 고백하고 앞으로 조국을
끌고 갈 일을 조카 세대에게 맡기려고 한다. 자신의 세대는 그럴 자격이
없다는 것을 전제했기 때문에 나온 결말이었다. 그런데 조카 세대에겐
국가를 건설할 능력이 구비되어 있었던가? 왜냐하면 ‘주어진 해방’이었던
만큼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에 대한 질문이 전혀 지각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 「해방 전후」는 친일하기가 싫어서 낙향
을 했다가 해방과 함께 조국 건설을 위해 상경한 사람이 ‘화자’로 등장하
27) 「고민하는 지성 - 싸르트르의 실존주의」, ?국제신보?, 1948.09.26., 김동석 평론
집, ?뿌르조아의 인간상?, 탐구당서점, 1949, 235-236쪽.
28) 함석헌, ?뜻으로 본 한국역사?, 제일출판사, 1989, 330쪽.
29) 채만식, ?채만식 전집 8: 近日 외』, 창작과비평사, 1989.
30) 이태준, ?이태준 전집 3: 사상의 월야, 해방 전후?, 소명출판, 2015
사르트르 실존주의와 앙가주망론의 한국적 반향 209
는 소설인데, 그는 낙향 시 만났던 ‘김직원’의 꼿꼿한 선비적 태도에 감동
을 받았다가 해방 후의 상황에서는 그런 김직원의 태도가 낡아 빠진 것으
로 재인식하게 된다. 왜냐하면 시급한 과제인 조국건설에 매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조국 건설이라는 당면한 과제를 빌미
로 능력의 검증 여부를 말소한 것이다. 그런데 그 검증 없이 건설이 가능
할 것인가? 한데 더욱 흥미로운 것은 ‘어떤 국가를 건설할 것인가?’에 대
한 이야기가 감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해방전후」의 작가가 이미
조국건설에 대한 ‘청사진’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 청사
진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미 1917년의 러시아 혁명을 통해 입증된 것으
로 볼 수 있는 자본주의의 대안으로서의 사회주의 체제였다. 그것을 한반
도의 지식인들은 일본을 경유한 학습을 통해서 알고 있었고, 따라서 ‘근
대-자본주의-부르주아 개인주의’ 시스템을 ‘근대 이후-사회주의-프롤레타
리아 독재’의 시스템이 청산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그 학습 과정 속에
서 형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가령 다음과 같은 진술은 그러한 정신적
배경 하에서만 이해될 수 있는 말이다.
문화의 건강을 회복하기 위하여도 근대는 이번 전쟁을 통하야 스스
로의 처형의 하수인이 되었던 것으로 알았다. 우리들의 신념은 오늘
에 있어서도 그것을 수정할 아모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오늘 전후
의 세계는 물론 ‘근대’의 결정적 청산을 가져오지 못하고 있다.
[……] 우리는 이 땅에서 실패한 근대의 반복을 보아서는 아니 될
것이다. 새로운 시대가 근대를 부정하는 새로운 시대가 지구상의
어느 지점에 시작되어도 상관이 없을 것이다. 세계사의 한 새로운
시대는 이 땅에서부터 출발하려 한다. 또 출발시켜야 할 것이다. 봉
건적 귀족에 대하야 한 근대인임을 선언하는 것은 <르네쌍쓰>인
의 한 영예였다. 오늘에 있어서 다시 초근대인임을 선언하는 것이야
말로 새 시인들의 자랑일 것이다31).
31) 김기림, 「우리 시의 방향」, ‘조선문학가동맹’이 개최한 ‘전국문학자대회’(1946.02.18.)
