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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김억과 김소월의 번역 문체 비교 연구*-원정을 중심으로-/장철환.연세대


[국문초록]
본고는 김억과 김소월의 번역 문체의 비교를 통해, 김억의 타고르 번역시집 園丁에서
김소월의 사라진 역문(譯文)을 찾는 것을 일차적인 목표로 한다. 김억은 1923~24년 사이에
타고르의 주요 저작인 기탄자리(이문관, 1923.4.3), 新月(문우당, 1924.4.20), 園
丁(안동서관, 1924.12.7)의 번역시집을 출간한다. 그런데 園丁의 번역에는 간과할 수
없는 문제가 내재해 있다. 그것은 번역의 주체와 관련된 것으로, 園丁의 일부(한 편)가 소
월에 의해 번역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園丁 85편 가운데 어느 것이 소월에 의
한 번역인지 알 수 없다는 데에 있다. 두 명의 역자와 사라진 역문(譯文). 이것은 번역시집
園丁의 성립가능성을 의심케 하는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園丁의 번역 주체를 확
정할 필요성은 여기에서 나온다.
이를 위해 본고는 김억과 김소월의 번역문체의 비교를 중심으로 소월의 사라진 역문을 추
적하고자 한다. 특히, 양자의 차이를 핵심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를 통해, 안서의 번역문으로
추정되는 시편들을 제외시킬 것이다. 이때 대표적인 지표는 다음과 같다. 첫째, 개벽과 동

명에 발표된 김억의 기존 번역시편. 둘째, 합쇼체 종결어미 ‘-습니다/-읍니다’의 표기. 셋
째, 김억의 특수 종결어미 ‘-ㅂ시요’. 이밖에도 특수 기호, 외래어의 번역, 시행의 길이 등과
같은 지표들을 고려한다. 이들 지표들의 실증적 분석을 통해, 몇몇 시편들을 김소월의 번역문
으로 추정할 것이며, 최종적으로 소월의 사라진 역문일 가능성이 높은 작품을 논증할 것이다.
[주제어] 김억, 김소월, 타고르, 원정, 번역주체, 번역문체, 종결어미, 구어체, 역문


1. 서론
김억이 한국 근대 문학의 형성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시인으로서 한
국 근대시의 발전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이론가 및 평론가
로서 우리 문학의 이론적 토대를 공고히 하는 데에도 상당한 공헌을 했다.
또한 번역가로서 근대 번역문학의 성립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프랑스
상징주의 시의 번역서인 懊惱의 舞蹈가 근대 문학의 성립에 끼친 영향은
잘 알려진 바이다. 이와 함께, 인도 시인 타고르의 작품을 번역한 것도 간
과할 수 없는 중요성을 지닌다. 그는 1923~24년 사이에 타고르의 주요 저
작인 기탄자리(이문관, 1923.4.3), 新月(문우당, 1924.4.20), 園丁(안
동서관, 1924.12.7)의 번역시집을 출간한 바 있다. 시집 발행 연도로 볼 때,
1년 8개월 정도의 짧은 기간 동안에 타고르의 주요시집 세 권이 모두 완역
된 셈이다. 이것이 비록 영역본(英譯本)을 통한 번역이었다 할지라도,1) 근
대 문학의 성립기에 타고르의 주요 저작이 완역되었다는 사실은 한국 번역
문학사에서 의미 있는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이 세 권의 번역 가운데 園丁은 김억이 상당한 애착을 갖고 있었던 것으
로 보인다. 그는 <譯者의한마듸>에서 “이番에도 文體에 對하야 적지안케 괴
롭아하엿읍니다, 만은 기탄자리의 文體에 口語體를 쓴것보다도 훨신 이譯稿
의文體가 나흔줄로 밋습니다”2)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園丁의 번역 문체


1) 기탄자리 서문의 일절(“엇더케 그 英譯文이 곱게도 맛기죠흔芳香을 놋는가는 英語를 조곰 아는
이라도 알것입니다, 만은 무엇보다도, 譯出할 한것은 文体엿읍니다.”)과 新月 서문의 일절
(“하야 타고아自身의손에 된 英譯文에만 依하야 옴겻읍니다.”)은 이를 예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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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기탄자리의 그것보다 훨씬 뛰어난 것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강한 애착과 자신감에도 불구하고 園丁의 번역에는 간과할
수 없는 문제가 내재해 있다. 그것은 널리 회자된 김억의 번역관, 즉 의역(意
譯)이나 중역(重譯)을 둘러싼 문제3)가 아니다. 園丁에는 번역 방법론의 문
제 이전에, 번역의 주체와 관련된 매우 심각한 문제가 내재해 있다. 園丁의
번역자는 김억 한 명이 아니었다.
마즈막으로 이 두번재 譯稿를 씀에 對하야 나의 未來만흔 金素月君의힘을 적지
안케 빌엇읍니다, 하고 詩中한篇은 同君의손에 된것임을 告白하고 깁히 고맙어하
는을 表합니다.4)
「譯者의한마듸」에서 김억은 園丁을 번역하는 데 있어 “金素月君의힘을
적지안케 빌엇”을 뿐만 아니라, 園丁 중 한 편이 소월에 의한 번역임을 분
명히 밝히고 있다.5) 비록 園丁의 전체 시편 85편 가운데 단 “한篇”에 지나
지 않더라도, 園丁의 일부가 소월에 의해 번역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
이 아닐 수 없다. 소월은 안서와 함께 園丁의 공동 번역자였던 셈이다. 그
런데 문제는 園丁 85편 가운데 어느 것이 소월에 의한 번역인지 알 수 없
다는 데에 있다. 두 명의 역자와 사라진 역문(譯文). 이것은 번역시집 園丁
의 성립가능성을 의심케 하는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요컨대, 우리는
園丁의 역자가 두 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역자가 번
역한 “한篇”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됨으로써 결과적으로 제2의 역자를 사라
지는 만드는 결과를 목도하여 온 것이다. 園丁의 번역 주체를 확정할 필요


2) 타고르 작, 김억 역, 園丁(동산직이), 회동서관, 대정 13년 12월 7일(1924.12.7), 1~2쪽.
3) 오영진, 「근대번역시의 중역(重譯)시비에 대한 고찰:김억(金億)의 번역시를 중심으로」, 일어일문
학연구 1권 1호, 1979.
4) 김억, 「譯者의한마듸」, 園丁(동산직이), 회동서관, 1924.12.7, 3~4쪽.
5) 소월의 번역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그러나 소월은 영어와 일어 번역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실은 김억의 증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서
는 다음을 참조할 것. 김억, 「思故友-素月의 豫感」, 국도 신문, 1949.11.15; 박경수 편, 안서김
억전집 5권, 한국문화사, 1987, 719~7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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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 여기에서 나온다.
번역의 주관자로서 공동 번역자의 번역물에 대해 정확하게 표기하지 않은
일차적 책임은 김억에게 있다. 어쩌면 김억은 園丁의 서문에 소월의 번역
참여에 대해 한 마디 언급해 두는 것으로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고 착각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문제는 출판 상의 실수 또는 관례적 오류에 대한 책
임의 문제를 넘어선다. 왜냐하면, 장만영의 증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안서
는 소월의 시에 수많은 가필을 한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6) 이러한 사실
은 김억이 저작물의 권리에 대한 명확한 개념이 없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김억의 번역 시편을 명기하지 않은 것도 이러한 인식의 소산으로 볼 수 있다
면, 이는 번역을 포함한 소월의 시편 전체에 대한 권리 문제의 전반적 책임
이 김억에게 있음을 암시한다.
당시의 급박한 상황은 김억의 이런 무책임한 행동에 대한 알리바이를 제
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譯者의한마듸」에서 그는 “이譯稿를 두번재 쓰게 되
엿읍니다. 出版許可지 엇엇든原稿를 다시 곳처譯出합니다. 엇지하야 前
보다는 좀 나앗으면 하는것이 나의거즛업는希望도되며 아울너 告白도됩니
다, 出版許可를 엇은原稿를 平壤서 잃어바렷읍니다.”7)라고 고백하고 있는데,
이는 園丁의 번역 원고가 두 개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소실된 원고는 찾을
수 없지만, 園丁은 소실된 원고를 바탕으로 새롭게 쓰인 두 번째 판본이라
고 할 수 있다.8) 이것은 소월이 공동 번역자로 참여한 이유와 그의 역문(譯
文)이 사라진 이유를 설명해 주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김억이 園丁의
원고를 분실한 상황 속에서, 시급히 원고를 마련할 필요성이 제기되었을 가
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김억에게 면죄부를 부여하는 것은


6) “岸曙선생은 소월이 보내온 그의 작품에다가 마구 加筆을 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선생 마음에 드
시지 않아서였겠으나, 나로 보면 그저 놀랍기만 한 일이었다.” 장만영, 「소월시를 빛낸 안서 김억
선생」, 신동아, 1971.5, 253쪽.
7) 김억, 「譯者의한마듸」, 園丁(동산직이), 회동서관, 1924.12.7, 1쪽.
8) 김억의 경우 원고의 소실은 여러 차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해파리의 노래의 서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동안의 詩篇을 다 모하노흐면 만흘듯합니다, 만은 詩稿를 다 잃어바리고 말
아서 엇지할수업시 現在著者의 手中에잇는것만을 넛키로 하였읍니다.”(김억, 「머리에한마듸」, 해
파리의 노래, 조선도서, 1923, 4쪽) 이 서문이 쓰인 시기는 “一九二三年二月四日밤”인데, 여기서
말하는 원고의 분실과 위에서 말한 분실이 동일한 사건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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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여기서 관건은 김억의 과오에 대해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번역문의 권리를 원소유자에게 돌려주는 것에 있다. 그리고 그 첫 걸음이 사
라진 역자의 역문부터 찾는 일임은 분명해 보인다.


