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요약]
본 논문은 라캉에 대한 데리다의 독해를 통해 정신분석에 대한 데리다의 입장을 해명하 는 것을 목표로 한다. 먼저 데리다는 포우의 「도둑맞은 편지」에 대한 라캉의 독해에서 그의 사유가 팔루스중심주의에 기반하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편지에 대한 규정이나 그것의 목적지로 향한 운동 등이 보여주듯이 그의 사상은 고정된 구조와 고정된 의미를 전 제로 하기 때문이다. 이런 한에서 편지는 관념적 위상을 갖는다. 그런데 데리다는 이렇게 고정된 의미나 고정된 방향성의 관념이 플라톤이래로 서양형이상학의 주된 관심사였음을 명확히 한다. 그는 현전성에 기반한 이런 소설 해석을 해체하고 작품의 이해를 다양화하기 위해서 단일한 구조로 이해된 소설의 구조를 포의 뒤팽삼부작 속에서 복잡화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데리다는 라캉과 달리 작품의 해석이 안정된 구조위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통제할 수 없이 다양화됨을 밝힌다. 해석의 다양화와 관련해서, 데리다는 그의 비판을 라 캉의 포 독해에서 정신분석 자체로 까지 확대한다. 데리다의 관점에서 볼 때, 정신분석에는 다양한 저항이 있는데, 우선 욕망의 기표의 운동에 있어 팔루스로의 회귀를 막는 저항이 있으며, 또한 반복강박과 같은 정신적 외상을 극복하고자 하는 정신분석의 시도에 대한 저항도 있다.
결론적으로 해체론적 관점에서 우리는 이런 저항을 통해서 철학과 정신분석의 관계를 해명하고자 한다.
주제분야 : 프랑스철학, 정신분석, 해체론
주 제 어 : 데리다, 도둑맞은 편지, 죽음충동, 기표, 저항
Ⅰ. 들어가는 말
데리다는 L'écriture et la différence1)에서부터 이미 프로이트의 사유에서 관심 을 갖고서 자신의 해체론과 정신분석학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 천착한다. 그 결과 1980년에 La Carte postale2)를 출간한다. 이 저작에서 그는 한 장(章)을 라캉의 「「도둑맞은 편지」에 관한 세미나」 에 대한 면밀한 독해에 할애하는 데, 이 장 의 제목이 바로 「진리의 배달부Le facteur de la vérité」이다. 데리다는 이 논문 이 라캉의 사상 체계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나아가 라캉사유에 있어 구조주의적 입장과 그것의 철학적 배경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하고서 자신의 저서에서 이 논문에 대한 면밀한 독해를 전개한다. 데리다가 라캉의 사상에서 무엇보다 관 심을 갖는 것은 진리를 전하는 운반자로서 기표와 그것의 철학적 전제와 연관이 있다.
이런 이유로 그는 La Carte postale에서 라캉의 욕망의 구조와 그와 연결된 언어적 구조화의 문제를 다루면서 이런 구조화가 기반하고 있는 철학적 전제를 밝혀서 해체하고자 한다. 그런데 데리다의 입장이 아닌 라캉의 입장에서 보자면, 「「도둑맞은 편지」 에 관한 세미나」는 그의 사상적 연보로 볼 때 중기에 속한다. 이 시기에 라캉은 상징계의 이론적 지위를 정교화하는 데 몰두한다. 하지만 이후에 그는 상징계를 자기완결적인 체계가 아닌 실재와의 연관성 하에서 설명하고자 시도하는 등 후기 의 라캉의 입장은 초·중기의 구조주의적 태도와는 일정정도 차이를 갖는다.3) 하 지만 그의 정신분석학에 대한 기여는 욕망의 언어적 구조화와 분리될 수 없기에, 이와 같은 언어적 구조화의 문제점과 의미에 대한 철학적인 검토는 불가피해 보 인다. 우리는 이런 언어적 구조화의 문제점과 한계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 라캉과 데리다의 접점을 『에크리』에 실린 논문「「도둑맞은 편지」에 관한 세미나」4) 에 나타난 라캉의 언어이론에서 찾고자 한다.
