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초록
본고는 잉글랜드의 정치철학자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가 자신의 주저인 『리바이어던』(Leviathan, 1651)에서 인간, 특히 ‘신중한 사람’을 가리키는 대상 으로 프로메테우스(Prometheus)라는 신화적 인물 을 내세우며 전하고자 했던 내용이 무엇인지 고찰해 보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본 논문은 『리바이어던』 에서 비유되는 프로메테우스는 홉스 자신이었을 수 있다는 관점을 제시한다.
홉스는 ‘이성의 원칙’에 따라 세워질 수 있는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는 주권자의 권 위를 세우고자 시도했으나, 그러한 시도가 불완전함 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홉스는 ‘상상’ 이 직접적 ‘감각’을 통해서만 나타날 수 있다고 정의하 며, 이성적 판단에 따라 신뢰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인식인 ‘그릇된 상상’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
홉스 에 따르면 인간이 따라야 할 행동 방식의 기준은 우리 가 경험할 수 있는 현세(現世)의 비참함과 복됨과 관 련되는 자기보존(self-preservation)의 가능성 여부 에 달려있다.
본고는 이러한 ‘이성적’ 설득을 내세우면 서도 홉스는 여전히 인간이 영원한 구원 등 영원성 (eternity)에 대한 추구와 희망을 놓을 수 없는 존재임 을 인식하고 있었고, 이러한 목적 역시 주권자에 대한 복종을 통해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결론적으로 이에 대한 시민의 확신은 ‘교사’의 이성적 가르침의 영 역을 벗어난 믿음의 영역에 속함을 인정하고 있었음 을 보여준다.
이에 본고는 홉스가 자신을 이러한 지적 한계에서 벗어나게 해줄, 프로메테우스의 결박을 풀 어준 헤라클레스(Hercules)처럼 자신을 미래에 대한 걱정과 이러저러한 공포로부터 해방해줄, 자만할 수 있을 만큼 더 나은 설득력으로 무장한 리바이어던과 같은 후대의 정치철학자를 기다리고 기대하며 자신의 저작을 마무리했음을 주장한다.
주제어: 프로메테우스, 리바이어던, 토마스 홉스, 상상, 자기보존, 영원성, 계몽, 믿음
“인간은 누구나, 특히 남달리 신중한 사람은 프로메테우스- ‘신중한 사람’이란 뜻이다- 와 같은 상 태에 놓이게 된다.
프로메테우스는 광막한 코카서스 언덕에 결박된 채 날마다 독수리 한 마리가 그의 간 을 쪼아 먹는다.
밤이 되면 독수리에게 쪼인 만큼의 간이 다시 회복된다. 앞날을 멀리까지 내다보고 걱 정하는 인간 역시 프로메테우스와 같은 고통을 느끼게 된다.
죽음이나 빈곤이나 혹은 이런 저런 재앙의 공포 때문에 잠시라도 편할 날이 없다.
잠잘 때를 제외하고는” (『리바이어던』 제1부 제12장, 149, 이 하 인용문 안의 모든 강조는 인용자).1)
1) 본 논문에서『리바이어던』의 모든 인용은 진석용 역을 따르며, 부와 장, 그리고 번역서의 쪽수를 적기로 한다.
Ⅰ.들어가며 : 확실성을 추구했던 토마스 홉스
잉글랜드 정치철학자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가 쓴 자서전 문구이자 자신의 어머니가 1588년 스페인의 무적함대 침공 소식에 ‘자신과 공포(fear)라는 쌍둥이를 낳았다’는 내용은 자주 회자된다 (Martinich 1992, 30-31에서 재인용).2)
그리고 위 인용문 에도 적혀있듯 홉스는『리바이어던』에서 ‘공포’라는 감정이 인간의 행동을 추동하는데 주요 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여겼고, 이를 다스릴 수 있는 절대적인 권위를 갖춘 주권자가 정 치공동체에 필요함을 역설한 것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렇게 익숙한 이미지 를 잠시 뒤로하면, 실질적으로 그 주권자가 어떠한 방식으로 인간의 공포심을 다스릴 수 있 는지, 또 그 방식이 홉스가 내세웠던 ‘이성적인’ 해결책에 부합하는지 선뜻 답하기 어렵다.3)
이에 본고에서는 홉스가 인간이 느끼는 공포는 상상(imagination)으로부터 연유한다고 보았 음을 밝히며, 홉스의 과업(課業)은 ‘그릇된 상상’으로부터 ‘올바른 상상’으로 시민을 이끄는 것이었음을 보이고자 한다.
이는 상상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검토가 이뤄지고 난 이후(2 장), 이러한 일깨움을 통해 주권자에 대한 정치적 복종을 정당화하는 홉스의 주요 주장이 도 출되는 과정을 살펴본 뒤(3장), 홉스 주장의 설득력과 그 한계를 지적하는 방식으로 구성하 고자 한다(4장).
홉스의 주권론을 둘러싼 그동안의 논의는 주로 절대적 주권자를 표상하는 ‘리바이어던’의 권한과 리바이어던 자체를 구성하는 시민의 자유 사이 일견 모순적인 긴장관계를 해소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4)
2) 해외 인명을 적을 때 홉스 당대의 인물을 거론할 때는 성과 이름 모두를, 이후 연구자나 학자 등을 명시할 때는 성만 적어 일종의 구분을 해두고자 한다.
3) 『리바이어던』에서 홉스는 지속적으로 자신의 주장이 이성적 추론에 따른 것임을 밝히고 있다. 홉스는 제3부 인 “기독교 코먼웰스에 대하여”를 시작하며 이전까지의 논의에서는 보편적 이성에 따라 추론한 내용을 전했지 만 이후부터는 “하느님의 자연적 말씀과 더불어 예언적 말씀”을 자신의 논의의 근거로 삼을 것이라 밝히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아무리 초자연적인 계시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성적으로 풀이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하 느님의 말씀 중에는 이성을 초월하는 것들이 많이 있다. 자연적 이성으로는 증명도 할 수 없고, 반증도 할 수 없는 그런 것들 말이다. 그러나 자연적 이성에 어긋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이다 (『리바이어던』 제3부 제32장, 23-4).
4) 본고의 관점과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홉스의 은유에 주목하며 해당 은유를 통해 나타나는 주권자와 신민 간 관계에 주목한 연구와 관련해서는 김태진(2017)을 참고해 볼 수 있다.
홉스의 정치저작『시민론』 (De Cive, 1642 [1647])의 (간과되어 왔던) 한 구절을 인용하며 턱(Tuck)은 후자의 입장에서 좀 더 ‘자유주의적’인 리바 이어던을 그린다.
턱은 홉스를 비롯한 17-18세기 정치사상가들의 논의를 검토하며 “통치권을 지닌 자가 모든 판단, 협의, 공적 활동에 관여하고자 하는 것은 신이 자연 질서에 반하며 만물을 돌보시는 것과 같은 운영방식”이기에, “주권을 향유하는 입법자는 제도적 형태는 갖추었지만 대부분 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논한다.
“잠자고 있는 주권자”는 통치 (governance)와 관련된 일상적인 문제 모두에 몰두할 필요 없이 법과 관련된 근본적인 문제 가 제기될 때만 스스로 일어나 주권자의 임무를 행한다는 것이다.
즉, 주권자는 상당 시간 동안 잠자고 있다 (Tuck 2016, 94, 251-2).
이러한 턱의 관점과는 상반된 입장에서 슈워츠 (Schwartz)는 『리바이어던』에서 그려진 홉스적 주권자는 그의 신민이 “잠들어 있는 상태” 에 있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고 밝힌다. ]
일견 이는 공포정치를 통해 신민을 숨죽이 게끔 한다고 읽힐 수 있지만, 슈워츠의 주장은 신민이 여러 상념에 빠지지 않고 정신적(혹은 심리적으로) 고요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주권자가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다만 그러한 신민이 흔들리지 않고 지녀야 하는 생각은 ‘주권자에게 모든 것을 일임한다’는 내·외적 명령이 다.
이러한 논의 속에서 잠자고 있는 대상은 바로 신민이다 (Schwartz 2020, 157).
