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Ⅰ. 서론
Ⅱ. 勝景의 공간
Ⅲ. 脫俗의 공간
Ⅳ. 遭遇, 回顧의 공간
Ⅴ. 결론
|Abstract|
Regardless of the time of the Confucian intellectuals of the Joseon Dynasty
have constantly sought Ssanggyesa. Why are they? Did you find an Ssanggyesa.
Confucian intellectuals of the Joseon Dynasty of the means of Ssanggyesa,
that is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the placeness of the Jiri
Ssanggyesa.
Ssanggyesa to a place called Confucian intellectuals of the Joseon Dynasty
got your any meaning to them were discussed in three ranges. First, the
literature, that only works for Chinese poetry was discussed with the target
in the middle. Second, we use only the work of the Confucian intellectuals
of the Joseon Dynasty. Third, the Ssanggyesa seen as a place of culture, and
Ssanggyesa Chilbulsa, bulilam, a temporary one in place until Sinheungsa
included.
The first reason for visiting Confucian intellectuals of the Joseon Dynasty
Ssanggyesa is 'beautiful scenery' is. In order to enjoy seeing the beauty of
Confucian intellectuals of the Joseon Dynasty have found Ssanggyesa, it is
shown without filtering their work. Ssanggyesa work has been sanctioned at
this beauty, a theme that is significant.
The second reason is a deviation from the routine, namely to pursue the
world of unworldliness. Ssanggyesa the purity of this world because they
build a world out of harmony with the beautiful scenery Ssanggyesa was
abnormal in seongye does not exist. Explore the Confucian intellectuals of
the Joseon Dynasty to find the Ssanggyesa seongye are a reason.
The last reason why Confucian intellectuals of the Joseon Dynasty have
found a Ssanggyesa is listening to the ruins that remain in Ssanggyesa
everywhere. Confucian intellectuals of the Joseon Dynasty looking for the
first place, through the recollection and adore about where to leave traces
that can be viewed as a historical figure who had been party makes its
moment of reflection.
Although at first glance contradictory emotions and mention who cruise
the 'out of this world "above, is Confucian intellectuals of the Joseon Dynasty
heard this sentiment consistent.
Ssanggyesa constantly brought Confucian intellectuals of the Joseon Dynasty
have the characteristics of a place such as Ssanggyesa. Whether real or ideas
to Confucian intellectuals of the Joseon Dynasty and in Ssanggyesa was the
place to be going.
Key words : Mt. jiri, the place, sense of the place, the placeness,
chunghakdong, Ssanggyesa, Chilbulsa, Sinheungsa, bulilam
문학작품에 투영된 지리산 쌍계사 장소성 연구 35
Ⅰ. 서 론
지리산 쌍계사1)는 8세기에 창건된 천년고찰이다. 오늘날에도 조계종 25개
본사 중 13교구 본사로서 57개 말사와 4개의 암자를 거느리고 있다. 쌍계사는
역사적으로나, 규모면에서나 지리산 남부를 대표하는 사찰이다.
특히 조선조 儒者들에게 쌍계사가 갖는 의미는 컸다. 그들에게 쌍계사는 천
왕봉과 더불어 지리산의 한 축이었으며,2) 조선조 가장 대표적 이상향으로 인
식되었던 삼신동, 청학동으로 비정되곤 하였던 곳이다.3) 나아가 쌍계사는 단
1) 722년(신라 성덕왕 21)에 大悲 및 三法 두 화상이 唐나라에서 六曹 스님의 頂相을 모시
고 와서 ‘智異山 谷雪里 葛花處에 봉안하라.’는 꿈의 계시를 받고 범의 인도를 받아 이곳
에 절을 지어 玉泉寺라 하고 조사를 봉안하였다 한다. 이후 840년(문성왕 2) 진감선사가
중창하여 대가람을 이루었으며, 정강왕 때 쌍계사라는 이름을 얻었다. 중국 유학에서 돌
아온 진감선사는 차 종자를 가지고 와 이곳 지리산 주변에 심고 대가람으로 중창하니
뒤에 정강왕이 선사의 도풍을 앙모하여 ‘쌍계사’라는 사명을 내리었다고 한다. 그 후 임
진왜란 때 크게 소실되었으며, 인조 10년, 벽암스님에 의해 중건(이후에도 법훈・만허・용
담스님에 의해 중창되었다.)된 이래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는 서부 경남 일원의 사찰
을 총람하는 조계종의 사찰로 25개 본사 중 하나로 그 자리매김하고 있다. 김진욱(2011), ?지리산, 바람은 풍경으로?, 디자인흐름, 156쪽.
2) 강정화 역시 조선시대 士들의 지리산 유람 방향은 천왕봉과 청학동으로 크게 압축되고,
이 두 곳이 지리산의 대표적 명승이라고 하였다. 강정화(2009), 「지리산 유산시에 나타난
명승의 문학적 형상화」, ?동방한문학? 제41집, 동방한문학회, 363~365쪽; 최석기는 조
선시대 사인들이 지리산을 유람하게 된 동기가 크게 두 가지로 하나는 공자의 ‘登泰山小
天下’의 높은 정신적 세계를 지향하고자 함이었고, 다른 하나는 청학동, 삼신동 등 선계
에서 노닐며 탈속적 정취를 즐기기 위함이라고 말하였다. 최석기(2009), 「조선시대 士人
들의 지리산 유람을 통해 본 士意識」, ?한문학보? 제20집, 우리학문학회, 40~43쪽 참조.
3) 현실 공간으로 비정된 지리산 청학동의 경우, 쌍계사, 불일암, 불일폭포 부근인 화개동과
신흥사가 있었던 삼신동을 아울러 청학동이라 하는 경우와 화개동만을 청학동이라 하는
경우, 악양면 매계리를 청학동이라 하는 경우, 청암면 묵계리를 청학동이라 하는 경우
등으로 나타난다. 이 중 화개동과 매계리는 유자들의 유산기에 그 기록이 보이며, 묵계
리는 비결서에 자취가 있다. 그러나 선계 공간의 청학동을 비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명승 공간으로서의 청학동의 위치는 화개동과 삼신동을 아울러 청학동이라 하는 경우가
가장 많은 유산기에 보인다. 그러므로 명승 공간으로서의 청학동은 화개동과 삼신동을
아우르는 공간으로 비정하고자 한다. 본 논문이 청학동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므로 구체적 논의는 다음으로 미루고자 한다. 김진욱(2010), 「漢詩에 投影된 知識人
의 靑鶴洞 認識 硏究」, ?남명학연구? 제30집,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3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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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하나의 사찰이 아니라, 고운과 남명 등 유학의 큰 거봉들의 자취가 묻어있
는 성지로까지 인식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조선조 유자들은 쌍계사 찾는 것을
열망하였다.4)
조선조 유자들은 끊임없이 쌍계사를 찾았다.5) 그들이 왜 쌍계사를 찾았는
가를 고찰하는 것이 본 논의의 목적이다. 쌍계사의 무엇이 그들을 끊임없이 그
곳으로 불렀는가를 확인해보고자 한다. 즉, 조선조 유자들에게 쌍계사라는 장
소가 어떻게 인식되었는가를 고찰하고자 한다.
