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II. 교판설의 정립 과정
III. 법계원융과 ‘모든 것’을 설명하는 원리
IV. 교판의 한계와 사종법계설로의 전환
V. 결론
요약문
화엄 교판은 화엄의 핵심 사상인 일승교·법계원융의 구조와 표리관계를 이룬다.
일승교는 소승을 비판하면서 나타난 대승의 관점이 그 ‘큰 수레’라는 취지에 적합하 게 소승을 포용하게 된 넓은 시각을 말한다.
법계는 ‘하나의 관점에서 인식되는 세 계’ 혹은 ‘하나의 법칙이 통하는 세계’를 말하고, 법계원융은 이런 다양한 관점들이 서로 중첩되어 조화를 이루는 상태를 말한다.
교판의 최상위에 있는 원교는 이런 다 양한 관점을 하나로 융합하는 방편적인 메타시각을 말한다.
교판은 동아시아 불교 가 이런 입장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다양한 관점에 대한 통합의 체계이다.
다양한 불교의 법문이 하나의 일승교로 모아지는 체계는 포월(包越)의 과정으로 설명된다.
그것은 상위 관점이 하위 관점을 부정하면서 최종적인 ‘절대적인 전체의 진리’를 제시하는 위계의 체계가 아니라, 상위 관점이 하위를 더 넓은 설명 체계 안에 융합시키면서 인식의 대상으로서의 세계에 대한 폭넓은 설명 방법을 제시하는 체계 이다.
여기에서는 세계를 설명하는 단 하나의 획일적 진리가 아닌 무한히 열린 개방 적인 진리 체계가 주장된다. 또한 일승교에서는 이런 상향의 포월만이 존재하는 것 이 아니라, 하위 관점이 다시 상위 관점을 역으로 포월하는 재귀순환구조(Recursive structure)도 설정된다.
그러므로 일승교에서는 가장 하위 단계의 소승이 최상승의 일승과 동일한 가치 를 가진다.
이러한 방식으로 법계원융은 ‘획일적인 전체의 진리’를 주장하지 않고, 다양한 관점에서 본 진리들이 서로를 도와서 ‘상황에 맞는 방편적 진리’를 제공한 다.
교판의 각 분위도 이러한 법계원융의 구조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이 런 교판은 사종법계설로 이어져서 완전한 철학적 체계를 이룬다.
주제어 화엄(華嚴), 법계원융(法界圓融), 교판(敎判), 일승교(一乘敎), 포월(包越), 재귀순환구조, 사종법계(四種法界)
I. 서론
본 연구는 세 가지 목적을 가진다.
첫째는 화엄 교판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는 것이며,
둘째는 법계와 법계원융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는 것이며,
셋째는 교판과 법계원융이 서로 표리 관계임을 규명하는 것이다.
이런 논의를 통하여 교판의 체계는 법계원융에 기초하여 다양한 관점을 하나로 통합하는 회통의 체계임을 논한다. 또한 법계(法界)를 ‘하나의 관점에서 인식되는 세계’ 혹은 ‘하나의 법칙이 통하는 경계’로 새롭게 정의하고, 법계원융을 다수의 관 점에 따라 규정되는 다수의 법계들을 하나로 융합하는 전체적인 시각으로 해 석한다.
이런 해석을 통해 각각의 작은 법계, 혹은 교판의 분위(分位)들이 서로 서로 ‘한계의 설정’과 ‘위치 지움’을 통하여 더 큰 범위의 조화에 함께 참여하 는 것이 법계원융과 교판의 뜻임을 논한다.
또한 교판은 법계원융과 표리를 이 루는 것이며, 화엄경에 일관되게 설명된 일(一)과 다(多)의 포용 관계에 충실 한 체계임을 논한다.
흔히 교판은 ‘자파의 사상을 최고의 위치에 놓고 타 법문을 그 아래에 배치 하는 위계적인 체계’라고 오해된다. 1) 즉 동아시아 불교는 대부분 모든 법문을 일음(一音)으로 보는 회통(會通)과 화쟁(和爭)을 목표로 함에 반하여, 교판의 체 계는 이러한 통합에 방해가 되는 잘못된 체계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메타시 각의 설정을 위한 서열화는 회통의 체계가 감수해야 하는 불가피한 것으로, 원 효(元曉, 617-686)의 화쟁 역시 ‘화쟁을 하는 입장’와 ‘화쟁의 대상이 되는 입장’ 을 층위적으로 구분한다. 2)
또한 교판은 인도불교의 역사에 무지했던 동아시 아인들이 그들의 잘못된 주관에 따라 불교 제파들을 배열한 잘못된 체계라고 비판받는다.
그러나 인도에서도 ‘진리를 이해하기 위한 순서’나 ‘수행도의 순 서’에 따라서 불교 제파를 역사와는 무관하게 재분류하는 교판적인 체계가 존 재하였고, 여기서도 논자가 지정한 특정한 학파가 최상승으로 여겨진다. 3)
1) 김도공 2006, 21-22. 김도공에 의하면 법장(法藏, 643-712)의 교판은 측천무후의 치세에서 법상유 식에 대한 화엄의 정치적인 우위를 주장하기 위해 만든 위계 체계이며, 이것은 훗날 원효의 화쟁 에 의해서 극복되었다고 한다.
2) 김성철 2023, 262. 김성철도 원효의 화쟁에서 ‘화쟁을 하는 입장’과 ‘화쟁의 대상이 되는 입장’ 사 이에 일종의 포괄주의가 나타나며, 전자가 후자에 대해 상위개념으로 설정된다고 말한다.
3) 가지야마 유이치, 윤종갑 역 1995, 52. 가지야마 유이치도 인도불교의 학설강요서에 나타난 각 학 파의 분류가 중국의 교상판석과 같은 것으로 보았다. 그는 샨타락시타(Śāntarakṣita, 725-788)가 중관장엄론에서 설일체유부·경량부·유가행파·중관파의 4대 학파를 설명하면서, 그것들을 자 신의 판별과 평가의 순으로 배열한 것과 중관학파를 최상의 교설로 주장한 것을 예로 들고 있다.
이 런 사정을 고려하면 교판에 대한 비판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교판에 대한 이런 오해는 화엄불교가 가진 철학적 가치를 간과하게 되는 우 를 범할 수 있다.
교판에 위계적인 요소가 있다 하더라도 ‘밑의 분위를 밟고 위 에 서는 위계’와 ‘좁은 관점을 더 넓은 관점으로 열어주는 위계’는 구별해야 한 다.
화엄 측의 주장도 일관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지엄(智儼, 602-668)과 법장 의 교판을 사종법계설로 승화시킨 징관(澄觀, 738-839)의 관점은 후자와 일치 한다.
본 논문은 교판이 일승사상을 기반으로 함을 역사적으로 고찰해보고, 일 승사상과 법계원융에 대한 철학적인 문제를 논하고, 마지막으로 교판의 그런 관점이 사종법계설로 승화되었음을 고찰한다.
II. 교판설의 정립 과정
1. 지론종 남도파와 수현기의 3교판
화엄 교판은 지엄의 공목장의 5교판에서 완성되었으나, 그 근원은 지론 종 남도파의 혜광(慧光, 468-537)까지 올라간다.
법장에 의하면 혜광에게는 점 교·돈교·원교의 3교판이 있었고, 4) 이것은 불타삼장(佛陀三藏)의 입장을 계승 한 것이다. 5)6)
남도파의 영변(靈辨, 477-522)은 화엄경 강설로 명성이 있었 고7) 영유(靈裕, 518-605)는 혜휴(慧休, 548-?)에게 화엄을 가르쳤다는 속고승 전의 기록도8) 남도파의 화엄경 친화적인 성격을 말해준다.
