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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이야기

한국 신종교 개벽사상의 수행적 성격-동학⋅천도교, 증산교, 원불교를 중심으로-/정향옥.원광대

1. 머리말

2. ‘개벽’ 개념의 연원과 의미

3. 동학⋅천도교의 다시개벽과 수행적

성격

4. 증산교의 해원상생개벽과 수행적 성격

5. 원불교의 정신개벽과 수행적 성격

6. 맺음말

국문요약

본고는 ‘개벽’이라는 용어가 한반도에 어떻게 생성⋅유입⋅정착되었으며 사상으로

발전되었는지 알아보고, 그 과정 속에 형성된 개벽사상의 특징을 담아낸 수행적 성

격을 조명하였다.

개벽은 ‘천개지벽(天開地闢)’의 준말로 중국 문헌에서 첫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사마천의 사기를 시작으로 후한서 등에 초기 기록이 나타나며, 한반도에 들어와

서는 일연의 삼국유사에서 처음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개벽사상 연구에 있어 함께

논의되어야하는 용어 중 하나가 ‘선천’과 ‘후천’이다. 한국 신종교 창교자들은 ‘후천

개벽’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으나 후래 제자와 연구자들 사이에 이 단어가 정착

되었음을 밝히고, 이러한 과정 속에 형성된 개벽사상에 있어 개벽의 개념을 정리하

였다.

앞서 밝힌 개벽의 개념을 토대로 대표적 신종교인 동학⋅천도교, 증산교, 원불교

개벽사상의 수행적 성격을 살펴보았다. 개벽사상은 세상의 근본적 변혁을 추구한 민

중을 대변했던 사상이기에 운동성, 현세성, 반구조성 등을 기반으로 한 강력한 혁세

적 성격이 주된 특징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초기 개벽 사상가들의 주장, 즉 개벽

사상이 담고 있는 원형적 성격은 ‘실천적 수행’에 깊이 뿌리 두고 있다. 개벽사상은

신종교계의 공통사상이며 종교의 기본은 수행에 있다는 맥락에서도 이를 이해할 수

있다. 근본적 변혁은 수행을 통한 자아의 확립이 선재된다는 것이다.

개벽사상이 살아있는 사상으로 현 시대에도 유효할 수 있는 접점 가운데 하나가

수행적 측면이라 보인다. 치유의 시대, 융⋅복합의 시대에 개벽사상의 수행적 성격

은 각자도생(各自圖生)을 넘어 유무상자(有無相資), 상생상화(相生相和), 자리이타

(自利利他)의 가치를 선양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주제어: 한국 신종교, 개벽사상, 수행, 동학⋅천도교, 증산교, 원불교

1. 머리말

개벽사상은 근대 한국 신종교에 나타나는 공통사상이다. 근대 한국 신

종교 운동, 민중들의 열망을 분출하게 한 중심에 개벽사상이 있다. 개벽

사상을 이해하는데 있어 ‘개벽’이라는 어휘의 유래와 한반도로의 유입과

그리고 어떻게 토착화 되었는지의 과정을 살피는 일은 기본 과제라 할

수 있다. 선행연구에서 이미 밝힌 바 있으나 이 글에서 조금 더 구체적

으로 알아보고 개념 형성과 이해에 도움을 얻고자 한다. 사상이 담고 있

는 개념의 파악은 사상의 성격을 규명하는데도 중심 과제가 될 수 있다.

종교사상이 갖는 기본적인 성격 중에 하나는 바로 영적인 순수성(靈性,

궁극적 진리의 추구)이다. 종교는 이 영성의 함양을 위하여 신앙과 수행

을 중심에 두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종교는 종교다워질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개벽사상을 중심 사상으로 두고 있는 대표적 신종교인 동학⋅

천도교, 증산교,1) 원불교의 수행적 성격을 살펴보았다.

한국 신종교에 나타나는 수행의 목적은 개인의 심신수양에 그치지 않

1) 이 글에서 ‘증산교’는 증산 계열 신종교를 통칭한다.

고 이를 통하여 자신이 속한 사회를 포함하여 전 우주적 작용에 융화하

고 함께 진화하자는 데에 있다. 개벽세상은 대시적(待時的)일 수 없으며

단일 존재의 메시아(Messiah)를 통해 이루어 질 수도 없고, ‘함께’라는 가

치의 공공성(公共性)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이 개벽사상을 주요 사상으로

하는 신종교들의 기본입장이라 할 수 있다.

단지 개벽사상이 배경으로 한 시대에 의해 안게 된 운동성, 현세성, 반

구조성 등으로 개벽사상을 강력한 혁세적 성격으로 규정하고 이해시키는

일은 사상을 한 면만 보이게 하는 큰 오류를 범하는 작업이 될 수도 있

다. 개벽사상은 현실변혁의 사상이지만 그 변혁은 반드시 강력한 저항을

통해서만 실현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개벽’ 자체의 의

미를 토대로 현재까지 개벽사상을 운동성을 중심으로 밝힌 것과는 대조

적 관점에서 종교성(영성) 또는 생활 속 실천성(수행)을 중심으로 논의하

였다.

한국 신종교의 개벽운동은 전환을 위한 정신운동이 그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수운 최제우(水雲 崔濟愚, 1824∼1864, 이하 수운)로 비롯된 동

학의 ‘다시 개벽’과 증산(甑山 姜一淳, 1871∼1909, 이하 증산)의 ‘해원상

생개벽’ 그리고 원불교 교조인 소태산 박중빈(少太山 朴重彬, 1891∼1943,

이하 소태산)의 ‘정신개벽’은 궁극적 존재 또는 진리와의 대화와 깨달음

이라는 종교적 체험이 선재하였고 그들은 이를 바탕으로 문명전환을 통

찰하였으며 종교운동 즉 정신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정신운동은 시대가

갖는 상황인 사회적 역동성으로 종교사상과 사회운동의 성격을 모두 갖

추고 있지만, 지금까지의 연구가 후자의 성격에 비중을 두었다면, 100여

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는 종교 본연이 가진 영성을 중심으로 한 수행적

측면을 심도있게 조명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간혹 구시대적 유물 속에서 현 시대에 적용 가능한 지혜들을

찾아내곤 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물질문명의 무분

별한 발달로 인해 자신을 포함하여 사회가 병들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

그에 따라 치유(healing)의 붐(boom)이 일고 있으며 방송매체는 물론하고

셀 수도 없는 치료기법이 난무하고 있다. 1세기도 훨씬 전부터 우리 토

양과 우리 민족에 맞는 치유법으로 한반도를 열광케 한 가르침이 있으니

개벽세상을 도모한 이 수행법들을 새롭게 돌아보고 작금의 현실에 적용

해 보는 작업은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먼저 개벽사상에서 ‘개벽’의 개념을 알아보고, 근대 한국 신종교 개벽

사상의 수행적 성격을 동학⋅천도교, 증산교, 원불교 순으로 살펴보겠다.

2. ‘개벽’ 개념의 연원과 의미

한국 신종교 개벽사상의 이해를 위해 개벽의 개념에 대해 먼저 살펴보

겠다.2) 개벽은 ‘천개지벽(天開地闢)’의 준말로 사전에서는 ‘세상이 처음으

로 생겨 열림, 세상이 어지럽게 뒤집힘,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것을 비유

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한다.3) ‘개’와 ‘벽’의 개별 의미는 다음과

같다. 장삼식의 대한한사전(大漢韓辭典)4)에서 ‘개(開)’는 많은 용례에서

‘문이 열리다’라는 일반적 의미와 ‘고치다’라는 의미로 설명하고 있다. 반

면, ‘벽(闢)’은 용례를 다섯 가지만 밝혔으며 ‘열다’라는 일반적 의미보다

는 ‘부수다,’ ‘갈다’라는 의미로 설명한다. 여기서 확연히 차이를 보이는

2) 정향옥, 「원불교 개벽사상의 역사적 전개와 특징」 중 ‘Ⅱ장 원불교 개벽사상의 연원’

을 토대로 정리하였다. 박사학위 논문 (원광대학교 일반대학원, 2016), pp.19-24.