2. 개벽과 동명 게재 시편
소월의 사라진 역문을 찾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園丁이 출간된 시기(“大
正十三年 十二月七日 發行”9))를 전후해 園丁의 번역과 관련한 안서와 소
월의 직접적 언급을 확인하는 것이다. 즉 안서와 소월의 표명을 통해 園丁
의 어느 시편이 소월에 의해 번역되었는지를 확인해 보는 방법이다. 그런데
한 가지 주의할 것은 園丁의 출판 시기와 서문 「譯者의한마듸」의 탈고 시
기가 다르다는 사실이다. 園丁의 출판일은 1924년 12월 7일이지만, 「譯者
의한마듸」의 탈고일은 “癸亥中伏翌日夜”10), 다시 말해 “一九二三年七月廿七
日 夜 畢稿”11), 곧 1923년 7월 27일이 된다. 서문의 탈고 시기와 園丁의
출판 시기는 무려 1년 5개월이나 차이가 나는 셈이다. 이러한 차이는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新月에서도 발견되지만,12) 양자의 차이는 園丁의 경우가
더욱 현저하다. 즉 園丁의 서문은 新月보다 한 달 먼저 쓰였지만, 책의
출판은 8개월 정도 늦은 셈이다.13)
이러한 차이를 고려할 때, 조사 대상 시기의 기점은 1924년 12월이 아니
라 1923년 7월 이전이 된다. 이 시기 이후, 김억의 타고르 번역과 관련된 언
급은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김억의 글들에는 園丁의 번역


9) 김억, 園丁(동산직이), 회동서관, 1924.12.7, 159쪽.
10) 김억, 「譯者의한마듸」, 園丁(동산직이), 회동서관, 1924.12.7, 4쪽.
11) 김억, 園丁(동산직이), 회동서관, 1924.12.7.
12) 1924년 4월 20일에 출판된 新月의 서문이 쓰인 것은 1923년 9월 12일이므로, 양자의 차이는
대략 7개월 정도인 셈이다.
13) 新月의 서문이 園丁의 그것보다 먼저 쓰였다는 것은 園丁의 서문과 新月의 서문에도 간접
적으로 암시되어 있다. “이다음에는 「新月」을 번譯할 차례입니다. 이제 新月하나만 우리말로 옴겨
노흐면타아의詩集이 完成되겟읍니다.”(園丁 서문), “이 新月로 써 타고아詩集은 全部 朝鮮말
로 옴기여젓읍니다”, “어렵기가 기탄자리, 園丁以上이엇읍니다”(新月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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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와 관련된 직접적 언급은 발견할 수 없다. 이는 김소월 사후 김억의 회
고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더욱 난감한 것은 소월도 이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한 바가 없다는 사실이다.
안서와 소월의 저작에서 사라진 역문에 대한 언급을 발견할 수 없다면, 우
리는 다른 방식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비록 직접적 방법은 아니지만, 사라진
역문을 발견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은 안서와 소월의 번역 문체(文體, style)
의 비교이다. 만약 園丁이 두 명의 역자에 의해 번역되었다면, 양자의 번역
글이 지닌 고유한 특성은 서로 다를 것이 틀림없다. 마치 시인마다 고유한
문체가 있는 것처럼 번역문체에도 고유한 특성이 내재한다면, 우리는 소월의
사라진 역문을 찾을 가능성을 얻게 된다. 이때 전제해야 할 것은 김억이 소
월의 번역본을 개작하지 않았다는 것, 설사 개작하였다 하더라도 소월의 번
역문체의 흔적은 여전히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이다. 이제 이러한 전
제 하에서, 안서와 소월의 번역시편들을 비교 분석하고 양자의 번역문체의
차이를 변별하여, 최종적으로 園丁에서 소월의 사라진 역문을 찾아보자.
그런데 김억의 번역문체를 변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이유는 크
게 두 가지이다. 첫째, 양적인 문제. 안서의 번역시집은 한두 편이 아니다.
1923~4년에 간행된 타고르의 시집은 모두 세 권이다. 이중 기탄자리는 총
103편의 시로 되어 있고, 新月과 園丁은 각각 41편과 85편의 시로 구성
되어 있다. 총 229편 가량의 타고르 번역시편에서 김억 고유의 번역문체를
축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김억은 1921년에 프랑스 상징주의
번역시편인 懊惱의 舞蹈를 간행하였고, 1924년에는 아더 시몬즈의 잃어
진 진주를 번역한 바 있다. 게다가 김억의 번역문체를 확정짓는 데 있어 한
시 번역과의 상관관계의 해명을 간과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양적 측면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김억의 번역문체가 시와 산
문의 문체와 착종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주지하듯, 김억은 번역에 대해 줄곧
‘창작적 의역’의 태도를 견지한 바 있다. 이는 외국시의 번역문체와 창작시의
문체 사이의 상호 침투를 암시한다. 따라서 그의 번역문체의 특성을 분석하
는 데 있어, 창작시편 및 산문에서의 문체의 특성을 고려할 필요를 제기한다.


김억과 김소월의 번역 문체 비교 연구 229


이러한 문제를 감안했을 때, 園丁에서 사라진 역문을 찾는 일은 보다 세심
한 주의가 요구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안서와 소월의 번역시편을 변별할 수
있는 번역문체의 핵심 지표를 선정하는 일이다.
번역문체의 핵심 지표 가운데,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園丁 이전의
판본과의 비교이다. 김억은 園丁을 출간하기 이전에 개벽과 동명에
園丁 번역시편의 일부를 게재한다. 따라서 이들 작품들과 園丁의 비교는
중요하다. 그 중 첫 번째 이정표는 1922년 7월에 발간된 개벽 25호이다.
1924년 12월 園丁 완역본이 나오기 전, 김억은 「失題」란 제목으로 총 9편
의 園丁 시편들을 번역한다.14) 여기에 해당하는 작품은 園丁의 순서대
로 29, 30, 31, 34, 57, 52, 27, 24, 23번째 시편이다. 여기에 수록된 시편들
은 시기적으로 보았을 때 평양에서 잃어버렸던 원고의 일부로 추정된다. 따
라서 1922년 7월 개벽 25호에 실린 9편의 번역 시편들은 김억이 번역한
구고(舊稿)일 가능성이 높다. 잃어버린 원고를 대체할 새로운 원고를 쓸 때,
예전에 번역한 것을 토대로 다시 쓰는 것이 훨씬 수월한 일이다. 또한 기존
의 번역 원고가 이미 출간된 잡지에 수록되어 있는데,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쓰게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납득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개벽 25호에 실
린 9편의 작품은 김소월의 역문(譯文)에서 제외해도 무방하다.
두 번째 이정표는 1923년 4월 8일에 발간된 동명 2권 15호가 제공한다.
안서는 동명 2권 15호 16쪽에 「얀이 질」라는 제목으로 세 편의 園
丁 시편들을 번역 게재한 다. 園丁을 기준으로 28, 26, 20번째 시편에 해
당한다. 이들 작품들 역시 김억의 구고(舊稿)의 일부로 보는 것이 타당하
다.15) 따라서 동명 2권 15호에 실린 번역시편들은 소월의 사라진 역문에
서 제외할 수 있다. 결국 園丁의 출간 이전에 개벽과 동명에 발표한


14) 김억, 「失題」, 개벽 25호, 1922.7, <부록>, 40~45쪽. 참고로 園丁의 최초 번역은 순성(瞬星)의
「印度의世界的大詩人-라빈드라나드, 타쿠르」의 글 속에 삽입된 <「園丁」의一節>이다. 1917년 11
월 청춘 11호에 실린 이 글에는 園丁의 24번째 작품이 번역되어 있다.
15) 동명 2권 15호는 1923년 4월에 발간되었고, 園丁 서문은 1923년 7월 27일에 쓰였다. 시기적
으로 별 차이기 없기 때문에, 전자가 구고(舊稿)의 일부가 아닐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전자와
후자에는 간과할 수 없는 번역문체의 차이가 내재한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할 때, 전자를 구고의
일부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230 한국학연구 제45집


총 12편의 작품(#20, 23, 24, 26, 27, 28, 29, 30, 31, 34, 52, 57)은 소월의
사라진 역문에서 제외할 수 있다.
이로써 우리는 소월의 사라진 번역문에 한 발 더 근접한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작품들 이외에, 김억이 잡지에 발표한 園丁 번역 시편들이 없
다는 것이다. 청년 3권 7호(1923. 7)에는 기탄자리 세 편의 번역이,16)
조선문단 2호(1924. 11. 1)에는 8편의 기탄자리 시편들이 번역되었을
뿐이다.17) 다만 조선문단 2호에는 園丁에 대한 언급(“뒤에 틈을 엇게되
면 紹介하랴고 합니다”)18)이 있지만, 이후의 조선문단에서 그 구체적인 내
용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園丁 출간 이전에 발간된 다른 잡지에서 園丁 번역시편들을 12편밖
에 발견할 수 없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위의 12편의 작품이 지닌 의의는
적지 않다. 개벽 25호에 실린 9편의 작품과 동명 2권 15호에 실린 3편
의 작품은 김억의 번역문체의 특징을 분석하는 기초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12편의 시편에서 축출된 안서의 번역문체의 특징은 나머지 73편의
작품과 비교 분석의 시금석이 됨으로써, 園丁의 번역문체의 특질을 확정
하는 가능성을 얻게 된다. 여기서 전자는 대조군을, 후자는 실험군을 이룸으
로써 양자의 유사성과 이질성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개벽 25
호 및 동명 2권 15호에 실린 번역시편과 園丁에 실린 변역시편의 차이
는 무엇인가?