또한 남도파에 는 다수의 3교판이 있었데, 견등(見登)의 일승성불묘의에는 “불타삼장이 능가경에 의지하여 말한 바가 설통대승(説通大乘)과 통종대승(通宗大乘)이다. 그러므로 통종 등의 교가 섰다”9)고 하였다.
또한 혜광에게 십지론(十地論)을 배운 안름(安廩, ?-756)의10) 저서로 추정되는 법경론이 일승성불묘의에 인 용되는데, 여기서는 삼승별교(三乘別敎)·통교(通敎)·통종(通宗)의 교판11)이 보인다.
4) 華嚴一乘教義分齊章 (T1866, 45:48b21-22): 謂三依光統律師立三種教. 謂漸頓圓.
5) 華嚴經探玄記 (T1733, 35:110c28-29): 後魏光統律師承習佛陀三藏立三種教. 謂漸頓圓.
6) 이시이 코세이, 김천학 역 2020, 29-35. 또한 불타삼장은 華嚴經兩卷旨歸를 저술했다고 추정된다.
7) 續高僧傳 (T2060, 50:518c24-27): 沙門靈辯. 即幹之猶子也. 少小鞠育誨以義方. 携在道位還通大典. 今住 勝光寺. 衆議業行擢知綱任. 揚導華嚴擅名帝里云.
8) 續高僧傳 (T2060, 50:544b8-10): 聞靈裕法師震名西壤. 行解所歸. 現居鄴下. 命休從學. 休天機秀擧惟道 居心. 乃背負華嚴遠遊京鄴.
9) 華嚴一乘成佛妙義 (T1890, 45:786a04-05): 佛陀三藏依楞伽經所説. 説通大乘通宗大乘. 故立通宗等教.
10) 續高僧傳 (T2060, 50:048b14-16): 並聽嵩高少林寺光公十地一聞領解頓盡言前深味名象竝畢中意.
11) 華嚴一乘成佛妙義 (T1890, 45:784c04-06): 謂一釋三乘別教十地. 二會別教十地入通教位中. 三會通教 十地. 入通宗位中.
또한 돈황 문헌의 수집본인 「교리집성문헌 (S. 613)」중에도 유사한 교판 이 있다. 12)
이러한 흐름은 역시 남도파인 지정(智正, 559-639)에 의해 지엄에게 전해져서 화엄종의 성립을 가능케 했다. 법장에 의하면 지엄이 지정에게 화 엄경을 배울 때 혜광의 별교일승과 십지경론의 육상원융의 이치를 깨달아 수현기를 저술하고 화엄종을 입교분종(立敎分宗)하였다. 13)
12) 靑木 隆 외 6인 편 2013, 71: 一是三乘別敎, 二是通敎, 三是通宗, 言別敎者, 謂毘曇誠實所謂辨疏論者是, 言 通敎者, 如法華會三歸一者, 言通宗者, 謂涅槃法華大集所辨體狀者是.
13) 華嚴經傳記 (T2070, 51:163c178).
수현기에도 역시 남도파를 계승한 원교와 일승의 사상,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하는 3교 판이 주장된다.
<표 1> 지론종 남도파와 수현기의 3교판 : 생략 (첨부 논문파일 참조)
이런 3교판은 점교와 돈교 등의 여러 관점을 원교의 메타시각으로 통합하 면서도 그 관점들의 가치를 여전히 보존하게 하는 구조이다.
여기에 위계적인 의미는 없으며 오히려 각 분위의 가치는 가장 높은 메타시각에 참여하는 방식 으로 더욱 높아진다. 이것은 전통적인 일승사상과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다.
즉 법화경에서 ‘일승으로서의 보살승’인 대백우거(大白牛車)가 각각 성문 승·연각승·(방편으로서의)보살승인 양거(羊車)·녹거(鹿車)·우거(牛車)를 넘어 서면서도 포용하는 것과 같은 구조이다. 14)
14) 華嚴五教章名目 (T2338, 72:280a24-26): 四車者 一. 羊車聲聞乘也 二. 鹿車縁覺乘也 三. 牛車權教菩薩乘 也. 四. 大白牛車一菩薩乘.
일승의 구조에서는 가장 하위인 법 문을 통해서도 일승과 같은 깨달음을 얻는다.
상위 분위가 나타내는 바를 하위 분위가 온전히 포함하는 이런 구조는 무한소에 무한대를 담을 수 있는 화엄 경의 반영이다.
이런 화엄경의 “하나하나의 털구멍 가운데에 무량한 여러 불찰(佛刹)이 있다”15)는 입장은 지엄의 화엄일승십현문이나16) 의상(義湘, 625-702)의 화엄일승법계도의 일(一)과 다(多)의 구조에서 확인된다. 17)
15) 大方廣佛華嚴經 卷9 「初發心菩薩功徳品」 (T0278, 9:456b11): 一一毛孔中 無量諸佛刹.
16) 華嚴一乘十玄門(T1868, 45:514b17-20): 一者一中多多中一... 二者一即多多即一.
17) 華嚴一乘法界圖(T1887A, 45:711a10-12): 一中一切多中一 一卽一切多中一.
이것 은 가장 낮은 관점이 더 큰 관점에 의해 포용되지만 결국은 가장 낮은 관점도 가장 큰 관점과 같은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서, 여기에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순환의 고리가 나타난다.
2. 화엄오십요문답의 3교판과 4교판
1) 알라야식과 여래장의 문제
대승은 소승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되었지만, 이론상으로는 ‘큰 수레’라는 명칭과 같이 소승을 포용해야 한다.
이러한 일승에 대한 자각은 인도의 화엄 경이나 법화경에서 시작되었지만, 그에 대한 체계화는 동아시아에서 이루 어졌다.
지엄은 섭대승론의 소승교·삼승교·일승교의 3교판을18) 화엄오십 요문답에 그대로 가져와 일승교를 논한다. 19)
18) 기무라 키요타카, 정병삼 역 2005. 97. 기무라 기요타가는 이 3교판의 기원이 攝大乘論(T1595, 31:132c)과 세친 석의 攝大乘論釋(T1595, 31:265b-266c)에 있다고 보았다.
19) 여기서 ‘대승’을 굳이 ‘삼승’이라고 한 것은 ‘삼장을 모두 갖춘 대승’이라는 대승의 완벽성을 강조하 기 위한 것이라고 보인다. 법장은 華嚴五敎章에서 普超三昧經을 인용하여 “대승 중에도 삼승이 있으니 성문장·연각장·보살장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華嚴一乘教義分齊章 (T1866, 45:479b06-07): 此大乘中亦有三乘. 則爲三藏. 謂聲聞藏・縁覺藏・菩薩藏. 삼승(三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보살승이 아닌 대승’을 혹은 ‘성문과 연각을 배타적으로 포함한 대승’의 의미를 강조하려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표 2> 화엄오십요문답의 3교판과 4교판 : 생략 (첨부 논문파일 참조)
또한 여기서 지엄은 3교판을 변형한 4교판의 이론을 제시한다. 당시는 인도 에서 귀국한 현장(玄奘, 602-664)이 성유식론을 편역하여 계현(戒賢, Śilabhadra, 529-645)의유상유식(有相唯識)을 법상유식(法相唯識)의 형태로 전파할 때였다.
이에 따라 동아시아에서는 법상유식과 섭론종(攝論宗), 대승기신론의 사상 이 모두 알라야식과 여래장이라는 개념을 공유 혹은 배척하면서 애매한 상태 로 공존하게 되었다.