에서의 강연문. ?건설기의 조선문학?, 1946, 70-71쪽. 이 내용을 필자가 발견한
210 비교한국학 Comparative Korean Studies Vol. 23 No. 3
이 야릇한 진술은 발언자가 ‘초근대’에 대한 명확한 이념적 플랜을 확보
하고 있고, 2차 세계대전이 자유민주주의와 파시즘(국가사회주의) 사이
의 싸움이 아니라, 양자가 공히 공유하고 있는 ‘근대’의 청산과정으로서,
‘초근대’로 넘어가는 계기라고 판단하고 있다는 사전 정보를 확보하고 있
을 때에만 온전히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해방기의 상당수의 지식인들은
그러한 ‘사전 정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해방 전후」가 실질
적인 처방으로 그렇게 열렬히 받아들여진 연유가 거기에 있었고, 또한
고급한 두뇌의 지식인들이 ‘북의 체제’를 선택한 배경도 그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자명’하다고 판단된 행로 앞에서 그들이 할 일은
능력의 검증 여부가 아니라 단지 실행뿐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러한 전제된 지식에서 보자면, 사르트르 식의 주관성, 즉 ‘선택’과
‘의식적 결단’으로서의 앙가주망은 청산되어야 할 낡은 부르주아적 태도
에 지나지 않게 된다. 더욱이 박헌영과 임화에 의해 제창된 남로당의 자
본주의 경유 테제는 이러한 부르주아적 태도를 비판적으로 유지할 명분
을 주게 된다. 즉 조국 건설에 관한 남로당의 입장을 결정지은 견해는,
해방된 조선 사회에는 아직 봉건적 잔재가 남아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통해 봉건성을 극복하고 다시 사회주의적 플랜에 의해 자본주의를 극복
해야 한다는 2단계의 혁신 방안이었다. 그래서 봉건→근대→초근대, 왕
조→민족→계급, 백성→개인→집단, 익명→주관→객관 등의 이행 경로가
만들어졌으니, 중간항으로 설정된 ‘근대적인 것’ 들은 모두 잠시 유용하
게 쓰였다가 폐기될, 필요악으로 간주된다. 사르트르적 주관성은 이 중간
항의 이념적 현상으로 이용하기에 아주 맞춤한 특성들을 갖추고 있었다
고 할 수 있다.
1980년대를 ‘지적’ 차원에서 거쳐 온 사람들이 가장 빈번히 접했을 터
인데, 사르트르 실존주의에 대한 이상의 태도는 해방기 지식인들에게 국
것은 지난 10월 31일 열린 ‘한국시학회 제 36회 학술대회: 광복 70주년, 해방기
시문학 연구의 현황과 과제’에서 발표된, 조강석의 「해방기 시론의 보편주의 연
구」이다. 이 글의 논의에 맞춤한 대목이라 생각되어 바로 인용하였다.
사르트르 실존주의와 앙가주망론의 한국적 반향 211
한되는 게 아니라 21세기에까지 이어진 특별히 항존적인 시각이었다. 그
래서 “오늘날 사르트르에 적중한다고 루카치가 말하는 ‘진보적 윤리와
보수적 인식론의 결합’32)”이라든가 “결국 그[=하이데거]는 루카치가 통
박한 ‘이성파괴’의 원흉임을 면치 못하는 것이다33)”는 식의 발언이 스스
럼없이 발화되는가 하면, ‘앙가주망’을 ‘개인적인 구원’과 연결시키는 희
한한 논리도 기폭을 펄럭인다.
이른바 ‘참여’는 제 2차 세계대전으로 영구히 사라졌을것으로 생각
되었던 군국주의, 식민주의, 침략주의가 새로운 형태로 반복되고 있
는 역사 앞에서 이러한 실상을 직시할 능력이 없이 개인적인 구원
만을 모색하였던 ‘실존주의’의 잘못된 변명의 구호로 한국문학에 수
입된 ‘앙가주망’ 의 논리에 불과한 것임에도 어찌해서 그것이 한계
를 가진 것일 수밖에 없는가를 통찰하지 아니한 채 무비판적으로
사용된 점이 있다. 그리하여 그 참여문학의 논리뿐 아니라 그 존재
방식 자체가 허구적인 것이었을 수밖에 없었다 함은 지난 60년대와
70년대의 문학사가 여실하게 보여주는 바와 같은 것이다34).
이러한 비판적 관점에 대해 우선은 두 개의 문제를 제기하기로 하자. 하
나는 실존주의 비판이 ‘근대 청산’과 직결되어 있다는 이러한 관점이 그
청산의 방향을 어디로 두었는가, 하는 것이다. 앞에서 2차 세계대전을
‘근대가 스스로를 처형한 사건’으로 지목했던 김기림은 일제 말기 ‘대동
아공영권’의 구상과 ‘근대의 초극’이라는 논리가 횡행하고 있을 때 다음
과 같은 글을 쓴다.