본고는 이러한 두 해석 갈래를 두고 홉스가 기존 통념에 비해 좀 더 너그럽고 ‘자유주의적’ 인 주권자를 그려내고자 했는지 혹은 전통적인 해석에 맞춰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주권자를 내세웠는지에 대한 논쟁에 추가적인 관점을 제시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러한 학적 논쟁에서 조금 벗어나 본고는 왜 홉스가 프로메테우스를 언급하며 논의를 시작했으며, 또 인간이- 그 대상이 누구이든- 프로메테우스와 같은 처지에 있다면, 공포에서 벗어나 쉬이 잠들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을 탐구해 보고자 한다.
결론부터 미리 말하자면, 홉스는 프로메테우스 처럼 알 수 없는 앞날에 대해 미리 ‘상상’하며 걱정하는 인간에게 어떠한 확실성(certainty)을 부여하고자 했다. 홉스에 따르면 ‘감각’을 통한 ‘상상’이라는 요소로 인해 우리는 어떤 대상을 인지하므로, 이성적 판단에 따라 신뢰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인식에 대해서 우리는 충분히 거부할 수 있다(2장).
이에 홉스는 인간이 ‘그릇된 상상’에서 벗어나 ‘올바른 상상’을 하도록 하며, 시민이 내세(來世)의 고통과 행복이 아닌 현세(現世)의 비참함과 복됨과 관련된 자기보 존(self-preservation) 문제에 집중해 정치적 주권자의 명령에 맞춰 정치적 불안정성을 극복 할 수 있는, ‘이성적 원칙’을 따르는 길을 제시했다(3장).
홉스는 사람들을 그러한 길로 인도하 기 위해 “지력(understanding)을 사로잡아야” 함을 내세웠지만5), 본고에서는 역설적이게 도 홉스가 자신이 내세웠던 최종적인 결론은 믿음의 영역에 두었음을 보여줄 것이다.
5)『리바이어던』 제3부 제32장, 24.
정치적 주권자에게 복종하면 현세에서든 내세에서든 영원한 구원과 같은 행복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가르침은 믿음의 영역이고, 인간 즉 주권자의 능력을 벗어난다는 것이다(4장).
그리고 마지막 결론에서는 이러한 한계를 스스로 깨닫고 “잠시라도 편할 날이 없”던 남달리 신중한 사람 ‘프로메테우스’는 바로 홉스 자신이었고, 그는 프로메테우스의 결박을 풀어준 헤라클레 스(Hercules)처럼 자신이 잠들 수 있도록 할, 더 현명하게 현재와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리바이어던’과 같은 이후 정치철학자를 기다리고 있었을 수 있다는 견해를 제시하고자 한다.
Ⅱ.신의 존재 ; 감각과 상상밖에 있는 존재에 대하여
홉스는 정치저작인『리바이어던』을 시작하며 인간의 인식과 앎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다룬다.
이러한 논의 구성은 한편으로는 당대 이뤄지던 형이상학적 논쟁을 염두에 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그보다 좀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정치적) 삶의 문제를 대하는 홉스의 철학자적 태도가 드러나는 부분이라 볼 수 있다.
홉스는 우리를 ‘기억’으로 이끄는 ‘상상’이라 는 요소가 ‘감각’에 기반한다고 정의하며 우리가 직접 경험할 수 없는 대상에 관한 설명은 ‘그릇된 상상’일 수밖에 없음을 지적한다.
그 대표적인 예로 우리는 직접 경험하지 못하는 신에 대해 알 수 없다. 하지만 홉스는 인간 사고의 영역을 이렇게 좁게 제한해두지 않는다.
우리가 무언가 믿고 이해한다면 그것에 대해 확신하여 이를 뇌리에 남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예로 홉스는 장님에게는 불의 존재가, 인간에게는 신의 존재가, 그리고 시민에게는 주권자의 존재가 새겨질 수 있음을 내세운다. 본 장에서는 『리바이이던』 제1부의 내용을 검토하며 앞의 두 존재를 설명하는 홉스의 논의를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에서는 이러한 논의를 기초로 하여 홉스가 남은 제2-4부에 걸쳐 주권자를 어떻게 형상화하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주지하듯 홉스는 잉글랜드 내전 시기 정적(政敵)의 박해로부터 벗어나 있기 위해 1640년 프랑스 파리로 망명을 떠났다.
그리고 프랑스에 머문 1640년대에 주로 물리학과 형이상학 탐구에 몰두했고, 정치적인 문제로 관심이 돌아선 때는 1640년대 후반이 되어서라고 알려져 왔다 (Malcolm 1996, 29).
(역사적) 저술 시기를 토대로 하여 저자의 저술 의도를 명확히 밝혀내고자 하는 연구방법론은 여전히 논쟁적이지만,6) 『리바이어던』 저작 자체에 대한 홉스의 직접적인 언급은 1650년 5월 편지에 적혀있고 실질적인 집필을 한 시기는 1649년 겨울부터 출판된 1651년 사이라고 밝혀져 있어 그의 학적 관심이 어느 정도 시기를 거쳐 이동했다고 보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을 듯하다 (Malcolm 2012, 1; Schuhmann 2004, 17).7)
6) 정치적 저작 특히 정치철학서로 알려진 저작의 해석 방법론을 두고 여전히 많은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20세기 중후반에 이뤄진 소위 텍스트주의자로 알려진 스트라우스(Leo Strauss)와 컨텍스트주의자로 알려진 스키너(Quentin Skinner) 간 논쟁을 포함하여 구체적인 정치사상 방법론은 물론 정치철학자, 정치사상가, 혹은 정치 사상 연구자 자체의 역할을 두고 여러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관련하여 정치사상 연구 방법 일반과 관련 최근 국내에서의 관심 역시 지속적으로 이어져왔다 (대표적으로 홍태영(2017), 안두환(2021), 김민혁(2023)을 참 고). 홉스 연구와 관련 해당 논의는 Burgess(1990)를 참고해 볼 수 있다.
7)『리바이어던』에 담길 주요 생각들은 집필을 시작하기 이전에 이미 확립되어 있었고 이후에 수정된 부분은 미미했다는 지적도 있어왔다 (Malcolm 2012, 11).
다만 그러한 관심을 이끈 주된 고민이 무엇이었는지는 검토가 필요하다. 상술했듯『리바이어던』첫 두 장의 제목은 각각 “감각(Sense)에 대하여”와 “상상 (Imagination)에 대하여”이다. 홉스는 당대 학문의 주류를 형성하던 스콜라 학파가 “상상이 무엇인지, 감각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자기들이 배운대로 가르치고” 있는데, 이는 이들 “현자”에게 부여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라 비판하고 있다.
그 마땅히 해야 할 일이란 바로 신의 이름을 빌려 사적 이익 혹은 권력을 차지하고자 하는 “악인”에 맞서 “올바른 이성적 판단”을 내리는 일이다.
홉스에 따르면, “악인들은 제 스스로 그것이 진실이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하 느님의 전능을 내세워 무슨 주장이든 서슴없이 한다.
현자의 역할은 그런 주장들에 대해 올바른 이성적 판단을 내리고, 신뢰할 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은 거부하는 일이다.
이러한 미신적인 정령 공포가 사라지고 나면, 그와 함께 해몽이나 거짓 예언 따위의, 교활한 야심가들이 순박한 사람들 을 이용하려고 할 때 부리는 많은 술수들이 사라지고 나면, 사람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정치적 복종을 잘하게 될 것이다” (『리바이어던』 제1부 제2장, 38-9).
