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제왕을 꿈꾸는 윤석열, 한비자의 법치를 소환하다(23-7-16)/민플러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다.”
독일의 법학자인 게오르크 옐리네크(Georg Jellinek, 1851.6.16.~1911.1.12.)가 한 말이다. 이 말은 법과 도덕이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된다.
옐리네크는 법은 도덕을 바탕에 두고 형성되므로 법의 적용은 가능하다면 필요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법이 물러서 안 돼.”
이 말처럼 우리는 흔히 법의 강한 적용을 주장한다.
과연 강한 법에 의거하여 강력한 법치가 시행되면 우리 사회는 안정된 질서를 유지할 수 있을까.
도덕윤리가 바로 서면 법은 최소한도로 제정되거나 종국에는 폐지되어도 좋을까.
마찬가지로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은 제정일치(祭政一致) 혹은 정교일치(政敎一致)의 사회에 대해서는 어떤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
법(률)을 강화할 것인가, 폐지할 것인가?
이 주제는 연쇄살인이나 아동성범죄 등 소위 ‘흉악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군다.
하지만 이런 범죄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최근 여러 범죄에 대해서는 적잖은 변화가 있었는데, 다음의 몇 가지는 그 전형적인 사례이다.
대한민국 형법은 사형제도를 두고 있지만(제41조) 김대중 정부 이래로 실제 사형이 집행된 적이 없는 사실상 ‘사형폐지국’이다.
또한 2015년 2월 26일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간통죄도 폐지되었다.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것이 위헌의 주된 사유였다.
그 결과 1953년 형법에 간통죄가 도입된 지 62년 만에 폐지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성에 관한 문제’라도 「성매매특별법」상의 성매매 처벌 규정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입장은 달랐다. 2016년 3월 31일 결정에서 헌법재판소는 착취나 강요 없는 자발적 성매매도 범죄로 보고, 이를 처벌하는 것은 합헌이라고 보았다.
건전한 성풍속을 위해 성적 자기결정권보다는 성도덕의 공익을 위해 기본권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낙태죄도 여전히 논란 중이다.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하였다.
그리고는 2020년 말까지 형법의 관련 조항을 개정하라고 선고했다.
이 결정으로 낙태죄는 형법에서 사라졌지만 현재까지도 후속 입법이 지연되고 있어 임신중지를 원하는 여성들은 법의 사각지대에서 고통 받고 있다.
‘법과 정의의 여신’ 디케(Dike)는 눈을 가리고 한 손에 칼을 다른 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다. 법적 판단은 정의의 관념에 따라 공정하고 공평하게 이뤄져야 함을 암시한다.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한 대우를 받기 위해서는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가 아니라 법의 지배(rule of law)를 받아야 한다. 이는 현대 법치주의의 근간이자 기본이념이기도 하다.
이처럼 법과 법치는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기본원칙이다.
만일 법과 법치가 보장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위협받을 수 있고, 개인의 인권도 보장받을 수 없다.
법과 법치는 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위한 핵심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전국시대 말기 강력한 법치주의를 주장한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한비(韓非, 기원전 280년?~기원전 233년?)다.
그는 『한비자(韓非子)』를 저술한 정치 철학자이자 사상가로 한(韓)나라의 공자(公子) 가운데 한 명으로 순자(荀子)의 문인에게 배웠다고 한다.
한비는 흔히 형명(刑名)과 법술(法術)을 익혀 중앙집권적 제국 체제를 이끈 법가(法家) 이론의 집대성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이름도 원래는 공자와 맹자 등과 같이 한자(韓子)라 불러야 하나 당나라 한유(韓愈)를 ‘한자(韓子)’라 불렀으므로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한비가 쓴 책이름을 따라 ‘한비자(韓非子)’로 부르고 있다.
법가는 도덕보다도 법을 중하게 여겨 형벌을 엄하게 하는 것이 나라를 다스리는 기본이라고 주장하였다.
법가에는 크게 5대 분파가 있는데, 관자(管子), 상앙(商鞅), 신불해(申不害), 신도(愼到), 한비자 등이 대표적 학자라고 할 수 있다.
전국시대에 법가가 등장한 배경은 무엇일까?
이 시기는 진(秦)·조(趙)·위(魏)·한(韓)·제(齊)·연(燕)·초(楚)와 같은 전국칠웅(战国七雄)이 패권을 다투었다.
이 혼란은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할 때가지 이어져 ‘오로지 힘이 정의’라는 관념이 현실을 지배하였다.
이 시기에는 인의(仁義)를 내세워 개인의 내면 성찰과 수양을 강조하고, 왕도정치를 추구하는 유가와 같은 공리허담(空理虛談)은 전쟁으로 피폐해진 현실에 실질적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인의도덕과 예교가 무너진 상태에서 군주의 강력한 통치력이 행사되지 않고는 평화를 가져오지 못한다는 인식 아래 강력한 법과 법치만이 난국을 다스릴 수 있는 유일한 정치수단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현실에서 법가는 성문법을 빈틈없이 제정하고 사사로움 없이 적용함으로써 만인의 평등을 추구하여 낭비요소를 없애며, 효율성의 극대화를 지향해야 한다며 중법사상(重法思想)을 주장했다.
상앙이 말한 “형벌로써 형벌을 없앨 수 있다”는 이형거형(以刑去刑)이란 말에 법가가 지향하는 법치사상이 잘 드러나 있다.
한비자는 전제군주에 의한 무단정치를 옹호하였으며, 법과 법치를 바탕으로 군주에 의한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치체제 구축을 위한 사상을 제시하였다.
한비자는 인의의 정치로는 부국강병을 이룰 수 없다고 보고, 엄형주의(嚴刑主義)에 기반한 강력한 법치주의를 통치와 지배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사상을 바탕으로 진시황은 중국을 통일하는데 성공하였으나 진나라는 건국 15년 만에 멸망하고 말았다.
그로 인하여 한비자의 법치사상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그의 사상은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난세를 다스리고 평정하는 방법으로는 적합하지만 평화로운 시대를 다스리는 통치방법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비자의 법치사상은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이기적이고 악하다는 성악설을 인성론의 바탕에 두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고 악하므로 서로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의에 기반한 도덕윤리로는 불가하고, 오직 통일적인 법률을 제정하여 적용해야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문제는 이러한 법률의 제정권은 군주만이 가지고 있고, 신하와 백성은 오로지 통제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한비자의 법치사상은 신하와 백성들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진나라는 한비자의 법치를 이용하여 혼란한 중국을 통일했지만 반대로 강고한 법체계로 인해 너무 쉽게 멸망해버린 것도 이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한비자의 법치사상이 가진 장점도 적지 않다.
그는 국가의 안정과 공공의 이익은 군주가 법(法)의 기반 위에서 술(術)을 활용하고 세(勢)를 확립하는 것을 통해 달성할 수 있다고 보았다.
즉 법의 확립으로 백성과 신하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고, 법을 통한 관료제의 확립으로 정권이 유지되며(法術), 법과 술의 확립으로 군주의 세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비자는 법·술·세가 군주 한사람에게 집중되게 되면, 부국강병을 기초로 국가의 안정과 공공의 이익을 도모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인의의 정치를 추구하는 유가가 보기에 신상필벌에 의거한 한비자의 법치는 법의 지배가 아니라 법에 의한 지배에 의거하여 패왕에 의한 전제정치가 행해질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한비자의 법치사상은 강력한 법규범의 제정으로 사회의 불안을 해소하고 법적 안정성을 확보한다는 측면에서는 상당히 현실적인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유학을 통치이념의 기반으로 건국한 성리학 중심의 유교 국가인 조선은 공식적으로는 유교를 표방했으나 지배와 통치를 위한 실질적인 이념은 법가사상을 따랐다.
이를 내유외법(內儒外法)이라 한다. 예를 들면, 대외적으로는 천리(天理)·성(性)·인(仁)·예(禮)·덕(德)과 같은 성리학의 가치이념을 내세웠으나 실제적으로는 백성의 통제방법으로 상앙이 만든 오가작통법을 적용하고, 경국대전을 비롯한 성문법을 제정하여 시행함으로써 엄형주의에 따른 법치를 국가통치의 실질적 수단으로 삼았다.
조선왕조와 선비들은 가슴에는 인의도덕을 품었으나 현실정치에서는 신상필벌에 의거한 법가의 사상을 적용하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성리학의 나라’ 조선은 공식적으로 법가를 표명한 적이 없다.
유가의 대표적 경서인 사서삼경에 대해서는 다양한 저서가 발간되었으나 『한비자』 주석서는 한 권도 발간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를 반증하고 있다.
왕도정치를 표방한 조선도 현실정치를 하는데 있어서는 강력한 법치를 내세우는 법가사상이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비록 법을 통해 국가를 통치하고 왕권을 강화하는 데 법가사상이 도움이 된다고 할지라도 공자와 맹자가 지향하는 유가사상과 충돌하는 내용이 적지 않다
. 또한 강력한 법과 법치를 통한 왕권의 강화는 군신공치(君臣共治)의 근간을 위협할 뿐 아니라 백성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함으로써 신분제의 근간을 뒤흔들 우려도 있었다.
이러한 고민의 결과 조선은 성리학을 정치의 기본이념으로 삼되 실질적인 통치와 지배는 법가의 법치에 의거하는‘내유외법’을 채택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조선시대의 임금과 관료들의 고민이 오늘날 완전히 사라졌다고 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에서 법과 법치는 사회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원칙일 뿐 아니라 개인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핵심제도이기도 하다. 모든 제도가 그렇듯 ‘누가 어떻게’운용하는가에 따라 그 실질과 양상이 완전히 다르게 나타난다.
프랑스의 정치학자 알렉시스 토크빌은 그의 저서 『민주주의의 미국』에서 민주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오히려 민주주의가 약화될 수 있다는 주장을 했다.
소위 ‘민주주의의 역설’이다. 민주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사람들(국민)의 이기심이 강화되고, 이로 인해 정치적 무관심과 정치적 불안이 증가한다.
이와 함께 정부의 규모가 확대되어 정부의 권력이 증가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토크빌의 이 주장에서 현재의 대한민국사회는 자유로울 수 있는가?
2022년 5월 10일 검찰총장 출신의 윤석열 대통령(이하, 윤석열)이 취임하였다. 정치 경력이 전혀 없는 ‘0선’ 검사가 공당의 대선후보가 되어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다.
평생 ‘눈 없는 칼잡이’로 범죄자를 단죄하는 법률가로 살아왔기 때문일까. 윤석열 정부는 법과 법치의 이름으로 법을 정적의 탄압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지난 1년 남짓 집권 기간 동안 군사정권 치하의 독재시절로 돌아간 듯한 착시가 일어날 정도로 한국사회는 ‘검찰몰이’로 뒤죽박죽인 상태다.
도대체 윤석열은 왜 저럴까?
그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기 위해 2,300년 전 중국 전국시대 법가사상가 한비자를 소환한다.
신상필벌과 엄형주의에 의거하여 모든 권한이 오로지 절대군주 한 사람에 집중되는 국가체제를 꿈꿨던 그의 법치사상이 윤석열의 언행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기 때문이다.
2.검찰주의자 윤석열의 꿈: 제왕적 대통령(23-7-17)/민플러스
윤석열이 일반대중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킨 결정적 계기는 2013년 10월 21일 국정감사에서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발언일 것이다. 당시 여주지청장 윤석열과 정갑윤 새누리당 의원 사이에 오간 질의응답 내용을 다시 인용한다.
정갑윤(새누리당 의원): 윤석열 지청장, 자리에서 일어서 보세요. 증인은 혹시 조직을 사랑합니까?
□윤석열(여주지청장): 예, 대단히 사랑하고 있습니다.
■정갑윤: 사랑합니까? 혹시 사람에 충성하는 것은 아니에요?
□윤석열: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기 때문에 제가 오늘도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정갑윤: 앉으세요.
윤석열의 이 말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이 말은 권력자에 아부하지 않고 법에 따라 공명정대하게 처리하겠다는 강직한 기개를 가진 검찰의 상징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강골검사’의 이미지를 달고 윤석열은 서울중앙지검장을 거쳐 곧바로 검찰총장의 자리를 꿰찼다. 그 후 윤석열은 정치적 인기를 힘입어 검찰총장에서 물러나 여당이던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되었고, 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 0.7퍼센트의 근소한 표차로 승리하여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윤석열은 집권하자마자 검찰주의자로서 면모를 드러낸다. 한동훈 법무장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을 비롯한 정부부처 장차관, 대통령실과 산하기관장에도 ‘자기 사람’인 검찰 출신들로 요직에 앉혔다. 심지어 최근 인사에서는 대통령실에서 근무하던 비서관들을 대거 중앙부처의 차관으로 발령함으로써 장관을 들러리 세우고 검사 중심의 ‘차관 정치’를 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사람들은 2013년 청문회에서 나온“나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석열의 말에 너무 깊이 천착하고 열광했으나 정작 “나는 조직을 사랑한다”는 말은 흘려들었다. TV 뉴스에서 “나는 (검찰)조직을 사랑하고,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석열의 말을 듣고는 내심 ‘큰일났다’싶었다. 그의 본심이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보다는 “검찰조직을 사랑하기 때문에”에 방점이 찍혀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윤석열이 사랑하는 조직은 ‘검찰’이라는 사실은 명명백백하다. 자신이 사랑하는 조직인 ‘검찰’의 권위에 도전하고 도발하는 세력이라면 전임 대통령과 정치인을 비롯하여 누구든 지위고하를 묻지 않고 ‘법의 이름’으로 처벌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이를 대전제로 아무리 상대방이 절대 권력자라 할지라도 사람에게는 충성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 윤석열이 사랑하는 조직은 검찰에 국가가 덧붙여졌다. 그 국가는 자유민주주의여야 하고, 사회민주주의를 비롯한 다른 유형의 체제는 용납되지 않는다. 그가 생각하는 자유민주주의를 비판하고 인정하지 않는 집단은 모두 ‘반국가세력’이다. 자신을 임명하고 정치적으로 키워준 문재인과 전임정부는 물론 그들을 지지한 유권자들마저 ‘반국가세력’으로 간주한다. 이제 윤석열은 국가라는 조직을 지키기 위해 검찰 조직을 전위대로 전방위로 투입한다. 정부부처의 인사행태를 보면, 윤석열의 조직 사랑에 대한 관념이 여실히 드러난다.
사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석열의 말은 한비자의 ‘법불아귀 숭불요곡(法不阿貴 繩不撓曲)’에서 따온 것이다. 이 말은 “법은 귀한 사람이라고 하여 아첨하지 않고, 먹줄은 모양에 따라 구부려 사용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한비자의 법사상을 대표하는 유명한 말이다. 윤석열이 한비자의 책을 읽고 그의 사상을 공부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 여부를 떠나 검사들은 법의 엄정성과 공정성을 강조할 때 한비자의 이 말을 즐겨 인용하곤 한다.
윤석열은 입만 열었다하면 법과 법치를 앞세우고, 공정과 상식, 그리고 자유를 외친다. 대통령도 고도의 정치행위를 하지 않을 수 없으니 그가 내뱉는 말은 정치적 수사나 레토릭일 수밖에 없다. 이 사실은 접어두고라도 ‘공정과 상식, 그리고 자유’에 대한 그의 강한 소신이 어느 정도 진정성이 있다는 것은 알겠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그가 그토록 강조하는 공정과 상식, 그리고 자유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실체와 기준이 모호하고 분명하지 않는데 이번에는 법을 앞세워 개인과 단체를 압수 수색하고, 구속 수감하여 압박을 가한다. 하기야 검찰조직이 가장 잘하는 게 ‘증거가 나올 때까지 털고 때려잡는 것’이다. 그들에게 법은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시키는 수단에 불과할 뿐 ‘법적 정의’를 위한 목적이 아니다.
지난 5월 29일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헌법 교수인 한상희는 “정말 졸도할 이야기가 있다”는 말로 운을 떼고는 법무부가 소위 검수완박법에 대한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청구서의 일부 내용을 소개했다.
영미법에서 법치주의에 해당하는 법률용어는 ‘법의 지배(혹은 통치 rule of law)’이다, 만일 법치주의가 ‘법의 의한 통치(혹은 지배 rule by law)’가 이뤄지는 현실이라면 상당히 심각한 상황이다. 그런데 법무부가 작성한 청구서는 “법치주의는 법에 의한 통치를 의미하는 개념”이라며 영문으로 ‘rule by law’를 명기하고 있다. 통상‘rule by law’는 개인에 의한 독단적 법집행을 뜻하는 ‘인치(人治)’ 또는 ‘신치(身治)를, 반대로 ‘rule of law’는 법에 따른 공정하고 객관적인 법집행을 뜻하는 ‘법치(法治)’를 의미한다. 대한민국의 법무행정을 총괄하는 부처인 법무부가 공식문서에서‘법치주의는 법에 의한 통치(rule by law)를 의미하는 개념’이라고 못 박고 있으니 여간한 문제가 아니다. 법무부가 어떤 곳인가? 윤석열 대통령의 복심 한동훈 장관이 조직의 수장으로 있는 곳이다. 비록 장관이 법무부 산하의 각 부처에서 작성한 모든 문서를 읽어볼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소위 ‘윗선의 눈치’를 보고 ‘알아서’ 심판청구서에서 ‘rule of law’가 아니라 ‘rule by law’라는 표현을 사용했을까. 아니면 한동훈 장관의 지시나 명령 혹은 묵인 아래 의도적으로 이 표현을 공식문서에 담았다는 ‘합리적 추정’을 할 수밖에 없다.
윤석열이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래 사람들은 ‘공정과 상식, 자유와 법치’를 외치는 그의 진정성에 대해 아래와 같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는 ‘자유민주주의’를 목소리 높여 외치지만 대한민국을 ‘검찰공화국’이나 ‘검사의 나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그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지만 여전히 ‘검찰총장’으로서 검사들을 친위대로 임명하여 수사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겉으로는 엄격하고 공정한 법의 적용을 말하지만 그는‘법치주의자’가 아니라 ‘검찰주의자’인 것은 아닌가.
요컨대 윤석열은 검찰조직을 위해 대통령이란 정치권력을 이용하여 ‘검찰독재’ 혹은 ‘검사독재’를 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검찰과 경찰조직이 활개 치는 정국을 바라보면서 처음에는 ‘이 뭥미?’라는 뜨악한 심정이 들었다. 그러다 간첩단사건을 시작으로 건폭, 귀족노조를 이유로 노동조합 활동을 억압하여 결국 2023년 노동절에 건설노동자 양회동씨가 분신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마치 군사정권 시절에나 봄직한 공안몰이보다 더 심한 ‘법(法)몰이’로 대대적인 사냥이 이뤄지고 있는 형국이다. 윤석열은 빅브라더가 되고자 하는가.
윤석열 정부의 검찰의 수사 방식에는 하나의 일관된 원칙이 있다. 첫째, 수사 대상을 선제적으로 ‘비리집단’으로 규정한다. 둘째, 언론을 이용하여 도덕윤리적으로 단죄를 한다. 셋째, 반드시 법을 앞세운다.