1) J. Derrida, “Freud et la scène de l’écriture”, L'écriture et la différence, Édition du SEUIL, 1967. 그의 이 논문은 Institut de Psychanalyse에서 발표된 후에, Tel quel 26호 (1966)에 실렸었는데, 데리다가 이 시기에 이미 정신분석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 을 잘 보여주고 있다.
2) J. Derrida, La Carte postale: De Socrate à Freud et au-delà, Flammarion, 1980.
3) 지젝은 라캉의 사유를 세단계로 나누고 「도둑맞은 편지」에 대한 세미나를 중기에 위치시 키는데, 이 시기에 라캉은 주로 상징계를 구조화하는 데 몰두한다. 즉 이때의 상징계는 닫 혀있으면서, 차이나는, 공시적인 구조다.(슬라보예 지젝, 『가장 숭고한 히스테리환자: 라캉과 함께 한 헤겔』, 주형일 옮김, 인간사랑, 2013. p. 121) 박찬부는 1960년경에 라캉의 관 심이 실재계에 쏠리면서 상징계의 한계에 주목하게 되고, 이 문제의 대안으로 실재개념을 집중적으로 규명하고자 했다고 주장한다.(박찬부, 「상징과 실재의 변증법」, 『라캉, 사유의 모험』, 홍준기 엮음, 마티, 2010, p. 68)
4) 자크 라캉, 『에크리』, 홍준기 외 옮김, 새물결, 2019.(이후 번역본에 대해 문맥에 따라 부분 수정함)
여기서 욕망의 기표인 팔루스는 중심 기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으며, 그것을 중심으로 다른 여러 기표들이 정리되 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런 이유로 이 기표는 관념론적 지위를 부여받는다. 그런데 데리다는 라캉의 사유에서 특히 이와 같은 기표의 자기 동일성이나 구조의 현전성과 같은 개념들을 해체하고자 한다.5) 그는 라캉 사유의 구조주의적 계기들을 해체하기 위해서 포의 작품에 대한 라캉의 독해에서 놓친 소설의 다양한 계기를 해체론적으로 재해석하고자 한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라캉의 언어이론에서 출발해서 포의 「도둑맞은 편지」6)에 대한 라캉의 독해와 관련된 데리다의 비판을 검토하고, 이를 통해 구조주의적 입장과 해체론적 입장의 차이를 살펴볼 것이다.
5) 유한한 전체성 속에서의 현전의 문제에 대해서는 Micheal Lewis, Derrida and Lacan: Another Writing, Edinburgh University Press, 2008, p. 81 참조.
6) 에드거 앨런 포, 『에드거 앨런 포 전집 1: 모르가의 살인』, 권진아 옮김, 시공사, 2018.
나아가 해체론과 정신분석 사이의 관계에 대한 데리다의 입장을 검토함 으로써 해체론이 갖는 사상적 의의를 살펴볼 것이다.
Ⅱ. 라캉의 언어와 욕망의 구조
「도둑맞은 편지」에 관한 세미나」에 대한 분석을 시작하기 전에 라캉의 언어이론, 그중에서도 기표에 대한 그의 이론을 살펴보는 것이 라캉의 욕망이론과 언어이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먼저 라캉은 욕망이 언어화되는 과정 을 오이디푸스 단계에서의 욕망의 구조화로 이해한다. 하지만 욕망하는 자아는 오이디푸스 단계 이전에는 언어의 매개 없이 어머니와 친밀한 관계 속에 있다. 여기서 자아는 어머니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상상적 남근을 자기와 동일시하면 서 어머니의 욕망의 대상이 되고자 한다.7)
7) 페트 비트머, 『욕망의 전복』, 홍준기·이승미 옮김, 한울아카데미, 1998, pp. 40-41.
하지만 오이디푸스 단계에서 주체는 아버지의 권위 아래에 있기에 어머니를 욕망하거나 어머니와의 직접적 관계는 금지당하고, 그의 원초적 욕망은 억압당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상징계에 들어온 주체는 직접적인 대상을 추구하기보다 아버지의 욕망의 규칙에 따라서 욕망을 표현 할 것을 강요받는다.
