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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야기

易學을 통해본 圓覺經의 成佛論 - 周易과 正易을 중심으로 - /이현중.충남대

한글 요약

본고에서는 원각경의 成佛論을 中國易學의 전적인 周易의 順逆合一과 韓國易 學의 전적인 正易의 倒逆生成을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우리는 일상의 삶으로부터 遠離心을 發하여 수행을 일으키도록 하기 위하여 實相의 세계를 물건적 관점에서 가치상의 우열을 가진 性과 相, 중생과 부처, 무명과 圓覺의 양자로 구분하여 중생, 무명을 벗어나서 원각, 부처에 이르는 수행과 成佛을 논한다. 그러나 相에서 性을 향하는 상구보리는 逆방향 중심의 證悟成佛論으로 順방향의 衆 生本來成佛論과 모순을 일으킨다. 중생이 본래성불이라면 무명이 없어서 수행을 할 필요가 없고, 무명이 있다면 부처라고 할 수 없음은 물론 수행을 통하여 성불할 수 없 다. 따라서 물건적 관점에서 제시된 실상의 두 측면인 본래성불과 증오성불이 하나가 되는 合一이 필요하다. 물건적 관점에서 중생이 수행을 통하여 成佛함은 사건적 관점에서는 불성, 圓覺이 씨가 되어 수행이라는 사건으로 나타나는 생성이다. 그것은 수행이란 중생이 부처가 되는 물건적 변화가 아니라 본래 부처가 자기를 드러내는 始終의 事件임을 뜻한다. 따 라서 물건적 관점에서 實相을 이해하는 것을 바꾸어서 사건적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 가 있다. 正易에서는 세계를 사건적 관점에서 倒逆生成으로 나타내고 있다. 역생도성이 씨를 뿌려서 가꾸는 과정이라면 도생역성은 열매가 씨로 사용되는 과정으로 씨도, 싹 도, 꽃도 모두 열매의 다양한 모습이다. 도역생성의 관점에서 보면 수행은 佛性의 작용, 圓覺의 작용인 점에서 不修之修이고, 성불 또한 이룸이 없는 成佛이며, 삶과 수행 이 일체인 점에서 삶이 그대로 淨覺을 隨順함이다.

주제어: 本來成佛과 證悟成佛, 無明과 圓覺, 終始와 始終, 順逆과 倒逆生成, 成佛과 隨順淨覺.

1. 들어가는 말

원각경은 인도불교가 중국에 수입되어 中國化하여 형성된 중국불교의 전적 이다.1)

그것은 원각경이 범어로 쓰인 전적을 단순하게 한문으로 바꾸어서 나 타낸 것이 아니라 불교를 중국의 전통사상을 바탕으로 중국적 관점에서 해석한 결과를 담고 있는 전적임을 뜻한다.

중국의 전통사상을 담고 있는 周易에서는 물건적 관점에서 세계를 形而上 과 形而下로 구분2)하여 양자를 根本과 支末의 본말 관계3)로 규정하고, 본말을 順과 逆4)을 통하여 나타내고 있다.

順逆과 道器를 관련시켜서 이해하면 道에서 器를 향하는 방향이 순이며, 器에 서 道를 향하는 방향이 逆이라고 할 수 있다.5)

순역의 구조를 중심으로 원각경 의 성불론을 이해하면 순방향에서 本來成佛을 논하고, 역방향에서 證悟成佛을 논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주역에서 역방향에서 시작하여 순방향에 이름을 근본문제6)로 제기하 고 있듯이 원각경에서도 역방향에서 수행의 필요성과 방법, 의미 등을 통하여 증오성불을 중심으로 성불론을 논하고 있다.

1) 董群 저, 김진무, 노선환 공역, 祖師禪, 운주사, 2002, 206쪽.

2) 周易 繫辭上篇 第十二章, “是故 形而上者謂之道, 形而下者謂之器.”

3) 周易 繫辭下篇 第九章, “易之爲書也, 原始要終以爲質也. 六爻相雜, 唯其時物也. 其 初難知, 其上易知, 本末也,

4) 周易 說卦 第三章, “數往者順 知來者逆”

5) 周易 雷山小過卦 彖辭, “飛鳥遺之音不宜上宜下大吉 上逆而下順也.”

6) 周易 說卦 第三章, “是故 易逆數也.”

實相의 세계를 순방향과 역방향으로 구분하여 역방향을 중심으로 수행을 논 하면 양자의 합일이 문제가 된다.

그것은 역방향에서 上求菩提, 修道를 근본문 제로 할 때 순방향의 下化衆生, 濟度와 둘이 되어 양자의 合一이 문제가 됨을 뜻한다.

원각경에서는 중생과 부처, 무명과 圓覺을 구분하여 양자를 넘어선 實相의 세계를 제시하면서도 중생의 세계를 顚倒된 세계로 규정하고 있다.

顚倒는 육신 과 의식을 실체화하여 자신으로 여김으로써 본래성불과 乖離가 됨7)을 뜻한다.

따라서 수행은 중생이 圓覺과 하나가 되는 본래의 자신과의 合一이라고 할 수 있다.

顚倒된 상태를 바로잡는 것은 뒤집어진 상태를 되돌리는 것이다. 그것은 본래 성불과 증오성불, 本覺과 始覺, 順과 逆을 구분하여 양자의 합일을 추구하는 관 점을 轉換하여 中道의 차원에서 양자를 이해하는 방법이다. 물건적 관점에서 순과 역을 구분하여 양자를 합일하고자 하는 관점을 顚倒하 여 실상의 세계를 사건적 관점에서 倒逆의 生成8)을 통하여 나타내고 있는 전적 은 正易9)이다.