3)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stdweb2.korean.go.kr (검색일 2016. 2. 25.)

사료에 남은 ‘개벽’의 일반적 쓰임: 「(전략)予觀貴人之居多矣。其飾林園。必以怪石之

盤窪癭瘤者。累之爲山。效衡霍之奇。信妙矣。然未若造物者之所曾開闢。嶙峋奇秀天

然之狀也。彼亦非不識假之不似眞也(후략)」(이규보,東國李相國集 24권, 1251), 「(전략)

開闢以來未有如此之盛者。繇貞而元。此其時矣。陛下春秋鼎盛。以大有爲之運。而又

欲師皇帝王之道。此千載一機會也。伏望陛下執此之道。堅如金石。以淸出治之原。以

廣祖宗之業。天下幸甚。臣幸蒙聖問之及。而以此爲終篇献。惟陛下裁擇。臣謹對」(이

곡, 稼亭先生文集 13권, 1662), 「昔聞西南恒雨漏。今來移向東天注。蕭條我屋小街

頭。四面怒號奔洪流。還疑身著孔聖桴。杳杳直向東海浮。應知此水古無有。一番澒濛

開闢後。莫是人間浩刦周。滄海桑田互換否。瞠然遠望混一白(후략)」 (권구, 屛谷先生

文集 2, 1797) 이 외에도 편년자료와 많은 문집 등에 ‘開闢’이 등장한다. 특히 영조(조

선 21대 왕)가 ‘개벽’을 ‘세상의 창조’ 또는 ‘크게 변한 세상’의 의미로 여러 번 사용하

였음을 실록을 통해 알 수 있다(http://db.itkc.or.kr (검색일 2016. 2. 25.) 밑줄-필자: 식별

의 용이성을 위함, 이하 동일).

4) 장삼식, 대한한사전 (서울: 박문출판사, 1975).

것은 ‘開’는 문과 창이 열리는 소통의 의미로 곧 하늘의 열림과 짝지어

사용되는 문자이고, ‘闢’은 부수거나 뚫고 나오는 의미로 땅과 연관되어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두 정의를 모아 보면 개벽은 완전히 새로

운 열림과 과거의 것을 변화시켜 새로 연다는 두 가지 의미를 모두 담고

있다고 정리할 수 있다.

중국 문헌에서 개벽이 처음 기록된 곳은 전한시대 사마천에 의해 쓰인

사기(史記)이다.5) 사기 가운데 「삼황기(三皇記)」는 천황(天皇), 지황

(地皇), 인황(人皇)이라는 삼황에 대해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신화적

인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자개벽지우획린(自開闢至于獲麟)”이

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이후 후한서(後漢書) 「응소전(應劭傳)」의 “역신

동탁, 탕복왕실, 전헌분료, 미유자유 개벽이래 막혹자혹(逆臣董卓, 蕩覆王

室, 典憲焚燎, 靡有子遺 開闢以來 莫或玆酷)”이라는 문구에서 개벽이라는

말이 쓰이고 있다. 이를 해석하면 “역신 동탁이 왕실을 엎어버리고 전헌

을 불태우고, 남겨진 백성이 하나도 없으니, 개벽이래로 이처럼 처참함이

없었다”라는 내용으로, 여기서 개벽은 세상의 시작을 말한다.

개벽이란 말이 기록된 가장 오래된 한국의 문헌은 삼국유사(三國遺

事) (1281)이다. 일연(一然, 1206-1289)은 고려후기의 승려로 삼국의 사건

들을 기록으로 남겼다. 이 저서 전체를 통해 개벽이라는 단어가 총 6회

등장하는데 한 번은 2권 가락국기(駕洛國記)에서 ‘개벽지후(開闢之後)’라

하여 ‘천지가 열린 후’라는 의미로 쓰였고 나머지는 모두 3권 중 탑상(塔

像) 제4 중 ‘가섭불연좌석(迦葉佛宴坐石)’의 내용에서 발견된다. 해석을

살펴보겠다.

본조(本朝)의 명사(名士)인 오세문(吳世文)이 역대가(歷代歌)를 지

었는데 여기에 의하면, 대금(大金)의 정우(貞祐) 7년 기묘(己卯; 1219)

에서 거슬러 따져서 4만 9,600여 세에 이르면 반고(盤古)가 개벽한

무인(戊寅)이 된다고 했다. 또 연희궁(延禧宮) 녹사(錄事) 김희령(金希

寧)이 지은 대일역법(大一歷(曆)法)에 의하면, 개벽한 상원(上元) 갑자

5) 김홍철, 한국 신종교사상의 연구 (서울: 집문당, 1989), p.102.

156|신종교연구 제34집 / 연구논문

(甲子)로부터 원풍(元豊) 갑자(甲子; 1084)에 이르기까지 193만 7,641

세라고 했다. 또 찬고도(纂古圖)에서는, 개벽한 때로부터 획린(獲麟;

前 477)에 이르기까지가 276만 세라고 했다. 여러 경문(經文)에 의하

면 또 가섭불 때부터 지금까지가 연좌석의 나이가 된다고 하였으니,

오히려 겁초(劫初)의 개벽한 때에 비하면 어린애 나이가 될 정도다.

이들 삼가(三家, 앞의 세 책)의 말들이 오히려 이 어린 돌의 나이에

도 미치지 못하니 그들은 개벽의 설(說)에 있어서는 몹시 소홀했던

것이다.6)

위의 글에 나오는 개벽은 연좌석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었고,

내용은 신라 월성(月城) 동쪽, 용궁(龍宮) 남쪽에 위치한 ‘가섭불연좌석’

이라는 돌의 오랜 유래에 대한 찬탄이다. 연좌석은 천지개벽으로도 가늠

할 수 없는 아주 오래된 유물로, 여기서 천지개벽은 세상의 창조를 이르

는 단어로 쓰이고 있다. 이를 통해 개벽은 삼국유사 저술을 전후하여

한반도에서는 천지의 시초라는 의미, 대단히 오랜 시간을 비유하여 이를

때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유추할 수 있다. 오늘날에도 개벽은 사전상 의

미와 같은 ‘세상의 시초, 크게 새로운 세상의 열림’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개벽사상 연구에서 함께 다루어야할 용어는 ‘선천(先天)’과 ‘후천(後

天)’이다. 수운, 증산, 소태산이 직접 후천개벽을 언급하였다는 기록은 없

다. 다만 수운은 ‘상원갑,’ ‘하원갑’이라는 용어로, 일부 김항(一夫 金恒,

1826∼1898, 이하 일부)은 주역에 등장하는 선⋅후천개념을 정역에서

다시 밝힘으로 선후천의 의미가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증산은 선천만

사용하였고, 소태산은 ‘대명천지’ 또는 ‘새 천지’와 같은 표현 외에 다른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창교자들의 후래 제자들과 연구자들이 이러한 의

미를 수용하고 어휘를 변용하여 개창자들의 가르침을 담은 경전이나 해

6) 하정룡, 교감역주 삼국유사 (서울: ㈜시공사, 2006), p.371. 필자가 윤문하였다. 원문:

“有本朝名士吳世文 作歷代歌 從大金貞祐七年己卯 逆數至四萬九千六百餘歲 爲盤古開

闢戊寅 又延禧宮錄事金希寧所撰大一歷法 自開闢上元甲子 至元豊甲子 一百九十三萬七

千六百四十一歲 又纂古圖云 開闢至獲麟 二百七十六萬歲 按諸經 且以迦葉佛時至于今

爲此石之壽 尙距於劫初開闢時爲兒子矣 三家之說 尙不及玆兒石之年 其於開闢之說 疎

之遠矣”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db.history.go.kr (검색일 2016. 2. 25.)

