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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박완서 소설에 나타난 ‘먹는 인간’의 의미*초기 장편소설을 중심으로/신샛별.동국대

목차
1. 서론
2. 한국전쟁의 발발과 ‘먹는 인간’의 탄생-나목
3. ‘동물적 미각’의 발견과 도덕의 변화-목마른 계절
4. 포식의 시대와 진정성의 주체-도시의 흉년
5. 결론


1. 서론
본고는 박완서의 소설을 한국전쟁 시기로부터 1970년대까지에 이르
는 한국 현대사와 겹쳐 읽으면서 소설 속 언어에 각인된 시대정신을 분
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전쟁 이후 한국인의 정신적 삶에 나타난 변
화를 재고해보고자 한다. 한국문학사에서 박완서는 자신의 체험을 바
탕으로 한국전쟁의 참상을 증언한 작가,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를 거
치며 발생한 중산층의 허위의식과 속물성을 비판한 작가, 그동안 상대

적으로 소홀하게 다루어져 왔던 여성의 삶을 폭넓게 재현한 작가 등으
로 규정된다. 그러나 이렇게 작품의 소재와 주제의 측면에 한정된 논
의만으로는 박완서 문학의 특별함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박완서는
자신이 쓰고자 하는 이야기에 걸맞은 소설미학적 육체를 부여하는 데
에도 탁월한 성취를 보인 작가이기 때문이다. 수십 년 동안 내용의 격
차가 그리 크지 않은 이야기들이 거듭 쓰인 것은 그가 ‘어떻게 쓰는가’
의 문제에 얼마나 민감한 작가였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일 것이다.
‘어떻게 쓰는가’의 문제와 관련해 눈여겨볼 가장 기본적인 단위는 일
단 어휘다. 이와 관련하여 본고가 최초로 발견한 것은 박완서의 소설
이 ‘먹기’와 관련된 어휘들에 강박적이다 싶을 정도로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초기 장편소설들인 나목(1970), 목마른 계절(1978), 도시
의 흉년(1979)에서 박완서는 ‘먹기’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는 어휘
들을 많이 사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들 소설에서 먹는 행위와 관련
된 비유는 거의 자연발생적이다 싶을 정도로 자주 나오는데, 이는 박완
서 소설의 기저에 있는 상상력의 본질을 유추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
나 이 사실을 지적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본 연구의 출발점이다. ‘먹기’
를 중심에 두고 구조화돼 있는 전의(trope)의 체계를 밝히는 연구는 넓
은 의미에서 문체론적 연구에 해당할 것인데, 문체론은 궁극적으로 주
제론과 결합되면서,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서로가 서로를 촉진하고 입
증하면서 비로소 완성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박완서 소설
자체가 요청해오고 있는 연구의 방향이기도 하다.
초기 장편소설들을 거치며 언어의 차원에서 세공된 박완서의 ‘먹기’
와 관련된 상상력은 이후 박완서 문학의 모체가 되어, 그 원천으로부터
한국전쟁의 참상을 증언하고 세태를 비판하며 여성의 문제를 톺아보
는 박완서 소설의 다양한 면모가 뻗어 나간다. 본고는 ‘먹기’로부터 출
발하는 다채로운 주제론적 분기(分岐)들을 종합하기 위해 ‘먹는 인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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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박완서의 문학 자체가 한국 근현대사의 치밀한
반영이자 한국인들의 내면에 대한 현미경적 탐구이니만큼, 박완서의
소설로부터 도출된 ‘먹는 인간’이라는 개념은 한국전쟁 이후 한국인의
정신적 삶을 이해하는 하나의 프레임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요
컨대 본고는 한국전쟁이라는 사건을 기점으로 출현한 ‘먹는 인간’이라
는 새로운 주체를 개념화함으로써 박완서 소설을 한국 근현대사의 역
사철학적 맥락에서 읽고, 또 지금-여기로 이어지는 한국인의 집단적
허기의 기원을 박완서 소설의 맥락 속에서 이해해보기 위한 시도다.
이와 같은 본고의 착상은 박완서 소설의 역사철학적 맥락에 대해 주
의를 환기한 최경희, 신수정, 이선미 등의 연구와, 박완서 소설에 나타
나는 (여성의) 신체-언어에 주목한 권명아, 황도경, 이정희 등의 연구에
힘입은 바가 크다. 최경희는 「엄마의 말뚝 1」을 ‘여성의 근대화’라는 관
점에서 읽으면서 박완서 문학이 근대성의 탐구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
을 할 수 있음을 주장했다.1 또 신수정은 박완서의 자전소설에 나타난
박완서 세대의 성장과정에는 혐오와 매혹으로 분산되는 근대성에 대
한 양가적 감정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근대성을 중심으로 박완서 문학
의 새로운 좌표를 설정할 필요가 있음을 논증했다.2 그런가하면 이선
미는 박완서 소설에서 한국 근현대사의 복잡다단한 성격이 표현되고
있으며, 박완서 문학에서 전쟁을 기억하는 일은 언제나 현재적 문제의
근원을 찾아가기 위한 시도로 나타난다고 파악한다.3 여기에 나목의
주인공 이경의 몸을 ‘전쟁상태적 신체’로 규정한 권명아,4 박완서 소설


1 최경희, 「「엄마의 말뚝 1」과 여성의 근대성」, 민족문학사연구 9, 민족문학사연구소,
1996.
2 신수정, 「증언과 기록에의 소명」, 푸줏간에 걸린 고기, 문학동네, 2002.
3 이선미, 「세계화와 탈냉전에 대응하는 소설의 형식-기억으로 발언하기-1990년대 박
완서 자전소설의 의미 연구」, 상허학보 12, 상허학회, 2004.
4 권명아, 「전쟁상태적 신체의 탄생, 혹은 점령당한 영혼에 관한 보고서」, 나목 개정
판 해설, 세계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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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여성적 글쓰기’의 양상을 살핀 황도경,5 복종
의 코드를 해체하는 몸의 언어에 주목한 이정희6의 연구까지 두루 참
조하면서 본고는 ‘먹기’라는 어휘로 모아지는 박완서 문학 특유의 신체-
언어에 대한 탐구를 역사철학적 관점에서 논의해볼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본고는 박완서가 ‘먹기’를 경유해서만 1950년대 이후의
한국사회를 이야기하고 사유할 수밖에 없었던 어떤 필연적이고도 절실
한 이유를 성찰해 보는 작업에 가까워지게 되었다. 그 이유가 필연적이
고도 절실한 것이기 때문에, 박완서 소설의 다른 어떤 작의(作意)들보다
도 더 민첩하게 그의 초기작들에서 또렷한 흔적을 남겼을 것이다. 이
논문에서 다루는 초기 장편소설 세 작품은 공통적으로 ‘풍요’나 ‘다산’의
반대편에 놓일 법한 단어를 사용한 제목을 가지고 있다. 각각 ‘헐벗을
나(裸)’와 ‘목마른’과 ‘흉년’이라는 어휘를 품고 있는 그 제목들은 단지 제
목이기를 넘어서서 작품의 배경이 되고 있는 한국전쟁 당시와 직후, 그
리고 1970년대 한국사회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본고는 그
명명의 내막과 내력을 살피고, 그로부터 지금-여기에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한국인의 욕망과 결핍의 계보를 이해할 단서를 찾아볼 것이다.