韓國易學의 전적인 정역에서는 實相의 세계를 시간성의 時 間化를 통하여 倒逆의 生成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정역의 倒逆生成과 주역의 순역합일을 통하여 원각경 의 성불론을 고찰하고자 한다.

먼저 주역의 順逆合一의 관점에서 원각경의 성 불론을 고찰하고 이어서 정역의 倒逆生成의 관점을 중심으로 원각경의 성 불론을 고찰하고자 한다.10)

7) 圓覺經 文殊章, (大正藏17, 0913b19), “一切衆生 從無始來 種種顚倒 猶如迷人 四方易處 妄認四大 爲自身相 六塵緣形 爲自心相.”

8) 金恒, 正易 第一張, “天地之理는 三元이니라. 元降聖人하시고 示之神物하시니 乃 圖乃書로다. 圖書之理는 后天先天이오 天地之道는 旣濟未濟니라. 龍圖는 未濟之象 而倒生逆成하니 先天太極이니라. 龜書는 旣濟之數而逆生倒成하니 后天无極이니 라.”

9) 正易은 한국 儒學者인 一夫 金恒이 저술한 易經이다. 정역에서는 易道를 干支 度數를 통하여 나타내는 神明原理와 圖書象數를 통하여 나타내는 曆數原理로 밝히 고 있다. 정역의 특성과 한국사상사적 의미에 대하여는 정승안, 「일부 김항의 정 역과 사회사상적 함의」, 한국학논집 68,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2017, 207쪽 에서 233쪽, 김문준, 「정역사상과 한국문화 발전의 방향」, 한국철학논집 제27권, 한국철학사연구회, 2009, 85쪽에서 118쪽, 최영성, 「정역과 한국사상-사상적연원 탐구-」, 율곡학연구 34권, 율곡연구원, 2017, 127쪽에서 159쪽을 참고하기 바 란다.

10) 학문의 방향, 방법으로서의 順逆의 合一과 倒逆의 生成에 관하여는 이현중의 儒佛 道와 洞觀의 인문학, 충남대학교출판문화원, 2017, 115쪽에서 162쪽을 참고하기 바란다.

이를 통하여 한국불교와 중국불교의 특성을 밝히는 동시에 양자를 會通的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2. 주역의 順逆合一과 원각경의 증오성불

원각경은 말세의 보살과 중생들로 하여금 無明을 영원히 끊어서 부처를 이 루는 成佛을 근본문제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중생이 수행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어서 佛道를 이루는 證悟成佛의 修行에 원각경의 초점이 놓여 있음을 뜻한 다. 증오성불에 대하여 문수보살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위없는 法王에게 大陀羅尼門이 있는데 이름하여 圓覺이라고 한다.

일 체의 청정한 진여와 보리, 열반 그리고 바라밀을 유출하여 보살을 가르 친다. 모든 여래는 本起한 因地에서 청정한 覺相을 圓照함으로써 영원히 無明을 끊어서 佛道를 이루었다.11)

11) 圓覺經 金剛章, (大正藏17, 0913b19), “無上法王 有大陀羅尼門 名爲圓覺 流出 一切淸淨 眞如 菩提涅槃 及波羅蜜 敎授菩薩 一切如來本起因地 皆依圓照淸淨覺相 永斷無明 方成佛道.”

인용문을 보면 원각에 대하여 두 관점에서 논하고 있다.

그 하나는 원각이 진 여와 보리, 열반, 바라밀을 유출하여 보살들을 가르치는 방향이며, 나머지 하나 는 因地와 果地를 구분하여 원각을 원조함으로써 무명을 끊고 불도를 이루는 증 오성불의 방향이다.

두 번째의 관점은 인지와 과지 곧 시간상의 시종의 관점에서 원각의 작용이 성불로 드러남을 인과 관계를 통하여 나타낸다. 이처럼 성불이 인과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有爲法이라면 그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보살, 중생과 여 래가 둘이어서 성불은 장차 이루어야할 사건일 뿐으로 지금은 아직 이루지 못한 사건임을 뜻한다. 따라서 두 번째의 관점에서 보살, 중생과 성불이라는 사건은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첫 번째의 관점은 원각이 청정한 진여와 열반, 바라밀을 유출하여 보살을 가 르친다. 이 때 원각은 보살, 중생과 둘이 아니라 일체이다.

그것은 중생본래성불 을 논하고 있는 보안보살장의 다음과 같은 언급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비로소 중생이 본래 成佛하였고, 生死와 涅槃이 오히려 어제 밤의 꿈 과 같음을 안다.

선남자여, 어제 밤의 꿈과 같은 까닭에 생사와 열반이 일어남도 없고, 사라짐도 없으며,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음을 알 아야 한다.12)

두 번째의 관점에서 보면 성불은 증오의 과정을 거쳐서 나타나지만 첫 번째의 관점에서 보면 중생이 본래성불하였다.

따라서 성불은 원각을 과거와 미래, 시 종의 두 관점에서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성불이라는 사건을 통하여 나타내는 원각의 인지와 과지는 씨와 열매의 관계 와 같다.

두 번째의 관점은 씨를 심어서 싹을 틔워서 가꾼 결과 열매를 얻는 것 과 같다.

이 때 씨는 본래 열매이기 때문에 그것을 씨로 심어서 싹을 틔울 수 있 다.

그것은 씨의 관점에서 보면 싹과 꽃 그리고 열매가 서로 다르지만 열매가 씨 로 나타나는 첫 번째의 관점에서 보면 씨도 열매이고, 싹도 열매이며, 꽃도 열매 여서 모두가 열매의 다양한 드러남임을 뜻한다.

열매가 중심이 되는 첫 번째의 관점은 중생본래성불을 통하여 원각을 나타내 고, 씨가 중심이 되는 두 번째의 관점은 증오성불을 통하여 원각을 나타낸다.

