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

문순태의 ?피아골?에 나타난 생태학적 상상력/박 찬 모.순천대



목 차
Ⅰ. 들어가며
Ⅱ. 무이념적 인물군상과 생존 본능
Ⅲ. 정령적 생명 인식과 역사적 해원
Ⅳ. 나가며
1)


|Abstract|
Mun, Sun-Tae’s literary world focuses on ‘hometown’ and ‘Han(恨)’. It
is the Korean War that comes across when pursuing this ‘hometown’ and
‘Han.’ That is the reason why many of his novels are classified as division
novels. This study aimed to examine ecological imagination in Piagol(피아
골) which inherits the genealogy of ‘Partisan literature.’ For this purpose,
chapter Ⅱ reviewed the ideology and orientation of the figures on the
novel in relation to the consciousness of the writer. Chapter Ⅲ examined
ecological imagination embodied in the life awareness of Bae Dal-Soo and
Bae Man-Hwa’s intention of resolving deep sorrow.
In chapter Ⅱ, the study examined that figures in Piagol had nondeological
identity participating in the war just for survival with special
reference to Bae Dal-Soo. The background of Bae Dal-Soo to be a
partisan or soldier has neither humanitarian, national justification nor
despise non-humane and demonic nature of partisan. Furthermore, there
was no ideological agony such as communism or democracy to him. The
*only reason that he was involved in the war pointing a gun both to
partisan and the military and the police is because of his desire of having
a gun and also of his instinct for survival. As such, this work describes the
hazardous life and instinct for survival beyond the boundary of extreme
antipodes of left wing and right wing regardless of ideology. Nonetheless,
the writer describes two horrendous massacre of Bae Dal-Soo that shows
the latency of disrespect of others’ life in his non-ideological character and
instinct for survival.
And, chapter Ⅲ shows the attitude of Bae Dal-Soo who recognizes Mt.
Jiri as the embodiment of supernatural spirit and space of spirit where
death souls reside. Based on shamanistic vision of universe, he observes all
creatures as objects of worship and coexistence and furthermore seeks
nature and human being as organically circulating beyond the boundary of
life and death, which shows his repentance of past sins. And, Bae Man-Hwa
recognizes ‘history of death’ from Jeongyu-war(丁酉再亂) to the Korean
War through Min Ji-Wook, a journalist and perceives the existence of
souls who died unfairly showing the intention of resolving deep sorrow.
That is to say, the writer suggests shamanistic view of universe and view
of ego through Bae Dal-Soo and his daughter Bae Man-Hwa seeking
repentance and resolving deep sorrow. It indicates the repentance and
solving for regret that the writer continues to seek are originated from the
shamanistic world view. Therefore, this study is meaningful that the study
figured out the motivation and mechanism of resolving deep sorrow.
Key words : Mun, Sun-Tae, Piagol(피아골), division novels, Ecological
Imagination, shamanism
문순태의 ?피아골?에 나타난 생태학적 상상력 61


Ⅰ. 들어가며
문순태의 소설세계는 ‘고향’과 ‘한’으로 집약된다.1) 한으로 대변되는 민중들
의 정서와 애환이 작가의 해한 의지와 함께 탈향과 귀향이라는 서사 구조
속에 용해되어 있기 때문이다.2) 그리고 고향과 한을 추적할 때 만나게 되는
것이 6・25전쟁이다. ?물레방아 속으로?(1981), 「철쭉제」(1981), ?달궁?(1982),
「피아골?(1985), ?41년생 소년?(2005) 등이 분단소설의 범주에서 논의되고 있
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인 것이며,3) 이들 작품 속에는 전쟁과 분단에서 기인하
는 깊은 상처와 원한 등이 형상화되어 있다. 그렇지만 문순태의 분단소설에 대
한 연구가 ?달궁?과 「철쭉제」 등 몇몇 작품에 집중되어 있으며, ?피아골?에 대
한 본격적인 연구가 없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4)
그간 ?피아골?에 대한 연구가 영성했던 까닭은, ?피아골?의 공간(公刊)을
전후하여 등장한 ‘빨치산’5) 소재 작품인 ?지리산?(1985, 이병주), ?겨울골짜기?


1) 이은봉 외 엮음(2005), ?고향과 한의 미학?, 태학사.
2) 최창근(2005), 「문순태 소설의 ‘탈향/귀향 ; 서사 연구」, 전남대 석사학위논문; 박성천
(2008), 「문순태 소설의 서사 구조 연구–한의 극복양상을 중심으로」, 전남대 박사학위
논문.
3) 조구호(2011), 「문순태 분단소설 연구」, ?한국언어문학? 제76집, 한국언어문학회.
4) 김동환(1994), 「권력관계의 구조화와 분단소설의 한 양상–문순태의 ?달궁?, ?철쭉제?
론」, ?문학사와 비평? 제3집, 문학사와 비평학회; 최영자(2011), 「권력담론 희생자로서의
아버지 복원하기 : 황순원 ?일월?, 김원일 「노을」, 문순태 ?피아골?을 중심으로」, ?우리
문학연구? 제34집, 우리문학회; 한순미(2014), 「용서를 넘어선 포용」, ?문학치료연구? 제
30집, 한국문학치료학회 등이 있다. 이외에도 문순태의 노년소설에 대한 연구로는 전흥
남(2012), 「문순태의 노년소설에 나타난 ‘노인상’과 소통의 방식」, ?국어문학? 제52집, 국
어문학회가 있으며, 또한 그의 5・18문학에 대한 연구로는 주인(2003), 「5・18문학의 세
지평 : 문순태, 최윤, 정찬 소설을 중심으로」, ?어문론집? 제31집, 중앙어문학회; 심영의
(2008), 「5・18소설의 “기억 공간” 연구–문순태 소설을 중심으로」, ?호남문화연구? 제43
집,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등이 있다.
5) 빨치산의 유래는 ‘파르티잔(partisan)’이다. 파르티잔은 프랑스어의 ‘파르티(parti)’에서 비
롯된 말이며, 당원・동지・당파 등을 뜻하는 말로써 게릴라(guerrilla orguerriller)로 부르기
도 한다. 게릴라는 볼셰비키 혁명을 성공시킨 소련에서 빨치산으로 도입・변형시켜 타국
의 침략자에 저항하는 무장 인민투쟁으로서 적의 후방에서 인원과 기자재를 섬멸하는
62 호남문화연구 제57집


(1987, 김원일), ?남부군?(1988, 이태), ?태백산맥?(1989, 조정래) 등과 관련지
어 설명할 수 있을 듯싶다.6) 이들 작품들은 반공주의적 금제를 넘어서 빨치산
에 대한 이념적 왜곡상을 걷어내고 그들의 인간적 지위를 복원시켜 역사적 장
으로 편입시켰다는 점7)에서 학계의 집중적인 주목을 받았음은 주지의 사실이
다. 그렇지만 ?피아골?은 이전의 작품들에서 드러난 기법, 즉 원한과 해한의
화해 구조를 위해 “어떤 정신적・이념적 알맹이를 담지 않는 문순태의 소설기
법”8)이 또다시 반복되는 듯한 인상이 짙다. ‘한맺힘’과 ‘한풀이’ 세계에서 비롯
되는 심정적 공명에도 불구하고 ?징소리? 연작과 그 이후의 작품에 드러난
“패배의 아픔을 내면으로 돌려 삭이는 자의 침울한 미학”과 그 바탕에 깔린 “반
역사주의적인 형태”와 “반이성주의적인 태도”9)가 분단소설의 새로운 장을 개
척한 것으로 평가받는 작품들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면서 그의 작품들이 연구
자의 관심 밖으로 멀어졌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한 것이다. 이는 1987년 6월 항
쟁 이후 사회적・정치적 민주화와 더불어 이념적 금기의 빗장이 느슨해짐으로
써 마르크스주의의 영향 아래에서 분단과 6・25전쟁은 물론 한국의 근현대 사
회적 구조를 이념적인 맥락에서 본격적으로 접근하고자 했던 8・90년대의 연구


