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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요한복음의 파라클레토스(παράκλητος) -알렉산드리아의 필론을 참조하여-/문우일.성결대

초록

이 논문은 요한복음과 필론(Philo of Alexandria)이 공유하는 용어, 주제, 사상에 관 한 도드(C. H. Dodd), 지거트(Folker Siegert), 보겐(Peder Borgen) 등의 선행연구를 보 완하기 위한 시도로서, 요한복음의 παράκλητος를 필론을 참조하여 문헌학과 사상사비 평 관점에서 탐색한 것이다.

‘파라클레토스’는 데모스테네스(BC 384-322)의 글에 처음 등장하여 법정 용어로만 극히 드물게 사용되었다.

셸퍼(Lochlan Shelfer)는 데모스테네 스가 로마 법정 용어 advocatus를 그리스어 παράκλητος로 차용하여 아고라 법정 상황 에 적용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 희귀 단어는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필론의 글에서 로마 법정 문화와 유대 신앙 전통이 어우러진 형태로 11회 등장한다.

이후로 비-유대계 문헌에서는 발견되지 않다가 요한복음에 4회, 요한일서에 1회 나타난다.

그런 다음에 이 용어는 시내산 사본에 포함된 ‘바나바의 편지’에서 순수한 로마 법정 의미로 1회 등장한다.

공교롭게도 바나바의 편지를 처음 언급한 사람들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 스와 알렉산드리아에서 나고 자란 오리게네스로서 모두 알렉산드리아 출신들이다.

이 어서 ‘파라클레토스’는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가 2회, 오리게네스가 8회 이상 언급한 다.

특히 필론과 요한복음 모두에 정통했던 오리게네스는 요한복음의 파라클레토스를 해석하면서 필론의 언어를 도입한다.

이처럼 파라클레토스가 필론을 기점으로 알렉산 드리아와 연관된 일련의 작품들에서 잇달아 출몰한다는 사실은 당시 알렉산드리아에 로마 법정 문화가 정착했던 사실을 반영하고, 요한복음의 파라클레토스 또한 필론과 무관하지 않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주제어 파라클레토스, 성령, 요한복음, 알렉산드리아의 필론, 오리게네스

I. 시작하며

요한복음과 필론(Philo of Alexandria, BC 30년경~AD 50년경)이 공유 하는 용어, 주제, 사상에 관하여는 도드(C. H. Dodd)의 상징 연구를 기점으로 믹스(Wayne A. Meeks), 푸글세스(Kåre Sigvald Fuglseth), 지거 트(Folker Siegert), 보겐(Peder Borgen) 등이 간헐적이지만 의미 있는 성 과를 산출했다.1)

1) Charles H. Dodd, The Interpretation of the Fourth Gospel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53), 54-73, 133-43; Wayne A. Meeks, The Prophet-King: Moses Traditions and the Johannine Christology, Supplements to Novum Testamentum 14 (Leiden: E. J. Brill, 1967), 32-99, 286-319; Kåre Sigvald Fuglseth, Johannine Sectarianism in Perspective: A Sociological, Historical, and Comparative Analysis of Temple and Social Relationships in the Gospel of John, Philo, and Qumran (Leiden: Brill, 2005), 117-249, 285-351; Folker Siegert, “Philo and the New Testament,” The Cambridge Companion to Philo, ed. by Adam Kamesar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9), 175-209, 195-209; Peder Borgen, The Gospel of John: More Light from Philo, Paul and Archaeology, Supple- ments to Novum Testamentum 154 (Leiden: Brill, 2014), 43-66.

이 논문은 그러한 선행연구를 보완하려는 노력의 일 환으로 요한복음에서 고별담화에만 나오는 ‘파라클레토스’(παράκλη- τος, 요 14:16, 26; 15:26; 16:7; cf. 요일 2:1)의 내력과 함의를 필론을 참 조하여 문헌학과 사상사비평 관점에서 탐색함으로써 필론과 요한복 음이 공유하는 용어 목록에 파라클레토스를 추가할 여지가 있는가를 논하려는 것이다.2)

2) 사상사비평은 다음을 보라: Arthur O. Lovejoy, The Great Chain of Being: A Study of the History of an Idea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36 and 1964), 3-66.

이를 위하여 먼저, 벰의 문헌 분석을 필두로 주요 선행연구와 그 한계를 분석함으로써, 필론이 로마, 그리스, 유대 전통 을 활용하여 파라클레토스의 함의를 기존의 인간 법정 의미에 제한하 지 않고 전례 없이 확장하므로 요한복음의 풍부한 파라클레토스의 함 의를 파악하는 데 유익함을 밝히겠다.

이어서 파라클레토스가 나오는 요한복음 본문을 소개하고 이 단어가 어떤 맥락에서 어떤 주제들과 어울려 등장하는지를 분석하겠다.

다음으로 필론 특유의 파라클레토 스 개념을 사상 단위(unit-ideas)로 분류한 다음, 이 단위들이 요한복음 에서 재현되거나 변형 ∙ 확장되는지를 논하겠다.

이어서 파라클레토스 가 필론 이후부터 오리게네스(AD 185~253년경) 이전까지 어떤 본문 들에 나타나는지를 추적하여 그 본문들이 특정 성향을 드러내는지 알 아보겠다.

아울러 오리게네스가 요한복음의 파라클레토스를 설명하 면서 필론의 언어와 사상을 도입하는지 관찰하겠다. 이 논문은 문헌 분석 범위를 그리스도교 이전의 그리스어 문헌과 오리게네스 이전까지의 초기 그리스도교 문헌으로 제한한다. 오리게 네스 이후에도 기독교 교부들과 영지주의자들이 ‘파라클레토스’를 언 급했으나, 대체로 요한복음에서 가져온 후대의 자료이므로 이 논문에 서 논외로 한다.

이들과 달리 오리게네스는 필론의 방대한 작품들을 알렉산드리아 철학계에서 가이사랴 기독교계에 전수한 필론 전문가 로서, 요한복음의 파라클레토스를 단순히 언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해석 차원에서 논한 최초의 인물이므로, 필론과 요한복음의 파라클레 토스를 조망하는 데 필요한 가장 이른 검증 자료인 셈이다.

요한복음의 파라클레토스에 관한 선행연구는 많으나, 필론을 참조 한 연구는 벰(Johannes Behm)과 그레이스톤(Kenneth Grayston)과 셸퍼 (Lochlan Shelfer)의 문헌 분석 이후에 큰 진전이 없었다.3)

클라우크 (Hans-Josef Klauck)가 필론의 독특한 ‘양심’(ἔλεγχος) 개념을 분석하면 서, 필론이 인간 내면의 양심을 ‘파라클레토스’로 인격화했을 가능성 을 제안했으나, 그의 주안점은 ‘필론의 양심’에 있었다.4)

3) Johannes Behm, “παράκλητος,” TDNT V: 800-14; Kenneth Grayston, “The Meaning of PARAKLĒTOS,” JSNT 13 (1981), 67-82; Lochlan Shelfer, “The Legal Precision of the Term ‘παράκλητος,’” JSNT 32/3 (2009), 131-50.

4) H-J Klauck, “Accuser, Judge and Paraclete: On conscience in Philo of Alexandria,” Verbum et Ecclesia 20/1 (1999), 107-18.

따라서 이 논 문은 파라클레토스 자체에 집중하여 이 용어가 요한복음과 필론의 공 통 요소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는지 그 개연성을 논하려는 것이다.

실제로 요한복음이 필론의 파라클레토스를 직접 사용했는지를 입증 하는 것은 이 논문의 범위를 벗어난다.

