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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군사이야기

과달카날 전투 (71) - 마타니카우 강 서안 확보 /blog.naver.com/imkcs0425/60115271544


71. 마타니카우 강 서안 확보

1942 년 11 월 12 일에 아메리칼 사단의 두번째 연대인 제 182 연대가 무사히 도착하고 , 이어서 벌어진 과달카날 해전에서 미군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자 반데그리프트 장군은 기세를 몰아 과달카날의 일본군에게 일대 타격을 가하기로 결심했다.
과달카날 해전이 끝난지 이틀 후인 11 월 17 일에 반데그리프트 장군은 공격명령을 내렸다. 이번 공세의 목표는 교두보에서 서쪽으로 공세를 실시하여 일본군의 근거지인 코컴보나를 함락하고 , 코컴보나 서쪽의 포하 강까지 진출하여 일본군을 과달카날 섬의 북서쪽 구석으로 밀어 붙이려는 것이었다.
이 공세에 참가할 부대는 새로 상륙한 제 182 연대 , 제 164 연대의 제 1 및 제 2 대대 , 그리고 제 8해병연대와 제 1 해병연대였으며 , 반 델레 준장이 지휘하는 교두보 내의 야포 세력 대부분이 화력지원을 담당할 예정이었다.
반데그리프트 장군은 아메리칼 사단의 부사단장으로서 교두보 서쪽 지역의 방어를 책임지고 있던 세브리 준장에게 공격 지휘를 맡겼다. 세브리 준장은 작전계획을 2 단계로 나누었다.
제 1 단계에서는 제 1/182 대대 및 제 2/182 대대가 마타니카우 강을 건너 크루즈 곶에서 남쪽으로 2,300m 정도 떨어진 66 피트고지까지의 전선을 확보하여 제 2 단계를 위한 작전개시선으로 삼을 생각이었다.
미군 정찰대의 보고에 의하면 11 월 둘째주부터 마타니카우 강의 서안에서 크루즈 곶 사이는 사실상 무인지경이었다. 실제로 세브리 준장은 활링 해병대령과 함께 직접 마타니카우 강을 건너 크루즈 곶까지 정찰했는데 일본군을 전혀 만나지 못했다.  일단 공격개시선이 확보되면 곧 대규모의 제 2 단계가 시작될 예정이었다.
제 2 단계에서는 제 182 연대 , 제 164 연대 및제 8해병연대가 코컴보나 동쪽의 일본군 주방어선을 압박하는 동안 역전의 제 1 해병연대가 남쪽으로 우회하여 북상 , 코컴보나 서쪽에서 해안으로 진출함으로써 방어선에 포진한 일본군 주력을 포위섬멸할 예정이었다.
만일 만사가 계획대로 잘 된다면 일본군을 서쪽으로 쫓아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일본군의 주력을 격멸하여 과달카날 전투를 끝내 버릴 수도 있는 대담한 계획이었다. 그러나 , 작전이 시작되기도 전에 해병제 1 사단이 철수준비명령을 받음에 따라 제 1 해병연대가 공격에서 빠지게 되자 세브리 준장의 대담한 계획은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결국 세브리 준장은 포위섬멸전은 포기하고 , 그냥 힘으로 밀어붙여서 코컴보나를 함락하고 , 일본군을 포하 강 너머로 쫓아내 버리기로 했다.  제 1 단계 작전은 11 월 18 일부터 시작하며 , 제 2 단계는 제 1 단계가 완성되는 20 일 이후 최대한 빨리 시작될 예정이었다.
세브리 준장은 과달카날 해전의 결과로 극심한 보급품 부족에 시달리게 된 일본군이 자신의 강력한 공세에 대하여 소극적인 방어태세로 일관하리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 일본군의 대응은 세브리 준장의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세브리 준장이 공격계획을 가다듬고 있을 때 일본제 17 군 사령관 햐쿠다케 중장도 마타니카우 강을 향한 공격계획을 세웠다.
과달카날 해전으로 인하여 막대한 보급품을 실은 선단이 전멸하자 이제 일본군에게는 정량으로 배식할 경우 불과 4 일치의 식량 밖에 남지 않았다. 추가 보급의 전망도 암담한 상황에서 넋놓고 기다리다가는 그대로 굶어죽거나 아니면 굶주림에 시달려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미군의 공격에 그대로 쓸려버리고 말 것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햐쿠다케 장군의 휘하에는 아직까지 전투가 가능한 약 4 개 대대의 병력과 함께 새로 상륙한 약 4,000 명의 싱싱한 병력이 있었다. 이들마저 굶주림으로 전투력을 상실하기 전에 무엇인가를 해야만 했다.
