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시진핑 체제의 ‘중화민족공동체’와 ‘중화적 종주권의식’
II. ‘중화민족’의 히스토리와 중화내셔널리즘의 탄생
III. ‘중화민족공동체’와 제국모델(대일통): 21세기 ‘동일성의 제국’
IV.‘중화민족공동체’와 국제사회 모델: 다원의 열린 공동체
V. 맺음말을 대신하여: 한국, 어떻게 할 것인가
I .시진핑 체제의 ‘중화민족공동체’와 ‘중화적 종주권의식’
시진핑(習近平) 정부는 ‘인류운명공동체’(2012), ‘아시아운명공동체’(亞洲命運 共同體, 2015), ‘중화민족공동체’(2017)를 차례로 제시했다.
이로써 미국과 개발 도상국을 겨냥한 글로벌 차원, 주변국가를 포함한 아시아 차원, 중국 내부의 한 족과 소수민족의 통합을 위한 민족·국가 차원 등 세 층위에 대한 시진핑 정부의 대체적 구상이 드러난 셈이다.
중화민족공동체는 시진핑 주석이 2017년 19대 당대회에서 “중화민족공동 체 의식을 공고히 한다(鑄牢中華民族共同體意識)”를 보고한 후 <중국 공산당 당장(中國共産黨黨章)>에 포함되어 새로운 민족이론으로 확정되었다.
중화민 족공동체는 유기적인 운명공동체를 목표로 한다.1
1 이에 대한 간략한 내용은 楊福忠, 2021.8.30, 「鑄牢中華民族共同體意識」, 『光 明日報』, 김인희, 2022.7.20, 「중국이 새로 내건 중화민족공동체」, 『중앙일보』 참조.
사실상 이 구상의 실제 목표 는 소수민족, 홍콩, 타이완을 포함한 중국 내부의 국민적, 민족적 통합에 있다.
즉 한족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에스닉(ethnic)이 유기적 실체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여기서 공동체라는 단어를 붙인 것은 유기성을 강조한 것이지만 소수민족 이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특수성보다는 ‘동일성의 제국’을 지향한다는 의미로 읽어야 한다.
시진핑 정부가 등장하면서 내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시진핑 체제의 슬로건에서 이미 시진핑은 ‘중화민족의 아버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중화민 족’이라는 단어는 의인화되고 있다.2
필자는 여기에 pax sinica 지향의 대일통(大一統) 사상과 레닌주의적 정치 시스템의 당 영도 원칙이라는 정체성의 정치가 개입되어 있다고 본다.
전자는 “최고지도자는 천하만민을 다스리는 것을 사명으로 한다”는 유교의 전통이다.
후자는 ‘시진핑 사상’을 21세기 마르크스주의로 규정하는3 현 중국 지도부의 의 지가 반영되어 있다.
중국의 ‘중화민족공동체’ 주장에서 우리가 긴장해야 하는 것은 그 타깃이 소 수민족이나 타이완의 복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안에는 전통 시 대 주변의 사이(四夷)에 대한 역사 전략이 숨어 있고 이 과정에서 역사왜곡이 일 어날 가능성이 존재한다.
한국 고대사 속의 한중 관계를 ‘속국’(심지어 현재까지 도) 또는 ‘종번관계’라고 자연스럽게 말하는 중국인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4
이는 어떤 면에서는 중국에서 역사교육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다.5
이런 종류의 역사왜곡이 지속된다면 한중 간의 갈등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6
2 鈴木隆, 2022, 「‘中華民族の父’を目指す習近平、あるいは‘第二のブレジネフ’か‘第 二のプ-チンか’」, 川島眞·小嶋華津子 編, 『習近平の中國』, 東京大學出版會, 95쪽.
3 The Fundamentals of Xi JinPing Thought on Chinese Socialism in a New Era[習近平新時代中國特色社會主義思想基本問題], Beijing: CCP Central Committee Cental Party School Press, 2020, 1쪽.
4 이개석·이희옥·박장배·임상선·유용태, 2005, 『중국의 동북공정과 중화주의』, 고구려연구재단; 박장배 외, 2014, 『중국의 변경 연구』, 동북아역사재단.
5 우성민, 2022, 「한중 수교 30주년 시점에서 살펴 본 중국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 속의 한국사 서술 현황과 시사점」, 『中國古中世史硏究』 65집, 316쪽 참조.
6 이에 대해서는 임동욱·박정수·박영환·윤경우·신종원·권혁희 공저, 김인희 엮 음, 2022, 『문화의 시대 한중 문화충돌』, 동북아역사재단 참조.
이러한 현상들은 세계가 ‘근대적 주권개념’으로 전환 했음에도 중국은 아직도 중세적인 ‘중화적 종주권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7
7 이런 우려를 보여주는 글로 오병수, 2014, 「중국 근대 역사 교과서의 자국사 구축 과정과 ‘중화민족’」, 『역사연구』 132(오병수, 2021, 「중국 근대 역사 교과서의 자국 사 구축 과정과 ‘제국’적 서술의 지속: 중화민족론을 중심으로」, 오병수 편, 『한중 역사 교과서 대화: 근대의 서사와 이데올로기』, 동북아역사재단) 참조.
그렇다면 21세기에 들어와 시진핑 체제는 왜 중화민족공동체를 주장하는 것일까.
대내적으로 글로벌화와 경제성장에 따른 원심력의 가속화를 견제할 내 부통합을 위한 프로파간다가 요구되었을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위상이 달라진 ‘세계 최대의 행위자’인 ‘G2 중국’이 갖는 가치와 공간에 대한 새로운 개념화가 필요했을 것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은 기본적으로는 청의 판도를 거의 그대로 계 승했다.
시진핑 정부가 중화민족공동체를 제시한 것은 사실상의 ‘상상의 공동 체’로 더 이상 만족할 수 없다는 판단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법가사상(마 르크스주의적 관리통제)에 기초한 톱다운 방식에 익숙한 공산당의 시각으로는 에 스닉 문제는 아직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다.
마오쩌둥(毛澤東) 시기에 티베트 ‘해방’ 전쟁을 위시하여 이후에도 폭력적 방식으로 소수민족의 국민화 정책을 폈지만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중국정부 내에서 내부 정체성의 ‘단일화’의 정도가 훨씬 더 견결 한 ‘동일성의 제국’을 만들어야 한다는 발상이 나왔을 법하다.
그래야 인류운명 공동체라는 더 큰 목표를 달성하는 데 효과적인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 이다.
중국이 만들려는 중화민족공동체는 다원성을 인정하는 열린 공동체가 아 니라 동일성에 근거한 닫힌 공동체가 될 공산이 크다.
그렇게 된다면 우선적으 로 소수민족과 홍콩의 시민에게는 AI를 활용한 감시가 이전보다 강화될 것 이다.
나아가 중국의 일반 인민들의 일상에서도 자기검열의 내면화가 이전보다 훨씬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문제 인식 아래 이 연구는 시진핑 체제에서 민과 관의 ‘총동원체제’ 가 가동되어 펼쳐지는 주류 담론의 갑론을박이 21세기라는 시대에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려 한다.
역설적이지만 다원성은 국가가 위기를 맞았거나 분열 되었을 때 보장된다.
소프트파워는 다원성이 보장되었을 때만 발전을 허락 한다.
세계패권의 달성을 목표로 하는 중국은 역설적으로 한국과 같이 이웃나라 에서 발신하는 중국 밖의 이야기를 무시해서는 자신들의 목표와 점점 멀어진다 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 글은 다음 순서로 진행한다.
Ⅱ장에서는 ‘중화민족’과 중화내셔널리즘에 의한 한족 중심의 국가 통합구상은 소수민족에게는 억압과 예속을 의미했다는 것을 밝힌다.
더불어 중화인민공화국 이후 소수민족의 국민화 작업은 ‘다원’을 삭제하는 과정이었다고 주장한다.
Ⅲ장에서는 ‘동일성의 제국’을 추구하는 제국 모델의 사상적 원천인 대일통 사상에 대해 알아본다.
중화민족공동체는 바로 이 에 근거한 정책이다.
시진핑 정부에서 대일통의 전통은 ‘사상통일’을 강화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며 결국은 ‘동일성의 디지털 제국’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Ⅳ장에서는 대일통에 기초한 제국모델에 대항하여 국제사회 모델도 정당한 역사로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모델은 다원성이 존중된다 는 의미에서 평화와 공존의 모델이기도 하다.
이 모델 아래서 중국은 오히려 보 편을 내장한 사상, 즉 소프트파워가 탄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Ⅴ장 맺음말에 서는 중국의 ‘현상변경’ 태세에 대응하여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초보적 수준에서 생각해본다. 단, 이 글은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래 75년이라는 긴 시 간을 통해 ‘독자적 체계’를 갖춘 ‘당 문화’와 그 속에서 형성된 “중국적 특색을 지닌 당대의 중국 지식분자”8 를 의식하면서 전개한다.
8 첸리췬 저, 이복희 역, 2022, 『1948 천지현황』, 한울, 5~16쪽.
II .‘중화민족’의 히스토리와 중화내셔널리즘의 탄생
중국 근대사에서 ‘중화민족’이라는 개념어는 ‘국민’의 창출이 필요하다는 자각 과 함께 등장한다.
다시 말해 다민족구조의 중국이 새로운 근대국가로 이행해가 는 국면에서 복수의 국민국가로 분열하지 않고 하나로 통합하려는 욕구가 관철 된 용어 할 수 있다.
중화민족의 히스토리는 중화내셔널리즘의 탄생의 과정과 도 겹치지만 이는 소수민족의 희생과 억압이라는 복잡한 사정 위에서 만들어 진다.
중국에서 근대적 의미의 국가와 국민의식이 담론화되고 일반화된 계기는 1895년 청일전쟁의 패배였다.
청일전쟁의 패배는 중국의 지식인들을 집단적 충 격에 빠트렸다.
옌푸(嚴復)가 사회진화론(天演論)을 소개한 것은 청일전쟁의 패 배가 계기였다.
