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요약]
공자의 君子的 ‘소통’ Kommunikation에 대비되는 야스퍼스의 ‘실존’Existenz을 그의 주저 主著인 Philosophie Band Ⅱ에서 주로 도출하여 분석․음미한다. 공자가 인의예지의 사단 에서 자아확충을 기할 수 있다고 주장 했다면 야스퍼스는 현재적 소통의 양태에서 벗어나서 실존적 교제를 가질 경우에만 자아 실존을 획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존재적 양태의 교제에서 벗어나서 너와 내가 실존적 소통을 가질 때 비로소 너와 나는 실존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존적 사귐을 가지기 위해서는 인간은 근본적으로 고독해야 하고 그 고독 속에서 자기의 존재를 성찰하고 자기의 세속성과 유한성을 깨닫지 않으면 자신의 인격도야는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동․서 철학의 통일이념으로서 세계철학의 구현은 야스퍼스가 지속적으로 부르짖었던 미래지향적 철학하기의 이념이기도 하다.
오늘날 철학은 대체로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최근에 한국에서 열렸던 세계철학자 대회도 바로 그런 이념의 발로에서 이루어진 철학적 세미나였다. 이러한 근거에서 볼때 공자의 군자적君子的 소통과 야스퍼스의 실존적 소통 간의 비교․연구는 21세기 철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 모 색의 선구적 先驅的 철학하기로 승인될 것이다.
그러나 비교 철학연구는 단시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서 연구의 출발점을 여는 선에서 마무리 한다.
주제분야 : 서양철학, 동양철학, 비교철학 주 제 어 : 소통, 존재, 깨달음, 한계상황, 자아완성
1. 들어가는 말
야스퍼스의 “철학함(Philosophieren)”의 목적은 “나는 어떻게 하면 인간 實存 에 이를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묻고 實存이 되고자 실천하는 데 있다. 야스퍼스 는 現存在(Dasein)라는 변질된 自己(Uneigentliches Selbst)에서 本來的 自己 (Eigentliches Selbst)라는 실존(Existenz)에로 비약(Aufschwung)하는 것을 자기의 “철학하기”의 근본으로 삼고 있다. 야스퍼스의 이러한 철학하기의 목적은 시대적인 상황은 아주 다르지만 근원 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이미 기원전 551년에서 479년까지 살았던 중국의 孔子의 “철학하기”에서도 엿보인다.
공자에 있어서도 야스퍼스의 실존과의 유사성을 가 진 이른바 仁을 체현한 聖人이 되는 것을 “철학하기”의 목적으로 삼고 있다. 공 자의 성인은 天에서 영원한 原形象1)을 보았던 요堯, 순舜, 우禹에서 현실화되고 있다. 그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이 내용을 잘 반영하고 있다. 오직 天만이 크고 요堯만 이를 본받았다. 2)
1) Karl Jaspers, Die Großen Philosophien, 84쪽. (以下 G.P라고 紀記함 6. Aufl. R. Piper & Co. Verlag, München 1991.)
2) 論語 泰伯, 孔子曰 大哉堯之爲君也 巍巍乎 唯天爲大.
공자의 聖人은 天命을 알고 耳順하고 從心所欲不踰矩(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를 넘는 일이 없다)하는 그런 본래적 인간이다. 이러한 근거에서 본다면 야스퍼스의 현실적 실존과 공자의 성인은 공통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야스퍼스에 있어서는 현실적 실존을 획득함에 있어 세 가지 계기가 전제되고 있다는 점에서 공자의 성인에로의 지향과는 상이성을 드러내고 있다.
야스퍼스의 경우 실존의 획득에 있어 전제되는 세 가지 계기는 다음과 같다.
첫째 현존재로서의 나는 한계상황(die Grenzsituation) 앞에서 좌절(Scheitern)하 여 초월자(Transzendenz)로부터 暗號(Chiffre)를 체험하고 동시에 暗號解讀 (Chiffrelesen)을 통해서 본래적 실존으로서 실존을 획득한다. 둘째 현존재로서 나는 包括者(지구)의 諸樣態(Die Weisen des Umgreiferden) 를 돌파함으로써 포괄자의 포괄자(우주)로서 초월자에게 말을 건네고 초월자로 부터 응답을 듣는 순간에 실존이 된다.
셋째 현존재로서 나는 나 아닌 너를 향해서 서로 마음을 열어젖혀 너가 나를, 내가 너를 비판하고 異見을 제시하고 이른바 사랑의 투쟁(der liebende Kampf)을 감행하는 그런 실존적 교제(die existentielle Kommunikation)에서 현실적 실존을 획득한다.
야스퍼스에 있어서 실존이 되는 위의 두 가지 계기는 인간의 자기 내면에서 실현하는 실존의 계기이고 마지막의 계기는 사회적 실존이 되는 계기이다. 야스 퍼스는 이러한 실존적 사귐을 통해서 현대사회가 야기하고 있는 인간의 非人間 化 및 非本來性을 극복하고 인간의 본래적 자기로서 현실적 실존에의 복귀를 시 도한다. 야스퍼스가 이처럼 실존적 사귐을 통해서 현실적 실존의 구현을 기도하는 것 처럼 공자 역시 실존적 교제와 상통하는 克己復禮를 통해서 성인의 구현을 기도 하고자 한다. 本稿는 이러한 논의를 要旨로 삼는다.