지엄은 4교판에서 삼승교를 시교(始敎)와 종교(終敎)로 나 누었는데, 시교는 염오성을 가진 다수의 법상(法相)을 위주로 하는 유식불교 내의 어떤 흐름을 말하고, 종교는 순수성을 가진 단일한 진여를 위주로 하는 섭론종과 대승기신론등에 보이는 관점이다.
여기서 지엄은 대승기신론 에 따라 생멸문과 진여문을 구별하고, 그것을 각각 시교와 종교로 배대하되 알 라야식 위주의 시교를 진여 위주의 종교보다 하위 단계에 두어 일종의 제한을 가하였다. 20)
20) 大竹晉 2000, 49. 이러한 이유로 오다케 스스무(大竹晉)는 지엄을 ‘최후의 섭론학자’로 본다.
그러나 동시에 종교의 관점도 일승교의 하위 단계에 둠으로써 제 한을 가하였다. 이것은 두 법문을 염오성과 순수성, 혹은 다수성과 단일성의 양극단적인 대립으로 본 것이다. 시교는 개별물의 상(相)에 대한 집착을 일으 킬 수 있는 반면, 종교적인 입장은 유일한 진리와 그것을 담지한 실체인 일자 (一者)에 대한 법집을 일으킬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불교적인 중도를 벗어난 악순환을 일으키는데, 지엄은 이런 대립을 회통하고 넘어서는 새로운 관점인 일승교를 제시한다.
그의 제자인 법장은 시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시교에 의한다면 알라야식에 있어서 단지 한 쪽 부분인 생멸의 의미를 얻을 뿐이다. 이것으로는 진리에 있어서 아직 능히 융섭하지 못하고, 단 지 응연하여 제법을 만들지 못한다는 것을 말할 뿐이다. 그러므로 연기 의 생멸 중의 사(事) 중에 알라야식을 건립할 뿐이다. 21)
21) 華嚴一乘教義分齊章(T1866, 45:484c12-15): 若依始教. 於阿頼耶識. 但得一分生滅之義. 以於眞理未能 融通. 但説凝然不作諸法. 故就縁起生滅事中建立頼耶.
시교는 아비달마적인 분열된 법상에 대한 집착에 떨어질 위험이 있는 반면, 종교는 다수의 상(相) 뒤에 있는 단일한 진리에 대한 통찰로서 거기서 벗어나 게 한다. 이것이 진여의 두 가지 뜻이다.
앞에서와 같이 시교는 법상(法相)의 차별 에 입각하여 단지 한 쪽 부분인 응연한 뜻을 말한 뿐이다.
이 종교는 체 (體)와 상(相)이 서로 용융(鎔融)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두 부분으로 나누 어 말하되 둘이 아니라는 뜻이다. 22)
22) 華嚴一乘教義分齊章(T1866, 45:485a20-23): 此眞如二義. 同前始 中約法相差別門故. 但説一分凝然義 也. 此終教中. 約體相鎔融門故. 説二分無二之義.
그러나 종교가 ‘실체로서의 진여’에 대한 법집을 일으킬 경우는 오히려 시 교의 현상 위주의 시각으로 보충받아야 한다. 여기서 시교와 종교의 위치는 역 전되는데, 결국 시교와 종교는 악순환적인 뫼비우스의 띠에 갇히게 된다. 지엄 은 이것들을 불이법문적인 일승교로서 초월하면서 동시에 포용하는 방법을 취한다.
우선 염오성과 다양성을 가진 시교의 법상들이 가진 자성(自性)을 종 교가 가진 일원론적인 진여로 통일한 후, 그 진여의 자성 역시 부정해서 일승 교에 이루는 것이다.
여기서의 일승교는 시교와 종교를 위계적으로 초월하는 더 높은 단계가 아니라, 시교와 종교가 빠질 수 있는 양극단에 대한 중도의 입 장일 뿐이다.
일승교의 체계는 십현문(十玄門)·육상원융(六相圓融)과 같은 법 계원융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된다.
육상원융은 서로 다른극단들이 서로를 보 완하면서 하나의 맥락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시교의 법상이 가진 다 수성은 별상(別相)으로서, 종교가 가진 진여의 단일성은 총상(總相)으로서 서 로가 짝을 이루어 일승교를 설명하는 하나의 방편이 된다.
2) 공시교와 상시교의 문제
그런데 법장에 의하면 중관불교의 공사상도 시교에 속한다.
이것은 시교와 종교의 대립구조를 알라야식과 여래장의 대립으로 보는 것과는 다른 흐름을 보여준다.
이것은 공한 이치에만 입각하여 미진한 부분이 있는 교설이라서 시교(始 敎)라고 이름한다.
여래장의 상주함을 설하는 묘한 경전에 입각한 것을 종교(終敎)라고 한다. 23)
여기서의 문제는 중관의 공사상에 의해서 부정되는 개별물의 자성에 대한 것이다.
앞에서는 일(一)과 다(多)의 관계가 문제였다면, 여기서는 유(有)와 무 (無)의 관계가 문제된다.
이런 이유로 시교를 상시교(相始敎)와 공시교(空始敎) 로 나누기도 한다.
오다케 스스무(大竹晉)는 공시교와 상시교는 일본 화엄불교 계의 관행어이며 중국 측의 전거는 없다고 한다. 24) 그러나 그것은 법장의 대 승기신론의기의 4교판에서 설명한 진공무상종(眞空無相宗)과 유식법상종(唯 識法相宗)에 일치하므로 논리적 일관성에서는 문제가 없다. 25)
23) 華嚴一乘教義分齊章 (T1866, 45:48c04-06): 此則約空理有餘. 名爲始教. 約如來藏常住妙典. 名爲終教.
24) 大竹晉 2007, 35.
25) 大乘起信論義記 (T1846, 44:24b23-27): 宗途有四. 一隨相法執宗. 即小乘諸部是也. 二眞空無相宗. 即般 若等經. 中觀等論所説是也. 三唯識法相宗. 即解深密等經. 瑜伽等論所説是也. 四如來藏縁起宗. 即楞伽密嚴 等經.
여기서 시도된 4 교판은 <표 3>에서 보는 것과 같이 나누어진다.
<표 3> 대승기신론의기의 4교판 : 생략 (첨부 논문파일 참조)
이것은 진공무상종에 의해 부정된 부파불교의 상들이 유식법상종에 의해 다시 인식의 상으로 긍정되는 방식으로서, ‘유-무’의 상호 보완의 연쇄를 보여 준다.
이로써 교판에는 <표 4>에서 보는 두 흐름이 나타난다.
<표 4> 시교와 종교를 중심으로 한 두가지 흐름 : 생략 (첨부 논문파일 참조)
여기서 ‘소승교-공시교-종교’의 흐름은 유와 무의 상호 연쇄이지만, ‘소승 교-상시교-종교’의 흐름은 다소 복잡하다.
우선 ‘소승교-상시교’의 흐름만 본 다면, 소승교는 부파불교의 개별적인 다르마들이 가진 다원성의 측면이며 상 시교는 알라야식을 중심으로 하는 일원성의 측면이다. 26)
26) 다케무라 마키오, 정승석 역 1989, 101. 다케무라 마키오(竹村牧男)는 아비다르마를 법다원론(法多 元論)으로 보았고, 유식을 식일원론(識一元論)으로 보았다.
