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철학이야기

“관념론”으로서의 조선 유학 - 북한의 조선 전기 유학에 대한 이해를 중심으로 - 강경현.성균관대

1. 들어가는 말

이 글은 지난 2023년 3월25일 서울대학교에서 개최된 <2023 한국철학회 70주년 정기학술대회> 2부 “남북철학을 말한다”에서 발표되고, 「북한의 이황철학 연구-객관적 관념론에서 신학적 관념론 으로」(철학 157집, 2023.11)라는 제목으로 게재된 논문의 후속 작업이다.

유물론과 관념론의 투쟁으로 조선철학을 바라보는 북한의 연구에서 이황 철학은 1960년 이래로 봉건 도 덕 윤리를 옹호하기 위해 고안된 관념론이면서도 인식론의 차원에서 대상 세계의 실재함을 어느 정도 인 정하는 “객관적 관념론”으로 평가된다.

2010년 간행된 조선철학전사에서 이황 철학은 “신학적 관념 론”이라는 용어를 통해 “극단적인 관념론”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변화의 핵심에는 이황 철학의 인식론 이 “신비적 직관[神悟]”을 방법으로 한다는 해석, 그리고 동아시아 관념론을 발전사적으로 바라보며 주 희 철학의 관념론적 사유가 이황 철학에 이르러 완결성을 갖추게 되었다는 철학사적 이해가 자리하고 있 다.

이 글은 이와 같은 변화가 기존의 철학사 서술과 비교할때 이황 철학의 원전과 개념을 보다 충실히 인 용하고 구성해내면서 진행되었다는 점에 주목한다.(93쪽)

기존 연구를 통해 주목한 점은 북한의 대표적 철학사에는

(1) 유물론과 관념론의 투쟁으로 조선조 유학을 읽는 시야가 공통적으로 전제되어 있으면서도,

(2) 2010년 조선철학전사에 이르러 이황 의 철학에 대해 (인식론을 중심으로) 관념론으로서의 철학적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가 내려지게 된 다는 측면이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는 기존에 비해 이황철학 관련 원전 자료와 개념을 보다 충실히 다루면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이황에 대한 기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만약 조선조 유학의 원전 자료와 개념을 더많이 활용하고 고려하는 접근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 다면, 조선조 유학을 유물론과 관념론의 투쟁으로 보는 북한 철학사의 독법에도 다소간의 변화가 발 생했을 가능성에 대해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물론 조선조 유학을 분석하는 데 있어 유물 론과 관념론이라는 틀이 여전히 강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조선조 유학의 원전 자료와 유학적 개념을 보다 충실히 고려하게 됨으로써 기존 틀에서 변주되는 지점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북한의 철학사에서 유학 자체에 대한 인식에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닌지 혹은 그것의 변 화의 가능성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질문에까지 나아갈 수 있어 보인다.

이 발표를 통 해 조선 전기 유학(건국~16세기)에 대한 북한 철학사 기술에 주목함으로써 이러한 질문에 대한 논 의의 단초를 찾아나가고자 한다.

2. 1960년 조선철학사(상)의 조선 전기 유학에 대한 이해

1960년 철학사를 통해 정립된 조선 전기 유학에 대한 북한 철학사의 입장은 해당 부분 <목차>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4. 조선조 초기 주자학과 불교 배척운동

가. 고려 말 조선 초의 사회 정치 정세

나. 초기 주자학자들(객관적 관념론자들)

1) 안향과 백이정

2) 이제현

3) 이색

4) 정몽주 다.

조선조 초기 통치계급의 사상정책과 주자학

1) 조선조 초기 통치계급의 사상정책

2) 정도전의 철학사상

3) 권근의 철학사상

5. 15~16세기의 철학사상

가. 사회 정치 정세

나. 자연과학의 발전 다.

15세기 사림파 철학

1) 김종직

2) 조광조

3) 이언적

라. 김시습과 서경덕의 철학(15~16세기 객관적 관념론의 반대자들)

1) 김시습

2) 서경덕

3) 이구

마. 주리론과 주기론 학파

1) 김인후

2) 이황

3) 이이

1960년 철학사에서 조선 전기 철학은 주관관념론-객관관념론-유물론이 차례로 등장하고, 이후 객관관념론의 분화가 일어나는 것으로 기술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주관관념론은 고려시대 불 교를 의미하며, 그에 대한 비판의 입장에서 등장한 객관관념론은 조선시대 주자학을 가리킨다.