2. 한국전쟁의 발발과 ‘먹는 인간’의 탄생-나목
박완서의 등단작 나목을 관통하는 하나의 질문이 있다면, 그것은
‘어떻게 살 것인가’일 것이다. 이 소설을 통해 박완서는 ‘한국전쟁 이후


5 황도경, 「정체성 확인의 글쓰기」, 이화어문논집 13, 이화여대 한국어문학연구소, 1994.
6 이정희, 「감시의 시선, 몸의 언어-박완서의 세태소설을 중심으로」, 여성과사회 13,
한국여성연구소,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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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사람들의 삶을 사유한다. 주목할 점은 추상적 경험인 ‘삶’을 이
야기할 때 박완서가 ‘먹기’라는 구체적 경험을 맞세우고 있다는 것이
다. 주인공 ‘이경’은 1950년 9월 28일 UN의 서울 수복 이후 PX에서 근
무하면서 전장과의 시공간적 거리를 실감하기 시작하고, 전쟁으로 인
해 피폐해진 자기 삶의 복원 가능성을 타진해보고 있다. 그러나 전쟁
중 폭격으로 두 아들을 잃는 참화를 겪고 난 후 삶의 의미를 상실한 엄
마를 지척에 둔 그녀에게는 그러한 노력 자체가 죄의식의 요인이 된다.
엄마처럼 두 오빠의 죽음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으리라는 불
길한 예감과, 이제는 무엇이든 욕망하면서 살고 싶다는 바람 사이를 오
가며 갈등하는 이경의 속내는 식사를 대하는 그녀의 태도에서 명확하
게 드러난다. 식욕의 회복을 간절히 염원하는 이경과 식욕의 상실 상
태를 방임하는 엄마의 갈등이 첨예해지는 가운데 이 소설은 박완서가
훗날 계속적으로 변형하여 활용하는 최초의 개념적 은유(conceptual metaphor)
7인 ‘삶은 먹기’를 생성해낸다.
인간은 먹음으로써 산다. 그러므로 먹기를 멈춘다는 건 죽음을 각오
한다는 뜻이다. 먹는 일에 아무런 미련이 남아 있지 않은 사람처럼, 다
만 습관인 양 매일 김칫국에 밥을 말아먹는 엄마의 모습에서 이경이 얼
핏 죽음을 엿본 것은 그 때문이다. 전쟁은 엄마에게서 두 오빠와 함께


7 ‘개념적 은유’는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관점이 되는 일상적 개념체계의 본성은
근본적으로 은유적”이며, 우리는 신체에 새겨진 ‘구체적’ 언어로 ‘추상적’ 사유에 도달
하는 과정, 즉 ‘은유’로만 삶과 세계를 이해할 수가 있다고 보는 체험주의 인지언어학
의 용어이다(조지 레이코프․마크 존슨, 노양진․나익주 역, 삶으로서의 은유, 박
이정, 2006, 21쪽). 일반적인 관점에서 은유는 수사적인 목적으로 유사성에 기초해 하
나의 대상을 또 다른 대상에 빗대어 나타내는 비유적 표현을 가리킨다. 그러나 체험주
의 인지언어학은 한 개념을 다른 개념의 관점에서 이해하게 해주는 일종의 개념화 장
치로서 은유를 연구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실천되는 은유 분석은 구체적 경험에 근거
해 신체화(embodied)된 언어를 가지고 추상적 사유에 이르기까지 형성된 상상력의 구
조를 밝히는 일과 다름 아니며, 이는 신체-언어-심리를 중층적으로 해석하는 작업으
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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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향한 애착까지 앗아가 버린 것이다. 그런 엄마에게 이경은 먹
을 것을 요구하고, 또 먹을 것을 건넨다. 이경이 엄마에게 만두를 만들
어 달라고 할 때나 빈대떡을 권할 때, 이들 장면에 등장하는 음식은 ‘음
식’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들은 ‘먹기’와 관련돼 있을 뿐 아니라,
‘먹기’가 은유하는 특정한 삶의 방식을 환기한다. 가령, 이경은 1952년
새해가 밝아오기 며칠 전부터 만두를 해달라고 엄마를 졸랐지만, 그녀
의 기대는 시척지근한 김칫국이 반찬의 전부인 아침상을 받으며 무너
진다. 만두를 먹고 싶어 한다는 건 단순한 식욕이 아니라, “식욕보다는
훨씬 절실한 것, 목탄 나무의 단비에의 갈구 같은, 자혜에의 애타는 소
망”8이었다는 고백에서 알 수 있듯이, 이경이 엄마에게 특별한 음식을
요구한 것은 죽은 두 오빠로부터 자기에게로 관심을 돌려보려는 시도
이자, 다른 삶으로의 방향 전환을 요청하는 일이었다.
이처럼 ‘삶’을 ‘먹기’에 투사함으로써 박완서가 그려 보이는 한국전쟁
이후의 두 가지 삶의 방향, 즉 ‘삶다운 삶’과 ‘죽음에 가까운 삶’으로 요
약될 수 있을 그것은 인물의 층위에서 각각 ‘이경’과 ‘엄마’에 대응된다.
또한 그것은 공간의 층위에서 두 인물이 주도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PX’와 ‘고가’에 대응된다. 이 두 공간을 왕래하는 이경의 이동을 따라
가며 소설이 전개되는 동안 ‘삶다운 삶’과 ‘죽음에 가까운 삶’을 은유하
는 어휘의 수는 점차 많아진다. 요컨대 ‘PX’를 중심으로 ‘분주함, 다채
로운 색과 빛, 소란스러움, 왕성한 식욕’이 하나의 어휘 범주를 형성하
고 ‘고가’를 중심으로 ‘부연 회색빛, 시간의 정지, (엄마의)치아 없는 입,
식욕 상실’이 또 다른 어휘 범주를 이루는 것이다. 이경이 폭격으로 부
서진 행랑채를 그대로 보존한 채 불빛 하나 없이 적막하게 서있는 고가
로 돌아오지 않기 위해 자꾸만 퇴근을 지연시키고, PX에 머물거나 그


