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원자탄의 시간과 종말의 상상
2. 핵, 프로메테우스와 프랑켄슈타인 사이
3. 북조선의 전쟁, 원자탄 공포의 극복
4. 사물화된 ‘인해(人海)’, 과학에 맞서는 야만
5. 합리성의 비합리성, 그 문학적 과제
국문초록
1960년대 초․중반 남․북한에서 각각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장편소
설 원형의 전설과 시대의 탄생은 드물게도 원자탄이라는 핵무기를
화소(話素)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1945년 8월 히로시마․나
가사키에 원자탄이 투하된 이래 핵무기는 언제나 한반도의 운명과 가까
이얽혀있었다.일본제국으로부터의해방에계기가된것은물론이고한
국전쟁당시에는미국에의해원자탄사용계획이검토되었으며, 전쟁이
끝난 후에도 남․북한 각각에서 핵에너지 및 핵무기에 대한 관심이 계속
328 한국문학연구 43집
된 끝에, 2005년에는 북조선이 핵무기 보유를 선언한다. 핵무기는 최초
개발 직후부터 과학을 초과한 과학으로, 세계의 정치․경제․사회 체제
에대한근본적인질문이자인식론적도전으로취급받았던만큼, 더욱이
한반도는전쟁및휴전이라는상황을통해그무기의사용가능성에가까
이 노출돼 있었던 만큼 문학에 있어서도 일정한 응전(應戰)을 기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북조선의 전쟁문학에서 간간이 원자탄의 공포가
상기됐던 데 비해 남한 문학에서는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 원형의 전
설이라는 문제적 소설에서도 인류의 종말이라는 가상적상황과 연결돼
알레고리적 용법으로 쓰였을 뿐이다. 반면 비슷한 시기의 북조선 소설
시대의 탄생에서는 원자탄이 한국전쟁의 근본적 변수 중 하나로 취급
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듯 남․북한 사이 비대칭을 확
인함으로써 전쟁 기억 및 이후 대응에 있어서의차이 또한 확인하고, 동
시에 아직도 인류가 적절히 응답치 못하고 있는 이 ‘과학을 초과한 과학’
에 대한 사유의 가능성을 찾아보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주제어 원자탄, 한국전쟁, 냉전, 맥아더, 장용학, 석윤기, 원형의 전설,
시대의 탄생
1. 원자탄의 시간과 종말의 상상
원형의 전설(1962)은 21세기에 읽기 좋은 소설이다. 생애사적 주기
에한정되기마련인근대소설의규약을멀리벗어나있다는점에서우선
그렇다. 장용학은 ‘한국어 자체가 서툰’ 작가이고 그가 쓴 소설 대부분이
그렇듯원형의전설도미학이나논리의완결성으로야곳곳에서파열음
을 내고 있는 텍스트지만, 그럼에도 장용학이라는 작가와 원형의 전
과학의 영도(零度), 원자탄과 전쟁▪권보드래 329
설이라는장편이한국소설사에서드문장면을빚어내고있음은분명한
사실이다. 장용학은 해방에서 한국전쟁에까지 이르는 경험을 개인․지
역․민족의 차원에서 반성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류사적인 차원으로까지
고양시키고자 했다. 서술된 시간으로 따지자면 주인공 이장을 중심으로
1950~62년 사이 12년, 그 출생의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가더라도 30여
년에 불과한 부피를 다루면서도 원형의 전설은 “백년 후의 공산주의
(…) 백년후에는‘공산주의’라는것이없어진다는사실”(131)을점치고“5
백년 후(…) 담 너머 보이는 저 빌딩이 고궁이 될 때 사람들은 어떤 옷을
입고 무엇을 걱정하며 무엇에 관심을 두고 살 것인가”(176) 같은 단위의
상상을 서슴지 않는다. 획시기적인 광장이 발표되고 이미 2년 가깝게
지난 다음이었는데도 사상계 연재 시절 원형의 전설이 적잖은 호응
을얻었다는사실1)은이렇듯확장된시-공간을문제삼았다는점과무관
하지않을것이다. ‘사색자의표정’에도불구하고‘그의식내용은극히범
용’하다는 혹평2)이 있었으나 1950년대의 지식․문학장에서는 장용학과
같은코스모폴리탄적포즈가필요하였고, 원형의전설은그대미에해
당할 법한 소설이었다.
따져보자면이상상력의실감은초라하다. 장용학은신판창세기로서
원형의 전설을 쓰면서도 “‘합리적’이라는 만유인력”(272)을 벗어나 “인
간성에서의 인간의 해방”(287)을 이룩해야 한다는 투의 설익은 관념만을
제시하고 있으며, 금단의‘복숭아’를 즐기는 새로운 이브안지야와 그 연
인 이장으로 하여금 근친상간이라는 원죄를 반복하는 동시 부정케 하는
역설적 순환만을 보여주는 데서 그치고 있다. 연재 직후 열린 좌담에서
작가는“새로운인간형이란것은전혀상상할수없는것”이며“이작품에
1) 「(좌담) 뛰어 넘었느냐 못 뛰어 넘었느냐」, 사상계, 1962. 11, 276쪽.
2)유종호, 유종호 전집1, 민음사, 1995, 300~301쪽. 1964~65년 사이 있었던 장
용학과유종호사이논전에대해서는한형구, 「초기 유종호비평의어문민족주의
적 정향성에 관하여」, 한국현대문학연구27호, 한국현대문학회, 2009. 4, 358~
362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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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내세의사람,내세의세계같은것을가능한대로비”치려했을따름이
라고 토로하지만, 다른 참석자들의 말마따나 이것은 인간의 초월이라기
보다인간의전락처럼보이며, 혹은사변에과도하게의지함으로써서사
적파탄을초래한데가깝게느껴진다.3) 그럼에도공산주의의몰락과인
간중심주의의위기를목격한오늘날의시각에서조망하자면원형의전
설은 분단과전쟁이라는1950년대한반도의현실을 해석할때좌표 이
동을감행한희유한실험이었다는사실만으로도주목해볼만하다. 현실
과환상사이인과를의심하면서흡사다중우주론같은사유를전개한다
거나시간적선조성대신순환성을개진해본다거나, 원형의전설은사
생아이장의삶과생각이그리는궤적을좇으면서근대바깥의가능성을
광범하게 탐색한다.
앞선 연구에서 지적되었다시피 이런 가능성은 액자 바깥 아득한 미래
의서술자라는설정을통해제시되고있는데4) 이때이장개인의죽음에
상응하는 인류사적 사건으로 배치된 것이 곧 핵전쟁이다. 원형의 전
설의서술자는“자유와평등이핵전쟁을일으켜결국인류前史에종언”
이초래되었다고쓰면서한국전쟁을“그전초전과같은전쟁”이라는위치
에놓는다(5).인간의파괴본능이나전투성향이인간을인간이게끔한조
건이라면“인류전사에종지부를찍게한핵전쟁은그들이스스로자기의
조건을 청산하기 위한 예정조화”(14)와도 같다. 인간이 스스로를 지양하
기위해감수해야했던파괴와변신의사건, 그것이곧핵전쟁인셈이다.
원형의전설이알레고리로서축조되어있다고볼때동굴속이장의죽
음은곧핵전쟁을상징하는데,과연이장이죽은자리에선생명수(生命樹)
인 듯 복숭아나무가 돋아나 새로운 세계의 씨앗을 퍼뜨린다: “핵전쟁이
분비해낸방사능이빙하시대처럼세계를휩쓴다음,동굴이꺼진자리에
3) 「(좌담) 뛰어 넘었느냐 못 뛰어 넘었느냐」, 282~284쪽.
4)서영채, 「알레고리의내적형식과그의미」, 민족문학사연구3호, 민족문학사연
구소, 1993, 174~176쪽.
과학의 영도(零度), 원자탄과 전쟁▪권보드래 331
서는복숭아나무가한그루솟아났습니다(…)오랜옛날의일이어서확실
한것은알수없지만, 전설에의하면우리가즐기는복숭아는그가지에
맺혔던 열매의 씨가 사방에 흩어져서 번식한 것이라고 합니다”(413).
핵전쟁은 원형의 전설에서 서사의 종결일 뿐 아니라 남북한 관계를
조망하고 인간의 조건을 가늠케 하는 궁극적 시점perspective이다. 예
컨대공산주의를평가할때서술자는“빵을약속했다는점에서맑시즘이
복음”처럼 들렸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핵분열’ 이전의 복음”(177)일 뿐이
라고못박는다. 공산주의는“자본주의죄악에적대하기위해서만존재해
있는 골짜기”(183)이자 “제 2의 르네상스를 예비하는 암흑”(183)이다. 자
본주의가‘자유’를선전하는데비해공산주의는‘빵’을약속하지만, “공산
주의보다는낫다해서그부패를견디어내고있는”(130)자본주의나“선을
강요하는 것 같은 부정적인 ‘악’적 존재”(131)로 연명하고 있는 공산주의
나인류의미래가되기에는모두부족하다. 원형의전설의서술자는주
인공 이장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대 공산주의의 이원 대립에서는 전자
편에 기울어 있으면서도 둘 중 하나에서, 혹은 둘의 종합에서 희망을 보
는 데는 반대한다. 장용학의 다른 소설에서 거듭 설파되듯 ‘인간’이라는
자격 자체가, 또한 근대적 인간형의 핵심인 ‘자유’ 자체가 심문되지 않으
면안된다: “자유는인간의마지막배설물. 인간이인간이려면, 빵을위
해서일 때와 마찬가지로 자유를 위해서 죽는다는 것도 수치스러운 죽음
에 속해야 할 것이다(…) 빵에서부터 자유까지, 이것이 현대인이라는 원
의 중심과 원주 사이의 거리이다(…) 그래서 현대는 상상력이 유일한 도
덕이 되어야 한다. 정의가 아니라 합리가 아니라, 상상력이라는 나침반
을 가지고 항해하지 않으면 우리 배는 좌초하고야 만다”(176).