32) 백낙청, 「문학의 사회적 의미와 사회학적 연구」,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Ⅱ?, 창
작과비평사, 1979, 153쪽.
33) _____, ?민족문학의 새 단계 -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Ⅲ?, 창작과비평사, 1990, 330쪽.
34) 박태순, 「문화운동과 실천으로서의 문학 예술」, ?문학과 예술의 실천논리?, 실
천문학사, 1983, 291-92쪽.
212 비교한국학 Comparative Korean Studies Vol. 23 No. 3
이 순간에 우리는 ‘오늘’이라는 것의 성격에 대하여 확고한 판단을
내리지는 못하고 있다. 그것을 벌써 새로운 시대의 진수식(進水式)
으로 보고 경이는 벌써 시작된 듯이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보면 시작된 것은 실은 아직도 새로운 시대가 아니고 ‘근
대’의 결산과정이나 아닐까. 그렇다고 하면 지금 이 순간에 우리에
게 던져진 긴급한 과제는 새 세계의 구상이기 전에 먼저 현명하고
정확한 결산이 아닐까 한다.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중요한 점이
여기 숨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35).
1940년의 발언과 46년의 발언이 근대 청산에 대한 집착이라는 지점에서
놀랍게도 일치한다. 그렇다면 이를 두고, 1940년의 진술이 일제의 근대
초극의 논리에 교묘하게 끼어든 ‘초근대론’의 침투라고 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1946년의 진술이 사실상 일제에 의한 근대 초극 논리의 사회주의
적 번안에 불과하다고 해야 할 것인가? 이것을 판별하기 위해서는 이른
바 ‘초근대’의 구상이 어떻게 ‘근대’를 넘어서고자 했는가에 대한 전반적
인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검토는 두 번째 문제로 이동하게 되는
데, 그것은 현실사회주의 몰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성찰’이 무엇인가
라는 점이다. 즉 1917년의 2차 러시아 혁명의 성공으로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사회주의 구상이 지구의 절반을 접수하는 거의 1세기를 거치는 과
정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유토피아적 환상이 ‘당의 독재’로 ‘빠지
고’, 그 왜곡의 결과 현실사회주의의 결정적인 몰락을 초래하고만 사태를
목격한 뒤에, 백낙청이나 박태순의 앞의 주장을 다시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이 떄 우리는, 누가 더 주관적 관념론에 빠져 있었는지가 그 안에서
제출된 주장과는 정반대의 모양으로 펼쳐져 있어서 기묘한 아이러니적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가 없다. 게다가 사르트르 실존주의의 주관적
35) 김기림, 「조선문학에의 반성」, ?인문평론?, 1940.10. 이 글은, ?시론?(백양당, 1947)
의 제 2부 ‘30년대의 소묘’에서 1장 「우리 신문학과 근대의식」의 제목으로 수록
되었다(김기림, ?전집 2. 시론?, 심설당, 1988, 47쪽). 이 인용문 역시 조강석의
앞의 발표에서 재인용함.
사르트르 실존주의와 앙가주망론의 한국적 반향 213
관념성을 흉 본 사람이 의지한 루카치의 저 유명한 ‘실제 의식’과 ‘가능
의식’의 분리36)가, 1980년대에 한국의 젊은 지식인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쳤던 것인데, 실질적으로는 당의 독재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였
다는 점37)을 상기한다면, 저 객관적 관념론은 사르트르의 주관적 관념론
보다 해악이 더 했으면 더 했지 덜 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소련 연방의 해체에 충격을 받고 씌어진 최인훈의 ?화두38)? 속의 화자가
빈번히 의혹 속에 빠져드는 장소는 바로 「해방전후」 주위라는 게 다 까닭
이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 1960년대에 전개된 앙가주망 비판은 어떤 논리 위에 구축되
었는가? 이 문제를 “60년대 문단 최대의 맘모스 논쟁으로39)” 비화시킨
계기를 제공한 김붕구 교수는 문제의 발표문 「작가와 사회」에 이어, 얼마
후 해당 글의 제목을 「작가와 사회참여」로 개명하고, ?작가와 사회 - 현
대작가의 인간관과 대사회관?라는 저서로 문제의 폭을 넓혀 갔다. 이 책
36) cf. Georg LUKACS, “Class Conciousness” & “Reification and The Consciousness of the
Proletariat”, History and Class Consciousness - Studies in Marxist Dialectics, translated by
Rodney Livingstone, Cambridge, Massachusetts/London: The MIT Press, 1971,
pp.46-222. 루카치는 이 책의 두 장 「계급의식」과 「물화와 프롤레타리아의 의식 」에서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자계급 역시 사물화의 운명을 벗어날 수 없기 때
문에 표면적으로는 허위 의식에 사로잡히게 되지만, 그의 계급적 성격(즉 “구
체적이고 총체적인 역사적 과정으로서의 역사적 세계에 근거”하여 도출되는)에
의해서 올바른 의식을 ‘가능성’으로 잠재하고 있다는 것을 길게 논증하고 있다.