장소, 장소감, 장소성은 자연지리, 인문지리, 어문학 등에서 최근 활발히 사
용되고 있는 용어이다.6) 각 학문 분야에서 이 용어의 정확성과 구체성은 아직
4) 지리산에선 쌍계사가 풍광이 으뜸이고// 금강산은 만폭동이 절묘하다네// 명산을 이 몸
은 아직 못가고// 해마다 스님의 송별시만 읊조린다네. <贈思峻上人> 智異雙磎勝/金剛
萬瀑奇//名山身未到/每賦送僧詩. 이 작품에는 옥봉이 금강산의 만폭동만큼이나 아름
다운 쌍계사 찾기를 얼마나 열망하는지가 잘 담겨있다.(백광훈, <사준스님에게>, ?玉
峯集?, 上卷.) 이 외의 다른 여러 문헌에도 쌍계사를 찾은 감흥을 이야기하거나, 노래하
는 부분에서 이와 비슷한 정서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5) 조선조 수많은 孺子들이 청학동을 찾았다. 최고운의 흔적을 더듬어 보고 싶어서였을 수
도 있고, 선계와 같은 승경을 만끽하고 싶어서였을 수도 있다. 시로써 흔적을 남긴 이만
500여 명이니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강정화 외(2009), ?지리산 한시 선집 청학동?, 도서
출판 이회. 부록에 저자 목록을 수록하여 놓았는데, 500여 명에 조금 못 미친다. 여기서
청학동이 직접 시적 제재가 된 작품은 많지 않다. 청학동으로 볼 수 있는 지역인 쌍계
사, 불일암, 불일폭포, 칠불사 등 각각의 개체가 시적 제재가 된 경우가 훨씬 많다. 다만
이 많은 이들이 청학동을 유람하였다는 사실은 시에 잘 드러나 있다. 김진욱, 앞의 논문,
322쪽.
6) 문학 작품에서 장소는 작가가 선택한 의미 있는 구체적인 곳으로 그가 지향하거나 애정
을 가진 곳이다. (……) 우리가 세계 속에서 우리 자신을 외부로 지향시키는 출발점을 구
성하고 있는 것이다. 에드워드 웰프, 김덕현 외 옮김(2005), ?장소와 장소 상실?, 논형,
104쪽; 장소성은 어떤 실체로서 존재하기보다는 담론과 실천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사회
적 고안물이다. 장소성에 함의된 규범적 가치나 진정성은 장소에 근거를 둔 체험과 이에
관한 공감적 대화를 통해 형성된다. 문재원(2009), 「요산 소설에 나타난 장소성」, ?현대
문학이론연구? 제36집, 현대문학이론학회, 143쪽; 일반적으로 공간은 일정한 활동이나
사물들 또는 환경을 가지는 위치들 간의 연장으로 추상적이고 물리적인 범위와 관련된
다면, 장소는 체험적이고 구체적인 활동의 기반이면서 맥락적이고 문화적인 의미와 관
련된다. 백선혜(2004), 「장소마케팅에서 장소성의 인위적 형성」, 서울대 박사학위논문,
21쪽.
문학작품에 투영된 지리산 쌍계사 장소성 연구 37
담보되지 못하였다. 현재 담론이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특히 인문지리학에서
가장 활발하게 담론이 진행 중이고 따라서 가장 엄밀히 이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이푸 투한은 객관적 공간과 주관적 장소, 그리고 장소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움직임이며, 개방이며, 자유이며, 위협인 공간과 달리 장소는 정지이며, 개인
들이 부여하는 가치들의 안식처이며, 안전과 애정을 느낄 수 있는 고요한 중심이
다. 中略 어떤 지역이 친밀한 장소로 다가올 때 우리는 비로소 그 지역에 대한 느
낌. 즉 장소감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7)
이영경은 장소란 지리학적인 개념인 공간에 특정 활동이 지속적으로 장기
간 발생하였을 때 생기는 개념으로 설명하였다.
외부 환경에 같은 활동이 반복되고, 그 활동과 연관된 경험들이 누적되면서
“이곳은 어떠어떠한 곳이다.”라는 장소에 대한 인식이나 의미가 발생하며, 이러한
장소성은 특정 환경을 다른 환경들로부터 구별하는 기준이 된다. 특정한 물리적
특질을 갖추고 그에 부합되는 활동과 경험이 기대되는 곳, 이러한 곳을 ‘장소’라
한다.8)
본 논의에서는 장소성을 특정 공간에 대한 주관적 인식으로 폭넓게 상정하
고 쌍계사의 장소성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범위 안에서 논의하고자 한다. 첫
째, 문학 작품,9) 그 가운데에서도 한시 작품만을 대상으로 논의하고자 한다.
7) 이푸 투한, 구동회・심승희 옮김(1994), ?공간과 장소?, 대윤, 7~8쪽.
8) 이영경(1996), 「사찰의 장소성에 대한 연구」, ?사찰조경연구? 제4집, 동국대학교 사찰조
경연구소, 60쪽.
9) 시대를 막론하고 문학 작품은 문학 언어로 형상화된 표현물임과 동시에 그 시대의 정신
적 결정이기 때문이다. 중략 어떠한 문화적 산출물도 언어화되지 않는 것이 없다 할 것
이며, 그런 의미에서 문화는 곧 언어로 된 기호이며 분석해야 할 텍스트이다. 그런 점에
서 볼 때 문학예술의 기호는 기호의 의미작용을 위한 약속, 즉 코드로 이루어진 사회
문화적 산물이다. 한순미(2012), ?동시대인의 산책, 문학과 사유 이미지?, 엔터, 235~
38 호남문화연구 제57집
둘째, 조선조 유자들의 작품만을 대상으로 하고자 한다. 셋째, 쌍계사와 더불
어 칠불사, 불일암, 신흥사 소재 한시까지 포함하고자 한다.10)
Ⅱ. 勝景의 공간
예로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이 쌍계사를 찾았던 가장 커다란 이유 중의 하나
가 ‘경치가 아름답다.’라는 사실이다. 쌍계사의 공간적 특성 중 하나가 ‘아름답
다.’라는 것이다. 어떠한 이유보다도 가장 현실적인 아름다움을 보고 누리기 위
하여 조선조 유자들은 쌍계사를 찾았고, 그것은 그들의 작품에 여과 없이 나타
나 있다. 나아가 쌍계사는 실제 사실과 상관없이 지리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해 나간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쌍계사 작품에는 아름다움이 시적 제재가 되고, 주제가
된 것이 상당하다.11) 아름다움이란 극히 주관적 정서이지만, 물과 산이 조화를
이룬 쌍계사의 승경은 많은 시인묵객들에게 좋은 소재가 되었다. 이러한 이유
로 쌍계사를 찾아 그 아름다움을 누리고 싶은 열망이 시화된 작품이 있고, 쌍
계사를 직접 찾고 그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창작한 작품이 있다.
237쪽.
10) 곽종철의 지적처럼 특정 장소의 상징적 경계선은 분명치 않다. 그러므로 오늘날 사용하
고 있는 권역의 개념으로 보았을 때도 쌍계사 권역의 범위는 특정하기 어렵다. 여기서는
최소한의 쌍계사 권역(쌍계사 문화권)을 한정하여 논의하고자 한다. 가시적인 선으로 그
어질 수 있는 지리적 경계와 달리, 상징적 사회적 경계는 일상생활 속에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 의해 형성된 것이며, 內外를 구분하는 경계이다. 이러한 경계는 특별한 표식물
이 없어도 감각적으로 때로는 특정의 사실과 연계되어 인식되기도 하나, 본질적으로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의식 속에 존재하는 관념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 경계는 상징적으
로 인식되기도 한다. 곽종철(2001), 「장소의 상징성 경계성과 유적의 성격」, ?고문화? 제
57집, 한국대학박물관협회, 78쪽 참조.
