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초록]
본 논문의 목적은 교회 연합을 위한 성령의 역할에 대한 아우구스티 누스의 견해를 살펴보고자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도나투스파와의 논 쟁을 통해 완전히 순결한 교회를 세우기 위한 목적으로 가톨릭교회(the catholic church)에서 분리되는 것을 죄로 정죄한다.
논쟁의 과정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경세적 삼위일체(the economic Trinity)의 역사로 이 루어지는 교회 연합의 신학적 근거로서 내재적 삼위일체(the immanent Trinity)에서 성령이 가지고 있는 그분의 고유한 위격적 속성을 제시한다.
삼위일체의 연합은 성부와 성자의 친교이시며, 두 위격 상호 간의 사 랑이신 성령 안에서 발견된다.
성령이 성부와 성자에게서 동시에 발출하 기 때문에 성부와 성자 공통의 영으로서 두 위격의 연합자가 되신다.
아 우구스티누스에게 성령이 교회의 연합자이신 이유는 바로 그분이 영원한 내재적 삼위일체에서 성부와 성자의 연합자이시기 때문이다.
성령은 교회의 영혼으로서 교회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으시며 모든 교 회 구성원들을 성자와 성부와 연합하게 만든다.
참 교회에서 분리된 자는 성례의 모양은 가지고 있지만, 성령이 약속한 은혜는 받을 수 없다. 왜냐 하면, 성령은 그리스도의 몸인 참된 교회 안에만 거하시기 때문이다.
성령 이 주시는 다양한 은사는 교회의 유기적 연합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한다.
인간 사역자는 은사의 수여자가 아니라 다만 봉사자일 뿐임을 기억하고 성령의 주권적 역사 앞에 겸손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이신 성령 안에서 교회의 구성원은 서로 간에 있는 견해 차를 인내하며 교회의 연합을 지켜내야 한다.
성령은 분파주의자들이 교 회로 돌아오도록 그들에게 사랑의 간청을 하신다.
교회는 그들과 논쟁하 고 다투기보다는 참된 교회와 다시 연합되도록 사랑으로 권면해야 한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랑의 간청과 함께 분파주의자들에 대한 교리 적 교정의 필요성 역시 제기한다.
성령은 진리를 희생시키지 않고 오히려 진리 안에서 교회의 연합을 이루신다.
교회 연합에 대한 5세기 아우구스티누스의 모든 주장을 21세기 개신 교 상황에서 특별히 복음주의 교회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오늘날 복 음주의 교회엔 아우구스티누스가 가지고 있던 가시적인 하나의 가톨릭교 회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을 통한 교회의 연합에 대한 아우구스 티누스의 신학적 통찰력은 복음주의 교회들의 영적 연합에 유익을 줄 것 이다.
[주제어: 아우구스티누스, 도나투스파, 성령, 교회의 연합, 내재적 삼위일체, 경세적 삼위일체]
I. 들어가는 말
예수님과 사도들은 교회의 연합에 대하여 반복적으로 강조하셨다. 예 수님은 자신의 공생애 사역으로 인해 만들어질 유대인 제자들과 그들의 사역으로 미래에 생겨날 이방인 제자들이 한 양무리가 될 것을 언급하셨 다(요 10:16; 17:20-21). 더 나아가 예수님은 교회가 하나님의 삼위일체적 연합을 닮아 내길 성부께 간구하셨다(요 17:11, 21-23). 물론 “우리가 하나 가 된 것 같이”(as we are, 11, 22)라는 표현은 교회 구성원들이 성부, 성 자, 성령에게만 속하는 상호내재를 통한 존재의 하나됨을 자신들 안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1)
1) Bruce Milne, The Message of John: Here Is Your King!: With Study Guide, The Bible Speaks Today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1993), 248. “~ 같이”(as)는 일치가 아니라 유비 (analogy)를 의미한다. 교회의 연합을 위한 예수님의 기도는 교회가 성자와 성부처럼 삼위일체의 어느 한 위격과 혹은 세 위격 모두와 완전히 연합하여 마치 사위일체(quaternity)를 이룰 수 있다는 말도 아니다. Robert Jamieson, A. R. Fausset, and David Brown, Commentary Critical and Explanatory on the Whole Bible, vol. 2 (Oak Harbor, WA: Logos Research Systems, Inc., 1997), 160.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 of Hippo, 354-430) 역시 같은 점을 지적한다: “[예수님은] ‘그들도 우리와 하나가 되게 하소서’라거나 ‘우리가 하나이듯이 그들과 우리가 [본질적으로] 하나 가 되게 하소서’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 대신 예수님은 우리가 우리의 본성 안에서 하나이듯이, 그들도 그들 자신의 본성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소서’라고 하신 것이다.” Augustine, Homilies on the Gospel of John 41–124 [WSA III/13:429].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연합을 통해 세상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세상을 자신과 화해시키고 계심을 보게 될 것이다(요 17:23; 엡 2:18).
그러므로 바울은 교회가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 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명령한다(엡 4:2b-3).
그러나 현재 개신교계는 삼위일체적 연합을 반영하도록 촉구하신 예 수님과 바울의 가르침을 순종하지 못하고 수많은 교회와 교단의 분리를 경험하고 있다.
물론 어떤 교회나 교단이 기독교의 근본 진리, 예배, 성 례, 그리고 성경적 세계관에 심각한 왜곡을 초래하여 참된 교회로서의 존 재감을 상실할 때 성경적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 분리 외에 다른 길이 없을 수도 있다.2)
그러나 문제는 존 칼빈(John Calvin, 1509-64)이 지적했듯이, 많은 교회가 분열되는 주된 원인은 개인 적인 “교만” 혹은 “자기를 영화롭게 하는 것”(pride or self-glorification), 그리고 자신에게 허용된 것보다 더 많은 권한을 가지려고 타인을 지배하 려는 죄이다.3)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 1854-1921)는 이런 교회 분열은 “세상에게 [교회에 대한] 멸시와 조소” 그리고 “불신앙의 이유”를 제공하며, 교회의 연합을 간구하신 그리스도에게 불순종하는 것이며, 우 리에게 형제 사랑이 없음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보았다.4)
논자는 교회의 연합과 관련된 성령의 역사에 대한 5세기 북아프리카 교부 아우구스티누스의 이해가 현대 복음주의 교회가 겪고 있는 교회 분 열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유익한 신학적 교훈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본 논문이 성령을 통한 교회 연합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를 연구 주 제로 선택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교회 역사에서 “도나투스파(the Donatists)를 반대한 아우구스티누스보다 교회의 연합을 더 강력하게 주 장한 사람은 없었다.” 5)
2) 웨인 그루뎀(Wayne A. Grudem, 1948-)은 참된 교회(a true church)와 순결한 교회(a pure church)의 개념을 구분하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처럼, 그루뎀 역시 완전히 순결한 교회는 오직 종 말에만 이루어진다고 본다. 따라서 그루뎀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교회의 순결성에 약 점이 있다고 교회(혹은 교단)에서 분리되는 것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취한다. 그 예외적이 경우란 순 결성이 심하게 훼손된 교회에 남아 있는 것이 이단적, 혹은 비기독교적 가르침에 순응하는 것이 되 거나 교회를 도저히 개혁할 수 없는 상황이다. Wayne Grudem, Systematic Theology, Rev. ed. (Grand Rapids: Zondervan, 2020), 1073-80. 이경직 역시 한국 개신교회의 분열에 대한 신학적 해결책 중 하나로 교회 분리가 정당화되는 상황과 그렇지 못한 상황을 본질적 교리와 비본질적 교리 의 구분을 제시하고 있다. 이경직, “교회 일치와 분열의 기준: 본질적 교리와 비본질적 교리”, 「조직 신학연구」 29 (2018): 16-45.
3) John Calvin, The First Epistle of Paul the Apostle to the Corinthians, trans. John W. Fraster, eds. David W. Torrance and Thomas F. Torrance (Grand Rapids: Eerdmans, 1960), 90. 고전 4:6에 대한 주석 참조.
4) 헤르만 바빙크, Reformed Dogmatics, 박태현 역, 『개혁교의학』 (서울: 부흥과 개혁사, 2011), 4:374-75.
5) Herman Bavinck, “The Catholicity of Christianity and the Church,” trans. John Bolt, Calvin Theological Journal 27 (1992): 232.
둘째, 신학자로서 목회 활동을 했던 아우구스티누 스의 교회 연합에 대한 견해는 하나님과 교회에 대한 깊은 신학적 묵상과 실제적인 목회적 지침을 담고 있다.
셋째,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 가톨릭 교회뿐만 아니라 종교 개혁 이후 개신교회의 교회론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6)
본 논문은 먼저 내재적 삼위일체의 연합자이신 성령의 고유한 위격적 속성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이해를 분석할 것이다.7)
6) 벤저민 워필드(Benjamin. B. Warfield, 1851-1921)는 개신교 종교개혁운동을 아우구스티누스의 은총론이 그의 교회론에 궁극적 승리를 거둔 것으로 해석하였다. Benjamin B. Warfield, Calvin and Augustine (Philadelphia: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mpany, 1956), 322. 그러나 워필드의 이런 해석은 어느 정도의 교정이 필요하다. 비록 칼빈이 아우구스티누스의 성례 의 사효성(ex opere operato)을 부인했으나 칼빈의 기독교 강요 4권에 있는 교회론을 살펴본다 면 그가 많은 부분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전통을 따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칼빈은 키프리아 누스(Cyprianus, c.210-58)와 아우구스티누스의 어머니로서의 교회 개념과 아우구스티누스의 중생자와 비중생자가 섞여 있는 교회론, 그리고 반 도나투스주의를 계승하고 있다. John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IV.1.1-1.4; IV.2.4. ed. John T. McNeill. trans. Ford Lewis Battles (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1960), 1011-46.