이러한 노동자 의식의 표면(현재)과 심층(미래)의 다름을 ‘실제 의식’과 ‘가능 의
식’으로 간단히 요약한 것은 뤼시엥 골드만Lucien Goldmann(그리고 레이몬드 윌
리엄즈Raymond Williams)이다. - cf. Lucien Goldmann, Marxism et sciences humaines,
Paris: Gallimard, 1970, p.121. et sq.
37) 실제로 유럽권에서 루카치의 ‘프롤레타리아도 물화되어 있다’는 테제와 본문에
서 언급한 노동자 의식의 두 차원성이 어떤 식으로 성찰되었는지는 분명치 않
다. 하지만 순전히 논리적으로만 보자면, 프랑크푸르트학파를 포함하여 많은
리벌럴한 지식인들에게 감명을 주었던 첫 번째 테제가 두 번째 ‘분리’ 테제와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고, 그 관계에 근거한다면 두 번째 테제가 당의 전제
를 불가피하게 허용하게 된다는 것은 논리의 줄기가 너무나 빤히 보인다.
38) 최인훈, ?최인훈 전집?, 14,15, 문학과지성사, 2008.
39) 손세일 편, 앞의 책, 245쪽.
214 비교한국학 Comparative Korean Studies Vol. 23 No. 3
에서 김붕구 교수는 사르트르, 쌩 떽쥐뻬리, 이광수, 심훈 각자의 인간관
과 사회관을 검토하고 있는데, 사르트르에 대한 비판적 관찰의 시선이
여간 집요하지 않다.
그는 사르트르의 글들을 꼼꼼히 추적하면서 인간관과 대타관, 각각에
서 두 개의 대극을 발견하는데, 그것은 “‘자유에 처형된 인간’과 ‘상황 속
에 묶인 인간’”이라는 대극과 “‘타인은 지옥’과 ‘나의 존재의 필수조건으
로서의 타인’40)”이다. 그런데 그가 생각하기에 이 대극들에서 두 번째 항
목으로의 수렴, 즉 ‘상황 속에 정위된 인간’과 ‘타인과의 유대’로 수렴되어
야 “논리적인 맥락”이라고 할 수 있는데, 놀랍게도 그렇게 가지 못하고
‘남아도는 인간의 쓸 데 없는 자유’와 ‘남의 시선과 이에 대한 코미디’가
“가장 두드러지게 굵은 선”으로 나타나니, 그것은 사르트르의 “강박관념
의 소치41)”라는 것이다. “남의 視線에 민감[함]은 특히 싸르트르의 경우
는 거의 벗어날 수 없는 執念으로 나타난다. ‘自我中心’의 所致다. (말로,
쎙 떽쥐빼리는 友情, 또는 同志愛로, 절대적인〈受容〉accepter으로 해소
시킨다).42)”
이 자아중심은, 강박적 자아의식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텐데, 필경 타
인과의 유대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한편, “남의 시선에 대한 강박 관념”으
로 발전하게 되어서, ‘타인과의 유대’에 대한 강조는 논리적 타당성을 상
실하고, 그 강조가 논리성을 상실한 만큼 타자와의 유대는 ‘만인의 유대’
로 억지로(비논리적으로) 치닫게 된다는 것이 김붕구 교수의 비판의 핵심
이다.