즉 홉스는 ‘악인’과 같은 일부 종교인들이 내세우는 미신을 물리쳐 정치적 권위자에 대한 위상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스콜라 학자를 위시한) 현자가 감각이 무엇이고 상상이 무엇인지 명확히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홉스의 관심은 당대 주류 스콜라 학파가 받아들이 던 – 그래서 『리바이어던』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soul) 논의 를 두고 이뤄지던 (자연)철학적 논쟁과 무관하지 않다.8)
8) 제5차 라테라노 공의회(The Fifth Lateran Council, 1512-1517)에서는 철학자들에게 신앙(faith)뿐만이 아 니라 이성의 빛(light of reason)에 기초하여 영혼의 불멸성(immortality of soul)을 입증하라고 명령했다. 교회 로부터 제기된 이러한 요구는 근대 초기 내내 악명을 떨쳤던 이탈리아 르네상스 철학자 피에트로 폼포나치 (Pietro Pomponazzi, 1462-1525)에 의해 명확히 거부되기도 했다. 폼포나치는『영혼 불멸에 관한 논문』 (Treatise on the Immortality of the Soul, 1516)에서 전통 신학 입장에서 보았을 때 신앙으로 인해 알려진 교리는 이성의 결론을 능가하기에 영혼 불멸성에 관한 논변은 “자연적 이성”에 의해 보충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대한 반박으로 교황청에서는 “기독교인은 합리적인 영혼이 영적이고 불멸하다는 것을 의심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계속해서 견지했다 (Eustachius 1998, 89). 물론 영혼에 대한 탐구 자체가 자연철학 연구에 적합한지 여부도 논쟁의 대상이었다. 예를 들어, 1596년에 처음 출판된 장 보댕(Jean Bodin, 1530-96)의 『보편적 자연 극장』(Theatre of Universal Nature)에서 등장하는 한 대담자는 인간의 영혼이 “자연에 속하는지”에 대한 물음으로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Bodin 1605: 431–2).
그리고 이는 ‘인간의 인식은 무엇으로부터 어떻게 형성되는가’라는 문제와 맞닿아 있었다.
만약 인간의 인식이 자연 혹은 외부적 대상이 전달하는 정보를 그대로 전해 받는다면, 인간은 여타 자연적 물질(natural material)과 구분될 수 없을 것이다.
이와는 달리 인간 내부적으로 외부적 대상에 대한 인지나 해석이 가능하다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는 무엇인지 밝혀져야 했다 (McCracken 1998; Simmons 1999).
이러한 논쟁이 벌어지고 계속되었던 이유는 당시 ‘이성적 영혼(rational soul)을 지니고 있는 존재가 곧 인간’이라는 명제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의 스콜라 철학자 루돌프 고클레니우스(Rudolph Goclenius)는 이 문제를 두고 인간의 본질은 곧 영혼이 라고 주장하는 ‘플라톤주의’와 영혼은 인간을 구성하는 하나의 부분이라고 주장하는 ‘아리스 토텔레스주의’가 구분된다고 정리하기도 했다 (Goclenius 1613: 105).
어떠한 견해를 따르 든 ‘이성적 영혼은 비물질적(immaterial)이다’라는 관점을 부정하는 부류는 당대 흔치 않았 다.
물질(matter)은 인간의 이성적 사고틀 내에서 사물을 지각하거나 개별자로부터 전체를 사고하는 추상화 과정을 추동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Eustachius 1998: 85).
해당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이후 주목받았던 인물은 잘 알려져 있듯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였다.
데카르트는 영혼, 즉 정신을 신체와 구분해 생각했다.
데카르 트의 논의에 따르면,
신체는 “신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하나의 기계”인 반면, 정신은 “물질의 잠재성으로부터는 어떤 방식으로든 파생될 수 없기에 특별히 창조되어야 하는” 부분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특히 이성적인 부분을 형성하는 인간의 정신은 이전까지는 동물과 공유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던 유기적이고 감각적인 부분과는 별개의 것으로 여겨진다 (Descartes 1637, 134-141).
이러한 데카르트의 주장을 두고 잉글랜드 카톨릭이자 망명자였던 케넬름 딕비(Kenelm Digby, 1603–1665)는 데카르트에 대해 “알아야 할 가치가 있는 것에 대해 무지한 우리에게 어떠한 변명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고 칭송했다 (Digby 1644: 275).
그리고 관련하여 딕비가 저술한『두 논문』(Two Treatises)은 1644년 파리에서 출판된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영어와 라틴어로 재출판되었다.
이러한 논쟁이 열띠게 이뤄지고 있던 1640년대에 파리에 망명해 있던 홉스가 어떠한 관점을 취했고, 또 이후 정치저작을 기술할 때 어떠한 영향을 받았는지를 두고 많은 연구가 (Pomponazzi 1948: 321, 379). 이뤄져 왔다.
전통적인 관점에서는 홉스가『리바이어던』까지 이어진 일련의 정치저작을 쓴 이유를 두고 자연철학적 설명을 배경으로 하여 도덕이론과 정치이론을 기술해 총체적인 철학적 체계를 구축하려고 했던 목적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Johnston 1986, xv; Martinich 1992; Dungey 2008).
더 나아가 일부 학자들은 홉스의 정치철학은 자연철학으로부터 이끌 어졌다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Ryan 1970; Spragens 1973; Goldsmith 1966), 다른 한편에 서는 두 논의 영역이 전혀 관계가 없다고 정의되기도 했다 (Warrender 1957).
이러한 해석의 갈래 중에서 본고는 홉스가 인간의 지적 능력과 인간들로 인해 구성되는 정치사회의 안정성 모두에 관심을 가졌으며, 그 중심에는 상상이라는 개념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관점 을 견지하고자 한다.9)
홉스는 신체와 정신을 구분하는 데카르트의 설명 방식이 정치철학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지를 고민했다.
그 중 정신의 비물질성을 보증하기 위해 인간이 신의 개념(idea of God)을 명증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데카르트의 논변을 홉스는 철저하게 부정했다.10)
9) 이와는 달리 홉스의 자연철학적 관심이 주로 ‘운동’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관점도 참고해 볼만하다 (이규성·박 영란 2020, 176-177).
10) 홉스가 데카르트와의 교류 이전에 이미 자신이 저작을 통해 풀어놓은 내용과 동일한 관점을 지녔었는지 아니 었는지를 두고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두 사람은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눈 것은 아니지만 프랑스 철학자였던 마랭 메르센(Marin Mersenne)을 통해 교류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Mori 2012). 학술적으로는 1641년 데카르 트가 『성찰』 (Meditations)을 출판했을 때 총 6개의 반박을 받았고, 그 중 홉스는 세 번째 반박문을 작성했다. 홉스가 『법의 원리』를 작성했던 시기는 1640년이었다.
홉스는 인간이 신이라는 심상(image)을 그려볼 수는 있지만, 신을 지각하지 않는 한 그 개념 자체를 가질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이를 설득하기 위해 홉스는 장님이 ‘불’을 통해 온기를 느낄 수 있고 이것의 원인이 불이라는 점도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장님이 아닌 사람처럼 불 자체를 지각하여 그에 대한 개념을 가질 수는 없다고 논한다.
“영원한 유일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 않고서는자연적 원인에 대한 어떠한 심오한 탐구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속에 신의 본성과 합치하는 신의 관념을 그려낼 수는 없다.
이유를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장님으로 태어난 사람이, 불로 온기를 얻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기도 직접 불을 쬐어 온기를 느낀 경험이 있다면, 사람들이 ‘불’이라고 부르는, 그리고 그가 느낀 온기의 원인이 되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또한 확신할 수 있다. 그러 나 그 불이 도대체 어떻게 생긴 것인지는 상상할 수 없으며, 불을 직접 본 사람처럼 마음속에 그려낼 수는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보이는 온갖 사물과 경이로운 질서를 보면서 그 원인을, 즉 사람들이 하느님이라고 부르는 것의 존재를 생각할 수는 있지만, 마음속에 신에 대한 관념 혹은 상(像)을 그려낼 수는 없다.” (『리바이어던』 제1부 제11장, 146)
홉스에 따르면, 인간은 신을 ‘직접’ 보지도 듣지도 못하기에 신을 상상하지도 이에 대해 사고하지도 못하며, 따라서 개념을 가질 수 없다.
그런데 홉스는 인간의 사고(思考, thoughts) 는 감각으로부터 기인한다고 말하며, “감각을 일으키는 대상 그 자체”와 감각을 구분한다 (『리바이어던』 제1부 제1장, 27-28).
존재와 인식을 분리하는 것이다.
즉, 홉스는 거울로부 터 시각적으로 어떠한 대상을 인지하거나 메아리를 통해 청각적으로 어떠한 현상을 받아들이 는 것처럼, 빛깔과 소리는 그 대상과 분리될 수 있다는 관점을 취한다.