석서, 연구서 등에서 그들의 개벽사상을 후천개벽사상이라 정리하였다.

그러므로 ‘후천개벽’이라는 용어는 제자들과 근대 한국 개벽사상을 연

구하는 학자들이 편의상 시기를 구분하기 위하여 사용했다고 판단된다.

개벽이 사상으로 전개된 것은 근대 한국에서 유일하기 때문에 중국적 시

간관을 주체로 하는 ‘후천’이라는 용어를 붙여 사용할 필요는 없다고 사

료된다. 더욱이 한국 신종교의 개벽사상은 하늘과 인간이 평등하다는데

주안점을 두었고 오히려 주체가 하늘 곧 타자이기 보다는 인간, 즉 각자

자신에 있다고 보았다.

개벽은 ‘세상의 열림’이라는 의미를 가진 고래로부터 사용되어온 용어

임을 보았다. 일반적으로 개벽은 세상의 물리적 창조를 의미하였는데, 일

반 용어에 사상이라는 옷을 입힌 근대 한국 개벽사상의 주창자들은 어떠

한 통찰에서 ‘다시 개벽’과 ‘정신개벽’ 등을 주장하였는지 알아보겠다. 이

는 기존의 개벽과는 확연히 다른, 근본적 전환에 대한 필요성과 현실 구

제의 새로운 방향을 보여주고 있다.

수운의 개벽이 하나의 독자적 사상 형태로 나타난 것은 용담유사(龍

潭遺詞)에서다. 수운이 직접 집필한 용담유사는 8편의 가사로 구성된

한글 가사집이다. 수운은 이 한글 가사집을 통하여 지식층은 물론하고

현실적으로 가장 고통 받는 계층인 민중에게 그의 개벽의 꿈을 전달하고

자 하였을 것이다. 수운 개벽사상의 단초가 되는 용담유사의 구절들에

서 사용된 개벽은 그 의미를 두 가지로 파악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

벽’이라는 세상의 첫 열림을 나타내는 일반 개념과, 다른 하나는 ‘다시’

라는 부사를 더한 새로운 세상의 열림을 뜻하는 창조적 개념이다. 즉,

‘벽’은 태초(太初), 과거의 개벽이라면 ‘다시벽’은 현재로부터 시작되

는 미래의 개벽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수운의 개벽에 대한 독창적 사고를 뒷받침해주는 부분들이 용

담유사에 등장하는데 ‘상⋅하원갑(上⋅下元甲)’이라는 표현으로 이전의

개벽과 앞으로의 개벽을 구분하여 서술하였다. 하지만 수운의 개벽사상

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원환사관을 비롯한 운도론적 개벽관은 시간만을

기다리는 ‘대시적(待時的)’ 성격보다는 개벽성취의 한 요소적 또는 수단

적 성격이라 볼 수 있다. 여러 가지 개벽을 이루어야할 상황이 전개된

가운데 ‘때 또한 온 것’이라 하겠다. 시간을 기다리기 보다는 시간을 운

용하는 주체적 입장을 표명했다고 볼 수 있다.

증산은 신명계와 인간계의 조화를 목적으로 도통이후 9년간 천지공사

를 행하였고 이에 대해 “천지를 개벽함이다”7)라고 하였다. 천지공사에

대해서는 정역의 논리를 수용하여 시운(時運)의 타당성을 주장하기도

하였으며, 이 시운을 증산교에서는 ‘가을 개벽’으로 설명하고 있다. 개벽

은 가을바람 앞에 있는 것으로 가을을 당하여 모든 것이 다시 차서를 얻

고 결말을 맺는다 하였다. 그 내용으로 천지도수와 신명의 조화를 말하

였는데 도수의 정리는 우주운행의 원리를 정리한다는 것이고, 신명도 원

(寃)을 가진 것으로 보아 그것을 풀어야 한다고 하였다.8) 증산은 개벽의

시간적 기준을 제시하며 신명계의 해원을 개벽세상의 주요한 과업으로

생각한 것이다.

증산은 적절한 시운을 당하여 개벽, 곧 천지공사에 대한 필요성을 강

조하고 그 내용으로는 해원(解寃)과 상생(相生)과 조화(調和)를 통한 지상

선경(地上仙境) 건설을 목적하였다. 이를 위해 주로 행한 것이 치병(治

病), 제의(祭儀) 등의 신비한 기행과 이적이었다. 동학의 역동적 변혁운동

을 목도한 증산은 동학의 무력항쟁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했고 현실세

계에 대한 무력적 항거보다는, 민중들에게 닥친 현실문제의 해결과 보이

지 않는 신명세계의 바로잡음을 우선 과제로 여겼고, 이에 대한 대응책

으로 초현실적인 또는 정신세계 차원의 운동을 주로 벌였다.

증산은 수운은 ‘동세(動世)’를 자신은 ‘정세(靖世)’를 맡았다고 하였으

며, 김지하는 이 표현에 개벽을 첨가하여 ‘동세개벽’과 ‘정세개벽’으로 수

운과 증산의 개벽운동을 설명하였다.9) 증산의 운동은 절대적으로 민(民)

중심의 종교적 활동을 펼침으로서 소외받는 계층에 대한 남다른 의식도

7) 이상호 편, 甑山天師公事記 (서울: 상생사, 1926), p.8.

8) 김형기, 후천개벽사상 연구 (파주: 한울아카데미, 2004), p.137.

9) 이상호⋅이정립 엮음, 大巡典經 (서울: 상생사, 1929), 제9장 개벽과 선경 13절; 김지

하, 사상기행 1 (서울: 실천문학사, 1999), pp.214-215.

작용하였다.10)

소태산은 앞서 전개된 수운과 증산의 개벽운동을 수용하고 “물질이 개

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선언을 시작으로 저축조합을 설시하고 제방

사업으로 농토를 마련하는 등 현실의 양태가 탈바꿈하여 생활에 직접적

으로 도움이 되는 전환운동을 벌이는 것으로 조직을 이끌기 시작하였다.

소태산은 이 조직을 1924년 ‘불법연구회(佛法硏究會, 1948년 ‘圓佛敎’로

개명)’11)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공개하였다. 전환은 그가 깨달은 일원상

진리에 바탕을 둔 ‘정신개벽’을 이루는 것이었다. 소태산은 국가적 위기

와 문명의 전환이 진행되던 시대에 정신의 세력을 확장하여, 개인⋅사회⋅

국가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과학문명과의 조화를 이룰 것을 역설하였다.

전술한 바와 같이 수운, 증산, 소태산은 자기 자신은 물론하고 사회 구

성원인 개인의 문제와 사회의 문제가 분리되어 있지 않음에 기인하여

‘다시 개벽,’ ‘해원상생개벽,’ ‘정신개벽’운동을 전개하였다. 개벽사상의

주창자들은 이 세상이 처음 시작된 거대한 물리적 열림의 의미를 지닌

‘개벽’을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의 거대한 열림을 담을 수 있는 사상으로

새롭게 탄생시켰다. 이를 학계에서는 인간 문명의 새로운 전환 즉, ‘인문

(人文)개벽’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정신문명 패러다임의 근본적 전환

을 의미한다 할 수 있다. 개벽사상의 근본적 의미를 인식하며 정신문명

전환의 바탕이 되는 수행적 성격을 살펴보겠다.

3. 동학⋅천도교의 다시개벽과 수행적 성격

‘개벽’은 ‘천지의 창조’ 또는 ‘대단히 큰 변화’를 의미하는 일반명사로

쓰였으나 수운에 이르러 하나의 ‘사상(思想)’으로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

10) 大巡典經, 제8장 법언 48절 참조.