그런데 ‘상시교-종 교’의 흐름만을 본다면 상시교는 다수의 법상의 측면이며 종교는 진여의 일원 성의 측면이다. 상시교의 알라야식은 다르마의 체계에 비하면 일원론적이지 만, 진여에 비하면 다수의 법상과 같은 구조이다. 여기서는 다원성과 일원성의 상호 연쇄가 나타난다.
3) 소승교에서 종교까지의 교판 체계
소승교부터 종교까지의 구조는 단일성과 다수성, 염오성(현실성)과 청정성 (초월성), 무와 유가 서로 교차하면서 서로를 보완해 주는 구조이다.
여기서는 한 분위가 더 높은 분위에 극복되는 구조만이 아니라, 양극단의 특성들이 서로 상호 연쇄하는 또 다른 구조가 보인다.
<표 5> 소승교·시교·종교의 다중적인 구조 : 생략 (첨부 논문파일 참조)
교판은 대극들이 서로를 보충해주는 선순환의 뫼비우스의 구조이며, 또한 대극끼리의 무한 순환에 빠진 악순환의 뫼비우스의 구조를 불이법문으로 초 월하는 구조이다.
이것은 단순한 일직선상의 위계 구조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 를 보충해주는 입체적인 인드라망과 같은 구조이다.
비록 광협(廣狹)의 차이가 있지만 교판의 각 분위는 하나의 법계로서 전체적인 법계원융에 중첩적으로 참여한다. 즉 교판의 각 분위가 하나의 법계라는 것이며, 교판의 전체 구조는 법계원융과 같은 구조이다.
여기서 일승교는 하나의 개별적인 분위가 아니고 이런 구조를 전체적으로 관조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3. 공목장의 5교판
1) 돈교와 불이법문(不二法門)
지엄은 마지막 저서인 공목장에서 ‘점교-돈교-원교’(교판①)의 교판에 ‘소승교-삼승교-일승교’의 교판(교판②)을 삽입하는 방식으로 ‘소승교-시교종교-돈교-원교’의 5교판(교판③)을 완성한다. 27)
여기서 교판③의 점교는 교 판②의 소승교와 삼승교를 합한 분위이고, 교판③의 돈교는 교판②에만 있는 60 불교학연구 제79호 분위이고, 교판③의 원교는 교판①의 원교와 교판②의 일승교를 같은 것으로 보아서 합친 분위이다.
<표 6> 공목장과 그 이전 교판 비교28) : 생략 (첨부 논문파일 참조)
지엄은 수현기에서 돈교를 “그 취지는 깊고 현묘하여, 다시 다른 것에 말 미암음이 없는 것을 돈(頓)이라고 한다”고 하였고, 29) 점교(漸敎)를 “수습을 시 작한 사람에게 방편을 시설하고 삼승을 열어서 이끌고 교접하는 교화를 생하 고 얕은 곳에서 깊은 곳으로 순서대로 피안에 오른다”30)고 하였다.
그러므로 소승교와 삼승교를 점교로 보고 그것을 넘어서는 관점을 돈교로 보았다. 본래 그에 의하면 돈교는 유마경의 불이법문이지만, 31) 당시 홍인(弘忍, 601-674) 에 의해 대두되던 돈문(頓門)인 동산법문(東山法門)의 선불교를 끌어들여 교판 에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32)
화엄논사들이 선불교를 돈교로 여긴 것은 여 러 전적에서 확인된다. 법장은 “다만 한 생각 나지 않으면 곧 부처이기 때문이 다”33)라고 하였으며, 청량징관은 “정(情)이 다하면 이치가 현현하니, 이것을 부처를 짓는 것이라 이름한다.
이는 선종을 따르니 사리무애법문이다.”34)라고 하였고, 선종 측에서도 “유마의 한 침묵은 우레와 같다”35)고 하여 자파의 사상 을 유마경의 불이법문과 유사한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27) 실제로는 지엄은 공목장에서는 시교와 종교 대신 초교(初敎)와 숙교(熟敎)라는 용어를 사용하였 는데, 실제적으로 이 두 용어는 같은 의미이다.
28) 박수현 2022, 65.
29) 大方廣佛華嚴經搜玄分齊通智方軌 (T1732, 35:15c02-03): 其趣淵玄 更無由藉以之爲頓.
30) 大方廣佛華嚴經搜玄分齊通智方軌 (T1732, 35:15c03-05): 所言漸者. 爲於始習施設方便. 開發三乘引接 之化. 初微後著. 從淺至深. 次第相乘以階彼岸故.
31) 華嚴經内章門等雜孔目章(T45, p.558c23-24): 頓教門者. 如維摩經不二法門品. 維摩直默以顯玄意者是.
32) 이부키 아츠시, 최연식 역 2005, 51. 이부키 아츠시(伊吹敦)도 이 돈교는 지엄 당시 대두되던 선종을 의식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33) 華嚴一乘教義分齊章 (T1866, 45:491a5-6): 但一念不生即是佛故.
34) 大方廣佛華嚴經隨疏演義鈔 (T1736, 36:224a21-22): 情盡理現即名作佛者. 此順禪宗即事理無礙門也.
선불교의 일물(一物)에 대한 서사는 불이법문으로서의 돈교로서의 성격을 잘 나타내준다.
선불교는 일물에 대한 집중을 통해서 ‘그것이 과연 집착할 만 한 실체를 가진 것인가’에 대한 통찰을 얻는 방법을 취한다. 달마도 마음이 괴 롭다는 혜가에게 “너의 마음을 가져오면 편하게 해주겠다”고 대답했다. 36)
그 리고 회양은 일물(一物)이 무엇인가라는 혜능(慧能, 638-713)의 질문에 대해서 “설령 일물이라고 해도 맞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 37)
이것이 종교(終敎)에 서 주장하는 ‘진여나 일심 역시 취착할 수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원교와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실체인 일물을 직지인심(直指人心) 교외별전(敎外別傳)을 통해서 전달할 수 있는 것으로 본다면 종교의 단계에 머 물러 있는 것이다.
선불교에는 항상 이런 경향이 나타났으며, 그에 따라 마츠 모토 시로(松本史朗)의 비판 등에 노출되기도 했다.38)
35) 竺僊和尚語録 (T2556, 80:396b17-18): 維摩一默如雷霆.
36) 指月錄(X1578, 83:438b01-03): 可曰, 我心未寧, 乞師與安. 祖曰, 將心來與汝安. 可良久曰, 覔心了不可 得. 祖曰, 我與汝安心竟.
37) 禪家龜鑑 (H0138, 7:634c10-635a03): 六祖告衆云, 吾有一物, 無名無字, 諸人還識否. 神會禪師即出曰, 諸佛之本源神會之佛性. 此所以爲六祖之孽子也. 懷讓禪師, 自嵩山來. 六祖問曰, 什麽物伊麽來 師罔措. 至八 年, 方自肯曰, 說似一物 即不中. 此所以爲六祖之嫡子也.
38) 마츠모토 시로(松本史朗)는 그의 저서 禪思想の批判的硏究에서 실체화된 선불교의 진리 내지는 내면의 주체에 대한 여러 가지 비판을 가한다. 그는 기체로서의 불성에 대한 주장을 불성내재론과 불성현재론으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전자는 ‘불성, 곧 진리가 중생 속에 여래장의 형태로 내재해 있다’는 입장이라고 말하고, 불성현재론을 ‘현상 자체가 곧 진리라는 절대적 일원론’의 입장이라 고 설명한다. 이것은 선불교에서 말하는 내재적인 불성 혹은 진리 자체인 평상심 양쪽 모두에 대 한 비판으로 볼 수 있다. (마츠모토 시로 1994, 589-591 참조) 또한 그는 삼예논쟁에서 선불교를 대 표해서 논쟁한 마하연의 주장이 여래장을 근본으로 한 것이라고 설명하였고 (위의 책, 6-9 참조), 임제선(臨濟禪)에서 깨달음의 대상이자 주체로 상정되는 무위진인(無位眞人)은 아트만일 뿐이라 고 주장하였다 (위의 책, 226-271 참조)
이런 약점이 존재하는 이유로 돈교는 원교와 종교 사이의 애매한 경계에 있게 된다.