물론원형의전설의서술자는갈팡질팡한다. “靈을단념하고肉을통
하여 ‘이데아’로 돌아가라는 계시”(211)에 흔들리는가 하면 “명랑하면서
용기가있고,나이브하면서위엄이있는”(287)르네상스적인간형을새삼
그리워하는 식이다. ‘인간 이후’에 대한 전망이란 그토록모호하다. 이장
332 한국문학연구 43집
과 안지야의 죽음 직전, ‘인간’이 ‘인간적’에대항한다는 알레고리적 환상
에이르러서는더그러하다.여기서‘인간’은“그따위탕아의잠꼬대같은
소리로(…) 수만년을두고다져서쌓아올린인간역사가취소될줄아느
냐!”고일갈하는성주(城主) ‘인간적’에게“수만년이아니라나는수억년의
미래를피부에느끼면서여기에서있는것이다!”라고선포한다(406). 이
렇듯몇백,몇천,기껏해야몇만년을헤아리는인간의역사너머그자리
가있다고하면원형의전설은이미소설이라는양식에의귀속을거부
하는글쓰기가된다. 근대에서출발했으면서도근대를거부하는이역설
적인 좌표는 ‘종말’ 이후라는 미래 시제 속에서 겨우 부지할 토대를 발견
한다.그것이곧자본주의와공산주의사이핵전쟁으로소설을시작한의
미요핵전쟁이후제2의빙하시대가지나고나서의시점에서소설을끝
맺은 뜻이다. 원형의 전설은 원자탄이라는 미증유의 무기를 시(始)와
종(終)에 둠으로써 백 년, 오백 년, 심지어 수억 년으로까지 늘어난 시간
의 길이를 확보한다.
2. 핵, 프로메테우스와 프랑켄슈타인 사이
원자탄에 대한 한국문학의 침묵은 주목할 만하다. 해방기와 한국전쟁
기를거쳐원자탄이라는신종무기에대한대중적관심이높았음을생각
하면 더욱 그렇다.5) 손소희의 단편 중 여순사건 경험과 원자탄 공포를
겹쳐 놓은 것이 있고6) 세월이 흘러 1960년대 말 이문구가 한국전쟁 당
5)해방기 특히 신천지를 중심으로 원자탄 관련 각종 지식 및 의견이 생산․번역
된 양상에 대해서는 공임순, 「원자탄의 매개된 세계상과 재지역화의 균열들 : 종
전과전후, 한반도해방(자유)의조건들」, 서강인문논총31호, 서강대학교인문
과학연구소, 2011, 7~22쪽 참조.
6)위의 글, 25~26쪽 참조. 공임순은 원자탄을 통한 세계대전의 가상적 위력이 미․
소간 ‘균형’ 속 지역전쟁을 통해 관철되는 양상에 주목하면서 손소희의 「흉몽」
과학의 영도(零度), 원자탄과 전쟁▪권보드래 333
시원자탄투하소문을스치듯전한대목이있으며7) 1980년대에는박완
서가같은소문을증언했으나8) 이를본격적화제로삼은텍스트는눈에
띄지않는다.소설속원근법의얼개로원자탄을동원한원형의전설은
극히희유한사례다. 현실과역사의지평안에서논의를구체화하기보다
흡사 공상과도 같은 “몇억 년”의 시간대 속에서 추상화를 감행하고 있기
는하지만, 원형의전설은적어도원자탄이라는신무기가불러온새로
운세계상황에대응하기위해부심한다.미리북조선문학에서의발언을
불러오자면, “원자탄은(…) 다만숫자를요구”한다.9) 이무기의형식으로
는 구체적인 개별 존재를 분간할 수 없다. 국지전과 세계전쟁 사이 구별
또한 불가능해진다. 모든 국지전이 세계전쟁으로 확산될 수 있으므로,
세계전쟁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사실상 어떤 전쟁도 일어나서는 안 된
다.10) 20세기막바지에지적되었듯 “근대에서 탈근대로그리고근대 주
권에서 제국으로의 이행은 다른 어떤 관점에서보다 폭탄의 관점에서 더
분명하다.”11) 원자탄이야말로21세기의신자유주의속에다시도래하고
있는,지구적규모와국지적제한사이분별의불가능성이란문제를제기
한다.변증법,즉한계및한계의조직에관한과학도소멸할수밖에없으
며12) 개별과보편사이익숙한관계는새로이조직되어야만한다. 원형
의 전설이 이복남매이자 연인 사이인 이장과 안지야라는 두 개인의 죽
음을 통해 인류사의 종말과 재생을 쓴다는 만용을 부릴 수 있었던 까닭
(1949)에서 그 징후를 읽어내고 있다.
7) “누가 라지오를들으니께 호줏기가 폭격을 한다고 합디다.”(…) “원자탄만 아니면
상관없대요.”/ “미국놈들이 원체 악질이라서 수소폭탄을 쓸지도 모른다고들 해
요”(이문구, 장한몽하, 랜덤하우스중앙, 2004, 142쪽).
8)박완서, 미망, 문학사상사, 1990.
9)한설야, 한설야 선집 10: 대동강, 조선작가동맹출판사, 1960, 109쪽.
10) K.Jaspers, 김종호․최동희 옮김, 원자탄과 인류의 미래상, 사상계사, 1963,
42쪽.
11) A.Negri &M.Hardt, 윤수종 옮김, 제국, 이학사, 2001, 443쪽.
12)위의 책, 3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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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이 상황에 닿아 있다고 주장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반도에서원자탄의 존재가처음알려진것은제2차대전직후‘해방
의 무기’로서였다. 그 사용의 불가피성 여부에 대한 논란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의 원자탄 투하 직후부터 제출된 바 있으나, 투하 며칠 후 항
복이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원자탄이 일본의 항복을 끌어내
조선을 해방시켰다는 반응을 고조시켰다. 원자폭탄은 즉사자만도 20만
이상의인명 피해를냈을 뿐아니라 “원자폭탄이투하된 곳은70년가량
은不毛之地가된다”는소문이있을정도로사후에도엄청난파괴력을행
사한다. 그러나 연합군 1백만 이상의 희생을 각오하는 것보다는 일본의
그정도희생이낫지않은가? “특공법까지쓰며최후일인까지싸워나갈
뿐이라고강조하던일본이이폭탄몇방에손을들게된것을생각해보
라.” 해방직후나온소책자조선동포에게고함의저자는원자탄의사
용이 그 자체로 여러 면에서 ‘건설적’이었다고 결론짓는다. 원자탄은 연
합군의인명을아꼈을뿐아니라전원옥쇄를부르짖던일본이궤멸을면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를 건설적 일면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조선에
미친 효과는 말할 것도 없다. 전쟁이 좀더 끌었더라면 북은 소련의 폭격
으로, 남은 영․미의 폭격으로 전 한반도가 그야말로 초토화되고 말았으
리라고관측하면서,저자는“파괴적인원자폭탄은조선동포에게많은積
德을 하였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라는 최종 판단을 내리고 있다.13)
그 ‘적덕’을 입었다는 기억은 프로메테우스로서의 원자탄과 프랑켄슈
타인으로서의원자탄,영웅-구원자와괴물-파괴자사이표상의갈림길에
서 한반도 내 반응을 전자로 편향되게 만든 계기였던 듯하다.14) 히로시
마․나가사키에서의 사망자 20만 중에는 조선인 4만의 희생이 포함되어
13)月秋山人편, 조선 동포에게 고함: 자주독립과 우리의 진로, 조광사, 1945, 39
~43쪽.
14)두표상에대해서는P.Boyer,By the Bomb's Early Light, The Univ. of North
Carolina Press, 1994, pp.267~271 참조.
과학의 영도(零度), 원자탄과 전쟁▪권보드래 335
있었지만15) 그 사실은 거의 거론되지 못했다. 미국이 원조 식품으로 가
장해 원자탄 원료를 들여오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음에도16) 유언비어를
넘어서비판의시선이체계화되지도못했다. 원자탄공포가반미와반전
을 향할 가능성은 상존했을 터이나 원자-기술-유토피아techno-atomic
utopia에 대한 기대가 공존하는 중 공포는 논리화되지 못한 채 다만 잉
여로존재한다. 한국전쟁을거치면서반비판이강화되는것을보면거꾸
로 원자탄 공포가 반미 및 반전 기류를촉발할 소지 또한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는데,공론장에서는공포-반미-반전의계열이현실화되지못한채
“비극의 책임은 미국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일본 군벌에 있었던 것”이라
는 주장에 밀려 버린다. 일본 정부가 전원 옥쇄라는 결의를 내세우고 있
었던 만큼 일본인들 자신에게 있어서도 원자탄은 수백만의 목숨을 살린
셈이며원자탄투하당시미국이충분한사전경고를했다는사실을생각
하면시민을소개시키지않은일본정부야말로책임을져야한다는주장
을통해, 결국원자탄은“평화에대한공헌이다대”한“자비의손”으로칭
송된다.17)
원자탄이제2차대전을조기종결시켰다는것은오히려먼사례다.한
국전쟁 당시 남한의 공산화를 막은 것이 원자탄의 위력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도원자탄이“자비의손”이라는사실은분명하다.공산주의군대의
‘인해전술’을중도에막고타이완이며한국이며베트남을보전할수있었
던오로지원자탄덕이다. 미국이원자탄을사용할지모른다는두려움이
없었다면 소련과 중국은 결전을 불사했을 것이니 원자탄이야말로 “赤軍
의 세계 석권을 미연에 방지한 유일의 공로자”인 것이다. 실제로 한국전
쟁당시스탈린이핵전쟁의가능성을우려했다는사실은잘알려져있으
며18) 1949년소련이원자탄개발에성공했음에도불구하고369기대5
15)정욱식, 핵무기: 한국의 반핵문화를 위하여, 열린길, 2008, 21쪽.