중국의 지식인들을 향해 세상이 중국을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 는다는 사실을 알리고자 한 것이다.
그는 경전체제, 즉 도덕이 아닌 부와 강의 논리로 세상은 움직여진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사회진화론이 소개되면서 국가 와 국민의식이 강조되었고 그럼으로써 기존의 천하를 중심으로 하는 전통적 중 화주의는 균열이 불가피해졌다.
대신 근대적 형태의 중화주의, 즉 중화내셔널 리즘이 새롭게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한족 중심의 새로운 중화내셔널리즘은 사 회진화론적 세계 인식 이후에야 가능했던 것이다.9
옌푸가 “금일 (정치)당파에서 는 비록 신구의 차이가 있지만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다투지 않고 모두 단결해야 한다”10고 주장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9 한족 지식인들은 이전과는 다른 다민족으로 구성된 새로운 형태의 초월적인 정치적 통일체인 청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민족국가의 올 바른 기초는 민족적 조국이라 주장하면서 새로 탄생한 중화민국은 한족만 독점하는 영역임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윌리암 T. 로 저, 기세찬 옮김, 2014, 『하버드 중국사 청-중국 최후의 제국』, 너머북스, 504쪽.
10 E. Jenks 著, 嚴復 譯, 1981, 『社會通詮』, 商務印書館, 115쪽.
영국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글로벌한 세계 체제 속에서 중국은 서양처럼 국 민국가의 형태를 취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압박을 느꼈고 이것은 민족주 의와 국민의식을 촉구했다.
이러한 국면 속에서 기존의 중화주의는 (자각적으로) 해체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오히려 근대적 형태의 내셔널리즘이 합쳐져 더 강 한 중화주의인 중화내셔널리즘이 만들어졌다.
예컨대 쑨원(孫文)이 “국족주의가 중화세계적 틀 속에서 국민국가적 레벨에서의 응집력으로서 현상하고 있다” 고 말한 것처럼 당시 독서인들은 중화세계를 국민국가의 틀 속에서 파악하려 했다.
그 결과로 나온 것이 중화내셔널리즘이다.
신해혁명 시기만이 아니라 20세기 전반기까지 서구와 일본의 지속된 침략행위는 저항적 형태의 중화내셔 널리즘이 점점 더 강고하게 되는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환경은 역설적으로 중화의 정체성을 갖지 않은 에스닉에게는 억압과 예속을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19세기 말 민족담론이 생성될 당시 중국 내부의 타자이며 또 다른 의미의 ‘식민지’라고도 할 수 있는 소수민족의 입장에서는 주류적 민족 담론이 매우 낯 설게 보였을 가능성이 높다.
소수민족의 자결과 독립의 요구에 대해 민족 담론 유포를 통한 ‘국민화’ 작업에 몰두했던 중국의 정치지도자들의 이율배반적 태도 는 지적되어야 한다.
배경한에 의하면 신해혁명으로 만주족의 지배에서 벗어난 한족은 티베트와 몽골의 독립 요구는 묵살했고 이 점에서 오히려 저항적 민족주 의와는 상반되는 팽창적 민족주의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11
민족주의 담론이 19세기 후반 중국에 들어와 20세기 초까지의 학술계를 장 악하게 된 주요원인은 서구세력의 침략과 이에 따른 국민국가 창출의 필요성 때 문이었다.
중국 내의 소수민족의 입장에서 보면 이들에게 근대는 서구제국주의 가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식민화되는 과정이었다.
18세기에 빈번하게 일어나는 소수민족의 반란을 겪으면서 청조는 행정적 지배와 교육을 통해 이들을 한화(漢 化)시켜나갔으며 따라서 소수민족에게 근대는 한족에게 동화 또는 식민지화되 어가는 과정이었다.
따라서 동아시아적 근대는 아편전쟁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청제국의 팽창이 극도에 달한 18세기 중기부터 이미 시작되었고12 또 근 대시기 민족주의 역시 서구열강의 침입에 대응한 중국적 형태 이전에 중국의 팽창에 대한 소수민족의 저항에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11 배경한, 2000, 「19세기 말 20세기 초 중화체제의 위기와 중국 민족주의」, 『역사비 평』(여름호), 247쪽 참조.
12 Joshep Fletcher, 1978, “Ch’ ing Inner Asia C.1800” , The Cambridge History of China, Vol. 10, Part 1, Cambridge University Press, p. 35.
바로 이 점에서 근대중국은 조공국과 소수민족의 희생 위에서 발전한 측면이 있다.13
대청제국은 이전의 중국왕조나 이방인들의 정복왕조와는 달랐다.
내향적이 고 ‘폐쇄된’ 중국왕조가 아니었다.14
다민족의 세계적 제국으로서 청제국은 ‘중 국’의 지리적 범위를 확장했고 몽골족, 여진족, 티베트족, 내륙 아시아의 이슬 람 교도 등 한족이 아닌 민족을 새로운 형태의 초월적인 정치적 통일체로 아우 르는 놀랄 만한 성과를 달성했다.15
정복왕조는 태생적으로 포용적 태도를 취해 야 제국의 운영이 가능했다.
청조 입장에서는 팽창적 포용이고, 소수민족 입장 에서는 타협적 희생이라 할 수 있다.
중화민족이라는 단어가 중국에서 가장 최초로 사용된 예는 1903년 4월 발 행한 잡지 『호북학생계』 제4기에 수록한 ‘중화민족론’이다.16
다음 해에 량치차 오(梁啓超)가 ‘중국의 신민’이라는 필명으로 ‘역사적인 중화민족의 관찰’이라는 글을 『신민총보』에 게재했다.17
이 점에서 ‘중화민족’이라는 개념의 오리지널 저작권은 청말 정치가이자 사상가 량치차오에게 있다.
그가 이 개념을 창안한 것에는 두 가지 의도가 있다.
하나는 통치구역으로는 역사상 최대였던 청나라라 는 강역을 염두에 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당시 국민국가나 민족국가의 수립이 라는 국제적 추세다.
물론 당시에는 혁명가 쑨원(孫文)의 ‘오족공화(五族共和)’ 에 대한 견제의 의미가 컸을 것이다.18
13 유장근, 2002, 「동아시아 근대에 있어서 중국의 위상」, 『근대 동아시아 국제관계 의 변모』, 혜안, 47쪽.
14 윌리암 T. 로 저, 기세찬 옮김, 2014, 앞의 책, 509쪽.
15 윌리암 T. 로 저, 기세찬 옮김, 2014, 위의 책, 504쪽.
16 중화민족 개념의 복잡성에 대해서는 김승욱, 2022, 「근현대 중국에서 민족 담론의 전개-다양한 지식 기반과 내적 긴장 」, 『동북아역사논총』 78호, 385~389쪽 참조.
17 大崎雄二, 1995, 「中華人民共和國における國民統合と民族政策―「中華民族」 の概念を中心として―」, 『法政大學敎養部紀要』 94, 29쪽.
18 오족공화의 한계에 대해서는 김승욱, 2022, 앞의 글, 403~404쪽 참조.
그러니까 왕조가 무너지고 근대국가체제 로 변화해야 하는 상황에서 ‘제국’의 영역은 그대로 둔 채 국민국가의 형태를 취해야 하는 것, 다시 말해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국민국가 로 변환되어야 하지만 청나라가 남긴 넓은 강역은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이중 의 과제를 량치차오는 직관적으로 알고 있었다.
당시에 그는 중국이 ‘현대국가’ 라는 장기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는 ‘문명-국가(civilization-state)’로서의 광대 한 중국이 가지고 있는 ‘국성(國性)’을 발양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렇지 않으면 중국은 투르키예처럼 될 것으로 내다봤다. 국성은 문명성을 의미한다.19
결국 량치차오는 단기적으로는 국민국가를, 장기적으로는 ‘천하’질서의 재구성을 꿈 꾸었던 것이다.20
그렇다면 쑨원은 어땠을까.
당시 정치 지도자의 지위에 있었던 쑨원도 ‘천 하’에 대한 과제를 더더욱 무겁게 느꼈을 것이다.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쑨원의 말바꾸기가 있다.
쑨원은 처음에 오족공화를 주장하고 선창했었다.
청 나라 판도내의 소수민족, 또는 비한족의 정치적 자격을 한족과 똑같이 부여하고 자 한 것이다.
소수민족에게는 그 소리는 제1차 세계대전 후 식민지민들이 윌슨 의 민족자결론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
그러나 한족 중심의 국 민국가를 만들려고 했던 쑨원은 끝까지 그 입장을 견지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중화민족론이라는 용어로 바뀐다.
한(漢), 만(滿), 몽(蒙), 회(回), 장족(藏族)의 평등한 일체를 주장하는 오족공화론을 반대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중국 에는 오족 이상의 소수민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한족 또한 혈통 및 역사의 자존자대한 민족의 명칭을 희생하고 만, 몽, 회, 장의 인민과 합쳐 하 나의 새로운 중화민족의 개념을 수용했다는 것이었다.
당시 한족 독서인들은 소 수민족을 포용한 ‘제국성’을 유덕함 또는 정당성으로 인식했다.21
19 甘陽, 2012, 『文明 國家 大學』, 三聯書店, 3쪽.
20 전인갑은 천하 패러다임의 해체와 재구성을 20세기 100년의 시야를 가지고 설명 한다. 전인갑, 2022, 「중국 국가건설 100년의 역정과 역사학(Ⅰ)-천하 패러다임의 해체와 근대 역사학」, 『역사학보』 256호, 3쪽의 <표 1> 참조.
21 조경란, 2016, 「21세기 손문과 삼민주의는 어떤 의미인가-‘제국성’과 국민국가의 이중성」, 『성균차이나프리프』 4권 2호.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전의 중국공산당은 ‘중화민족’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
1922년 7월 제2회 당대회에서 중국공산당은 자유연방제의 ‘중화연 방공화국’의 수립을 결의하여 당초 코민테른 노선에 충실한 민족자결의 원칙을 내걸었다.