II. 선행연구와 한계

요한복음의 파라클레토스에 관한 국내 선행연구부터 소개하겠다.

차정식은 성령의 여러 이미지 가운데 하나로 요한복음의 파라클레토 스를 해석했고,5) 문병호는 칼빈의 구원사적 ‘중보자’ 관점에서 파라클 레토스를 논했다.6)

배재욱은 요한복음 16:7-11에 집중하여 파라클레토 스의 특성을 분석했고,7) 유은걸은 요한복음의 성령론을 거시적으로 논하면서 파라클레토스의 역할과 기능을 요약했다.8)

5) 차정식, “바람과 불의 행방: 비둘기와 보혜사의 진로: 신약성서의 성령 이미지 탐 구,” 신학사상 120 (2003), 230-54.

6) 문병호, “보헤사 성령의 구원 역사: 칼빈의 ‘중보자 그리스도의 영’ 이해를 중심으 로,” 개혁논총 13 (2010), 289-327.

7) 배재욱, “요한복음 16:7-11에 나타난 사역 παράκλητος,” 영산신학저널 35 (2015), 111-46.

8) 유은걸, “요한복음의 성령 이해,” 신약논단 21/4 (2014), 993-1028. 문우일 _요한복음의 παράκλητος❙163

고병찬은 요한복음의 파라클레토스를 “예수의 떠나심”이라는 기독론 주제와 연관 시켜, “성령의 이름”보다는 “성령의 기능과 역할”이라는 관점에서 분 석했다.9)

김문현은 선행연구가 기독론 중심으로 치우쳤다고 지적하 고, 요한복음에서 파라클레토스는 단순한 비인격적인 하나님의 영 (h;Wr), 숨, 지혜, 능력이기보다는10) “하나님으로부터 독립된” “신적 인 격”이요 “독립적인 존재(independent being)”라면서,11) 인격으로서의 성 령과 하나님 및 예수의 “상호관계성(interactivity)”을 강조했다.12)

즉 보 혜사도 ‘아버지’처럼 “아들을 증거하고”(5:37; 8:18; 16:26-27), “아들을 영화롭게” 하며(5:44; 8:54; 12:23, 28; 13:31-32; 17:1, 5; 16:14), “제자들과 함께” 있으며(14:17, 23; 17:11, 15, 26), “세상을 심판”하며(5:22, 27, 30; 8:16; 16:6-11), 가르친다(6:45; 14:26; 16:13).13)

9) 고병찬, “요한복음에 나타난 ‘파라클레토스’(παράκλητος)의 기능과 역할,” 성경과 신학 88 (2018), 61-83, 63-65.

10) Ted Peters, God-The World’s Future: Systematic Theology for a New Era, 2nd ed. (St. Louise: Augsburg Fortress, 2000), 413. 김문현, “요한복음의 성령 이해: 성령의 상호관계성을 중심으로,” 신약연구 11/2 (2012), 337-67, 339에서 재인용.

11) James D. G. Dunn, Christology in the Making: An Inquiry into Origins of the Doctrine of the Incarnation, 2nd ed. (London: SCM, 1989); Marianne M. Thompson, The God of the Gospel of John (Grand Rapids: Eerdmans, 2001), 145; 김문현, “요한복음의 성령 이해,” 337, 340, 349에서 재인용.

12) 김문현, “요한복음의 성령 이해,” 337-67.

13) 김문현, “요한복음의 성령 이해,” 354.

그러므로 요한복음에서 파라클레토스(성령)는 성자 및 성부와 인격적으로 동역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처럼 국내 연구는 파라클레토스의 이미지, 기능, 역할 등에 집중했으므로, 이 논문은 파라클레토스를 문헌학과 사상사 관점 에서 살핌으로써 국내 연구를 보완하겠다.

벰에 따르면, 명사 파라클레토스는 BC 4세기경부터 극히 드물게 사 용되었고, 대개 “수동형 κεκλημένος”의 의미를 함축하며, “법정에서 피 고인을 돕도록 소환된” 한 명 또는 여러 명의 “법률 고문(adviser), 조력자(helper), 변호인(advocate)”을 가리키는 법정 용어였다고 한다.14)

이 명사는 데모스테네스(Demosthenes, BC 384-322)의 작품에 처음 등장하 는데(1회), 여기서 파라클레토스는 피고인의 형량을 줄이거나 면하게 할 목적으로 “배심원들이 제비를 뽑는 동안에 배심원들을 성가시게 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15)

이후로 디오니시우스(Dionysius of Halicarnassus, BC 60-7년경)의 글에 1회 나타나는데,16) 여기서도 ‘피고인을 옹 호하기 위하여 법정에 소환된 사람들’을 가리킨다. “라틴어 advocatus 에 상응하는 그리스어는 σύνδικος 또는 συνήγορος”로서, 도시국가에서 추첨으로 선발된 공익 옹호자나 치안판사, 대리인을 가리키지만, 파 라클레토스는 전문 대리인보다는 비전문 법정 조력자, 탄원자, 후원 자를 뜻한다고 한다.17)

70인역에 파라클레토스는 나오지 않으나, 욥기 16:2(LXX)에 능동형 의미의 희귀 단어 “παρακλήτορες”(단수 παρακλήτωρ)가 나오고, 이는 ‘위로자들’(comforters)”을 뜻하는 히브리어 ~ymih]n:m.에 상응한다.18)

14) Behm, “παράκλητος,” 803.

15) Demosthenes, De Falsa Legatione (περὶ τῆς Παραπρεσβείας) 19.1 in Orations 18-19: Against Meidias, trans. by C. A. Vince and J. H. Vince, LCL 155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26), 232-474, 246; Shelfer, “The Legal Precision of the Term ‘παράκλητος,’” 134.

16) Dionysius of Halicarnassus, Antiquitates Romanae (Ῥωμαικῆς ἀρχαιολογίας) 11.37 in Roman Antiquities VII: Books 11-20, trans. by Earnest Cary, LCL 388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50), 120; Shelfer, “The Legal Precision of the Term ‘παρά- κλητος,’” 135.

17) Behm, “παράκλητος,” 800-801.

18) Behm, “παράκλητος,” 801-802.

벰에 따르면, 필론 이전에 파라클레토스를 παρακλήτωρ와 같은 능동 의미 로 사용한 사례가 없으므로, 필론이 ‘파라클레토스’의 의미를 확장했 을 것으로 본다.

필론은 기존의 수동적 법정 차원을 넘어, 지상뿐 아 니라 천상의 법정, 인간뿐 아니라 신적 차원, 인격적 주체뿐 아니라 조건들이나 양심으로까지 적극적으로 의미를 확장했다.

그러나 벰은 필론의 용례를 상세히 설명하지 않은 채, 헬레니즘적 법정 용례로 일 반화하는 경향이 있다.19) 파라클레토스는 필론 이후에 나타나지 않다가 요한복음에서 법정 의미를 넘어서는 확장된 의미로 다시 나타난다.20) 그러나 벰은 필론 과 요한 문헌의 연관성을 논하지 않은 채, 요한 문헌의 영향을 받은 초기 그리스도교 문헌에서도 파라클레토스의 의미가 복잡하다고 말 할 뿐, 그 이유를 설명하지는 않는다.21)

예컨대, 클레멘스(Clement of Alexandria)는 파라클레토스를 ‘변호인’(advocatus)이라는 의미로 쓰지만 (Salvetur 25.7),22)

오리게네스는 ‘탄원자’(deprecator; Princ. 2.7.4)나 ‘중보 자’(intercessor; Orat. 10.2)라는 의미로도 쓴다.

