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문
이 글은 지나칠 정도로 확고부동한 사후규정에 가려진 마르크스 유물 론의 정체성을 모색하고자 하는 의도를 지닌다. 이는 a) ‘변증법적 유물론’, ‘역사적 유물론’ 등 마르크스 사후에 강고하게 자리 잡은 규정의 외피 너머 마르크스가 진정 관심을 기울인 유물론의 내용이 무엇인지 추적하는 일, 그 리고 b) 마르크스 고유의 유물론을 재해석함으로써 그에 대한 새로운 비판 에 응답할 수 있는지, 그리하여 현재의 세계에 관한 이론적·실천적 성찰과 비판의 토대로 여전히 유효한지 살피는 작업을 통해 성공적으로 완수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이 가운데 a)에 국한되며, 마르크스 고유의 사유가 풍부하게 나타나는 『신성가족』 분석을 통해 마르크스 유물론의 정체성을 탐문하고자 한다. 『신성가족』에서 마르크스가 보여준 부르노 바우어에 대한 비판과 프 랑스 유물론의 재평가는 그의 궁극적인 관심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마르크스는 ‘변증법적 유물론’, 자연과학의 대상으로서의 ‘물 질’ 등에 상대적으로 무관심했으며, 나중에 정립하게 되는 사적 유물론의 구상을 선취하여 투영함으로써 프랑스 유물론에서 그와 상통하는 지점을 찾아 집중했다. 이러한 사실은 마르크스 사유의 핵심이 사적 유물론에 있음 을, 아울러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변증법적 유물론에 대해 일정하게 거리를 유지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주 제 : 사회철학, 서양근현대철학, 유물론
검색어 : 칼 마르크스, 변증법적 유물론, 역사적 유물론, 『신성가족』
1. 들어가며; 마르크스 유물론의 정체성 –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 사이
마르크스는 명백하게 유물론자다. 하지만 이 간단한 명제에 얽혀 있는 진정한 난점은 ‘유물론’과 유물론의 역사 자체를 직시할 때 발 생한다. 현재 ‘마르크스’에 수반되는 ‘유물론’이란 그 어떤 이론보다 명확한 한정을 지닌다.
인간의 역사와 현실이 그러하듯 이론 또한 논리적으로 정합적인 특정한 함축만 오롯이 지니고 있다기보다 공시 적이며 통시적인 이론들, 역사적·현실적 요소들에 대해 복잡한 상호 연관을 맺으며 이를테면 ‘동요’하는 속성을 암묵적으로 포함한다. 텍 스트야 움직일 리 없지만 예컨대 새로운 사회적 맥락 속에서 비판될 수도 있고, 거듭된 분석을 통해 잘 알려지지 않은 옛 이론의 파편이 발견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마르크스 유물론은 이같은 상호연관, 그리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흔들림을 역사적으로 면제받은 듯이 안정 된 한정 내에 머물렀다. 이는 주지하다시피 조숙했고 또 조로했던 사회주의의 역사 탓이다. 이로 인해 과도했던 한정의 빗장을 열고나 면, 다시 말해 마르크스 유물론에 대한 완강하며 확정적인 규정을 열고나면, 따라서 종횡으로 얽힌 이론과 현실의 계기를 끌어들이고 나면, 이 한정 자체의 정당성은 당연히 흔들릴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러한 도전을 통해 ‘다시’ 마르크스에 닿으려는 시도는 지금껏 끊 이지 않았고, 그러한 도전이 있을 때마다 마르크스의 데드마스크는 항상 새로운 얼굴로 그려졌다. 이 글 또한 마르크스 유물론에 관한 종전의 몽타쥬를 의심하는 데서 출발한다. 유물론의 역사는 서양 철학 자체의 역사와 기원을 같이하며, 특히 근대 이후 그 지평은 훨씬 더 넓어지고 내용 또한 심원함을 갖추게 된다. 다양할 뿐 아니라 새로운 논리로 무장한 여러 이론들이 출현 했고 다소 단순한 분류 기준에 의해 각이한 입장들이 ‘유물론’으로 통칭되었다.
이론가에 따라 일정한 차별성을 지니고 있던 유물론이 확고부동한 규정을 갖게 됨은 엥겔스에서 비롯되어 레닌, 데보린, 플레하노프 등 20세기 초 러시아 이론가들에 의해 완수된 사건이다. 유물론의 이같은 전사(前史)를 통해 통상 마르크스의 유물론은 ‘역사 적’이란 수식어, 그리고 ‘변증법적’이라는 수식어에 의해 변별되는 이론적 체계로 정리되었다. 나아가 통일적 관계를 맺고 있다고 간주 되는 이 두 개의 유물론은 마르크스주의의 ‘철학’을 대표하는 것이 되었다. 이처럼 마르크스의 유물론을 차별화하는 명명이 구축됨은 동시에 여타의 유물론에 대한 차별적 규정들, 예컨대 ‘고대 유물론’, ‘기계적 유물론’, ‘인간학적 유물론’ 등이 이를테면 ‘과규정(過規定)’ 되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각이한 유물론들을 잇고 또 가르는 이러한 통일성 및 차별성이 그처럼 단순화될 수 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없 을 수 없는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진지한 재성찰의 실마리는 주지하다시피 한동안 쉽사리 제시되지 않았다. 이같은 한 정과 분류가 사회주의 역사를 통해 신화화됨으로써, 또 이런 ‘신화’ 적 규정이 지나치게 큰 지배력을 발휘함으로써 비판적 성찰이 차단 되었기 때문이다. 이 글은 그같은 과규정을 넘어 마르크스 유물론의 정체성에 다가 가고자 하는 시도의 일환이다. ‘일환’에 불과한 까닭은 그러한 시도 에 마땅히 포함되어야 할 논구 가운데 일부만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 실에 있다.
마르크스 고유의 유물론을 탐문하는 작업은 적어도 다음 과 같은 논구를 모두 포함해야 한다.
첫째는 ‘변증법적 유물론’, ‘역 사적 유물론’ 등 마르크스 사후에 강고하게 자리 잡은 규정의 외피 너머 마르크스가
진정 관심을 기울인 유물론의 내용이 무엇인지 추 적하는 것이다.
둘째는 마르크스 고유의 유물론을 재해석함으로써 마르크스 유물론의 정체성에 관하여 그에 대한 새로운 비판에 응답할 수 있는지, 그리하여 현재의 세계 에 관한 이론적·실천적 성찰과 비판의 토대로 여전히 유효한지 살피 는 것이다. 이 글은 이 가운데 첫 번째 작업에 국한된다.
마르크스 고유의 유물론을 추적하는 작업은 주로 원전 분석을 통 해 이뤄지는데, 이에 근거하면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물질’ 에 관한 천착 또는 변증법적 유물론은 마르크스의 관심사가 아니었 음을 알 수 있다. 이 점은 실제로 현대 이론가들 가운데 일부가 이 미 제기하고 있는 주장이기도 하다. 마르크스를 변증법적 유물론자 와 구분하면서 “마르크스는 달랐다. 그에게 유물론의 탐구분야는 역 사와 사회였다”1)고 단언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마르크스는 스스로 ‘변증법적 유물론’이란 말조차 쓴 적이 없다”2)고 말하는 이도 있다.