2) 5교판 안에 숨어 있는 다중의 구조
이런 5교판은 다양한 작은 교판들이 중첩되어서 전체성 안에서 하나로 융회되는 중중무진(重重無盡)의 다중 구조이다.
이것은 서로 대극(對極)을 이루는 두 가 지 모순된 관점들을 원교라는 틀 안에서 서로서로를 보완하고 극복하는 체계로 융합시킨 것으로서, 두 분위의 관계로만 보면 대승기신론에서 두 법문이 일심 으로 융합하는 것과 유사한 구조이다.
그러나 단순한 두 대극의 융합이 아니라 다 양한 관점들이 서로를 융합할 수 있는 더 큰 관점에 포함되면서 연쇄적인 고리를 형성한다.
<표 7> 5교판에 나타난 다층적인 교판의 중첩 구조39) :생략 (첨부 논문파일 참조)
이렇듯 교판은 다양한 관점들이 서로 융합할 수 있는 다중의 법계들을 다시 더 큰 틀 안에서 융합시키는 구조이다.
원교는 다만 열려있는 시각일 뿐, 유일 한 기준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화엄경의 “하나하나의 털구멍 가운데에 무량한 여러 불찰(佛刹)이 있다”40)는 표현은 이런 법계의 중첩을 설명한다.
39) 박수현 2022, 68.
40) 大方廣佛華嚴經 卷9 「初發心菩薩功徳品」 (T0278, 9:456b11): 一一毛孔中 無量諸佛刹.
III. 법계원융과 ‘모든 것’을 설명하는 원리
1. 다중(多重) 법계의 중첩과 법계원융
화엄의 사상은 화엄(華嚴)이라는 ‘단 하나의 일진법계(一眞法界) 안에서 모든 것이 긍정되는 것’이나 ‘화려한 부처의 세계 자체가 모든 것으로 표현되는 것’으로 생각되기도 하며, 같은 맥락으로 법계원융은 ‘모든 것이 무차별한 진 리의 담지자와 합일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결국 이 세상은 다양성의 의미가 없어져서 ‘유일하게 진실한 것 하나’만이 존재하게 되며, 일진법계는 독존하는 푸루샤(puruṣa)나 언어를 초월한 브라흐만과도 유사하게 되고, 화엄 은 현상의 다양함을 그저 환각으로만 여기는 폭력적인 일원론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화엄의 법계원융은 다양한 관점을 인정하고 어떠한 관점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일단 법계의 뜻에 대해 정의를 내려야 한다. 징관은 법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법이란 법칙을 가지고 자성을 지닌다는 뜻이다. 계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사(事)에 입각하여 설명하면 계(界)는 분한의 의미이니 사에 따라 서 분별하는 까닭이다.
둘째는 성(性)의 뜻이니 이법계에 입각한 것이다.
여러 법의 성(性)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41)
법계는 하나의 주관적인 시각의 한도 내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즉 인식 주관에 의해 관찰되는 일군의 현상이 있고 그것이 일관된 법칙의 맥락에서 설 명될 수 있을 때 그것을 법계라고 한다. 그러므로 법계는 경계(境界)나 분제(分 齊)의 의미와 같다. 하나의 사(事)를 중심으로 어떠한 경계를 가진 현상이 인식 되는데, 그 현상은 그에 맞는 한 가지 법칙, 즉 리(理)에 의해 설명될 수 있는 일 련의 사건이다. 사(事)라는 것은 하나의 관점이나 가치관이 가지는 중심을 말 하며, 그런 관점에서 보는 여러 가지 경계들이 하나로 융화하는 것이 법계원융 이라고 할 수 있다. 까르마 츠앙도 계(界)를 어떤활동이나 사상, 혹은 영향력이 미칠 수 있는 어떤 한계를 가진 영역으로 보았다. 42)
41) 大華嚴經略策 (T1737, 36:707c10-12): 法者軌持爲義. 界者有二義. 一約事説界即分義. 隨事分別故. 二者 性義約理法界. 爲諸法性不變易故.
42) 까르마 츠앙, 이찬수 역 1990, 60.
이런 해석 하에서 법계원 융은 다양성의 조화나 더 넓은 세계로의 열림으로 해석될 수 있다.
법계원융은 이런 다중의 법계가 중첩되어 서로 모순되지 않게 하나로 융화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다중의 중첩관계는 불교에서 낯선 것이 아니며, 일수사견 (一水四見)과 같은 식으로 폭넓게 설해졌다.
하나의 유정에게 인식되는 세계는 하나의 법계이다.
하나의 강물을 네 가지의 다른 유정이 볼 때 그것이 각기 다 른 방식으로 인식되지만 각자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옳다. 이것은 네개의 다른 법계가 중첩적으로 공존하는 것이다.
2. 대반열반경의 ‘맹인의 코끼리 만지기’ 비유
교판의 각 분위는 하나의 법계에 해당하며, 그것들이 원융하는 상태는 원교 나 법계원융으로 표현한다.
만약 하나의 관점에서 나온 ‘부분으로서의 법계’ 가 다른 ‘부분으로서의 법계’와 조화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허망분별이 된다.
하나의 법계가 법계원융에 참여하는가 그렇지 못한가의 문제는 대반열반 경의 ‘맹인 코끼리 만지기의 비유’와도 관계되며, 43) 산자야(Sañjaya)의 회의 주의와 자이나교의 스야드바다(syādvāda)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어떠 한 진리도 ‘그 자체로서는 진리라고 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회의주의와 유사 하며, 그 진리는 ‘어떠한 관점에서는 맞다’고 말해질 수밖에 없으므로 syādvāda 와 유사하다. 그러나 산자야의 사상은 진리 자체를 의심하는 회의주의일 뿐이 며, syādvāda는 ‘전체’를 설명하기 위해서 부분들을 모으는 체계일 뿐이다. 화 엄의 법계관은 회의주의와는 달리 진리의 확실성을 주장하며, syādvāda와는 달리 모든 관점을 진리의 일부로 취하지는 않는다. 44)
43) 大般涅槃經 (T0374, 12:556a10-19).
44) 가령 ‘코끼리의 귀는 기둥과 같다’와 같은 언급은 거부되어야 한다. 어떠한 관점을 중심으로 한 법 계가 진실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관점을 중심으로 한 다른 법계와의 ‘한계의 설정’과 ‘위치 지움’을 통해서 법계원융에 참여함으로써만 가능하다.
모든 관점은 한계를 가진 관점이므로 각각의 상황에 따라 은(隱)과 현(顯)이 필요하고 주(主)와 반(半)이 필요하다. 상황에 맞는 관점이 현(顯)과 주(主)의 역 할을 할 때에, 상황에 맞지 않는 관점은 은(隱)과 반(伴)의 역할을 한다. 변화하 는 법계의 외연과 중심점에 맞추어서 하나의 관점을 채택할 때는 다른 관점은 숨어야 한다.
화엄의 원교나 일승교는 이러한 은현과 주반이 자재하게 원융하 면서 방편으로 설정된 임시의 ‘전체’를 설명해주는 역할을 한다.