초기 주자학의 주요 인물은 안향, 백이정, 이제현, 이색, 정몽주이며, 이 시기 불교배척운동은 정도전과 권 근을 통해 살펴진다.

이후 15세기 사림파는 김종직, 조광조, 이언적을 통해 조망된다.

한편 유물론의 대표 인물은 김시습, 서경덕, 이구이다.

이후 16세기에 이르러 객관관념론으로서의 조선 주자학은 주리파와 주기파로 분화되는데 전자의 대표 인물은 김인후와 이황이며, 후자는 이이라고 서술된다.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교체는 이데올로기 분야에서도 변화를 초래하였다. 주로 불교를 자기의 통치 이 데올로기로 한 고려와는 달리 조선은 주자학을 통치 이데올로기로 채용하였다. 따라서 왕조의 교체를 위 한 투쟁은 철학적으로는 불교의 주관적 관념론에 반대한 조선조 주자학의 투쟁으로 표현되었다.”(53쪽)

1960년 철학사의 두드러진 특징은 주관적 관념론(불교)과 객관적 관념론(주자학)의 투쟁을 전제 로 기술한다는 점이다.

역사 단계적, 이념적 차원에서 주관적 관념론에 대해 객관적 관념론이, 불교 에 대해 주자학이, 고려에 대해 조선이 갖는 진보적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조선 전기 주자 학이 갖는 긍정적 의의는, 물론 제한적이지만, 왕조 교체를 가능하게 했다는 점, 이성 중심의 합리적 요소에 기반하여 배불로 대표되는 주관적 관념론을 비판했다는 점 등이다.

이러한 점들을 통해 조선 전기 주자학은 결국 객관적 관념론 및 무신론적 유물론적 사상이라고 다소간 긍정적으로 평가되게 된다.

한편 1960년 철학사에서는 경제적 기반, 즉 토지 소유 정도에 따라 이 시기 계층과 인물을 구분하 기도 한다.

예를 들어, 부패하고 타락한 고려 집권자인 “대토지 소유자 계층”, 새로운 봉건통치 질서 수립을 도모하는 세력인 “중소토지 소유자 계층”으로 나누며, 후자를 다시 “온화한 개량파”와 “급 진적 개혁파”로 나누는 것이다.

여기에는 고려 말, 사회계급적 모순을 반영한 통치계급 내부에서 이 해를 달리하는 두 계층이 출현하였다는 시각이 반영되어 있다.

이들은 각각 불교와 주자학 기반의 사상을 갖고 있기도 하다.

구체적으로 이 시기 대표적인 인물 인 이색과 권근은 온화한 개량파, 정도전은 급진적 개혁파로 분류되며, 정몽주는 두 세력 사이에 위 치한다.

15세기 사림과 관련해서는 김종직, 조광조, 이언적이 다루어진다.

모두 봉건적 계급 질서 유지를 목표로 했던 지주계급의 한계 위에서 평가된다.

다만 인정과 애민, 인재 등용과 관련하여 발생하는 일정한 의의에 주목하는데, 바로 사회 개혁의 차원에서 김종직과 조광조는 훗날 이이와 실학파로 연 결된다.

다만 이언적은 객관관념론, 특히 리의 일차성을 강조하는 측면에서 이황으로 그 영향이 이 어진다는 데 보다 방점이 찍혀 서술된다.

16세기 주자학과 관련해서는 기본적으로 “16세기에 이르러 주자학의 객관적 관념론은 진보적 유 물론 철학 조류와의 투쟁 과정에서 자체를 관념론적으로 더욱심화시켜갔다.”(132쪽)고 평한다.

이 러한 인식 위에서 “조선봉건 통치계급의 지배적 사상으로 봉사”한 인물로 김인후와 이황을 소개하 고, 합리적인 요소, 예를 들어 리, 심, 인식론, 사회 개혁 등의 영역에서 기일원론에 가까운 유물론적 주장을 한 이이를 그들과 대비시키면서, 각각 “주리론”과 “주기론”으로 명명한다.

요컨대, 1960년 철학사는 주관관념론과 객관관념론의 투쟁, 객관관념론과 유물론의 투쟁, 유물론 과 객관관념론의 투쟁으로 조선 전기 유학의 전개를 기술하면서, 대체로 이를 시간순으로 구성하고 있다.

또한 객관관념론으로서의 주자학의 분화는 이황과 이이의 등장을 통해, 시기적으로는 16세기 에 이르러 진행된 것이라고 보고 있다.