16) 타아 저, 김억 역, 「新詩(愛誦하는詩멧篇)」, 청춘 3권 7호, 1923.7, 108쪽. 여기에 실린 세 편의
제목은 「主님이玉座에서」, 「그대는그의고요한」, 「그가오시여」이다. 이는 기탄자리의 49, 45, 26
번째 시편에 해당한다.
17) 김억, 「타고아의 詩」, 조선문단 2호, 1924.11.1, 58쪽. 1922년에 기탄자리 번역시집이 출간되
었음을 고려할 때, 여기에서 소개된 시편들은 기존의 원고의 재수록본으로 볼 수 있다. 양자 사이에
는 조사와 띄어쓰기 등의 사소한 변화만이 눈에 띌 뿐 별다른 차이가 없다.
18) 김억, 「타고아의 詩」, 조선문단 2호, 1924.11.1, 58쪽. 여기에서 김억은 園丁에 대한 작품 소개
를 약속하지만, 실제 園丁 시편들을 번역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조선문단 2호에 기탄자리
7편과 園丁의 작품 1편이 번역되어 있다는 주장은 재고될 필요가 있다. 장정희, 「1920년대 타고
르 시의 수용과 소파 방정환」, 인문연구 63호, 영남대, 2011.12, 8쪽 <표> 참조.
김억과 김소월의 번역 문체 비교 연구 231


(가)
저 거츤들의小鳥인 나의마음은 너의눈속에서 한울 차잣다.
너의눈은 아츰의搖籃이다, 그러고 너의눈은 별의王國이다.
나의노래는 너의深淵에 젓다.
나로하여금, 저寂寞하고 無限한, 넓은한울을 날아단니게 하여다구.
나로 하여금, 넓은한울의 구름을 헤치며 넓은한울의日光속에 나래를 페치게 하
여다구.
-개벽 25호, 1922. 7. 10, <부록> 41쪽.
(나)
것츤들의 小鳥인 내맘은 그대의눈속에 自己의하늘을 찻앗읍니다.
그눈들은 아츰의 잠자리이며, 星辰의王國입니다.
내노래는 그自身의深底에 잃어젓읍니다.
나를 그하늘과, 그孤寂하고 업는 하늘로 나래치며 날게하여줍시요.
나로햐야금 그하늘의 구름을 헤치고 그日光속에서 나래를 페게만 하여줍시요.
-園丁 #31, 64쪽.
(가)에서 (나)로의 변화는 무엇인가? 다양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가장 두
드러진 것은 종결어미의 차이이다. 종결어미는 구어체의 특징을 변별하는 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김억은 園丁에서 “宗敎
的, 는神秘的 깁흔色彩”19)에 주목하는데, 이는 園丁이 헌시(獻詩)라는
사실과 함께 구어체 번역의 핵심 지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즉 (가)의 “너”가 (나)의 “그대”로 바뀐 것에서 보듯, 경어체로의 번역문체의
통일이 그것이다. 경어체는 園丁의 전체 분위기를 고려할 때 적절한 선택
이라고 할 수 있다.
(가)에서 (나)로의 경어체의 변화에서 특별히 주목할 것은 두 가지이다. 하


