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과달카날 해전 (8) - 미국함대의 선제공격
제 64 기동부대는 1942 년 11 월 14 일 저녁이 되자 과달카날 근해에 도착했다.
23 노트의 속력으로 과달카날 섬의 서해안을 따라 북상한 제 64 기동부대는 14 일 오후 9시 10 분에 사보섬 북서쪽 해상에서 오른쪽으로 변침 하고 , 9시 48 분에 사보 섬 북쪽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변침하여 아이언바텀사운드로 향했다.
( 과달카날 해전 상황도. 두번째 전투 상황)
제 64 기동부대가 아이언바텀사운드로 다가감에 따라 점차 나침반이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전 1 시에 지는 상현달은 낮게 걸려 있었고 , 낮은 구름이 끼어 해상은 어두웠다. 가벼운 미풍이 불 뿐으로 해상은 잔잔했다. 14 일 오후 10 시 30 분에 제 64 기동부대는 초계 중인 미국 어뢰정 3척 사이를 지나서 남하했는데 잠시 후 워싱턴의 통신기가 어뢰정과 과달 카날 사이의 통신을 잡았다.
어뢰정의 정장은 흥분하여 암호를 사용하지 않고 평이한 영어로 떠들고 있었다.
" 커다란 놈 둘이 그쪽으로 가는데 이놈들이 누군지 모르겠다."
(" There go two big ones, but I don't know who they are.")
곧 이어서 어뢰정들은 공격대형을 취하기 시작했다.
어뢰정들이 말하는 상대가 자신들임을 알고 있던 리 제독은 즉시 TBS 로 과달카날을 호출했는데 , 리 제독은 급히 북상하느라고 미처 통신 부호를 부여받지 못한 상태였다.
할수 없이 리 제독은 과달카날의 통신소와 연결되자 자신을 리 제독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과달카날의 통신병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우리는 당신을 인정하지 않는다."
(" We do not recognize you.")
통신병의 반응이야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었지만 마음이 다급했던 리 제독은 소리를 꽥 질렀다.
" 난 Ching Chong China Lee 야 ! 중국인이라구 , 알아들었어 ? 너의 최고 상관에게 Ching Lee 가 누군지 물어봐 ! 너희 똘마니들을 철수시켜 !"
(" This is Ching Chong China Lee! Chinese, catchee? Refer your big boss about Ching Lee. Call off your boys!")
반데그리프트 장군과 친구 사이였던 리 제독은 자신의 해군사관학교 시절 별명인 Ching Lee 를 언급한 것이었다.
다행히 리 제독의 통신이 반데그리프트 장군까지 올라가기 전에 그의 사관학교 시절 별명을 알아본 과달카날의 통신장교가 리 제독의 신원을 확인하고 , 어뢰정들에게 철수명령을 내렸다.
리 제독이 과달카날의 통신소와 어뢰정 철수 문제로 옥신각신하고 있을 때 일본함대는 이미 제 64 기동부대를 발견한 이후였다.
3개의 부대로 나뉘어진 일본함대는 북쪽에서부터 접근하고 있었는데 원격호위부대를 이끌던 하시모토 제독의 기함 센다이의 견시가 14 일 오후 10시 10 분에 최초로 제 64 기동부대를 발견하고
" 사보 섬 북쪽에서 해협 ( 아이언바텀사운드) 으로 동진 중인 적의 중순양함 2척과 구축함 4 척 발견 " 이라고 보고했다.
하시모토 제독은 자신의 함대를 둘로 나누었다.
즉 구축함 아야나미와 우라나미는 사보 섬의 서해안을 돌아 남하하여 아이언바텀사운드로 진입하고 , 경순양함 센다이와 구축함 시키나미는 사보 섬의 동해안을 따라 그대로 남하하여 미국함대를 공격하기로 했다.
센다이의 접촉보고를 받은 곤도 제독은 기무라 제독의 근접호위부대도 공격에 가담시켰다.
구축함 아사구모와 데루즈키는 포격부대에 포함되어 전함 기리시마를 보호했다.
기무라 제독의 기함인 경순양함 나가라와 4 척의 구축함은 아야나미와 우라나미의 뒤를 따라 사보 섬의 남쪽으로부터 아이언바텀사운드에 접근했다.
이로써 일본함대는 사방 16km 해역에서 따로 활동하는 4 개의 무리로 나누어졌다. 일본해군이 좋아하는 분산공격으로서, 방어하는 쪽에서는 공격부대 중 어느 한 부대에게만 전력을 집중시킬 수가 없게 된다. 사보 섬 남쪽에서 진입하던 일본구축함 우라나미도 제 64 기동부대를 발견하고는 " 새로운 형식의 중순양함 2척 " 이라고 보고했다.
제 64 기동부대는 아직 일본함대의 접근을 모르고 있었다.
오후 10시 52 분에 제 64 기동부대는 서쪽으로 변침하여 과달카날 섬의 북해안을 따라 평행하게 서진하기 시작했다. 워싱턴의 레이더가 남하하던 하시모토 제독의 기함 센다이를 16,500m 거리에서 포착한 것은 오후 11 시 정각으로서 일본해군보다 50 분이 나 늦은 시각이었다.
11 시 12 분에 워싱턴의 탄착관측장교인 해리 실리 중위가 탄착관측용 대형망원경으로 센다이의 모습을 확인하자 리 제독은 발사준비명령을 내렸다.
4 분 후인 11 시 16 분 , 필립 모리스 담배 연기를 깊이 들이마셨다가 내뿜은 리 제독이 드디어 발사명령을 내렸다. 즉시 워싱턴 함내에 주포탄의 발사를 예고하는 벨이 두번씩 연속으로 울렸다.
1 분 후인 1942 년 11 월 14 일 오후 11 시 17 분부터 워싱턴의 16 인치 주포들이 센다이를 향하여 불을 뿜기 시작했고 , 이어서 사우스다코타도 센다이를 향하여 16 인치 철갑탄을 날려대기 시작했다. 워싱턴과 사우스다코타의 5 인치 부포들은 구축함 시키나미를 향하여 포문을 열었다.
이로써 과달카날 해전 두번째 전투의 막이 올랐다.
미국함대의 대형함 2척을 중순양함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센다이 함상의 하시모토 제독은 갑자기 중순양함의 화력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너무나 엄청난 위력의 포격을 당하게 되자 기겁했다. 센다이는 즉시 연막을 뿌리면서 허겁지겁 변침하여 도망치기 시작했고 , 시키나미도 그 뒤를 따랐다.
워싱턴과 사우스다코타가 쏘아대는 16 인치 철갑탄의 일제사격이 죽을 힘을 다해 도주하는 센다이와 시키나미의 뒤를 쫓았다. 워싱턴이 발사한 일제사격이 센다이를 협차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으나 아깝게도 명중탄은 내지 못했다.
( 일본해군의 경순양함 센다이.IJN Sendai Class Light Cruisers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http://blog.naver.com/mirejet/1100362757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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