또한 익명의 제2클레멘 트서(2Clement) 6:9은 “의로운 행위”를 파라클레토스로 인격화하고, 대 부분의 그리스어 교부들은 요한복음의 파라클레토스를 ‘위로자’(consolator)라고 옮겼다.

고대 라틴어 성경(Vetus Latina)은 파라클레토스를 paracletus라고 음역하거나, advocatus 내지 consolator라고 옮겼고, 히에 로니무스(Hieronymus, 347~419년경)는 Vulgata에서 paracletus라고 음역 했다.23)

AD 2세기 중반부터 랍비 문헌에도 법정 의미를 벗어나 위로자나 중보자로서의 파라클레토스 개념이 나타난다.

그리스어 συνήγορος에 상응하는 rwOgynEs.와 파라클레토스를 음역한 jyliq.r;P. 또는 aj;)yliq.r;P., 그 리고 κατήγορος 내지 κατήγωρ에 해당하는 rwOgyj,q;) 등이 그러하다.24)

19) Behm, “παράκλητος,” 803.

20) 요일 2:1의 파라클레토스는 기존 법정 용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데에 이견이 없다.

21) Behm, “παράκλητος,” 805-806.

22) Clement of Alexandria, Quis Dis Salvetur 25.7,

23) Behm, “παράκλητος,” 805-806. 24) Grayston, “The Meaning of PARAKLĒTOS,” 75-76.

이 들은 필론의 용례와 유사하게 지상 법정뿐 아니라 천상 법정에서 피 고인을 돕는 신적 주체나 천사, 하나님의 관대함, 훌륭한 인물, 선행, 율법을 준수하는 경건, 회개, 양심 등을 가리키는 용어들이었고, “문 어체보다는 구어체” 연설에서 자주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한다.25)

또 한 만디아 문헌이나 솔로몬의 시편(Odes of Solomon) 등의 영지주의 문헌에서 천사들이나 에온이 파라클레토스로 나오는데, 요한복음이 영지주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불트만(R. Bultmann)이나 바우어 (W. Bauer) 등은 그런 영지주의 본문들이 요한 문헌의 파라클레토스의 전신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충분히 입증하지는 못했다.26)

렇다면 필론 이후에 파라클레토스의 의미가 지상 법정뿐 아니라 천상 법정에도 적용되고, 인간뿐 아니라 신적 존재, 천사, 경건한 조상 들의 탄원, 선행, 율법 준수, 책망이나 양심(ἔλεγχος) 등을 가리키는 말 로 발전한 원인과 배경은 무엇인가?

이에 대하여 베츠(O. Betz)는 파라 클레토스가 그리스에서 법정 용어로 쓰이다가 유대 문화권으로 들어 오면서 포로기 이후에 발전한 고대 근동의 조력자 내지 계시자에 가 까운 “예언적 교사(prophetischer Lehrer)” 개념과 결합했을 가능성을 제 안했다.27)

그러나 존스톤(George Johnston)은 파라클레토스가 사해 문 헌이나 중간기 문헌에서는 히브리어나 아람어의 음역 형태로 사용된 사례가 없음을 지적함으로써 파라클레토스의 어의 확장이 포로기 직 후에 일어났을 가능성을 배제했다.28)

25) Behm, “παράκλητος,” 802 n.15; Grayston, “The Meaning of PARAKLĒTOS,” 75-77; Shelfer, “The Legal Precision of the Term ‘παράκλητος,’” 138.

26) R. Bultmann, The Gospel of John: A Commentary, trans. by G. R. Beasley-Murray, ed. by R. W. N. Hoare and J. K. Riches (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1971), 570-72; Walter Bauer, Das Johannesevangelium, Handbuch zum Neuen Testament 6 (Tübingen: Mohr Siebeck, 1933), 187.

27) O. Betz, Der Paraklet (Leiden: Brill, 1963), 1-2.

28) George Johnston, The Spirit-Paraclete in the Gospel of John, SNTSMS 12 (Cambridge:Cambridge University Press, 1970), 82,

또한 바레트(C. K. Barret)는 요한복음에서 파라클레토스가 풍부한 뜻을 함축하게 된 원인을 구약성 서(LXX)에 나오는 파라클레토스의 동족어들(cognate words)과 연관시 켰다.

즉 구약성서(LXX)에 249회 나오는 παρακαλεῖν(사 40:1; 51:3; 66: 13)과 45회 나오는 παράκλησις(사 28:29; 30:7; 렘 16:7; 38:9)는 메시아 시대에 성취될 하나님의 위로를 예고하는데, 이 주제가 신약성서와 랍비 문헌에 자주 나오고, 요한복음의 파라클레토스 의미 확장에 관 여했다는 것이다.29)

그러나 요한복음이 παρακαλεῖν과 παράκλησις에 담긴 하나님의 위로라는 주제를 파라클레토스에 담아 사용할지라도, ‘파라클레토스’라는 희귀 용어에 그런 의미를 담아 쓰기 시작한 첫 사 례가 요한복음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왜냐하면 전술했듯이, 요한복음 이전에 이미 필론은 기존의 법정적 의미뿐 아니라 유대적 의미도 더 하여 파라클레토스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필론은 παρακαλεῖν과(29회) παράκλησις(3회)를 사용하지만, 요한복음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탁월하게도 셸퍼(Lochlan Shelfer)는 필론 이전에 파라클레토스가 나 오는 모든 그리스어 본문을 분석하면서,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한 아테 네 연설가, 변호사, 정치가였던 데모스테네스(BC 384-322)에 주목했다.

그가 로마 법정의 advocatus 관행을 접하고, “친구들을 재판에 소환하 다”라는 뜻을 함축하는 동사 παρακαλεῖν에서 신조어 ‘파라클레토스’를 만들어 “로마 법정 대신 그리스 아고라 법정”에 적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30)

29) Charles K. Barrett, The Gospel According to St. John: An Introduction with Commentaries and Notes on the Greek Text (New York: Macmillan, 1956), 386.

30) Shelfer, “The Legal Precision of the Term ‘παράκλητος,’” 134; Demosthenes, De Falsa Legatione 19.1.

이 신조어는 잘 사용되지 않다가 “라틴어와 로마 법 률 제도”가 퍼지면서 다시 등장했으나, 비-유대 그리스어권에서는 드 물게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로마 역사가 겸 수사학자 디오니시우스 (BC 60-7년경)가 1회, 소아시아 출신 로마 원로원 위원 겸 변호사였던 카시우스 디오(Cassius Dio Cocceianus, AD 150-235년경)가 1회,31) 그리 고 AD 3세기 초반에 철학자들의 전기를 쓴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우스 (Diongenes Laërtius)가 1회 사용했다.32)

즉, 파라클레토스는 “법정 판사 앞에서 피고인 대신 말하는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을 일컫는 라틴 어 법률 용어 advocatus에 대한 정확한 차용어(calque)”로서, “명백하게 로마 법률적인 용어”라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 아고라 법정에 적용 되면서, 비전문 변호인과 옹호자를 가리키는 뜻으로 달라졌다는 것이 다.33)

이 차용어는 필론을 위시한 유대권에서 그 의미가 대폭 확장되었다 고 한다. 로마 법정 문화에 정통했을 필론은 파라클레토스를 11회나 사용하고, 가장 로마적인 작품(In Flaccum)에서 5회 사용한다.34)

이후 ‘파라클레토스’는 요한 문헌에 재등장했다가, 오리게네스를 필두로 교 부들의 글에도 나온다. 로마 법정에 익숙했을 교부들은 그 용어를 paracletus라고 음역하거나, advocatus, deprecator, intercessor, consoler, consolator 등 다양하게 번역했다.35)

셸퍼는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라틴어 음역어들이 다양한데, 이는 라틴어 차용어 ‘파라클레토스’가 요한복음에 나타난다는 사실과 부합 한다”고 보았다.36)

31) Dionysius of Halicarnassus, Antiquitates Romanae 11.37; Cassius Dio Cocceianus, Historiae Romaae 46.20 in Dio Cassius, Roman History V: Books 46-50, trans. by Earnest Cary, LCL 82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17).

