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과달카날 해전 ( 2) - 갑작스런 조우
1942 년 11 월 13 일 새벽 1 시 24 분 , 미국함대의 경순양함 헬레나가 레이더로 일본함대를 포착하고 즉시 보고했다. " 방위 310 도와 312 도 , 거리 25,000m 와 29,000m" 일본함대의 전함들과 앞장선 구축함들이었다. 3 분후 캘러헌 제독은 서쪽으로 향하던 함대의 침로를 오른쪽으로 꺽어 310 도 방향으로 바꾸었다.
어뢰공격과 포격전시 유리한 상대위치 확보를 위하여 접근하는 일본함대에 T 자형으로 기동하는 대신 상대가 알아차리기 전에 최대한 접근하려는 의도였다. 보유한 함포의 최대 구경이 8 인치에 불과한 미국함대로서는 일본전함의 두꺼운 장갑판을 뚫기 위해서는 최대한 접근할 필요가 있었다. 오전 1 시 30 분 , 헬레나는 다시 일본함대가 13,300m 거리까지 접근했으며 적 함대의 속력은 23 노트라고 보고했다. 캘러헌 제독은 정북으로 변침하면서 속력을 20 노트로 올리라고 명령했다.
양 함대의 접근속력은 이제 40 노트를 넘었으며 , 선두의 구축함열에서는 거리지시계의 바늘이 12,000m 에서 다시 11,000m 로 빠르게 내려가는 것을 보면서 왜 어뢰발사 명령이나 사격명령이 없는지 궁금해했다.
( 과달카날 해전 상황도. 순양함 전투의 접근 단계 )
이때 기함 샌프란시스코 함상에서는 캘러헌 제독이 혼란에 빠져 있었다. 캘러헌 제독은 자신의 기함 샌프란시스코가 장비한 구형 SC 레이더가 아무런 정보를 못 보여주는 동안 헬레나가 사격에 필요한 적의 방위 , 거리 및 속력에 관한 최신정보를 알려주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으나 , 이미 샌프란시스코의 TBS(Talk Between Ship) 는각 함정들이 보내오는 엇갈리고 혼란스러운 통신으로 포화상태였다.
빠르게 접근하고 있던 일본함대는 미함대의 존재를 아직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으나 , 완전히 무방비 상태는 아니었다. 비행장 포격시간이 다가옴에 따라 주포를 비롯하여 모든 무장과 탐조등에는 인원이 전투배치되어 있었다. 미국함대의 선두인 구축함 쿠싱에 승좌하고 있던 제 10 구축함 전대장인 스톡스 중령은 오전 1 시 41 분에 전방 불과 2,700m 지점에서 일본의 구축함 2척이 좌현 전방에서 우현 쪽으로 자신의 침로를 가로지르는 것을 발견했다.
쿠싱은 충돌을 피하고 , 어뢰를 발사할 수 있도록 즉시 우회전하는 동시에 적 구축함 발견 사실을 기함 샌프란시스코에 보고했다. 선두의 쿠싱이 갑자기 우회전하자 뒤를 따르던 구축함들과 대공경순양함 애틀란타까지 줄줄이 쿠싱을 따라 우회전했다.
( 과달카날 해전 상황도. 미국함대의 선두에 있던 쿠싱이 일본구축함 유다치와 하루사메를 발견하는 순간 양측 함대의 위치 )
쿠싱의 전방을 가로질렀던 일본구축함은 유다치와 하루사메였다. 쿠싱보다 1 분 늦은 1 시 42 분에 유다치도 미국함대를 발견하고 즉시 보고했다. 당황한 아베 제독은 즉시 주포 승강기에 가득 들어차 있던 3식탄들을 철갑탄으로 교체하라고 명령했다. 전함 히에이와 기리시마에서는 부랴부랴 주포 승강기의 주포탄들을 교체하는 소동이 벌어졌고 , 그동안 일본함대의 강력한 14 인치 주포는 침묵을 지킬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 혼란에 빠진 캘러헌 제독이 즉각 공격명령을 내리지 않고 8 분 간이나 시간을 끌면서 히에이와 기리시마는 주포에 이미 장전된 3 식탄을 제외한 나머지 포탄들을 모두 철갑탄으로 무사히 교체했다. 쿠싱의 갑작스런 변침과 제 10전대장 스톡스 중령의 보고는 캘러헌 제독의 혼란을 한층 부채질했다. 샌프란시스코의 TBS 는 여러 함장들이 동시에 떠들어대는 소리로 가득 찼고 , 누구도 정확한 현재 상황을 알지 못했다.
스톡스 중령은 어뢰발사 허가를 요청하여 허락을 받았으나 그떄는 이미 일본구축함들은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려 보이지 않았다. 1 시 45분에 캘러헌 제독은 발사준비명령을 내렸다. 그동안 일본함대에서는 견시들이 눈에 불을 켜고 유다치가 보고한 미국함대를 찾았다. 일본군 견시들의 눈에 구축함 바로 뒤를 따라가는 경순양함 애틀란타의 함교가 유난히 두드러져 보였다.
오전 1 시 50 분 , 일본함정들이 일제히 애틀란타에 탐조등을 비추었다. 일본함정들의 탐조등이 자신을 비추는 순간 , 애틀란타의 포술장은 1,400m 까지 다가선 일본구축함 아카즈키를 향해 사격명령을 내렸다. 거리는 이미 측정해 둔 상태였다. 곧 애틀란타의 5 인치 주포들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이로써 과달카날 전투의 운명을 결정지을 3 일에 걸친 과달카날 해전 중 첫번째 전투의 막이 올랐다. 아카즈키는 애틀란타의 5 인치 포탄을 몇발 얻어맞았으나 , 곧 주포로 반격을 가하면서 어뢰를 발사했다. 아카즈키의 포탄 1 발은 애틀란타의 함교에 명중했다. 애틀란타가 사격을 개시하는 순간 미국함대의 기함 샌프란시스코에서 마침내 사격명령이 떨어졌다.
" 홀수 함정은 오른쪽으로 , 짝수 함정은 왼쪽으로 사격을 개시하라. " (" Odd ships commence fire to starboard, even ships to port.")
이 명령이야말로 캘러헌 제독의 현실감각이 얼나마 떨어져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로서 , 명령을 받은 함장들은 자신들이 배정받은 방향의 반대쪽에 적함이 있을 경우 명령을 따를 수가 없었다. 이러한 명령은 오히려 미국함대의 혼란만 가중시켰을 뿐이었다.
( 과달카날 해전 상황도. 전투 초기 양측 함대의 기동상황)
애틀란타가 전투에 참가한 시간은 짧았다. 아카즈키의 함포에 함교가 명중된지 얼마 후에 아카즈키가 발사한 어뢰 2 발이 전방 기관실에 명중했다. 전방 기관실이 침수되고 화재가 발생한 애틀랜타는 순식간에 모든 기능을 상실하고 옆으로 기울어진 채 표류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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