8 박완서, 나목, 세계사, 2012, 1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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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늘려감에 따라 ‘고가’와 관계
된 어휘들은 문면에 덜 나타나는 한편, ‘PX’와 관계된 어휘들의 등장 빈
도는 높아진다.
이 소설의 서사적 긴장은 여기에서 발생한다. 결여를 채울 ‘삶다운
삶’의 증거를 되찾아 허기증과 굶주림에서 벗어나는 과정, 연애의 본격
화와 맞물려 경험되는 이 과정을 겪으면서 이경은 두 오빠에 대한 애도
를 완수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흥미롭게도 이경이 자신의 성
욕을 인정하는 일과 동시에 일어나는데, 나날이 간절해지는 그녀의 성
욕은 충동적인 식욕에 비유된다. 고심 끝에 옥희도를 만나러 가던 길
에서 이경은 “사과를, 그 붉고 단단한 살을 깨물고 싶은 욕망으로 이뿌
리가 근질거리는 것을 참을 수 없어졌다.”9 사과를 깨물고 싶은 다급한
갈망에 비견될 옥희도를 향한 이경의 마음은,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탐해도 탐해도 포만이 없는 탐욕”10이었다는 자인과 함께 차게 식는
다. 옥희도에게서 이경은 “빛과 빛깔의 빈곤, 그러니까 삶의 기쁨에의
기갈”11만을 보았을 뿐, 자신의 결여를 채워 줄 ‘삶다운 삶’의 증거를 발
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경에게 어떤 미래도 약속해주지 않는 옥희도와의 관계는 ‘굶주림’
을 확인하는 계기만 됐다. 처음 본 날부터 부연 ‘회색’ 휘장을 마주 바라
보던 옥희도의 모습은 마치 엄마의 ‘회색빛’ 고집을 참아내던 이경 자신
의 모습처럼 보였을 것이고, “나는 그를 사랑한다. 나는 그가 필요해”12
라며 이경이 자기암시를 걸 때, 그녀는 옥희도를 사랑하는 일에서 엄마
를 계속 견뎌낼 수 있을지를 시험해보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굶주
림, 허기증, 기갈’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이경은 엄마, 옥희도, 고가와


9 위의 책, 106쪽.
10 위의 책, 227쪽.
11 위의 책, 260쪽.
12 위의 책, 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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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로 헤어진다. 그리고 만날 때면 미식에의 소망이 일어 늘 함께 무
언가를 먹었던, 게다가 ‘빛’을 다루는 직업을 가진 황태수와 결혼에 이
른다. 결혼 후 황태수는 “살아서 잘 먹고 편히 사는 게 제일”13이라고 생
각하는 전형적인 한국의 중산층이 되었다. 식욕 상실이라는 전쟁의 후
유증을 관찰하면서, 식욕의 회복을 염원했던 이경은 ‘먹기’가 지상과제
인, 지금-여기와 그리 멀지 않은 속물의 시대를 살게 된 것이다.
이런 결말까지 읽고 나면 다음과 같은 가설을 세워볼 수 있게 된다.
‘전쟁이라는 사건을 거치면서 ‘삶다운 삶’을 살기를 소망한 한국인들은
‘먹는 인간’이라는 새로운 종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러므로 지금-여기
의 속물적 삶이 배태된 정신적 기원을 찾고자 한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한국전쟁이 무엇이었는지를 먼저 해명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 소
설 내에서 한국인이 묘사된 부분을 주목해 보려고 한다. 소설의 첫 장,
PX에서 한국물산 매장의 점원들이 모여 있는 곳은 ‘정전’ 상태다. 엄마
가 점유하던 공간 ‘고가’가 줄곧 ‘어둠’의 이미지로 채색돼 있던 것을 염
두에 둔다면, 한국인은 ‘PX 내의 고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곧 전기가
들어오고, 이경은 환한 조명 속에 펼쳐진 미국 물품 매장을 마치 객석
에서 무대를 바라보듯, 설레고 황홀한 기분으로 바라본다. 이렇듯 PX
내에 존재하는 ‘어둠’과 ‘밝음’의 대비는 ‘한국’과 ‘미국’의 대비로, 종국
에는 ‘굶주린 자’와 ‘포만한 자’의 대비로 치환된다.
난 흠뻑 재미나 하고픈데 왜 미스터 황은 멋없이 비분강개만 해요? 저들은
저들대로 좋아하게 내버려두면 되잖아요. 특별히 그들이나 우리의 국적 같은
걸 들추니까 속상한 거예요. 실상은 굶주린 자와 포만한 자의 차이뿐인데. 저
들도 우리처럼 전쟁을 겪고 오락과 먹을 것에 오래 굶주리면 우리보다 몇 배


13 위의 책, 3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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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태를 부릴걸요. 만일 우리도 남에게 베풀 수 있는 처지라면 저치들보다 몇
십 배 거드름을 피웠을 테구…….14
그러고 보면 이 소설의 곳곳에서 한국인의 ‘굶주림’은 세밀하게 관찰
되고 묘사됐다. 눈치를 보며 도시락통의 찬밥 덩이를 쪼개 먹으면서
점심식사를 황급히 끝내는 한국인 점원들, 찬밥마저 없어진 뒤 빈 도시
락 통에서 울리는 공허한 반찬 그릇 소리, “고뇌도 환희도 깃들어 있지
않은 을씨년스러운 빈방”15을 떠올리게 하는 다이아나 김의 하품하는
입,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합쳐진 이경 주변의 너절한 풍경까지. ‘굶주
림’에 대한 박완서의 집중은 집요하리만치 세세하다. ‘굶주림’, ‘빈 도시
락 통’, ‘빈방’ 등은 엄마의 의치를 끼우지 않은 입, “잘다란 주름이 의치
를 빼놓은 입술 둘레에 모여 입술을 보기 싫게, 마치 잘못 꿰맨 상처 자
국을 닫아놓고”16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 입과 죽음을 예비한 것 마냥
잘 정돈돼 있던 고가의 서랍들이 허(虛)를 연상하게 만들었듯이, 공히
어떤 결여(lack)를 떠올리게 한다. 이경은 그 결여의 장면들을 종잇조각
구기듯 마구 구겨 던져버리고 싶어 한다. 굶주림 앞에서 치욕이나 창
피를 운운하는 태수에게 “쳇, 체면이 뭐 말라비틀어진 체면, 체면이 배
불려주나”17 면박을 주었던 것 역시 그 결여의 지긋지긋함 때문이다.
박완서에게 한국전쟁은 봉합될 수 없는 어떤 구멍과도 같은 사건이
었던 듯하다. 그래서 그는 한국전쟁 이후 한국인의 삶을 ‘결여’와의 동
거로 간주한다. 언어의 층위에서 그 생각은 ‘굶주림’, ‘허기증’, ‘기갈’ 등


14 위의 책, 98쪽.
15 위의 책, 43쪽.
16 위의 책, 218쪽.
17 위의 책, 95쪽. 본고의 논의와 관련해 이 문장은 흥미롭다. ‘말라비틀어진 체면’이라는
표현은 말할 것도 없이 ‘체면’에 굶주림의 형상을 부여한 의인화의 산물인데, 전쟁 이
후 ‘먹는 인간’으로서 살게 된 한국인에게 체면이란 가장 쓸모없어진 덕목이 되었는지
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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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표현된다. 물론 실제로 전후 한국인은 극심한 물질적 빈곤에 시
달렸고, 원조에 의존해 국가경제의 기반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
나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는 일과는 무관하게 이 어휘들, 넓게는
‘먹기’라는 구체적 경험과 관련된 어휘들의 목록을 작성하고 확인하는
작업은 중요하다. ‘삶’을 ‘먹기’의 관점에서 사유한다고 가정할 때, 일상
적인 습관에서부터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나 미래에 대한 계획,
나아가 세계를 바라보는 입장까지, 삶의 모든 부분들은 그 사유의 영향
하에 놓이게 된다. 한국전쟁이 한국인의 정신적 삶에 어떤 근본적인
균열을 야기했다면, 그 진상은 ‘삶은 먹기’라는 은유에 대한 분석에 힘
입어 확인될 것이다. 박완서는 나목을 쓰며 ‘상처와의 직면’이라는
문턱을 넘게 되었고, 이후 한국전쟁이란 우리에게 무엇이었는지, 그 사
건이 남긴 구멍은 살아남은 사람들의 삶에 어떤 균열을 만들었는지를
자문하고 대답하는 탐구의 서사로서 목마른 계절을 썼다. 이 소설을
통해 박완서는 본격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한국전쟁을 사유한다.
그 사유 안에서 ‘삶은 먹기’라는 개념적 은유는 더욱 복잡한 수준으로
변형되어 활용되고, 그것은 ‘먹는 인간’의 탄생을 역사철학적 시야에서
조망할 수 있게 해준다.