16)공임순, 앞의 글, 8~9쪽 참조.
17) 「원자력은 세계 파멸을 방지했다」, 동아일보 1955.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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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현격한차이가있었던원자탄보유개수는물론이고19) 제공권(制空
權)에 있어서도 미소간 격차는 컸다. 반면 당시 대통령 트루먼이 원자탄
사용가능성을시사하고총지휘관맥아더가원자탄사용허가를몇번이
나요청하는등20) 미국은한국전쟁에서의우세를위해공공연히핵우위
를 표명하곤 했다. 이런 가운데, 원자탄으로 말미암아 해방되었고 원자
탄 덕에 패전의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남한 내 서사는 영웅-구원자이자
괴물-파괴자라는원자탄의양가성중후자를가시화하는데제동을걸었
던듯보인다.원자탄-공포가원자탄-안전의쌍에의해밀려난형국이다.
1952년의 여론조사에서도 압도적 다수가 원자탄 사용을 지지했다고 전
한다.21)
원자탄 사용이 곧 공멸(共滅)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 것일
까? 1950년대에 이르기까지도 핵과 원자력이 문제될 때 논의의 방향은
대체로 낙관 일변도다. 사상계를 통해 드러나는바 20여 건의 관련 기
사중비관이나공포의정조로기운사례를한건도찾을수없을정도다.
시드니후크대버트런트러셀논전이나후크외H.S.휴즈,한스모겐소,
S.P.스노등을내세워커멘터리Commentary에서마련했던공개토론
을번역한것외에는핵전쟁자체를주제화한글도없다.22) 원자력은원
자-유토피아의전망, 미국에서는‘히로시마충격’ 이후암울한현재의역
투영으로 잠깐 번성하고 만 희망찬 미래의 상상 속에서23) 소비된다.
18) S.N.Goncharov, J.W.Lewis & 薛理泰, 성균관대학교 한국현대사 연구반 옮김, 흔들리는 동맹, 일조각, 2011, 113~114쪽.
19)유진석, 「핵억지 형성기 최초의 전쟁으로서 6․25전쟁과 미국의 핵전략」, 한국
과 국제정치27권 2호,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2011, 101쪽.
20)위의 글, 103쪽. 맥아더는 1960년대에 와서야 공개된 어느 인터뷰 자료에서 먼
저 중국동북지방에원폭50기를투하하여병참(兵站)가능성을없앤후 북한을
총공격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M.Schaller, 유강은 옮김, 더글러스 맥아더, 이매진, 2004, 417쪽 및 420쪽).
21)공임순, 앞의 글, 34쪽.
22)박기준 옮김, 「(좌담) 서방의 가치와 전면전쟁: 서방국가의 이상과 원자전쟁의
현실」, 사상계, 1960. 12.
과학의 영도(零度), 원자탄과 전쟁▪권보드래 337
1959년 원자로도입당시 사상계에서 마련했던좌담「우리도잘살아
보자」는 그 제목에서부터 원자-유토피아에의 편향을 잘 보여주고 있는
사례다. 미국의 해외 원자력 지원 사업 일환으로 도입된 원자로24)는 연
구용에 불과했고 기계 노후와 연구 기반 미비로 1962년에야 첫 가동에
성공하지만25) 그것이인천항에도착했을당시의반응은자못흥분된바
있었다.
언론에서는‘원자로가가져오는행복’을표제화하거나26) “우리나라과
학수준에 대한평가”가호의적이었던덕에 미국의35만달러 원조를얻
을수있었다며자긍했고, 파키스탄이며인도네시아가원조획득에실패
한사실과비교해득의의표정을감추지않았다.27) “42개국중에서열일
곱번째로합격되어있는셈”이며, 원자력연구를전공으로유학중인인
력만도70여명이니, 머잖아과학의급속한발달을볼수있으리라는기
대는 거의 일반적인 정조였던 듯하다.28) ‘공산주의적’이란 이유로 경제
개발계획입안을거부했던이승만정부29)도원자력사업에는열의를보
였다. 1958년에는 원자력법을 제정했고 1959년부터는 원자력개발 5개
년 계획을 개시했으며, 같은 해 원자력연구소 개소식도 가졌다. 원자력
을통한번영을기약하고나아가핵무기개발가능성까지점치면서양쪽
에서공히‘부강’이라는기의를읽어낸것이제1공화국시절인식의대종
이었던 듯하다.30) 정부를 비판하는 축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23) P.Boyer, 앞의 책, pp.122~130.
24) 「(좌담) 우리도 잘 살아보자: 원자로 도입을 계기로 생각나는 현대과학과 한국
의 미래」, 사상계, 1959. 6, 220쪽.
25) 「한국의 원자로 5년 후에나 운용될 듯」, 동아일보, 1960. 12. 30 참조.
26) 「원자로가 가져오는 행복」, 경향신문, 1959. 1. 16~17.
27) 「(좌담) 원자력사업의 전망(1)」, 동아일보, 1959. 1. 21.
28) 「(좌담) 우리도 잘 살아보자」, 220~230쪽 및 「(좌담) 원자력사업의 전망(7)」, 동아일보, 1959. 1. 29.
29)이완범, 박정희와 한강의 기적, 선인, 2006.
30)주성돈, 「1950년대 한국의 원자력정책 변화 분석」, 정부와정책4권 2호, 가톨
릭대학교 정부혁신생산성연구소, 2012, 59~63쪽.
338 한국문학연구 43집
사상계는 “원자로라는 것”은 핵무기와 달리 “인간이 원하는 대로 제어
할수있다”고강조하는입장을여러차례전달했는데31) 이입장은“자연
과학을독이되게하느냐약이되게하느냐는인류의지에달린문제”32)
라는 원론을 전제하면서도 원자력이라는 파르마콘pharmakon을 제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치는 좌표다.
핵실험에대한신문보도가이어지고1957년주한미군의핵무장계획
이전해지는가운데서도원자탄이나수소폭탄에대한입장을체계화하려
는시도는거의눈에띄지않는다.주한미군이전술핵무기를도입할당시
반응은환영일색이었으며나아가스스로“핵무기의보유를열망”한다는
토로도 드물잖게 발견된다.33) 이렇듯 원자력-원자탄에서 ‘독’으로서의
요소를 최소화했던 것이 당대 인식의 주류였음을 생각하면, 장용학이
원형의전설에서핵전쟁을종말의장치로도입했다는사실은이례적이
다. 이종말은SF소설의묵시록적상상과달리“핵전쟁이분비해낸방사
능이빙하시대처럼세계를휩쓴다음”(412),그이후의제2르네상스에서
태어난초월적서술자에기대는데다,더욱이두주인공의최후는“우리는
죽는것이아니다!꽃이지는것이다!”(411)라며응분의결실을바라는희
망 속에서 처리되지만, 그럼에도 엄연히 ‘종말’로서 버티고있다. 이것이
해방기와한국전쟁이후원자탄에대한형상화로서한국문학이기록하고
있는 최대치다.
원자탄이단순한무기교체가아니라인류역사에있어미증유의단계
를표시한다는데동의한다면,실상그것이제기하는문제는시나소설이
라는양식에서처리할수있는범위를넘어선다.세계적으로보더라도피
해의참상을기록한문학은적잖은수에이르지만34) 가해자혹은수혜자
31)이종진, 「원자력시대의 인간상」, 사상계, 1960. 9, 275쪽.
32)이종진, 「원자력시대와 휴머니즘」, 사상계, 1961. 10, 162쪽.
33) 「국군 핵무기 장비를 이상 더 浚巡치 말라」, 경향신문, 1957. 5. 10.
34)일본에서는‘원폭문학’이라는명칭이있을정도다. 하라다미키(原民喜)의여름
의꽃(1947),이부세마스지(井伏鱒二)의검은비(1966)등그실제에대해서
과학의 영도(零度), 원자탄과 전쟁▪권보드래 339
로서의입장이겹친가운데적어내는데성공한텍스트는드물다.35) SF
소설은번성했으나, 공상이라는의장을취하는대신생활세계속에서구
체적실감을아울러원자탄이라는문제를취급해낸사례는거의없었다고
할것이다.36) 제1차대전후‘늙은유럽’을대치할만한신세계로떠올랐던
미국은 제 2차대전을 원자탄 투하로 마무리지은 후 ‘결백성innocence’이
라는 자기 정체성을 상실한다. 히로시마․나가사키에의 원자탄 투하 이
후 상당수 미국인들이 신경증에 시달렸고37) <현기증>(1958)이나 <싸이
코>(1960) 같은히치콕영화가예증하듯1950년대에는본격적인‘불안의
시대age of anxiety’가개막됐다. 원자탄이후의세계에서삶의장기-안
정성에대한신뢰가추락한데다불안에저항할만한자기정체성역시붕
괴해 버렸기 때문이다.38)
제2차대전종전직후미국과학자협회에서발간한하나의세계냐파
멸이냐One World or None(1946)에서상세하게그려냈듯미국이시작
한 이 재앙, 원자탄은 머잖아 “‘뉴-욕’시 제 3街及동부 제 20街한편”에
떨어질 수도 있었다. 뉴욕 거리를 배경으로 “불타는 의복에 휩싸인 남자
와(…) 꺼멓게 화상을 입은 여자들과 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가는 도중에
가엾게도죽어버린아해들”39)을상상할때의공포는먼저미국인들의삶
을잠식했지만, 원자탄의위력을목격한다른나라에도빠르게번져나갔
다. 소련의 스탈린이 제 3차대전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미국의
는 정향재, 「일본 현대문학에 있어서의 패전(2): 원폭 관련 작품을 중심으로」, 외국문학연구44호,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문학연구소, 2011 참조.