그리고 이러한 분리로 인해 홉스는 자신의 주장이 전달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한다.
존재에 대한 앎이 인식이 아닌 믿음에 기초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는 것이다.
하지만 감각 내에서 한 번 시작된 운동은 계속해서 이어지며, 이는 “인간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운동의 경우”에도 별반 다르지 않다.
“즉 대상이 사라지거나 눈을 감거나 한 후에도 보던 물체의 상이, 실제로 보고 있을 때보다는 흐리지만, 여전히 남아있다.”
이를 두고 홉스는 상상(imagination)이라 붙이며, 이는 곧 “쇠퇴하는 감각”(decaying sense)이라고 정의한다 (『리바이어던』제1부 제2장, 32).
홉스는 쇠퇴하는 감각인 상상은 꿈 속에서도 이어지는데, 이러한 상상은 (데카르트의 논변과는 달리) 생각보다 강렬하게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인간은 실제인 현실과 공상인 꿈을 구별하지 못한다.
“잠자는 동안에는 인체 내부의 감각기관 들의 자극에 의해 생기는 것 이외에는 어떠한 상상도, 즉 꿈도 생길 수가 없”는데, 이때 “더욱 강렬한 인상으로 그 꿈속의 심상을 압도하거나 흐리게 할 수 있는 새로운 대상이 없”기에 “꿈은 우리가 생시에 하는 생각 이상으로 선명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감각과 꿈을 엄밀하게 구별하기가 어려우며,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생시와 꿈을 구별할 수 없다고 한다” (『리바이 어던』제1부 제2장, 35).
그럼 인간이 꿈에서 깨어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홉스는 두 방법을 제시한다.
바로 지각 할 다른 대상이 나타나서 앞의 심상을 흐리게 하거나, 꿈에서 보았던 심상에 대한 기억이 약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어떤 대상물이 우리 눈앞에서 사라진 후 그 인상이 남아 있어도 곧 다른 대상이 나타나 시각에 작용하면 앞의 심상은 흐려지고 약해진다... 이로부터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어떤 대상을 보거나 혹은 감각하고 난 후의 시간이 길면 길수록 그 심상은 그만큼 약해진다는 것이다” (『리바이어던』 제1부 제2장, 33).
홉스의 논의를 받아들이면, 인간이 그릇된 정보나 생각으로부터 벗어나는, 즉 악인의 미신으로부터 벗어나 정치적 권위자를 따르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시간이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홉스는 이는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을 수 있다고 덧붙인 다.
바로 이전에 눈앞에 나타난 인상이 아주 강렬한 경우에는 그로부터 벗어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꿈과 생시를 구별하기 가장 어려운 때는 어떤 이유로 자기가 잠을 잤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때이다.... 이런 일은 결코 드물지 않다. 소심하고 미신적인 사람이 무서운 이야기에 홀린 상태에서 어둠 속에 홀로 있으면, 완전히 깨어있는 경우에도 그와 같은 환각에 빠지기 쉽다” (『리바이어던』제1부 제2장, 36-7쪽).
만약 홉스가 스콜라 학자들이 응당 해야했던 학적 의무를 자신이 대신 해야 한다고 여겼다면,『리바이어던』의 이어지는 장들에서는 홉스가 깨우고자 했던 (소심하고 미신적인) 사람들을 홀린 ‘무서운 이야기’로부터 벗어나 ‘올바른 상상’으로 이끌고자 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다음 장에서는 그 상상의 내용이 무엇인지 살펴볼 것이다.
Ⅲ.폭력적 죽음에 대한 두려움 : 이성의 원칙을 통한 리바어던 설립가능성
이전 장에서 논했듯 기존 연구에서는 홉스가 ‘상상’이라는 요소로 인해 주권자의 권위는 물론 국가의 질서 및 안정성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 초래된다고 여겼고 이 문제를 『리바이어 던』 논의를 통해 해소하고자 했다고 지적한다 (Schwartz 2020; Douglass 2014; Hoekstra 2004, 140; Lloyd 1992, 244; Johnston 1986, 99-103).
그 중 더글라스(Douglass)는 홉스 가 어떠한 방식으로 독자의 상상을 종교에서 내세웠던 이미지가 아닌 ‘필멸의 신(mortal God)’인 군주의 이미지로 치환하고자 했는지를 검토한다.
그리고 이러한 검토의 중심에는 주권자의 권능에 대해 제대로 가르칠 대학 교육을 강조했던 홉스의 바람이 위치한다 (Douglass 2014, 139, 146).11)
11) 이처럼 기존 논의에서는 상기 제기된 문제에 대한 홉스의 해결책을 두고 (시민)교육의 역할에 주목해왔다 (Bejan 2010; 2018).
실제로 홉스는 제2부의 결론이라 할 수 있는 제30장인 ‘주권을 지닌 대표자의 직무에 대하여’에서 주권자의 직무를 열거하는데, 그 중 거의 절반 가량을 교육과 관련된 내용으로 채웠다.
그리고 이어서 제3부의 제42장이자『리바이어던』 내에서 가장 긴 분량을 차지하는 장인 ‘교권(敎勸)에 대하여’에서 홉스는
“이교도들의 코먼웰스에서는 주권자를 인민의 목자 라고 불렀다. 주권자의 허가와 권한의 위임을 받지 아니하고서는 인민들을 합법적으로 가르 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밝히며 주권자가 정치공동체 내에서 이뤄지는 교육에 신경써야 함을 내세운다 (『리바이어던』 제3부 제42장, 232).12)
그런데 이처럼 주권자가 합법적 권한과 책무를 지닌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코멘월스의 시민들이 그를 ‘인민의 목자’로 여기고 그의 명령을 순순히 따를지는 알 수 없다.
이와 관련 슈워츠(Schwartz)는 상상이라는 요소를 통해 제기되는 “문제가 상당히 끈적 (sticky)하기에 교육이라는 수단을 통해 완전히 제거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어떠한 교육이 나 명령을 통해서 주권자가 전하는 메세지만으로는 시민이 상상하고 기억하는 공간 속에 선명하고 생생한 심상을 남기지 못해, 종교 지도자, 예언자, 그리고 여타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개인이 국가권력에 맞서 선동하는 시도를 막아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슈워츠는 홉스가 주권자에게 부여한 임무는 시민들이 되도록 “잠든 상태”에 오래 있도록 하여 주권자가 새겨둔 이미지가 그들의 기억 속에서 그대로 선명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목적이 달성되기 위해서는 사회 내 엄격한 검열이 필요함을 홉스가 내세웠다고 주장한다 (Schwartz 2020, 157).
이러한 더글라스와 슈워츠의 주장은 일견 설득력이 있지만, 홉스의 주권자가 이러한 권한 (權限)을 갖기 위해서는 사전에 그러한 권위(權威)를 지녀야 한다는 점을 간과했고, 또한 행위 의 필요성에만 주목해 그 정당성을 어떻게 확립할지에 대한 논의는 소홀했던 것으로 보인다.
교육이든 검열이든 ‘어떻게 지배할 것인가’라고 하는 실천적 차원의 고민 이전에 우리는 ‘어떻게 통치가 가능한가’라는, 즉 주권자가 어떻게 그와 같은 수단을 정당하게 사용할 권위를 갖출 수 있는지를 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전 세기에 마키아벨리가『군주론』의 저술의 목적을 전자로 삼았다면, 홉스는『리바이어던』에서 후자에 대한 고민에 치중했다.13)
12) 그리고 그러한 이교도 왕이 “기독교도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백성을 이끄는 최고 목사요, 교회를 이끌 목사들을 임명하고, 그들에게 신도들을 가르칠 책무를 부과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리바이어던』 제3부 제42장, 232).
13) 마키아벨리는 서신에서『군주론』이라는 “작품은, 만약 그들이 읽기만 한다면, 제가 국가 통치술(arte dello state)에 관해서 연구한 지난 15년을 허송세월하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마키아벨리 2008, 177).
