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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정치

조선노동당 비밀문서를 통해 본 북한 사회의 변화/정원희.강원大

국문요약

본 글은 김정은 시대 조선노동당의 비밀문서(김정은 비준문건, 김정은 비공개 담화, 강 연자료)를 통해 북한 사회의 변화를 살펴본다.

1990년대 이후 장마당이 활성화되면서 비공식 경제의 확산, 중산층의 성장, 외부정보 유입 증가 등으로 인해 북한 주민들의 자 율적인 활동 영역이 확대되어왔다.

조선노동당 문서에서 나타난 북한 내부의 각종 현상 을 살펴봄으로써 외부에 드러나지 않은 북한의 또 다른 사회 모습을 조명해본다.

비판 적담론분석(Critical Discourse Analysis: CDA) 관점을 적용하여 북한의 특수한 환경에 따라 생산된 권력자의 담론으로서 당 문서를 분석하였다.

CIVICUS의 시민사회지표 (Civil Society Index: CSI)를 활용하여 김정은 시대 북한의 시민사회 수준을 평가하고 향후 발전 가능성을 전망하였다.

주제어: 북한, 조선노동당, 비밀문서, 비판적담론분석, 시민사회

Ⅰ. 서론

북한 주민들의 비사회주의적인 행위가 북한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다.

북한 내부에 정보와 문화의 유입이 빠르게 증가하며, 주민들의 각종 일탈, 범죄행 위도 늘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2020년대에 들어 반동사상문화배격법, 평양 문화어보호법, 국가비밀보호법 등이 제정된 것은, 역으로 북한 당국이 체제유지를 위해 주민 통제 수준을 확대하려는 필요를 느끼고 있음을 시사한다. 북한 사회는 김정은과 당을 중심으로 한 공식적 영역과 주민들의 비공식적 영역이 병존해왔다.

북한의 비공식적 영역은 이전 체제전환기 국가들처럼 광 범위한 변화는 아니더라도, 공적 규범과 현실적 필요 사이 간극이 커짐에 따 라 독립적인 대중문화로 확산될 수 있다.

주민들의 변화하는 가치관과 태도, 행위들이 향후 시민사회의 맹아로 성장할 가능성을 예상해 볼 수 있다.

현재 북한 주민들이 스스로 비공식적 행위를 시민사회의 맹아로 여기고 있지는 않 다.

그러나 시장화가 진전됨에 따라 북한 주민들은 새로운 영역에서 수평적 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는 주민들의 권리와 생활 수준을 증진시키 면서 정권의 이념적 틀을 바꾸는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다(Hastings et al., 2021). 그간 이러한 북한의 비공식적 공간을 시민사회적 시각에서 접근한 연 구들이 일부 있으나1) 제한된 정보와 자료 접근의 한계로 꾸준하게 연구가 진 행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1) 대표적으로 서재진(1995), 장경섭(1995), 안청시⋅김근식(1994), 박정원(2013), Hastings et al.(2021) 등이 있다. 북한 청년동맹에 주목한 김종수(2010)의 연구, 북한 도시 주민의 사회적 관계망을 다룬 장세훈(2005)의 연구 등에서도 시민사회의 개념을 다루고 있다.

본 연구는 김정은 시대 조선노동당의 내부 비밀문서(김정은 비준문건, 김 정은 비공개 담화, 강연자료)를 입수하여 분석하였다.

글의 목적은 크게 다음 두 가지다.

첫째, 당 문서에 나타난 주민들의 자율적인 행위와 변화하는 사회 현상을 미루어 북한의 ‘또 다른 사회’2) 모습을 살펴본다.

2) 동유럽 사회주의뿐 아니라 중국, 소련에서의 사회변화의 특징은 사적 자율화(privatization) 이며 이는 시민사회뿐 아니라 이차 사회(second society)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북한의 이차사회에 대한 분석은 서재진(1995)의 연구 참고.

북한의 공식담론은 당의 이념에 반하는 내용이 거의 언급되지 않기 때문에 시민사회를 설명하기 엔 한계가 있다.

이에 비판적담론분석(Critical Discourse Analysis: CDA) 관점을 적용하여 조선노동당의 공식 문헌의 텍스트 형태와 특성, 담론 전략, 사회정치적 맥락 등을 복합적으로 다룰 것이다.

둘째, CIVICUS(세계시민단체연합)의 시민사회지표(Civil Society Index: CSI)를 활용하여 북한 시민사 회의 수준을 평가해본다.

CIVICUS의 시민사회지표를 활용한 이유는 현재 맹아적 단계에 머물러있는 북한 시민사회 수준을 보다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함이다.

북한 시민사회의 잠재적 요인이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구조, 환경, 가치, 영향 등 네 가지 차원으로 구분하여 살펴보고 향후 시민사회 발전 가능 성을 전망해보고자 한다.

Ⅱ. 북한 시민사회의 개념

‘시민사회(civil society)’라는 용어는 다양한 방식으로 정의된다.

서구 학 계에서 시민사회는 1980년대 폴란드 솔리다리티(Solidarity) 등장을 비롯하 여 공산권 국가 내 수만 개의 비공식 단체와 정당이 출현하면서 새롭게 부각되 었다(Arato, 1981: 23-47; Arato and Cohen, 1985; Pelczynski, 1988; Rau, 1987; Lewin, 1988; Lapidus, 1989). 이들은 주로 강력한 당 통제 시 스템에 의해 사라졌던 시민의 영역이 회복되는 것에 주목하였고, 여기서 시 민사회는 전체주의적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집단의 투쟁으로 여겨지기도 했 다(Walzer, 1998; Cohen, 1998).

구공산권 국가에서 체제전환 시기 조직된 자율적인 활동들, 즉 비국가영역 에서의 자발적인 결사체를 시민사회라 본다면, 현재 북한은 국가 영역을 벗 어난 조직 행위가 철저하게 금지되고 있기에 시민사회가 존재할 수 없다고 여길 수 있다.

북한에서 ‘시민사회’를 구성하는 ‘시민’이 없다는 주장도 있는 데 북한 주민들은 정치적 자유를 사회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시민(citizen)’ 이 아니라 단지 종속적인 ‘신민(subject)’에 불과하기 때문이다(안청시⋅김 근식, 1994: 149-150).

과거 공산 국가들에서 시민사회가 존재하지 않았다 는 연구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3) 이러한 논의들은 현재 북한에서 시민사회 Discourse 201 Vol. 27, No. 2 46 형성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3) 소련에서 시민사회(특히 독립적인 사회조직)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연구들은, 사 회 내 어떠한 부분도 정권의 정당한 통제를 벗어나지 못했고 자치가능한 조직이 존재할 수 없었다는 점에 초점을 둔다(Evans, 2006: 28). 이는 당시 소련 시민들이 정치 체제에 완전히 지배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며(Biddulph, 1975: 102). 공산주의 사회에서 시민사회 의 부재는 체제의 본질적인 부분으로 꼽히기도 한다(Wedel, 1994: 323).

오히려 북한에서는 ‘왜소한 시민사 회’ 조차 발견되지 않고 있어 시민사회가 완전히 근절되거나 뿌리뽑힌 상태 라고 볼 수도 있다(박정원, 2013: 160). 따라서 본 글에서 북한의 시민사회 를 논하기 전에 다음 세 가지를 전제한다.

첫째, 현실 사회에서 전체주의 권력이 갖는 한계를 극복한다.

아무리 견고 한 관료적 통제일지라도 사회 내 모든 측면을 완전히 장악하는 것은 현실적으 로 불가능하다.

밀로반 질라스(Milovan Djilas) 의 지적처럼 관료적 관리에 의 해 계급 착취가 지속된다면 인민들이 느끼는 소외와 저항감이 구조적으로 누 적될 수밖에 없다(장경섭, 1995: 134-135).

둘째, 북한 공식담론의 전체주의 언어(Totalitarian language) 특성을 고려한 다.

소련의 영향을 받은 북한의 공적 언어는 이미 고도로 표준화(normalization), 의례화(ritualization)되어 있어 무의미하고 상투적인 단어를 반복하는 특성 이 있다(정원희, 2023b: 92-95).

따라서 시민사회의 존재 가능성이 매우 작 게 감지되더라도 이는 북한 공식 담론의 특성으로 인한 제한적 표현일 수 있 으므로 현실에서 가질 수 있는 영향력을 보다 확대해서 해석하는 작업이 필 요할 것이다.

본 글은 CDA 관점을 적용하여 당 문헌의 텍스트상 나타나는 언어를 사회문화적 맥락에 집중하여 재해석하고자 하였다.

셋째, 북한에 ‘시민사회’ 개념을 적용하기 위해 비서구 국가들을 다룬 선행연 구들의 지적처럼 서구식 시민사회에 대한 ‘개념을 늘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서구식 시민사회 모델로 구공산주의 국가의 국가와 사회 간 특수한 이분화 현상을 설명하기 어려우며(Vorontsova and Filatov, 1997; 정재원, 2013: 309 재인용) 전 세계의 특수한 시민 생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좁은 정의를 벗어나는 것이 더 합리적일 수 있다(Henry and Sundstrom, 2006: 325).

시민사회를 분석할 때 그 사회의 고유한 환경에 맞는 협력 방식 과 실천 유형이 고려되어야 하며 이는 사람들 간 비공식적인 실천의 영역에 서 드러날 수 있다(Hann, 2005: 3).