법률가들에게 법적 정의(legal justice)란 법률의 해석과 적용을 통해 정의를 실현하는 목적이자 수단이다. 법률가들은 법률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사건의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법률의 규정을 적용하여 당사자들에게 공정한 결과를 도출하도록 고도의 훈련을 받은 집단이다. 법률가들의 이러한 노력은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개인의 권익을 보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흔히 법률가를 일컫는 법관, 검사, 변호사를 법조삼륜이라 한다. 각자의 역할은 다르지만 법조삼륜은 법적 정의를 실현하고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는 최후의 보루이다. 따라서 법률가들에게 법적 정의란 단순히 법률의 해석과 적용을 넘어서는 것이다. 만일 법률가들이 법의 정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사회의 변화에 맞게 법률을 해석하고 적용하지 못하면 그 피해는 오롯이 개인과 사회에게 돌아간다. 법률가들의 법적 정의에 대한 인식은 법치주의의 발전에 그대로 영향을 미친다.
법의 정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법을 도구로 사용하는 법률가를 ‘법기술자’라 한다. 법기술자는 법의 정신은 고려하지 않은 채 법률의 규정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고 사건을 판단한다. 또한, 법기술자는 개인의 권익을 보호하기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 법기술자는 말로는 법치를 내세우지만 정작 ‘법의 지배’를 실현하지 못하고, ‘법에 의한 지배’를 위해 절대 권력자에게 부역(附逆)한다. 주군의 명령에 복종하는 사냥개가 되어 먹잇감의 숨통이 끊어질 때까지 목줄을 물고 놓지 않는다. 사람들은 법기술자를 마치 능력 있는 법률가로 칭송하고 떠받든다. 법기술자가 우대받는 사회에서 법치주의는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최근 법기술자들의 주군 윤석열의 언행은 거침이 없다. 지난 6월 28일 한국자유총연맹 창립 69주년 기념식에 참가한 윤석열은 극우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반국가세력들은 핵 무장을 고도화하는 북한 공산집단에 대하여 유엔 안보리 제재를 풀어달라고 읍소하고 유엔사(유엔군사령부)를 해체하는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다.
조직적으로 지속적으로 허위선동과 조작, 그리고 가짜뉴스와 괴담으로 자유대한민국을 흔들고 위협하면서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는 세력들이 너무나 많다.
앞의 말은 문재인 정부를, 뒤의 말은 일본원전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며 대정부공세를 강화하는 야권 정치인들과 시민단체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이 말에서 특히 문제가 된 것은 문재인 정부를 ‘반국가세력’이란 표현이다. 비록 전 정부의 한반도정책을 비판한 것이라고 해도 사회통합을 위해 애써야 할 대통령이 ‘극우 보수 세력만을 위해 일하나’란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뿐이 아니다. 교육부에서 국립대에 사무국장을 보내는 파견제도를 제대로 개선하지 않자 윤석열은 참모들을 매섭게 질타했다.
어떻게 내 지시와 전혀 딴판으로 갈 수 있느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이 안 되는 행태다. 교육부에서 지방 국립대에 사무국장을 보내 총장이 눈치 보게 하는 게 정상이냐. 사무국장 파견제도를 없애지 않으면 교육부를 없애겠다.
교육부 해체론이 제기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에서 교육부장관을 지난 바 있는 이주호를 다시 교육부 수장으로 임명한 이유도 그가 줄곧 ‘교육부 해체론’을 주장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런 주장을 한 과거의 장관을 다시 모셔야 하는 교육부 고위관료들로서는 대통령의 “교육부를 없애버리겠다”는 말에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이 말이 단순한 엄포가 아니라 현실의 정책으로 실행된다면 당장 그들의 목숨줄인‘밥상’이 날아가는 것은 물론이고 그들이 누리는 모든 기득권을 한순간에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는 바닥에 바짝 엎드려 몸을 낮추는 게 상책이다. 일단 살아남고 볼 일이다. 교육부는 영원하지만 대통령의 권력은 5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누가 윤석열을 ‘정치초보’라 했나. 검찰조직에서 ‘칼잡이’로 자신이 손에 피를 묻히며 통뼈가 굵은 그는 ‘권력의 맛’을 잘 안다. 그 권력은 헌법이 규정하고 국가가 인정한 ‘합법적인 힘’이다. 그 힘은 신상필벌에서 나온다. 죄가 있으면 법으로 처벌하고, 일의 공과에 따라 확실하게 보상한다. 권력을 행사하고 정치를 하는 윤석열의 모습에서 한비자의 얼굴이 겹쳐 보인다. 자칭 타칭‘공정의 화신’이라 불리는 윤석열의 힘은 한비자가 말하는 법술세(法術勢)에서 나온다.
윤석열의 행사하는 힘의 근원, 법술세
법술세는 국가 통치의 근본이 되는 세 가지 요소를 말한다. 법은 국가의 통치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로, 법을 통해 백성들을 통제하고 국가를 안정시킬 수 있다. 술은 법을 효과적으로 집행하기 위한 방법으로, 군주가 백성들을 통제하기 위한 권위를 높이고, 백성들이 법을 지키도록 유도하는 방법이다. 세는 법과 술을 효과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군주의 권위와 힘을 말한다. 한비자는 법술세를 통해 국가를 안정시키고 부강하게 만드는 것이 군주의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했다. 법술세의 세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춘 군주만이 강력한 국가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 그 주장의 핵심이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신불해와 공손앙의 두 학파 주장 가운데 어느 쪽이 나라에 더 긴요합니까?”(한비자 정법 43:1)
이에 한비자가 대답했다.
“(...) 군주에게 술이 없으면 윗자리에 앉은 채 이목이 가리게 되고, 신하에게 법이 없으면 아래에서 어지러워진다. 이는 하나도 없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모두 제왕이 갖춰야 할 도구이다.”(한비자 정법 43:2)
한비자는 상앙의 법과 신불해의 술에 대해 이렇게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그의 결론은, “신불해의 술은 아직 미진하고, 상앙의 법 역시 아직 완비되지 못했다”(한비자 정법 43:7)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나라는 다스리는 법도인 치도(治道)는, “사람들이 쉽게 행하여 싫어하는 형벌에 걸리지 않도록 하는 것”(한비자 내저설 상 30:25)과 “사람이 쉽게 피해 갈 수 있는 것을 피하도록 하고, 범하기 어려운 중죄에 걸리지 않도록 하는 것”(한비자 내저설 상 30:28)이라고 강조하였다. 한비자는 상앙의 법(法)과 신불해의 술(術)에 신도의 세(勢)를 더하여 법술세(法術勢)를 바탕으로 자신이 지향하는 법과 법치이론을 수립하였다.
현대 인권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한비자의 법가사상은 반인권적 내용을 담고 있어 제대로 된 평가를 내릴 가치조차 없다. 하지만 모든 사상은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가치이념과 현실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물며 그 사상이 오랜 세월동안 사라지지 않고 오늘날에도 회자되고 있는 현실에서 현대적 시각에서 재해석함으로써 그 문제점을 극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아래에서는 법술세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살펴본다.
3.법술세, 윤석열 독재를 탄생시킨 힘의 근원(23-7-18)/민플러스
법술세는 국가 통치의 근본이 되는 세 가지 요소를 말한다. 법은 국가의 통치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로, 법을 통해 백성들을 통제하고 국가를 안정시킬 수 있다. 술은 법을 효과적으로 집행하기 위한 방법으로, 군주가 백성들을 통제하기 위한 권위를 높이고, 백성들이 법을 지키도록 유도하는 방법이다. 세는 법과 술을 효과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군주의 권위와 힘을 말한다. 한비자는 법술세를 통해 국가를 안정시키고 부강하게 만드는 것이 군주의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했다. 법술세의 세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춘 군주만이 강력한 국가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 그 주장의 핵심이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신불해와 공손앙의 두 학파 주장 가운데 어느 쪽이 나라에 더 긴요합니까?(한비자 정법 43:1)
이에 한비자가 대답했다.
(...) 군주에게 술이 없으면 윗자리에 앉은 채 이목이 가리게 되고, 신하에게 법이 없으면 아래에서 어지러워진다. 이는 하나도 없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모두 제왕이 갖춰야 할 도구이다.(한비자 정법 43:2)
한비자는 상앙의 법과 신불해의 술에 대해 이렇게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그의 결론은, “신불해의 술은 아직 미진하고, 상앙의 법 역시 아직 완비되지 못했다”(한비자 정법 43:7)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나라는 다스리는 법도인 치도(治道)는, “사람들이 쉽게 행하여 싫어하는 형벌에 걸리지 않도록 하는 것”(한비자 내저설 상 30:25)과 “사람이 쉽게 피해 갈 수 있는 것을 피하도록 하고, 범하기 어려운 중죄에 걸리지 않도록 하는 것”(한비자 내저설 상 30:28)이라고 강조하였다. 한비자는 상앙의 법(法)과 신불해의 술(術)에 신도의 세(勢)를 더하여 법술세(法術勢)를 바탕으로 자신이 지향하는 법과 법치이론을 수립하였다.
현대 인권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한비자의 법가사상은 반인권적 내용을 담고 있어 제대로 된 평가를 내릴 가치조차 없다. 하지만 모든 사상은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가치이념과 현실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물며 그 사상이 오랜 세월동안 사라지지 않고 오늘날에도 회자되고 있는 현실에서 현대적 시각에서 재해석함으로써 그 문제점을 극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아래에서는 법술세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살펴본다.
상앙의 법(法)의 개념과 의미
한비자는 기본적으로 상앙(商鞅, 본명: 공손앙(公孫鞅), B.C.390~338)의 법(法)에 의거한 엄중한 법집행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상앙이 말하는 법은 백성(民)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수단이자 통치의 객관성을 보장하는 기본 장치인 성문법을 지칭한다. 상앙은, 모든 성문법은 언제나 공개적으로 선포되고 엄격하게 준수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무차별적인 성문법의 적용과 준수 및 극단적인 법치주의를 강조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가 내세우는 대표적인 주장이 “형벌로써 형벌을 없앨 수 있다”는 이형거형(以刑去刑)이다. 한비자는 말한다.
“형을 집행하면서 경범죄를 중죄로 다스리면 경범죄도 없게 되고, 중죄를 범하는 자도 나오지 않는다. 이를 일컬어 형벌로 형벌을 물리치는 ‘이형거형’이라고 한다.”(한비자 내저설 상 30:29)
상앙은 자신이 내세우는 법을 “옛날 법(古法)을 고쳐 새롭게 시행한다”는 뜻에서 변법(變法)이라고 불렀다. 변법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① 정전제(井田制) 폐지하고 대대적인 개간을 통한 농업생산량을 증대한다. 이를 위해 토지를 농민에게 수여하는 수전제(授田制)를 실시하여 국가가 세금을 직접 징수한다.
② 귀족과 종실의 분봉제(分封制)와 세습제를 없애고 출신성분을 가리지 않고 오로지 군공에 의해 직위와 상을 준다. 이를 통하여 포상과 처벌을 명확히 하여 백성의 이익은 오로지 경전(耕田)을 통해서만 가능하도록 한다.
③ 권력이 군주에게 집중되는 행정 제도인 군현제를 도입한다. 31개 현(縣), 향(鄕)과 읍(邑)을 십오편호제(什五編戶制)에 따라 편성한다. 이 제도는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웃이 모든 책임을 함께 지는 연좌제이다. 즉, 십오연좌제(什五連坐制)를 실시하여 부정을 저지르면 참수보다 무거운 형벌인 허리를 잘라 죽이는 요참(腰斬)에 처한다.
④ 농업생산을 장려하고 공상업을 억제하는 중농경상(重農輕商) 또는 중농억상(重農抑商)정책을 실시한다. 이를 통하여 모든 백성이 오로지 경전에만 몰두하도록 유도한다.
⑤ 백성들의 전투의지를 높이기 위해 잦은 전쟁을 불사한다. 중농으로 백성을 배부르게 하고 나라의 재정을 튼튼하게 하여 강한 군대를 보유해야 한다. 이를 ‘농전사상(農戰思想)’이라 한다.
⑥ 통치의 편의를 위해 공포정치를 조성한다.
⑦ 대가족제도를 폐지하고 한 집안에 두 명 이상의 남성이 있는 경우 분가를 의무화하는 분가정책(分家政策)을 실시한다. 이 정책의 도입으로 호구세 증가를 통한 세수 증대와 군역 확보를 도모한다.
⑧ 법가 이외의 유가 등 인의도덕이나 박애 사상을 철저히 배척하고 오로지 법치만을 지고의 가치로 삼는다.
⑨ 통치에 대한 비판과 여론을 봉쇄하기 위하여 시서예악 등 전적을 전수하지 못하도록 하는 우민화 정책을 실시한다.
⑩ 유세와 언변이 나돌지 못하도록 학자의 여행이나 백성의 이주를 제한하여 사상을 통제한다.
⑪ 길이·부피·무게를 통일하는 도량형(度量衡)정책을 실시한다.
상앙의 변법이 가지는 특징은 신상필벌(信賞必罰)을 분명히 하는 데 있다. 상앙에게 법이란 상(賞)을 줄 만한 업적이 있는 자에게 반드시 상을 주고, 잘못이나 죄가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벌(罰)을 줌으로써 상벌(賞罰)의 원칙을 분명히 하여 공정(公正)하고 정의로운 법질서를 확립하는 수단이다. 상앙은 법을 위반한 사람을 거열형이나 요참으로 처형하고, 범죄자의 구족(九族)을 모두 벌하는 멸문지화를 단행하였다.
신상필벌에 입각한 엄격한 법을 집행하기 위하여 상앙은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 혹은 오가작통제(五家作統制)에 의거하여 고발과 연좌제를 시행하였다. 오가작통법이란 다섯 가구(五家)를 묶어 하나의 통으로 편성한 전형적인 주민통제법이자 연좌제적 행정제도였다. 그 후 이 방식은 다섯 가구를 하나의 통으로 묶는데 그치지 않고 5개의 통을 묶어 리(里)로, 3~4개의 리를 묶어 면(面)을 구성하는 식으로 운영되었다. 이 제도를 통해 이웃이 서로 감시하고 고발하도록 하고, 죄를 범하면 벌도 함께 지도록 하였다. 이처럼 변법을 실시하여 상앙은 백성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였다. 한비자는 상앙의 변법에 대해 아래와 같이 상당히 후하게 평가하고 있다.
법은 관청에 명시돼 있는 법령으로 상벌이 백성의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어 법을 잘 지켜 따르면 상을 내리고, 간사한 짓으로 이를 어기면 엄벌을 가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신하가 확실히 익혀 두어야만 한다.(한비자 정법 43:2)
이에 백성들은 쉬지 않고 힘써 일하고, 적을 쫓을 때는 위험에 빠져도 물러나지 않았다. 나라가 부유해지고 군사가 강해진 이유다. 그러나 진나라 군주는 신하의 간사함을 알아내는 술이 없었다. 애써 이룬 부강이 신하들에게 이익으로 돌아간 이유다.(한비자 정법 43:5)
상앙이 이웃을 서로 감시하고 위법행위를 고발하게 하는 강력한 백성통제정책을 실시한 이유는 무엇일까. 진나라 신하들이 법을 무시하고, 자신의 이익만 추구한 까닭에 나라는 어지럽고 군대는 쇠약했으며, 군주의 권세 또한 미미했기 때문이다. 상앙은 진효공에게 법제를 바꾸고 풍속을 교정해 공도(公道)를 밝게 드러낼 것을 적극 권했다. 당시 진나라 백성들은 죄를 지어도 형벌을 피할 수 있고, 공이 없어도 높은 지위에 올라 존경받을 수 있는 예전의 풍속에 젖어 새 법을 가벼이 보고 위법을 저질렀다. 따라서 상앙은 법을 위반한 자에게는 반드시 중벌을 내리고, 그런 자를 고발한 자는 상을 후하게 내려 새 법을 믿게 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변법이 제대로 시행되려면 신상필벌에 대한 믿음이 필요한데, 백성들은 새 법에 대해 믿지 않았다. 상앙은 새 법에 대한 규범력을 확보하기 위해 한 가지 꾀를 냈다. 도성 함양의 남쪽 대문 앞에 세 길 높이의 나무(목패)를 세우고 그 옆에 방을 붙였다.
누구든지 이 목패를 북문 앞으로 옮기면 상금으로 금 열 돈을 주겠다.
하지만 백성들은 이를 믿지 않고 아무도 목패를 옮기려 하지 않았다. 상앙은 상금을 다섯 배인 금 50돈으로 올렸다. 어떤 사람이 반신반의하며 목패를 북문 앞으로 옮기자 상앙은 즉시 그에게 상금을 주었다. 그러자 다른 어떤 사람이 목패를 다시 남문 앞으로 옮겼고, 상앙은 그에게 금 50돈의 상금을 주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의 입을 통해 나라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소식은 빠르게 퍼졌다.
이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상앙은 법을 지킨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지키지 않은 사람은 처벌하였다. 그 결과 간사한 행동이 발을 붙이지 못하는 과정에서 처벌을 받은 자가 매우 많았다.(한비자 간겁시신 14:4)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는 법이다. 상앙의 변법은 너무 엄격하여 백성의 원성이 높아지고, 새 법의 폐단이 많다는 비난이 빗발쳤다. 진효공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상앙의 변법을 강력히 밀고 나갔다. 효공이 판단하기에 진나라의 부국강병과 패업(覇業)을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상앙의 변법이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진효공의 통치력과 상앙의 변법의 성과에 대해 한비자는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변법의 실시가 가져온 긍정적 효과는, 백성들은 죄를 지으면 반드시 처벌을 받고, 처벌받을 사적인 행동과 이를 범하는 간사한 자가 매우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백성들은 마침내 법을 어기지 않게 됐고, 형벌을 가할 일도 없게 됐다. 나라의 기강이 서고, 군사력이 강해졌다. 그 결과 영토도 사방으로 확장할 수 있었고, 군주 또한 존귀해졌다. 죄를 감추는 자에게 내려지는 벌이 엄중하고, 간사한 자를 고발한 포상이 후했던 덕분이다.(한비자 간겁시신 14:4)
한비자의 평가대로 상앙은 재상이 되어 20년 간 변법을 시행하여 개혁정치를 펴는 성과를 내었다. 하지만 상앙의 개혁정책을 적극 후원하던 진효공이 죽자 상황이 급변하였다. 변법을 비판하는 반대파에게 탄핵당한 상앙은 반란을 일으켰으나 전투에서 죽는다. 진 혜문왕의 명령으로 그의 시체는 거열형에 처해져 사지가 찢기는 수모를 겪는다. 그가 고안한 거열형에 자신의 몸이 찢기는 죽임을 당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상앙이 비록 10배의 노력을 기울여 법제를 바로잡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으나 신하들은 도리어 이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했다. 만일 진효공의 치세가 상당기간 지속되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의 사후 진나라 군주들은 강대국의 모든 조건을 두루 갖추고도 수십 년이 지나도록 제왕의 대업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에 대해 한비자는, 법치술을 이용해 관원들을 바로잡는 법제가 제대로 정비되지 못한데다 군주도 법치술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 데 따른 재앙이라며 혹평하고 있다.(한비자 정법 43:5)
4.윤석열, 관료 통제술과 권세(23-7-4)/민플러스
신불해의 술(術)의 개념과 의미
군주가 아무리 강력한 법을 시행한다고 해도 술(術)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 군주의 관료 통제술을 제신술(制臣術) 혹은 치신술(治臣術)이라 하는데, 한비자는 신불해(申不害, B.C.440~337)의 술(術)을 수용한다. 술과 법의 관계에 대해 한비자는, “군주에게 술이 없으면 윗자리에 앉은 채 이목이 가리게 되고, 신하에게 법이 없으면 아래에서 어지러워진다. 이는 하나도 없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모두 제왕이 갖춰야 할 도구이다”라고 보고 있다(한비자 정법 43:2).