2. 야스퍼스의 實存的 理性과 孔子의 仁의 類似性
야스퍼스는 ‘나와 너 간의 성실한 사귐 없이는 실존의 진리의 구현은 없다’라 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야스퍼스에 의하면 실존의 진리는 완성되는 것이 아니 고, 오직 사귐에 있어서만 비로소 생성되고 실현된다.3)는 것이다. 따라서 사귐과 실존의 진리는 공동체를, 즉 인간의 상호성(Miteinander)을 전 제로 한다. 이러한 상호성에서만 ‘나‘라는 개인은 진정한 의미의 인간이 된다. 이 러한 입장은 孔子에서도 感知된다. 야스퍼스 자신이 孔子의 仁의 개념을 해석하는 가운데 자기의 입장과 공통된다는 생각을 암시하고 있다. 야스퍼스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이러한 생각을 示唆的으로 드러내고 있다. 인간의 본성은 仁이다. 仁은 인간성이면서 도덕성이다. 仁이라는 글자는 사 람(人)과 둘(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仁이라는 글자는 인간이란 사귐 가운 데 존재한다라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물음은 첫째로 인간은 무엇 이며 동시에 인간은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본질을 開明하는 가운데, 그리고 둘 째로 인간의 ‘현존재의 다양성’을 서술하는 가운데서 발견한다.4)
3) Jean Marie Paul, Der Weg des Menschen oder Kommunikation und Liebe bei Jaspers, 48쪽 以下 WKL이라고 약기함. Karl Jaspers. Hrsg. Dietrich Harth, Verlag J. B. Metzler, Stuttgart, 1989.
4) G.P, 168쪽. 64 이 영 수
仁은 인간의 마음 가운데 내재하는 中核으로서 愛人하는 정신이다. 사람을 사 랑하는 정신 또는 마음인 이 仁은 인간의 본성이고 善을 지향하는 도덕성이다. 인간이 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이해하고 동시에 다른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간다. 그런 점에서 인간은 본능에 따라서 자기의 생존을 유 지시켜 나가는 동물과는 다르다. 동물들은 함께 모여 아무런 생각 없이 서로 결 합하여 살거나 또는 서로 헤어져 살거나 한다. 인간은 자기의 공동체를 형성하 고, 그리고 일체의 본능을 넘어서서 인간적인 결속을 하여 상호협동의 삶을 영위 한다.5) 仁은 이처럼 인간으로 하여금 공동체 형성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야스퍼스는 孔子의 이러한 仁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仁 가운데 존재하는 자만이 진실로 사랑할 수도 있고 미워할 수도 있다. 仁 은 모든 덕들 가운데 하나의 덕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덕을 포괄하는 그런 덕이 다. 요컨대 仁은 모든 덕의 얼(魂)이다. 仁은 인간의 본질이기 때문에 언제나 아주 가까이 있다. 그러므로 仁을 진정 으로 실천하고자 하는 경우에 仁은 언제나 거기에 現在한다. 6) 仁에 대한 인식이나 의식 없이는 仁을 실천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仁에 대한 인식이나 의식은 孔子에 의하면 배움과 생각이 동시적으로 실현될 때 가능해진 다는 것이다.
孔子는 이러한 입장을 다음과 같이 피력하고 있다.
나는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고 생각하였다. 그것은 무익하다. 오히려 배움만 같지 못하다. …… 한편에 있어서 생각만하고 배우지 아니함은 위태롭다. …… 다른 한편에 있어서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아니함은 혼미하다 7)
5) 같은 책, 같은 쪽.
6) 같은 책, 같은 쪽.
7) 論語 衛靈公, 子曰 吾嘗終日不食 終夜不寢 以思 無益 不如學也.
孔子에 있어서는 배우면서 생각하고 배우는 과정에서 인간은 마음속에 내재 하는 仁을 인식할 수 있고 그리고 의식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배움과 생각을 통해서 仁을 욕구하는 志向性을 熟知할 수 있다는 것이다. 孔子가 이해하고 있는 배움과 생각은 자기성찰 또는 자기깨달음을 통한 배움 이고 格物致知를 통한 생각이다. 따라서 배움과 생각은 책을 벗하고 공동체로서 학교에서의 벗들과의 사귐과 토론에서 깊어진다. 이러한 사귐과 토론은 근본적 으로 도덕적 삶을 전제로 하지 않고는 성공적으로 실현될 수 없다. 도덕적 삶을 전제로 한 사귐과 토론은 거기에 관여한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에게 무엇이 부족 한가를 매일매일 각성시켜 준다. 사귐과 토론을 통해서 사람은 仁을 배우고 진리를 터득할 수 있다. 仁을 배운 다는 것은 진리를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孔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함께 배울 수는 있어도, 그렇다고 하여 함께 진리에 나아갈 수는 없으며, 함 께 진리에 나아갈 수 있어도, 아직 진리에 함께 서지는 못하며, 또 진리에 함께 선다고 할지라도 아직 진리를 개개의 경우에 저울질 할 수는 없다. 8) 배움과 진리와 깨우침은 孔子에 있어서는 하나의 等式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等式에서 인간은 자기의 내면의 中核을 이루고 있는 仁을 인식하며, 그 경우에 있어서만 인간은 仁을 發動시킬 수 있다. 이 等式을 구현한 인간은 자연스럽게 그리고 어떤 상황에 있어서이든 天命을 알게 되고 귀가 열리고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를 넘는 일이 없게 된다.9) 이러한 점에서 仁은 善을 志向하고, 聖人을 志向하고, 타자와의 사귐을 통한 本來的 人間을 志向한다. 仁은 마치 소크라테 스에 있어서 자기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자 할 때마다 자기의 영혼에서 다 이몬(Daimon)의 소리를 들었던 것처럼 특별한 현상에 있어서, 즉 경건, 지혜, 배 움, 그리고 정의에 있어서 드러난다.10) 그러므로 인간이 仁에 따라서 행동한다는 것은 어떤 특정한 법칙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일정한 법칙에 비 로소 가치를 부여하는 절대적인 것을 따른다는 것을 뜻한다. 仁의 특성은 규정 불가능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中庸(Maß und Mitte)이라는 말로 示唆된다.11) 孔 子가 仁의 특성을 간접적인 언어로 전달해 주는 中庸을 야스퍼스는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孔子는 仁의 특성을 中庸이라고 부르는 것 가운데서 본다. 中庸은 인간의 본 성의 정점이다. 中庸은 內面으로부터 外面(밖)으로 志向하며 작용한다 12) 이처럼 仁은 中庸이라는 말로 言表된 때의 상태를 통해서 조명해 본다면 仁 이 中庸이라는 의미로 感知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孔子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이것을 잘 반영해 주고 있다. 喜怒哀樂이 아직 發動하지 않은 상태를 中이라고 한다. 喜怒哀樂이 發動하 며 모두 법칙에 들어맞히는 상태를 和라고 한다 13)
8) 같은책, 子罕, 子曰 可與共學 未可與適道 可與適道 未可與立 可與立 未可與權.