본 글에서 시민사회의 개념은 CIVICUS의 정의에 따라 기본적으로 “가족, 국가, 시장의 영역을 벗어나 사람들이 공통된 이해를 증진하고자 하는 무 대”(Heinrich, 2004: 13)라고 본다.

그러나 북한의 정제된 공식담론에서 시 민사회의 맹아를 유추해보기 위해 시민사회 개념을 확장하는 한편 추상화할 것이다.4)

4) 시민사회의 개념을 추상화하는 것은 아담 셀리그만(Adam Seligman)의 예비적인 구분법과 도 유사할 수도 있다. 셀리그만은 시민사회를 하나의 슬로건과 같이 구별해두는 것은, 일시 적이고 신문기사에나 쓰일 용법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인류학적 측면에서 시민사회 의제 를 다루기에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Seligman, 1992: 201-2).

제도화된 집단활동이 아닐지라도 넓은 의미에서 자발적이고 비공 식적으로 나타나는 사회적 행위들을 시민사회의 영역으로 고려한다는 의미 다(Buxton and Konovalova, 2013: 771).

북한의 경우를 볼 때, 시민사회 가 태동한다면 이는 국가, 시장의 영역과 구분되나 완전히 배타적인 영역은 아닐 것이라 보며, ‘공통된 이해를 증진하고자 하는 무대’의 범위는 공식 집 단이 아닐지언정 다수의 개인 차원에서 변화하는 태도, 행위, 의식 차원으로 확장하였다.

Ⅲ. 연구방법

1. 분석 관점: 비판적 담론분석(Critical Discourse Analysis)

비판적 담론분석에서는 주로 담론과 권력의 관계에 중점을 둔다.

담론화된 권력 혹은 담론 이면에 있는 권력이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유지, 강화하는데 기여한다고 본다.

권력자의 담론은 지배의 주된 방식으로 활용되며 구성원들 의 지식과 태도, 행동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기능을 한다. 그간 비판적 담론분석가들 사이에서 선전(propaganda) 담론은 주된 관심 사(권력, 이데올로기, 담론-지식-사회관계 등)와 일치함에도 연구가 비교적 활발하게 전개되지 못했다.5)

5) CDA가 공통적으로 정치권력을 포함한 사회적 권력의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노골적인 통제 담론보다는 담론의 이면에서 사회통제에 영향을 미치는 숨은 권력들에 초점이 맞추 어져 있기 때문일 수 있다. 북한 연구의 경우 북한의 텍스트에 대한 비판적 담화분석을 시 도한 경우는 이원표(2006), Jae Sun Lee(2018), 정원희(2023a) 정도에 그친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선전 담론에 비판적 담론 분석의 일련의 방법을 적용될 때 선전 연구가 더 효과적이고 혁신적일 수 있 다고 말한다(Hanisch-Wolfram, 2010: 201-202).

본 글에서 다룰 북한의 조선노동당 문서는 기본적으로 선전의 목적을 지니며 그 자체로 권력을 행사 한다는 점에서 비판적 담론분석에 말하는 ‘언어에 드러나는 지배, 차별, 권력 과 통제의 명료하면서도 불분명한 구조적인 관계를 분석’(Wodak, 2001: 2) 하는 데 적합할 수 있다.

북한의 당 문서는 사회 내 비대칭적 관계 속에서 막강한 힘이 담론에 투영 되어 특정 이데올로기를 확산시킨다.

따라서 당 문서는 텍스트 자체로만 볼 것이 아니라 텍스트가 형성, 확산되는 정치, 경제, 사회적 맥락을 중점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Fairclough, 2010).

비판적 담론분석의 관점은 북한 공 식담론이 폐쇄적인 특수한 환경 속에서 일방적으로 유통되고 있음을 고려하 며, 당이 시민사회적 성장 요인들을 잠재우기 위해 어떠한 담론전략을 활용 하는지 등을 밝혀낼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본 글은 북한의 당 문건들이 사회 내 상호작용을 거처 어떻게 ‘해석’되며 특수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어떻 게 ‘설명’되는지 살펴보는데 중점을 두고자 하였다.

2. 연구자료: 당 문서

연구자료는 조선노동당이 정해진 당 조직체계에 따라 내부 주민들에게 비 밀문서로 배포한 김정은 비준문건, 김정은 비공개 담화, 교양/강연자료다. 이 세 가지를 통틀어 본 글에서 ‘당 문서’라고 칭한다. 이러한 문건들은 내부의 특정한 주민만을 수신자로 하며 외부 유출이 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되고 있어, 어느 정도 외부 공개를 염두에 둔 공식 매체들과는 차이가 있다. 북한의 공식 매체에서는 각종 사건, 사고 등 부정적인 내용이 실리지 않는 다. ‘장마당,’ ‘시장’과 같은 용어도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북한 언론의 주된 기능은 기본적으로 인민을 교육하고 당의 정책을 선전하며 인민들을 사회주 의 건설에 동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조선대백과사전 참고). 북한에서는 고 문, 살인사건, 교통사고 등 기사가 실리는 것이 사회의 본질과 발전법칙을 은 폐하고 대중을 사상적으로 타락시킨다고 여긴다(강현두, 1997).

또한 북한 정권이 외부 사회에 공식언론이 공개되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는 점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이나 국영 통신사인 조선중앙통신 등은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전달된다고 여기기 때문에 민감할 수 있는 내용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를테면 본 연구자가 입수한 2016년 3월 북한 내부 강연자료를 보면 “괴뢰통일부와 국방부 직원들도 아침에 출근하면 오늘 은 무슨 놀라운 일이 또 생겼을가라고 하면서 제일 먼저 ≪로동신문≫부터 찾아보고 있는 형편이다.”라고 한다.

반면, 김정은 비준문건이나 강연자료와 같은 당의 비밀문서에서는 반드시 긍정적이고 고무적인 내용만 담기지는 않 는다.

그렇기 때문에 외부 유출을 철저히 금지하며 당조직 내에서 각별하게 관리되는 문건이기도 하다.6)

6) 북한의 기밀 문서들이 외부에 공개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주로 탈북민이나 북한인권단 체들을 통해 사진, 영상 자료 등이 전달된다. 대개 USB에 자료를 담아 인편을 통해 두만강, 압록강 등 접경지역을 오가며 유출되며 휴대폰을 통해 주고받기도 한다(자유북한TV, 2018/11/30).

수집된 당 문서는 총 167개이며 글자수는 40,658자다.

이 문서들을 세 가 지 유형으로 분류하여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표 1> 연구자료: 김정은 시기 당 문서 : 생략 (첨부 논문파일 참조)

1) 김정은 비준문건

김정은 비준문건은 김정은의 비준을 받은 당 조직의 제안서이며, 총 116건으로 수집한 문서 중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한다.

이 문건은 주민들의 동향을 살피고 관리하기 위한 것으로 김정은의 비준을 받은 후 당 조직체계에 따라 배포된다. 평양을 비롯하여 각 지역 주민들의 세세한 생활 모습들이 비교적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북한 당국이 공개하는 성명, 담화, 서한, 노작 등과 비 교했을 때 북한 내부의 실상이 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 문건은 각종 사회 문제에 대한 김정은의 의중이 담겨있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비준’이라 는 용어는 말 그대로 최고지도자인 김정은의 결재를 얻었음을 의미하기에 당 내부에서 뿐만 아니라 전체 주민들에게 정치적, 행정적, 법률적 측면에서 구 속력을 발휘할 수 있다.

‘김정은 비준문건’으로 묶은 자료들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뉜다.

‘당 중 앙위 사업정형 자료’와 ‘부서별 비준방침’이다.

첫째, 당 중앙위 사업정형 자 료는 당중앙위원회 서명으로 발행되며 주요 사업들의 정형(상황)과 대책을 담아 김정은에게 보고된다.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께서 2013년 O월 O일 비준하여주신 문건”과 같은 제목으로, 특정 사업(행사) 기간에 주민들이 총 화한 내용을 비롯하여 주민들의 잘못된 행위가 지적되며 이에 대한 해결책이 담긴다.

가령 집중정치사업 기간에 조국을 배반하고 도주하였다가 다시 돌아 온 사람의 경험담이나 ‘남조선TV’를 호기심에 보기 시작하여 한국에 환상을 갖게 되었음을 고백하는 내용이 포함된다.

이러한 문건은 일정 기간 동안 당 중앙위 조직지도부에서 군당, 도당, 중앙기관의 당 위원회 등을 통해 주요 내 용을 취합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이 김정은의 결재를 받아서 다시 당 조직으로 내려오는데, 김정은의 비준 사실을 겉표지로 하여 문건의 중요 성을 부각시킨다.

주로 중앙당에서부터 도당, 군당에 이르는 당 기관들과 해 당 급의 인민위원회,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에 배포되며, 중앙에서 도, 군 급의 국가보위성, 사회안전성과 재판소, 검찰소 등 사법기관들에도 배포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사안에 따라 민감한 내용일 경우 사회에 가져올 충격과 동 요를 의식해 여러 기관에는 배포하지 않으며 엄격한 관리 하에 보관된다.

다만 배포된 기관들에 한해서는 주민들의 자수, 자백의 내용을 담은 민감한 부 분들에 대해 김정은의 비준을 받았기 때문에 그 누구도 더 이상 문제제기를 할 수 없다는 정치적 결론의 의미를 전달하고 있는 셈이다.