이러한 고민을 염두에 두고 『리바이어던』 제2부의 마지막을 살펴보면, 홉스가『리바 이어던』전반부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비교적 명확하다.
바로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 “코먼웰스”, 즉 “항구적인 구조를 지닌” 정치공동체가 수립될 수 있는 “이성의 원칙” 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동안 인간이 설립한 코먼웰스들이 불완전하고 혼란에 빠져들기 쉬웠다 하더라도, 근면한 성찰을 하는 자에게는, (외부의 폭력이 없는 한) 항구적인 구조를 지닌 코먼웰스를 설립 할 수 있는 이성의 원칙들이 발견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이 글에서 제시한 것이 바로 그러한 원칙들이다” (『리바이어던』 제2부 제30장, 433).
이러한 원칙을 제시했던 홉스의 논의 과정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우선 홉스는 자연상태 (state of nature)를 (가상적으로) 그리고, 그 상태에 놓인 인간의 행위 양태를 설명한다.
홉스에 따르면, 자연은 인간을 서로가 평등한 상태에 놓이도록 만들었고, 자연상태에서 인간 은 한정된 자원 내에서 자기보존(self-perservation)이라는 공통된 목적을 추구하게 됨에 따라 불가피하게 경쟁, 즉 투쟁의 상태를 직면한다.
“자연은 인간이 육체적·정신적 능력의 측면에서 평등하도록 창조했”는데, 이러한 “능력의 평등에서 희망의 평등이 생긴다. 즉 누구 든지 동일한 수준의 기대와 희망을 품고서 목적을 설정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한 다. 같은 것을 놓고 두 사람이 서로 가지려 한다면, 그 둘은 서로 적이 되고, 따라서 상대방을 파괴하거나 굴복시키려 하게 된다. 파괴와 정복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경쟁의 주된 목적은 자기보존이다” (『리바이어던』 제1부, 제13장, 168-169).
홉스는 자연상태에서는 분쟁을 억제하거나 의견충돌을 중재해 줄 공통의 권력자 혹은 재판관이 부재하기에 “다음과 같은 사실이 분명해진다”고 밝힌다.
“즉 인간은 그들 모두를 위압하는 공통의 권력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는 전쟁상태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 전쟁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이다” (『리바이어던』제1부 제13장, 171).
이렇게 홉스가 그리는 전쟁과 같은 자연상태의 모습은 경험적 증거가 부족하기에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할 이들을 두고 홉스는 스스로의 행동 방식을 되돌아볼 것14), 그리고 잉글랜드 내전 등 독자가 알고 있을 법한 역사적 사실을 되짚어 볼 것15)을 촉구한다.
14) “경험적 증거를 제시해 보겠다. 우선 나의 추론에 대해 의심을 품는 그 사람 자신의 행동을 살펴보기로 하자. 여행갈 때는 무장하고, 여러 사람과 같이 가려고 한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반드시 문단속을 한다. 집에 있을 때에도 금고 문을 단단히 잠가 둔다” (『리바이어던』 제1부 제13장, 172).
15) “두려워할 만한 공통의 권력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인간의 삶이 어떠할 것인가 하는 것은 평화로운 국가 생활을 하다가 내란에 빠져들곤 했던 인간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으로도 족할 것이다” (『리바이어던』 제1부, 제13장, 173).
여러 연구자가 지적했듯 이처럼 홉스가 상정하는 자연상태는 일종의 교육적인 기능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으며, 이때 교육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폭력적인 죽음(violent death)에 대한 두려움 양산이라 할 수 있다 (Strauss 1952, 19; Ahrensdorf 2000, 581-82; Cooper 2013, 46-63).
다른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공포가 아닌 실제로 목격하는 폭력적인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이를 막아줄 ‘리바이어던’이 세워질 수 있고 이에 대한 복종이 요구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홉스는 잉글랜드 내전이 사람들에게 안겨준 교훈은 바로 혼란스러 운 정치적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통일된 주권을 세우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하는데 있었다고도 보았다.
하지만 이런 기대를 품고 있었음에도『리바이어던』을 저술할 때까지 홉스는 폭력적인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다른 두려움 혹은 희망보다 시민들에게 더 강한 잔상을 남기기 어렵다고 인정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홉스는 “어둠과 유령에 대한 공포가 다른 공포들보다 더 크기 때문에”라고 털어놓았고 (『리바이어던』 제2부 제29장, 424), 이러한 홉스의 고민은 시간이 지날수록 해소되기보다는 더 깊어졌다는 점이 그의 지적 여정을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파리로 망명을 떠난 홉스는 이전 장에서 살펴보았듯 논리학, 기하학, 자연과학, 형이상학 에 주목했으며, 이에 따라『물체론』(De Corpore),『인간론』(De Homine), 그리고 마지막 으로『시민론』(De Cive)을 완성 및 출간하고자 계획했다.
하지만 홉스는 돌연『시민론』 을 먼저 완성해 1642년 출간(1647년 재출간)했고, 이어『리바이어던』저술에 몰두했다.
그리고 두 저작에서 홉스는 이전 저작과는 달리 종교적 문제와 특히 성서 해석의 문제에 대해 좀 더 많은 분량을 할애했다 (Johnston 1986, 115).16)
16) 『리바이어던』 이전에 서술한 다른 정치적 저작들인『법의 원리』(The Elements of Law, 1640)와『시민 론』(1642)에서 홉스가 중점적으로 주장하는 바가 이후의 논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주장과 함께 각 저작 간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를 두고 여러 논의가 있었다 (Baumgold 2017, 127-140). 일부는 자연상태, 자연 법, 절대적 주권 개념 등 홉스 정치 이론의 핵심적인 내용은 이미 1630년대에 확립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Collins 2005, 7).
이러한 변화를 두고 포칵(John G. A. Pocock)은 “홉스의 종말론(eschatology)에 대한 관심이 1642년과 1651년 사이에 증대되었다고 결론을 내린다면, 일반적으로 종말론적 사고가 이뤄지지 않았던 환경인 파리 에서 거주하는 동안 나타난 것이며” 이는 다소 의아한 현상이라는 의견을 내비치며, 이는 “개인적 영감과 시민적 주권자의 권위 간 충돌이라는 주제가 정치적 논쟁의 핵심”이 되었기 때문이라 말했다 (Pocock 1970, 173, 180).
모든 정치권력은 신으로부터 나왔고 어떤 의미에 서 신의 권리에 의해 유지된다는 명제는 17세기 전반기 잉글랜드 사회에서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포칵의 지적처럼, 어둠과 유령에 대한 공포 문제를 해결해줄 길을 제시할 정치적 주권자의 권위는 흔들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만약 홉스가 종교적 권위자로부터 세속적 권위자 로 사람들의 이목과 ‘심상’을 옮기고자 했다면, 그래서 신민이 꿈을 꾸며 상상하는 대상을 교체하고자 했다면, 홉스는『리바이어던』제3부(“기독교 코먼웰스에 대하여”)와 제4부 (“어둠의 나라에 대하여”)를 기술하지 않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다.
이어지는 장에서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홉스는 왜 해당 논의로 우리의 시선을 돌렸는지, 또 홉스는 어떻게 논쟁을 마무리하고 있었는지 살펴볼 것이다.
Ⅳ.영원성에 이르는 길 : 교사로서의 리바이어던의 역할과 한계
홉스는 ‘신중한 사람’ 모두에게 선명하고 확실한 심상을 안겨주는 것은 쉽지 않다고 보았 다.
예상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사람들을 (여전히) 휘감았고, 초월자인 신의 이름으로 이를 ‘명증’하게 보여줄 대상에 의해서 사람들의 마음이 좌우되었기 때문이다.
홉스 는 이러한 심적 흔들림을 해소하는 것이 중요하나 그 목적이 이러한 사람들을 공포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속박하는 데 있어서는 안된다고 보았다.
홉스에 따르면 사람의 마음 을 움직이게 할 이러한 힘을 아는 자들로 인해 여러 종교가 나타나는데, 종교인들 중 일부는 어떠한 보증도 없이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견할 수 있다고 밝히며 사람들을 통치하려 들고 자신의 권력을 증대시키려 한다고 주장한다.