3. 2010년 조선철학사4의 조선 전기 유학에 대한 이해

2010년 북한에서 간행된 조선철학전사4에서는 이 시기에 대한 변화된 기술이 발견된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기일원론적 유물론 철학”, “리일원론적 관념론 철학”, “성리학 내 진보적 경향”으 로 구성된다는 점이다.

해당 부분 <목차>는 다음과 같다.

제2장. 리조 전반기 기일원론적 유물론 철학의 발전

제1절. 김시습의 철학 및 사회정치사상

제2절. 서경덕의 철학 및 사회정치사상

제3장. 리조 전반기 리일원론적 관념론 철학의 발전

제1절. 권근의 철학 및 사회정치사상

제2절. 리언적의 철학 및 사회정치사상

제3절. 리황의 철학 및 사회정치사상

제4장. 리조 전반기 성리학 내 진보적 경향의 발전

제1절. 정도전의 철학 및 사회정치사상

제2절. 초기사림파의 철학 및 사회정치사상(김종직, 조광조)

제3절. 리이의 철학 및 사회정치사상

앞서 언급하였듯, 2010년 철학사는 기존에 비해 전통 철학에 대한 기술 분량 자체가 증가하였을 뿐만이 아니라 다루어지는 개념과 원전이 비약적으로 증가한다.

조선 전기 부분 역시 그러하다.

그 중 2010년 철학사를 통해 변화된 조선 전기 철학에 대한 기술들 가운데 특징적인 면은 다음과 같다.

우선 김시습과 서경덕을 대표 인물로 하는 기일원론적 유물론이 가장 먼저 서술된다.

이는 기존 1960년 철학사가 <객관관념론→유물론→객관관념론 내 주리‧주기의 분화>라는 틀을 시간순으로 적용하였던 것과는 차이를 보이는 지점이다.

물론 각 조류 내 기술은 시간순으로 이루어지지만, 전 체적으로는 조선조 유물론을 먼저 소개하고, 이후 조선조 관념론의 두 조류를 다루는 방식으로 구성 된다.

다음으로 객관관념론으로서의 주자학의 분화 시점이 조선 건국 시기로 올라간다.

기존 1960년 철 학사는 이황과 이이의 등장을 통해 객관관념론으로서의 조선 주자학이 분화되기 시작한 것으로 서 술한다.

반면 2010년 철학사에서는 “리일원론적 관념론 철학”과 “성리학 내 진보적 경향”이라는 이 름으로 조선 주자학을 조선 전기부터 두 조류로 나누어 기술한다.

달리 말해, 조선조 철학은 처음부 터 유물론과 관념론, 진보적 경향으로 삼분하여 설명된다.

이와 같은 두 특징적 변화로 인해 2010년 철학사는, 시간순으로 유물론과 관념론의 투쟁을 기술 하며 그것을 핵심 서사로 서술하던 1960년 철학사에 비해 양자 간의 투쟁 관련 서술이 상대적으로 전면에 등장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기일원론적 유물론”, “리일원론적 관념론 철학”과 “성리학 내 진보적 경향”이라는 세 조류를 설명하면서 각 조류의 특징과 의미를 유형화해서 서술하는 부분이 강화되며, 그에 맞추어 해당하는 인물들을 계보화하여 제시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 지는데, 중점적으 로 다뤄지는 인물은 각각 김시습-서경덕, 권근-이언적-이황, 정도전-김종직-조광조-이이이다.

이러한 변화는 조선 전기 객관관념론의 큰 특징인 배불이 여전히 조선 전기 인물과 사상에서 공통 된 특징으로 짚어지는 위에서도 발견된다.

예를 들어 조선 전기 동시대 인물로서 배불이라는 특징을 공유한다고 서술되며 함께 다뤄지던 정도전과 권근이 각각 “성리학 내 진보적 경향”과 “리일원론적 관념론 철학”으로 갈라져 분류되며, 모두 소위 사림에 속하는 인물인 김종직, 조광조와 이언적(김인 후는 사라짐)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두 조류에 각기 배속된다.

즉 2010년 철학사에서 조선 전기는 세 조류의 성립과 전개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이러한 변화에 주목하였을 때, 2010년 철학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 조선 전기 유학 서술의 특징과 그 접근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조선조 유학 전체를 유물론 중심의 발전적 서사로서 선명하게 드 러내고자 한다는 점이다.