그런데 이러한 비판은 관점의 차이가 낳은 몰이해로 볼 수도 있다. 우
선 개인성에 대한 강조가 강박적 자아의식으로 발전하는 것은 첫째, 근대
이후 모든 인간의 삶이 ‘개인’을 핵자로 해서 돌아가기에 불가피한 일이
고, 둘째, 개인의 행동을 철저히 파악하기 위해 논리적 시간의 분철이
40) 김붕구, ?작가와 사회?, 일조각, 1973, 4쪽.
41) 위의 책, 5쪽.
42) 위의 책, 54-55쪽.
사르트르 실존주의와 앙가주망론의 한국적 반향 215
필요했으며, 그 분리된 지점의 데이터를 정확히 분석해 내기 위해선 논리
적 왜곡이 유용한 방법적 절차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판독이 어려
운 대량의 데이터 처리에서 자주 쓰이는 이러한 분석 방법론은 공백과
과잉이 둘쭉날쭉하게 분포되어 있는 데이터를 복원하기 위해 불가피하
게 동원되는 절차이다. 그런데 인간 일반의 삶도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어떤 매뉴얼에 따라 정확하게 돌아가는 기계가 아니라서 비교적 온전한
소수의 행동군과 아주 많은 쓸 데 없는 행동들의 더미가 한 데 얽힌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그 ‘아주 많은 쓸 데 없는 행동들의 더미’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비교적 온전한 행동’의 의미가 ‘온전히’ 파악되지 않고 피상적이
고 기계적인 수준에서만 독해된다(정신분석에서 ‘무의식’을 강조하는 것
은 그 때문이다.) 이 쓸 데 없는 행동의 더미들에 의미를 주려고 하면,
프로이트가 「꿈의 작업」(?꿈의 해석?)에서 현란하게 보여주었던 바와 같
은 아주 다양한 논리적 조작이 불가피한 것이다. 그러한 조작의 결과로서
의 ‘타자의 시선’, ‘코미디’, ‘잉여’를 논리적 궁지의 결과로 판단하는 것은
비판자가 이해의 의지를 처음부터 포기한 다른 시각적 지점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다음, 의식적 참여의 인공성의 비판은 자연발생적인 것에 대한 비판자
의 은근한 경사를 드러낸다. 이런 구절을 보자.
그뿐더러 한 知識層市民으로서의 참여는 어디까지나 차마 그대로
보고 <참을 수 없는>, 태평스럽게 <잠들 수 없는>(지드와 똑같은
표현) 義憤의 폭발에서 비롯되는 것이어서, 도시 앙가쥬망이니, 참
여문학이니하는 이론을 쫓는 행위가 아닌 것이다. […] 결국은 한
지식충 시민으로서 不正에 대한 直接的이며, 自動發生的인 참여
engagement spontané라 하겠다. 도시 ‘앙가제’ (끌어넣다, 구속하다)
라지만, 우리는 이미 회피하거나 또는 선택할 여지 없도록, 歷史의
배에 올라타고 있는데, 새삼스레 <끌어넣기>는 무엇을 끌어넣는
단 말인가43).
216 비교한국학 Comparative Korean Studies Vol. 23 No. 3
이런 구절은 김붕구 교수의 비판이 어쩌면, 사르트르가 근대적 의식의
끝에서 직면해야만 했던 개인성과 상호성 사이의 근본적인 모순에 대한
과제를 슬그머니 회피하다가 근대적 의식이 극복하고 나온 낡은 공동체
(Gemeinschaft)로 퇴행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그가 거듭
강조한 ‘자동발생적인 참여’가 실제로 상대방과 의식의 교감을 가능케 하
고, 또한 그 교감 속에서 그 참여가 이루어지려면 얼마나 복잡한 의식의
분별이 필요할 것인가? 간단히 ?페스트?의 리외Rieux의 경우만 하더라도
오랑Oran 시의 상황 속으로 자신을 완벽히 ‘참여’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
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단 말인가? “이처럼 명예로운 괴벽에 열중하고
있는 겸손한 관리들을 찾아볼 수 있는 도시에 정말로 페스트가 퍼진다는
것을 […] 아무래도 믿을 수가 없었44)”던 데서 시작하는 그 시행착오의
사태들과 그 사태들에 대한 의식적인 반성과 교정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리외의 존재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 되는 것이다.