하지만 1937년 항일전쟁이 발발하자 마오쩌둥은 당원 교과서용으로 집필한 ‘중국혁명과 중국공산당’(1939)에서 ‘불가분일체의 다민족통일국가’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한족을 중심으로 한 중화민족 개념을 다시 강조한 것이다.
이후부터 소수민족의 자결(自決)은 환상이 되어버렸다고 할 수 있다.22
중국공 산당은 사회주의 체제를 성립한 이후에는 공식적으로는 ‘민족’보다는 ‘계급’을 우선시했으나 티베트나 신장 위구르를 병합할 때는 대가족(大家庭)이라는 용어 를 사용하기도 했다.23
‘중화민족’을 말할 때 인류학자 페이샤오통(费孝通, 1910~2005)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중앙민족대학 총장을 역임한 바 있는 페이샤오통은 1989년 ‘중 화민족다원일체구조론’(이하 다원일체론)을 발표했다.
이 글은 홍콩 중문대학의 Tanner 강좌에서 행한 학술강연을 통해 “중화민족다원일체격국(中華民族多元 一體格局)”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다.24
22 大崎雄二, 1995, 앞의 글, 27쪽
23 마오쩌둥 시기의 중화민족 문제에 대해서는 손장훈, 2023, 「‘중화민족공동체’ 의식 의 기원과 전개 과정」, 『동북아역사리포트』 제37호의 3장 참조.
24 費孝通, 2003, 「民族硏究-簡述我的民族硏究經歷與思考」, 『中華民族多元一 體格局』(修訂本), 中央民族大學出版社, 13쪽.
다원일체론은 개혁개방 이후 시장화 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혹시 발생할지도 모를 긴장된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고 국 민의 통합과 질서를 강화하기 위해 나온 이론이다.
하지만 이 다원일체론으로 중국 중앙정부의 제민족의 평등, 민족자치정책, 각 민족 상층 리더와의 통일전 선 구축이라는 기존의 민족정책이 변화한 것은 아니다.
이 정책들은 기본적으로 한족과 소수민족 사이에 문화적 단위와 정치적 단위가 일치하지 않는 상황에서 나온 고육지책의 결과다.
중국정부는 개혁개방을 진행하면서 소수민족을 포함 한 중화민족에 대한 한층 강화된 국민화 전략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에 따라 ‘주문생산된’ 것이 바로 다원일체론이다.
그 내용의 대강은 다음과 같다.
“중화민족이란 현재 중국의 영역내에서 민 족으로서의 공통인식을 갖는 11억 인을 가리킨다. 50여 개의 민족단위를 다원 으로, 중화민족을 일체로 한다. 각각을 민족이라 부르지만 그 심급은 다르다. 국 가영역을 중화민족의 범위로 정하는 것이 적당할지 모르지만 국가와 민족은 다 른 개념인 동시에 상호 관계하는 개념이다. 이 분류는 다소 불필요한 정치논쟁 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크게 보면 양자의 범위는 기본적으로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중화민족이란 자각적 민족실체로서는 100년 이래 중국과 서구열강이 대 항하는 속에서 출현한 것이며 실체로서 존재하는 민족실체로서는 수천 년의 역 사적 과정에서 형성되어온 것이다.”25
페이샤오통은 자각적 민족실체와 자유로 운 민족실체를 구분하면서 다원의 토대 위에서 일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일원성을 강조하는 시진핑 체제하에는 다원(多元)을 삭제하려 한다.
그 러나 이 다원이라는 말은 상징적으로라도 중요했다.
다원이 없으면 역동성은 사 라진다.
“한족과 55개 소수민족은 하나의 등급에 속하며 그들은 서로 결합하여 중화 민족을 이룬다. 중화민족은 56개 민족의 다원으로 형성된 일체이며 높은 단계 의 공통체 의식을 갖는 민족실체라고 할 수 있다.”26
25 費孝通, 2005, 「中華民族多元一體格局」, 『費孝通集』, 中國社會科學出版社, 259쪽.
26 費孝通, 2003, 앞의 글, 13~14쪽.
기서 요점은 중화민족이 민족실체라는 것이다.
이 말 속에서 페이샤오통은 56개 민족이 함께 있는 물리 적인 총칭이 아니며 너 속에 내가 있고 내 속에 너가 있는 상호 불가분의 정체이 고 공동운명체라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여기서 그는 민족공동체의식에 대한 다 층성을 인정하고자 한다.
다원일체 구조 중에서 56개 민족의 하위(基層) 개념과 중화민족이라는 상위(高層) 개념을 확실히 구분했다.
또 페이샤오통은 다원일 체의 구조 속에서 한족은 다만 다원적 하위 개념 중 일원(一元)일 뿐이며 다원이 결합하여 일체가 된 이후에는 한족이라고 할 수 없고 중화민족이라고 해야 한다 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것이 높은 단계의 공동체의식을 갖는 민족이 된다. 따라 서 실제로는 일체이기도 하고 다원적 복합체이기도 하다.
중국의 어떤 학자는 다원일체론은 최소한 이론적으로는 기존의 ‘대한족’이라는 말의 패권을 깼으며 국가가 창도하는 민족평등과 각 민족공동번영 방침에 대한 역사주석을 달았다27 고 평가한 바 있다.
27 張植榮, 2005, 『中國邊疆與民族問題』, 北京大學出版社, 18~19쪽 참조.
페이샤오통의 다원일체론은 민족 자각을 갖는 민족실체로서 중화민족을 구 성하려 한다는 점에서 이때만 해도 한족중심주의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그 는 적어도 부동(不同)을 의미하는 다원을 개념어로 설정하여 소수민족의 존재를 인정하려 했다.
그러나 이 글의 주제인 중화민족공동체에서는 아예 다원이라는 말을 삭제했다.
따라서 중화민족공동체는 페이샤오통의 중화민족 다원일체구 조론의 폐기를 의미한다.
앞으로 중화민족공동체가 현실화될수록 에스닉의 다 원성은 약화되고 일방향적 동화주의가 강화될 것이다.
결국 시진핑체제는 다원 성을 부정한 ‘동일성의 제국’을 구상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이는 공 자가 말하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가치를 부정하는 꼴이다.
여기서 부동은 동 일성의 부정을 의미한다.
서로 다른 것들이 어울려 조화를 이루지만 이들이 똑 같을 필요가 없으며 무리를 짓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다.
III .‘중화민족공동체’와 제국모델(대일통): 21세기 ‘동일성의 제국’
중국정부는 2017년에 ‘중화민족공동체’ 구상을 내놨으며 2022년 10월 20차 공산당대회 개회식에서도 이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 구상은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일차적으로 한족을 구심점으로 하여 홍콩의 조기흡수, 타이완의 독립 저지, 소수민족의 분리를 막기 위한 것이다.
제국모델은 규모는 크지만 닫힌 공동체 구상이라 할 수 있다.
중국 역사를 논의할 때 ‘중국’과 ‘천하’와 같은 개념 에 비해 ‘대통일’은 한동안 사람들의 시야에서 벗어나 있었다.
하지만 ‘대통일’ 은 정치와 종교 말고도 영토 거버넌스와의 관련성 때문에 최근 다시 주목받게 되었다.28
그러니까 중화민족공동체는 과거의 언어로 표현하면 중앙집권적 천하일통 을 지향하며 ‘대일통’의 21세기 버전이다.
중국의 역사인식에서 ‘대일통’은 천하 일통을 의미한다.
중국의 역대 왕조는 ‘안정’과 ‘질서’ 확보를 위해 ‘대일통’의 실 현을 선제조건으로 여겼다.29
여기서 대일통의 의미를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일통은 통일과 다르다. 일통은 군주를 중심으로 하는 통일이다.
이럴 때 일통은 묵가에서 말하는 상동(上同)의 의미에 가깝다.
위의 지시에 따른다는 의미다.
따 라서 일통은 기본적으로 전제적이다.
반면, 통일은 다원성을 용인한다.
통일은 다원적이며 다원의 통일로서 ‘공화’(共和)를 이루고자 한다.30
중국의 역대 왕조에서도 지배의 정당성은 바로 ‘대일통’을 주내용으로 하는 제국적 중화(Imperial China)를 달성해야 획득된다는 인식이 있다.31
28 김승욱은 家와 國이 긴밀히 연결되면서 ‘대일통’의 국가 개념이 출현했다고 본다. 김승욱, 2019, 「중국 근대 역사학에서 國家 개념의 재구성」, 『역사와 담론』 89집, 166쪽. 이 주제와 관련해서는 최근 중국에서 나온 杨念群의 『“天命”如何转移: 清 朝“大一统”观的形成与实践』(上海人民出版社, 2022)도 참고할 만하다. 이 책은 ‘대일통’을 주제로 하여 청대 황권의 본질을 깊이 있게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받 는다.
29 鄧小平이 천안문 사건 직후 “안정이 모든 것을 압도한다(稳定压倒一切)”고 말한 것도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30 이중텐은 통일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한 예로 아메리카를 가져온다. 13주가 연방헌 법의 틀 안에서 통일된 나라를 구성하고 있는 아메리카 합중국의 경우 ‘통일’이지 ‘일통’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중텐 저, 심규호 옮김, 2015, 『국가를 말하다』, 라의 눈, 97쪽. 31 王柯, 2003, 「帝國と民族-中國における支配正當性の視線」, 山本有造 編, 『帝 國の硏究』, 名古屋大學出版會, 220쪽.
따라서 중 국인이 분열은 악이고 통합은 선이라고 교육받는 것이다.
이는 국민국가 시스템의 형성을 목표로 했던 중국 근현대 100년을 이해하려 할 때도 매우 중요 하다.32
중화인민공화국도 기본적으로는 청나라의 판도와 에스닉을 승계받았기 때문이다.
신해혁명과 마오쩌둥 혁명으로 시대는 바뀌었으나 국가의 존재 조건 은 바뀌지 않았다.
