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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군사이야기

과달카날 전투 (66) -과달카날 해전 (7)/blog.naver.com/imkcs0425/60114880865


66. 과달카날 해전 (7) - 리 제독의 북상

전함 워싱턴과 사우스다코타 , 그리고 구축함 4 척으로 이루어진 윌리스 리 소장(Rear Admiral Willis A. Lee, Jr.,)의 제 64 기동부대는 1942 년 11 월 13 일 저녁에 제 16기동부 대에서 분리되어 과달카날을 향하여 북상했다.
제 64 기동부대는 리 제독이 실전에서 처음으로 지휘하는 함대였다.
리 제독은 당시 미해군에서 가장 명석한 제독 중 1 명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또한 위급한 상황에서도 항상 침착함을 유지하며 , 복잡하고 빠르게 변하는 현장에서 항상 신속하고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능력이 뛰어나서 미드웨이 해전의 영웅인 스프루언스 제독을 연상시키는 최상급의 현장지휘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지독한 골초인 그는 한밤중에 함교에 나와서 추리소설을 읽는 등 약간 자유분방한 면도 있었고 , 당직근무 중인 위관급 장교나 부사관 , 또는 수병들에게 다가가서 가볍게 질문을 하거나 따뜻하게 말을 건네는 등 자상한 면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 리 제독은 임무에 있어서는 대단한 완벽주의자로 특히 함포 사격술에 관심이 많았다.
1942 년 8 월에 제 6전대장이 된리 제독은 기함인 전함 워싱턴의 함장 데이비스 대령 및 포술장 후퍼 소령과 함께 밤늦게까지 포격방식에 따른 수학적인 명중확률을 계산하고 서로 토론했으며 다음날 실제로 시험해 보곤 했다.
또한 수시로 다른 부서의 승무원들을 포탑에 집어넣어 사격훈련을 시키는 등 사격술 연마에 남다른 공을 들였다. 그 결과 워싱턴의 승무원들은 사격술에 관한 한 대단한 숙련도를 가지게 되었다. 당시 미해군 교범이 요구하던 16 인치 주포탄의 장전시간은 30 초였으나 , 워싱턴의 승무원들은 14 초 만에 장전했다.
또한 리 제독은 레이더에 관하여 거의 전문가 수준의 깊은 지식과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
리 제독은 태평양전쟁이 벌어지기 직전에 함대훈련 조정관을 지내면서 장차의 해전에서 레이더의 가능성을 꿰뚫어보고 철저하게 연구했 다.  그리하여 리 제독은 레이더 조작병보다 레이더에 대하여 더잘 아는 제독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포술에 대한 깊은 관심과 레이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리 제독을 레이더를 사용한 야간포격전술의 권위자로 만들었다.  이제 리 제독은 뛰어난 현장 지휘관이며 , 레이더 조준사격에 관한 한 미해군 최고의 전문가라는 자신의 평판을 증명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 다.


( 리 제독. Rear Admiral Willis A. Lee, Jr., circa 1942.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http://blog.naver.com/mirejet/110075676444 )

이렇듯 워싱턴은 가공할만한 전력을 지닌 전투함이었으나 , 제 64 기동부대 전체로 보면 결코 그렇지 못했다.
워싱턴은 이전에 사우스다코타와 합동작전을 해본 경험이 전혀 없었다.
구축함 4 척은 모두 다른 구축함 전대 소속으로 단지 제 64 기동부대가 편성되는 순간에 제 16기동부대의 구축함 중에서 연료를 가장 많이 보 유하고 있었다는 이유로 뽑힌 함정들이었다.
따라서 4 척의 구축함을 통제할 전대장조차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또한 전함 워싱턴에게도 한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레이더의 사각문제였다.
워싱턴의 포술장 후퍼 소령은 레이더 안테나의 설치 위치 때문에 SG 레이더에 함의 우측 후방 약 80 도 영역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상관에게 보고했으나 별다른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레이더의 사각영역이 나중에 리 제독에게 큰 고민거리를 안겨주게 된다.