한편 통신수단과 그 밖의 것을 파괴하기 위한 독립된 부대34)라고 하기도 한다. 또한 적
이 점령한 지역에서 자발적으로 군사조직의 구성원으로 참여한 사람을 지칭하기도 한
다. 전수평(2012), 「빨치산 문학 연구 : ?남부군?, ?지리산?,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순
천대 석사학위논문, 11쪽.
6) 면밀하게 보자면 ?지리산?과 ?겨울골짜기?, ?태백산맥?이 각종 잡지에 연재된 해는 좀
더 이르다는 점을 경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리산?은 1972년 9월부터 1977년 8월까지 ?세대(世代)?에 60회에 걸쳐 연재되었으며, 「허망한 정열」이 1981년 ?한국문학?에 발
표되고, 이후 연재분과 「허망한 정열」, 그리고 원고지 3,000매 분량이 추가되어 1985년
발간되었다. ?겨울골짜기?는 「빼앗긴 사람들」(?숨은 손가락?(1985), 문학과지성사), 「적」
(?외국문학?(1985.12.)), 「내부의 적」(문예중앙(1987.3.)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소설이다. ?태백산맥?은 1983년부터 1989년까지 ?현대문학?과 ?한국문학?에 연재되었으며, 1989
년에 전 10권으로 출간되었다.
7) 유임하(1998), ?분단현실과 서사적 상상력-한국현대소설의 분단인식연구?, 태학사, 228 ~229쪽 참조.
8) 임헌영, 「문순태의 작품 세계」, 이은봉 외 엮음, 앞의 책, 54쪽 참고.
9) 이동하, 「실향의식과 ‘한’의 미학-연작소설 ?징소리?」, 앞의 책, 177~180쪽 참조.
문순태의 ?피아골?에 나타난 생태학적 상상력 63


풍토에서 기인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그렇지만 탈냉전 시대의 도래와 거대 담
론의 몰락 이후 연구자들 간의 이념적 입장 차이로 인해 6・25전쟁이 쟁론과
갈등의 요소로 비화되었다는 정치학자의 진단과, ‘구원의 관점’에서 평화와 통
일, 그리고 생명을 위한 사회적 실천이 필요하다는 그의 제언을 참고하자면,10)
정치적 이념을 초월하거나 포괄할 수 있는 ‘구원의 관점’의 모색도 필요할 것으
로 보인다. 환언하자면, 앞서 언급한 80년대 후반의 분단 문학이 거둔 이념적・
서사적 성취를 문학사적 측면에서 올곧게 정립하는 한편, 그간 연구에서 도외
시되었던 ‘무이념적 인간’11)들을 다룬 작품에 대한, 새로운 관점에서의 보다
면밀한 접근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맥락에서, 작가 문순태의 생태주의적 감수성에 주목하여 “작
가의 무의식에 내재되어 있는 생태학적 의미”를 규명한 연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12) 특히 생태학적 시선이 주체와 타자를 화해로 이끄는 동인이며, 해한이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기를 바라는 심층생태학적 의미와 맞닿아 있다는 지적은
매우 유의미하다. 해한의 동인 혹은 기제를 탐문함으로써 갈등과 원한의 해소
를 위한 인물들 간의 화해와 해한이 작위적이라는 저간의 지적13)에 대한 적절
한 학문적 응답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10) 박명림(2006), 「전쟁에서 평화로, 다시 생명과 인간으로」, ?한국사 시민강좌? 제38집,
일조각 참고.
11) 작가는 ?41년생 소년?을 통해 “무이념적 인간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해원”과, 이들의
“차디찬 고혼(孤魂)을 쓰다듬어 위로한 다음 자존을 되살려주어야 할 때”라고 밝히고 있
다. 문순태(2005), 「내 안의 소년을 만나러 가는 여행」, ?41년생 소년?, 랜덤하우스중앙,
6쪽.
12) 임은희(2008), 「문순태 소설에 나타난 생태학적 인식 고찰」, ?우리어문연구? 제30집, 우
리어문학회.
13) 조구호, 앞의 논문 참조. 아울러 한순미는 문학치료학의 관점에서 문순태의 소설을 지리
산 계열과 백아산 계열, 그리고 생오지 계열로 나누어 분석하면서, 지리산 계열에 속하
는 ?피아골?이 “해한에 쉽게 이를 수 없다는 그 한계 지점을 자각하는 데에서 끝맺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문학 공간을 계열화하여 문순태의 소설 세계 전모를 해명하려는
유효한 시도로 평가되지만, ‘자기서사-서사의 다기성-통합서사’로 이어지는 문학치료학
적 관점을 도식적으로 적용하기 위해 지리산 계열의 소설에 나타난 작가의 화해 의지를
지나치게 평가 절하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순미, 앞의 논문 참조.
64 호남문화연구 제57집


이에 본고 또한 생태학적 관점과 시각의 연장선상에서, ‘빨치산’ 소재 문학
의 계보14)를 잇고 있는 ?피아골?을 대상으로 작품 속에 형상화된 인물들에 대
한 분석을 통해 해한의 기제 밑바탕에 있는 생태학적 상상력을 보다 면밀하게
규명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2장에서는 배달수를 중심으로 ‘산생활’에 참
여했던 인물들의 이념성 여부와 그 지향 등을 작가의식과 관련지어 검토하고,
이어지는 3장에서는 배달수의 생명 인식과 배만화의 내면적 자각에 투영된 생
태학적 상상력과 그 의미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Ⅱ. 무이념적 인물군상과 생존 본능
?피아골?15)은 ‘딸의 이야기’와 ‘아버지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전자에서
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친모 김지숙을 따라 서울로 올라갔던 만화가 아버지
의 행적을 찾기 위해 지리산 피아골로 귀향하는 이야기를, 만화를 초점화자로
삼아 전개되고 있다. 그리고 후자에서는 만화의 아버지인, 지리산 깊은 골에
위치한 청수암(晴秀庵)에서 불목하니처럼 살아가고 있는 배달수의 모습과 그
의 과거사가 펼쳐져 있다. 스토리의 시간상 ‘아버지의 이야기’가 ‘딸의 이야기’
에 먼저임에도 후자가 서술상 앞서고 있는데, 이는 딸의 삶이 아버지의 삶과
결부된 운명적인 것임을 제시하고자 하는 의도16)와 함께 가족사적 파국과 불
행에서 기인하는 만화의 탈향과 귀향을 통해 배달수의 과거사에 대한 궁금증
을 증폭시킴으로써 그의 기구한 운명에 독자의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한 서사


14) 김복순에 따르면, 빨치산 소재 문학은 남북한 문학사에 있어 그 계몽 형성과정이 다르
다. 남한의 경우, 빨치산 문학의 계보는 해방 전 박영준의 「밀림의 여인」(1941)와 이태
준의 「첫 전투」로 이어지고, 해방 후에는 이병주의 ?지리산?, 김원일의 ?겨울골짜기?,
조정래의 ?태백산맥?, 이태의 ?남부군? 등으로 이어진다. 김복순(2002), 「이병주의 ?지
리산?론 - ‘지식인 빨치산’ 계보와 ?지리산?」, ?1970년대 장편소설의 현장?, 국학자료원,
116쪽 참고.
15) 문순태(1985), ?피아골?, 정음사. 작품을 인용할 경우 쪽수만 기입하고자 한다.
16) 조구호, 앞의 논문, 237쪽.
문순태의 ?피아골?에 나타난 생태학적 상상력 65


적 전략의 결과로 보인다.
배달수의 할아버지인 배문출과 아버지 배성도는 모두 지리산 사냥꾼이었다.
배문출은 황현(黃玹)의 순국 이후 의병에 참여하여 피아골에서 죽음을 맞고,
배성도는 ‘기미년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어머니와 아내 몰래 집을 나간 후 돌아
오지 않았다. 배달수의 할머니는 남편이 총을 가진 사냥꾼이었기에 난리통에
죽음을 당한 것으로 믿고 아들 배성도가 포수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지만, 결
국 아들 역시 사냥총을 장만한 후 행방불명이 된 것이었다. 그렇게 배달수는
유복자로 태어났고, 그 역시 “사냥꾼의 피내림”(206) 덕분[때문]에 사냥에 남다
른 솜씨를 보였다. ?피아골? 또한 ?징소리? 연작에서 징채잡이의 아들인 허칠
복과 장필수가 등장하듯 대를 이어 사냥꾼이 되는 인물들을 내세우고 있는데,
이와 같은 인물 설정은 배달수의 10대조 할아버지가 정유재란 때 왜병들과 싸
우다 순절하고, 배문출이 “할아버지의 거룩한 혼령에 먹칠을 하게 될 것만
같”(199)아 기병(起兵)에 동참했다 피아골에서 최후를 맞이한 것에서 알 수 있
듯이, 지리산 골짜기의 포수 또한 국난의 세파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들임
을 암시하기 위한 포석인 것이다.
배달수 또한 할아버지처럼 총을 지닌 명포수가 되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러
던 어느 날 나무를 팔기 위해 장에 나간 배달수는 우연히 국방경비대를 모집하
는 벽보를 보고, 그날 지원 입대하여 여수로 가게 된다. 이후 그는 여순반란 사
건에 휩싸여 ‘반란군’이 되고, 인민군의 퇴각 후에는 군경 토벌대에게 붙잡혀
‘지리산 공비의 자수자’들로 구성된 보아라 부대의 일원이 되어 빨치산을 토벌
하게 된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자 비로소 그는 ‘자유’의 몸이 된다. 지리산의 명
포수가 되고 싶다던 소박하지만 다소 무모한 꿈이 그를 전쟁의 한복판에 몰아
넣은 것이며, “덫을 놓기 싫어 지리산을 떠난 그가 이번에는 시대의 덫에 걸”17)
린 셈이었다.
그렇다면 그가 국방경비대에서 반란군 무리와 함께 빨치산이 되고, 이후 보