그러기에 주체는 상상적 남근과의 동일시를 포기하고 아버지의 질서에 따르며, 결국 그가 정한 욕망의 문법으로 자신의 욕망을 표현할 수밖 에 없다. 이렇게 부권적 권위에 복종함으로써 인간은 욕망의 주체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주체가 아버지의 법에 복종한다는 것은 어머니의 남근으로서의 위치를 박탈당하면서. “이런 박탈을 상징화하고 박탈을 온전히 의미있는 것으로 만 들” 때이다.8)이런 박탈은 또한 어떤 금지를 함의하는데, 이런 금지 속에서의 법의 출현이 오이디푸스적 관계의 근간을 형성한다. 이를테면 대타자인 아버지는 어머니를 소유하고자 하는 아이의 근친상간적 위반을 금지시키며 부권적 질서를 유지하는 법의 담지자9)의 역할을 한다. 한편 대타자인 아버지의 법을 따른다는 것은 그가 만들어 놓은 질서 즉 언어의 질서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상상적 단계에서 자아는 아버지의 금지와 억압을 겪지 않기에 언어라는 매개를 통하지 않고 욕망의 대상으로 향할 수 있다. 하지만 주체가 부권적 권위의 세계에 들어오게 되면, 그는 직접적으로 대상을 욕망하는 대신 언어라는 상징적 방식을 통해서만 욕망을 표현할 수 있다. 라캉은 상징적 질 서 속에서 주체가 겪는 이런 억압과 금지를 언어적 도식으로 설명하는데, 우리는 다음의 도식에서 그 예를 살펴볼 수 있다.
S/s의 도식에서 라캉은 욕망의 기의인 분모의 s와 그것의 기표인 S로 기호화한다.10)
이 도식에서 분모의 s는 원초적 욕망의 의미이다. 하지만 욕망의 의미는 중간의 횡단선에 의해 억압되어진 채로 있 으며, 그 자체로 표현될 수 없다. 이는 주체가 상징계에 들어오면서 자신의 원초 적 욕망대상(어머니)을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이로 인해 주체는 억압된 기의를 대신해서 기표로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야 한다. 이런 욕망의 억압 은 은유를 통해서 잘 드러나는데, 은유의 도식은 f(S′/S)S ≅ S(+)s로 정식화 된다. 이때 왼쪽의 함수관계로 있는 S'/S는 욕망의 의미와 기표 사이의 충돌의 과 정, 즉 억압의 과정을 보여준다. 여기서 아버지의 권위에 의해 억압당한 욕망의 의미가 기표로 표현된다 하더라도, 이런 기표는 언제나 욕망의 의미와는 어긋난 만남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라캉의 언어론에서 은유가 억압을 지시한다면, 환유는 욕망기표의 미끄러짐의 연쇄인 f(S …S')S ≅ S(-)s로 표기된다.11)
8) J. Lacan, Le Séminaire livre Ⅴ: les formations de l'inconscient, Édition du Seuil, 1998, p. 185. 9) J. Lacan, Le Séminaire Ⅴ, p. 117.
10) 자크 라캉, 에크리, p. 593.
11) 자크 라캉, 에크리, p. 615. “한 기표가 의미작용의 사슬 속에서 다른 기표의 자리를 대 신하면서 감추어진 기표는 그와 같은 사슬 속에서 들어있는 다른 기표와의 (환유적) 결합 관계에 의해 그대로 남아있다.”(자크 라캉, 에크리, p. 605)
여기서 환유의 도식(S …S')이 알려주는 것은 욕망이 기표의 연쇄를 통해서 욕망의 대상 주변으로 분산되어 있다는 것이다. 환유는 하나의 기표가 기표의 연쇄를 따 라 다른 기표들로 대체되고 교환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처럼 욕망은 기표의 변환, 대체, 교환의 운동을 따라서 표현된다.
그런데 언어는 욕망을 표현하는 수단이지만, 욕망을 억압하고 지연시키기는 역할을 하기에 지속적인 결핍을 겪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욕망의 표현으로서 기표는 하나의 기표에서 다른 기표로 옮겨가면서 이 결여를 충족하고자 끊임없이 운 동한다.