한비자는 제신술을 관료제도의 운영 원리로 간주하고, 술의 두 가지 원칙으로 정명책실(正名責實)과 정인무위(靜因無爲)룰 제시한다. 전자는, 이름을 반듯하게 하고 책임을 뚜렷하게 하는 것을, 후자는 군주는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신하에게 들켜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제신술은 위 두 가지 원칙을 활용하여 군주가 자신의 속마음을 흉중에 깊이 감추어둔 채 수시로 생사여탈권(生死與奪權)을 발휘하여 신하를 꼼짝 못하게 통제하는 기술로 군주의 관료통어술(官僚統御術)이라고 할 수 있다. 한비자가 보기에 술은 군주가 신하의 능력에 따라 관직을 주고, 건의를 토대로 실적을 추궁하고, 신하의 생사여탈권을 쥔 채 그 능력을 시험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군주가 관료의 생살권을 확고히 장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게 한비자의 생각이다.”(한비자 정법 43:2) 한비자가 제시하는 술의 기본바탕에는 사람의 본성에 대한 불신과 견제하는 심리가 깔려 있다. 그는 말한다.
“사람들은 옛 법과 이전의 명을 쫓는 게 이로우면 그것을 따랐고, 새 법과 나중의 명을 좇는 게 이로우면 그것을 따랐다. 이런 상황에서 신불해가 비록 10배의 노력을 기울여 한소후로 하여금 술치술(術治術)를 쓰게 했지만 간신들은 여전히 궤변을 늘어놓으며 속임수를 썼다.”(한비자 정법 43:4)
한비자는 군주가 신하를 다스릴 때 사용해야 하는 7가지 술책과 살펴봐야 할 6가지 기미, 즉 7술6미(7術6微)를 제신술로 제시하였다(한비자 내저설 상 30:1). 이를 도표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또한 한비자는 위의 7술6미를 이용하여 군주는 신하를 다스릴 수 있는 세 가지 치신술(3治)를 능숙하게 사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비자의 치신술(3治)
■절간(絶姦) : 권세로도 변화시킬 수 없는 자가 있으면 제거함
■독단(獨斷) : 신하들에게 호오(好惡)를 드러내지 않고 일을 처리함
■인통(忍痛) :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법술을 시행할 때 고통(힘든 상황)을 잘 참아야 함
술에 대한 한비자의 생각의 요체는 군주는 매사에 희로애락을 감추고 냉철하게 청정무위(淸淨無爲)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청나라 말기 이종오(李宗吾)가 쓴 『후흑학(厚黑學)』을 연상케 한다. 후흑은 두꺼운 얼굴을 뜻하는 ‘면후(面厚)’와 시커먼 속마음을 뜻하는 ‘심흑(心黑)’을 줄인 말이다(신동준, 『후흑학』, 위즈덤하우스, 2014, 10쪽). 이에 상반되는 말이 얼굴이 깨끗하고 마음이 솔직담백함을 뜻하는 박백(薄白)이다. 박백은 인의(仁義)를 지향하는 유가의 도덕적 인물인 군자라면, 후흑은 자신의 본심은 숨긴 채 뻔뻔한 얼굴과 음흉한 마음으로 난세를 다스리고 평정한 패자(霸者)라고 할 수 있다. 이종오는 후흑구국(厚黑救國)의 일념으로 난세를 다스리는 권력자는 물론 그런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처세술로 후흑학이 필요하다고 본다. 승리의 역사를 만든 인물은 유약한 박백이 아니라 냉혹하고 비인간적인 후흑이라는 게 그가 주장하는 핵심이다. 이 점에서 이종오의 후흑은 한비자의 술치를 계승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신도의 세(勢)의 개념과 의미
한비자는 군주의 위세, 즉 권세의 중요성을 강조한 신도(愼到, B.C.350~275)의 세(勢)를 수용하였다. 군주가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근본 비결은 도덕성이 아니라 존엄한 위세라는 것이다. 신도는 유가의 신치(身治) 또는 인치(人治)에는 두 가지 폐단이 있다고 본다.
첫째, 신치는 일정한 표준이 없이 마음대로 행해지는 폐단이다. 신도는 “군주된 사람이 법을 버리고 신치를 한다면 상을 주고 형벌을 가하는 것이 군주의 마음으로부터 나오게 된다”고 비판한다(『신자(愼子)』 군인(君人)).
둘째, 신치는 국가의 정치요체가 한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게 만드는 폐단이 있다(『신자(愼子)』 위덕(威德)). 이와 같은 폐단은, “법에 의해 일을 처리하는 것만”으로 없앨 수 있고, 또한 그것이 “국가의 큰 도이다”라고 주장하였다(『신자(愼子)』 일문(佚文)).
이러한 폐단을 없애기 위해 신도는 귀세(貴勢)와 상법귀공론(尙法貴公論)에 입각하여 정치를 해야 한다고 보았다. 귀세란 권력, 법률, 의례, 정책 등에서 권력, 즉 세(勢)를 가장 높은 위치에 두는 것이고, 상법귀공이란 법을 숭상하고 공공의 것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뜻이다. 신도의 주장은 세를 강조하면서도 술과 법을 숭상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결국 군주가 통치를 하려면 술과 법만으로는 부족하고 세를 가져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비자는 신도의 세(勢)이론을 적극 수용하여 군주가 가지는 권세의 중요성을 아래와 같이 강조한다.
“하늘을 나는 용은 구름을 타고, 하늘을 오르려는 뱀은 안개 속에 논다. 구름이 걷히고 안개가 개이면 용과 뱀은 지렁이나 개미와 다를 바 없이 땅에 떨어지고 만다. 울타리가 구름과 안개를 잃었기 때문이다. 현자가 불초한 자에게 몸을 굽히는 것은 세도가 가볍고 지위가 낮기 때문이고, 불초한 자가 현자를 굴복시키는 것은 세도가 무겁고 지위가 높기 때문이다. 요임금도 신분이 낮은 필부였다면 단 세 사람조차 능히 다스릴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라 걸도 천자의 자리에 있었던 덕분에 능히 천하를 어지럽힐 수 있었다. 나는 이로써 권세와 지위는 믿을 수 있어도 재능과 지혜는 부러워할 게 못 된다는 것을 알았다. 무릇 활의 힘은 약한데도 화살이 높이 올라가는 것은 바람의 힘을 탔기 때문이고, 당사자는 불초한데도 그 명이 잘 시행되는 것은 많은 사람의 도움이 있기 때문이다. 요임금이 노비의 지위에 있었다면 아무리 가르치려 해도 백성들 가운데 그 누구도 그의 가르침을 듣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보위에 올라 남면(南面)한 채 천하를 호령했기에 비로소 명하면 곧바로 행해지고, 금하면 곧바로 그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로써 보건대 재능과 지혜로는 일반 백성을 굴복시킬 수 없으나 권세와 지위는 현자까지도 능히 굴복시킬 수 있다.”(한비자 난세 40:1)
그렇다면 신도의 세(勢)를 현실 정치에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한비자는 군주가 권세 또는 위세를 이용할 수 있는 경우를 네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첫째, 권세(權勢)는 용군(庸君)을 위한 것이다. 요순 및 걸주와 같은 인물은 천 년 만에 한 번 나올 뿐 어깨를 나란히 하고 발꿈치를 좇는 것처럼 잇따라 나오는 게 아니다. 세상에는 통상 중간 수준의 군주가 연이어 나온다. 한비자가 말하고자 하는 권세는 바로 이런 중간 수준의 군주인 용군을 위한 것이다. 용군은 위로는 요순과 같은 성군에 못 미치고, 아래로는 걸주와 같은 폭군에 이르지 않은 군주를 지칭한다. 용군이 법을 쥐고 권세에 의지하는 이른바 포법처세(抱法處勢)를 행하면 나라가 잘 다스려진다. 그러나 법을 어기고 권세를 버리는 이른바 배법거세(背法去勢)를 행하면 나라가 어지러워진다.”(한비자 난세 40:6)
둘째, 권세는 엄격한 신상필벌을 바탕으로 포법처세를 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에 대해 한비자는 말한다. “무릇 굽은 나무를 바로 잡는 도지개와 길이와 부피를 헤아리는 척도를 버리면 설령 해중(奚仲) 같은 명장에게 수레를 만들게 할지라도 바퀴 하나 만들지 못할 것이다. 상으로 장려하고 벌로 억제하지 않으면서 ‘포법처세’ 대신 ‘배법거세’를 행하면 설령 요순과 같은 성군이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사람들을 설득할지라도 세 집조차 다스리지 못할 것이다.”(한비자 난세 40:6)
셋째, 권세는 권병(權柄)을 행사하기 위한 기반이다. 군주는 권력을 행사하는 권한인 권병을 손에 움켜쥐고 권세를 배경으로 삼는다. 그래야 금령을 차질 없이 집행해 신하의 사악한 짓을 제지할 수 있다. 권병은 사람의 생살을 좌우하는 직권이고, 권세는 뭇사람을 제압하는 바탕이다(한비자 팔경 48:1).
넷째, 위세는 군주의 조아(爪牙)이다. 조아란 발톱과 어금니를 말한다. 무릇 말이 무거운 짐을 실어 나르고 수레를 끌면서 먼 길을 갈 수 있는 것은 근력(筋力) 덕분이다. 만승 대국의 군주와 천승 소국의 군주가 천하를 제복(制服)하고 명을 좇지 않는 제후를 토벌할 수 있는 것은 위세 덕분이다. 위세는 군주의 ‘근력’이다. 지금 대신이 위엄을 떨치고, 좌우측근이 권세를 멋대로 휘두르는 것은 군주가 힘을 잃었기 때문이다. 힘을 잃고도 나라를 유지한 군주는 1천 명 가운데 단 한 사람도 없다. 범과 표범이 능히 사람을 이기고 백수의 왕으로 군림하는 것은 조아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호표조아(虎豹爪牙)라 한다. 만일 범과 표범이 조아를 잃으면 사람에게 제압당한다. 위세는 군주의 조아다. 군주가 조아를 잃으면 발톱과 어금니를 잃은 범과 표범의 처지가 되고 만다(한비자 인주 52:1).
이에 대해 한비자는, 군주가 나라를 다스리는 수단으로 크게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 이익, 둘째 위세, 셋째 명분이라고 말한다. 이 세 가지는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무릇 포상을 통해 이익을 안겨주면 백성의 마음을 얻게 되고, 형벌을 통해 위세를 행사하면 법령을 차질 없이 시행하게 되고, 법률 규정을 통해 명분을 쥐면 상하 모두 이를 기준으로 삼게 된다. 한비자는 말한다.
“이 세 가지 수단이 아니면 설령 다른 수단이 있을지라도 그리 긴요한 게 아니다.”(한비자 궤사 45:1)
위정자는 권력을 향해 불나방처럼 몰려드는 사람들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수단으로 이 세 가지를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으니 한비자의 이 말은 예나 지금이나 그리 틀리지 않는 모양이다.
5. 지혜로운 자를 임용하면 군주는 위태로워진다?(23-7-24)/민플러스
순자의 성악설
한비자의 법술세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고 악하므로 선(善)한 행위는 후천적 습득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보는 순자의 성악설을 따른다. 이 학설은 인간은 선천적으로 한없는 욕망을 가지고 있어 그대로 두면 싸움만이 일어나 파멸하기 때문에 예(禮)로써 바로잡아야 한다고 하였다. 순자의 성악설에 따라 한비자는 인간의 일반적 성질은 타산적이고 악에 기우는 것으로 설혹 친한 사이에 애정이 있다 해도 그것은 무력(無力)한 것이므로 정치를 논할 기초가 될 수 없다고 보았다. 한비자는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고 악하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아래와 같은 사례를 들고 있다.
[사례 1]
하루는 위나라에 사는 어느 부부가 기도를 할 때 아내가 이렇게 말했다.
“비나이다. 저희가 공짜로 삼베 5백 필을 얻게 해 주십시오!”
남편이 힐난했다.
“어찌 그리 적은가?”
아내가 대답했다.
“그것보다 많으면 당신이 앞으로 첩을 들이겠지요!”(한비자 내저설 하 31:18)
[사례 2]
수레를 만드는 사람은 수레를 제작하면서 사람이 부귀해지기를 바라고, 관을 만드는 사람은 관을 짜면서 사람이 요절하기를 바란다. 이는 수레를 만드는 사람이 어질고, 관을 짜는 사람이 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부유해지지지 않으면 수레가 팔리지 않고, 사람이 죽지 않으면 관을 팔 수 없기 때문이다. 관을 짜는 사람이 마음속으로 사람을 증오해서 그런 게 아니라 사람이 죽어야 이익을 볼 수 있기에 그런 것이다. (한비자 비내 17:2)
[사례 3]
부모가 자식을 대할 때 아들을 낳으면 서로 축하하고, 딸을 낳으면 죽여 버린다. 다 같이 부모의 품안에서 나왔는데 아들이면 축하하고, 딸이면 죽이는 것은 훗날의 편의를 생각하고 먼 장래의 이익을 헤아린 결과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조차 이처럼 이해타산을 계산하는 마음이 작용한다. 하물며 군신관계처럼 혈연의 애정도 없는 경우이겠는가? (한비자 육반 46:1)
[사례 1]과 [사례 2]는 현실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고,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사례 3]의 부모가 아들을 낳으면 축하하고, 딸을 낳으면 죽여 버린다는 설명은 현대인의 인식과 인권의 관점에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시대를 떠나 법과 법치를 맹목적이고 기계적으로 이해하고 적용할 때 일어날 수 있는 극단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성악설은 사람의 본성은 선천적으로 착하나 나쁜 환경이나 물욕(物慾)으로 악하게 된다는 성선설과 전적으로 대비되는 학설이다. 성선설의 근거로 맹자는 사람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네 가지 마음이 있다는 사단(四端)을 주장하였다. 맹자가 말하는 사단이란, 인(仁)에서 우러나오는 측은지심, 의(義)에서 우러나오는 수오지심, 예(禮)에서 우러나오는 사양지심, 지(智)에서 우러나오는 시비지심을 이른다.
이처럼 순자의 성악설과 맹자의 성선설은 사람의 본성을 전적으로 상반되게 보고 있다. 전자는 법가의 패도정치, 후자는 유가의 왕도정치의 이론적 논거로 원용되었다. 한편 노자를 비롯한 도가는 무위사상을 바탕으로 무위지치를 주장하였다. 이는 성인의 덕이 지극히 커서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천하가 저절로 잘 다스려진다는 도치(道治)로 이어졌다. 한비자는 법치를 행함에 일체의 사사로움이 없다는 무사법치(無私法治)를 주장하였으며, 이는 노자의 도치(道治)와 그 맥락이 닿아있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도치를 최상의 통치라고 평가하였다.
유가(儒家)와 묵가(墨家)에 대한 비판
한비자는 인의에 바탕을 두고 인간사회를 파악하는 것은 공론(空論)에 불과하다며 유가의 덕치를 부정하고, 법치를 강하게 주장한다. 현명한 사람을 숭상하는 것은 좋은데 그것을 정치규범으로 할 수는 없다. 법이 아닌 인간은 우연적 요소이므로 위험하기 때문에 현명한 사람보다는 능력 있는 사람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한비자는 유가의 허례허식과 묵가의 지나친 검약을 아래와 같이 신랄하게 비판한다.
묵가는 장례를 지낼 때 사자에게 겨울에는 겨울옷, 여름에는 여름옷 수의를 입힌다. 또 오동나무로 만든 두께 3촌의 관을 쓰고 상복은 3달만 입는다. 세상의 군주들은 이런 검소한 박장(薄葬)을 칭송하며 이들을 예우한다. 유가는 이와 달리 가산을 탕진하며 성대한 후장(厚葬)을 치른다. 3년 동안 상복을 입는 탓에 몸이 수척해져 지팡이에 의지해야만 한다. 세상의 군주들은 효성이 지극하다며 이들을 예우한다. 무릇 묵가의 검소한 행보가 옳다면 유가의 사치를 반대해야 하고, 유가의 효성이 옳다면 묵가의 박정(薄情)을 반대해야 한다. 효성과 박정, 사치와 검소의 상반된 얘기가 모두 유가와 묵가의 주장 속에 있다. 그런데도 군주는 이들을 모두 예우하고 있다. (한비자 현학 50:2)
한비자는 간사한 거짓을 일삼으며 사사로운 이익이나 챙기는 무익한 6개 부류의 선비가 있는데, 세인들은 오히려 이들을 칭송한다고 한탄한다. 이들이 바로 유가와 묵가를 믿고 따르는 선비들이다. 이들과는 정반대로 열심히 농사짓고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전쟁터에 나가 싸우는 유익한 6개 부류의 백성이 있으나 세인들은 오히려 이들을 폄하한다. 한비자는 옳고 그름이 뒤바뀌었다며 이를 ‘육반(六反)’이라 불렀다(한비자 육반 46:1).
법가는 기본적으로 농업생산을 장려하고 공상업을 억제하는 중농경상(重農輕商)을 국가산업정책의 근간으로 삼으며, 유가와 묵가 및 상공인에 대해서는 아주 비판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한비자도 동일한 시각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학자, 유세객, 협객, 정객 및 상공인과 같은 다섯 가지 부류는 나라의 기둥을 좀먹는 두충과 같은 존재라며 ‘다섯 마리 좀벌레’라는 뜻에서 ‘오두(五蠹)’라 부르고는 이들에 대해 노골적인 적개심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에 대해 한비자는 말한다.
“이 다섯 가지 두충과 같은 자들을 제거하지 않고 경전(耕戰)에 뛰어난 경재지사(耿介之士)를 양성하지 않으면, 패망하는 나라와 복멸(覆滅)하는 조정이 나타날지라도 하등 이상할 게 없다.”(한비자 오두 49:18)
육반의 유가와 묵가의 선비들과 다섯 마리 좀벌레 같은 부류가 끼치는 사회적 병폐와 해악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일까. 법으로 다스리는 법치다. 한비자는 말한다.
“법으로 다스리는 길은 처음에는 고달프나 나중에는 크게 이롭고, 인의로 다스리는 길은 처음에는 이로우나 나중에는 크게 궁색해진다.”
만일 성인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한비자는 법과 인의의 경중을 잘 헤아려 이로움이 큰 쪽을 택한다고 보고 있다. 성인은 법치 아래서 어려운 상황을 견디는 쪽을 택하는 까닭에 서로 깊이 동정하며 아낌없이 베푸는 인의의 길을 버린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유자들은 ‘형벌을 가볍게 하라’고 입을 모아 비판한다. 유자들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한비자는 “나라를 어지럽게 하고 끝내 패망으로 이끄는 술책”이라며 맹공을 퍼붓는다(한비자 육반 46:4).
이형거형으로 대표되는 엄벌주의에 의거한 강력한 법치를 주장하고, 유자들이 가지는 가치관념을 비판하면서 한비자는 유가의 스승 공자와 노애공(魯哀公)의 사례를 든다.
한비자가 보기에 백성은 본래 권세에 복종하지만 의로움을 품고 따르는 사람은 적다. 이를테면, 공자는 천하의 성인으로 수행을 한 후 도를 밝히며 천하를 돌아다녔다. 천하 사람들은 그가 말한 인을 좋아하고, 그 의를 칭찬했지만 복종한 자는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대개 인(仁)을 귀하게 여기는 자가 적고, 의(義)를 실행하기가 어려웠던 탓이다. 이런 이유로 한비자는 말한다.