실제로 변증법적 유물론은 주로 엥겔스가 진력한 분야였고, 마르크 스 또한 그에 관해 이렇다 할 언급을 남기지 않았다. 마르크스의 주된 관심사는 역사와 사회의 지평에 유물론적 관점을 적용하는 것이 었다.
이처럼 달리 적용되는 관점은 ‘물질’에 대한 이해 또한 차별적 일 가능성이 적지 않다. 마르크스 고유의 ‘물질’과 ‘유물론’을 이렇게 변별해내는 일은 굳 이 교조적인 사회주의 이론의 전통을 의식하지 않더라도 일정하게 이론적 정당화를 필요로 한다. 무엇보다 이 주제와 연관된 논쟁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대상 또는 물질, 그리고 인 간 사이에 ‘비인간’이 정위되어 일종의 주체성을 획득하기도 하고3), “물질성”이 물질에 자기창조성, 예측불가능성을 불어 넣는 관계성이나 힘으로 간주되기도 한다.4)
1) 『유물론』, 테리 이글턴, 전대호 역, 갈마바람, 2018, 84.
2) New materialisms : ontology, agency, and politics, Diana Coole and Samantha Frost, eds. Durham NC : Duke University Press, 2010. 70.
3) 『인간·사물·동맹』, 부르노 라투르, 홍성욱 엮음, 이음, 2010, 111.
4) New materialisms : ontology, agency, and politics, 9.
이 과정에서 현대 유물론은 마르크스와 그의 유물론을 독자적인 방식으로 규정하고 또 인용하지만, 이러 한 논의들 또한 다시 마르크스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평가됨이 온당 하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물질’과 ‘유물론’의 정체성을 그의 목소리 를 좇아 다시 더듬는 일은 결코 한가하거나 무망한 게 아니다. 이론적 정체성을 탐문하는 작업은 특히 개념적 기원에 집중함으로 써 비로소 적절하게 수행될 수 있다. 마르크스의 사적 유물론은 대 개 ‘포이어바흐 테제’5) 등이 등장하는 『독일이데올로기』를 그 출발 점이 된다고 평가되지만, 기실 ‘물질’ 및 ‘유물론’에 대한 마르크스 사유의 정향을 좀 더 면밀히 살필 수 있는 저술은 『신성가족』이다. 물론 『독일이데올로기』처럼 유물론에 관해 체계화된 서술이 등장하 지는 않지만, 기존의 유물론을 소상하게 분류하고 평가하면서 물질 및 유물론에 대한 마르크스 자신의 사유를 오히려 풍부하게 드러내 는 까닭이다. 『신성가족』을 통해, 마르크스가 “모든 관념론적 역사철 학과 지적 쁘띠부르조아지의 역사적 무력함을 표현하는, 사회에 대 해 단순히 ‘비판적’일 뿐인 관점들을” 비로소 “유물론의 관점에서” 비판할 수 있게 되었음은 사실이다.6)
5) 『독일이데올로기』 1권, 마르크스·엥겔스, 이병창 옮김, 먼빛으로, 2019, 25.
6) 『역사유물론 연구』, 에티엔 발리바르, 이해민 옮김, 푸른산, 1989, 22. 47
2. 『신성가족』과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사유
『신성가족』은 마르크스의 유물론 정립과 관련하여 간과해선 안 되 는 주요 저술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유물론’ 관한 서술이 상대적 마르크스 유물론의 정체성에 관하여 으로 풍부하게 등장할 뿐 아니라, 여기에 앞선 유물론에 대한 평가 와 비판이 역동적으로 담기는 까닭이다. 마르크스의 사유는 사후의 역사를 통해 ‘지나치게’ 체계화·정식화되었기 때문에, ‘유물론’이나 ‘물질’처럼 결정적인 인상을 주는 키워드가 그의 텍스트를 뒤덮고 있을 듯하지만 주지하다시피 그렇지는 않다. ‘변증법적 유물론’이나 ‘역사적 유물론’을 집약하여 담고 있는 별도의 저술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신성가족』이 지니는 의미는 자못 크 다. 마르크스 자신의 유물론이 체계적으로 제시되는 것은 아닐지라 도 유물론 일반에 관한 마르크스 자신의 생각이 가장 풍부하게 등장 하는 거의 유일한 텍스트인 까닭이다. 『신성가족』은 1845년 마르크스, 엥겔스의 공저로 간행되는데, 이 간행 시기도 현재의 논의와 관련하여 이목을 끄는 점이 있다. 다름 아니라 저 유명한 『독일이데올로기』의 저술 시기와 겹친다는 사실이 다. 잘 알려져 있듯이 『독일이데올로기』는 마르크스의 사적 유물론 에 관한 서술이 명시적으로 등장하는 최초의 저술로서 마르크스 사 유의 역사를 전후기로 구분하도록 하는 가장 강력한 근거가 된다.7) 따라서 적어도 이 시기에 마르크스가 ‘유물론’ 연구에 상당히 진력 했다고 추정함은 온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신성가족』에 나타 난 유물론에 관한 논의가 『독일이데올로기』롤 통해 명시되는 사적 유물론과 깊은 상관성을 지닌다고 볼 여지도 있다. 한 사람의 생각 이 거의 같은 시기에 집필된 두 저술을 통해 완전히 다른 내용을 드 러낸다고 여기기는 어렵다. 물론 『독일이데올로기』의 차별성은 그 자체로 부정하기 어려운 것이고, 이 저술 직전까지 마르크스가 여전 히 “포이어바흐주의자”였다는 해석 또한 존재한다.8)
7) 대표적인 예가 알튀세르다. 그는 마르크스가 『독일이데올로기』를 통해 청 년기 휴머니즘과 ‘인식론적 단절’을 했다고 평가한다.(『마르크스를 위하 여』, 고길환, 이화숙 역, 백의, 1990, 34~36.)
8) 『니벨룽의 보물』, 정문길, 문학과 지성사, 2008, 239. 레닌 또한 이 시기 마르크스가 “포이어바흐의 추종자”였다고 술회한다.(『마르크스』, 레닌, 양 효식 옮김, 아고라, 2017, 73~74.) 오이저만은 “『신성가족』에서 개진된 맑스와 엥겔스의 역사·철학적 개념은 여전히 단편적이고 불완전하다” 말한 다. 그는 특히 “17세기 및 18세기의 유물론적 교의에 대한” 마르크스, 엥 겔스의 설명이 “그 형이상학적 한계에 대한 적절한 비판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신성가족』을 집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맑스가 변증법적 유물론을 정교화하는 데 또 하나의 진전을 이룩했다는 것”은 인정한다. (『맑스주의 철학성립사』, T.I. 오이저만, 윤지현 옮김, 아 침, 1989, 170.)