11) 지리산 유람록에는 아름다운 자연의 경관에 매료되어 문학적 수사를 한 것 발휘한 곳이
곳곳에 보인다. 최석기(2005), 「지리산 유람록을 통해본 인문학의 길찾기」, ?지리산과 인
문학?, 브레인, 32쪽.
문학작품에 투영된 지리산 쌍계사 장소성 연구 39
산수자연의 경우, 장소가 이름을 얻는 것은 대체로 그곳의 빼어난 경관 때
문인데, 이를 ‘名勝’이라 일컫는다. 명승은 ‘勝’이란 글자의 의미에서 보듯 경관
의 빼어남을 전제로 한 용어다. 명승의 ‘勝’이 ‘勝景, 絶景’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12) 이와 같이 명승의 사전적 의미는 이름난 공간을 의미하는데,
가장 일반적 유형은 특정 장소의 객관적 아름다움에 기인한다.
雙鶴峰千丈 쌍학은 천장 봉우리 위로 날아오르고
老龍瀑萬尋 늙은 용은 만장 폭포 속으로 들어가누나
第一江山勝 이 땅 제일의 승경이 펼쳐진 이곳
收來絶句吟 시인들이 찾아와 시를 읊도다
<佛日庵>13)
위에서 언급한 명승의 의미가 잘 드러난 河益範의 <佛日庵>이다. 前景後情
의 구조를 가진 <佛日庵>은 起句와 承句에서 불일폭포의 景을 노래하고 있다.
불일폭포의 모습을 쌍학이 천장 봉우리로 날아오르는 것에 비유하였고, 늙은
용이 폭포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으로 묘사하였다. 누구나 ‘와’ 하고 감탄성을
지르는 불일폭포의 모습을 잘 표현하였다.14)
後情에서는 이러한 불일암을 직접 찾은 감격이 넘쳐나고 있다. 이러한 감격
은 다시 인식으로 전환되어 숱한 이들이 이곳을 찾는, 찾고자 하는 이유를 설
명하고 있다. 불일암은 이처럼 승경이 천하제일이기에 수많은 시인들이 불일
암을 찾는다는 것이다.
필자 역시 하익범이 누렸던 불일암의 승경을 누리기 위하여 그곳을 여러 차
례 찾았고, ‘아름답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시인의 과장이란 어떤 작품
12) 강정화, 앞의 책, 367쪽.
13) 하익범, ?士農窩集?, 卷一.
14) 오늘날은 불일폭포에 가더라도 안전망이 설치되어 있어 이러한 정서를 누릴 수 없다.
다른 어느 폭포를 보더라도 폭포의 참다운 경은 바로 아래서 떨어지는 폭포를 올려 보
는 것이라 생각한다. 작품으로 보아 하익범은 직접 그 광경을 목도했으리라 판단한다.
40 호남문화연구 제57집
에나 투영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第一江山勝’에 동의할 수 없는
것은 아름다움 자체가 주관적 정서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불일암
은 시인묵객의 작품 속에서 더욱 아름다워진 것이다.
이처럼 지리산 최고 승경 중의 하나인 불일암은 관념 속에서 더욱더 명승 공
간이 되어갔던 것이다. 나아가 쌍계사가 승경 공간이라는 장소성을 획득하여
가는데 일조하였던 것이다. 곧 이 작품은 특정 공간이 명승이 되는 이유와 시
인묵객이 명승을 찾는 이유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것은 ‘아름답다.’이다.
다음 역시 같은 맥락의 작품인 백광훈의 <贈思峻上人>이다.
智異雙磎勝 지리산에선 쌍계사가 풍광이 빼어나고
金剛萬瀑奇 금강산은 만폭동이 절묘하다네
名山身未到 명산을 이 몸은 아직 못 가고
每賦送僧詩 해마다 스님 송별시만 읊조린다네
<贈思峻上人>15)
백광훈은 작품의 轉句에서 고백하듯이 아직 쌍계사를 유람하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강산의 만폭동, 지리산의 쌍계사를 명승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승경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금강산의 만폭동을 가져와 쌍계사의
승경을 ‘雙磎勝’으로 간단히 처리하고 있다. 쌍계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그
리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그릴 수 없기에 이처럼 단순하게 처리하는 것이 나
을지 모른다. 그래서 이 작품은 어떠한 군더더기도 없다. 또한 이같은 이유로
많은 논자들이 이 작품이 우수하다는 걸 언급하였다.
백광훈은 쌍계사에 가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리고 갈 계획인 것이다. 다만
‘身未到’에 드러나 있듯 아직 ‘未’인 것이다. 작품 내용으로 보아 백광훈이 쌍계
사를 찾기를 희망하는 것은, 다른 어떠한 이유도 아니고 아름답기에 쌍계사를
찾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쌍계사는 빼어난 풍광과 절묘한 승경으로 이름을 얻
15) 백광훈, ?玉峯集?, 上卷.
문학작품에 투영된 지리산 쌍계사 장소성 연구 41
어, 그 장소를 찾은 이나, 아직 찾지 않은 이에게까지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관념이 실재를 뛰어 넘은 좋은 예이다. 아직 가보지도 않은 쌍계사가
백광훈에게 轉句의 ‘名山’으로 인식된 이유는 쌍계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 즉
장소성이 관여했기 때문이다.
이것과 동류의 작품은 정리가 힘들만큼 많다. 쌍계사를 시적 제재로 창작된
작품의 상당수가 인식 차원에서든, 아니면 직접 체화 후이든 ‘아름답다.’라는
정서를 작품으로 시화하였던 것이다. 다음은 눌재와 매천의 작품이다.
方丈三韓聞天下 방장산은 삼한 천하에 이름 높고
雙磎形勝又無多 쌍계의 모습은 다시없는 경치로다
<雙磎寺讚>16)
謾道仙山不可望 신선의 산 바랄 수 없다고 거짓으로 말을 하지만
千年海底出東方 오래전 바다 밑에서 동방에 솟아났네
就中佳處雙磎在 그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곳에 쌍계사가 있는데
何故浮生白髮長 무슨 까닭에 덧없는 인생은 백발만 키웠느뇨
<偕趙東石由雙溪寺上國師菴爲十日遊期宣悠然
在箕王石藍師冲鄭茶海圭錫成南坡蕙永追到共賦>17)
위에서 인용한 눌재의 <雙磎寺讚>은 칠언율시 중 首聯으로 쌍계사를 찾은
16) <雙磎寺讚>은 박상(朴祥)(1474~1530)의 문집 ?訥齋集?에 수록되어 있지 않고 성여신
(成汝信)이 지은 ?晉陽志? 佛宇 雙磎寺條에 수록되어 전한다. 박상이 하동의 雙磎寺와
청학동 방면을 유람하며 노래한 시로 제목은 알 수가 없다. 내용상으로 볼 때, 쌍계사의
아름다운 경관을 찬양하기 때문에 후인들이 <雙磎寺讚>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雙磎寺讚> 方丈三韓聞天下 雙磎形勝又無多// 鶴洞層波驚霹靂 石門四字舞蛟龍// 一鉢
乾坤長自在 滿山風月小經過// 布襪靑鞋吾已具 幽崖窈窕叩頭陀. 디지털하동문화대전,
http://hadong.grandculture.net/?local=hadong.