17) 김인환, 「귀환의 의미-장편소설 ?피아골?」, 이은봉 외 엮음, 앞의 책, 346쪽.
66 호남문화연구 제57집


아라 부대의 일원이 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가-1) 배달수는 아침이 되어 경찰서가 불에 타느라 검은 연기가 바다를 덮고
있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자신의 행동을 알아차렸다. …(중략)… 왜 그때 도망치
지 않았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어둠을 찢는 총소리와 미친 듯한 함성에 가벼운 흥
분을 느꼈었던 것 같기도 하였다. 호기심도 있었다.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움직이
고 있는 무리에서 이탈하기가 싫었는지 몰랐다.(218)
(가-2) “내가 있고 인민도 있는 게여. 내가 살고 난 다음에야 대중이 있단 말야.
나는 아직 내 힘으로 우리 어머니 한 분도 편안허게 해 드리지 못하고 있단 말이
여. 나는 말이여, 나헌티 힘이 있다면, 내 힘으로 헐 수만 있음사 우리 어머니부텀
편안허게 모시고 싶다 이 말이여. 우리 어머니 한 분 제대로 모시지 못한 주제 꼴
에 무신 인민 대중을 위허겄느냐 그말이랑께!”(312)


(가-3) “공산주의가 뭔지 아는가?” // “모릅니다요.”
“그럼 민주주의가 뭔가?” // “모릅니다요. 아 참 압니다요.”
“뭔가?” // “이승만 대통령 편입니다요.”
배달수의 말에 문순묵 대장은 한동안 말없이 멀뚱한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쳐
다보았다.
“공산주의가 뭔지도 모르면서 왜 싸웠는가?”
그가 다시 물었다.
“살기 위해서 싸웠습니다요” …(중략)…
“살아 남을라면 죽어라 하고 용감하게 싸우는 수밖에 없읍니다요. 그래야 살
수가 있읍니다요.”
문순묵 대장은 실소인지 한숨인지 피식 입바람을 내며 소리 내어 웃었다.(324
~325)
(가-1)에는 14연대가 제주도 폭동 진압을 거부하고 여수시를 점령한 후, 배
달수가 그들 ‘무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유가 드러나 있다. 예상치 못한 사건
과 상황에 대한 가벼운 흥분과 호기심, 그리고 일종의 군중심리에 그의 발목이
문순태의 ?피아골?에 나타난 생태학적 상상력 67
붙잡혔다는 것이다. (가-2)는 구례 출신으로 여수에서부터 생활을 함께 했던
이병대가 빨치산에게 필요한 목적의식과 사상성이 결여되어 있다며 배달수를
힐난할 때, 배달수가 대꾸하는 말이다. ‘인민’이나 ‘대중’은 목숨을 부지한 이후
의 일이며, 또한 어머니조차 제대로 부양하지 못한 주제에 인민 대중을 위한다
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가-3)는 인민군의 퇴각 이후 피아골 부대가
궤멸되자 홀로 피아골 토굴에서 은거하던 그가 잠시 집으로 내려왔다가, 피밭
마을을 수색하던 보아라 부대에 잡혀 심문을 받는 대목이다. 이미 보아라 부대
원이 된 이병대의 조언도 있었던 터라, 그는 서슴없이 이승만 편임을 밝히고
단지 살기 위해 싸웠다는 점을 솔직히 토로한다. 이처럼 배달수가 반란군이
되거나 보아라 부대의 일원이 된 배경에는 제주도 양민 학살을 거부한다는 인
도적・민족적 명분도, 그리고 우익인사와 경찰의 횡포에 대한 분노도, 전근대
적 신분 관계에서 비롯된 원한도, 빨치산의 비인간성과 악마성에 대한 경멸
따위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에게는 공산주의나 민주주의 따
위의 사상적 고민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전쟁의 소용돌이 휩싸여 빨치산과
군경 양측에게 각각 총부리를 겨눌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오직 총을 갖고 싶
다는 욕망과, 어머니를 위해서라면 무조건 살아남아야만 한다는 생존 본능 때
문이었다.
이러한 무이념적 태도를 배달수에게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피아골
중대본부 책임자에서 보아라 부대원이 되고, 휴전 이후 경찰이 되는 이병대 또
한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포로로 잡힌 배달수에게 자수를 독촉하며 “그 길만
이 사는 길이여”(324)라는 생존의 절박함이 묻어있는 그의 조언은 배달수의 사
상성을 추궁하던 그의 언행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는 것이며, 그의 전향 이유를
짐작케 해주는 대목이다. 배달수와 마찬가지로 이병대에게도 “좌익도 우익도
그들의 꿈이 아니었”고 “희망은 오직 살아남는 것뿐이었”으며, 지리산만이 “자
신의 목숨을 숨길 수 있는 길”(271)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보자면 ?피아골?에
는, ?태백산맥?에서 등장하는 강동기나 마삼수 등과 같은 소작농처럼, 비인간
적인 삶을 강요하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혁파하고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


68 호남문화연구 제57집


는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투쟁하는, 인민해방의 역사를 믿고 죽음을 두려워하
지 않는 인물들의 형상18)은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좌우익의 극한적 대척점에
서 그 경계를 넘나들며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시대의 덫’에 걸려버린 인물군
상들의 위태로운 삶과 생존 본능만이 전경화되어 있는 것이다.
(나) “좋소. 그러면 내가 여러분들헌테 물을 텐께, 솔직이 말해 주씨요. 사실 우
리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몸이요. 다행히 북에서 밀고 내려오기라도 헌다면 몰라
도, 자칫하면 지리산 귀신이 될지도 모르는 처지에 있소. 그래서 허는 말인듸, 죽
을지 살지 모르는 이 마당에, 우리가 처녀 총각으로 죽어서 몽당귀신이 되거든 억
울허다고 생각해서……” …(중략)…
“물론 살아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나도 여러분들과 같소. 아니 내가 더 할지
도 모르요. 그리고 나는 대장으로서, 다같이 살아 남을 수 있도록 싸울 것이요. 허
나……”
“허나 뭣입니까?”
“내 생각은 우리 대원들 가운데서, 서로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대원들끼리 혼
인을 허자는 것이요”(288-289)
6・25전쟁이 발발하기 전, 군경토벌대를 물리친 그는 부대를 구한 ‘영웅’으로
서 피아골 부대장이 된다. 그 이후 부대 내에서 ‘작은 사건’이 발생한다. 순천에
서 중학을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가 입산한 김태복과, 순천에서 여학
교를 다니다가 여순사건 때 반군들과 함께 입산한 손점순이 규율을 어기고 부
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던 현장이 대원들에게 발각된 것이었다. 그 둘에게는 즉
결처분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배달수는 엘리트 출신인 김태복을 구할
방도를 찾기 위해 궁리를 거듭한다. 그리고 그가 대원들에게 제안한 것이, (나)
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빨치산들 간의 혼인을 허용하자는 것이었다. 배달
수가 여대원들을 설득한 끝에, 결국 피아골 부대에는 김태복・손점순 짝을 포


18) 조구호(2007), 「현대소설에 나타난 ‘지리산’의 문학적 형상화와 그 의미」, ?어문론총? 제
47집, 한국문학언어학회, 236쪽.
문순태의 ?피아골?에 나타난 생태학적 상상력 69