마찬가지로 교판의 구조 역시 각 분위들이 서로서로 자재하게 원융하면서 불교적인 진리 를 드러내는 도구로서의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교판은 모든 모든 관점을 회통 하는 법계원융의 구조이다.
이것은 하나의 사(事)에서 보이는 부분적인 진리 들이 서로 원융하면서 그때마다 가장 적절한 진리를 드러내는 사사무애의 구 조와 유사하다.
여기서는 부분적인 진리가 곧 전체의 진리와 같다.
마치 법화 경에서 양거(羊車)·녹거(鹿車)·우거(牛車)가 모두 대백우거(大白牛車)와 동등 한 가치를 가진 것과 같다. 45)
전체의 시각으로서의 원교는 다만 도추(道樞)로 서의 역할만을 할 뿐이며, 46) 시의적절하게 드러난 부분적 시각일 뿐이다. 교판 의 각 분위도 서로가 ‘한계의 설정’과 ‘위치 지움’을 통해 전체의 진리를 드러 내며, 원교와 동등한 위치가 돼서 ‘각각의 상황에서의 최고 진리’를 설명해준 다.
화엄에서 말하는 주(主)와 반(伴)의 원융은 이런 ‘부분의 진리’들이 ‘전체의 진리’를 대신하는 것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 지혜를 취하여 하나를 들어 머리로 삼으면 나머지들은 반(伴)이 된다.
그 머리를 든다는 것은 곧 중심에 해당하니 나머지 것들은 그 권속이 되 어 에워싼다. 위에서 말한 교의(敎義) 등과 같이 모두 이와 같이 자재하게 이루어질 뿐이며, 또한 앞에서 말한 상입상즉이 이와 같이 자재한 것이 다.
모두 이와 같이 온갖 일체법을 거두어들이고 무궁한 법계가 모두 인 드라망을 이루는 것이다. 47)48)
45) 妙法蓮華經 (T0262, 9:12c8-11): 汝等所可玩好希有難得. 汝若不取後必憂悔. 如此種種羊車鹿車牛車今 在門外. 可以遊戲. 汝等於此 火宅宜速出來. 隨汝所欲皆當與汝.
46) 도추(道樞)는 莊子 「齊物論」에 나오는 개념이다. 그것은 어떤 특정한 실체를 가진 것은 아니며, 부분적인 모든 것을 전체적인 시각 안에서 조화시키는 방편적인 역할을 할 뿐이다.
47) 華嚴一乘教義分齊章 (T1866, 45:506b05-10): 隨其智取. 擧一爲首餘則爲伴. 據其首者即當中. 餘者即眷 屬圍繞. 如上教義等. 並悉如是自在成耳. 及前相即相入自在等. 皆悉如是攝一切法無窮法界並悉因陀羅成也.
48) 이러한 설명은 무한한 우주에는 중심이 없으므로 우주 속의 어느 위치이든지 중심이 될 수 있다는 니콜라스 쿠자누스(N. Cuzanus, 1401-1464)의 무한 이론과 외형상으로 유사해 보일 수 있다. (엘리 마오, 전대호 역 1997, 269. 참조) 그러나 화엄의 주반 이론은 이런 기체(基體)가 되는 무한을 전제 로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우리의 인식주관과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한계 안의 객관적 세계에 대 한 설명법을 찾을 뿐이며, 다만 인식에 드러나는 세상이 계속해서 변한다는 측면에서 무량을 말할 뿐이다. 마치 불교의 14무기(無己)가 ‘우주의 시‧공간상의 영원성’ 같은 무한까지 우리의 좁은 경 험을 바탕으로 허망분별해 내는 것을 경계하는 것과 같다.
각각의 관점은 ‘전체에 적용되는 옳은 것’이 아니라, ‘어떠한 한계 안에서 옳 은 것’이다. 전체라는 것은 항상 유동적이므로 법계가 변화하면서 ‘부분을 설 명했던 원리’가 일시적으로 ‘방편적으로 전체를 설명하는 원리’로 바뀌었다 가 다른 관점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모든 관점들은 방편일 뿐이지만, 유동하는 좌표계의 외연과 중심에 따라 바르게 취한다면 그 상황에서의 가장 유용한 방 편이 된다. 여기서는 부분이 전체를 포월하는 관계가 형성된다. 그러나 어떤 특정한 부분의 진리가 전체의 진리를 독점할 수 없으므로 진리 자체는 무주처 (無住處)의 입장이다.
3. 더 큰 법계로의 포월
화엄의 교판에서 종교(終敎)에 어떠한 제한을 두는 것은 ‘전체의 진리’와 관 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 전체라는 것이 고정적인 실체로 파악된다 면 불교적 입장에서는 법집(法執)이라 할 것이다.
전체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 으며, ‘이것이 전체이다’라고 지정하는 순간 그것은 ‘전체’라는 이름을 가진 부분이 된다. 49)
49) 고승학 2017, 407. 고승학도 ‘전체’라는 것이 우리 밖의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화엄의 문 헌들이 강조한다고 말한다.
이때 인식주체는 자신에게 드러난 현상에만 적용되는 부분적 인 원리를 일체(一切), 즉 모든 현상 ‘전체’에 적용되는 보편적인 원리로 착각 하여 실체론적인 원리로 여긴다.
그러나 화엄은 ‘전체의 원리’를 부정하는 대 신 지금 상황에서의 ‘부분의 원리’들이 서로서로 융회하면서 인식대상들을 일관되게 설명한다. 즉 무량한 경계로 열려있는 부분들만이 존재할 뿐이지, 전체라는 것은 없다. 고정된 ‘전체’라는 것이 없으므로 인식주체는 항상 새로 운 경계를 가진 법계를 마주하게 되며, 인식주체는 그것을 다시 다른 법계들 과 원융하도록 해야 한다. 이런 원융이 가능한 인식주체의 열려있는 시각 자체가 원교라고 할 수 있다.
화엄교판에서는 후행하는 분위는 선행하는 분위 를 포월하지만, 그 분위 역시 다시 그것에 후행하는 분위에 의해서 포월된다. 이런 포월은 가장 상위체계에서 끝나는 닫힌 체계가 아니라 현상의 변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열려 있는 과정이다.
조배균도 칼 야스퍼스(Karl Jespers, 1883-1969)의 ‘das Umgreifende(包越者)’의 개념을 이용하여 “존재를 완결된 전체로서는 절대로 파악할 수 없다고 보며, 존재를 ‘무한히 열려진 전 체’로 보아야 한다”고 하면서 그런 구조는 화엄의 법계론과 유사하다고 주장 한다. 50)
이것은 작은 법계들[낮은 단계의 분위들]이 더 큰 범위의 법계[일승이 라는 높은 분위]로 포월되는 일승사상과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그 큰 법계도 자성이 없으므로 더 넓은 분위로 포월된다. 이렇게 ‘전체’라고 확정지워질 수 없는, 계속해서 새로워지는 끝을 알 수 없는 현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들 이 계속 생겨나지만, 그것들을 원교의 입장에서 포용한다. 이런 구조는 과학 이론의 포용성과도 유사하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뉴턴의 고전역학 이 한계에 이르렀을 때 그것을 대체해서 나왔다.
그러나 고전역학을 완전히 부정하고 나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의 가치를 그대로 인정한 상태로 더 큰 범위에서 포용한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이것을 ‘낡은 곳간을 헐어버리고 새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닌, ‘산을 오르면서 더 넓은 시각에서 보는 것’이라고 비유한다. 51)
50) 조배균 2019, 194.