형식은 국민국가지만 내용은 제국인 ‘제국적 국민국가’라는 조건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중국정부의 ‘중화민족공동체’ 슬로건도 현시점에 서 중국 내부의 통합과 안정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 슬로건의 주목적은 베이징과 연결고리가 약했던 신장과 티베트 같은 국경 지방을 더욱 강하게 지배 하려는 의도에 있다.33
이 묘사만으로는 중국의 역대 왕조뿐 아니라 지금 시진핑 체제에서 대일통 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를 다 설명하기 힘들다.
조금 더 들어갈 필요가 있다.
중 국에서 지배의 정당성은 지배자의 민족적 출신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고 ‘대일 통’을 실현한 왕조야말로 ‘정통’의 중화왕조라고 하는 사고방식이 있다.
그리고 ‘정통’의 근원은 ‘천’이라는 ‘중화’적 정치신화에서 유래한다.34
왕커(王柯)의 말을 더 들어보자.
중화왕조와 중화제국의 공간적 구조는 다르지만 그 구별은 ‘외’라고 하는 이문화 집단을 포함하느냐의 여부, 특히 동서남북의 사방을 포섭하느냐 마느냐로 결정 된다. 모든 중화왕조가 제국적 구조를 목숨을 걸고 구축하여 중화제국으로 변신하 려 노력한 이유는 천하사상의 틀로 자신의 정당성이 찾아지기 때문이다.35
32 조경란, 2016, 「중국은 ‘제국의 원리’를 제공할 수 있는가-가라타니 고진 『제국의 구조』의 비판적 분석」, 『역사비평』(여름호), 336쪽.
33 켄트 콜더 저, 오인석·유인승 옮김, 2013, 『신대륙주의-에너지와 21세기 유라시 아 지정학』, 아산정책연구원, 350쪽.
34 王柯, 2003, 앞의 글, 206쪽.
35 王柯, 2003, 위의 글, 219~220쪽.
그에 의하면 모든 왕조가 중화왕조로 만족하지 않고 중화제국을 달성하려한 것은 그 자체로 지배의 정당성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지배의 정당성를 확보 하려면 ‘사방’의 포섭 여부가 중요하다.
중국인이 보유한 ‘중화적 종주권 의식’ 을 이해해야만 쑨원 등 중국의 정치인과 지식인이 왜 1920년대까지도 조공의식 에 사로잡혀 있었는지가 납득이 간다.
쑨원은 『삼민주의』의 「민족주의」에서 이 렇게 말한다.
“보다 이전에 잃은 땅으로 조선과 대만, 팽호도가 있다. 이들 땅은 청일전쟁에 의해 일본의 손에 넘어간 것이다. ... 이로써 중국이 강대했을 무렵 에는 ... 아시아의 서남제국에서 ... 진상품을 바치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지 않 은 곳이 없었다는 사정을 알 수 있을 것이다.”36
36 孫文 저, 손태식 역, 1974, 『孫文全集』 上, 삼성출판사, 45~46쪽.
과거에 조공했던 국가를 자신이 지배했던 지방정권으로 인식하는 사고습관은 쑨원 개인의 한계이기보다는 중 국 정치인, 지식인 일반에서 보여주는 중세적 인식이다.
이러한 인식은 1925년 공화국 시대에도 조공국인 사이(四夷)가 포함되어야 지배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심리적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례다.
이처럼 중국에서 ‘대일통’에 대한 강박이 강한 이유는 바로 ‘통치의 정당성’ 문제와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G2의 경제체를 계승한 시진핑 정부도 여기서 제외되지 않는다.
실제로 중요한 것은 국가적 이해관계다.
소수민족 자치 지역 의 면적을 모두 합하면 중국 전 국토의 64%가 된다.
여기에는 어마어마한 자원 이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진핑 체제도 소수민족의 이탈방지와 ‘타이완의 수복’이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길일 터이다.
타이완 문제는 마오 쩌둥이 남긴 사후 과제인 만큼 시진핑은 이 과제를 해결함으로써 자신을 마오와 같은 반열에 올려놓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할 개연성이 높다.
중국에서는 ‘굴욕의 근대사’를 극복하고 ‘충분히 강한’ 국가를 만들고 ‘중국 의 꿈’을 이루는 데서 타이완은 빠질 수 없는 영토라고 생각한다.
중국공산당에 게 타이완은 ‘굴욕의 근대사’ 속에서 일본에 ‘빼앗긴’ 땅이고 또 중국 내전에서 패한 국민당에 철퇴를 허용한 ‘해방’되지 않은 땅이다.
또한 미국의 ‘개입’에 의해 장기적으로 통합이 어렵게 된 땅이다.37
현행 중화인민공화국 헌법의 서문에 도 “타이완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신성한 영토의 일부이다.
조국통일의 대업을 달성하는 것은 타이완 동포도 포함한 전 중국 인민의 신성한 책무”라 쓰여 있다.
시진핑은 2017년, 2019년에 ‘타이완 동포에 고하는 글’을 발표하여 ‘신시 대 타이완 공작’을 내놨다.
여기서 ‘양안 일가친(一家親)’, ‘양안운명공동체’ 등 민족주의적 성격을 띤 이념을 제시했다.38
그렇다면 대일통이라는 관념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동중서(董仲舒)는 천 하사상으로 지배의 정당성의 사이클을 완성하여 중화제국 통치이데올로기 서 사를 만들었다.
동중서는 영원불변의 도는 어떤 것이냐는 무제의 질문에 “『춘 추』의 천하통일을 중시하는 공자의 도에 집약되어 있다”고 대답했다.
그는 진나 라가 단명한 것을 보면서 그것을 반면교사로 삼아 한나라가 어떻게 하면 오래 버틸 수 있을까를 고심했고 그 결과 유교를 기초로 한 방대한 제국의 통치원리 를 탄생시켰다.
그 저작이 바로 『춘추번로(春秋繁露)』이다.
이후 유교는 국가의 안정과 질서를 유지하는 정치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게 되었고 그 전통은 지금에 까지 이어오고 있다.
여기서 법가를 편애했던 마오쩌둥과 진시황이 오버랩되 고, 유교를 끌어들여 마르크스주의와 법가사상을 보완함으로써 장기집권을 시 도했던 시진핑과 한무제가 오버랩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동중서가 개조한 유 가사상은 공맹의 그것과 다르다.
전자는 천하일통의 사상이며 그것은 인의예지 보다 군신의 질서를 중시한다.
그런데 여기에 중요한 사실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동중서가 유교라는 이데 올로기를 한족만의 것이 아닌 국가 또는 제국의 것으로 확장했다는 점이다.
유 교가 한(漢) 민족에 내속(內屬)된 것이 아니라 ‘국가에 내속’되게 만들었다.39
37 福田円, 2022, 「習近平は臺灣を‘統一’できるのか-對臺灣政策の理念·政策·課 題」, 川島眞·小嶋華津子 編, 『習近平の中國』, 東京大學出版會, 159~160쪽.
38 「習近平: 爲實現民族偉大復興 推進祖國和平統一而共同奮鬪」, 『人民日報』, 2019.1.2.
39 渡邉義浩, 2009, 「儒敎の‘國敎化’論と‘儒敎國家’の成立」, 『中國-社會と文化』, 東京大學出版會, 321쪽.
만 주족의 청나라도 유교를 이용하여 통치했다.
천명을 받는 것에 대한 기준은 혈 통보다는 유교의 문화에서 말하는 개인적 덕성이었다.40
이는 동중서가 유교를 가지고 종족의 계기를 뛰어넘는 방대하고도 ‘보편적 통치원리’를 만들어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최근 대륙신유가는 도가 무너진 춘추 시기에 주나라 모델을 재건하려 했던 공자의 역할과 한무제 시기 동중서가 한 역할이 비슷하다고 평가 한다.
그리고 근대에 와서는 서세동점의 위기 속에서 캉유웨이가 바로 이 역할 을 하려 했다고 보는 것이다.41
이들에 의하면 공자, 동중서, 캉유웨이는 공히 ‘유학의 재구성’이라는 작업을 통해 난세를 구하려 했다.42
현재 시진핑 체제에 들어와 동중서와 캉유웨이로 이어지는 이른바 ‘대일통’ 의 춘추공양학 전통이 우세해지면서 대륙신유가에게 박대받는 유파가 존왕양이(尊王攘夷)를 주장했던 춘추좌전학 계열이다.43
계열로 따지면 지금 중국에서 주자학적 화이론(華夷論)이 배척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춘추공양학을 일찌감치 주장한 대륙신유학의 태두격의 인물인 장칭(蔣慶)은 타이완 신유학자 들로부터 집중포화를 받았을 뿐 아니라 대륙의 다른 학자들로부터도 강한 비판 을 받은 바 있다.44
40 윌리암 T. 로 저, 기세찬 옮김, 2014, 앞의 글, 44쪽.
41 萧公权, 1997, 『近代中国与新世界: 康有为变法与大同思想研究』, 江苏人民出 版社, 107~108; 干春松, 2015, 「康有为与现代儒学思潮的关系辨析」, 『中国 人民大学学报』 第5期.
42 이에 대해서는 趙京蘭, 2023, 「天下秩序和儒敎普遍主義的重組可能性-以大 陸新儒家的論述爲主」, 干春松·安樂哲 編, 『重思天下』, 香港城市大學出版 社, 206~207쪽 참조.
43 이러한 복잡한 구도에 대해서는 IV장에서 도표로 설명한다.
44 Ming-huei Lee, 2014, “A Critique of Jiang Qing’s “Political Ruism,” Contemporary Chinese Thought, Volume 45 Number 1; 거자오광 저, 양일모 역, 2017, 「기상천외: 최근 대륙신유가의 정치적 요구」, 『동양철학』 48집 참조[원 문은 葛兆光, 2017, 「異想天開: 近年來大陸新儒學的政治訴求」, 『思想』(台湾) 第33期]
자오팅양뿐 아니라 장칭도 ‘화’와 ‘이’를 구별하는 것을 ‘춘추’의 잘못된 이해라 비판한다.