“천하는 매우 크지만 그의 제자는 70명뿐이었고, 인의를 실천한 사람은 공자 한 사람뿐이었다.”(한비자 오두 49:6)
공자와 달리 노애공은 보잘 것 없는 군주였다. 하지만 남면(南面)하여 군주로 즉위해 나라를 다스리자 백성들 가운데 감히 신하가 되지 않으려는 자가 없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군주가 가진 권세에 있다. 한비자가 보기에 백성은 실로 권세에 복종하고, 권세는 실로 사람을 복종시킨다. 공자가 신하가 되고, 노애공이 군주가 된 이유다. 공자는 노애공의 의(義)에 감복한 게 아니라 그의 권세에 복종한 것이다(한비자 오두 49:6).
이 두 인물을 비교하면서 한비자는, “만일 의를 기준으로 했다면 공자는 노애공에게 복종하지 않았을 것이다. 권세에 의지했기에 노애공도 공자를 신하로 삼을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한비자는, “지금 학자들은 군주를 설득하면서 반드시 권세를 잘 운용하라는 말은 하지 않고, ‘인의를 힘써 행하면 능히 왕도를 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군주에게 반드시 공자 못지않은 인물이 되고, 백성들에게 모두 공자의 제자가 될 것을 요구한 것이다. 이는 결코 이뤄질 수 없는 도리이다”라는 날선 비판을 한다. 따라서 한비자에게 “천하 사람들 모두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과 어른을 공경하고, 군주에게 충성하고, 남편에게 복종하는” 효제충순(孝悌忠順)의 도리(한비자 충효 51:1)는 천하의 변하지 않는 상도(常道)이다. 상도를 버리고 현능한 자들을 숭상하면 나라는 이내 어지러워지고, 법도를 버리고 지혜로운 자들을 임용하면 군주는 위태로워진다는 것이다(한비자 충효 51:2).
신하로서 요순을 현명하다고 칭송하지 않고, 탕무가 폭군을 토벌했다며 기리지 않고, 열사의 높은 절개를 말하지 않고, 힘을 다해 법을 지키고, 마음을 다해 군주를 섬기는 것이 바로 충신이다. (한비자 충효 51:5)
법을 숭상할 뿐 현능을 숭상하지 않는다(尙法而不尙賢, 한비자 충효 51:2). 이 말을 들어 한비자는 힘을 다해 법을 지키는 것이 곧 충신의 도리라며 법치가 효제충순을 강조하는 유가의 입장과 다르지 않음을 역설하고 있다.
6.법은 드러날수록 좋고, 술은 안 드러날수록 좋다(23-8-2)/민플러스
한비자가 바라보는 법의 성질
“법은 명확히 드러날수록 좋고, 술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수록 좋다(法莫如顯 術不慾見).”(한비자 난삼 38:16)
“나라는 언제까지나 늘 강할 수도 없고, 언제까지나 늘 허약할 수도 없다. 법을 받드는 자가 강하면 나라도 강해지고, 약하면 나라 또한 약해진다.”(한비자 유도 6:1)
위에 인용한 문장에는 법에 대한 한비자의 기본 인식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약육강식의 정글법칙이 지배하던 전국시대는 난세 중의 난세였다. 군주는 법을 밖으로 드러내고, 술은 안으로 감추고 숨겨야 했다. 즉, 법은 문서로 엮어 관부에 비치해 두었다가 백성에게 널리 알려야 하고, 술은 오직 군주의 마음속에 간직해 두고 여러 증거와 대조해가며 은밀히 신하들을 통제하는 방편으로 사용해야 했다. 군주는 법술세를 함께 사용하되 현실정치에서 공(公)과 사(私)의 영역을 엄격히 분리해야 하는데, 이를 공사지변(公私之辨)이라 한다. 한마디로 군주는 권세를 바탕으로 법과 술을 적절히 활용하여 자신의 권위를 유지하고 통치하는 능력이 있어야 했다. 이처럼 한비자의 법술세에 의거한 법과 법치는 평화 시보다 특히 난세에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한비자』가 ‘난세 리더십의 성전’으로 불리는 이유다. 그렇다면 한비자가 바라보는 법은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을까.
1. 법은 인의변지(仁義辯智)와 예(禮)를 대체하는 것이며, 사(私)적인 것이 아니라 공(公)적인 것이다
이 관점에서 한비자는 예치(禮治)에 대하여 법치(法治)를 주장하였다. “서언왕은 인의를 행했지만 서나라는 망했고, 자공은 언변과 지모가 있었지만 노나라는 영토가 깎이고 말았다”며 한비자는 “무릇 인의, 언변, 지모는 나라를 지탱해주는 수단이 못 된다”고 단언한다. 만일 서나라와 노나라가 각각 서언왕의 인의와 자공의 지모를 버리고, 만승의 대국인 초나라와 제나라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힘을 길렀다면 두 대국의 야욕도 이내 펼칠 길이 없었을 것이라는 게 한비자의 생각이다(한비자 오두 49:4).
따라서 법치가 바로서고 부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군주는 ‘법에 근거하지 않는 행위를 금지’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군도(君道)다. 또한 군주는 반드시 공사의 구분을 명확히 하고, 법제를 분명히 해 사사로운 온정을 물리쳐야 한다. 이것이 군주의 공의(公義)다. 군도와 공의는 오로지 군주만 행사할 수 있다. 이에 반하여 신하가 사적인 행보로 붕우들에게 믿음을 얻고, 상을 내려 권장하며, 벌을 주어 금지하는 등의 권한은 행사할 수 없다. 이것은 신하들의 사사로운 사의(私義)이므로 엄격히 금지해야 한다. 만일 신하들이 사사로운 의리를 행하면 나라는 곧 어지럽게 되고, 공적인 의리를 행하면 잘 다스려진다. 공과 사의 구분을 엄히 해야 하는 이유다(한비자 칙사 19:6).
한비자는 군주의 공사(公私) 구분과 법집행은 엄정해야 한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한다. 『한비자』 「경문(經文) 2」 치강(治强)에서, “잘 다스려지고 강성해지는 것은 법이 제대로 행해지는 데서 비롯되고, 나라가 약해지고 어지러워지는 것은 법을 사사로이 행한 데서 비롯된다”며 “군주가 이를 명확히 알면 상벌을 바르게 시행하고, 아랫사람에게 함부로 인애(仁愛)의 마음을 갖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군주는 “작위와 봉록은 공에 따라 얻고, 형벌은 죄에 따라 받는다”는 신상필벌의 기준을 명확히 세울 것을 강조한다. 신하가 이를 분명히 알면 반드시 온 힘을 다해 공을 세우고, 군주에게 사사로운 충성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한비자가 말한다.
“군주가 평소 무자비할 정도로 법의 집행에 철저하고, 신하가 평소 불충할 정도로 공을 세우는 데 철저하면 군주는 가히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룰 수 있다.”(한비자 외저설 우하 35:2)
춘추전국시대라는 혼란한 현실에서 한비자의 이 말을 듣고 귀가 솔깃하지 않을 군주가 어디 있겠는가. 한비자는 군주들에게 법과 법치를 앞세워 신상필벌이라는 잣대로 절대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론적·현실적 기반을 제공해 주었다.
2. 법은 사람의 행위에 대한 도량형적 측정과 평가의 수단이다
법은 상벌의 기준으로 군주에게 공적에 따라 사람의 행위를 평가하는 절대권한을 부여한다. 군주는 이 권한을 이용하여 상벌을 보상과 제재(신상필벌)의 수단으로 활용한다. 이 점에서 법은 상벌양정(賞罰量定)의 기준이다.
한비자가 바라보기에 군주가 백성을 사랑하고, 반대로 사랑하지 않는 것을 판단하는 잣대는 두 가지밖에 없다. 형벌을 무겁게 하고 포상을 남발하지 않는 것이 백성을 사랑하는 길이요, 정반대로 포상을 남발하고 형벌을 가볍게 하는 것은 백성을 사랑하지 않는 길이다. 만일 이 기준을 명확하게 정하고 시행하면 백성은 상을 받기 위해 목숨마저 바친다는 것이다(한비자 칙령 53:4).
이처럼 군주가 백성에게 형벌을 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군주가 백성을 미워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형벌을 가하는 것이 백성을 사랑하는 근본이기 때문이다. 또한 성인은 백성을 다스리면서 백성의 근본이익을 고려하는 까닭에 백성의 욕망에 따르지 않고, 백성의 이익을 앞세울 뿐이라는 게 한비자의 주장이다(한비자 심도 54:1).
일찍이 상앙은, “형벌로써 형벌을 없애면 나라가 잘 다스려질 것이요, 형벌로써 더 많은 형벌이 생기도록 하면 나라가 혼란스러워질 것이다(以刑去刑 國治 以刑致刑 國亂)”(상군서 거강 4:8)라며 법치의 기본원칙으로 이형거형과 이형치형을 제안하였다. 이형거형이란 가벼운 죄에 대해서도 중형을 내림으로써 백성들이 형벌을 무서워하여 쉽게 죄를 짓지 않을 것이므로 형벌을 쓰지 않으려는 목적에 부합한다고 보는 견해이다. 또한 이형치형이란 무거운 죄에 대해 가벼운 형벌을 내림으로써 백성들이 형벌을 무서워하지 않아 쉽게 죄를 짓게 되므로 형벌을 써서 도리어 형벌을 내릴 일이 자꾸 생겨나게 해야 한다는 견해이다. 이 견해에 따라 상앙은 이형거형과 이형치형에 따른 엄한 형벌을 부과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형벌을 집행할 때에 가벼운 죄를 중형에 처하면 형벌도 제거되고 일도 성취시킬 수 있어 나라는 강해진다. 무거운 죄를 중형에 처하고 가벼운 죄를 가벼운 형에 처하면 형벌을 내려야 할 일은 늘 나타나고 일도 생겨나서 나라는 약해지고 만다’라고 하는 것이다.
형벌은 힘을 생기게 하고, 힘이 생기면 강해지며, 강해지면 위엄이 생기고, 위엄은 은혜를 생기게 하며, 은혜는 힘에서 생겨난다.
힘 있는 자를 거용함으로써 용감하게 전쟁을 치르게 되고, 전쟁을 함으로써 지혜와 계략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상군서』 거강 4:8)
하지만 상벌양정이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먼저 형벌과 포상의 한계를 명확히 정해야 한다. 한비자도 이 점을 인식하여 명확한 한계의 존재 유무는 나라의 흥망성쇠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며 이렇게 말한다.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치고 법률을 제정하지 않는 자는 없다. 그럼에도 존속하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망하는 나라도 있다. 망하는 나라는 바로 군주가 상벌을 행하면서 그 한계를 명확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군주가 형벌과 포상의 한계를 정하면서 그 한계를 명확히 정하고 단일한 잣대를 쓰면 백성들이 법도를 존중하고, 크게 두려운 나머지 감히 금령을 어길 엄두를 내지 못하고, 법에 저촉되지 않기를 기원하며 감히 과분한 포상을 기대하지 않는다. 이 상태가 되면 굳이 상벌을 시행하지 않아도 백성들이 열심히 일한다는 것이다(한비자 제분 55:2). 그러므로 군주는 벌주어 죽이는 형(刑)과 칭찬하여 상주는 덕(德)이라는 칼자루를 단단히 붙잡고 놓쳐서는 안 된다. 한마디로 군주는 형과 덕이라는 두 개의 칼자루를 쥐고 휘둘러 신하와 백성이 자신의 권위를 두려워하게 만들어야 한다.
3. 법은 분명하고 엄정해야 한다
“엄격한 형벌은 법령을 철저히 수행케 하고, 백성들을 징계하는 게 목적이다.”(한비자 유도 6:5)
이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한비자는 법은 백성이 행하기 쉽고 분명해야 하며, 또한 엄정해야 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이에 관한 한비자의 법사상을 대표하는 유명한 말이 “법은 귀한 사람이라고 하여 아첨하지 않고, 먹줄은 모양에 따라 구부려 사용하지 않는다”는 ‘법불아귀 숭불요곡(法不阿貴 繩不撓曲)’이다. 한비자는 말한다.
“먹줄이 곧아야 굽은 나무도 곧게 자를 수 있고, 수준기가 평평해야 고르지 못한 표면도 평평히 깎을 수 있고, 저울로 무게를 가려야 균형을 잡을 수 있고, 되와 말을 사용해야 많으면 덜고 적으면 보탤 수 있다. 법에 따라 나라를 다스리면 손을 들었다 내리는 것처럼 쉬울 것이다.
법은 귀한 사람이라고 하여 아첨하지 않고, 먹줄은 모양에 따라 구부려 사용하지 않는다. 법의 제재를 가하면 지혜로운 사람도 논쟁하지 못하고, 용맹한 자도 감히 다투지 못한다. 대신일지라도 잘못을 저지르면 형벌을 피할 수 없고, 선행을 칭송하여 상을 내릴 때 서민이라고 해서 제외되는 일이 없다. 그리해야 윗자리에 있는 자의 잘못을 바로잡고 아랫사람의 사악함을 문책할 수 있다.”(한비자 유도 6:5)
법불아귀 숭불요곡이란 말은 법 앞에 모든 사람은 평등하므로 법을 집행할 때 사람의 신분이나 지위에 따라 차별함이 없이 마치 자를 대어 먹줄을 긋듯이 공평무사해야 한다는 뜻이다. 만일 군주가 법술과 형벌을 엄하고 공정하게 시행하면 아무리 범 같은 신하일지라도 스스로 겁을 먹고 온순해질 수밖에 없다. 한비자는, 이처럼 법술과 형벌이 바르게 시행되면 범도 사람으로 변해 본연의 모습을 찾게 된다고 말한다(한비자 양각 8:7).
현대법률용어로 법불아귀 숭불요곡은 ‘법 앞에 평등’으로 대표되는 평등주의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대한민국 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 재산, 출신, 가족관계, 교육, 병역, 거주, 신념, 기타의 이유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대 민주주의국가에서 법 앞에 평등은 법의 지배, 즉 법치주의를 통해 실현된다. 법치주의 아래서 국가의 모든 권력은 법에 의해 제한되고, 법 앞에 누구도 예외가 있을 수 없다. 이 원칙은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한비자도 이 점을 인식하고 군주도 법에 구속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한비자의 법치사상을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만민평등사상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가 말하는 ‘법 앞에 평등’이란 모든 사람(만인)이 법 앞에 평등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군주 앞에서 복종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즉, 한비자는 만민을 군주의 지배권 아래 하나로 묶어두기 위하여 형벌권의 대상에 예외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처럼 한비자는 법을 엄히, 그리고 공정하게 시행해야 한다는 기본 관념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엄형주의(嚴刑主義)라 한다. 법이 “곧바로 5리 범위 내에서 엄히 시행될 수 있으면 왕자(王者)의 칭송을 들을 수 있고, 9리 범위 내에서 엄히 시행될 수 있으면 강자(强者)가 될 수 있다”는 말에는 한비자가 바라보는 엄형주의가 잘 드러나 있다. 따라서 만일 지척대며 엄형의 시행을 늦추는 나라는 영토가 깎이고 쇠약해진다(한비자 칙령 53:1).
그러나 한비자가 말하는 엄형은 자의적인 처벌과는 다르다. 한비자는 공과에 따른 상과 벌은 엄정하고 공정해야 한다며, 이를 엄형으로 보고 있다. 한마디로 신상필벌은 엄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현명한 군주는 공이 없는 자에게는 상을 주지 않으며, 죄가 없는 자에게는 벌을 가해서는 안 된다(한비자 난일 36:8).
약육강식이 횡행하던 난세에서 한비자의 제안만큼 군주의 마음을 끄는 부국강병책이 있었을까. 한비자는 군주에게 강력하게 주문한다. 엄형과 중벌은 백성이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것이니 나라가 편안해지고 난폭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법치를 시행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그리고는 자신의 할 일은 다했다는 듯 이 말로 방점을 찍는다.
“나는 이로써 인의나 은혜로운 사람 등은 치국에 부족하고, 엄형과 중벌만이 치국의 방략으로 쓸 수 있음을 밝힐 수 있다.”(한비자 간접시신 14:7)
이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한비자야말로 ‘피도 눈물도 인정도 없는’ 냉혈한 법률가의 전형이요, 강고한 법과 법치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다.
4. 법은 피치자에게 공개를 그 형식적 요건으로 한 제정법이다
법 또는 법률이란 국가의 강제력을 수반하는 사회 규범이다. 국가 및 공공기관이 제정한 법률, 명령, 규칙, 조례 따위로 통상 이를 법령이라고 한다. 법령을 한마디로 개념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법령은 기본적으로 국가적·사회적 배경을 바탕으로 주권자 또는 법령을 제정할 권한이 있는 자가 그 국가 또는 사회와 그 구성원에 대해 해당 법령의 준수를 강제하고, 스스로도 그러한 규범을 지킬 것을 전제로 일정한 목적 아래 구성한 성문(成文)의 규범체계라고 정의할 수 있다.
국가와 공공기관이 법령을 제정할 때는 고려해야 할 헌법 원칙이 있다. 비례의 원칙(과잉금지의원칙), 평등의 원칙, 신뢰보호의 원칙(소급입법금지의 원칙), 적법절차의 원칙, 과소보장금지의 원칙은 실체적 내용에 관한 헌법 원칙이고, 명확성의 원칙, 포괄위임금지의 원칙, 의회유보의 원칙, 죄형법정주의, 조세법률주의는 형식에 관한 헌법 원칙이라 한다. 이 가운데 한비자는 법령의 형식에 관한 명확성의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명확성의 원칙이란 법령은 행정과 사법(司法)에 의한 법 적용의 기준이 되므로, 명확한 용어 등으로 분명하게 규정하는 것을 말한다. 이 원칙은 규율 내용의 성격이나 기본권 제한의 정도에 따라 다른 기준이 적용된다. 특히 형사법, 조세법, 침익적(侵益的) 성격의 법령 및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령을 입안·심사할 때에는 보다 엄격한 기준이 적용된다. 이 원칙은 삼권분립과 법치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현대 민주주의에서 개인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반드시 요구되는 것이다.
한비자는 기본적으로 ‘법규는 간략하고 명확해야 한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다. 명확성의 원칙이란 관점에서 바라보면, 한비자의 법치는 시대를 거슬러 상당히 앞선 법률가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대부분의 백성들이 대부분 글을 읽고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한비자는 법규가 간략하고 명확해야 백성들의 다툼이 간소해지고 쉽게 해결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군주는 법률을 제정할 때 해당 사안을 상세히 규정해야 하고,(한비자 팔설 47:8) 문서로 엮어 관부에 비치해 두었다가 백성에게 널리 알려야 한다(한비자 난삼 38:16).
하지만 한비자가 보기에 군주에게 큰일은 ‘법(法)이 아니고 술(術)’이다. 법은 명확히 드러날수록 좋지만 술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수록 좋다(한비자 난삼 38:16). 겉으로 드러내고 보다 분명해야 하는 법과는 달리 술은 오직 군주의 마음속에 간직해 두고 모든 증거와 대조해가며 은밀히 신하들을 통제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한비자 난삼 38:16). 따라서 명군은 법을 포고할 때 나라 안에서 비천한 노복까지 모두 들어 모르는 자가 없게 한다. 이는 전당 안의 사람만 들을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술을 구사할 때는 이와는 완전히 다르다. 술은 친애하는 측근이나 가까이서 섬기는 신하는 물론 방안의 사람조차 들을 수 없게 한다. 이 관점에서 한비자는, ‘방안에서 말할 때는 방안의 모든 사람이 알아듣게 하고, 전당 안에서 말할 때는 전당 안의 모든 사람이 알아듣게 한다’고 말한 관중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한비자에게 관중의 이 말은 “법술을 터득한 사람의 말이 아닌” 까닭이다(한비자 난삼 38:16).