11) 불법연구회는 원불교의 근거지를 익산으로 옮긴 1924년 창립총회를 통하여 세상에 공

개한 교단의 공식명칭이었다. ‘원불교’라는 현재의 교명으로 개칭(1948년)되기 전까지

교명으로 쓰였다.

수운은 천지의 창조와 같은 엄청나고 거대한 새로운 세상이 다시 열릴

것을 예언하였고 천지라는 큰 틀에 있는 모든 것이 변혁되어야함을 주장

하였다. 이는 다른 말로 물리적 개벽에 대한 인간(인문)의 개벽으로 인간

정신의 사고 변혁에 따른 인간이 처한 모든 사회, 세상의 혁명을 말한다

할 수 있겠다. 수운은 이를 ‘다시 개벽’이라 하였으며 이러한 새로운 세

상이어야 서세의 동점도 전정(田政)⋅군정(軍政)⋅환곡(還穀)의 문란도 없

어지며 천권(天權)이 곧 인권인 세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수운은 ‘다시 개벽’을 ‘시천주(侍天主)’신앙과 ‘수심정기(守心正氣)’수련

으로 실천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신앙과 수행은 보국안민(輔國安民)과 광

제창생(廣濟蒼生)이 그 목적이었으며, 유교의 성경(誠敬)에 신(信)을 더하

여 실천적 수도에 매진할 것을 주장하였다. ‘동학농민혁명’이라는 강력한

개혁적 민중⋅민족 운동에 동학의 종교적 측면이 가려져 일상 속의 종교

운동은 대체로 외면되었다고 사료된다. 동학의 신자를 ‘도인(道人)’이라고

칭하는 부분도 수행을 강조하는 조직임을 시사하는 바라 할 수 있다. 그

러므로 수운의 개벽운동은 사회개혁적 성격을 분명히 드러내면서 수운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하는 실생활에서의 신앙⋅수행 또한 매우 중요한 개

벽운동으로 봐야할 것이다. 동학⋅천도교의 주요 수행인 21자주문 수련

과 심고(心告), 그리고 성경신(誠敬信) 실천수행에 대해 알아보겠다.

먼저 21자주문 수련은 수운이 한울님으로부터 받은 21자로 된 주문을

염송하는 것을 말한다. 이 주문은 한울님을 위하는 글로서 동학사상의 근

본 핵심과 강령을 담아 낸 것이다. 주문수련은 염주를 쥐고 21자를 외우

는 것인데 염주의 종류에는 21주와 105주가 있다.12) 주문은 다음과 같다.

降靈呪文 : 至氣今至 願爲大降, 本呪文 : 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

위와 같이 강령주문과 본주문이 나뉘어 있지만 수련을 할 때는 21자를

연속하여 염송한다. 동경대전(東經大全) 「논학문(論學文)」에 주문에 대

12) 정혜정, 동학의 심성론과 마음공부 (서울: 모시는사람들, 2012), p.233.

한 수운의 해설이 있다.

至는 지극함이요, 至氣는 虛靈이 蒼蒼하여 관여하지 않는 일이 없

고 命하지 않는 일이 없다.

형상이 있으나 형용하기 어렵고 들리기는 하나 보기 어렵다. 이것

은 또한 渾元한 한 기운이다.

今至는 入道하여 그 氣를 접함을 아는 것이고

願爲는 청하여 비는 것을 뜻하고 大降은 기화를 원하는 것이다.

侍는 안에 神靈이 있고 밖에 氣化가 있어 온 세상 사람이 각각 알

아서 옮기지 않는 것이고

主는 그 존숭함을 칭하여 부모와 같이 섬긴다는 것이고

造化는 無爲而化하는 것이고 定은 그 덕에 합하고 그 마음을 정하

는 것이다.

永世는 사람의 평생이고 不忘은 생각을 지킨다는 의미이고

萬事는 많음을 말하고 知는 그 도를 알아 그 앎을 지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덕을 밝히고 밝혀 念念不忘한즉 지극히 至氣와 化하

고 聖人에 이르게 된다.13)

도인들은 이 주문을 염송함으로써 한울님의 기운에 감화를 받고 하나

가 되어 궁극적으로는 성인에 이르기를 목적한다. 주문수련의 방법에 대

해서 천도교회월보에서는 “주문을 외울 때는 분명히 외울 것이요 생각

하여도 항상 생각할 것이며 한울 근본을 알고자 하는 생각을 잠시라도

잊으면 한울을 저버리는 것이요 내가 나를 잊어버린 것”이라 하며 “주문

을 외면서 단정히 앉아 있으면 자연히 마음이 화하고 기운이 화하여 감

화가 있게 되고 만물화생의 근본이 된다”14)고 수련의 방식과 효과를 설

명하였다.

동학⋅천도교의 주문수련은 기존 종교의 주문수련의 종교적 목적과 크

13) “至者極焉之爲至氣者虛靈蒼蒼無事不涉無事不命 然而如形而難狀如聞而難見是亦渾元之

一氣也 今至者於斯入道知其氣接者也 願爲者請祝之意也大降者氣化之願也 侍者內有神

靈外有氣化一世之人各知不移者也 主者稱其尊而與父母同事者也 造化者無爲而化也 定

者合其德定其心也 永世者人之平生也 不忘者存想之意也 萬事者數之多也 知者知其道而

受其知也 故明明其德念念不忘則至化至氣至於至聖曰“(東經大全, 「論學文」).

14) 정혜정, 앞의 책, p.234.

게 다르지 않으며 이로써 얻은 종교체험을 통해 심신이 골라져 모두를

한울님과 같이 모시는 마음을 갖추고 그러한 행이 발현되어 만물을 화생

(和生)하게 하는 기본적 수행 방법이다. 주문 수련의 방법 또한 간이하여

누구나 어렵지 않게 종교적 체험을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심고에 대해 살펴보겠다. ‘心告’는 한울님께 마음으로 고하는

수행 의식이다. 주문수련과 마찬가지로 때를 정하여하기도 하지만 생활

속에서 매 순간 한 문장 정도로 매우 짧게 고하는 방법이다. 매 순간 마

음을 고하는 것은 마음을 흩어지지 않게 하는 방편도 되며 그렇게 함으

로써 마음을 지킬 수 있는(守心) 것이다. 특히, 해월 최시형(海月 崔時亨,

1827∼1898, 동학 2대 교수, 이하 해월)은 식고(食告)를 지도하여 먹기 전

에 고하는 심고를 주장하고 그 속에서 도를 이루는 이치를 깨달을 것을

설파하였다. 여기서 한 가지 더 다루고자하는 하는 것은 축문(祝文)이다.

축문 또한 동경대전에 실려 있으며, 이를 한울님에게 올리는 의식은

수행자로서 다짐하고 한울님의 응감(應感)을 기원하는 의미가 있다.

조선에 태어나 살며 인륜에 처하여 천지의 덮어주고 실어주는 은

혜를 느끼며 일월이 비춰주는 덕을 입었으나, 아직 진리에 돌아가는

길을 깨닫지 못하고 오래도록 고해에 잠겨 마음을 많이 잃어버렸으

니, 이제 성현의 세상에 도를 깨달아 선생께 종전의 과오를 참회하고

일체의 선을 따르기 원하니, 영원히 모셔 잊지 아니하고 도를 마음공

부(心學{)에 두어 수련에 거의 이르렀노니, 이제 길조(吉朝)의 때를

맞아 도량을 깨끗이 하고 삼가 청작서수(淸酌庶需)로써 받들어 청하

고 바라오니 흠향(歆饗)하옵소서.15)

수운은 천사문답(天師問答) 이전과 이후를 구분하여 천지자연을 비롯

한 상제 즉 한울님의 은혜를 느끼고 알아 본격적으로 마음공부에 근거한

수련을 시행하겠음을 다짐하고 기원 올렸다. 선행연구들에서 동학의 축

문에 대한 연구는 많지 않으나 이 글에서 다시 살피는 까닭은 도에 입문

15) “生居朝鮮忝處人倫 叩感天地盖載之恩 荷蒙日月照臨之德 未曉歸眞之路 久沉苦海 心多

忘失 今玆聖世 道覺先生 懺悔從前之過 願隨一切之善 永侍不忘 道有心學 幾至修煉 今

以吉朝良辰 淨潔道場 謹以淸酌 庶需 奉請尙 饗”(東經大全, 「祝文」).