굳이 계통으로 따지자면 만주족을 쫒아내고(驅除 㺚虜), 중화를 회복하자(恢復中華)는 구호를 내걸고 신해혁명을 이끌었던 쑨원 계열의 부정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 글이 존왕양이나 화이론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이 또한 전통 시대 중화와 이적의 차별을 옹호하는 편벽된 사상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적어도 이론적으로 주자의 화이론에는 도덕의 수용 여부를 기준으로 이가 화가 될 수도 있고,
화가 이가 될 수도 있는 수양론이 들어 있다.
인종론이나 국족론이 기준이 아니라 도덕이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보편주의적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 해도 분명 천부적인 인권과 평등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현대의 시각에서는 비판받아 마땅한 면이 있기는 하다.
다만 여기서는 주자의 화이론이 보여주는 역설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주자의 화이론이 배타주의적 측면이 강한 것은 사실 이지만 도학파의 자주독립과 자존감이라는 춘추학(春秋學)의 기본원리가 바탕 에 있다.
따라서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이의 존재 자체를 인정한 것이다.
공양학 에서는 화와 이가 같다고 하지만 여기서 같음이란 동화를 전제로 한 같음이다.
따라서 본질적으로는 이의 존재가 갖는 차이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 나 주자학의 화이론에서는 원리적으로라도 이의 존재 자체를 인정한 위에서 논 의가 출발한다.
이와 비교하여 중화민족공동체는 한족과 소수민족이 일체였음을 증명하기 위해 기존의 “화하(華夏)와 이적(夷狄)은 다르다”는 것을 부정한다.
그리고 “화 하와 이적이 일체임”을 새롭게 주장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차이를 인정한 공동 체(一體)라는 전제조건이 들어 있지 않다.
차이의 인정 없는 공동체는 건강한 공 동체가 될 수 없다.
강요된 공동체다.
차이를 전제로 한 평등, 이 조건이 지켜지 지 않는 한, 다민족 사회에서 공동체를 추구한다는 것은 인종적 동화와 문화적 동화를 ‘공식적’이고 ‘강제적’인 형태로 진행할 것이라 공표하는 것과 같다.
설 사 이들이 목표한 바 공동체가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작위적이고 닫힌 공 동체에 불과하다.
그러나 닫힌 공동체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시진핑 정부가 궁극으로 추구하는 것은 ‘동일성의 디지털 제국’일 수도있다.
기술강국인 중국은 국민통합에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적극 활용한다.
중 국사회 전역이 감시의 대상이지만 소수민족 지구는 더 철저하다.
신장 지역에 AI와 얼굴인식 CCTV 설치를 통해 ‘이질분자’를 가려내는 상시적 감시는 중국 의 다른 지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촘촘하다.45
이에 대해서는 대런 바일 러의 증언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46
‘중국의 정실 자본주의’ 연구로 유명한 민신 페이에 의하면 중국 감시 국가의 효율의 원천은 안면 인식 AI나 휴대폰 추적과 같은 첨단 기술만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중국의 방대하고 노동 집약적이고 아날로그적인 국내 스파이 인프라다.
비밀경찰이 없는 곳이 없다.
이른바 ‘감시 병(sentinel) 국가’인 것이다.47
중국의 이중텐도 현재의 이러한 중국사회주의를 ‘묵가사회주의’와 같다고 주장한다.
묵가집단에서 최고의 우두머리는 보지 않아 도 듣지 않아도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비밀경찰의 존재가 우두머리의 눈과 귀가 되어준다는 의미다.
시진핑 정부의 동일성의 디지털 제국의 면밀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중 국의 대중들을 관리하기 위해 모바일 앱과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중국만의 우주 를 창조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중국인들을 외부 세계와 연결하기보다는 격리 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 작업이다.48
45 Markus Gabriel·中島隆博, 2020, 『全體主義の克服』, 集英社, 52쪽; 가지타니 가이·다카구치 고타 저, 박성민 옮김, 2021, 『행복한 감시국가, 중국』, 눌와, 74~75쪽.
46 대런 바일러 저, 홍명교 옮김, 2022, 『신장 위구르 디스토피아-중국의 첨단기술 형벌 식민지에서 벌어지는 탄압과 착취의 기록』, 생각의힘.
47 Min Xin Pei, 2024, The Sentinel State: Surveillance and the Survival of Dictatorship in China, Harvard University Press.
48 Ian Johnson, 2023, “Xi’s Age of Stagnation: The Great Walling-Off of China.” Foreign Affairs, Volume 105 Number 5, Sep/Oct. 사실상 중국의 ‘디 지털 실크로드’는 중국의 밖을 향해 ‘소리 없이’ 진행되고 있기에 사람들이 미처 자 각하지 못한다. 그러나 중국 문제에서 이는 다른 무엇보다 급박하게 인식해야 하는 문제이다.
모바일 앱을 통해 이른바 다른 세계와의 장 벽 쌓기가 가능해졌고 국가는 인민들의 대화를 들여다본다.
문제는 중국대중들 이 ‘안전’을 대가로 자신들의 대화를 누군가가 보고 있다는 사실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인다는 점에 있다.
인종적 동화와 문화적 동화는 자기우월성에 근거해서 진행된다.
이 우월성 은 유교라는 중국문화가 다른 문명권과 달리 그 기원 이래 오늘날까지 중단 없 이 지속되어왔다는 데서 오는 자긍심에서 출발한다.
자기의 정치체제, 문화가 치를 타자의 그것보다 우선시하는 자기우월성은 ‘중국’을 단순히 하나의 국가로 보지 않고 ‘천하’, ‘세계’로 보려는 태도와 관련이 있다.
이를 주된 골자로 하여 ‘중화사상’이 형성된 것이다.
이 중화사상의 정치적 제도적 표현의 하나가 한 사 람의 천자를 정점으로 하는 유사봉건관계, 즉 조공관계였다.49 이러한 발상은 ‘중화적 종주권 의식’에 깊이 터하고 있다.
‘천하’라는 언어를 계속 고집하는 것 도 중국식의 ‘질서’가 우월하다는 인식의 반영이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이러 한 관념이 시대의 전환에 맞게 변화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청왕조가 무너지고 공화제로 제도적 전환이 되었음에도 중국의 위정자와 지식인은 중화제국체제 시기의 중세적 인식은 해체하지 못하고 온존시켰다.
이로 인해 중국인 자신이 보는 중국과 다른 나라 사람들, 즉 타인이 보는 중국의 모습은 격차가 있을 수밖 에 없다. 이와 관련하여 모오리 가즈코(毛里和子)는 중국인을 속박해온 3개의 신화를 지적한다.
첫째, 주권이 인권 이상으로 절대적이고 불가침이라는 신화,
둘째, 중국 역사상 대일통이 지배적이었다는 신화,
셋째, 중국문화의 특질은 문이 무 보다 상위에 있다(전쟁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신화다.50
이 세 문제를 본격 서술하 기에는 이 논문의 주제를 벗어나기도 하고 지면의 문제도 있다.
여기서는 일단 이 신화가 역사인식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면 중국 역사상 대일통이 지배적 이었다는 것도 역사 인식의 영역인 것이다.51
49 민두기, 1976, 『중국근대사론』, 지식산업사, 90~91쪽.
50 毛里和子, 2021, 『現代中國の內政と外政』, 名古屋大學出版會, 19쪽.
51 劉傑·中村元哉, 2022, 『超大國中國のゆくえ 1-文明觀と歷史認識』, 東京大學 出版會, 109쪽.
그러니까 주권, 대일통, 호전적이지 않은 것을 중시한다는 것은 역사적 팩트이기 보다 역사인식의 문제이고 교육 의 결과이기도 하다는 이야기다.
구체적 사례를 제시하자면 국제정치학자 존슨 턴(Alastair Iain Johnston)의 연구가 참고할 만하다.
이근욱의 도움을 받아 소 개하자면 존스턴은 무경질서(武經七書) 52에 근거한 중국의 전략문화가 오늘날 에도 영향을 미친다.
중국이 유교적 해석에서 시사하는 것과는 달리 매우 공격 적인 국가이며 군사력 사용에 매우 적극적이라 진단한다.53
이런 진단 아래 그 는 중국의 전략문화는 물질적 현실에 기초하기보다 군사력 사용과 관련된 문화 적 현실주의(cultural realism)라 주장한다.54
52 『武經七書』는 「孫子兵法」, 「吳子兵法」, 「司馬法」, 「尉繚子」, 「太公六韜」, 「黃 石公三略」, 「唐太宗李衛公問對」로 구성되어 있다.
53 이근욱, 2009, 『왈츠 이후』, 한울, 276쪽.
54 이러한 전략문화는 명나라의 안보정책, 특히 몽골계 북방민족에 대한 군사정책에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 이근욱, 2009, 위의 책, 273쪽.
IV .‘중화민족공동체’와 국제사회 모델: 다원의 열린 공동체
시진핑 체제에서 중화민족공동체와 인류운명공동체는 그 구상과 접근방식 자체가 과거 회귀적이다.
현실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조건과 쟁점에 따라 구획을 정하고 거기에 따른 구체적인 해결책을 강구하는 방식은 아니다.
과거 통치방식 인 내와 외를 구분하고, 어떻게 외를 지배하고 통치할 것인가.
그리하여 영향력 을 얼마나 확대할 것인가.
결국 대일통의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제국모델에 만 초점을 맞추다보니 전가의 보도인 왕도와도 어긋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맹자에 의하면 이 제국모델이야말로 왕도정치와 부합하지 않는다.
그 는 말한다.
“힘으로 다스리되 인(仁)을 가장하는 것은 패도이니 패자는 반드시 큰 나라를 차지하려 한다. 덕(德)으로 인을 실천하는 것은 왕도이니, 왕도는 (영 토가) 큰 것을 기다리지 않는다(『孟子』 公孫丑上: 以力假仁者覇 覇必有大國 以 德行仁者王 王不待大).”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중국은 왕도국가를 목표로 하는가, 패권국가를 목표 로 하는가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
국제관계론에서 말하는 패권(hegemon)은 가 치중립적 용어이다.