35) P.Boyer, 앞의 책, pp.243~256 참조.
36)히로시마․나가사키에의 원자탄 투하 이후 SF문학이 시민권을 획득해 간 과정
및 핵문제를 다룬 그 실상에 대해서는 위의 책, pp.257~265 참조.
37)위의 책, pp.275~277.
38)M.A.Henriksen, Dr.Satrangelove's America, Univ. of California Press,
1997, pp.81~86 참조.
39)덱스터 마스터즈, 케더린 웨이 共編, 「하나의 세계이냐 세계의 괴멸이냐」(2), 신천지, 1946. 11, 196쪽.
340 한국문학연구 43집
핵무기를 두려워했고 한국전쟁 당시 참전을 꺼린 이유 중에도 원자탄에
대한경계가작용했다는사실은잘알려져있다.40) 중국또한압록강너
머군대를파견하기전원자탄으로상징되는미국의과학-병기를겁내는
여론을 먼저 달래야 했다.41) 그러고 보면 원자탄의 시대를 맞아 미국이
경험한 것 같은 분열증도 별반 내비친 적없는 한국의 사례가 오히려 독
특했다고도 할 수 있다. 북조선의 경우와 대비해 보면 한국의 특수성은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한국전쟁기 북조선에서 원자탄의 잠재적 공포는
대중 심리에 파고 든 중요한 변수 중하나였고,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
지 핵무기에 대한 태도를 형성케 한 결정적인 요인이었기 때문이다.
3. 북조선의 전쟁, 원자탄 공포의 극복
“만국의 로동자들은 단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단결하면 뭘
합니까. 원자폭탄에는 눈이 없어서 자본가도 로동자도 한꺼번에 죽여버
릴텐데요.그리하여이시대는인간이광란하는시대로된것입니다.”42)
북조선의 혁명적 대작 가운데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시대의 탄
생43)은북조선은물론남한주민들의경험까지아우르면서한국전쟁을
서사화해 낸 독특한 소설이다. 후일 4․15 문학창작단의 제 2대 단장이
되는작가석윤기는이소설을통해개성적인물들이다채롭게등장하는
거대한 서사시적 화폭을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시선을 끄는 것이 위와
40) S.N.Goncharov, J.W.Lewis &薛理泰, 앞의 책, 118쪽.
41)孫海龍, 「抗美援朝문학에나타난중국의한반도인식」,성균관대박사논문, 2012,
46~49쪽.
42)석윤기, 시대의 탄생1, 조선문학예술총동맹출판사, 1965, 178쪽.
43)김은정, 「석윤기연구」, 세계비교문학연구26호, 세계문학비교학회, 2009, 17
쪽. 본래 제 1부는 1964년에, 제 2부는 1966년에 나왔다. 제 2부 마지막은 국군
과 UN군 합동의 인천상륙작전 후 주인공들이 힘들게 북행하는 대목인데, 이후
후속편이 간행되지 않은 채 미완으로 끝났다.
과학의 영도(零度), 원자탄과 전쟁▪권보드래 341
같이쓰디쓴발언을날리는대학교수민환규라는인물이다. 민환규는평
안도 출신 대지주의 아들로서 식민지시기 제국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했
고,한때사회주의에경도되었으나독서회사건으로체포된후전향한바
있다.
월남 후 국회의원으로까지 출세했지만 철두철미 속물인 아버지 민성
직과 달리 민환규는 “백면주순(白面朱脣)의 호남아”이면서도 예민한 자의
식으로뭉친지식인이다. 환규는문헌학자윤하응의딸설란을사랑하면
서도‘원자폭탄’으로상징되듯“인간이광란하는시대”에는결혼도불가능
하다고 고백한다(1:180). 부친 소유의 철공장에서도 쟁의에 나선 노동자
들을편드는등양식있는인물이면서도그는근본적으로현대에대한절
망에 사로잡혀 있다. 전쟁이 터진 후 아비규환의 생지옥 속에서 형과 아
비의정부가정사를나누는장면을보았을때“니이체적인악심”(1:393)에
사로잡히는, 그런 면모야말로 민환규의 진면목이다. 그는 전쟁 속에서
“일찍이너희들은원숭이였다. 그리고지금껏인간은어느원숭이보다도
더심한원숭이다”(1:393)라는모멸을곱씹고,새역사를기록하겠다고흥
분하는친구를볼때도“이제보복이올것이다(…)대대적인공습과함포
사격과대구경포에강력한기계화보병이쓸어올것이고(…)원자탄이날
아들 것이다(…) 무덤 속에 들어가 책을 쓸 테냐?”(1:382)라며 냉소한다.
그가절망과냉소의심경에사로잡히게된것이독서회사건이후인지혹
은 히로시마․나가사키의 충격 이후인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마치 야스
퍼스가주장하듯원자탄이후세계전쟁과국지전을, 전체와개별을구분
하기란불가능하고, 계급론이나변증법또한낡은인식일수밖에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44) 원자탄은 “자본가도 로동자도 한
꺼번에 죽여버릴” 것이다. 그 절대적 파괴의 역능 앞에서는 어떤 투쟁도
소용없는 것이다.
44) K.Jaspers, 앞의 책, 43~56쪽 참조.
342 한국문학연구 43집
거꾸로, 원자탄을 보유한 측에서 보자면 모든 전쟁은 필승의 전쟁이
다. 다만 어줍잖은 휴머니즘에 사로잡히는 것이 문제다. 시대의 탄
생보다 훨씬 일찍, 한국전쟁직후 창작된 대동강(1955)에서 한설야는
원자탄의반인간성을생생하게증언한바있다. 미군군정부장스미스라
는인물을등장시켜원자탄투하의필요를역설하고있는대목인데,여기
서스미스는인정에연연하지말고공산화위험지역은모두초토화해버
려야한다고주장한다.그의말에따르면“원자탄은빛을가리지않”고여
성이나어린아이라고주저하지도않는다. “그런자비심은비미국식사고
방법”이다. 세월이 지나면 어차피 위험 지역의 여성이 낳은 아이는 공산
주의의 병력이 될 것이고 지금 어린아이는 장병으로 성장할 것이다. “하
나가 둘이 되고 셋이 되는― 이 뻔한사실에 대해서 당신들은 어째 맹목
하려는것인가.”45) 대동강은국군및UN군에점령돼있던1950년말
의평양,인쇄공장직공점순이를중심으로평양시민들이벌인지하운동
을 증언하지만, 국군후퇴 당시 상당수의 평양 시민들이 함께 월남해 버
린 것도 스미스가 경고한 것 같은 원자탄의위협 때문이다. 한설야는 평
양시민들이‘인민의조국’을버리고남하한이유를총부리의협박과원자
탄의 공포에서 찾는다: “적들은 철퇴에 있어 평양 시민들을불의에 총으
로위협하여 몰고나가기시작한 것이다. 시민을몰고나가면서 적들은/
“나가는 사람은 살고 안 나가는 사람은 죽는다.”/ “불수일에 평양에는 원
자탄이 떨어진다.”/ 하는 유언비어를 날렸다.”46)
실제로 북조선 지역에서 원자탄에 대한 공포는 광범했던 것 같다. 한
국전쟁발발이후월남동기로가장중요하게작용한것도북조선지역에
원자탄공격이있으리라는소문이었다고한다.47) 최고지도자김일성자
45)한설야, 한설야 선집 10: 대동강, 조선작가동맹출판사, 1960, 109쪽.
46)위의 책, 319~320쪽.
47)김귀옥, 월남민의 생활 경험과 정체성,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9, 247~250
쪽. 월남해 속초․김제 지역에 정착한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미군이 원자탄을
투척할테니마을주민을소개하라”는지시가내렸고혹은“원자탄이투하된다는
과학의 영도(零度), 원자탄과 전쟁▪권보드래 343
신이 주민들의 월남 동기를원자탄 소문에서 찾고 있을 정도다: “월남한
사람들 가운데는(…) 만행을 하고 도망간 놈들도 있지만 절대 다수는 적
들이 원자탄을 떨군다고 위협하는 바람에 겁을 먹고 따라갔거나 놈들에
게 강제로 끌리어 간 사람들입니다.”48) 시대의 탄생의 민환규는 오연
한냉소주의자답지않게인민군의서울진주후피난대열에합류,수원을
거쳐 대구․부산에까지 이르는데, 내키지 않는 그의 걸음을 몰아가는 것
은 원자탄 투하로 서울이 곧 쑥대밭이 되리라는 소문이다. “어느 비행기
지에서 원자탄을 실은 B29가 이미 떠났을 수도 있다.”49) 도중에 징집,
전선기자로투입되지만낙동강전투당시인민군에합류해버리는이복
잡한인물은, UN군의인천상륙을들었을때도이제원자탄투하는없으
리란안도를먼저실감한다. “무의식적인상태에서도줄곧원자탄의압력
하에 살던 환규는 문득 떠오른 이런 생각과 함께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다(2:255). 원자탄의 공포는 남북 사이에서 숱한 ‘사민(私民)’들의 방향을
규정해 버린 변수이다.