17) <偕趙東石由雙溪寺上國師菴爲十日遊期宣悠然在箕王石藍師冲鄭茶海圭錫成南坡蕙永追
到共賦> 謾道仙山不可望 千年海底出東方// 就中佳處雙溪在 何故浮生白髮長// 紅葉靑苔
都異世 文昌玉寶此爲鄕// 愧余來往風塵裏 靑鶴樓前路已忘. 官淸能爾見何曾 灑墨靈山雲
雪凝// 誰復有民如此客 古無名士不關僧// 梅依獨鶴亭亭立 鐘似微漚泛泛興// 我輩桑緣
寧易得 門前世路卽春氷. 황현, ?梅泉集?, 卷一.
42 호남문화연구 제57집
감흥을 시화한 작품이고, 매천의 <偕趙東石由雙溪寺上國師菴爲十日遊期宣悠
然在箕王石藍師冲鄭茶海圭錫成南坡蕙永追到共賦>는 칠언율시 2수 중 첫 수
의 수련과 함련이다. 특별한 논의가 없더라도 두 작품 모두 쌍계사의 아름다움
을 시화하고 있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이처럼 쌍계사는 작품 속에서 아름다
운 승경으로 묘사되었고, 이러한 작품들은 쌍계사의 미적이미지를 재생산해내
어, 조선조 유자들에게 쌍계사는 꼭 가봐야 할 승경으로 인식되었다고 본다.
이와 같이 관념 속의 쌍계사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쌍계사의 실제적 아름다
움 보다 과장되어, 더욱 아름다워졌다. 이것은 쌍계사라는 공간이 획득하게 된
중요한 정체성의 하나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체성은 쌍계사의 장소성으로 굳
어지게 되었다. 또한 이러한 인식은 章을 달리하여 살펴 볼 쌍계사의 다른 이
미지와 결합함으로써, 선계 내지 이상향의 지위를 획득하였던 것이다. 쌍계사
가 청학동으로 比定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세계 어느 문화권이나 존재하는 이상향의 추구는 우리나라에서 청학동으로
나타났고, 청학동에 대한 수많은 전설들은 그 장소에 대한 구체화가 시간의 경
과 속에서 지리산으로 압축되었다. 이러한 우리 민족의 이상향 추구가 쌍계사
라는 공간에 결합되어 나타난 것이 특성이다.18) 곧, 쌍계사와 청학동이 결합하
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것은 쌍계사의 공간적 특성 중 하나인 승경-아름다
움이다.
결과적으로 쌍계사의 ‘아름답다.’라는 공간적 특성이 ‘선계 내지 이상향’이라
는 ‘장소성’을 획득하여 나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쌍계사는 조선조 유자들에
게 아주 특별한 의미의 장소가 된 것이다.
18) 최석기는 조선시대 사인들이 지리산을 유람하게 된 동기가 크게 두 가지로 하나는 공자
의 ‘登泰山小天下’의 높은 정신적 세계를 지향하고자 함이었고, 다른 하나는 청학동, 삼
신동 등 선계에서 노닐며 탈속적 정취를 즐기기 위함이라고 말하였다. 최석기, 앞의 논
문, 40~43쪽 참조.
문학작품에 투영된 지리산 쌍계사 장소성 연구 43
Ⅲ. 脫俗의 공간
우리가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세상을
산다는 것은 일상을 사는 것이다. 이러한 일상이 주는 긍정적 이미지와 부정적
이미지를 고려해보면 일상이라는 말이 주는 의미는 다분히 이중적이다.
시대를 불문하고 일상 밖으로의 탈출은 그 여정이 상당히 매력적이었을 것
이다. 또한 일상 밖에서 얻어지는 소소한 즐거움은 삶의 활력이 되고, 우리는
이러한 기회를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삶 속에서 누리며 산다. 일상을 벗어난
삶으로 가장 대표적인 것을 찾자면 여행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조선조 유자들에게 있어서 산수 유람은 단순한 유람이 아니었다. ‘學’의 연장
이었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산수 유람을 떠났다. 그들에게 있어서 산수 유람은
산수 경치를 감상하는 것을 통하여 호연지기를 기른다든지, 질서 정연하고 조
화로운 자연 감상을 통하여 修己를 이루고자 함이었다. 이처럼 그들에게 자연
은 玩賞의 대상이 아니라 學의 방편이자, 수기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조선시대 유자들은 자연을 통하여 수기를 이루었고, 또한 이것이 문학을 하
는 이유였으며 작품 창작 동기였다.19) 그런데 지리산 쌍계사 관련 작품에서는
이러한 조선조 유자들의 도학적 자연관20)이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 다른 산
19) 사대부들에게 自然은 道學의 또 다른 표출이었다. 공자가 말하였던 ‘三人行必有我師焉’
(論語, 述而.)의 확장이라고 말할 수 있는 ‘子曰 知者樂水 仁者樂山 知者動 仁者靜 知者
樂 仁者壽’(論語, 擁也.)의 山水가 自然이었던 것이다. 자연은 이와 같이 玩賞의 대상이
아니라 學의 방편이자, 수기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사대부들은 자연을 통
하여 수기를 이루었고, 또한 이것이 자연을 통한 작품의 창작 동기이자, 내적 형상을 이
루었던 것이다. 김진욱(2005), ������송강 정철 문학의 재인식?, 역락출판사, 222쪽.
20) 조선조 사대부들에게 자연은 일종의 관념 속의 자연이다. 사대부들의 학문은 道學위주
이기 때문에 山水나 自然景物은 단순한 玩賞의 차원이 아니라, 生長死滅의 理法이 내재
된 자연의 소산물로 여겨진다. 특히 도학자들은 자연을 철학적인 관점에서 사유하므로
관념적, 추상적인 경향을 띠기 쉽다. 그리고 문학 작품 속에서 자연 경관을 묘사할 때도
미학적이기보다는 관념적 혹은 철학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사대부들의 산수문학
에 등장하는 자연계의 경물들이 경물 각각의 외형적인 특색과 외재적 요소가 지닌 현상
적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더라도, 그 이면에는 늘 ‘理’의 이치를 직관하고자 하는 의도
44 호남문화연구 제57집
수 유람과 달리 쌍계사를 찾았던 여정의 작품들에서는 이러한 도학적 정서보
다 또 다른 정서인 탈속적 정취가 주를 이루고 있다. 작품을 통하여 구체적인
논의를 하고자 한다.