3. ‘동물적 미각’의 발견과 도덕의 변화-목마른 계절
목마른 계절은 한때 사회주의자였던 ‘하진’의 전쟁 체험을 핍진하
게 따라가며 전개된다. 이 소설에서 박완서는 하진의 입을 빌려 전쟁
중에 체험된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형상을 ‘짐승’, ‘맹수의 이빨’, ‘뿌리
뽑음’, ‘깔아뭉갬’, ‘가뭄’, ‘한발’, ‘허기’, ‘기갈’ 등의 어휘들로 묘사하는


박완서 소설에 나타난 ‘먹는 인간’의 의미 343


데, 이때 이 소설은 ‘땅의 경작’과 관련된 인간의 노동을 무기력하게 만
드는 이데올로기의 가혹함을 특히 부각한다. 이러한 박완서의 상상력
은 물론 그의 개인적 이력과 그가 속한 특정 세대가 공유하는 체험에서
그 자양분을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땅의 경작’만큼 노동의 완벽한 사
례는 없으며, 노동이 주는 ‘살아있음’에서 오는 기쁨을 누릴 수 없을 때,
인간은 “생명력의 박탈”18에 상응하는 고통에 처할 수 있다는 아렌트의
지적을 떠올린다면, 박완서의 상상력은 인간적 삶의 조건과 한계에 대
한 처절하고 근원적인 성찰 가운데 자라났을 공산이 크다. 그 상상력
은 지역이나 세대의 특수성을 넘어서는, 이를테면 ‘생물 / 무생물’, ‘인
간/ 동물’의 경계에서 발생했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 소설의 하진은 도처에 죽음이 널려 있는 상황에서, 다만 생명체
로서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존중받을 권리가 있으며, ‘먹기의 보장’
으로 표현되는 그 존중이 없다면 인간은 길에 나뒹구는 나무토막이나
돌멩이와 다를 바 없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진은 오빠 하열이
징집돼 끌려가는 길목에서 남자들에게 황급히 도시락을 건네는 여인
들과, 그 여인들에게 총을 쏘는 인민군을 목격한 뒤, 먹을 / 먹일 권리
마저 박탈당한 인간의 뜨거운 분노를 삼키느라 힘겨워 한다. 목숨을
걸고 여인들이 밥을 건네고 그 여인들이 죽을 고비를 맞는 장면, 태연
하게 인간의 삶(생물)이 이미 죽음(무생물)처럼 취급되는 그 장면에는
‘삶은 먹기’라는 은유가 기반을 둔 한국적 원체험(原體驗)이 있다. 이후
그 원체험은 한국인의 무의식 깊이 안착했을 것이다. 먹을 / 먹일 수 없
다면 곧 죽는다. 확신에 가까운 죽음의 예감은 공포를 조성했고, 그 공
포 속에서 이제 하진은 ‘먹기’의 문제 해결에 과도하게 집착하기 시작
한다. 생활보다 중요한 것이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했던 과거를 속죄하


18 한나 아렌트, 이진우․태정호 역, 인간의 조건, 한길사, 1996, 1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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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라도 하듯이 하진은 “악착같이 하루의 양식을 구하는 일에 부끄러움
을 모른다.”19 그것은 전쟁 중에 식량이 떨어질까 전전긍긍해본 사람
들, 먹을 / 먹일 권리조차 주장하기 힘들었던 사람들의 불가피한 선택
이었다. 이를 오늘날의 용어로 바꾸면 ‘생존지상주의(survivalism)’ 정도
가 될 것이다. 한국전쟁을 통과하면서 사람들은 선택을 강요받았던 두
이념에 대한 판단을 잠시 정지하거나 유보하고, 생존지상주의를 더 시
급하고 절대적인 퇴로로 삼았던 것이다.
하진과 마찬가지로 만성적 허기증에 시달리던 전장의 사람들은 먹
이를 구할 수만 있다면 거리낄 것이 없게 된다. 특히 폭격의 위험을 무
릅쓰고 열리는 시장에서 인간은 동물이나 마찬가지였다. ‘생활에의 헌
신’과 ‘먹이에의 집착’이 새로운 덕목으로 부상하자, 관습적 덕목들이
폐기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를 두고 전쟁 중에 아기를 출산하게 된
친척집의 큰일보다도 자신의 안위를 먼저 챙기던 당숙모는 “난리통엔
제가끔 저 살기도 바쁜데 남의 덕 바라게 됐니? (…중략…) 누구든 극
도에 달하면 눈이 뒤집히고 간덩이도 뒤집히고 하는 법”20이라고 정리
한다. 전쟁을 겪으면서 한국에서 오래도록 ‘인간적’ 삶의 규준이 되었
던 ‘체면’이나 ‘예절’ 따위는 벗어던질 수 있는 혹은 벗어던져야만 하는
낡은 옷이 되었다. 생존에의 위협에 맞서 싸워 이기기 위해 인간은 본
능적 반사기능, 악다구니와 육박전에서 승리할 수 있을 만한 영악함,
먹을 것에 대한 강한 집념 등으로 무장해야 했다. 그리고 ‘시장’은 그러
한 도덕적 감각의 변화가 극적으로 나타나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시장의 풍경을 묘사한 부분들에 주의를 기울여
보면, 박완서가 사용한 ‘악다구니, 육박전, 본능적 반사기능, 일사불란,
패배’ 등의 어휘들이 모두 전쟁의 틀(frame)로부터 나온 것임을 알 수 있


