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개요]
이 글은 장자 포정해우(庖丁解牛) 이야기의 ‘신(神)’ 개념을 인지적으로분석하여 장자 수양론에 내재한 인지적 특질을 밝히는 것이다. 최고의 정신상태(mentality)인 ‘신’은 인간의 인지 체계인 뜨거운 인지(hot cognition)와차가운 인지(cold cognition)가 혼성하여 창발 되는 ‘인지적 자발성(cognitive spontaneity)’로 뇌의 인지 작용과 몸의 행동 양식이 가장 명징한 수준이다. 즉 이 연구는 ‘신’의 상태가 선험적·생득적인 것이 아니라 수양의 경험에서만들어지는 것임을 인지적으로 해명하는 것이다. 수양 이전의 포정은 오직 감각 기관(hot cognition)으로만 소를 보는데, 3년간의 도축 수양(cold cognition)을 통해 도축 기술을 완전히 신체화(embodiment) 한다. 그 결과 더 이상 감각 기관에 얽매이지 않고 소를 ‘정신(神)’으로 대한다. 두 가지 인지 체계의 상호작용으로 최고의 자발적 상태인 ‘인공적인뜨거운 인지(artificial hot cognition)’을 획득하는데, 장자는 이를 ‘신욕(神欲)’ 이라 했다. 새롭게 만들어진 뜨거운 인지가 몸과 감정으로 대표되는 기존의 뜨거운 인지와 다른 점은 고도의 분별 작용을 담당하는 차가운 인지를경험하고 체화한 인지라는 것이다. 신욕을 따라 19년 동안 도축한 포정의 칼은 숫돌에 새로 간 칼과 같다. 인공적인 뜨거운 인지는 수많은 소의 개별 자연성을 인식하게 하고, 나의자연성과 소의 자연성을 하나로 간주하게 한다. 그래서 포정은 자신의 자연성도 소의 자연성도 해치지 않는다. 포정은 인공적인 뜨거운 인지를 완전히 따르면서도, 여전히 뼈가 엉긴 곳이면 다시 분별하고 판단하는 차가운 인지에 의존한다. 도축의 수양을 통해 획득한 최고의 인지이자 제2의 본성인‘인공적인 뜨거운 인지’는 두 가지 인지 체계가 변화하는 상황에 가장 절묘하게 작동하는 것으로, 상황의 복잡성에 적절하게 대응하여 또 다른 균형점을 찾아가는 끊임없는 인지 작용의 과정이다. 즉 ‘인공적인 뜨거운 인지’의작용이 곧 “緣督以爲經”의 중도(中道)이다.
* 주제분야 : 도가철학, 장자철학, 인지과학
* 주 제 어 : 장자, 포정해우(庖丁解牛), 신(神), 자발성(spontaneity), 인공적인 뜨거운 인지(artificial hot cognition), 제2의 자연성
Ⅰ. 들어가는 말: 장자의 철학과 수양
장자에는 다양한 종류의 인간과 사물, 이들을 둘러싼 공간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오늘날 우리는 ‘인생’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쉽게 이해하기위해 인생을 여행에 자주 비유한다. 「인생은 여행」 은유의 기본 구도는여행이라는 경험적 근거로 ‘인생의 시작과 삶의 과정, 목적지에 대한 동경’ 이다. 이러한 은유적 사유 체계는 은유적 추론을 유발하는데, 여행의 시작에서는 떠나야 할 이유와 현실에 대한 부정적인 느낌을 포함하고 여행의도착지는 궁극적인 목적이자 좋은 곳이란 느낌을 포함한다. 즉 인생에 비유하자면 목적지는 평생의 삶에서 도달해야 할 궁극적인 지향점이다. 공자는 이 지향점을 인(仁)이라 했고, 플라톤은 이데아라 했으며 노자는 도(道) 라고 했다. 장자철학에서 여행의 시작점은 현실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와연결되고, 여행의 목적지는 인간과 세계의 이상향과 연결된다. 이러한 은유적 구도의 핵심은 목적지로 ‘어떻게 가느냐’이다. 그 여행의 과정에 장자가자신의 글을 통해 전달하려는 핵심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인생은 여행」 은유는 장자의 시작인 붕새의 이야기에도 스며들어있다. 물고기에서 새로 변화한 붕새는 이상향인 남명으로 날아간다. 그런데그 어마어마한 크기의 날개로 날아간다는 묘사 외에 그 여행의 과정에 대한묘사는 모호하게 처리된 것이 많다. 포정해우 이야기에는 「인생은 여행」 은유의 하위 은유이자 변형인 「인생은 도축」 은유가 있다. 한 덩어리로의 神, 장자의 수양과 인지적 자발성(cognitive spontaneity)의 여정 (조현일) 179 소밖에 보지 못하는 포정은 도축의 과정에서 신(神)의 정신성을 획득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도 3년의 수양과 19년의 도축 경험만 있을 뿐 신의정신성을 획득하는 과정, 즉 인생의 과정에 대한 묘사는 다소 모호하게처리되었다.1) 그렇기에 필자는 경험적 과정의 모호한 부분을 해명하기위해 자연주의적 연구방법론2)으로서 인지과학의 담론을 사용할 것이다. 즉 수양의 목적인 자발적인 신(神)의 정신성에 대한 서사를 오늘날의 언어로 풀어보고자 한다. 이 글은 포정해우(庖丁解牛) 이야기의 ‘신(神)’ 개념을 통해 장자 수양론에내재한 인지적 특질을 밝히고, 장자 수양론의 과정적인 구도를 해명하는것이다. ‘신욕(神欲)’을 따르는 포정의 상태는 경험적으로 획득하는 ‘인지적자발성(cognitive spontaneity)’3)로 인간의 두 가지 인지 체계(뜨거운 인지와
1) 이 연구의 필요성은 “포정의 정신작용이 어떤 원리로 그 칼질을 가능하게 했는지명확히 설명되지 않았다” “포정의 정신작용과 감각이 서로 어떤 원리와 작용의 연관성을 가지는지가 명확하지 않다” 등에 의해 이미 지적되었다.(이현쳘, 「장자(莊子) 의 ‘기술의 경지’에 관한 연구: 포정해우(庖丁解牛)를 중심으로」(철학연구 제61집,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2020), 13쪽, 17쪽 참조) 2) 이 글이 기반하는 ‘자연주의(naturalism)’은 제2세대 인지과학에 기초하는 신체화된 마음(embodied mind)에 입각한 자연주의적 관점으로 “창발적 자연주의(emergentist naturalism)” 이다. 즉 인간의 신체성을 바탕으로 과학적으로 관찰·증명 가능한 대상과 세계뿐만아니라 상상하는 능력에서 창발되는 비환원적인 특성에 대한 논의를 포함한다. 다시말해 이러한 자연주의는 과학주의나 물리주의나 환원주의와 동일시되지 않고, 듀이(J. Dewey)적 맥락에서 과학주의나 환원주의를 거부하는 ‘열린 자연주의’의 한 형태이다. ‘노양진, 「존슨의 자연주의 윤리학과 도덕의 크기」(철학연구 제137집, 대한철학회, 2016), 132-148쪽 참조; 철학적 사유의 갈래(경기 파주: 서광사, 2018) 32쪽’ 참조. 또한 창발적 자연주의에 대한 이론 및 방법론적 기초는 ‘프란시스코 바렐라 외지음(석봉래 옮김·이인식 해제), 몸의 인지과학(경기 파주: 김영사), 2017; Bongrae, Seok, Embodied Moral Psychology and Confucian Philosophy, UK: Plymouth, Lexington Books, 2013’ 참조. 3) 자발성은 중국고대철학뿐만 아니라 여러 학술 분야에서도 중요한 주제이다. 이 글의‘자발성’은 감정을 포함한 몸과 논리적·판단적 사유 작용 간의 상호소통을 전제하는자발성이 있다. 이러한 자발성은 신체화된 마음(embodied mind) 개념을 기반으로몸과 감정을 대표하는 뜨거운 인지와 논리적·판단적 사유를 대표하는 차가운 인지의 상호작용에서 창발(emergence)되는 인간의 행동과 사유 방식에 초점을 둔다. 즉몸과 환경에서 독립된 순수한 마음에서 발생하는 순수한 활동성으로서의 자발성이기보다는 ‘마음-몸-환경’이 상호작용하며 상호결정적인 관계에 있는 유기체적 전체론의 자발성이다.