7) 본 논문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삼위일체 신학이나 성령론 혹은 교회론 자체를 논하고자 하는 것 이 아니다. 위의 교리들과 관련된 아우구스티누스의 기본적 이해에 대한 대표적 자료들은 다음 과 같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삼위일체론은 Lewis Ayres, Augustine and the Trinity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4)를 그의 성령론은 Matthew Levering, “The Holy Spirit in the Trinitarian Communion: ‘Love’ and ‘Gift’?,” International Journal of Systematic Theology 16 (2014): 126-42를 그의 교회론은 Michael Root, “Augustine on the Church,” in The T&T Clark Companion to Augustine and Modern Theology (Bloomsbury Companions), eds. C. C. Pecknold and Tarmo Toom (New York: T&T Clark, 2013):54-74; Geoffrey G. Willis, Saint Augustine and the Donatist Controversy (Eugene, OR: Wipf and Stock, 2005) 를 참조하라.
아우구스티누스 에게 성령의 고유한 위격적 속성은 그분이 영원 안에서 성부와 성자의 친 교이며 상호적 사랑이신 인격자라는 것이다.
성령이 내재적 삼위일체의 연합을 이루는 분이시기 때문에 구속 역사에서도 교회의 연합을 이루시 는 분이시다. 그다음 본 논문은 교회의 연합자로서의 성령에 대한 아우구 스티누스의 이해를 논할 것이다.
특별히 교회의 영혼으로서, 은사의 주권 자로서, 그리고 교회의 불완전한 순결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연합을 추구 하는 자로서 역사하신다.
마지막으로 논자는 성령을 통한 교회의 연합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를 현대 복음주의 교회에 적용할 때 나타날 한계를 지적한 후 복음주의 교회 연합을 위한 몇 가지 긍정적 적용점을 제 안하고자 한다.
II. 내재적 삼위일체 안에서 연합의 원칙으로서의 성령의 역할8)
1. 성부와 성자의 친교로서의 성령
아우구스티누스는 분리될 수 없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가톨 릭(catholic) 신앙은 성부, 성자, 성령의 분명한 위격적 구분을 유지하 는 것임을 강조한다.
성령의 위격적 속성은 다음과 같다: “성령 하나님 은 성부만의 영이시거나 혹은 성자만의 영이 아니라 성부와 성자의 영 이다....성령의 고유한 위격적 속성(proprium)은 아버지와 아들의 친교 (communitas)”가 되시는 분이시다.9)
성부와 성자의 친교로서의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 “공통된 무엇”(commune aliquid)이 되시는 분이시다.10)
그렇기 때문에 성부도 성자도 모두 거룩(holy)한 분이시며 동시에 영 (spirit)이시지만 특별히 세 번째 위격만을 성령(the Holy Spirit)이라고 부 르는 것이다.11)
아우구스티누스는 성부와 성자의 공통의 영이신 성령이 성부와 성자 가 서로 연합하게 되는 “연결 그 자체”(ipsa connexa)라는 라틴 교회의 전 통적 신앙에 동의한다.12)
8) 본 논문은 교회 연합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공동 사역으로서 성령만이 아니라 성부와 성자의 위격에 합당한 고유한 역할도 있음을 인정한다. 다만 논자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교회 연합에 대한 견해에서 성령의 역할을 분석하고자 하며 성부와 성자의 역할에 대해선 추후 독립적인 연구 논문이 필요하다 고 본다.
9) Augustine, Sermon, 71.18[WSA III/3:256]; The Trinity, 6.5.7[PL 42]. “proprium”이라는 라 틴 단어는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 c.155-c.220)가 사용하기 시작했고 4세기 후반 라틴 교부 들이 성부, 성자, 성령이 서로 구분되는 고유한 위격적 속성을 의미할 때 ‘proprium’을 사용했다. Ayres, Augustine and the Trinity, 86.
10) Augustine, The Trinity, 6.5.7[PL 42].
11) Augustine, The Trinity, 5.3.12[WSA I/5:197]; 15.5.37[WSA 424].
12) Augustine, Faith and Creed, 9.19[WSA I/8:169, 170]; [PL 40]. 아우구스티누스 이전에 빅 토리누스(Victorinus, d.364)는 이미 삼위일체를 세 위격의 상호적인 사랑, 은혜의 친교로서 보 았다. Victorinus, Hymn, 3.35-42. 빅토리누스는 성령을 성부와 성자의 “끈(copula),” “연결 (connexio),” “결합(complexio)”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Victorinus, Hymn, 1.3; 3.242-7. 아우 구스티누스 이전 라틴 교부들의 성령에 대한 더 자세한 이해는 다음의 자료를 참조하라. Ayres, Augustine and the Trinity, 90-92.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는 내재적 삼위일체의 연합이 성령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라틴 교회의 전통을 단순히 반복한 것 이 아니라 내용에 있어 더욱 확대하였고 형식에 있어서 더욱 체계화하였 다.13)
성령은 어떻게 성부와 성자의 친교이시며 공통의 영이신가?
성부는 성 자만의 아버지이고 성자는 성부만의 아들이다. 그런데 왜 성령은 성부나 성자 중 한 위격자와의 관계에서가 아니라 성부와 성자라는 두 위격자와 의 관계에서만 자신의 고유한 위격적 속성이 형성되는 것인가?
그것은 성 령이 성부와 성자에게서 동시에 발출하시기 때문이다.14)
요한복음 15:26 은 성부로부터 성령이 영원히 발출(procession)하심을 보여준다.15)
13) Augustine, Faith and Creed, 9.19[WSA I/8:168]. 아우구스티누스는 자기 이전에 이미 라틴 교 회의 훌륭한 성경 주석가들이 성령에 대한 기초적인 가톨릭 신학을 발전시켰지만 내용을 충분히 논의하지는 못했다고 평가한다. 마이클 피드로윅스(Micahel Fiedrowicz, 1957-)은 아우구스티 누스 이전 내재적 삼위일체에서 성령만이 가지고 있는 위격적 속성에 대한 연구물로 다음의 자료 를 제시한다. Hilary, The Trinity, 1.367; 2.4; 12:55, Nicetas of Remesiana,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Ambrose, The Holy Spirit; Victorinus, Hymn, 1.4; 2.242-45. Augustine, Faith and Creed, 9.19[WSA I/8:168] 각주 2번 그리고 9.19[WSA I/8:170] 각주 61번 참조하라.
14) 본 논문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이중 발출 교리인 필리오케(the filioque)에 대한 신학적 평가를 제 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논자는 아우구스티누스의 필리오케 교리가 삼위일체의 연합 을 이루시는 성령의 고유한 위격적 속성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보여주고자 한다. 필리오케에 대 한 긍정적 평가에 관해선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라. Dongsun Cho, “An Apology for Augustine’ s Filioque as a Hermeneutical Referent to the Immanent Trinity,” Studia Patristica LXIX (2013): 275-83; Ayres, Augustine and the Trinity, 263-38. 전형적인 정교회의 입장에서 아우 구스티누스의 필리오케를 비판한 자료는 다음을 참고하라. A. Edward Siecienski, The Filioque: History of a Doctrinal Controversy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0), 51-72.
15) 요 15:26이 성령이 내재적 삼위일체서 성부, 성자와 같은 영원한 위격적 관계가 아닌 경세적 삼 위일체에서 성령이 차지하는 역사적 사명에 대한 언급이라는 주장이 있다. Gerald L. Borchert, John 12–21, NAC (Nashville: B&H, 2002), 159–160. 그러나 필리오케 교리를 거부하는 동방 교회도 381년 만들어진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the Nicaeno-Constantinopolitan Creed) 에서 요 15:26을 성령의 영원한 발출론의 근거 구절로 삼았다. 도널드 카슨(Donald. A. Carson, 1946-)은 요 15:26 한 구절만으로는 성령의 영원한 발출론을 설명하기 충분하지 않다고 본다. 그 러나 요한복음 전체에 나타난 보내심의 신학을 고려해 본다면 논의되고 있는 구절이 니케아-콘스 탄티노플 신조가 고백하는 성부로부터의 성령의 영원한 발출뿐만 아니라 서방 전통이 주장하는 필 리오케 교리에 대한 신학적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요한복음에서 성부가 성자를 보내신 것 은 단순히 성자의 성육신만을 의미하지 않고 성부와 성자의 영원한 관계를 보여준다. 따라서 성부 와 그리고 성자가 성령을 보내신다는 것 역시 단순히 오순절에 일어난 성령의 경세적 보내심을 넘 어 성령이 성부와 성자 사이에 맺고 계신 영원한 관계에 대한 신학적 함의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 다. D. A. Carson,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PNTC (Grand Rapids: Eerdmans, 1991),
예수 님은 성령이 자신으로부터 발출한다고 직접적으로 진술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분은 성령이 자신이 아닌 오직 성부에게서만 발출하신다고 말 하지도 않는다.
성부는 자신의 생명을 영원 안에서 성자에게 주셨다(요 5:26). 그렇 다면 성부에게서 성령이 발출하시는 것도 성자의 생명에게 속한 것이 될 것이다.16)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호흡해 내심(요 20:22) 은 내재적 삼위일체에서도 성령이 성자에게서 발출하심을 보여주는 것이 다.