19) 김억, 「譯者의한마듸」, 園丁(동산직이), 회동서관, 1924.12.7, 2쪽.
232 한국학연구 제45집


나는 평서형 종결어미가 ‘합쇼체’로 변했다는 것이고(차잣다→찻앗읍니다,
별의王國이다→星辰의王國입니다, 젓다→잃어젓읍니다), 다른 하나는 명
령형 종결어미가 ‘합쇼체’로 변했다는 것이다(날아단니게 하여다구→날게하
여줍시요, 페치게 하여다구→페게만 하여줍시요). 그런데 후자는 ‘합쇼체’와
‘해요체’가 결합하였다는 점에서 매우 특이한 양상을 띤다. 즉 ‘-시오’와 ‘-
요’가 결합해 ‘시요’라는 특이한 형태를 취한다는 점, ‘주십-’이 축약되어
‘줍-’의 형태를 취한다는 점에서 ‘주십쇼’ 혹은 ‘줍쇼’와 다른 특수한 형태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특이한 형태는 김억식 번역문체의 핵심 지점 가운데 하
나이다.20) 이러한 형태의 종결어미의 사용은 “語感과語響”21)을 중요하게 생
각하는 김억의 인식에서 비롯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3. 합쇼체 종결어미 ‘-읍/습니다’의 양상과 차이
가장 먼저 분석할 것은 ‘합쇼체’ 평서형 종결어미의 표기상의 변화이다.
개벽 25호와 園丁에 실린 작품을 대조해 보면, ‘합쇼체’ 평서형 종결어
미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가)
내게 말슴해주서요. 愛人이어, 그대가 노래하시는것을 言語로 말슴해주서요.
밤은 어둡습니다. 별은 구름속에 숨엇습니다, 그러고 바람은 프른닙속에서 歎息
하고잇습니다.
나는 머리털을 풀어헤치겟습니다. 나의 엿누른 웃옷이 밤가티 나를 둘너싸겟지
요. 나는 그대의머리를 나의 가슴에 힘 안아두겟습니다. 그럼, 그 달금한寂寞속
에서 그대는 그대의맘을 소삭여주서요.
20) 이에 대해서는 다음의 분석을 참조할 것. 장철환, 「김억의 번역문체 비교 연구-타고르 번역시집을
중심으로」, 비교한국학 25권 1호, 2017.4.
21) 김억, 「유행가사관견 2」(매일신보, 1933.10.17), 박경수 편, 앞의 책, 581쪽. “言語에서意味만을取
하고 그語感과語響을돌아보지아니하는것은 根本을일허버리고 枝葉을 는것이나 마찬가지외다.”
김억과 김소월의 번역 문체 비교 연구 233
나는 눈을감고 듯겟습니다, 하고 나는 그대의 얼굴을 치여다보지 안겟습니다.
그대의말이 다 난뒤에는 우리들은 아모말도업시 오래동안 안저잇습시다. 다
만 나무들이 어둡은가운데 소군거리겟지요.
밤이 훤하여 오겠지요, 날이 밝아오겠지요. 우리들은 서로 눈과눈을 바라보고
서로 方向다른 적은 길을 것겟지요.
내게 말슴해주서요. 愛人이어, 그대가 노래하시는것을 言語로 말슴해주서요.
-개벽 25호, 1922. 7. 10, <부록> 40쪽.
(나)
내愛人이어, 말슴해주셔요! 엇더케 노래햇는지, 말로 가르처주셔요.
밤은 어둡습니다. 별들은 구름속에 잃어젓읍니다.
바람은 나무닙사귀사이에서 탄식합니다.
나는 나의머리털을 흔들어 두겟읍니다. 나의 프른웃옷은 밤처럼 나를 둘려싸겟
지요. 나는 그대의머리를 내가슴에 힘 안겟읍니다, 그러고 달금한 孤寂안에서
그대의맘을 소군거려줍시요. 나는 눈을 감고 맘해듯겟읍니다. 나는 그대의 얼골을
보지안겟읍니다. 그대의말이 다 나면, 우리는 고요히 안자서잠잠하겟읍니다. 나
무들만이 어둡음속에서 소군거리겟지요.
밤이 희여지겟지요. 날이 밝아오겟읍니다. 우리는 서로 눈을 바라보며, 제各기
다른길을 것겟읍니다.
내愛人이어, 말슴해주서요! 엇더케 그대가 노래햇는지, 말로 가르처 주셔요.
-園丁 #29
(가)와 (나)의 종결어미는 대동소이하다. 그러나 격식체 평서형 종결어미
의 표기 방식은 다르다. (가)에서 ‘-습니다’의 형태로 종결되었던 문장들이
(나)에서는 ‘-읍니다’의 형태로 변화한 것이다. 예컨대, “힘 안아두겟습니
다→힘 안겟읍니다”, “눈을감고 듯겟습니다→눈을 감고 맘해듯겟읍니다”,
“치여다보지 안겟습니다→보지안겟읍니다”로 바뀌었다. 이는 동일한 합쇼체
문장뿐만 아니라, 해요체 문장이 합쇼체 문장으로 바뀌는 과정에서도 동일하
개벽 25호 園丁
29
힘 안아두겟습니다 힘 안겟읍니다
눈을감고 듯겟습니다 눈을 감고 맘해듯겟읍니다
치여다보지 안겟습니다 보지안겟읍니다
30 해당 용례 없음 해당 용례 없음
31 해당 용례 없음 해당 용례 없음
34
직히고 잇섯습니다 그대를 직혓읍니다
손을떼서 그대에게 쓸치우랴고합니다 그대를 어루만지랴고 내손을 내밀엇읍니다
나의가슴에 힘 안아볼수가 잇스면합니다 내가슴에 그것들을  붓잡아맬수나 잇으면!
57
나는 그것을 가슴에 안앗습니다 나는 그을 내맘에  안앗읍니다
알앗습니다, 만은 나의苦痛은 남아잇습니다 苦痛만은 남앗음을 알앗읍니다
차저오겟습니다 네게로 오겟읍니다!
苦痛만이남아잇습니다 苦痛만이 내게 남앗읍니다
52
燈이 젓는가 燈이 젓읍닛가?
그것을 덥허서~젓다 그것을 가리웟읍니다, ~젓읍니다
그것을 나의愛情속에 너허서 이 말낫다 내맘에  여안앗읍니다, ~시들엇읍니다
언덕을 지어서 흘음이 말낫다 동(堤)을 싸핫읍니다, ~말낫읍니다
어찌하야 harp(거문고)의줄이 기였는가 엇지햐야 거문고줄이 어젓읍닛가?
音調를 억지로 내랴고 하야서 거문고의줄이
기엿다
音調를 내랴고 하엿습니다, ~기엇읍니다
27 나는 理解할수가 업습니다 변동사항 없음
24 싸엿습니다 변동사항 없음
23 모헛습니다, 웃습니다 변동사항 없음
234 한국학연구 제45집
게 발견된다. 예컨대, “날이 밝아오겠지요→날이 밝아오겟읍니다”와 “서로
方向다른 적은 길을 것겟지요→제各기 다른길을 것겟읍니다”로 변한 것이다.
요컨대, 1922년 개벽 25호에는 ‘-습니다’의 형태로 통일되었던 합쇼체 평
서형 종결어미가, 園丁에 이르면 ‘-읍니다’로 점점 바뀌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보다 엄밀히 말하면, 개벽 25호에 단일한 형태를 유지하던 합쇼체
종결어미의 표기가 園丁에서는 ‘-습니다’와 ‘-읍니다’가 혼용되어 사용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 양상은 안서와 소월의 번역문체를 변별하려
는 현재의 작업에 매우 강력한 도구를 제공한다.
우리가 ‘-읍니다’의 출현에 주목하는 것은, 그것이 1922년 7월에 발간된
개벽 25호와 1924년 12월에 발간된 園丁과의 차이를 직접적으로 보여
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개벽 25호에 실린 9편의 번역시에는 오직 ‘-습니
다’의 형태만 나타나고 있는데, 동일한 시편이 園丁에 오면 ‘-읍니다’로
바뀌고 있다. 그 구체적 양상들은 다음과 같다.
동명 2권 15호 園丁
28
그대로 내여노핫습니다 에서 까지 내여노핫읍니다
줄에 여매겟습니다 그대의목에 걸어나들이겟읍니다
그대의 머리에 자들이겟습니다 그대의 머리에 자나 들이겟읍니다
어대 그 海岸이 잇스며, 어대 그 根底가잇겟습
니?
어데 그 海岸과深底가 잇읍닛가?
그대가 그것을 볼수도잇스며, 瞬時에 그것을
읽을수가잇겟습니다
그대가 한瞬間에 보기도하고 읽을수도 잇겟읍
니다
反射하여 들이겟습니다 反射식힐수도 잇읍니다
26
나는 그것을 내맘에 차겟습니다 나는 그것은 내맘에 매여 두겟읍니다
나는 그것이 내가슴을 르도록안겟습니다 나는 그것으로 내가슴을 으겟읍니다
20 우에 안즈셧습니다 우에 안즈섯읍니다
김억과 김소월의 번역 문체 비교 연구 235
위의 표에서 보듯, 개벽 25호에 있는 ‘-습니다’는 園丁에서는 별다
른 변화 없이 ‘-습니다’의 형태를 유지하는 경우(#27, 24, 23)와 ‘-읍니다’
의 형태로 변화하는 경우(#29, 34, 57, 52)로 나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개벽 25호에는 ‘-읍니다’의 형태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요컨대, ‘-습니다’가 ‘-읍니다’로 변하는 경우는 성립하지만 그 역은 성립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동명 2권 15호에 실린 세 편의 園
丁 번역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개벽 25호와 동명 2권 15호에 합쇼체 종결어미 ‘-습니다’의 형태가
園丁에서 ‘-읍니다’의 형태로 바뀌었다는 사실은 김억의 번역문체의 주요
한 특징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한글맞춤법이 제정
되기 이전의 표기법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징표이지만, 김억에게는 번역문체
의 변화를 보여주는 징표로 간주될 수 있다.
또한 園丁에 등하는 ‘-읍니다’의 형태는 김억과 김소월의 번역문체를
변별하는 작업에서도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되는데, 김소월은 같은 시기에 ‘-
읍니다’의 형태를 사용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1925년 12월 매문사에
서 출간된 진달내을 보면, ‘-읍니다’의 형태는 단 한 곳에서도 발견되
지 않는다. 진달내의 단 한 곳에서도 ‘-읍니다’는 발견되지 않고 ‘-습
236 한국학연구 제45집
니다’의 형태만 발견된다는 것은 매우 인상적인 일이다.22) 이것은 진달내
의 표기의 철저성을 보여준다. 구두점 하나에도 심혈을 기울였던 소월의
성격을 고려했을 때,23) 소월은 시의 표기법에 있어서도 자기 나름대로의 기
준과 원칙을 준수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읍니다’와 ‘-습니다’를 혼용하지 않고, 오직 ‘-습니다’로만 표기하는
철저성은 「詩魂」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죽음에갓갑은山마루에섯서야비로소
사름의아름답은내한옷이生命의봄두던에나붓기는것을볼수도잇습니다. 그
럿습니다.”24)에서 보듯, 「詩魂」에서도 ‘-습니다’의 형태만이 나타난다. 특
히 “잇습니다”는 「詩魂」에서 가장 많은 빈도수를 차지하는 형태로, “잇스나,
잇겟습니, 잇겟습닛가, 잇슬것, 잇슬지라도, 잇서도” 등의 변형만이 발견될
뿐이다. 이밖에 “업습니다”와 “그럿습니다”의 형태도 고려한다면, 「詩魂」에
서 단 한곳도 ‘-읍니다’의 용례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김억의 園丁
번역문체와는 분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대조는 소월이 번역한 모
파상의 「도라가는게집」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한데 어느날인가그리햇섯지요 제가부억을서르짓고잇노라니되지못게그兩班
이드러오서서저를힘가진지안아붓들고서는무리스럽게도 行實을부릴냐고하시
겟지요 저는굿건히그것을막아거스렷습니다요. 그래고는그대로슬금나아가바리고
마라섯습니다.25)
소월은 1923년 3월에 배재에 모파상 원작의 「도라가는게집」을 번역
22) ‘-습니다’의 용례는 다음과 같다. “잇섯습니다.”(「자나나 안즈나서나」), “잇습니다.”(「해가山마
루에저므러도」), “잇스랴”(「」), “식키셔요”(「失題」), “잇섯서”(「어버이」), “냄새만흔 그몸이 죳습
니다”(「女子의냄새」), “잇스랴”(「안해몸」), “왓습니다, 흘넛습니다”(「무심」), “죽엇습니다, 되였습니
다”(「접동새」) 등.
23) “五年前에내가「靈臺」를編輯할에素月은(그는毛筆로서原稿를썻다) 原稿와別便으로나에게편지
를하엿다 그편지에는「句切點들을注意하여原稿와 틀림이업도록注意하여달라」는말이잇섯다”. 김동
인, 「내가본시인 김소월군을논함」, 조선일보, 1929.12.12.
24) 김소월, 「詩魂」, 개벽 59호, 1925.5, <문예편>, 11~12쪽.
25) 김소월, 「도라가는게집」(배재 2호, 1923.3), 김종옥 편, 원본 소월 전집(하), 홍성사, 1982,
978쪽.
김억과 김소월의 번역 문체 비교 연구 237
하여 게재한다. 이 글은 시나 소설이 아니라 역문(譯文)이기에, 소월의 번역