9) 같은책, 爲政篇,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10) G.P, 168쪽.
11) 같은 책, 같은 쪽.
12) 같은 책, 같은 쪽.
13) 김용옥, 도올선생 中庸 강의, 통나무, 1995. 113쪽.
孔子는 兩極端間의 中間的의 사상(der Gedanke des Mitteleren zwischen den Extremen)을 통해서 이 玄妙한 中을 仁으로 해석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孔子의 仁은 야스퍼스의 실존적 이성과의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야스퍼스의 실존적 이성은 서양의 전통적인 관념론에서 말하고 있 는 이성이며 그것이 대상에 대한 思惟 그 이상의 것이면서 동시에 실질적으로는 인간의 內心의 근본태도이다.
이 점에서 야스퍼스의 실존적 이성은 孔子의 仁에 해당한다. 야스퍼스에 의하면 실존적 이성은 인간의 心性에 있어서의 근본태도 또는 분위기를 문제 삼고 있고, 그런 점에서 그것은 타자를 지향하는 일종의 開 顯(Offenheit)에의 의지이다.14) 야스퍼스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이러한 관점을 분 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성은 他者와의 共生이며 총체적인 사귐에의 의지이다. …… 이성은 진정한 사귐을 가능케 하기 위하여 무제한한 公明性과 疑問性을 특징으로 하는 성실성 을 현실화 하고자 한다. …… 말하자면 이성의 분위기라는 것이
있다.15)
이처럼 태도로서의 실존적 이성은 의지로서 나타나는 동시에 일정한 분위기 를 가진다. 다시 말해서 실존적 이성은 공명하면서 성실하게 모든 현실과 가능성 을 보면서 어떠한 절대적인 교설도 고집하지 않으며 성실과 정의로서 처리하려 는 그런 분위기에 쌓여 있다.16)
14) 김복기, 야스퍼스의 실존철학연구 , 박사 학위 논문, 1972. 87쪽.
15) Karl Jaspers, Von der Wahrheit, München,1983. Bd.Ⅰ, 115쪽.
16) 같은 책, 119쪽.
이런 점에서 실존적 이성은 인간의 사유가 거기 에서 발생하고 또 그때마다의 인간의 사유 방식이 그것에 의하여 규정되고 제약 되는바 인간의 內心의 근본태도이다. 이러한 인간의 內心의 근본태도로서의 실 존적 이성은 克己復禮의 情調(Stimmung)로서의 仁과 유사성을 共有하고 있다. 유사성이란 인에서 수양의 문제가 진리 체득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러 하다.
3. 實存的 사귐을 통한 現實的 實存과 聖人의 獲得
야스퍼스의 철학하기의 근본적인 목적은 실존의 획득에 있고 孔子의 그것은 聖人의 획득에 있다. 실존과 성인은 인간이 志向해야 할 존재가능성의 차원에서 볼 때 유사성을 가 지고 있다. 우선 야스퍼스의 실존은 “자기가 자기 자신과 관계하고, 거기에서 자기의 초 월자와 관계하는 바의 것”이다.17)
17) Karl Jaspers, Philosophie Ⅰ, Berlin, 1973,3 Aufl. 15쪽
야스퍼스에 있어서 실존은 자기가 자기와의 관계를 통해서 인상적 존재로서의 자기에 대한 냉철한 자기음미를 시도하고, 이 러한 자기음미에서 자기의 日常性 및 世俗性을 깨닫고, 그러한 자기의 모습에 절망하는 순간 자기 앞에 초월자의 暗號가 나타나고, 그리고 그 암호를 讀破하 는 가운데 본래적 자기로서 획득된다. 초월자 앞의 본래적 자기가 곧 실존이다. 본래적 자기라는 의미에서 실존과의 공통성을 가지는 孔子의 聖人도 존재가 능으로서 획득된다. 孔子는 이러한 입장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람은 ‘詩’를 통해서 깨달음을 가지게 되고, 礼를 통해서 확고하게 되고 음 악을 통해서 人格을 완성한다. 18) 詩想 가운데서 자기의 非本來性을 깨닫고 진정한 질서의식에 입각하여 義로 운 행위를 企圖하고 본래적 양심의 소리에 순응함으로써 본래적 자기로서의 聖 人을 획득한다. 여기서 음악, 즉 본래적 양심의 소리는 孔子에 있어서는 天으로 부터 들려오는 초월자의 암호를 의미한다. 야스퍼스의 실존과 孔子의 聖人의 성격을 비교하여 언표하자면 대체로 다음 과 같다.