32) Shelfer, “The Legal Precision of the Term ‘παράκλητος,’” 134-35; Diogenes Laërtius, Vitae Philosophorum 4.7.6(50). https://www.perseus.tufts.edu/hopper/text?doc=Perseus: text:1999.01.0257:book=4:chapter=7&highlight=paraklh%2Ftous (2024.4.10.)

33) Shelfer, “The Legal Precision of the Term ‘παράκλητος,’” 131, 133.

34) Shelfer, “The Legal Precision of the Term ‘παράκλητος,’” 142-43.

35) Shelfer, “The Legal Precision of the Term ‘παράκλητος,’” 132.

36) Shelfer, “The Legal Precision of the Term ‘παράκλητος,’”

요한복음만 예수의 십자가 “죄패”(τίτλος, titulum 19:19)라는 라틴어 음역어가 나온다. 그 ‘죄패’도 거기에 사용한 언어 들도 공관복음은 언급하지 않으나(마 27:37; 막 15:26; 눅 23:38), 요한 복음만 그 죄패에 “히브리어와 로마어(라틴어)와 헬라어로 기록되었 다”고 보도함으로써 라틴어 인지력을 과시한다(19:20). 라틴어 음역어 ‘채찍’(φραγέλλιον, flagellum, 2:15)과 ‘면포’(σουδάριον, sudario 11:44)도 요한복음만 나온다. 여기에 필자는 요한복음에만 예수를 체포하러 온 자들 가운데 로마 군대를 언급한다는 사실도 덧붙이고 싶다(요 18:3). 클라우크는 BC 88년경부터 쓰기 시작한 라틴어 conscientia(양심)를 그리스어 ἔλεγχος로 철학화한 인물이 필론이라면서, 필론이 사용한 파 라클레토스의 여러 용례 가운데 양심을 인격화한 형태도 있다고 흥미 로운 제안을 했다.37)

필론의 엘렝코스에 상응하는 개념이 라틴어권의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 BC 106-43년)와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 the Younger, BC 4년경~AD 65년)의 글에도 나온다는 것이다.

키 케로는 심리적 양심 conscientia를 그리스 신화의 복수의 여신들(분노) Ἐρινύες(Erinyes, Eumenides, Furies)로 인격화했다. 죄인들에게 가장 위 협적인 대상이 “양심 conscientia”이라는 것이다. 양심은 “결코 악인들 을 떠나지 않고 복수하는 여신들로서, 죄인들의 마음에 거하며 밤낮 으로 죄로 얼룩진 아들의 부모를 위한 속죄를 촉구한다”(Cicero, Pro Sextus Roscio Amerino 67).38)

세네카에 따르면, 양심은 법정에서 “고소 인(accusator)과 판사(judex), 그리고 변론자(deprecator)의 역할을 겸하 고”(Ep. 28.10),39) “소란을 잠재워 변호한다(advocare)”(Ep. 43.5).40)

37) Klauck, “Accuser, Judge and Paraclete,” 107-108.

38) Klauck, “Accuser, Judge and Paraclete,” 114-15. https://la.wikisource.org/wiki/Pro_Sexto_ Roscio_Amerino (2024.5.10.)

39) Seneca, Epistles I: Epistles 1-65, trans. by Richard M. Gummere, LCL 75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17), 202. https://la.wikisource.org/wiki/Epistulae_morales _ad_Lucilium/Liber_III (2024.5.10.)

40) Seneca, Epistles I: Epistles 1-65, 286. https://la.wikisource.org/wiki/Epistulae_morales_ ad_Lucilium/Liber_V (2024.5.10.)

클라우크는 세네카의 양심과 유사한 법정 개념이 지혜 문헌에서 동 사 ἐλέγχειν과 명사 ἔλεγχος 및 συνείδησις 등으로 표현되는데,41) 필론 이 그러한 로마와 유대의 법정 개념을 통합하여 ‘파라클레토스’에 담 아 쓰기 시작했다고 제안했다.

모세오경에 천착한 필론이 이례적으로 잠언(LXX) 3:11-12를 언급한 까닭도 ἐλέγχειν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 다.42)

본래 동사 ἐλέγχειν은 “반대 심문을 하다”라는 법정 용어이고, 명사 ἔλεγχος는 “증명, 테스트, 정밀 조사, 반박, 책망, 양심”을 뜻하며, συνείδησις는 “내면 의식, 인식, 양심” 등을 뜻하는데, 필론은 종종 ἔλεγ- χος 및 συνείδησις를 파라클레토스로 의인화한다는 것이다.43)

필론은 파라클레토스로 인격화한 엘렝코스를 고소인, 재판관, 증인(Post. 1.59), 친구, 상담자, 위로자, 후견인, 선생님, 아버지, 천사, 왕, 대제사장, (관 사 없이) 신(θεός) 등에 비유한다.44)

41) 시 6:1; 잠 3:11; 28:13; 욥 23:7; 잠 6:23; 지혜서 17장; 집회서 16:12 등 참조.

42) Philo, Congr. 177. Klauck, “Accuser, Judge and Paraclete,” 115.

43) Klauck, “Accuser, Judge and Paraclete,” 113.

44) Klauck, “Accuser, Judge and Paraclete,” 111-12.

흥미롭게 요한복음의 파라클레토스도 동사 ἐλέγχειν과 연관이 있고 (16:7-8), 파라클레토스는 필론에서와 같이 인격화되어, 증인, 가르치는 스승, 책망하는 재판관, 하나님의 아들과 동등한 ‘신’으로 묘사된다.

이는 요한복음의 파라클레토스 배후에 필론의 인격화된 파라클레토 스가 있었을 가능성을 열어두게 한다.

만약에 요한복음이 필론의 파 라클레토스를 활용했고, 필론이 유대 지혜의 엘렝코스와 로마의 콘시 엔시아를 결합하여 파라클레토스를 쓰기 시작했다면, 요한복음 연구 에 그리스 및 유대 전통 외에도 로마와 라틴어 문헌도 적극 참조해야 하겠으나, 이 짧은 논문에서는 그리스어 문헌에 집중한다.

III. 요한복음에서 파라클레토스의 기능과 역할

우리말 성경은 요한복음 14:16, 26; 15:26; 16:7의 파라클레토스를 대 개 ‘보혜사’로 번역하고, 현대인의성경과 가톨릭 성경은 ‘보호자,’ 공동번역은 ‘협조자’로 번역한다.

또한 요한일서 2:1의 ‘파라클레토 스’를 개역개정과 개역한글은 ‘대언자,’ 현대인의 성경과 공동 번역은 ‘변호해 주시는,’ 새한글성경은 ‘나서서 도와주시는 분’으로 번역한다.

따라서 요한일서의 ‘대언자’ 등이 요한복음의 ‘보혜사’와 같 은 단어임을 알아보기는 쉽지 않다.

요한복음에서 파라클레토스는 ‘성령’을 가리키지만, 14:16에 ἄλλος παράκλητος라는 말이 나오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첫 번째 파라클레토 스로 보기도 한다.

ἄλλος παράκλητος를 ‘다른 자 파라클레토스’라고 읽 으면 예수는 파라클레토스가 아닐 수도 있으나, 대개는 요한일서 2:1 과 연결하여 ‘다른 파라클레토스’라고 읽고, 예수를 첫 번째 파라클레 토스로 진리의 영을 두 번째 파라클레토스로 본다.