“사물의 자연적 원인에 대한 탐구를 거의 또는 전혀 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이롭게 혹은 해롭게 하는 힘이 무엇인지 모른다. 이러한 무지에서 생기는 공포로 인하여 여러 가지 보이지 않는 힘을 상정하고 이를 원인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상상력으로 신을 만들어낸다. 그리하여 무수히 다양한 상상으로부터 인간은 이 세상에 무수한 종류의 신을 창조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이러한 공포야말로 각자가 종교라고 부르는 것의 씨앗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종교의 씨앗을 보관해 왔으며, 그들 중 일부는... 그 위에 미래에 일어날 사건들의 원인에 관해 자신들이 만들어낸 의견을 덧붙이고자 하였는데, 이렇게 하면 사람들을 가장 잘 통치할 수 있고, 나아가 자기의 힘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리바이어던』제1 부 제11장, 147).
이러한 현상을 두고 홉스는
“어떤 사람이 하느님이 자기에게 초자연적으로 직접 말했다고 주장하고, 내가 그것을 의심한다고 할 때, 나로 하여금 그것을 믿도록 하기 위해 그가 어떤 증거를 내놓을 수 있을 것인가”라고 묻는다 (『리바이어던』제3부 제32장, 25).17)
17) 홉스는 자신이 계속해서 “나의 동포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칼의 논쟁의 귀추를 주목”하고 있다고 밝혀두었다. 그리고 그 논쟁은 “권한에 관한 것, 즉 모든 종류의 교리에 대해 승인 혹은 거부의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 모든 사람이 법의 보호를 받기 위해 (사적 개인들의 생각이 여하하든) 누구의 명령에 (말에 의한 것이든 문서에 의한 것이든) 복종해야 하는지에 관한 논쟁”이라고 정리한다 (『리바이어던』 제3부 제38장, 125).
이어서 홉스는 “참 예언자를 알아볼 수 있는 두 가지 징표”를 제시하는데, “이 두 가지가 동시에 나타나야 한다”고 말한다.
그 중 “하나는 기적을 행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미 설립된 종교 이외의 어떤 종교도 가르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홉스에 따르면, “오늘날에는 더 이상 기적이 없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계시나 영감을 받았다고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인정할 만한 아무런 징표가 없다.
” 따라서 오늘날 참된 예언자라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없다는 것이다 (『리바이어던』 제3부 제32장, 27-30).
이에 홉스는 “예언자를 자처하는 사람의 말은 극히 조심해서 들어야 한다”고 계속해서 충고한다.
왜냐하면
“이들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행복이 길이 무엇인지 설교하면서, 자신의 설교를 따르는 것이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람들에게 행복의 길을 가르쳐 주겠다는 것은 그 사람들을 통치하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배하고 군림하겠다는 것이다. 남을 지배하는 일은 누구나 다 하고 싶어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럴 야심으로 거짓으로 하느님 을 내세우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의 말에 따르기 전에, 각자 잘 살펴보고 시험해봐야 한다” (『리바이어던』 제3부 제36장, 99-100).
좀 전에 살펴 보았듯 제1부에서는 종교의 씨앗이 공포에 있다고 논했던 홉스는 이제는 행복에 이르는 길을 종교에서 가르치고 있다고 덧붙인다.
왜 이러한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했던 것일까? 홉스가 이렇게 논의를 이끌고자 했던 이유는 바로 이전 ‘이성에 따른 논의’에서 이미 “‘궁극 목적’(finis ultimus)이나 ‘최고선’(summum bonum) 따위는” 없다고 하며, 삶의 안위를 살피 는 것 이외에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를 이어갈 수 있는 길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리바 이어던』 제1부 제11장, 137).
이전 장에서 살펴보았듯 이성적 원칙에 따르는 홉스의 논의 속에서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최고의 목적은 ‘잔혹한 죽음’으로부터의 회피, 즉 생명 보존뿐이 다.
그렇지 않고 만약 “주권자 이외의 누군가가 생명보다 더 큰 보상을 줄 수 있고, 죽음보다 더 큰 처벌을 할 수 있다면, 그런 곳에서는 코먼웰스가 존립할 수 없다” (『리바이어던』 제3부 제38장, 116).
홉스가 이렇게 논의를 마무리 지었다면,『리바이어던』의 ‘자연적 이성’ 설명 부분인 제1부, 제2부와 ‘종교’ 부분인 제3부의 내용은 별다른 차이점 없이 동일한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고 쉬이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홉스는 돌연 “‘영원한 생명’(eternal life)은 ‘현세 의 생명’보다 더 큰 보상이며, ‘영원한 고통’(eternal torment)은 ‘현세에서의 죽음’보다 더 큰 형벌이다”라는 말을 하며, 성경에서 논하는 ‘영생’과 ‘영원한 고통’의 의미를 탐구하며, 현세적 주권자가 지니는 “생살(生殺)의 권한 및 기타 상벌의 권한” 밖의 논의를 펼친다 (『리바 이어던』 제3부 제38장, 116).
‘이성적 원칙’의 공표를 통해서든 종교적 예언자의 권위 해체를 통해서든 경쟁과 고통에 수반되는 두려움만이 인간의 행동을 자극하지 않는다는 점을 홉스는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필멸하는 존재인 유한한 인간에게 영생과 영원성이 안겨다 주는 희망은 무엇보다도 강한 자극으로 다가온다.
해당 논의를 쫓아가 보면, 우선 홉스는 인간을 본래 영생을 누렸지만 상실한 존재로 그린 다.
에덴의 낙원에서 하느님의 계율을 어긴 아담의 죄로 인간은 지상에서 영생을 누리지 못하게 되었는데, 홉스의 성경 해석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의 죄에 대하여 속죄했으며, 따라서 아담의 죄로 인해 상실했던 영생을 모든 믿는 자들에게 되돌려 주었”고, 그 영생을 누리게 되는 곳은 다름 아닌 지상이 된다.
“왜냐하면 아담의 죄값이 죽음이요, 낙원의 상실이요, 지상에서의 영생의 상실이었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나게 될 경우에도 모든 사람이 지상에서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홉스는 만일 이렇게 영생을 회복한, 죽지 않는 생명체인 인간이 현재처럼 남녀 간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는 경우, “지구는 순식간에 발 디딜 틈이 없게” 될 것이라 말하며, 영생은 즉각적으로 나타나 는 일이 아니기에 인간은 자연사를 맞이하고 있다고 덧붙인다.
“신실한 기독교도는 그리스도 의 수난에 의해 영생을 회복하지만, 일단 자연적 죽음을 맞이한 후, 얼마동안 죽은채로 있다가 부활하는 것이다”고 말이다.
홉스는 이러한 부활이 “육신의 부활”임을 명확히 밝힌다 (『리바 이어던』 제3부 제38장, 117-22).
결국 홉스는 영생이란 곧 하느님의 계율을 어긴 죄로부터 벗어남을 뜻하며, 예수 이후에 우리는 이러한 상태에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 것처럼 보인다.18)
18) “<성경>에서 죄 사함을 받는 것과, 사망 및 비참으로부터 구원되는 것은 동일한 것이다” (『리바이어던』 제3부 제38장, 135).
그런데 제38장 논의 마지막에 홉스는 “지은 죄는 보상해도 없어지지 않는다”고 말하며 ‘구원’이 ‘속죄(贖罪, redemption)’와 동일하지 않으며, 따라서 “우리 구주 그리스도가 우리 대신 ‘속죄’했다고 하더라도, 우리 죄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우리에게 일종의 경각심을 일깨운다 (『리바이어던』 제3부 제38장, 143).
홉스에 따르면 구원이 오기 전까지 우리는 영생을 얻지 못한다.
따라서 구원이 오기 전까지, “정치적 주권자의 명령을 따르더라도 영생을 얻는데 지장이 없다면, 마땅히 그 명령에 따라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적어도 ‘현세의 생명’을 보장해 주기 때문이다 (『리바이어던』 제4부 제43장, 285).
그런데 홉스는 바로 이어 “정치적 주권자의 명령에 따르면 영원한 죽음의 저주를 받게 되는 경우에는 그 명령에 복종하는 것은 정신나간 짓이다”라고 덧붙인다.