7.폭군은 백성과 신하를 어떻게 생각할까?(23-8-6)/민플러스
1. 군주
한비자가 제시하는 이상적인 군주상은 무소불위의 권력과 권능을 가진 패왕(霸王)이다. 한비자가 엄격한 법과 법치를 통해 군주가 절대 권력을 가질 필요성이 있음을 강조하는 이유도 엄벌주의를 바탕으로 군권을 강화(君權强化)함으로써 패왕의 기초를 다지기 위함이다.
패왕이란 패도(霸道)와 왕도(王道)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패도가 인의(仁義)를 가볍게 여기고 무력이나 권모술수로써 공리(功利)만을 꾀하는 것이라면, 왕도는 인의를 근본으로 천하를 다스리는 도리로써 임금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말한다. 특히 왕도는 유가에서 이상으로 삼고 있는 정치사상이다. 한비자는 유가만큼 왕도에 비중을 두고 있지 않으며, 기본적으로 패도를 통치와 지배의 근본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한비자에게 “패왕은 군주가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익이다.” 군주가 이처럼 큰 이익을 가슴에 품고 정사를 펼치면 관원은 능력을 다해 일하고, 상벌 또는 사사로움이 없고, 백성들 역시 목숨을 바쳐 일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죽을 각오로 온 힘을 다해 싸우고 일하면 공을 세울 수 있고, 작록도 자연스럽게 이르게 된다. 작록이 이르면 부귀영달의 목표가 마침내 이뤄지는 셈이니 군주와 신하, 그리고 백성들 모두에게 이익이라고 강조한다(한비자 육반 46:2).
한비자의 법치가 종국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군주, 그중에서 패왕이다. 그가 그토록 강조하는 신상필벌과 엄벌주의는 모두 군권을 강화함으로써 패왕의 강력한 통치 지배가 가능하도록 하는 데 있다. 이 점에서 보면 한비자의 사상은 제왕학(帝王學)이라고 할 수 있고, 법과 법치는 제왕이 가지고 있는 절대 권력을 행사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한비자의 이런 생각은 군주가 가지는 네 가지 미덕(四美)에서 잘 드러나 있다.
“만물 가운데 군주의 몸보다 더 귀한 게 없고, 군주의 자리보다 더 존엄한 게 없고, 군주의 권세보다 더 중한 게 없고, 군주의 세력보다 더 성한 게 없다.”(한비자 애신 4:1)
군주와 신하는 상하 수직적이고 절대 명령과 복종의 관계에 서있다. 그래서 명군은 신하를 길들일 때 하나같이 법으로 통제하고, 미리 대비해 바로잡아 나간다(한비자 육반 46:2). 군주는 신하가 지은 죽을죄를 용서하거나, 형벌을 경감시키는 일이 없다. 만일 군주가 그리하면 군주의 권세가 삭감되고, 사직도 위태로워지고, 국가권력 또한 신하 쪽으로 기울 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대신의 녹봉이 아무리 클지라도 성시(城市)에서 세금을 거두지 못하게 하고, 무리가 아무리 많아도 나라의 군사를 사사롭게 가신처럼 부리지 못하게 하는 일도 군주의 몫이다(한비자 애신 4:2).
그렇다면 군주에게 절대복종의 대가로 신하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부귀이다. 한비자는 말한다.
“부귀는 신하가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익이다. 신하가 이처럼 큰 이익을 가슴에 품고 업무에 임하면 위험을 무릅쓰고 일하다가 죽음에 이를지라도 원망하지 않게 된다.”
이처럼 군주와 신하의 관계를 매개하고 유지하는 유일무이한 수단은 이익이다. 부귀라는 상호간의 이익만 보장된다면, 군주는 신하들에게 인애를, 신하는 군주에게 충성을 다한다. 이 조건만 충족되면, 한비자는 “가히 패왕의 대업을 이룰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패왕 혹은 폭군에 의한 패도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한비자의 폭군인용론(暴君認容論)은 맹자의 폭군방벌론(暴君放伐論)과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2. 백성
한비자가 말하는 법은 일차적으로는 백성을 그 적용대상으로 보고, 그 법으로 다스리는 강력한 법치를 강조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비자는 말한다.
“원래 형벌을 무겁게 하는 것은 단순히 죄인을 처벌하려는 게 아니다. 명군의 법률은 단지 사람의 행위를 판단하는 준칙일 뿐이다. (...) ‘간악한 죄를 범한 한 사람을 중하게 처벌해 나라 안의 모든 악을 그치게 한다. 이것이 곧 형벌을 가하는 근본목적이다’라고 말하는 이유다.”(한비자 육반 46:2)
한비자의 이 말에는 법을 잘 지키고 법치에 순응하는 선량한 백성은 아무런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 담겨있다. 엄격한 법의 적용은 ‘간악한 죄를 범한’ 범죄자이고, 그로 인해 중벌을 받는 자는 도적과도 같다. 오히려 도적을 보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양민이다. 엄벌주의를 시행하는 목적은 죄를 지은 자를 처벌하고, 선량한 백성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이런 이유로 한비자는 반문한다.
“나라를 잘 다스리고자 하는 사람이 어찌 중형의 시행을 두려워하겠는가?”(한비자 육반 46:2)
하지만 강력한 법의 적용과 법치는 그 자체만으로는 효용성이 떨어진다. 법과 법치는 신상필벌과 결합되어 시행될 때 비로소 두 배 세 배 이상의 효과를 발휘한다. 이에 대해 한비자는 말한다.
“법은 일을 규제하기 위한 수단이고, 일은 공적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다. 법은 제정할 때 어려움이 뒤따르기도 하지만 일의 성과가 크면 전체적인 이익을 헤아려 법을 제정하게 된다. 사실 어떤 일이든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폐해도 뒤따르지만 성과가 크면 전체적인 이익을 헤아려 일을 추진하기 마련이다. 아무런 폐해가 뒤따르지 않는 공적은 이 세상에 존재한 적이 없다.”(한비자 팔설 47:5)
일의 성과에 따른 전체적인 이익을 헤아린다는 말은 곧 상과 벌을 공정하고 엄중하게 실시해야 한다는 것을 일컫는다. 만일 공이 있는 자에게는 상을 주지 않고 반대로 죄가 있는 사람에게는 벌이 아니라 상을 준다면 공정성을 확보할 수 없다. 이 관점에서 한비자는, “무릇 상벌의 확립은 선행을 권하고 악행을 금하기 위한 것”(한비자 육반 46:4)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따라서 군주는 상을 후하고 확실하게 주어서 백성들로 하여금 이롭게 여기도록 만들고, 벌은 엄중하게 집행해 백성들로 하여금 두렵게 여기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와 같이 신상필벌을 시행할 때 객관적이고 공정한 기준이 되는 것이 법이다. 그러므로 법은 늘 견고하게 하여 백성들이 이를 숙지토록 만든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군주는 상을 내릴 때 멋대로 기준을 바꾸거나 형벌을 집행할 때 함부로 용서해서는 안 된다. 명예로써 그 상을 빛나게 하고, 커다란 비난으로 그 벌을 부끄럽게 하면 현·불초를 막론하고 모두 그 힘을 다하게 된다(한비자 오두 49:7).
3. 신하(관리)
한비자가 말하는 법의 적용대상은 일차적으로는 백성이지만 이차적으로는 관리(官吏)이다. 이 점은 제나라 왕과 문자(文子)의 대화에 잘 드러나 있다. 제나라 왕이 문자에게 물었다.
“나라는 어떻게 다스려야 하오?”
문자가 대답했다.
“무릇 상벌은 예리한 무기와 같습니다. 군주는 이를 굳게 장악해 남에게 내보이면 안 됩니다. 신하들의 행동은 사슴과 같이 오직 풀이 있는 곳으로만 나아갑니다.”(한비자 내저설 상 30:37)
위 대화에서 알 수 있듯이 통치와 지배의 관점에서 법은, 군주·관리-백성, 군주-관리의 2중 구조를 띠고 있다. 이 구조는 법이 일정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비자가 역설하는 군주의 통치술은 일반 백성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대신을 비롯한 군신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비자가 말한다.
“상고시대로부터 전해져 오는 말과 『춘추』의 기록을 살펴보면, 법을 어기고 군주를 배반하여 중대한 죄를 범하는 일은 일찍이 높은 직위와 강력한 권세를 지닌 대신들에게서 나오지 않은 적이 없다. 그런데도 법령의 적용범위나 형벌의 심판에 의해 처벌을 받은 대상은 늘 세도가 없고 가난한 자들이었다. 백성들이 절망하고 울분을 호소할 길이 없게 되는 이유다.”(한비자 비내 17:3)
한비자의 생각에 군주는 법으로 대신들을 통제하고 제어해야 한다. 그래야 대신들이 법을 어기지 않고 백성들을 괴롭히지 않는다. 만일 군주가 법을 밝혀 대신들의 권세를 제압하지 못하면 백성들로부터 신뢰를 받을 길이 없다(한비자 남면 18:1). 그러므로 군주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고, 종국적으로 기댈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법을 밝히는 것’, 즉 법치를 확립하는 것이다. 한비자는 법에 정통하고, 그 법을 집행하는 관료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이 무한 신뢰를 보인다.
“법에 정통한 인재는 반드시 굳건하고 강직하다. 굳건하고 강직하지 않으면 간사한 자들을 바로잡을 수 없다.”(한비자 고분 11:1)
“법을 밝히는 자는 강하고, 법을 소홀히 하는 자는 약하다.”(한비자 칙사 19:5)
한비자는 말한다. “가장 고명한 치국 방법은 오로지 법술에 기대고, 공허한 학문을 배운 자들의 지혜에 기대지 않는 것이다”(한비자 제분 55:4)라는 말에서 보듯이 ‘공허한 학문’을 한 유가와 묵가의 부류에 대해서는 조금의 기대도 없다. 그에게 ‘치술에 정통한 인재와 법에 정통한 인재’는 믿을 수 있지만 중인(重人)은 늘 감시와 통제의 대상이다. 중인이란 군주의 명에 따라 일을 추진하지 않고, 법에 근거해 직무를 수행하지 않는 신하를 일컫는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중인은 명을 무시하며 멋대로 일을 처리하고, 법을 어기면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나라 재정을 빼돌려 자기 집안을 이롭게 하면서 군주를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조종하는 부류이다(한비자 고분 11:1).
중인의 간계를 꿰뚫어 보려면 군주는 ‘치술과 법에 정통한 인재’를 중용해야 한다. 군주의 신임을 얻어 치술에 정통한 인재가 중용되면, 중인들의 음모가 이내 드러날 수밖에 없다. 또한 법에 정통한 인재는 강직하므로 군주의 신임을 얻어 그들이 중용되면, 중인들의 간사한 행동은 이내 바로잡힐 것이다. 마찬가지로 치술과 법에 정통한 인재가 중용되면 지위가 높고 권세 있는 자들도 법을 어길 경우 가차 없이 제거될 것이다. 치술과 법에 정통한 인재는 중요한 요직에 있는 실권자와 양립할 수 없는 원수 관계이다(한비자 고분 11:1).
따라서 군주와 신하의 관계는 수직적·종속적이므로 신하는 군주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고 순응해야 한다. 절대군권(絶對君權)을 가진 전제군주를 상정하고 있는 한비자에게 군신공치(君臣共治)와 귀민경군(貴民輕君)을 지향한 공자와 맹자의 군주상은 설 자리가 없다.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한비자의 법치사상을 활용한 사례를 보더라도 당시 군주들에게 그의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8.흔들리는 저울과 망나니의 칼(23-8-7)/민플러스
1. 권형(權衡)
권형은 저울추(權)와 저울대(衡)라는 뜻으로 저울을 이르는 말이다. 저울로 사물의 경중을 재는 척도나 기준으로 삼으니 권형은 곧 공정과 형평을 일컫는다.
법원 앞에는 정의의 여신 ‘디케(Dike)’ 조각상이 서있다. 디케는 눈을 가린 채 한손에는 저울을, 다른 손에는 칼을 들고 있다. 디케가 눈을 가리고 있는 이유는 법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므로 저울로 무게를 재고 칼로 엄정하게 단죄를 해야 한다는 것을 상징한다. 정의의 여신상이 표상하는 바와 같이 한비자가 말하는 권형이란 법치를 위한 강력한 수단이다. 법률은 저울과 같아야 한다며 한비자는 이렇게 말한다.
“거울을 맑은 상태로 유지해야 미추를 비교할 수 있고, 저울은 흔들림 없이 정확한 상태를 유지해야 경중을 잴 수 있다. 거울을 흔들면 투명해질 수 없고, 저울을 흔들면 바르게 잴 수 없다. 이는 법률을 말한 것이다.”(한비자 칙사 19:5)
정치란 마치 목수가 나무를 자를 때 먹줄을 좇는 것과 같이 “엄격히 법률기준에 따라 일을 하는 것”이다. 목수는 나무를 자를 때 임의로 먹줄을 밖으로 옮기지도 않고, 멋대로 먹줄을 안으로 옮기지도 않는다. 법도 마찬가지다. 법도 목수가 먹줄을 치는 것 이상으로 엄하게 단속하지도 않고, 그 이하로 가볍게 다루지도 않아야 한다(한비자 대체 29:1). 이미 정해진 법리를 지켜 천지자연의 도를 따르면, 사람의 화복은 도리와 법도에 따라 정해지게 된다(한비자 대체 29:1). 한비자는 말한다.
“그래서 선왕은 도를 만물의 원칙, 법을 근본으로 삼았다. 근본을 잘 다스리면 명성이 높아지고, 근본을 어지럽히면 명성이 사라진다. 지혜와 능력이 사물을 밝게 통찰할 정도에 이를 경우 도에 합당하면 시행하고, 그렇지 못하면 시행하지 않는다. 지혜와 능력이 한쪽으로만 치우쳐 있으면 사람들에게 전할 수 없다. 도와 법에 의존하면 모든 게 완전하지만 지혜와 능력만으로 다스리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한비자 칙사 19:5)
따라서 한비자에게 법의 공정성을 확보하고 법치를 제대로 시행하는 가장 완전한 방법은 무엇일까. “저울에 달아 형평을 알고, 그림쇠를 이용해 원을 아는 것”이다(한비자 칙사 19:5).
2. 형명(刑名)
권형(저울)이 범죄의 유무를 재고 판단하는 척도나 기준이라면, 형명은 그에 상응하는 상벌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형(刑/形)은 사물의 실상을, 명(名)은 사물의 이름(명칭)이다. 즉, 형명은 사물의 겉과 속, 명목과 실제, 명분과 실리이다. 그에 따라 상벌과 공죄(功罪)를 따져(刑名) 상벌을 내린다(參同). 이를 형명참동(刑名參同)이라 한다. 이처럼 형명에 따라 그 명칭과 실상이 부합하는지 여부를 따지는 이론을 명실론(名實論)이라 한다. 한비자의 법치는 법으로써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과 기술을 뜻하는 형명법술(刑名法術)이라고 할 수 있다.
한비자의 형명참동은 신상필벌이라는 엄형주의를 그 바탕에 두고 있다. 이에 대해 한비자는 말한다.
“따라서 실로 공이 있으면 설령 소원하고 낮은 지위의 사람일지라도 반드시 상을 주고, 실로 잘못이 있으면 비록 가깝고 총애하는 자일지라도 반드시 벌을 내려야 한다. 소원하고 낮은 지위의 사람일지라도 상을 주고, 가깝고 총애하는 자일지라도 벌을 내리면 소원하고 낮은 지위의 사람일지라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을 것이고, 가깝고 총애하는 자일지라도 교만하게 굴지 않을 것이다.”(한비자 주도 5:3)
그러니 군주는 법과 원칙을 세웠으면 그 방침을 바꾸지 않고, 실제의 성과인 형(形)이 명목인 명(名)과 일치하는지 여부를 살피고,(한비자 이병 7:2) 명목과 성과의 형명(形名) 두 가지를 대조하면서 끝까지 초지를 관철해야 한다(한비자 양각 8:1). 군주가 신하들 간의 간사한 행위를 미연에 막는 것도,(한비자 이병 7:2) 천지자연의 규율을 좇아 치평(治平)의 대권을 잃지 않고 성명(聖明)한 군주가 될 수 있는 것도 모두 형명참동에 의해 신상필벌을 행하는 데 있다(한비자 양각 8:4). 이처럼 형명참동을 제대로 행하면 군주는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신하의 모든 실정을 파악하고, 통치를 할 수 있다. 형명참동을 자유자재로 이용하는 군주는 “현명하지 않으면서도 현자의 스승이 되고, 지혜롭지 못하면서도 지자(知者)의 우두머리가 된다.” 이런 상태가 되면, 신하는 직무에 힘쓰고, 군주는 공업을 이루니 이를 일러 ‘명군의 상도(常道)’라 한다(한비자 주도 5:1).
한비자의 형명은 공자의 정명(正名)과 그 맥락이 닿아있다. 정명은 삼강과 오륜은 사람이 늘 지켜야 하는 도리를 일컫는 것으로, 공자가 말한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와 같은 뜻이다. 『논어』 안연편에서 제(齊)나라 군주 경공(景公)이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는 “군군신신부부자자”라 대답한다. 이 말은,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개별 인간에게는 각자에 어울리는 사명과 역할이 있으므로 그에 충실함으로써 국가와 사회질서를 바로잡을 수 있다는 말이다.
공자의 정명과 한비자의 형명은 기본적으로 주나라 종법의 남성 중심의 적장자 승계원칙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가족과 사회, 나아가 국가의 모든 권력은 군주를 중심으로 수직적인 서열로 구조화되어 통치될 수밖에 없다. 임금과 신하,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수평적으로 재편되고, 각자 제구실을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가 없는 현실에서 개인 간 관계는 차별적이고 불평등한 상태를 극복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9.법치에 바탕을 둔 이상국가란?(23-8-10)/민플러스
한비자도 유가나 도가와 마찬가지로 군주가 나라를 다스리는 기본 원칙으로 ‘도(道)’를 강조한다. 도(道)는 우주의 자연 규율로, 크게 공평하며 사사로운 좋고 싫어함(好惡)의 감정이 없다.
군주가 지향해야 하는 대체(大體)도 마찬가지다. 대체란 사물의 관건·요점·강령이라는 뜻이다. 군주는 대체를 지킴으로써 ‘정해진 법리를 지키고 자연 법칙에 따라’ 좋고 싫음을 내세우지 않으며 하늘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아야 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도(道)=대체’로써 그가 말하는 도(道)는 ‘나라는 다스리는 대체’이고, 대체란 ‘도에 따라서 법을 온전하게 실행하는 것(因道全法)’이다.
하지만 엄격한 법치주의자인 한비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기본이 신상필벌에 의거한 형명법술에 있다는 자신의 원칙에서 한걸음도 벗어나지 않는다. 그에게 도(道)는 법치를 실행하기 위한 보조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한비자의 관심은 “법술에 기대어 어지러움을 다스리고, 상벌에 기대어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법치에 집중되어 있다. 법치의 중요성을 주장하며 한비자는 말한다.