요한복음 15:26은 성부와 성자는 성령의 발출에 있어서 “하나의 근원” (unum principium)이지만17) 위격적인 순서로는 성부께서 성자보다 “더 근원적”(principaliter)임을 강조한 것뿐이다.18)
16) Augustine, The Trinity, 15.26.47[WSA I/5:433]. 아우구스티누스 이전에 이미 라틴 교부 힐라리 우스(Hilarius, c.310-c.367)는 성부가 자신의 생명을 성자에게도 주었기 때문에 성령은 성부뿐만 아니라 성자에게서도 자신의 생명을 받는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Hilary, The Trinity. 2.29.
17) Augustine, Answer to Maximius the Arian, 2.17.4[WSA I/18:314]; [PL 42].
18) Augustine, The Trinity, 15.17.29; 26.47[PL 42]. WSA의 삼위일체 번역자인 Edmund Hill은 “principaliter”를 “principally”로 번역했다. WSA I/5:433 참조. 아우구스티누스는 성령의 이 중 발출을 주장하면서 삼위일체에서 아버지의 위격적 근원성을 잊지 않았다. 성부는 “기원이 없 는 기원”(principium non de principio[origin not of origin])이시며 성자는 “[성부라는] 기원 에서 나오신 기원”(principium de principio[origin of origin])”이시다. Contra Maximinum haereticum Arianorum episcopum, 2.17.4[PL 42]. 영어 번역은 Augustine, Answer to Maximius the Arian, 2.17.4[WSA I/18:314] 참조. 성부와 성자 사이에 있는 이런 위격적 질서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이해는 니케아 신학을 반영하는 것이다. 니케아 신조에서 성자는 “Light of Light, very God of very God”으로 묘사되고 있다. 반면 아우구스티누스가 카파도키아 교부 들과 달리 성부의 근원성을 부정한 것으로 주장하는 견해는 다음의 자료를 참조하라. 김은수, “‘공 교회의 고전적 정통 삼위일체 교리’의 정립과 발전 역사에 대한 연구”, 「조직신학연구」 27 (2017): 329.
영원한 발출로 인해 성령 은 하나님의 또 다른 아들로 혹은 성자의 형제로 불리지 않으며, 성부는 결코 성령의 아버지로 불리지 않는다.
2. 성부와 성자의 공통적인 사랑과 선물이신 성령의 연합적 역할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요1서 4:7, 새번역. love is from God)이 529. 라는 표현과 “하나님은 사랑이다”(4:8, God is love)라는 표현으로부터 아 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사랑이자 하나님이신 분은 성령 하 나님이라고 이해한다.
요한일서 4:12-13 그리고 16 또한 하나님이 우리 안 에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게 되는 통로로서 사랑과 성령을 교차 로 사용함으로써 성령이 하나님의 사랑임을 보여준다.
히포의 주교는 “성 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롬 5:5) 되었다는 바울의 고백도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이신 분은 성령이라 는 자신의 견해를 지지한다고 보았다.
삼위의 신성한 본질은 같은 것이기 때문에 삼위가 각각 사랑으로 불린 다고 해서 신학적으로 문제가 될 것은 없다. 그런데 왜 유독 세 위격을 구 분할 때 성령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적절한 위격자로 불리는가?
만일 성부와 성자의 상호적인 사랑이 성령이시며 이 성령에 의해 성부와 성자 의 친교가 이루어진다면, 사랑이라는 명칭이 성부와 성자의 공통된 영이 신 성령에게 적용되는 것이 가장 적합할 것이다.19)
삼위일체의 세 위격자가 모두 사랑을 본성으로 삼고 있지만 상호적 관 계에서 맺고 있는 사랑의 방식은 같지 않다. 성부는 “자신에게서 나오신 자를 사랑하시는 분”이며, 성자는 “자신의 근원이 되시는 분을 사랑하시 는 분”이며, 성령은 성부와 성자가 서로를 사랑하는 바로 그 “사랑 자체” 이신 분이다.20)
19) Augustine, The Trinity, 15.19.37[WSA I/5:424]: “If the charity by which the Father loves the Son and the Son loves the Father inexpressibly shows forth the communion of them both, what more suitable than he who is the common Spirit of them both should be distinctively called charity?”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미 라틴 교회가 성령은 성부와 성자의 “상호 적 사랑”(mutual love)이며 “[성부와 성자가] 서로에게 주어지는 각자의 사랑”(charity of each to the other)이라고 이해해 왔음을 언급한다. Augustine, Faith and the Creed, 9.20[WSA I/8:169].
20) Augustine, The Trinity, 6.5.7[WSA I/5:210]: “one loving him who is from him, and one loving him from whom he is, and love itself.” 사랑으로서의 성령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견 해는 성령을 비인격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을 받아 왔다. 왜냐하면 ‘사랑’은 인격자가 아니라 인격자의 어떤 심리적 요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성자가 ‘말씀’으로 지칭된다고 해서 성 자를 비인격화한다고 할 수 없듯이 성령을 사랑이라고 지칭한다고 성령을 비인격화하는 것이 아니다.
성령은 사랑의 파트너를 함께 연합시키는 생명이다.21) 삼위일체에서 성부와 성자가 연합되도록 하시며 우리를 성부와 성자와 연합되도록 하 시는 성령이라는 사랑의 능력보다 더 위대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22)
만 일 사람의 영이 하나님과 연합할 때 두 영이 아니라 한 영이라 불리는 연 합이 이루어진다면(고전 6:17), 완전한 영이신 성령 안에서 성자와 성부가 한 하나님으로 연합된다는 것은 더욱더 참된 것이다.
또한 아우구스티누스는 삼위일체 안에서 연합의 역할자인 성령을 하 나님의 선물로 묘사한다. 성령은 하나님의 선물 중 하나가 아니라 하나님 이 주시는 선물 그 자체이다(행 2:37; 8:18; 10:44; 11:15).
아우구스티누스 에게 선물이라는 성령의 명칭은 선물을 주는 자(성부와 성자)와 선물 사 이의 상호적 관계성을 보여준다. 성령은 이중 발출로 인하여 각각 아버 지의 선물이자 아들의 선물이며 동시에 아버지와 아들의 “공통의 선물” (donum commune)이다.23) 성령의 영원한 발출은 그분이 시간의 어느 한 시점에 우리에게 구속의 선물로 주어지기 이전 “이미 [영원히] 주어질 수 있는(donabile) 선물”로 존재하셨음을 보여준다.24)
성령의 독특한 위격적 속성은 자기 자신을 나 누어 주시는 선물이신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은 성부와 성자 에게서 종속되는 선물이 아니다. 성령은 자신이 선물로 주어지시는 순간 에도 스스로 자신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다.25)
21) Augustine, The Trinity, 8.19.14[WSA I/5:255].
22) Augustine, Homilies on the Gospel of John, 14.9[WSA 269–270].
23) Augustine, The Trinity, 5.11.12; 15.17.29[WSA I/5:419]; [PL 42]. 선물로서의 성령에 대한 아 우구스티누스의 전반적인 이해는 5.11.12-16.17; 5.19.33-36에 집중적으로 소개되고 있다. 힐라 리우스가 이미 성령을 선물로 이해했으나 이 고대 프랑스의 신학자에게 성령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시는 선물이었다. 성령이 성부와 성자 공통의 선물이라는 사상은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발전된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삼위일체론』, 성염 역 (서울: 분도출판사, 2015), 574.n.52.
24) Augustine, The Trinity, 5.15.16[WSA 200]; [PL 42].
25) Augustine, The Trinity, 15.19.37[WSA I/5:424].
그러므로 성령이 성부와 성 자의 선물 되심에는 세 위격 간에 “상호적인 합의”(concordia)가 존재한 다.26)
아우구스티누스는 성령의 영원한 “선물”(donum) 되심과 그분의 경 세적 “기부되심”(donatum)을 구분한다.27)
26) Augustine, The Trinity, 15.19.36[WSA I/5:424]; [PL42].
27) Augustine, The Trinity, 5.15.16[WSA 200]; [PL 42].
성령은 인간의 구속을 위해서 하나님의 선물이 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로서 존재하시던 분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창조 세계로 들어오신 것이다.
3. 성령에 의한 내재적 삼위일체의 연합과 교회 연합의 관계
아우구스티누스는 경세적 삼위일체에 대한 내재적 삼위일체의 존재론 적 우선성을 그리고 내재적 삼위일체에 대한 경세적 삼위일체의 인식론 적 중요성을 인정한다.28)
교회 연합을 위한 성령의 역사는 내재적 삼위일 체의 연합을 이루는 성령의 위격적 속성을 보여준다.
성부와 성자가 서로 를 향해 나누시는 영원한 사랑의 “친교”(communio)이신 성령에 대한 아 우구스티누스의 이해는 “성령론을 교회론으로 이끌어 가며 교회론을 신 학으로 연결시킨다.” 29)
그러나 내재적 삼위일체와 경세적 삼위일체 사이 의 연속성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이해가 경세적 삼위일체와 내재적 삼위일체의 과도한 일치로 귀결되지는 않는다.30)
28) Cho, “An Apology for Augustine’s Filioque,” 275-83; Lewis Ayres, “Augustine on the Spirit as the Soul of the Body or Fragments of a Trinitarian Ecclesiology,” Augustinian Studies 41 (2010): 165-82.
29) “This[the Augustinian concept of the Spirit as communio] already has a fundamentally ecclesiological meaning for him[Augustine],...It opens pneumatology up into ecclesiology, and reverse connection of ecclesiology into the-ology.” Jospeh Ratzinger, “The Holy Spirit as Communio: Concerning the Relationship of Pneumatology and Spirituality in Augustine,” Communio 25 (1998): 327.