둘째, 부서별 비준방침은 당 중앙위가 아닌 각 분과, 지역, 계층, 직업 단위 로 주민 동향과 그 대책들이 요약해서 보고되는 자료다.

당내 부서나 외무성, 보위성, 보안성, 신소실, 총무부 등 일정 단위에서 만든 제의서 형태로 김정 은의 비준을 받아 다시 배포된다.

글의 제목 옆에 해당 부서명이 기재되고, 해당 부서가 관할하는 업무 범위에서 주민들의 동태를 파악하고 대책적 의견 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서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의 2017년 O월 O일 비준방침”이라는 말머리가 붙고, “체육경기과정에 집단구타행위가 나 타나고 있는 자료와 대책안”과 같은 구체적인 키워드를 포함한 제목과 이 문 제를 관리하는 당내 부서명이 함께 적시된다.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는 비사 회주의, 반사회주의 현상과 같이 다각적인 대책이 필요할 경우 여러 부서가 공동으로 작성하기도 한다.

입수한 자료들 중 조직지도부의 자료가 가장 많 았는데, 이는 조직지도부가 북한 전역의 모든 당 조직들의 당 조직생활을 지 도하고 있기 때문이며, 다른 부서들보다 더 막강한 권위를 갖는 바 사안이 엄 중할 경우 당 관료와 인민들의 경각심을 높이고자 하는 목적에서 조직지도부 명의로 비준받아 하달되는 측면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2) 김정은 비공개 담화

김정은 비공개 담화는 김정은의 연설, 교시, 말씀 등으로 총 44건이다.

본 글에서 취급한 ‘비공개 담화’란 북한에서 노동신문, 조선중앙TV 등 공식 매 체를 통해 발표하지 않은 비공개 문서다.

자료 표지에 ‘비밀(또는 절대비 밀)’7)이라는 표시가 붙어 있으며 김정은의 공개 연설이나 담화와 마찬가지로 당 보직자, 간부, 당원, 일군 등 각계각층의 인민들에게 보낸 내용이 담겨 있다.

7) 북한의 기밀대상은 중요성에 따라 ‘절대비밀,’ ‘비밀,’ ‘기관안에 한함’으로 구분된다(기밀 법 제1장 제2조) 절대비밀이나 비밀문서는 사회안전기관, 기관안에 한함에 속하는 문서는 체신기관을 통하여 발송, 접수하도록 되어 있으며(제4장 24조) 모든 기관, 기업소, 단체는 회의, 강습 과정에서 기밀이 누설되지 않도록 해야하고 절대비밀문서에 속하는 문제를 취 급하는 회의강습 경우엔 참가자명단을 만들고 해당성원만이 참가할 수 있다(제5장 39조).

2016년 O월 OO일 “당과 군대의 책임일군들에게 하신 말씀”과 같은 당 7차대회를 준비하며 70일 전투를 벌일 것을 호소하며 애국심을 키우고 반 제계급교양을 강화하자고 강조한 글도 있고, 2016년 O월 OO일 “박봉주 내 각총리에게 하신 말씀”과 같이 각 부서의 수장을 수신자로 두며 정책의 핵심 내용을 전하기도 한다.8)

8) 김정은과 독대를 했거나, 여러 간부들이 모인 자리에서 특정인을 호명하여 지시한 경우가 될 수 있는데, 그 내용을 더 많은 대중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부장의 이름을 그대로 제목에 담을 수도 있다.

김정은이 특정 지역을 방문하며 했던 발언이나 주요 사건(핵시험, 코로나 방역 등), 주요 정치행사(당 대회, 당중앙위 전원회의 등)를 기념하여 전체 인민들을 대상으로 한 경우도 있다.

이러한 자료들은 최 근 정세에 따른 당의 정책과 노선을 알리고 대중을 추동하거나 단결을 유도 하기 위한 것인데, 그 과정에서 주민들의 다양한 일탈 행위나 문제점들이 지 적된다.

김정은의 연설 중에서 공식 매체에서는 보도 형태로만 내용 일부가 공개되 고 내부 비밀문서로는 연설 전문이 실리는 경우도 있다.

이 둘의 문서를 비교 해보면 대외 공개용과 당 내부용의 차이를 알 수 있다.

2017년 12월 23일 김 정은의 제5차 세포위원장대회 연설을 보면, 내부자료(원본)에서는 주민들에 게 만연해있는 자본주의 문화, 마약 제조밀매, 종교와 미신 행위, 인민들의 안일한 태도 등이 신랄하게 비판되고 있다.

이러한 내용들은 보도문(요약본) 에서 대부분 삭제되었는데, 삭제된 페이지는 연설문 전문의 1/4 이상(총 21 페이지 중 6페이지 이상)에 달한다.

김정은의 연설은 최고지도자의 입에서 직접 언급된 것으로 그 자체로 상징적 힘과 파급력을 지니기 때문에 공개를 전제로 한 언론에서는 외부의 시선을 의식해 의도적으로 제외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내부적으로는 김정은의 연설을 통해 여러 사회 문제들을 낱낱이 지 적하면서 사회통제 수준을 강화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3) 교양/강연자료

교양/강연자료는 당 간부, 일군, 일반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내부 교양자료 를 말하며 ‘간부강연자료,’ ‘간부강연제강,’ ‘OO주민정치사업자료,’ ‘학습 제강’ ‘학습회 참고자료(학습 제강을 위한 참고자료)’ 등 총 7건이다.

강연자료는 조직지도부를 비롯해 군수공업부, 경공업부, 근로단체부 등 해당 부서들에서 수집한 자료들에 기초하여 선전선동부에서 작성한 후 아래 단위들에 배포한다.

당 선전선동부 산하에는 강연을 전담하는 부서(강연과)가 존재하며 정기적으 로 강연자료를 만들어 배포한다.

교양/강연자료에 ‘당통보사업지도서’도 포 함하였는데, 이는 중앙으로부터 하부 말단 당 조직에 이르기까지 당통보사업 체계를 시행하는 일종의 지도지침이다.

북한의 당 비서들은 당 생활지도, 간 부요해사업, 통보사업 등 내부사업을 수행하면서 그 방법이나 목적, 방향 등을 제시한다.

당통보사업서는 강연자료와 같이 정기적인 문건은 아니지 만, 당 중앙위에서 발행하여 도당을 비롯한 하급 당조직에 내려보내는 문서 이며, 간부강연자료와 내용상 유사하다고 판단하여 함께 묶었다.

교양자료는 주로 최고지도자의 고전적 노작이나 당정책에 대한 해석, 그 외 혁명전통 등 정치사상을 담고 있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 당을 중심으로 각 급 사회단체들의 조직, 사상체계를 강화하고 체제결속과 수령에 대한 충성심 을 촉구하기 위한 당 사업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이기 동⋅김인태, 2022: 13).

이러한 강연자료는 내부교양체계로 공개를 전제로 하는 언론매체 내용과 상반되는 내용이 실리는 경우도 있다.

가령 언론에서 는 ‘평화’를 제창하면서도 내부 강연에서는 평화에 대한 환상을 버리라는 내 용이 담기기도 한다.

Ⅳ. 분석 결과

본 장에서는 김정은 시대 당 문서에 대한 질적 분석을 통해 시민사회 요소 를 살펴본다.

CIVICUS의 시민사회지표(Civil Society Index: CSI)의 네 가 지 차원인 구조, 환경, 가치, 영향으로 구분하였다

<표 2> CIVICUS 시민사회지표 : 생략 (첨부 논문파일 참조)

1990년대 이후부터 비공식 경제의 확산, 외부정보 유입 증가, 경제관리체 계 변화, 중산층의 성장 등에 따라 북한에서 시민사회가 등장할 수 있는 잠재 적 요인들이 지속 존재해왔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사 회변화가 감지된다. 돈주들의 투자 범위가 시장을 넘어 부동산, 국가급 건설 사업까지 확대되었고(정태주, 2023; 이지선, 2022: 35-37, 60-65), 온라 인 시장뿐 아니라 새로운 금융시스템도 구축되고 있다.

그러나 노동신문과 같은 공식 매체에서 북한의 내부 를 설명하는데 ‘자본주의’나 ‘시장’와 같은 단어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구사회주의 국가들의 체제전환 시기를 보면, 공공과 민간의 가치와 이해관 계 사이의 격차가 증가하면서 이해관계를 규정하는 헤게모니와 다른 참여 경 로에 대한 정권의 통제는 대중의 ‘자기방어(self-defense)’를 이끌어냈다 Discourse 201 Vol. 27, No. 2 56 (Weigle and Butterfield, 1992: 5-6).

주민들이 당의 독점 권력에 거부하 는 반응으로서 드러나는 자기방어적 태도는 유형적(사회조직적), 무형적(도 덕적) 측면에서 시민사회를 이끌어내는 촉매제로 작용했다.

북한의 경우 현재까지 당내 개혁지도자가 출현하거나 독립활동가, 반체제 인사가 활동하는 단계는 아니다.

자율적 사회조직의 행동 범위가 수면 위에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시민사회는 낮은 수준으로 평가될 수 밖에 없다.

수집 된 자료에서도 조직적인 움직임이 크게 감지되지는 않았다.