함해서 일곱 쌍의 부부가 탄생하게 된다. 이렇듯 규율에 반하는 배달수의 제안
과 빨치산들의 수용은 대원들의 이념적 태도와 경향이 배달수의 그것과 다르
지 않음을 의미한다. 전쟁의 목적과 명분도 모르는 채 오직 생존만이 싸움의
이유이자 희망인 상태에서 처녀 총각으로 죽어 “몽당귀신”(288)이 된다는 것은
죽음 못지않은 두려움이었던 것이다.
작품에 형상화된 인물들의 이러한 무이념적 성격과 관련하여, 여순사건의
사회적・정치적 발생 배경, 구빨치산들의 입산 배경과 이념적 성향, 그리고 6・
25전쟁 전의 구빨치산들의 활동 방식과 군경의 진압 과정 등에 대해서 그 실체
적 진실에 육박해 들어가고자 하는 작가적 탐구 의식의 부재를 비판하기란 어
렵지 않다. 또한 문학사적인 측면에서도 ‘지식인의 이데올로기적 선택’(?지리
산?), ‘전쟁과 이데올로기, 국가권력의 원초적 폭력성’(?겨울골짜기?)과 ‘치열한
내적 고민을 지닌 인물들의 형상’(?남부군?), 그리고 ‘민중 평등과 반외제 자주
의 민중적・민족적 염원’(?태백산맥?) 등을 거론하며 작품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 또한 무리가 아니다. 그렇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성폭력 묘사를 통
해 빨치산들의 야수성, 비인간성, 잔혹함을 재생산함으로써 그들에 대한 증오
감과 적대감을 증폭시켰던 대중서사물들19)과 비교하자면 이 작품이 반공주의
의 이념적 자장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20) 더불어 작가가 고향상실
의 한을 적극적으로 주제화한 작가라는 점을 고려하자면, ‘짝맺기’ 삽화는 구성
원 모두가 하나의 가족처럼 모여 사는, “차별이 아닌 평등, 경쟁이 아닌 협력,


19) 대표적인 예로 이강천 감독의 <피아골>(1955)을 들 수 있다. 이 영화는 토벌대의 공습을
피해 온 여대원을 겁탈해서 죽이고, 그것을 숨기기 위해 무고한 다른 대원을 죽이는 등
빨치산의 성폭력이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강성률은 <남부군>이 등장하기 전까지,
한국 영화에 등장하는 빨치산은 짐승 같은 살인마의 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이것
이 <피아골>의 참고한 결과임을 지적한다. 강성률(2006), 「빨치산에 대한 극단적인 두
시선-<피아골>과 <남부군>」, ?내일을 여는 역사? 제26집, 서해문집, 216~217쪽 참고.
20) 빨치산을 성적 유린과 폭력을 일삼는 동물적인 광기가 서린 호색한으로 묘사한 장면은
반공 영화뿐만이 아니라 <수치>(구상) 등에서도 드러나는데, 이러한 장면 묘사는 라캉
(Jacques Lacan)의 정신분석학에 바탕에 둔 지젝(Slavoj Zizek)의 반유대주의 분석에서 드
러나는 바와 같이 타자가 과도한 주이상스를 경험할 것이라는 환상에 바탕에 두고 있는
것이다. 손 호머, 김서영 옮김(2006), ?라캉 읽기?, 은행나무, 170~171쪽 참고.
70 호남문화연구 제57집


비정함이 아닌 자비와 사랑이 넘치는 공간”21)을 꾸리고자 하는 민중들의 소박
한 염원을 반영한 작가 의식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스러운 사랑조차
금지하는 강제적 규율에 대한 부대원들의 원초적인 반감이 서술자를 통해 드
러나고 있는 점이 이를 방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규율을 위반한 두 사람
을 향한 부대원들의 냉정한 태도에 대해 그들의 “본능적인 투기”와 “화풀
이”(285)에서 비롯된 태도라는 서술자의 논평과, “사랑한다는 것 때문에 죽어
야 한다는 것은 너무 억울합니다”(286)라는 김태복의 항변에는 규율이라는 형
식이 강제하는 타율적 억압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함축되어 있다. 이는 곧
타율적 작위성의 비정함에 대한 비판과, 사랑이라는 자발적 상호관계성에 대
한 옹호가 내포된 것으로서, 작가는 빨치산들의 짝맺기를 통해 근원적인 삶의
양식으로서의 “비시간적인 순간에로의 상징적 회귀”22)를 실험하고 있는 것이
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무이념적 인물군상과 이들의 짝맺기는 사회역사적
상황에 대한 작가적 탐구의식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하게 전쟁에 휘말
릴 수밖에 없었던 민중들의 시련과 고난, 그리고 그들이 지향하는 소박하지만
이상적인 염원을 형상화하고자 했던 작가적 노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단지 총을 갖고 싶어서, 후에는 “지리산에서 비명에 죽어간 우리
조상님들의 원혼”(300)이 씌워 만신이 된 어머니를 위해 반드시 살아야만 했던
배달수, 생존만을 일차적인 목적으로 했던 그의 행동은 예기치 못한 참혹한 학
살을 야기한다. 빨치산으로서 군경 진압군을 기관총으로 사살하고, 이후 토벌
군으로서 빨치산을 몰살시킨 사건이 그것이다.
(다-1) 용기 있다는 것은 잔인하다는 말과 같을지 모른다. 배달수는 용감하게
싸워서 이긴 것이 아니라, 잔인하게 학살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본능적으로 자
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잔인하게 죽였다. 그러나 그 자신은 오직 죽지 않고 살


21) 신덕룡, 「기억 혹은 복원으로서의 글쓰기」, 이은봉 외 엮음, 앞의 책, 36쪽 참고.
22) 성현자는 “M. Eliade가 말하고 있듯이, 작가가 추구하고 있는 근원적인 삶의 양식은 비시
간적인 순간에로의 상징적 회귀를 통해서 실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성현자, 「「징소
리」 이미지 고」, 이은봉 외 엮음, 앞의 책, 184쪽.
문순태의 ?피아골?에 나타난 생태학적 상상력 71


아 남았다는 생각만으로 잔인성에 대해서는 무감각해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그
자신 마음의 소행이 아니고, 무기가 한 짓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가 한 짓이 아니고, 총이 그들을 무더기로 죽게 만들었으니, 자신은 잘못이 없
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283)
서술자는, 배달수가 군경 진압군을 기관총으로 사살한 것에 대해서 그가 자
신만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무감각한 태도로 잔인하게 타자를 학살하였으며,
잔혹성을 무기에게 책임 전가함으로써 잘못을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달
궁?에서 극락산의 영검이 약해진 원인이었던, 그리고 ?징소리? 연작에서 ‘징소
리’와 대비되던 ‘총소리’가 공히 “인간의 작위적인 이데올로기와 물질문명이 만
들어낸 인간 파멸의 소리”23)로 상징되듯이, ?피아골?에서 총은 자신만의 생명
을 위해 잔인함과 비정함을 전가받는 극악한 파멸적 사물이 된다. 그렇지만 그
가 자신의 행동과 그 결과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것은 또 다른 참극을 통해서
이다.
보아라 부대의 일원이 된 후 배달수는 예전 피아골 토굴로 부대원들을 안내
하곤 단지 토굴을 없애 버리고 싶다는 생각에 그곳에 망설임 없이 수류탄을 투
척한다. 흙더미만 튀어 오를 것이라는 그의 예측과 달리 흙더미와 함께 절단된
신체 부위들이 허공으로 치솟아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 새끼, 배달수는 너는
사람 사냥을 하러 온 게야?”(327)라는 부대장의 격정적인 비난처럼, 결과적으
로 스무 명이 넘는 빨치산의 목숨을 빼앗은 ‘사람 사냥’이 되어버린 셈이었다.
기관총 ‘사냥’ 때와 달리 이번에는 생명에 대한 위협이 없고, 용감함도 요구되
지 않은 상황에서 잔인한 행동을 한 셈이었다. “이 세상에는 네눔같이 사람을
많이 쥑인놈도 없을 꺼여”(328)라는 이병대의 말이 총알처럼 그의 심장에 박히
고,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죽음’을 의식한다.
(다-2) 자신의 생명이 구차스럽게 여겨질 만큼 모든 욕망을 잃어버렸다. 이미