1. 실존은 事實存在(Sosein)가 아니라 존재가능(Seinkönnen)이다.19)
聖人 역시 현실적 존재가 아니라 가능적 존재이다. 실존과 성인은 객관적 사실의 존재가 아 니고 日常的 自己로부터 脫自하여 克己할 때, 즉 本來的 自己에로 복귀할 때 획득 가능한 그런 가능적 존재이다. 이 점에서 실존과 성인은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2. 실존은 그때마다의 單獨者이고 개별적 자기이기 때문에 代理不可能하면서 代置不可能하다.20)
실존은 자기초월을 감행할 경우에 획득되는 자기 고유한 一 回的인 단독자이다. 실존은 代置可能한 意識一般(Bewußtsein Überhaupt)으로서 자기가 아니다. 실존은 언어로 전달될 수 없고 규정불가능하면서 그 어떤 것으로 서도 代置될 수 없는 자기고유성을 가진 하나의 個別存在이다. 이런 실존과도 유사하게 성인은 仁에 따라 행동하고, 仁 가운데 존재하면서 仁을 진정으로 실천하는가 하면, 오직 天으로부터 보내진 운명에, 즉 天命에만 자기를 맡기는 그런 單獨的인 自己이다. 이러한 입장을 孔子는 다음과 같이 말 하고 있다. 天命을 알지 못하면 君子가 될 수 없다. 礼를 알지 못하면 꿋꿋하게 설 수 없다. 남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 사람을 알지 못한다.21)
18) 論語 泰伯, 子曰 興於詩 立於禮 成於樂
19) Karl Jaspers, Der Philsohpische Glaube angesichts der Offenbarung, München, 1962. 118쪽 *以下 P.G.O라고 약기함
20) 같은 책, 같은 쪽.
21) 論語 堯曰, 子曰 不知命 無以爲君子也 不知禮 無以立也 不知言 無以知人也.
…… 나는 다만 나 자신을 성인이나 仁者 같이 되고자 힘써 공부하며, 또 남을 가르치는데 권태를 모르는 자라고 말할 수 있다. 22)
孔子의 성인은 야스퍼스의 실존과 마찬가지로 代理不可能하고 代置不可能하 다. 따라서 孔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아침에 道를 깨달았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23) 天이 命하는 道와 내가 하나가 되어 道를 體得하는, 즉 道를 깨닫는 본래적인 나는 一回的이면서 오로지 고유하고 단지 개별적인 나인 바 성인이다. 성인은 이 점에서 脫存으로서의 실존과 그 성격상 유사하다.
3. 실존은 역사적이고, 성인은 현실적이다.24)
22) 같은 책, 述而篇, 子曰 若聖與仁 則吾豈取 抑爲之不厭 誨人不捲.
23) 같은 책, 里仁篇, 子曰 朝聞道 夕死可矣.
24) P.G.O, 120쪽 / G.P,
실존은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現 存在(Dasein)라는 신체적 공간 속에서 자기초월을 감행하는 內的 行爲라는 체험 에서 一回的으로 획득된다. 나의 신체적 공간으로서의 현존재는 물리적 시간의 지속 가운데 존재한다는 점에서 역사적이고 그리고 그런 물리적 시간의 한 가운 데 존재하는 현존재의 공간 속에서 자기초월을 시도하는 가운데 一回的으로 실 존이 실현된다는 점에서 실존은 역사적이지 않을 수 없다. 성인 역시 역사적 현실을 살아가는 나라는 개인이 天을 받들어 仁을 체득하는 순간 구현되고 획득된다는 점에서 역사적이고 현실적이다. 이러한 근거에서도 실존과 성인은 공통성을 가진다. 이 실존과 성인이 인간의 자기 내면에서의 자기초월에서만 체현될 경우 그것 은 고립되고 폐쇄적인 존재로 머무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실존과 성인이 현실 적 사회성의 성격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나와 너 간의 사귐(Kommunikation) 이 요청된다. 다시 말해서 나와 너 간에 진정한 열어젖힘(開顯)에의 의지에서 실 현되는 실존적 사귐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실존적 사귐을 가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고독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고독은 사귐에로 나아가는 필연적인 단계이다. 고독 가운데서 인간은 자기 자신을 성찰 하며, 따라서 고독은 사귐에의 用意(die Bereitschaft zur Kommunikation)을 일깨 운다. 야스퍼스는 이러한 견해를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사귐은 그때마다 두 사람 간에 성립한다. 두 사람은 결합하면서 동시에 둘이 서 독립된 인격체로 남아 있어야 한다. 두 사람은 서로 고독으로부터 나와서 만 나고, 더욱이 그들은 자기들이 사귐 가운데 서 있기 때문에 자기들이 사귐 가운 데 서 있기 때문에 고독을 알고 있다. 나는 사귐에로 나아가지 않고는 자기 자신 이 될 수 없고 고독하지 않고는 사귐에도 나아갈 수 없다. 만일 내가 나 자신의 근원에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고, 따라서 가장 깊은 사귐에로 감히 나아가고자 한다면 나는 고독을 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 25) 고독은 사귐을 향해서 나아가고 사귐에서 자기를 심화시키는 자기존재의 해 석이다. 사귐과 고독은 서로 배척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귐은 자기존재의 열어 젖힘(ein Offenbarwerden des Selbstsein)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가 타자를 지 향하고 있는 한에서만 자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고독하다. 