19 박완서, 목마른 계절, 세계사, 2012, 172쪽.
20 위의 책, 254쪽.
박완서 소설에 나타난 ‘먹는 인간’의 의미 345


다. 말하자면 이 소설에 등장하는 시장은 전장 속의 전장, 전장화된 시
장의 모습인 것이다. “생생한 생활의 모습들을 보고픈 갈망”21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시장을 긍정하는 하진의 내면은 “시장을 생각하고 가슴
이 울렁댄다. 사람들이 웅성대고, 이해관계와 경쟁, 드높은 아귀다툼이
작열하는 곳이, 죽은 도시에 아직도 그런 산 구석이 있는 것이다”22와
같은 구절을 통해 보다 분명해진다. 친척이나 이웃들 사이의 일상적 교
류를 포함해 공동체적 삶이 와해된 시기에 하진은 시장을 유일하게 산
사람의 무리가 있고 또 그들의 욕망이 가감 없이 드러나는 공간으로 이
해한다. 그러하기에 시장에 머물면서 행복의 가능성을 상상하고, 전쟁
을 비난하고, 생활을 찬미한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 그녀는 자신이 시
장에서 전쟁을 보고 또 말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 무지 때문에 “적
어도 행복해질 수 있는 가능성 권내에나마 있고”23 싶었다는 이유만으
로, 소비경제를 너무나 손쉽게 그리고 소박하게 옹호하게 된다.
그리고 공기…… 그 맛있음! 색색가지의 행복과 색색가지의 불행의 가능
성이 용해된 감칠맛 있는 공기의 맛, 사람 살아가는 재미, 보람, 가능성의 풍
성, 풍요가 있는 그 무미(無味)의 맛있음! 자기의 의사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함부로 어떤 거대하고 무자비한 힘에 의해 틀(鑄型)에 부어지고 마는 끔찍스
러운 일을 당해본 자만이 알 수 있는 자유로운 공기의 그 맛.24
휴전이 선언된 후 얻게 된 자유를 하진은 어떤 거대하고 무자비한
힘에 의해 억압받아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공기의 맛으로 여긴다. 인
민군 치하에서 하진은 인간이 생물 / 무생물의 수준으로 강등될 수 있


21 위의 책, 303쪽.
22 위의 책, 312쪽.
23 위의 책, 252쪽.
24 위의 책, 410쪽.
346 상허학보 45집, 2015


음을 배웠고, 먹을 / 먹일 권리조차 박탈당한 채 다만 생존에 급급해 살
았다. 그 치욕적 생존의 시간은 공기에서도 감칠맛을 느낄 줄 아는 특
별한 미각을 발달시켰다. 아감벤 식으로 말하면 그것은 “벌거벗은 삶
(bare life)”25을 살아본 자만이 획득할 수 있는 ‘동물적’ 미각이다. “어떠
한 인간적인 것도 완전하게 거부”26되는 전장의 혼란 속에서 하진은 인
간일 수는 없었으나 ‘인간적’인 것을 완전히 잊지는 않은, 동시에 ‘인간
적’으로 살았다면 끝내 몰랐을 ‘동물적’ 미각을 갖게 된 “인간-동물(the
man-animal)”27이었던 것이다.
한국전쟁을 기점으로 시장은 이미 ‘언어의 층위’에서 전장화돼 있었
으며, 그러한 시장을 옹호한 한국인에게 동물적 미각이 발달해 있었다
는 점은 전후 한국인의 삶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전후 한국인
의 삶은 시장을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됐는데, 이때 ‘시장’은 상거래가
이루어지는 물리적 공간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한국전쟁 직후로부터
4․19와 5․16을 지나 박정희 체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권에서 ‘빈곤
탈피’, ‘경제개발’ 등으로 요약될 수 있는 경제적 사안이 정치적 담론의


25 여기에서의 ‘벌거벗은 생명’은 아감벤의 많은 글 중에서도 특히 다음의 문맥에서 가져
온 것이다. “두 기계(아감벤은 동물과 인간을 구별해 인간을 규정하는 전근대와 근대
의 특정한 인식론적 메커니즘을 ‘인류학적 기계(anthropological machine)’로 명명한다
-인용자)는 그 중심에 오직 무차별(indifference)의 지대를 설치함으로써만 작동할 수
있다. 그 지대 ― 이미 잠재적으로 현존하고 있기 때문에 항상 결여돼 있는 것처럼 보
이는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 같은 ― 에서 인류와 동물, 인간과 비인간, 말하는
존재와 단지 살아있는 존재 사이의 분절(articulation)이 반드시 발생한다. 모든 예외의
공간이 그렇듯이 이 영역은 사실상 완전히 비어 있다. 그리고 거기에서 발생해야만 하
는 진정한 인류라는 것은 단지 부단히 갱신되는 판정의 장소일 뿐이다. 그 판정 속에
서 휴지(休止)와 그것들의 재분절은 항상 새롭게 탈구되고 이탈된다. 그러나 그로써
획득되는 것은 동물의 생명도 인간의 생명도 아니다. 단지 생명 자체로부터 분리되고
배제된 생명, 즉 ‘벌거벗은 생명(bare life)’일 뿐이다.”(Giorgio Agamben, translated by
Kevin Attell, The Open-Man and Animal, Stanford Univ Pr, 2003, pp.37~38)
26 박완서, 목마른 계절, 세계사, 2012, 366쪽.
27 Giorgio Agamben, op. cit., p.36.
박완서 소설에 나타난 ‘먹는 인간’의 의미 347


중심에 위치해 있었다. 그로 인해 한국인의 삶은 전쟁 이후 그 어느 때
보다 시장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됐다.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
28로서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전장화된 시장’에서 산다는 것은
‘전장화된 삶’을 산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인식적 전환은 일상
에서 불현듯 ‘사는 게 전쟁이다’와 같은 발화로 표면화되지만, 대부분
은 생존지상주의, 황금만능주의, 경쟁이데올로기, 신자유주의의 배후
에서 담론의 심층 프레임29을 구성한다.
따라서 한국전쟁이 한국자본주의 형성에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주
장30에는 설득력이 있다. 한국전쟁을 통과해 ‘삶은 먹기’가 ‘(시장에서의)
삶은 (먹기의) 전쟁’으로 구체화됐을 때, 한국인은 한정된 식량을 서로
에게서 빼앗아 삶을 연명해야 한다는 상상력에 붙들려 살게 되었고, 만
인이 적인 새로운 세계에서 삶의 중요한 가치를 수호하는 일은 이제 전
적으로 개인의 수완에 달리게 됐다. 먹을 / 먹일 권리의 보장을 요청할
뿐만 아니라, 무엇이든 맛볼 가능성의 풍요를 요구하는 동물적 미각을
가진 사람들이 먹을거리를 나누는 전근대적 공동체를 되찾기는 요원
해졌다. “색색가지의 행복과 색색가지의 불행의 가능성이 용해된”31 분


28 미셸 푸코, 오트르망 역,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난장, 2012.
29 조지 레이코프는 담론에 쓰이는 프레임을 ‘표층 프레임’과 ‘심층 프레임’으로 구분한
다. ‘슬로건’에 가까운 표층 프레임은 특정 공동체가 공유하는 심층 프레임에 의존해
관철되거나 폐기된다. 심층 프레임은 공동체 구성원 공통의 체험에서 비롯된 ‘심성구
조(mentalités)’에 호응하며 ‘상식(common sense)’에 부합한다. 이하 프레임 분석 관련해
서는 프레임 전쟁(조지 레이코프․로크리지연구소, 나익주 역, 창비, 2007), 도덕,
정치를 말하다(조지 레이코프, 손대오 역, 김영사, 2010)를 참조.
30 한국전쟁을 시민전쟁의 관점에서 파악한 정진상은 대규모 인구이동을 수반한 한국
전쟁 이후 “신분의식이 해체되고 그 자리에 평등주의와 개인주의, 황금만능주의와 경
쟁이데올로기 등이 중요한 사회의식으로 자리잡았다”고 보고(「한국전쟁과 전근대적
계급관계의 해체」, 경제와사회 46, 비판사회학회, 2000, 108쪽), 강인철은 경제적 근
대화를 위한 비경제적 조건을 형성하는 데에 한국전쟁의 영향력이 막강했다고 본다
(「한국전쟁과 사회의식 및 문화의 변화」,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 한국전쟁과 사회
구조의 변화, 백산서당, 1999).
348 상허학보 45집, 2015