23) 오세영, 「산업화와 인간상실 - ?징소리?」, 이은봉 외 엮음, 앞의 책, 207쪽.
72 호남문화연구 제57집


그에게는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만
은 살아 남아야겠다는 생명의 애착도 없어졌다. 그것은 그가 강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약해진 증거였다. 생명에 대한 애착도, 삶에 대한 미래의 희망도 잃어버린
그는 전투 때마다 앞장을 섰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배달수를 가리켜 용감한 전사
라고 말을 했으나, 그 자신이 생각하기에 그는 용감해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포기였다.(329)
배달수가 ‘자신의 죽음’을 의식하는 대목은, 서술자가 지적했듯이, 생명에 대
한 집착 이면에 참혹한 잔인성과 무책임한 태도가 도사리고 있었다는 점을 비
로소 그가 깨닫게 되었음을 일러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배달수와 서술자의 거
리가 없이 서술되는 (다-2)의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이, 생명에 대한 집착이 가
져온 참혹한 결과를 인식한 까닭에 이제 그는 생명에 대한 애착도 미래에 대한
희망도 끊어버린 채 전쟁에 참가하게 된다. 그렇지만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역
설적으로 생명과 희망과의 절연이 또다시 그를 “용감한 전사”로 만든다는 점이
다. 그가 얻은 ‘자유’가 “빨치산 토벌의 공을 세운 댓가”(329)라는 점에서, 그의
용감함의 이면에서 웅크린 잔인함의 정도를 헤아릴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
에서 보자면, 행위의 무의지성을 항변하고 있는 “자신의 포기”는 또다른 책임
회피인 것이며, 결국 피아간의 구별을 떠나 인간의 존엄과 생명을 직접적인 대
상으로 하는 전쟁이 생존과 희망에 대한 의지와 무관하게 참담한 비극으로 귀
결되고 있음을, 배달수의 파란만장한 삶의 통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만 여기에 한가지 덧붙여야 할 것은, 배달수의 할머니를 죽음에 이르게 한, “장
작을 패듯 노루새끼의 목을 찍”(204)던 유년 시절의 광포한 ’동물 사냥’이 두 차
례의 ‘사람 사냥’으로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으며, 배달수의 이러한 행동에 그
어떤 이념적 맹신도 없었지만 동시에 생명에 대한 존중과 외경심 또한 존재하
지 않았다는 점이다. 곧 총에 대한 욕망 때문에 ‘시대의 덫’에 걸린 배달수의
무이념적 성격과 생존 본능에는 타자의 생명을 경원시하는 태도가 음험하게
잠복되어 있었던 것이다. 달리 말해 그의 총이 이념의 맹목성에 의해 격발된