자기존재 와 사귐 가운데 있음은 불가분리적이다.”26) 그러나 사귐의 중심은 인간이 무제 약적으로 他者를 향하여 현존하면서 他者와 단순히 타협함이 없이 시종일관 자 기 자신으로 현존하는 한 자기존재이다. 孔子에 있어서 나와 너 간의 사귐도 성인의 사회성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적인 動力이며, 따라서 이 실존적 사귐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고독을 근원적인 전제로 서 필요로 한다. 야스퍼스에 있어서도 그러하지만 孔子에 있어서도 고독은 근원 적으로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고, 그런 존재 도상에서 철학함을 시도하거나 지 식을 함양하고, 인격을 탁마함에 있어서 반드시 실천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종의 德目이 되고 있다. 근본적으로 말해서 克己復禮라는 孔子의 철학적 主題語 자 체가 삶의 저면에 고독을 토대로서 設定하고 있다. 풀이해서 논의하자면 내가 나를 초월해서 도덕적 至上明法 또는 정의 및 질서에 승응하거나 그것을 회복하 는 內的 行爲에 있어 고독은 절대적이다. 고독해야만 인간은 자기의 내면과 자 기의 바깥, 즉 他者를 성찰하고 관찰하고 음미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고독은 공자 에 있어서는 야스퍼스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내적 성찰이요, 자기조명이면서 타자에로 志向하는 열어젖힘의 의지이다. 야스퍼스가 孔子의 철학사상의 핵심을 언표하면서 “克己復禮한 자가 인간이 된다”27)라고 말한 것은 이러한 철학적 基 調를 示唆的으로 논평한 것이다.
25) Karl Jaspers, Philosophie Ⅱ, Berlin,1973. 3. Aufl. 61쪽.
26) Karl Jaspers, Von der Wahrheit, 546쪽.
27) G.P, 161쪽.
야스퍼스가 “孔子에 있어서도 인간들 간의 사귐은 삶의 근본요소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사귐은 고독에서 나타나는 이른바 他者를 志向하는 열어 젖힘에의 의지의 發露이다. 孔子의 다음과 같은 말은 사귐이 가지는 이러한 의 미를 그 저면에 내포하고 있다.
군자는 자기의 이웃을 소홀하지 않는다. …… 사귐을 가질만한 사람들과는 우정을 맺고, 사귐을 가질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들을 멀리하라. …… 한 곳을 아 름답게 하는 것은 그 곳을 지배하는 仁이다. 仁한 사람을 선택하여 仁에 處하지 않는다면 어찌 지혜롭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28)
孔子는 인간이란 근본적으로 자기 홀로 살 수 없다는 것을 고독을 內謐할 때 切感한다라고 주장한다. 그의 이러한 입장을 위의 예문(Fragmente)에서 감지할 수 있다. 인간은 고독 속에서 자신을 깊이 성찰하고 他者를 비판적으로 분석할 경우에 聖人과 要人을 選別的으로 구분하여 사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孔子 는 분명히 披瀝하고 있다. 이는 예가 천륜이나 인륜적 상하질서를 통칭하는 개 념29)으로 이해하면 야스퍼스의 비약에 대비하는 말의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 을 것이다. 이 모든 사실들을 고려해보건대 야스퍼스에 있어서나 孔子에 있어서 고독은 사귐의 필연적 意向이다.
야스퍼스는 인간의 사귐을 현존재적 사귐과 실존적 사귐으로 나누고 있다.
그 는 현존재적 사귐을
1) 原初的 公共的에 있어서의 사귐(Kommunikation in primitiver Gemeinscahftlichkeit),
2) 卽物的 目的性과 合理性에 있어서의 사귐 (Kommunikation in sachlicher Zweckha?tigkeit und Rationalität),
3) 理念規定的 內容의 精神性에서의 사귐(Kommunikation in ideenbestimmter Geistigkeit des Gehalts)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원초적 공동성에 있어서의 사귐 은 삶의 보존 과 증대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主我的 關心(egozentrischer Interesiertheit)에서 나타나는 양태의 사귐을 의미한다.30) 이러한 사귐에 있어서 자기 자신의 관 심과 필요의 실현만이 중요할 뿐이다. 자기보존에의 충동, 性에의 충동, 권력에의 의지가 충족되자마자 사귐은 끝난다.31)
즉물적 목적성과 합리성에 있어서의 사귐은 悟性의 次元에 있어서 보편타 당한 규칙과 사유의 범주에 근거하여 어떤 사태를 놓고 다른 인간들과의 일치에 도달함으로서 가능하게 되는 양식의 사귐이다.32)
이러한 사귐에는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의 대리 불가능한 인격적인 내용을 사귐에의 관계 속으로 가지고 오는 그런 최종적인 능력은 없다. 단순히 합리적인 사귐으로부터서는 결국 불충분 또 는 무한한 것 그 자체에 있어서 非本來的인 것에서 오는 정당한 것의 황량함이 자라날 뿐이다.33)
28) 論語 里仁篇, 子曰 我未見好仁者 惡不仁者 好仁者 無以尙之 ... 子曰 不德孤 必有隣.
29) 서욱수, 논어, 예사상의 의미와 기능 , 철학논총, 제37집, 새한철학회, 2004, 263쪽.