차가운 인지)4)의 상호작용과 혼성에서 창발되는 상태이다. 이 상태는뇌에서 발생하는 정신 상태로 인지적·행동적으로 가장 명징한 수준이다. 이러한 ‘경험’의 과정을 연구하기 위해 도축을 수양하는 과정에서 야기되는포정의 변화를 인지적으로 추적하고, 이후 인지적 자발성이 어떻게 작동하여 ‘신욕(神欲)’을 가능하게 하는지를 해명할 것이다.5) 즉 이 연구는 최고상태인 ‘신’은 선험적·생득적인 것이 아니라 경험에서 획득되는 것으로, 보편적·초월적 존재에 의해 수여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수양으로 창조하는 것임을 제시하는 것이다.6) 기존의 연구에서 장자의 수양론은 인간의정신이 인위적 문화 형식이 나타나기 이전의 원초적인 세계, 즉 순수한자연의 세계로 복귀하여 소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간주된다.7) 하지만 인간의 인위성과 경험이 완전히 삭제된 순수한 자연성의 상태가있을 수 있을까? 장자의 수양론에 대한 기존 논의는 양형(養形)과 양신(養神)의 관점에서양신에 주목한 연구가 있다. 즉 포정의 도축은 기술 습득이 아니라 마음
4) 뜨거운 인지(hot cognition)와 차가운 인지(cold cognition)에 대해서는 이 글 3장과 4장참조.
5) ‘신욕’을 따르는 포정의 정신 상태를 ‘자발성’으로 정의한 연구는 이미 존재한다. 이자발성에 대하여 ‘지적 자발성(intellectual spontaneity)’ ‘영적 자발성(spiritual spontaneity)’ ‘타고난 자발성’ 등으로 정의하였다. 하지만 이들 연구에서 ‘지적’ ‘영적’인 것이 무엇인지명확히 제시하지 않았고, 이것들이 도축 과정에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해명이없다. 이 때문에 ‘자발성’ 개념 자체가 모호해지는 문제가 남게 되었다. 이 글은 자발성의 획득과 획득한 자발성의 작동 양상을 인지적으로 일관되게 밝힘으로써 자발성을 획득하는 방식과 그 작동 양상을 규명한다는 점에서 이전 연구와 차이가 있다. ‘지적 자발성’에 대해서는 ‘애드워드 슬링거랜드 지음(김동환 옮김), 애쓰지 않기 위해노력하기(서울: 고반, 2018), 71쪽 참조.’ ‘영적 자발성’에 대해서는 ‘Robert Eno, “Co k Ding’s Dao and the Limits of Philosophy” Essays on Skepticism, Relativism, and Ethics in the Zhuangzi, Paul Kjellberg and Philip J. Ivanhoe(eds.)(New York: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1996), p. xvii’ 참조. ‘타고난 자발성’에 대해서는 ‘앵거스 그러이엄(김경희 옮김), 장자(서울: 이학사, 2015), 25-26쪽’ 참조.
6) 포정의 도축 능력이 타고난 것인지 아니면 완전히 후천적으로 습득한 것인지 장자 에서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았다. 하지만 장자·내편에 ‘본성(性)’이란 개념이 등장하지 않는 점을 고려한다면, ‘포정의 기술은 타고난 것인가?’라는 기원에 대한 질문보다는 ‘포정의 기술은 어떻게 획득하는가?’라는 과정에 대한 질문이 좀 더 적절한듯하다.
7) 류사오간 지음(최진석 옮김), 장자철학(고양: 소나무, 2021), 290-291쪽 참조.
(神)을 수련하는 것으로 양신은 양형에 앞선다.8) 반면에 양형과 양신은상호작용하는 것으로 포정의 ‘신’은 인간을 구성하는 두 가지 요소인 육체(形)와 마음(心)이 이상적인 상태를 유지할 때 그 몸(身)이 지니게 되는 어떤특징이다.9) 이 상호작용은 주체나 혹은 자아의 철저한 변화를 야기하고, 세계의 각종 인간관계와 윤리적 배경을 함께 고려할 때 가능하다.10) 다음으로 백정 포정의 지식과 기술에 대한 연구가 있다. 장자의 앎(knowing)에는기술을 아는 것(skill knowing)과 사실을 아는 것(fact knowing)이 있는데백정 포정 이야기는 전자에 대한 것이다.11) 즉 백정 포정의 기술은 ‘자연성을 회복하는 기술’로 그의 도축 행위는 도의 경지에 이르려고 노력하는경험적 과정이다.12) 자연성에 대한 논의는 자발성(spontaneity) 논의와 연결되는데, 소를 도축하는 것은 영적 훈련으로 최고의 기술성(skillfulness)으로인도한다. 이러한 상태는 두 번째 자연성(second nature)으로 평온하고편안하며, 힘이 있으며 집중적인 상태이다.13)
8) 정세근, 「장자의 정신론」(동서철학연구 제64집, 한국동서철학회, 2012), 155-177쪽 참조.
9) 박원재, 「老莊의 ‘精神’ 개념에 대한 재검토」(철학연구 제19집,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1996), 173-196쪽 참조. 박원재는 또 다른 논문에서 “장자의 철학은 탈속적·신비주의로 귀결되지 않고, ‘현세간적’ 사유이다. 즉 타자를 향한 삶의 개방성에 대한 희구로‘타자와의 소통’을 실천하는 것이다”라고 하여, 현실 생활 속에서 장자철학을 독해해야함을 강조했다.(박원재, 「존재의 변화 혹은 삶의 변용: 노장철학의 문맥에서 본 장자실천론의 특징」(중국학보 제79집, 한국중국학회, 2017), 297-314쪽 참조)
10) 赖锡三, 「《庄子·养生主》的在世修养与中道调节」, 社会科学版(杭州师范大学学报), 2021, 14-30쪽 참조. 라이시조(赖锡三)는 포정해우 이야기가 “타인과 나의 변증법적인 관계에서 주체의 양생의 도가 실현되는 것”으로 간주하는데, 이러한 견해는‘박원재, 「존재의 변화 혹은 삶의 변용」, 297-314쪽’과 ‘강신주, 「莊子哲學에서의소통(通」의 논리: 장자 「내편」을 중심으로」(연세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박사학위논문, 2002)’에서도 발견된다.
11) Robert Eno, “Co k Ding’s Dao and the Limits of Philosophy” pp. 127-151.
12) 이현철, 「장자의 ‘기술의 경지’에 관한 연구: 포정해우(庖丁解牛)」를 중심으로(철학연구 제61집,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2020), 1-31쪽.
13) Lee H. Yearley, “Zhuangzi’s Understanding of Skillfulness and the Ultimate Spiritual State” Essays on Skepticism, Relativism, and Ethics in the Zhuangzi, Paul Kjellberg and Philip J. Ivanhoe(eds.)(New York: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1996), pp. 152-182. 이얼리의 ‘두 번째 자연성’과 유사한 논의로 박원재는 자연성을 제2의 본성처럼 스스로 모르는 사이에 발생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박원재, 「존재의 변화혹은 삶의 변용」, 307쪽 참조’)
이러한 장자의 기술은 몸과 마음으로 익히는 신체적 기술로 신체적 인식론이 장자의 인식론이다.14) 장자철학이 경험 중심적이고 신(神)의 개념적 중요성은 선행 연구를 통해입증되었다.15) 그렇다면 장자적 경험의 특성과 자발성에 이르는 방법및과정, 그리고 자발성의 작동양상에 대한 구체적 해명이 요구된다. 그렇기에이 연구는 인지과학에서 밝힌 인간의 두 가지 인지 체계를 통해 자발성을획득하는 방법과 과정을 해명할 것이다.