따 라서 양자는 본래 일체이기 때문에 두 관점으로 나타내기 이전과 두 관점의 셋 으로 구분하여 이해할 수 있다. 원각을 나타내는 앞의 두 측면은 원각의 특성을 두 관점에서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원각은 실체적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고정되게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 없 어서 空하지만 단순하게 아무것도 없는 절대무가 아니어서 不空이다. 淸淨慧菩 薩章에서는 원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원각의 自性은 性이 아니지만 性이 있어서 (만법이) 性에 의하여 일 어난다. 그러므로 取함도 없고, 證함도 없다. 實相에는 菩薩과 여러 衆生 이 없다.13)

12) 圓覺經 金剛章, (大正藏17, 0915a16), “始知衆生 本來成佛 生死涅槃 猶如昨夢 善男子 如昨夢故 當知生死 及與涅槃 無起無滅 無來無去.”

13) 圓覺經 金剛章, (大正藏17, 0917a10), “圓覺自性 非性性有 循諸性起 無取無證 於實相中 實無菩薩 及諸衆生.”

원각의 自性이 성품이 아니라는 것은 원각의 自性이 없음을 나타낸다.

원각은 실체적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원각이 있다고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원각이라 는 실체적 존재가 없기 때문에 자성이 없다.

그러나 원각의 성품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성품이 아닌 성품이 있다.

이 성품을 따라서 만법이 일어난다.

성품의 차원에서 보면 取하고 證함도 없다.

왜 냐하면 보살과 중생이 없기 때문에 取證하여도 取證함이 없기 때문이다.

원각의 자성이 性이 아님은 空을 통하여 원각을 나타낸 것이고, 性이 있음은 不空을 통하여 원각을 나타낸 것이다.

원각의 자성은 자성이 아니어서 공하지만 공하면서 또한 공하지 않기 때문에 성을 따라서 자신을 나툰다. 그러면 양자의 관계는 무엇인가?

씨에서 시작하여 열매를 향하는 色에서 空으로서의 방향과 열매에서 씨를 향 하는 空에서 色으로의 방향이 어떤 관계인지는 주역의 順逆을 통하여 이해할 수 있다.

주역에서는 순역을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지나간 것을 헤아림은 順이며, 다가올 것을 앎은 逆이다. 그러므로 易 은 逆으로 헤아린다.14)

위의 내용을 보면 시간의 관점에서 과거를 향하는 방향을 순으로 그리고 미래 를 향하는 방향을 역으로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하여 증오성불과 본래성불을 이해하면 증오성불은 역방향에서 원각을 나타낸 것이며, 본래성불 은 순방향에서 원각을 나타낸 것이다.

그런데 주역에서는 易의 관점을 逆數로 나타내어 역방향에서 修道를 통하 여 순방향에 이름을 밝히고 있다.

그것은 易이 逆방향에서 이루어지는 修道에 중심이 있으며, 그 목적이 順방향의 실천에 있음을 나타낸다.

역방향에서 수행을 통하여 순방향에 이름은 修行을 통하여 성불함으로써 본 래성불의 관점에 이름이다.

이 때 증오성불은 본래성불을 확인하는 계기를 통하 여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가는 본래의 자신으로의 回歸인 동시에 본래의 자신과 의 合一이다. 본래의 자신을 확인하는 계기를 시간적 관점에서 나타내면 始覺이다. 시각을 중심으로 원각을 나타내면 시각과 본각이 하나가 되는 양자의 합일이 究竟覺이 다.15)

14) 周易 說卦 第三章, “數往者順, 知來者逆, 是故 易逆數也.”

15) 憨山德淸, 圓覺經直解 第1卷 (卍續藏 10, 0482a03), “諸佛如來 於因地 依此本 覺真心 發始覺之智 斷盡無明 始本合一 名究竟覺 為得菩提之果 還歸寂滅一心 名為 圓寂 是稱涅槃 是知諸佛果德 皆依此圓覺一心建立.”

따라서 원각경에서 증오성불과 본래성불을 논하고 있지만 그 중심은 증오성불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증오성불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증오성불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인지를 중심으로 언급되고 있는 중생의 無明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문수보살장에서는 무명을 다음 과 같이 밝히고 있다.

모든 중생은 無始 이래로 여러 가지로 顚倒됨이 마치 미혹한 사람이 동서남북 사방을 바꾸어서 이해하는 것과 같다. 망령되게 地水火風의 四 大를 자신의 모습으로 여기고, 六塵을 반연한 그림자를 자신의 마음으로 여긴다.16)

인용문에서는 중생의 특성을 顚倒로 규정하고 있다. 그것은 현상의 세계 대한 그릇된 인식인 동시에 자신에 대한 그릇된 인식인 점에서 世界顚倒이자 衆生顚 倒이다.

顚倒는 사람이 중생, 무명, 육신, 의식을 자신으로 여김을 뜻한다. 일상의 사람들은 육신과 의식을 실체화하여 그것을 자신으로 여기고 執着한 다.

이는 무명이 실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실체로 여기고 집착함을 나타내는 다음의 언급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허공에는 사실 꽃이 없는데 눈병을 가진 사람이 망령되게 집착하는 것이다. 妄執으로 말미암아 허공의 自性을 혼미할 뿐만 아니라 또한 다 시 저 실제의 꽃이 피는 곳도 혼미한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허망하게 生 死의 輪轉이 있기 때문에 無明이라고 말한다.17)

16) 圓覺經 文殊章, (大正藏17, 0913b19), “一切衆生 從無始來 種種顚倒 猶如迷人 四方易處 妄認四大 爲自身相 六塵緣形 爲自心相.”

