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제 182 연대의 상륙
남태평양해역군 사령관 헐지 제독이 과달카날에 대한 증원을 서두르는 것과 동시에 연합함대 사령관 야마모토 제독도 과달카날의 일본군을 증강하는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일본군은 1942 년 11 월 2 일에서 10 일 사이에 연 65 회의 구축함 수송과 2 회의 순양함 수송을 통하여 과달카날에 병력과 보급품들을 양륙했다. 이 과정에서 미군과 일본군은 서로 자신은 증원하고 , 상대방의 증원은 차단하려고 노력하면서 일련의 충돌을 일으켰다.
1942 년 11 월 7 일 아침에 칵터스 항공대의 항공기들이 도쿄급행 임무를 마치고 철수하는 일본구축함 다카나미와 나가나미를 공격하여 대파했다.
같은 날 오전 9시 29 분에는 일본잠수함 I - 20 호가 룽가 정박지에 잠입하여 하역 작업 중이던 1,800 톤급의 미군 수송함 마자바에 어뢰 1 발을 명중시켰다. 마침 90 톤의 탄약을 싣고 과달카날에 도착하여 마자바 주변에서 양륙 중이던 구축함 랜즈다운이 즉시 양륙을 중단하고 I - 20 호를 공격했으나 격침하는데 실패했다.
마자바는 가까스로 침몰을 면하고 , 해안에 좌초했는데 나중에 인양되어 수리를 받고 재취역했다. 다음날인 8 일 새벽에는 툴라기에 기지를 둔 어뢰정들이 양륙을 마치고 철수하던 일본구축함 모치즈키에 어뢰 1 발을 명중시켰으나 격침하지 못했으며 , 일본구축함들의 반격으로 어뢰정 2 척이 피해를 입었다. 11 월 10 일에는 제 1 차대전형 구축함을 개조한 기뢰부설함 수타드가 산크리스토발 섬 근해에서 일본잠수함 I - 172 호를 격침했다.
과달카날의 상황이 날로 엄중해지자 헐지 제독은 11 월 8 일에 직접 과달카날로 날아갔다.
다음날인 11 월 9 일에 과달카날 현지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헐지 제독은 시종일관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였다.
한 기자가 부하들에게 승리하기 위한 비결을 말해 달라고 하자 헐지 제독은 단호하게 말했다.
" 일본놈들을 죽이고 , 죽이고 , 또 죽여라 !!" (" Kill Japs, kill Japs, kill more Japs!!")
이 표현은 곧 미국 전역으로 퍼져 나가서 헐지 제독을 더욱 유명하게 만들었고 , 과달카날의 미군들은 이 말을 너무 좋아하여 툴라기 항의 하역장 바닥에 60cm 크기로 이 말을 적어 놓았다.
과달카날을 떠나기 전에 헐지 제독은 반데그리프트 장군에게 12 일에 아메리칼 사단의 두번째 연대인 제 182 연대가 도착할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 과달카날 시찰 도중 해병제 1 사단의 작전참모인 제럴드 토머스 대령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헐지 제독 )
9 일 오후에 과달카날 시찰을 마치고 누메아로 돌아온 헐지 제독은 참모장 브라우닝 대령으로부터 일본군의 급박한 움직임에 대하여 보고를 들었다. 그는 이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걸어야 할 때가 왔다는 걸 깨달았고 , 망설임 없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걸었다.
헐지 제독은 우선 누메아에서 수리 중이던 엔터프라이즈와 사우스다코타에게 11 월 11 일까지 수리를 마치고 출항하라고 명령했다. 엔터프라이즈의 전방 엘리베이터는 비행갑판에 고정된 채 사용할 수 없었으며 , 누메아 항을 빠져나오는 순간까지 수리함 벌컨이 옆에 붙어서 막바지 수리를 했다.
엔터프라이즈 중심의 제 16 기동부대는 신형전함 2 척 ( 워싱턴, 사우스다코타 ), 중순양함 1 척 ( 펜사콜라 ), 구축함 6척으로 이루어져 태평양전쟁 개전 이래 미국항공모함 기동부대로서는 가장 강력한 수상함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제 16 기동부대는 즉시 과달카날 방면으로 북상했으나 과달카날의 상황은 더욱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터너 제독은 제 182 연대와 항공요원들 및 해병대 보충병들을 보급품과 함께 과달카날에 수송하기 위하여 2 개의 선단을 구성했다.
첫번째 선단은 화물수송함 (AKA) 3 척 ( 베텔규스 , 리브라 , 자일린 ) 으로 이루어져 노먼 스코트 소장이 지휘하는 대공 경순양함 1 척 ( 애틀란타 ) 및 구축함 4 척 ( 애런워드 , 플레처 , 라드너 , 맥칼라 ) 의 호위를 받았다. 이들은 제 1 해병항공공병대대 , 제 1 해병항공단의 지상요원들 , 해병대 보충병과 식량 , 탄약 및 군수품들을 싣고 11 월 9 일에 에스피리투산토를 출항하여 11 일에 과달카날에 무사히 도착했다.