Ⅱ. 자발성에 이르는 여정
Ⅰ, 그 출발: 양생(養生)과 중도(中道)의 의미
포정해우(庖丁解牛)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분석하기에 앞서 「양생주」를통해 장자가 제시하는 양생의 도를 먼저 정리한다. 이 이야기는 양생주의큰 요지에서 해석되어야 하고,16) ‘양생’과 “중도를 따라 그것을 기준으로삼는다(緣督以爲經)”에 인간의 두 가지 인지 체계의 작동 방식에 대한 단초가 있기 때문이다. 먼저 ‘양생’에 대한 기존 연구는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양생을위해서는 ‘자발성(spontaneity)’를 회복해야 하는데, 분석적인 앎을 포기하고하늘이 부여한 신묘한 통찰력과 재능일 때 가능하다.17) 양생의 주인은 정신(精神)으로 이 이야기는 인류 역사에서 지속과 확장의 가치를 가진 정신적생명을 비유한다.18)
14) 김성동, 「장자의 인식론에 나타난 그의 기술철학」(중국학연구 제16집, 중국학연구회, 1999), 207-229쪽.
15) 포정의 양생술로 자발성을 획득하는 것이 ‘양신’을 기르는 것인지 아니면 ‘양형’을기르는 것인지에 대한 논쟁은 진행형이다. 하지만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신욕(神欲)을따르는 포정의 기술 그 자체가 선험적으로 내재한 것이 아니라면, 이는 육체적 훈련과정신적 훈련의 상호작용으로 간주해야 한다. 인간 인지의 두 가지 체계인 뜨거운인지(hot cognition)와 차가운 인지(cold cognition)는 각각 몸과 마음을 대표하는 것으로이 두 체계는 상호작용을 전제로 한다. 어느 하나의 인지 체계만 작동하는 인간은없듯이 양형과 양신이 상호작용하여 양생의 도를 실현하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16) 앵거스 그레이엄(안동림 역주), 장자(서울: 현암사, 2001), 89쪽.
17) 같은 책, 157쪽 참조.
18) 陳鼓應, 莊子今注今譯(北京: 中華書局, 1983), p. 111.
둘째로는 인간의 정신보다는 육체를, 마음보다는 물질을 중요한 것으로 간주하는 양생이다. 이는 인간을 포함한 세계의 존재나운동을 氣(질료인)로 설명하는 존재론적 유물론의 관점이다.19) 마지막으로이「양생주」의 지혜는 형(形)과 신(神)을 이원적으로 단절하는 극단적 견해에빠지지 않고, 역동적인 중도의 조절 작용을 보여주는 것이다.20) 정리하면‘양생’에 대한 해석은 ‘형(形)-신(神)’을 구분하여 어느 한쪽의 가치 우위를 인정하는 이원론적인 관점과 상호작용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으로 나뉜다. 인지적관점에서 몸-마음(혹은 정신)의 상호작용은 인간의 기본적인 조건이다.21) 그렇기에 필자는 상호작용의 관점에서 양생과 중도(中道)의 의미를 규명한다. 「양생주」는 인간이 알 수 있는 것의 한계에 대한 경고로 시작한다. “지식에는 한계가 있다(知也無涯)”에 대해 곽상은 “명예를 숭상하고 이기길 좋아하는 사람은 등골이 끊어져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충족시키지 못하는데, 이것이 지식의 한계가 없다는 것이다”22)라고 주석한다.
19) 池田知久, 荘子(上)(東京: 学習硏究社, 1987), p. 91. 정세근은 노자 3장의 “머리쓰는 일은 멀리하고 몸부터 챙겨라(弱其志, 强其骨)”을 제시하면서 노자에게 양생(養生) 의 관념은 분명하지 않지만 양생 가운데에서도 양형(養形)의 단초가 노자에서 출현함을 제시했다.(정세근, 「의미적 자연과 사실적 자연: 노자의 경우」(동서철학연구, 한국동서철학회, 2018), 101쪽 참조)
20) 赖锡三, 「《庄子·养生主》的在世修养与中道调节」, p. 17.
21) 이 글에서 의미하는 ‘기본적인 조건’은 호모사피엔스로서의 인간이 타고나는 육체적능력과 뇌의 작용을 의미한다. 이는 체험주의 철학에서 의미하는 신체적/물리적 층위에서의 ‘공공성(commonality)’이고 아무도 벗어날 수 없는 전제(assumption)이자사람이라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선결조건(presupposition)으로서의 자연성이다. ‘공공성’에 대해서는 ‘노양진, 몸이 철학을 말하다: 인지적 전환과 체험주의의 물음 (파주: 서광사, 2013), 83쪽’ 참조. ‘자연성’에 대해서는 ‘정세근, 「의미적 자연과 사실적 자연: 노자의 경우」, 100쪽 참조.
22) 郭慶藩, 莊子集釋(北京: 中華書局, 2017), pp. 121-122.
곽상은 앎(知)을원하는 것(願)과 연결하는데, 이때의 ‘앎’이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데에한계가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곽상의 이해를 수용한다면, 추구할 수있는 것의 한계를 인정하고 몸을 보존하는 것이 ‘앎’의 전형이다. 이를 포정이야기에 적용하면, 포정은 도축의 장인으로 자신이 추구해야 할 한계를안 사람이다. 장인으로서 필요 이상의 명성과 명예를 추구했다면, 칼은무뎌지고 몸은 상하며 신묘한 기술은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 그에게명성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는 오로지 소에 대한 해부학적 지식을 습득하고 해체 기술을 익히는 것에 전념하고 ‘집중’한다. 그리고 타인의강요를 받거나 타인의 기술을 자기 것처럼 여기지 않고 자신이 체득한지식에 오로지 집중한다.23)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것이 양생의 태도라면, “중도를 따라 그것을기준으로 삼는다(緣督以爲經)”은 양생의 방법이다. 곽상은 “중도를 따르는것을 항상됨으로 여긴다(順中以爲常也)”라고 했고, 진고응은 “자연의 길을따르는 것(順着自然之遵)”으로 해석한다.24) 즉 “중도를 따라 그것을 기준으로 삼는다”라는 해석은 무리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중도’는 무엇인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한데, 먼저 수평의 양극단에서 수학적으로 정확한지점을 찾아 고정된 기준으로서 모든 대상과 사태에 적용하는 것이다. 다른하나는 양극단의 어떤 한 지점으로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며 한쪽으로 완전히 치우치지 않은 상태로 해석하는 것이다. ‘중도’에 대한 뜻은 “緣督以爲經” 바로 앞 구절을 보면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착한 일을 하면 소문이 나지 않게 하고, 악한 일을 하더라도 형벌에저촉되지 않게 한다(爲善無近名, 爲惡無近刑)”은 세상살이에서 선한 행위와악한 행위가 모두 일어날 가능성을 전재한다. 즉 오로지 ‘선’의 존재만 강요하는 당위적 주장이 아니다. 이 구절은 두 가지의 해석 가능성이 있는데, 먼저 선을 행하는 일이 있어도 명성을 떨치지 않을 정도로 하고, 어쩔수없이 나쁜 일을 행하더라도 형벌을 받지 않을 정도로 하여 선악의 중도를지키는 것을 일상의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25)
23) 포정의 양생술은 자신의 일에 초점 집중하는 것이다. 그 집중에서 시작하여 포정은‘신욕(神欲)’을 따르는 경지까지 이르게 된다. 3장에서 논의하겠지만, 이러한 초점집중은 차가운 인지의 전형적인 기능이다. 차가운 인지는 인간의 의도적인 노력, 즉 인위성을 대표하는 것으로 장자의 양생술은 어느 정도 인위적인 노력의 필요성을함의하고 있음을 장자 원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24) 郭慶藩, 莊子集釋, p. 122. 진고응은 “자연의 이치를 따라가면 생명을 지킬 수있고 천성을 보전할 수 있으며 몸을 보양할 수 있고 수명을 다할 수 있다”라고 해설한다.(陳鼓應, 莊子今注今譯, p. 105)
25) 池田知久, 荘子, p. 91. 강조(기울임체)는 필자가 추가. 성현영은 “선과 악 모두를잊고 형벌과 명예 모두를 버렸기에 한결같이 중도를 따르고, … 양생의 오묘함이여기에 있다”라고 해석한다.(郭慶藩, 莊子集釋, p. 122) 원문을 축어적으로 해석한다면 ‘선’과 ‘악’을 모두 잊어야 한다는 해석은 무리가 있다.