다만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점은 양 저술의 상관성, 즉 마르크스 고유의 유물론 (『독일이데올로기』), 그리고 이전 시대의 유물론의 마르크스의 평가 (『신성가족』) 사이에 가로놓인 일관성이다. 『신성가족』은 모두 9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 2, 3장은 엥겔스가, 5, 8, 9장은 마르크스가 썼다. 함께 쓴 부분은 4, 6, 7장 이며, 마르크스는 그 가운데 4장의 3, 4절, 6장의 1절, 2절의 b)항, 3절, 7장의 1절, 2절의 a), c)항, 3절을 저술했다.9) ‘유물론’에 관한 마르크스의 언급이 집중되는 곳은 6장 3절 d)항 ‘프랑스 유물론에 맞서는 비판적 전투’다. 참고로, 『신성가족』이 전체적으로 브루노 바 우어 및 그 지지자들에 대한 비판을 내용으로 하지만, 가장 신랄한 비판은 주로 6장에 집약적으로 나타난다. ‘프랑스 유물론에 맞서는 비판적 전투’는 프랑스 유물론에 대한 부르노 바우어 등의 비판을 꼼꼼하게 반박하는 내용인데,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유물론’ 또는 ‘물질’과 관련하여 뒤에 사적 유물론으로 이어진다고 볼 법한 마르크스 사유의 맹아들이 함축되어 있다.10)
9) Marx-Engels Werke(이하 MEW) Bd.2, Dietz Verlag, 1980, 723~725.
10) “1845년 마르크스는 브뤼셀로 망명하여 엥겔스와 같이 역사에 대한 유 물론적 철학관의 구상에 힘썼다.”(『역사유물론 연구』, 22.) 실제로 마르 크스가 프랑스에서 추방 명령을 받은 시기는 1945년 1월이며, 브뤼셀 망명 이후 마르크스는 “이미 유물사관의 중요한 특징들을 발전시켜 놓았 으며 우리는 당시에 그 새로 획득된 관점을 여러 방향에서 상세하게 정 교화하는 데 몰두했다”고 한다.(『맑스주의 철학 성립사』, 202.)
이 글이 『신성가족』에서 특히 주목하고자 하는 점은 ➀ 자연적 ‘물질’ 또는 이를 중심으로 하는 자연과학적·환원주의적 유물론에 마르크스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➁ 다만 그와 같은 유물론이 사회적 지평과 접점을 형성할 때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사실이다. 브루노 바우어의 프랑스 유물론 비판을 반박할 때, 마르크스가 염두에 두는 것은 주로 ➁와 연관된다. 말하자면, 프랑스 유물론이 인간의 사회와 역사에 관해 온당한 입론을 펼치고 있음을 부르노 바우어 등이 간과 했다고 비판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브루노 바우어는 프랑스 유물론을 일종의 유 신론적 변종, 즉 “물질에 보다 정신적 명칭을 부여한 유신론의 형 태”로 간주하여 비판한다.11) 그는 18세기 프랑스의 유물론과 유신 론이 스피노자의 해석을 둘러싸고 대립했을 뿐 공히 스피노자의 계 승자임을, 따라서 양자 간에 차별성이 없음을 강조한다. 프랑스 유 물론은 브루노 바우어에게 “프랑스의 스피노자 학파”일 따름이다. 나 아가 브루노 바우어는 계몽주의의 일환이었던 프랑스 유물론이 이론 적이고 실천적인 논박에 굴복하고 마침내 “낭만주의로의 몰락”에 이 르렀다고 혹평한다.12)
11)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이하 『선집』) 1, 마르크스·엥겔스, 최인호 외 옮김, 박종철출판사, 1991, 114 ; 『신성가족』, 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편집부 옮김, 이웃, 1990, 200~215.
12) 같은 곳.
브루노 바우어의 평가가 정당한 것이라면 18 세기 프랑스 유물론은 비록 차별적인 명명이 있다 하더라도, 그 주 장과 입장이 ‘스피노자주의’, ‘계몽주의’, ‘낭만주의’ 등의 범주로 해 소될 수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입장에서 이러한 비판은 프랑스 유물론이 지니는 긍정적 핵심을 제대로 짚고 있지 못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마르 크스는 부르노 바우어가 비판하는 ‘스피노자주의’, ‘계몽주의’, ‘낭만 주의’에서 오히려 프랑스 유물론의 가능성을 포착한다. 미신적 통념 을 타파하려는 계몽주의의 흔적, 역사적 통찰을 강력하게 함축하는 낭만주의의 영향은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세계를 비로소 온전히 바 라보게끔 하는 유물론의 가능성 그 자체였다. 더욱이 “유물론자들의 모세”13) 스피노자와 프랑스 유물론이 일정하게 중첩됨 또한 마르크 스의 눈에는 오히려 당연한 것이었다. 신학적 배경만 제거한다면 자 연을 유일한 실체로 간주하는 스피노자의 주장은 “진정한 유물론적 내용”을 갖춘 것이었고, 이런 점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스피노자 와 강력하게 연관시키는 평가 또한 가능했던 것이다.14) 더욱이 프랑스 유물론은 끊임없이 구시대의 정신적 유산을 청산하 며 전진했다. “18세기의 프랑스 계몽 사상과 특히 프랑스 유물론은 현존 정치제도들에 대한, 그리고 현존 종교 및 신학에 대한 투쟁일 뿐만 아니라, 마찬가지로 17세기 형이상학과 모든 형이상학에 대한, 특히 데까르트, 말르브랑슈, 스피노자, 라이프니쯔의 형이상학에 대 한 공공연하고도 명백한 투쟁이었다.” 18세기 프랑스 유물론에 의해 쫓겨났던 17세기 형이상학은 19세기 독일의 사변철학, 즉 헤겔의 철학에 의해 부흥하였고, 이는 다시 포이어바흐의 인간학적 유물론 에 무릎을 꿇었다. 포이어바흐의 이론이 그러했듯이, “프랑스 및 영 국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실천적 영역에서, 인간주의와 일치하는 유물론을 표현하였다.”15)
13) 『미래철학의 근본원칙』,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 강대석 옮김, 이문출판 사, 1983, 32.
14) “맑스와 엥겔스의 스피노자주의는 가장 근대적인 유물론이다.” (『맑스주 의의 근본문제』, G. V. 플레하노프, 민해철 옮김, 거름, 1987, 35.)
15) 『선집』 1, 115.
마르크스가 부르노 바우어의 ‘신성가족’에 맞서 프랑스 유물론을 옹호하는 주된 근거는 부단히 구시대의 주술적 통념과 투쟁하면서 인간의 현실, 실제 세계를 지향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눈길을 끄는 것은 모든 존재를 단순히 ‘물질’로 환원 하며 자연과학적 설명의 대상으로 치환하는 프랑스 유물론의 경향에 대해 마르크스가 취한 태도다. 마르크스는 그와 같은 경향 자체에 동의하기 때문에 프랑스 유물론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게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경향에서 비롯된 반형이상학적 지향, 실제적 인간 세계와 그 운동에 주목하게 되는 효과 등을 긍정적으로 바라봤던 것이다.
