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과달카날 해전 (4) - 쥬노 격침
1942 년 11 월 13 일 오전 2시에 아베 제독이 후퇴명령을 내렸을때 미군함정들은 이미 큰 피해를 입고 있었거나 마지막 단계에서 큰 피해를 추가로 입었다.
구축함 쿠싱은 북상하는 일본함정들을 공격하다가 반격을 받아 불길에 휩싸였다. 오전 3시 15분에 탄약고가 폭발하자 함장 에드워드 파커 소령은 즉시 퇴함명령을 내렸다. 라피는 이미 아이언바텀사운드에 침몰한 이후였다.
스테렛은 화재가 발생했으나 다행히 침몰은 면했다. 오배넌은 다행히 치명적인 피해는 입지 않고 있었다. 스코트 제독의 기함인 대공경순양함 애틀란타는 샌프란시스코의 오인사격을 포함하여 49 발의 포탄에 명중되고 , 2 발의 어뢰를 맞아서 침수가 계속되고 있었고 , 화재마저 발생했다. 스코트 제독은 이미 전사했고 , 함장 젠킨스 대령과 부장 캠벨 에모리 중령은 중상을 입었다.
그러나 애틀란타의 손상관리반은 불굴의 의지로 침수를 막고 , 화재를 진압하고 , 끝내는 보일러실 중 하나를 가동하는데 성공했다. 캘러헌 제독의 기함인 중순양함 샌프란시코도 상부구조물은 애틀란타나 다름없이 처참하게 파괴되고 캘러헌 제독과 함장 캐신 영 대령 , 부장 크라우터 중령까지 모두 전사했으나 다행히 어뢰를 맞지는 않아서 침수는 그리 심하지 않았고 , 화재만 진압한다면 침몰할 염려는 없었다.
졸지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최선임장교가 된 숀랜드 소령은 함교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장교인 브루스 맥칸들리스 소령에게 조함를 맡긴채 손상관리반을 직접 이끌고 화재와 싸웠다. 조타기능을 상실한 포틀랜드는 계속해서 제자리에서 원을 그리며 돌고 있었으나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경순양함 헬레나의 함장 길버트 후버 대령은 캘러헌 제독 및 스코트 제독과 통신이 되지 않자 자신이 함대의 지휘관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후버 대령이 오전 2시 26 분에 휘하 함정들에게 후퇴를 명함으로써 과달카날 해전의 첫째날 전투가 공식적으로 끝났다. 잠시 후 어뢰에 맞아 기관실이 침수된 경순양함 쥬노가 후퇴대열에 합류했다.
후위 구축함의 선두에 섰던 애런워드는 포탄 9 발을 맞아 전방 기관실이 침수되면서 위기를 맞았으나 , 손상관리반의 기민한 대처로 침몰만은 면했다. 바튼은 이미 침몰했고 , 몬센은 승무원들이 모두 퇴함한 후 불타고 있었다. 함대의 마지막에 섰던 플레처는 아무런 손상을 입지 않고 있었다.
플레처는 북쪽으로 멀어져 가는 일본전함 기리시마를 향하여 마지막으로 5,600m 거리에서 10 발의 어뢰를 발사하고 후퇴했다. 이 어뢰는 모두 빗나갔다. 일본함대의 피해는 미국함대보다 가벼웠으나 전함 히에이의 상태가 문제였다. 히에이는 근거리에서 85 발의 명중탄을 맞았다.
모두 8 인치 이하의 소구경탄이라 히에이의 주장갑을 관통한 포탄은 없었으나 , 히에이의 상부구조물은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대공포들은 전멸했으며 , 주포탑 4 개 중에서 1 개만 사용가능했고 , 함내의 통신도 두절되었다.
샌프란시스코의 8 인치 철갑탄이 함미의 키 부근에 명중하면서 조타기계실이 침수되어 조함능력에 심각한 장애를 일으켰고 , 속력 또한 3 노트 정도로 떨어졌다. 아카즈키는 이미 가라앉았다.