조직 차원이 아 닌 개인의 차원에서 본다 하더라도 이들이 사회나 공동의 이익을 위해 어떠 한 역할을 하는지,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문제를 얼마만큼 해결하며 영향력 을 끼치는지 등은 당 문서에 제시되지 않았다.

즉, CIVICUS의 시민사회지표 중 구조(structure)나 영향력(impact) 측면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내용은 확 인할 수 없다.

따라서 환경(environment), 가치(values)의 측면 두 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그 후 구조, 영향력의 측면에서 시민사회의 조직되어 영 향력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예측해본다.

1. 환경: 국가와 비국가 영역의 갈등

환경 측면은 시민사회가 존재할 수 있는 정치적, 사회경제적, 문화적, 법적 환경을 포함한다.

현재 북한 사회는 범죄와 일탈, 외부정보 유입, 집단난동, 미신과 종교, 유언비어 등 현상이 만연한 것으로 보인다.

1) 범죄와 일탈

주민들의 각종 일탈과 범죄행위가 드러진다.

살인, 강도, 강간뿐 아니라 성 범죄, 마약 사용 및 판매, 도박, 위조지폐 사용, 불순녹화물 시청⋅유포, 외국 물품 밀수밀매, 화학류 절도, 비법적 제조⋅밀매⋅은닉, 자원(기름, 산림 등) 또는 각종 국영물자(공공 물품이나 부품, 파철 등)나 비공개도서 밀매, 비법 적 월경 행위, 밀주행위(낱알로 술을 만들어 파는 행위), 교통질서 위반, 종교 나 미신을 믿는 행위, 유언비어 유포 등까지 포함된다.

일탈(deviance)이란 사회 구성원들이 규범을 침해하는 행위로 범죄와는 구분되는 것이지만, 북한 과 같이 사회가 변화하고 사회적 보편의식이 변화하면서 혼란이 가중될수록 일탈과 범죄행위에 관한 정의와 구분이 모호해지게 된다(최대석⋅박희진, 2011: 71-72).

어느 사회든 ‘법을 어기는’ 행위는 ‘비시민적인(uncivil)’ 부분에 해당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소련 시대 후반까지 범죄조직은 유일하게 조직화된 비 국가 사회 형태로 기능한 바 있다(Shelly, 2006: 106-107).

당시 소련 주민 들은 권위를 회피하고 제도의 규칙들을 전복하면서 윤리적 지침의 유효성에 대한 냉소주의가 만연한 대중문화를 조성하였으며(Shtromas, 1984; Jowitt, 1992; Evans, 2006: 47) 이러한 비공식적 연결과 절충(tradeoffs)은 세대를 지날 수록 더 중요하게 작용했다(Millar, 1987: 28; Zimmerman, 1987: 349-50).

북한 사회에서 나타나는 범죄행위들이 시민적인 요소라 볼 수는 없지만, 현 재 북한의 특수한 정치사회 환경을 고려할 때 시민사회를 형성하는 환경요인 이 될 수 있다.

당 문헌에서 주로 제기된 주민들의 일탈이나 범죄행위는 다음 과 같다.

(가)의 발췌문에서는 사람들끼리 모여 술판을 벌이거나 성인물, 한국 영화 를 시청⋅유포하고 마약 사용⋅밀매하는 행위들이 지적되고 있다.

(가) 지금 일부 기관들에서는 종업원들과 주민들을 지원자금조성 의 명목 밑에 조직사상생활을 유리시키고 장악통제를 전혀하지 않 고 있는데로부터 그들속에서는 끼리끼리 밀려다니며 술판, 먹자판 을 벌리고 패싸움을 비롯한 강력범죄행위를 일삼고 있습니다. 사 상적으로 변질되어 성록화물과 괴뢰영화를 시청, 류포시키고 있으 며 마약을 사용하거나 밀매하는 범죄행위들에 쉽게 말려들고 있습니다. 이번에 제기된 년놈들의 범죄동기를 보아도 해당기관의 일 부 일군들의 비호, 묵인밑에 기업소에 적만 둔 범죄자들이 기업소 운영자금을 비롯한 사회적과제수행의 명목밑에 제멋대로 돌아치 면서 거간과 협잡 등 온갖 위법행위들을 조장시키였으며 나중에는 사회정치적안전을 침해하는 적대행위로까지 이어지게되였습니다. [2016.4. 강연자료]

여러 탈북민 증언을 통해 익히 알려진 바 북한에서는 사람들끼리 모여 술 을 먹는 것과 성인물이나 한국영화를 보는 것, 마약을 하는 것은 동일한 수준 의 범죄행위로 취급된다.9)

위 자료에 따르면 기업소 근무자들이 운영자금을 불법으로 사용하고 거간, 협잡 행위를 하는데 이것이 ‘사회정치적 안전을 침 해하는 적대행위’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북한 형법에 따르면 거간행위를 하 여 대량의 이득을 얻을 경우 노동단련형에 처하며, 특대량 이익을 얻을 경우 3년 이하 노동교화형에 처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제8장 사회공동생활질서 침해죄 제298조).

이 자료를 통해 사건의 심각성을 유추하기는 어려우나 본 사건은 기업소에 ‘적만 두고’ 자금을 활용해 다른 사적 경제활동을 하였고 다 른 주변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묵인을 하며 오히려 단속에 걸리지 않도록 도움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나)의 경우 코로나19 방역에 대한 반발로 보인다.

코로나19 방역 과정에 서 주민들이 안전원을 모욕하고 구타한 사건을 보고하고 있다.

(나) 최근 일부 주민들 속에서 비상방역질서를 지킬 것을 요구하 는 안전원들을 모욕하거나 구타하는 현상들이 제기되였습니다. ... 9)

북한은 형법상 마약불법 제조와 밀매 처벌 조항을 따로 두고 있었음에도 2021년 7월 마약 범죄방지법을 새롭게 제정하였다.

또한 북한에서는 남한의 영화 록화물, 편집물, 도서를 유 입, 유포한 경우에는 무기노동 교화형 혹은 사형에 처할 수 있으며(반동사상문화배격법 제 4장 제27, 28조) 이러한 행위를 목격할 경우 반드시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군중신고법 제2장 제15조).

집단적으로 술을 먹거나 유희, 오락을 하는 행위도 로동교양처벌대상이 된 다(비상방역법 제5장 제66조).

법일군들을 구타폭행하면서 법집행을 고의적으로 방해하는 대상 들에 대하여서는 그가 누구이든 즉시 억류하고 법대로 처리하도록 하려고 합니다. [2020.10.3. 비준문건(조직부)]

2020년초 코로나19를 계기로 김정은 정권은 국가비상방역체계를 선포하 며 이를 명분으로 주민들에 대한 단속과 처벌의 수위를 높여나갔다.

2020년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시작으로 비상방역법, 청년교양보장법, 평양문화어보 호법 등 새로운 법규들을 제정하였다.

이러한 당의 철저한 통제 속에서 주민 들의 크고 작은 반발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다)의 글은 2016년 일군, 근로자를 대상으로 ‘정치적 안전’을 주제 로 한 교양자료 중 일부인데 자본주의 사상과 생활방식을 적나라하게 비판하 며 주민들의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다.

(다) 각성되지 못한 사람들속에서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불순록화물을 한번 시청하고 마약을 한두번 사용했다고 하여 사상 적으로 변질되겠는가, 마약과 불순록화물을 몇개 밀수밀매한다고 하여 큰일이 나겠는가 하고 례사롭게 생각하면서 자기들의 범죄행 위와 요소들에 대하여 솔직히 자수하지 않거나 주저하고 동요하고 있습니다. [2016.4. 강연자료]

한국 등 외부 영상물 시청과 마약 사용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외부영상물 과 마약을 쉽게 생각하는 것이 잘못이며 경험한 이후에도 자수하지 않고 동 요되어 있다고 말한다.

이어서 “형법 제60조에는 성록화물을 반입, 제작, 복 사, 보관, 류포, 시청하였거나 그러한 행위를 재현하면서 성불량행위를 하였 을 경우에는 우리 제도를 와해전복하려는 적들의 책동에 가담한 반국가범죄 행위”로 보며 “비법적인 마약사용, 마약밀수, 거래행위들을 반당적, 반국가 적, 비사회주의적범죄(제207조, 제208조)”라고 덧붙이면서 성인물과 마약이 불법임을 강조한다.

이러한 담론의 전개 방식은 정치담화에 쓰이는 대표적인 ‘비합법화(delegitimation)’ 전략으로 제도적 질서와 규칙에 규범적인 위신 (prestige)을 부여함으로써 그 질서를 정당화한다(Chilton and Schaffner, 1997: 213-221).

2020년 12월 북한에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 제정된 것 을 미루어, 주민들 사이 외부 영상물을 보는 것이 지속적으로 유행하자 단속 에 대한 명분을 만들고 통제를 강화할 필요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10)

10) 내부문건에서 남한 영상물 시청⋅유포와 마약 사용은 비슷한 수준의 비사회주의, 반사회 주의적 현상으로 나란히 제시되며, 빈도 수에 있어서는 남한 영상물 시청에 대한 언급이 훨씬 더 많았다. 그러나 노동신문, 조선중앙통신 등에서는 마약 사용 문제가 기사의 헤드 라인으로 제시되며 강조되고 있으나 남한영상물에 대해서는 잘 언급되지 않는다. 최근 국 제적으로 마약사용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외부 시각을 의식한 것으로 보이며, 내부적으로 남한영상물이 확산된 것은 다소 숨기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러한 주민들의 일탈 행위에 대응하는 북한 정권이 노력도 배가되었다.