17) 圓覺經 文殊章, (大正藏17, 0913b19), “空實無花 病者妄執 由妄執故 非唯惑此 虛空自性 亦復迷彼實花生處 由此妄有輪轉生死 故名無明.”

중생이 실재하지 않는 허공의 꽃을 실재하는 것으로 착각하듯이 육신을 자신 으로 인식하여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無明이라고 한다.

따라 서 무명에 쌓인 중생의 삶은 그릇된 知見을 옳다고 여기고 그것에 의하여 끊임 없이 言行을 지어간다. 그러면 중생이 현상을 어떻게 파악하는 것이 전도된 것 을 바로잡는 것인가?

그것은 씨의 관점에서 싹을 자신으로 여기고 知不知를 구분하고, 能不能을 구 분하여 不知하고 不能한 존재를 자신으로 여기는 것이 顚倒임을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중생이 자신을 싹으로 여기고 열매를 찾지 말고, 싹이 그대로 열매의 드 러남임을 아는 것이 전도를 바로잡음이다.

원각이 不空의 본성에 의하여 자신을 드러냄을 우리는 대상화하여 마음 또는 육신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원각이 드러난 현상으로서의 육신이나 마음을 자신으로 여기지 않아야 한다.

원각경에서는 전도된 것을 바로 잡아서 육신이나 마음이 아닌 근원의 관점 에서 자신을 파악하는 것을 覺相을 圓照한다고 하였다.

그것은 부처, 원각, 自 性, 圓覺妙心을 자신으로 여김을 뜻한다. 普眼菩薩章에서는 圓覺과 心身의 관계 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선남자여, 圓覺의 청정한 성품이 몸과 마음으로 나툴 때 종류별로 각 각 응하여 나타나면 어리석은 사람이 청정한 원각에 진실로 이와 같은 身心의 自相이 있다고 말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18)

인용문의 내용을 보면 원각과 마음 그리고 몸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몸과 마음은 마니보주에 의하여 나타나는 여러 가지의 색깔과 같다. 그러므로 몸과 마음은 원각의 나타남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중생의 여러 가지 幻化가 모두 여래의 圓覺妙心에서 나온다.”19)고 함은 이를 나타낸다.

그러면 각상을 원조함 은 무엇인가?

각상을 원조함은 모든 현상에 집착하는 마음을 버리는 소극적인 측면과 원각 에 수순하는 적극적인 측면이 있다.

현상에 집착하지 않는 소극적인 측면을 普 賢菩薩章에서는 遠離心으로 나타내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모든 보살과 말세의 중생은 마땅히 일체의 幻과 같은 허망한 경계를 멀리 떠나야 한다. (그러나) 遠離心을 굳게 잡고 있기 때문에 마음의 환 과 같음도 역시 멀리 떠나고, 遠離가 환이 되기 때문에 또한 멀리 떠나야 하며, 원리를 여읨도 환이 되므로 또한 다시 여의어서 여읠 것이 없으면 곧 모든 환을 제거한 것이다.20)

18) 圓覺經 普眼章, (大正藏17, 0914c02), “善男子 圓覺淨性 現於身心 隨類各應 彼愚癡者 說淨圓覺 實有如是 身心自相 亦復如是.”

19) 圓覺經 普賢章, (大正藏17, 0914a10), “一切衆生 種種幻化 皆生如來 圓覺妙心 猶如空華 從空而有.”

20) 圓覺經 普賢章, (大正藏17, 0914a10), “善男子 一切菩薩 及末世衆生 應當遠離 一切幻化心虛妄境界 由堅執持遠離心故 心如幻者 亦復遠離 遠離爲幻 亦復遠離 離遠 離幻 亦復遠離 得無所離 卽除諸幻 知幻卽離 不作方便 離幻卽覺 亦無漸次 一切菩薩 及末世衆生 依此修行 如是 乃能永離諸幻.”

인용문을 보면 보살과 중생이 모두 현상의 모든 것에 집착하지 않을 뿐만 아 니라 집착하지 않는 마음에도 집착하지 않고, 집착하는 마음에도 집착하지 않음 마저도 집착하지 않으며, 집착함이 없음에도 집착하지 않아서 그 어떤 것에도 머묾이 없어야함을 밝히고 있다.

그러면 遠離의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원각경에서는 사마타, 삼마발제, 선나의 세 가지 수행방법21)을 통하여 증오성불을 논하고 있다.

이 세 가지의 방법이 서로 다르지만 공통점은 청정한 圓 覺을 깨달은 후에 수행을 하는 頓悟漸修22)라는 점이다.

앞의 세 가지 수행방법 가운데서 하나 또는 그 이상이 서로 결합되어 25가지의 수행방법이 형성된 다.23)

그러면 원리심은 단순하게 모든 것에 집착하지 않는 부정의 의미만을 갖 는가?

각상을 원조하는 적극적인 방법은 覺性에 수순함이다.

순방향에서 원각을 이 해하면 육신이나 마음으로 드러나는 모든 작용은 원각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그 렇기 때문에 어떤 작용도 모두 각성을 수순함이다.

淸淨慧菩薩章에서는 幻化와 같은 分別의 세계가 實相의 세계와 다르지 않음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일체의 장애가 곧 究竟覺이다. 得念과 失念이 해탈이 아님이 없으며, 법을 이룸과 법을 파함이 다 涅槃이고, 지혜와 愚癡가 모두 반야이며, 보 살과 외도가 성취한 법이 모두 菩提이고, 무명과 眞如가 서로 다른 경계 가 없다. 모든 戒定慧와 婬怒癡가 모두 범행이며, 중생과 불국토가 동일 한 法性이고, 地獄과 天宮이 다 淨土이며, 有性과 無性이 佛道를 이루고, 일체의 번뇌가 畢竟에는 해탈이다.法界海의 지혜로 모든 相이 허공과 같음을 照了하는 것을 여래의 覺性에 隨順함이라고 한다.24)

21) 圓覺經 威德自在章, (大正藏17, 090917c11에서 0917c27).