또 다른 해석은 세속의 사람이 생각하는 선을 행하는 것에는 명예를 구하는 마음이 없어야하고, 악을 행하는 일에는 형벌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26) 이상의해석을 종합하면 “연독(緣督)”은 주체의 자연성이나 상황의 변화에 독립한규범성이 아니라 수평의 양극단 그사이의 어떤 지짐으로 한쪽으로 완전히 편향되지 않은 태도이다. 즉 ‘중도’는 양극단의 특질을 모두 포함하며동시에 한 쪽의 농도가 완전히 짙어지지 않고 평형을 이루는 상태이다.27) 그렇다면 이 ‘중도’의 균형은 어떻게 발생하는가? 왕숙민은 「달생」에서성현영이 “뒤처지는 양을 채찍질하는 것을 그로 하여금 절충(折中)하게하는 것이다”라는 해석을 “연독이위경’의 뜻이다”라고 해석한다.28) 양생의한 방법인 중도를 위해서는 자신을 채찍질해야 한다.29) 즉 중도는 선험적인것도 아니고 저절로 유지되는 것도 아닌, 노력과 수양을 통해 획득하는경험의 결과이다.30)
26) “爲善無近名, 爲惡無近刑: 做世俗上所認爲的善事不要有求名之心, 世俗上所認爲的惡事不要遭受刑說之害.”(陳鼓應, 莊子今注今譯, 115쪽)
27) 뜨거운 인지와 차가운 인지는 인지 체계의 양극단이다. 인지과학자들은 인간이 기본적으로 이 두 인지 체제를 갖고 있으며, 하나가 다른 하나를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상호작용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에 관한 논의는 3장 각주37 참조. 장자의 ‘중도’를본문과 같이 이해한다면,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인간 인지 체계의 작동방식에 대해 장자는 이해하고 있었고, 그것이 자신의 철학에 스며들었음을 유추할수 있다.
28) 莊子 「達生」 “善養生者, 若牧羊然, 視其後者而鞭之”(成疏: 鞭其後者, 令其折中), 亦“綠督以為經”之意.(王叔岷, 莊子校詮(台北: 樂學書局, 1986), p. 101)
29) 그레이엄과 진고응, 왕숙민은 모두 「달생」을 장자학파의 글로 간주하고, 「양생주」 와 주제를 공유하며 같은 이치를 해설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상 ‘그레이엄, 장자, 303-305쪽; 陳鼓應, 莊子今注今譯, 111쪽; 王叔岷, 莊子校詮, 99쪽’ 참조. 수양의 정도가 ‘채찍질’을 하는 수준이라는 점이 장자의 일반적인 사유와 동떨어진 듯하지만, 장자의 수양에 인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30) “백정 포정의 자발성은 정신작용과 육체적 감각이 오랫동안 서로 유기적으로 해체를경험하여 성숙된 ‘숙련된 자발성’이다. 그리고 포정의 작용이 이미 포정에게 선험적으로내재해 있는 이성적인 것이 아니라면, 오랜 세월 기술의 습득과정에서 연마한 경험의축적에 기인한 고도의 손놀림이라고 판단해야 한다.”(이현철, 「장자의 ‘기술의 경지’에관한 연구」, 14-16쪽 참조); 박원재 또한 ‘신(神)’이 사람에게 선천적으로 갖추어진 것이아님을 제시한다.(박원재, 「老莊의 ‘精神’ 개념에 대한 재검토」, 182쪽 참조)
‘중도’는 어떤 인위적인 노력 없이 자연성이 최대한발휘되는 상태이지만, 그 ‘중도’를 얻는 것은 수양을 통해 경험적으로 획득하는 후천적 상태임을 알 수 있다.
Ⅲ. 자발성에 이르는 여정
Ⅱ, 여로(旅路): 경험의 되새김질
포정해우(庖丁解牛) 이야기는 소를 해체하는 신묘한 기술을 묘사하는것으로 시작한다. 포정의 칼이 살과 뼈를 가르는데 그 소리가 태평성대의음악과 같다. 이 조화로운 소리는 감각 기관의 만족을 넘어 관찰자의 심리를 함께 동요하게 한다. ‘신(神)’의 수준에서 도축하는 포정의 정신 상태는그의 내부에 제약된 것이 아니라 문혜군에게 전파된다. 이 이야기에 대하여성현영은 “포정을 통해 양생의 기술(養生之術)을 밝혔다”31)라고 해석한다. 즉 ‘기술’이기에 양생은 당위적 개념이 아니라 방법적인 수단인 것이고, 그렇기에 ‘신’ 또한 인간의 인지적·정신적 자질을 밝히는 것과 동시에행동 양식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32)
포정해우 이야기뿐만 아니라 「양생주」 전체의 주요 개념들은 당위적인 진리 체계의 상징으로 인식하기보다는그 속에 내재한 방법적 지식을 읽어내야 한다. 포정이 칼을 내려놓고 말하길, “제가 좋아하는 것은 도인데, 기술보다 더나아간 것입니다. 처음 제가 소를 잡을 때에 눈에 보이는 것은 온전한 소뿐이었습니다. 3년이 지난 후에는 더 이상 온전한 소를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에서 저는 정신(神)33)으로 소를 대하지 눈으로 소를 보지 않습니다.
31) “此蓋寄庖丁以明養生之術者也.”(郭慶藩, 莊子集釋, p. 124)
32) 로버트 에노(Robert Eno)는 장자의 앎(knowing)을 경험적 기술의 앎(practical skill knowing)과 이론적인 앎(theoretical knowing)으로 구분한다. 경험적 기술의 앎은역동적·반응적·즉각적으로 작동하고, 역동적이면서 고정된 규칙에서 자유롭게 자연세계와 접속하게 한다. 이론적 앎은 융통성이 없고, 비반응적이며 주체의 자의적규칙에 제한된다. 그렇기에 주변 세계와 단절된다.(Robert Eno, “Co k Ding’s Dao and the Limits of Philosophy” p. 127) 포정의 앎은 ‘기술적 앎’이다.
33) 인지적 관점에서 ‘신(神)’의 상태를 대변하는 개념어가 없는 실정이다. 이 글에서는‘신’을 일단 ‘정신(mentality)’로 번역한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오늘날 ‘정신’이란 단어에대하여 ‘육체나 물질에 대립되는 영혼이나 마음’, ‘사물을 느끼고 생각하며 판단하는능력, 또는 그런 작용’으로 정의한다. 사람이 자극과 정보를 지각하고, 여러 가지 형식으로 부호화하여 기억에 저장하고, 뒤에 이용할 때에 상기하는 정신과정(mental process) 이 인지이다. 필자는 정신을 ‘뇌 속에서 일어나는 감각과 판단에 관여하는 신경학적· 화학적 작용’으로 간주한다. ‘정신과정이 인지’라는 것은 ‘프란시스코 바렐라 외 지음, 몸의 인지과학, 7쪽’ 참조.