그리고 이어 “‘몸은 죽일지라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 우리 구주의 가르침”이라고 하며, 본고의 2장에서 제시했던 홉스가 물질론자라는 규정과는 거리가 먼, 지상과 동떨어져, 즉 신체와 동떨어져 존재할 수 있는 ‘영혼’이라는 요소를 부각한다.
그렇다면 홉스는 속죄를 했지만 구원을 받기 전인, ‘얼마동안 죽은채’로 있는 인간을 ‘영혼’으로 보고 있는 것인가?
이에 대해 홉스는 별다른 답을 제시하지 않고, 곧바로 “영원한 구원”의 조건만을 나열한다.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은 두 개의 덕성, 즉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법에 대한 복종’ 속에 들어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건 중 인간이 갖추지 못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리스도교와 이교도를 계속해서 구분했던 – 더구나 세속화 시대를 살아간다고 하는- 이들에게는 자연스레 첫 번째 조건이 불충분했다고 여겨질 것이다.
그런데 홉스는 두 번째 조건인 ‘법에 대한 복종’이 불충분했다고 지적한다.
“아담의 원죄에서부터 우리 자신이 저지르는 계율위반에 이르기까 지 모두 하느님의 율법을 어긴 죄인들”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홉스에 의하면 영원한 구원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복종’이다.
그리고 이때 따라야 할 하느님의 율법은 “결국 자연법”이 며, “그 요체는 신의를 저버리지 말라는 것, 즉 우리의 정치적 주권자에게 복종하라는 계율”이 다 (『리바이어던』 제4부 제43장, 285-286).
홉스는 정치적 주권자가 불신자인 경우에도, “그에게 저항하는 백성은 하느님의 율법을 어기고 죄를 짓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리바이 어던』 제4부 제43장, 303).
정리하면 홉스는 영생, 즉 영원한 구원을 위해 정치적 주권자의 명령에 복종하라 가르친다.
다만 여기에서 홉스는 정치적 주권자의 명령에 따르면 영원한 죽음의 저주를 받게 되는 경우, 즉 주권자가 속죄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는 전혀 논하지 않는다.
이러한 논의를 두고 많은 이들이 ‘왜 그렇느냐’,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물을 수 있을 것이다.
홉스는 이러한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주장한다.
“무슨 문제든 질문을 잘못하면 논란을 피할 길이 없다. 사람들은 ‘우리가 왜 그것을 믿는가’라고 묻지 않고,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아는가’하고 묻고 있다. 마치 ‘믿는 것’과 ‘아는 것’이 같은 말이라는 듯이” (『리바이어 던』제4부 제43장, 288-9).
홉스가 말한 영생이 정말로 그러한지, 그러한 영생을 주권자에 대한 복종을 통해서 구할 수 있는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단지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고 그렇게 믿음을 가지게 맏드는 수단은 곧 교사의 가르침”이지만, 그러한 믿음 이 발현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 교사를 책망할 수는 없다.
믿음의 영역은 인간의 통제 능력을 벗어난다. “만일 가르침이 믿음의 원인이라면, 가르쳐도 믿지 않는 사람은 왜 생기는가? 그러므로 믿음은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리바이어던』제4부 제43장, 289-90).
왜 홉스는 독자로 하여금 세속적 주권자가 안겨주는 보상과 처벌에서 눈을 돌려 ‘영원 함’(eternity)에 대한 논의를 취하도록 했던 것일까?
논의한 것처럼 홉스는 자신이 공포에 떨며 이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에 몰두하는 ‘합리적인’ 인간형을 제시한다고 하더라도, 현재 목전에 둔 상황을 넘어 사람들이 상상하는 희망과 두려움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베헤모스 또는 장기의회』(Behemoth or the Long Parliament)에 대한 입문서를 작성한 홈즈(Holmes)는 홉스의 입장에서 “인간의 행동은 아무리 그가 자기 이익에 충실하다고 여겨지더라도 예측 불가능한데, 바로 그가 미래 를 예측할 때 이익을 최대한 계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서 작동하는 여러 비합리 적인 요소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Holmes 1990, xv).
이러한 인간의 한계를 바라보며 홉스는 성서 속 괴물인 ‘리바이어던’을 우리 눈앞에 가져다 둔다.
하지만 어떠한 심상이 우리에게 더 선명하게 남을지는 알기 어렵다.
“주권을 차지하기 위한 투쟁은 현실에 기초하지 않는 온전한 상상이나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내놓는 합리적으로는 정당화될 수 없는 가정(assumptions) 간 전쟁터”이기 때문이다 (Holmes 1990, xiv).
ⅴ.결론
본고는 ‘홉스가 당대 지적 교류나 학습을 통해 인간사에서 상상이라는 요소가 중요하게 작용함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으며, 이에 따라 정치적 주권자는 자신의 공동체 내에서 이뤄 지는 정치적 상상(political imaginary)을 독점해야 한다는 생각을 공고히 하게 되었다’는 기존 논의에서 제기된 홉스의 해결책에 담겨있는 합리주의적·계몽주의적 요소를 다시금 살펴보고자 했다.
3장에서 살펴보았듯 기존 연구에서는 정치적 주권자가 경쟁하는 종교적· (정치)이념적 가르침을 물리치는 방법으로 홉스가 교육이나 검열 등 합리주의적이고 세속적 인 방식을 제시하고자 했음을 지적해왔다.
본 논문에서는 홉스가 이러한 해결방식만으로는 자신이 내세우는 정치적 이상이 달성되기 어려웠음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음을 좀 더 명확히 보이고자 했다.
홉스가『리바이어던』 제3부와 제4부를 종교를 다루는데 할애한 이유는 바로 이러한 한계를 스스로 깨닫고 있어서라는 것이다.
4장에서 다뤘듯 홉스는 인간이 어떠한 방식을 통해서든 공포를 극복할 수 있다고 하더라 도 영생을 비롯한 영원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열망만은 놓을 수는 없는 존재임을 인식하고 있었고, 이러한 상황을 직시한 채로 정치적 주권자에 대한 복종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자 노력했다.
‘영원한 구원’을 구하기 위해서는 ‘법에 대한 복종’(만)이 필요한데, 그때의 법은 하느님의 율법이자 자연법이고, 이는 곧 정치적 주권자에게 복종하는 것이라는 내용이다.19)
19) 관련하여『리바이어던』 후반부 논의가 시민종교(civil religion)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기존 연구에서는 지 적되어왔다 (안두환 2016, 29). 홉스의 논의와 루소 이후 본격적으로 논의되는 시민종교의 논의가 어떠한 친화성을 보이는지와 관련해서는 또 다른 글을 요할 것으로 여겨진다. 우선 본고에서는 홉스가 여전히 영원성에 대한 종교적 차원의 논의를 세속적인 방식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점만을 지적해 두고자 한다. (『리바이어던』제3부 제32장, 25-6).
하지만 홉스는 이러한 ‘교사’의 가르침을 통해 모든 이들이 계몽되리라 혹은 믿으리라는 기대를 갖지 않는다.
“믿음은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리바이어던』 초반부에 홉스 는 인간이 자신에게 부여되는 자극 중에서 가장 강력한, 즉 지배적인 것만을 느낀다고 말한다.
“우리의 눈, 귀 등의 감각기관은 외부의 물체들로부터 다양한 자극을 받지만, 그 중 가장 지배적인 것만을 감지한다. 즉 햇빛이 지배적이기 때문에 별빛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리바이어던』 제1부 제2장, 33).
유한한 인간에게 영원성을 선사해주는 태양20)인 ‘햇빛’ 에서 벗어나 평화와 안정을 안겨다 주는 ‘별빛’인 리바이어던의 명령을 시민이 따를지는 알 수 없다.21)
또한 ‘리바이어던’이 등장하는 순간 ‘프로메테우스’와 같은 우리는 모든 걱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홉스가 밝히는, 자신이 그동안 들어오던 세상은 그렇게 우호적이지도 낙관적이지도 않다.