별없는 풍요가 지상과제가 되자, 먹이를 구하는 일에 강박적으로 매달
리는 사람들에게 ‘근면, 성실’이라는 새로운 칭찬의 꼬리표가 달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1970년대 한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은 삶에 대한 이와
같은 인식의 일대 변화가 전제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이 소설이 1970년대산(産)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4․19, 5․16, 박정희 체제를 거치며 형성된 지배담론으로부터 이 소설
은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심층에서 긍정되는
반공주의와 시장만능주의는 기실 ‘빈곤탈피’와 ‘경제개발’을 골자로 하
는 한국식 근대화 담론32과 긴밀하게 결속돼 있다. 가령 50년대부터 이
어져온33 “빈곤과의 대결”34이라는 슬로건은 한국전쟁 시기 굶주림에
시달렸던 체험을 환기하면서 동시에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반
발심을 일으켜 반공주의를 강화하고, 무조건적으로 경제개발을 우선
시하는 논리에 대항할 명분을 회수해 가버린다. 더불어 한국전쟁을 거
치며 일상에서 ‘도덕적 회계시스템’35은 ‘적나라하게’ 가동되기 시작했
다. 목마른 계절의 당숙모가 피난에 드는 비용을 떠올리면서 하진에
게 “너희 형편으론 그저 죽치고 들어앉았는 게 상책이니라. 우리도 그
렇지, 이만했으면 6․25 때 신세는 갚은 셈 아니냐”36고 충고하는 장면


31 박완서, 목마른 계절, 세계사, 2012, 410쪽.
32 한국식 근대화 담론에 대해서는 「박정희 체제의 지배담론-근대화 담론을 중심으로」
(황병주, 한양대 박사논문, 2008) 참조.
33 1950년대부터 시작된 ‘빈곤의 정치학’에 대해서는 공임순, 「4․19와 5․16, 빈곤의 정
치학과 리더십의 재의미화」(서강인문논총 38, 서강대 인문과학연구소, 2013) 참조.
34 「朴大統領 年頭教書 全文」, 경향신문, 1964.1.10.
35 도덕적 회계 시스템이 작동한다는 것은 도덕적 행동을 교환의 한 부분으로 보고, 도덕
과 관련해 경제적 비유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그래서 도덕적 상호작용은
대차평균을 맞추는 일과 흡사해진다(조지 레이코프, 손대오 역, 도덕, 정치를 말하
다, 김영사, 2010, 69~96쪽 참조).
36 박완서, 목마른 계절, 세계사, 2012, 254쪽.
박완서 소설에 나타난 ‘먹는 인간’의 의미 349


은 이러한 세태의 변화를 잘 말해준다. 한국전쟁 중 이미 도덕적 실천
이 계량화되고, 도덕적 상호작용이 철저한 교환관계로 변질됐다는 진
실은 급속한 근대화와 도시화로 인해 발생한 온갖 사회적 문제의 해결
책으로 유교적 전통에 뿌리를 둔 덕목들을 강조하던 당대의 지배담론
이 얼마나 허술하고 기만적인 것이었는가를 짐작하게 해준다.37
목마른 계절은 1970년대 체제와 담론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대중
의 심리적 동인을 그들의 한국전쟁 체험과 연이어 놓음으로써, 지금-
여기까지 이어지고 있는 한국적 삶의 정신적 기원을 서사화했다는 데
에 큰 의의가 있다. 그러나 박완서는 전쟁 체험이 가진 무게를 인정하
면서도, 한편으로는 전쟁 체험이 만든 새로운 삶의 방식이 어떤 맹목과
균열을 내재하고 있는지를 탐구하는 일에 매달렸다. 이에 대해서는 그
의 세 번째 장편 도시의 흉년에서부터 가시화되고, 이후 단편소설에
서 눈에 띄게 본격화된 박완서의 자기 혹은 당대 반성적 서술들이 그
증거가 되어줄 것이다.


4. 포식의 시대와 진정성의 주체-도시의 흉년
목마른 계절의 하진과 도시의 흉년의 엄마 ‘김복실’은 공통된 체
험을 하나 가지고 있다. 그것은 한국전쟁 시기, 대부분의 주민이 피난
을 떠난 빈 마을에 남아 도둑질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진이 가족


37 예컨대, 노사갈등의 해소를 주요 과제로 삼고 있는 박정희의 연설문에는 ‘상부상조’,
‘봉공의식’, ‘융화협동’, ‘공존공영’과 같은 어휘가 등장한다. 유교적 전통이 남아있던
한국사회에서 특히 ‘예(禮)’와 관련된 실천들이 한국전쟁 전후로 어떻게 인식됐는가를
밝히는 문제는 한국인의 도덕관념의 추이를 살피는 데에 긴요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서는 추후 섬세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350 상허학보 45집, 2015


의 먹이를 구해오면서도 ‘인두겁’을 운운하는 오빠의 눈치를 봐야 했던
사정과는 다르게, 도시의 흉년의 엄마는 비난을 받지 않았던 것은
물론이고, 가족을 먹여 살린다는 ‘도덕적인’ 만족감에 도취할 수 있었
다. 전쟁 중 발아한 도덕적 해이는 도시의 흉년에서 ‘모성애’라는 이
름으로 얼마든지 합리화 가능한 것이 된다. 아이를 배불리 먹여 살리
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새로운 모성애”38는
자녀에게 늘 무언가를 더 먹이려는 기이한 집념으로 발전한다. 부모세
대의 일방적이고 가학적인, 그래서 어느 만큼은 폭력적인 먹기에의 강
요에 대해 이 소설의 화자인 ‘지수연’은 ‘구역질이 난다’거나 ‘역겨움을
웩웩 토해냈다’는 등의 표현으로 거부감을 나타낸다. 요컨대 수연에게
자발적인 ‘폭식’과 ‘거식’은 부모세대에 대한 저항의 표식이자, 그들과
다른 ‘자기’를 나타내는 방식인 것이다.
속물적 삶의 방식을 주입하는 부모세대의 기대를 충족시켜줄 수 없
으리라는 확신 속에서 모종의 일탈을 꿈꾸는 수연의 내면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현재의 자기 자신과는 다르게 살고 싶다는 열정이다. 그 열
정은 우선 자기를 둘러싼 것들에 대한 환멸과 분노로 나타난다. 아버
지의 외도, 언니 ‘지수희’의 사랑 없는 결혼, 자기 태중의 아이를 감쪽같
이 지우고 인공적 순결을 심어놓는 엄마의 뻔뻔한 모습을 보며 수연은
“사람의 행복이란 사실보다는 허위와 더 친하다는 확신”39에 이르게 되
고, 허위가 기둥목처럼 버티고 서있는 집으로부터 벗어나겠다는 일념
하에 여러 사건을 계획하고 실행한다. 그러나 수연의 일탈은 방황 수
준에 그치는 것이어서, 이 소설의 중반에 이르러서도 수연은 “엄마의
허위는 우리 집안 공기 같은 거여서 나로서는 도저히 헤어날 수도 맞붙
을 수도 없었다”40는 혼잣말을 한다. 그녀 스스로가 파악한 것처럼, 문


