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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군사이야기

과달카날 전투 (72) - 알치바의 기사회생 /blog.naver.com/imkcs0425/60115322449


72. 알치바의 기사회생

과달카날 해전 이후 11 월 말까지 칵터스 항공대의 세력은 급팽창하여 과달카날 해전 직전인 11 월 12 일에는 단발기를 중심으로 한 94 대에서 11 월 30 일에는 뉴질랜드 공군의 허드슨기와 B- 17 중폭격기 등을 포함하여 188 대로 늘어났다.  이때쯤엔 기존의 활주로는 1,600m 길이로 연장되어 폭격기의 이착륙이 가능해졌고 , 2개의 전투기용 활주로가 더 건설되었다.
이들 활주로에는 모두 마스덴 매트가 깔려서 전천후로 사용이 가능해졌다.  다만 급속히 팽창하는 칵터스 항공대의 몸집을 보급이 일시적으로 따라잡지 못하여 1942 년 11 월 30 일 현재 칵터스 항공대는 4 일 분량의 항공유를 보유하고 있을 뿐이었다. 과달카날의 수상함도 늘어났다.
11 월 30 일 현재 어뢰정 부대는 모함 제임스타운을 중심으로 15척의 세력으로 불어났고 , 구축함 8척이 툴라기에 붙박이로 배치되어 과달카날과 에스피리투산토 사이의 해역에서 수송함들을 호위했다.  이제 툴라기 기지는 부족하나마 해군기지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 어뢰정모함 제임스타운)

헐지 제독은 5 번의 해전을 겪으면서 많은 함정들을 상실하고 , 또 새로운 함정들을 보충받은 남태평양 해역군의 수상함대 세력도 5개 부대로 재편했다.  8 월 말에 어뢰에 피격되었던 피해를 수리하고 남태평양으로 돌아온 항공모함 새러토가는 드윗 램지 소장의 지휘 하에 항공모함 기동부대를 형성했다.
엔터프라이즈 또한 프레드릭 셔먼 소장 휘하에서 별도로 항공모함 기동부대를 형성했다. 9 월의 어뢰 피격으로 인한 피해를 수리하고 남태평양에 돌아온 전함 노스캐롤라이나는 자매함인 워싱턴 및 새로 도착한 인디애나와 함께 리 제독 휘하에서 강력한 신형전함 부대를 형성했다. 과달카날 해전으로 큰 피해를 입은 순양함 세력들은 중순양함 펜사콜라 , 뉴올리언스 , 노댐턴 , 경순양함 호놀룰루 , 헬레나를 중심으로 재건되어 토머스 킨케이드 소장이 지휘했다.
이들 4 개 수상함 부대는 주로 누메아와 에스피리투산토를 기지로 삼아 활동했고 , 피지 방면에서는 구형전함 메릴랜드와 콜로라도를 중심 으로 한 해리 힐 소장의 기동부대가 예비전력으로 대기했다.  새로 재편된 부대들은 에스피리투산토와 과달카날 사이의 이른바 어뢰집결지에는 가능하면 진입하지 않았다.
과달카날을 오가는 수송함들의 호위는 주로 툴라기에 붙박이로 배치된 구축함들이 담당했고 , 필요하면 별도로 구축함 중심의 호위부대를 편성했다.  이제 과달카날과 에스피리투산토 사이의 해역에서 구축함만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할 정도로 강력한 적의 수상함정이나 대규모의 항공기들을 만날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수송함들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일본의 잠수함들이었으며 , 잠수함의 위협으로부터 수송함들을 지키는데 순양함급 이상의 대형전투함은 소용이 없고 오히려 적의 잠수함들에게 좋은 표적만 제공해 줄 뿐이었다.  순양함급 이상의 대형전투함을 포함한 강력한 수상함대는 과달카날에서 그들을 필요로 하면 재빨리 과달카날로 건너갔다가 임무가 끝나면 다시 재빨리 에스피리투산토 남쪽의 안전한 해역으로 철수하여 일본잠수함의 위협에 노출되는 기회를 최소화했다. 남태평양해역군의 지휘관들에게도 변화가 있었다.
헐지 제독은 과달카날 해전을 승리로 이끈 공적과 함께 그가 맡고 있는 임무의 중차대함이 인정되어 1942 년 11 월 26 일 자로 대장으로 승 진했다. 이제 태평양함대는 니미츠 제독과 헐지 제독이라는 2 명의 대장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과달카날의 지상군 주력이 해병대에서 육군으로 옮겨감에 따라 과달카날 섬의 지휘권도 12 월 9 일자로 해병제 1 사단장인 반데그리프 트 장군에게서 아메리칼 사단장인 알렉산더 패치 소장에게 넘어갔다.
헐지 제독은 일본군이 아직도 과달카날 근해에서 역전을 노린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야마모토 제독은 트럭에 집결시킨 전함들을 동원하여 과달카날 근해에서 태평양함대 전체를 상대로 소위 ' 결전 ' 을 치룰 기회를 노리 고 있었다. 그러나 , 그 결전은 야마모토 제독이 죽을 때까지 벌어지지 않았다.
대본영에서는 이제 미군의 다음 목표가 될 뉴조지아 섬에 관심을 갖고 방어태세를 정비하기 시작하면서도 과달카날에 남겨진 육군병력의 철수문제를 빨리 매듭짓지 못하고 우유부단하게 시간을 질질 끌었다.  따라서 , 다나카 라이조 제독의 구축함부대는 승산없는 전장에 내던져진 채 기아로 죽어가는 과달카날의 일본군들을 위하여 위험천만한 물 자수송 임무에 투입되었다.
이제 물자를 양륙한 뒤에 교두보에 포격을 가하는 따위의 짓은 상상도 할수 없었다.  이 기간 동안 과달카날에서는 미해군 승무원들의 보수능력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태가 발생했다.
1942 년 11 월 21 일에 미해군의 7,000 톤급 화물수송함 알치바가 동료 수송함 바넷과 함께 구축함 1 척의 호위를 받으면서 누메아를 떠나 과 달카날로 향했다.  알치바와 바넷은 항공유 , 폭탄 및 탄약같이 인화성이 강한 화물을 싣고 , 마스덴 매트를 가득 실은 바지선을 예인하고 있었다. 11 월 28 일 아침에 알치바와 바넷은 룽가 정박지에 무사히 도착하여 곧 하역작업을 시작했다.
이때 일본잠수함 I - 16 호를 떠난 소형잠수정 제 10 호가 5척의 미국구축함이 펼치는 엄중한 대잠경계망을 뚫고 룽가정박지에 몰래 숨어들어 와서 알치바에게 1 발의 어뢰를 명중시켰다.
순식간에 함체의 앞쪽 절반이 화염에 휩싸이면서 배는 17 도나 기울었다.