문체가 그대로 노정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햇섯지요, 막아거스렷습니
다요, 마라섯습니다”에서 보는 것처럼, 위의 번역문에서는 ‘-습니다’의 형태
로 통일되어 있다. 적지 않은 분량에서 ‘-읍니다’의 용례는 단 한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철저성은 김억이 園丁에서 ‘-읍니다/습니
다’를 혼용하여 쓴 것과 분명한 대조를 이룬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할 때 ‘-읍니다’ 형태의 표기는 소월과 변별되는 안서
의 독특한 번역문체라고 가정할 수 있다. 즉 ‘-읍니다’는 김억과 김소월의
번역문체를 분별하는 매우 강력한 지표인 것이다. 특히 園丁의 출간을 전
후한 시기에 소월이 ‘-읍니다’의 형태 표기를 사용한 적이 없다는 것은 최소
한 ‘-읍니다’를 소월의 번역문체에서 제외시킬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
면 우리는 園丁에서 ‘-읍니다’가 나타나는 55편을 소월의 번역에서 제외
시킬 수 있다.26) 이로써 지금까지 우리는 園丁 85편 가운데 총 57편을 제
외시킨 셈이 된다.27) 역으로 이는 園丁 전체에서 57편을 뺀 나머지 작품
이 소월의 사라진 번역문일 가능성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28편
과 마주해 있는 셈이다.
4. 김억식 종결어미 ‘-ㅂ시요’의 양상과 차이
두 번째로 고려할 것은 ‘-ㅂ시요’와 같은 특이한 종결 어미의 사용이다.
園丁 전체에서 ‘-ㅂ시요’ 형의 문체는 매우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
26) 55편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6, 19, 20, 21, 22,
26, 28, 29, 30, 31, 33, 34, 36, 38, 39, 40, 42, 44, 46, 47, 49, 50, 51, 52, 53, 54, 55, 56, 57,
58, 60, 62, 63, 64, 65, 73, 75, 77, 78, 79, 83.
27) 개벽과 동명에 번역된 작품은 총 12편이고, 園丁에서 ‘-읍니다’가 나타나는 시편은 총 55편
이다. 양자에서 10편이 중복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57편이 제외된 셈이다. 중복되는 작품 목록
은 다음과 같다. #20, 24, 26, 28, 29, 30, 31, 34, 52, 57.
238 한국학연구 제45집
내동산으로 옵시요, 을 습시다.(4)
新婦여, 일을 그대로 둡시요.(10)
차린 그대로 오셔요. 化粧에 時間을 보내지맙시요.(11)
그대의프른웃옷을 江언덕에 노아둡시요.(12)
내벗이여, 가서 그이에게 내머리에 즌을 들여줍시요.(20)
내게 말슴해줍시요, 내게만 남모르게 말슴해 줍시요.(24)
엇지하야 그대의눈속에 狂症이 잇는지, 眞情으로 말슴해줍시요.(25)
비록 그문에 悲哀가 생기러하도 사랑을 밋읍시요.(27)
나를 그하늘과, 그 孤寂하고 업는 하늘로 나래치며 날게하여줍시요.(31)
내차레이니, 내게로 돌녀보냅시요,(37)
이눈에게, 어둡게도計劃하는禍단이 누구의잘못이냐고, 물어봅시요.(39)
그러나 한동안 幻想을 잡아둡시요(40)
그들도 幸福되게하고 繁榮케합시요(42)
尊師이어, 이두罪人을 容恕하여줍시요(44)
微笑와함 容易와單純과 隣近을 그대의가슴에 안아 줍시요,(45)
窓을 열고, 아츰볏을 너허줍시요(48)
내世界에서 나를 앗아 갑시요(50)
밤이 밝아올에는 이밤을 닛저줍시요(51)
삼습시다, 오々 아름답은結末이어, 한동안 움직말고 서습시요(61)
灯불로 하여금 孤寂한집에서 타게합시요(65)
念慮맙시요, 내게 아직도 돈이 若干남앗습니다.(71)
(괄호 안의 숫자는 작품 번호-인용자)
총 21편에 해당하는 시에서 ‘-ㅂ시요’와 같은 종결어미가 발견되고 있
다.28) 이러한 수치는 園丁 전체 85편 가운데 약 1/4에 해당하는 것으로,
상당히 많은 양의 시편에서 ‘-ㅂ시요’와 같은 특이 문체를 사용하고 있음을
28) ‘-ㅂ시요’는 아니지만 그와 유사한 ‘-ㅂ시오’의 용례가 발견되는 시편은 다음과 같다. “나의愛人
이어, 그대의눈을 시오”(#36), “모하봅시오”(#85).
김억과 김소월의 번역 문체 비교 연구 239
알 수 있다. 쓰임새도 다양한데, “합시요, 맙시요, 줍시요, 둡시요” 이외에
“시요, 밋읍시요, 돌녀보냅시요, 물어봅시요, 잡아둡시요, 서습시요” 등의
용례가 발견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형태의 종결어미는 園丁 출간 이
전에 출간된 다른 번역시집에도 발견된다는 점이다. 특히 1924년 4월에 출
간된 新月에서도 다양한 용례가 발견되고 있다. 이것은 新月과 園丁
이 ‘합시요’의 형태에 관해서는 서로 유사한 번역문체를 공유하고 있음을 암
시한다.29)
여기서 우리는 김억과 김소월의 관계에 대해 고려할 필요가 있다. 김억과
김소월은 사적으로나 문학적으로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것은 김억의 문체가 소월에게도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을
암시한다.30) 따라서 우리는 김소월에게도 이런 번역문체가 발견되는지를 확
인할 필요가 있다. 만약, 소월에게는 이러한 형태의 종결어미가 발견되지 않
는다면, 이는 안서와 소월의 번역문체의 차이를 보여주는 핵심 지표로 간주
될 수 있을 것이다.
김소월의 경우, 구어체의 산문이 많지 않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현존하는
산문 자료에는 “합시요, 맙시요, 줍시요, 둡시요” 같은 문체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고만두고 맙시다.”(「고만두 풀노래를 가져 月灘에게 드립니다」)와
같은 형태에서 보듯, 일반적인 합쇼체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詩魂
의 경우, 김억이라면 당연히 사용했을 “봅시요”를 쓰지 않고, 오로지 “보십시
29) 더욱 흥미로운 건 기탄자리에는 이러한 형태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기탄자리
의 번역문체와 新月 및 園丁의 번역문체의 차이를 암시한다. 각각의 시집의 서문이 쓰인 시기
를 고려한다면, 이러한 변화는 1922년 10월과 1923년 7월 사이에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
다. 참고로 기탄자리의 출간일은 1923년 4월 3일이지만, 서문은 1922년 10월 23일에 작성되었
다. 園丁의 출간일은 1924년 12월 7일이지만, 서문 및 본문의 탈고일은 1923년 7월 27일이다.
新月의 출간일은 1924년 4월 20일이지만, 서문은 1923년 9월 12일에 쓰였다. 보다 엄밀하게 말
한다면 1923년 4월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할 것. 장철환, 「김억
의 번역문체 비교 연구-타고르 번역시집을 중심으로」, 비교한국학 25권 1호, 2017.4.
30) 당시에 김억은 근대적이고 서양적인 작시법의 성립에 있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따라
서 소월에 대한 김억의 영향력을 가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사실은 김동인의 진술에서 확인
할 수 있다. “素月은 본시 岸曙(金億)의 제자였다. 岸曙의 문하에서 詩道를 닦을 적에는 그 시풍은
물론이요, 원고용지의 모양 형식까지도 스승 岸曙를 본따므로 우리는 그의 장래성을 아주 무시하였
는데”, 김동인, 「문단삼십년사」, 김동인, 김동인 전집 8권, 홍자출판사, 1964, 416쪽.
240 한국학연구 제45집
오”로 표기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ㅂ시요’와 같은 특이한 종결어
미를 김억의 번역문체로 확정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러한 형태의 종결어미
가 발견되는 시편들은 소월의 사라진 역문이 아닐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그 결과 園丁 85편에서 ‘-ㅂ시요’의 형태가 나타나는 작품 21편을 추가
로 제외시킬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앞에서 제외한 57편의 목록과 중복되는
시편을 제외한다면, 실제적으로는 7편의 작품(#24, 25, 37, 45, 48, 61, 71)만
을 제외할 수 있다. 결국 김억의 번역시편으로 추정되는 작품 수는 총 64편이
고, 역으로 김소월의 번역시편으로 추정되는 작품은 모두 21편이다.31)
5. 번역상의 곤궁과 “한篇”인 이유
이제 우리는 위의 21편에서 소월의 번역일 가능성이 높은 작품을 추정해
야 한다. 이때 우리가 고려해야 할 제3의 요인은 소월이 번역한 작품이 단
“한篇”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구고(舊稿)의 분실 때문에 단시간에 새로운
원고를 써야 했다면, 소월에게 상당량의 원고를 맡기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
득할 만하다. 그러나 안서는 단 “한篇”의 번역만을 소월에게 맡겼다. 園丁
85편 가운데 단 한 편만을 소월에게 맡긴 이유는 무엇인가?
구고의 분실로 인해 당시의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면,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추정이 가능하다. 안서가 園
丁을 번역하는 중에 특정 작품에서 해석의 곤궁에 직면했고, 이에 대한 도
움을 소월에게 요청했을 가능성이 그것이다. 이는 소월이 번역한 “한篇”이
내용 및 양적으로 번역하기에 쉽지 않았으리라고 추측을 가능케 한다. 먼저,
내용적 측면에서 번역상의 곤궁을 야기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것은 고유명사
의 번역이다. 예컨대,
31) #15, 17, 18, 32, 35, 41, 43, 59, 66, 67, 68, 69, 70, 72, 74, 76, 80, 81, 82, 84, 85.(이중 18,
32, 59는 ‘-습니다/읍니다’의 형태를 확인할 수 없는 시편들이다.)
김억과 김소월의 번역 문체 비교 연구 241
黃色의小鳥가 나무사이에서 노래합니다, 나의말은 깃븜에 춤을 춥니다.
우리들은 갓튼村에 삽니다, 그것이 우리들의 깃븜의하나입니다.
적은羊의夫婦가 우리들의 동산나무아래로 풀을 먹으려옵니다.
만일 그들이 우리의보리밧으로 헤매여 들어가면, 나는 그들을 내팔에 여안습
니다.
우리들의村이름은 칸자나(Khanjana)입니다, 하고 우리들의 江을 안자나(Anjana)
라고 이릅니다.
내이름은 모든村이 다 압니다. 그러고 그 女子의이름은 란자나(Ranjana)라고
합니다.
우리사이에는 밧한되기가 잇을입니다.
우리들의숩에 깃을 둔 벌들은 을 엇드랴고 저마다 저곳으로 갑니다.
들은 부두에서 물에 러저, 우리가 沐浴하는江가로 옵니다.
말나벼린 쿠슴(Kusm)광즈리가 들에서 우리의市場으로 옵니다.
우리들의村이름은 칸자나입니다, 하고 우리들의 江을 안자나라고 이릅니다.
내이름은 모든村이 다 압니다. 그러고 그 女子의이름은 란자나라고 합니다.
그이들의집으로 가는 불~한小路는 망고(Mango)이 갓득 피여 봄철에 芳香
을 놋습니다.
그이들의 아주리가 닉어 秋收케되면, 삼은 우리밧에서 을 피웁니다.
그이들의農家우에서 微笑하는 별들은 갓튼 반듯반듯하는 얼골을 우리에게 보냅
니다.
그이들의 물桶을 넘어흘으는 비는 우리들의 카담(Kadam)나무을 깃브게 합니다.
우리들의村이름은 칸자나입니다, 하고 우리들의 江을 안자나라고 이릅니다.
내이름은 모든村이 다 압니다. 그러고 그 女子의이름은 란자나라고 합니다.