UN군에 의한 대대적인 공중 폭격은 이 가상의 공포를 한결 실감나는
것으로 만든 바 있다. 전후 북조선 소설에서 공습(空襲)은 그야말로 편재
하는 모티프로서, 신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어떤 고난 속에서 살
아남았는지를웅변한다.소련-러시아자료의공개이후한국전쟁이소련
및중국의승인하에서북조선의선공에의해개시되었다는것은명실상
부한사실로공인되기이르렀지만,50) 북조선에서한국전쟁이여전히‘미
제의침략전쟁’이자‘조국해방전쟁’으로기술될수있는이유의일단이여
기 있다 할 것이다. 다시 김일성의 언어를 빌어오자면, “조국해방전쟁은
이야기가동네에쫙돌”았다고한다.그러면서도대부분의주민은몇달후면고
향에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48)김일성, 「청년들의특성에맞게사로청사업을더욱적극화할데대하여」, 김일
성 저작집26, 조선로동당출판사, 1984, 61~62쪽.
49)석윤기, 시대의 탄생2, 조선작가동맹출판사, 1966, 63쪽.
50)박명림, 역사와 지식과 사회, 나남, 2011, 173~174쪽.
344 한국문학연구 43집
미제를비롯한세계반동의련합세력을반대하는치열한반제반미투쟁이
었으며 인민의 원쑤들을 반대하는 준엄한 계급투쟁”이었으며 북조선은
여기서 “력사적 승리”를 거두었다.51) 승리랄 수 있는 까닭은, 북조선의
시각에서 한국전쟁이 “미 제국주의자들이 내리막길에 들어서는 시초를
열어놓”은 사건(424)으로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국 육군의
1/3과공군의1/5, 그리고한국군과UN군총합2백만의병력을쏟아붓
고도 “공화국을 요람기에 없애버리려”(421) 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실제로한국전쟁당시UN군의공중폭격규모는어마어마했다. “미제
국주의자들은 북조선에 한 평방킬로미터당 평균 18개의 폭탄을 퍼부어”
국토 및 기간시설을 파괴했다.52)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
공화국이라는 신생국이 궤멸하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사실, 그것은 거대
제국에 맞선 인민의 자발적․헌신적 노력이라는 서사에 곁들여 이후 북
조선을이끌고간자부심의원천이된다. 어쩌면그것은‘남침’ 자체를망
각시킬정도로거대한이념적효과를북조선지도층내에서도발휘한것
으로보인다. “항일투사들이피흘리며싸워찾은/영웅의나라”라는항일
무장투쟁의신화화에 이어53) 한국전쟁의 경험은‘제국주의에맞서 싸워
이긴 나라’라는 서사를 북조선에 부여한다. 황석영이 손님(2001)에서
잘보여주듯이서사는어떤대가를치르더라도지켜야할북조선의이념
적 뿌리다. 북조선은 남한을 상대한 것이 아니라 미국을, 원자탄으로 무
장한 절대 강국을 상대한 것이다. 잘 알려져 있는 바지만 한국전쟁을 다
룬 북조선 소설에서 남한 측 인물이 자율적 존재로 묘사되는 일은 거의
없다.54) 적 중에는 분명 더벅머리 ‘국군’이거나 ‘경찰서장’이 섞여 있지
51)김일성,「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우리 인민의 자유와 독립의 기치이며 사회
주의, 공산주의 건설의 강력한 무기이다」, 김일성 저작집22, 423쪽.
52)김일성,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의 사회주의 건설과 남조선 혁명에 대하
여」, 김일성 저작집19, 281쪽. 이 수치는 김성보, 북한의 역사1, 역사비평
사, 2011 등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53)차승수, 「내 나라!」, 조선문학, 1966. 9, 13쪽.
과학의 영도(零度), 원자탄과 전쟁▪권보드래 345
만, 그들은 모두 ‘미군 장교’, ‘미국인’의 조종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다.
“눈이우묵한 미군장교가거만하게섰고그옆에지주의아들인‘경찰서
장’이황송스레상전의눈치를살피고있었다.” 같은서술이전형적인장
면설정에속한다.55) 인천상륙작전당시방어전을그린황건의「불타는
섬」(1953)에서 인민군 대좌의 눈에 비친 마지막 영상 또한 미군 ‘흑인 병
사’가 선두에 선 뒤에 ‘일본 군사’가 따르는 것이다.
시대의 탄생은 나아가 아예 UN군 총지휘관 맥아더를 서사의 중심
에위치시키고있다.소설이시작하는장면자체가러일전쟁발발직전인
1904년 봄, 당시25세인 더글라스맥아더가아버지아서 맥아더와함께
평안남도검산지방을방문한다는가상의상황일정도다.56) 일본군인을
통역으로대동한이부자는“어찌하여이훌륭한땅을일본인에게내맡긴
단말인가?”(1:29)라는말로써한반도에대한야욕을토로하며,민족주의
적적대감을내비친일단의조선인들이체포되게끔사주한다. 소설의적
극적 주인공 격인 박세철은 이 때 곤경을치렀던 억쇠의 손자다. 이후에
도맥아더는생생한구체성과더불어계속등장한다.그는평화주의를제
창하는미국국회의원과논전을벌이고,미국에있는어린막내아들과통
화하며, 인천상륙작전때는직접함선을지휘한다. 민환규의이복동생으
로일본기생의소생인삼랑(三郞)이나친미적일본인인아오끼겐지로가
조우하는존재,즉미-일사이제국주의적협력을매개하는존재역시맥
아더본인이다.57) 맥아더의보다자유로운분신으로선교사골드빈부자
54)신형기․오성호, 북한문학사, 평민사, 2000.
55)최순성, 「후계자」, 천리마, 1966. 9, 126쪽.
56)아서 맥아더는 당시 필리핀에 주둔한 제 8군 사령관으로서 군정장관이었으며,
러일전쟁 당시 실제로 도쿄를 방문한 바 있다. 조선방문은 일본 방문을 부연한
허구적 설정으로 생각된다.
57) 시대의 탄생에는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난 병원장의 아들로서, 미군 점령 하
일본에서 미군에게 아내를 뺏긴후 총격 사건을 벌이고다시 한반도로귀환, 전
쟁때인민군을돕다가UN군에게처형당하는이시까와신조라는인물도등장하
고 있다. 이시까와는 처형 직전 일본어로 “일본사람들아, 눈을 떠라!”(2:150)는
346 한국문학연구 43집
가등장하기는하지만,남한정부의괴뢰성을궁극에서폭로하는것은맥
아더요 그의 노선을 지지하는 국무장관 덜레스다. 이들 옆에서 장도영․
신성모․채병덕 같은 한국군 장성은 비굴한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는다
(1:166).58)
이 맥아더가 시종일관 요구하는 것은 “<만하탄구 계획>(원자탄 제조계획
의 암호)의 혜택을(…) 베풀어” 줄 것, 그 하나다(1:186). 민환규의 원자탄
공포에는 충분히 현실적인 근거가 있었던 셈이다. 완결되진 못했으나
시대의 탄생의 핵심 중 한 가닥은 민환규처럼 사회주의에 우호적이나
미국-원자탄의위세앞에무력감에사로잡혀있는인물을어떻게북조선
의충성된인민으로개조시키는가에있었던것같다.한국전쟁을통해박
세철같은혁명가의어린후예는성숙한전사가되고,안휘태처럼동요하
던 인물은 굳건한 공민(公民)이 되며, 타락 직전의 부르주아였던 민환규
같은성격마저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의기적적인성공을지지하게된
다는것이시대의탄생의서사줄기다.59) 민환규가미국-원자탄공포
를어떻게해결해가는가실제소설속에서확인하지못하는점은유감이
지만,제1부끝머리에등장하는인민군대좌전학민과의대화를보면대
략의추이는예측해볼수있다. 전학민은전쟁발발전부터미군의원자
탄 투하 가능성을 우려한 바 있지만, 전쟁 도중 민환규와의 대화에 있어
서는한점흔들림없는자신감을드러낸다.민환규가미군총병력3백만
의위력을염려하나북조선은2천만인민전체의힘으로무장돼있으며,
“한번 겁만 집어먹으면 그 이상 무시무시한 것이 없어 보이지만” 원자탄
부르짖음을남긴다.소설이창작된1960년대당시북조선에서‘아시아인의연대’
를 강조한 영향인 듯 보인다.
58) 시대의 탄생이 창작될 무렵 북조선에서 양산된바 1960년의 4월혁명을 다룬
문학에서도비슷한양상은보편적으로목격된다.이순욱, 「4월혁명과북한문학: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기관지 문학신문을 중심으로」, 한국민족문화40
호,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2011, 141~143쪽 참조.
59)왜3부가나오지않은채미완으로끝났는지는의문이다. 1967~1968년이후북
조선 사회의 전체주의적 선회와 더불어 생각해 보아야 할 사실일지도 모른다.
과학의 영도(零度), 원자탄과 전쟁▪권보드래 347
이란실제로는“아이들이변소에서자주만나는귀신”이나마찬가지라는
주장이다(1:490). 전학민의시각에따르면전세계인민절대다수가북조
선을지지하고있는만큼미국이“감히원자탄을떨구지는못할것”이다.
어쩌면“그들이원자탄을만들어냈다는것은자본주의가자기의매장인
인 로동계급을 산생시킨 것과 비슷”하다(1:489). 이후, 박세철 등의 낙오
인민군과 합류해 북을 향하면서 민환규는 조금씩 전학민의 시각을 체화
해 간다. 미국의 강대성, 그 과학-기술적 지배력 및 궁극의 무기로서의
원자탄을어떻게상대화할것인지가북조선에서일종의인식론적과제였
다고 할 때, 시대의 탄생은 민환규라는 인물을 통해그 소설적 모색을
감당하고 있다.