하는 마음가짐과 수행의 기점이 마음공부(心學)에 있음을 명확히 한 ‘종교

적 기원문’의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축문이 동학⋅

천도교의 제1경전인 동경대전에 실림으로써 수운의 종교적 가르침이

첫째, 전통 신앙의 형태를 따랐다는 것과 둘째, 마음공부에 초점 맞춰있

다는 것과 셋째, 제자들에게 길이 전하고자 한 내용 중에 하나로 담겼음

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성경신의 생활 속 수행을 살펴보겠다. 수운은 유가의 성경

에 신을 더하며, 그 셋 가운데 신에 가장 큰 비중을 두었다.16) 믿음이 기

반 되어야 참된 정성과 공경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17) 수운의 시천주사

상에서도 주장하는 바와 같이 성경신의 대상은 한울님을 비롯한 만물의

내재적 한울님이다. 즉, 불가의 불성과 같이 만물에 한울님이 갊아 있음

을 믿고 그에 공경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라는 수행방법이다. 수행자들은

성경신을 닦음으로써 도를 이루고 덕을 세우며(道成德立) 무위이화(無爲

而化)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18)

해월은 성경신 중 경을 경천(敬天)⋅경인(敬人)⋅경물(敬物)의 삼경사상

으로 구체화 시켰다. 그는 한울과 사람은 물론 자연까지 공경하여 자신

을 비우고 천지공심에 이르러야 경(敬)했다 할 수 있다고 밝혔다.19) 그

중에서도 경인으로 인간의 평등과 존엄의 위상을 회복시켜 향아설위(向

我設位)를 설파하며 의례를 포함한 모든 생활 속에서 가치의 전환을 구

현시키는데 주력하였다.

이처럼 동학의 수행적 성격은 하늘의 이치를 인간과 결부시켜 성인을

이룸과 동시에 자신을 포함한 만물이 하늘 그 자체임을 자각하게 하고,

수행에 대해서도 어렵고 복잡한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행할 수 있는

간명하고 필수적인 형태로 새롭게 제시하였다. 도덕과 윤리(仁義禮智)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만물을 위하는 도덕과 윤리의 틀을 새롭게

16) 東經大全, 「座箴」⋅「修德文」.

17) 김춘성, 「동학⋅천도교 수련과 생명사상 연구」, 박사학위 논문 (한양대학교 대학원,

2009), p.77.

18) 설영익, 「동학 수행론 연구」, 박사학위 논문 (원광대학교 일반대학원, 2010), p.111.

19) 정혜정, 앞의 책, p.218.

구상하고 제시하였다. 이 새로움은 누천년 한반도에 면면히 이어온 종교

적 전통을 배격하지 않고 그 맥을 이으며 시대와 민중이 요구하는 방식

으로 전환하여 수행적 측면으로도 선도적(先導的)으로 개벽운동을 전개하

였다.

4. 증산교의 해원상생개벽과 수행적 성격

증산은 동학의 가르침을 접했으나 자신의 고민에 대한 답은 도통(道

通)을 통하여 스스로 찾았다. 증산은 세상의 혼란에 대해 상극(相克)이

편만하였다고 보고 이를 선천(先天)이라 일렀으며 상극을 상생(相生)으로

서로 해원(解寃)해야 함을 강조하고 이러한 시대를 ‘개벽된 시대’라 하였

다. 개벽세상은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통하여 이룰 수 있다 하면서 신비

한 기행과 이적으로 민중들을 치병(治病)하고 제의(祭儀)를 실시하였다.

증산은 동학의 가담과 일부와의 만남 등을 통하여 개벽에 대한 신념이

더욱 확고해졌을 가능성이 있다.

증산교 개벽사상의 수행적 성격을 보기에 앞서 증산교 수행의 원형을

담고 있는 증산의 천지공사를 먼저 살펴보겠다. 전술한 바와 같이 천지

공사는 증산이 천지를 개벽하는 작업이었고 그가 화천(化天, 죽음)하기까

지 9년간 행해졌다. 천지공사에 대해 증산교에서는 증산이 인간과 하늘

의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 이 동방에 강림하여 신축년(辛丑年) 7월 5일 성

도(成道)함으로써 한 손에 천지인 삼계의 모든 권세를 장악하고 하늘과

땅을 뜯어 고치고 앞으로 전개될 선경의 운수를 열어 재앙에 빠진 인간

과 신명을 널리 건져서 이 땅에 세계인류가 한 집안이 되고 행복이 넘치

는 낙원을 건설한다는 것을 그 요지로 밝히고 있다. 이정립은 증산이 천

지공사를 행한 이념을 해원, 보은, 상생, 조화의 네 가지로 나누어 설명

하였다. 천지공사의 구체적 작업은 천지도수(天地度數)를 뜯어 고치며 신

도(神道)를 바로 잡아 만고의 원(冤)을 풀고 상생의 도로서 선경을 열고

조화정부(造化政府)를 세워 끝없는 다스림과 무언의 가르침으로 백성을

화하며 세상을 고치는 것이라 하였다.20)

천지공사의 이념과 같이 증산교의 수행은 자신과 진리와의 합일(道通)

을 위시하여 해원, 상생, 조화 등이 목적이 되어 태을주(太乙呪) 수행과

치성(致誠) 그리고 계파에 따라 기도와 경전강독 등이 이뤄지고 있다.21)

증산이 구제(救濟)의 방법 중 하나를 치병(治病)에 둔 것과 같이 증산교

수행의 결과 중에도 치병이 있음을 밝히며 먼저 태을주 수행에 대해 알

아보겠다.

태을주에 대해 증산은 “많이 읽으라”하였음을 대순전경(大巡典經)을

통해 알 수 있다. 또한 수운의 시천주 주문에 대해 “이미 행세(行世) 되

었다”하며 태을주를 읽어준다고 같은 경전에 전하고 있다. 태을주는 다

음과 같다.

吽哆吽哆 太乙天上元君 吽哩哆耶都來 吽哩喊哩 娑婆啊

훔치훔치 태을천상원군 훔리치야도래 훔리함리 사바하

태을주는 증산이 정한 주문이며 수행방법은 그 의미를 해석하기보다

참선을 하는 자세로 단전호흡을 겸한 연속적 암송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동학의 21자주문과 같이 각자의 상황에 따라 수련할 수 있다. 효과는 수

승화강(水昇火降)의 원리에 의한 기의 순환으로 몸의 기혈을 원활하게 유

통시킨다. 태을주 수행을 하다보면 종교체험(신비체험)이 따르기도 하며

이 경험은 치유(치병)의 영역으로 확대된다.22) 태을주 수련은 곧 자신을

정화시키고 세상을 정화시켜 지상선경인 개벽세계를 이루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치성은 전통 신앙 방식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며 종교 일반에

20) 홍범초, 「증산의 천지공사에 나타난 미륵사상」, 한국사상사학 6 (1994), pp.155-157

참조.

21) 증산계파에 따른 수행 내용과 방법에 차이가 있으므로 공통된 요소만 밝히도록 하겠다.