30) 경세적 삼위일체와 내재적 삼위일체의 과도한 일치는 카를 라너(Karl Rahner, 1904-84)나 위 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 1926-)에게서 발견된다. 반면, 아우구스티누스는 내재적 삼위 일체를 위해 경세적 삼위일체를 희생시키거나 그 반대의 경우를 만들지 않았다. 아우구스티누스 의 두 삼위일체론의 관계에 대한 라너의 부정확한 비판과 라너의 삼위일체 공리-“경세적 삼위일 체가 내재적 삼위일체이며, 내재적 삼위일체가 경세적 삼위일체이다”-가 가지고 있는 신학적 문 제에 대해선 다음의 자료를 참조하라. Drayton C. Benner, “Augustine and Karl Rahner o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Immanent Trinity and the Economic Trinity,” International Journal of Systematic Theology 9 (2007): 24-38; Edmund Hill, “Karl Rahner’s Remarks on the Dogmatic Treatise De Trinitate and St. Augustine,” Augustinian Studies 2 (1971): 67-80. 몰트만은 라너의 삼위일체 공리를 라너보다 더 급진적으로 수용하였다. 몰트만은 내재적 삼위일체의 실재성을 인정한 라너를 비판하면서 경세적 삼위일체만을 진정한 삼위일체로 인식한 다. Seung Goo Lee,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Ontological Trinity and the Economic Trinity,” Journal of Reformed Theology 3 (2009): 96-101; Fred Sanders, “Entangled in the Trinity: Economic and Immanent Trinity in Recent Theology,” Dialog: A Journal of Theology 40 (2001): 178-79.
교회의 모든 성도가 성령에 의해 연합되어도 삼위일체의 세 위격처럼 하나뿐인 의식, 의지를 공유할 수는 없다.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는 존재의 동일함이 아닌 “어떤 유사함”이 있을 뿐이다.31)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유 사함 때문에 교회는 성령을 통한 삼위일체적 연합을 “본받도록”(imitari) 명령받았다.32) 성부와 성자를 연합하게 하신 “성령은 우리를 다 함께 꼭 달라붙도록 접합시키셔서 하나로 묶어” 놓으신다.33)
더 나아가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하여 한 영혼과 한 마음”(anima una et cor unum in Deum)이 되어 그분을 사랑하게 만든다.34)
아우구스티누스는 삼 위일체론 6.5.7에서 성령을 통한 삼위일체의 연합을 설명하자마자 교회 연합에 대한 바울의 명령문(엡 4:3)을 인용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히포의 주교는 바울의 명령문을 평서문으로 바꾸어 삼위일체의 연합에 대한 구 절로 제시한다: “성부와 성자는 참여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들 자신의 존 재에 의해서, 어떤 우월한 존재의 선물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 자신의 선 물에 의해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지킨다.’”35)
31) Augustine, The Trinity, 7.4.12.
32) Augustine, The Trinity, 6.5.7[WSA I/5 :209]; [PL 42].
33) Augustine, Teaching Christianity, 1.34.38[WSA I/11: 123].
34) Augustine, Homilies on the Gospel of John 39.5[WSA III/12:590]; [PL 35]. Expositions of the Psalms, 30[2].3[WSA III/15:323]; Christopher Iacovetti, “Filioque, Theosis, and Ecclesia: Augustine in Dialogue With Modern Orthodox Theology,” Modem Theology 34 (2018): 73; Adam Ployd, Augustine, The Trinity, and the Church: A Reading of the AntiDonatist Sermon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5), 142; David Vincent Meconi, SJ., The One Christ: St. Augustine’s Theology of Deification (Washington, D.C.: The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 Press, 2013), 149.
35) Augustine, The Trinity, 6.5.7[WSA I/5:209]: “Thus, They[the Father and the Son] keep unity of the Spirit in the bond of peace (Eph 4:3), not in virtue of participation but of Edmund Hill, The Trinity, 6. Notes 8[WSA I/5:215]. their own very being, not by gift of some superior but by their own gift.” WSA의 삼위일 체론 번역자인 에드먼드 힐(Edmund Hill, 1923-2010)은 엡 4:3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이런 강독을 “본문에 대한 매우 대담한 적용”이라고 평가한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교회 연합에 대한 명령문을 삼위일체 연합에 대한 평서 문으로 바꾼 것은 몰트만이 주장하듯 경세적 삼위일체가 내재적 삼위일 체를 구성하기 때문이 아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교회 연합에 나타난 성 령의 역사가 내재적 삼위일체에서 속한 그분의 위격적 속성에 근거한다 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성령이 성부와 성자의 사회적 연합을 이루기 때문 에 “교회라는 사회의 연합”도 삼위일체의 연합자인 성령의 “적절한 사역” 에 속하는 것이다.36)
사도행전 4:32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이런 강조점을 잘 보여주는 텍스 트이다.37)
예루살렘 교회의 수많은 성도가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한 영혼 처럼 연합하여 구제를 통한 형제 사랑을 실천하였다. 그럼 어떻게 수많은 인간이 형제 사랑에 있어서 마음과 뜻이 하나가 될 수 있었는가? 그것은 모든 성도가 “사랑의 불”인 성령으로 충만해졌기 때문이다(행 4:31).38)
예 루살렘 교회에 발생한 성령의 연합 사역은 그분의 갑작스러운 새로운 사 역이 아니다.
성령은 영원 전부터 내재적 삼위일체에서 “성부와 성자 안 에 있는 사랑의 원천”(fons caritatis in Patre et Filio)이셨고, 이런 성령을 통해 삼위일체가 “한 하나님, 한 빛, 한 원칙”(Deus unus, lumen unum, unumque principium)으로 연합되어 있었다.39)
36) Augustine, Sermon, 71.33.
37) Augustine, Homilies on the Gospel of John, 14.9; 18.4; 39.5; 119.3.
38) Augustine, Debate with Maximinus, 12[WSA I/18:210].
39) Augustine, Homilies on the Gospel of John 39.5[WSA III/12:590]; [PL 35].
성령이 구속사에서 교회 의 연합을 이루어내는 것은 그분에게 속한 본래 사역의 확장이다.
III. 교회 연합의 원칙이신 성령의 역사
1. 교회의 영혼으로서의 성령의 역사
교회 안에서 성령의 역사를 인간의 육체 안에서 일어나는 영혼의 기능 에 비유한 것은 아우구스티누스 이전 라틴 교회의 전통 안에 있었다.
그 러나 교회의 영혼으로서의 성령의 역사를 교회론의 중요한 주제로 발전 시킨 사람은 바로 아우구스티누스였다.40)
교회라는 성도들의 사회적인 몸 의 여러 구성원을 통합시키며 교회에 영적인 생명을 부여하는 교회의 영 혼으로서의 성령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이해는 도나투스파와의 논쟁 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41)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의 생명으로 살고자 한다면 그리스도의 몸인 가톨릭교회와 연합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영으로서의 성령은 그리스도의 몸에만 거하시기 때문이다.42)
아우구스티누스의 이런 교회론은 4-5세기 북아프리카의 반-가톨릭 적 도나투스(Donatist) 분파와의 신학적 투쟁 가운데 더욱 발전하게 되었 다.43)
40) Ayres, “Augustine on the Spirit as the Soul of the Body,” 7; Stanislaus J. Grabowski, The Church: An Introduction To The Theology Of St. Augustine (St. Louis, MO: B. Herder Book Co., 1957), 234-42.
41) Ayres, “Augustine on the Spirit as the Soul of the Body,” 7-14.
42) Augustine, Homilies on the Gospel of John, 26.13.
43) 도나투스 분파는 303년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안(Diocletian, 284-311/12)의 기독교 핍박 때에 성 경을 정부에게 넘기지 않고 기독교 신앙을 지키려 했던 자들이 형성한 북아프리카 기독교 분파이 다. 공식적으로 이 분파는 311년 카르타고의 주교로 캐실리안(Caesilian, -345)이 선출되는 것 을 반대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캐실리안에게 주교로 안수를 준 성직자가 디오클레티안 황제 아래에서 배교한 사람이었고 따라서 배교자에게 안수 받은 캐실리안의 주교직을 인정할 수 없다 는 것이었다. 313년 도나투스(Donatus, -355)는 반 캐실리안 운동의 대표자가 되었고 이 북아프 리카 분리주의 운동은 그의 이름을 따라 도나투스파라 불리게 되었다. Everett Ferguson, From Christ to Pre-Reformation, vol. 1 of Church History (Grand Rapids: Zondervan, 2005), 188-91.
도나투스파는 배교한 성직자에는 성령의 임재가 있을 수 없고 따라 서 그런 성직자에 의한 성례와 안수를 인정하는 가톨릭교회에서 자신들 을 분리해 따로 교회를 세웠다.
따라서 가톨릭교회에서 뱁티스마를 받은 자가 도나투스파의 교회에 입교할 때는 다시금 뱁티스마를 받도록 하였 다.44)
3세기 북아프리카의 교부였던 키프리아누스가 이런 행습을 지지했 지만, 로마 중심의 가톨릭교회의 행습과는 다른 것이었다.
도나투스들은 성령이 오직 도덕적으로 순결한 성도 안에 거하시며, 따 라서 이런 성도가 모임 자신들의 교회 교회만이 유일하고 참된 거룩한 교 회라고 주장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도나투스파에 반대한 것은 참된 성 도 안에 성령이 거하신다는 사실이 아니다. 다만 그는 성도가 참된 교회와 연합되어 있지 않다면 그 교회의 영혼이신 성령이 그 사람 안에 거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했다.45)
따라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성도 개인의 도덕적, 영적 거룩성을 근 거로 모이는 교회가 아니라 중생자와 비중생자의 “섞인 몸”(a corpus permixtum)으로서의 가시적이며 제도적인 가톨릭교회를 참된 교회로 이 해한다.