-園丁 #17
총 3연으로 된 위의 시가 관심의 대상이 되는 1차적 이유는 고유 명사의
242 한국학연구 제45집
번역 때문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고유 명사라면 번역의 과정에서 문제를
야기할 소지가 없다. 그러나 거의 알려진 적인 없는 인명이나 지명, 혹은 사물의
이름이라면 그것은 번역상의 곤궁을 야기할 소지가 크다. 그런데, 위의 시에는
총 6개의 고유 명사(Khanjana, Anjana, Ranjana, Kusm, Mango, Kadam)가
존재한다. 園丁 전체에서 이렇게 많은 고유명사가 원어 그대로 등장하는
시는 위의 시 단 한 편 뿐이다. 여기서 문제는 안서가 이러한 고유명사에 대한
사전 지식을 지니고 있었는가의 문제이다.
그가 인도어 문화권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고유명사를 번역할 만한 충분한 정보는 제공받았다는 것은 비교적
분명해 보인다. 실제로 園丁에는 많은 고유명사가 등장하는데,32) 적지 않은
고유명사들을 비교적 정확하게 번역하고 있다. 이는 안서가 당시 인도의 고유
명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타고르가 직접
쓴 영역본이 이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하고 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33)
예컨대, 위의 시에서 “쿠슴(Kusm)”이 꽃이라는 사실은 영역본의 “Baskets of
dried kusm flowers”34)에서 명시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는 “Khanjana,
Anjana, Ranjana”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본문에 각각의 고유명사가 마을
이름, 강 이름, 사람의 이름이라는 것을 친절하게 밝혀주고 있다.35) 이는 타고
르가 뱅골어로 쓴 원시를 직접 영어로 번역하면서 영어권 독자들에 대해 고려
하였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고유명사의 존재만으로는 안서의 역문인지 소월의 역문인지 판별할
수 없다. 안서가 타고르의 시집 기탄자리와 新月을 번역하면서 인도의
지명과 인명 및 고유명사에 익숙해졌을 것이란 추정을 한다면 더욱 그러하
32) #1의 “사타파르나(Sataparna), 싸론(Saffron), 아쇼카(ashoka)봉오리”, #9의 “발목가락지
(anklet), #13의 “얀(Banyan)나무, 망고(Mamgo)나무, 쉬(Shiva)寺院”, #14의 “코엘(Koel), 망
고(Mamgo)”, #16의 “헨나(Henna), 싸론(Saffron), 자스민(Jasmine)”, #43의 “싸론(Saffron)”,
#64의 “아쇄(ashath)나무”, #67의 “쟈스민(Jasmine)”, #83의 “데오다르(Deodar)”가 그것이다.
33) “하야 타고아自身의손에 된 英譯文에만 依하야 옴겻읍니다” 김억, 「머리에 한마듸」, 新月, 3쪽.
34) Rabindranath Tagore, The Gardener, 1915.
35) “The name of our village is Khanjan, and Anjan they call our river./ My name is known to
all the village, and her name is Ranjan.”
김억과 김소월의 번역 문체 비교 연구 243
다.36) 물론 타고르 시집에서 고유명사를 번역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기탄자리와 新月에서의 몇몇 용례들은 이를 보여준다. 그러나 안서가 이
러한 이유 때문에 園丁의 단 “한篇”의 번역을 소월에게 맡겼다고 할 수는
없다. 고유명사의 번역은 김억이 園丁을 번역하면서 마주친 곤궁임에는 틀림
없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번역을 맡긴 결정적인 원인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위의 시에서 안서의 번역으로 볼 수 있는 단서가 존재한다. 하나는
특정기호와 관련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사의 용례와 관련된 것이다. 전자
는 3연의 “불~”이 예시한다. 園丁에서 “불~”처럼 물결표를 사용하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불~”(#14), “너푼~”(#15), “넝~”(#23), “갈긋~”
(#39), “해적~”(#39), “해적~”(#40), “해적~”(#46). 위의 경우처럼 특정 어
휘에 특정 기호를 반복하여 쓰고 있다면 그것은 동일인의 번역일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물결표는 #11, 12, 25 등에서 널리 쓰인 줄표(“―”)와 구분된
다. 줄표는 종결된 문장 뒤에 나타나는 경우라면, 위의 물결표는 주로 부사어
의 뒤에 여운의 효과를 주기 위해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위의
물결표는 반복의 표시로 보이지도 않는다. 반복의 기호인 ‘오도리지’가 있고,
반복되는 부사어는 첩어로 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의 물결표가
쓰인 #14, 15, 17, 23, 39, 40, 46은 김억의 번역문로 추정할 수 있고, 앞의
목록과 중복되는 시편을 뺀다면 #15, 17는 목록에서 추가 제외할 수 있다.
요컨대, 소월의 역문으로 추정되는 시편은 총 19편(#18, 32, 35, 41, 43, 59,
66, 67, 68, 69, 70, 72, 74, 76, 80, 81, 82, 84, 85)이다.
36) 기탄자리 #48의 “얀나무BANYAN”, #51의 “Conch-shell” #53의 “손목고루(Wrsitlet), 쉬
누(Vishnu)”, #54의 “바블라babla, 님Neem”, #55의 “웃옷Mantle”, #57의 “素馨Jasmin”,
#65의 “饗宴Caynival”, #71의 “幻影Maya”, #72의 “幻影Maya” 등의 용례가 발견된다. 여기서 흥
미로운 것은 ‘콩크 조개’를 영어 그대로 “Conch-shell”로 표시한 것과 쟈스민을 한자 “素馨”으로
표기한 것이다. 이는 고유명사의 표기에 있어 안서의 고민과 노력을 보여준다. 新月의 경우도,
「家庭」의 “잭륫나무(Jack-fruit-tree)”, 「잠도적」의 “얀나무, 라(Bakula), 러쉬(Rush)의
睡蓮(Water-Lilie)”, 「作亂」의 “진흙파이(Mud-Pie)”, 「天文學者」의 “카담(Kadam)나무”, 「촴파
」의 “라마야마(Ramayana)”, 「仙境」의 “툴씨(Tulsi)의花盆” 「船人」의 “티르푸르니海峽”, 「上者」
의 “ABC”, 「적고도큰사람」의 “다다(兄)에게”, 「열두時」의 “마다르(Madar)나무”, 「著作者의몸」의
“ABCDEFGHI”, 「最初의샤스민」의 “쟈스민” 등의 용례가 발견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러쉬
(Rush)의 睡蓮(Water-Lilie)”와 “진흙파이(Mud-Pie)”이다. 이들은 고유명사 번역에 있어 안서가
당면한 곤궁을 보여준다.
244 한국학연구 제45집
또 다른 것은 부사, 특히 접속부사의 용례이다. 각 연의 후렴구에서 반복
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그러고”는 김억과 김소월의 번역문체를 변별하는 지
표로 사용될 수 있다. 왜냐하면 김억과는 달리, 소월은 “그러고”라는 접속부
사를 사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 김억은 “그리고”와 함께 “그러고”
를 두루 혼용하고 사용하고 있다. 園丁에서 “그리고”의 용례가 발견되는
시편은 #9, 37, 78, 82, 84, 85이고, “그러고”의 용례가 발견되는 시편은 #7,
10, 12, 17, 19, 32, 33, 39, 40, 42, 56, 61, 62, 65, 74, 78, 80, 81, 82,
83이다.37) 안서의 경우 “그리고”보다는 “그러고”를 선호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안서와는 달리 소월은 “그러고”를 사용하지 않고, “그리고”로 통일해
서 사용하고 있다. 예컨대,
그리고 그가 中國으로向한줄을 우리가 집에 잇서서 알게된는(함박눈)
그리고참으로不吉한림칙한생각이드럿다.(도라가는게집)
김소월의 글에서 “그리고”의 용례는 극히 드물기 때문에, 소설 함박눈과
번역소설 도라가는게집에서의 용례는 중요하다.38) 위에서 보듯, 소월은
“그리고”를 매우 드물게 사용했으나, 그것을 사용할 때는 “그러고”와 같은
변형태를 사용하고 있지 않다. 이것이 “그러고”를 선호한 김억과의 차이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園丁 #17의 “그러고”는 안서의 번역문체로 특정할 수
있다. 그 결과 소월의 역문으로 추정되는 19편의 목록에서, “그러고”의 용례
37) 한편, 園丁 #29의 이전 판본으로 볼 수 있는 개벽 25호에 실린 역문에서도 “그러고”가 발견된다.
개벽 25호, 1922.7.10., <부록>, 40쪽. 新月에서는 「와理由」, 「구름과물결」, 「流配의王國」,
「죠희배」, 「船人」, 「商人」, 「同情」, 「召喚」 「終局」 「얀나무」 「나의노래」 「안기天使」 등에서도
“그러고”가 발견된다.
38) 이를 소월이 접속부사를 거의 쓰지 않았다는 것으로 확대 해석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소월은 “그
러나”와 같은 접속부사는 많이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산문뿐만 아니라 진달래꽃을
비롯한 그의 시편에서도 동일한 양상을 띤다. 산문과 시편들 모두에서 “그러나”의 용례를 찾는 것
은 쉬운 일인데, 이는 흥미로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보다는 “그러나”를 선호하는 현상은
특정 접속부사로의 경사가 시적 사유 및 시상의 전개에 있어 어떤 경향성을 띨 수 있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김억과 김소월의 번역 문체 비교 연구 245
가 발견되는 다섯 편(#32, 74, 80, 81, 82)은 제외할 수 있다. 이로써 우리는
나머지 14편(#18, 35, 41, 43, 59, 66, 67, 68, 69, 70, 72, 76, 84, 85)을
소월의 역문으로 추정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 함께, 연결어미 “그러기에”의 경우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에”는 園丁에서 그리 많은 용례가 발견되지는 않는다. #35, 41, 80 세 편
에서만 발견된다. 안서가 “그러기에”를 사용하고 있다는 방증의 사례는 해
파리의노래 서문 “이것이 내노래입니다, 그러기에 내노래는 설고도 곱습니
다”39)가 제공한다. 또한 “그러기에 아기는 天眞하게 보입니다.”(新月, 「어
린아기의 버릇」)에서도 발견된다. 이에 비해, 소월은 산문과 시편들에서 “그
러기에”를 사용한 적이 없다. “그리하여”(春潮), “그러면, 그리하여”(함박
눈), “그러한즉, 그래고는, 그래하면, 그러쟈, 그래서”(도라가는게집),
“그러면, 그러타고”(「시혼」), “그러함으로써, 그리하야”(「競技에對한道義的
觀念」) 등을 널리 사용하고 있으나, “그러기에”는 단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다. 이는 소월의 시편들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우리는 위의 열네 편 가운
