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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1960년대 인권 보장 기제로서의 반공주의- 이호철 ․ 김승옥 소설을 중심으로/김 경 민.한림대

.‘국민 만들기’의 기호로서의 반공주의
1948년 여순사건의 발생과 이어진 국가보안법의 제정, 그리고 한국
전쟁과 휴전으로 이어지는 이승만 정권 시기에 반공주의는 북한을 적
으로 규정하고, 사회주의와 자유주의라는 대립적인 체제 구도에서 철저
하게 한 쪽을 부정하게 하는 정치 이데올로기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박
정희 정권 시기의 반공주의는 이전과는 다른 양상과 의미를 지니게 되
는데, 1960년대 반공주의의 형성, 운용 과정에서 일단 주목해야 할 요
소는 1961년 반공법의 제정이다. 박정희 정권 또한 이전 정권과 마찬가

지로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로 삼을 것은 공표하였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이 주장하는 ‘반공’의 의도가 단순히 북한과 그 체제를 견제하고
부정하고자 하는 것이었다면, 그것은 1948년 이미 제정된 국가보안법으
로 충분하다. 그러나 굳이 박정희 정권이 집권 직후 반공법을 새롭게
제정한 것은 분명 정치 이데올로기로서 ‘반공’이 아니라 다른 의미를
지닌 새로운 기호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권의 가장 큰 목표는 ‘조국 근대화’였다. 정부를 중심으로
한 강력한 행정력과 그 정부의 계획과 통제 아래 이루어지는 산업발전
과 경제성장이 박정희 정권이 꿈꾸는 국가상이었다. 이 거대한 프로젝
트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상생활에서나 산업현장에서 성실
하게 국가의 요구와 명령을 이행할 수 있는 국민이 필요하다. 이는
1960년대 우리나라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에 대한 통치’를
근대 국가의 특징이라고 했던 푸코의 말에서 알 수 있듯1), 근대 국가
형성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근대 국가에 적합한 국민 양성이다.
이른바 ‘순종하는 인간’이 근대 국가의 효율적 운용에 가장 적합한데,
근대 국가가 ‘순종하는 인간’을 만들기 위해서 사용하는 방법은 직접적
인 강제나 무력이 아니라 개개인으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근대 국가의
메커니즘에 포섭되도록 하는 것이다.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이 사람들을 포섭하기 위해 꺼내든 카드는 바
로 ‘인권’이었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이 이야기하는 ‘인권’은 자유와 평
등의 가치를 기반으로 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보호하기 위한 권리
를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보장받아야 할 절대적이
고 보편적인 가치로서의 권리가 아닌, 박정권이 표방한 인권은 시민(국


1) 푸코는 1977년부터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의 강의를 통해 ‘영토국가’에서 ‘인구국가’
로의 이행, 그리고 그에 따라 생물학적인 생명과 국민 건강이 주권 권력 특유의 문제
로 그 중요성이 급증하는 과정에 주목했다. (푸코, 「안전, 영토 및 인구」, 719쪽; 아
감벤, ?호모사케르?, 새물결, 2008, 37쪽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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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권의 다른 이름에 불과한 상대적이고 제한적인 권리였다. 전쟁의 피
해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으며, 국가가 국민들의 삶을 보장해줄
만한 여력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차적인 생존이었다. 이때 국가는 ‘생존’을 보장해주는 조건으로, 오직
자신들의 계획과 명령에 맞춰 성실하게 움직이는 국민이 될 것을 요구
한다. 다른 근대 국가의 국민들처럼, 1960년대 우리나라 민중들 또한
“근대적 인간은 생명 자체가 정치에 의해 문제시되는 동물”이 된 것이
다.2) 이 과정에서 박정희 정권이 새롭게 제정한 반공법이 유용하게 사
용된다.
같은 목적으로 제정된 기존의 국가보안법에 비해 새롭게 제정된 반
공법은 “훨씬 더 처벌대상, 범위, 형량 등이 가중”적이었고, 목적범의
경우에만 처벌하는 국가보안법에 비해, 반공법은 외견상 나타나는 결과
만 가지고도 처벌할 수 있었다.3) 즉 “법적 효력을 갖는 기호의 외연이
넓어지는 과정”4)이 박정희정권이 제정한 반공법에 의해서 이전보다 더
공고해지는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 판결과 집행권을 모두 가진 국가가
마음대로 처벌 대상과 범위를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공법이라는 모
호한 경계를 가진 포획의 그물망에는 그야말로 ‘아무나’ 걸려들 수 있
었고, 대개 그 '아무나'는 모든 권력을 가진 국가의 눈 밖에 난 자들이었
다. 가령 이전에는 반공주의에 의해 ‘빨갱이’로 규정되던 사람들이 간첩
이나 빨치산, 혹은 월북자를 가족으로 둔 사람들처럼 이적행위나 반체
제행위의 흔적이 조금씩이나마 있는 이들이었다면, 1960년대 반공주의
가 ‘빨갱이’를 지목하는 과정에는 이런 근거들은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단지 국가의 요구와 명령에 순응하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 '빨갱이'가


2) 푸코,「앎에의 의지」, 188쪽; 아감벤, 위의 책, 36쪽 재인용.
3) 박원순, ?국가보안법연구1?, 역사비평사, 1989. 197쪽.
4) 김준현,「반공주의의 내면화와 1960년대 풍자소설의 한 경향」,?상허학보?21집,
2007.10. 1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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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 이유는 충분했다.5) 즉, ‘국민 ↔ 빨갱이’의 공식이 탄생하게 되는 것
이다.
이처럼 박정희 정권에서의 반공주의는 더 이상 ‘이념 갈등’, ‘체제
대립’과 같은 가치들과 나란히 놓이지 않고, ‘근대 국가 건설’, ‘조국 근
대화’ 등의 가치와 같은 맥락에서 상징적인 기호 역할을 하게 된다.6)
그리고 조국 근대화를 위해 필요한 ‘순응하는 신체’의 자질을 갖추지
못한 이들을 ‘반공주의’는 ‘빨갱이’로 지목하고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삶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즉, 반공주의는 모든 비판적 생각이나 행동을
좌익, 불순, 용공의 영역과 즉각 결합시킴으로써, 지배 구조에 대한 비
판과 문제제기 자체를 봉쇄하는 효과를 발휘했다.7)
본고에서는 김승옥과 이호철의 60년대 소설을 대상으로, 그들의 소
설에 특히 많이 등장하는 소시민의 모습을 통해, 반공법을 중심으로 한
1960년대의 반공주의가 어떤 방식으로 당시 박정희 정권의 근대 국가
형성 프로젝트에 활용되었는지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반
공주의가 그것과 가장 모순적인 가치인 인권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 연