22) 圓覺經 威德自在章, (大正藏17, 0917c14), “若諸菩薩悟淨圓覺,以淨覺心,取 靜為行 由澄諸念 覺識煩動,靜慧發生.”

23) 圓覺經 辯音章, (大正藏17, 0918b03에서 0919a14).

24) 圓覺經 清淨慧章, (大正藏17, 0917b02), “善男子 一切障礙 卽究竟覺 得念失念 無非解脫 成法破法 皆名涅槃 智慧愚癡 通爲般若 菩薩外道 所成就法 同是菩提 無明 眞如 無異境界 諸戒定慧 及婬怒癡 俱是梵行 衆生國土 同一法性 地獄天宮 皆爲淨土 有性無性 齊成佛道 一切煩惱 畢竟解脫 法界海慧 照了諸相 猶如虛空 此名如來 隨順 覺性.”

여래의 覺性에 隨順함은 중생과 구분되는 여래의 관점에서 중생의 차원을 벗어나서 여래의 차원, 원각과 하나가 되는 合一을 나타낸다.

그것은 무명, 중생의 세계를 幻化로 규정하고 이로부터 遠離하는 것이 수행임을 나타내는 것은 覺性 과 하나가 되는 合一이 물건적 관점에서의 성불의 방법임을 뜻한다.

3.정역의 倒逆生成과 원각경의 본래성불

우리는 앞에서 원각경에서 中道, 圓覺의 세계를 因地와 果地를 중심으로 순 과 역으로 구분하여 逆의 관점에서 頓悟와 漸修를 중심으로 證悟成佛을 논하였 음25)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증오성불과 본래성불은 원각을 두 관점에서 달리 나타나낸 것이다.

또 한 성불은 수행의 문제가 중심으로 실천, 제도의 문제가 중심이 아니다. 따라서 성불 이후의 실천, 제도를 논하지 않을 수 없다.26)

 

25)宗密은 會相歸性의 관점에서 원각경을 이해하여 頓悟漸修를 주장하였다. 이에 대 하여 憨山은 종밀이 性相融會에 철저하지 못하다고 비판하였다. (우익지욱 지음, 명오 옮김, 대승기신론열망소, 서울, 민족사, 2014, 46쪽에서 48쪽.)

그러나 아무리 性相融會에 철저할지라도 性과 相은 여전히 둘이다.따라서 순역이 합일된 중도의 세계는 倒逆의 生成을 중심으로 고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26) 이덕진, 「대행 주인공主人空에 대한 일고찰」, 한마음연구, 대행선연구원, 2018, 308쪽.

수행과 실천,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의 구분이 없는 경계는 中道의 세계이다.

中道의 세계는 自性이 없는 空의 세계이자 無相의 세계이다.

그러나 중도는 空, 無相이면서도 不空, 實相의 세계이다.

따라서 중도의 세계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不空, 實相의 측면에서 고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중도의 세계는 원각과 중생이 둘이 된 상태에서 합일을 추구하는 수행의 관점 을 떠나서 원각 자체의 관점에서 그 본성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자기 顯現(나툼) 을 통하여 나타낼 수 있다.

그것은 원각이 진여, 열반, 바라밀을 유출하여 보살을 가르치는 관점 다시 말 하면 性起論的 관점에서 원각을 이해함이 필요함을 뜻한다.

주역에서 제기되 고 있는 역방향의 수행론을 性起論的 관점에서 세계의 자기 顯現을 중심으로 生 成(나툼)을 통하여 나타내고 있는 전적은 正易이다.

정역은 역방향에서 수양, 수기를 논하고 있는 주역과 달리 順逆이 合一된 세계를 사건적 관점에서 倒逆의 生成을 통하여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정역에서는 眞如, 法界, 원각을 時間性으로 규정하고, 시간성의 본성에 의 하여 이루어지는 脫自와 他者化로서의 時間化를 倒逆의 生成을 통하여 나타내 고 있다. 그러면 도역의 생성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龍圖는 未濟의 象으로 倒生逆成하니 先天의 太極이며, 龜書는 旣濟의 數로 逆生倒成하니 後天의 無極이다. 五가 그 중심에 위치하니 皇極이 다.27) 위의 내용 가운데서 龍圖는 河圖를 나타내고, 龜書는 洛書를 나타낸다. 도생 역성은 순방향에서 작용을 나타내며, 역생도성은 역방향에서 이루어지는 작용 을 나타낸다. 그리고 무극은 미래성을 나타내고, 태극은 과거성을 나타내며, 황 극은 현재성을 나타낸다. 도생역성은 무극에서 시작하여 태극에서 완성되는 생성작용이며, 역생도성은 태극에서 시작하여 무극에서 완성되는 생성작용이다. 태극과 무극 그리고 황극 은 因果, 生成을 넘어선 無爲의 차원을 나타낸다. 그러나 인과의 세계와 무관하 지 않아서 인과의 사건을 통하여 자신을 드러낸다. 그것은 因地의 관점에서 세계의 實相을 태극으로 나타내고, 과지의 관점에서 실상의 세계를 무극으로 나타내며, 현재의 관점에서 실상을 황극으로 나타내었 음을 뜻한다. 따라서 도생역성은 물건적 관점에서는 실상의 不空的 특성을 나타 내고, 역생도성은 물건적 관점에서는 실상의 空的 특성을 나타낸다. 그런데 하도와 낙서의 도역의 생성은 서로 구분하여 나타내었지만 일체이다. 이는 하도의 도생역성을 논하면서 未濟의 象으로 규정하여 역생도성된 낙서를 전제로 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낙서의 역생도성을 논하면서 旣濟의 數로 규정하 여 도생역성된 하도를 전제로 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음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러면 倒逆生成의 관점에서 수행은 무엇인가? 원각을 太極, 씨의 측면에서 나타내어 無明, 佛性, 如來藏, 本覺이라고 하고, 无極, 열매의 측면에서 부처, 如來, 究竟覺, 眞如라고 한다. 그리고 皇極의 측면 에서 始覺이라고 한다. 따라서 원각을 펼치면 셋이 되고, 셋을 하나로 하면 원각 27) 연경원, 正易 第一張, “圖書之理는 后天先天이오 天地之道는 旣濟未濟니라. 龍圖 는 未濟之象而倒生逆成하니 先天太極이니라. 龜書는 旣濟之數而逆生倒成하니 后天 无極이니라. 五居中位하니 皇極이니라. 易은 逆也니 極則反하나니라.”,연경원출판 부, 2009, 73쪽. 36 이 현 중 이다.