주민들에 대한 통제 수위를 더욱 높여 범죄행위의 맹아 단계부터 없앨 것을 촉구하는 내용들이 많다.

강력범죄가 지속 나타나는 것은 당 조직과 정권기 관에서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벌어진 것이라고 여기며 교양사업과 통제의 수준을 늘려나가고 있다.

2) 외부정보 유입

당 문서에 기재된 주요 통제대상은 한류를 비롯한 외부 문화와 관련된다.

북한 주민들의 옷차림이나 머리단장을 비롯하여 사회주의 생활양식을 벗어 난 한류 현상들, 장사행위 등이 모두 비사회주의적 현상으로 통제된다.

(가) 의 글에서는 구체적으로 한국의 ‘강남스타일’ 노래가 나오는 전화기와 시계 가 유행하고 있다고 언급한다.

그와 함께 이러한 ‘부르죠아 반동문화’가 밀수 밀매에 의해 반입되는 현상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일 것이라 강조한다.

(가) 료해한 데 의하면 놀이감손전화기와 손목시계에는 각각 8개 의 그림표식단추가 있는데 단추들을 누르면 괴뢰노래가사인 ≪오빤강남스타일≫이라는 말과 남녀간의 사랑을 반영한 중국노래를 포함하여 17곡의 외국음악이 나오며 연은 삼각모양이고 원숭이가 성조기를 형상한 모자를 쓰고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2018.1.28. 비준문건(중앙109련합지휘부)]

특히 주민들의 한국어 말투 사용에 대한 당의 위기의식이 상당히 높다.

2023년 1월 제정된 평양문화어보호법에 의하면 ‘괴뢰말투로 말하거나 글을 쓰거나 괴뢰말투로 된 통보문, 전자우편을 주고받거나 괴뢰말 또는 괴뢰서체 로 표기된 인쇄물, 녹화물, 편집물, 그림, 사진, 족자 같은 것을 만든 자는 6년 이상의 노동교화형에 처한다.

정상이 무거운 경우에는 무기노동교화형 또는 사형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제5장 제58조).

아래 글에서는 군인과 인민들 사이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한국의 유행 말투 를 따라하고 있음이 보고되었다.

“∼지 말입니다”와 같은 말투는 2016년 방 영한 한국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주인공 송중기가 쓰면서 유행했던 표현 이다.

현재 한국 군대에서도 쓰이지 않는 독특한 옛 군인 말투가 당시 드라마 로 인해 성행했는데, 이것이 북한에도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나) 지금 인민군대와 사회의 적지않은 사람들속에서 ≪돌아가도 되겠 지말입니다.≫, ≪제대군인이지 말입니다.≫와 같은 ≪∼지 말입니다≫ 형의 비규범적인 입말들이 성행하고 있습니다. [2018.1.28. 비준문건 (선전선동부)]

(다)는 김정은이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군에게 전하는 문건인데, 일반 대중 들 사이에서 한류 열풍이 퍼진 것뿐만 아니라 당 간부들 사이에서도 외국어 나 한국 말투를 사용하는 현상이 있었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다) 문건을 잘 만들어야하겠습니다. 문건에 다른나라 말이나 괴 뢰말을 쓰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다른 나라 말이나 괴뢰말을 쓰 는 것은 주체성과 민족성이 없는 표현입니다. [2016.2.27. 김정은 담화]

주민들이나 종업원, 학생들이 특정 공간에 모여서 함께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는 등 유흥행위를 하는 것도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라).

공원이나 유원지, 해수욕장, 식당 등 공공장소에서 사람들이 모여 사회주의 생활방식 에 어긋나는 행위들을 하는 것에 대해 단속을 강화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또 한 한류뿐 아니라 다양한 외국 문화가 유입되어 있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바).

한류, 외부 문화의 유입은 일상에서 주민들이 국가가 요구하는 규범과 행위를 벗어나 공통의 관심사를 공유하게되는 문화적 변화로 볼 수 있겠다.

(라) 해당 단위들에서 주민, 종업원, 학생들속에서 공원과 유원지, 해수욕장, 식당을 비롯한 공공장소들에서 이색적인 노래를 부르고 해괴망측한 춤을 추는 행위, 도박하는 행위, 음주하고 추태를 부리 는 행위, 길거리에서 잠을 자는 행위 등 사회주의제도의 영상을 흐 리게 하는 행위들을 없애기 위한 단속통제를 강화하도록 하였으면 합니다. [2017.12.18. 비준문건(인민보안성, 인민내무군정치부)]

(마) 일부 봉사단위들에서 식당과 상점들의 내부에 외국 사람들의 인물화와 외국 풍경화를 걸어놓거나 서양식 돛배, 코끼리 등을 부 각장식하는 현상이 나타나 사회에 좋지 못한 영향을 주고 있습니 다. [2017.10.2. 비준문건(조직지도부)]

북한 사회에서 자발적, 독립적인 문화의 영역이 늘어나는 것은 이전에 비 하여 국가를 벗어난 자유로운 공간이 더 확대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북 한 청년들에게 한류 문화가 유입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당국의 단속이 강 화됨에도 불구하고 청년들 사이에서 한국 영화나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더욱이 당의 직접적 지도를 받는 청년동맹의 생활총화, 통보문 등에서도 한국 말투가 배어있는 경우가 만연한 것으로 보인다(사).

(바) 청년동맹조직들에서 동맹생활 총화와 학습 등 여러 제기를 리용하여 괴뢰 말투로 말하거나 통보문을 보내는 현상은 반동사상 문화류포죄로,반국가적인,반사회주의적인 범죄로 락인한다는 것 을 동맹원들 속에서 똑똑히 인식 ... 청소년학생들의 콤퓨터, 손전 화기, 노래수첩, 학습장 등 소지품들을 정상적으로 료해대책하여 괴뢰말찌꺼기가 발붙일수 없게 하도록 하려고 합니다. [2020.6. 19. 비준문건(조직지도부, 선전선동부)]

3) 집단난동

당의 통제 수준이 강화되면서 주민들이 단속과 처벌에 불응하여 난동을 부 리거나 반항을 하는 경우들이 발생한다. 집단적 난동이나 반항, 집단구타 등 의 정황은 여러 문건에서 포착된다.

입수한 자료 중 집단적 구타/난동 사건이 자주 등장하며 이 주제만을 핵심적으로 다루는 글은 13건에 달한다.

(가) 법적처벌을 받은 대상들과 그 가족친척들 속에서 범죄와 위 법행위를 취급한 법기관 일군들과 법기관에 신고하였거나 증인으 로 나섰던 주민들에게 앙심을 품고 란동을 부리는 현상이 나타나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2017.8.7. 비준문건(조직 지도부)]

(나) 일군으로 일하다가 해임된 일부 대상들이 자기들이 해임된데 대하여 불만을 가지고 사업인계를 하지 않거나 배치받은 단위에 출근하지 않고있으며 지어 일군들에게 행패질을 하거나 구타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2017.12.5. 비준문건(조직지도부)]

법적 처벌을 받은 사람들이 자신의 가족, 친척들과 함께 난동을 부린 사실 과 일군들이 해임을 당하거나 다른 곳으로 배치받게 될때 불만을 갖고 행패를 부린 것이 보고되었다.

주민들의 집단 항의가 늘어나고 있으며, 당의 하부 조직 구성원들과 일반 주민 사이 갈등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당 문서에는 이러한 집단난동 사건에 대해 피해자나 가해자의 직업 이나 계층, 대략적인 지역 정도만 간략히 제시된다.

언제, 어디서 사건이 일 어났는지, 집단행동의 구체적인 원인이 무엇이며 반발이 어느 정도 수준이었 는지 등 핵심적인 내용은 자세히 설명되지 않는다.

2017년 00월 00일 황해 남도 은률군에서 산림감독일군들이 집단구타를 당한 사건이나 2017년 00월 00일 부당한 목적으로 집단난동을 부리는 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 정도만 제시된다.

4) 사회 혼란: 미신, 종교, 유언비어

종교와 미신행위는 최근 북한사회에 나타난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북한 에서 미신과 종교는 사람들의 건전한 사상의식을 마비시키고 사회주의 제도 를 해롭게 하는 독소라 규정된다. 북한에서 종교는 일찍이 김일성 말에 따라 ‘과학과 진보의 적이며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투쟁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여 겨졌고 다른 종교와 함께 샤머니즘적 신앙도 탄압을 받았다.

그러나 1990년 대 이후부터 주민들이 무당을 찾아가 점, 운세, 예언, 굿, 손금보기, 해몽 풀 이 등 샤머니즘적 신앙이 성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과거에는 승진이나 자식 의 군 입대 등을 위해 점집을 찾는 간부들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일반 주민들 까지 당국의 단속을 피해 쉽게 점집을 찾는다고 한다(문경근, 2016).

북한 주 민들 사이에서 미신, 종교 등이 성행하는 것은 일상생활이 순탄치만은 않으 며, 국가가 제시한 이념이나 약속(정책)을 믿고 따르기에 부족함이 있음을 유 추해볼 수 있다.