춘추시대에 패(覇)라는 단어에는 네거티브한 뉘앙스가 있 었으나 제후들을 리드하는 맹주의 의미에 더 부합한다. 전국 시기 맹자가 왕도 와 패도를 대비시키면서 선과 악이라는 요소를 강화했다.
이후 패라는 단어에 횡포, 압박, 통제, 침략이라는 의미가 더해졌다.55
55 山口信治, 2022, 「中國の目指す覇權と國際秩序とはなにか」, 川島眞·小嶋華津 子 編, 『習近平の中國』, 東京大學出版會, 146쪽 56 山口信治, 2022, 위의 글, 146쪽.
현대중국에서도 패권을 네거 티브하게 받아들이지만 시진핑 체제에서도 그럴지는 지켜봐야 한다.
그들도 패 권국가를 목표로 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중국이 ‘표면적으로’ 반대하 는 것은 강권적이고 억압적인 태도이며 초대국이 국제정치를 리드하는 것 자체 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56
이렇게 본다면 중국이 왕도국가가 되는 것까지는 현실에서 바랄 수 없더라 도 강권적 국가라는 오명은 피해야 할 것이다.
가치중립적인 패권국가가 되기 위해서라도 과감하면서도 근본적인 차원에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즉, 제 국모델과 국제사회 모델 모두 그 자체로 존재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분 열시기인 국제사회 모델에서 소프트파워 탄생의 요소가 생겨났다는 점에 주목 하면 더더욱 그렇다.
중국 지식계에 소수지만 이러한 작업을 하는 사람들, 즉 거 자오광(葛兆光), 왕페이링(王飛凌), 첸리췬(錢理群) 등이 존재한다.
현재 중국 지식계를 좀 ‘자의적’으로 구분한다면 제국모델파와 국제사회 모 델파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대일통’ 담론에 적극 참여해온 자오팅양(趙汀陽), 장칭, 왕후이(汪暉) 등이다.
거, 왕, 첸 세람이 후자에 해당한다.
전자에 속하는 지식인이 ‘신정통’이라면 ‘국제질서 모델’을 주장하거나 현재 중국의 지식 환경이나 조건을 문제삼는 이들 세 지식인은 ‘신이단’에 속한다.
신정통이 춘추공양 학파의 전통을 이었다면57 신이단은 춘추좌전학파의 전통을 계승했다.
전자는 표면적으로는 화이를 따지지 않으면서 21세기의 Pax Sinica를 추구한다.
이들 은 공식적으로는 왕도국가를 내걸지만 실제로는 공산당이 추구하는 ‘패권국가’ 의 전략에 반대하지 않는다.
이들은 천하와 ‘정치유학’을 강조한다.
후자는 존왕 양이를 따지며 ‘심성유학’을 주장한다.
결국 주자의 심성유학이 ‘신이단’이 된 아이러니한 형국이다.
설상가상으로 시진핑 3기에서 사상통일을 노골적으로 요 구하고 있는 것도 이런 구분을 부추기는 요인이 된다.58 아래에서는 ‘신이단’에 속하는 세 사상가의 고민을 따라가면서 국제사회 모 델에 대해 말하려 한다.
첫째, 거자오광에 의하면 진한 시대 이후 시작된 중화세 계의 ‘천하’라고 하는 아이덴티티가 위기를 맞이했을 때 중국인은 ‘무엇이 중국 인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논의해왔다.
그에 의하면 중국 역사상 이런 시대가 세 차례 있었다.
북송시대, 20세기 초, 그리고 당대(當代)다.59
북송 시기 ‘전연의 맹(澶淵之盟)’이 성립하고 나서 북송은 기본적으로 안정되고 대송과 대거란은 공존하게 된다.
이 시기 누가 중국인가, 누가 화이고 이인가, 누가 정통인가 하 는 것이 큰 문제가 되었다.
당시 두 나라 사이에 왕래하는 국서에서 서로 북조와 남조로 칭했다.
거자오광은 결론에서 정권의 합법성, 영토의 신성성, 에스닉 그 룹의 통일성 문제를 논의할 때 고대영역과 현대의 영토가 다르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60
57 조경란, 2023, 「‘신냉전’ 시기, ‘범신좌파’의 ‘20세기 중국’ 재인식-왕후이 ‘단기 20세기’와 국가주의 비판」, 『중국근현대사연구』 제99집, 60~63쪽; Wang Hui, 2017, “From Empire To State: Kang Youwei, Confucian Universalism, and Unity”, Chinese Vision of World Order, Duke University Press, p. 58.
58 이 정책은 그 자체로 마오쩌둥 시기 사상통일을 위해 ‘기획된’ ‘반우파 투쟁’의 기억 을 공유하고 있는 중국 지식인집단에 자발적 자기검열을 강화하는 기제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59 葛兆光, 2018, 「“何が中國か”の思想史」, 『思想』, 6~7쪽.
60 葛兆光, 2018, 위의 글, 20쪽.
그에 의하면 중국의 정체성과 관련하여 근대국가 이면서 천하의 제국이라는 복잡한 성격을 갖는 현대중국은 당면한 국제질서 속 에서 많은 트러블에 직면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가의 고 도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61
둘째, 왕페이링 또한 거자오광과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도 송대 의 역사 특히 한족인 송과 거란족인 요 사이에 체결된 1004년의 ‘전연의 맹’에 주목한다.
이것을 ‘베스트팔렌조약의 중화판’이라 말한다.
송은 매년 은을 보내 고 요는 불가침을 약속했다.
이로써 양국은 전면적 충돌 대신에 공존을 선택함 으로써 힘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62
왕페이링에 의하면 중국에는 두 가지 질서 모델이 있다.
하나는 진나라와 한나라 같은 전제적 정치체제의 제국모델 이다.
이는 법가의 통치술에 기초하면서 천하의 통일을 구하는 모델이며 현대의 마오쩌둥이나 시진핑까지 이어진다.
다른 하나는 힘의 균형을 중시하는 국제사 회 모델이다.
춘추전국시대, 북송시대, 아편전쟁 이후 근대까지(1840~1940년 대) 세 시대가 이에 해당한다.
두번째 모델이 중국에서 주류가 되지는 못했지만 왕페이링은 이 모델이 진·한 식의 정치체제와 달리 보다 열린 국제질서를 보여 준다고 주장한다.63
이렇게 본다면 지금의 중국에서 주자 계열의 가치를 주장하는 쪽이 ‘신이단’ 이 된다.
사실 주자는 진량(陳亮)과의 논쟁에서 보듯 부강보다는 인의예지를 강 조했다.64
61 葛兆光, 2018, 위의 글, 22쪽.
62 이와 관련하여 북송 시기 ‘패자의 콤플렉스로서 중화사상’이 생겨났다는 주장도 있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몽골족 인류학자 양하이잉은 나중에 국가 교학이 되는 주 자학이 북송부터 남송까지 북방민족의 압박이 혹독했던 시기에 형성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말한다. 양하이잉 저, 우상규 옮김, 2018, 『반중국의 역사』, 살림, 36쪽. 63 王飛凌, 2018, 『中華秩序』, 八旗文化, 125쪽.
64 이상익, 2007, 「朱子와 陳亮의 王霸논쟁에 대한 재검토」, 『동방학지』 제138집 참조.
바야흐로 현재 중국에서 인의예지를 강조하면 ‘신이단’이 되는 아이 러니한 형국이 펼쳐지고 있다.
이는 앞에서 말한 맹자의 철학과도 통한다.
중국 의 전체 철학사를 통시적으로 보면 국가가 강해지면 철학이 죽고, 약해지면 철학이 다원화되어 질적 성장을 한 사례가 많다.
우선 춘추전국 시기 백가쟁명과 백화제방이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은 주나라 가 여러 나라로 분열되었기에 가능했다. 역설적이지만 다원성은 국가가 상대적 으로 약화되어 위기를 맞았을 때 보장된다.
철학은 다원성이 보장되었을 때만 발전을 허락한다. 위진남북조는 “중국 역사에서 가장 분열되고 혼란스러우며 전체사회가 고통받던 시대가 오히려 사상이 가장 왕성하게 꽃피던 시절이었다.
유아독존의 유학이 곧 무너질 듯 흔들리고 비정통적인 사설(邪說)이 오히려 기 승을 부렸다.”65
65 이중텐 저, 심규호 옮김, 2015, 앞의 책, 153쪽.
송대의 신유학(neo-confucian)은 장기적으로는 위진남북조시 대의 소위 400년 정도의 분열 시기가 없었다면 나올 수 없었다.
‘분열의 역설’ 로 봐야 한다.
동중서에 의해 개조된 유법사상이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춘추전국 의 분열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주자의 신유학이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위진남북 조의 혼란과 당나라까지의 불교로 인한 위기감의 결과였다.
주자학체계는 불교 와 도가에 위기를 느껴 선진시대 유학과는 질적으로 다른 우주적 규모의 정교한 철학체계를 선보인 경우다.
19세기 말에도 서양과 일본이 침략하고 전에 없던 위기를 맞아 서구 사상이 진입했고 이로써 유교의 일원적 경전체제는 상대화될 수 있었다.
20세기 전반 기까지 신문화운동 등 사상 논쟁이 풍부했던 것도 청조의 약화와 국가의 위기 상황이 초래한 결과였다.
‘신계몽’ 시기로 불리는 1980년대도 30년 동안 막혀 있던 절대권력의 마오쩌둥 시기가 약화되면서 열린 시공간이었다.
이 시기도 서 양사상이 대거 유입되면서 단절되었던 1940년대의 중간파 지성이 다시 살아난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열띤 토론의 분위기는 1989년 천안문 민주화운동으 로 반전을 맞았다.
이 시기들의 공통점은 국가권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되었거나 국가가 분열된 시기였다.