5) “반공법 제정 이후 북한과의 관계가 더 철저하게 적대적인 대결상태가 된 것은 물론
이고, 사회 전반에 걸친 억압과 통제가 이루어지게 되었으며, 정부시책에 대한 사소한
불만, 통일에 대한 건전한 의견표명마저도 이적행위로 매도되고 탄압되었다.” (박원순,
앞의 책, 195쪽.)
6) 박정희정권은 반공법 제정의 목적으로 “북한의 침략에 대한 소극적인 자기방어만이
아니고 적극적으로 반공체제의 강화와 반공역량의 배양”(한옥신, ?사상범죄론?,최신출
판사, 1975, 294쪽.)을 내세웠는데, 여기서 말하는 '강화된 반공체제와 반공역량'이 뜻
하는 것은 4.19 이후 한껏 고양되어 있는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에 대한 민중적 요구와
열망의 봉쇄에 있었다.
7) “반공주의의 의미 확장은 반공주의적 세계관의 일상적 내면화를 통해 사회 구성원의
정신 속에 특정한 정치 사회적 사고와 행위를 자발적, 자동적으로 유발하는 일종의 회
로판을 형성한다. 그것은 사상적 획일성과 명확성, 군사 동원주의적 심리, 배타적 감
시자적 태도, 반정치적 일원주의적 질서, 도덕주의로 요약될 수 있다.”(권혁범, 「반공
주의 회로판 읽기: 한국 반공주의의 의미체계와 정치사회적 기능」,?통일연구 ?,1998.11, 64-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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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되었는지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2. ‘인권’을 박탈하는 기호로서의‘빨갱이’
이승만 정권 때 만들어진 “빨갱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그 자체로도
엄청난 공포의 대상이 된다. 꽤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빨갱이”의
이미지는, “빨갱이”의 실체가 없는 상태에서도 충분한 공포효과를 불러
일으킨다.
“제대까지 한 사람이 있으면서 왜 이 모양이야. 이 이발관은. 좀 빠릿빠
릿하지 못하구. 도대체에 당장 빨갱이들이 나오면 어쩔려구.” (중략)
그 청년의 말은 과연 천 번 만 번 지당한 말이었다. 요즈음 세월에 모두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닐 것이었다. 정신들을 차리고 빠릿빠릿해 있어야 할
것이 있었다. 썩은 동태 눈알을 해 가지고 희멀겋게 뻗어 있어서는 안 될
것이었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빨갱이와 마주 대결하고 있고, 월남에 파
병을 하고, 곳곳에 간첩들이 활개를 치는 판에 도대체 이렇게 멍청하게 있
을 때가 아닐 것이었다. 사람들은 이렇게 저렇게 따져서 그 말에 수긍은
하면서도 무엇인가 써늘하고 무서웠다.8)
평화롭던 일상의 작은 공간(이발소)에서 “빨갱이”의 출현은 상상만
으로도 가히 위협적이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이발소 안에 있던 사람들
이 정작 더 두려워하고 있는 대상은 언제 휴전선을 넘어 올지 모르는
북한의 빨갱이도, 저 멀리 베트남의 사회주의자도 아니다. 오히려 ‘민주
주의’를 운운하고 있는 청년들에게서 “무엇인가 써늘하고 무서”움을 느


8) 이호철, 「이발소」, ?이호철문학선집?, 국학자료원, 2006, 290-293쪽. 이후 본문에서
인용되는 이호철 소설은 모두 ?이호철문학선집?에서 인용한 것이므로, 소설 제목과
페이지만 밝히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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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는 것이다. 여전히 적과 대치중인 휴전상황에서 정신 차리지 않고
“희멀겋게” 있는 것이 이 청년들의 눈에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이적(利
敵) 행위가 되고 여차하면 청년들 말처럼 “논산훈련소 같은 곳에” 끌려
가서 “한 두어 달씩 뚜드려” 맞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반공법’ 제정 이후 새롭게 나타난 모습이다. 과거에는 “빨갱이”만 경계
하고 색출해내면 되었지만, ‘반공법’ 제정 이후부터는 누구나 “빨갱이”
로 지목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민중들이 더 두려워하는 대
상은 “빨갱이”가 아니라 “반공법”이라는 공포 기제를 만들어 놓고 이를
통해 “빨갱이”를 생산해내는 이들이 되었다.
「등기수속」의 현구도 자기 땅의 소유권을 법적으로 분명히 해두
려는 등기수속을 하는 과정에서 “빨갱이”가 아닌, “빨갱이”를 생산, 감
시하는 이들로부터 공포를 경험한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시공간에서
현구가 공포를 느낀 대상은 “완전무장을 한 군인들을 가득 실은 드리쿼
터”이다. 현구는 이 군인들을 보면서 “가슴이 철렁하는” 불안과 공포를
느낀다. 문제는 이런 불안함이 계속해서 강박적으로 그를 괴롭히고 있
다는 점이다. 이틀에 걸쳐 진행되는 등기수속의 과정에서 그는 이런 불
안을 여섯 차례나 경험한다. 결국은 자면서까지 “군인을 가득 실은 드
리쿼터가 헤드라이트를 켠 채 자기에게 돌진해 오는 꿈을 꾸며 몇 번이
나 깜짝깜짝 놀”라기까지 한다. 이렇듯 조금도 의심이 될 만한 행동은
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완전무장을 한 군인들”의 존재는 누구에게
나 불안과 공포의 대상이 된다. 게다가 그 공포의 대상이 “헤드라이트
를 켠 채 돌진”한다면 우리는 강한 헤드라이트 불빛에 눈이 부셔 그 대
상의 분명한 실체를 파악할 수가 없게 된다. 그렇게 하얀 빛 너머에 있
는 공포 대상의 실체는 모른 채 막연한 불안과 공포심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체도 정확히 드러내지 않은 채, 그저 반공주의라는 막연한 이름으
로만 불리는 이 거대한 괴물의 위력은 대단하다. 처벌 대상의 경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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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한 반공법의 특성상, 힘을 가진 자나, 다수가 틀렸다고 규정하는 순
간 그 대상은 “빨갱이”가 된다. 가령 다수의 사람들과 다른 생각이나
행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문제적인 대상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이다. 공
무원 조직에서 남는 예산을 거짓 서류를 꾸며 자신들이 슬쩍하던 문제
적인 관행에 맞서 소신껏 원칙에 따른 행동을 고집하는 이원영 주사에
게 돌아오는 말은 “저 새끼 꼭 빨갱이 새끼군. 하는 투나 하는 소리나
꼭 빨갱이군.”이다. 심지어 이원영의 아버지마저도 ‘근대화 병’이니 ‘소
시민 근성’을 운운하며 자신을 비판하는 아들에게 “빨갱이 같다”는 표
현을 한다.9)
“네 하는 소리나 지껄이는 투는 꼭 빨갱이들 비슷하구나. 얘기 내용도
더러 그런 냄새가 풍기고 너무 근엄하고 진지한 체를 해도 꼭 그놈들 비슷
해진다는 말이다. 네 생각도 충분히 옳고 일리가 없지는 않겠다마는 그런
식은 자칫하면 빨갱이로 오해받을 소지도 있다는 말이다. 조심해야지.”
「심천도」,336쪽
이적행위나 간첩행위를 한 것도 아니다. 단지 자신이 속해 있는 사
회의 문제점에 대해 비판을 하고 합리적인 해결방식을 제시했을 뿐이
다. 그러나 다수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사회가 제시하
는 방법이나 관행에 맞서는 비판적 생각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이원영
주사의 행동은 문제적인 것이 되어 버린다. 모든 비판적 생각은 “불건
전혐의 → 불순혐의 → 좌경혐의 → 용공, 친북혐의 → 간첩혐의”로 이
어지는 반공주의의 회로판을 타고 순식간의 연상작용을 통하여 마지막
단계의 혐의와 동일시되어 버리기 때문이다.10)