2-1. 『신성가족』과 마르크스의 시선 1: 새로운 방법론과 오랜 통념의 제거
마르크스는 『신성가족』에서 18세기 프랑스 유물론을 두 계열로 대분한다. “프랑스 유물론에는 두 개의 흐름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그 원천을 데카르트에 두고 있고, 다른 하나는 그 원천을 로크에 두 고 있다.” 기원을 달리 하는 두 유물론의 흐름은 마르크스가 보기에 서로 다른 이론적·실천적 맥락을 형성한다. 이와 관련하여 마르크스 는 로크 계열의 유물론이 “직접 사회주의로 흘러” 들어가고, 데카르트적 유물론은 “프랑스 특유의 자연과학으로” 흘러들어갔다고 평가 한다.16)
16) 물론 이렇게 구별된 두 흐름이 완전히 독립적으로, 그리고 배타적으로 전개된 것은 아니다. 동시대 이론들이 대개 그러하듯, 비판과 수용 등 양자 사이의 상호작용이나 접점은 당연히 존재했고, 마르크스도 그러한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두 흐름은 발전의 도상에서 교차한 다.”(같은 곳.)
이 가운데 마르크스는 후자를 “기계적 유물론”으로 칭한다. 즉 마르크스가 말하는 ‘기계적 유물론’이란 18세기 유물론 가운데 특히 데카르트에서 유래하여 자연과학으로 흘러들어간 이론적 경향을 가리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기계적 유물론’의 이론적 전개에 관해 상세한 설명이 필요없다고 하면서도, “데카르트”, “뉴튼”, “프랑스 자연과학 일반의 발전” 등 몇 가지 키워드를 제시17)하고 특히 데카르트 및 그 이후 프랑스 유물론의 흐름과 전개를 간략하게 언급한다. 마르크스는 데 카르트가 물리학과 형이상학의 분리18)를 통해 특히 물질에 관한 독 립적 설명의 기반을 개방했다고 본다. 즉 데카르트는 ‘물리학’을 통 해 물질이 “자기 창조 능력”을 지닌 존재임을, 그리고 “기계적 운동 을 물질의 생명 활동으로 파악”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마르 크스는 흥미롭게도 ‘기계적 유물론’이 데카르트 이론 전체에 관한 승인이 아니라 정확하게 절반의 계승을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기계 적 유물론은 데카르트의 형이상학을 거부하고 물리학만 이어 받았다 는 것이다. 이러한 편취에 관해 마르크스는 기계적 유물론자들이 “직업상 반反 형이상학자, 즉 물리학자들”이었음을 환기한다.19) 실제 로 이 흐름에서 “의사 르 르아에서 시작하고, 의사 까바니에서 그 정점에 도달”했다.20) 이들이 보여준 데카르트 이해의 특징은 데카르 트가 애써 물질의 지평과 구분하여 논의한 ‘영혼’, ‘이념’ 등을 다시 물질의 차원, 즉 물리학의 차원으로 해소하고자 했다는 점이다.21)
17) “데까르트로부터 직접 시작되는 프랑스 유물론에 대해서 우리는 더 상세 히 서술할 필요가 없으며, 프랑스 뉴튼 학파에 대해서도, 프랑스 자연 과학 일반의 발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더 상세히 서술할 필요가 없 다.” (같은 곳.)
18) 데카르트의 이원론적 존재론이 결국 의식과 물질 각각을 설명하는 이론 의 분리를 낳았다고 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19) 『선집』 1, 116.
20) ‘물리학자’란 지적이 당시 기준으로 ‘자연과학자’ 일반이란 말과 일정하 게 중첩되기 때문에 이 명칭은 틀린 것은 결코 아니다. 의사 또한 이 분 야에 속하는 이들이라 말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21) 마르크스에 따르면 심지어 르 르아는 데카르트의 진의가 유물론적인 것
이들의 유물론은 “영혼을 육체의 일 양태”로, “이념들을 기계적 운동들로서” 설명하고자 함으로써 마르크스 말처럼 “역학적 자연과학”으 로 통합된다.22) 실제로 ‘기계적 유물론’은 주로 자연과학 분야에 몸담은 이들에 의해 주도되었고, 이들에게 데카르트나 뉴튼의 영향력은 지대했다. 기계적 유물론자들이 데카르트 이론의 ‘절반’만 편취하여 계승했음 은 반대로 나머지 ‘절반’을 거부하고 그에 대해 대립적이었음을 말 해준다. 데카르트나 라이프니츠로 대표되는 17세기 형이상학은 수학, 물리 학 등 실증적 내용들을 내함하고 있었으나 이후 실증 과학은 독자적 인 영역을 구축하면서 형이상학과 결별하였다. “실제적 존재와 지상 의 사물들이 모든 관심을 자신에게 집중시키기 시작했을 때, 형이상 학의 전 재산은 고작 사고 속의 존재와 천상의 사물들로 이루어져 있을 뿐이었다.”23) 이와 관련하여, 마르크스는 17세기 형이상학의 해체에 가장 결정적으로 기여한 인물로 피에르 벨을 꼽는다. 마르크 스가 보기에 피에르의 벨은 단순히 형이상학의 입지를 단호하게 제 거하는 일 이상의 이론적 기여를 하였다. 이는 유물론과 통합된 무 신론의 가능성을 개방한 것이었다. 피에르 벨은 미신과 우상숭배가 경멸의 대상이며 무신론자가 존경 받는 세상이 가능함을, 나아가 무 신론자들만의 사회가 존재할 수 있음을 예고하였다.24) 이었다고 믿었다.
22) 마르크스는 실제로 이들이 “역학적 자연과학에서 커다란 성과를 커두었 다”고 평가한다.(같은 곳.) 이러한 평가의 이유에 관해 구체적인 설명은 없지만, 아마도 기존의 형이상학적 구상들을 당시 자연과학의 성과로 적 절하게 해소하였다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23) 같은 책, 117.
24) 이와 관련하여, 마르크스는 출처를 밝히지 않은 채 피에르 벨이 17세기 “최후의 형이상학자”이자 18세기 “최초의 철학자”였다는 문장을 인용한 다.(같은 책, 118.)
물론 “데까르트는 항의하였다”고 한다.(같은 곳.) 이처럼, 마르크스가 프랑스 유물론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인간과 그 세계에 대한 억압적 기제로 작동했던 통념 들을 과감하게 제거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프 랑스 유물론자들은 이전 철학을 계승하면서도 근대자연과학에 힘입 어 예컨대, ‘신’, ‘천상’, ‘영혼’, ‘이념’들의 권위를 허물고 그 허구성 을 드러내는 데 크게 기여했고 마르크스 또한 이에 주목했다. 하지 만 형이상학의 제거 등의 기능은 프랑스 유물론만의 공이라 할 수는 없다. 예컨대 당대의 영국 경험론 또한 당대의 관념론과 맞서 오랜 통념들의 제거에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마르크스는 퍽 특이한 태도를 보인다. 마르크스 사 후에 체계화된 유물론적 정식에 따르면, 마땅히 낡은 철학의 일종으 로 분류되어야 할 경험론을 ‘유물론’으로 간주하는 까닭이다. 실제로 마르크스는 『신성가족』에서 영국 경험론의 전통을 ‘유물론’으로 분류 하며, 그 비조로 ‘홉스’를 꼽고 있다. “영국의 유물론자 홉스”25)는 프랑스의 가상디와 더불어 각국의 유물론 전통을 이끈 효시로 간주 되고 있는 것이다.
25) 같은 책, 116.