둘째는 유물론 중심의 발전적 서사 위에서 조선 건국 이래로 16세기까지 관념론 내부의 분화가 진행된다고 봄으로써 유물론과 두 가지 관념론이라는 세 조류의 정립과 전개 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는 그와 연동하여 각 조류를 대표하는 인물과 철학이 계보화되며, 각 조류의 특징 역시 선명하게 대비된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이해 위에서 구체적으로 “리일원론적 관념론 철학”과 “성리학 내 진보적 경향”이 갖는 내용적 특징으로 2010년 철학사에서 핵심으로 꼽은 것은 “숙명론과 신비주의” 그리고 “인정과 경 세”이다.

더 나아가 “리일원론적 관념론 철학”이 “숙명론과 신비주의”라는 평가를 받게 되는 데 있어 가장 집중적으로 조망되는 개념은 천과 천명이며, “천과 천명으로 해석된 리”에 대한 해석을 통해 리일원 론적 관념론이 권근, 이언적, 이황을 거치면서 체계화된다고 보고 있다.

“리황에 의하여 리의 절대성, 순수성이 과도할 정도로 주장되고 거기에 《천명》론이 추가됨으로써 그의 철학체계는 성리학이 애써 붙잡으려 했던 《현실》로부터 원칙적으로 리탈하게 되였으며 그러한 속에서 리와 상제의 간격은 거의 사라져버리게 되였다. 그 부정적후과는 성리학자들속에서 관념속에만 존재하 던 상제가 학술체계속에 구현될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하고 또한 실제적으로 그러한 전례를 만들어놓 은것으로 나타났다. 리조 후반기에 이르러 주리파의 한사람인 기정진에게서 《리, 천명》설, 《리주인, 기노 복》설이 로골적으로 제창되는것은 명백히 리황의 신비주의적동향의 직접적인 발현이다. 신비주의가 숙 명론과 직결되여있으며또한 그것을 고취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결국 리황의 신비주의적철학체 계는 인간이 자기 운명을 자기 자신이 아니라 그 어떤 신비적존재에 의탁해야 한다는 숙명론을 리론적으 로 안받침하였으며 이것은 결과적으로 운명개척을 위한 인민대중의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투쟁을 정면 에서 거부하는것으로 된다.”(179쪽, 2010)

한편 “성리학 내 진보적 경향”에 속해 있는 정도전, 김종직, 조광조, 이이의 철학이 진보적이라 평 가받게 되는 이유는 그들이 비록 철학적으로는 이질적이더라도 공통적으로 “인정에 기반한 경세” 에 관심을 가지며 궁극적으로 사회 변혁을 추동할 수 있는 사유를 끊임없이 제시해 왔기 때문이다.

“리조 전반기 철학사상사를 개괄해보면 유물론철학과 더불어 진보적사상발전을 추동해온또 하나의 흐 름을 발견할수 있다. 그것은 정도전과 김종직, 조광조 그리고 리이에 의하여 대표되는 성리학내 진보적 사상조류이다. 물론 이들은 세계관적면에서 서로 차이를 가지지만 한가지 명백한 공통점은 불합리한 현 실을 개조하려는 진취적인 변혁리념즉 현실중시적지향이다. 당대에 있어서 이러한 리념을 추구한 사상 경향을 《경세학》(經世學)이라고 불렀다. 사실상 정도전의 철학을 상징한다고 할수 있는 배불론은 단순 한 리론 그자체가 아니였다. 그것은 리조사회의 정치, 경제적기틀을 닦아놓은 《조선경국전》, 《경제문감》 과 나란히 불교를 축출하고 리조의 사상적틀거리를 마련하기 위한 《실천》론이였다. 또한 김종직, 조광조 등 초기사림파에서 제기된《변통》론은 《장구지학》으로 기울어져있던 성리학을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한 《현실적학문》으로 돌려세우려는 새로운 움직임이였다. 리조 초기 성리학내 진보적사상가들속에서 나 타난 이러한 《경세학》적경향은 리이에 이르러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었다. 기를 내세운 주기론과 《행》 중시의 인식론, 《력행》의 륜리학설 그리고 정치, 경제, 국방에 이르기까지의 사회전반에 걸쳐 급진적인 《개혁》의지를 피력한 사회정치사상 등 현실중시로 일관된률곡철학은 리조 전반기에 있어서 가장 완성 된《경세학》이였다고 규정지을수 있다. 정도전으로부터 시작되여 리이에 이르러 보다 뚜렷해진 이러한 현실주의적사상경향은 사람들의 시야를 현실로부터떼여내고 그들에게 숙명론적관점을 부식시키기 위 해 책동하던온갖 종교신비주의학설과 뚜렷이 대조되는것으로써 그것은 인간의 운명개척에 긍정적작용 을 하게 되었다.”(323쪽, 2010)