4. 사물화된 ‘인해(人海)’, 과학에 맞서는 야만
“사실 이전에일부 사람들은 미제의 ‘강대성’과 ‘인도주의’에 대하여 환
상을가지고있었습니다.”60) 근대이후, 거대한부에서연원한강대성과
재부(財富)의시혜인인도주의가미국의인상을규정한것은북조선지역
에서도예외가아니었을터이다. 그러나한국전쟁을통해북조선에선강
대성대신“끝까지용감하게싸운다면그를능히격파할수있다”는확신
을,인도주의대신“악독한야만”이라는실감을갖고미국을대하게된다.
대중정서속에서북조선의정치적기반인반미에기여한것은후자쪽이
지만, 강대국 미국에 맞서 ‘승리했다’는 서사는 반미를 현실적 노선으로
전화시키는 데 있어 핵심 동력으로 작용했다. “미 제국주의자들이 소위
‘군사 기술적 우세’에 대하여 요란하게 떠들어대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전쟁에서승리할수없습니다.전쟁승리의결정적요인은군대와인민의
60)김일성, 「조국해방전쟁의 력사적 승리와 인민군대의 과업에 대하여」, 김일성
저작집8, 조선로동당출판사, 1980, 134쪽.
348 한국문학연구 43집
정치사상적우월성에있습니다(…) 우리인민군대는적들에비하여전략
전술적으로우월합니다. 과학적인전략전술을가지면적은힘으로도능
히큰적을타승할수있습니다.”61) 미국이자랑하는테크놀로지의과학
에 대해 북조선은 사상과 전략에 있어서의 과학성을 내세운다. 시대의
탄생에서 전학민의 말을 다시 빌어오자면 다중의 지지 없는 과학-무기
는 ‘귀신’, ‘허재비’에 지나지 않는다.
전학민의 비유는 원자탄을 ‘종이호랑이(紙老虎)’에 빗댔던 마오쩌뚱의
발언을 연상시키는 바 있다.62) 이 대목에서 남한과 북조선에 보태 중국
의 한국전쟁 경험을 일별해 볼 수 있을듯하다. 한국전쟁이 일종의 세계
전쟁으로서의 면모를 지니고 있었음은 널리 합의되고 있으며, 한국전쟁
그 자체가 세계전쟁이었다고 보는 시각도 없지 않은데63) 전쟁 당시 그
핵심은 중국․미국 사이 정면충돌 가능성에 있었다.64) 전쟁 초기 몇 달
동안은 중국이 티벳이나 미얀마, 혹은 인도차이나 지역을 공격하리라는
둥타이완에침입하리라는둥하는관측이끊이지않았으며,맥아더는타
이완군이중국본토를공격한다는작전을내내고려하고있었고, 타이완
총통장제스는이에적극적으로화답했다.65) 아시아지역에서전쟁은언
제라도확산될위기에있었던것이다.중국의한국전쟁참전자체가타이
완 전선과 한반도 전선 중 어느 쪽을 택하느냐는 고심의 산물이었다.66)
61)김일성, 「조국해방전쟁의 전망과 종합대학의 과업」, 김일성 저작집7, 조선로
동당출판사, 1980, 144쪽.
62) S.N.Goncharov, J.W.Lewis &薛理泰, 앞의 책, 50쪽.
63)국내에서의 한국전쟁=세계대전 대리전이라는 논의에 대해서는 정재석, 「해방
과 한국전쟁, 3차대전론의 단층들」, 상허학보27호, 상허학회, 2009; 국지적
규모로 봉쇄된 제 3차대전으로 전쟁을 이해하는 시각에 대해서는 공임순, 앞의
글, 33~36쪽 참조.
64)神谷不二, 朝鮮戰爭: 米中對決の原型, 中央公論社, 1995.
65)이용희, 「6․25 사변을 둘러싼 외교」, 이용희 저작집1, 민음사, 1987, 134~
143쪽. 1951년 6월에 집필한 글로 돼 있다.
66)沈志華,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결정에 대한 평가」, 신아세아7권 2호, 신아시
아연구소, 2000, 252~254쪽. 중화인민공화국성립초기중국과타이완사이불
과학의 영도(零度), 원자탄과 전쟁▪권보드래 349
한국전쟁 발발 직후 중국 내에서는 반공산당 운동이 광범하게 일어났
고67) 전쟁을 계기로 중국 공산당은 토지개혁을 더 강경하게 집행할 수
있었다.68) 한국전쟁은제2차대전후동아시아지역에서의국가형성및
냉전체제형성에결정적계기로작용했던것이다.69) 김일성이말한대로
미국의 ‘강대성’과 ‘인도주의’에 대한 환상이 무너진 것도 같은 시기다.
한국전쟁 발발 당시만 해도 중국에서 미국의 물질문명 및 과학기술에
대한숭배는뚜렷했다고알려져있다. 숭미,친미, 공미(恐美)라는태도가
지배하는 가운데 ‘공미’의 핵심으로는 미국의 군사무기, 특히 원자탄에
대한 공포가 작용했다. 참전한 군인 중에서도 10%가량이 “미제 군대와
의 교전과 원자폭탄에 대한 공포를” 갖고 있었다고 조사됐을 정도다.70)
미국을구시(仇視), 비시(鄙視), 멸시해야한다는이른바삼시(三視) 운동은
참전이전대중의이러한심리를교정하려는시도에다름아니었다.삼시
운동을비롯한애국주의적선동은꽤효과가높았다고한다.그런가운데
‘멸시’ 교육에서 특별히 강조된 것이 원자탄 무용론이었다. 막대한 제조
비용이 필요한데다 중국처럼 인구가 분산돼 있는 대국을 상대로는 효과
가적으며아군의피해또한각오해야하는만큼원자탄은언뜻보기에만
위협적인 ‘종이호랑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마오쩌뚱
은전쟁의승패는원자탄에의해서가아니라인민의투쟁에의해결정되는
것이라고 역설한다.71) 1949년 소련도 원자탄 개발에 성공한 뒤였지만,
간섭을 표명하고 있었고, 한국전쟁 발발 직전에야 중․미 사이 충돌 가능성이
관측되기 시작했다. 특히 마오쩌뚱이 타이완․인도차이나․한반도라는 세 전선
을 의식하고 있었던 데 대해서는 C.Jian, China's Road to the Korean War,
Columbia Univ. Press, 1994, pp.92~96.
67) S.N.Goncharov, J.W.Lewis &薛理泰, 앞의 책, 335쪽.
68)박두복, 「중국 국내정치와 참전」, 한국전쟁과 중국, 백두, 2001, 166~167쪽.
69)임우경, 「한국전쟁시기중국의반미대중운동과아시아냉전」, 사이10호,국제
한국문학 문화학회, 2011, 132쪽.
70)위의 글, 139~140쪽.
71)위의 글, 142~145쪽.
71)孫海龍, 앞의 논문, 49쪽.
350 한국문학연구 43집
한국전쟁당시전선은과학-원자탄 대사상-인민사이에서 가상되었다.
북조선이나중국에서만그렇게여겼던것이아니다. 중국군의‘인해전
술’로 북진통일 직전 후퇴를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는 서사가 보여주듯,
남한에서도원자탄대인민이라는가상의전선은작동했다. 물론적대국
의 사정인 만큼 인민은 ‘인해(人海)’라는 사물화된 심상 속에서 소비된다.
인민이사상과의지의주체요개별자의집합인반면‘인해’는물화된인간
이요주체성을상실한전체에지나지않는다. 지금껏유통되는한국전쟁
당시 중화인민공화국 군대의 표상, 즉 “나귀와 낙타를 타고 피리를 불며
빼주에만취되어죽을길을찾아들어오는”72), “마치마약에마취된자와
같이 광적인 공격을 가하는”73) 무시무시한 군집이란 ‘인해’라는 명칭에
정확히 조응한다. 이 중 “북을 치고 피리를 불면서”74) 진격하여 오는 중
국군대라는묘사는사실에부합하는것이었던듯하다.중국군대를묘사
할때마다빼놓지않고등장하는세부일뿐더러국공내전당시부터부대
내 전술 지시를 위해 피리가 쓰였다고 전하기 때문이다.75) 중국=인구
라는상상력이오래됐던위에, 아마피리소리와북소리에조종되듯몰려
오는중국군의모습은국군과UN군사이에무시무시한공포심을불러일
으켰던듯하다. 개별성과주체성을상실한채소리에조종되는군집이라
는 상(像)이 ‘빼주’나 ‘마약’의 마취 효과에 대한 의혹과 결합했던 것도 일
견 당연해 보인다. 실상 이러한 중국군 표상이 종합․완성된 것은 전후에
범람한 전쟁 실화 및 수기를 통해서였던 것 같은데76) 이러한 표상 조작
을 통해 남한에서는 중국의 ‘인민’을 ‘인해’로 탈주체화시킬 수 있었다.
인파(人波)전술이라고도 불렸던 ‘인해전술Human wave attack’은 본
72) 「소개 차 二국민병 소집 안전지대서 훈련 대비」, 동아일보, 1950. 12. 20.
73) 「서부의 我반격전 중단」, 경향신문, 1953. 3. 28.
74) 「백마고지전 전황 의연 착잡」, 동아일보, 1952. 10. 15.
75) 「원시전 그대로 중공 ‘피리’는 전투암호」, 동아일보, 1951. 2. 22.