아래 글에 나타나는 바 같이 외부로부터 성경책 유입도 늘어 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 최근 적들이 우리 지역에 기구를 통하여 성경책들을 대대적 으로 들이밀고 있는데 지난 7월부터 현재까지 보위기관들에서 회 수처리한것만 하여도 무려 ○○나 된다. ... [2017.12.2. 비준문건 (조직지도부)]

김정은 비준문건, 강연자료 등에서 주민들 사이 떠도는 유언비어에 대한 지도부의 경각심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유언비어만을 주제로 다룬 글은 17 개에 달하며, 모두 조직지도부의 제안서로 비준되었다. 제기된 내용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나) 대표적인 동향과 류언비어는 다음과 같습니다. - 중국것들이 교두를 막고 국경지역을 봉쇄하여 생활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동향 - 우리 나라에 미국놈들과 괴뢰들의 특공대가 들어왔다는 류언비어 - 전쟁이 일어나면 3방송으로 전시가요를 비롯한 노래들이 련속 나온다는 류언비어 - 인민군대에 준전시상태가 선포되고 군인들 에게 전시용술을 공급한다는 류언비어 ... [2017.9.18. 비준문건 (조직지도부)]

(다) 정세가 긴장해지자 적대분자들이 책동하고 있다는 류언비어. 정세가 긴장하여 군인들이 올해에 제대되지 못하고 군사복무년한 도 늘어났다는 류언비어 이밖에 당창건기념일을 맞으며 핵시험을 또 한다는 류언비어, 전쟁이 일어나는것과 관련하여 평양시민들을 먼저 소개시킨다는 류언비어, 미국놈들과 괴뢰들이 중국 동북지방 에 들어와 훈련하고있다는 류언비어 들이 돌고있습니다. [2017. 10.9. 비준문건(조직지도부)]

2017년 9월 6차 핵실험 전후로 전쟁이 일어난다거나 북중 국경이 봉쇄된 다는 등 내용을 미루어 외부의 언론 정보가 유입된 듯하다. 외부 정보나 소식 이 유입되었을 때 사람들이 모여서 관심을 보이고 정보를 주고 받으면서 다 양한 소문이 퍼져나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주민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면서 소문이 와전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정세가 긴박하여 군인들의 복무 연도가 늘어났다거나 미군이 중국에서 훈련을 한다는 등 내용을 미루어 어려 운 경제상황 속에서 주민들의 불안감과 사회 혼란이 가중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밖에 아래 발췌문을 통해 주민들에게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이 교체되 었다는 소문이 퍼졌던 사실도 알 수 있다.

(라) 지난해 농사가 안되여 올해에 굶어죽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 라는 류언비어와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이 바뀌었다는 류언비어 ... [2018.1.16. 비준문건(조직지도부)]

경제활동이나 일상생활과 관련한 내용뿐 아니라 정치 소식도 주민들 사이 에서 오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2017년 11월 20일 국 정원의 국회 보고를 통해 최룡해 당 조직지도부장의 주도로 총정치국에 대한 대대적인 검열을 통해 총정치국장인 황병서와 국가보위상 출신 제1부국장 김원홍 등 간부들을 처벌한 것이 알려졌다(이용수⋅김명성, 2017).

황병서는 10월 8일 당 공식행사에서 참석자 호명시 이름이 뒤로 밀렸고 10월 13일경 이후부터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았으며, 후임 총정치국장인 김정각은 2018 년 2월 8일 열병식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처럼 당 내부 문건에서는 사회 내부에 유언비어가 퍼지는 현상을 중대한 문제로 보고 지적하고 있지만, 노동신문이나 조선중앙통신과 같은 매체에서 는 ‘유언비어’라는 단어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11)

주민들 사이 소문이 나도 는 상황은 심각한 사회동요를 불러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북한 정권이 이 를 신중하게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12)

11) 노동신문의 경우 검색되지 않으며, 조선중앙통신에서도 관련 내용은 매우 드물다. 특히 유언비어와 관련한 단어나 내용을 기사의 헤드라인으로 꼽는 경우는 찾지 못했다.

12) 북한의 ‘유언비어 투쟁’은 국내 보도에서 북한 내 소식통을 통해 물게 보도된 적은 있는데, 2022년 6월 15일 KBS 보도에서는 입수된 내부문건을 소개하며 코로나와 관련해 주 민들 사이에 돌던 소문을 유언비어로 치부하고 핵심 권력기관들이 총동원하여 통제에 나 섰다고 설명한다(송영석, 2022).2023년 12월 함경북도의 한 주민 소식통에 따르면 도당 위원회의 지시에 따라 유언비어를 차단하기 위한 긴급 주민회의를 개최했다는 사실이 전 해진 바 있다(김지은, 2023).

2. 가치: 인식과 태도의 변화

가치관(human values)은 개인적, 사회적으로 더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기 본적인 신념을 뜻한다(Rokeach, 1973). 공적 영역을 벗어나 개인적, 사회적 으로 구성된 독립적인 가치는 사회적 과정과 함께 시민사회 형성의 기초가 된다(Weigle and Butterfield, 1992: 18).

가치관의 변화는 당-국가에 의해 공표된 가치가 실제 사람들에게 내면화되지 않았음을 방증한다(Wojcicki, 1981: 102-103; Benda et al., 1988: 211).

북한에서 공식적으로 추구해야할 가치는 소련 시기 호모 소비에티쿠스 (Homo Sovieticus)가 모범적 인간형을 설정한 것과 유사하게 제시된다.

북 한 당국이 제시하는 ‘주체형의 새 인간’은 주민들에게 사회주의적 도덕과 윤 리, 규범을 준수할 것을 끊임없이 요구한다.

그러나 실제 사회에서는 사회주 의 이념과 현실 간 괴리, 사적, 공적 영역의 격차 속에서 가치 기준에 대한 이 중성이 드러난다.

주민들은 공적 영역에서의 수동성이 내면화되고 또 다른 영역에서 사적인 이익과 가치를 추구한다.

이러한 가치의 변화는 주민들의 ‘자기방어’ 형태로 나타나며, 무형적 측면에서의 시민사회로 향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

1) 경제적 이익과 가치 추구

북한 전역에 시장이 생겨나고 주민들의 사적 경제활동이 늘어나면서 당의 요구나 집단주의적 가치보다 경제적 이익이 주민들의 중요한 동기 요인이 되 고 있다.

공식 장사품목이 아닌 연유(기름)을 사고팔거나 머리카락을 밀매하는 등 돈벌이를 위한 비사회주의적 현상이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된 다.

특히 야간에 식당을 불법 운영하거나 술을 파는 경우가 만연한 것으로 보 이며, 사회주의 양식에서 어긋나는 각종 외국문물을 들여와 장사를 하는 모 습도 흔히 발견된다.

(가) 식당들에서 밤늦게까지 영업을 하면서 술과 가라오케봉사를 하는 현상, 개별적 단위들과 주민들이 비법적으로 식당을 꾸려놓고 돈벌이를 하는 현상을 비롯하여 위법행위와 이색적인 현상들을 빠 짐없이 장악하고 ... [2017. 7.31. 비준문건(조직지도부)]

(나) 당 및 근로단체 조직들에서 주민들과 급양봉사망, 상점들에 서 각종 광고들과 그림들을 제멋대로 붙여놓고 돈벌이를 하는 현 상, 우리 인민들의 감정에 맞지않는 다른 나라 음악이 나오는 완구 를 판매하는 현상 ... [2017.9.7. 비준문건(선전선동부)]

다음 예시문은 평양시 중심에서 일어난 일인데, 평양에 사는 주민들이 돈 을 받고 외부 사람을 자신의 집에 무단 숙박시키고 있는 현상을 지적하고 있다.

(다) 최근 평양시 중심구역에서 사는 일부 주민들이 범죄요소가 있는 친척이나 잘 알지도 못하는 지방사람들과 군인들로부터 돈과 물건을 받고 자기 집들에 무단숙박시키면서 범죄와 위법행위를 조 장시켜 수도의 정치적안정을 보장하는데 지장을 주고 있습니다. [2017.8.7. 비준문건(조직지도부)]

청년들이 사적인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부모들의 자녀교육을 강 조하는 내용도 적지 않게 발견된다.

군복무 중인 자식을 병 치료나 물자 구입 등의 이유로 집에 데려온 후 돈벌이를 시키고 있는 현상이나, 자식들을 학교 에 보내지 않고 농사일을 시키거나 시장에서 사적 경제활동을 시키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라) 일부 주민들이 군사복무를 하는 과정에 병치료와 물자구입 등으로 집에 온 자식들을 부대로 돌려보내지 않고 오래동안 데리 고 있으면서 돈벌이를 시켜 사회적으로 인민군대에 대한 영상을 흐려놓고 있습니다. [2017.11.2. 비준문건(조직지도부)]

(마) 최근 일부 주민들속에서 자삭들을 학교에 제대로 보내지 않 고 집일과 부대기농사를 시키다 못해 시장에까지 데리고 나가 장 사를 하게하는 현상이 적지않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2018.1.29. 비준문건(조직지도부)]

2) 공적 가치의 쇠퇴

사적 가치가 늘어남에 따라 당이 요구하는 공식 활동이나 공적 가치는 쇠 퇴하는 모습을 보인다.

당 문건에서는 배치된 직장에 일정한 상납금을 내고 장마당에서 장사 등 부업활동을 하는 ‘8.3 노동자’를 지적하면서 ‘8월 3일 인 민소비품의 표현을 비속화하여 쓰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한다(가).

