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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군사이야기

과달카날 전투 (74) - 타사파롱가 해전 (2) /blog.naver.com/imkcs0425/60115509718


74. 타사파롱가 해전 (2) - 미국함대의 선제공격

1942 년 11 월 30 일 저녁에 제 67기동부대가 과달카날 섬에 도달했을 때의 진형은 선두에 구축함 플레처 , 퍼킨스 , 마우리 , 드레이튼 , 중순양 함 미네아폴리스 , 뉴올리언스 , 펜사콜라 , 경순양함 호놀룰루 , 중순양함 노댐턴 , 그리고 후미에 구축함 람슨과 라드너의 순서였다.
과달카날 섬의 동쪽에서 진입하여 북해안을 따라 20 노트의 속력으로 서진하던 제 67기동부대는 30 일 오후 10시 25 분에 340 도로 변침했고 , 38 분에는 280 도로 각 함이 동시에 변침했다가 11 시 8 분에 300 도로 변침하여 단종진을 다시 형성했다.

( 타사파롱가 해전 상황도 Battle of Tassafaronga 30 nov 1942)

그 시각에 일본제 2 수뢰전대도 북쪽으로부터 사보 섬 서쪽을 통하여 남하하고 있었다. 오후 10시 45 분에 동쪽 측면의 감시를 맡은 구축함 다카나미가 함열을 떠나 과달카날 북해안을 따라 동쪽으로 나아갔다.
오후 11 시 13 분 , 다카나미의 견시가 동쪽에서 다가오는 미국구축함 플레처를 발견하고 즉시 보고했다. 다카나미의 견시는 신형 SG 레이더를 장비한 플레처보다 3 분이나 먼저 상대방을 발견하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했다.
이러한 조기발견은 일본군에게 있어 타사파롱가 해전의 대승을 이끌어낸 초석이 되었다. 다카나미의 보고가 들어왔을 때 제 2 수송대의 스즈카제와 가와카제는 기함 나가나미의 호위 하에 도마 암초 부근에 도착하여 400 개의 드럼통을 투하하고 그물에 연결된 끈을 해안에 넘겨주기 위하여 막 단정을 내리던 참이었고 , 제 1 수송대의 구축함 4 척 ( 마키나미 , 구로시오 , 오야시오 , 가게로) 은 목적지인 타사파롱가 해안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다나카 제독은 제 2 수뢰전대에게 즉시 수송작업을 중단하고 미국함대를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제 67기동부대의 선두에 섰던 플레처의 레이더가 다카나미를 포착한 시각은 일본함대보다 3 분 늦은 11 시 16 분이었다. 플레처에 승좌하여 선두의 구축함 4 척을 지휘하던 제 67.4 임무그룹 지휘관 윌리엄 콜 중령은 다카나미를 발견하는 즉시 라이트 소장에게 어뢰발사허가를 요청했다.
킨케이드 제독의 작전계획에 따르면 선두의 구축함은 5,500m 이내에서 적함을 발견하면 별도의 승인없이 즉시 어뢰공격을 가할 권한이 있었으나 , 그 이상 거리일 때에는 일단 보고를 하도록 되어 있었다. 콜 중령의 보고를 받은 라이트 제독은 즉시 공격허가를 내렸어야 했으나 거리가 약간 멀다고 생각하여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라이트 제독이 TBS 를 통하여 콜 중령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결단을 내리지 못하자 콜 중령은 거리는 충분히 가깝다면서 빠른 결단을 촉구했다.
결국 라이트 제독은 4 분 후인 11 시 20 분에 " 앞으로 나아가 어뢰를 발사하라. " (" go ahead and fire torpedos")는 명령을 내렸으나 이미 늦었다. 플레처가 다카나미를 발견하기 3 분 전에 이미 전투기동을 시작한 일본구축함들은 뜻밖에 4 분의 황금같은 여유를 더 얻어서 어뢰발사에 유리한 위치까지 충분히 접근하는데 성공했다.
라이트 제독이 주저하면서 허비한 시간은 불과 4 분에 지나지 않았으나 이곳은 과달카날이었으며 상대방은 미해군에게서 ' 집요한 다나카 ' ( Tenacious Tanka) 라는 별명까지 얻은 일본해군 최고의 전술가 중한 사람인 다나카 제독이었다.
게다가 다나카 제독이 이끄는 제 2 수뢰전대는 태평양전쟁이 일어나기도 전인 1941 년 여름부터 다나카 제독의 지휘 하에서 1 년 이상 탄탄한 팀웍을 단련시켜 온 정예함대였다. 이런 상황에서 4 분의 지연은 치명적이었다. 라이트 제독은 서로 접근하는 함대에서 발사하는 어뢰의 사정거리에 대하여 착각을 했다.
미국어뢰는 보통 6,400m 이내에서 발사해야 명중을 기대할 수 있었으므로 라이트 제독은 플레처가 다카나미와 6,700m 까지 접근한 11 시 20 분에야 비로소 어뢰발사를 허가했다.  그러나 , 서로 접근하는 함대같은 경우 미국어뢰는 최대 8,800m 정도의 거리에서도 충분히 명중을 기대할 수 있었다. 라이트 제독으로부터 허가가 떨어지자마자 콜 중령은 어뢰발사를 명령했다.
1 분 동안 플레처는 다카나미를 겨냥하여 10 발의 어뢰를 2 번에 나누어 발사했으나 모두 빗나갔다. 플레처의 뒤를 따르던 퍼킨스도 거의 동시에 8 발의 어뢰를 발사했는데 이것도 모두 빗나갔다.  3 번째의 마우리는 구형 SC 레이더를 장비하고 있었으므로 일단 어뢰발사를 보류했다.
4 번째의 드레이튼 또한 구형 SC 레이더를 장비하고 있었는데 , 함장 제임스 쿠퍼 소령은 대충 감으로 2 발의 어뢰만을 발사했다.
선두의 구축함들은 어뢰를 발사한 뒤 5 인치 함포를 발사하면서 사전계획에 따라 순양함열의 사격에 걸리적거리지 않도록 북쪽으로 빠져나갔다.  어뢰발사허가를 내린지 1 분 후인 11 시 21 분에 제 67기동부대의 순양함열도 일제히 다카나미를 향하여 사격을 시작했다.
이미 다카나미는 순양함열에 접근하여 순양함열 선두의 기함 미니애폴리스에서의 거리는 8,400m, 2 번째의 중순양함 뉴올리언스에서의 거리는 8,000m 로 뉴올리언스에 더 가깝게 접근해 있었다. 킨케이드 제독이 설정했던 접근한계선인 11,000m 보다 훨씬 가까운 거리였다.
순양함열의 모든 함포들이 일제히 일본함대의 선두에 선 다카나미를 향하여 포격을 퍼부었다.
후방에 따라가던 구축함 람슨과 라드너는 그들의 구형 SC 레이더로 일본함정들을 발견할 수 없었다.  람슨과 라드너는 할수 없이 조명탄을 발사하여 불빛에 비치는 다카나미를 향하여 5 인치 주포로 사격을 가했다.
그리하여 다카나미는 11 척으로 이루어진 제 67기동부대의 전 화력을 혼자서 얻어맞게 되었다.
다카나미에게는 완전히 악몽같은 상황이었으나 , 덕분에 다른 일본구축함들은 미국함대의 방해를 받지않고 절호의 반격기회를 잡을 수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