9) 이 부분에 관해서는 강진호도 이미 지적한 바 있다. (강진호,「공복사회의 실상과 원
칙주의자의 신념」, ?현대소설사와 근대성의 아포리아?, 소명출판, 2004, 참조.)
10) 권혁범, 앞의 글. 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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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지리 선생이 잡혀갔다. (……) 빨갱이라면 온통 치를 떨면서도
정작 교원들의 권익 문제라도 나오면 세계 각국의 통계숫자까지 일일이 들
어가며 항상 살기등등하던 영감님이다. (……) 그저께 저녁에는 생물 선생
과 고학년 수학을 맡은 권선생이 잡혀갔다.
「부시장 부임지로 안 가다」, 251쪽
이처럼 심지어 “빨갱이라면 치를 떠는” 사람도 아이러니하게 반공
법의 문제 대상이 된다. 단지 “교원들의 권익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인 행동을 한 것만으로도 반공법은 충분히 불건전혐의나 불순혐
의를 씌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이들이 “빨갱이”로 지목된 것 자체가 아니라,
“빨갱이”로 지목되는 순간 이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생활의 기반이 함
께 빼앗긴다는 사실에 있다. 위 인용문에서 인권을 운운하던 지리 선생
을 비롯해 잡혀간 모든 이들은 “빨갱이”의 혐의를 받고 잡혀가는 순간
정상적인 사회생활의 자격 또한 함께 박탈된다. 앞에서 인용한 「심천
도」에서도 풍요롭고 안정된 삶을 거부하고 조직의 타성과 모순에 문
제제기를 했던 이원영 주사에게 돌아온 것은 ‘해고’ (물론 이원영 주사
가 자발적으로 사표를 낸 것으로 나오지만, 정황상 이는 분명히 강요된
사표이다)이다.
김승옥의 「들놀이」에도 이와 유사한 장면들이 나온다. “연말에 보
너스 대신 정종 한 병씩을 사원들에게 배급하고는 시치미 떼어버리는
노랭이” 사장에게 비꼬는 말을 했던 사원이 결국 “조용조용히 해고”된
것이다. 조직의 규범이나 그 조직의 권력자에게 문제제기를 하는 것과
같은 비판적 사고를 한다는 것은 곧 그 조직으로부터의 배제를 뜻한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맹상진군이 사내 들놀이 초대장을 받지 못한 뒤로
초조해하고 불안해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물론 단순히 집단과 다른
동료들로부터 소외된다는 사실도 불쾌하고 불편한 일이지만, 맹군이 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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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는 것은 들놀이에 초대받지 못한 것이 곧 해고를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맹상진군의 불안은 이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계속됐다. 그날밤, 맹군은
이불 속에 누워서 어둠 속을 올려다보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별의별 귀신
이 그 어둠 속에서 날개짓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었다. (……) 이군의
경우는 나와 다르지, 그는 어쨌든 사장의 초대를 받은 거야. 들놀이에 가지
않겠다는 건 그의 자발적인 의사지, 말하자면 적어도 오늘까지는 사장이
그를 회사 사원으로 인정하고 있는 거야. 그런데 나는 어떠한가. 나는 나는
나는.... 벌써..... 해고하기로 결정된 사람인지도 몰라. 해고? 아니 그렇진 않
겠지. 이군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 미스 리의 실수에 불과하다는 게 맞을
지도 모른다.11)
맹군은 특별히 해고를 당할만한 행동을 한 적이 없다. 오히려 해고
를 짐작하고부터 자신의 행동을 되짚어보며 자책과 자기검열을 하기
시작한다. 맹군을 위로하기 위해 자신도 함께 들놀이에 가지 않기로 한
이군 또한 결코 마음이 편치 않다. 그 역시 맹군과 바둑을 두고 있으면
서도 들놀이에 참석하지 않은 불이익이 생기지 않을까 불안해한다.
이들이 이렇게 불안해하는 이유는, 근대 국가가 규범에서 벗어난 자
들을 처벌하는 방식 때문이다. 복잡하고도 교묘한 메커니즘에 의해 움
직이는 근대 국가는 문제적인 인물에게 결코 직접적인 폭력이나 잔인
한 처벌을 가하지는 않는다. 근대 국가가 형성되고 유지되는 기본 원리
는 배제와 포섭이다. 즉, 공동체의 테두리 안에서 그를 벌하기 보다는,
공동체 바깥으로 내쫓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의 자격 박탈이 의미하는 것은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조차 사회


11) 김승옥, 「들놀이」,?김승옥소설전집1?, 문학동네, 2004, 303쪽. 이후 본문에서 인용
되는 김승옥 소설은 모두 ?김승옥소설전집?에서 인용한 것이므로, 소설 제목과 페이
지만 밝히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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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부터 보장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사회로부터 보장받기는커녕 자신이
누리고 있던 모든 삶의 기반마저 국가에게 몰수당하게 되는데, 위 인용
문에서는 이것이 ‘실직’의 형태로 나타난다. 결국 인간으로서의 최소한
의 삶조차 영위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60년대 반공주의와 인권이 연동되는 것도 근대 국가의 이런 특성 때
문이다. 반공주의의 논리에 따르면 국가의 근간인 체제에 맞선 이들은
더 이상 이 나라의 국민이 아니다. 따라서 그들에게서 국민으로서의 모
든 자격과 권리를 박탈하는 것은 당연하다. 반공주의는 결국 국민의 자
격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며, 국민의 자격을 얻은 자에 한해서만 인권이
부여되었다. 즉, 인간다운 삶에 대한 권리를 뜻하는 인권은, 우리가 흔
히 알고 있는 것처럼 자연법에 기반하여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보장되
는 것이며, 모든 것에 전제가 되는 당위적 조건이 결코 아니었다. 오히
려 인권은 대단히 “정치적”이다. 근대 국가에서 ‘인권’은 ‘국민’으로서
의 자격을 부여받은 자에 한해서만 주어졌던 제한적인 권리였다.
1960년대 인권담론에 관한 이정은의 논의는 당시 우리 사회가 규정
하는 인권의 개념과 그것이 정치기제로 작동되는 방식을 잘 보여준
다.12) 이 논의에 따르면, “국민국가의 모듈, 제도적 장치로 도입된 형식
적 ‘인권’”옹호는 역설적이게도 “박정희 정권이 결코 무시하거나 회피
할 수 없는 정책 사안 중 하나”였다. 박정희 정권은 ‘인권의 날’ 행사를
더욱 성대하게 치르기 시작했고, 인권상담소 등을 적극적으로 운영해
국민들의 인권상담, 고발 기회를 확장시키기도 했다.13) 그러나 이는 어
디까지나 형식적인 정치활동의 일종에 불과했다. 결국 박정희 정권이
만들어낸 인권담론은 재건과 경제개발이야말로 기본적 인권의 보장을


12) 이후 1960년대 인권담론에 관한 논의의 상당부분은 이정은,「제도로서의 인권과 인
권의 내면화: 1960년대 인권담론과 정치학」에서 참고, 인용한 것임을 미리 밝혀둔다.
13) 이정은,「제도로서의 인권과 인권의 내면화: 1960년대 인권담론과 정치학」, 한국사
회사학회,?사회와 역사?제79집, 2008년, 55쪽.
1960년대 인권 보장 기제로서의 반공주의 227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었고, 또한 공산주의의 인권유린과 자유민
주주의의 인권옹호라는 대립구도를 통해 반공을 함께 내세우고 있었
다.14) 인권옹호사업의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반공유공자심사와 같이
반공주의를 기반으로 한 원호사업이었고, ‘준법정신 계도’ 또한 인권옹
호사업에서 빠지지 않는 부분이었다. 박정희 정권의 주요 정책 중 하나
였던 인권이 어떻게 해석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 마
디로 박정희 정권의 인권옹호사업은 반공법을 비롯한 국가의 법과 명
령을 잘 지키는 것, 즉 규범에 적합한 ‘국민’이 되는 것이 곧 인권을 보
장받는 것이라는 논리를 사람들에게 내면화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국민되기=인권보장’이라는 공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목은, 한국
전쟁 이후 급격히 늘어난 부랑아, 거지, 전쟁고아와 같은 이들이 인권을
보장받는 과정에 있다.15) 이들은 호적이 없거나 불분명하여 국가의 등
록서류에도 빠져있는 무적자(無籍者)로서, 일종의 비존재 혹은 비국민
이라 할 수 있다. 이 상태에서 이들은 사회적 불안/공포의 대상이자 경
찰의 감시, 통제의 대상인 잠재적인 우범집단으로 취급된다. 이런 이들
이 기본권을 보장받기 위해 한 행동은 “국민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었
다. 자신들이 스스로 본적, 연령, 호적관계 등을 기재한 신상카드를 작
성해 이를 토대로 입적과정을 거쳤고, 병역 해당자는 자진 입대를 통해,
다른 이들은 교육과 직업활동을 통해 사회를 위해 유용하게 쓰이는 직
업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이면서 자신들을 국민으로 인정해주기를 요구
했다. 이처럼 인간다운 삶에 대한 최소한의 권리조차 모든 인간에게 자
연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삶의 형태와
가능성의 결정권마저 국가에게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근대 국
가로서의 1960년대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14) 이정은, 위의 글, 55쪽.
15) 이정은, 앞의 글, 82-84쪽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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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인권’을 보장받기 위한 소시민으로서의 삶
천부 인권이 아니라 “정치적”인 속성을 띤 ‘인권’은 “인간 자체의 가
치보다 그 인간들이 국가와 맺고 있는 관계에서 비롯”16)된다. 다시 말
해, 인권은 한 공동체 안에서 개인과 집단 사이의 관계, 또한 그 개인,
집단이 다른 개인, 집단, 특히 힘과 권위를 지닌 개인, 집단과 맺는 관
계를 짚어내는 것이다.17) 서구의 경우 이러한 인권은 여러 차례에 걸친
투쟁과 합의의 산물로 국가와 개인 간의 계약이라는 형태로 생겨났지
만, 우리의 경우는 ‘인권’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이해하고, 이에 대해 충
분히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즉 서구로부터 이식되고 국가로부터 강제
된 형태의 ‘인권’이 지배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경우 국가가 법
의 형태로 규정하고 보장해주는 인권을 부여받기 위해서는 권리를 부
여하는 자가 제시하는 조건에 부합해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국
민의 자격으로 '인권'을 보장받으려 할 때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은 "빨갱
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적 효력을 갖는 기호의 외
연”이 아주 넓은 반공법의 특성상 누구나 ‘잠재적 용공주의자’가 될 수
있다. 실제로 박정희 정권이 5.16이후 특수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법이
라는 잠정적 특별법에 따라 구속, 수감한 1천여 명에 이르는 ‘용공사범’
들의 죄목은 정확히 ‘잠재적 용공주의자’였다.18) ‘공산당’과 자신을 구
별하기는 어렵지 않으나, ‘잠재적 용공주의자’로부터 자신을 구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19)
‘잠재적 용공주의자’로 지목돼 끌려가지 않는 방법은 비판이나 부정
은 물론이고 아예 어떠한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저 사회가 제시하는 규