38 박완서, 도시의 흉년 1, 세계사, 2012, 61쪽.
39 위의 책, 179쪽.
박완서 소설에 나타난 ‘먹는 인간’의 의미 351


제는 “엄마가 죽자구나 목숨 걸고까지 지킬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거부하고 대신 여봐란 듯이 내세울 새로운 가치를”41 아직 마련해
두지 못했다는 점에 있었다. 수연이 소설의 후반부에서 ‘구주현’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에 적극적으로 매진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
다. 그녀가 따르고자 하는 가치, 참된 자아의 모습은, 데모대의 선두에
높이 솟아 무언가를 외치는 구주현을 마음껏 옹호하고 싶은 마음과 근
사(近似)한 것이었다.
가족이라는 “공동체로부터 주어지는 역할 모델과 자신의 진정한 욕
망 사이의 괴리를 발견하고, 이를 주체적으로 극복하는”42 과정에 있는
수연의 모습은, 그녀가 이미 진정성(authenticity)의 주체임을 웅변해준
다. 물론 그녀에게 뚜렷한 목표나 성취는 없었지만, 심지어 그녀는 대
상이 불분명한 분노에 시달리며 패색 짙은 자기혐오에 빠져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여기기 일쑤였지만, “진정성 추구의 기본적인 충동은 어떤
내용의, 어떤 품질의 삶이든지 간에 개인 자신에게 진실한 삶을 살려는
파토스이다. 진정성의 파토스는 개인으로 하여금 그의 삶이 사회적으
로 인정된 원칙과 일치하는가가 아니라 그 자신의 자아, 감정, 신념과
일치하는가를 묻게 한다. 따라서 그것은 개인 스스로 그 자신의 삶의
방식이나 모양을 만들려는 열정을 포함한다. 진정성을 추구한다는 것
은 달리 말하면 개인의 자기 창조적 자유를 실현하는 것이다.”43 이 소
설의 수연은 ‘먹어라’는 부모세대의 명령과 싸우기를 마다하지 않으면
서, 식이장애라는 형식으로 자기를 주장하고, 자기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는 먹이를 찾아 헤맨다. 그녀가 앓는 식이장애는 프로이트적 의미에
서의 증상이 아니라, 일종의 윤리적 선택으로 보인다. 그리고 ‘나는 무


40 위의 책, 261쪽.
41 위의 책, 107쪽.
42 김홍중, 마음의 사회학, 문학동네, 2009, 26쪽.
43 황종연, 비루한 것의 카니발, 문학동네, 2001, 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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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을 먹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답하기 위해 구주현과의 연애에 투
신하는 이 소설의 후반부는 진정성의 주체의 모험담으로 읽힌다.
까다로운 비위를 가진 수연은 자신의 비위에 거슬리는 것들에 대해
분노하며 자신의 비위에 맞는 것들을 찾아나간다. 자신에게 알맞은 먹
이를 찾아가는 그 행보는 진정성의 주체로서의 수연에게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자문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그럴수록 그녀는
자기 자신과 싸우게 된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로부터 단절
하지 않는다면, 참된 자아와의 합일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수연에게
가족과의 단절은 큰 결단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려면 부모로부터의
물질적 지원을 완전히 포기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연은 물질
적 기반은 잃고 싶지 않다. 물질적 기반에는 손상을 입지 않으면서 정
신적으로는 고양되고자 했던 수연은, 학생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갇힌
구주현을 면회하러 가서야 그러한 욕망이 얼마나 모순적인 것인가를
통렬히 깨닫는다.
여기저기서 선 채로 앉은 채로 시퍼런 입술로 김도 덜 오른 호빵을 아귀아
귀 먹는 것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나도 뭔가 먹어야 할 것 같은 묘한 강박관념
을 느꼈다. 분명히 식욕은 아니었다.
구주현이 감방 속에서 딴 수감자들과 동등하게 살기를 벼르고 있다면 나도
저들보다 잘난 체해서는 고상한 체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일종의
의리랄까 연대감 같은 거였다.
나도 호빵을 하나 샀다. 김이 덜 오른 호빵의 스펀지 같은 감촉이 뜨악한 식
욕을 아주 없게 했다.
나는 그것을 먹지 않았다. (…중략…) 솔직히 나는 호빵을 먹기가 싫었던
것이다. 뜻만 겸허했지 입은 아마도 오만했던 것이다.44


박완서 소설에 나타난 ‘먹는 인간’의 의미 353


마치 뱀이 허물을 벗듯이, 부모세대의 물질적 기반은 와해하지 않고
외따로 자립에 이르고자 했던 수연의 꿈은 진정한 삶을 추구하는 ‘겸허
한 뜻’과 속물적 삶의 방식에 물들어 끝없는 욕망을 추구하는 ‘오만한
입’의 서로 다른 지향을 끝내 조화시킬 수 없었던 것처럼, 이룰 가망이
없는 것으로 판명난다. 소설의 결말에서 수연의 독립은 다분히 우연적
이고 수동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아버지의 외도와 엄마의 부정과
수희 언니의 불행이 의도치 않은 계기에 의해 모두 탄로 나면서 엄마가
목숨을 걸고 지키려 했던 가족의 안녕이 파괴되고 만 것이다. 여하튼
수연은 더 이상 지금처럼 살 수 없게 되었고, 구주현과 새로운 삶을 계
획한다. 그 삶의 첫 장면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인데, 거기에서 수연은
구주현에게 목구멍에서 붐비는 여러 다른 말들을 애써 삼키고 다만 배
가 고프다고 한다. 아마 이 ‘새로운’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 삶의 방식
은, 엄마의 그것과는 다를 것이다.
도시의 흉년에 등장하는 부모세대의 욕망과 ‘새로운 모성애’는 ‘전
쟁, 가난, 근대화’를 핵심어로 하는 한국 근현대사의 맥락에서 다시 생
각해볼 여지가 있다. 제목을 곱씹어 보면, 박완서는 1970년대 후반 근
대화된 도시가 나날이 번영을 구가해가고 있지만(풍작), 잘 사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은 현저히 부족하다고(흉년) 파악한 것 같다. 이
러한 시대적 진단을 담고 있는 이 소설에 수연과 같은 진정성의 주체가
등장했다는 것은 눈여겨볼 일이다. 수연은 엄청난 음식이 조리되는 부
엌을 두고 후텁지근하고 부산한 배의 기관실을 떠올리며 “우리 힘으론
도저히 멈추게 할 수 없는 광기”45를 보곤 했다. 그리고 불안해한다. 부
모 세대가 건조하고 띄워 항해 중인 ‘가족’이라는 배에서 쉽사리 내릴
수도 없지만, 설사 용감하게 내린다고 하더라도 표류나 익사를 각오해


44 박완서, 도시의 흉년 3, 세계사, 2012, 58~59쪽.
45 박완서, 도시의 흉년 1, 세계사, 2012, 37쪽.
354 상허학보 45집, 2015