“나라가 어지러울 때는 법술에 따라 다스리고, 시비의 구별은 상벌로 하고, 사물의 경중은 저울의 기준에 따른다.”(한비자 대체 29:1)
이처럼 한비자는 나라를 다스릴 때 엄격히 법률기준에 따라야 하며, 그 일은 마치 목수가 나무를 자를 때 먹줄을 좇는 것같이 해야 한다고 말한다.
“(목수는) 임의로 먹줄을 밖으로 옮기지도 않고, 멋대로 먹줄을 안으로 옮기지도 않는다. 법도 이상으로 엄하게 단속하지도 않고, 법 이하로 가볍게 다루지도 않는다. 이미 정해진 법리를 지켜 천지자연의 도를 따르면 사람의 화복은 도리와 법도에 따라 정해지게 된다. 이는 군주가 아끼거나 미워하는데서 나오는 게 아니다. 영욕도 그 책임이 자신에게 있는 것이지 남에게 있는 게 아니다.”(한비자 대체 29:1)
한비자는 당시의 정치가 혼란스럽고 민중은 도탄에 빠져 허덕이는 원인이 천지자연의 도(道)가 사라지고 법이 공정하지 못한데 있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법치에 바탕을 둔 나름의 이상국가로 ‘지안지세’를 제시하였다.
지안지세란 ‘지극히 안정된 세상’ 혹은 ‘지극히 태평한 세상’을 뜻한다. 한비자는 말한다.
지극히 태평한 세상에서 법은 아침 이슬처럼 만물을 촉촉이 적셔준다. 백성은 순박함을 잃지 않고, 마음으로 남과 원한을 맺지 않고, 입에서는 번거로운 말을 하지 않는다. 전쟁 따위가 일어날 일이 없으므로 수레와 말이 먼 길을 달려 지치는 일이 없고, 군대의 깃발이 전쟁터에서 어지럽게 나부낄 일이 없고, 수많은 백성이 적의 침입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 일도 없고, 뛰어난 용사들이 깃발 아래에서 싸우다가 목숨을 잃을 일도 없다. 전공을 세운 호걸들의 이름을 서책에 적어 두지 않고, 그 공적을 청동기인 반우(盤盂)에 새겨 넣을 일도 없다. 연대기의 목찰(木札)은 쓸 것이 없어 텅 비어 있다. 그래서 말하기를, ‘통치의 간략(簡略)보다 더 큰 이익을 주는 것은 없고, 민생의 안녕보다 더 오래 가는 복은 없다’고 하는 것이다.”(한비자 대체 29:1)
한비자가 말하는 지안지세는, ① 백성은 순박함을 잃지 않고, ② 마음으로 남과 원한을 맺지 않고, ③ 입에서는 번거로운 말을 하지 않는 사회다. 또한 무엇보다 이 사회에서는 ④ 전쟁 따위가 일어날 일이 없다. 결론적으로 지안지세의 통치는 복잡하지 않고 간략하다. ‘통치의 간략(簡略)보다 더 큰 이익을 주는 것은 없고, 민생의 안녕보다 더 오래 가는 복은 없다’는 것이 한비자가 생각하는 이상사회의 본질이다.
하지만 한비자 사상의 바탕에는 법과 법치가 깔려있다. 자연의 이치(道)에 따라 대체를 잡고 통치를 하는 대원칙은 법에 의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은 아침 이슬처럼 만물을 촉촉이 적셔”주기 때문이다. 이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한비자에게 법은 생명수 혹은 감로수와 같은 아침 이슬이다(法如朝露). 그런데 한비자가 말하는 법은 동해보복법(同害報復法)으로 불리는 ‘탈리오 법칙(lex talionis)’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이 법칙은 '피해자가 입은 피해와 같은 정도의 손해를 가해자에게 가하는 보복의 법칙'이다. 흔히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과 같이 기계적·사적 보복을 전제로 한다. 한비자로 대표되는 법가의 ‘법’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에 처하고, 사람을 상해하거나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처벌한다.” 이 말처럼 법가의 ‘법’은 현대적 의미의 ‘법’이 아니라 ‘성문법령’을 기계적으로 적용한다. 법가의 ‘법과 법치’에는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현대법의 원칙이 설 자리는 없다.
한비자는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본다. 이로 인하여 한비자의 사상에는 백성의 이익과 고통에 대한 진지한 고려와 성찰이 결여되어 있고, 오히려 백성을 배제함으로써 우민화를 초래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에게 백성은 피치자로서 통치와 지배의 대상일 뿐이다. 한비자가 꿈꾸는 세상은 ‘군주의, 군주에 의한, 군주를 위한 나라’이고, 그의 사상은 전제군주의 통치와 지배 강화를 위한 강력한 정치적 수단이다. 결국 한비자가 주장하는 법과 법치는 법을 일원화(一元化)하는 데 있다. 법의 일원화를 통하여 군주는 피치자인 백성의 사상을 통제하고 절대 군권을 확립함으로써 부강부국(富强富國)을 실현하고자 한다. 이에 대해 한비자는 말한다.
“법령이 바뀌면 이해관계가 바뀌고, 이해관계가 바뀌면 백성이 힘써야 할 일도 바뀐다. 힘써야 할 일이 바뀌는 것을 두고 업종이 바뀐다는 뜻의 변업(變業)이라고 한다. 이런 이치에 근거해 보면 사람들을 쓰면서 자주 일을 바꾸면 성공할 확률이 낮다. 큰 물건을 보관했다가 자주 자리를 옮기면 손상되는 부분이 많고, 작은 생선을 익히면서 자주 뒤집으면 윤기를 잃게 되고, 큰 나라를 다스리면서 자주 법을 바꾸면 백성들이 괴로워한다.
도를 터득한 군주는 고요함을 귀중하게 여기고, 법을 자주 바꾸는 일을 하지 않는다. 『도덕경』의 제60장에서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마치 작은 생선을 익히는 것과 같다’고 말한 이유다.”(한비자 해로 20:20)
법은 한 번 제정하여 시행했으면 자주 바꾸지 말고 일관되게 적용하라는 것이다. 한비자의 통치술의 핵심에 대해 왕충(王充)은 이렇게 요약하여 설명한다.
“한비의 통치술은 법을 밝히고 공을 숭상하는 소위 명법상공(明法尙功)이 요체이다. 현명하지만 나라에 이익이 없으면 포상하지 말고, 현명하지 못할지라도 다스림에 해를 끼치지 않으면 처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공을 따져서 상을 후하게 주고 형벌을 사용하는 것이 매우 엄격하다.”(왕충, 『논형(論衡)』 「비한(非韓)」)
왕충의 말대로 만일 한비자가 “세를 중시(貴勢)하면서도 독단에 빠지지 않았으며, 법을 숭상(尙法)하면서도 가혹한 데 이르지 않았고, 술에 맡기(任術)면서도 음모를 중시하지 않았다”면 얼마가 좋을까. 한비자는, 무릇 나라가 잘 다스려지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형벌에 의존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워낙 강하였고, “지금 사사롭게 인의를 행하는 사람이 존중받고 있다”며 유가를 신랄하게 비판하였다(한비자 궤사 45:5). 사직의 존립과 나라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강력한 힘이 필요하다며 한비자는 말한다.
“상대 국가와 비슷한 힘을 가진 나라의 통치자는 상대편이 자기 나라의 도의(道意)를 떠받든다고 해도 상대 국가를 굴복시켜 신하로 삼기 힘들다. 그러나 속국의 제후라면 비록 종주국의 통치자가 하는 일에 반대한다 해도 반드시 공물을 가지고 들어오게 할 수 있다. 이처럼 이쪽의 힘이 강하면 사람들은 이쪽으로 굽혀 들어오고, 이쪽의 힘이 약하면 이쪽에서 저쪽으로 사람을 보내 굽히게 된다. 그래서 현명한 통치자는 힘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한비자 현학 50:7)
한마디로 한비자가 꿈꾸는 지안지세는 부국강병을 기반으로 태평성대를 누리는 나라라고 할 수 있다. 한비자의 나라는 결국 병영국가로써 빅브라더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겉으로는 법과 법치를 내세우고 있지만 한비자의 나라는 패도에 바탕을 둔 전제국가로써 공포정치가 일상화된 전제주의국가이다. 이런 국가에서는 전제군주가 행사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나 세력이 형성될 수 없다. 그러니 무능한 군주나 폭군이 나오면 개인의 인권은 말살되어 형극의 고통 속에서 백성은 각자도생의 길을 택하게 된다.
한비자의 법과 법치사상을 받아들인 진시황제는 중국을 통일하는 대업을 이루지만 진(秦)나라의 통치는 15년이란 짧은 기간에 그치고 만다. 진나라를 폐하고 한(漢)나라를 세운 고조 유방(劉邦)은 진나라의 가혹한 법을 폐지하고 법을 세 조목으로 줄인 약법삼장(約法三章)을 시행한다. 이 법은,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에 처하고, 사람을 상해하거나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죄값을 받는다”는 내용으로 지극히 간단하였다. 그 이후 중국은 물론 조선왕조에 이르기까지 “겉으로는 유가를 표방하지만 안으로는 법가에 의지하여 통치한다” 외유내법(外儒內法)을 통치의 기본으로 삼았다. 결국 최상의 통치는 인의에 기반한 인정(仁政) 혹은 덕치(德治)와 술, 세, 법에 기반한 법치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10.한비자가 본 윤석열식 법치의 문제점(23-8-14)/민플러스
법치주의는 근대 입헌국가의 정치원리로써 개인의 의사를 대표하는 의회에서 만든 법률에 따르지 아니하고는 나라나 권력자가 개인의 자유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지울 수 없다는 사상을 말한다. 법치주의는 공포되고 명확하게 규정된 법에 의해 국가권력을 제한·통제함으로써 자의적인 지배를 배격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이를 위하여 법치주의는 몇 가지 원칙을 두고 있다. 이를테면,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원칙, 법은 명확하고 예측 가능해야 한다는 원칙, 법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원칙, 법은 정당한 절차에 따라 제정되고 집행되어야 한다는 원칙 등이다. 만일 법치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침해되고, 국가권력이 자의적으로 행사될 수 있다. 이 관점에서 법치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고, 국가권력을 견제·통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법치주의도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사회구조가 세분화되고 과학기술문명이 발달하면서 이를 규율하기 위한 법은 그 내용이 복잡할 뿐 아니라 개수도 늘어나고 있어 개인이 관련 법을 이해하기 어려워 법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다.
둘째, 아무리 시대의 추세를 반영하여 법을 제정한다고 할지라도 법이 현실의 변화에 따라 적절하게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
셋째, 국가권력의 자의적인 행사를 막기 위한 장치가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법치주의가 가진 한계다.
국가권력의 자의적 행사는 여러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법을 위반하여 국가권력을 행사하거나 법을 제대로 집행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국가권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결국 법치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법에 대한 이해와 법을 준수하려는 의지도 필요하지만 개인이 국가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민주적 통제가 행사되어야 한다.
그 통제의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입법부·사법부·행정부 간의 삼권분립이 이뤄져야 하며, 언론의 자유를 비롯한 개인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법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처럼 법치주의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토대이지만 현실에서 법치주의를 제대로 운용하기란 여간 까다로운 제도가 아니다. 또한 법치주의를 내세워 국가권력의 자의적 행사로 개인의 기본적 인권이 침해되는 경우, 이를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기도 하다. 법치주의는 국가권력자와 개인 서로가 자신의 권력 혹은 권리를 지키는 창과 방패의 역할을 하는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법치주의를 제대로 시행하는 것은 많은 노력이 필요한데, 춘추전국시대 법가의 사상에서 법치주의의 원형을 찾을 수 있다.
법가의 법치주의는 사람의 본성을 악하다고 생각하여 덕치주의를 배격하고 법률로써 백성을 다스려야 한다는 사상이다. 법가를 대표하는 한비자는 상앙·신불해·신도가 주장한 법술세(法術勢)에 의거하여 국가통치의 기본 이론으로 법치주의를 주장하였다. 한비자는 법치주의를 통해 정치사회적 혼란을 극복하고 강력한 국가를 세우고자 했다. 한비자의 법치주의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한비자는 모든 사람이 법 앞에 평등하며, 법은 국가의 최고 권력이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법 앞에 평등’은 오늘날 민주국가의 법치주의가 말하는 의미와는 전적으로 다르다. 한비자의 법치주의는 군주를 위한 것이며, 법은 군주의 통치와 지배를 위한 강력한 수단으로 간주된다. 군주는 법을 손아귀에 틀어쥐고 권세에 의지하여 백성을 통제한다. ‘법 앞에 평등’은 군주를 정점으로 한 수직적·위계적 서열 중심의 신분제를 넘어설 수 없다. 그가 말하는 ‘법 앞에 평등’은 신분제의 범위 안에서 가능한 것이므로 결국 백성들은 ‘법 앞에 불평등’할 수밖에 없다.
둘째, 한비자는 법을 위반하는 자에 대한 처벌은 엄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형벌로써 형벌을 없앤다”는 상앙의 이형거형을 법치주의의 근본으로 삼아 공과에 따라 신상필벌을 적용하였다. 한비자는 법을 엄격하게 집행하여 범죄를 예방하고,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엄격한 처벌을 통해 재범을 방지함으로써 결국 형벌이 필요 없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였다. 형벌을 엄격하게 집행하면 일시적으로는 범죄가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범죄의 예방효과가 있다고는 단정할 수 없으며, 반대로 형벌이 너무 엄격하면 오히려 범죄를 조장하여 새로운 범죄를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셋째, 한비자는 법치주의를 실시함으로써 국가의 통치를 위해 효율적인 관료제를 정비하고, 능력에 따라 인재를 등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군주가 신하를 다스리는 제신술로 7술6미와 세 가지 치신술(3治)을 제안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술책을 쓰기 위하여 군주는 신하들 앞에서 감정의 호오를 드러내지 않아야 하고, 그들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감시해야 한다. 인재의 등용에 대해서도 한비자는 유가와 묵가의 선비들을 다섯 마리 좀벌레를 뜻하는 오두라 부르며 그들을 신뢰하지 않았다. 군주가 인재를 등용하고 그들을 통제하는 방식은 신상필벌이다. 이 권한은 오로지 군주만이 사용할 수 있다. 군주는 이 권한을 이용하여 신상필벌을 신하의 통제 수단으로 활용한다.
한비자의 법치주의는 엄형주의 혹은 엄벌주의에 의거한 법률만능주의라고 할 수 있다. 한비자의 주된 관심은 국가보다는 군주 1인에 대한 권력의 집중에 있었다. 오늘날 그의 법치사상을 그대로 수용하기에는 문제가 적지 않다. 그러나 한비자의 법치주의에 대한 위와 같은 비판적 견해와는 달리 현대적 의미에서 그의 사상을 새로운 관점에서 평가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공자를 위시한 유가가 주나라의 종법을 중심으로 한 복고주의적 경향이 강한 반면, 법가는 당시의 혼란한 사회 현실을 직시하고 새로운 규범을 틀을 찾고자 하였다는 것이다. 한비자가 법을 중시하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라고 보고 있다. 후자의 관점에서 한비자의 법치주의를 긍정적으로 보고 현대법을 적용하여 재해석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필자는 전자의 입장에서 한비자의 법치주의를 비판적으로 본다. 아래에서는 특히 현대 인권의 관점에서 한비자가 주장하는 법치주의의 문제점을 검토하기로 한다. 이에 비추어 윤석열이 행사하는 정치권력의 위험성과 그 한계를 평가한다.
1. 한비자의 법치는 ‘법의 지배(rule of law)’가 아니라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이다
법치주의는 법이 국가와 사회의 모든 구성원을 규율하고, 국가 권력은 법에 따라 행사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말한다. 법은 법치주의의 기초가 되는 것으로, 법치주의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법이 공정하고 정의로워야 한다. 또한 법은 모든 국민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하고, 누구도 법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법과 법치는 인간사회나 국가체제를 유지하는 데 필요불가결한 수단이다.
법치주의는 영미법상 법의 지배(rule of law)를 말한다. 문제는 법치주의와 법의 지배가 자꾸 형식적 제도 내지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경향이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치권력자들은 법적 안정성을 이유로 법치주의를 내세워 법의 지배가 아니라 rule by law, 즉 ‘법에 의한 지배’ 체제를 구축함으로써 국가 공권력 행사의 법적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한다. 이러한 경향은 법치주의가 위협받고 있는 주된 이유이다.
법의 지배와 법에 의한 지배는 본질적인 면에서 차이가 있다. 첫째, 법의 지배는 법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을 강조한다. 반면, 법에 의한 지배는 권력이 있는 자가 법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둘째, 법의 지배는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 원칙이다. 반면, 법에 의한 지배는 권력자의 자의적인 통치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법 앞에서 평등하고, 누구나 법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법에 의한 지배가 아니라 법의 지배가 필요하다. 법의 지배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법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되고, 권력이 있는 자가 법을 자의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법치주의에 관한 기본 원칙에서 바라보면, 한비자의 법치는 법의 지배가 아니라 법에 의한 지배이다. 그에게 법과 법치는 군주의 절대정치권력 확보를 위한 것이며, 신하와 백성을 지배하고 통치하기 위한 수단이다. 군주는 법을 소유하고, 법 위에 군림하여 법치를 적용하여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다. 오늘날 민주주의 사회에서 확립된 법치주의의 일반원칙에 따르면, 법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되고, 아무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 하지만 한비자의 법치주의는 권력이 있는 자가 법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행사하는 것이 정당화된다. 그가 말하는 법치주의는 법과 정의의 지배가 아니라 사람에 의한 자의적 지배를 의미하는 ‘인치주의(人治主義)와 힘에 의한 지배를 정당화하는 ’정치주의(政治主義) 또는 ‘권력정치(權力政治)를 말한다. 이처럼 한비자는 절대권력자의 자의적인 통치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법에 의한 지배로 법치주의를 사용하는 것을 적극 지지한다.
한비자의 법치주의에 대한 위의 비판은 윤석열 정부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법학을 처음 대하는 학생들을 가르칠 때 법치주의는 ‘법이 지배’, 즉 ‘rule of law’가 되어야지 ‘법의 의한 지배’, 즉 ‘rule by law’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누누이 강조한다. <법치주의=법의 지배>라는 것은 법학도는 물론 법률가에게 상식에 속한다. 그런데 검수완박법에 대한 권한쟁의심판 청구서에서 법무부가 “법치주의는 법에 의한(rule by law) 통치를 의미하는 개념”이라고 공식적으로 표명한 것은 여간 우려스럽지 않다. 이는 마치 한비자가 국가통치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법을 통해 백성들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한 것과 다르지 않다. 한비자는 법과 법치를 확립하여 모든 권한을 군주에게 귀속시킴으로써 강력한 전제군주체제를 구축하고자 하였다.
실제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검사나 검찰 수사관 등 전·현직 검찰공무원이 136명이나 들어가 활동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겨레21>이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에서 입수한 자료를 보면, 2022년 5월 10일부터 2023년 3월 16일까지 전·현직 검사는 117명, 전·현직 검찰공무원은 19명이다. 이들이 윤석열 정부에서 맡은 역할을 분류해보면, 선출직과 임명직 공무원이 24명, 법무부 외 국가기관 파견이 57명, 법무부 파견이 55명이다. 이 중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권영세 통일부 장관, 한동훈 법무부 장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이 검사 출신이다. 가히 ‘검찰공화국’이란 말이 빈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2022년 6월 8일 출근길 인터뷰에서 “검찰 출신 편중 인사가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윤석열은 “그게 법치주의국가 아니겠습니까?”라며 답변한다. 그에게는 법률가 중에서도 오직 ‘검사만’이 능력 있고 믿을 수 있는 인재들이다. 한마디로 조직에 충성하는 능력 있는 검사 외에는 아무리 현명한 사람이라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윤석열의 이 생각은 한비자와 전적으로 일치한다. 한비자에 따르면, 법적 판단능력을 갖추지 않은 사람은 우연적 요소가 너무 강하고 위험하기 때문에 현명한 사람보다는 능력 있는 사람을 써야 한다.