76)예컨대 박계주가 아리랑에 연재한 「한국전쟁 이면비사」에서 이런 사례를 다
수 찾아볼 수 있다. 아리랑, 1956. 2, 90쪽 등 참조.
과학의 영도(零度), 원자탄과 전쟁▪권보드래 351
래중국대륙에서국민당과공산당이격돌하고있던1948~49년에등장
한용어이다. 당시한국신문에도단연“과학적이고필승적”인국민당군
대가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밀려 패퇴하고 있다는 기록은 등장하고 있
다.77) 한국전쟁 초기에는 인민군을 가리켜 쓰이기도 했던 ‘인해전술’이
란 말은 중국 참전 후에는 중국 군대에 국한돼 쓰인다. 4억 인구를 배경
으로 1백만 이상이 참전하리라는 소문이 돌았던 만큼 그 심리적 압도를
표백한 용어였던 것으로 보인다.78) “원자탄도 ‘로케트’탄도 무섭지 않은
듯이 50만 대군을 제물로 바치면서”79) 물밀듯 몰려오는 인민해방군의
모습이란, 원자탄 같은 대량파괴무기마저 속수무책일지 모른다는 우려
또한 촉발했던 듯하다. 인해(人海)엔 인해(人海)로 맞서야 한다는 전술이
입안된 것도 이즈음이다. “적이 다수를 믿어 인해전술로 나온다면 우리
국민도총동원하여적수공권으로라도적과싸워야” 하며80) “비록중공군
이백만 명이 들어오기로서니 우리 이천만 명이 일어나면 물고 뜯고라도
한놈도살아나갈수없이만들수있을것”81)이라는총궐기의수사가등
장하는 가운데, 제도적으로는 국민방위군이 창설된다(1950. 12. 11).
실제로는수만의인명을헛되이희생시킨졸속정책으로끝났지만,국
민방위군창설을전후해서는극한투쟁의언사도종종등장했다. “우리방
위군과 청년단 수십 만 명을 앞에 세우고그 뒤로 우리 장년들이 지원으
로나서서(…)죽창이나수류탄이나심지어식도라도가지고서우리를죽
이려고들어오는놈들을다없이해야만될것”이라는살기등등한결전의
77) 「許宇成東北新聞사장, 재만동포의 근황을 설명」, 민국일보 1948. 12. 21(자
료대한민국사9권).
78)실제 참전한 중국군 숫자는 243만여명이었다고 한다. 미군이 38만명의 병력을
파견했던데비해압도적인숫자였다.전사자11만4천여명을비롯해한국전쟁
당시 중국군의 병력 손실은 총 42만 6천여 명이었다. 미군에 비하면 사망자는
3.39배, 병력 손실은 2.62배였다(沈志華, 앞의 글, 105쪽).
79) 「보라! 붉은 오랑캐의 침략 정체를」, 동아일보, 1950. 12. 6.
80) 「신성모국방장관담화발표」, 동아일보, 1950. 12. 11(자료대한민국사19권).
81) 「중공의 인해전술에 대항」, 동아일보. 1951. 1. 10.
352 한국문학연구 43집
각오 속 ‘북상(北上) 인해작전’이란 용어가 등장하기까지 한다. 북조선과
중국이‘인해’를희생시키는비인간적전술로전쟁을치르는반면 남한을
후원하는 미국은 공중폭격으로 상징되는 과학-기술 전력에 의존해 전투
를 수행하고 있다는 의식이강했지만, ‘인해’에는 ‘인해’로 맞서지 않으면
승리를기약할수없다는생각또한공존했던것이다. 이렇듯적을‘인해’
로표상하고거기맞설아측의‘인해’를요구한수사는1951년중반이후
이른바‘고지전’ 국면에서도작용하지않았나짐작된다. 휴전협상을앞두
고더많은영토를확보하려는것이직접적동기였지만, 예컨대‘피의백
마고지’의경우북조선병력1만명이상에남한전력3천명이상이희생
될정도전투의연속은‘인해’에‘인해’로맞선다는발상의개입없이해명
하기 어렵다.82)
‘인해전술’이 그 기원에서 정치․사상적 무장의 힘을 동시에 지시한다
는 사실은 일관되게 외면되었다. 실제로는 ‘인해’의 기반은 대중의 이념
적 무장이다. 북조선과 중국은 공히 미국에 대한 ‘강대성’과 ‘인도주의’라
는환상을분쇄해야했고애국적동원을선동하면서대중의자발성을길
어내야 했다.83) 마오쩌뚱이 말했듯, 또한 시대의 탄생에서 전학민이
확인했듯이들은“제국주의는겉으로는강해보이지만인민의지지가없
기때문에내적으로는약하”다고선전한다.84) 과학-원자탄대사상-인민
이란대립구도를공유하면서도한국전쟁당시남한과북조선은각각상
대를 평가절하하고 자신의 우위를 확인하는 논리와 표상을 구사하고 있
다. 남한의 일부인사는 이렇듯 팽팽한 대결 구도는 미국이 원자탄 사용
을 꺼린다는 사실, 오직 그 하나 때문에 온존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
다. “미국과같은기동력과화력을가지고중공의인해전술에고전”한것
82)김진섭, 「승전기: 피의 백마고지(하)―24회나 주인이교체」, 동아일보, 1952.
10. 28 참조.
83)임우경, 앞의 글, 155~156쪽 참조.
84) S.N.Goncharov, J.W.Lewis &薛理泰, 앞의 책, 479쪽.
과학의 영도(零度), 원자탄과 전쟁▪권보드래 353
은“이亦세기의비극”이다. 원자탄사용이곧세계전쟁으로이어지리라
믿을만큼미국이곧이곧대로순진했던탓이다.85) “미국은자기나라공
업력을그렇게자랑하면서도(…) 신생국가인중국에의하여사실상밀려
나지않았”는가?때로핵무기를효과적으로사용해야과학기술의우위를
전쟁에서도 지킬 수 있는 법이다.86)
한국전쟁 당시 원자탄의 사용을 요구하고 세계전쟁으로의 확전 가능
성을무릅쓸것을요청하는목소리가적잖았던것은이런인식론의여파
였던 듯 보인다. 미국의 제한전 정책은 “제국주의적 침략을 일삼는 소련
과그위성국가” 탓에애초부터불가능하다. “유엔도(…)차라리한국전쟁
국지화정책을포기하는것이현명하리라.”87) 원자탄은세계전쟁에의상
상적기투(企投)였다.제한전과전면전이라는두가지전략이각축하는중
에 핵무기 사용론은 곧 전면전의 위험을 감수할 것을 뜻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어떠한 핵무기도 사용되지 않았지만(…) 6․25전쟁은 핵전
쟁이었다.”88) 특히‘20세기미국의아시아경험’을상징하는인물인맥아
더는시종일관 원자탄사용을요구하며확전 가능성을지지했고‘공산주
의의전세계적인패배’를목표로하는전쟁을계획했다.89) 핵무기의불
사용 전통tradition of non-use이란 한국전쟁을 통해 비로소 정초되었
던만큼90) 원자탄은한반도나가까운이웃의상공에서언제라도투하될
수있었다.반공자유주의의투사였던시드니후크는후일한국전쟁당시
핵무기라는 최후수단ultima ratio의 사용을 회피했던 사실을 비난하면
85) 「핵전쟁의 국지화와 미국전략의 재검토」, 경향신문, 1957. 8. 13 사설.
86)M.Higgins,손기영옮김, 젊은여기자의수기,합동통신사, 1956, 271쪽,신형
기, 「6․25와 이야기 경험: 전쟁수기들을 중심으로」, 상허학보 31집, 상허학
회, 2011, 243쪽에서 재인용.
87) 「局地化정책에 적신호」, 동아일보, 1951. 4. 25 사설.
88) P.H.Nitze, “Atoms, Strategy and Policy”, Foreign Affairs, vol.34 no.2,
pp.187~188, 유진석, 앞의 글, 113쪽에서 재인용.
89)M.Schaller, 앞의 책, 6쪽 및 420쪽.
90)유진석, 앞의 글, 106쪽.
354 한국문학연구 43집
서 이렇게 적었던 것이다: “한국전쟁이 대 중공전쟁이 되는것을 두려워
하는나머지미국은스스로자신에게행동의제한을가하고중공군이완
전히퇴각할단계에있을때승전을목전에두고그전쟁을끝맺었다.”91)
5. 합리성의 비합리성, 그 문학적 과제
원형의 전설과 시대의 탄생은 모두 1960년대 초․중반의 산물이
다. 1967~1968년의 격심한 체제 전환을 통과하기 이전의 소설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미․소 간 일촉즉발의 상황
이빚어진바있었으나한반도에서한국전쟁이후처음으로전면적가능
성이 점쳐졌던 것은 1968년을 전후한 시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
격변기이기도했던이시기에남북은모두1970~1980년대를결정한새
로운 체제를 시동한다. 예컨대 북조선에서 1967년은 “이전과 다른 사회
문화적 공간으로 이동”한 핵심적 시기로 설명된다. 주체사상이 맑스-레
닌주의를대체하는전일적사상체계로강조되었고, 혁명적수령론과후
계자론등새로운사회운용원리가계시되었으며,기계적집단주의나사
회적총동원등이만연하게되었다는것이다. “1967년북한은(…)합리적
으로선택할수있는발전방향이있었음에도그것을채택하지않고비합
리적인 선택을 했”다. “유감스럽게도 이 비합리적 선택은 독재와 저발전
으로 일관한 북한의 이후 역사를 규정했다.”92) 이때부터 북조선은 정통
사회주의와 합리주의, 법적 지배 등과 무관한 코스를 달리기 시작한다.