문순태의 ?피아골?에 나타난 생태학적 상상력 73


것은 아니지만 그 표적이 생명이었다는 점을 그는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Ⅲ. 정령적 생명 인식과 역사적 해원
전쟁이 끝나고 자유의 몸이 되어 피아골로 돌아온 배달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죄과의 아픔”이 아니라 “뜻밖의 은혜로운 행운”이었다. 김지숙과 어머니,
그리고 갓 태어난 딸 만화가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엄청난 비
극”(300)을 두려움 속에 예감하며 자신의 아버지가 홀연히 집을 나섰듯 지리산
으로 종적을 감추어 버린다. 그가 예감한 “엄청난 비극”은 오가치라는 인물의
삶을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오가치는 만화가 ‘까치이모’라고 부르는 인물로서, 김지숙이 ‘까치언니’라고
불렀던 빨치산이었다. 그녀 또한 피아골 부대가 궤멸될 때 김지숙과 함께 포로
로 잡혔으나 그녀와 함께 풀려났고, 이후 홀로 피아골에서 주막을 차려 생계를
꾸려나갔다. 만화의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까치이모에게 만화를 부탁할 만큼
만화 할머니와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던 인물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마을 사람
들의 눈에 비친 까치이모의 행실은 패악 그 자체였다. 가정의 파국은 개의치
않는다는 태도로 마을 남정네와 통정을 일삼고, 급기야 연곡사 설월스님을 유
혹해 ‘땡추’로 만든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마을에서 쫓겨나 읍내에서
여관을 운영하고 있는 까치이모에 대한 마음 사람들의 감정은 매우 좋지 않다.
그렇지만 오가치는 연곡사 인근 주민들의 시선과 속내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곳 한 켠에 여관을 세워 운영할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라) “꼴착 사람들한테 앙갚음을 허느겨!”
까치이모가 마치 몸서리치는 지난 일을 상기하기라도 한 듯 이를 악물고 얼굴
을 무섭게 구기며 말했다.
“앙갚음이라뇨? 골짜기 사람들이 뭘 잘못했기에요?”
74 호남문화연구 제57집
만화는 까치이모가 골짜기 사람들한테 쫓겨났다는 말을 떠올리며 반문했다.
“연곡사 꼴착의 모든 사내놈덜 말이다. 꼴착 안에서 젤로 좋은 집을 지어 놓고
그놈덜한테 앙갚음을 허느겨! 옛날에 나 젊어서 주막집 허고 있을 때, 그놈덜이
을매나 나를 무시했는나 아냐?” …(중략)…
만화는 까치이모의 속마음을 알 수 없어 답답한 듯 말했다.
“그럴수록 그놈덜 앞에 보란드끼 살어야제! 그래야 앙갚음이 되는 거니께!”
“이만하면 잘 사시지 않아요. 골짜기 사람들에 비하면 몇 배나 잘 사시는 거죠.”
“모르는 소리! 내가 떵떵거리고 잘 사는 꼴을 그놈덜 눈구멍에 멍이 들게 날마
다 뵈어 줘야 되는겨!” …(중략)…
“나는 말이다. 내 살을 섞은 사내놈이면 땡추가 아니라 부처님이라도 앙갚음을
하고 말 거여!”
“그 앙갚음이 결국은 까치이모한테 되돌아오고 말 거예요.”(185~186)
그녀는 자신의 잘못된 행실을 오직 ‘사내놈덜’의 욕정 탓으로 돌리고, 그들
중 부처가 있다하더라도 그에게 ‘앙갚음’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녀가 타지인 연
곡사 골짜기 주막에서 감내했어야 할 경제적 고통과 정신적・육체적 수모는 어
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까치이모의 ‘앙갚음’이 초래할 마
을 공동체의 분열과 혼란 또한 자명해 보인다. 피아골을 찾는 등산객과 관광객
을 대상으로 여관을 운영함으로써 물질적 재화를 축적하고, 경제적 위신과 위
력으로 앙갚음을 하겠다는 오가치의 생각은 상호 신뢰와 부조 속에서 공동체
적 미덕과 생명력을 유지하는 마을로서는 커다란 재앙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만화가 우려하는 바와 같이, 까치이모의 앙갚음은 자신에게 되돌아와 다시 앙
갚음의 연쇄로 이어질 개연성이 다분한 것이다. 아마도 배달수가 예감한 ‘엄청
난 비극’은 이와 같은 ‘앙갚음’의 악순환이었을 것이다. 그가 무참히 죽인 사람
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가 그의 죄값으로 인해 ‘앙갚음’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죄닦음’을
할 수밖에 없다. 자신 때문에 무당이 된 어머니와 ‘은혜로운’ 처자식을 버리고
그가 지리산으로 들어간 까닭은 이 ‘죄닦음’을 위해서이다. “너는 죄진 것 없는
문순태의 ?피아골?에 나타난 생태학적 상상력 75
겨. 시국이 죄제, 워찌 네가 죄인이냐?”(331)는 어머니의 말과 달리 그는 ‘시국’
의 탓으로 죄를 전가하지 않을뿐더러, 자신의 ‘죄’를 망각하지 않는다. 피아골
단풍제에 어김없이 찾아오는 것은 지난날을 잊지 않기 위한 것이며, 그는 그렇
게 “보이지 않는 속죄의 눈물”(331)을 흘렸던 것이다.
(마-1) 산은 해가 지면서 어둠 속에 숨을 거두었다가, 다시 해가 떠오르면 늘
새로운 모습으로 되살아났다. 배달수는 하루하루 그 산의 모습이 변하고 있는 것
을 알고 있었다. …(중략)… 배달수는 어둠이 완전히 벗겨지자, 산의 모습은 방금
하늘에서 내려와 옷을 벗은 선녀의 모습처럼 너무 신비스러워 쳐다보기조차 두려
웠다. 배달수는 경건한 자세로 마치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앉듯, 두 손을 합장
하고 어둠 속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깨어나고 있는 지리산을 쳐다보았다. 그는 지
리산이 어둠과 함께 올라갔다가, 인간들 모르게 새벽에 다시 내려오는 것처럼 느
껴졌다. 어둠 속에서 그 웅장하고 신비스러운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아, 지리산
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구나. 하늘의 기둥처럼 지상에 내려오는구나”라고 생각하
였다.(188~189)
(마-2) 배달수는 지리산의 어디에서고 산의 신령스러운 혼을 느낄 수가 있었다.
한여름 높은 산 양지쪽에 노랗게 피는 노랑꽃 만병초나, 독있는 미치광이 풀이며,
껍질이 매끌매끌한 황백색의 붉은 말뚝버섯, 장구밤이나 고욤을 쪼아먹으며 우는
개똥지빠귀새의 울음소리, 독이 많은 살모사, 지리산의 철쭉꽃에만 붙어 사는 긴
꼬리제비나비, 갈참나무의 나무진을 빨아먹고 사는 들신선나비와, 떡갈나무 잎에
맺힌 아침이슬, 으름덩굴 밑의 잡초에서까지 때로는 두렵고 때로는 반가운 산신
령의 그림자를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러기에 그는 한부로 짐승을 잡거나 욕심껏 약초를 캘 수가 없었다. 그저 자
신의 한 목숨 지탱할 만큼만, 산신령께 늘 죄스러운 마음으로 덫을 놓고 약초를
캐는 것이었다.(190)
(마-3) 꿀참나무숲을 지나자 붉나무며, 단풍, 구실잣밤나무, 물푸레나무, 자귀
나무 등이 촘촘히 들어찬 잡목숲이 나왔다. 그는 산길을 추어오르면서도 붉게 물
든 단풍나무를 볼 때마다 한참 동안씩이나 걸음을 멈추어 서서, 지리산에서 단풍
76 호남문화연구 제57집
잎보다 더 붉은 피를 흘리고 죽어 간 수많은 사람들의 넋들을 생각했다. 6・25전쟁
때, 그 자신이 죽였던 사람들의 생각들도 머릿속에서 말라빠진 낙엽처럼 부스럭
거렸다.
배달수는 약초를 캐거나, 토끼며, 오소리, 너구리 등 산짐승들을 잡기 위해 덫
을 높을 때마다, 지리산에 떠도는 수많은 중음신(中陰神) 혼령들의 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그 혼령들은 깊은 산의 고요한 정적 속에서 바람에 실려 들려왔
다.(195)
(마-4) 서초머리 배영감이 자기는 지리산의 일부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때로
는 그 지리산이 자신의 마음속을 들락날락할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의
마음의 산은 바로 지리산인 것이었다.(205)
(마)에는 배달수가 숙연하면서도 경외로운 마음 자세로 지리산을 바라보는
모습이 담겨 있다. 날마다 새로운 생명을 얻은 지리산이 선녀처럼 하늘에서 내
려와 신비로운 자태를 드러내고, 하늘에서 내리뻗은 기둥처럼 웅장함 기품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 지리산은 변화무쌍한 생명체이면서 또한 ‘하늘
의 연속체’인 것이다. 특히 “아, 지리산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구나. 하늘의 기
둥처럼 지상에 내려오는구나”라는 배달수의 생각은 자형적(字形的)으로 ‘무
(巫)’24)를 연상케 하는데, 삼라만상에도 신령(神靈)이 깃들어 있다는 샤머니즘
적 혹은 정령신앙적 우주관이 그의 시선에 깔려 있음을 (마-2)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풀, 곤충, 새, 뱀, 심지어 나뭇잎에 맺힌 아침이슬에서까지 “산의 신
령스러운 혼”과 “산신령의 그림자”를 느끼고, (마-3)에서 볼 수 있듯이, 바람에
실려 온, 죽은 사람의 혼령인 중음신의 소리까지 듣는다.25) 곧 그는 샤머니즘
24) 유동식은 무(巫)라는 한자가 천인융합을 상징하고 있다고 본다. 유동식(1978), ?민속종
교와 한국문화?, 현대사상사, 59쪽 참조.
25) 김옥성은 기왕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샤머니즘의 ‘영(靈)’은 초자연적인 존재로서, 신
적 존재인 신령(神靈), 사람의 영혼으로서의 생령(生靈)과 사령(死靈), 그리고 생물과 기
타 삼라만상에 깃들고 있는 영혼이나 정령, 힘 등으로 매우 다양하고 유동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김옥성(2011), 「김소월 시의 샤머니즘 생태학적 상상력」, ?문학
과 환경? 제10집 1호, 문학과환경, 39~40쪽 참조.
문순태의 ?피아골?에 나타난 생태학적 상상력 77
적 우주관 속에서 지리산을 초자연적 존재인 신령의 구현체이자, 사령(死靈)이
머무는 정령적 공간으로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우주만물에 정령이 깃들어 있는 배달수의 이러한 시선에는 생태학적 함의
가 충만하다. 덫을 놓고 약초를 캐는 데에도 ‘죄의식’이 수반되는 까닭은 지리
산의 모든 만물이 영적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지리산을 바라보
는 배달수의 경건한 시선에서 인간의 가치만을 중요시하며 자연을 대상화하는
인간중심주의(anthropocentrism)를 찾기란 쉽지 않다. 오가치에게 지리산이 관
광객을 유인할 수 있는 관광 매력물로서의 대상이자 경제적 부를 축적할 수 있
는 수단에 불과한 것이라면, 배달수에게 지리산은 외경심이 전제된 경배와 공
존의 대상인 것이다. 특히 도구적이고 효용적인 관점과 무관하게 제각각의 방
식으로 생명을 이어가는 곤충과 식물들을 (마-2)처럼 분류 없이 열거하거나,