햐쿠다케 중장은 새로 상륙한 제 38사단의 병력들에게 과달카날 섬의 북해안을 따라 동진하여 마타니카우 강을 건넌 다음 미군의 야포진지를 점령하여 차기 공격을 위한 공격개시선으로 확보하라고 명령했다.  또한 제 38사단의 보병단장인 이토 소장이 이끄는 병력은 남동쪽으로 진출하여 오스텐 산을 점령하라고 명령했다.
굶주림과 질병으로 이미 허약해진 제 2사단을 중심으로 한 나머지 병력들은 코컴보나를 방어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미군과 일본군은 서로 상대방의 의도를 모르는 채로 마타니카우 강 서안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 포하 강 공세 상황도.)

11 월 18 일로 예정된 공세를 앞두고 미군 공병대는 마타니카우 강에 다시 다리를 놓고 , 북해안을 따라 나있는 도로를 정비했다.  18 일 아침이 되자 버나드 트웜블리 중령이 지휘하는 제 2/182 대대가 마타니카우 강의 하구에서 640m 상류로 올라간 지점에 설치된 다리를 건넜다.
그들은 강을 건너 75피트 고지에 오른 다음 능선을 따라 약 1,800m 정도 남동쪽으로 나아가서 능선의 마지막에 위치한 66 피트 고지에 도달했다. 도중에 일본군은 전혀 없었으나 , 과달카날에 상륙한지 겨우 6 일 밖에 안 되어서 아직 정글에 익숙하지 못한 제 2/182 대대의 전진은 지지부진했다.
결국 제 2/182 대대는 그날 오후가 되어서야 겨우 66 피트 고지를 점령하고 방어선을 편성할 수 있었다. 그날 오후에 제 2/182 대대의 1 개 소대가 물을 뜨러갔다가 비슷한 병력의 일본군으로부터 기습을 받았다.
보초도 세우지 않고 모두들 수통에 물을 담느라고 정신이 팔려있던 미군들은 건너편 숲에서 갑자기 기습적으로 사격을 가해오는 일본군에 게 제대로 대항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구원병력이 재빨리 현장에 도착하자 일본군은 달아나 버렸다.  이 기습으로 미군 2 명이 사망했다.
프랜시스 맥고완 중령이 지휘하는 제 1/182 대대는 다음날인 19 일 아침에 마타니카우 강을 건너 북해안을 따라 크루즈 곶을 향하여 서진했다. 제 8해병연대의 B 중대가 먼저 강을 건너서 크루즈 곶 남쪽의 78 피트 고지를 향하여 전진했다.
B 중대는 78 피트 고지를 점령하여 제 1/182 대대의 남쪽 측면을 보호할 임무를 맡고 있었다. 제 1/182 대대는 제 2/182 대대와는 달리 강을 건너서 약 360m 전진한 위치에서 소규모의 일본군과 교전한 것을 시작으로 하루 종일 일본군 들과 작은 교전을 치르면서 조심스럽게 전진했다.
제 8해병연대의 B 중대가 78 피트 고지 부근에 도달했을 때 크루즈 곶으로부터 강력한 일본군의 사격이 쏟아졌다. 불시에 강력한 적의 사격을 받은 B 중대는 78 피트 고지로부터 밀려났다.  19 일 정오가 되자 제 1/182 대대의 진격도 크루즈 곶 바로 동쪽에서 멈추었다.
  세브리 준장은 제 8해병연대 B 중대에게 복귀명령을 내렸다.  이제 남쪽의 제 2/182 대대와 북쪽의 제 1/182 대대 사이에는 약 900m 의 간격이 생겼다.
19 일밤 사이에 대규모의 일본군이 제 1/182 대대의 전방에 집결했다.  20 일 새벽이 되자 일본군이 제 1/182 대대의 남쪽 측면을 공격해 왔다.  일본군의 야포와 박격포가 집중사격을 퍼부었고 , 이어서 일본군이 돌격하자 당황한 미군은 그대로 밀려났다.
급보를 받고 현장에 달려온 세브리 준장과 아메리칼 사단의 작전참모 폴 가반 중령 등이 직접 공황에 빠진 병력들을 진정시켜 360m 후방 에 새로 방어선을 편성했다.
그동안 미군의 야포들과 칵터스 항공대가 공세를 가하는 일본군을 집중적으로 때려서 쫓아냈다. 오전 9시에 제 1/182 연대는 원래의 방어선으로 되돌아갔고 , 이어서 서쪽으로 공세를 개시했다.