일 반 주민들뿐만 아니라 군인들의 불법 행위가 자주 지적되기도 한다. 평양시 내 공원을 보수공사하던 중 군인들이 시설물을 약탈해갔다는 내용이 보고되 기도 하였다(나).

(가) 최근 사람들속에서 정치적 각성이 없이 ≪8월3일인민소비품≫ 의 표현을 비속화하여 쓰는 현상들이 나타나고있습니다. ... 당조 직들 …에서 공장, 기업소에 출근하지 않고 돈벌이를 하는 현상, 비법적으로 부부생활을 하거나 식당을 운영하는 현상을 비롯하여 비사회주의적 현상들을 없애기 위한 당적, 법적 통제를 더욱 강화 하도록 하려고 합니다. [2017.9.6. 비준문건(조직지도부)]

(나) 인민군대에서 평양시안의 공원들을 보수하면서보니 유희기 재들에서 볼트와 나트까지 뽑아갔다고 합니다. 지금 공공시설들에 설치한것을 망탕 뜯어갈내기를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2013. 4.7. 김정은 담화]

사람들이 국가의 영역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며, 개인적인 이익을 얻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이 있음을 보여준다.

아래 글에서는 김정은 담화를 통해 당 원들의 당생활 문제가 적나라하게 지적되고 있다.

당 중앙위 전원회의 동안 회의 참석자들이 진지한 자세를 보이지 않고 ‘까투리처럼 머리를 수구리고’ 있다거나 ‘졸거나 장난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당원들이 사상학습 에 참석하지 않는 것도 지적된다.

당 간부, 군인, 일군, 주민 등 거의 모든 계 층에서 이러한 행위들이 만연한 것으로 보인다.

(다) 나는 이번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장군님을 모시고 진행하 는 심정으로 지도하였습니다. ... 일군들이 당에서 새로운 전략적 로선을 제시하는 중요한 회의에 참가하였으면 정중하고 진지한 자 세를 가져야 하겠는데 까투리처럼 머리를 수구리고 있으니 당의 로선을 어떻게 접수하고 관찰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 당의 중 대한 전략적로선을 토의결정하는 회의에 참가하여 졸거나 장난을 하는 사람들은 사상적으로 병든 사람이라고밖에 달리 볼수 없습니 다. [2013.4.1. 김정은 담화]

(라) 당조직들에서 토요학습조직과 집행을 짜고들며 일군들 속에 서 토요일과생활에 리유없이 빠지거나 불성실하게 참가하는 현상 이 나타나지 않게 하기 위한 교양과 장악통제를 도수를 더욱 높이 도록 하려고 합니다. [2018.2.5. 비준문건(선전선동부)]

3. 구조, 영향력: 발전 가능성

구조적 차원은 시민사회의 크기나 조직 수준, 참여 정도, 시민사회를 이루 는 핵심적 관계 등을 말한다.

영향력은 시민사회가 공공의 영역에 미치는 영향이다.

당 문서상 구조와 영향 차원은 감지되지 않았으나 몇몇 제기된 현상 들을 통해 그 가능성을 유추해보고자 한다.

첫째, 권력에 대한 충성심이 낮아 질 가능성이다.

북한에서 당원들에게만 나누어주는 당원증이 ‘표창장이나 상 품처럼’ 여겨지고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가) 당조직들에서 당원증을 그 무슨 수고를 평가하여주는 표창장 이나 상품처럼 여기면서 일시적열성을 내거나 물질적지원사업을 하였다고 하여 빚갚는 식으로 자격을 갖추지 못한 대상들을 망탕 입당시키는 현상을 철저히 없앰으로써 사람들 속에 꾸준히 노력하 고 헌신하지 않고서는 입당할 수 없다는 것을 똑똑히 인식시키도 록 하려고 합니다. [2017.12.11. 비준문건(조직지도부)]

북한에서 당원증은 조선노동당의 권력과 명예를 대표하는 중요한 상징물로 여겨진다.

그러나 당원들 사이 개인적 이해관계에 따라 당원증을 주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내 보도에서도 청진시 청암구역의 한 당원이 술을 사면서 돈 대신 장사꾼에서 당원증을 맡기고 간 사실이 발각되었다는 소 식이 전해지기도 했다(안창규, 2022).

다음 발췌문에서는 당원증의 상품화, 당장성사업의 상업화, 입당문제에서 농간질하는 현상, 당생활에서의 이중규율 등이 지적된다.

(나) 당조직들에서 당원증을 상품화, 당장성사업의 상업화를 철저 히 없애고 입당 문제를 가지고 롱간질하는 현상과의 투쟁을 드세 게 벌리도록 하려고 합니다. (...) 당생활에서 이중규률을 절대로 허용하지말며 일군들의 당생활에 대한 요구성을 부단히 높여 그들 이 평당원의 자세에서 당생활에 성실히 참가하고 당조직의 교양과 통제 속에서 긴장하게 일해나가도록 하려고 합니다. [2018.1.10. 비준문건(조직지도부)]

당 관료들 사이에서 국가의 일원으로서 명예나 자부심이 줄어든 반면 사적 인 이익이나 다른 가치들의 중요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관료 들과 주민이 결탁한 부패문화를 확산시킨다는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관료들 의 당에 대한 충성심이나 사회적인 당의 상징적 권력이 이전보다 낮아졌음을 보여준다.

당에 대한 충성심 저하는 관료 계층이 국가의 영역을 벗어나 새로 운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형태로 나아갈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당 관료와 주민 간 접촉면이 넓어짐에 따라 계층 간 갈등의 수준도 더 심각해질 수 있으 며 이는 공식제도와 현실의 괴리가 해소되지 않는 한 지속적인 사회갈등 구 조로 고착될 수 있다.

둘째, 최고지도자의 상징적 권위가 공공연하게 실추될 가능성이다.

북한에 서 최고지도자와 관련된 것들은 조그만 잘못도 있어서는 안되며 그 권위가 약간이라도 흔들릴 가능성이 있는 내용은 애초에 언급 자체가 되지 않는다.

최고지도자들의 동상이나 친필서한, 초상화 등은 그 자체로 보존, 관리하는 규칙과 절차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사소한 실수도 용납될 수 없다.

예를 들어 어느 방송에서 김정일의 친필서한이 두 번 반복해서 제시가 되었 는데 이를 선전선동부 부부장에게 직접

“장군님의 친필서한을 원본 그대로 모시지 않고 망탕 모신 것은 대단히 잘못”이라 지적하며 이것이 비밀문서로 책자화되기까지 했다.13)

13) 화면반주곡집 <우리의 7.27.>에서 388번 노래 <새해를 축하합니다>의 화면편집이 잘못 되었다고 하며 김정일의 친필서한이 한 번 더 반복해서 나온 것을 지적한다. 단순 방송 실 수인 것으로 보이나, 북한에서 최고지도자와 관련한 것들에 실수가 있는 것은 그 자체로 문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2013.4.23. 김정은 담화 참고.

2013년 김정은의 비공개 담화에서는 김일성, 김정일의 영상작품이나 구호 에서 사고가 발생한다는 내용이 언급된다.

최고지도자의 권위를 흐리게 할 수 있는 행동이나 사건들은 실제 일어난다고 해도 북한에서 공식적으로 알려 지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김일성, 김정일의 영상작품과 정치구호에서 사 고가 ‘많이’ 나고 있다는 사실이 보고된 것은 다소 이례적인 경우로 보인다.

(다) 최근에 대원수님들의 영상작품들과 정치적구호들에 대한 사 고가 많이 나고 있습니다. 태양절을 맞는 때에 함경북도 무산군을 비롯한 여러 단위들에서 그런 사고들이 련이어 일어나고 있는데 그에 대하여 각성있게 대할뿐 아니라 그런 사고들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강한 대책을 세우도록 하여야 합니다. [2013.4.15. 김정은 담화]

김정은의 담화로 언급된 것을 미루어 당시 이 문제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미 알려져 있었거나 사안이 경미하지는 않았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함경 북도 무산군을 비롯한 여러 단위들에서 그런 사고들이 연이어 일어났다고 하 나 사고의 구체적 경위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았다.

김일성, 김정일의 상징물이나 국가상징물, 기념비 등을 형상한 장식품을 만들어 제작, 판매하는 현상도 다수 적발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서는 공 식적으로 승인되지 않은 선전물들을 제작, 유포, 보관해서는 안되며 이를 주 민들 대부분이 인지하고 있다.

특히 최고지도자와 관련된 선전물은 더욱 철 저하게 관리된다.

당의 10대원칙에 명시된 것처럼 북한 주민들은 “백두산절 세위인들(최고지도자들)의 초상화, 석고상, 동상, 초상휘장, 영상을 모신 작 품과 출판선전물, 현지교시판과 말씀판, 영생탑, 당의 기본 구호들을 정중히 모시고 철저히 보위”(3장 4절)해야하는 의무를 갖는다.

그럼에도 최고지도자 들의 초상화나 관련 장소, 건축물, 국기 등의 모형을 임의로 만들어서 대놓고 사고파는 행위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라) 모든 당조직(무력, 군수, 특수단위 포함)들에서 자기 단위의 종업원들이 김일성화와 김정일화, 만경대 고향집, 백두산밀영고향집, 공화국기, 주체사상탑, 개선문 등을 칼고리, 열쇠 고리와 같은 고 리장식품들에 형상하여 제작하거나 판매, 사용하는 현상이 나타나지 않게 교양과 장악통제를 강화하도록 하려고 합니다. [2017.8.1. 비준문건(선전선동부)]

셋째, 폭발물 테러를 비롯한 비상사태의 가능성이다.