역생도성의 관점에서 원각을 시종으로 나타내면 무명을 벗어나서 구경각에 이르는 수행이다.

그러나 도생역성의 관점에서 보면 원각이 씨가 되어 그것이 싹이 트고 꽃이 피기 때문에 無明을 제거하거나 떠나서 열매와 하나가 되는 것 이 아니라 무명이 그대로 원각의 드러남이다.

도생역성의 측면에서 보면 삶 자체가 그대로 원각의 顯現이다.

따라서 삶을 떠나서 따로 수행을 할 필요가 없다. 삶이 그대로 수행이기 때문에 수행의 결과 로서의 성불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제도, 실천 역시 삶을 떠나서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원각에 의하여 여래와 보살 그리고 중생의 세계가 전개됨을 뜻한다.

위덕자재보살장에서는 “위없는 妙覺이 시방에 두루하여 여래를 출생하여 일체 의 법과 더불어 동체로 평등하다.”28)고 하였고, “원각의 성품이 청정하여 身心 을 능히 나투면서 종류를 따라서 각각 응한다.”29)고 하였다.

그러므로 중생, 보 살과 부처를 막론하고 원각의 성품이 청정한 마음을 내고, 청정한 몸을 나툰다. 따라서 실상의 세계에서는 여래와 보살 그리고 중생의 구분이 없다.

언제나 바가바는 한결같이 神通한 大光明藏에서 三昧의 正受에 든다.

그것은 일체의 여래가 광명으로 장엄하는 영원한 경계이다.

또한 모든 중생의 청정한 깨달음의 자리이다. 몸과 마음이 寂滅하여 평등한 본래의 세계로 시방에 두루 가득차서 둘이 아닌 경계에 수순하며, 둘이 아닌 경 계에 수순하여 모든 정토가 나타난다.

대보살마하살 십만 명과 함께 하 였는데 그 이름이 문수사리보살, 보현보살, 보안보살, 금강장보살, 미륵 보살, 청정혜보살, 위덕자재보살, 변음보살, 정제업장보살, 보각보살, 원 각보살, 현선수보살 등이 우두머리가 되어 모두 자신의 권속들과 함께 삼매에 들어 여래의 평등법회에 같이 머물렀다.30)

28) 圓覺經 威德自在章, (大正藏17, 0917c11), “無上妙覺 遍諸十方 出生如來 與一 切法 同體平等.”

29) 圓覺經 普眼章, (大正藏17, 0914c02), “圓覺淨性 現於身心 隨類各應.”

30) 圓覺經 序分, (大正藏17, 0913a27), “一時 婆伽婆 入於神通大光明藏 三昧正受 一切如來 光嚴住持 是諸衆生 淸淨覺地 身心寂滅 平等本際 圓滿十方 不二隨順 於不 二境 現諸淨土 與大菩薩摩訶薩十萬人俱 其名曰 文殊師利菩薩 普賢菩薩 普眼菩薩 金剛藏菩薩 彌勒菩薩 淸淨慧菩薩 威德自在菩薩 辨音菩薩 淨諸業菩薩 普覺菩薩 圓 角菩薩 賢善首菩薩等 以爲上首 與諸眷屬 皆入三昧 同住如來 平等法會.”

인용문에서 바가바는 실상의 세계를 나타내는 개념이다.

그 세계는 분별이 없 는 무분별의 세계인 점에서 三昧의 세계이다.

그 자리는 여래의 광명으로 장엄 하는 자리이면서 중생의 覺地이고,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비롯하여 여러 보살 들이 함께 하는 자리이다.

바가바의 본성은 여래와 보살 그리고 중생을 일관하는 원각이다.

원각을 물건 화하여 體用相의 관점에서 이해하면 본체로서의 여래와 작용을 나타내는 보살 그리고 작용의 결과를 나타내는 중생의 삼자가 일체라고 할 수 있다.

실상의 세계는 고정됨이 없이 변화한다. 변화의 관점에서 실상의 세계를 여래 와 보살 그리고 중생의 삼자의 생성을 중심으로 나타내면 여래에서 중생을 향하 는 방향과 중생에서 여래를 향하는 방향의 두 방향에서의 생성으로 나타낼 수 있다.

그것은 여래에서 시작되어 보살을 향하는 倒生과 보살에서 중생으로 이어지 는 逆成이 하나가 된 도생역성과 중생에서 시작되어 보살을 향하는 逆生과 보살 에서 시작하여 여래로 이어지는 倒成이 하나가 된 역생도성이다.

도생역성의 관점에서 실상의 세계를 나타내면 비록 삼자가 하나이지만 역생 도성의 관점에서 보면 물건적 관점으로 전환하여 본체와 작용 그리고 현상의 세 측면에서 구분하여 나타낼 수 있다.