히포의 주교가 참된 교회를 구원받은 참 신자의 비가시적인 영적 연합으로 이해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참된 교회의 영역을 가시적 교회 안에 있는 선택된 자만의 영적 연합으로 제한하지 않는다.
참된 교회 란 보편 교회가 고백하는 “신앙의 규율”(the Rule of Faith)과 성경의 가르 침, 성도와의 친교, 참된 성례를 가지고 있는 가시적인 가톨릭교회와 분리 될 수 없다.46)
아우구스티누스는 참된 신자로 구성된 비가시적인 영적 교 회와 신자와 불신자가 섞여 있는 가시적인 제도권의 교회라는 두 종류의 교회가 아닌 참된 한 교회의 두 측면을 언급한 것이다.47)
44) 논자는 βάπτισμα를 침례나 세례로 번역하기보다 한국어 음역인 뱁티스마를 사용한다.
45) Grabowski, The Church, 236.
46) 그러므로 이교도, 유대인들, 마니교와 아리안주의자들(Arians)과 같은 이단들은 참된 교회에 소 속될 수 없다. 또한 종말의 때가 이르기도 전에 가라지가 존재한다는 이유로 스스로 참된 교회에 서 분리되어 따로 모이는 분파들 역시 참된 교회에 소속되지 못한다. Augustine, True Religion, 5.8-5.9; 7.12.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신앙의 규범”은 뱁티스마를 받기 위한 교리 교육에 사용된 교 리 요약서로 현재의 사도신경 내용을 기초로 정통 기독교의 범주 내에서 수용될 수 있는 교회의 가 르침들이다. Bryan M. Litfin, “The Rule of Faith in Augustine,” Pro Ecclesia 14 (2005): 85- 101.
47) Root, “Augustine on the Church,” 67-69. 아우구스티누스가 두 종류의 교회론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죄인은 가시적인 가톨릭교회와의 연합을 통해서만 죄 사함 과 영생을 얻을 수 있다.
성령은 이 지상에서 유일한 참된 교회인 가톨릭 교회 이외의 어떤 기독교 분파에도 존재하지 않는다.48) 아우구스티누스가 주장한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extra ecclesiam nulla salus)는 사상은 철저한 교회 중심의 구원론이다.49)
인간 영혼이 자기 몸에 생명을 부여하듯 성령은 교회에 영적 생명을 부여하신다.
“성령을 가지고 있는 자마다 교회 안에 있는 것이며”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이듯, “교회 밖에 있는 자마다 성령을 가지고 있지 않 다.” 50)
인간 영혼은 자기 눈이 보고, 귀가 듣도록 명령하며 그 행위가 이루 어지도록 몸의 다른 지체를 이끌어 간다. 비록 몸의 다양한 지체가 각각 다른 기능을 하지만 이 모든 기능은 영혼을 통해 연합되어 있다.
교회가 많은 지체에도 불구하고 유기적인 한 몸으로 연합될 수 있는 것은 교회의 영혼인 성령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51) 는 견해는 다음의 자료를 참조하라. Hermanm Reuter, Augustinische Studien (Gotha: F. A. Parthes, 1887).
48) 아우구스티누스는 도나투스파를 이단으로 정죄하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 기독교의 한 분파로 보기 도 한다. 그가 도나투스파를 이단이라고 할 때는 기독교의 정통 신앙에 대한 부인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분파로 남기를 고집하여 성령의 거처인 가톨릭교회와 영구히 분리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로마 제국의 반 이단 정책으로 도나투스파가 혹독한 피해를 보았을 때는 도나투스파 를 기독교 분파로 묘사하기도 한다. Paul J. J. van Geest, “Augustine’s Approach to Heresies as an Aid to Understanding His Ideas on Interaction between Christian Traditions,” in World Christianity: Methodological Considerations, eds. Martha Frederiks and Dorottya Nagy (Boston: Brill, 2020), 255-56.
49) Augustine, Sermon ad Caesariensis Ecclesiae plebem, 5[PL 43]: “gratias agere Deo de salute eius, quam non potest habere nisi in Ecclesia catholica. Extra Ecclesiam catholicam totum potest praeter salutem.” 이미 서방 교부 중에선 키프리아누스와 히에로니 무스(Hieronymus, -420)가 같은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로마 가톨릭교회 밖에선 전혀 구원이 없 다는 견해는 제4차 라테란 회의(the Fourth Lateran Council, 1215)에 의해 공식적으로 확증되 었다. 그러나 교황 비오 9세(Pius IX, 1792-1878)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로마 가톨릭 신앙 에 대하여 “극복할 수 없는 무지”(invincible ignorance)에 처한 자는 자연적 법과 하나님에 의해 심어진 마음의 법을 따라 정직하고 덕 있는 삶을 산다면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교황 비 오 9세의 주장은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Pius IX, “Quanto Conficiamur Moerore,” https://www. papalencyclicals.net/pius09/p9quanto.htm/(2024.01.28. 접속).
50) Augustine, Sermon, S 268.2[WSA III/7:275].
51) Augustine, Sermon, S 228.2[WSA III/6:276]; Augustine, Homilies on the First Epistle of John, 6.10 [WSA III/14:97-98]; Lewis Ayres, “Augustine on the Spirit as the Soul of the Body or Fragments of a Trinitarian Ecclesiology,” Augustinian Studies 41 (2010): 172.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영(롬 8:9)이신 성령은 오직 그리스도의 몸에 붙 어 있는 자에게만 생명을 주신다.52)
몸에서 잘려 나간 지체는 그 모양은 유지하겠지만, 그 지체 안에 생명은 남아 있지 않다. 영혼은 몸에서 잘려 나간 지체를 따라가지 않는다.53)
그러므로 교회라는 몸에서 떨어져 나간 이단 혹은 분파주의자에게 성령의 역사를 기대할 수 없다.
잘려 나간 지체 가 회복되고자 한다면 즉시 원래의 자기 몸과 연합되어야 한다.
이단은 하 나님에 대한 거짓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이며, 분파 주의자는 바른 믿음은 있으나 형제를 사랑하지 않아 성령의 친교를 파괴 하는 자이다.54)
교회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성령의 구원 역사를 주장한다고 해서, 아우 구스티누스가 교회를 이 땅에서 죄 없는 성도로만 모인 완전히 순수한 공 동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은 아니다.
가톨릭교회에는 선한 자들과 악 한 자들이 섞여 있는데 이들은 타작마당에 있는 곡식과 가라지와 같다. 완 전히 순수한 교회는 주님이 재림하셔서 최후 심판을 하시는 종말에나 가 능하다.55)
52) Augustine, Homilies on the Gospel of John, 27.6[WSA III/12:470].
53) Augustine, Sermon. 268.2[WSA III/7:276].
54) Augustine, Faith and the Creed, 10.21[WSA I/8:171]; Seventeen Questions on Matthew, 11.1-2[WSA I/15 & I/16:434].
55) Augustine, Expositions of the Psalms, 7.7; 8.13; 36.2.1.; 51.4; 54.8; 24.19; Homilies on the Gospel of John, 6.6[WSA III/12:126].
2. 뱁티스마와 은사에 나타난 성령의 역사
제도로서의 가톨릭교회에는 알곡과 가라지가 섞여 있기 때문에 교회 안에 있다는 것 자체가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자를 향한 무조건적인 성령의 역사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교회 밖에 있는 분파주의자나 교회 안에 있는 불신자 모두 뱁티스마를 통한 구원의 효력을 받지 못한다.
성령을 상징한 비둘기가 그리스도 위에만 머물고 계셨기 때문에, 비록 가라지 때문에 완 전할 수는 없지만 참된 교회인 가톨릭교회 안에 있어야만 성례가 약속한 구원을 얻게 된다.56)
아우구스티누스는 성례전의 유효성과 효력을 구분하였다. 성령의 구 원 역사는 성례전의 유효함이 아니라 효력과 관계있다. 눈에 보이는 뱁티 스마의 물과 그 물이 상징하는 성령님은 같지 않다.57)
진정으로 영혼을 죄 로부터 깨끗하게 씻기며 그 영혼에 영적 영양분을 제공하는 것은 뱁티스 마의 물이 아니라 성령이다.58)
그리고 이 뱁티스마에 약속된 성령의 구원 역사는 성직자의 도덕성과 종교적 경건성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권위(마 28:19)에 근거한다.59)
그러므로 아우구스티누스는 도나투스파 교회가 시행하는 뱁티스마의 유효성(validity)은 인정하지만, 효력(efficiency)은 부정한다.
도나투스파 의 뱁티스마는 그 유효성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한다.
군복 을 입은 군인이 군대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데 군대 밖으로 나갈 경우 탈영 병으로 처벌을 받게 되는 것과 같이 성령의 임재가 머무는 교회를 떠나 받 은 뱁티스마는 구원이 아니라 심판을 가져올 것이다.60)
도나투스파가 뱁 티스마에 약속된 구원의 효력을 얻고자 한다면 성령이 머무시는 유일한 참된 교회인 가톨릭교회와 연합해야 한다. 성령이 교회에 주시는 은사 역시 교회의 연합을 위한 것이다.61)
56) Augustine, Homilies on the Gospel of John, 6.14[WSA III/12:134]. 아우구스티누스는 참된 교 회와 순수한 교회를 개념적으로 구분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이런 구분은 칼빈에 의해서도 계승되 었다. Calvin, Institutes, IV.1.17, 20.
57) Augustine, Homilies on the First Epistle of John, 6.11[III/14:99].
58) Augustine, Homilies on the First Epistle of John, 6.11[III/14:99].