(감각기관의) 지각하는 작용이 멈추니 정신이 하고자 하는 대로 움직입니다. 천리를 따라서 (소가죽과 고기, 살과 뼈 사이의) 큰 틈새를 따라 깎고 큰공간을 따라 소의 본래 그러한 것(其固然)을 따라갑니다. (칼을 쓰는) 기술이긍계(肯綮)에 조금도 거리낌이 없었는데, 하물며 큰 뼈이겠는가!”34) 포정은 도축을 배운 지 3년이 지나 정신의 작용으로 소를 도축한다. 각개체의 소는 소라는 류(類)에 속하기에 유사성을 공유하지만, 완전히 동일한 해부학적 구조와 성질을 가진 개체들은 없다. 포정은 수련 과정에서수많은 소의 해부학적 지식을 익히고 구분해야 했기에 이때 포정의 외물(牛)에 대한 인식은 ‘고도의 분별지(分別智)’이다.35) 고도의 분별지가 작동하는 가운데 포정은 도축 기술과 지식을 신체화(體化, embodiment)한다. 처음에는 자신의 기술이 소의 자연적인 해부학적 구조(天理)를 위배하지만, 지식을 신체화한 후에는 조금씩 다른 소의 해부학적 구조에 가장 알맞게도축한다.36) 그렇기에 포정의 기술은 단순한 기술보다 더 나아간 것이다(進乎技矣). 정신이 하고자 하는 대로 실행하는(神欲行) 포정의 심리는 도를좋아하는 것(所好者道)이다. 왕숙민은 이에 대하여 “도는 자연(自然)이고기예는 인위(人爲)이다. 인위를 극진히 하면 자연과 합하게 된다”라고 해설한다.37)
34) 莊子 「養生主」: 庖丁釋刀對曰, 臣之所好者道也, 進乎技矣. 始臣之解牛之時, 所見無非全牛者. 三年之後, 未嘗見全牛也. 方今之時, 臣以神遇而不以目視. 官知止而神欲行. 依乎天理, 批大卻導大窾因其固然. 技經肯綮之未嘗微礙, 而況大軱乎!
35) 이현철, 「장자의 ‘기술의 경지’에 관한 연구」, 12쪽 참조.
36) 포정은 문혜군에게 “천리를 따라서 큰 틈새를 따라 깎고 큰 공간을 따라 소의 본래그러한 것을 따라갑니다”라고 설명한다. 그러한 소의 자연적인 해부학적 구조를또 다른 말로 ‘본래 그러한 것(因其固然)’이라 할 수 있다. 각각의 소들은 자신만의‘천리’를 가지고 있고, 그 본래 그러한 천리의 자연성이 있다. 포정은 이 자연성을알 수 있는 능력을 체득한 상태이고, 비록 각 소마다 자연성이 다르지만 그 자연성을위배하지 않게 소를 도축한다.
37) “道是自然, 技乃人為. 盡乎人為, 則合乎自然矣.”(王叔岷, 莊子校詮, p. 105)
인위(人爲)는 인간의 인위적인 노력인데, 무엇을 노력하고 인간에게어떤 능력이 있기에 자연과 합하게 된다는 것인가? 인지과학자들은 인간에게 기본적으로 두 가지 인지 체제가 있는 것으로간주한다. 뜨거운 인지(hot cognition)는 거의 혹은 전혀 힘들이지 않고 자발적인 통제에 대한 감각 없이 자동적으로 빠르게 작동하고, 차가운 인지 (cold cognition)는 복잡한 계산활동을 포함해 관심이 요구되는 노력이 필요한 정신 활동에 관여한다. 또한 활동 주체와 선택과 집중에 대한 주관적경험과 관련하여 작동한다.38) 그뿐만 아니라 뜨거운 인지는 특정 목표를바라거나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동기를 유발하고 행동주체의 정서적 반응 및 경험과 관련되고, 차가운 인지는 사실에 대한 해석과 확률적개연성에 대한 판단과 평가와 유추에 관련된다.39) 정리하면, 뜨거운 인지는 가장 중요한 인지 체계로 빠르고 자동적이며 힘들이지 않고 대체로무의식적인 것으로, 우리가 ‘몸’으로 간주하고 장자가 ‘천기(天機, Heavenly mechanism)’라 부르는 것이다. 차가운 인지는 느리고 계획적이고 노력이필요하며 의식적인 것으로서 우리의 언어적 자아인 ‘마음’이다.40)
38) 대니얼 카너먼(이진원 옮김), 생각에 관한 생각(파주: 김영사, 2012), 33쪽. 대니얼카너먼은 뜨거운 인지를 ‘system 1 로, 차가운 인지를 ‘system 2’로 명명했다. 뜨거운인지와 차가운 인지는 에드워드 슬링거랜드의 용어이다. 이 두 가지 인지 체계는약 40년 전부터 여러 다른 이름으로 연구되어 왔다. 예를 들어 ‘휴리스틱 처리과정(hueristic processing) vs. 체계적인・분석적인 처리과정(systematic・analytic processing)’, ‘즉흥적인・반사적인 시스템(impulsive・reflexive system) vs. 반성적인 시스템(reflective system)’, ‘자동적인 처리과정(automatic processing) vs. 의식적인・통제된 처리과정(conscious・controlled processing)’ 등의 이름으로 연구되었고, 각각의 체계에 대한연구는 큰 틀에서 유사성을 공유한다. 본 논문에서는 논의의 편의를 위해 에드워드 슬링거랜드의 용어로 바꾸어 사용한다. 인간의 두 인지 체계에 대한 연구사는‘Keith E, Stanovich, Rationality and the Reflective Mind(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1), p.18’; ‘Janet Metcalfe and Walter Mischel. “A HotlCool-System Analysis of Delay of Gratification: Dynamics of Willpower,” Psychological Review vol.106, 1999, p.6’ 참조.
39) Dan Simon & Douclas M. Stenstrom. “The Coherence Effect: Blending Cold and Hot Cognition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vol. 109. 2015, pp.369-394.
40) 애드워드 슬링거랜드 지음, 애쓰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 68쪽 참조.
도축 기술을 배우기 이전의 포정은 눈앞의 한 덩어리 소(全牛) 밖에는보지 못한다. 몸의 감각기관으로 들어오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감각기관넘어 보이지 않는 해부학적 구조를 사유하는 능력은 없다. 감각기관은뜨거운 인지의 전형이고, 사유는 차가운 인지의 전형이다. 이 수준에서포정은 몸·감각 기관·정서를 대표하는 뜨거운 인지가 절대적으로 작용하고, 두 인지 체제에서 한쪽으로 거의 편향된 상태이다. 뜨거운 인지에만의지하는 포정은 3년간의 수양을 통해 그 균형점을 찾아간다.
목적지인 “緣督以爲經”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이 수양 과정에서 뜨거운-차가운 두인지 체계가 함께 작동하지만, 차가운 인지 체계가 주도적으로 작동한다. 수많은 소의 해부학적 구조를 익히고 차이점과 공통점을 구별하여 익혀야 하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판단과 평가, 유추 행위가 발생한다. 또한수양과 상관없는 필요 이상의 기술에 대한 열망과 명예에 대한 욕망 등의유혹을 견디고, 오로지 도축술을 익히는 데에만 ‘집중’한다. 모두 차가운인지의 작동 방식이다. 차가운 인지만 수행하는 중요한 작용은 뜨거운인지의 직관과 충동을 뛰어넘어 노력과 자제력을 발휘하는 일에 작동하는것이다. 즉 자동 주의와 기억을 체계화하여 뜨거운 인지의 작동을 바꾸는능력이 있다.41)
41) 대니얼 카너먼, 생각에 관한 생각, 49쪽 참조.