寺在白雲中 절은 흰구름 가운데 있는데
白雲僧不掃 흰구름을 중은 쓸지 않네
客來門始開 손이 오자 비로소 문이 열리는데
萬壑松花老 온 골짜기에 송화가루 날리네
<佛日庵贈因雲釋>21)
三唐詩人으로 추앙받았던 李達의 작품이다. 이달의 <佛日庵贈因雲釋>은 인
구에 회자되었으며, 많은 선학들이 작품의 우수성을 언급하였다.22) “이달의
<佛日庵贈因雲釋>은 불일암 못지않게 유명한 시이다. 시를 읽으면 산사가 구
름에 잠겨 있는 풍경이다. 송홧가루가 익어 바람에 눈처럼 휘날리는 모습이 연
상된다. 불일암의 정경이 잘 묘사된 수작이다.”23)라는 평을 듣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화자와 대상과의 거리가 적절한 간격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절제가 잘 드러나고 있다. 화자인 이달은 전지적 시점을 갖춘 채 불일암의 한
가운데에 있으면서, 심상적 거리는 불일암과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轉句
의 ‘客’은 화자인 이달이다. 그럼에도 객으로 표현함으로써 작품 속에서 화자는
가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즉, 자연 경물의 외형적 아름다움을 그리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分殊의 理’를 터득하고자 하는 감상의 태도가 중시된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언제나 산수 감상에 있어 전제되는 개념이 아니라 거의 무의식적으로 잠재하는 세계인
식이다. 그래서 산수를 노래한 사대부의 시가는 대개 정적이기보다는 지적이고, 미적이
기보다는 교화적이라 하겠다. 안봄(2000), 「河西 金麟厚의 文學思想 硏究」, 조선대 박사
학위논문, 155쪽.
21) 이달, ?蓀谷集?.
22) 이 책에서 김갑기는 1사 1수 원칙으로 사찰을 대표하는 작품을 하나씩 선정하였는데,
불일암에서는 이 작품을 선정하였다. 김갑기(2005), ?시로 읽는 사찰문화?, 제이엔씨,
336쪽.
23) 김진욱(2011), 앞의 책, 194쪽.
문학작품에 투영된 지리산 쌍계사 장소성 연구 45
대상과의 관계에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절제와 탈속의 심상이 작품
의 미적 아름다움을 완성하고 있는 작품이다.
불일암이 흰구름 속에 있다는 표현은 불일암이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24) 여기서의 흰구름은 화자의 심상에서 창조해 낸 대상물
이다. 불일암의 신비스러운 청정함이 만들어 낸 이미지인 것이다.25) 이러한 청
정한 공간은 靜寂의 공간이자, 깨달음의 공간이다.
이달의 <佛日庵贈因雲釋>의 起句와 承句는 정지된 화면이다. 세상으로부
터 완전히 일탈된, 시간마저 멎어버린 공간이다. 객이 오자 비로소 문이 열리
고, 그제야 정지되었던 시간이 다시 작동하여 송화가루가 날리는 것이다. 신비
스러움까지 갖춘 상상 속의 세계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엔 없는 세계, ‘세상 밖
공간’인 것이다.
이와 유사한 시상을 보여주는 許穆의 <庚辰九月三日從花開洞觀雙谿石門>
이다.
佛日直俯千丈磎 불일암 올라 천 길 계곡 굽어보니
寒崖峭壁纔有路 찬 비탈 험한 벼랑에 겨우 길 하나 있네
風塵不到烟霞老 세상 풍진 이르지 않아 안개만 자욱하고
洞府蒼蒼石色古 골짜기 아득하여 돌 빛만 예스럽네
<庚辰九月三日從花開洞觀雙谿石門>26)
24) 불일암은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에 위치한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
사인 쌍계사의 부속암자이다. 신라의 元曉와 의상이 도를 닦았고 1205년(희종 1) 普照國
師가 머물렀던 곳이다. 신라 말 진감국사 혜소가 창건한 사찰로 해발고도 650여 미터에
자리하고 있다.(이정(1996), ?한국불교사찰사전?, 불교시대사, 290쪽 참조.) 실제 체감 높
이는 이 보다 훨씬 높게 느껴진다. 불일암을 직접 방문하면 산 중 사찰로써 고립무원의
느낌이 강하고, 실제 높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이 올랐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러나 사실 불일암이 흰구름 속에 묻힌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불일암 아래로 구름이 있을 것 같다.
25) 정민은 “속세에서 짊어지고 온 나그네의 근심도 흰구름 속에 파묻혀 송홧가루로 날리운
다.”며 이 작품에서 불일암이라는 공간이 만들어내는 청정성에 주목하여 선시의 자취를
논하였다. 정민(1996), ?한시미학산책?, 솔, 401쪽.
46 호남문화연구 제57집
이 작품은 조선조 유자들이 쌍계사를 찾는 이유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에서 그려지는 세계는 ‘탈속의 세계’이다. 작품 전체에서 느껴지는 청정
함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찾을 수 없는 미감이다. 인간의 때가 전혀 묻어
나지 않는 원시림 같은 쌍계사의 자연이, 탈속의 세계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
이다. 특히 전구의 ‘風塵不到烟霞老’는 이 작품의 詩眼이다.
오늘날 불일암에 오르면 멀리 하동이 보인다. 그러나 허목이 불일암에 올랐
을 때는 끝없이 계곡이 펼쳐져 있었을 것이다. 불일암에서 바라보는 끝없는 원
시림, 세상으로부터 홀로 떨어진 고립무원의 정서가 이 전구에 와서 청정함으
로 승화하고 있다. 세속의 모든 때, 風塵은 이르지 못하고, 煙霞만이 자욱하다.
자못 신비스러움까지 곁들인 쌍계사의 風光이다. 이것이 조선조 유자들을 계
속하여 쌍계사로 불러들인 이유였던 것이다.
오늘날도 불일암에 오르면 탈속적 정취를 느끼곤 한다. 길이 닦여져 있지만
낭떠러지를 따라 돌아 불일폭포에 이르는 길은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설화에
등장하는 이상향을 찾아가는 길의 정서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래서 지
금도 많은 이들이 ‘지리산에 청학동이 있다면 불일평전일 것이다.’라고 이야기
를 한다.
다음 정홍명의 작품 역시 동일한 정서이다.
暮天嵐翠泛層巒 저물녘 비취빛 아지랑이는 겹겹이 산을 두르고
小刹深藏亂石間 작은 절은 돌 틈 사이로 세상을 피해 있네
仙馭杳然楓桂老 신선은 말을 몰아 묘연한 풍계 밑에서 머물고
獨扶藜杖下秋山 나 홀로 지팡이에 의지하여 가을산 아래로 가네
<佛日寺 次崔孤雲遺韻>27)
26) <庚辰九月三日從花開洞觀雙谿石門>는 칠언절구 3수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여기에서는
그 첫 수를 인용하였다. 나머지 두 수는 다음과 같다. 東望香爐瀑布水 飛流亂灑深如霧//
白日晦迷忽悽愴 天風颯颯吹飛雨. 學士舊跡靑苔沒 眞訣不傳心獨苦// 鶴去山空日月深 使
我杳然思玄圃. 허목, <庚辰九月三日從花開洞觀雙谿石門>, ?記言?.
27) 정홍명, ?畸翁集?.
문학작품에 투영된 지리산 쌍계사 장소성 연구 47
이러한 탈속의 정서는 아름다운 승경과 어우러져 선계이미지를 만들어 내
었다. 무엇보다도 삼신동, 청학동 등 우리 민족의 무릉도원으로 상상해냈던 선
계를, 많은 이들이 불일암으로 비정하였다는 것에서 잘 알 수 있다.28)
탈속의 정서가 과도하면 선계로 승화되었고, 절제되었을 땐 청정의 공간29)
으로 나타났다. 다음은 조선시대 지리산을 대표하는 학자 중 하나인 南冥의
<讀神凝寺>라는 작품이다.