숲을 이루는 개체들을 하나하나 호명하는 (마-3)은 지리산에서 죽은 익명의 민
중들과 그 삶의 양태를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만물에 대한 외경심이 과거 자신
의 행동에 대한 속죄의식과 별개의 것이 아님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죄스러운
마음으로 덫을 놓”을 때마다 “중음신의 혼령들의 소리”를 듣고 있는 그의 모습
에서 외경심에 수반된 참회의 태도가 명징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그의 정령적 생명 인식은, (마-4)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자신을
지리산의 일부로서 여기며 산과 하나가 되는, 곧 정령과 사람을 일체로 인식하
는 신인융합(神人融合)의 유기체적 우주관으로 확장된다.26) 지리산 단풍이 더
욱 붉어지는 까닭을 “피아골에서 죽은 원혼들의 한이 더 붉어”진 결과로 보는
배달수의 입장은 인간의 피가 단풍잎으로 환생하는, 다시 말해 삶과 죽음의 경
계를 넘어 자연과 인간이 유기적으로 순환하는 생태학적 인식을 보여주는 것
이다.27) 죽어서 “피아골의 새”(334) 혹은 “쑥부쟁이나 철쭉꽃”(114)되고자 하는
그의 염원 또한 생사를 초월한 생명의 순환성과 자연의 공생성을 깨달은 결과
라고 할 수 있다. 샤머니즘적 제의가 신령과 자연물을 섬김으로써 문제를 해결
26) 유동식(1987), ?민속종교와 한국 문화?, 현대사상사, 59쪽 참고.
27) 임은희, 앞의 논문, 379쪽 참조.
78 호남문화연구 제57집
하고 화해에 이르고자 하는 공생적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
자면,28) 배달수가 피아골 단풍제에 해마다 참석하는 까닭은 “지리산에서 단풍
잎보다 더 붉은 피를 흘리고 죽어 간 수많은 사람들의 넋”의 진혼과 해원을 위
한 것이자, 그들과의 공생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그는 우주만물에
깃든 초자연적 생명에 대한 경외심 속에서, 그리고 그가 체득한 우주만물의 순
환성과 공생성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중음신들의 해한을 위한 죄닦음을 수
행하고 있는 것이다.
샤머니즘적 우주관을 바탕으로 한 그의 생명에 대한 인식은 앞서 살펴본 오
가치는 물론 김지숙의 그것과도 확연하게 대별된다. 김지숙은 배달수가 없는
피아골에서 삼 년여를 머물다가 그곳을 떠나고, 만화가 열 두 살이던 무렵에
다시 피아골을 찾아 그녀를 데리고 상경한다. 상경 이후 김지숙은 만화의 “핏
발선 눈”(50)과 폭력적인 행동을 볼 때마다 기겁을 하며 만화에게 욕설을 퍼붓
는다. 무당이었던 할머니를 빼닮은 그녀의 눈과, 진압군에게 기관총을 난사했
던 배달수의 살인귀적 행동을 상기하며 매몰차게 그녀를 쏘아붙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만화가 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의붓아버지와의 관계를 핑계로
만화를 하숙집에 맡기고, 만화의 대학 졸업 이후에는 남편 변사장의 비서를 시
켜 생활비를 입금하는 방식으로만 만화와의 관계를 유지할 따름이었다. 경제
적 후원만이 그녀의 유일한 역할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그녀의 태도는 남편 변
사장의 태도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바) 그는 회사 사원에게나 집의 자녀들에게 “사람이나 동물이나 산다는 것 자
체가 곧 싸움이다. 그러니 힘을 길러야 한다. 힘이 없으면 행복의 대열에 낄 자격
이 없는 것이다”라고 늘 연설조로 강조하고 있는 터였다. …(중략)…
“찐은 애완용이긴 하지만 사나운 개가 틀림없어. 한판 좋은 싸움이 될 거라구”
변사장이 침이 마른 목소리로 서둘렀다.
28) 임재해(2001), 「전통 민속문화에 나타난 자연과 인간 –순환・공생・생극의 생태학적 논
리」, ?환경과 생명? 제27집, 환경과 생명, 70쪽.
문순태의 ?피아골?에 나타난 생태학적 상상력 79
“그까짓 개새끼 한 마리 가지고 뭘 그리 망설여. 찐이 죽으면 내가 개값을 물어
줄게”
변사장은 찐의 죽음을 돈으로 보상해 주겠다는 거였다. 그는 매사를 힘과 돈으
로 결정하려는 위인이었다. 만화는 마음속으로 그러는 변사장을 두려워하고 있었
다. 만일 전쟁이 터져서 변사장 같은 사람이 싸움터에 나가서 부하들을 지휘하게
된다면 어찌되겠는가 싶어 섬칫섬칫 모골이 일어서곤 하였다.(82-83)
어느 날 만화가 자신이 기르던 애완견 ‘찐’을 데리고 방문했을 때, 변사장은
자신이 기르던 검은 고양이 ‘살로메’와 찐의 싸움을 권유한다. (바)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약육강식의 논리를 인간의 삶에 적용시켜 행복을 승자의 특권
으로 간주하는 변사장이다. 그에게 ‘동물싸움’은 우승열패의 사회진화론적 논
리를 일상 속에서 검증하고, 그 ‘대가’로 돈 몇 푼을 치르면 되는 자못 행복한
소일거리였을 터이다. 변사장은 생태계 피라미드의 정점에 위치한 인간중심주
의적 교만과, 인간 관계를 생태계의 질서로 치환하여 규정하는 자본의 위력,
그리고 생명조차 교환가능한 계량적 가치로 위계화하는 반생태적인 ‘지배 속
성’29)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듯 매사에 모든 것을 “힘과 돈”으로 해결하려는 그의 태도에 모
골이 송연해짐을 느끼면서도 만화는 그 싸움에 응하게 된다. 결과는 변사장 고
양이 살로메의 완승으로 끝나고, 만화는 홧김에 살로메를 내동댕이쳐 처참하
게 죽이고 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만화의 어머니는 “지 애비도 꼭 저년 모양
29) 사회 생태주의자인 머레이 북친(Murray Bookchin)은 자연의 지배가 인간의 지배로부터
비롯되며, 위계 질서와 지배에 대한 비판과 해체가 현 생태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
한 길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는 권위의 거부, 국가에 대한 혐오, 상호부조, 권력 분
산, 정치에의 직접 참여 등 아나키즘의 자연론적 사회관을 바탕으로 시장경제의 비도덕
성과 기술의 반문화성을 비판한다. 방영준(2003), 「사회생태주의의 윤리적 특징에 관한
연구-머레이 북친을 중심으로」, ?국민윤리연구? 제53집, 한국국민윤리학회 참조. 그리고
차봉준은, 북친이 간파한 바 있는, 생명의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인간의 ‘지배 속성’
에 주목하여 조세희 소설에 나타난 생태적 인간관계의 단절을 분석한다. 차봉준(2007), 「조세희 소설의 생태학적 상상력 연구」, ?현대소설연구? 제34집, 한국현대소설학회, 170 ~173 참조.
80 호남문화연구 제57집
으로 생사람을 쳐죽였을 것”(85)이라며 만화에게 또다시 경멸적인 욕설을 퍼붓
는다. 동물싸움을 수수방관하던 그녀가 만화의 돌발적인 행동을 보며 내뱉은
욕설은, 풍요롭고 윤택한 생활을 보장해주는 변사장의 지배 속성에 그녀가 젖
어 있음을 뜻하는 것이며, 동시에 변사장이 찐의 목숨을 “개값”으로 대체하려
하듯이 “온라인 예금통장”과 “어머니 노릇”(53)이 등가적 교환의 결과였음을 드
러내는 상징적 사건에 다름 아니다. 곧 김지숙에게 만화와의 모녀관계는 ‘예금
통장’으로 교환 가능한 것이며 그것만이 혈육으로서의 대가였던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김지숙에게는 만화와 함께 공유하고 순환할 혈연적 기억 따위는 존
재하지 않는다. 오가치의 기억이 복수의 빌미라면, 김지숙의 형해화된 기억은
망각의 흔적이자 내면화된 지배 속성의 결과인 것이다. 둘 모두는 시장 논리와
교환 원리를 그 바탕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반생태적이며, 이 점에서 배달수의
그것과 대별되는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 김지숙의 망각은 만화로 하여금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궁
금증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됨으로써 그녀의 귀향을 촉발한다. 그녀가 18년 만
의 귀향에서 설월스님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이 “순절한 의병의 후예”(119)임을
알게 되었을 때, 무당의 손녀로서의 부끄러움을 떨쳐버리고 ‘핏줄’에 대한 자긍
심을 갖게 된다. 그의 조상들이 공적 역사을 통해 승인받(을 수 있)는 애국적
주체였다는 점에 자랑스러움을 느꼈던 것이다.
(사) “영선이란 참혹하고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넋을 말한답니다. 영선들의 한
을 풀어주지 않으면 영선은 계속해서 영선을 부르게 되지요. 한 곳에서 사람이 계
속 죽는 것은 그 때문이랍니다. 아마 피아골에는 한 맺힌 영선들이 들끓고 있겠지
요. 언제 다시 새로운 영선들을 부르게 될지 모릅니다.”(135)
그렇지만 그녀는 민지욱 기자를 만나 “지리산에 묻힌 억울한 죽음의 역
사”(135)에 대해서 듣고는, “참혹하고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넋”인 영선(靈仙)
들을 떠올린다. 그녀가 어릴 적부터 피아골에서 듣곤 했던 뜻모를 아우성과 비
문순태의 ?피아골?에 나타난 생태학적 상상력 81
명이 정유재란・동학혁명・의병항쟁, 그리고 6・25전쟁 때 억울하게 죽어간 영선
들의 울부짖음임을 알게 된 것이다. 이처럼 설월스님과의 대화를 통해 느꼈던
자긍심은 민지욱을 만남으로써 선조들의 “피맺힌 한”(135)과 “한맺힌 영선”에
대한 인식으로 변화되는데, 이 점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할머니의 ‘붉은 눈’
의 피내림을 받아 “영검스러움”(50)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 배달수처럼
유기체적 우주관을 지니고 있던 그녀가30) 인간과 초자연적 존재들의 갈등과
부조화를 조절하면서 상호간의 화해를 유지하는 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샤먼(shaman)이자 영매(靈媒)로서의 자아를 깨달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만화의 그러한 자각의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는 존재가 역사의식과 그 탐구열
을 지닌 민지욱 기자라는 점은31) 그녀가 역사적인 맥락에서 민중들의 수난사
에 천착함으로써 그들의 해원을 추구할 가능성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민지
욱과의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의 덫”(177)을 예감한 만화가 “새로운 모험을 위해
미지의 땅으로 떠나는 기분”(177)으로 그에게 몸과 마음을 내맡기는 모습과,
피아골을 떠나지 않겠다는 그녀의 다짐은 그와 같은 그녀의 미래를 상징하는