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연은 물질적 기반
이 파괴되지는 않으면서 자유로울 수 있기를 꿈꾼다. “완벽한 탈피”46
로 요약되는 수연의 꿈은 결과적으로 이들 가족이 파멸에 이르면서 불
가능한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 결말에는 당대에 관한 두 가지 진실이
담겨있다. 첫째, 진정성의 윤리적 주체에게 아직 그 뜻을 현실화할 공
적 지평은 허락되지 않았다는 것. 둘째, 그 공적 지평을 열어젖히기 위
해서는 부엌의 ‘광기’, 즉 ‘경제성장’으로 상징되는 근대화 담론의 결과
에 대한 대중의, 그리고 자기 자신의 과도한 집착과 환상에 맞서야 한
다는 것.
당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소설의 엄마처럼 “스스로의 허위를 허위
로 의식하고 있지조차”47 못하며 살았던 데에는 어떤 공통된 이유가 있
었을 것이다. 허위가 모두 사라지자 엄마에게 남는 것은 ‘배고파 죽겠
다’는 말뿐이다. 기함과 졸도 이후 토사곽란을 달고 살게 된 엄마, “지
글대던 온갖 욕망이 모조리 식욕으로 변질한 것처럼 엄마는 먹는 것만
탐했고 그 밖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고,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48
먹는 것에만 집착하는 엄마에게서 겹쳐 보이는 것은 한국전쟁을 겪으
며 오직 먹기 위해 무엇도 서슴지 않았던 ‘인간-동물’의 모습이다. 어
쩌면 “차라리 고아이고 싶다”49는 수연의 바람은, 한국전쟁 시기 모두
가 ‘벌거벗은 생명’이었으며, 그 끔찍한 광경을 목격한 역사와 전혀 무
관해지고 싶다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진정한 자아
와 좋은 사회에 대한 열망의 접합이 가능했던 80년대적 사회문화적 배
경’50이 아직 형성되기 전에, ‘이렇게 사는 것이 좋은 것인가’라는 질문


46 박완서, 도시의 흉년 2, 세계사, 2012, 307쪽.
47 위의 책, 261쪽.
48 박완서, 도시의 흉년 3, 세계사, 2012, 287쪽.
49 위의 책, 159쪽.
50 김홍중, 앞의 책, 30쪽.
박완서 소설에 나타난 ‘먹는 인간’의 의미 355


에 너무 일찍 도달한 진정성의 주체들이 가진 공통된 소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소망과 관련하여, 삼키고(인간적 조건) 토하는(윤리적 선택) 일이 모
두 ‘입’에서 일어난다고 할 때, 도시의 흉년의 수연이 ‘건강한 치아’를
가진 순정에 대해 각별한 호기심과 호감을 느낀다는 점은 특별히 주목
을 요한다. 수연은 “내 행동의 주체가 나 아닌 생판 남인 것 같은 고약
한 도착”51의 느낌과, 엄마의 금이빨, 수희언니의 인조 속눈썹, 그리고
자신의 인공적 순결을 동시에 떠올린다. 인공적인 것에 대한 수연의
혐오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허위를 증오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즉
엄마의 금니는 허위를 요구하는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아의 자연
미를 가리는 인공적 위장술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수연은 그런 엄마
와 순정을 대척점에 놓는다. “순정이의 가장 순정이다움에는 우리 집
의 우리 집다움과 도저히 화해할 수 없는 무엇이 있었다. 또 화해해서
도 안 될. 나는 엄마의 견고한 금니와 순정이의 건강한 흰 이가 서로 사
생결단 수빈이를 물어뜯는 괴기한 광경을 상상했다.”52 그 무렵 수연은
자꾸 “요새 세상을 물어뜯고 싶었다.”53 왜냐하면 “요새 세상, 현대가
그 거대한 아가리를 벌리고 모든 가치를 삼켜 무화시키는 광경을”54 꿈
속에서 보았기 때문이었다. 요컨대 박완서의 상상력에서 세계는 자아
를 집어삼키는 ‘입’이다. 그 입에 맞서려면 순정이처럼 건강하고 흰 이
빨로 말을 씹어뱉을 줄 아는 ‘순정(純正)’이다움이 있어야 한다. 박완서
소설의 이상적 주체인 ‘순정한 인간’은, 한국이라는 나라의 풍토가 가
하는 온갖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운 이들을 부러워하면서도, 그렇게 되
기를 선뜻 택하기보다는 아직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또 하나


51 박완서, 도시의 흉년 2, 세계사, 2012, 201쪽.
52 위의 책, 92쪽.
53 위의 책, 126쪽.
54 위의 책, 1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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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틀니의 중압감 밑에 옴짝달싹 못하고 놓여진 채”55라고 말하는 사람
이다. ‘한국의 근현대사’라는 틀니를 끼운 채로 살면서, 그 고통을 말로
씹어뱉는, 입의 고통을 입으로 해결하는 지혜가 박완서 소설에는 있다.
먹어야만 하는 인간적 족쇄를 차고서 ‘안 먹고 싶다’고 쉴 새 없이 떠드
는 인간, 박완서 소설의 순정함은 여기에서 나온다.


5. 결론
본고는 한국 근현대사의 맥락을 고려하면서 박완서 소설을 읽고, 소
설의 형식적 자질에 주의하며 그 형식을 낳은 시대정신을 유추해본 작
업이다. 향후 박완서 소설을 포함해 전후부터 현재까지의 소설들을 대
상으로 이와 같은 연구를 확장한다면 한국인의 정신적 삶의 역사적 굴
곡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시대와 상호작용하며 새로
출현하거나 사라져간 다양한 주체성을 발견하고, 소설의 언어와 시대
정신의 결절이 서로 어떻게 연동되어 있는지를 가늠해볼 필요가 있다.
또한 ‘체면’이나 ‘예의’처럼 유교적 전통에 바탕을 둔 덕목들이 한국전
쟁 체험 이후 급격히 폐기되었다고 할 때, 그 덕목들을 대체한 새로운
덕목은 무엇이었으며, 대체 과정 중에 갈등은 없었는지, 새로운 덕목이
일상에 자리를 잡기까지 어떠한 진통을 겪었는지 등을 궁구해보는 작
업도 필요하다. 이는 정신사를 구축하는 데에 필수적인 윤리와 도덕에
대한 감각의 변화를 살피기 위한 작업이다.
언어에 각인돼 있는 상상력과 사유의 구조를 밝히고, 한국인의 정신


55 박완서,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틀니」,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문학동네, 2006, 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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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삶의 기원을 찾고, 그로부터 지금-여기를 이해해보고자 했던 본고
의 목표는 무엇보다도 지금-여기의 문제를 풀 단서를 찾는 것이었다.
특히 윤리와 도덕에 대한 지금-여기의 감각이 어디로부터 온 것이며,
어디로 흘러갈지를 알아차리기 위한 것이었다. ‘먹기’에 매진하는 삶의
방식을 벗어나지 못한 지금-여기는 여전히 한국전쟁 체험으로부터 만
들어진 언어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어가 바뀌
지 않는 한 세계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 속에서, 앞으로의 과제
는 과거로부터 온 지금-여기의 상상력을 언어를 매개로 점검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는 언어의 개발을 도모하는, 두 가지 방향
으로 진행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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