瑤草春山綠滿圍 아름다운 풀로 봄 산에 푸른빛이 가득한데
爲憐溪玉坐來遲 옥 같은 시냇물 사랑스러워 늦도록 앉아 있노라
生世不能無世累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세상 얽매임 없을 수 없기에
水雲還付水雲歸 물과 구름을 도로 물과 구름에 돌려주노라
<讀神凝寺>30)
南冥의 <讀神凝寺>는 시의 미감이 동적이라기보다는 정적이다. 이 작품은
起句와 承句에서 신흥사31)의 春景을 노래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춘경을 묘사
하는 데에는 정적 이미지 보다는 동적 이미지가 훨씬 더 어울린다. 그래서 생
동하는 봄의 경치를 묘사하는 데에는 동적 이미지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
다. 그러나 南冥의 <讀神凝寺>는 한 컷의 사진처럼 느껴질 정도로 靜的이다.
이러한 靜寂感은 承句의 표현처럼 ‘坐來遲’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後情이
라고 할 수 있는 轉句와 結句에서 느껴지는 탈속함에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28) 여러 비결서에서 오늘날 불일암 바로 아래 불일평전을 청학동으로 비정하였다.
29) 세상으로부터 벗어난 공간이라는 의미에서 탈속의 공간과 함께 하지만, 세상 속에 존재
하는 갈등이 사라진 무욕, 무탐의 공간을 의미한다.
30) 조식, ?南冥集?.
31) 神凝寺는 화개동천 중심지라 할 수 있는 화개면 범왕리 왕성초등학교 자리에 있던 지리
산 굴지의 대 사찰로 神興寺라고도 하였다. 神興寺는 조선시대에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지리산의 理想鄕을 찾아 방문했던 곳으로 신라 말 孤雲이 세상의 어지러움을 피해 여기
에 와서 더러운 소리에 때 묻은 귀를 씻었다는 洗耳癌이 바로 앞 계곡에 있다. 쌍계사와
는 지척 간의 거리에 있다.
48 호남문화연구 제57집
있는 것이다.
南冥과 같은 도학자도 세상 속에서는 세상에 얽매일 수밖에 없기에, ‘아름다
운 푸른빛의 봄 산’, ‘옥 같은 시냇물’을 마음에 담지 못하는 것이다. 신흥사에
서는 세상 밖과 세상 안의 경계가 종이 한 장 차이이다. 마음에 담느냐, 다시
돌려주느냐의 차이인 것이다. 아무런 욕심이 없는 것이다. 무위의 정서가 청정
함으로 나타나고 있다.
南冥의 절제된 감정이 자연을 다시 자연에게 돌려주었지만, 이 작품은 탈속
적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으며 그러한 이유는 신흥사라는 작품의 창작 공간이
화자의 정서에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명이 신흥사에 머물던 시간은 세상
속에 있는 것도 아니고, 세상 밖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32) 이러한 심회가 작품
에 물씬 풍겨나고 있다.
논의한 바와 같이 쌍계사의 탈속적 세계는 몰입을 통하여 선계로 나타났고,
절제를 통하여 청정의 공간으로 나타났다.33) 그러나 공맹의 길을 숭상하였고
?大學?의 八正道를 걸어야만 했던 조선조 유자들에게 청정의 공간은 세상 안
도 밖도 아니었던 것이다. 더구나 선계는 유자가 머무를 수 없는 곳이었다. 그
래서 쌍계사는 조선조 유자들이 정주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지나갈 수밖에 없
는 곳이었다.
소유하고 싶으나 소유할 수 없다는 사실은 오히려 쌍계사를 더욱 관념 속의
공간, 인식 속의 공간으로 신화화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쌍계사의 공간적 특
성이 조선조 유자들을 끊임없이 그것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탈
속과 청정의 이미지는 우리 민족의 이상향인 청학동의 이미지와 결합해 나가
32) 남명의 이 시절은 李珥가 <萬言封事>에 밝힌 遺賢, 隱遁의 신분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33) 동일한 정서의 반복이라 모두 논의하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판단한다. 대표적인 작품 몇
을 예시하고자 한다. 幾年收視臥幽岑 缾鉢蕭然只此心// 明月滿樓淸夜永 白雲埋谷暮天
深// 訪古惠師聊寓跡 題詩癩可孰知音// 自慚懶拙囚塵臼 回首靑山謾獨吟. 雲間隱約秀孤
岑 正對幽人不染心// 泉噴雪花松徑濕 日烘嵐氣石堂深// 寒灰撥火香生篆 靜夜持珠磬發
音// 宴坐百年拚到岸 瀾翻千偈試長吟. 崔岦, ?簡易集?, <雙溪卽事>. 方丈自此入 豈將人
境同// 奇巖寫淥水 落日在丹楓// 往躅雙溪字 淸遊一笛風// 居僧應笑我 暫脫簿書叢. 기
대승, <贈雙溪僧性默>, ?高峰集?.
문학작품에 투영된 지리산 쌍계사 장소성 연구 49
면서 쌍계사의 장소성을 확보해 나갔던 것이다.
Ⅳ. 遭遇, 回顧의 공간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중국의 작은 소도시 곡부를 찾거나, 별반 내세
울 것 없는 성도를 찾는 즐거움은 만남에 있다. 그 공간에 섰을 때, 그 만남이
조금은 특별하기에 우리는 특정 공간을 찾는 것이다. 이처럼 특정 장소가 각각
의 개인에게, 아니면 특정 성향의 부류에게 다르게 다가오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조선조 유자들이 쌍계사를 찾은 이유 중의 하나가 쌍계사 곳곳에 남아
있는 遺蹟에 대한 감상이다.34) 조선시대 유자들은 그곳을 먼저 찾고, 그곳에
자취를 남기었던 역사적 인물에 대한 회상과 흠모를 통하여 자신에 대한 성찰
의 계기로 삼고자 하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나 만나고 싶었던 역사적 인물을 찾아 길을 나서
는 것은 즐거움이다. 더구나 거기에 남겨진 인물들의 자취를 감상하는 것은 더
욱 즐거운 일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감회가 시화되는 것은 당연하다. 쌍계사를
시화한 작품 중에는 이와 같이 회고할 수 있는 특별한 인물의 유적이 시적 제
재가 되고, 주제가 되어 시화가 된 작품이 많다.35)
쌍계사에 투영된 회고 공간에 대한 유자들의 인식은 불자와 유자가 공유하
34) 지리산 유람기를 가장 많이 생산해 낸 인물들은 경상우도로 불리는 진주문화권의 학자
들이다. 그 유람록 수는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이러한 이유는 지리적 특성 등 여러 이유
가 혼재되어 나타난 결과이겠지만, 남명의 문인들이 숱하게 지리산을 찾은 이유 중의
하나가 남명 유적지에 대한 방문이라는 것을 부정하기 힘들다.
35) 지리산권 사찰 제영시에는 이러한 인물에 대한 회고시가 많다. 굳이 나열하자면 진감국
사, 유정, 휴정, 부휴선사 등 불가인과 앞에서 거론하였던 최치원, 조식, 김종직 등의 유
자들, 칠왕자, 옥보고 등 전설화 된 인물들로 유형을 가를 수 있겠다. 이러한 인물들은
지리산 곳곳에 그 자취를 남겼고, 훗날 이곳을 찾는 이는 그 공간에서 그들을 회고하였
던 것이다. 이처럼 지리산권 사찰 제영시에는 인물에 대한 회고시가 많다는 것이 주요한
특성이다. 김진욱(2012), 「지리산권 사찰 제영시에 투영된 불교 공간 인식 연구」, ?인문
과학논총? 제31집, 순천향대학교, 37~67쪽.