30) Kurt. Salamun,, Karl Jaspers, Verlag C.H. Beck München 1985. 74쪽.
31) 같은 책, 같은 쪽.
32) 같은 책, 75쪽.
33) Karl Jaspers, Existenzphilosophie, Walter DE Gruyter &Co. Berlin 1956. 33쪽.
이념 규정적 내용의 정신성에서의 사귐 은 “전체의 이념에 있어서의 공동체 ㅡ 이 국가, 이 사회, 이 가족, 이 대학, 이 직업 ㅡ 는 나를 먼저 실질적인 사귐”34)에로 가지고 온다. 이러한 사귐의 양식에 있어서 사귐을 가지는 인간은 사 귐을 가지는 관계 속에서 자기를 대체불가능하게 하는 본래적인 자기존재를 실 현하지 못한다. 야스퍼스의 이러한 세 가지 현존재적 사귐의 양식들은 Kurt Salamun의 말과 같이 실존적 사귐의 양식을 위한 객관적으로 확고한 매개물에 불과하다.35) 이러 한 세 가지 양식의 사귐은 모든 경험적 합리적 증명을 거부하는 실존적 사귐을 위한 필연적인 전제, 즉 실존적 단계에로 나아가는 단계이다.36) 야스퍼스가 사귐의 양식을 현존재적 사귐과 실존적 사귐으로 구분한 것과 마 찬가지로 孔子도 역시 인간의 성품을 네 단계로 구별하면서 인간의 사귐의 네 가지 양식을 그것에 편승하여 암시적으로 천명하고 있다. 그것은 첫째 安而行之, 둘째 因而知之, 셋째 學而知之, 넷째 生而知之 등이 다.37)
34) 같은 책. 53쪽 In:: Kurt Salamun, Karl Jaspers, 75쪽.
35) K. Salamun, Karl Jaspers, Verlag C.H. Beck München 1985. 76쪽.
36) Jean Paul, WKL, 51쪽.
37) 論語 季氏, 孔子曰 生而知之者 上也 學而知之者 次也 困而知之者 民斯爲矣.
여기서 安而行之, 因而知之, 學而知之는 본래 지식을 습득하는 수준에 관 한 차이를 말하고 있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야스퍼스가 말하는 현존재적 사귐의 세 가지 양식과 유사하다. 言表上으로는 孔子의 이러한 네 가지 단계의 지적수 준은 야스퍼스의 현존재적 사귐의 세 가지 양식과는 다르다. 그러나 孔子의 네 가지 단계의 인식수준이 가지는 그 表面的인 의미는 야스퍼스의 사귐의 세 가지 양식과 공통성을 가지고 있다.
첫째 安而行之(배우기가 어렵기 때문에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단계). 자기 의 인격을 닦고 학문적 연구에 힘을 쓰지 않고 어떤 노력도 없이, 자기의 삶이나 다른 사람을 깊이 배려하지 않고 서로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타자 를 사귀고자 하는 그런 利己主義的 사귐이 바로 이 첫 단계에서 읽혀진다. 이 단계의 품성에서 시도하는 사귐은 야스퍼스의 원초적 공동성에 있어서의 사귐과 유사하다.
둘째 단계인 因而知之(배우는데 어렵지만, 그러나 배우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 단계)와 셋째 단계의 學而知之(배움을 통해서 비로소 知를 소유하게 되는 단계). 이런 단계에 속하는 사람들은 悟性으로써 일체를 명증적으로 인식하거나 인식한 것을 논리적인 방식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이른바 지식인들의 사귐을 지향한다. 이런 단계에서의 사귐에서는 나와 너 간에는 뜨거운 가슴으로 나누는 情이란 없 고 냉철한 머리로 지성적 접촉만을 시도하는 의식일반의 인간관계만이 있을 뿐 이다. 孔子의 因而知之와 學而知之는 곧 야스퍼스의 즉물적인 목적성과 합리 성에 있어서의 사귐 및 이념적으로 규정된 내용의 정신성에 있어서의 사귐 과 유사성을 가진다. 여하튼 야스퍼스와 孔子의 현존재적 사귐은 非本來的 사귐에 머무르고 있다. 이러한 사귐의 양태를 벗어난 본래적인 양태의 사귐은 실존적 사귐이다. 실존적 사귐에서만 현실적 실존 및 성인이 구현된다. 이러한 근거에서 실존적 사귐은 本 來的 사귐에 속한다. 야스퍼스에 있어서 실존적 사귐은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진실하고 성실하게 자기 자신을 열어젖히고 사귐의 파트너로서 타자도 역시 마찬가지로 그렇게 함 으로써 실현된다. 야스퍼스는 “본래적인 자기로 됨”이 자기 자신 및 다른 사람에 대한 開顯性(Offenbarkeit) 또는 열어젖힘(Offenbarwerden)과 불가피적으로 결부 되어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38) 그러므로 야스퍼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귐 속에서 나는 타자와 함께 나 자신에게 열어젖혀진다. 그러나 동시에 이 열어젖힘은 자기가 자기로서 비로소 현실화됨이다.39)…… 열어젖힘에 의지는 사 귐에서 철저하게 자기를 감행한다. 이러한 의지는 사귐에서의 실현될 수 있다. 의지는 일체의 相在(Sosein)를 감히 포기한다. 왜냐하면 의지는 자기 자신의 실 존을 이러한 사귐에서 비로소 자기에게 오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40)
Salamun의 말에 의하면 “열어젖힘에의 의지는 자기의 견해, 확신, 가치표상 등을 다른 인간에게 무조건 전달하고 그리고 다른 사람이 자기 자신의 이러한 것에 대해서 문제 제기하도록 하는 준비라고 일컬어질 수 있다”41)
38) K. Salamun, Karl Jaspers, 80쪽.