비단 그가 상정한 자연상태에서 뿐만 아니라 자연상태를 벗어난 사회상 태에서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
홉스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의견과 생활태도가 크게 다르기 때문에, 그들과 세상사를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들 모두와 변치 않는 시민적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들 한다. 세상사란 대부분 명예와 부와 권력 을 얻기 위한 영원한 경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을 받아들인다면, 오히려 생존 경쟁만 벌이는 자연상태보다도 명예, 부, 권력을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한 영원한 경쟁 속에 있는 사회상태가 더 암울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홉스는 희망을 놓치 않았다.
경쟁을 벗어나 “변치 않는 시민적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그런 일들이, 정말 극히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불가능 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이다 (『리바이어던』 재검토 및 결론, 424).
이러한 ‘시민적 우호관계’를 유지하고자 할 때 가장 큰 걸림돌로 홉스가 “어리석은 자만” 에 빠진 이들을 지목했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22)
20) 서양의 지적 전통에서 태양은 자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원천이자 로고스 혹은 신성의 원리로 간주된다. 정치 사상 영역에서 그 시초로 간주되는 플라톤이 “좋음의 이데아”로서 태양을 설정하고 이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 했는지와 관련해서는 이상원(2018)을 참고.
21) 이러한 본고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홉스에게 있어서 자연법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지도자와 집단은... 교회나 성직자가 아닌 논리가의 모습에 가까”울 수 있고 “정치가 필요로 하는 지식은 신학이 아니라 논리학”이 라는 입장(윤비 2012, 207)은 이러한 홉스의 비유적 요소의 중요성을 다소 간과한 것으로 보인다.
22) 홉스 정치철학의 기원과 기초를 탐구했던 스트라우스(Leo Strauss)는“저서의 제목이 지시하듯, 홉스의 저서 [리바이어던]는 ‘자만(pride)’이라는 정념을 직접적으로 문제시”한다고 주장한다(Strauss 1952, 55). 그리 고 이후에 비슷한 관점을 제시하는 연구가 이어져 왔다. 대표적으로 Baumgold(1990), McClure(2014)를 들 수 있다.
홉스는 그 중 특히나 “자기가 신실하고 덕이 많아서 특별한 계시의 은혜를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문제시한다
홉스의 논의에서 이렇게 자신이 남들과는 다르고 더 나아가 우월하다고 여기는 이들은 안정적인 리바이어던 수립의 기초를 이루는 자연상태를 혼탁하게 한다.
홉스에게 인간 상호 간 평등하다는 인식과 인정은 평화의 상태로 들어가기 위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자연이 인간을 평등하게 만들었다면, 그 평등은 인정되어야 한다. 또한 비록 자연이 인간을 불평등하게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평등하다고 생각하 는 사람들은 평등한 조건에서가 아니라면 평화의 상태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을 평화의 상태로 들어가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그러한 평등은 인정되어야 한다” (『리바이어던』 제1부 제15장, 208).
그러나 홉스가 인정하듯 우리는 신이 혹은 자연이 어떻게 인간을 ‘창조’했는지- 평등하게 만들었는지 불평등하게 만들었는지조차도- 모른다.
따라서 “자기가 신실하고 덕이 많아서 특별한 계시의 은혜를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자만’에 빠진 사람들을 어떠한 이성적 원리 에 맞춰 훈육할 수도, 또 훈육한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원래 자신의 입장으로 선회하지 않으리 라는 확신도 구하기 어렵다.
더구나 “사람들의 의견은 옳을 수도 있고, 그를 수도 있고, 또한 사람들의 정념과 이해관계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고, 변하기 쉽”기 때문이다 (『리바이어던』 재검토 및 결론, 423).
그런데 이렇게 변하기 쉬운 사람들을 두고 ‘변치 않는 시민적 우호관계’ 를 유지하기 위해서 정치는 더욱 필요해진다.
“우리는 우리와 의견을 달리하는 이들과 함께 지내며 행동해야하기 때문이다” (Sleat 2013, 44).
홉스의 기대와는 달리 (또 홉스 스스로도 인정하듯) 아무리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는 주권자도 혹은 아무리 완벽한 정치제도라도 이러 한 불협화음을 완벽하게 제거할 수 없다.
그런데 이처럼 의견충돌과 분쟁이 사라질 수 없다면, 홉스가 바라는 질서와 안정은 항상 위태로운 상태에 놓여있게 된다 (Philip 2007, 62).
이러한 정치현실을 인지했던 홉스는 자신의 저작을 통해 모든 문제가 한번에 해결되기를 바랐던 것이 아니라 이러한 “심상이 흐려지고 약해”지기를 기다렸던 것은 아닐까.
유토피아 가 아닌 현실을 바라보던 홉스는 자신이 내세운 “알레고리가 현실이 되는 순간, 상징이 실재가 되는 순간”을 기다렸을 수 있다 (윤비 2010, 40).23)
23) 이러한 입장과 반대되는, 즉『리바이어던』의 유토피아니즘(utopianism)적 성격을 내세운 논의로 Tuck (2004)을 참고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잠들지 못하고 남달리 신중해 걱정하는 인간은, 그래서 고통 속에서 머무르던 ‘프로메테우스’는 바로 홉스 자신이었을지 모른다.
이러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던 홉스에게 ‘리바이어던’은 성경 속 상상물을 대체할 위엄있는 세속적 권위자가 아니라 자신이 느끼는 항구적인 불안과 공포를 잠재워줄, 좀 더 강한 확신과 지적 확실성을 갖춘 후대의 정치철학자였을지 모른다.24)
24) 이러한 관점에서 본고는 필자가 정리했던 스트라우스의 홉스 정치철학 해석과 입장은 다르나 그 결은 같이한 다 (김지훈 2022, 192-3). 졸고에서는 스트라우스가 20세기 초반 “전체주의(totalitarianism), 근대 과학이 불러온 도덕 가치의 전복, 대중 사회가 불러온 여러 위험이 상존하던” 서구 자유주의의 위기적 현상을 “근대의 지적 발전에 대한 맹목적 신념”으로 정리하며, 당시 이러한 서구의 지적 자만에 경종을 일으키고자 홉스의 지적 태도를 상기해볼 것을 촉구했다고 밝혔다. 본고는 스트라우스의 해석처럼 홉스가 자신의 한계를 깨달았 던 철학자적인 태도를 견지했음에는 동의하나, 스트라우스가 상정했던 현대의 독자에 맞춰 홉스의 독자를 상정하는 데에는 유보적이다. 본고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홉스는 오히려 이후 철학자들에게 더 강한 신념을 지닐만한 지적 확실성을 갖출 것을 요구했던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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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s)┃
Prometheus waiting for Leviathan: Possibilities and limits of (political) sovereignty established according to 'principles of reason'
Jihoon Kim (Pusan National University)
This paper examines the portrayal of Prometheus as a ‘prudent person’ by Thomas Hobbes, an influential English political philosopher, in his renowned work, Leviathan (1651). The paper argues that Hobbes himself is represented through the image of Prometheus. Hobbes aimed to establish the authority of an absolute sovereign based on the ‘principles of reason’, but he acknowledged the incompleteness of such an endeavor. Specifically, Hobbes posits that ‘imagination’ can only arise from direct ‘sensation’, and emphasizes the need to avoid ‘false imagination’, which is a perception beyond the bounds of reliable rational judgment. According to Hobbes, human behavior is governed by the potential for self-preservation in relation to the suffering and happiness experienced in the world. Despite his ‘rational’ persuasion, Hobbes recognized that human beings are unable to relinquish their pursuit and hope for eternal matters such as salvation, but he argued that this objective could be attained through obedience to the sovereign. However, Hobbes admitted that this teaching belonged to the realm of faith, beyond the scope of rational persuasion as a ‘teacher’. In conclusion, this paper asserts that Hobbes concluded his work with an anticipation of future political philosophers who would possess superior rational arguments, enabling them to transcend these intellectual limitations and address his concerns about the future.
Keywords: Promethus, Leviathan, Thomas Hobbes, Imagination, Self-Preservation, Eternity, Enlightenment, Belief
정치사상연구 제29집 1호, 2023 봄
논문투고일: 2023년 04월 18일 심사개시일: 2023년 05월 01일 심사완료일: 2023년 05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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