이 당시 마르크스에게는 뜻밖에도 ‘유물론’에 대한 엄격한 기준이 정립되어 있지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낡은 통념 을 비판하고 그 허구성을 드러내는 경향이 있는 경우 ‘경험론’ 또는 ‘실재론’에 해당하는 입장들을 별 다른 설명 없이 ‘유물론’으로 싸잡 는 듯하기 때문이다. 당시 마르크스의 ‘유물론’이 엄밀한 범주가 아니긴 했지만, 그가 낡은 통념의 비판과 제거라는 단순한 특징만으로 유물론을 변별했던 것은 물론 아니다. 그가 중시했던 유물론의 또 다른 조건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 통찰하도록 이끄는 새로운 방법론의 수용 여부였다. 이 미 앞서 보았듯이 그가 인정하는 대부분의 유물론자들은 자연과학자 이거나 자연과학의 영향을 강력하게 받은 이들이었다. 실제로 이런 기준이 암암리에 작동하고 있기에, 『신성가족』에는 또 다른 의외의 인물 베이컨이 ‘유물론자’로 간주되고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베이 컨이 고대 원자론자들의 사유를 계승함과 동시에 감각과 관찰, 경험 과학에 대한 신뢰를 바탕에 두었고 여기에 “귀납, 비교, 관찰, 실험” 의 방법을 더함으로써 비록 소박한 형태이긴 하나 본격적인 유물론 의 출발을 정초했다고 본다.26) 이와 더불어 주목해야 할 점은 마르 크스가 홉스 등을 유물론자로 간주한 또 다른 근거가 있을 수 있다 는 사실이다. 이는 상술한 자연과학적 정향보다 어쩌면 더 중요한 근거로서 다름 아니라 홉스 등이 인간의 현실과 사회라는 ‘물질’적 실재를 직시했다는 사실과 관련된다.27)
26) 같은 책, 118. 마르크스는 베이컨이 심지어 “영국 유물론과 모든 현대 실험 과학의 진정한 원조”임을 역설한다.
27) 후술하겠지만, 마르크스는 자연적 물질과 구별되는 물질, 따라서 자연과학으로 해소될 수 없는 물질을 줄곧 응시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2-2. 『신성가족』과 마르크스의 시선 2: 인간과 사회에 관한 새로운 성찰의 가능성
‘앞서 논의를 근거로 할 때, 어떤 이론이 새로운 자연과학적 방법 론의 토대 위에 섬으로써 이전 시대의 통념을 부정하고 인간과 세계 에 관해 제대로 알도록 이끈다면 당시 마르크스가 생각한 유물론의 조건을 충족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는 명시적이지는 않 지만 상술했듯이 또 다른 근거 위에 서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사적 유물론의 구상과 닿아있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 『신 성가족』에서 유물론을 논할 때, 마르크스의 사유는 줄곧 이러한 구 상과 맞닿아 있던 것으로 보인다. 마르크스는 베이컨의 유물론을 체계화한 인물로 홉스를 꼽는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보기에 홉스는 베이컨의 유물론을 계승하면서도 그 속에 포함된 감성적이고 생동감 있는 요소를 축출하였다. 기하학 적 관점이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면서 예컨대 몸의 운동은 기계적·수 학적 운동으로 치환된다. 이름뿐인 ‘정신’을 구축(驅逐)하기 위해 유 물론 또한 생기를 잃게 되었기 때문이다.28) 이러한 상실은 마르크스 에 의하면 유물론을 “인간에게 적대적이게” 만든다. ‘정신’이 생동하 는 인간의 생기와 운동 그 자체를 억압함으로서 “인간에게 적대적” 이었듯이 유물론 또한 스스로 그러한 생동성을 배제하게 되었기 때 문이다.29) 홉스는 스코투스가 ‘이름’으로나마 존재할 수 있다고 보 았던 보편자의 마지막 지위마저 박탈한다. “개별적인 존재” 이외에 보편적 존재, 즉 “비물체적 실체”가 달리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30)
28) “인간에게, 적대적인, 살 없이 앙상한 정신을 자신의 영역에서 극복할 수 있기 위해서, 유물론은 스스로 자신의 살을 죽여야 하며, 고행자가 되어 야 한다.”(같은 책, 119.)
29) 같은 곳.
30) “비물체적 실체라고 하는 것은 차라리 비물체적 물체라고 하는 것과 동 일한 모순이다.”(같은 책, 119.)
물질, 존재, 실체란 동일한 것이며 사상(思想)은 물질과 분리할 수 없고, 나아가 물질적인 것만 지각 가능한 대상이기에 신의 존재는 알 수 없다. 따라서 나 자신의 존재만 확실한 게 되며 열정, 자유 등 인간의 모든 것은 역학적 운동으로 해소될 수 있다. 인간과 자 연은 동일한 법칙 하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이 러한 홉스의 환원주의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던 게 분명하다. 유 물론이 인간과 사회, 역사 등에 대한 물질환원론적 설명에 그칠 뿐 그에 대한 현실적·비판적·대안적 성찰로 나아갈 수 없다면, 말그대 로 ‘생기’를 잃는 것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인간 의 현실에 다가가려 한 유물론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콩디악, 엘 베시우스, 라 메트리 등을 홉스와 달리 평가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베이컨과 홉스의 이론이 로크로 이어지고 다 시 로크는 콩디악에 의해 프랑스에 소개되었는데, 콩디악은 이를 발 판으로 17세기 형이상학을 논박하였다. 콩디악은 로크 이론에 의거 하여 영혼, 감각뿐 아니라 관념 및 감각적 지각 또한 경험과 습관에 기원하는 것임을 주장했다. 이로써 인간의 인간됨은 전적으로 교육 이나 환경에 의존하는 게 된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보기에 물질의 결정과 환경의 결정을 이중적으로 인정했던 콩디악의 절충적 대안은 바로 그 ‘절충’으로 인해 프랑스에서 밀려나게 된다.31) 엘베시우스 또한 로크에게 큰 영향을 받는데, 유물론을 “사회적 생활과의 관련 속에서” 이해하고자 했다. 그는 인간의 도덕을 감각적 성질, 자기애, 개인적 이해의 지평에서 바라보았고, 생물학적 조건으로서의 지능, 이성 및 산업의 통합적인 진보, 교육의 힘 등을 중시했다. 말하자면, 마르크스는 콩디악이나 엘베시우스가 인간과 그 세계에 대한 설명에 서 자연과학적 시선 또는 ‘물질’적 환원론에 머물지 않았음에 주목 했던 것이다. 라 메트리 또한 이러한 이유로 마르크스의 주목을 받 는다. 주지하다시피 라 메트리는 『인간기계론』을 통해 철저한 환원 주의적 유물론을 공표했음에도 교육, 언어, 상상력, 인간성, 도덕 등 에 대한 설명으로 나아갔다.32) 따라서 프랑스 유물론이 ‘인간의 유 물론화를 통한 인간의 해방’33)을 시도했다는 평가는 일정하게 정당 하다고 할 수 있다.
31) 같은 책, 121.
32) 『라 메트리 철학 선집』, 라 메트리, 여인석 옮김, 섬앤섬, 2020, 45~125 ; 「라 메트리의 유물론, 그리고 그 너머- 「인간기계론」을 중심 으로」, 이병태, 『인문과학』 122집, 연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21, 169 이하 참고. 33) 「18세기 프랑스 유물론의 인간이론에 관한 연구」, 김재기,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87, 105.