데 두 편(#35, 41)을 제외할 수 있다.
여기서 번역상의 문제와 관련해 작품의 양적 길이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작품의 길이가 번역의 난해성을 결정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지만, 작품의
길이에 따라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달라지는 것도 사실이다. 다시 말해,
소품의 경우 번역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들을 모색할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굳이 다른 사람에게 번역을 맡길 필요가 없는 것이다. 만약 이런
추론이 정당하다면, 우리는 위의 12편 가운데 8행 이하의 소품들 또한 배제할
수 있게 된다.40) 즉 12편 가운데 #18(8행), 43(5행), 59(5행), 69(6행), 70(8
행), 76(6행), 84(7행), 85(5행) 8편을 제외할 수 있는 것이다. 역으로 길이가
비교적 긴 나머지 4편의 시편들은 소월의 사라진 번역문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66(15행), 67(16행), 68(23행), 72(11행)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39) 김억, 「머리에한마듸」, 해파리의 노래, 조선도서, 1923, 1쪽.
40) 각각의 시편의 시행 수는 다음과 같다. #18(8행), 43(5행), 59(5행), 66(15행), 67(16행), 68(23행),
69(6행), 70(8행), 72(11행), 76(6행), 84(7행), 85(5행)
246 한국학연구 제45집
6. 소월의 번역문체의 특성
최종적으로 우리가 검토해야 할 작품은 네 편(#66, 67, 68, 72)이다. 이중
#66은 각별한 주목을 요한다. 김억의 번역문체로 볼 수 없는 것들이 다수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름업시 도라가는 밋친사람이 試金石을찻고 잇섯습니다. 헝크러진紫色의 머
리털은 틔에 쌔우고 파리한몸이 어슬거리는그림자와 갓탓습니다다.
다시금 닷아둔가슴의門과갓치, 그이의입쌀은 다물니고, 불붓는두눈이 동무를 차
자가는 반듸별기불빗과 갓탓습니다.
그이의압페서는 업슨大洋이 울부짓습니다. 잔소리만흔 물결들은 쉬지도안코
숨긴寶物을 귀불고 닐너줍니다. 그들은 닐너주는을 모르는 어리석음을 비웃습니다.
지금에,남아잇는希望은 업섯슬넌지 몰나도, 그이는 쉬려고하지 안앗습니다. 試
金石을 차자내임이 그이의 生命이엇는닭입니다.―
마치 達할수가 업슴으로해서, 大洋은 大空을向하야 그의두팔을 트리는것과
갓치―
마치 별들이 環을 지어나가지마는, 그것은 決코 達할수업는 決勝點을 찻는것과
갓치―
마치 그럿습니다, 밋친사람은 틔에 운 紫色의 머리털을 푸러해치고, 오히려
試金石을 차자 寂寂한海岸을 휘돌고 잇습니다.
어느날 村에 사는 엇던兒嬉가 와서, 「당신이 허리에  그 金사슬을 당신은 어데
서 어덧습니가?」하고, 그이한테 무럿습니다.
그밋친사람은 적 놀낫습니다 ― 언제는 무쇠엿던 그사슬이 참으로 金이엇습
니다. 이 안이라, 眞正한金이엇습니다. 그러나 그이는 그것이 언제 그리된것을
몰낫습니다.
그이는 압니마를 붓적 두다렷습니다― 어데서 오오 어데서 그이는 알지도못하
고 이러한 成功을 엇덧겟습니가?
잔돌을 주어가지고는 그사슬을 가라보는것과, 가라보다가는 두번 보지도 안코
김억과 김소월의 번역 문체 비교 연구 247
그잔돌을 집어던지는것이 習慣이 되엇습니다. 그와가치 이 밋친사람은 試金石
을 엇덧다일헛다 하엿습니다.
저녁해는 西山을 넘어나려가고, 하늘은 金빗츠로 물질넛습니다.
밋친사람은 일허버린寶物을 새로히 차자보랴고 걸어 도라왓습니다. 그러나 氣力
은 다하고, 허리는 부러지고, 틔에 덥핀그가슴이, 마치 리를 여노흔 나무
와 갓탓습니다.
-#66 전문
먼저, “兒嬉”는 영어 “boy”의 번역이다. 園丁에서 “boy”가 나타나는 시
편은 그리 많지 않은데, #76에서 “a little boy’s trouble”은 “어리아희의 걱
졍”으로 번역되고, #77에서 “this naked boy”는 “이가벗은아희”로 번역되
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고려할 것은 “아희”를 “兒嬉”라는 한자어로 표기한
까닭이다. #76, #77, #83에서는 “아희”로 표기한 것과 달리, 유독 #66에서
만 “兒嬉”라는 한자로 표기하고 있다. “아희”가 일상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단어라고 가정한다면, 굳이 이를 한자로 표기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 이러한
사실은 동시 新月의 번역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新月에서 “아기”와 “아
희”는 두루 쓰이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아기”가 더욱 많이 쓰이고 있는데,
新月 40편 가운데 약 23편에 “아기”의 용례가 발견된다. “아희”의 경우도
적지 않은데, 8편에서 그 용례가 발견된다.41) 그런데 적지 않은 시편들에서
발견되는 “아희”의 경우 예외 없이 모두 국문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는 “아
희”를 굳이 한자로 표기할 이유가 없기 때문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는 역으
로 #76의 “兒嬉”가 굉장히 특이한 사례라는 것을 뜻한다. 게다가 “아희”의
한자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兒戱”가 아니라 “兒嬉”라는 사실도 주목할 필
41) 新月에서 전자의 용례는 다음과 같다. 괄호 안의 숫자는 쪽수를 뜻한다. “어린아기”(9), “어린아
기”(11), “아기”(14), “어린아기”(17), “어린아기”(20), “어린아기”(22), “어린아기”(24), “아기”(26),
“아기”(28), “아기”(30), “아기”(32), “아기”(37), “아기”(46), “아기”(69), “아기”(74), “아기”(76),
“아기”(88), “아기”(81), “아기”(92), “어린아기”(98), “아기”(102), “아기”(104), “아기”(106). 후자
의 용례는 다음과 같다. “어린아희”(1) “어린아희”(2), “아희”(5), “아희들”(7) “아희들”(17), “村아
희들”(19), “아희들”(20), “웃는아희”(46), “아희, 게집아희”(53), “아희”(109).
248 한국학연구 제45집
요가 있다. 이는 일상적으로 거의 쓰지 않는 한자를, 어떤 필요에 의해 번역
에 반영하였다는 것을 암시한다. 소월의 산문에서 “아희”라는 단어가 거의
쓰이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아희”는 주로 “게집아희”(「春潮」), “게집아희
들”(「도라가는게집」)의 형태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은 이와 연관될 가능성
을 보여준다.42) 즉, “아희”가 주로 여자아이와 결합하여 쓰이고 있는 것은
“아희”가 “兒戱”가 아니라 “兒嬉”로 표기된 이유를 추정케 할 수 있는 단서
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추정만으로 위의 시를 소월의 번역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소월의 문체로 보다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지표의 설정이 필요하다. 여기서
우리가 고려할 것은 “갓치”와 “밋친사람”이라는 표기이다. 왜냐하면 [ㅅ+ㅊ]
의 표기 형태는 소월의 “독창적 표기”43)의 한 양상을 이루기 때문이다. 특히
「첫치마」의 개작과정에서 [ㅅ]을 삽입한 것은 “자신의 방언을 서울말로 표기
하려는 의식”44)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소월의 시편들에서 [ㅅ+
ㅊ]의 표기 형태는 여러 방면에서 다양하게 나타난다.45) 따라서 위의 “갓치”
와 “밋친사람”의 표기를 소월만의 “독창적 표기”로 설정할 수 있다면, 위의
시는 소월의 역문일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우선, 위의 시에서 조사 “갓치”는 “닷아둔가슴의門과갓치”, “트리는것과
갓치”, “찻는것과 갓치”에서 보듯 두루 쓰이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위의 시
에서 “그와가치”와 같은 형태도 동시에 발견된다는 사실이다. 이는 김억이
“-갓치”와 “-가치”라는 이중 표기를 사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이중
“갓치”는 소월의 표기와도 관련성이 높다. 園丁 전체에서 “-갓치”는 네
편의 시(#16, 28, 32, 56)에서 용례가 발견된다. 기탄자리와 新月의 경
42) 소월의 산문에서는 다음과 같은 용례가 발견된다. 여기서 괄호는 전집의 쪽수이다. 「春潮」에서 “어린
애”(946), “게집아희”(946), “어린아기”(947), 「함박눈」에서 “젓먹이”(950), “갓난아기, 乳兒”(953),
「도라가는게집」에서 “게집아희들”(975), “게집애”(976)가 발견된다. 소월의 시 가운데에는 다음의
용례들이 발견된다. “가주난아기갓치”(「가을아츰에」), “젊은아기”(「오는봄」), “아가”(「비오는 날」),
“갓난이”(「마음의 눈물」), “아기”(「忍從」) “모단아희, 어린 아기”(「봄바람」).
43) 전정구, 「김소월시의 언어시학적 특성 연구-개작과정을 중심으로」, 전남대 박사학위논문, 신아,
1990, 63쪽.
44) 위의 책, 64쪽.
45) 장철환, 김소월 시의 리듬 연구, 소명, 2011, 183~197쪽.
김억과 김소월의 번역 문체 비교 연구 249
우에는 그 용례가 훨씬 더 많다.46) 이러한 사실은 “갓치”가 소월만 아니라
김억도 두루 사용하고 있는 표기라는 것을 보여준다.
다음으로 고려할 것은 “밋친사람”의 [ㅅ+ㅊ] 표기이다. 園丁에서 “밋친”
은 위의 시편 이외에 추가로 발견되지는 않는다. 대신 #82에서 “미친”이 쓰
이고 있다. 기탄자리에서도 “밋친”의 용례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마찬가
지로 新月에서도 “미친듯시”(「비오는날」)라는 용례가 발견되지만, “밋친”
은 발견되지 않는다.47) 그러나 소월은 다르다. [ㅅ+ㅊ]의 결합형은 소월의
특수한 표기로 간주할 수 있을 정도로 두루 널리 사용되고 있다. 예컨대, 진
달래꽃에서 “밋친날도”(#38), “밋친듯”(#124), “밋친듯 우나니”(「첫치마」)
의 용례가 발견되고, 산문의 경우에도 “밋친것갓치”(「도라가는게집」)가 발
견된다. 이러한 사실들은 위의 #66이 소월의 번역문일 가능성을 높인다.
위의 시편이 소월의 역문으로 추정되는 보다 특별한 이유는 특정 어휘의
사용 때문이다. 즉 “하늘은 金빗츠로 물질넛습니다”의 표현이 그것이다. 이
구절은 “the sky was of gold”의 번역으로, 여기에서 “물질넛습니다”는 ‘물들
(이)다’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園丁에서 “물질넛습니다”가
‘물들(이)다’의 의미로 사용되는 구절은 위의 시편이 유일하다. 유사한 형태로
#1에서 “殿下의 발당을 물질으게 하여줍소서”가 발견되기는 하지만, 여기
서 “물질으게”는 ‘문지르다’의 의미로 봐야 한다. 따라서 위의 #66의 ‘물들
(이)다’의 의미와는 다르다. 그러나 소월은 “고히도붉으스레 물질녀와라”(「새