하지만 이렇게 지연된 욕망들은 언제나 결여를 겪게 된다. 그래서 기표에 의해 ‘억압당한’ 기의는 욕망의 대상을 “존재의 ‘결여’”처럼 지닐 수밖에 없다.12)
하지만 이런 기표의 연쇄가 무질서하게 분산되는 것은 아니며, 아버지 기표를 중심으로 정리된다. 말하자면 아버지는 기표들을 정리해주는 기표로서의 역할을 한다.13)
아버지 기표가 기표의 연쇄의 끝에 위치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 다. 우리는 위에서 말한 욕망의 주체, 아버지의 기표 그리고 어머니의 욕망 사이 의 연관성과 관련된 정식을 아래의 도식에서 확인할 수 있다.14)
< 그림 1> 아버지의 기표 그리고 어머니의 욕망 사이의 연관성
아버지의이름/ 어머니의욕망 ∙ 어머니의 욕망/주체에게 의미된것(X) → 아버지의이름( A/팔루스)
이 도식에 따르면 어머니의 욕망은 아버지의 이름에 의해 억압을 받는다. 또한 주체에게서 욕망의 의미는 여전히 찾아야할 어떤 것으로, 미지의 것(X)으로 남겨 있다. 아버지의 권위 아래에서 어머니에 대한 욕망은 억압되어야 한다. 이런 억압 의 다른 이름인 은유가 제대로 작동하게 된다면, 어머니에 대한 욕망의 기표는 삭 제되어 제거되어 아버지의 이름으로 대체될 것이다. 결국 은유로 표현되는 억압으 로 인해, 주체는 아버지의 이름을 중심 기표로 받아들이고 부권적 질서에 편입되 게 된다.15) 우리는 이 도식을 통해서 라캉의 주요 개념인 팔루스 개념의 위상을 살펴볼 수 있다. 라캉은 횡단선 아래에 있는 주체의 욕망의 기의가 억압되는 것을 주체의 거세castration라고 부른다.16)
12) 필립-라쿠라바르트, 장-뤽 낭시,『문자라는 증서- 라캉을 읽는 한 가지 방법 』, 김석 옮김, 문학과 지성사, 2011, pp. 118-119.
13) “이 기표 덕분에 모든 것들이 자리를 잡게 된다.” 여기서 논의되는 기표는 바로 아버지의 기표이다.( J. Lacan, Le Séminaire Ⅴ, p. 223.)
14) <그림1>의 도식은 자크 라캉, 에크리, p. 662(필자 수정)을 참조함.
15) 권순정, 「라캉의 환상적 주체와 팔루스」, 『철학논총』, 75권 1호, 새한철학회, 2016.
말하자면 아버지의 법의 출현에 의해 아이는 어머니에게 상상적 차원에서 유지하고 있던 남근적 위상을 거세당한 채, 아버지의 법에 복종하게 된다. 이처럼 거세와 같은 억압을 통해서 아버지의 이름은 주체를 상징계에 정착시킨다. 이렇게 거세를 당한 주체는 언제나 스스로를 결여적 존재로 이해한다.17) 그러기에 욕망의 주체는 자아이상과의 동일시를 통해 결여를 메우고자 한다. 결국 은유화의 과정은 ”팔루스 기표를 아버지의 이름의 기표로 대체함으로 써 성취되는 법의 원초적 상징화의 행위를“ 지시하는 것이다.18) 라캉은 이런 아 버지와 법의 관련성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아버지[의 이름]는, 타자 안에서, 법으로서의 의미작용의 사슬[S/s]의 자리의 존재를 대표하는/대리하는 기표이 다.”19) 그런데 아버지의-이름le nom du père이 의미사슬의 중심자리를 대표한다 는 것은 아버지의-이름이라는 기표가 여러 이름들 중의 하나가 아니라 ‘기표들 전 체에 대한 기표’의 위상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20) 이에 대해 키에자는 의미작 용의 연쇄에 있어 아버지의-이름이 결국 절대적 초월성21)을 획득하는 것으로 해 석한다. 기표의 연쇄는 그 자체로 완벽한 체계가 아니다. 그것들 사이에 틈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틈, 균열을 통해 상징의 체계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충동이 출현한다. 아버지의 이름은 이런 균열을 봉합해주는 상징질서의 “마개bouchon” 와 같은 역할을 한다.22) 이런 마개로 인해 실재적 구멍은 메워진다.23) ‘아버지의이름le nom-du-père’은 이처럼 다양한 기표의 대체와 교환을 떠받치기 위해서는 단일하게 존재하고, 분할되지 않아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아버지의-이름 을 모든 기표들을 통합할 수 있는 ‘기표들의 기표’, 즉 초월적 기표24) 나아가 관 념적 존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6) 조엘 도르, 라깡세미나·에크리 독해Ⅰ, 홍준기·강응섭 옮김, 아난케, 2009, p. 113
17) 라캉은 주체가 아버지의 원억압으로 인해 최초의 기표의 상실 혹은 탈락을 겪게 되고, 그의 욕망은 이 원억압을 중심으로 구성되지만 결코 이 최초의 기표는 찾을 수 없다라고 말한다.(라캉, 『세미나 11-정신분석의 네가지 근본개념』, 맹정현, 이수련 옮김, 새물결, 2008, p. 381.)