3년의 수양 기간에는 뜨거운 인지와 차가운 인지가 모두 각자의 역할에 따라 작용한다. 인간의 인위적 행위는 차가운 인지의 대표인데, 이인지 체계 또한 장자철학에서 무조건 비판받아야 할 것은 아니다. 앞서살핀 왕숙민의 말대로 차가운 인지는 자연성에 합일하게 하는 하나의수단이자 보조재이다. 장자가 비판하는 것은 오로지 차가운 인지에만편향되어 인위성만을 내세우는 태도이다. 2장에서 제시한 양생의 기술중하나인 ‘집중’은 차가운 인지의 작용이다. 장자는 그 당시 헤게모니를장악한 유가적 인위성을 부정한 것이다. 장자 또한 인간이기에 두 가지인지 체계를 모두 가진 존재였고, 인위성의 역할 또한 일부 인정할 수밖에없었다. 도축을 완전히 자발적으로 수행하는 단계, 오직 정신(神)으로 도축하는행위는 이 두 가지 인지 체계의 상호작용으로 창발(emergence)된다. ‘감각기관의 작용이 중지하고(官知止) 정신이 하고자 하는 대로 따른 것(神欲行)’은 은유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감각 기관의 작용이 실제로 멈춰버린것이 아니라 각 감각 기관의 자연적인 기능이 극도로 발휘되는 상태이지만 그것을 의식적으로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고, 분별과 판단의 인식 작용또한 가장 명징한 상태이지만 그 어려움을 행위 주체가 인지하지 못하는것이다. ‘신욕(神欲)’의 상태, 곧 자발성(spontaneity)을 획득한 것은 인간의물리적·인지적 기능이 극도로 발휘되는 그리고 두 인지 체제가 가장 조화롭게 작동하는 인지적으로 가장 명징한 인지적 자발성(cognitive spontaneity) 의 상태이다. 포정은 이러한 상태를 “도를 좋아하는 것(所好者道)”이라한다. ‘좋아한다’는 감정은 뜨거운 인지에 속한다. 포정이 도축술을 수양하기이전 한 덩어리의 소(全牛)만 보는 것도 뜨거운 인지가 주도적으로 작동하는 상태이다. 과연 이 두 유형의 뜨거운 인지가 동일한 것인가? 후자의경우는 아주 원초적인 것으로 인간이 막 태어난 자연성의 상태와 유사하다. 즉 식욕과 수면욕 등 기본적인 욕구를 추구하는 뜨거운 인지이다. 하지만포정이 도를 좋아하는 감정은 그보다는 분명 고차원적이다. 원초적인뜨거운 인지와 포정의 뜨거운 인지의 차이는 포정의 뜨거운 인지는 차가운인지를 경험하고 그것을 신체화한 것이다. ‘차가운 인지를 신체화했다’는것은 차가운 인지의 작동 방식이 뜨거운 인지와 같이 자동적이고 무의식적이며 빠르게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뜨거운 인지는 타고나는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인공적인 뜨거운 인지(artificial hot cognition)이다. 자발성에 이르는 여정에서 포정은 인지적으로 아주 뛰어난 상태인 인공적인 뜨거운 인지를 획득하여 그 목적지에 도착하게 된다. 다음 장에서이 인공적인 뜨거운 인지의 작동 방식을 설명할 것이다.
Ⅳ. 자발성에 이르는 여정
Ⅲ, 목적지: 인지적 자발성의 완성
백정 포정의 양생법은 ‘신욕(神欲)’을 기르는 것으로 인간의 인지 체계를혼성하여 새로운 유형의 뜨거운 인지를 획득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공적인뜨거운 인지는 차가운 인지를 경험한 뜨거운 인지로 두 인지 체계가 융합하여 무의식적이고 완전히 자발적으로 작동하는 상태이다. 동시에 세계의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한 능력을 획득한 상태로 육체의 물리적 수행능력과 뇌의 인식 능력이 최고로 발달한 상태이다. 솜씨 좋은 백정이 1년 만에 칼을 바꾸는 것은 살을 가르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백정이 달마다 칼을 바꾸는 것은 뼈를 꺾기 때문입니다. 지금 저의 神, 장자의 수양과 인지적 자발성(cognitive spontaneity)의 여정 (조현일) 191 칼은 19년이 되었는데 수천 마리의 소를 잡았지만, 칼날은 숫돌에서 새로간 것 같습니다. 저 뼈마디에는 틈새가 있고, 칼날에는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가 없는 것을 써서 틈이 있는 곳에 넣으니, 널찍하여 제가 칼을 놀리는 데도 분명 여유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19년이 지나도 칼날이 숫돌에새로 간 것 같습니다.42) 1년마다 칼을 바꾸는 것은 소의 자연적인 해부학적 구조를 어기고, 필요 이상의 힘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포정은 3년의 수련으로 최고의 정신수준에 도달했고, 이후 19년 동안 인공적인 뜨거운 인지인 ‘신욕(神欲)’에따라 소를 도축했다. 19년간 도축해도 칼이 마치 방금 숫돌에 간 것과같은 것은 소의 자연성과 포정의 자연성 모두가 융합한 것이다. 다시 말해, 기술적 지식과 선언적 지식, 경험적 기술의 앎과 이론적 앎이 상호작용하여경험적으로 새롭게 창발된 상태이다. ‘신욕’을 따르는 이러한 포정의 정신상태를 자발성(spontaneity)이라 한다. 이 자발성의 상태는 새롭게 만들어진 뜨거운 인지로 처음의 뜨거운 인지와 가장 큰 차이점은 차가운 인지를경험했다는 점이다. 필자는 두 번째 뜨거운 인지를 인공적 뜨거운 인지(artificial hot cognition)라 명명하고, 새로운 자연성으로 간주한다.43)
42) 莊子 「養生主」: 良庖歲更刀, 割也. 族庖月更刀, 折也. 今臣之刀十九年矣, 所解數千牛矣, 而刀刃若新發於硎. 彼節者有閒, 而刀刃者無厚. 以無厚入有閒, 恢恢乎其於遊刃必有餘地矣. 是以十九年而刀刃若新發於硎. 43) 타고난 자연성과 다른 종류의 자연성에 대한 논의는 이미 제시되었다. 박원재와로버트 애노는 모두 「달생」의 ‘구릉 이야기’를 통해, “구릉의 삶을 온전히 살아내는과정 속에서 물에서의 삶이 제2의 본성처럼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사내에게 또하나의 삶으로 발생한 것이다” “물 환경에서 오래 살면서 천천히 타고난 자질을다른 자연성으로 바꾸었다”라고 설명한다.(박원재, 「존재의 변화 혹은 삶의 변용」, 307쪽; Rober Eno, “Co k Ding’s Dao and the Limits of Philosophy” p. 141 참조) 포정이 살아가는 환경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장자철학에서 제2의 본성혹은 제2의 자연성이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이 이미 제기되었다. 정세근 또한 노자철학의 자연성을 사람이 만들지 않은 자연인 ‘사실적 자연’과 사람이 만든 자연인‘의미적 자연’으로 구분하였다.(정세근, 「의미적 자연과 사실적 자연」, 114쪽 참조) 인공적인 뜨거운 인지는 이 두 가지 자연성 중 어느 한 지점일 것이다. 이 논문의차별성은 제2의 자연성의 특징이 무엇이며 그 작동 방식에 대하여 인지적 방식으로규명한 것이다.
‘신욕’이 자발적 상태라는 것은 여러 논의에서 지적되었다. 즉 이 자연성은 무위의 상태로 주변 환경과 부합하는 지적 자발성(intellectual spontaneity) 이며, 세상살이에서 거의 초자연적인 효율성을 보여 준다.44) 또한 이 자연성은 기술의 완벽성으로 더 이상 세계를 감각 기관의 중재를 통해 세계를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만남(spirit-like encounter)으로 세계와 접속하는 영적 자발성(spirit-like spontaneity)이다.45) 그리고 이 자연성은 한존재가 타고난 능력(德)으로 인간이 선택할 수 없는 물리적 과정이며 생각이 없는 상태이지만 불합리함(unreasoning)이 아니라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상태이다.46)
‘신욕’을 따르는 포정의 기술이 자발성에 기인한다는 것은 대부분 동의한다. 그리고 그 자발성은 자연성의 상태이고 식욕과같은 낮은 수준이 아니라 고차원적인 제2의 자연성이기도 하다. 그러나이‘신욕’에 대한 기존의 해설은 ‘지적’ 혹은 ‘영적’이라는 다소 모호한 용어를사용했고, 선험적인 정신 상태로만 해명이 되었다. ‘신욕’의 자발성은 몸을 대표하는 뜨거운 인지와 마음과 사유를 대표하는 차가운 인지의 두 가지 인지 체계의 상호작용에서 만들어진다. 다시말해 이 자연성은 경험을 통해 얻게 되는 제2의 자연성이자 인공적인뜨거운 인지 체계가 작동하는 상태로 물리적·경험적 능력을 벗어난 초월적상태가 아니라, 수양을 통해 물리적 감각 기관의 작동과 인식하고 판단하는 작용이 최고에 다다른 인지적으로 가장 명징한 수준이다.47)
44) 슬링거랜드 지음, 애쓰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 71쪽, 81쪽 참조.