4. 사르트르를 넘어간다는 것의 의미
여기까지 오면, 해방기의 실존주의 비판과 1960년대의 ‘참여문학론’ 비
판은 완전히 다른 이념에 근거하고 다른 시각을 표방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의 공통된 정서에 근거하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무엇보다도 ‘개인적
주관성’에 대한 반발이 그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공동체적 유대’에 대한
애착이다. 그것이 사회주의적 전망을 가진 지식인들에게는 “역사와 현실
의 한가운데에 있는45)” 자세의 요청으로 나타나고, 사르트르 앙가주망과
공산주의의 친연성을 경계한 사람들에게는 “자동발생적 참여”의 보편성
으로 나타났다. 그 양상이 무엇이든 우리가 직면하는 것은 이 요청 혹은
주장이 사르트르가 맞닥뜨리고자 했던 문제를 슬그머니 비켜가고 있다
43) 앞의 책, 429쪽.
44) 알베르 카뮈, 김화영 옮김, ?페스트?, 책세상, 2011, 74쪽.
45) 박태순, 앞의 책, 292쪽.
사르트르 실존주의와 앙가주망론의 한국적 반향 217
는 것이다. 사르트르의 문제는 근대가 사람들에게 모두에게 전제한 ‘자
유’가 분명 공동체적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이자 자유의지의 소지자로서의
개인성의 확인의 근거가 되었는데, 바로 그 자체의 결과로서 자유들의
충돌을 야기할 수밖에 없게 되는 상황에서 자유를 상황에 대한 책임으로
바꾸는 논리적 곡예를 통해서 그 상황을 돌파해 나가려고 한 데에 있었다
고 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하면 로베스피에르가 ‘공포정치Le terreur’로 해
결하려고 했던 것을, ‘논리’로 해명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문제
라면 사르트르의 논리를 살피는 눈초리 역시 개인과 타자를 여하히 동시
에 구출할 수 있을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했을 것이다. 즉 개인성
의 발견이 인류의 도약의 한 계기였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기고 그
바탕 위에서 개인과 공동체를, 주관과 상호성을, ‘나’와 ‘그’를 동시에 구
출하고자 하는 노력이자 그 방법의 모색이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개인이
냐 공동체냐, 나냐 우리냐, 주관이냐 객관이냐의 흔해 빠진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로부터 개인의 해방이라는 단계로부터 다시 개인
과 공동체를 동시에 의미화하기 위한 한 단계 더 높이 오르는 도약을
위한 문제였던 것이다. 사르트르의 고민은, 비록 그의 논리가 많은 오류
를 품고 있었다 하더라도(우리는 아직 그에 대해서는 자세히 살필 기회를
갖지 못했지만), 바로 그 한 단계 더 높이 가고자 하는 ‘의지’로부터 발생
했던 것이니, 그것을 다시 개인→공동체로의 아래 단계로의 회귀를 통해
비판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는 일이라고 할 수 없다.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것은 감성적으로도 오류라는 것을 가리킨
다. 오늘날 뇌과학의 발전은 저 아라공의 시구처럼 “여자가 남자의 미
래46)”이듯, 감성이 이성의 미래임을 또렷하게 증명해내고 있다47). 데카
46) “L’avenir de l'homme est la femme / […] / Et sans elle il n’est qu’un blasphème / Il
n’est qu’un noyau sans le fruit”, - Louis ARAGON, “Zadjal de l’avenir”, Fou
d’Elsa(1963), in OEuvres Poétiques Complètes - Tome 2 (coll.: Pleiade), Paris: Gallimard,
2007.