따라서 실상의 세계는 도생역성을 바탕으로 한 역생도성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 도생역성을 바탕으로 한 역생 도성의 관점에서 수행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살펴보자.

도생역성의 관점에서 보면 원각, 본성, 자성, 진여의 작용에 의하여 인간의 모 든 활동이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본래성에서 벗어나는 것이 없어서 正法과 邪法이 없을 뿐만 아니라 주고받을 수 있는 법 자체가 없다.

따라서 道統이나 法統이 비록 믿음을 심어주는 방편일 수는 있지만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수행의 방법이나 단계 역시 고정되지 않는다.

원각경에서 제시하고 있는 奢 摩他, 三摩拔提, 禪那 그리고 삼자를 바탕으로 구성된 25가지의 수행방법 역시 일종의 관점일 뿐으로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頓悟와 漸修의 悟修, 교종과 선종을 구분도 그렇다.

양자의 구분 자체는 문제 가 없지만 양자의 어느 하나만이 진리라는 知見은 물건적 사고 곧 相에서 벗어 나서 性에 이르고자 하는 역방향에 치우친 것이다.

그러면 도생역성을 바탕으로 한 역생도성의 관점에서 수행은 어떻게 하는가?

도생역성의 관점에서 보면 삶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안팎의 모든 일들이 원각의 작용, 원각의 드러남이기 때문에 원각의 탈자에 의한 타자화로서의 원각의 현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역생도성의 관점에서 보면 원각, 중도, 실상의 세계가 지금 여기의 나를 통하여 매 순간 다양한 사건과 물건으로 끊임없이 새 롭게 드러난다.

역생도성의 관점에서 보면 매 순간의 삶에서 만나는 모든 일들은 원각의 드러 남이기 때문에 원각의 당체인 자성, 불성, 본래성의 자리를 믿고 그 자리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필요하다.31)

현상 자체는 원각의 작용이기 때문에 幻化가 아닐 뿐만 아니라 실상의 드러남 이어서 버리거나 없애야할 相이 아니다.

그것은 현상을 떠나서 實相을 깨닫거나 얻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삶 자체가 본래 그러함을 알고 경험하는 것임을 뜻한 다.일상의 모든 일들을 본래의 자리에 되돌려서 맡기는 일은 逆의 관점에서 수행 을 통하여 깨닫는 것과 다르다.

수행은 知와 不知를 구분하여 不知의 상태에서 知의 상태로 인위적인 변화를 추구하지만 삶 자체가 그대로 원각의 드러남임을 확인하고 그 자리에서 맡기는 것은 知不知를 넘어선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역생도성의 관점에서 일상의 모든 것을 본래의 자리에 맡기는 것과 더불어 도 생역성의 관점에서 그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是非, 善惡의 판단을 중지하고 그 자리에 맡길 때 비로소 그 자리의 작용을 볼 수 있음을 뜻한다.

일상의 일들을 일어나는 본래의 그 자리에 맡기면 시비, 선악의 분별의식이 사라지기 때문에 마음이 고요하여 편안하다. 그렇기 때문에 역생도성의 관점에 서 본래의 자리에 모든 일을 맡길 때 삶이 그대로 禪定임을 체험하게 된다.

모든 일들을 본래의 자리에 맡기고 지켜보면 空한 자리가 空하지 않아서 끊임 없이 새롭게 나툼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은 원석을 용광로에 넣어서 불순물을 제거하여 순금을 만드는 것과 같아서 제련된 순금과 원석이 다르지 않지만 그렇 다고 하여 예전의 원석과 순금이 같지도 않다.

그러면 일상의 삶을 살아가면서 해야 할 일들은 어떻게 하는가?

역생도성의 관점에 본래의 자리에 맡기고(任), 도생역성의 관점에서 그 자리 에서 이루어짐을 지켜보는(觀) 도역생성의 用心은 運身과 함께 해야 한다.32)

31) 본래 그 자리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맡기거나 그 자리에 돌려놓고, 놓아버리는 일 이 필요가 없지만 일상의 분별의식에 의하여 그것이 육신과 육신의 속성인 의식에 의하여 일어나고 있다고 집착하기 때문이다.

32) 서혜원, 한마음요전, 한마음선원, 불기2537, 469쪽에서 505쪽.

원각이 곧 자신이어서 둘이 아니기에 그것이 지금 여기의 나를 통하여 드러남을 알고 그 자리에 맡기고 지켜보는 用心은 일상의 삶을 위하여 해야 할 일들은 그 대로 행하는 運身을 통하여 완성된다.

도생역성을 바탕으로 한 역생도성의 관점에서 용심과 운신은 모두 원각에 의 하여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의 삶이 그대로 각성을 수순함이다.

중생 과 보살의 용심 자체가 그대로 각성에 수순함이기 때문에 원각이나 무명의 분별 이 없는 眞心이다.

본래 妄心이 없기에 妄念을 일으킴이 없고, 그것을 쉬려고 하거나 없애려고 하지 않으며, 그것이 망념인지 알려고 하지 않고, 알려는 마음이 진심인지를 가 리려고 하지 않는다.33)

33) 圓覺經 清淨慧章, (大正藏17, 917b09), “善男子 但諸菩薩 及末世衆生 居一切 時 不起妄念 於諸妄心 亦不息滅 住妄想境 不加了知 於無了知 不辨眞實 是則名爲 隨 順覺性”

도생역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역생도성의 관점에서 보면 일상의 言行은 보살의 행이다.

일상의 삶은 나와 남, 나와 세계의 구분이 없는 차원을 때와 장 소에 따라서 다양하게 드러냄으로써 서로가 본래 일체임을 나타내는 점에서 그 대로 중생을 濟度함이다.