파라클레토스가 사용된 요한복음 본문들은 다음과 같다(NA28 Greek NT, 필자 사역).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할 것이고 그분은 다른 파라클레토스를 너희에게 주시어 너희와 함께 영원토록 있게 하시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그 를 세상이 받을 수 없는 까닭은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 이다. 너희가 그를 아는 까닭은 너희 곁에 그가 머물고 너희 가운데 그 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18 내가 너희를 고아들처럼 버리지 않고 너희 에게 오리라. (중략) 23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로고스를 지킬 것이 고, 내 아버지가 그를 사랑하실 것이고, 그에게 우리가 와서 그 곁에 머 물 곳을 만들 것이다. (중략)

26 파라클레토스는 곧 거룩한 영이니, 그를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너희에게) 보내실 것이니,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들을 가르칠 것이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들을 너희로 기억나 게 할 것이다.

15: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파라클레토스 곧 아버지께로 부터 나오는 진리의 영이 올 때 그가 나에 관하여 입증할 것이다.

16:6 그러나 내가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말했기 때문에 상심이 너희 마 음을 채웠다.

7 그러나 내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 왜냐하면 내가 떠나가지 않으면, 파라클레토스 가 너희에게 오지 않을 것이지만, 내가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 보낼 것이기 때문이다.

8 그가 오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할 것이다. (중략)

13 그러나 진리의 영 곧 그가 오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서 인도할 것이니, 왜냐하면 그는 스스로 말하 지 않을 것이요, 무엇이든지 그가 듣게 될 것들을 말하고, 일어나게 될 일들을 너희에게 낭독할 것이기 때문이다.

즉, 파라클레토스는 “내(예수)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14:26)이자 “진 리의 영”(14:17; 15:26; 16:13; 참조 요일 4:6)으로서, 신자들과 “영원토록 함께 하고”(14:16), “함께 거하고(동거)” 신자들 “가운데 있고”(14:17), 예 수께서 하신 말씀을 모두 생각나게 하고 가르치며(14:26), 신자들과 함 께 예수를 증언한다(15:26-27).

또한 신자들이 출회를 당하고 죽임당할 때 함께 하며(16:2), 예수가 떠나가 보내실 영이며(16:7), 죄, 의, 심판에 관하여 세상을 책망한다(ἐλέγχειν, 16:8).

신자들을 “온전한 진리 가운 데로 인도하되,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며,” 신자들 에게 “장래 일을 알게 하고”(16:13), “내(예수) 것으로부터 받아서 신자 들에게 선포함으로써, 나(예수)를 영광스럽게 한다”(16:14). 그는 신자 들을 위한 “속죄제물”(ἱλασμός)로서 하나님 앞에서 신자들을 변호하여 죄 사함을 받게 한다(요일 2:1-2). 불트만은 파라클레토스와 예수가 공유하는 특성과 역할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즉, 파라클레토스는

① “아버지로부터 파견된다”(14:16; 15:26);

② “세상은 볼 수 없고 신자들은 볼 수 있다(14:17)”;

③ “가르 치고 진리로 인도한다(14:26; 16:13)”;

④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16:13)”;

⑤ “세상에 대하여 예수를 증거하고 세상의 죄를 책망한다(15:26; 16:8).”

유사하게 예수도 “하나님으로부터 파견되었고(5:30; 8:16; 8:42; 13:3),” “신자들에게만 보이며(1:10, 12; 8:14, 19; 17:8),” “가르치고 진리 로 인도하며(7:16f; 8:32, 40ff),” “스스로 말하지 않고(7:16; 12:49),” “자 신을 증거하고(8:14),” “세상의 죄를 책망한다(3:20; 7:7).”45)

컬페퍼(R. Alan Culpepper)도 유사한 목록을 제시하면서, “영원토록 신자들과 함 께 하는” 파라클레토스의 기능을 추가한다.

아울러 컬페퍼는 요한복 음에서는 화자 및 사랑받는 제자와 더불어 파라클레토스가 “해석적 역할”을 한다고 통찰했다.

즉 화자는 독자와 현재 시점으로 동행하며 해설하고 파라클레토스는 미래에 예수의 말씀을 가르치고 증거하고 기억나게 하며 사랑받는 제자는 파라클레토스의 역할을 확증한다는 것이다.46)

45) Bultmann, The Gospel of John, 625.

46) R. Alan Culpepper, Anatomy of the Fourth Gospel: A Study in Literary Design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7), 43; “The Promise of the Paraclete (14:15-24),” The Gospel and Letters of John (eBook; Nashville: Abingdon Press, 1998), Chap. 8-2-3.

앞서 김문현이 통찰했듯이 파라클레토스는 하나님과도 긴밀한 관 계에 있다. 더구나 요한복음은 ‘진리’(ἀλήθεια)와 ‘영’(πνεῦμα)이라는 용 어로 파라클레토스와 하나님을 연결한다.

4:24은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한다”고 선언하고,

16:13은 “진 리의 영”이 7절의 파라클레토스라고 정의한다.

아울러 요한일서는 “영은 진리이다(τὸ πνεῦμά ἐστιν ἡ ἀλήθεια)”라고 영과 진리를 동일시 하고(5:6), “하나님의 영”을 정의한다(4:1, 2, 3, 6).

IV. 필론의 파라클레토스

II 단원에서 살펴보았듯이, 필론 이전의 고대 그리스어 문헌은 ‘파라클레토스’를 법정 용어로만 드물게 사용했으나, 필론은 그 이상의 의미로 11회 이상 적극 사용하므로47) 이후 약 반세기 이내에 출현한 요한복음의 파라클레토스를 이해하는 데에 필론은 중요한 1차 자료 인 셈이다.

47) Philo, Opif. 1.23, 165; Ios. 1.239; Mos. 2.134; Spe. 1.237; Praem. 1.166; Flacc. 1.13, 22, 23, 151, 161. 이 논문은 필론의 작품 제목을 다음 기준에 따라 축약 형태로 사용한다: Patrick H. Alexander et al. (eds.), The SBL Handbook of Style for Ancient Near Eastern, Biblical, and Early Christian Studies (Peabody: Hendrickson Publishers, 1999), 78-79. 필론의 작품 본문은 다음의 편집본을 사용한다: Leopold Cohn and Paul Wendland (eds.), Philonis Alexandrini opera quae supersunt, 7 vols. (Berlin: Typis et impensis G. Reimerii, 1896-1915). 이 논문에 사용한 신약성서와 필론의 작품들에 대한 우리말 번역은 필자의 사역(私譯)이다. 신약성서 그리스어 본문은 NA28 Greek NT를 사용한다. 48) Behm은 6가지 용례로 분류했으나, 이 논문은 Behm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용례를 결합했다. 왜냐하면 이 둘은 법정 용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Behm, “παράκλητος,” 803 참조.

더구나 파라클레토스는 필론과 요한 문헌 사이에 쓰인 그 리스어 문헌에 나타나지 않다가 갑자기 요한복음에 4회, 요한일서에 1회 등장하므로, 요한복음의 파라클레토스 배후에 필론이 있을 가능 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 단원에서는 필론의 파라클레토스 개념을 용례에 따라 분류하고, 요한복음의 용례와 같고 다른 점을 살 펴보겠다.48)

1. 통치자나 고관에게 약자나 죄인을 위하여 관용과 용서를 구하는 중재자

플라쿠스는 티베리우스 황제에게 자신을 천거해 준 ‘마크로’라는 파라클레토스 덕분에 알렉산드리아의 총독직을 수행할 수 있었다 (Flacc. 13).