( BB- 56 워싱턴.USS Washington (BB-56)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http://blog.naver.com/mirejet/110059057301 )

제 64 기동부대를 이끌고 과달카날을 향하여 북상하던 리 소장은 니시무라 제독의 순양함부대가 13 일 밤에 헨더슨 비행장을 포격하는 걸막 을수 없게 되자 과달카날 남쪽 160km 전방에서 14 일 저녁까지 머물면서 일본군의 감시망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러나 일본정찰기가 제 64 기동부대를 발견했는데 , 이 정찰기는 함종을 오인하여 제 64 기동부대의 세력을 중순양함 2척과 구축함 4 척으로 보고했다. 이 보고를 받은 일본제 2 함대 샤령관 곤도 제독은 미해군이 다나카 선단을 공격하기 위하여 또다른 순양함 부대를 파견했다고 생각했다. 14 일 저녁 7시 20 분이 되자 제 64 기동부대는 과달카날을 향하여 23 노트의 속력으로 북상하기 시작했다.
구축함 4 척이 월키 , 벤햄 , 프레스톤 , 그윈의 순서로 앞장서고 , 4,500m 후방에서 전함 워싱턴과 사우스다코타의 순서로 따라갔다.  중순양함 아타고에 승좌한 일본제 2 함대 사령관 곤도 노부다케 중장은 북상 중인 아베 함대의 잔여 함정들을 규합하여 14 일 밤에 아이언바 텀사운드에 진입하여 헨더슨 비행장을 포격하고 , 다나카 선단의 살아남은 수송선 4 척에 실린 병력과 장비 , 보급품들을 안전하게 양륙시키 라는 야마모토 제독의 명령을 받았다.
곤도 제독은 14 일 오전 10시에 대기 중이던 온통 자바 환초 근해를 떠나 남하하기 시작했다.
도중에 북상 중이던 기리시마를 비롯한 아베 함대의 잔여 병력을 만난 곤도 중장은 이들을 규합하여 긴급포격부대를 형성한 다음 계속 남 하했다.  14 일 오후에 미국잠수함 트라우트가 남하하는 곤도 함대를 발견하고 어뢰 3 발을 발사했으나 빗나갔다.  트라우트는 이 소식을 평문으로 즉시 보고했는데 일본함대가 이를 감청했다.
곤도 제독은 이제 미국함대가 아이언바텀사운드에서 기다릴 것이라고 예상하고 , 먼저 미국함대를 쓸어버린 다음 헨더슨 비행장을 포격하 기로 했다. 살아남은 수송선 4 척과 호위하는 구축함 11 척으로 이루어진 다나카 선단은 미국함대를 소탕한 직후 병력과 장비 및 보급품들을 상륙시킬 수 있도록 곤도 함대의 바로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이렇게 과달카날을 향하여 남쪽과 북쪽에서 정면충돌 코스로 접근 중이던 양측 함대는 서로 다른 강점들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함대는 두꺼운 장갑을 두르고 , 강력한 16 인치 함포를 9 문씩 장착한 신형전함을 2척이나 갖추고 있어서 전함이라고는 14 인치 함포 8 문 을 가진 기리시마 1 척 뿐인 일본함대에 비하여 대구경 함포의 위력과 수량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또한 전함 워싱턴과 사우스다코타는 신형 SG 레이더를 장비하고 있었으며 , 사령관 리 제독은 레이더에 관한 이해가 아주 깊었다.  반면 일본함대는 전함 1 척 ( 기리시마), 중순양함 2척 ( 아타고 , 다카오), 경순양함 2척 ( 나가라 , 센다이 ), 구축함 9척으로 이루어져 전함 2 척과 구축함 4 척으로 이루어진 미국함대보다 함정의 숫자가 훨씬 많았고 , 야전에 대비하여 아주 잘 훈련된 승무원들과 미국의 레이더와 거의 같 은 능력을 보이는 뛰어난 견시 , 그리고 90 발에 달하는 강력한 산소어뢰를 보유하고 있었다. 곤도 제독은 자신의 함대를 3개 부대로 나누었다.
선두는 경순양함 센다이와 구축함 3척으로 이루어진 하시모토 신타로 소장의 원격호위부대로 포격부대보다 약 5km 정도 앞서 나아갔다.  다음은 경순양함 나가라와 구축함 6척으로 이루어진 기무라 마사토미 소장의 근접호위부대였다. 전함 기리시마와 중순양함 2 척 ( 아타고 , 다카오) 은 후방에서 포격부대를 형성했으며 , 기함 아타고에 승좌한 곤도 제독이 직접 지휘했다.
곤도 제독은 1 척 남은 전함 기리시마가 아베 함대의 히에이처럼 미국함대와의 근접전에 말려드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여 포격부대는 아예 해전에 참가시키지 않을 작정이었다.
하시모토 부대와 기무라 부대가 미국함대를 처리하고 나면 포격부대가 아이언바텀사운드에 진입하여 헨더슨 비행장을 포격하고 , 동시에 다나카 선단은 접안하여 양륙을 실시한다는 것이 곤도 제독의 계획이었다. 문제는 아이언바텀사운드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미국함대가 중순양함 중심의 약체 함대가 아니라 신형전함을 2척이나 보유한 강력한 함대 라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