59) Augustine, Homilies on the Gospel of John, 6.12[WSA III/12:13; 6.9[WSA III/12:128-29].
60) Augustine, Homilies on the Gospel of John, 6.15[WSA III/12:135]; Sermon, 266.7[269].
61) Augustine, The Trinity, 15.19.34[422]; Expositions of the Psalms, 143.3[WSA III/20:363].
아우구 스티누스는 에베소서 4:8과 이 구절이 인용한 시편 68:18 모두 은사를 상징하는 선물이라는 단어를 복수형 “선물들”(gifts) 언급한 것을 주목했다.
승천하신 그리스도는 교회에 성령이라는 하나의 선물만 주셨지만, 이 성 령으로부터 교회의 모든 성도는 각자에게 합당한 여러 은사를 받았다.62)
오순절에 기도하던 제자들이 방언을 하게 된 것도 성령께서 구원받은 자 들을 하나의 교회로 연합시키실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63)
성령이 불의 혀와 같이 갈라졌다는 것은 교회의 분열이 아니라 전 세계의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지닌 사람들로 세워질 수많은 교회가 성령 안에서 하나 될 것을 의미한다.64)
바벨탑 사건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인간의 교만이 만들어 낸 것이며 하 나님은 하나로 되어 있는 인간의 언어를 다양한 언어로 분열시키셔서 그 들의 교만을 심판하셨다.65)
그런데 오순절 사건은 성령께서 방언하는 자 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로 연합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마치 하나의 언어를 말하되 서로 연합되어 “한 하나님”(one God) 을 향하여 부르짖었고 “하나의 평화”(one peace)를 유지할 수 있었다.66)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시대에는 사도 시대의 방언과 같은 역사를 볼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67)
왜냐하면 오순절의 방언 사건의 목적, 즉 세상 각국 언어로 이루어질 세계 복음화와 가톨릭교회의 연합이 성취되 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68)
그러나 방언의 현상이 더 이상 없다면 성도가 성령을 받았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오순절 방언 사건의 목적인 “평화 와 연합에 대한 사랑, 교회에 대한 사랑”이 누군가 안에 있다면, 하나님의 성령이 바로 그 사람 안에 거하는 것이다.69)
62) Augustine, The Trinity, 15.19.34[422].
63) Augustine, Homilies on the First Epistle of John, 6.10[III/14:97].
64) Augustine, Homily on the Gospel of John, 6.10[WSA I/12:129].
65) Augustine, Homily on the Gospel of John, 6.10[130].
66) Augustine, Homily on the Gospel of John, 6.10[130].
67) Augustine, Homilies on the Gospel of John, 32.7[520].
68) Augustine, Sermon, 267.3[WSA III/7:272].
69) Augustine, Homilies on the First Epistle of John, 6.10[WSA III/14:97].
아우구스티누스는 기적적인 방언 현상의 연속성이 아니라 성령에 의해 이루어지는 복음 전파를 통해 세워진 교회의 연합을 보여주는 방언의 목적 연속성을 믿었다.
성령은 은사의 주권자이다. 사마리아인들은 사도의 안수로 성령을 받 았지만, 고넬료는 사도가 안수하기 전에 이미 성령을 받았다(행 10:44- 45). “하나님”이시며 “주님”이신 성령은 사도의 안수 없이 “자유롭게” 역 사하신다.70)
그러므로 성령은 인간에 의해 통제받는 분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하시는 분이다. 은사는 사도가 아니라 성령으로부터(from) 주어지며 은혜의 수여자(donator)는 성령이며 인간 사역자는 은사의 봉사 자(ministrator)이다.71)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만 공통적인 분이 아니라 교회의 모든 성도에 게도 공통적인 분이시다. 성령의 역사는 교권을 가진 소수 엘리트나 특별 한 영적 은사자에게만 제한되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독점적으로 성령이 나 성령의 은사를 소유할 수 없다. 성령은 그리스도인의 개인적 영광을 위 해서가 아니라 성도의 연합체인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은사를 주셨다.72)
70) Augustine, Sermon, 266.4[266]-7[268].
71) Augustine, Sermon, 266.3[WSA III/7:265].
72) Mendy, “Augustine’s Theology of the Spirit and Communion Ecclesiology,” 69.
3. 교회의 불완전한 순결에도 불구하고 교회 연합을 추구하는 성령의 역사73)
도나투스파는 도덕적으로 거룩한 교회를 추구하면서 배교자에게 다시 뱁티스마를 받을 것을 요구했던 키프리아누스의 권위에 호소하며 자신들 의 분파주의를 정당화하려고 했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는 오히려 키 프리아누스를 통해 완전한 도덕적 혹은 교리적 순결보다 교회의 연합이 더 우선적인 성령의 일임을 보여주고자 했다.
키프리아누스는 순결한 교회를 세우기 위해 자신과 의견이 다른 교회 들에서 분리되어 키프리아누스파를 만들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견해를 굽히지는 않았으나 자신과 의견이 다른 이들의 결정을 존중하였고 의견 의 다름을 인내하여 교회의 연합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74)
카르타고의 주교는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며 성령이 주신 교회의 연합을 유지하라는 바울의 말(엡 4:2-3)을 실천하였다.75)
순결한 교회에 의한 뱁티스마의 재 시행이라는 키프리아누스의 오류는 “가톨릭[교회와의] 연합에 남아 있고 자”하는 그의 헌신에 의해 “보상되었고” 그의 “순교”로 “사라졌다.” 76)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제자들에게 주신 새 계명 역시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요 13:34). 성령의 모든 열매는 사랑으로부터 시작하며(갈 5:22- 23) 사랑을 통해 하나의 포도송이와 같이 연합을 이루게 된다.77)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형제와의 연합을 유지하기 위하여 모든 것에 관용을 베푼다.78)
형제가 악하다는 이유로 그를 인내하지 못하고 교 회를 떠나면 형제 사랑이 있겠는가? 성령에 의해 이루어진 교회 연합은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엡 4:2)함을 통해서 지탱되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교회 연합을 위해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비둘 기의 울음소리에 비유한다.79)
73) 아우구스티누스가 교회의 연합을 위해 교회의 순결을 희생시킨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에게 교 회의 거룩은 교회 성도 개인의 내적 거룩함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거룩에 의해 유지되며 교회 성 도 개인의 완전한 순결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된다. Brett Williams, “Augustine’s View of the Church as Reserved in His Use of Cyprian’s Contra Donatistas,” Detroit Baptist Seminary Journal 27 (2022): 94. 아우구스티누스는 만일 교회 구성원의 불완전한 거룩 때문에 교회가 성령의 임재를 상실할 수밖에 없다면, 교회는 이미 키프리아누스 시대에 사라져야 했을 것 이라고 주장한다. Augustine, On Baptism, 2.6.8[NPNF 4:428-29].
74) Augustine, On Baptism, 2.6.7[NPNF 4:428]; 5.17.22-23[NPNF 4:474]. 75) Augustine, On Baptism, 6.7.10[NPNF 4:482]; 5.23.33[NPNF 4:475].
76) Augustine, On Baptism, 1.18.29[NPNF 4:424].
77) Augustine, On Baptism, 1.18.29[NPNF 4:423].
78) Augustine, Homilies on the First Epistle of John, 1.12[III/14:34].
79) Augustine, Homilies on the Gospel of John, 6.2[WSA III/12:121-22].
성령은 교회의 연합을 위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롬 8:26) 중보하신다.
물론 성령은 자신의 영원한 신성 안에서 그리고 자기 자신의 어떠함 때문에 신음하는 것은 아 니다.
그 대신 성령은 교회 연합을 위한 영적 교훈을 주기 위해 우리가 하 나님을 향해 탄식하도록 우리 안에서 역사하신다. 성령은 그리스도인이 “친절한 탄식”(gentle moaning)을 통해 교회 밖 에 있는 분파주의자에게 교회로 돌아오라는 사랑의 간청을 하도록 요구 하신다.80)
분파주의자는 노아의 방주에서 나갔으나 돌아오지 않는 까마 귀, 즉 회개를 미루며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떠나 하나님 없이 사는 죄인 의 모습을 상징한다.81)
교회는 분파주의자를 상대로 언쟁과 다툼이 아니 라 그가 돌아오길 간구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그를 격려하고 진 정으로 사랑해 주어야 한다.
그렇다고 아우구스티누스가 교회의 연합을 위한 성령의 역사가 언제 나 간청하는 것만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비둘기는 증 오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둥지를 얻기 위해 부리와 날개로 투쟁한다. 비둘 기의 투쟁에 증오는 없지만 격렬함은 있다.
형제의 오류를 교정해 주어 더 건강하게 되도록 돕지 않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무관심이다.82)
80) Augustine, Homilies on the Gospel of John, 6.15[WSA III/12:135].
81) Augustine, Homilies on the Gospel of John, 6.2[WSA III/12:122].
82) Augustine, Homilies on the First Epistle of John, 7.11[WSA III/14:1113].
IV. 아우구스티누스의 성령을 통한 교회 연합론의 현대적 적용
1. 현대 교회의 연합을 위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적용 한계와 가능성
성령을 통한 교회 연합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이해를 모든 면에서 동일하게 현대 개신교교회에 적용할 수는 없다.