삽화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달리 말하면, 작가는 배달수의 샤머니즘적 우주관
이라는 생태학적 지평 위에, 기자 신분의 민지욱이라는 인물을 매개로 만화에
게 억울하게 죽어간 민중들을 삶을 복원하고 해원할 수 있는 역사적 시각과 영
매로서의 역할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며, 나아가 지리산에 유폐된 배달수의 속
죄와 참회를 넘어설 수 있는, 기억의 사회화 혹은 역사화를 도모함으로써 중음
30) 만화의 다음과 같은 말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피아골의 단풍이 유난히 더 붉은
것은 억울하게 떼죽음당한 혼령들의 피맺힌 한 때문일지도 모르죠. 지리산 세석평전의
철쭉이 육이오 때 죽은 이들의 넋이 붉게 피어난 것처럼 말예요.”(136쪽)
31) 임동확은 문순태의 문학 세계를 움직여온 주요 축의 하나로서 ‘신문기자적 자세와 경험’
을 언급한다. 작가 자신 또한 “기자와 작가는 사회와 역사, 인간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룬
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러나 전자가 있는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야 하는 데 그치다
면, 후자의 경우 그걸 재창조해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르다. 하지만 내게 있어, 기자생활
은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한 좋은 토대이자 환경”이었음을 토로한 바 있는데, 이는 작가의
역사적・사회적 현실 정향성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임동확, 「미래의 역사를 여는
전초작업으로서 고향찾기」, 이은봉 외 엮음, 앞의 책, 295~299쪽 참고.
82 호남문화연구 제57집
자와 영선들의 진혼과 해원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32)
결국 이렇게 보자면, 작가 문순태는 ?피아골?에서 정령적 생명 인식 위에
역사적 시각을 지닌 영매로서의 역할을 접목시켜 인물들을 성격화하고 서사화
함으로써, 생태학적 함의가 충만한 샤머니즘적 우주관과 영적 자아관을 동인
으로 삼아 민족적 갈등과 상흔을 화해와 해한으로 이끌고자 했던 것이다.
Ⅳ. 나가며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피아골?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민족 혹은 민중
이라는 숭고한 이념의 노예이거나 국가라는 정체(政體) 앞에 포박된 하수인은
아니다. 응징과 절멸의 대상으로서의 실체적 악은 더더욱 아니었던 것이다. 단
지 전쟁의 목적도 모르는 채 명분도 찾지 못한 채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생존을 위해 맹목적으로 싸워야만 했던 인물들이다. 전쟁의 참화 속에서 생존
을 위해 좌우익을 넘나들 수밖에 없었던 민중들의 시련만이 펼쳐져 있을 따름
이다. 그렇지만 ?피아골?은 인간의 생존 본능 속에 음험하게 잠복하고 있는 잔
인성과 냉혹함을 대량 살상이라는 참혹한 파국으로 사건화함으로써 전쟁의 폭
력성과 부당성을 고발하는 한편 생존 본능에 음험하게 잠복되어 있는 생명 경
시 태도도 놓치지 않았다.
전쟁이 끝난 후 배달수는 지리산을 초자연적 존재인 신령의 구현체이자, 사
령이 머무는 정령적 공간으로 인식한다. 그는 샤머니즘적 우주관을 바탕으로
모든 생명체를 경배와 공존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나아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 자연과 인간이 유기적으로 순환하는 생태학적 시선으로 우주 만물을 바
라봄으로써 과거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배만화는 민지욱
32) 주디스 허먼은 심리적 외상을 준 사건이나 사고를 철저히 기억해서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는 기억의 해법이 제대로 된 해법이며, 외상으로 파괴되었던 인간 공동체의
의미를 되살리게 된다고 지적한다. 주디스 허먼, 최현정 옮김, 앞의 책, 6쪽.
문순태의 ?피아골?에 나타난 생태학적 상상력 83
기자를 통해 정유재란에서 6・25전쟁으로 이어지는 ‘죽음의 역사’를 인식함으로
써 지리산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영선들의 존재를 자각하게 되고, 이들의 해원
을 예비하고 있는 것이다. 곧 작가는 아버지 배달수의 정령적 생명 인식과 그
의 딸 배만화의 역사적 인식과 영적 자각을 통해 중음자와 영선에 대한 속죄와
해원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피아골?에서 시도되고 있는 화해와 해한
이 샤머니즘적 세계관에서 연원하고 있다는 점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곧 해한
의 동인이자 기제를 규명하였다는 점에서 본 논문의 의의가 있다.
84 호남문화연구 제57집
참고문헌
1. 단행본
김복순(2002), 「이병주의 ?지리산?론-‘지식인 빨치산’ 계보와 ?지리산?」, 민족문
학사연구소 현대문학분과 편, ?1970년대 장편소설의 현장?, 국학자료원.
유임하(1998), ?분단현실과 서사적 상상력-한국현대소설의 분단인식연구?, 태
학사.
이은봉 외 엮음(2005), ?고향과 한의 미학?, 태학사.
손 호머, 김서영 옮김(2006), ?라캉 읽기?, 은행나무.
주디스 허먼, 최현정 옮김(2012), ?트라우마?, 열린책들.
2. 학술논문
강성률(2006), 「빨치산에 대한 극단적인 두 시선-<피아골>과 <남부군>」, ?내일
을 여는 역사? 제26집, 서해문집, 214~221쪽.
박명림(2006), 「전쟁에서 평화로, 다시 생명과 인간으로」, ?한국사 시민강좌? 제
38집, 일조각, 259~286쪽.
박성천(2008), 「문순태 소설의 서사 구조 연구-한의 극복양상을 중심으로」, 전남
대 박사학위논문.
방영준(2003), 「사회생태주의의 윤리적 특징에 관한 연구-머레이 북친을 중심으
로」, ?국민윤리연구? 제53호, 한국국민윤리학회, 285~308쪽.
임은희(2008), 「문순태 소설에 나타난 생태학적 인식 고찰」, ?우리어문연구? 제
30집, 우리어문학회, 363~400쪽.
전수평(2012), 「빨치산 문학 연구 : ?남부군?, ?지리산?,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순천대 석사학위논문, 2012.
조구호(2011), 「문순태 분단소설 연구」, ?한국언어문학? 제76집, 한국언어문학
회, 351~372쪽.
조구호(2007), 「현대소설에 나타난 ‘지리산’의 문학적 형상화와 그 의미」, ?어문
론총? 제47집, 한국문학언어학회, 225~249쪽.
문순태의 ?피아골?에 나타난 생태학적 상상력 85
차봉준(2007), 「조세희 소설의 생태학적 상상력 연구」, ?현대소설연구? 제34집,
한국현대소설학회, 163~179쪽.
최창근(2005), 「문순태 소설의 ‘탈향/귀향 : 서사 연구」, 전남대 석사학위논문.
한순미(2014), 「용서를 넘어선 포용」, ?문학치료연구? 제30집, 한국문학치료학
회, 165~195쪽.
투고일: 2015. 05 20. 심사기간: 2015. 05. 25.~2015. 06. 01. 게재확정일: 2015. 06. 03.
86 호남문화연구 제57집
|국문초록|
문순태의 ?피아골?에 나타난 생태학적 상상력
문순태의 작품 세계는 ‘고향’과 ‘한’으로 집약된다. 그리고 ‘고향’과 ‘한’을 추적할
때 만나게 되는 것이 6・25전쟁이다. 그의 여러 작품들이 분단 소설의 범주에서 논
의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본 논문은 ‘빨치산 문학’의 계보를 잇고 있는 ?피아골?을
대상으로 작품의 저변에 깔려 있는 생태학적 상상력을 고찰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
해 먼저 Ⅱ장에서는 작중 인물들의 이념성 여부와 그 지향 등을 작가의식과 관련
지어 검토하였으며, Ⅲ장에서는 배달수의 생명 인식과 배만화의 해원의지 등에 투
영된 생태학적 상상력을 논구하였다.
Ⅱ장에서는 배달수를 중심으로 ?피아골?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단지 생존만을
위해 전쟁에 참여하고 있는 무이념적 인물임을 살펴보았다. 배달수가 빨치산이 되
거나 집안군이 된 배경에는 제주도 양민 학살을 거부한다는 인도적・민족적 명분도,
빨치산의 비인간성과 악마성에 대한 경멸 따위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뿐만이 아니
라 그에게는 공산주의나 민주주의 따위의 사상적 고민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전
쟁의 소용돌이 휩싸여 빨치산과 군경 양측에게 각각 총부리를 겨눌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오직 총을 갖고 싶다는 욕망과 생존 본능 때문이었다. 이처럼 이 작품에는
이념과 무관하게 좌우익의 극한적 대척점에서 그 경계를 넘나들며 생존을 위해 분
투하는 인물군상들의 위태로운 삶과 생존 본능만이 전경화되어 있다. 그렇지만 작
가는 배달수가 자행한 두 차례의 참혹한 학살을 사건화함으로써 그의 무이념적 성
격과 생존 본능 속에 타자의 생명을 경원시하는 태도가 음험하게 잠복되어 있었음
을 간과하지 않는다.
그리고 Ⅲ장에서는 전쟁 후 배달수가 지리산을 초자연적 존재인 신령의 구현체
이자, 사령이 머무는 정령적 공간으로 인식하는 태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샤
머니즘적 우주관을 바탕으로 모든 생명체를 경배와 공존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나
문순태의 ?피아골?에 나타난 생태학적 상상력 87
아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 자연과 인간이 유기적으로 순환하는 생태학적 시선
으로 우주 만물을 바라봄으로써 과거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배만화는 민지욱 기자를 통해 정유재란에서 6・25전쟁으로 이어지는 ‘죽음의 역사’
를 인식함으로써 지리산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영선들의 존재를 자각하게 되고, 이
들의 해원을 위한 의지를 밝히고 있다. 곧 작가는 아버지 배달수와 그의 딸 배만화
를 통해 샤머니즘적 우주관과 자아관을 제시함으로써 속죄와 해원을 추구하고 있
는 것이다. 이는 작가가 일관되게 추구해온 화해와 해한이 샤머니즘적 세계관에서
연원하고 있다는 점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곧 해한의 동인이자 기제를 규명하였다
는 점에서 본 논문의 의의가 있다.
주제어 : 문순태, ?피아골?, 분단소설, 생태학적 상상력, 샤머니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