45) Robert Eno, “Co k Ding’s Dao and the Limits of Philosophy” p. 135. 또한 애노는“반복적인 기술 습득의 실천을 통해 인간이 비인간적 세계의 자발성을 모사할 수있다는 생각으로 실천적인 앎(practical knowing), 인간 규칙의 상대화, 사회적 추구의비판을 가치 있게 여긴다”라고 주장한다.(같은 논문, p. 141)
46) 앵거스 그레이엄, 장자 10-11쪽, 25-26쪽 참조.
47) 박원재는 장자의 ‘변화(化)’ 개념에 대하여 ‘존재 사이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개별존재자 안에서의 변화’로 구분한다. 즉 전자는 생명을 가진 존재의 죽음과 같은 것이고, 후자는 삶이 근본적으로 다른 양태의 삶으로의 변용(transformation)이다. 그리고이 변용을 삶을 살아내는 과정에서 제2의 본성이 스스로 모르는 사이에 발생한 것으로간주한다.(이상 박원재, 「존재의 변화 혹은 삶의 변용」, 305쪽, 307쪽 참조) 신체적· 인지적 작동이 최상적으로 작동하는 상태를 ‘명징하다’라고 정의한다면, 이러한 인지적명징함은 두 가지 인지 체계의 혼성을 통해 주체의 인지적 작용이 고차원적으로변용된 것이다.
이는 우리몸을 구성하는 두 가지 요소인 육체(形)와 마음(心)이 이상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을 때 그 몸(身)이 지니게 되는 어떤 특징이다.48) 포정이 칼을 쓰는(其於遊刀) 데에는 반드시 여유가 있다(必有餘). 장자는 포정이 칼을 쓰는 것을 “노니는 것(遊)”로 묘사한다. 즉 복잡한 소의해부학적 구조를 이해하고 그것에 따라 칼을 쓰지만, 마치 여행자가 한가로이 유유자적하듯 여유가 넘친다. 차가운 인지 체계가 주도적으로 작동하는 때는 여유가 없다. 도를 좋아하고 칼을 쓰는 데에 여유가 있는 포정의상태는 분명 뜨거운 인지가 주도적으로 작동하는 상태이고, 이 뜨거운인지에는 고차원적인 사유 능력이 무의식적으로 작동하기에 인공적인 뜨거운 인지 체계가 된다. 그렇다면 이 제2의 자연성인 인공적인 뜨거운 인지체계에서 차가운 인지의 역할은 소멸되는가? 인공적 뜨거운 인지는 한번획득하면 손상 받지 않는 순수한 인지적 상태인가? 하지만 뼈와 근육이 엉켜 있는 곳에 이를 때마다 저는 그 일이 어려움을알아채고 두려워하면서 경계를 하고 눈을 그곳에 멈추고 도축하길 더디게합니다. 칼을 움직이길 아주 미묘하게 하는데, 스르륵 하고 해체되는 것이흙덩이가 땅에 떨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칼을 손에 든 채 일어나 주위를돌아보며 머뭇거리다가 스스로 만족하면, 칼을 잘 씻어 챙겨둡니다.49)
48) 박원재, 「노장의 ‘정신’ 개념에 대한 재검토」, 182쪽 참조. 박원재는 ‘신(神)’의 상태를‘몸(身)’이 지니는 특성으로 간주한다. 몸은 뜨거운 인지를 대표하는 인지 체계이고, 이 몸은 수양을 통해 만들어진 인공적인 뜨거운 인지인 것이다. 또한 박원재는“신은 정신 그 자체와 동일어로 쓰이지 않는다. ‘마음’이라는 활동이 지니고 있는원활성을 지시한다”라고 제시한다.(같은 논문, 184쪽) ‘신’과 ‘마음’을 연결하는 것은신이 주체의 마음 활동과 관련된다는 것이고, 이는 주체의 경험성에서 벗어나 설명할수 없음을 의미한다. 즉 마음의 활동이 지니고 있는 원활성으로서의 ‘신’, 이때의마음은 ‘영부(靈符)’라 할 수 있을 것이다.
49) 莊子 「養生主」: 雖然, 每至於族, 吾見其難爲, 怵然爲戒, 視爲止, 行爲遲. 動刀甚微, 謋然已解, 如士委地. 提刀而立, 爲之四顧, 爲之躊躇滿志, 善刀而藏之.
‘신욕’을 따라 소를 해체하는 포정은 칼을 자유롭게 놀린다(遊刀). 그의심리 상태 또한 자유롭다. 그리고 인공적인 뜨거운 인지의 주도로 힘들이지 않은 채 소를 해체한다. 그런 상황에서도 집중해야 할 때가 찾아온다. 그런데 자유로운 상태의 포정의 마음에 ‘두려움(怵然)’이 생기는 것이 흥미롭다. 이러한 생경한 감정이 차가운 인지의 민감성을 예민하게 한다.50) 의식하지 않고 자발적이며 자동적으로 도축하면서도, “뼈와 근육이 엉겨있는 곳”에 이르면 그 복잡성을 알아차리고 감각 기관과 모든 정신은그곳에 집중되어 도축의 속도를 느리고 신중하게 한다. 이는 분명 차가운인지의 작동 방식이다. 성현영은 이에 대하여 ‘매번 서로 엉킨 곳에 이르면 그 어려움을 마음에 두지 않은 적이 없고, 그곳을 두려워하면서 조심하고 경계하고 삼갈 곳으로 여겨 집중하여 보며 천천히 손을 놀린다’고해석한다.51)
50) “사람들의 무의식 수준에서 문제를 다룰 때 방해물(distraction)에서 이득을 얻는데, 이는 ‘새로운 관점’에서 문제를 돌아보게 한다. 즉 무의식 수준에서 사유하는 동안에 의식적인 개입(intrusion)이 일어나는데, 문제에 직면했을 때이다. 다시 말해 무의식적으로 목표를 추구하는 가운데, 목표 달성을 위한 과정에 문제가 있을 때에의식적으로 목표를 다시 인식하게 된다.”(Ap Dijksterhuis, madelijn Strick, maarten W. Bos, and Loran f.nordgren, ‘Prolonged Thought: Proposing Type 3 Processing’, in Dual-Process Theories of the Social Mind(NewYork: The Guilford Press, 2014), p. 356, p. 360.)
51) “節骨交聚磐結之處, 名為族也. 雖復遊刃於空, 善見其卻, 每至交錯之處, 未嘗不留意艱難, 為其怵惕戒慎, 專視徐手. 況體道之人, 雖復達彼虛幻, 至於境智交涉, 必須戒慎艱難, 不得輕染根塵, 動傷於寂者也.”(郭慶藩, 莊子集釋, p. 129)
‘어려움을 마음에 두고’, ‘두려워서 조심하고 경계하고’, ‘삼갈곳으로 여기며 집중하고 천천히 손을 놀린다’는 것은 모두 차가운 인지의전형적인 작동 방식에 대한 묘사이다. 인공적인 뜨거운 인지와 차가운 인지는 함께 작동한다. 여기서 인공적인 뜨거운 인지는 두 가지 인지 체계에서 만들어진 또 하나의 세 번째인지 체계가 아니다. 인공적인 뜨거운 인지는 두 인지 체계가 혼성되어함께 작동하는 여러 양상 가운데 하나이다. 그렇기에 인공적인 뜨거운 인지에서는 뜨거운 인지와 차가운 인지가 함께 작동하지만, 뜨거운 인지의농도가 짙은 상태이다. 하지만 상황의 복잡성과 감정의 변화는 그 농도에변화를 야기하고 다시 차가운 인지의 농도가 짙어지면서 또 다른 균형점을 찾아간다. 즉 두 인지 체계의 혼성으로 창발된 ‘신’의 상태는 두 가지인지 체계가 상호작동하면서 상황에 따라 최적의 판단과 작용을 위해협력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인공적인 뜨거운 인지를 한번 획득했다고 해서 그 상태가 순수하게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인지적체계의 작용은 지속적으로 변화하면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적 상태이다. 이것이 바로 2장에서 살펴본 “緣督以爲經”의 중도(中道)이다. 수평의 양극단에서 어느 한쪽으로 완전히 치우치지 않는 상태로 두 가지 인지 체계가양극단을 이루나 그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완전히 잠식하는 일방적으로 완전히 편향된 상태가 아니다. 동시에 양극단의 특질이 모두 내포되어있는 상태로 뜨거운 인지 체계의 작동 방식과 차가운 인지 체계의 작동방식 모두가 혼성된 상태이다. 장자는 인간의 인위적 인식은 자연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될뿐만 아니라 개인적 자유를 달성하는 데에 장애가 되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장자의 자연을 무의식·맹목적이어서 그것의 운동과 변화에는 아무런 목적이 없고, 소를 가르는 데 감각과 지각의 작용을 멈추고 자연의본성에 따라 움직인 것으로 간주한다.52) 하지만 인지적 관점에서 포정해우이야기를 분석한 것에 따르면, 인간의 인위성을 대표하는 차가운 인지는장자 수양론의 목적인 자연성, 즉 인지적 자발성(cognitive spontaneity)을획득하는데 반드시 필요하다. 그뿐만 아니라 한번 습득한 인지적 자발성, 곧 제2의 자연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데에 차가운 인지의 역할 또한요구된다. 다만 차가운 인지의 작용의 깊이와 농도가 제2의 자연성을 획득하기 이전보다 미약하고 상당히 짧을 뿐이다. 포정해우 이야기에 대하여 왕숙민은 “마음과 신(神)을 과하게 사용하면 마르고 고갈하게 된다. 이 이야기로 ‘綠督為經’의 뜻을 증명하였다”라고한다.53)
52) 권경자, 「장자의 초월의식에 관한 소고」(동양철학연구 제49집, 동양철학연구회, 2007), 202쪽 참조.