16) 앤드류 클래펌,?인권은 정치적이다?,한겨레출판, 2010, 49쪽.
17) 앤드류 클래펌, 위의 책, 232쪽.
18) 박원순, 앞의 책, 197-199쪽, 참고.
19) 김준현, 앞의 글, 115쪽.
1960년대 인권 보장 기제로서의 반공주의 229


범과 가치관에 순응하면서 사는 방법과 이런 문제적 사회로부터 도피
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방법이 아니고서야 사
회로부터의 완전한 도피는 사실상 불가능하다.20) 게다가 사회적 관계나
책임의 측면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학생의 신분이 아니라 이미 가정을
꾸려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거나 직업을 갖고 사회생활에 발을 들여놓
은 경우라면 도피는 더욱 힘들어진다. 결국 이 사회를 살아가는 방법으
로 선택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은 없다. 자칫하면 ‘불건전’하거나 ‘불순’
한 생각이 될지도 모르는 생각 따위는 아예 하지 않는 것이다.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는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한 첫 단계는 세상의 모든 일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내부를 저런 무관심한 표정으로 가려버리는 법을
지난 몇 년 동안 서울에서 나는 마스터한 것이었다. 되도록 무관심한 척하
라. 할 수 있으면 쌀쌀하게 웃기까지 하여라. 그제야 적은 당황한다. 제군,
표정을 거두어라. 그리고 오직 하나 무관심한 표정만을 남겨라.
「환상수첩」, 12쪽, 강조-인용자


20) 김승옥, 이청준을 비롯해 60년대 소설에서 현실세계를 도피하거나 자살을 선택하는
인물들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가령「환상수첩」의 주인공 정우은 서울생활에서 강
요받는 현실의 논리를 받아들일 수 없어 고향으로의 ‘도피’를 선택하지만 그곳에서도
부모님으로부터 똑같은 현실의 논리를 기대받고 이미 현실 논리의 세계에 속해 있는
친구의 모습을 보고 결국 자살을 선택한다. 현실세계의 모순적 상황이나 강압적 태도
앞에서 방황하고 고민하다 결국 자살을 선택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대학생인 경우가
많다. 이호철의 「심천도」에서 정의롭게 집단의 모순에 맞서는 이원영 주사를 가리
켜 “철부지 대학생이 흔히 있는 양심이라는 객기에 휘어들어서 앞뒤도 자세히 가리지
않고 경거망동하는 꼴”(「심천도」, 393쪽.)이라고 하는 대목이 있다. 정의롭고 소신있
는 행동의 결과를 뻔히 아는 상황에서 이미 가정을 꾸리고 사회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문제에 맞서는 양심 있는 행동은 쉽지 않은 선택일 뿐 아니라 그런 문제들로 인해 자
살을 선택하는 것은 더욱 쉽지 않은 선택이다. 동일한 문제적 외부조건이라 하더라도
각자가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서 다른 선택을 하기 마련인데, 가족부양과 같은 사회적
요구와 책임이 비교적 덜 한 대학생들에 비해 가정을 꾸리고 사회생활을 하는 이들이
비겁한 소시민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230


「환상수첩」에서 정우가 서울 생활에서 배운 것이라고는 단 하나,
“되도록 무관심한 척하라”이다. 세상에 대한 고민과 관심은 그만 두고
“범속한 사람들 틈에 끼어” 사는 삶은, 바로 사회와 그의 부모가 원하
는 삶의 모습이다. 그가 사랑했던 여인인 선애 또한 자신의 아이가 그
저 “튼튼한 백치”이기를 바란다.
“그저 밉상은 아니고 바보 비슷한 아이를 낳았으쪽... 고뇌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영화나 보고 좋아하고 당구나 치고 만족할 수 있고 야구 구경
이나 하며 시간을 보내고도 후회하지 않는 아주 속물로 만들고 싶어요.”
「환상수첩」, 32쪽
사회와 주변 인물들이 요구하는 가치관이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요구에 부합하는 인간의 모습에 자신을 끼워 맞추게 되고
사회에는 결국 하나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만이 존재하게 된다.21)
해내는 거다. 세상이 당연하다고 내미는 것을 나 역시 당연하다고 생각
하며 받아들이도록. 평범한 것을 흡족하게 생각하며 받아들이도록. ‘여보
게 딴생각 말고 착실히 공부해서 좋은 데 취직하여 착한 여자 얻어서 아들
딸 낳고....’ ‘네, 저도 그럴 작정입니다’라고 대답하도록. ‘분수에 넘치도록
욕심이 많은 사람이 자살하는 법이야. 욕심을 줄이면 되지 않나?’ ‘선생님
참 그렇군요’라고 생각하도록. ... 어쩌면 내게는 그럴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을 듯했다.
「환상수첩」, 37쪽(강조-인용자)


21) 물론 정우는 세속적 삶을 살아보기로 결심하지만 끝내 스스로 그런 모순을 받아들이
지 못하고 자살하고 만다. 친구 윤수 또한 ‘시’라는 현실과는 다른 이상적 삶을 꿈꾸지
만 여행 도중 미아를 만나고서는 시를 그만두고 생활전선으로 뛰어들 것을 결심한다.
그러나 윤수 또한 불의 앞에서 정의롭게 맞서 싸우려다 끝내 “아무런 보상 없는 세상
에서의 무의미한 죽음”을 맞게 된다. 현실의 모순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새로운 삶
의 방식을 꿈꾸었던 이들에게 세속적 삶의 거부에 따른 결과는 결국 죽음뿐이었다.
1960년대 인권 보장 기제로서의 반공주의 231