그러나 티베리우스가 죽자, 새 황제 가이우스는 마크로를 제거했다. 이 대목에서 필론은 가이우스 황제의 입을 빌어 파라클레 토스로서의 마크로를 ‘감시자,’ ‘곧이곧대로 명명하는 자,’ ‘완전한 통수권자를 지배하는 자,’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라고 조롱하는 데, 이는 비록 부정적 의미일지라도 당시 파라클레토스의 역할을 짐 작하게 한다(Flacc. 15).

이는 죄, 의, 심판에 관하여 책망하고 진리 가 운데로 인도하고 가르치는 요한복음의 파라클레토스 역할(요 14:26; 16:8)과도 유사하다.

한편 플라쿠스는 가이우스 황제에게 자신을 변호해 줄(παρακλήτειν) ‘다른 최선의 파라클레토스’로서 가이우스가 존숭하는 “알렉산드리아 도시”를 선택하고, 그곳 유대인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박해함으로써 새 황제의 환심을 사려한다(Flacc. 22-23).

여기서 필론은 무생물인 ‘도 시’를 파라클레토스로 인격화하고, ‘다른 파라클레토스’를 언급하는데, 이는 요한복음이 무생물인 ‘영’(τὸ πνεῦμα)을 파라클레토스로 인격화 하고 ‘다른 파라클레토스’를 언급하는 것과 유사하다(요 14:16, 26; 15:26).

이후에 플라쿠스는 부하들에게 고소당하여(Flacc. 125) 에게해 최악의 험지 갸라(Gyara)로 유배 갈 처지에 놓였으나, ‘레피두스’라는 또 다른 파라클레토스의 도움으로 아름다운 안드로스섬에 가서 최후를 맞게 된다(Flacc. 151, 181).

2. 감각을 격동시켜 정신을 현혹하고 설득하는 기술

요한복음은 언제나 파라클레토스를 긍정적 의미로 사용하지만, 앞 서 플라쿠스의 사례가 그러했듯이 필론은 파라클레토스를 부정적 의 미로도 사용한다.

다음 본문에서도 필론은 현란한 변론 기술로 재판 관(정신)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감각을 ‘파라클레토스’에 비유함으로 써, 파라클레토스를 부정적으로 사용한다.

감각들이 쾌락의 주술적 유혹들에 끌리면, 그 앞에 펼쳐지는 것들로 인 하여 시각은 색깔들과 모양들의 미묘함들에 취하고, 청각은 소리들의 조화들에, 미각은 맛들의 달콤함들에, 후각은 흩날리는 증기들의 향기들에 취하여 즐기게 되고, 그 제공된 선물들을 마치 시녀들을 허용하듯이 허 용하여, 그것들을 ‘이성적인 부분(ὁ λογισμός)’이라는 주인 앞으로 가져가 선보이는데, 설득하는 기술을 파라클레토스로 내세우므로, 주인(정신)은 선물을 거부하지 못하게 된다.

주인은 여지없이 현혹되어, 지도자가 아닌 하인으로, 주인이 아닌 종으로, 시민이 아닌 망명자로, 불멸하는 자가 아 닐 필멸하는 자로 전락한다(Opif. 1.165).49)

49) Shelfer, “The Legal Precision of the Term ‘παράκλητος,’”

3. 죄를 사하고 연약함을 돕는 조력자

필론은 ① 하나님의 자비, ② 경건한 죽은 조상들의 중보, ③ 당사 자의 진실한 마음 등을 하나님이 죄인과 약자를 용납하고 화해할 조 건으로서 ‘파라클레토스’라고 정의한다.

그들은 그 세 가지 파라클레토스를 활용한 덕분에 아버지(하나님)와 화해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부름 받은 자의 자비롭고 온화하고 동정심 많은 성품은 언제나 형벌 대신 자비를 베풀게 한다. 모든 민족의 시조인 건국자 들의 거룩함도 그러하니, 이는 육체를 벗어난 혼들로서 만물의 통치자께 진실하고 성숙한 순종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녀들을 위하여 헛된 기도를 드리지 않으므로 기도가 상달되는 보상을 받는다(Praem. 166).

유사하게 요한복음의 고별담화에도 죄(16:8)와 기도(14:13-14) 주제가 등장하며, 이 맥락에서 파라클레토스를 ① 예수의 사랑이 현현하여 하나님처럼 제자들에게 유익을 끼치는 영(14:17-21),

② 예수께서 구한 대로 예수의 죽음 이후에 파송되는 영(14:16, 18-19; 16:7),

③ “모든 진 리”로 이끄는 “진리의 영(τὸ πνεῦμα τῆς ἀληθείας)”이라고 정의한다 (16:7-13).

또한 필론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70인 장로에게 쏟아부 은 영을 “지혜의 영(τὸ πανσόφου πνεῦμα)”이라고 정의하는데(Gig. 1.24), 이는 요한복음의 “진리의 영”(14:17; 15:26; 16:13)과 유사하게 하나님에 게서 파송된 영이다.

4. 죄 용서를 구하는 자의 양심

요한복음은 엘렝코스의 동사형 ἐλέγχειν으로 파라클레토스의 책망 하는 기능을 설명하는데(요 16:8), 클라우크 소개에서 전술했듯이 필 론도 엘렝코스를 파라클레토스와 동일시한다.

수련자(ἀσκητής) 야곱은 (중략) 각 사람의 정신이란, 드러내지 않고 은밀 하게 도모한 것들에 대한 증인이요, 양심(τὸ συνειδός, 필론에서 37회)이며, 만물 가운데 가장 기만적이지 않고 공정한 ‘엘렝코스’라고, 가장 교훈적 으로 설명한다(Post. 1.59).50)

50) 창(LXX) 31:46-47 참조.

왜냐하면 엘렝코스는 각 사람의 혼(ψυχή)과 동행하고 동거하는 자로서, 어 떤 비난받을 일도 용납하지 않으며, 본성에 따라 언제나 악을 미워하고 덕 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 고소인(κατήγορος)이자 재판관(δικαστής) 이 되는데, 고소인으로서는 고발하고 기소하고 부끄럽게 하며, 재판관으 로서는 가르치고, 권고하며 개선을 촉구한다(Decal. 1.87).

여기서 엘렝코스는 보이지 않는 내면의 증인이자, 혼과 동거·동행하며 가르치고 인도하는 인격으로서 고소인과 재판관 역할을 겸한다.

이는 신자들과 영원히 동거·동행하며 가르치고, 죄, 의, 심판에 관하여 세상 을 책망하는 요한복음의 파라클레토스와 유사하다.

한편, 요한일서 2:1-2에서 예수는 ἱλασμός(속죄제물)이자 파라클레토 스다.

흥미롭게 필론은 ἱλασμός의 동사형 ἱλάσκεσθαι를 엘렝코스를 파 라클레토스로 해석하는 다음 본문에서 사용한다.

그(의도적 범죄자)가 거짓 맹세하여 고소인들의 모든 책망(ἔλεγχος)을 피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자기가 스스로 고소인(κατήγορος)이 되어 내면의 양심에 따라 스스로 책망받는다(ἐλέγχεσθαι). 자신이 거짓 맹세한 것들로 스스로를 고발하고, 자신이 범한 죄를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 게 되면, 그러한 회개의 진실을 계약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이려는 자에 게 죄를 사하는 속죄제(ἀμνηστία)를 명한다(레 5:4-6). (중략) 먼저, 그 죄 인을 사면한(ἱλάσκεσθαι) 후에, 보라, 그(모세)는 기록한다. 이어서 성전에 들어가 죄를 사해달라고 간구하는데, 그때는 흠 없는 파라클레토스로서 혼과 동행하는 엘렝코스(ὁ κατὰ ψυχὴν ἔλεγχος)를 동반하고 들어갈 것이 니, 그(엘렝코스=파라클레토스)는 회복할 수 없는 재앙에서 자신을 구하 고 불치병을 치료하여 건강을 회복한 자여야 한다(Spec. 1.235-237).