51) A. Einstein and L. Infled 1938, 159.
상위 법계가 하위 법계를 포월할지라도 하위 법계들의 가치가 줄 어들지 않는다.
4. 부분이 전체를 설명하는 재귀 순환의 구조
여기서부터는 반대로 상위 분위가 하위 분위에 포용되는 일승의 문제를 다 룬다.
앞에서 설명한 포월의 문제는 두 가지 난점이 있다.
첫째는 더 큰 법계를 찾아가는 것은 결국 무한소급의 오류에 빠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불교에서는 절대 피해야 하는 오류 중의 하나이다.
또한 이런 포월이 계속된다면 그런 구조는 개방적일 수는 있지만 여전히 위계적일 것이다.
둘째는 모든 법계를 포괄 하는 더 큰 법계는 자신의 법계 역시 포괄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인 러셀(B. Russel, 1872-1970)의 ‘이발사의 역설(barber paradox)’에 빠진다는 것이다. 52)
즉 모든 것을 포괄하는 관점이 그 ‘모든 것’ 안에 자신을 포함할 수 있는가 없는가 의 문제이다. 53)
52) 어떤 마을에 이발사가 하나 있는데 그는 ‘스스로 이발하지 않는 사람들’만 이발을 해 주는 사람이 다. 그는 스스로 자기 자신을 이발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스스로 이발하는 사람’까지 이발해 주 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스스로 이발하지 않는 사람’을 이발해 주지 않는 것이므로 어느 쪽을 택 해도 자기 정의에 어긋나게 된다. ‘모든 것을 포괄하는 법계’도 같은 딜레마에 빠진다.
53) 애머 액젤, 신현용‧승영조 역 2002, 200-205; 콘스탄스 리드, 이일해 역 1989, 133. 러셀이 제기한 이 런 딜레마로 인해서 많은 수학자들이 무한집합에 대한 연구를 포기했다.
이런 문제는 칸토어(G. Cantor, 1845-1918)가 무한집합이 더 ‘짙 은 농도’를 가진 더 큰 무한집합에 의해 포함되는 초한수(超限數)를 연구하다 가 부딪힌 문제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칸토어는 무한집합의 끝없는 연쇄의 마 지막에는 절대적인 신(神)을 만나게 된다고 주장하는데, 법계의 포월 역시 이 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위계론으로 끝날 수밖에 없게 된다.
포월이 비록 ‘전체’를 한정 짓지는 않지만, 무한(無限)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절대적인 경계를 지향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법계의 포월은 무한히 위쪽으로만 진행되지 않는다.
어떤 법계A와 법계B가 충돌을 하는 경우, 그것들은 넘어서는 메타시각으로서의 법계C를 설 정하여 포월적으로 넘어선다. 하지만 무한소에 무한대를 담을 수 있는 화엄 경의 철학에 따라 또 다른 경우에서는 법계C가 법계A와 법계B에 포월될 수 도 있다. 법계C의 포월은 다만 방편일 뿐이며, 다시 하위 법계 안으로 포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광장에서 인질극이 벌어졌다고 하자.
그 경우 북쪽에 있는 경찰A의 시점을 법계A라고 할 수 있고, 남쪽에 있는 경찰B의 시점을 법 계B라고 할 수 있다. 두 경찰에게 다른 정보가 들어오는 것은 그들이 처한 법계 가 다른 까닭이다.
이때 드론을 띄워서 모든 상황을 종합해서 살펴보면 법계C 에 해당하는 정보가 들어 온다.
현재로서는 법계C의 관점이 원교로서의 역할 을 하고 있지만, 이런 역할은 수시로 바뀔 수 있다. 경찰A나 경찰B에서 보는 상 황이 드론에서 보는 상황을 설명해주는 역전된 상황도 생길 수 있다.
이것은 더글러스 호프스태터(D. Hofstadter)가 그의 저서 괴델, 에셔, 바흐–영원한 황 금노끈에서 말한 ‘재귀순환구조(Recursive structure)’와 관련된 것이다.
그는 이런 순환구조를 ‘이상한 고리(Strang Loops)’ 혹은 ‘헝클어진 위계질서(Tangled Hierarchies)’로 표현하는데, 54) 이것은 원교와 그 하위 분위와의 관계와 유사하 다.
54)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박여성 역 1999, 880-926.
법계원융에서 포월과 재귀순환이 동시에 나타나는 것은 법계원융이 ‘무한 이라는 절대 세계’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에 드러나는 끝없이 변화하 는 대상에 대한 취착을 일으키지 않고 그것을 관조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화엄의 원교는 중관의 공과 같이 자성에 대한 집착을 버리게 하는 가명(假名) 이자 방편일 뿐이지 그 자체로서 실체를 가진 것이 아니다.
상위 법계는 방편 으로 설정된 것일 뿐이며, 그 상황에 가장 절실한 부분적인 진리가 그 상황에 서 모든 것을 설명한다.
이것은 징관의 사종법계에서 리(理)가 사(事)들을 설명 하는 방편으로 사용되다가 종국적으로는 사사무애법계에서 다시 사(事)로 돌 아가는 것과 같다.
IV. 교판의 한계와 사종법계설로의 전환
전술한 바와 같이 교판은 각 분위의 배열을 통하여 인식주관의 지평을 좁은 관점[狹]에서 넓은 관점[廣]으로 확대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교판은 종교·돈 교·원교의 분위에 획일적으로 진여의 관점, 선불교의 관점, 화엄의 관점을 배 대한 것은 아니다.
법장은 대승기신론이 절언진여(絶言眞如)와 의언진여(依 言眞如)의 측면을 모두 가지므로 돈교의 성격이 있다고 보았고. 55)
지엄도 유 마경의 불이법문이 원교까지 이른다고 하였다. 56)
55) 華嚴一乘教義分齊章 (T1866, 45:481c06-07): 此則約空理有餘. 名爲始教. 約如來藏常住妙典. 名爲終教. 又起信論中. 約頓教門顯絶言眞如. 約漸教門説依言眞如.
56) 大方廣佛華嚴經搜玄分齊通智方軌 (T1732, 35:14b24): 此經即頓及圓二教攝.
이것은 교판이 학파 간의 우열이 아닌 관점의 좁음과 넓음을 설명하는 체계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실재하는 학파의 이름을 각 분위의 명칭으로 사용한 것은 교판이 위계의 체계라는 오해를 화엄불교의 안팍에서 끊임없이 일으켰다. 특히 소승교의 내용이 오직 법상에 대한 분별일 뿐이라고 한 것은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57)
57) 교판에서는 소승교의 분별이 정세속(正世俗)인지 사세속(邪世俗)인지 분명하지 않다.
만약 정세속 만 있다면 환망분별인 사세속을 설명하지 못하며, 사세속만 있다면 소승교는 교판의 취지와는 달 리 진리가 아닌 것이 된다.
그리고 화엄교 는 오직 원교일 뿐이라는 오해 역시 일으켰다. 이런 문제 때문에 교판은 한계 를 드러내게 되는데, 결국 징관의 사종법계설로 대체된다.
여기서는 각 분위의 명칭을 실제 존재하는 학파의 명칭으로 하지 않고, 그 대신 원리[理]와 현상[事] 라는 철학적 개념으로 대체하였다.