그 하나의 삶이 “평범한 것을 흡족하게 생각하며 받아들이”고, “딴생
각 말고 착실히” 사는 삶이다. 그리고 이는 타인에 대한 고민이나 관심
은커녕,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나 비판 또한 일체 하지 않은
채 물질적 가치와 세속적 삶에만 집중하는 삶의 다른 표현이다. 이런 모
습에서, 지극히 평범하고 성실했지만, 단지 “‘사유’나 ‘판단’, ‘의지’가
없”22)을 뿐이었던 아이히만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 결코 비약은 아닐 것
이다. ‘사유’나 ‘판단’의 부재는 곧 ‘의지’와 ‘행동’의 부재로 이어진다.
정원 미달의 어느 삼류대학 사회학과를 마치고, 입대하여 훈련을 마치
자 어쩌다가 떨어진 게 정훈이었고 정훈에서 어쩌다가 맡은 게 군내 신문
편집이었고 그리고 어쩌다가 보니까 거기에서 만화를 그리고 있었고 제대
하여 취직할 데를 찾던 중. (……) 그야말로 ‘어쩌다가’의 연속이었다. 그는
자기가 지난날 우연 속에 자신을 맡겨버린 것이 갑자기 역겨워졌다. ‘거지
같은 자식이었다’하고 그는 자신을 욕했다. 손톱만큼이라도 좋으니 나의
주장이 었었어야할 게 아닌가. 그러나 다시 한번 자기의 이력을 검토해보
면 그 망할 놈의 군대생활이 끼어 있었기 때문에 사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고 생각하게 되었다. 군대 속에서 어떻게 자기의 희망대로 생활할 수 있단
말인가. ‘좌향 앞으로 갓!’하면 왼쪽으로 돌아야 되고 ‘포복!’하면 엎드려서
기어야 했었다. 마치 그의 만화 속의 인물들이 자기들의 표정과 운명을 그
의 펜 끝에 맡겨버릴 수밖에 없듯이. 우연 속에 자신을 맡겨버리는 습관을
가르쳐준 게 그놈의 군대였었다. 그런데, 하고 그는 생각했다. 하긴 그것이
평안했어. 적어도 신경쇠약에 걸릴 염려는 없었거든. 그는 여전히 천장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이제 와서 대학에서 배운 것을 팔아먹고 싶다고 앙
탈하지는 않겠다. 만화 일만이라도 계속할 수 있어야겠다.
「차나 한잔」, 216-217쪽
김승옥의 「차나 한잔」에서 주인공은 줄곧 “어쩌다가”의 인생을


22)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 한길사, 2006, 37쪽.
232


살아온 사람이다. “어쩌다가” 맡은 군대에서의 보직과 그 이후 이어진
“우연”의 연속들이 그를 지금의 자리로 이끌었고, 그 과정에서 그는
“손톱만큼”도 자기 주장이라고는 없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이 역겨웠던
순간도 있지만, 이내 그는 “우연 속에 자신을 맡겨버린” 채 사는 삶이
“평안”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삶이야말로 ‘의지’ 없는 삶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영감의 의견과 같이 정부측의 압력 때문에 만화 연재를 중단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것을 필화사
건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만 된다면 그는 영웅이 될 수도 있다. 사실 옛날
자유당 시절에는 그런 사례가 있기도 했었다. 그러나 위정자가 바뀌고 보
니 그런 경우를 당하기가 힘들어졌다. 만화가를 건드리면 손해보는 건 자
기들이라는 걸 알아버린 모양이지. 허긴 어떤 선배 만화가의 얘기에 의하
면 지금도 그런 경우가 전연 없지 않다는 것이었다. 방법이 바뀌어져서 간
접적인 압력이 있기도 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차라리 행복한 편
이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자기의 경우는 아마, 아마가 아니라 거의 틀
림없이 자기 만화 자체 속의 어떤 결함, 말하자면 ‘웃기는’ 요소가 부족했
다든가 하는 결함에서 당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그는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자기 만화 때문에 노해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
각을 하자 그는 자신이 우스꽝스러워져서 눈을 감아버렸다.
「차나 한잔」, 227쪽
“어쩌다가”의 인생을 살던 그가 어느날 만화를 연재하던 신문사로
부터 해고 통보를 받는다. 그러나 그 이유는 그가 속한 조직이나 권력
자에 대한 비판을 해서가 아니다. 그가 짐작하고 있는 것처럼 “웃기는
요소가 부족”했다는 이유 때문에 그는 해고를 당했고, 신문사측은 훨씬
더 값이 싸고, 세련된 유머의 미국 만화를 선택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만화가 ‘웃기는’ 요소가 부족해 해고당했음을 짐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1960년대 인권 보장 기제로서의 반공주의 233


정부측의 압력 때문에 연재가 중단된 것이었으면 하는 상상을 한다. 그
는 정부의 강제나 압력을 당했으면 하는 상상만을 할 정도로, 실제로는
정부를 노하게 할 만한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다가”에 익숙해
진 ‘의지’ 없는 삶은 어느덧 ‘아무 생각 없는 삶’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의지도, 관심도, 사유도 없는 이런 삶의 태도가 반복되면 결국 집단의
문제적 이데올로기나 규범을 긍정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문제적인
자신의 행동까지도 합리화하는 상태에까지 이르게 된다.
「부시장 부임지로 안 가다」에서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자신을 찾
아 집으로 온 군인들을 피해 도망을 다니는 규호에게도 반공주의는 불
안과 강박의 대상이다.「등기수속」의 현구에게 공포의 대상이 “무장한
군인들”이었다면, 규호를 괴롭히는 것은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로 삼
고”를 무한 반복하는 라디오이다. 어딜 가나 들려오는 라디오 소리에
현구는 무의식적으로 도망을 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바로 근처에서는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로 삼고.....” 하고 라디오 소리
가 터져나오고 있었다. 그러자 규호는 화닥닥 놀라서 또다시 달리기 시작
하였다. 달리면서도 옳은 소리지, 옳은 소리구말구 하고 스스로 새삼 확인
이나 하듯이 중얼거렸다. ... 그러면서 의식은 막연히 일정한 방향으로 농
축되어 가고 있었다.
「부시장 부임지로 안 가다」, 252쪽(강조-인용자)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됐다는 것인지, 무엇을 어쩐다는 것인지 전혀 요
량할 수 없는 대로 이 집 저집 라디오에서는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로 삼
고”가 여전히 터져나올 뿐이었고 그럴 때마다 딴은 옳은 소리지, 옳은 소
리구 말구 하고 스스로 생각해도 좀 민망해질 만큼 아첨조가 깃들인 소심
한 심정으로 혼자 중얼거렸다.
「부시장 부임지로 안 가다」, 258쪽(강조-인용자)


234


자신을 쫓겨 다니도록 만든 반공주의에 대해 규호는 문제의식을 가
지기는커녕 “스스로 생각해도 좀 민망해질 만큼 아첨조”로 강한 긍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비겁하고 소심한 태도가 집단 전체에 관행처럼
만연되어 있다면 그 속에서 혼자 다른 생각을 하기란 쉽지 않다.
공무원 집단의 문제와 그 속에 있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리고 있
는 「심천도」에서 소심하고 비겁한 모습이 집단 전체에 뿌리내려져
있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그리고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정
의롭고 건전한 사고를 가진 사람이 비겁하고 소심한 모습으로 변화해
가는 과정도 함께 살필 수 있다.
(……) 가장 편리하게 활달하게 살고 혈기왕성하게 살이 올라 사는 사람
들은,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명실 그대로 이 바닥의 분수를 쫓아 자연
스럽게 어울려들어서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노
상 토론이나 좋아하고 똑똑한 소리나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심천도」, 378쪽(강조-인용자)
사회가 원하는 인물은 바로 그 “바닥의 분수를 쫓아 자연스럽게 어
울려들어서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러다보면
자연히 “안일주의, 무사주의, 적당주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면 이 집단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처음부터 이런 습성을 띠고 있었는
가? 김사무관의 경우 처음에는 그도 이원영 주사 못지않게 소신있고 정
의로운 행동을 했었다.
그러나 1년, 2년, 3년 지나는 동안 차츰 그도 나름대로 서서히 익숙해졌
다. 어차피 세상은 이렇게 생겨먹은 것, 혼자서 잘난 체해 보아야 누구 하
나 알아주지 않고 적당적당히 요령껏 남의 눈에 과하게만 띄지 않을 한도
내에서 조금씩 쓱싹이는 것은 무방할 것 같았다. 쥐꼬리만한 공무원 봉급
으로써야 생활 뒷감당이 안 된다는 것은 높은 사람들도 다 알고 있는 사실