애런워드에게 치명타를 입은 유다치는 사보 섬에서 남동쪽으로 8km 떨어진 해상에서 모든 기능을 상실한 채 불타고 있었다. 오전 3시에 일본구축함 아사구모와 사미다레가 유다치의 생존자들을 구하여 철수했다. 나머지 일본함정들의 피해는 비교적 가벼웠다.
전함 기리시마는 앞장선 히에이가 미국함대의 화력을 대부분 흡수해 준 덕분에 8 인치 포탄 1 발만을 맞았다. 구축함 이카주치는 전방 포탑에 피해를 입었고 , 무라사메는 전방 보일러실이 파괴되었으며 , 아마츠카제는 37 발의 명중탄을 맞았으나 함 자체에 대한 치명적인 피해는 면했다.
11 월 13 일 아침이 되자 아이언바텀사운드에는 8척의 함정들이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었다. 5척은 미국함정이었고 , 3척은 일본함정이었다.
(1942 년 11 월 13 일 아침에 아이언바텀사운드의 상황이다.
히에이 옆의 유키카제는 피해를 입지 않았다.)
날이 밝자 여전히 원을 그리며 돌고 있던 포틀랜드는 사격이 가능한 전방의 8 인치 주포 6 문을 사용하여 11,400m 떨어진 해상에서 정지한채 불타고 있던 유다치를 향해 사격을 실시했다.
포틀랜드는 총 6 번의 일제사격을 통하여 36 발의 8 인치 포탄을 발사했다. 이 일제사격으로 탄약고에 명중탄을 맞은 유다치가 폭발을 일으키며 침몰하자 해안에서 지켜보던 미군들과 해상에 떠있던 조난된 미군 승무원들이 모두 환성을 질렀다.
북쪽에서는 조타기능의 손상으로 제대로 방향을 못잡고 비틀거리면서 3 노트의 속력으로 느릿느릿 움직이던 히에이가 발사가능한 14 인치주포 2 문으로 21,000m 떨어진 곳에서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던 애런워드를 향하여 4 번에 걸쳐 일제사격을 가해왔다.
3 번째 일제사격은 협차에 성공했으나 , 끝내 명중탄은 나오지 않았다. 엔터프라이즈에서 날아온 항공기들이 오전 10시 20 분부터 히에이를 공격하는 동안 예인선이 애런워드를 툴라기 항으로 끌고 갔다. 치명적인 피해를 입은 애틀란타의 승무원들은 초인적인 노력을 기울인 끝에 화재를 진압하고 침수를 중단시키는데 성공했다.
겨우 침몰을 모면한 애틀란타는 13 일 오후 2시에 예인선 보보링크에 이끌려 룽가 정박지에 닻을 내렸다. 그러나 , 과달카날에는 함정수리 시설이 전무했으며 , 심하게 기울어진 애틀란타는 도저히 에스피리투산토까지의 항해를 견딜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게다가 과달카날에 접근하고 있는 일본해군의 순양함들이 오늘 밤에 공격해 올 것이 분명했다.
결국 애틀란타의 승무원들은 13 일 저녁 8시 15분에 폭약을 사용하여 과달카날 북쪽 해상 4.8km 지점에 애틀란타를 자침시켰다. 불타고 있던 몬센과 쿠싱은 13 일 오후에 폭발을 일으키면서 침몰했다. 조타 기능을 상실하여 제자리에서 원을 그리고 있던 중순양함 포틀랜드는 예인선 보보링크의 도움을 받아 2 노트의 속력으로 항해하여 14 일 새벽 1 시 8 분에 겨우 툴라기 항에 도착하여 닻을 내렸다.