일본군은 야포와 박격포를 쏘아대면서 격렬하게 저항했고 , 제 1/182 대대의 전진은 지지부진했다. 20 일 오후에 칵터스 항공대의 정찰기가 크루즈 곶 방면으로 이동하는 대규모의 일본군들을 발견하면서 추가병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명 백해졌다. 세브리 준장은 실전경험이 풍부하여 제 2 단계에서 핵심적 역할을 맡길 생각이었던 제 164 연대의 제 1 대대 및제 3 대대에게 출동명령을 내렸다.
제 1/164 대대는 제 1/182 대대의 남쪽을 담당했고 , 제 3/164 대대는 제 1/164 대대와 남쪽의 제 2/182 대대 사이의 간격을 메꾸었다. 21 일 아침이 되자 제 1/182 대대와 제 164 연대는 일제히 공격을 실시했다. 북쪽에서 실시된 제 1/182 대대의 공격은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
미군은 크루즈 곶을 일본군 방어선에서 분리시킨 다음 저녁때까지 완전히 소탕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크루즈 곶 서쪽으로 진출하는데에는 실패했다. 제 164 연대의 공격은 완전히 실패했다.
제 164 연대 정면의 일본군 방어선은 일본군이 11 월 11 일부터 1 주일 동안 정성스럽게 준비한 방어선인데다가 마타니카우 강 동쪽을 공격하 려던 일본군들이 그대로 눌러앉으면서 참호마다 일본군들이 꽉꽉 들어차 있었다.
일본군은 야포와 박격포의 화력지원을 받으면서 소화기 사격을 집중시켜 제 164 연대의 공격을 간단하게 막아내었다.  다음날인 22 일에 실시된 제 164 연대의 공격도 실패했다.
세브리 준장은 23 일에 마타니카우 강 방어선을 지키던 제 8해병연대를 동원하여 다시 한번 공세를 실시했다.  23 일 아침이 되자 제 245 야포대대 , 포병연대인 제 11 해병연대의 제 1 대대 및제 2 대대가 30 분 간에 걸쳐 치열한 포격을 퍼부은 후에 제 8해병 연대가 제 164 연대를 초월하여 공격해 들어갔다.
이날 하루동안 미군의 야포들은 2,628 발의 포탄을 발사했고 , 칵터스 항공대는 코컴보나 부근을 폭격하여 일본군의 증원을 차단했다.  이날 일본제 17 군 사령관 햐쿠다케 중장이 하마터면 폭탄에 맞아 전사할 뻔했다.  제 8해병연대는 일본군의 방어선을 뚫기 위하여 최선을 다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그날 오후에는 제 3/164 대대장인 홀 중령이 일본군의 박격포탄에 부상을 입고 다음날 항공기로 후송되었다.  이제 세브리 준장에게는 더 이상 일본군의 방어선을 공격하는 일이 무의미해졌다.
곧 해병제 1 사단이 과달카날에서 철수할 것이었고 , 그러면 일시적으로 전력의 공백은 불가피했다. 무리해서 일본군의 방어선을 뚫는다고 해도 후속 공격을 실시하여 전과를 확대할만한 더 이상의 예비대가 없었다.  결국 세브리 준장은 23 일 저녁에 공격중지를 명령했다.  미군은 현 전선에서 참호를 파고 일본군과 대치상태에 들어갔다. 11 월 18 일부터 23 일까지 진행된 전투로 미군은 많은 희생을 치렀다.
제 164 연대에서만도 117 명의 전사자와 208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세브리 준장은 비록 코컴보나를 점령하고 일본군을 포하 강 너머로 쫓아낸다는 작전목표를 달성하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몇가지 성과도 거두었다.  먼저 마타니카우 강 동안을 노린 일본군의 공세기도를 좌절시켰고 , 크루즈 곶을 포함하여 마타니카우 강 서안을 완전히 점령하여 교두보 를 확장하는데 성공했다.
이로써 미군은 고지대에 자리잡고 보다 편한 위치에서 저지대의 일본군을 감시할 수 있게 되었다.  일본군도 비록 마타니카우 강 동안을 점령한다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는 실패했으나 강력한 미군의 공세를 성공적으로 방어했다.  또한 오스텐 산의 방어태세를 강화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고지대의 미군과 저지대의 일본군은 서로 소총과 기관총으로 총격전을 치르고 , 박격포와 야포를 사용하여 서로의 보급선이나 후방지 역을 포격하곤 하였으나 상대방의 방어선을 돌파하려는 본격적인 시도는 하지 못했다.
교두보 서쪽에서는 1943 년 1 월에 들어서 전력을 충분히 보강한 미군이 다시 공세를 실시할 때까지 이런 불안정한 대치 상대가 지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