1960년대 인권 보장 기제로서의 반공주의 235


이어서, 으레 어느 정도의 꿍꿍이속은 있게 마련이 아닌가. 우선 뭐니뭐니
먹고 살고서야 일이고 나라고 있을 것이니까, 이런 방향으로 서서히 생각
이 굳어지기 시작하였다.
「심천도」, 316쪽(강조-인용자)
그러나 김사무관 역시 문제적 조직에서 생활해가면서 점차 “어차피
세상은...”과 “적당적당히 요령껏”의 습성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단 한번 타협을 하게 되면 그 순간 “하나의 비굴한 레테르가 붙게
되”고, “그 비굴한 레테르를 스스로 비굴하게 여기고는 못 견디기” 때
문에 결국 “자기 합리화의 길을 준비”하는 수순을 밟게 된다. 결국 그
렇게 “때가 한 꺼풀 더 묻게” 되고 “그 땟국을 땟국으로 여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욱 추잡한 현실 논리를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소신있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던 사람이 한 번의 타협이나 묵인을 하게
되면서 문제적인 사람으로 전락하는 과정이다.
김사무관는 또 다른 측면에서 이원영 주사와 맞서는 인물인 양주사는
이원영 주사의 비판적인 생각과 행동에 충분히 공감의 뜻을 내보인다.
그러나 김사무관과는 다른 이유지만 그 또한 결국 타협을 하게 된다.
양주사도 이 원영 주사와 똑같이 ... 막연한 무력감에 젖어들지 않을 수
가 없었다. 결국 이 바닥에서 살아간다는 실체는 저런 것이고, 의식의 조작
이라든지 윤리 의식이라든지 책임감 사명감 같은 것은 치기 덩어리 아이들
의 유치한 소아병적 행태거나 군더더기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심천도」, 377쪽
양주사의 이런 생각은 결국 모든 문제의 원인을 “개개의 인간에게”
서 찾지 않고 “기구 자체의 구조”에서 찾는다. 문제의 일차적인 원인을
개개인으로 보고 “우리 자신의 문제로써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
는 이원영 주사에 반해, 양주사의 이런 생각은 결국 개인이 할 수 있는


236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막연한 무력감”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된다. 그
리고 그 또한 자신의 이런 무력한 태도를 합리화하기 위해 현실 논리를
포장하기 시작한다.
“그 적당한 선은 항상 어느 정도는 상투적인 것이지요. 일정한 질서, 일
정한 울타리는 바로 그 상투적인 적당한 선이 지탱해 주는 거지요. 궁극적
으로 진지하기만 한 자세가 반드시 궁극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에요. 그것
은 결국 비타협과 끝내는 피의 투쟁으로 필연적으로 옮아가지요. 적당한
선이라는 것이 어째서 나쁜 것입니까. 누이 좋고 매부 좋자는 것이 어째서
나쁜 것입니까. 누이만 좋거나 매부만 좋은 것보다는 어떻든 좋은 것이 좋
은 것이 아닙니까”
「심천도」, 404쪽
일단은 나부터 살아야 사회나 국가도 살릴 수 있다는 김사무관의 이
기주의적 생각이나 적당히 타협하는 것이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인데 나쁠 것 없지 않느냐는 양주사의 생각은 그 이유는 다르지만 모
두 비굴하고 이해타산적인 자기 행동에 대한 합리화일 뿐이다.
김사무관이나 양주사처럼 약간의 문제의식이라도 가진 이들은 이렇
게 자신들의 모순된 행동에 대해 합리화의 포장을 하려고 하는데 비해,
아예 이런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 이들도 있다. “자유당 치하부터 공무
원 세계에 만연된 일반적인 풍조”인 “안일주의, 무사주의, 적당주의”의
습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과장과, 어떤 일이든 “전면적으로 자기를 내
건다는 것을 극력 피하”는 것을 “현명한 처신 방법”으로 여기며 사는
김주사와 같은 인물이 이 부류에 속한다. 그리고 “시골에서 유지 노릇
이나 하면서 달콤한 낙관주의와 안일한 자세에 흠뻑 젖어”있으면서 “현
당국이 하는 일은 무작정하고 다 좋고 다 의욕적이고, 매사가 다 훌륭
하”다고 생각하는 이원영 주사의 아버지 또한 여기에 속한다. 이원영
주사는 이런 아버지의 모습에 대해 “소시민 근성”이라고 비판한다. “소


1960년대 인권 보장 기제로서의 반공주의 237


시민 근성”이란 사회적 문제나 타인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비판적이고
무관심한 동시에, 자기가 속한 집단의 지배이데올로기나 관습화된 규범
은 적극적으로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런 소시민의 모습이야
말로 ‘순응하는 신체’23)로서의 근대 국가 국민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지금까지 인용한 텍스트의 인물들은 모두 전형적인 소시민들이었
다. 이들은 소시민으로서의 삶을 택한 이유로 한결같이 ‘현실(혹은 생
활)’을 꼽는다.
나이를 먹고 사회에 나서고 널리 깊이 세상을 알고 세상 속에 젖어갈
수록 점점 시계가 좁아지고 생각하는 것이 협량해지는 것이다. 그리곤 향
용 누구나가 내세우는 것이 소위 왈 ‘구체적인 현실’이다. 진흙 수렁에 한


23) 강제나 억압의 상황이지만, 어쩔 수 없이 ‘순종하는 인간’이 되는 모습이 이호철의
「부시장」에서 노인과 주인의 상황을 통해 우회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처음에는 집
문 앞에 같이 앉아 개의 털을 빗질해주듯이 쓰다듬어주더니 어느새 개와 마주 앉아서
장난을 하기 시작했다. 그 장난이라는 것이 매우 희한하였다. 노인은 개의 두 귀를 잡
고 개의 눈알이 자기 쪽으로 똑바로 향하도록 강제적으로 요구를 하는 것이었다. 희한
하다. 규호는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한데 개도 사람의 눈을 한참씩 들여다보는 것은
민망하고 멋쩍은 듯 섬세하게 수줍어하고, 스름스름 눈알을 굴리면서 외면을 하였다.
이러면 노인은 더욱 더 기를 쓰면서 개의 얼굴을 요리조리 돌려가며 개의 시선이 자
기 시선에 맞도록 기를 쓰는 것이다. 그 키들키들 웃는 표정은 그로테스크한 열기까지
띠고 있었다. 차라리 개의 표정이 훨씬 담담하게 인간적이고, 그 야수적인 웃음을 흩
뜨리는 노인의 표정이 짐승인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이놈, 제법 이리 수줍어하노” 하
고 노인은 어눌한 목소리로 끼들끼들 웃으며 혼자 지껄이고, 계속 개의 눈알에 자기
시선의 앵글을 맞추려 하였다. 그러나 개는 툴툴거리면서 낑낑거리고 잡힌 귀를 빼내
려고 몸을 뒤틀었다. 어느새 그러는 개의 눈길은 제대로 둔탁한 개의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드디어 노인은 화를 내고 두 볼을 후려때리며 놓아주었다. 노인은 아직 쓰레
기통에 가려 있는 규호를 못 본 모양으로 개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그러자 개는 금방
그쪽으로 달려갔다. 규호는 오만상을 찡그린 채 쓰레기통 옆에서 살짝 머리를 들고 내
다보았다. 개는 주인 곁으로 가서 끙끙거리다가 다시 얌전하게 가라앉으며, 이번에는
주인에게 놓여난 것이 슬퍼진 모양으로, 그리고 조금 전에 볼을 맞은 것이 뒤늦게 서
운해진 모양으로 주인의 눈치를 힐끔거리며 아양을 떨더니 그 앞에 번듯이 누웠다. 비
로소 노인은 번드르르하게 까진 이마까지가 반뜻하게 부드러운 표정으로 돌아가서 개
의 등을 또닥또닥 두들겨주었다.”(「부시장」, 260-261쪽.)
238