5. 성소에서 죄 사함과 복을 구하는 대제사장이 입는 옷의 장식, 하나님의 아들, 세상

대제사장은 성소에서 성례전을 인도할 때 장식이 달린 옷을 입는 데, 필론은 그 장식들을 하나님의 아들과 온 우주에 빗대어 파라클레 토스라고 부른다(Mos. 2.134).

즉 파라클레토스는 하나님의 아들이기 도 하고 세상 전체이기도 하다.

유사하게 요한복음도 예수를 파라클 레토스이자 하나님의 아들이요, 독생자(μονογενής)라고 부르는데, 플 라톤 체계에서 μονογενής는 데미우르고스가 창조한 세상을 가리킨다 (Plato, Timaeus 31b, 92c).

V. 오리게네스 이전까지 초기 그리스도교 문헌에서 파라클레토스

1. 바나바의 편지

알렉산드리아의 필론이 파라클레토스를 풍부한 의미로 사용한 이후에, 이 희귀 단어는 비-유대계 문헌에 나타나지 않고, 전술했듯이, 요한복음과 요한일서에 나타난다.

그런 다음에 2세기 초반 작품으로 평가하는 “바나바의 편지”(Barnabae Epistula 20.2)에서 “부자들을 위한 파라클레토이(πλουσίων παράκλητοι)”라는 표현에 등장하는데,51) 여기 서는 인간 법정에서 부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변호사를 가리킨다.

51) https://www.ccel.org/l/lake/fathers/barnabas_a.htm (ed. Kirsopp Lake) (2024.5.11.).

이 편지는 이집트 시나이반도 성 카타리나 수도원에서 발견된 4세기 ‘시내산 사본’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이 편지는 클레멘스 (Clement of Alexandria, AD 150~215년경)에 의해서 처음 알려졌다. 그 리고 두 번째로 언급된 것은 알렉산드리아에서 나고 자란 오리게네스 (AD 185~253년경)에 의해서다.52)

52) Clement of Alexandria, Protrepticus 10.85; Quis Dis Salvetur 8; Origen, Contra Celsus 1.63. https://archive.org/details/origeneswerke00origgoog/page/n13/mode/2up?view= theater (2024.5.11.).

2.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파라클레토스는 클레멘스의 작품에 2회 등장한다.

1회는 요한복음 15:26을 인용하고(Protrepticus 9.8),53) 1회는 요한일서 2:1에서와 같이 예 수 그리스도에 대한 호칭으로 사용하는 것이 분명하므로(Salvetur 25.4), 여기서는 본문을 따로 해석하지 않겠다.54)

53) Clement of Alexandria, Protrepticus (Προτρεπτικός πρὸς Ἕλληνας) 9.71.8 in Clement of Alexandria, trans. by G. W. Butterworth, LCL 92 (Cambrdi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39), 190.

54) Clement of Alexandria, Quis Dis Salvetur (Τίς ὁ σῳζόμενος πλούσιος) 25, in Clement of Alexandria, 190, 322.

3. 오리게네스

요한복음 이후에 파라클레토스를 가장 빈번하고 풍부하게 설명한 저자는 오리게네스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에서 나고 자라 알렉산드리 아의 클레멘스와 암모니우스 사카스(AD 175~242년)를 사사했고, 학문 적 절정기에 가이사랴 마리티마로 이주했다.

그가 저술했다는 6천여 편의 작품들은 여러 칙령의 결과로 대부분 소실되었으나, 다행히 파 라클레토스에 관한 본문 일부가 남아 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 과 같다.

가. 신자를 위한 대제사장 겸 변호인: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ὁ υἱὸς τοῦ θεοῦ)은 우리가 드리는 제물의 대제사장(ἀρχιερεύς)이시고, 아 버지 앞에서 변호하시는 분(παράκλητος)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기도 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시고, 간청하는 자들과 함께 변호해 주십니 다(συμπαρακαλῶν τοῖς παρακαλοῦσιν)”(De Oratione 10.2).55) 이 본문은 요한일서 2:1-2에 대한 해석이지만, 단순한 해석이 아니다. 파라클레토 스가 로마의 법정 용어이면서, 유대 문화권(필론과 요한 문헌)에서 속 죄제에 관한 종교 용어로도 사용된다는 사실을 인지한 해석인 것이 다. 게다가 명사 παράκλητος만 쓰지 않고, 그 동족 동사 παρακαλεῖν과 συμπαρακαλεῖν을 풍부하게 사용하여 로마 법정 분위기와 유대 지혜 전통의 하늘 법정 분위기를 동시에 연출 한다. 또한 오리게네스가 사 용한 “대제사장”(ἀρχιερεύς)은 요한일서의 파라클레토스 본문에 나오지 않으나, 필론의 파라클레토스 본문에는 두 번이나 나온다(Spec. 1.230, 235와 237 참조). 이는 오리게네스가 요한일서의 파라클레토스를 필론 의 파라클레토스와 연결하여 재해석했다는 증거다.

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올라가신 다음”에 “사람들에게 내려오 신” 하나뿐인 성령:

오리게네스는 “요한복음에서 성령을 파라클레투 55) 이 논문에서 De Oratione에 대한 우리말 번역은 다음을 사용한다. 오리게네스, 기 도론, 이두희 옮김, 장용재 주해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8). 문우일 _요한복음의 παράκλητος❙181 스라고 부르셨다”면서, “성령께서 사람들에게 본격적으로 내려오신 때는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다음”(요 16:7)이라고 강조한다 (De Principiis 2.7.1-2).56) 그 이전에는 소수의 예언자만이 성령을 받았 다는 것이다. “한 성령”(2.7.3)을 강조하므로, 당시에 두 성령 이상을 주장한 이들이 있었던 것 같다.

다. 사도들의 혼(ψυχή)에 쏟아부은 그리스도, 삼위일체의 위격으로 서의 영:

오리게네스에게 파라클레토스는 사도들의 ‘혼’에 쏟아부은 그리스도 자신이며 삼위일체의 위격으로서의 성령이며, 믿음을 밝혀 주고 깨닫게 하는 영이다(De Principiis 2.7.3).

이는 요한복음 16:12-13에 대한 해석이지만, 파라클레토스가 ‘혼’에 내주하고 동행한다는 표현은 필론적이다. 오리게네스는 요한복음의 파라클레토스에서 필론의 파 라클레토스를 떠올린 것이다.

라. 진리로 상심한 마음을 위로하고 기쁨을 주는 영:

오리게네스에 게 요한복음의 ‘진리의 영’은 ‘인간의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진리’(고후 12:4), “우리에게 허용된” 영(고전 10:23), 진리 안에서 예수를 주라고 시인하는 영으로서(고전 12:3), 혼(ψυχή)을 요동하지 않게 하고, “상심 하지 않게 하는 영”이다.