따라서 도역의 생성의 관점에서 보면 삶은 본래 覺性 을 隨順함으로 그 가운데서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 둘이 아닌 차원에서 이루어 진다.

4. 결론

우리는 앞에서 주역의 물건적 관점과 정역의 사건적 관점을 통하여 원 각경에서 제시되고 있는 成佛論에 대하여 고찰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 을 수 있다.

첫째는 주역의 관점에서 보면 원각경에서는 實相의 세계를 형상을 중심으로 順과 逆으로 구분하고, 逆의 관점에서 중생과 부처, 무명과 원각을 분별하여, 중생, 무명의 차원을 벗어나서 圓覺과 合一하는 증오성불을 제시하고 있다.

둘째는 順의 관점에서 보면 일상의 삶은 원각, 自性이 圓覺妙心으로 나타나고, 慈悲의 言行으로 드러나는 本來性의 나툼(顯現)이다.

그러므로 중생과 부처, 원각과 무명, 생사와 열반, 成佛과 不成佛의 구분이 없어서 본래성불이다.

셋째는 정역의 관점에서 보면 세계는 實相이나 幻相의 구분이 없어서 그 어떤 개념으로도 나타낼 수 없다.

다만 現在性(황극)을 중심으로 나타내면 倒逆의 生成으로 나타낼 수 있다.

넷째는 도생역성의 관점에서 세계를 물건화하여 중생과 부처, 무명과 원각으로 나타내고, 사건화하여 증오성불과 본래성불, 삶과 수도, 修道와 濟度로 구분 하여 나타내지만 역생도성의 관점에서 보면 사건화하고, 물건화하여 소통하는 일상의 삶이 그대로 覺性을 隨順함이다.

다섯째는 일상의 삶은 역생도성의 관점에서 원각의 드러남 곧 본래성, 覺性의 드러남임을 알고(信), 매사를 그 자리에 맡겨(任), 도역생성의 관점에서 매 순간 드러나는 자성, 覺性의 작용을 지켜보며(觀) 살아감(運身)이다.

그것은 수도와 제도, 깨달음과 닦음, 본래성불과 증오성불의 분별이 없는 하나가 된 삶이다.

여섯째는 순역의 합일을 통하여 삶의 과정에서 成佛이 필요함을 나타내고, 도역의 생성을 통하여 일상의 삶이 그대로 매순간 다양하게 成佛을 드러냄임을 나타낸다.

따라서 修道와 濟度, 成佛과 不成佛은 일상의 삶에서 이루어지는 함이 없는 함이다.

끝으로 본 연구를 통하여 한국역학의 도역생성적인 특성이 한국불교에 어떻 게 반영되어 나타나는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함이 드러났다.

이 문제는 다른 지면을 통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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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e Theory of Spiritual Practice (成佛論) in the Complete Enlightenment Sutra (圓覺經) through the Science of Divination (易學) according to the Book of Changes (周易) and the Jeong Yeok (正易)

Lee, Hyun-Joong(Chungnam Natl. Univ)

In this paper,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original destiny to attain Buddhahood and spiritual practice, as set forth in the Complete Enlightenment Sutra, was considered based on the principle of inverted and reverse generation and completion (倒逆生成) in the Jeong Yeok (正易), which is a classic text of studies in the Book of Changes, based on thoughts unique to Korea. If a person is destined to attain Buddhahood, not only is spiritual practice unnecessary, but also ignorance cannot exist—and if ignorance exists, a person cannot be said to be a Buddha. This is a problem that arises when spiritual practice is discussed from the dichotomous viewpoint that understands nature and phases, people and Buddha, and ignorance and complete enlightenment separately from the viewpoint of things. Problems arising from the viewpoint of things or the viewpoint of “beginning followed by ending” are resolved only when the problems are understood from the viewpoint of “ending followed by beginning.” This is a method for considering spiritual practice—not from the opposite viewpoint, which is from people directed toward Buddha—but from the viewpoint of the original destiny to attain Buddhahood, that is, in the forward direction, from Buddha toward people. The two approaches are not separate, but the representation of what was originally one approach from two separate viewpoints. The Book of Changes indicates changes from ending to beginning as inverted generation and reverse completion (倒生逆成), and changes from beginning to ending as reverse generation and inverted completion (逆生倒成), thereby indicating that the two ways are one in body but can be distinguished from one another. If spiritual practice is understood from the viewpoint of reverse generation and inverted completion, based on inverted generation and reverse completion, life per se will be a spiritual practice. If life is represented from the viewpoint of inverted generation and reverse completion centering on wisdom, life itself will be a manifestation of complete enlightenment. If the manifestation of complete enlightenment is represented from the viewpoint of reverse generation and inverted completion, it will be ignorance, people, and an inherent sense of the past. Of the aspect of all phenomena, the final, complete enlightenment and Buddhahood in the future—that is, the aspect of the main body—and an awakening and epiphany in the present. These three viewpoints can be represented as one, following awareness.

Keywords: “People are originally destined to attain Buddhahood” and spiritual practice(衆生本來成佛과修行), ignorance and complete enlightenment(無明과 圓覺), ending followed by beginning and beginning followed by ending(終始와 始終), inverted generation and reverse completion(倒生逆成) and reverse generation and inverted completion (逆生倒成), spiritual practice and following awareness (修 行과 覺性隨順).

2019년 11월 06일 접수 2019년 12월 19일 심사완료 2019년 12월 20일 게재확정

한 국 동 서 철 학 회 논 문 집 동서철학연구 제94호, 2019. 12.

 

역학(易學)을 통해본 원각경(圓覺經)의 성불론(成佛論) - 주역(周易)과 정역(正易)을 중심으로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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