22) 박상언, 「치유의 신을 찾는 몸짓-증산도 치유의례의 사례연구」, 종교문화연구 3

(2001), pp.263-271 참조.

서 행해지는 기도의 다른 말로 이해할 수 있고 계파에 따라 집단적으로

행해지는 기도를 치성이라 부르기도 한다. 특히, 절후와 명절치성에 비중

을 두는데 이것은 선천의 도수가 절후와 같이 지나고 후천선경의 도수가

도래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증산과 각 교단의 도통을 이어받

은 창시자의 탄신기념일과 화천기념일에 치성을 행하기도 한다.23)

그 외에 기복, 치병, 천도 등의 축원치성, 시험합격, 승급, 사업번창 등

특별한 은혜를 입었을 때 사은치성, 개인이 과를 범한데 대한 사죄치성

등이 있다. 계파마다 차이는 있지만 치성은 대체로 증산을 모신 영대(靈

臺)가 있는 도장에서 이루어진다. 치성일은 음력을 사용하며 시각은 축시

(丑時)정각에 거행한다. 단, 절후치성의 경우에는 절후가 드는 시각에 맞

추어 행한다. 치성의식에는 반드시 신의 흠향(歆饗)을 중심으로 하며 주

문을 봉송하는 기도의식이 따른다.24) 치성 또한 천지공사의 구제적

(salvation) 양식을 이어받아 개벽세상을 준비하는 수행으로 행해지고 있

다. 개인의 기복의식을 포함하고 있으나 증산이 개개인에게 치병을 행한

것과 같이 전통신앙의 기복적 요소를 수용하고 계승한 이 요소는 증산교

의 수행 취지와 분리되는 문제는 아니라고 사료된다.

증산교의 경전강독 수행은 대순진리회를 통해 살펴보겠다. 대순진리회

는 증산이 남긴 언행을 정리한 전경(典經)을 소의경전으로 두고 있다.

그러므로 회원들은 매일 전경을 마음에 새기는 훈련을 하며, 이 훈련

을 통해 생활의 지침을 삼고, 존재의 중심을 삼으며, 행동의 원천을 삼고

있다. 종국에 가서는 진리에 대한 통찰을 가져다주는 근원이 되기도 한

다.25) 전경은 「행록」, 「공사」, 「교운」, 「교법」, 「권지」, 「제생」, 「예시」의

총7개의 목차에 17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순진리회에서는 또한 대순진리를 바르게 인식하고 실천하여 생활화할

수 있도록 설립자인 우당의 대순진리에 대한 해석적 논의를 정리한 대

23) 박광수, 한국 신종교의 사상과 종교문화 (서울:집문당, 2012), p.314.

24) 윤승용, 「신종교 의례의 현황과 특성」, 한국종교 23 (1998), p.417.

25) 김영주, 「대순진리회 마음공부 프로그램의 현황과 과제」, 종교교육학연구 43 (2014),

p.163 참조.

순지침을 편찬하여 수행에 도움을 얻도록 하고 있다. 전경을 통한 대

순진리의 바른 이해와 대순지침을 통한 대순진리회의 지향점의 제시는

경전에 담긴 진리를 내재화, 의식화, 인격화, 생활화하는 과정으로서 진

리의 이해를 통한 심신의 치유행위가 된다.26) 이와 같이 경전의 강독은

증산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겨 독단적 신앙⋅수행에 흐르는 것을 방지하

고 자신의 구원과 해원, 상생, 조화로 이뤄진 선경의 세계를 건립하는 수

행방법이다.

5. 원불교의 정신개벽과 수행적 성격

소태산 또한 내외적으로 패러다임의 근본적 전환의 시대를 맞았음을

직시하고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구호를 내걸고 각자의

실천적 신앙⋅수행으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고자 하였다. 특히 소태산

은 저축조합과 방언공사 등으로 삶의 터전 마련을 시작으로, ‘일원상(一

圓相)’을 신앙하고 수행하여 정신개벽을 이룰 것을 주장하였다. 또한 개

벽세상을 당시 사회의 이상향이었던 “미륵불의 출세와 용화회상의 건설”

에 비유하며 그 현상에 대해서는 “처처불상(處處弗像) 사사불공(事事佛

供)의 대의가 널리 행하여지는 것”이라고 하였고, 그 시기에 대해서는

“차차되어지고 있다”하였으며, 그 첫 주인에 대해서는 “하나하나 먼저 깨

치는 사람”27)이라고 설명하였다. 소태산은 모두가 부처이고 모든 일이

불공인 시대가 올 것이라 하며, 모두가 개벽의 주인공이 되기를 꿈꾸었

던 것이다.

이러한 개벽세상을 이루는 수행의 방법으로 소태산은 일원상 진리를

표본으로 하는 삼학(三學)을 제시하였다. 삼학은 정신수양(精神修養, 定),

26) 김영주, 「신종교 운동에 나타난 치유와 통합-대순진리회를 중심으로-」, 2016년도 제36

회 원불교사상연구 학술대회 원불교 개교 백년기획(Ⅺ) 근현대 한국 신종교운동에 나

타난 치유와 통합 자료집 (2016), pp.55-56.

27) 대종경, 제14 전망품 16장.

사리연구(事理硏究, 慧), 작업취사(作業取捨, 戒)의 세 가지로 구성되어있

다. 정신수양은 “안으로 분별성과 주착심을 없이하여 밖으로 산란하게

하는 경계에 끌리지 아니하여 두렷하고 고요한 정신을 양성하는 것”이고,

사리연구는 “인간의 시비이해인 사(事)와 천조의 대소유무인 리(理)를 연

마하고 궁구하는 것”이며, 작업취사는 “육근(六根, 眼耳鼻舌身意)을 작용

할 때 정의는 취하고 불의는 버리는 것”28)을 이르는 공부이다. 원불교

삼학의 정신수양과 정신개벽의 정신은 구분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정

신수양에서 정신은 본연지성(本然之性)으로, 정전에는 ‘마음이 두렷하

고 고요하여 분별성과 주착심이 없는 경지’라 하였다.29) 정신개벽의 정

신은 정신수양의 정신의 의미를 포괄하는 광범위하면서도 다중적인 개념

으로 쓰였다.

소태산은 유가와 불가의 삼학을 계승하였음을 밝히며 정진할 것을 당

부하였다.30) 정산 송규(鼎山 宋奎, 1900∼1962, 2대 종법사, 이하 정산)는

과거의 삼학과 소태산의 삼학의 차이점에 대해, 과거의 삼학은 계정혜

각각 한 편에 치중한 반면, 소태산의 삼학은 따로 하는 공부가 아닌 병

진(竝進)해야 효과를 보는 공부31)라고 보설하였다. 삼학은 마치 삼발이의

세 발과도 같다고 한 것이다.

또한 소태산은 수행을 단련하도록 훈련법을 제정하여 삼학수행을 과목

별로 양성, 견성, 솔성 할 것을 권장하였다. 정신수양에는 염불과 좌선을,

사리연구에는 경전⋅강연⋅회화⋅의두⋅성리⋅정기일기를, 작업취사에는

상시일기⋅주의⋅조행의 과목을 각각 두어 수양력과 연구력과 취사력을

쌓는데 공부의 목적을 두어야함을 주장하였다. 이 삼학수행을 때에 맞게

하기 위하여 정기훈련법(定期訓練法)과 상시훈련법(常時訓練法)을 제정하

였다. 정기에는 상기한 삼학의 11과목을 중심으로 하고, 상시에는 12조목

의 주의사항32)을 두어 수시로 챙겨 공부하게 하였다.

28) 정전, 제2 교의편 제4장 참조.

29) 정전, 제2 교의편 제4장 삼학 제1절 정신수양 1. 정신수양의 요지 중.

