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타사파롱가 해전 (3) - 일본함대의 반격
1942 년 11 월 30 일 저녁에 제 67기동부대가 과달카날 섬에 도달했을 때의 진형은 선두에 구축함 플레처 , 퍼킨스 , 마우리 , 드레이튼 , 중순양 함 미네아폴리스 , 뉴올리언스 , 펜사콜라 , 경순양함 호놀룰루 , 중순양함 노댐턴 , 그리고 후미에 구축함 람슨과 라드너의 순서였다.
과달카날 섬의 동쪽에서 진입하여 북해안을 따라 20 노트의 속력으로 서진하던 제 67기동부대는 30 일 오후 10시 25 분에 340 도로 변침했고 , 38 분에는 280 도로 각 함이 동시에 변침했다가 11 시 8 분에 300 도로 변침하여 단종진을 다시 형성했다.
( 타사파롱가 해전 상황도 )
제 67기동부대의 순양함들이 포격을 시작한 것과 거의 동시에 다나카 제독도 휘하 구축함들에게 공격명령을 내렸다. 다나카 제독의 명령은 " 접근하여 공격하라." 가 전부였다.
제 2 수뢰전대는 1941 년 여름부터 1 년 이상 다나카 제독 휘하에서 단단한 팀웍을 다지고 훈련을 해왔으며 , 함장들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이럴 경우 함장은 독자적 판단으로 자유롭게 어뢰를 발사할 수 있었으며 , 어뢰를 발사한 이후에는 포격전을 벌이지 말고 최대한 빨리 후퇴하도록 훈련받았다.
일본함대와 달리 미국함대는 야간해전시에도 무염화약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함대의 순양함열이 발사하는 8 인치 주포의 화염은 어뢰발사를 위한 절호의 표적이 되어 주었다.
일본함대에서 가장 먼저 어뢰를 발사한 것은 역시 미국함대에 가장 가까이 접근했던 다카나미였다.
다카나미는 1942 년 11 월 30 일 오후 11 시 21 분에 미국함대의 순양함열이 사격을 시작하고 , 이어서 다나카 제독의 공격명령이 떨어지자 즉시 어뢰를 발사하고는 오른쪽으로 회전하여 이탈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 다카나미는 살아남지 못했다.
일본함대의 선두에 선 다카나미는 미국함대의 레이더에 떠오른 가장 크고 뚜렷한 표적이었기 때문에 , 제 67기동부대가 보유한 8 인치포 37 문과 6 인치 포 10 문 모두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5 인치 포들이 모두 다카나미에게 포격을 가했다.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포격에 대항하여 다카나미도 주포로 반격을 가하면서 이탈하려 했으나 화력이 애당초 상대가 되지 않았다. 결국 다카나미는 약 70 발의 명중탄을 얻어맞고 모든 기능을 상실했다.
그러나 , 다카나미가 제 67기동부대의 화력을 대부분 흡수하는 바람에 제 2 수뢰전대의 다른 구축함들은 거의 피해를 입지 않고 압도적인 화력을 보유한 미국함대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었다.
( 타사파롱가 해전상황도)
다나카 제독의 기함 나가나미는 좌현 함수쪽으로 접근하는 미국어뢰를 발견하고 급히 우회전하여 완전히 1 바퀴 회전한 후에 북동쪽으로 침로를 바꾸었다. 그 과정에서 후방 상부구조물에 몇 발의 포탄을 맞았으나 , 큰 피해는 입지 않았다. 나가나미는 북동쪽으로 항진하면서 11 시 33 분에 어뢰를 발사했다.
나가나미의 뒤를 따라가던 사토 도라지로 대좌의 제 1 수송대 소속 구축함 4 척은 어뢰발사과정에서 다소의 혼란을 겪었다. 마키나미와 가게로는 전투 초반에는 공격보다는 계속 드럼통을 투하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결국 드럼통 투하를 포기한 마키나미와 가게로가 크게 우회전하면서 어뢰공격을 가하려고 하자 미국함대에게 집중공격을 얻어맞고 있던 다카나미가 시야를 가렸다.
결국 마키나미와 가게로는 다카나미를 피하여 다시 미국함대에 접근한 다음 11 시 50 분에야 어뢰공격을 가했다.
가게로의 뒤를 따라가던 오야시오는 11 시 39 분에 미국중순양함 노댐턴을 겨냥하여 8 발의 어뢰를 발사하여 2 발을 명중시켰다. 오야시오의 뒤를 따라가던 구로시오는 11 시 28 분에 2 발의 어뢰를 발사했다. 일본함대의 후미를 따라가던 나가하라 기치로 대좌의 제 2 수송대 소속 구축함 가와카제와 스즈카제는 거의 혼란을 겪지 않고 어뢰를 발사 했다.
다나카 제독의 공격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가와카에와 스즈카제는 날카롭게 좌회전하여 1 바퀴 돌면서 북동쪽 침로를 잡았다. 후미의 스즈카제는 좌회전 도중에 미순양함열을 향하여 8 발의 어뢰를 발사했고 , 앞장선 가와카제는 11 시 30 분에 어뢰 8 발을 발사했다. 제 2 수뢰전대는 총 47 발의 산소어뢰를 발사했다.
이 강력한 어뢰들이 제 67기동부대의 순양함들에게 도달함과 동시에 타사파롱가 해전의 승패가 결정났다.
( 타사파롱가 해전 상황도. 일본구축함들의 기동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