발 한 발 빠져들어서 끝내는 꼼짝을 못하듯이, 누구나가 생활 현실 자체의
기성 논리에 휘말려들어서 꼼짝을 못하고, 종당에는 그 길로 더께가 앉고
더뎅이가 지며 굳어지게 되는 것이다.
「심천도」, 348쪽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경제적 가치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사회 전체가 경제난에 빠져 있던 이 시절, “공무원
봉급만으로는 도저히 안 된다”는 식의 전제들이 사회 전체에 퍼지기 시
작하였고, 이런 상황에서 개개인들은 경제적 가치를 쟁취하기 위해 “모
든 악에의 투신을 합리화”하고 “자기 변명의 구실을 동원”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이 소시민적 타성에 젖어들게 된 이유가 단지 당시의 경제
난 때문만은 아니다. 경제난은 어느 사회에서나 생길 수 있다. 그러나
국가 전체의 경제적 위기 상황이 곧 구성원들의 소시민으로의 전락으
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토록 ‘생계’나 ‘생활’의 문
제에 강한 집착을 보였던 이유는 불안정하게나마 유지하고 있던 생활
의 기반 자체가 한순간에 박탈당할 수도 있다는 공포기제가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활/생계’야말로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
이다. 이것마저 빼앗겨버리는 순간 '인간'의 자격을 박탈당하는 것은 물
론이고, ‘생명’조차 안전하게 보장받을 수 없는 ‘벌거벗은 존재’로 한순
간에 전락하게 된다.
위 인용문에서 ‘구체적인 현실’이 ‘진흙 수렁’으로 비유되는 것은 현
실 논리의 특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현실 논리란 아주 간명하다.
사회가 제시하는 규범이라는 틀 안에서 그저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만 성실히 수행하면, 그에 상응하는 경제적 보상과 안정된 생활이
보장된다. 그러나 만약 사회적 규범에 문제제기를 하거나 자신에게 주
어진 임무를 벗어난 생각과 행동을 한다면, 불안정하게나마 자신의 생
계를 지탱해주던 기반들을 송두리째 빼앗기게 된다. 이 같은 양자택일


1960년대 인권 보장 기제로서의 반공주의 239


의 상황이라면 누구나 ‘빨갱이’가 되기보다 ‘소시민’이 되어 ‘인간으로
서의 최소한의 삶’의 권리라도 보장받고자 할 것이다.
1960년대를 상징하는 인물 유형으로 소시민을 먼저 떠올리는 것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24) 그러나 4.19라는 혁명적인 사건을 주도했던
이들이 성숙한 시민이 아닌 소시민으로 전락한 것은 분명 의문스러운
현상이다.25) 평범한 사람들이, 혹은 정의롭고 비판적인 사고와 행동을
꿈꾸던 이들이 소시민이 된 까닭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바로 국가가
내세운 ‘인권’ 보장의 조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4.19 이후 성숙한
시민사회와 주체로서의 시민에 대한 민중의 열망은 박정희 정권의 '인
권' 앞에서 포기될 수밖에 없었다. 4.19 이후 우리 사회에 소시민적 삶
의 방식이 많아진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24) 1960년대 소설에서 단연 돋보이는 인물유형은 바로 ‘소시민’이다. ‘소시민’이라는 표
현은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소시민’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그
런 인물들이 소설에 등장하게 된 시기는 분명 1960년대이다. 성공이다 실패다 여전히
논란이 많지만, 분명한 것은 4.19를 겪으면서 비로소 우리에게 ‘시민’, ‘시민사회’, ‘민주
주의’와 같은 개념이 조금이나마 형성되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비
록 그런 개념들이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구체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기까지는 그 후로도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지만, 적어도 관념과 추상의 차원에서만큼은 이런 개념들이 형성
된 것이 분명하다. ‘소시민’이라는 이전에는 쓰지 않던 표현의 등장이 그 증거이다. ‘소
시민’의 의미는 ‘시민’이라는 개념을 전제로 하지 않고는 형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25) 이런 ‘소시민’의 등장 배경에 4.19도 물론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만, 4.19 이후 많은
이들이 ‘시민’의 모습이 아닌 ‘소시민’의 모습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5.16의
영향 때문이다. 4.19와 5.16은 따로 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다. “4.19와 5.16은
이인삼각이 아닌가 생각했거든요. 자유민주주의라는 4.19의 정신과 달리 5.16쿠데타는
정치사적으로나 정신사적으로 여러 가지 부정적인 요소가 압도하고 있지만 근대적인
경제체제를 개발하려고 했다는 점에 주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민주주의라든가 자유
라는 것의 물적 토대는 역시 어떤 경제적인 기반 위에서 가능한 것이지 그것 없이 실
재하기 어려우니까요. 그래서 경제적인 근대화와 정신적인 근대화, 이것이 60년대를
이인삼각 형태로 끌고 간 것이 아닌가.”(김병익 외,「좌담:4월혁명과 60년대를 다시 생
각하다」, 최원식 편, ?4월 혁명과 한국문학?, 창비, 2002. 39쪽)
240


4. 소시민의‘인간다운 삶’이라는 모순적
가치로서의 인권
인권을 보장받기 위해 선택한 소시민으로서의 삶은 불가피한 선택
이었지만, 한계를 지닌 선택인 것 또한 분명하다. 소시민이 되어 ‘인간
다운 삶’의 권리를 보장받는다는 이 논리는 매우 모순적이다. 인간이라
는 용어는 프랑스 혁명 이후 프랑스 국회가 1789년에 헌법 서문으로 채
택한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26) 이 권리
선언 제11조에 따르면, “사상과 의견의 자유로운 소통은 인간의 가장
귀중한 권리의 하나”이며, 따라서 “모든 시민은 자유롭게 말하고 쓰고
출판할 수 있”27)는 권리를 가진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이 부여했던 인
권에는 그 어디에도 이런 권리를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이 권리를
포기해야지만 최소한의 삶의 조건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사상의 자유
나 정치활동의 자유와 같은 것들은 포기할 수 있지만, 생명을 보호하고
유지하는 권리만큼은 결코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인간으로서의 최소한
의 권리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후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사유’와 ‘판단’ 기능을 상실해버려 더 이상 “사상과 의견의 자
유로운 소통”이 불가능해진 소시민이 획득한 권리는 결코 진정한 의미
의 인권으로 볼 수 없다.
아감벤이 ?호모 사케르?에서 언급한 것을 빌리자면, 삶은 두 가지
의미로 구분할 수 있는데, “모든 생명체에 공통된 것으로, 살아 있음이
라는 단순한 사실을 가리키는 조에”와 “어떤 개인이나 집단에 특유한
삶의 형태나 방식을 가리키는 비오스”28)가 그것들이다. 인간에게 있어
조에로서의 삶과 비오스로서의 삶은 결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26) 최현, ?인권?, 책세상, 2008, 15쪽.
27) 최현, 앞의 책, 21쪽.
28) 조르조 아감벤, ?호모 사케르?, 새물결, 2008, 33-34쪽.
1960년대 인권 보장 기제로서의 반공주의 241