18) 조엘 도르, 라깡세미나·에크리 독해Ⅰ, p. 147.
19) J. Lacan, Le Séminaire Ⅴ, p. 196.
20) 라캉은 이 기표에 의해서 기표 자체가 정립될 수 있는 특권화 된 기표로 규정한다.(J. Lacan, Le Séminaire Ⅴ, p. 166.)
21) 로렌츠 키에자, 『주체와 타자성-철학적으로 읽은 자크 라캉』, 이성민 옮김, 난장, 2012. p. 197.
22) J. Lacan, Le Séminaire ⅩⅦ, pp. 56-57.(로렌츠 키에자, 주체성과 타자성, p. 244에서 재인용)
23) 로렌츠 키에자, 주체성과 타자성, p. 244.
24) 라캉이 말한 기표의 질료성에서 데리다는 아버지 기표를 하나의 체계, 즉 상징적 체계를 가능케 해주는
초월론적 근거로서 규정한다.(J. Derrida, La Cartbouchone postale. p. 493.)
Ⅲ. 「도둑맞은 편지」에 대한 라캉 독해의 해체론적 비판
1. 「도둑맞은 편지」의 라캉해석에서 편지의 위상과 구조성
라캉은 자신의 정신분석이론을 형성하는데 있어 주요 논문을 모아서 『에크 리』라는 논문집을 출간하는데, 이 저서의 첫 논문으로 「「도둑맞은 편지」에 관한 세미나」25)를 선정한다. 그런 만큼 이 논문은 라캉의 사상 전체를 조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대표적인 저술이라 하겠다. 우선 「「도둑맞은 편지」에 관한 세 미나」에서 다뤄지는 「도둑맞은 편지」는 포의 단편소설로서, 소설의 제목이 알 려주듯이 도둑맞은 편지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그런데 라캉은 포의 「도둑맞은 편지」에 나오는 편지lettre를 욕망의 비밀스러운 문자 즉 욕망의 중심기표로 해 석한다. 이는 도둑맞은 편지가 여러 등장인물을 거쳐서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처 럼, 욕망의 기표도 은유와 환유라는 언어적 우회로를 거쳐서 욕망의 목적지에 도 달한다고 보기 때문이다.26) 결국 라캉은 ‘도둑맞은 편지’를 통해 자신의 정신분석 학적 언어이론을 펼치고자 한 것이다. 우선 소설의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면, 발신자를 알 수 없는 편지가 왕비에게 도착했고, 왕비는 왕과 다른 사람들이 이 편지를 보지 못하게 숨기고자 하지만, 이를 이상히 여긴 장관이 편지의 비밀을 알기 위해서 그것을 훔쳐가고자 한다. 여 기서 흥미로운 점은 왕비가 왕의 시선을 피해 종이로 가려놓은 편지를 장관이 가 져가는 것을 보면서도, 왕이 눈치 챌 것을 두려워해서 저지하지도 못하고 눈앞에 서 도난을 당한다는 점이다. 이후에 왕비는 경시청장에게 장관이 가져간 편지를 되찾아 오게 명령하고, 이 명령에 따라 경시청장은 뒤팽의 도움을 받아 장관이 그 의 집에서 숨겨놓은 왕비의 편지를 되찾아서 그녀에게 다시 가져다준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27) 그런데 라캉은 편지의 이동에 관한 이야기의 구조적 특징에 주목한다. 편지의 이동은 왕비에게서 장관으로 그리고 장관에서 뒤팽으로 옮겨져서 최종적으로 왕 비에게 돌아가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즉 편지의 운동은 결국 어떤 순환적 circulaire이거나 회귀적인 형태를 띤다.28) 라캉은 이런 편지의 운동을 “편지는 자 신의 고유한 장소를 향해서 고유한 궤적을 갖는다.”29)라고 말한다.