5세기 아우구스티누스의 교회 상황과 21세기 개신교교회 상황은 매우 다르다. 그에게는 모든 교회가 연합되어야 한다고 제시할 수 있는 하나의 가시적인 보편적 교회가 존 재하였으나 개신교교회에는 모두가 연합해야 할 하나의 가시적 교회가 존재하지 않는다.83)
또한 도나투스파와 달리 그 어떤 복음주의 교회도 자 신만이 유일한 참된 교회라고 주장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섣불리 ‘우리’ 교회와 가시적으로 연합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다른 신앙 공동체를 분파적이라고 비판할 수 없다.84)
더구나 어떤 복음주의 교회도 아우구스티누스처럼 정부의 공권력을 사용해 분파주의자들을 징계할 수 도 없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교회 연합에 대한 견해를 오늘날 개신교교회에 그 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또 다른 점은 현재의 개신교 교계는 아우구스티누 스와 도나투스 분파와는 전혀 다른 이유로 교회 분열에 직면해 있기 때문 이다.
영국 성공회와 미국 장로회(PCUSA)는 동성애에 대한 문제로 많은 분열을 경험해 왔다.85)
83) Anthony J. Smith, “Unity or Purity? Augustine’s Donatist Controversy and the Church of England Today,” The Global Anglican 135 (2021): 144; Root, “Augustine on the Church,” 70.
84) 2차 바티칸 회의 이후 로마 가톨릭도 다른 기독교 신앙 공동체에서 태어나 기독교 신앙 교육을 받 은 사람에게 분파주의의 죄를 물을 수 없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아우구스티누스와 달리 그 런 비-로마 가톨릭 신앙 공동체에서 행해진 뱁티스마는 유효성뿐만 아니라 중생의 효력을 지니 고 있다는 견해가 현대 로마 가톨릭교회의 입장이다. 2차 바티칸 회의의 에큐메니즘 선언서 연합 의 회복(Unitatis redintegratio)은 정교회는 교회로, 개신교회들은 “교회적 공동체들”(ecclesial communities)로 제시한다. Root, “Augustine on the Church,” 70-71.
85) 동성애에 호의적인 영국 성공회와의 교제를 단절한 보수적 성공회 연합체 Global Anglican Future Conference(GAFCON)는 2023년 4월 총회에서 영국 성공회와 캔터베리 주교의 회개를 요청하였다. GAFCON은 성명서에서 동성애를 지지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와 가정과 복음의 삶 에 대한 성경의 권위와 충분성을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들은 영국 성공회와의 교제를 단절 한다고 밝혔다. GAFCON, “GAFCON IV–The Kigali Commitment,” https://www.gafcon.org/ news/gafcon- iv-the-kigali-commitment/(2024.02.01. 접속). 또한 미국 장로회(PCUSA) 역시 동성애를 지지한 후 적지 않은 소속 교회들이 이탈하였고 2012년에는 동성애를 반대하는 PCUSA 출신 교회들로 이루어진 A Covenant Order of Evangelical Presbyterians[ECO]이 출 범하게 되었다. ECO의 출범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는 다음을 참조하라. https://eco-pres.org/ our-story/(2024.03.15. 접속).
한국 개신교교회에는 가만히 들어온 이단에 의해 한 교회가 이단 단체로 전락하기도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교회 안에서 가라지 같은 자들을 사랑으로 참아내며 교회의 연합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목회자와 교회 회원 다수가 자유주의 신학이나 이단의 가르침을 수용하여 교회가 가라지화 되는 경우를 염두에 둔 것은 아 니었다. 그러므로 만일 어떤 교회나 교단이 정통 기독교 신앙과 세계관을 거부한다면, 참된 신자가 자신의 교회를, 복음주의적인 교회가 자신의 교 단을 떠나는 것은 허용될 뿐만 아니라 의무인 것이다.86) 그리고 그런 교회 를 떠나므로 참된 교회와의 연합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을 통한 교회 연합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이해는 현대 개신교 교회에 적용될 수 있는 중요한 원리가 있다. 그가 제 시했던 하나의 가시적인 참된 가톨릭교회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 에, 오늘날은 교회의 가시적 연합과 영적 연합이 단지 한 실체의 두 측면 이 아니라 분리될 수 있는 두 개의 개별적 실체로 인식될 수 있다.87)
특별 히 복음주의 교회는 모든 교단이나 교회가 제도적으로 통합된 한 보편 교 회와의 연합이 아닌 본질적인 신앙에 대한 동의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영적 연합을 추구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 영적 연합의 틀 안에서 현재는 제도적으로 분리되어 있으나 같은 신앙 고백서, 같은 구원론, 혹은 교회론 을 소유한 교회와 교단은 그들만의 제도적 연합도 어느 정도 다시 이루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88)
종교 개혁가들이 추구한 교회 연합도 바로 성경적 복음 선포와 성례를 기반으로 한 “내적이며 영적인” 것이었다.89)
86) Calvin, Institutes, IV.2.5-6.
87) Root, “Augustine on the Church,” 72.
88) 김진영, “합동개혁-개혁, 교단 통합…‘예장 개혁’으로 새 출발”, https://www.christiandaily. co.kr/news/128739#share/2024.2.2.접속). 2023년 9월 25일에 두 교단은 같은 신학과 신앙을 토대로 “예장 개혁”으로 통합하였다.
89) 이경직, “교회 일치와 분열의 기준”, 22.
2. 성령에 의한 교회의 영적 연합을 위한 실제적 적용점
아우구스티누스의 성령에 의한 교회 연합의 신학으로부터 복음주의 교회가 취할 수 있는 실제적 적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교회는 교회 연합의 신학적 근거이신 성령에 대한 삼위일체론적 이해를 강화해야 한다. 아 우구스티누스에게 교회론은 무엇보다 삼위일체론적 이슈이며, 특별히 교 회의 연합은 성령론적 이슈이다. 교회의 연합을 위해 성령의 인격과 사역 을 의지할 것을 강조하기 이전에 내재적 삼위일체의 연합에 드러난 성령 의 위격적 속성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교회 연합을 성 취하시는 성령의 사역은 그분이 구속사에서 임의로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성부와 성자의 연합자이신 그분의 위격적 속성에서 나온 필연적 결과이기 때문이다. 성령의 위격적 속성과 경세적 역할에 대한 신학적 교육은 성도 로 하여금 성령님의 주도권과 능력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만들 것이다. 성 경의 권위와 정통신학을 소중히 여기는 복음주의 교회는 교회나 교단에 분열의 조짐이 보일 때 정치적 해결을 위한 당파적 활동보다 우선적으로 성령에 관한 말씀 연구와 그분의 사역을 간구하는 기도에 헌신해야 한다. 둘째, 교회가 완전하지 못하다는 이유에서 혹은 기독교 신앙의 비본질 적인 교리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분열을 발생시키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90)
교회의 완전한 교리적, 도덕적 순결은 참된 교회의 종말론적인 소 망으로서 현세대에는 실현될 수 없다. 따라서 기독교의 근본 진리에 속한 교리와 자신이 속한 교단의 핵심적인 신념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면, 성 도 개인과 교단에 속한 교회는 상대방의 견해를 존중하고 교회나 교단에 서 스스로를 분리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히포의 감독은 교회의 연 합을 파괴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도 알지 못하며 성령을 거스르는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엄중히 경고한다.
물론 교회가 로마 가톨릭교회처럼 복 음을 상실하고 교회의 예배와 성례를 그리스도의 뜻에 어긋나게 우상 숭 배적 요소로 채운다면 종교 개혁가들처럼 당연히 그런 교회에서 분리되 어야 할 것이다.91)
90) 이경직, “교회 일치와 분열의 기준,” 70; 안치범, “개혁주의 교회론에 입각한 하나의 교회에 대하 여: 교회 연합 운동에 대한 비판”, 「신학지평」24 (2011): 234; 임원택, “교회 분열에 대한 죤 오우 언의 이해”, 「역사신학논총」 10 (2005): 113.
91) 로마 가톨릭에서 분리된 종교 개혁 운동의 신학적 정당성에 관하여 다음의 자료를 참조하라.
Calvin, Institutes, IV.2.2-10.
그러나 칼빈과 그루뎀이 지적하듯, 개인적 야망이나 교만 혹은 사소한 교리적 차이를 이유로 교회 분열을 추구하는 것은 그리스 도의 몸을 찢어 버리는 끔찍한 죄이다.
만일 교회나 교단에서 기독교 신앙 의 근본적 교리나 교단의 핵심적 가치에 속하는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이 슈들에 대한 심각한 의견 차이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우구스티 누스가 키프리아누스의 경우에서 제시했듯, 다수의 의견을 형성하거나 교 회나 교단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도자는 소수의 견해를 정죄 하거나 교회나 교단의 멤버십을 박탈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반면 소수에 속한 그룹은 교리적 순결을 이유로 또 다른 교회나 교단을 형성하지 않도 록 해야 한다.
셋째, 성령이 주시는 은사의 궁극적 목적은 교회 연합을 위한 것이다. 은사 문제로 많은 복음주의 진영이 분열되고 교회도 내분을 겪고 있다.
아 우구스티누스의 은사중지론적 입장에 대해 복음주의 교회들 안에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복음주의 교회는 어떤 뛰어난 은사의 활용이라 도 교회 분열의 원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아우구스티누스에게 동의할 것이다.
성령은 은사의 주권자이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헛된 욕심 으로 은사를 구하거나 타인의 은사와 자신의 것을 비교하여 자신에게 주 어지지 않는 은사로 인해 자괴감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이런 태도 는 교회 연합을 파괴한다. 그 대신 은사자는 자신이 은사의 봉사자일 뿐 수여자가 아님을 명심하고 주권자인 성령 앞에서 언제나 겸손을 유지해 야 한다.
넷째, 교회는 자신에게서 이탈한 자들과 분열을 일으키는 자를 향해 탄식하는 사랑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들과 논쟁하고 싸우기보다 그들 에 대한 진정한 사랑으로 교회로 돌아오도록 간청해야 한다.