또한 파라클레토스는 παράκλησις(위로)에서 유래했고, 이에 해당하는 라틴어는 consolatio라고 한다(De Principiis 2.7.2). 그는 요한복음의 파라클레토스가 예수의 죽음을 예고하는 고별 담론에서 ‘상심’(λύπη) 주제와 연결되어 있음을 예민하게 포착했다(요 16:6, 20, 21, 22). 필론도 λύπη를 80회나 언급하고, 상심을 몰아내는 가 장 효과적인 덕목을 진리, 지혜, 이성이라고 본다(Migr. 1.219). 56) 본 고에서 De Principiis의 우리말 번역은 다음을 사용한다. 오리게네스, 원리론, 이성효, 이형우, 최원오, 하성수 해제 및 역주, 한국연구재단총서 567 (파주: 아카 넷, 2014). 182❙신약논단 제31권 제2호∙2024년 여름

마. 구원자-중재자와 위로자-성령:

오리게네스에 따르면, 요한일서 2:1-2의 파라클레토스는 ‘속죄제물’이자 ‘구원자’로서 ‘성령’과는 뉘앙 스가 다르다고 설명한다(De Principiis 2.7.4).

구원자로서 파라클레토스 는 ‘중보자’(intercessor)와 ‘탄원자’(deprecator)로서 로마 법정 용어에 가 깝고, 성령으로서의 파라클레토스는 ‘위로자’(consolator)로서 유대 문 헌에서 ‘백성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사 40:1; 66:1)에 가깝다는 뜻이다.

필론처럼 오리게네스도 로마 법정 용어로서의 파라클레토스와 유대 적 파라클레토스를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VI. 마무리하며

요한복음의 파라클레토스에 관한 본문들은 필론을 직접 언급하거 나 인용하지 않으나, 중요한 용어들과 사상들이 필론과 공명하는 것 을 확인했다. 그런데 요한복음은 많은 자료를 사용하면서도 그 출처 를 좀처럼 밝히지 않을뿐더러, 알아보기 쉽게 인용(quotations)하거나 참조(references)하기보다는 인유(allusions) 방식을 취하곤 한다. 따라서 요한복음 저자(들)이 비록 필론의 파라클레토스 개념을 알고 있었을 지라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을 것이어서, 실제로 요한복음이 필론을 직접 사용했다고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로마의 법정 용어를 그리스어로 표현한 신조어였을 가능성이 높은 ‘파라클레토스’라는 명사가 그리스어 고전에서 인간 법정 용어 로만 극히 간헐적으로 사용되다가 유대인 필론에서 의미 확장이 이루 어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필론 이후에 그 용어가 확장된 의미로 처음 나타나는 문헌이 요한복음과 요한일서라는 사실은 이 요한 문헌 의 파라클레토스가 필론과 무관하지 않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문헌상으로 ‘파라클레토스’는 데모스테네스(BC 384-322)의 글에 처음 등장하 여 비-유대 그리스어권에서는 극히 드물게 법정 용어로만 사용되었 다.

이에 관하여 셸퍼는 데모스테네스가 로마 법정 용어 advocatus를 그리스어 παράκλητος로 차용하여 아고라 법정 상황에 적용하기 시작 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파라클레토스가 비-유대계 그리스어권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은 까닭도 그것이 신조어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다가 이 희귀 단어는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필론의 글에서 로마 법정 문화와 유대 신앙 전통이 어우러진 형태로 11회 등장한다.

이후 로 비-유대계 문헌에서는 발견되지 않다가 요한복음에 4회 요한일서 에 1회 나타난다.

그런 다음에 이 용어는 시내산 사본에 포함된 ‘바나 바의 편지’에서 순수한 로마 법정 의미로 1회 등장한다. 공교롭게도 바나바의 편지를 처음 언급한 사람들은 모두 알렉산드리아 출신들이 다.

가장 먼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가 언급했고, 이어서 알렉산 드리아에서 나고 자라 40대에 가이사랴 마리티마로 이주한 오리게네 스가 그 편지를 언급했다.

그런 다음에 ‘파라클레토스’는 알렉산드리 아의 클레멘스의 작품에서 2회 사용되었다.

이어서 그의 제자였던 알 렉산드리아의 오리게네스는 현존하는 그의 작품들에서 파라클레토스 를 8회 이상 언급하면서 비교적 상세하게 해석했다.

이처럼 파라클레토스라는 희귀 단어가 필론, 바나바의 편지, 클레 멘스, 오리게네스 등 알렉산드리아와 연관된 일련의 작품들에 잇달아 출몰한다는 사실은 당시 알렉산드리아에 로마 법정 문화가 정착해 있 었던 사실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요한복음과 요한 일서가 알렉산드리아와 깊은 연관이 있음을 암시하는 것인지도 모른 다.

만약에 그렇다면 요한복음에는 현재까지 알려진 것 이상으로 라 틴어 문헌이나 로마 사상의 흔적이 담겨있을지 모른다. 그에 관하여 진지한 후속 연구들이 있어야겠다.

한편, 이 논문은 필론과 요한복음에 모두 정통했을 오리게네스가 요한복음과 요한일서의 파라클레토스를 설명한 본문들에서 매우 절 제하여 필론의 언어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특히 오리게네스 가 요한복음의 파라클레토스를 설명할 때, ‘혼’과 동행한다고 표현하 고, 요한일서의 파라클레토스를 ‘대제사장’과 연결한 것은 필론적이 다.

이는 분량이 많지 않으나 매우 특이한 단위-사상이므로 유의미한 증거 자료로서, 오리게네스가 요한 문헌의 파라클레토스 본문에서 필 론과의 상관성을 발견했고, 요한 문헌의 파라클레토스를 해석하면서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그 단위-사상을 사용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오리게네스의 작품들은 대부분 소실되었고, 파라클레토스에 관한 현 존 본문들은 필론과의 관련성을 충분하고도 불가역적으로 입증하기 에는 분량 자체가 부족한 편이다.

또한 비록 오리게네스가 요한복음 해석에 필론을 도입했을지라도, 그것 자체가 요한복음이 필론을 사용 했다는 직접 단서가 되지는 못한다. 그

러므로 파라클레토스 외에도 필론과 요한복음이 공유하는 다른 단위-사상들에 대한 후속 검증이 이루어져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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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Παράκλητος in John and Philo of Alexandria

Moon, Wooil (Sungkyul University, Adjunct Professor)

This paper examines παράκλητος in the Fourth Gospel and Philo of Alexandria using philological criticism and history of ideas, aiming to supplement the suggestions by C. H. Dodd, Folker Siegert, and Peder Borgen regarding motifs shared between John and Philo. Παράκλητος first appeared in Demosthenes (384-322 BC) and was used exclusively as a legal term, being very rarely employed. Lochlan Shelfer argued that Demosthenes coined the Greek term παράκλητος to render the Roman legal term ‘advocatus’ applicable within the context of the Greek agora court. Philo expanded the term’s meaning by integrating Roman court culture and Jewish religious tradition, employing it at least 11 times. Subsequently, the term is not found in any extant literature until it appears four times in the Fourth Gospel and once in 1 John. The term then appears once with its purely Roman legal connotation in the Epistle of Barnabas. This epistle is first mentioned by Clement of Alexandria and then Origen. Clement refers παρά- κλητος twice, and Origen more than eight times. Notably, Origen, who was well versed in both Philo and the Fourth Gospel, incorporates Philo’s terminology when interpreting the Johannine παράκλητος. The recurring presence of παράκλητος in Alexandrian texts beginning with Philo reflects the establishment of Roman legal culture in Alexandria during that period and suggests that Philo may have influenced the usage of παράκλητος in John.

Keywords Paraclete, Holy Spirit, The Fourth Gospel, Philo of Alexandria, Origen

신약논단 제31권 제2호 2024년 여름

투고일: 2024. 5. 21 최종심사일: 2024. 5. 28 게재확정일: 2024. 5. 28

요한복음의 παράκλητος - 알렉산드리아의 필론을 참조하여.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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