( 어뢰에 피격되어 기울어진 채 화재가 발생한 알치바 )

함장 제임스 프리먼 중령은 불타는 함체를 하역장에서 3.2km 떨어진 해안에 좌초시켜 침몰 위험을 제거했다.  그동안 부장 하워드 쇼 소령은 탄약고를 침수시키고 보수반원들을 이끌고 불타는 선체에 이산화탄소를 뿌리면서 화재와 싸웠다. 곧 예인선 보보링크가 소방호스를 끌고 왔고 알치바의 승무원들은 소방호스를 붙잡고 꿋꿋하게 화재와 싸웠다.

( 좌초한 상태에서 예인선 보보링크의 도움을 받으면서 화재와 싸우고 있는 알치바)

12시간을 훌쩍 넘기는 사투 끝에 화재를 거의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싣고있던 기관총 탄약이 폭발했다. 알치바의 승무원들은 충격으로 나동그라졌고 다시 화재가 발생하여 순식간에 번졌다.
화재와 싸우는 필수요원을 제외한 승무원들은 모두 퇴함했다. 이 기회를 이용하고자 일본기들이 29 일 새벽 3시 30 분에 과달카날에 날아와서 알치바에게 폭탄을 투하했으나 명중시키지 못했다.
포기를 모르는 알치바의 승무원들은 다시 불타는 배로 돌아가서 한편으로는 화재와 싸우면서 한편으로는 화물을 양륙했다. 알치바의 화재는 나흘간 지속되었으며 불이 꺼지자 승무원들은 즉시 배를 수리하기 시작했다. 12 월 7 일 , I - 24 호를 출발한 일본의 소형잠수정 제 38 호가 좌초한 알치바에게 다시 2 발의 어뢰를 쏘아서 1 발을 명중시켰다.
좌현 기관실에 명중한 이 어뢰로 3 명이 사망하고 , 6 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 침수와 함께 다시 화재가 발생했다.  그러나 불굴의 알치바 승무원들은 다시 침수를 막고 화재를 진압한 다음 배를 수리하기 시작했다.  알치바가 피격되어 좌초한 지 3 주일이 넘어가자 미해군성에서 알치바를 제적처리하겠다고 통보해 왔으나 함장 프리먼 중령은 격렬하게 반 발하여 일단 연말까지 제적을 유보시켰다.
알치바의 승무원들은 수리에 가속도를 붙여서 1942 년 12 월 27 일 , 피격된 지 1 달만에 알치바는 마침내 툴라기 항까지 항해할 수 있었다.  알치바는 1943 년 1 월 18 일까지 툴라기에서 수리를 받고 에스피리투산토로 가서 5월 6 일까지 다시 수리를 받았다. 1943 년 5월 6 일에 에스피리투산토를 떠난 알치바는 6 월 2 일에 캘리포니아의 마레 섬 해군조선소에 도착하여 완벽한 수리를 받기 시작했 다.

( 마레 섬 조선소에서 수리 중인 알치바. 1943 년 7 월 31 일에 촬영된 사진이다.)

알치바는 완전히 수리를 마치고 8 월 4 일에 마레 섬 조선소를 떠났다. 8 월 13 일에 다시 일선에 복귀한 알치바는 미본토에서 보급품을 싣고 9 월 초에 에스피리투산토로 돌아왔다.  이후 알치바는 1943 년 9 월부터 다시 에스피리투산토와 과달카날 사이에서 보급품을 수송했고 , 11 월에는 부겐빌 상륙작전에도 참가했다.
놀라운 근성과 끈기로 끝내 알치바를 구해낸 함장 프리먼 중령은 해군십자장을 받았고 , 부장 쇼 소령은 은성무공훈장을 받았다.

( 수리를 마치고 마레 섬 조선소를 떠나는 알치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