그러나 아우 구스티누스가 지적했듯 분파주의자에게 회개를 요구하기 전에 교회가 먼 저 세속적인 욕망에서 돌이키고 자신의 죄악을 회개해야 한다.
동시에 교 회가 분파적 활동을 하는 자를 바른 신학으로 교정하는 것 또한 성령에 의한 사랑의 역사이다.
분열의 상황에서도 바른 교리의 중요성에 대한 교육 과 필요한 신학적 교정은 이루어져야 한다. 이단이나 분파주의 그룹에 속 한 자를 신학적으로 교정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인내와 사랑이다. 그 렇지 않다면 신학적 교정은 자칫 신학적 강요와 폭력으로 변질 될 수 있 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도나투스파로부터 가톨릭교회를 보호하고 도나투 스주의자들의 회심을 위해 로마 정부의 공권력을 의지한 것은 오늘날 어 떤 복음주의 교회에도 적용될 수 없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가 도나투 스파를 대하던 주된 방식은 책을 저술하고, 공개적 신학 토론을 제안하고, 직접적인 개인적 만남을 통해 도나투스주의자가 가톨릭교회로 돌아오도 록 하는 것이었다.
히포의 주교에게 분파주의와 이단에 속한 자의 회심을 얻는데 가장 효과적인 신학적 교정방식은 양심의 자유가 보장되는 상황 에서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이었음도 잊지 말아야 한다.92)
다섯째, 우리는 교회 제도와 성령의 역사를 동일한 것으로 보지 않아 야 한다. 과거 로마 가톨릭교회는 교회 제도와 성령의 역사를 동일시하여 교회와 성령과의 실제적 연합을 추구하기보다는 제도로서의 교회를 비판 없이 옹호하였다.93)
가시적 교회의 제도와 일치하는 것이 곧 성령과 연합 하는 것으로 왜곡된 것이다. 또한 로마 가톨릭의 교권을 가진 자들이 성령 의 인도하심과 주권적 역사에 민감하지 못하고 교회의 전통에만 얽매였 다.94)
92) Edward L. Smither, “Persuasion or Coercion: Augustine on the State’s Role in Dealing with Other Religions and Heresies,” LBTS Faculty Publications and Presentations 14(2006): 1-38.
93) Joseph Ratzinger, “The Holy Spirit as Communio: Concerning the Relationship of Pneumatology and Spirituality in Augustine,” Communio 25 (1998): 333-34.
94) Gabriel Mendy, “Augustine’s Analogy Between the Spirit in the Church and the Soul in the Body and Its Implications for Communion Ecclesiology” (Ph.D. Dissertation, McAnulty College and Graduate School of Liberal Arts, 2009), 75.
안타깝지만 복음주의 안에 있는 교회와 교단 안에서도 독보적인 지 도력을 인정받는 정치적 리더가 로마 가톨릭이 범한 오류를 범하기도 한 다.
성령의 주권적 인도하심에 근거하지 않은 인간 리더 중심이나 제도 중의 연합은 진정한 교회 연합을 이룰 수 없다.
그러나 반대로 성령의 임 재를 교회의 가시성, 제도성과 어울릴 수 없는 반대 개념으로 이해하여 예 측할 수 없는 성령의 역사만을 추구하여 말씀의 권위와 교회의 제도를 부 인하는 극단적 은사주의도 경계해야 한다.
V. 나가는 말
5세기 아우구스티누스는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신념으로 정통 기독교 신앙을 공유한 도나투스파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하면서 성령을 통한 교회 연합의 신학을 발전시키는데 상당한 헌신을 하였다.
아우구스 티누스는 성령이 수많은 사람을 한 영혼처럼 연합시킬 수 있는 것은 내재 적 삼위일체 안에서 연합하게 하시는 그분의 위격적 속성 때문임을 보여 주고자 했다.
영원한 삼위의 관계에서 성령은 성부와 성자의 친교이자 상 호적인 사랑이시며 공통의 선물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은 구속사에 서도 교회의 연합자가 되시며 교회 안에 있는 성도 간에 그리고 교회와 하 나님 사이에서도 연합을 만들어 내신다.
인간의 영혼이 온몸의 지체와 연결되어 모든 몸의 지체를 연합시키듯, 삼위일체의 연합자이시며 교회의 영혼이신 성령도 교회의 다양한 지체를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연합된 한 몸으로 연합되도록 하신다.
은사의 종류 는 다양하지만, 목적은 교회 연합이며 인간 성직자가 아니라 성령께서 은 혜를 수여하시는 분이시다. 따라서 교회나 교단에서 교권을 지닌 지도자 나 혹은 교회의 제도가 은사의 주권적 수여자이신 성령과 동일시되어서 는 안 된다.
동시에 극단적 은사주의에서 보이듯 성령의 역사라는 이름으 로 교회의 제도와 권위를 부정하는 것 또한 교회 연합의 주이신 성령을 따 르는 것이 아니다.
성령은 교회가 섞인 몸임에도 불구하고 외적, 내적 교 회 연합을 위해 역사하신다. 성령은 교회가 분파주의자를 긍휼히 여기고 그가 교회로 돌아오도록 간청하는 탄식의 기도를 하게 하시며 동시에 그 를 신학적으로 교정하기 위한 헌신을 요구하신다.
오늘날 아우구스티누스처럼 하나의 가시적 교회에 연합하지 않는다 고 모든 형태의 교회 분리를 분파적인 죄로 정죄할 수 없다.
교부시대에는 현대적 교단이라는 시스템이 생겨나기 이전이었으며 당시 대부분의 교회 분리는 기독교의 근본 신학을 부인하는 이단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러 나 더 바른 신학을 위해, 더 거룩한 교회를 위해 불가피하게 이루어졌다는 개신교에서 일어난 수 없이 많은 교단과 교회의 분리가 다 정당화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20세기에 발생한 복음주의 기독교회의 많은 분열은 기독 교의 근본적 진리가 부인되거나 혹은 분리가 아니고서는 하나님께 순종 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서가 아니라 개인적인 영광과 권력을 갖기 위해 그리고 사소한 교리 논쟁으로 교회 안에 분열이 일어나고 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논자는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교회 연합에 대한 다섯 가지 실제적 교 훈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첫째, 모든 교회 구성원은 교회 연합이 내재적 삼위일체에서의 성부와 성자의 연합을 이루시는 성령의 위격적 역할에서 비롯됨을 깊이 이해하고 그런 성령님을 더욱 의지해야 한다.
둘째, 기독교 신앙의 근본적 교리가 아닌 영역에서의 신학적 차이가 일어날 경우, 교회 는 모든 다양한 견해를 수용할 수 없다 하더라도 다른 의견의 소유자를 존 중하는 태도를 유지하며 성도들 간에 연합을 추구해야 한다.
셋째, 은사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교회의 연합을 위한 것이며 은사는 은사의 수여자가 아니라 봉사자임을 알고 성령님의 임재 가운데 겸손을 유지해야 한다.
넷 째, 교회에서 분열시키는 자에게 교회는 회개를 위한 사랑의 호소와 관용 을 베풀고 동시에 교리적 오류는 교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섯째, 교회 연합에 있어 성령의 주권에 대한 가르침은 교권에 대한 충성심과 성령에 대한 복종이 동일시되는 것에 대한 주의를 요구한다.
Abstract
Augustine’s Understanding of the Unity of the Church Through the Holy Spirit
Dong Sun Cho (Korea Baptist Theological University & Seminary)
This paper examines Augustine’s view of the role of the Holy Spirit in the unity of the church. In his debate with the Donatists, Augustine condemns as a sin their separation from the catholic church in order to establish a completely pure church. In the course of this debate, Augustine presents the unique hypostatic property of the Holy Spirit in the immanent Trinity as the theological basis for the unity of the church, which the work of the economic Trinity accomplishes. The unity of the Trinity is found in the Holy Spirit, who is the communion of the Son and the Father and the mutual love between the two Persons. Since the Spirit proceeds from the Father and the Son simultaneously, He is the common Spirit of both the Father and the Son, and thus the unifier of the two Persons. For Augustine, the reason the Holy Spirit is the unifier of the Church is because He is the unifier of the Father and the Son in the eternal immanent Trinity. As the soul of the church, the Spirit binds the members of the church together and unites her members to the Father and the Son. Those who are separated from the true church have the form of the sacraments 122 조직신학연구 제46권 (2024년) but cannot receive the grace promised by the Holy Spirit, for the Holy Spirit dwells only in the true church, the body of Christ. The various gifts given by the Holy Spirit are to be used for the organic unity of the church. The ministers of the church should humble themselves before the sovereign work of the Holy Spirit, remembering that they are not the givers of the gifts, but only the servants. In the Holy Spirit, the love of God, the members of the church must endure differences of opinion among themselves and preserve the unity of the church. The Holy Spirit makes a loving plea for the schismatics to return to the church. Rather than arguing and quarreling with them, the church should lovingly exhort them to reunite with the true church. Along with the plea of love, however, Augustine also presents the need for the doctrinal correction of the schismatics. The Holy Spirit does not sacrifice truth but rather unites the church in truth. Not all Augustine’s arguments for church unity in the fifth century can be applied specifically to the evangelical church in the Protestant context of the 21st century. The evangelical church today does not have the one visible catholic church that Augustine had. Nevertheless, Augustine’s theological insights into the unity of the church through the Holy Spirit will benefit the spiritual unity of evangelical churches.
[Key words: Augustine, the Donatists, the Holy Spirit, the Unity of the Church, the Immanent Trinity, the Economic Tri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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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연구 제46권 (2024년)
논문 투고일: 2024.02.06. 수정 투고일: 2024.03.20. 게재 확정일: 2024.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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