25) 자크 라캉, 「「도둑맞은 편지」에 관한 세미나」, p. 17.(이하 이 논문은 세미나로 약호함)
26) J. Derrida, La Carte postale, p. 483.
27) 자크 라캉, 세미나, pp. 19-20.
28) J. Derrida, La Carte postale, p. 465.
29) “편지는 자신의 ‘고유한propre’ 행로를 통해서 자신의 ‘고유한’ 장소son prorpe lieu와 관계하고자 한다.”(J. Derrida, la Carte postale, p. 464.)
그런데 라캉은 이야기의 구조를 명확하기 위해서 하나의 큰 뭉치로 되어있는 이야기를 두 개의 장면으로 나눠서 분석한다.30) 첫 장면은 편지를 받은 왕비와 그것을 훔치는 장관 그리고 이 편지에 무지한 왕으로 구성되고, 두 번째 장면은 편지를 숨기는 장관과 이 편지를 찾지 못하는 경시청장 그리고 편지를 찾게 되는 뒤팽으로 구성된다. 이 두 장면에서 왕과 경시청장은 공통적으로 편지에 대해 무 지한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 나온다.31) 반면에 왕비와 장관은 편지를 은폐하려는 자이며, 장관과 뒤팽은 편지의 위치를 알고 탈취하려는 자로서 등장한다. 요컨대 「도둑맞은 편지」의 이야기구도는 명시적으로는 왕비-장관, 장관-뒤팽의 관계이 지만, 맹점의 지위까지 통합한다면 편지의 운동은 삼각 구도(왕비-장관-왕, 장관뒤팽-경시청장) 위에서 진행됨을 알 수 있다. 각 장면에 나오는 등장인물은 바뀌 지만, 편지를 중심으로 한 삼각 구도 자체는 변화지 않는다. 즉 각 장면에서 편지 를 둘러싼 구조는 동일한 삼각 구도를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32) 이처럼 편지의 운동, 다시 말해서 기표의 운동은 구조적이고 반복적인 특성을 갖는다는 것이 이 소설에 대한 라캉의 주요한 해석이다.33) 이런 반복적 성격은 편지가 신경증적인 특성을 가짐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편지를 찾는 자와 숨기는 자들 모두 동일한 욕망의 구조 위에서 움직이고 있는데, 이것은 마치 신경증적 환자가 사라진 기표 를 찾아 헤매는 것과 같은 구조로 이뤄져 있다.34)
30) 자크 라캉, 세미나, p. 20.
31) 자크 라캉, 세미나, p. 22.
32) 자크 라캉, 세미나, p. 22에서 라캉은 편지의 이동과 관련된 세 개의 시선을 언급한다. 먼저 첫 번째 시선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자의 시선, 즉 왕, 경찰의 시선이다. 두 번째 시선은 첫 번째 시선이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리하여 자기가 감추는 것은 숨 기고 있다는 환상에 빠진 사람의 시선, 즉 왕비, 장관의 시선이다. 세 번째 시선은 앞의 두 시선을 숨겨져야만 하는 것을 보는 자의 시선으로, 장관, 뒤팽의 시선이다.