30) 대종경, 제2 교의편 5장 참조.

31) 정산종사법어, 제2부 제5 경의편 13장 참조.

삼학을 원불교에서는 다른 말로 ‘일심,’ ‘알음알이,’ ‘실행’이라고 표현

하기도 한다. 삼학수행을 한 결과 삼대력 즉, 수양력⋅연구력⋅취사력을

얻게 되는데 이 힘을 키우는 까닭은 바로 정신개벽을 하자는 데 있다.

각자의 정신개벽은 물론하고 타자와 사회 전체의 정신개벽을 이루자는

것이 목적이며 동시에 이는 원불교 개교의 목적과 부합된다. 신앙⋅수행

의 대상⋅표본은 일원상 진리에 두고 그 현실적 발현이 미륵 용화회상인

개벽세상인 것이다.

이러한 원불교의 사회개벽적 성격은 교리 중 사요(四要)에서 잘 드러

난다. 사요는 자력양성(自力養成), 지자본위(智者本位), 타자녀교육(他子女

敎育), 공도자숭배(公道者崇拜)로 구성되어 있으며, 내용은 과거 불합리한

사회적 관례와 제도를 전적으로 전환시키자는 조목들로 이루어져 있다.

자력양성은 자력을 키워 부당한 의뢰생활을 하지 말자는 내용인데 특히,

여성의 자력을 키울 것을 모든 조목에서 강조하고 있다.

지자본위는 배움을 구하는데 있어 과거의 불합리한 차별제도에 끌리지

말고 구하는 목적만 달하자고 하였다. 과거의 불합리한 차별제도를 다섯

가지로 구분하였는데 ① 반상(班常)의 차별 ② 적서(嫡庶)의 차별 ③ 노

소(老少)의 차별 ④ 남녀(男女)의 차별 ⑤ 종족(種族)의 차별이다.33) 여기

서 또한 남녀의 차별을 두지 않아야함을 강조하였다. 타자녀교육은 교육

32) <상시 응용 주의 사항>

1) 응용(應用)하는 데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하기를 주의할 것이요,

2) 응용하기 전에 응용의 형세를 보아 미리 연마하기를 주의할 것이요,

3) 노는 시간이 있고 보면 경전⋅법규 연습하기를 주의할 것이요,

4) 경전⋅법규 연습하기를 대강 마친 사람은 의두 연마 하기를 주의할 것이요,

5) 석반 후 살림에 대한 일이 있으면 다 마치고 잠자기 전 남은 시간이나 또는 새벽에 정신을 수양하기

위하여 염불과 좌선하기를 주의할 것이요,

6) 모든 일을 처리한 뒤에 그 처리건을 생각하여 보되, 하자는 조목과 말자는 조목에 실행이 되었는가

못 되었는가 대조하기를 주의할 것이니라.

<교당 내왕시 주의 사항>

1) 상시 응용 주의 사항으로 공부하는 중 어느 때든지 교당에

오고 보면 그 지낸 일을 일일이 문답하는 데 주의할 것이요,

2) 어떠한 사항에 감각된일이 있고 보면 그 감각된 바를 보고하여 지도인의 감정 얻기를 주의할 것이요, 3) 어떠한 사항에 특별히 의심나는 일이 있고 보면 그 의심된 바를 제출하여 지도인에게

해오(解悟) 얻기를 주의할 것이요,

4) 매년 선기(禪期)에는 선비(禪費)를 미리 준비하여가지고 선원에 입선하여 전문 공부하기를 주의할 것이요,

5) 매 예회(例會)날에는 모든 일을 미리 처결하여 놓고 그 날은 교당에 와서 공부에만 전심하기를 주의할 것이요,

6) 교당에 다녀갈 때에는 어떠한 감각이 되었는지 어떠한 의심이 밝아졌는지 소득 유

무를 반조(返照)하여 본 후에 반드시 실생활에 활용하기를 주의할 것이니라

(정전,제3 수행편 제2장 정기훈련과 상시훈련 제2절 상시훈련법).

33) 정전, 제2 교의편 제3장 사요 참조.

기관을 확대하고 혜택을 널리 나타내어 유산자(有産者)만이 아닌 무산자

를 포함한 모두가 교육에의 평등으로 세상의 문명을 촉진시키고 일체가

다 같이 낙원의 생활을 하자는 내용이다. 공도자숭배는 세상을 위하는

공도자를 숭배하여 공도자를 많이 배출하고 모두가 그 공도정신을 체받

아 공도를 위해 활동하자는 내용이다.

소태산은 자신이 내놓은 원불교의 기본교리를 생활 속에서 한 순간도

빠짐없이 닦아나갈 수 있도록 이를 모두 아홉 가지로 모아 일상수행의

요법(日常修行의 要法)을 제정하고 늘 살필 것을 주장하였다. 소태산은

일상수행의 요법 내용인 삼학⋅팔조 사은⋅사요를 사람들의 마음에 있어

의술(삼학⋅팔조)과 약재(사은⋅사요)로 비유하였고, 이 비유로서 이 요법

의 중요성과 요법 간의 긴밀한 상호관계를 명백히 하였다. 1∼3조은 삼

학수행(精神修養, 事理硏究, 作業取捨)이고, 4조는 팔조(信, 忿, 疑, 誠, 不

信, 貪慾, 懶, 愚)이며, 5조는 사은(天地, 父母, 同胞, 法律)에 대한 감사생

활, 6∼9조는 4요(自力養成, 智者本位, 他子女敎育, 公道者崇拜)의 실천으

로 구성되어 있다. 몰아 말하면 삼학⋅팔조 사은⋅사요인데 소태산은 이

수행을 ‘대체로는 날로 한 번씩 대조하고 세밀히는 경계를 대할 때마다

잘 살피라’34)는 뜻으로 제정하였다. 생활 속에서 대조하는 공부를 밝힌

것이다.

수운, 증산과 마찬가지로 소태산은 전통 신앙⋅수행의 체계를 수용하

였다. 특히, 소태산의 초기 종교 활동은 전통적인 종교인 불교나 도교,

그리고 민간신앙인 신선사상이나 산신신앙과 같은 관습화된 종교성을 수

용한 형태였다. 이처럼 수용과정에만 그친다면 종교적 전통주의에 갇힐

위험이 있으나 소태산은 자신에게 주어진 종교적 의무와 전통주의를 절

충하여 새로운 주장을 하였고, 이것으로써 시대와 사회가 요청하는 종교

활동을 새롭게 제시하였으며 수행에 있어서도 한 편에 치우치는 것이 아

닌 다양한 과목을 설계하고 이를 병진하도록 가르쳤다.

근대 한국 신종교 주창자들은 태초의 거대한 물리적 개벽과 같은 의미

34) 대종경, 제3 수행편 1장 중.

를 개벽사상에 담았고 개벽사상은 거대하고 역동적이며 개혁적 성격만큼

이나 진정한 개벽을 이루기 위해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나아가는 변화,

작은 실천을 신앙⋅수행의 근간으로 두었다. 그렇기 때문에 개벽사상에

는 인존(人尊)사상과 사회계몽사상 등이 융합되어 있다고 하겠다. 근대

한국의 시대상을 배경으로 하는 개벽사상은 사회운동의 역동적 혁명의

성격과 종교운동의 조용한 혁명의 성격이 양립하는 한국 신종교의 중추

적 사상이다.