50 호남문화연구 제57집
였던 장소36), 역사와 인물에 대한 흠모와 함양이 계속되는 명승 공간이었다.
이것이 쌍계사의 장소성 중 하나이다. 이러한 여러 인물과의 만남 중 특히 쌍
계사와 고운의 만남은 특별하다. 작품을 통하여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하고자
한다. 다음은 安處順의 <雙磎寺>이다.
徐步苔路足自蹟 이끼 낀 길 천천히 걸어 고적에 오르니
山堂石碑事堪稽 산사의 비석은 옛일을 생각케 하네
蒼茫千古三韓士 아득히 오랜 옛적 삼한의 선비
磅磚如今四字頭 쌍계석문37) 네 글자는 방금 쓴 듯 힘차구나
萬世文章扶日月 만세문장은 해와 달을 부여잡고
當時筆法可端倪 당시 필법을 널리 전했네
爲憐靑鶴尋仙府 청학을 사랑해 청학동을 찾았으나
滿袖松香路欲迷 소매에 솔향기만 가득할 뿐 갈 길은 아득하네
<雙磎寺>38)
安處順의 <雙磎寺>는 全情의 구조로 이루어진 칠언율시이다. 首聯에 간접
적으로 景이 드러나 있지만 전체적으로 情에 기반 하여 시화되고 있는 작품이
다. 그러므로 안처순에게는 쌍계사의 경치보다도 쌍계사에 남겨진 고운의 유
적이 더욱 큰 의미로 다가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情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이 작품은 칠언율시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頷聯과 頸聯에서 최치원의 쌍계
36) 당대의 식자층인 승・속간에 儒佛不二의 전통적 의식으로 부단한 교유가 이어왔기 때문
이라 했다. 中略 사찰이 불자에게는 이를 바 없는 수도도량이자 생활문화 공간이지만,
유자들에게도 세속적 삶을 돌아보게 하는 신비체험의 장이자, 그 회한의 정을 깨우치는
장임을 읽을 수 있었다. 김갑기(2007), 「조선후기 사찰제영시고」, ?한국어문학연구? 제
48집, 한국어문학연구학회, 55쪽.
37) 雙磎石門, 쌍계사 입구 양쪽 바위에 왼쪽에는 雙磎, 오른쪽에는 石門이라고 쓰여 있다.
지금도 부식되지 않아 확연히 알아볼 수 있는데, 최치원이 지팡이로 쓴 글씨라고 전해진
다. 수많은 지리산 유산기와 한시 작품에서 이 쌍계석문을 언급하고 있다.
38) 안처순, ?思齋實記? 卷二.
문학작품에 투영된 지리산 쌍계사 장소성 연구 51
석문을 직접 보는 감동을 시화하고 있다. 尾聯에서는 ‘爲憐靑鶴尋仙府’라며,
시제인 쌍계사를 찾은 이유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안처순은 爲憐靑鶴했기에
尋仙府한 것이다. 안처순이 사랑한 청학은 고운이다. 고운과 청학에 얽힌 숱한
설화들은 오늘날도 지리산 곳곳에 산재해 있으며, 특히 그 중심에 쌍계사가 있
다. 쌍계사에서 불일암 가는 길에 지금도 자리 잡고 있는 환학대는 그 증좌 중
의 하나이다.
이와 같이 고운에 대한 인식이 시적 제재가 되고, 주제가 되어 시화된 작품
이 많다.39) 다음은 동일한 맥락의 金安國의 작품이다.
聞說雙磎寺 말로만 듣던 쌍계사는
孤雲舊所遊 옛날 고운 선생이 놀던 곳
幾曾馳夢想 몇 번을 꿈에 그렸지만
竟未訪眞區 끝내 청학동은 찾지 못했네
咫尺如千里 지척이 천 리 같고
頭顱颯九秋 두류산 단풍은 깊은 가을인데
煙霞非我分 산수를 즐김은 내 복이 아니런가
矯首意悠悠 다시 한번 생각하니 마음이 한가하네
<雙磎寺>40)
金安國 역시 옛날 고운 선생이 놀던 쌍계사를 그리는 마음이 시적 제재가
되어 작품을 완성하였다. 이처럼 지리산을 찾는 이들은 고운의 유적에 대하여
동일한 심상의 다수의 작품을 창작하였다. 유자들뿐만이 아니라 승려들의 작
39) 한시 작품과 달리(한시 작품에서는 고운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예를 찾아보기 힘들다.)
유람록에서는 최치원이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강정화(2013), 「지리산 유람록으
로 본 최치원」, ?지리산과 유람 문학?, 보고사, 165~166쪽. 조선조 사인에게 있어 최치
원은 불우한 자기 삶을 위무하는 존재였으며, 불화한 현실을 잠시나마 벗어나 이상향의
세계로 이끄는 안내자였으며, 때로는 출중한 재주를 지닌 선망의 대상으로, 때로는 자신
과 다른 사상을 지닌 비판의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40) 김안국, ?慕齋集?.
52 호남문화연구 제57집
품에서도 이러한 시정은 나타나고 있다.41)
神興寺는 화개동천 중심지라 할 수 있는 화개면 범왕리 왕성초등학교 자리
에 있던 대사찰로 神凝寺라고도 하였다. 주변의 풍광이 너무 절경이라 서산대
사도 열다섯 어린 나이에 “이곳을 고향으로 삼고 싶다.”며 불문에 들었으며, 南
冥 역시 자주 이곳을 찾았다. 조선시대에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智異山의 理想
鄕을 찾아 방문했던 곳이기도 하며, 최치원이 세상의 어지러움을 피해 와서 더
러운 소리에 때 묻은 귀를 씻었다는 洗耳癌이 있는 곳이다. 이러한 이유로 신
흥사를 찾는 시인묵객들은 이러한 역사를 시로 읊곤 하였다. 그 가운데 李晬光
의 <神興寺過雨>를 살펴보고자 한다.
洞裏行尋學士臺 신흥동천 안으로 학사대42)를 찾아가니
寺門秋水小橋回 절간 문 가을 물이 조그만 다리를 둘러 있네
無端一陣溪頭雨 무단히 시냇가에 한줄기 비 내리니
應爲詩人洗眼來 응당 시인에게 눈을 씻고 오도록 함이네
<神興寺過雨>43)
李晬光은 <神興寺過雨>의 起句에서 학사대를 찾아가고 있다. 그러나 神興
寺에는 학사대가 없다. 시적 상징으로 볼 수도 있겠고, 李晬光의 착각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어떻게 보아도 신흥사가 명승 공간으로 이름을 날린 이유
중의 하나가 최치원이 상주하였던 공간이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에는 차이가 없
다. 이러한 유허지이기에 이곳을 찾는 이들은 마음을 씻고 들어서야 하며, 李
晬光 역시 결구에서 신흥사에 내리는 비는 자신의 마음을 씻기 위함이라고 노
래하고 있다.
41) 頭流方丈眞仙界 鼓翼淸吟付石門// 石門筆迹人間寶 遊戱金壇銷白雲. 逍遙大師 太能, <題
雙磎寺崔孤雲石門筆迹>, ?逍遙堂集?.