징관은 화엄법계현경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전체적으로 사종법계를 갖추고 있다. 즉, 사법계(事法界), 이법계(理法界), 이사무애법계(理事無礙法界), 사사무애법계(事事無礙法界)이다. 58)
58) 華嚴法界玄鏡 (T1883, 45, p.672c10-13): 言法界者 一經之玄宗. 總以縁起法界不思議爲宗故. 然法界之 相要唯有三. 然總具四種. 一事法界. 二理法界. 三理事無礙法界. 四事事無礙法界.
사법계에서는 인식주체의 허망분별로 인하여 개별적인 자성(自性)을 가지 고 서로 대립 분열하는 사(事)만을 인식한다. 여기서는 인식 대상 하나하나가 집착의 대상이 된다.
이법계는 그런 허망분별을 제거해 주고 인식대상 전체에 통일성과 연결성을 부여하는 체계이며, 집착 가능한 개별물의 자성을 부정하 는 공(空)이나 유식무경(唯識無境)과 같은 방편의 체계이다.
여기서는 집착의 대상이 되는 사물의 개별성은 부정된다. 그러나 그런 집착을 제거하기 위해 가 설된 체계가 초월적인 진리로 오해되면서 법집을 일으키게 되어 단멸공(斷滅 空)이나 식일원론(識一元論) 등에 빠지게 된다.
이것들도 현상과 분리된 실체 를 가리키는 것이 아님을 지적해주는 것이 이사무애법계의 단계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리(理)라는 절대 진리와 사(事)라는 현상은 대극으로서 분별된다.
사 사무애법계에서는 리(理)라는 방편을 버리고 다시 현상을 현상으로 여실지견 (如實知見)하는 단계에 이른다.
최종 단계인 사사무애법계는 현상의 상태인 사 법계와 같은 사(事)를 내용으로 한다는 점에서 최고의 진리마저 집착의 대상 이 아님을 말하며, 이사무애에서 진리 자체로 여겨지던 리(理) 역시 사(事)에 대한 집착을 제거하는 방편의 역할을 한 후에는 스스로 사라진다.
이것을 그림 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표 8> 사종법계설의 구조59) :생략 (첨부 논문파일참조)
사종법계의 체계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최고의 진리가 최하의 상태와 연결 된다. 사사무애법계 자체 역시 집착 가능한 절대적인 진리로 여겨져서는 안된 다.
그것은 무주처(無住處)이기 때문에 집착 되어질 수 없고, 만약 집착된다면 즉시 하위 단계로 전락한다.
즉 사사무애법계라는 알음알이를 가지고 그것을 대하는 순간, 우리는 사사무애법계가 아닌 그 아래로 전락한 다른 법계를 보게 되는 것이다. 60)
59) 박수현 2014, 43.
60) 아라키 겐고, 심경호 역 2000, 47-48. 아라키 겐고에 의하면 이 전락(顚落)이라는 개념은 사종법계 설에서 리(理)와 사(事)의 내용과 관련되는 중요한 내용이다. 어떠한 진리의 체계도 그 자체로서는 현상과의 간극인 장벽[礙]를 가지지 않는다. 리(理)의 내용이 작위적으로 설정된다면 사리무애의 법계는 사리유애의 법계로 전락해 버린다. 즉 각각의 분위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잘못된 관점으 로 해석되면 하위단계로 전락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화엄만이 원교라고 하지 않으며, 소승교를 허망분별 이라고만 말하지 않는다. 징관은 교판의 여러 분위에 산재되어 있던 무와 유, 일과 다의 개념에서 특성만을 축출하여 하나의 분위로 삼았다.
결과적으로 유 에서 무로, 다에서 일로 진행하는 수행도의 과정을 나타내고, 종국적으로는 최고의 분위에서는 앞의 과정에서 진리라고 여겨지던 것들마저 스스로의 자기 부정을 통해서 원래로 돌아간다.
이런 순환의 구조에서는 항상 무집착의 상태 로 무주처의 진리를 말할 수 있다.
이런 체계는 지엄이나 법장이 시대적인 한 계 때문에 구현하지 못한 교판의 취지를 정확히 철학적으로 승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을 화엄의 중심에 놓으면 화엄의 본래 취지를 정확히 구현 할 수 있다.
V. 결 론
화엄교판의 각 분위는 상위 분위(分位)가 하위 분위를 극복하고 최종적으로 진리에 도달하는 위계적인 체계가 아니다.
각각의 분위가 서로 간의 ‘한계의 설정’와 ‘위치 지움’을 통해서 진리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며 이러한 시각을 ‘원교’라고 한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상위 분위는 하위 분위로 다시 흡수된다. 붓다의 털구멍이 온 세계를 머금고 있듯이, 하위 분위도 원교의 모든 것을 머 금고 있다.
법계원융(法界圓融)의 큰 틀 안에서 보면 교판의 최고 분위인 원교 (圓敎)는 다만 화엄의 진리만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각 분위들이 자신의 시각에서의 장점을 가장 적절하게 발휘되어 사물의 진상을 제대로 파 악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즉 교판의 큰 틀 안에서 각 분위들이 가지는 관점 으로서의 한계와 단점을 다른 분위들과의 유기적인 관련 속에서 극복하고, 종 국적으로는 그 장점이 원교라는 틀 안에서 발현되도록 하는 구조이다.
교판의 구조는 하나의 관점으로서의 각 분위들이 원융무애(圓融無礙)하면서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을 최대한 할 수 있게 하는 개방된 체계이다.
참고 문헌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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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e doctrinal taxonomy of Huayan exhibits a reciprocal relationship with the concepts of “the one vehicle teaching” and “perfect interpenetration of the dharma realm.”The one vehicle teaching represents a comprehensive view that evolved from critiquing “the lesser vehicle teaching.” It subsequently came to incorporate “the lesser vehicle teaching” in a manner that aligns with the objectives of “the great vehicle.”The “dharma realm” is understood either as “a world perceived from a single perspective”or as “a world governed by a singular law.” “Perfect interpenetration of the dharma realm” describes a state where these diverse perspectives converge and harmonize. In doctrinal taxonomy, various Buddhist teachings are consolidated into the one vehicle teaching, which is described as a process of encompassment. This represents a higher-level perspective that integrates more specific aspects into a comprehensive explanatory framework, offering a broad methodology for understanding the world as an object of recognition. Here, an infinitely open system of truth is proposed, rather than a single, uniform truth that explains the world. Additionally, in the one vehicle teaching, not only Abstract The Context of “Perfect Interpenetration of the Dharma Realm (法界圓融)” and “the One Vehicle Teaching (一乘敎)” as Shown in the Doctrinal Taxonomy (敎判) of Huayan (華嚴): Overlap of the Dharma Realm (法界) with the Structure of the Encompassing and Recursive Structure PARK, Su Hyun Senior Researcher Institude of Humanities, Seoul National University 78 불교학연구 제79호 does this upward encompassment exist, but there is also a recursive structure where lower-level perspectives encompass higher-level perspectives. In this way, the concept of perfect interpenetration of the dharma realm does not assert a uniform truth as a whole. Instead, it suggests that truths viewed from different perspectives complement each other, providing a truth that is suitable for the given situation. The structure of perfect interpenetration of the dharma realm also underpins the creation of each level of the doctrinal taxonomy. This approach to doctrinal taxonomy subsequently gives rise to the theory of the four realms of reality, thereby establishing a comprehensive philosophical system.
Keywords Huayan (華嚴), perfect interpenetration of the dharma realm (法界圓融), doctrinal taxonomy (敎判), the one vehicle teaching (一乘敎), the encompassing (das Umgreifende), recursive structure, four realms of reality (四種法界)
2024년 05월 02일 투고 2024년 06월 09일 심사완료 2024년 06월 11일 게재확정
불교학연구 제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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