적어도 통념의 억압을 넘어서고자 했고, 이를 통해 인간과 인간의 사회에 관한 새로운 성찰을 개방하고자 했기 때 문이다. 자연적 물질 또는 환원론적 유물론에 대한 마르크스의 태도 또한 그의 궁극적 관심이 인간과 사회의 문제에 놓여 있었음을 우회적으 로 보여준다. 앞서 언급했듯이 마르크스는 베이컨을 중요한 유물론 자로 치부하는데, 이는 아마도 베이컨의 관점 및 방법론이 적절한 ‘물질’ 이해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라 여긴 탓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베이컨과 같은 이론적 정향을 가질 때, 물질은 운동이라는 고유한 속성을 드러내며 그 시원적 형태가 모종의 본질적인 힘으로 나타난 다. 여기서 운동이란 기계적이고 수학적인 것뿐 아니라 충동, 생기 등과 연관된 운동까지 포함하는 것이며, 물질의 시원적 형태로서 ‘본질적인 힘’은 “살아서 개별화 작용을 하며 물질에 내재하고, 특유 의 차이를 생산”하는 것이다.34) 이는 ‘물질’이 단순히 역학적 차원에 국한된 존재가 아니라 일종의 ‘생명’적 계기를 지닌다는 입장으로 볼 수 있고, 물질이 물리학적이고 생물학적인 지평에 걸쳐 있다는 설명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전후 맥락을 고려할 때, 마르크스 가 주목한 물질의 특징은 단순히 대상적 존재로 머무는 게 아니라 자기생산과 자기확장을 통해 인간적 현실의 바탕 그 자체로 나아가 는 데 있다고 보는 게 온당하다. 실제로 프랑스 유물론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비판, 역사적 통찰로 전진했고, 마르크스 또한 이 점에 특히 주목했다. “데카르트의 유물 론이 본래의 자연과학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처럼, 프랑스 유물론의 또 다른 흐름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로 직접 흘러든다”35)고 말했을 때, 마르크스가 좀 더 유물론답다고 여긴 태도는 당연히 후자다. 프 랑스 유물론은 인간의 본원적 선성36), 만인의 생물학적인, 따라서 34) 『선집』 1, 119. 35) 같은 책, 121. 59 마르크스 유물론의 정체성에 관하여 동등한 지적 능력, 경험·습관·교육의 힘, 외부 환경의 영향, 산업의 의의를 강조했는데, 이는 마르크스가 보기에 “공산주의 및 사회주의 와의 필연적 연관”을 지니는 것이었다.37) 마르크스는 상세한 부연 설명을 덧붙이지지 않지만, 인간의 지식 등 인간됨의 모든 것이 이처럼 경험이나 환경에 의해 창출된다고 보 는 것은 “경험적 세계를 배치”하는 문제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 운다고 보았다. 이는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고 반사회적 일탈로 이끄 는 “장소를 파괴하고 각인에게 그의 본질적 생활 발현을 위한 사회 적 공간을” 새롭게 창출해야 한다는 당위성의 각성 그 자체다.38) 따 라서 마르크스가 주목했던 프랑스 유물론의 명백한 골간은 “인간이 환경에 의해서 형성된다면, 사람들은 환경을 인간적인 것으로 형성 하여야 한다”는 사실이다.39) 푸리에나 바뵈프주의자들의 공산주의는 프랑스 유물론을 바탕으로 하고, 벤담에게 흡수된 엘베시우스의 유 물론은 오웬의 공산주의가 체계화될 수 있도록 했던 토대였다. 이후 데자미나 게이 등 좀 더 “과학적인 프랑스 공산주의자들”은 “유물론 의 학설을 실제적 인간주의 학설로서 그리고 공산주의의 논리적 토 대로서 발전시킨다.”40)
36) 프랑스 유물론자들이 일제히 인간의 본원적 선성을 강조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예컨대 이기심과 같은 요소 또한 생득적인 것이라 간주한 이들 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관한 논의는 샤프츠베리 등 영국 도덕감정론 자들의 영향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는데, 이들 사이에 선성만 천부적인 것으로 인정하는 입장와 선성 및 이기심을 모두 생득적이라 여긴 경우가 모두 존재한다.(「라 메트리의 유물론, 그리고 그 너머 - 「인간기계론」을 중심으로」, 186쪽 참고.)
37) 같은 곳.
38) 같은 책, 122.
39) 같은 곳.
40) 같은 곳.
이로써 프랑스 유물론에 대한 마르크스의 관 심이 자연과학적 방법론, 물질환원주의를 중심으로 하는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오히려 그의 이목을 끌었던 것은 프랑스 유물론이 지니 고 있는 인간과 인간의 사회·역사에 대한 비판의 힘, 더욱이 단순히 이론적 비판에 그치는 게 아니라 대안적 실험으로 나아갔던 ‘비판’ 이었다.
2-3. 『신성가족』과 마르크스의 시선 3 : 『신성가족』의 전 사(前史)로서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 의 차이』
『신성가족』에서 마르크스가 17~8세기 프랑스 및 영국 유물론에 대해 드러내는 이같은 생각은 부르노 바우어와 그 추종자들을 비판 하기 위해 급조된 것은 아니다. 즉, 즉 자연과학의 대상으로서의 ‘물 질’에 집중하거나 물질환원주의적 경향에 그다지 큰 관심을 기울이 지 않고, 오히려 ‘인간’, ‘사회’, ‘역사’로 나아갔던 유물론들에 친화 적이었던 마르크스의 태도는 사실 『신성가족』 이전에도 분명했으며, 『독일이데올로기』 이후에는 더욱 정련된 형태로 명시된다. 주지하다시피 마르크스의 박사학위 논문은 『데모크리토스와 에피 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였고 집필시기를 기준으로 『신성가족』보다 3년 정도 앞선 작업이었다. 이 논문은 고대 그리스 철학 연구로서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판이나 혁명적 실천 등과 직접적으로 연관되 어 있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가 공히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유물론자들이기에 유물론 연구임은 틀 림없을 뿐 아니라, 『신성가족』의 논조와 미묘하게 공명하는 지점이 있다. 학위논문을 통해 마르크스는 데모크리토스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에피쿠로스 철학의 차별성을 재발견·재정위하고자 하였다. 사실 논문의 목적은 좀 더 적극적인 것으로서 “에피쿠로스는 데모크리토 스의 표절자에 불과하다”41)는 일반적인 평가를 뒤집고자 하는 데 있 61 마르크스 유물론의 정체성에 관하여 었다. 이처럼 양자의 차이에 관한 마르크스의 사유는 『신성가족』에 서 보여주었던 논리, 즉 자연과학으로 흘러들어간 유물론과 사회주 의 및 공산주의로 나아간 유물론을 구분했던 논리와 일정하게 중첩 되는 부분이 있다. 데모크리토스는 잘 알려져 있듯이 원자론자이자 결정론자였다. 바 로 이 ‘원자론’과 ‘결정론’이 고스란히 흘러들어가 에피쿠로스의 철 학적 정체성을 구축한다고 보았기 때문에, 에피쿠로스를 데모크리토 스의 ‘표절자’로 단정하는 철학사의 일반적 평가가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논문의 제목에 드러나듯 양자의 ‘차이’에 주목한 다. 실제로 “에피쿠로스가 데모크리토스를 비방했다”거나 오히려 ‘악 화’시켰다는 평가는 양자의 ‘차이’가 마르크스 이전에도 일정하게 인 지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42)
41)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마르크스, 고병권 옮김, 그린비, 2001), 35.
