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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군사이야기

과달카날 전투 (69) -과달카날 해전 (10) /blog.naver.com/imkcs0425/60115105842


69. 과달카날 해전 (10) - 전함 대 전함의 대결

1942 년 11 월 14 일 오후 11 시 35분에 변침하여 불타는 구축함의 화염 뒤로 숨어들어간 리 제독은 자신의 구축함들이 사실상 전멸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직 기동이 가능한 벤햄과 그윈에게 후퇴명령을 내렸다. 이때 곤도 제독의 포격부대가 전장에 도착했다. 선두에는 구축함 아사구모와 데루즈키 , 이어서 중순양함 아타고와 다카오 , 맨 마지막에 전함 기리시마의 순서였다.
워싱턴의 레이더가 오후 11 시 40 분에 선두에 선 구축함 2척을 발견했고 , 이어서 중순양함 2척과 마지막으로 전함 기리시마를 포착했다. 즉시 레이더에서 기리시마와의 거리가 산출되어 주포탑에 전달되었다. 그러나 주포 발사 과정의 마지막 단계에서 대기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리 제독은 자신의 뒤를 따라오던 사우스다코타가 레이더 상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우스다코타가 하필이면 워싱턴 레이더의 사각지대에 들어가 버린 것이었다.

워싱턴은 사우스다코타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하여 호출했으나 전기가 나가버린 사우스다코타는 이 통신을 받을 수가 없었다. 리 제독은 직감적으로 레이더 상의 큰 광점이 일본전함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만에 하나 아군끼리의 오인사격을 피하기 위하여 대답없는 사우스다코타만 계속 호출했다.
그동안 미국구축함들을 처치하고 북상하던 기무라 제독이 11 시 55분에 사우스다코타를 발견하고는 경보를 울림과 동시에 34 발의 어뢰를 발사하고는 크게 원을 그리면서 후퇴했다. 이 어뢰들은 모두 빗나갔다. 기무라 제독과 거의 동시에 곤도 제독의 기함 아타고의 견시가 사우스다코타를 발견하고는 전함처럼 보이는 적함을 발견했다고 보고했으나 곤도 제독은 믿지 않았다.
3 분 후인 11 시 58 분에 곤도 제독이 직접 쌍안경으로 사우스다코타를 발견했으나 역시 전함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곤도 제독은 일단 전투준비를 명령했다.
전함 기리시마에서는 초탄은 삼식탄으로 장전하고 있었으나 , 두번째 포탄부터는 필요에 따라 철갑탄과 삼식탄 중에 필요에 따라 골라 장전할수 있도록 포탄 승강기에 절반씩 실어 놓았다.
원래 전함 기리시마는 해전에 개입하지 않을 예정이었으나 , 불과 이틀 전의 경험을 살린 기리시마 승무원들의 선견지명이었다.
이때 아타고를 따라오던 중순양함 다카오는 리 제독의 기함 워싱턴을 발견했으나 미처 보고하거나 반응할 틈이 없었다. 사태는 너무나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2 분 후인 15 일 새벽 0시 정각 , 곤도 제독의 기함 아타고의 탐조등이 불과 4,500m 거리에서 사우스다코타를 정확하게 비추었다.
신형전함의 거대하고 위풍당당한 상부구조물이 탐조등 불빛에 뚜렷하게 떠올랐다.
쌍안경으로 이 모습을 지켜보던 곤도 제독은 그제서야 자신이 미국의 막강한 신형전함과 대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함 기리시마부터 구축함에 이르기까지 일본함대의 모든 함포가 거의 동시에 사우스다코타를 향하여 불을 뿜었다. 일본함대는 동시에 여러 발의 어뢰를 발사했으나 , 1 발도 명중하지 않았다. 기리시마는 이미 장전된 삼식탄을 교체할 틈도 없었다.
삼식탄을 사용한 기리시마의 첫번째 일제사격이 사우스다코타에 명중하여 외부에 노출된 기기류를 손상시켰으나 함체에는 거의 피해를 주지 못했다.  그러나 승무원들의 선견지명 덕분에 기리시마는 두번째 일제사격에서는 철갑탄을 발사할 수 있었다.
두번째 일제사격에서 발사된 기리시마의 14 인치 철갑탄 중 1 발이 사우스다코타의 3 번 주포탑 양탄통에 명중했다. 사우스다코타는 5 인치 포탄에서 14 인치 철갑탄에 이르는 26 발의 포탄을 얻어맞았다. 명중된 일본군의 포탄 중단 1 발도 주장갑판을 관통하지 못하여 사우스다코타 급의 강력한 방어력을 확인해 주었다. 또한 명중된 포탄 중 상당수가 불발탄이었다.
그러나 상부구조물에 집중적으로 포탄을 얻어맞은 사우스다코타는 전투능력에 큰 피해를 입었다. 일본군의 포탄들은 전선과 통신선들을 절단하고 , 레이더와 사격통제장치를 망가뜨렸다.
총 6 개의 사격통제레이더 중 4 개가 부서졌고 , 상부 구조물 곳곳에 화재가 발생했다.
사우스다코타는 가라앉을 염려는 전혀 없었으나 , 사실상 전투능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 사우스다코타의 피격상황.)