중국의 전 역사에서 국가의 분열과 위기는 결과론적으 로 다원이 살아날 기회를 만들어주었고 이 기회를 틈타 만들어진 소프트파워의 사상요소들은 통일제국 시기를 버틸만한 이데올로기가 창출되는 사상적 토대 가 되어주었다.
이것이 바로 국제사회 모델이 갖는 역설의 철학이라 할만하다.
셋째, 중국에서 ‘살아 있는 이단’이라 할 수 있는 첸리췬에 대해 말할 차 례다.
서론에서 말한 것처럼 그는 “중국적 특색을 지닌 당대의 중국 지식분자” 에 주목할 것을 주문했다.
그에 의하면 중화인민공화국 통치 75년에 중국 특색 의 사회주의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같은 조건에서 ‘중국 특색의 지식인 집단’ 도 만들어졌다.
그에 의하면 이 집단은 이미 독자적인 체계를 갖춘 ‘공화국 문 화’, ‘마오쩌둥 문화’, ‘당 문화’속에서 창출된 것이다.66
첸리쥔은 이 문화를 이 렇게 설명한다.
중국 전통문화와도 연관이 있긴 하지만 확실히 전통적인 유·불·도·법 문화 범주 밖의 ‘신문화’일 뿐 아니라 계획적이고 주도적이고 조직적인 선전과 교육을 통해 장기적으로 사람들의 머리와 가슴 속에 주입되어 (중국)대륙에는 이미 민족 집단 무의식 즉 새로운 국민성이 형성되었다.
나는 『1948 천지현황』에서 이것을 그 시 작점에서부터 따져보고자 했다.
따라서 첸리췬은 중국의 정치, 경제, 사회, 사상, 문화, 학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공화국 문화’, ‘마오쩌둥 문화’, ‘당 문화’를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67
66 첸리췬 저, 이복희 역, 2022, 앞의 책, 15~16쪽.
67 첸리췬 저, 이복희 역, 2022, 위의 책, 17쪽.
공산주의 문화를 배경으로 한 지식환경과 조건을 메타인지적으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의 핵심이다.
이제 중국에서 중국공산주의 사회를 거리두기가 가능하고 상대화해서 볼 수 있는 세대의 빅스피커들이 속속 세상을 떠나고 있고, 곧 떠날 것이다.
1949년 이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세대가 사라지고 있다.
이 후 중국사회가 마오쩌둥 시대와 덩샤오핑 시대에 성장한 세대와 시진핑 시대의 키드로만 채워질 것이다.
이미 자신들만의 앱에 갇힌 디지털 제국, 행복한 감시상황에서68 시민 개개인의 저항은 한계가 있으며 ‘중화민족공동체’라 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제국의 동일성은 더욱 심화될 것임이 불을 보듯 뻔하다.
68 Markus Gabriel·中島隆博, 2020, 앞의 책, 52쪽; 가지타니 가이·다카구치 고 타 저, 박성민 옮김, 2021, 앞의 책
이제까지 말한 것을 정리하여 질서모델 분류표를 만들면 <표 1>과 같다.
다 만 이 분류표는 경향성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며 도식적 측면이 있을 수 있음을 미리 밝힌다.
. <표 1> 질서모델 분류표
‘신정통’ ‘신이단’ 질서모델 진, 한, (몽골), 청제국, 중화인민공화국 -제국모델(중화민족공동체) 춘추전국, 위진남북조, 북송, 청말민초, 1980 년대 -국제사회 모델 始原 유가(董仲舒), 법가, 묵가(上同), 마르크스주의 공자(和而不同), 맹자(以力假仁者覇 以德行仁者王) 주창자 董仲舒 朱熹 계승자 康有爲-保存中國(청의 판도) 孫文, 章炳麟 등 -驅除㺚虜 恢復中華 『춘추』 해석 춘추공양전 춘추좌전학 주장내용 화하와 이적이 일체임 (공산당의 ‘중화민족공동체’의 주장과 일치) -소수민족에 대한 일방적 동화정책 -평등을 전제로 한 공동체가 아님 -대동아공영권의 기만적 슬로건을 떠올리게 함 (政治東亞) 화이론 중화와 이적의 구분(상호 가변성 인정이라는 점에서 보편주의적임) 현대인물 趙汀陽, 蔣慶, 汪暉(주류 지식인) 유가 또는 사회주의 레토릭을 사용하나 실제는 부국강병의 제국모델을 따라야 하는 중화인민공 화국을 상정함 葛兆光, 王飛凌, 錢理群(마이너리티 지식인) 북송과 요 사이에 체결된 ‘澶淵의 盟’에 주 목-베스트팔렌 조약의 중화판
V .맺음말을 대신하여: 한국, 어떻게 할 것인가
시진핑 체제에서 역사, 문화, 언어, 종교에서 말살 정책이 실시되고 있어 소 수민족의 다원성은 심각하게 약화되고 있다.
우선 ‘중화민족공동체’를 강조하는 것은 한족을 중심으로 한 인종적, 문화적 동화주의가 이전보다 강화될 것임을 예고한다.
이 때문에 필자는 중화민족공동체를 결국 ‘동일성의 제국’을 만들려 는 기획으로 보았다.
그런데 조심스럽긴 하지만 이들이 구상하는 ‘동일성의 제 국’ 구상은 중국 내부에서 발행하는 논문과 다른 미디어의 분위기를 종합해볼 때 조공체제의 기억과 전혀 무관해보이지 않는다.
소수민족과 홍콩, 타이완만 이 아니라 천하로서의 ‘중국’을 구성했던 전통시대에 ‘사이(四夷)’라 부르던 지 역에 대한 인식에서 중국의 위정자와 지식인들은 중세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 한 것으로 보인다.
즉, 중화적 종주권 관념이 아직도 중국의 정치와 사회를 ‘배 회’하고 있다고 의심한다. 중국인이 심리적으로 이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이웃국가들과 역사 해석상의 갈등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한국인이 한국의 역사만이 아니라 중국의 역사에 대해서도 공부해야 하는 이유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중화민족공동체는 국제사회 모델보다는 제국모델에 가 깝다.
그 사상적 원천은 대일통이다.
여기까지는 중화인민공화국이 기본적으로 는 청대의 강역을 계승한 국가이기 때문에 어찌 보면 무리한 기획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중국이 AI와 디지털에서 발전한 국가라는 점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다.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친민주주의적이지도 반민주주의적이지도 않다.
테크놀로지가 어디를 향할 것인가는 ‘선택’에 달려 있다.69
69 대런 아세모글루·사이먼 존슨 저, 김승진 옮김, 2023, 『권력과 진보』, 생각의 힘, 503쪽.
마르스크주의와 공 자사상도 이 테크놀로지를 만나면 어떻게 변모할지 모른다.
물론 변모의 주체가 인간친화적인가 아니면 국가권력친화적인가, 자본친화적인가에 따라 결과는 다를 것이다.
이와 더불어 환경이 자율성과 독립성이 보장되는 구조인가도 중요하다.
여하튼 중국에서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인민들의 안전과 생활의 편리에 도 움을 주지만 반면에 ‘동일성의 디지털 제국’을 강화하는 쪽으로도 활용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서두에서 시진핑 체제에서 ‘중화민족공동체’와 더불어 ‘아시아운명공동체’ 도 공식화되었다고 말했다.
이 슬로건 중에서 특히 아시아운명공동체에 대해서 는 중국정부가 말한 것이 별로 없다.
로건만 공허하게 던져져 있는 셈이다.
그 런데 우리는 일본의 기억 때문에 순수하게 보기 힘들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 일본이 내걸었던 대동아공영권과 오버랩된다.70
대륙신유가의 대표격인 장칭 (蔣慶)이라는 인물은 지금은 동아정치문명의 회귀의 시대이며 ‘정치동아’의 재 건이 필요하다71고 말한다.
사실 이 문제는 국가 패러다임의 문제와 연관시켜 장기시각에서 바라봐야 하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72
70 중국과 일본의 발상들을 보면서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을 떠올리는 것은 단지 민족 주의의 과잉의 발로일까. 그는 1910년의 시점에서 한중일 3국 공존공영을 위해 3국이 참여하는 동양평화회 조직, 3국 공동은행 설립과 공용 화폐 발행, 3국 공동 평화유지군 창설 등 구체적 제안을 한다.삼국 간의 평등과 평화가 대전제다. 발상 에서는 마치 현대의 유럽연합을 떠올리게 한다.
71 蔣慶, 2014, 『政治儒學』, 福建敎育出版社, 292쪽.
72 이런 문제의식 아래 진행된 대표적 연구로 전인갑, 2020, 「국가건설 패러다임의 전 환과 민족주의-‘민족’과 ‘천하’의 길항」, 『동북아역사논총』 67호 참조. 그는 ‘국가 건설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100년의 시좌를 ‘민족’과 ‘천하’의 길항 관계라는 방 대한 체계 속에서 살핀다. 20세기의 국가건설 과정을 지나 21세기에 이루어지는 ‘중국특색’의 국가건설을 문명국가 패러다임의 귀환으로 본다.
이런 인식의 저변에는 동아시아 각국이 아무런 저항 없이 유교문화에 기초 하여 중국과 협력할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 있다.
중국 지식인의 이런 기대는 문 명에서는 아직도 동아시아 다른 나라가 중국의 주변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21세기가 되고 한세대가 가까워는 지금, 19세기 이전의 전근대적 발상인 ‘중화적 종주권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여기서도 감지된다.
이들 중국의 주류 지식인 담론과 상호 침투하에서 수립한 중국공산당의 정책 또한 이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은 당연할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유교문화는 중국을 기점으로 동심원적으로 확산되고 각 나라 의 시공간을 거치면서 그 양태가 다양해지고 풍부해졌다.
미조구치 유조(溝口雄 三)는 동아시아 각국으로 퍼져나간 아시아의 유학을 중국의 ‘외전(外傳)’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바 있다.73
각국의 논의과정에서 각각의 특성을 가진 유학으로 변모했음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이 논리에 의하면 중국의 유학도 중국의 장소성과 특수성이 반영된 중국의 유학일 뿐이다.74
예컨대 이탈리아가 로마를 기독교 문화의 원류라고 주장하지 않듯이, 또 중심이라고 말하지 않듯이 말이다.