42) 같은 책, 33. ‘악화’시켰다는 평가는 키케로의 인용을 근거로 한 것이다. 키케로는 에피쿠로스가 “데모크리토스로부터 벗어났을 뿐 아니라 더 나 쁘게 되었고 망쳐졌을 뿐”이라고 혹평한다.
이러한 ‘차이’와 관련하여, 마르크스는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 스가 특히 원자운동에 대해 달리 설명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데모크 리토스는 직선운동과 충돌이라는 계기만으로 원자의 운동을 설명하 고자 하지만, 에피쿠로스는 여기에 사선운동(Deklination, 偏位)을 더하고자 한다. 말하자면 데모크리토스가 원자의 운동을 단선적이며 결정론적인 설명으로 해소하고자 했다면, 에피쿠로스는 ‘이탈’하고 ‘벗어나는’ ‘편위’의 계기까지 포함시켜 원자의 운동을 설명하려 했 던 것이다.
두 사람에 대한 이같은 변별은 궁극적으로
➀ 인간이 개 입할 수 없는 ‘필연’적인 세계 운동과 이를 주재하는 절대자에 대한 정당화(데모크리토스),
➁ ‘편위’의 사건을 통해 ‘우연’의 요소를 끌 어들이고 이를 통해 불완전하지만 물질 운동의 기계적 연쇄와 불일치하는 인간적 지평을 정당화하려는 시도(에피쿠로스)를 구분하는 것 이라 할 수 있다.43) 이처럼 “우연·일탈·편차”에 주목함이 “자기의식, 곧 인간의 주체성 이나 자유가 생겨나는 근거”가 된다고까지 확대해석하는 데는 상당 히 정치한 추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데모크리토스 및 에피 쿠로스에 대한 평가가 『신성가족』의 논의구조와 일정한 유사성을 지 님은 분명한 듯하다. 전술했듯이 마르크스는 자연과학으로 흘러들어 간 물질환원주의적 유물론과 시회주의 및 공산주의로 나아갔던 유물 론을 명백하게 구분했고, 전자를 철저히 ‘자연과학’의 지평에 속하는 것으로 남겨두었다. 한편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로 나아간 유물론은 자연과학적 ‘물질’ 이상에 대한 탐문을 과제로 남긴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는 인간, 사회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실천을 포함하며 구체적으로는 경제적 토대라는 인간적 물질 또는 인간화된 물질의 변형에 개입하려는 것이다. 인간적 물질 또는 인간화된 물질 이라 함은 이 토대가 노동수단과 같은 비자연적 물질, 말하자면 인 간에 의해 이미 변형된 물질을 포함할 뿐 아니라 노동력이라는 인간 적 계기, 나아가 욕망과 분리불가능한 소유관계까지 아우르고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가 자연과학의 대상인 ‘물질’과 줄곧 구분하고자 했고 자연과학으로 설명될 수 없다고 여겼던 ‘물질’은 이처럼 인간 화된 물질이었고, 『독일이데올로기』와 더불어 출현한 사적 유물론은 바로 이 물질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44)
43)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가라타니 고진, 김경원 옮김, 이산, 1999), 25.
44) 마르크스 사후 그 계승자들 사이에서 역사결정론과 주의주의적 휴머니즘 이 대립했던 이유 또한 일정하게 이와 연관된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지 평에 놓인 두 개의 ‘물질’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고 있기에, 결정론 및 휴머니즘 양자를 정당화하는 논리가 마르크스-엥겔스의 저술에 근거할 때 양립 가능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글의 논지와 관련하여 적어도 마르크스는 결정론적 입장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3. 나가며; 마르크스 유물론의 정체성으로서 사적 유물론, 그리고 향후의 과제
『독일이데올로기』를 통해 공표되는 사적 유물론의 구상은 이상의 내용을 염두에 둘 때 어떤 의미에서 『신성가족』 등에 파편적으로나 마 예고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수개월에 불과한 두 저술의 시간적 인접성에 근거한 막연한 추측이 아니다. 오히려 프랑스 유물 론에 대한 마르크스의 시선과 평가 자체가 여러 지점에서 나중에 제 시될 자신의 사적 유물론, 그리고 그에 기반한 변혁적 사유 및 실천 을 지속적으로 선취하는 듯하다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마르크스 가 프랑스 유물론을 살필 때 자연과학 방법론 및 물질환원주의적 태 도에 대해 의외로 큰 관심을 두지 않았고, 인간·사회·역사에 대한 비 판적·대안적 성찰 및 실천에 상대적으로 주목했음이 『신성가족』을 통해 분명히 드러난다. 전자의 특징이 프랑스 유물론에 대한 일반적 평가에 가까움을 상기한다면, 마르크스는 확실히 다소 다른 지점에 눈을 두고 있다. 나아가 마르크스는 18세기 유물론에 대한 언급에서 다음과 같이 자신의 목소리를 덧붙이기도 한다. “만약 인간이 그 본성상 사회적 이라면, 그는 자신의 진정한 본성을 사회 속에서야 비로소 전개하게 되는 것이고, 사람들은 인간의 본성의 힘을 개별적 개인의 힘이라는 견지에서가 아니라 사회적 힘이라는 견지에서 가늠하여야 한다.”45)
45) 『선집』 1, 122. 64 이병태
이는 프랑스 유물론에 대한 언급인 듯 보이지만 두말할 나위 없이 마르크스 고유의 생각을 함축한다. 18세기 유물론자들이 ‘인간됨’의 형성에 미치는 ‘교육’이나 ‘환경’의 영향력을 일깨운 것은 사실이지 만, 이러한 ‘영향력’을 광의의 사회적 맥락, 즉 인간적 물질 또는 인 간화된 물질과 연결지어 사유한 사람은 당시로선 마르크스가 유일하 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 유물론자들이 인간의 신체적 바탕과 생물학적 가능성 을 특정한 상태로 이끄는 ‘교육’, ‘환경’, ‘산업’ 등의 후천적 요소를 강조하긴 했지만, 이들은 생물학적 바탕과 사회적 바탕을 동시에 강 조하는 데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생물학적 기반과 사회적 기 반을 분리하고 후자에 속하는 요소들의 거대하고도 복잡한 네트워크 를 응시했던 사람은 마르크스가 처음이었다. 이처럼 마르크스는 자 신의 고유한 사유를 프랑스 유물론에 오버랩하여 바라보고 있는 것 이다. 그는 인간뿐 아니라 인간이 마주하는 사상(事相) 일체를 그와 같은 네트워크의 일부 혹은 그 피조물로 간주함과 동시에 인간을 그 같은 네트워크의 창조자로 간주했으며 양항 사이에 작동하는 복잡한 ‘편위’의 운동에 주목했는데, 이 역시 전례 없는 발상이었다. 나아가 바로 이러한 발상이 마르크스 유물론, 사적 유물론의 정체성을 형성 한다. 사적 유물론의 발상이 개입한 흔적은 또 다른 부분에서도 우회적 으로 나타난다. “볼떼르는, 예수회와 얀센 파의 논쟁에 18세기 프랑 스 인들이 무관심했던 것은 철학에 기인한 것이라기보다는 로우Law 의 금융 투기에 기인한 것이었다고 말한다.”46)
46) 『선집』 1, 116~117. 볼떼르가 언급한 ‘로우(Law)’는 18세기 미시시피 회사를 설립하고 운영했던 존 로우(John Law)를 가리킨다. 재정적 위기 에 빠져 있던 프랑스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루이 15세의 섭정 오를레 앙 공은 존 로우를 전폭적으로 지원했고, 미시시피 회사의 주식을 둘러 싼 투기의 광풍이 일었다.(『금융투기의 역사』, 에드워드 챈슬러, 강남규 옮김, 국일증권경제연구소, 2020, 103~109.)