한비자는 학자, 유세객, 협객, 정객 및 상공인과 같은 다섯 가지 부류는 나라의 기둥을 좀먹는 두충과 같은 존재라며 ‘다섯 마리 좀벌레’라는 뜻에서 ‘오두(五蠹)’라 부른다. 이 다섯 가지 두충과 같은 자들을 제거하지 않고는 그냥 둬서는 나라와 조정이 망하지 않을 수 없다며 ‘오두’에 속하는 집단에 대해 노골적인 적개심을 드러내고 있다.
윤석열에게 ‘자유민주주의’를 저해하고 음해하는 세력은 모두 좀벌레와 같은‘반국가세력’이다. 그 세력의 중심에 ‘현명한 사람’으로 대표되는 학자가 있다. 한비자에게 학자란 “선왕의 도를 칭송하며 입만 열면 인의를 떠벌이고, 용모나 복장을 융성하게 하고는 입으로 변설을 꾸며대고, 당대의 법을 의심케 만들어 군주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부류이다.”비록 유가의 선비를 비판했다고는 하나 학자에 대한 한비자의 비판은 독설에 가깝다.
윤석열 정부에서 장관으로 임명된 학자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소위 ‘교수 출신’ 장관들은 임명 과정에서부터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거나 무리한 정책 추진으로 실각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초대 교육부장관으로 임명된 서울대 교육학과 박순애 교수는 음주운전과 논문 중복 게재, 갑질 의혹 등 자질 논란 속에도 임명이 강행되었다. 하지만 만 5세 입학이라는 졸속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하려다 결국 장관 취임 한 달 만에 사임하였다.
박순애 교수의 후임으로 임명된 이주호 교육부장관도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출신이다. 그는 교과서 진화론을 삭제하고, 임용시험을 폐지하고 교대와 사대를 로스쿨식 전문대학원으로 전환하겠다며 논란을 일으켰으며, 장관 보좌관에 현직 검사를 임명하였다. 심지어 2023학년도 수능을 5개월 남겨놓고 대통령실의 소위 ‘킬러문항 배제’ 지시를 수행함으로써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인 김영호 통일부장관 후보자(2023.7.5. 기준)에 대한 시민단체의 비판도 거세다. 김영호는 ‘녹두서평 사건’의 당사자다. 1987년 3월 25일 발간된 사회과학전문 부정기 간행물인 『녹두서평』 1집에 제주 4.3사건을 다룬 이산하의 장편 서사시 「한라산」이 게재된다. 검찰은 녹두출판사 발행인 김영호와 전무 신형직에게 국가보안법 위반죄를 적용하여 각각 징역 7년과 자격정지 7년과 징역 4년과 자격정지 4년을 구형했다. 그러나 이후 김영호는 정치이념적으로 뉴라이트로 완전 변신한다. 북한을 같은 민족이라 볼 수 없다며 북한체제를 파괴해야 한다는 발언을 서슴치 않았으며, 2018년 강제동원 징용판결을 내린 대법관들이 반일종족주의에 사로잡혀 있다고 비판하였다.
한비자가 보기에 백성은 실로 권세에 복종하고, 권세는 실로 사람을 복종시킨다. 또한 백성은 본래 권세에 복종하지만 의로움을 품고 따르는 사람은 적다. 공자와 노나라 애공 두 인물을 비교하면서 한비자는 이렇게 말한다.
“만일 의를 기준으로 했다면 공자는 노애공에게 복종하지 않았을 것이다. 권세에 의지했기에 노애공도 공자를 신하로 삼을 수 있었다.”
공자는 노애공의 의(義)에 감복한 게 아니라 그의 권세에 복종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한비자 오두 49:6). 이것이 공자가 신하가 되고, 노애공이 군주가 된 이유이다.
위 사례에서 보듯이 윤석열은 대통령이 가진 권세의 위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교수들 가운데는 학자를 천직으로 여기지 않고 권력의 달콤한 맛을 탐닉하는 부류가 적지 않다. 몸은 연구실에 있어도 마음은 늘 대통령실을 향해 있다. 불나방처럼 자신의 몸이 타는 지도 모르고 교수들은 대통령이 손짓하면 한걸음에 달려가 ‘주권에 대한 절대 충성 서약’을 한다. 맹자는 사이비 지식인 학자인 ‘향원(鄕原)’을 ‘덕의 적(德賊)이라며 신랄하게 비판한다. 맹자가 보기에 대인군자는 물론이고 광자(狂者)나 견자(狷者)와 같은 중간 부류의 지식인은 적어도 권세에 초연하거나 구차하게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문제는 이들을 빼고 나면 향원밖에 남지 않는 현실에 있다.
“내 문 앞을 지나면서 내 집에 들어오지 않더라도 내가 유감으로 여기지 않을 자는 오직 향원이로다!”
이 나라 이 땅의 지식인들은 향원덕적(鄕原德賊)’이라는 맹자의 질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아무리 권력이 맛이 달콤한들 지식인 학자라면 ‘주인의 충직한 개’로 살아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2. 한비자의 법치는 전제군주를 위한 것이다
한비자는 패왕(霸王)을 이상적인 군주로 본다. 패왕이란 패도(霸道)와 왕도(王道)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패왕은 법과 법치를 통해 확립한 무소불위의 권력과 권능을 바탕으로 절대 권력을 행사한다. 어떤 생각으로 어떤 정치를 펴는가에 따라 패왕은 왕도를 실현하는 왕자(王者) 혹은 패도를 실현하는 패자(霸者)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한비자가 꿈꾸는 사회는 종국적으로는 패자에 의한 전제주의 혹은 전체주의로 독재체제이다. 이 체제에서는 군주가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백성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한다. 군주는 폭력과 공포를 사용하여 모든 영역에서 백성의 삶을 통제하고 기본적 자유와 권리를 제한한다.
한비자는 패왕이 되기 위해서는 법치주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가 법치주의를 확립하기 위하여 신상필벌과 엄벌주의를 강조하는 이유도, 패왕이 강력한 통치 지배를 구축함으로써 사회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한비자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현실에서 이기적인 인간의 악행을 막을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다. 이를 위해 그는 군주에게 법률을 제정하고 시행할 수 있는 독점적 권한을 부여하여 법의 위반 여부에 따라 벌과 상이라는 대가(신상필벌)룰 확실하게 실시하면 된다고 보았다. 만일 제정된 법과 이를 추동할 수 있는 강력한 힘만 있으면 군주의 능력이나 도덕성 여부는 문제 삼지 않았다.
춘추전국시대의 혼란한 정치상황을 고려해 볼 때 패왕을 옹립하고 강력한 법과 법치를 시행해야 한다는 한비자의 주장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실제 한비자의 법과 법치사상은 진시황의 통치에 큰 영향을 미쳤다. 진시황은 한비자의 사상을 바탕으로 중국을 통일하고 강력한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한비자의 사상을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다. 그가 말하는 패왕은 독재자이며, 법에 의한 지배를 통한 법치주의는 백성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패왕으로서 진시황은 중국통일이라는 대업을 이루었지만 진나라는 15년이란 짧은 기간 존속하고 결국 멸망하고 말았다. 비단 진나라의 사례뿐만 아니라 인류의 역사를 통하여 드러난 분명한 사실이 있다. 독재자는 인민의 이익을 위해 일하지 않고 그들의 기본적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고 억압함으로써 결국 인민을 위험에 빠뜨리고 만다는 것이다. 법을 어기는 사람을 엄하게 처벌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는 한비자의 법치사상은 오히려 법의 공정성을 해치고,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의 권력 남용으로 법의 엄정한 집행을 저해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할 수 있다.
한비자가 법과 법치를 내세워 국가 통치의 근본으로 삼았다면, 묵자는 법의(法儀)를 주장한다. 법의란 ‘천하의 모든 사람이 일을 할 때 본받을 표준 내지는 법도’를 말한다(묵자 제4편 법의). 묵자는, “선비가 장군이나 재상이 되어도 따라야 할 법도가 있고, 모든 공인이 일을 함에도 모두 본이 되는 법도가 있다”며 이렇게 말한다.
“모든 공인들은 곱자가 있어 모를 만들고, 그림쇠가 있어 원을 만들며, 먹줄을 표준으로 곧게 하고, 매달린 추를 표준으로 수직을 세우며, 물을 표준으로 수평을 만든다.”(묵자 제4편 법의)
이렇게 다섯 가지 표준을 법도로 만들어 두면, 정교한 공인이나 미숙한 공인이나 할 것 없이 표준에 비슷하게나마 본떠서 일을 할 수 있어 법도를 표준으로 하지 않은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것이다. 이 원리는 통치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법도에 따라 나라와 천하를 다스리면 서로 두루 사랑하는 정치를 베풀 수 있다.
그러면 무엇으로 다스리는 법도를 삼아야 옳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면서 묵자는 어질지 못한 부모와 스승은 물론 군주도 법도로 삼지 말라며 단호한 입장을 보인다. 묵자가 내세우는 반대의 이유는 분명하다. 만약 어질지 못한 군주를 법도로 삼는다면, 이 법도는 어질지 못할 것이니 어질지 못한 법도는 법도로 삼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묵자는 어질지 못한 부모와 스승과 군주는 다스리는 법도로 삼을 수 없다고 말한다(묵자 제4편 법의).
묵자의 이 말은 맹자의 폭군방법론(暴君放伐論)과 일맥상통한다. 맹자가 생각하는 왕도정치란 기본적으로 덕(德)을 갖춘 사람에 의해 정치가 행해지는 덕치(德治)이다. 이 때 덕(德)을 갖춘 사람이란 하늘과 백성의 승인을 받은 천자를 말한다. 천자는 하늘과 백성의 뜻에 따라 인정(仁政)을 베풀어야 하며, 또한 덕(德)과 의(義)에 의거한 도덕적 실천에 자발적으로 귀의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 왕도정치를 하면 누구나 천자가 될 수 있으나 반대로 왕도정치를 하지 않는 천자는 언제나 방벌(放伐)할 수 있다. 맹자가 제시한 왕도정치는 그 후 군주가 공평하고 사사로움이 없는 태도로 정치를 운영해 이상적 사회를 수립하는 것을 의미하는 유교의 대표적 정치사상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왕도정치의 반대되는 개념이 패도정치(覇道政治)이다. 패도정치는 인의를 가볍게 여기고 무력이나 권모술수로 천하를 다스리는 정치로 폭력과 정치적 기만을 수단한다. 따라서 무력을 바탕으로 인(仁)를 가장하는 것이 패도(覇道)이고, 덕(德)을 바탕으로 인(仁)을 실천하는 것이 왕도(王道)이다. 통치자는 이익(利)의 추구보다는 인의(仁義)의 실현에 힘써야 한다. 양자의 차이에 대해 맹자는 이렇게 말한다.
“힘으로 정치를 하면서 인(仁)을 가장하는 것을 패도정치가 하는데, 패도정치는 반드시 강대한 국력에 의지해야 하고, 덕(德)으로 인자한 정치를 펴는 것을 왕도정치라 하는데, 왕도정치는 강대한 국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맹자 공손추장구 상 3:3)
맹자는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지 않는 임금이 천하를 통일할 수 있다”(맹자 양혜왕장구 상 1:6)고 하면서 “어진 사람에게는 천하에 적이 없다”(맹자 양혜왕장구 상 1:5)는 인자무적(仁者無敵)을 주장하였다.
검사 출신답게 윤석열은 법과 법치를 활용하는데 능숙하다. 이 관점에서 그의 통치 스타일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첫째, 윤석열은 상대를 공격할 때 반드시 법을 앞세운다. 법치라는 이름으로 법을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한다. 그가 보기에 특히 전 정부와 야당, 노동조합, 시민단체, 사교육계 등은 잠재적 범죄 집단이다. 압수수색으로 원하는 것이 나올 때까지 털고, 관련자를 소환하여 조사하고, 법원에서 기각되든 말든 일단 구속영장을 청구한다. 법이 가진 권위에 약한 사람들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하여 법을 억압과 탄압의 수단으로 적극 활용한다.
둘째, 윤석열은 전 부처의 검찰화를 통해 사정 만능 통치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검찰과 감사원, 국세청, 국가정보원 등 사정 및 정보기관을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전위대로 동원한다. 또한 한동훈 법무부장관을 비롯하여 정부부처에 검찰 출신들을 대거 기용하여 대통령을 중심으로 검사동일체에 따른 상명하복식 ‘1인친정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사정·정보기관과 검찰조직이란 전위대의 보호를 받는 윤석열은 문재인 전 대통령을 ‘반국가세력’이라고 공격하는 행태를 서슴지 않는다.
셋째, 윤석열은 자유를 말하면서도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인 대화와 소통에는 관심 없다.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고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옮길 때도 시민과의 대화와 소통을 그 이유로 내세웠다. 출근길질의응답(도어스테핑)도 동일한 이유로 야심차게 시작했지만 잦은 실언으로 문제가 생기자 슬그머니 중단했다. 심지어 야당인 민주당 대표 이재명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그가 성남시장 재임 당시 대장동 개발사업과 관련해 수사를 받고 있다는 이유로 만나지 않고 있다. 윤석열에게 야당은 ‘국정 발목을 잡는 세력’에 지나지 않는 지도 모른다. 실제 윤석열은 야당과의 대화와 소통을 통해 얽히고설킨 국정을 풀어가려는 생각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윤석열의 관심은 사정기관과 검찰조직의 확대를 통해 한국사회의 모든 적폐와 거악을 일소하는데 있다. 규제를 없앤다면서 새로운 규제를 만들고, 시행령으로 통치를 하고,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새로운 정책을 만들고 법령을 선포한다. 집권 1년이 갓 지났을 뿐인데도 시민들은 벌써 지치고 피로감에 절어있다. 수시로 압수수색과 소환조사를 하니 사람들은 합법을 가장한 공포와 두려움에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떨고 있다. 법과 법치의 이름 아래 ‘공포정치’가 짓누르고 있는 현재의 한국사회의 모습이 낯설기조차 하다. 일체의 대화와 소통 없이 모든 정책을 사건화하고 수사와 기소의 칼날을 들이대는 윤석열 정부에게 묻고 싶다. “그래서 뭘 어찌하겠다는 말인가?” 그대들에게 노자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
“세상에 규제가 많을수록 백성은 더욱 가난해지고, 백성에게 날카로운 도구가 많을수록 나라는 더욱 혼란에 빠지며, 사람들이 기교를 부리면 부릴수록 사악한 일이 연속해 일어나고, 법령이 선포되면 될수록 도둑이 더욱 들끓는다.
그러므로 성인이 말했다. 내가 무위하면 백성은 스스로 감화되고, 내가 고요히 있는 것을 좋아하면 백성이 스스로 바르게 되며, 내가 일부러 행하지 않으면 백성은 저절로 부유해지고, 내가 욕심을 내지 않으면 백성은 스스로 다듬지 않은 통나무처럼 순박하게 된다.”(도덕경 제57장)
노자의 이 말을 오늘날의 언어로 풀어쓰면 다음과 같은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대통령은 무위의 정치로 세상을 다스려야 한다. 무위의 정치란 그 마음을 비우고 배를 채우며, 그 뜻을 무르게 하되 뼈는 단단하게 하는 다스림을 말한다. 이와 같은 통치 방식은 백성들이 쓸데없는 욕심을 버리도록 하며(無欲),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는 자(智者)들이 감히 나서지 못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는 자들’이란 현실에서 잘나고 능력 있다고 뻐기고 뽐내는 자들이다. 이들은 욕심이 많고, 공명심이 높으며 남들과 다투고 경쟁하려는 마음이 강하다. 만일 대통령이 그들을 우대하면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끼쳐 사람들은 욕심을 내어 남을 해쳐서라도 앞서려하게 된다.”(도덕경 제3장)
노자가 말하듯 절대권력자는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는 자들’을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노자의 경고와는 달리 윤석열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정부부처의 장차관은 물론 대통령실과 산하기관을 온통 욕심 많고, 공명심이 높고, 뻐기고 뽐내는 자들로 채우고 있다. 윤석열은 ‘검찰(사)독재’의 유혹에 빠져 대한민국을‘검찰공화국’으로 만들려는 헛된 꿈을 버려야 한다. 무엇보다 법과 법치를 내세워 자신의 절대권력과 지배체제를 구축함으로써 제왕이 되려는 야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백성을 아끼고 나라를 다스리는 데 무위로써 할 수 있는가?”(도덕경 제10장)
이 질문에 대해 노자가 말한다.
“만약 임금이 도를 지킬 수 있다면 만물은 그를 따를 것이다. 하늘과 땅이 서로 화합해서 달콤한 이슬이 내리듯이 백성들은 명령이 없어도 스스로 제자리에 알맞게 살아간다.”(도덕경 제32장)
‘등 따습고 배부르면’ 백성들은 정치지도자가 누군지 별로 관심이 없다. 하지만 정치지도자가 절대 잊어서는 안될 것이 있다. 지도자는 자신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불신하며, 선정을 베풀어도 너무나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는 백성을 두려워해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3. 한비자의 법치는 엄벌주의 혹은 엄형주의이다
한비자는 법을 통해 사회를 질서 있게 유지하고 범죄를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엄격한 형벌을 통해 범죄를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비자의 엄벌주의 혹은 엄형주의는 법은 가볍게 사용해서는 안 되며, 범죄는 엄격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한비자는 엄벌주의를 바탕으로 강력한 법치주의를 확립함으로써 절대군주에 의한 통치와 지배수단으로 활용하였다. 또한 그의 엄벌주의는 상벌과 공죄(功罪)를 따져(刑名) 상벌을 내림(參同)를 내린다는 형명참동(刑名參同)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다. 즉, 엄벌주의와 형명참동은 한비자가 주장하는 법치주의의 두 축을 이루고 있다. 형명참동에 의해 신분의 높고 낮음을 떠나 공이 있으면 상을 주고, 잘못이 있으면 반드시 벌을 내리면, 군주는 절대적인 지배 권력을 확립하고 손쉽게 통치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비자의 엄벌주의는 매우 혁신적인 생각이었지만 당시에도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그의 엄벌주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고, 실제 많은 국가에서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엄격한 형벌을 사용하고 있다. 엄벌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에 따르면, 엄격한 형벌은 범죄를 예방함으로써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범죄자의 재범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엄벌주의는 범죄를 저지를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형벌을 가하는 제도로써 인권 침해의 우려가 상당히 높다. 또한 엄격한 형벌이 범죄를 예방하거나 범죄율을 낮추는 데 효과적이지 않으며, 범죄자를 사회에서 고립시킬 뿐 아니라 범죄의 근본 원인을 해결할 수 없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엄벌주의의 전형적인 사례로 사형제를 들 수 있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에는 사형제를 두고 라파엘, 변호사, 추기경이 대화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본다.