이전까지의 경로가, 맑스․레닌주의라든가 법적 체계 등과의 긴장 관계
속에서형성되면서그나름의독자적합리성을보여주었다면93) 1960년
91) S.Hook, 태용운 옮김, 「원자폭탄에 관한 대론」, 사상계, 1958. 10, 84쪽.
92)김성보, 북한의 역사2, 역사비평사, 2011, 64~66쪽.
93)和田春樹, 서동진 옮김, 북조선, 돌베개, 2002.
과학의 영도(零度), 원자탄과 전쟁▪권보드래 355
대말이후로는긴장이깨지고북조선특유‘우리끼리’, ‘우리식으로’의질
주가 개시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당 조직․사상․문화 담당자들에 대한
대숙청이이루어진것도1967년이다.이시기는남북한과의전쟁가능성
이 공공연하게 점쳐지던 무렵, 휴전 이후 최대의 군사적 위기를 맞았던
무렵이기도하다.북조선의시인은각오를다지기시작했다: “십여년간
잠든분계선이/ 또다시원쑤들의 불장난으로하여꿈틀거린다(…) 50년
의 보복에서 교훈을 찾지 못했다면/ 60년대의 포화로써 다시 대답하리
라.”94)
1966년10월중순에는북조선군대가1주일간하루도빠짐없이‘휴전
선을 침범’, 국군을 살상․납치했을 정도다.95) 미국 대통령 존슨이 방한
했던11월에는국군23인과미군6인이희생되었으며, 동해에서는남한
해군이 북의 무장간첩선을 격침시키는가 하면 양측 함선 사이 20여 분
간의 교전도 있었다.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1967년에는, 북조선에서 숙
청이 단행되고 남한에서는 박정희가 1백만 표 넘는 표차로 대통령에 재
선된다.각각체제전환의기초를이룬후1968년에이르러선,국지적충
돌 자체가 줄었음에도 남한과 북조선이 각각 적극적으로 전면적 가능성
을 경고하기 시작한다. 연초에 있었던 푸에블로호 사건이 격발장치로서
의 역할을 했다. 북조선에서는 푸에블로호가 ‘무장간첩선’으로서 영해를
침공했다고 주장했으며, 한국과 미국에서는 북조선 해군이 해상경계선
을넘어와배를납치해갔다고선전했다. 북조선에의하면푸에블로호의
영해침범은“조선에서새전쟁을일으키려는미제국주의자들의계획적
인책동의일환”이었다. “우리는전쟁을바라지않지만결코전쟁을두려
워하지는않습니다(…)최근의모든사태발전은미제에의하여우리나라
에서 임의의 시각에 전쟁이 다시 터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
다.”96)
94)오영재, 「우리는 판가리 시각을 기다린다」, 조선문학, 1967. 1, 11쪽.
95) 「휴전에 도발한 붉은 발악」, 동아일보, 1966. 11. 4.
356 한국문학연구 43집
이른바 1․21 사태는 푸에블로호 사건으로 경색됐던 국면을 전쟁 직
전으로까지몰고갔다. 3월에는한국에서1백만규모의향토예비군이창
설되었다. 양쪽은 모두 심각했다. 세계적으로도 격변의 한복판이었다.
베트남전쟁이 한창 격렬했고, 남한은 이미 파병을 시작했으며 북조선도
조종사 50명을 파견한 위에 본격 파병을 검토하고 있는 중이었다. 한국
전쟁 당시 원자폭탄 공포의 기억은 이 시기 북조선에서 다시 소환된다:
“전쟁이 일어난다고 하여 모든 것이 한꺼번에 다 마사지는 것도 아니며
또사람이다죽는것도아닙니다./ 미제국주의자들이원자탄을가지고
있지만함부로쓰지못하고있습니다. 미제국주의자들은원자탄을지난
조선전쟁 때 그처럼 곤경에 빠졌어도 쓰지 못하였으며 오늘 웰남전쟁에
서도 계속 녹아나고 있지만 감히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84). 곧 전쟁이
재발할지모른다는위협감,건설과노동에의의욕을감퇴시킬법한이불
안에 대해 북조선 지도부는 한국전쟁에서의 생존-승전의 서사를 다시금
활용한다. “모든것이(…) 다마사지는것도아니”며“사람이다죽는것도
아니”라는결기속에서건설의자세는재차독려된다: “어떤사람들은전
쟁이 일어나면 다 마사지겠는데 무엇 때문에 자꾸 건설하는가고 의문을
가질수도있습니다.우리는전쟁이내일아침에일어난다고하더라도오
늘 밤까지는 건설을 계속하여야 합니다”(97).
원자탄의잠재적위력은여전했다.소련이미국을앞질러인공위성발
사에성공한이른바‘스푸트니크충격’ 후(1957. 10) 미국의과학기술우위
라는 신화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1960년대 말이면 미국․소련에 이어 영
국․프랑스․중국도 핵무기 개발에 성공한 후였지만, “미 제국주의자들”
의“원자탄”은변치않는상징적위세를발휘하고있었다. 북조선이한국
전쟁직후부터핵무기개발에관심을둔것은거의불가피한결과처럼보
인다. 남한이 그 위력을 전유하기 위해 핵에 관심을 가졌다면 북조선은
96) 김일성 저작집22, 7쪽.
과학의 영도(零度), 원자탄과 전쟁▪권보드래 357
핵위협을방어한다는명분으로개발에나섰다. 결과적으로남한과북조
선은1950년대중반이후몇해사이다투어관련연구소를창설하고연
구용원자로를도입한다.97) 한국전쟁을통해원자탄에대한경험이전혀
달랐는데도 그 절대 무기를 향한 욕망만은 남북이비슷했다. ‘성공’한 것
은북조선쪽이다. 북조선은2005년핵무기보유사실을공식선언한다.
오늘날은 부분과 보편 사이의, 지역과 세계 사이의, 그리고 아(我)와 적
사이의관계를근본적으로바꾸어온핵이한반도의현실에훨씬가깝게
개입하고 있는 형국이다.
과학은한때인간이성의개가(凱歌)로예찬되었다. 원자탄이개발되던
한복판에서도 그것을 과학-기술 발전의 결과로 간주하고 자유민주주의
와 과학정신 사이 관련을 논구하는 접근법은 남아 있었다. “독재제도 자
체의모순은(…) 과학기술의발랄한진전을지연케” 하는요소이며98) “과
학의진흥이란진정한의미에서는과학정신의진흥이요(…)곧우리가속
에지니고있는비과학적요소를정리제거하는것”인만큼자유민주주의
야말로과학발달에적절한토양이라는것이다.이런발언은원자탄을포
함한과학-기술을이성과합리성의마땅한산물로평가하는태도를함축
한다. 2차대전이후인간이성자체에대한회의와특히도구적합리성에
대한 비판이 널리 번졌음에도 과학을 이성과, 자유민주주의와 동일시하
는 상상력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과학의 영도(零度)’로서 원자탄 개발
이후의 궤적은 과학-합리성이라는 모형 자체의 재조형을 요구하고 있지
만, 프랑크푸르트학파를 마지막으로 이 작업의 진전이 충분히 대중화되
지는 못한 듯하다. 남북한 문학에서도 한국전쟁 이후 가장 지적 실험이
활발했던 1960년대 초․중반에 약간의 시도가 있었던 외에 핵이라는 대
상을 깊이 성찰한 시도는 별반 보이지 않는다.99) 한국문학에 있어 과학
97)한국의사정은앞에적었거니와북조선에대해서는유진석, 앞의글, 112쪽참조.
98) 「원자력은 세계 파멸을 방지했다」, 동아일보, 1955. 8. 10.
99)김원일의 히로시마의 불꽃(2001) 등 원폭 피해자의 경험을 다룬 소설은 여러
358 한국문학연구 43집
에의응답이좀더진지해질필요가있다는방증이라할것이다.테크놀로
지의극한을넘어선테크놀로지로서, 그리고해방기이후한반도의현실
에 가까이 얽혀 있던 물(物) 자체로서, 핵과 핵무기는 우리 옆에 가까이
있다.
편 있다. 김진명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1993) 등 핵무기 개발을 민족주의
와 결부시켜 서사화한 소설도 적지 않다.
과학의 영도(零度), 원자탄과 전쟁▪권보드래 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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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 한국문학연구 43집
Abstract
Kwon, Bo-Due-Rae
The Atomic Bomb marks the new phase in human history. It actualized
the possibility of extinction of humans by humans, then transformed the
traditional total-part relationship. Every local confrontation signifies a
virtual world war and total destruction with the arrival of the atomic
bomb. Korean war, which was the first local war after world war 2, was a
typical exemplification of such a scheme, and the South and North
appropriated the condition respectively. Korea had showed the
ambivalent response toward the atomic bomb as the power of liberation
and the threat of catastrophe from the experience of the bombing on
Japan; however, against the backdrop of asymmetrical development of
the atomic bomb in the U.S. and U.S.S.R, the South and North articulated
the different attitude centering the bombing possibility in the Korean war.
The South or the right wing in South supported the atomic bombing
which was suggested by General McArthur, even with the exception such
as The Myth of a Circle, while the North was overwhelmed by terror of the
atomic bomb which was vividly represented in Daet'ong River or A Birth of
the Epoch. Its traces had not been erased during the cold war period, and
the influence is still alive.
Literary Imagination on the Atomic Weapon in
1940s~1960s Korea Peninsula
과학의 영도(零度), 원자탄과 전쟁▪권보드래 363
Keyword Atomic Bomb, Korean War, Cold War, D.McArthur, Jang
Yong-hak, Seok Yun-gi, The Myth of a Circle, A Birth
of the Epo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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