조에로서의 삶을 기반으로 하여 그 위에 비오스로서의 삶을 추구해가
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삶의 방식이며, 이는 곧 “공동체이든 개인에
게든 최종 목표”가 된다. 그러나 60년대 우리 사회에서는 비오스로서의
삶 자체가 아예 허락되지 않았고, 조에로서의 삶 또한 국가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 상태였다. “가치 있는” 비오스로서의 삶을 모색하는 이
들에게는 조에로서의 삶이라는 기본적인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
에, 사람들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삶을 영유하기 위한 대가로 인간
다운 삶의 다른 중요한 부분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해 이 시
대의 민중들은 조에로서의 삶을 유지하기에 급급해 비오스로서의 삶은
아예 꿈꿀 수도 없었으며, 이 시대의 ‘인권’은 결국 조에로서의 삶을 위
한 권리, 즉 생존권의 의미로 제한되어 있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물론 “정치적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순간 자연 상태를 벗어나게 된
다”29)고 로크도 지적했다시피, 근대 국가의 메커니즘 속에서 개인은 더
이상 자연 상태의 자유를 누릴 수는 없으며, 일정 부분의 제약을 받게
되는 것은 다른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과정이 서구 사회와 같이
사회계약이라는 양자 간의 합의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라면 일정 부분
의 제약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에는 4․19 이
후 잇달아 일어난 5․16으로 인해 균형적인 관계가 되었어야 할 시민-
국가의 관계가 국가의 일방적인 우위 관계로 형성되는 바람에 사회계
약의 절차는 무시되고, 오직 국가의 독단적인 계획만 존재하게 되었다.
그 계획의 첫 단계가 ‘순응하는 신체’로서의 국민을 양성하는 일이었고,
국가는 국민의 조건에 부합하는 이들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의 보
장을 명분으로 제시했다. 국가가 내세운 이 ‘인권’이라는 카드는 늘 반
공주의와 함께 2인 3각의 형태로 작동되었는데, 반공법과 같이 국가가
만든 법률과 규범을 잘 따르면 최소한의 인간적 삶의 보장은 물론이고


29) 앤드류 클래펌, 앞의 책, 19쪽.
242


생활의 안정과 물질적 풍요라는 경제개발의 이득까지 챙길 수 있지만,
국가가 요구하는 범주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사고나 행동을 할 경
우에는 최소한의 삶의 조건마저 박탈해버리는 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다.30) 이런 상황에서 최소한의 삶의 형태라도 보장받기 위해서는 결국
순응하는 소시민적 삶의 모습을 택할 수밖에 없다.
이상의 논의에서 반공법의 제정을 비롯한 1960년대 반공주의의 목
적이 더 이상 휴전선 이북에 있는 자들의 침략이나 남한 사회 어딘가에
숨어 있을 간첩색출이 아니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박정
희 정권이 국가보안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반공법을 제정한
이유나 이승만 정권 때와는 다른 성격의 반공주의 정책을 실시한 것은,
그것들을 통해 자신들이 계획한 근대 국가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함이
었다. 강력한 근대 국가 건설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순응하는 신체’ 즉
국민의 형성이 가장 시급했는데, 박정희 정권은 이 문제를 ‘인권’이라는
카드를 내세워 해결하고자 했다. “끝까지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포기
하지 않았던”31) 박정희 정권은 어쨌든 물리적 힘과 강제력을 전면에 내
세우기보다 민주주의 사회에 어울리는 ‘인권’보장을 내세웠으나, 그들
이 말하는 ‘인권’에는 생명보장과 같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삶의 권
리 이상의 자유와 권리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 이상의 ‘가
치 있는 삶’을 요구하게 되면 최소한의 삶조차 빼앗는다는 역설적인 공
포기제를 통해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최소한의 삶에 만족하고, 순응하는


30) 김준현 또한 「반공주의의 내면화와 1960년대 풍자소설의 한 경향」에서 이와 같은
맥락을 지적한 바 있다. “자신을 ‘공산주의자’로부터 구분하는 것은 반공주의로 규율
되는 사회의 성원으로서 기본적인 생존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었다.”
(김준현, 앞의 글, 133쪽.)
31) 박정희 정권은 ‘행정적 민주주의’, ‘민족적 민주주의’, ‘한국적 민주주의’ 등 수식어
를 교체해가면서도 끝까지 ‘민주주의’라는 개념만은 포기하지 않았다. 물론 그 내용은
자신의 의도에 따라 새롭게 구성해 나갔지만, 지배적 담론으로서의 민주주의 박정희
체제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이정은, 앞의 글, 70쪽, 참고)
1960년대 인권 보장 기제로서의 반공주의 243


국민으로 길러냈다. 이렇게 양성된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성실하기만
한 소시민들은 한편으로는 6-70년대 경제발전에 한 몫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유신체제라는 전체주의 사회의 형성에도 일조를 한다. 이렇
듯 1960년대 우리 사회에서는 인간다운 삶을 위한 권리로서의 ‘인권’이,
일방적인 국가의 계획과 필요에 의해 반공주의와 연동되어 운용되면서
오히려 가장 배타적이고 문제적인 권리의 형태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처럼 김승옥과 이호철을 비롯한 1960년대 작가들은 근대 국가의
지배이데올로기가 가지는 역설적인 논리와 폭력성을 건강하고 의식있
는 시민이 아닌,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소시민을 전면에 내세워 교묘하
게 비판하였다. 물론 이 또한 당시 반공주의의 무차별적 검열의 시선을
피하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244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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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인권 보장 기제로서의 반공주의 245
■ 국문초록
이 논문에서는 김승옥과 이호철의 소설을 대상으로,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의
반공주의가 ‘인권’이라는 기호와의 결합을 통해 근대 국가를 형성해나가는 모습을
살펴보고자 한다. 김승옥과 이호철 소설에 특히 많이 등장하는 소시민은 반공법의
제정을 통해 한층 더 강화된 반공주의의 공포가 만들어낸 인물들이다. 1950년대와
달리, 1960년대의 반공주의는 사람들을 순종적이고 무비판적인 국민으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근대 국가 건설 과정에서 아주 효과적인 기제로 작용한다. 이 과정에
서 박정희 정권은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사람들을 국가에 순응하
는 국민으로 길러낸다. 전쟁과 이승만 정권의 독재정치로 인한 극도의 경제적 빈
곤 상태에서, 박정희 정권은 사람들에게 가장 절박했던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생
존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정치적 자유와 권리를 박탈한다. 즉, 박정희 정권이 내세
운 '인권'은 경제적 빈곤 상태를 면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만 보장할 뿐, 그 이상
의 적극적 자유의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 모순적 형태였다. 그러나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삶의 조건조차 보장되지 않았던 당시 상황에서 사람들의 선택은 적극적
자유와 권리를 포기하고서라도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는 ‘순응하는 국민’, 즉 소시
민의 삶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양성된 소시민들은 한편으로는 6-70년대 경제발
전에 한 몫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유신체제라는 전체주의 사회의 형성에도
일조를 한다. 이렇듯 1960년대 우리 사회에서는 인간다운 삶을 위한 권리로서의
‘인권’이, 반공주의와 연동되어 운용되면서 오히려 가장 배타적이고 문제적인 권
리의 형태로 자리 잡고 있었다.
주제어 : 반공주의, 인권, 소시민, 근대국가
246
■ Abstract
The "anticommunism" of 1960s as a mechanism
of guaranteeing human rights
Kim, Kyung-min
The theme of this thesis is to study the building process of modern
nation, through the combination anticommunism of Park Chung-hee's
administration(1960s) between human rights as a symbol. "Petit Bourgeois",
frequently appeared in the novels of Kim Seung Ok and Lee Ho Chul, is
the character created by fears of anticommunism which were reinforced
through the enactment of the Anticommunist Law. The Anticommunism of
1960s, differently from 1950s, made the people obedient and uncritical, and
as a result, it promoted the building of modern nation.
Through the process, Park Chung-hee's administration made the people
more biddable and passive, presenting "democracy" and "human rights". For
the moment, the nation was faced with absolute poverty because of the
Korean War and dictatorship of Lee Seung-man's administration, and Park
Chung-hee's administration curtailed a nation of their privileges and
freedom in recompense for guarantee of the minimum survival conditions.
The "human rights", Park Chung-hee's administration claimed to stand for,
was the conflicting idea that guaranteed minimum rights, but didn't permit
the active freedom.
However, the people had no choice and they had to accepted compliant
life as a "petit bourgeois" to survive. The "petit bourgeois" played a
important role to develop nation's economy, but, at the same time, helped
to build the Yushin system, a kind of totalitarian state. Like this, The
human rights of 1960s, against its real meaning, were operated depending
on the anticommunism, and as a result, it appeared as deformed and
1960년대 인권 보장 기제로서의 반공주의 247
exclusive type.
Key Words: anticommunism, human rights, petit bourgeois, modern
n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