이 발표에서는 1960년 철학사와 2010년 철학사를 비교하였을 때, 조선조 전기 유학을 서술함에 있어 ‘주리’와 ‘주기’를 키워드로 하여 관념론 주자학의 분기를 16세기 이황과 이이로 잡았던 것에 서, 조선 건국 당시로까지 그 분기 시점을 끌어올려 정도전과 권근에서부터 “리일원론적 관념론 철 학”과 “성리학 내 진보적 경향”으로 구분하여 계보화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물론 이것은 일차적으로 성리학 내 진보적 경향을 긍정적으로 읽어내면서 조선조 유학사의 근간 이 되는 유물론과의 접점을 넓혀가려는 의도 위에서 시도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 나 유학 자체에 대한 북한 철학사에서의 인식이 변화한 것일 가능성도 타진해 볼 수 있다.

달리 말해 조선조 유학사에 대한 변화된 조류별 분류와 서술은 유학의 핵심혹은 전형을 무엇으로 보는지에 대 한 접근법의 변화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4. 나오는 말

사실 조선조 유학사 서술에는 유학 자체에 대한 인식이 반영된다.

예를 들어 그간 한국에서 제안 된 대표적인 조선조 유학으로의 접근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장지연(1864~1921)의 조선유교연원(1917/1922): 정몽주와 이황을 처음과 끝으로 간주하 면서 사림 도통을 조선조 유학의 전범으로 놓고, 이후 조선 망국론으로 귀결되는 조선조 유학 의 변화와 쇠락의 추이를 보임.

2) 다카하시 도루(高橋亨, 1878~1967)의 「朝鮮儒學大觀」(1912/1927)과 「李朝儒學史に於ける 主理派主氣派の發達」(1929): 다카하시 도루 자신이 전제하고 있는 유학의 철학적인 측면에 입각하여 퇴율에 의해 제시된 주자학적 우주 심성에 대한 체계적 이해를 조선조 유학의 핵심 으로 추출함.

3) 이병도(1896~1989)의 「이조 초기의 유학」(1930): 체제 구축 및 운영 원리로서의 유학에 주목 하여 서술함으로써 조선이 유교국가로서 성립되고 운영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여겨지 는 정도전과 권근을 중심으로 조선조 초기 유학을 기술함.

4) 정인보(1892~?)의 양명학연론(1933/1955): 망국으로 귀결된 주자학 중심의 조선조 유학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현실을 바꾸어 나갈 수 있는 근거로서 조선 양명학을 포착함.

5) 최익한(1897~?)의 「여유당전서를 독함」(1938~1939): 기존 전통적 조선 유학을 비판한 조선 학 운동과의 유사한 맥락 위에서 정약용을 통해 조선 내 실학과 실학파에 주목하고 서학을 통 해 “세계사적 보편성”, “서구 근대의 보편성에 발맞춰 세계주의적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고 여김. (강경현, 「이병도의 「李朝初期의 儒學」(1930)과 조선 유학사 서술의 특징」, 2023 참조)

다시 2010년 북한에서 간행된 조선철학전사로 돌아가 보면, 조선조 전기는 유물론과 함께“리 일원론적 관념론 철학”과 “성리학 내 진보적 경향”으로 삼분되어 조망된다.

그리고 “리일원론적 관 념론 철학”은 ‘천과 천명으로 해석된 리’에 기반한 “숙명론과 신비주의”로, “성리학 내 진보적 경향” 은 ‘인정에 기반한 경세’를 통해 사회 변혁을 추동해온 사상으로 해석된다.

물론 전자는 비판과 극복 의 대상으로, 후자는 긍정적 평가의 대상으로 서술된 것이기는 하지만, 이는 객관관념론으로 간주되 던 주자학에 대해 원전과 개념에 착근하여 보다 진전된 분석을 진행함으로써 가능해진 구분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천과 천명으로 해석된 리’와 ‘인정에 기반한 경세’가 조선조 전기 객관관념론 으로서의 주자학을 양분하는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다면, 이에 기반한 서술 속에서 2010년 조선철 학전사가 유학의 핵심과 본질적 문제의식을 리에 관한 논의와 경세론으로 인식하며 접근하는 시야 를 드러내고 있다고 읽어내는 것은 가능해 보인다.

2024한국철학회학술대회자료(2024년 3월 23일)

2024년도_한국철학회_학술대회_자료집.pdf
7.29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