33) 편지의 운동, 즉 기표의 운동은 결국 원억압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반복적인 운동이다. “우리의 연구는, 자동반복automatisme de répétition이 우리가 의미작용사슬의 주장이라 고 불러온 것에 그 근원을 갖고 있음을 알게 해주었다.”(자크 라캉, 세미나, p. 17)
34) 라캉은 편지를 소유하려는 욕망을 신경증자적 징후로 생각한다. “그[장관]의 행위의 집요 함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신경증자의 무의식처럼 편지는 그를 잊지 않는다. 편지는 그를 좀체 잊지 않기 때문에 점점 더 그를 예기치 못하게 편지를 자기에게 바쳤던 왕비 모습으로 변모시키며, 이제 그는 그녀의 선례에 따라 비슷하게 예기치 못할 때 편지를 넘 겨줄 것이다.”(자크 라캉, 세미나, p. 45.) 데리다는 이런 편지의 운동을 라캉의 반복충동 과 연관해서 설명한다. (Derrida, La Carte postale, p. 487)
결국 환자는 자신이 찾아 헤매 는 대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며, 편지와 같이 욕망의 대상이 등장할 때면 동일한 욕망의 구조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라캉의 해석이다. 이런 구조주의적 해 석은 기표가 등장인물의 위치, 즉 주체의 위치를 규정하고 구조화하고 있으며, 이 구도는 다양한 변수와 별개로 불변적인 것으로 남아있다. 라캉의 욕망론이 제시하는 욕망구조의 동일성은 정신분석의 해석학적 입장과 대척점에 서 있다. 우선 욕망의 구도를 중심으로 라캉의 독해를 살펴보자. 왕비나 장관과 같은 등장인물이 나름의 위상을 가질 수 있는 것은 편지와의 연관성 속에 서다. 등장인물은 삼각구도 위에서 하나의 위치, 역할을 담당할 뿐이다. 이는 주 체의 탄생이 기표의 효과에 불과하다는 라캉의 언어론과 맞닿아있다.35) 주체는 기표의 연쇄 속에서만 자신의 위치를 확보할 수 있으며, 그러기에 주체는 이런 반 복적인 기표의 운동과 그것의 구조에 속박된 자에 불과하다. 이렇듯 포의 소설에 대한 라캉의 독해에서 주체의 위상이 편지의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편지 에 의해서 주체의 위상이 결정된다. 말하자면 라캉에게 편지는 중심 기표이며, 등 장인물들은 이런 기표를 소유한 자, 그것을 탈취하려는 자, 그리고 그것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자로서 각자의 위치를 부여받는다. 결국 중심 기표에 의해서 욕망의 구도는 구조화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라캉의 구조주의적 정신분석학을 리쾨르의 해석학적 정신분석 학과 구분해 볼 수 있다. 리쾨르의 경우 주체는 존재의 기호, 욕망의 표현을 매개 로 해서 자기이해에 도달하려는 존재로 규정된다.36) 물론 해석학적 주체는 근대 철학에서 볼 수 있는 반성적 주체, 즉 의식의 반성에 의해 의식의 존재마저 근거 지을 수 있는 그런 초월적 존재는 아니다. 이 주체는 자기의식의 내적인 반성에 의해서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겸손한 주체이며, 이로 인해 인간존재의 심연에 깃든 욕망을 파악하기 위해서 정신분석이라는 해석의 우회로를 거쳐야하 는 주체다. 그런데 이런 해석학적 운동은 정신분석의 도움을 받아서 자기존재(무 의식적 욕망)를 해석함으로써 주체의 자기이해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런 점에서 리쾨르의 해석학적 정신분석은 의식적 주체보다 좀 더 폭넓은 지평에 주체를 자리매김하지만 여전히 주체의 능동적 활동을 배제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리쾨르는 의식적 주체에서 해석학적 주체로 이행했지만, 그의 해석학적 주체도 욕망의 기호해석을 위해 정신분석을 이용할 뿐 주체라는 개념적 위상은 기존의 의식철학과 같이 동일하게 유지하고 있다.37)
35) 라캉의 언어론은 구조주의 언어학과 연결된 맥락과 관련해서는 양석원, 『욕망의 윤리』, 한길사, 2019를 참조하고, 좀 더 일반적이고 자세한 논의를 위해서는 아니카 르메르, 『자 크 라캉』, 문예출판사, 1994를 참조할 수 있다.
36) 폴 리쾨르, 『해석에 대하여』, 김동규·박준영 옮김, 인간사랑, 2016, p. 92.
37) 폴 리쾨르, 해석에 대하여, pp. 91-92. 자아의 정립은 언제나 해석을 매개해야 하는데, 이런 매개를 통해 반성적 의식은 존재, 즉 무의식을 자기화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리쾨르의 해석학적 정신분석은 반성철학의 변형된 형태라 하겠다.