벽」)에서 보듯, ‘물들(이)다’의 의미로 “물질녀와라”를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그 용례가 거의 없는 특수한 어휘를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면, 양자
사이의 연관성은 더욱 높아진다고 할 수 있다.
이밖에도 #66의 ‘깜짝’의 의미로 쓰인 “적”과 ‘부쩍’의 의미로 쓰인 “붓
적”과 같은 부사는 김억에게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 어휘들이다. “쌔우고”과
46) 기탄자리에서는 #2, 11, 22, 24, 29, 40, 41, 43, 47, 50, 52, 53, 60, 77, 92, 95, 98, 103에서
용례가 발견된다. 新月에서는 「家庭」, 「海岸」, 「始作」, 「流配의王國」, 「商人」, 「적고도큰사람」,
「最初의샤스민」, 「나의노래」에서 용례가 발견된다.
47) 참고로 「비오는날」이 폐허 이후에 재수록 될 때, “미친듯시”가 “밋츤듯이”로 변형된다. 그러나
“밋친”과는 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양자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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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불고”와 같은 특수 어휘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했을 때,
위의 #66는 다른 시편들(#67, 68, 72)보다 소월의 문체와 가깝다고 할 수
있고, 이로부터 #66이 소월의 사라진 역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48)
7. 결론을 대신하여
본고의 목적은 안서와 소월의 번역문체의 비교를 통해 園丁의 사라진
역문을 확정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의 분석을 통해 얻어진 결론은 #66이
그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것은 가능성을 통한 추정일 뿐이다. 위의
시편이 소월의 사라진 역문임을 최종적으로 확증하기 위해서는 안서와 소월
의 번역문체뿐만 아니라, 시와 산문 전체의 문체에 대해 비교 분석이 요구된
다. 이런 점에서 이 글을 미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고의
의의는 소월의 사라진 역문을 찾는 데에 있어, 번역문체를 포함한 문체 일반
의 차이에 대한 규명이 관건이라는 것을 규명하였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48) 각주에서라도 현재의 결론과 다른 방식의 추론이 가능함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는 園丁
에는 소월의 문체로 강력히 추정되는 작품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園丁의 #71인데, 이 시
편에서는 대체로 ‘합쇼체’의 종결어미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단 한 곳에서만 특이한 용법의 사
용이 눈에 띈다. “나의利낸것을 앗으랴는것이 당신의慾望입니다그려”가 그것인데, 합쇼체 평서
형 종결어미 ‘-ㅂ니다’ 다음에 조사 “-그려”를 붙이고 있다. “-그려”의 용례는 園丁 전체에서
이곳이 유일하다. 85편에 달하는 시에서, 그것도 대화체가 주조를 이루는 시편들에서 “-그려”가
단 한 차례만 쓰였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김억의 경우 문장의 종결은 단순 명쾌한 일면
이 있다. 문장을 이어서 쓸 때, “-만은”, “하여” 등의 접속어미를 사용한 적은 많지만, #71에서처럼
“-그려”와 같은 형태로 종결하는 경우는 없다. 이런 면에서 “당신의慾望입니다그려”가 園丁에서
매우 특이한 형태라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을 듯하다.
그렇다면 김소월의 경우는 어떠한가? 김억과 달리, 김소월의 시와 산문에서 ‘-그려’를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몇 가지 용례는 다음과 같다. “한세상지내시구려, 가라시구려”(「못니저」), “닙
니다그려”(「자나나 안즈나서나」), “흐릅듸다려”(「가는길」), “이상한였구려”(#807), “必要없
이 되겠구료”(#940), “쓸데업구려!”(「깁피밋든心誠」). 소월의 경우 ‘-그려’와 그의 변이형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그렇다면 園丁 #71의 “당신의慾望입니다그려”는 소월의 문체일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러나 여기에는 다음의 두 가지 사항이 고려되어야 한다. 첫째, 園丁 #71에서 김억의 번
역 문체로 추정되는 결정적인 지표가 존재한다. ‘-ㅂ시요’의 형태인 “念慮맙시요”가 그것이다. 둘
째, ‘-그려’의 형태는 園丁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지만, 비슷한 시기의 다른 번역시집인 新月
에서는 “가르켜 줍니다그려.”(「天文學者」)의 용례가 발견된다. 이러한 두 가지 문제 때문에 #71을
논외로 하였다.
김억과 김소월의 번역 문체 비교 연구 251
또한 미약하나마 본고에서 그것을 실제적으로 시도하였다는 점에서도 적지
않은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동안 답보 상태에 있던 문제들을 해결할 새로운 방법론
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즉 김억과 김소월의 관계에서 원본의 확정을 위한 새
로운 방법론을 제시하였다는 점. 우리는 소월의 시에 안서가 수많은 가필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1977년 11월 문학사상에서 발굴한 소월의 육필
원고와 1978년 문예중앙에서 발굴한 소월의 육필원고에 대한 의혹과 논
쟁49)의 중심부에서 발견되는 것은, 소월과 안서의 문체의 차이에 대한 우리
의 무지이다. 이것은 단순히 필체를 확정짓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핵
심은 소월과 안서의 ‘문체’를 확정짓는 것에 있다. 미완으로서 본고가 지닌
의의도 바로 여기에서 도출된다. 비록 소월의 사라진 역문을 추정하는 데에
서 그쳤지만, 안서와 소월의 ‘문체’를 변별할 가능성과 방법론을 얻었다는
점, 이것은 본고의 논의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기도 하다.
49)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할 것. 전정구, 「미발표 소월 자필 유고의 쟁점과 과제」, 비평문학
33호, 2009, 427~4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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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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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억과 김소월의 번역 문체 비교 연구 253
A Comparative Study on the Translation Style of
Kim Uk and Kim So-Wol
-Focused on The Gardener-
Jang, Cheul-Whoan
The primary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compare the translation style of
Kim Uk and Kim So-wol, and to find the disappeared poem of Kim So-wol
in the translation of poetry in Tagore’s works The Gardener. Between 1923
and 1924, Kim Uk translated and published The Gitanjali (March 3, 1923),
The Crescent Moon (April 20, 1924), and The Gardener (December 7, 1924).
But, there is a serious problem that can not be overlooked in the translation
of The Gardener. It is related to the subject of translation, which is the fact
that the one poetry of The Gardener is translated by Kim So-wol, not by Kim
Uk. In addition, the problem is that it is not possible to know which of the
eighty five poems is translated by Kim So-wol. Two translator and one
disappeared poem. This is a serious problem that doubts the validity of
translated The Gardener. The necessity of establishing the translation subject
of this works comes from here.
This paper traces the disappeared poem of Kim So-wol by focusing on the
comparison of the translation style between Kim Uk and Kim So-wol. First
of all, the key indicators of the difference between the two are as follows.
First, Existing poems already translated by Kim Uk in other magazines. Second,
the differences of sentence-final suffix between Kim Uk and Kim So-wol(‘합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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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Finally, the special ways of using sentence-final suffix of Kim Uk(‘-ㅂ시
요’). In addition, I review indicators such as special symbols, translation of
foreign words, and specific vocabulary. Through the analysis of these
indicators, I was able to judge some poems as a translation of Kim So-wol,
and finally I could argue that # 66 of The Gardener is likely to be the
disappeared poem of Kim So-wol.
Key words : Kim Uk, Kim So-Wol, Rabindranath Tagore, The Gardener, translation,
subject, translation-style, sentence-final suffix, colloquial st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