6. 맺음말

한국 근대기에 태동된 개벽사상은 그 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현대 한국

에 현존하는 사상이다. 하지만 연구자들을 포함한 많은 이들의 인식 속

에 개벽사상은 과거의 유물로 작용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 까닭은 무엇

보다도 개벽사상이 19세기 중엽부터 20세기 초반까지의 근대 한국에서

일어난 사회 개혁의 급진적 운동의 중심 사상으로 자리하였기 때문이라

사료된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동학농민혁명운동과 증산의 거교적 치병

과 제의 의례, 그리고 민중⋅민족 신종교들을 주축으로 한 독립운동 등

을 들 수 있다. 결과적으로만 본다면 이러한 운동들은 목적하는 결과를

달성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혹자들은 개벽사상을 실패의 아이콘으로 분

류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 국가에서 1세기를 넘게 이어오고 있는 사상을 일정한 시점

또는 사건의 양상과 결과를 중심으로 그 사상이 가진 의미와 지속성을

평가하고 결론짓는 자세는 적절하지 못하다고 생각된다. 한 학자가 말한

것처럼 인문학이 인간이 그리는 무늬라고 한다면 사상은 그 무늬가 그려

진 그릇이라 비유할 수 있는데, 시대와 사회상황에 따라 인간의 무늬가

새롭게 그려지듯 그 그릇과 그 그릇에 무엇이 담기는가는 그 그릇과 관

여한 사람들이 완전히 소멸한 후에 평가할 수 있는 문제이다. 또한 그

그릇이 깨어졌다하더라도 어떠한 기점을 맞아 새로운 형태와 쓰임으로

그릇의 가치가 살아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둔다면 사상의 기능에 대

한 평가는 매우 신중하고 엄중하게 다루어져야할 연구과제가 될 것이다.

긍정적 평가를 위해서는 사상 내부 참여자들의 부단한 노력 또한 필수불

가결의 요소임엔 분명하다.

위와 같은 관점으로 원거리에서 관망하더라도 개벽사상은 근대기와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 개벽사상의 선봉자들이 애초에 개벽

을 내세울 때 그들의 이상향인 개벽세상을 단번에 이루려 하지 않았고,

특히 개벽사상의 전개는 종교적 형태를 취했기 때문에 수행적 성격은 사

회운동적 성격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했다고 볼 수 있다.

세상을 뒤집어엎고자 했던 민중에게 수운은 ‘그대가 하늘이고 그 상대

도 하늘’이라는 가르침을 먼저 전하고 그러한 마음이 저절로 될 때까지

21자주문을 염송하게 하였으며 성경신으로 자신 수양과 믿음에 기반한

대타적 공경관을 확립하였다. 증산은 세상의 혼란과 동학농민혁명운동

등으로 아픔을 겪는 민중들과 그 아픔을 함께하며 치병을 중심으로 제의

를 행하며 해원, 상생, 조화의 선경세계를 구현하려하였다. 소태산은 수

운, 해월, 증산 등 선지자들의 지향점을 따르면서도 인류가 새롭게 당면

해야할 물질개벽의 병폐를 인식하고 시대를 선도할 정신개벽운동을 삼학

수행으로 정진할 것을 당부하였다. 특히, 이들 신종교의 수행은 개벽사상

의 평등성에 입각하여 누구나 각자의 생활 속에서 수행할 수 있는 간이

하고 실천 가능한 방법을 취하고 있는 특징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

한 수행은 신종교 신자들 뿐 아니라 일부 비신자 사이에서도 행해지고

있다. 그 배경 중 하나가 근대 한국 신종교들은 전통수행을 토대로 한

근대적 종교 모델의 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며, 이는 현대에도 적용

가능한 다양한 형식들로 일반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파악된다.

현대를 사는 한국인들은 각자와 사회가 병들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그 원인이 신자유주의에 따른 폐해임을 알면서도 대다수는 이를 타파하

거나 피하는 법에 소극적 자세이다. 적극적으로 대응했다가는 경제적 난

관을 시작으로 당장 해결해야하는 많은 문제들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현

실에 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치유책을 여러

모로 찾고 있고 많은 개인과 단체에서는 다양한 방법을 공유하고 있다.

이 치유책과 신종교 개벽사상의 수행적 성격은 같은 시공에서 만날 수

있는 접점이라 생각된다. 이는 조금 더 넓은 시각에서 개벽사상의 실천

적 성격으로 조명 가능하며 이에 대해서는 차기연구의 과제로 삼도록 하

겠다.

유교가 장구한 시대를 배경으로 그 사상의 기조를 달리하여 온 것처

럼, 개벽사상의 기조도 근현대 한국의 급격한 변화 속에 시대에 따른 유

동이 있었음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의 근현대사는 전 지구적

역사의 스펙트럼 중에서도 가장 짧은 기간, 가장 다양하고 강열한 빛깔

을 뿜어내고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벽사상의 시대에 따른 기조

의 유동은 무에서 유가 아닌 성립 당시부터 갖추고 있던 성격이 사회상

황에 따라 드러났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개벽사상을 지금까

지 역동적 혁명의 성격만으로 이해하는 사회 전반의 풍토는 많은 교정이

필요할 것으로 사료된다. 그러므로 현 시점에서는 개벽사상의 신앙⋅수

행의 가르침에서 나타나는 조용한 혁명적 성격인 동양적 전통을 기반으

로 하는 수련의 성격, 조화의 성격, 실천의 성격을 새롭게 주목해야 할

것이다. 손자병법에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다.

이 병법이 쓰였던 시대는 이겨야 사는 시대였지만 현시대는 서로 살려야

살 수 있는 시대임으로 이 말을 응용해 다시 써 보고자한다. 신종교 개

벽사상의 수행을 하여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누구나 유무상자(有無相

資), 상생상화(相生相和), 자리이타(自利利他)로 공공(公共)하는 개벽세상

의 주인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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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bstract ■

A Study on an Ascetic Characteristic of the

Gaebyeok(開闢, Great Opening) Thought in Korean

New Religions

-Focusing on Donghak⋅Cheondogyo, Jeungsangyo and Won-Buddhism-

Hyang-Ok Jeong

Wonkwang University

This paper argued that how the concept of Gaebyeok was appeared,

was spread, and settled into a thought in Korea. Also it illuminated

an ascetic characteristic of Gaebyeok thought during the period from

appearance to settlement of the thought.

Gaebyeok, the abbreviation of ‘CheongaeJibyeok(天開地闢),’ was

for the first time recorded in Chinese literature. The first record was

the Shiji(史記) by Sima Qian. Gaebyeok was also recorded in

Houhanshu(後漢書). In Korea, it was recorded for the first time in

Samgukyusa(三國遺事) by Iryeon. In a study of Gaebyeok thought,

there are terms to be examined; ‘an apriority’ and ‘a posterior.’ The

founders of Korean new religious did not mention ‘the postnatal

Gaebyeok,’ but their disciples and researchers has settled it. In this

process, the concept of Gaebyeok was moulded on the Gaebyeok

thought and this research will examine it.

Based on the concept of Gaebyeok, I researched an ascetic

characteristic of the Gaebyeok thought of the representative new

religions of Donghak⋅Cheondogyo(東學⋅天道敎), Jeungsangyo(甑

山敎) and Won-Buddhism(圓佛敎). The Gaebyeok thought was

 

recognized as the idea for people which had the feature of

revolutional power based on the movemental, terrestrial, and antisystemic

aspects. But the early Gaebyeok theorist asserted that the

root of Gaebyeok thought is an ascetic practice. Gaebyeok thought is

the common idea of Korean new religions and it can be understood

from the context that one of the central source of religions is the

practice. The fundamental change is preemptive with the establishment

of self through the practice.

An ascetic aspect that is one of the points from which the Gaebyeok

thought is valid as a contemporary thought. The key words of this

era are the healing and the convergence. The practice will a tool to

enhance values such as helping each other, mutual growth, and

benefiting themselves and benefiting others.

Key words: Korean New Religions, the Gaebyeok thought, an ascetic

practice, Donghak⋅Cheondogyo, Jeungsangyo,

Won-Buddhism

 

신종교연구 제34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