42) 學士臺는 가야산 해인사에 있다. 신응사에는 학사대가 없고, 있었다는 기록도 없다. 여
기서는 최치원을 비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43) 이수광, ?芝峰集?.
문학작품에 투영된 지리산 쌍계사 장소성 연구 53
지리산 쌍계사에는 고운의 자취가 숱하게 남겨져 있다. 역사적 기록으로는
확인할 수 없지만, 설화와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고운은 쌍계사, 불일암,
칠불사 등에서 오래 거처하였다. 고운은 또한 학을 타고 다녔다고 한다. 이러
한 이유로 고운과 청학, 그리고 쌍계사로 이어지는 이미지는 습합되면서 우리
민족의 이상향인 청학동으로 인식되어 갔던 것이다.
조선조 유자들이 지리산을 찾는 두 가지 이유는 천왕봉에 올라 공자의 ‘登泰
山小天下’의 높은 정신적 세계를 지향하고자 함이었고, 다른 하나는 청학동,
삼신동 등 선계에서 노닐며 탈속적 정취를 즐기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150여
편의 지리산 유람록은 크게 두 가지 여정으로 압축되어 나타난다. 천왕봉 코스
와 청학동 코스이다. 청학동 코스는 쌍계사 코스이다. 쌍계사가 지리산에서 반
드시 가봐야 할 장소가 되었던 것은 승경, 탈속 공간, 유허지 등의 여러 이미지
가 상호작용하면서 우리 민족의 이상향인 청학동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지리산 쌍계사는 청학동이라는 장소성을 확보해 나간 것이다.
Ⅴ. 결 론
조선조 유자들에게 쌍계사라는 장소가 어떤 의미를 가졌는가를 세 가지 범
위 안에서 논의하였다. 첫째, 문학 작품, 그 가운데에서도 한시 작품만을 대상
으로 논의하였다. 둘째, 조선조 유자들의 작품만을 대상으로 하였다. 셋째, 쌍
계사를 관념적 장소로 보아, 쌍계사 외에도 칠불사, 불일암, 신흥사 소재 한시
까지 포함하였다.
조선조 유자들이 쌍계사를 찾은 첫 번째 이유는 ‘경치가 아름답다.’이다. 오
늘날 우리가 알프스의 융프라우에 오르기를 꿈꾸고, 하다못해 제주도를 여행
하는 이유가 다 아름다운 곳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이유보다도 가장 현실적인
아름다움을 보고 누리기 위하여 조선조 유자들은 쌍계사를 찾았고, 그것은 그
들의 작품에 여과 없이 나타나 있다.
54 호남문화연구 제57집
조선조 유자들이 쌍계사를 찾은 두 번째 이유는 일상으로부터 일탈, 즉 탈
속의 세계를 추구하였기 때문이다. 쌍계사의 장소감, 그 청정함이 아름다운 승
경과 어우러져 세상 밖 세계를 구축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시기를 불
문하고 끊임없이 쌍계사는 존재하지 않는 선계로 비정되었다. 인간의 때가 전
혀 묻어나지 않는 원시림 같은 쌍계사의 자연은 탈속의 세계를 만들어냈고 조
선조 유자들을 계속하여 불러들였던 것이다.
조선조 유자들이 쌍계사를 찾은 마지막 이유는 쌍계사 곳곳에 남아있는 遺
蹟에 대한 감상이다. 조선시대 유자들은 그곳을 먼저 찾고, 그곳에 자취를 남
기었던 역사적 인물에 대한 회상과 흠모를 통하여 성찰의 계기로 삼고자 하였
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가운데 지리산의 가장 대표적 인물이라 할 수 있는
고운과의 만남은 청학동이라는 장소성을 획득하는 주요한 계기가 되었다.
쌍계사는 승경, 탈속과 청정 공간이미지, 역사와 전설과의 습합을 통하여 특
별한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특정 공간이 청학동이라는 장소성을 획득하여 나
간 것이다. 이렇게 획득된 장소성을 가지고 끊임없이 조선조 유자들을 쌍계사
로 불러들였다. 숱한 시인묵객들은 지리산 쌍계사를 詩化하면서 청학동을 노
래하였다. 그래서 청학동을 시화한 작품들의 상당수가 쌍계사 문화권을 공간
적 제재로 삼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실제든 관념 속이든 조선조 유자들에게
쌍계사는 반드시 가봐야 할 장소가 되었다.
문학작품에 투영된 지리산 쌍계사 장소성 연구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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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일: 2015. 05 20. 심사기간: 2015. 05. 25.~2015. 06. 01. 게재확정일: 2015. 06. 03.
문학작품에 투영된 지리산 쌍계사 장소성 연구 57
|국문초록|
문학작품에 투영된
지리산 쌍계사 장소성 연구
- 한시 작품을 중심으로 -
조선조 유자들은 시기를 불문하고 끊임없이 쌍계사를 찾았다. 그들이 왜? 쌍계
사를 찾았는가. 조선조 유자들에게 쌍계사의 의미, 즉 지리산 쌍계사의 장소성을
고찰하는 것이 본 논문의 목적이다. 이를 위하여 조선조 유자들에게 쌍계사라는 장
소가 어떤 의미를 가졌는가를 세 가지 범위 안에서 논의하였다. 첫째, 문학 작품,
그 가운데에서도 한시 작품만을 대상으로 논의하였다. 둘째, 조선조 유자들의 작품
만을 대상으로 하였다. 셋째, 쌍계사를 문화권의 장소로 보아, 쌍계사와 칠불사, 불
일암, 신흥사 소재 한시까지 포함하였다.
조선조 유자들이 쌍계사를 찾은 첫 번째 이유는 ‘경치가 아름답다.’이다. 아름다
움을 보고 누리기 위하여 조선조 유자들은 쌍계사를 찾았고, 그것은 그들의 작품에
여과 없이 나타나 있다. 쌍계사 작품에는 아름다움이 시적 제재가 되고, 주제가 된
것이 상당하다.
두 번째 이유는 일상으로부터 탈출, 즉 탈속의 세계를 추구하였기 때문이다. 쌍
계사의 청정함이 아름다운 승경과 어우러져 세상 밖 세계를 구축하였기 때문에 쌍
계사는 존재하지 않는 선계로 비정되곤 하였다. 선계에 대한 탐방이 조선조 유자들
이 쌍계사를 찾은 이유이다.
조선조 유자들이 쌍계사를 찾은 마지막 이유는 쌍계사 곳곳에 남아있는 遺蹟에
대한 감상이다. 조선시대 유자들은 그곳을 먼저 찾고, 그곳에 자취를 남기었던 역
사적 인물에 대한 회상과 흠모를 통하여 자신에 대한 성찰의 계기로 삼고자 하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이러한 정서들이 융합하면서 쌍계사는 이상향의 지위를 획득하
58 호남문화연구 제57집
여 나갔다. ‘지리산 어딘가에 이상향이 있다면 그곳은 쌍계사일 것이다.’라는 암묵
적 동의가 쌍계사를 청학동으로 比定하게 하였던 것이다.
쌍계사는 이와 같은 장소성을 가지고 끊임없이 조선조 유자들을 쌍계사로 불러
들였다. 그리고 실제든 관념 속이든 조선조 유자들에게 쌍계사는 반드시 가봐야 할
장소가 되었다.
주제어 : 지리산, 장소, 장소감, 장소성, 청학동, 쌍계사, 칠불사, 불일암, 신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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