아타고의 탐조등이 사우스다코타를 비추는 순간 , 워싱턴 함상의 리 제독도 확신을 얻었다.
레이더에 비치는 광점이 사우스다코타가 아닐까 주저하던 리 제독은 아타고의 탐조등에 떠오른 사우스다코타의 모습을 보고 워싱턴의 레 이더에 비친 광점은 일본전함 기리시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즉각 사격명령이 떨어졌고 , 워싱턴은 15 일 새벽 0 시 정각 , 일본함대의 사격 개시와 거의 동시에 북쪽으로 8,000m 떨어진 일본전함 기리시마를 향하여 16 인치 주포로 일제사격을 시작했다.
제 2 차 세계대전 전체를 통하여 6 번 밖에 벌어지지 않았을 정도로 희귀한 전함 대 전함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 기리시마를 향하여 일제사격을 실시하고 있는 워싱턴. 16 인치 주포의 낮은 각도로 보아 상당한 근거리 표적을 향하여 사격을 실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수 있다)

워싱턴의 포격술은 정확하여 첫번째 일제사격에서 이미 협차에 성공했고 , 3 번째 일제사격에서 명중탄을 기록했다. 기리시마는 그제서야 허둥지둥 표적을 바꾸어 워싱턴을 향하여 포격을 시작했으나 이미 늦었다.
워싱턴은 12시 정각부터 7 분까지 불과 7 분 사이에 16 인치 포탄 75 발을 퍼부어서 9 발을 명중시켰으며 , 5 인치 부포들도 약 100 발을 발사하여 40 발을 명중시켰다.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워싱턴이 발사한 Mk8 16 인치 철갑탄은 무게가 기존의 16 인치 철갑탄보다 20% 이상 무거워서 1,225kg 에 달했다.
초중량탄 ( Super- Heavy Shell = SHS) 이라고 불리는 이 강력한 포탄은 9,000m 거리에서도 600mm 가까운 관통력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기껏해야 300mm 에도 못 미치는 기리시마의 장갑판 정도는 어느 거리에서든 간단히 관통할 수 있는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워싱턴의 16 인치 포탄들은 기리시마의 주포탑 4 개 중에서 3 번과 4 번 주포탑을 박살내었고 , 조타기계를 망가뜨려 키를 우현 10 도 상태로 고정시켰으며 화재를 일으키고 , 수선 하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 놓았다.
기리시마는 순식간에 전투력을 상실하고 , 침수가 진행되는 가운데 검은 연기를 뭉게뭉게 토해내면서 오른쪽으로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사우스다코타를 공격하던 곤도 제독은 갑작스러운 워싱턴의 기습으로 순식간에 전함 기리시마가 무력화되자 깜짝 놀랐다.
그는 사우스다코타에 대한 공격을 중단하고 , 워싱턴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이제 사우스다코타는 한숨 돌릴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부장 웰링거 중령으로부터 함의 상태를 보고받은 함장 개치 대령은 사우스다코타가 전투를 치를 수 없는 상태임을 깨달았다. 39 명의 전사자와 59 명의 부상자를 기록한 사우스다코타는 15 일 오전 1 시에 남쪽을 향하여 전장을 이탈했다.
워싱턴을 추격하던 곤도제독은 12시 11 분에 워싱턴을 발견하고 , 13 분에 3,500m 거리에서 8 발의 어뢰를 발사했으나 모두 빗나갔다. 한편 워싱턴은 12시 20 분에 다나카 선단을 공격하기 위하여 북서쪽으로 변침했다.
이제 워싱턴이 다나카 선단을 노린다는 것이 분명해지자 곤도 제독은 워싱턴과 거의 나란히 달리면서 12시 30 분부터 워싱턴에 포격을 가했다. 일본군의 5 인치 포탄 1 발이 명중하여 워싱턴의 대공레이더가 파손되었다.
워싱턴이 입은 유일한 피해였다. 일본해군은 수중탄의 효과를 의식하여 일제사격시 거리를 조금 짧게 잡는 경향이 있었다. 이때도 역시 일본함대의 일제사격은 대부분 워싱턴에 못 미치고 떨어졌으나 , 일본해군이 기대하던 수중탄은 1 발도 명중하지 않았다.
워싱턴도 반격을 가하여 , 아타고와 다카오에게 피해를 입혔다. 아타고와 다카오는 16 인치 철갑탄을 정통으로 얻어맞지는 않았으나 워싱턴의 무시무시한 화력에 그만 기가 질린 곤도 제독은 화력의 열세를 절감해야만 했다.
곤도 제독은 포격전을 포기하고 연막을 뿌리면서 북쪽으로 도망갔다.
곤도 제독이 도망친 직후인 15 일 오전 1 시 33 분에 리 제독도 다나카 선단 공격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미국함대에서는 워싱턴 1 척만이 유일하게 전투를 지속하고 있었는데 반하여 일본함대는 최소한 6 척 이상이 전투가능한 상태였으며 , 다나카 선단을 호위하고 있던 다수의 일본구축함들은 아직 강력한 산소어뢰를 잔뜩 지니고 있었다.
이제 헨더슨 비행장은 안전해졌다. 게다가 해전 때문에 다나카 선단의 항해가 늦어져서 양륙은 아무리 빨라도 새벽이 되어야 가능할 것이었고 , 그러면 칵터스 항공대가 충분히 처리할 수 있었다.
리 제독은 더 이상 자신의 행운을 시험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 후퇴명령을 내렸다.
워싱턴은 크게 우회전하여 남쪽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이때 다나카 제독이 파견한 구축함 오야시오와 가게로가 다가와서 12시 35 분에 워싱턴을 노리고 어뢰를 발사했으나 워싱턴의 함장 데이비스 대령은 교묘한 조함으로 모두 회피했다.
이 어뢰 중 1 발은 워싱턴의 바로 뒷쪽에서 폭발하여 60m 높이의 물기둥이 솟았으나 다행히 워싱턴에는 별다른 피해가 없었다.
이로써 과달카날 해전의 두번째 전투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