당에서 주민들의 무 기나 총탄, 폭발물 소지에 대하여 여러차례 발언하며 각별하게 관리, 통제하 고 있다.

군대에서 쓰이는 전투기재들이 불법적으로 판매되거나 무기, 총탄, 폭발물 등을 사고파는 행위들이 가능함을 유추해볼 수 있다.

수도 평양에 대 한 출입질서를 어기고 무기, 총탄, 폭발물 등을 소지하다가 적발된 사례도 있 었던 것으로 보인다(마).

(마) 모든 단위(당, 무력, 군수, 특수단위 포함)들에서 수도출입질 서를 어기고 무기와 총탄, 폭발물, 국가 통제품을 가지고 다니는 것, 지방인원들로부터 돈을 받고 길안내를 해주거나 륜전기재들에 숨겨가지고 들어오는 현상을 비롯하여 수도출입질서를 위반한 대 상들을 당적, 법적으로 엄격히 대책하도록 하였으면 합니다. [2017.7.24. 비준문건(조직지도부)]

폭발물 제조에 쓰이는 화약에 대한 단속이 두드러진다. 화약류를 제조, 밀 매, 은닉 행위를 미리 차단하며 집중 단속해야한다는 내용이 빈번하게 등장했 다.

군복무를 마치고 전투기술기재를 가져와 다른 목적으로 이용하는 현상을 종종 문제시하며,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대량의 총탄이나 무기를 밀매하 려다 적발된 사례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사)의 글과 같이 가정집에서 단순한 폭발사건이 발생할 경우에도 그 원인을 조사하고 해명하는 작업이 수반 된다.

당 조직에서는 군부의 반란을 비롯해 폭발물을 통한 테러, 주민들의 폭 력, 소요사태 등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 일부 주민들속에서 군사복무를 하다가 제대되면서 몰래 가지 고 왔거나 군인들을 통하여 구입한 전투기술기재를 여러가지 목적 에 리용하는 현상이 나타나고있는데 올해 1월부터 7월까지의 기 간에 제기된것만 하여도 ○○건이나 됩니다. [2017.8.20. 비준문 건(조직지도부)]

(사) ○○○의 살림집에서 발생된 폭발사건의 원인을 조사해명한 정형. 해당 기관, 기업소 들에서 일군들과 종업원들 속에서 화학류 보관관리와 취급을 철저히 규정의 요구대로 하도록 장악통제를 더 욱 강화하였으면 합니다. [2018.2.5. 비준문건(인민보안성)]

Ⅴ. 결 론

본 글은 김정은 비준 문건, 김정은의 비공개 연설, 교양/강연자료 등 당의 내부 문서를 통해 북한 사회의 변화를 미루어 시민사회의 잠재적 요인을 살 펴보았다.

북한의 언론매체에 비하여 당의 비밀문서에서는 사회 내부의 각종 부정적인 현상이 자세히 기술되어있어 시민사회의 잠재적 요소를 확인하기 에 더 적합하였다.

비판적 담론분석의 관점을 적용하여 당 문서에 침투된 권 력관계와 이데올로기적 요소를 전제로 하였고 담화적 실행과 사회문화적 실 행 사이의 얽혀진 관계를 고려하여 분석하였다.

CIVICUS의 시민사회지표(환경, 가치, 구조, 영향력)를 기준으로 분석한 결과 환경, 가치 차원에서 북한 시민사회의 발전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환경 차원에서는 범죄와 일탈, 외부문화 확산, 집단난동, 사회적 혼란(미신과 종교 성행, 유언비어 확산) 등이 가중되고 있다.

주민들이 국가 통제에 순응 하지 않거나 국가의 요구를 벗어난 사적 활동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것으 로 나타났다.

이는 자율적인 시민의 활동이 전개될 수 있는 환경적 변화가 나 타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가치 차원에서 주민들의 인식과 태도, 가치 관의 변화가 감지된다.

개개인들이 경제적 이익과 독립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한편 공식 이념에 부합하는 가치들은 쇠퇴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편, 시민사 회의 구조나 영향력 측면에서 두드러지는 요소를 발견할 수는 없었으나 대표 적으로 당원증 교환 행위를 미루어 당의 권위가 이전과 비교할 때 낮아지고 있 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최고지도자의 상징물에 대한 상행위, 폭발물 테러를 비롯한 비상사태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현재 북한의 시민사회는 어느 수준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북한 주민들의 각종 일탈 행위들은 언제쯤 ‘자발적인 결사체’ 즉, 시민사회의 형태 로 나타날 것인가?

조르지 콘라드(György Konrád)가 말한 전체주의 권력 내 일상의 ‘반정치(정치적 무관심)’는 지금 북한 주민들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체주의 권력의 통제와 억압 vs 일상의 수동적 저항, 이 둘 의 병존 현상은 관성적 사고에 따라 항상 지속될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알렉 세이 유르착(Alexei Yurchak)의 지적대로 소련 역시 시스템 붕괴가 시작되 기 전까지 소비에트 시민들은 권력의 모든 요소들이 영원할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사회내 미약하게 존재했던 시민사회적 요인들은 권력의 갑작스러운 붕괴가 주민들에게 놀랍지 않은 것임을 증명했다.

당시 소련의 많은 사람들 은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채 항상 체제 붕괴를 대비해왔으며, 소련이 붕괴되 자 이것이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 삶의 흥미로운 역설들 가운데 형성되었음을 그 전부터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유르착, 2019: 15).

역사를 돌이켜보 아 전체주의 사회에서 권력과 일상이 병존하는 시기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 다.

어떠한 국가 권력도 시민사회로부터 벗어나 오랫동안 지속될 수 없으며, 사람들의 충성심이나 주민의식, 정치적 권위, 신뢰를 재생산하는 것은 국가 만의 일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Walzer, 1998: 21).

현재 북한의 정치권력은 시민사회를 억압하기에 충분한 크기의 힘과 자원 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외부 시각에서 북한의 시민사회 출현 가능성 또는 다원적 민주주의의 조짐을 발견하기 어려울 수 있다.

김정은 정권도 인민들 의 변화된 태도를 예의주시하며 인민생활 향상을 목표로 나름대로의 개혁을 추진한다.

김정은 집권 이래 대내외적으로 개혁, 개방을 전면 선언하지는 않 았으나 여러 제도적 개혁을 추진해왔고, 지도자의 인민친화적 이미지를 부각 시키며 인민대중제일주의를 적극 내세우고 있다.

그렇지만 이것이 실제 북한 주민들을 ‘더 잘살게’ 만드는가?

아담 미흐니크(Adam Michnik)가 강조한 바 당이 주도하는 개혁은 근본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방어하려는 권력의 특성 으로 인해 체제를 자유롭게 만들지 않으며 주민들의 해방을 이끌어내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일 가능성이 크다.

결국 그가 말한 신진화론(New Evolutionism)과 같이 주민 스스로 조직화 과정을 거쳐 형성된 시민사회를 통해서만이 점진적인 해방이 예견된다(Michnik, 1985).

북한 정권의 입장에서 날로 커져가는 주민들의 ‘이색적인’ 행위들은 항상 불안하고 염려되며 위협적인 요소다.

주민들의 각종 일탈, 범죄 행위들은 북 한 공식담론의 정당성을 약화시키며 당과 김정은의 권위, 그를 중심으로 한 북한 특유의 집단주의 문화를 흐트러트린다.

결국 이러한 현상들은 권력으로 하여금 주민들에 대한 당의 물리적 통제와 사상교양 수준을 더 높이게 만들 뿐 아니라 인식적 차원에서도 체제 유지를 위해 필요한 논리들을 더 강하게 끊임없이 반복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북한에서 이러한 전체주의적 억압과 저 항의 병존 현상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

변화된 사회환경에 따라 북한 주민들이 점차 국가의 영역을 벗어나 독립적인 이익과 가치를 추구해나 갈 때 기존의 권력 체계가 흔들릴 가능성은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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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ransformations in North Korean Society Seen through Secret Documents of the Workers’ Party of Korea

Wonhee Jung(Kangwon National University)

This article examines the transformation of North Korean society through the secret documents of the Workers’ Party of Korea during the Kim Jong-un era, including documents ratified by Kim Jong-un, unpublished speeches, and internal lecture materials. Since the 1990s, the activation of marketplaces has driven the expansion of the informal economy, stimulated the growth of the middle class, and increased the inflow of external information, thereby broadening the autonomous sphere of North Korean residents. By analyzing various social phenomena emerging among the residents through secret Party documents, this study aims to shed light on the alternative society of North Korea that remains hidden from the outside world. Employing a Critical Discourse Analysis (CDA) perspective, this article examines the documents of the WPK as discourses produced by the ruling authorities within the particular context of North Korea. Additionally, it utilizes the CIVICUS Civil Society Index (CSI) to assess the current state of civil society in North Korea and to project its potential development in the future.

Keywords: North Korea, Workers’ Party of Korea, Secret documents, Critical Discourse Analysis, Civil society

접수일: 2024.04.25. 수정일: 2024.06.26. 확정일: 2024.06.28.

담론201 27권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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