이는 지성사적으로 형이상학 및 신학이 어떻게 영향력을 상실해갔는지에 관해 신랄한 풍자임과 동시에 적나라한 현실의 반영이다. 마르크스가 이처럼 볼 떼르의 언급을 거론함은 그와 같은 생각에 동의한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데, 이들이 보기에 낡은 이론과 신념은 대립적인 입장과 치열한 논쟁을 통해 기각되는 게 아니다. 예컨대 유물론과 같은 혁명적 이 론의 출현, 그리고 그 논박의 힘과 그에 대한 광범위한 동의 등이 해묵은 지적 유산을 청산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앞선 서술 내 용과 모순되는 듯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볼테르와 마르크스가 말 하려는 것은 모종의 현실의 변화 또는 현실 그 자체가 실제로 형이 상학 및 신학의 위력을 중지시킨 실제 원인이라는 점이었다. 존 로 우의 금융 투기 사건에 분명하게 드러나듯 세속적이며 현세적인 욕 망이 전폭적인 지배력을 획득하게 되는 현실의 변화는 낡은 형이상 학과 신학으로 하여금 “실천적으로 모든 신용을 상실”47)하게 만든 참된 원인인 것이다. 해묵은 통념은 오로진 달라진 세상 속에서 사람들에 대한 지배력 을 상실한다. 이를 달리 말한다면 사람들을 사로잡는 또 다른 통념, 그리고 이를 공고히 하는 새로운 사회구조가 등장함으로써 비로소 이전의 오랜 통념이 힘을 잃는다는 것이다. 18세기 프랑스가 종교적 논쟁에, 나아가 종교 자체에 무관심하게 된 사건 또한 확장일로에 있던 당시의 자본주의, 그리고 그로 인해 불붙은 욕망의 보편화에 기인한다. “프랑스가 엄청난 배금주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었다는 것”이 기독교적 금욕의 에토스가 무력화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다.48)
47) 『선집』 1, 117.
48) 『금융투기의 역사』, 107.
따라서 18세기 전복적인 유물론은 “직접적 현재를, 현세적 향 유와 현세적 이해를, 지상의 세계를 향해” 있는 뭇 사람들의 삶 그 자체 위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이다.49) 마르크스는 그러한 삶의 “반신학적, 반형이상학적, 유물론적 실천에 반신학적, 반형이상 학적 유물론적 이론들”이 조응했다고 말한다.50) 비록 ‘토대’, ‘상부 구조’ 등의 개념들을 직접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이는 명백히 사적 유물론을 전제한 언급이다. 마르크스는 암암리에, 혹은 자신도 의식 하지 못한 채로 지성사의 전개 과정에 대한 천착을 잠시 떠나 18세 기 프랑스 유물론의 성립과 흥행 자체를 선취된 사적 유물론을 투영 해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주요 원전을 참고할 때, 마르크스의 사유가 사적 유물론에 집중되며, 상대적으로 ‘변증법적 유물론’ 또는 자연과학적 함축을 지 니는 ‘물질’ 개념에 대해 직접적으로 개입하거나 언급한 흔적은 없 다. 이는 마르크스 사유의 일정한 제한성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지 만, 마르크스가 모든 것을 하나의 원리로 싸잡아 설명하려 했다는 비판51)이 적절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마르크스 고유의 사유가 사적 유물론에 집중됨을 입증하는 이 글의 작업은 앞서 이야 기했듯이 더 큰 과제를 남겨두고 있다. 이는 다름 아니라 사적 유물 론의 현재적 가능성을 타진하는 일이다. 여기에는 이 글에서 집중했 던 작업과 유사한 형태의 분석, 예컨대 ‘토대-상부구조’ 등으로 도식 화 또는 과규정된 사적 유물론의 외피를 벗기는 일52)
49) 『선집』 1, 117.
50) 같은 곳.
51) 예컨대, 브루노 라투르는 “맑스주의의 총체적 설명의 실패”를 지적하는 데, ‘맑스주의’가 아니라 ‘마르크스’로 한정한다면 적절한 비판이 아닐 수 있다.(『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브뤼노 라투르, 홍철기 옮 김, 갈무리, 2009, 129.)
52) 예컨대 교조적 도식화에 따르면 ‘물질-의식’의 개념쌍이 ‘토대-상부구조’ 로 전화하는 게 자연스러운 것일지 모르지만 두 개념쌍의 대응은 오류까 지는 아니더라도 다소 껄끄러운 구석이 있다. 토대는 분명히 자연적 물 질과 다른 함의를 지니고, 상부구조 또한 개별적인 의식과 구분되는 것 이기 때문이다.
이 포함되며, 마르크스 유물론의 정체성에 관하여 더 중요하게는 다양한 비판에 대한 응답 가능성, 그리고 현대 사회 에 대한 적용 가능성을 타진하는 작업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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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On the Identity of Marx' Materialism - Focusing on The Holy Family -
Lee, Byeong Tae
This article intends to explore the identity of Marx's materialism hidden behind an excessively firm definition. This could be successfully accomplished by a) tracing the content of materialism that Marx really paid attention to beyond the veil of definitions that were firmly established after Marx’s death, such as ‘dialectical materialism’ and ‘historical materialism’, and by b) examining whether the new critiques of Marx can be responded to by reinterpreting Marx’s own materialism and whether it is still valid as a basis for theoretical and practical reflection and criticism on the present world. This article is limited to a) above, and mainly seeks to explore the identity of Marx’s materialism through the analysis of 『The Holy Family』, which is rich in Marx’s own thoughts. Marx’s critique of Bruno Bauer in 『The Holy Family』 and the reevaluation of French materialism clearly show where his ultimate interest lies. Marx was relatively indifferent to ‘dialectical materialism’ and ‘material’ as an object of natural science, and concentrated on finding a point in parallel with his own historical materilism in French materialism by preemptively projecting the conception of historical materialism that would be established later. This fact clearly shows that the core of Marx’s thought lies in historical materialism, and that he maintains a certain distance from dialectical materialism, contrary to what is commonly known. Subject Sphere: Social Philosophy, Western Modern Philosophy, Materialism
Key Words: Karl Marx, Dialectical Materialism, Historical Materialism, The Holy Family
논문투고일 2022년 11월 20일 / 심사일 2022년 11월 29일 / 심사완료일 2022년 1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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