39) Karl Jaspers, Philosophie Ⅱ, 64쪽.
40) 같은 책, 같은 쪽.
41) K. Salamun, Karl Jaspers, 80쪽.
이러한 맥락 에서 야스퍼스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음미해봄직하다. 사귐에 있어서 열어젖힘의 과정은 투쟁이면서 동시에 사랑인 바 독특한 투쟁 이다. 사랑으로서의 사귐은 그것이 어떤 대상이든지 상관하지 않고 지향하는 맹 목적인 사랑이 아니고, 명철하게 보고 행하는 “투쟁하는 사랑이다”. 투쟁하는 사 랑에의 가능적 실존으로부터 다른 가능적 실존을 문제시 하고 고난으로 끌어들 이고 요구하고 파악한다. 이러한 투쟁에 있어서 양자는 사양하지 않고 자기를 나타내 보이고 문제시 하도록 한다. 만일 실존이 가능하다면 실존은 투쟁하는 자기 헌신을 통하여 이러한 자기획득으로서 나타난다. 42) 야스퍼스는 실존적 사귐에 있어서 사랑하는 연대적인 투쟁을 성실하지 못한 이기주의적인 현존재의 투쟁에 대한 명백한 대립이라고 강조하고 있다.43) 야스 퍼스는 또한 이처럼 사랑하는 투쟁을 자기 자신과 사귐의 상대자의 내면에 있는 폐쇄성과 사귐을 억제하는 어떤 저해요인에 저항하는 양자 간의 성실한 상호적 인 노력으로서 이해하고 있다.44) 야스퍼스에 의하면 실존적 사귐을 가지는 자들은 서로 동등한 수준에 있기 때문 에 투쟁 가운데 존경이 내재하고 있으며 비판적 물음 가운데 긍정이 함축되어 있다 는 것이다. 야스퍼스가 실존적인 영역에 있어서의 “동등수준(Niveaugleichheit)”으로 보고 있는 현상을 Bollnow는 스승과 제자 간의 만남과 관계하는 한 실례에서 일 찍이 “모든 연령과 지위의 차이를 넘어선 그들의 인간적인 관계의 완전한 동등 권리”45)라고 부르고 있다. 야스퍼스에 있어서는 다음과 같은 확고한 입장이 확 인된다. 내가 본질적으로 나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오히려 타자와 동등하게 존재한다는 것, 즉 내가 모든 사람과 사귐을 추구하고 있는 한 ㅡ 타자가 비교 할 수 있는 일들에 있어서 나의 上位에 서 있거나 나의 下位에 서 있거나 간에 ㅡ 모든 사람과 동등한 수준에 들어서고 있다는 것은 오히려 실존 의식의 표현 이다. 46)
42) K. Jaspers, Philosophie Ⅱ, 65쪽.
43) K. Salamun, Karl Jaspers, 81쪽.
44) 같은 책, 같은 쪽.
45) Otto, Bollnow, Existenzphilosophie und Pädagogik, Verlag Kohlhammer, Stuttgart 19781, 30쪽.
46) K. Jaspers, Philosophie Ⅱ, 85쪽.
야스퍼스에 있어서 현실적 실존은 이처럼 나와 너 간의 동등한 수준에서 이루 어지는 실존적 사귐에서 획득된다.
야스퍼스의 실존적 사귐은 孔子에 있어서는 生而知之와 相通한다.
生而知之 (生得的으로 앎을 터득하는 단계)는 자기인식의 바탕에서 나를 알고, 세계를 알 고 타자를 아는 그런 양태의 開顯에의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인간의 품성의 궁 극적인 단계로서 生而知之에서는 일체의 日常的 世俗的 現存在의 인간관계를 거부하고 오직 나를 성찰하고 타자를 인식하여 참된 사귐의 영역을 넓혀가는 행 위만이 중요시된다. 그러므로 孔子는 生而知之의 단계에서 나는 언제나 仁으로 써 克己復禮하는 그런 마음으로 너를 향해 마음을 열어젖히는 사귐을 가장 仁에 기초한 사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仁에 기초하여 너를 이해하고 배려하고 너 역 시 나에게 그렇게 하는 데서 나와 너가 다 함께 仁者, 즉 聖人이 된다. 성인을 구현하는 나와 너 간의 진정한 본래적 사귐, 즉 실존적 사귐은 야스퍼스에서와도 같이 동등한 수준에서만 가능하다. 야스퍼스 자신이 孔子의 이러한 견해를 다음 과 같이 밝히고 있다.
사람들과의 사귐에 있어서 모든 사람은 善人과 愛人에 직면한다. 이러한 경 우에 孔子는 “너와 동등하지 않는 친구를 사귀지 말라”라고 충고한다. 47)
47) G.P, 163쪽.
동등한 수준에서 仁에 근거하여 사귐의 파트너를 비판하고 이해하는 진정한 인간적인 사귐은 나와 너로 하여금 야스퍼스의 실존과 상통하는 성인을 획득가 능하게 한다. 孔子의 다음과 같은 말은 진정한 인간적 사귐이란 克己復禮의 自己認識에서 실천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천명하고 있다.