두번째 선단은 수송함 4 척 ( 맥콜리 , 크레센트시티 , 프레지던트 애덤스 , 프레지던트 잭슨 ) 으로 이루어져 대니얼 캘러헌 소장이 지휘하는 중순양함 1 척 ( 포틀랜드 ) 과 구축함 3척 ( 바튼 , 몬센 , 오배넌 ) 의 호위를 받았다. 기함 맥콜리에 승좌한 터너 제독이 직접 지휘하는 두번째 선단은 제 182 연대의 제 1 대대 및 제 2 대대 , 제 4 해병보충 대대 및 해군지역수비대 병력을 싣고 11 월 8 일에 누메아를 출항하여 11 월 12 일에 과달카날에 도착했다. 스코트 소장의 첫번째 선단은 11 월 10 일에 산크리스토발 근해에서 일본의 대형잠수함에서 발진한 수상정찰기에 발각되었다.
일본정찰기는 대공포화의 사정거리 바로 바깥에서 두 시간이나 선단 주위를 맴돌다가 사라졌다.
일본군의 공습을 예상한 스코트 선단은 11 일 아침에 룽가 정박지에 도달하자마자 우선 병력들부터 신속하게 상륙시켰다.
잠시 후 과달카날 북서쪽에 진출한 일본항공모함 준요로부터 12 대의 99 식 함상폭격기가 공습을 가해왔다. 칵터스 항공대의 요격과 대공포화의 할용으로 1 발의 폭탄도 명중하지 않았지만 , 수송함 자일린이 지근탄에 의하여 함체가 터지고 침수가 발생했다.
자일린은 싣고 온 병력의 전부와 보급품의 절반을 양륙하고 나서 오후에 구축함 라드너의 호위를 받아 에스피리투산토로 떠났다. 정오 경에는 라바울을 출발한 27 대의 1 식 육상공격기들이 90mm 대공포가 미치지 않는 고공에서 헨더슨 비행장 을 폭격했으나 피해는 미미했다.
터너 소장의 두번째 선단 역시 일본군 정찰기에 발견되었다.
수송선단이 12 일 오전 5 시 40 분에 룽가 정박지에 닻을 내리자마자 터너 소장은 우선 병력들부터 최대한 빨리 상륙하라고 명령했고 , 이 명령에 따라 병사들은 하루 치의 탄약과 이틀 치의 전투식량만 휴대한 채 서둘러 수송함을 빠져 나갔다.
일본군의 150mm 곡사포가 상륙하는 병사들을 노리고 몇 발의 포격을 가해왔으나 , 곧 미군의 155mm 롱톰 평사포 및 순양함과 구축함들에게서 집중적인 대응사격을 얻어맞고 잠잠해졌다.
일단 일본군의 150mm 곡사포를 침묵시킨 순양함들과 구축함들 , 그리고 155mm 롱톰 평사포들은 코컴보나 부근에 집중적인 포격을 가하여 일본군의 활동을 위축시켰다.
오후 1 시 17 분 부근에 있던 해안정찰대원으로부터 20 대가 넘는 1 식 육상공격기들이 제로기의 호위 하에 과달카날을 향하고 있다는 경보가 들어왔다. 라바울을 출발한 25 대의 1 식 육상공격기들과 호위하는 8 대의 제로기로 이루어진 공습부대였다.
터너 제독은 즉시 보급품의 양륙을 중단시키고 , 어제 도착한 2 척의 수송함을 포함한 6 척의 수송함들을 룽가 정박 지에서 출항시켜 호위함정들이 대공원형진을 친 가운데 3 척씩 2 열로 정렬시켰다. 오후 2 시 5 분에 1 식 육상공격기들이 과달카날에 도달했다.
어뢰를 장비한 이들 1 식 육상공격기들은 2 개로 갈라져서 선단의 남과 북에서 동시에 뇌격을 가하려고 했다. 남쪽으로 향한 일본기들은 대부분 헨더슨 비행장 부근의 대공포와 긴급발진한 와일드캣의 공격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주요 위협은 북쪽 그룹이었다.
터너 제독은 일부러 수송함의 옆구리를 훤히 보이게 하여 북쪽 그룹의 일본기들을 끌어들였다.
일본기들이 미리 준비된 치열한 대공포화에 시달리면서 초저공으로 최종공격비행에 돌입하자 터너 제독은 변침명령을 내렸다. 수송함들은 일제히 그 자리에서 90 도로 변침하여 달려오는 어뢰와 평행하게 늘어섰고 , 어뢰는 단 1 발도 명중하지 않았다. 수송함들과 호위함정들의 대공포는 8 분에 걸친 교전과정에서 8 대의 일본기들을 격추했다. 남쪽으로 돌입했던 일본기들은 와일드캣에 의하여 9 대가 격추되었고 , 일부가 어뢰발사에 성공했으나 수송함들은 다시 변침을 실시하여 어뢰를 모두 피했다.
잠시 후 4 대의 99 식 함상폭격기와 9 대의 1 식 육상공격기가 고공에서 헨더슨 비행장을 폭격하여 활주로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었다. 일본기의 공습 과정에서 적의 어뢰에 맞은 배는 1 척도 없었으나 , 구축함 뷰캐넌의 상부 구조물이 낮은 각도로 사격하는 아군의 대공포화에 맞아서 피해를 입었다.
또한 피격된 1 식육상공격기 1 대가 중순양함 샌프란시스코에 달려들어 후방 지휘소에 충돌했다. 이 충돌로 사격통제 레이더와 대공포의 사격지시기가 고장났고 , 약 50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부상자들은 수송함 프레지던트잭슨으로 옮겨졌으나 , 이들 중 샌프란시스코의 부장인 크라우터 중령은 후송을 거부하고 샌프란시스코에 남았다가 이날 밤 해전에서 전사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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