라파엘은 자신이 묘사하는 유토피아의 절도 처벌정책이 온건하고 실용적임을 설명하며, “형벌의 목적이 악덕을 타파하고, 사람을 구제하자는 것”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결국 라파엘은 범죄자들로 하여금 정직의 필요성을 깨닫고 남은 생애 동안 자신이 지은 죄를 보상하면서 살아가도록 대우하고자 한다. 유토피아의 이 형벌제도에 “순종하는 품행”을 가진 노예들은 사면을 받지만 반항하는 노예들은 채찍질을 당하거나 사형에 처해지게 된다. 유토피아의 절도범 처벌제도에 대해 설명하고 나서 라파엘과 변호사, 그리고 추기경의 이어지는 대화에서 우리는 절도죄를 비롯하여 중범죄를 저지른 범죄인에 대해 사형을 집행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의 차이를 볼 수 있다.
라파엘: 나는 이 제도가 채택될 수 없는 이유를 모르겠고, 잉글랜드에서도 이런 제도를 채택하면 나의 법조계 적대자가 그토록 칭송했던 ‘정의’보다 훨씬 더 큰 이점이 있을 것이다.
변호사: 그러한 제도를 잉글랜드가 채택했다가는 나라 전체가 심각한 위험에 빠질 것이라고 하더군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얼굴을 찡그리며 그는 입을 다문다.)
추기경: 아직까지는 아무도 이 안을 시도해 본 적이 없으니 이것의 효과 여부를 추측하기는 어렵겠소. 그러나 어느 절도범에게 사형이 언도되었을 때 국왕이 사형수에게 비호권 없이 일정 기간 동안 집행을 유예해 줄 수도 있으니 그 기간을 이용해서 이 안을 시험해 봅시다. 효력이 있으면 국왕은 이를 법으로 제정하고, 없으면 그 사형수를 즉시 처형하면 되고, 이렇게 하면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이 진작 처형되지 않았던 것보다 더 불편할 것도 없고 불법적이지 않으면서도 이 시험으로 인한 피해는 전혀 없어요. 내 생각에는 유랑민들 문제도 이 방식으로 대처해 볼 수 있지 않나 싶소. 그 사람들에 관한 법도 많이 통과시켰지만 아직까지는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했으니까.
추기경의 말 가운데 “국왕이 사형수에게 비호권 없이 일정 기간 동안 집행을 유예해”주는 방안은 이를테면, 사형제는 유지하되 실제로 사형집행은 유예함으로써 사형제 존속과 폐지의 영향을 평가해보자는 것이다. 이를 현대적 제도로 표현하면 사형제는 유지하되 사형 집행은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국제사면위원회(국제앰네스티)는 10년 이상 사형을 집행하지 않으면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한다. 2018년 말 기준으로 모든 범죄에 대해 사형제를 법적으로 폐지한 국가는 106개국이고, 법적 또는 실질적 사형 폐지국은 142개국이다. 우리나라는 후자에 속하는데, 1997년 12월 30일 사형수 23명에게 사형을 집행한 이래 더 이상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사형제도 존폐론을 둘러싸고 여전히 논의는 진행 중이다. 사형제도 폐지론자들은 주로 다음과 같은 이유로 사형제를 반대하고 있다.
① 인간의 생존권은 불가침의 것으로 국가가 인간의 귀중한 생명을 박탈할 수 없다(인도주의적 관점).
② 사형은 인간의 생명을 박탈하는 것으로서 회복불가능하기 때문에 오판의 가능성이 만에 하나라도 있다면 인정될 수 없다(오판의 가능성).
③ 사형은 극형이고 무거운 형벌이다. 따라서 사형에 처해진다는 공포심이 발생하고 이로써 범죄 억지력이 있다고 믿고 있을 뿐이지 사실상 범죄 억지력이 있느냐 하는 점은 의문점이 많고, 확실한 증거도 없다(범죄 억지력 없음).
④ 국가의 가해자에 대한 사형집행이 피해자 가족에게 응보적인 감정적 만족을 줄지는 모르지만 피해자와 가해자 양측의 가족 모두를 경제적 궁핍과 결손 가정에 빠지게 하여 범죄 원인을 양성케 하는 두 가지 부정적 결과를 초래한다. 따라서 사형제도는 범죄인의 생명박탈에만 몰두하고 피해자 구제는 전혀 고려치 않고 있다(피해보상 차원).
폐지론자들의 위 주장은 사형존치론자들이 내세우는 반대 논거이기도 하다. 하지만 존치론자들이 사형제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하는 주장의 핵심은 아무리 흉악한 살인자라 할지라도 누구나 죽음에 대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으므로 사형은 범죄를 사전에 예방하고 억지하는 효과가 있다고 보는 데 있다.
사형제에 대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2019년 6월 14일 리얼미터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1.7%가 사형집행에 찬성하고 있고, 37.95%는 반대하고 있다. 그리고 7.8%는 사형제도 자체를 폐지해야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로서는 사형집행 찬성 여론이 사형제도 폐지 또는 집행 반대 여론보다 오차 범위 내에서 앞서고 있는 셈이다.
사형제 존폐론의 핵심은 사형이 과연 범죄예방효과가 있는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고유정 전 남편 살해사건’을 비롯하여 최근에도 끔찍한 살인사건이 일어나 사회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위 여론조사는 살인과 같은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인을 사형으로 처벌해야 하고, 사형제를 없애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일반인들의 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법적으로 사형제를 폐지한 국가가 이미 106개국이며, 법적 또는 실질적 사형 폐지국이 142개국에 이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사형제에 관한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 쿠미 나이두의 말을 가슴에 새겨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모두 안전한 세상에서 살기를 원하지만 사형제는 결코 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전 세계적 지지를 통해 우리는 사형제의 완전한 폐지를 이루어낼 수 있으며, 또한 이루어낼 것이다.”
사형제 존폐론에 관한 논의에서 알 수 있듯이 엄벌주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주제이다. 엄벌주의를 범죄 예방의 중요한 수단으로 사용하려면 인권 침해의 가능성과 사회 통합을 고려하여 적절하게 적용해야 한다.
지난 1년간 국정운영의 행태를 보면, 윤석열 정부는 확실하게 엄벌주의를 바탕으로 강력한 법치주의를 실시하겠다는 기조를 확고히 정립한 것 같다. 노동조합정책을 그 예로 들면, 윤석열 정부는 노동조합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 등 노동3권을 제한하겠다는 방침을 정하고 집회와 시위에 경찰력을 동원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노동조합이 기업의 경쟁력을 제한하고, 파업이 사회불안을 조장하기 때문에 그 권한을 제한해야 한다”는 기본인식을 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 5월 1일 노동절날 민주노총 건설노조 양회동 강원지부 3지대장이 분식하여 하루 만에 숨지는 불행한 일이 일어났다. 양씨는 유서에서 “억울하고 창피하다. 정당한 노조 활동을 한 것뿐인데 윤석열 검찰 독재정치의 제물이 되어 지지율을 올리는 데 많은 사람이 죽어야 하고, 죄 없이 구속돼야 한다”며 “무고하게 구속된 분들 제발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윤석열 정부는 건설노동조합을 마치 불법행위를 일삼는 조폭으로 간주하고 ‘건폭’이라며 단속과 수사를 강화했다. 이 정부와 야당이 보기에 노동조합이 활성화되면, 노동자들의 삶이 향상되고, 사회가 안정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듯하다. 도대체 사회통합을 위해 앞장서 노력하고 헌신해야 할 대통령이 노조를 조폭에 비유하고는 범죄단체로 몰아가고, 공개적으로 노조 혐오 발언을 하는 현재의 한국사회의 상황은 위험하기 그지없다.
현실에서 시민들이 바라는 대통령상은 무엇일까? 대통령이‘선정을 베푸는 가장 훌륭한 단계의 정치지도자’라 할지라도 그의 존재만을 겨우 아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다. 그 다음은 친근감을 느끼고 그를 칭찬하며, 그 다음은 그를 두려워한다. 가장 형편없는 대통령이라면 시민들은 그를 업신여긴다. 어디 이뿐인가? 거기에 더하여 진실하지 못하면 시민들은 대통령을 믿지 않는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행을 신중히 하여 공을 이루고 일을 성취해도 시민들은 ”우리는 본래 이랬어“라고 당연한 듯이 받아들인다. 정치지도자인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런 정치지도자에게 노자는 겸손하라며 이렇게 말한다.
“강과 바다가 온갖 계곡의 왕이 될 수 있는 까닭은 가장 낮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계곡의 왕이 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백성 위에 있기를 바란다면 반드시 말로써 자신을 낮춰야 하고, 백성들 앞에 서고 싶으면 반드시 자신을 뒤로해야 한다. 이로써 성인은 위에 있어도 백성들이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앞에 있어도 백성들이 방해된다고 여기지 않는다.”(도덕경 제66장)
한마디로 백성들이 통치자의 위엄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진실로 큰 위엄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통치자는 백성들의 삶의 터전을 억누르지 말 것이며, 그 삶을 힘들게 하지 말아야 한다. 힘들게 하지 않아야 백성들이 통치자를 미워하지 않는다(도덕경 제72장).
노동조합을 시작으로 언론, 시민단체, 대학을 비롯하여 집회시위에 이르기까지 이 정부가 개입하고 그들의 권리를 탄압하지 않는 분야가 없다. 대통령이 시민들의 삶을 걱정해야 하는데, 오히려 시민들이 이번에는 대통령이 무슨 말과 행동을 할까 불안해하는 형국이다. 제발 부탁하건대 윤석열 대통령은 시민들의 삶의 터전을 억누르지 말 것이며, 그 삶을 힘들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순자는 말한다.
“전하는 말에 ‘임금은 배요,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집어엎기도 한다’ 하였는데, 이것을 뜻하는 말이다.”(순자 왕제 9:4)
군주민수(君舟民水)로 잘 알려진 이 말은 ‘임금은 배, 백성은 물’이라는 뜻이다. 배를 띄우는 것은 물이지만 그 배를 뒤집어엎는 것도 물이다. 백성은 거대한 강물이나 거친 파도와 같으니 배와 같은 군주를 권좌에 세울 수도 있고, 반대로 끌어내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모름지기 군주는 백성을 아끼고 위하는 민본정치를 펴야 한다.
11.윤석열이 원하는 나라, 우리가 원하는 나라 아냐(23-8-15)/민플러스
윤석열 대통령은 어떤 나라를 꿈꾸고 있을까?
대선 후보 시절부터 그는 “대한민국을 공정과 상식의 나라로 만들겠다”는 소신을 피력해왔다. 그가 말하는 ‘공정과 상식의 나라’는 모든 ‘국민’이 법과 제도에 따라 동등한 기회를 누리고, 능력과 성과에 따라 보상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특히 그는 ‘법과 질서가 확립된 나라’에서 ‘국민’들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것 같다. 그의 꿈이 실현된다면, 대한민국은 더욱 공정하고, 상식적인 나라가 될 수 있을까? ‘국민들’은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누리고,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에서 살 수 있을까?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를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그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고, 법치주의가 확립된 사회, ‘국민’의 의사에 따라 정부가 운영되는 민주주의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의 말을 듣고 있으면,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밖에 없는 것 같다. 그 이외 ‘사회민주주의’와 같은 다른 유형의 민주주의를 주장하면, 대한민국의 헌법에 위배되는 ‘적폐세력’으로 몰아갈 것만 같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전문과 제4조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언급하고 있다.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전문)와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제4조)가 바로 그것이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어떻게 해석할까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있다. 대부분의 논란은‘자유민주적 기본질서=자유민주주의’로 보는 견해에서 제기된다. 헌법은 어느 규정에서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자유민주주의’라고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이를 ‘자유민주주의’로 본다고 해도 ‘자유’와 ‘민주주의’는 수평적 내지는 병렬적 관계에 있다거나 민주주의는 ‘자유’를 전제로 유지되는 정치체제로 보아야 한다. 또한 민주주의는 개방적이고 유연한 사회를 지향하므로 ‘자유민주주의’만이 아니라 ‘사회민주주의’를 비롯한 다양한 민주주의를 인정하는 것이 그 제도의 취지에 부합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월 28일 한국자유총연맹 69주년 축사에서 “반국가세력들은 핵무장을 고도화하는 북한 공산집단에 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를 풀어달라고 읍소하고,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다”고 말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바탕으로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대북정책을 비판하면서 전임 정부를 ‘반국가세력’으로 몰아붙인 것이다. 대통령의 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거칠고 무례하며 폭력적이다.
취임 이후 윤석열 대통령은 총 494번의 ‘자유’를 말했다고 한다. <한겨레>는 2022년 5월 10일 취임식부터 2023년 4월 29일까지 84개의 연설문을 기준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집권 1년간 ‘자유’ 발언을 성격별로 분류한 결과를 내놓았다. 이 분석에 따르면, ‘자유’라는 발언은 [기업·시장(신산업, 규제완화 등) > 외교(한미동맹, 한일관계, 자유진영 등) > 안보(국방, 북한 위협 등) > 시민(기본권, 민주주의 등) > 자유 전반(시민, 시장, 안보, 외교 전반)]의 순으로 발화되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자유’는 주로 기업과 시장, 한미일 동맹을 중심으로 한 외교, 안보 분야에 집중되어 있다. 상대적으로 시민, 그 중에서도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권리 보장을 위한 ‘자유’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가 그토록 강조하는 ‘자유’는 기업과 재벌 등 부자들을 위한 권리일 뿐 소시민과 약자들을 위한 권리는 아니라는 반증이다. 일반시민들이‘자유’에 공명하지 못하고 공허한 메아리로 인식하는 이유이다.
윤석열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존중받는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유지·운영되기 위해서는 강력한 법치주의가 확립되어야 한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집권 초반기에 모든 일을 해치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을까? 그런 의문이 들 정도로 윤석열 정부는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간첩단사건으로 공안정국의 포문을 열더니 곧바로 건폭이니 귀족노조라며 노동조합 때리기에 났다. 대통령의 눈에는 자신을 지지하는 ‘자유민주주의’단체는 법을 위반하는 사례는 하나도 없고, 진보성향의 단체는 모두 비리집단으로 보이는 것 같다. 시대가 과거로 역행하여 1960년대와 1970년대의 군사독재시절로 되돌아간 형국이다.
지난 3월 16일 한일정상회담의 결과 강제동원피해자에 대한 소위 ‘제3자 변제안’에 대해 대구경북의 지식인들도 반대성명서를 발표했다. 그 후 이와는 별도로 경북대 소속 지식인들이 따로 성명서를 내었다. 얼마 후 <이대학보> 학생기자의 인터뷰 요청이 있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질문이 있다.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내면 연구프로젝트를 수주하거나 개인 신상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데, 두렵지 않으세요?”란 내용이었다. 개인인 이상 왜 겁나고 두렵지 않겠는가. 하지만 개인적으로 더 두려운 것이 바로 청년 대학생들과 일반인들이 국가권력에 대해 느끼는 공포와 두려움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내세우는 ‘공정과 상식, 자유와 법치’가 왜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버렸을까?
“형벌로써 형벌을 없앨 수 있다.”한자어로 ‘이형거형’으로 표기되는 이 말은 순자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그 연원이 오래되었다. 순자는 인치(人治) 중심의 통치지배구조로는 사회 안정을 유지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보고, 법치(法治) 중심의 제도에 기반한 통치구조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순자는 법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법의 남용 가능성을 우려하면서 법치보다는 의치(義治)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순자의 법치사상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은 법가였다. 상앙은 신상필벌에 의거한 엄격한 법치를 통해 강력한 법질서를 확립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가 주장한 “형벌로써 형벌을 없앨 수 있다”는 이형거형에는 그가 지향하는 법치주의가 잘 드러나 있다. 한비자는 상앙의 사상을 받아들여 형벌을 엄하게 집행하여 범죄를 예방함으로써 결국 형벌을 없앨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형벌을 엄히 집행하면 범죄가 줄어들고, 범죄가 줄어들면 형벌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비자의 이형거형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사상일까? 이를 지지하는 입장에서는 범죄 예방은 사회 안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요소이며, 형벌을 엄히 집행함으로써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형벌로써 형벌을 없앤다고 하여 범죄가 사라지지 않는다. 형벌은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막는 데 도움이 되지만, 범죄를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형벌로써 형벌을 없애면 범죄가 사라질까? 형사범죄학의 오랜 과제이기도 한 이 말은 여전히 논란 중이다. 하지만 범죄를 저지르는 원인은 다양하며, 형벌만으로는 이러한 원인을 해결할 수 없다. 실제 범죄를 일으키는 원인에는 가난(빈곤), 실업, 교육 부족, 가족해체, 사회불평등, 약물 중독, 정신 질환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사회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에서 파생되는 이러한 원인을 해결하지 않으면 형벌을 없애더라도 범죄는 여전히 발생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엄한 형벌을 가하는 대신 범죄를 저지르는 원인을 해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난 등 범죄를 일으키는 원인을 해결하면 범죄의 발생율을 현저하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범죄 발생을 줄이기 위해서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재교육하고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등 예방조치가 필요하다.
이형거형은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법질서를 확립함으로써 사회질서의 안전이 필요하다는 그 중요성을 환기시키는 데에는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이형거형에 의거한 엄벌주의 혹은 엄형주의는 장점보다는 단점이 훨씬 많은 제도이다. 특히 이형거형은 범죄자의 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고, 사람들에게 심리적 위해를 가함으로써 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 부정적 효과가 크다. 그러니 법치주의를 앞세워 법을 개인의 기본적 인권을 제한하는 수단으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
평생 검사로 살아온 윤석열에게 사람들이 거는 기대가 컸다는 점은 인정한다.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 말하는 윤석열 검사는 멋있었다. 그 여세를 몰아 그는 대한민국의 대통령까지 되지 않았는가. 하지만 이제 그만하면 되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 의원들이 압승하지 못할 현실에 대한 두려움도 있을 것이다. 5년이란 짧은 임기 동안 ‘공정과 상식, 자유민주주의와 법치’가 바로서는 나라를 만들고 싶겠지. 그 조급한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고, 안다. 그래도 이제 그만하면 되었다. 여기서 독단과 폭주를 멈추어야 한다. 대통령이 꿈꾸는 나라가 곧바로 우리가 원하는 나라는 아니라는 사실을 하루빨리 깨달아야 한다. ‘대통령’ 윤석열에게 공자와 맹자의 아래 말을 가슴에 새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맺는다.
인(仁)의 실천 방법으로 능근취비(能近取譬)를 강조하면서 공자는 제자 자공에게 말한다.
자공(子貢)이 말하였다. “만일 백성에게 은혜를 널리 베풀어 많은 사람을 구제한다면 어떻습니까? 인(仁)하다고 할 만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찌 인(仁)에 그치겠는가? 그런 사람은 반드시 성인(聖人)일 것이다. 요순도 오히려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을 병통으로 여겼다. 인자(仁者)는 자신이 서고자 하면 남도 서게 하며, 자신이 통달하고자 하면 남도 통달하게 한다. 가까이 자기에게서 취하여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미루어 남에게 미루어 간다면 인(仁)을 실천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논어 옹야 6:28)
제선왕이 물었다. “이웃 나라와 사귀는 데도 방법이 있습니까?” 맹자가 말했다.
“하늘의 뜻을 즐기면 천하를 차지할 것이요, 하늘의 뜻을 두려워하면 제나라를 보존할 것입니다. 옛 시에
두려워하라 하늘의 무서움을!
그러면 자신을 보존하리니
라고 하였습니다.”(맹자 양혜왕장구 하 1:3)
출처 : 현장언론 민플러스(http://www.minplu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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