열 사람의 눈이 바라보고 있고 열 사람의 손가락이 향해 가리키고 있는 것이니 두려운 일이로다.(大學) …… 내면적으로 음미하여 아무런 잘못된 것이 없다면 무엇을 걱정하고 무엇을 두려워해야한단 말인가(孔子, 論論, 顔淵篇) …… 군 자는 모든 사람에게 공평무사하게 대한다(上揭書, 敎政) …… 윗사람이 싫다고 생각하는 바를 아랫사람에게 시키지 말라. 오른쪽 사람에게서 싫다고 생각하는 바를 가지고 왼쪽 사람과 사귀지 말라.(大學) 孔子가 말하는 인간의 사귐의 모범은 위의 인용구에서 본 바와 같이 克己復 禮의 本來性의 具現에 있다. 예의 회복에 비중이 크다. 바로 이 점이 야스퍼스에 서는 교제의 형태로 드러난다. 야스퍼스의 實存이 實存的 사귐에서 實現된다면 孔子의 聖人은 克己復禮에서 實現된다 할 것이다.
4. 맺는 말
孔子는 철학함(Philosophieren)의 本來性을 聖人의 具現에 두고 있다면 야스 퍼스가 ‘철학함(Philosophieren)’의 本來性을 현실적 실존에의 비약에 두고 있다. 즉 야스퍼스가 실존을 획득함에 있어 한계상황, 包括者( Umgreifender), 실존적 사귐을 그 비약의 동기로 삼고 있다. 반면 孔子의 실존구현이 聖人됨을 그 동기 로 삼고 그 방법이 克己復禮인 점에서 보면 공자의 극기복례와 야스퍼스 비약 상호간의 유사성이 확연하다 할 것이다. 야스퍼스의 실존이 실존적 이성에 의한 自己超越에서 획득가능하다면, 孔子 의 聖人은 仁의 志向에서 실현되는 克己復禮에서 획득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근거에서 인간의 本來的 自己로서 實存과 聖人은 存在可能(Seinkönnen)의 次元 에서는 공통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야스퍼스의 實存은 超越者와의 관계라는 超越의 次元에서 현실화되는데 반해서 孔子의 聖人은 現實의 次元에서 具現된 다. 그런 근거에서 본다면 實存과 聖人은 存在의 次元의 設定에서는 相異하지 만 양자는 그 존재의 성격에서는 유사한 공통성을 가지고 있다. 야스퍼스의 實存과 孔子의 聖人이 가지는 社會性의 次元에서 實存과 聖人을 논의할 경우 그 양자의 획득의 방법에서 공통성을 가진다. 實存을 획득하는 양 태로서 실존적 사귐과 聖人의 体現의 양태로서 克己復禮 역시 공통성을 가진다. 야스퍼스의 實存的 사귐과 孔子의 聖人의 상이성과 공통성, 이 모든 것은 서 양적 철학하기(Philosophieren)와 동양적 철학하기가 각각 가지는 典型的인 特性 을 잘 반영하여 주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공자의 인이 가지는 주도적 과제가 인격수련이라면 야스퍼스의 실존의 핵심은 진리체득이란 점에서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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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Eine Ähnlichkeit zwischen Jaspers Existenz und konfuzianischem Yen (Humanität)
Lee, Young-Su (Donga Univ.)
Wenn man ein Mensch werden wolle, aus dem Altertum findet man unersätlich Nachrichten. Konfuzius ist ein braver Moralist. Wer nicht die Bestimmung des Himmels kennt, der kann nicht gefestigt sein. Bei Konfuzius war der Konfuzianismus ein Studium (Disziplinierung) zum Heiligen. Das heisst ärgerlich oder fürchterlich, Das Studium(Disziplinierung) eines Edelen(君 子)bei ihm heißt nicht ein Studium zum schönen Beruf oder zur Erwerbsfähigkeit, sondern ein Studium für eine wahrliche Person. Das ist im ehrlichen Sinne eine Erziehung oder Selbstbildung. Ein Mensch wird erst Mensch. In diesem Punkt ist der Gedanke von Jaspers mit Konfuzius einig. Jaspers behauptete, man wird seine reale Existenz durch ein Erleuchtern erreichen. An seine Existenz hat man bei Jaspers eine sonderbare Bedeutung ersehen. ähnlich wie bei Konfuzius. Das Umgreifende ist ihm Hintergrund, nicht Thema, ist ihm Grenze und Grund der Scheu, nicht unmittelbare Aufgabe. Was Konfuzius vor und über alles setzt, ist das Eine des Jaspers. Der glaubte: der Himmel ist zwar groß, aber unpersönlich. Die Bestimmung ist des Konfuzius oft wiederholte Wendung. unüberbewältigende Lebensmauer(Grenzsituation). Jaspers Existenz kennen heißt des Konfuzius ein Edler kennen(werden). dann weiter zum Heiligen. Um zum Edlen zu werden, muß man seine Menschengrenze und das Umgreifende kennen. Um zum Ziel zu kommen, muss man bei Konfuzius durch Yen und Tschung-Yung, bei Jaspers durch eine Erleuchterung des Menschenseins (Menschenqual) erreichbar sein. Wahrer Mensch sein wird bei Jaspers Existenztheorie, bei Konfuzius ist eine Kommunikationstheorie.
Key Words : Kommunikation, Existenz, Erleuchten, Grenzsituation, Selbstbildung
투 고 일 : 2012년 8월 21일 심 사 일 : 2012년 9월 21일 게재결정일 : 2012년 10월 10일
새한철학회 철학논총 제70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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