중순양함 샌프란시스코 , 경순양함 헬레나와 쥬노 , 구축함 오배넌 , 스테렛 , 플레처는 13 일 새벽에 과달카날을 떠나 18 노트의 속력으로 누메아로 향했다. 13 일 오전 10 시 50 분 , 일본잠수함 I - 26 호가 이 상처입은 함정들을 발견했다. 구축함들을 앞세운 순양함들은 헬레나 , 샌프란시스코 , 쥬노의 순서대로 약 900m 간격을 유지하면서 항진하고 있었다.
I - 26 호는 가장 큰 표적인 중앙의 샌프란시스코를 노리고 6 발의 어뢰를 발사했으나 , 조준을 잘못하여 그 중의 1 발이 후미를 따라가던 쥬노에 명중했다. 이미 어젯밤의 해전으로 큰 피해를 입은데다가 추가로 강력한 일본어뢰에 의하여 좌현 함교 바로 아래 중앙부를 강타당한 쥬노는 그대로 침몰하고 말았다.
마침 부근을 지나던 B- 17 정찰기가 이 광경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함대를 이끌던 선임장교인 헬레나의 함장 길버트 후버 대령은 B- 17 중폭격기에게 발광신호로 쥬노의 구조를 부탁하고는 그대로 현장을 떠났다. 그러나 , 이 구조요청은 남태평양해역군 사령부에 전달되지 않았다.
그 결과 700 명의 쥬노 승무원들 중 구조된 사람은 불과 17 명이었다. 쥬노 침몰 당시 약 100 여명의 승무원들이 급속히 침몰하는 함정에서 빠져나오는데 성공했으나 구조가 늦어짐에 따라 대부분이 해상에서 기아와 탈수 , 그리고 상어의 습격으로 사망했다.
이들 희생자 중에서는 함장 리만 스웬슨 대령과 설리반 가의 5 형제 모두도 포함되어 있었다.
쥬노 격침 이후 미군은 형제들이 같은 함정이나 부대에 근무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했다.
헐지 제독은 683 명의 사망자를 기록한 쥬노 사태의 책임을 물어 당시 현장지휘관이었던 헬레나의 함장 길버트 후버 대령을 직위해제했다.
(설리반 5 형제 )
이로써 태평양전쟁을 통틀어서 최악의 혼전이었던 과달카날 해전의 첫번째 전투가 끝났다.
양측함대의 함정손실상황은 거의 비슷했다. 미국함대가 경순양함 2척과 구축함 4 척을 상실한데 비하여 일본함대는 구축함 2척을 상실했고 , 전함 1 척이 큰 피해를 입어서 결국 상실에 이르게 되었다. 인명피해는 미국함대가 훨씬 컸다.
일본함대가 제 11 전대 참모장 스즈키 마사가네 대좌를 포함하여 총 552 명의 전사자를 기록한 반면 , 미국함대는 쥬노에서 683 명 , 애틀란타에서 170 명 , 바턴에서 165 명 , 몬센에서 145 명등 제독 2 명을 포함하여 총 1,439 명의 전사자를 기록했다. 이는 미해군 사상 최악의 참패라던 사보 섬 해전의 전사자 1,023 명을 훌쩍 뛰어넘은 커다란 희생이었다.
캘러헌 제독은 전투를 지휘하면서 몇 번의 실수를 저질렀다. 그러나 어쩄든 미국함대는 열세한 세력으로 전함을 2척이나 보유한 막강한 일본함대에 정면으로 도전하여 헨더슨 비행장과 귀중한 항공기들을 지켜내는데 성공했다. 이들의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해군의 막대한 희생 덕분에 10 월 중순의 악몽을 모면한 칵터스 항공대는 과달카날을 향해 오던 11 척의 일본수송선들을 사정없이 격침하여 일본군의 계획을 완전히 좌절시켰다.
캘러헌 제독과 스코트 제독이 수많은 해군장병들과 함께 11 월 13 일 새벽에 목숨을 바쳐 일본함대 하나를 막아내었기 때문에 뒤를 이은 리 제독의 함대가 나머지 하나를 막아내면서 과달카날 해전을 , 더 나아가 과달카날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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