53) “案養刀之道, 須知戒知藏. 養生之道亦然, 心神過用則枯竭也. 以上第二章. 以庖丁解牛, 證綠督為經之義.”(王叔岷, 莊子校詮, p. 107)
양생을 위해 차가운 인지를 과도하게 사용하는 것은 양생의 도를오히려 해치는 일이다. 그렇기에 차가운 인지의 역할은 반드시 뜨거워져야하고 인공적인 뜨거운 인지를 획득해야만 한다. 이러한 인지적 자발성은두 체계가 동시에 작동하다가 상황과 필요에 따라 각각의 체계가 주도적으로 작동하는 ‘능동적인 중도(中道)’를 유지하는 상태이다. 이 상태는두인지 체제의 상호작용에서 창발된 것이다.
Ⅴ. 나가는 말: 여러 자연성들
포정해우 이야기는 장자의 수양론을 독해할 수 있는 대표적인 이야기들 중 하나이다. 백정 포정은 도축술을 수양하기 이전 그저 한 덩어리의소만 봤을 뿐 그 덩어리 내에 있는 해부학적 구조와 소의 자질을 인지할수 없었다. 하지만 오직 도축을 수양하는 ‘집중’적인 공부를 통해 소의자연성을 몸으로 체득하게 된다. 그러한 과정에서 포정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뜨거운 인지와 차가운 인지의 기능을 이해하게 되었고, 수양을 통해 이 두 가지 인지 체계의 융합에서 창발되는 ‘인공적인 뜨거운 인지’를 획득한다. 장자는 그것을 ‘신(神)’이라 하였고 인지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그 작용이 가장 명징한 상태로 간주하였다. 이 인공적인뜨거운 인지는 차가운 인지와 뜨거운 인지가 함께 작동하나, 그 작동 양상이 무의식적이고 완전히 자발적이기에 ‘뜨거운 인지’라고 명명한 것이다. ‘신욕(神欲)’을 따라 살아가는 포정은 소를 도축하여도 칼을 상하게 하지않듯이 자신의 천수를 다하는 양생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는인공적인 뜨거운 인지라는 제2의 자연성을 획득하였고, 두 가지 인지를변화하는 상황에 따라 절묘하게 조절하는 ‘인지적인 중도’를 실천하는사람이다. 이 글의 인지적 분석에서 알 수 있듯이 중도를 실천하는 자발성은 육체와 환경과 단절된 순수한 정신적 작용이 아니라, ‘몸-마음-환경’의상호작용에서 만들어진다. 아마 많은 연구자와 대중이 포정 이야기에매료되는 것은 어렵고 복잡한 도축을 쉽게 해내는 포정의 ‘탁월함’ 때문일것이다. 포정이 습득한 인지적 자발성으로 우리가 삶을 살아간다면 천수를누리며 힘들이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자연성-인위성’의 이분법적 구도는 중국고대철학에서 학자와 학파를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지금까지의 많은 연구는 이 두 가지를 섞일수 없는 대척점의 양상으로만 간주하였다. 그 결과 각각이 중국철학에어떻게 용해되어 있는지에 대한 연구가 주로 진행되었을 뿐, 자연성과 인위성이 융합했을 때의 결과에 대한 연구는 부족했다. 장자가 무너뜨리려고노력했던 것 중 하나는 고정된 이분법적인 구도였다. 그렇기에 자연성 hot cognition)과 인위성(cold cognition)의 체계를 이분법적인 구도로만간주하는 것은 장자의 철학과 어울리지 않는다. 또한 대척점에 있는 이분법적인 양상으로만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호모 사피엔스로서의 인간과도어울리지 않는다. 뜨거운 인지와 차가운 인지의 두 양상은 인간이라면누구나 가지고 있는 사유 방식이자 행동 방식이다.
장자의 표현대로 한다면 자연성은 인위성이 되기도 하고 인위성은 자연성이 되기도 한다.
또한 이 둘의 융합은 새로운 자연성을 낳기도 하고 인위성을 낳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여러 자연성’이 만들어질 가능성에 대한 인정은 중국 고대 철학의 해석적 다양성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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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Shen神, Zhuangzi’s Self-Cultivation and the Journey of Cognitive Spontaneity* 54) - Focusing on the story Cook Ting (庖丁解牛) -
Cho, Hyun-ill (Chonnam National Univ.)
This paper uses the outcomes of cognitive science to examine the “shen (神)” of the story of Cook Ting (庖丁) from Zhuangzi and to elucidate the cognitive features in Zhuangzi’s self-cultivation. The primary feature of “shen” that is, the upmost mental state, is the cognitive spontaneity that is the result of blending hot cognition and cold cognition. This cognitive spontaneity is the clearest level of thought processes and behavioral patterns. I argue that “shen” is not a priori or inherent but the creation of the experience of self-cultivation from the perspective of cognitive science. Before self-cultivation, Cook Ting sees the ox only with his sensory organs (hot cognition). After completing three years of self-cultivation (cold cognition), he can thoroughly embody his butchery skills. As a result, he is no longer restrained by sensory organs alone and instead can see the ox through “shen.” He has achieved artificial hot cognition, the most spontaneous state which is the result of the interaction of hot cognition and cold cognition. Zhuangzi called this spontaneity “shenyu (神欲).” The difference between the newly created hot cognition and the existing hot cognition, representative of physical body and emotion, is that the newly created hot cognition experiences and embodies the cold cognition that is representative of conscious thought and reasoned action. * https://d
oi.org/10.20293/jokps.2023.165.177 For nineteen years, Cook Ting follows “shenyu, and the cleaver he uses for those nineteen years is like a new cleaver. The artificial hot cognition makes it possible for Cook Ting to recognize each ox’s natural features and also to consider the nature of both Ting and the ox’s as one. Cook Ting follows the lead of artificial hot cognition completely, and at the same time, cold cognition (for differentiation and decision-making) is also activated when he encounters a complication that is difficult to handle. The artificial hot cognition that is the second nature and the upmost cognitive state achieved by self-cultivation are activated very efficiently; this is the consistent cognitive process, adjusting according to the situation’s complexity and finding another point of equilibrium. Thus, the work of artificial hot cognition is the middle way (中道) of yuanduyiyujing (緣督以爲經).
* Keywords : Zhuangzi, Cook Ting (庖丁), Shen (神), spontaneity, artificial hot cognition, the second nature
■ 논문접수일: 2022년 12월 21일, 심사일: 2023년 2월 8일, 게재확정일: 2023년 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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