47) 감정에 관계하는 전두엽이 망가진 환자는 이성 기능이 완벽히 정상적인데도
불구하고, 결정을 내리는 데에 지극히 우유부단한 태도에 갇혀 버림으로써 자신
218 비교한국학 Comparative Korean Studies Vol. 23 No. 3
르트가 생각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정념passions(의지도 당연히 여기에 포
함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이 없다면 이성은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
다. 그런 점에서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일은 감성적으로도 타당하지 않
다. 오늘의 사례에서 참여의 ‘자동발생성’을 강조하는 것은 개인들 사이
의 불가피한 불일치를 억지로 봉합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남이가?”라고
말하듯이 말이다. 「해방 전후」의 처방이, 1930년대 즈다노비즘의 명령이,
두루 그 억지 봉합 위에 달아오른 굵은 정맥선이었다. 그것은 또한 민주
화된 현재의 한국사회에서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정서이기도 하다. 한국
의 민주주의가 그렇게 혼란스러운 것은 그와 무관치 않다48).
의 삶을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 못했다. 그를 진찰한 의사는 그 환자가
“위험 속에서도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으니], 그런 능력은 틀림없이 성공
의 열쇠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으나, 실제 “극히 단순한 일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직장에 가도 어떤 일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급한 일은 제쳐 두고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일에 하루 종일 매달릴 때가 많았다.
결국 직장을 잃은 엘리엇은 새로운 사업을 시도하다가 파산하고 말았다.” (리타
카터, 양영철·이양희 옮김, ?뇌, 맵핑 마인드?, 말·글빛냄, 2007, 159-160쪽.) 이 예
를 굳이 꺼내든 것은 주관성을 객관적 인식과 대비시키고 전자를 ‘모자란 것’으
로 판단하는 흔한 고정관념의 오류를 환기시키기 위해서다. 이 고정관념은 우리
가 살펴 본 두 시절의 두 태도가 공히 품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태도는 심지어
실존철학의 ‘혁신 의지’를 각별히 주목한 조가경의 관점에도 배어 있다. 그는 ‘결
단’의 극단적 방향을 ‘주의주의’로 파악하고 그 주의주의의 대표로 사르트르를
지목하였다. 그가 보기에 주관성을 극대화시킨 “사르트르를 비롯한 현대 실존주
의자들은 역사 안에서나 인생에서 어떤 일회적 의미가 결실되리라는 믿음을 포
기한 지 오래이다.”(조가경, 앞의 책, 208쪽)
48) 황지우는 민주화의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던 1987년의 한 복판에서 그 문제를
직관적으로 감지하였다. 그 결과 씌어진 게 ?나는 너다?이다. 물론 그는 실패한
다. 그러나 그 실패는 자각 위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 당시 아무도 생각조
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와는 별도로 이성복 역시 긴 우회로를 거쳐 타자의
고통을 대신할 수 없는 문제에 봉착하였다. 한국에서 ‘사르트르 너머’의 지평을
모색한 몇 안 되는 식자들이 그들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졸고, 「관념적 민중에
서 일상적 타자로 넘어가는 고단함」, ?1980년대의 북극꽃들아, 뿔고둥을 불어
라?(문학과지성사, 2014.)를 참조하기 바란다.
사르트르 실존주의와 앙가주망론의 한국적 반향 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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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비교한국학 Comparative Korean Studies Vol. 23 No. 3
<Abstract>
The Repercussions of the Korean Intellectuals to the
Sartrian Existentialism and his Theory of Engagement
Jeong Myeong Kyo
The Existentialism is a thought which has been so influential on Korean
Intellectuals. Especially the latter has been interested in that of Jean-Paul Sartre
and his theory of Engagement. This article investigated the 3 ways through
which the existentialism and the theory of Engagement have been introduced
and the meaning of these ways. At first, in the late of 1940s, Koreans met
the existentialism on their search of ideal type that would be the spiritual criterion
of the new emancipated society from the long colonized period. Secondly, during
the 1950s, they found the existentialism as the correlative of the devastated
mind, sense of despair and futility from the Korean War. Thirdly, in the early
1970s, Korean intellectuals examined the Sartrian theory of Engagement as
a representative of the ideologies which are insisting the participation in the
reality of the literature.
However, in these heteroclite process, the Koreans were attracted to the
existentialism by the same impulsion that is the will to new life. Therefore,
it is necessary to discard the cliché that ‘the existentialism was related to the
desperate feelings in front the radical situation.’
On the other hand, in the first process, the Koreans assumed the critical
attitudes against the existentialism. That is, they didn’t consider the existentialism
as a reference to build the spiritual touchstone of the new Korea. In the thi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