동아시아 문명은 동아시아인 모두가 주체자로서 발전시켜나가야 하는 중대한 임무를 띠고 있다.
중국이 유교문명의 발원을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자신 들이 중세적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다.
문명이든 사회발 전이든 이제는 중심과 주변을 구분해서 말하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문명, 문화의 평등이라는 규칙이 전제되지 않는 한 동아시아 문명에 대한 주체의식을 갖고 발전시키려는 생각으로 나아가기 힘들다.
기술만 있고 정치 리더십은 보이지 않는 시대, 미국 민주주의의 철저한 부패 로 인한 정치의 실종, 이러한 현실에서 중국의 경우는 자극제는 될 수 있을지라 도 대안은 될 수 없다는 사실에 현금 인류의 비극이 존재한다.
적어도 ‘당분간’, 중국이 대안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중국 최고의 인문지성이라는 이들의 현재 담 론 수준만으로도 확인된다.
한 국가가 제일 패권국가가 될 수 있느냐의 여부는 최종적으로는 인문학으로 결정된다.
자국의 정치, 사회, 문화뿐 아니라 세계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서술할 수 있는가, 즉 비판적 접근이 가능한가, 더 나아가 이 모두에 대해 새로운 질문을 할 수 있는가의 여부로 결정된다.75
73 1997년 왕후이(汪暉)와 미조구치의 대담.
74 조경란, 2024, 「대륙신유가 집단의 정치주장과 ‘레드차이나’의 부활-심성유학과 정치유학의 분기와 의미」, 성균관대학교 유교문화연구소 편, 『경학방법론』 연구총 서 2, 예문서원 참조.
75 조경란, 2023, 앞의 글, 65~66쪽.
중국의 위상이 달라졌기에 중국은 우리가 새롭게 질문해야 하는 대상이다.
어쩌면 미국을 대신하여 세계를 ‘지배’하게 될지도 모를 가능성을 지금으로선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중국공산당이 내놓는 다양한 프로 젝트에 대해 한국인의 입장에서 냉정하게 살펴야 한다.
그리고 비판적으로 개입 하고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이 대목에서 월러스타인(Immanuel M. Wallerstein) 의 지적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는 ‘유럽적 보편주의’의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그 극복태로 어느 하나를 즉자적으로 지시해서는 안 된다고 다음과 같이 경고 한다.
“단 하나의 위험한 대안은 보편적 가치들에 기초했다고 주장하지만 인종 주의와 성차별주의가 기존의 세계체제에서보다 십중팔구 더욱 사악하게 우리 의 관습을 계속해서 지배하게 될 새로운 위계적 불평등의 세계다.”76
76 이매뉴얼 월러스틴 저, 김재오 옮김, 2008, 『유럽적 보편주의-권력의 레토릭』, 창 비, 146쪽.
한국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제까지 통용되어온 ‘중국인식’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고 서방의 중국인식과도 차별화되는 한국의 ‘새로운 중국인식 패러다 임’ 재구성 작업에 돌입해야 한다.
이 작업의 구체적 방안에 대해서는 앞으로 여 러 형태의 고민과 설계가 나와야 한다.
우선은 각 분야의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인문학자들은 팩트에 근거하여 객관적으로 연구하고 비판해야 하고, 외교와 정 치의 책임자들은 중국의 세계 지배 전략을 아는 바탕 위에서 현안에 따라 실리 적·포용적·창조적 외교를 해야 한다.
중국은 단일지배 체제이지만 지도자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변화가 적지 않다.
따라서 기민하면서도 신중한 외교를 하려면 먼저 공부가 필요하다.
한국 의 진보든 보수든 최신 업데이트된 중국(미국도 포함하여)의 전략을 알아야 사안 별로 신축적 대응이 가능하다.
학습 없는 정치는 위험하다.
참고문헌
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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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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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초록
21세기 ‘중화민족’·중화주의·‘동일성의 제국’ - 시진핑 체제의 ‘중화민족공동체’와 ‘중화적 종주권의식’을 중심으로 - 조경란 이 글은 중국 시진핑 정부가 내건 ‘중화민족공동체’에 관한 비판적 접근이다. 중 화민족공동체는 한족과 소수민족이 일체였음을 증명하기 위해 기존의 “화하(華 夏)와 이적(夷狄)은 다르다”는 것을 부정한다. 그리고 “화하와 이적이 일체임” 을 새롭게 주장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차이를 인정한 공동체(一體)라는 전제조 건이 들어 있지 않다. 따라서 중화민족공동체 구상의 실제 목표는 소수민족의 이탈 방지, 홍콩의 조기 반환, 타이완의 수복 등을 통한 중국 내부의 국민적·민 족적 통합이라고 봐야 한다. 이로써 중국지도부는 한족을 중심으로 한 에스닉 (ethnic)의 유기적 실체가 바로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필자는 여기에는 pax sinica 지향의 대일통(大一統) 사상과 레닌주의적 정 치시스템의 당 영도 원칙이라는 정체성의 정치가 개입되어 있다고 본다. 동시에 조공체제의 사이(四夷)의 기억에서 비롯한 ‘중화적 종주권의식’도 개입되어 있다. 이 글은 중국정부와 파워엘리트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 인식에서 발상의 전환을 촉구하고자 한다. 분열과 통합, 국제사회 모델과 제국모델을 ‘나쁜 것’ 과 ‘좋은 것’이 아닌 공히 ‘정당한 것’으로 인식해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다원성 83-08 #조경란(299~338)_논문(4교).indd 334 2024-03-28 오후 1:25:35 ‘중화민족공동체’와 ‘중화적 종주권의식’을 중심으로 | 335 21세기 ‘중화민족’·중화주의·‘동일성의 제국’- 시진핑 체제의 은 국가가 위기를 맞았거나 분열되었을 때 보장된다. 소프트파워는 다원성이 보 장되었을 때만 발전을 허락한다. 세계패권의 달성을 목표로 하는 중국은 역설적 으로 한국과 같이 이웃나라에서 발신하는 중국 밖의 이야기를 무시해서는 자신 들의 목표와 점점 멀어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위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세가지를 규명하고자 한다. 첫째, ‘중화민족’과 중 화내셔널리즘에 의한 한족 중심의 국가 통합구상은 소수민족에게는 억압과 예 속을 의미했다는 것을 밝힌다. 더불어 중화인민공화국 이후 소수민족의 국민화 작업은 ‘다원’을 삭제하는 과정이었다고 주장한다. 둘째, ‘동일성의 제국’을 추 구하는 제국모델의 사상적 원천인 대일통 사상에 대해 비판한다. 중화민족공동 체는 바로 이에 근거한 정책이다. 시진핑 정부에서 대일통은 ‘사상통일’을 강화 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며 결국은 ‘동일성의 디지털 제국’으로 연결될 가능성 이 높다고 주장한다. 셋째, 대일통에 기초한 제국모델에 대항하여 국제사회 모 델도 정당한 역사로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모델은 다원성이 존중된다는 의미에서 평화와 공존의 모델이기도 하다. 이 모델 아래서 중국은 오히려 보편 을 내장한 사상, 즉 소프트파워가 탄생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주제어: 중화민족공동체, 중화내셔널리즘, 제국모델, 대일통, 국제사회 모델
ABSTRACT
‘Chinese Nation(s)’· Sinocentrism·‘Empire of Sameness’ in Xi Jinping’s Government Focus on the ‘Chinese Nation Community’ and the ‘Sense of Chinese Suzerainty(宗主權)’
Cho Keongran
This article is a critical approach to the “Chinese nation community” proposed by the Xi Jinping government in China. In order to prove that Han Chinese and ethnic minorities are united, it denies the conventional “the Chinese and the barbarian are different”. They claim that “the Chinese and the barbarian are one”. However, this does not include the prerequisite of a community that recognises differences. Therefore, the real goal of the Chinese nation community initiative is national and ethnic integration within China, including the prevention of ethnic minorities from leaving, the early return of Hong Kong, and the restoration of Taiwan. In doing so, the Xi Jinpings government wants to emphasise that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is an organic entity of ethnic groups centred on the Han Chinese. I believe that this involves the politics of identity: the pax sinicaorientated idea of great unity and the Leninist political system’s principle of party leadership. At the same time, there is also a “sense of Chinese suzerainty” that stems from the memory of the Si Yi(四夷) of the Tributary system. This article aims to call for a shift in the way the Chinese government and power elites perceive history. The division and integration, the international community model and the imperial model should not be seen as ‘bad’ and ‘good’ but as ‘legitimate’. Paradoxically, pluralism is best secured when states are in crisis or fragmented. Soft power is only allowed to develop when pluralism is guaranteed. China, which aims to achieve global hegemony, should keep in mind that ignoring narratives outside of China, such as those emanating from neighbouring countries such as South Korea, will only move it further away from its goals. Based on the above, I would like to make three points. Firstly, I will show that the Han-centred national unity concept of “Chinese nation” and Chinese nationalism has meant oppression and subjugation for ethnic minorities. It also argues that the nationalisation of ethnic minorities after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was a process of erasing ‘pluralism’. Second, I will criticise the idea of the Great Unity as the ideological source of an imperial model that seeks an “empire of sameness”. The Chinese nation community is a policy based on this idea. I argue that under Xi Jinping’s government, the Great Unity will likely boil down to strengthening the “unity of ideas” and eventually lead to a “digital empire of sameness. Third, I argue that against the imperial model based on Great Unity, the international community model should also be accepted as a legitimate history. This model is also a model of peace and coexistence in the sense that pluralism is respected. I argue that under this model, China was able to develop an idea of universality, or soft power.
Keywords: Chinese nation community, Chinese nation(s), Sinocentrism, Great Unity, imperial model, international community model
동북아역사논총 83호(2024년 3월)
투고: 2024년 1월 14일, 심사 완료: 2024년 2월 6일, 게재 확정: 2024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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