반면에 라캉의 주체는 상징계라는 체계 내에서만 그것의 위상을 확보할 수 있 는 존재다. 그래서 라캉의 주체는 대타자인 ‘아버지의 이름’에 의해서 호명되고 언어의 구조에 의해서 규정되며, 이런 구조 내에서만 그는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동일한 맥락에서 주체는 편지나 욕망의 기표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에 의해서 주체의 위치가 구조지워진다. 그러기에 여기서 중요한 것은 편지의 주인 이 아니다. 편지의 주인이 여러 명으로 바뀌어도 편지는 그대로 존재한다는 점이 다. 이렇게 편지는 자기 동일성이 훼손하지 않은 채 운동을 한다. 라캉은 이런 편 지의 동일성을 ‘물질성matérialité’이라 부른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강조해온 것은 무엇보다도 기표의 물질성으로, 물질성은 여러모로 독특하다. 그중 첫 번째 것은 분할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갈가리 찢겨지 더라도 그것이 문자[편지]lettre라는 것은 그대로 남는다.”38) 이런 물질성으로 인해 편지는 결코 분할되지 않는다. 편지의 물질성은 욕망의 기표들 중에서 중심 기표의 역할을 하는 팔루스phallus와 같은 것이다. 팔루스는 모든 기표를 아우를 수 있는 초월론적인 역할을 맡기에 그것은 분산되거나 변질 되지 않는다.39)
물론 기표는 지속적으로 변화하면서 욕망의 대상을 다양하게 표현된다. 그러 기에 그것은 한곳에 머무르거나 적확한 대상을 찾지 못한 채, 지속적으로 대체와 교환의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이런 운동이 욕망의 기표가 분산되거나 산포하는 방식으로 끝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욕망의 기표는 일정한 구조 내에서 움직이는데, 말하자면 다양한 기표의 의미 변환이 이뤄지지만, 그것의 변 환은 언제나 구조라는 틀 내에서 행해진다. 이렇게 기표의 운동에서 틀을 잡아주 는 것이 바로 팔루스라는 중심 기표이다. 이런 맥락에서 데리다는 중심 기표인 팔 루스에 대해 적절히 설명한다. “상실에 저항해서 기표의 물질성, 기표의 물질성의 발화, 즉 나눠지지 않는 그것의 독특성에 대한 발화는 확립된다. 이런 물질성은 우리가 다른 곳에서 발견할 수 없는 비분할성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이런 물질성 은 관념성idéalité에 상응하는 것이다.”40)
38) 자크 라캉, 세미나, pp. 32-33.
39) 데리다는 라캉에 있어 팔루스의 동일성의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팔루스 가 ... 분할되거나 부분적 대상의 지위로 축소된다면, 모든 이론적 구조물은 붕괴될 것이 다. 이것은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피해야 할 것이다.” (J. Derrida, la Carte postale, p. 506)
40) J. Derrida, La Carte postale, p. 495.
주체의 욕망이 부권적 질서에 따라서 구조화되어있다면, 이런 질서의 바탕에 있는 팔루스는 모든 기표를 대표하는 기 표, 즉 특권화된 기표로서 변화하거나 분열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관념적 존재의 위상을 갖는다. 요컨대 다양한 기표들과 주체는 구조화된 질서에 의해서 규정되 는데, 이런 구조를 떠받치는 것이 중심 기표인 팔루스는 자기동일성을 유지한다. 라캉은 이런 기표의 위상을 「도둑맞은 편지」의 편지와 등치시킨다. 즉 편지는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서 이동하지만 그것의 동일성이 훼손되지 않은 채로 보존 된다. 편지는 방황하거나 분산되지 않는다. 데리다는 편지의 위상을 통해 라캉의 언어론이 결국 구조주의적 사유와 깊이 연결되어있기에, 그의 언어관은 불변의 구조와 같은 관념적 존재의 현전을 여전히 전제하고 있다고 본다.41) 그런데 우리는 편지를 팔루스로 보는 라캉의 해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 다. 특히 데리다는 편지를 중심으로 포의 소설을 해석하는 라캉의 해석이 결국 팔 루스중심적 접근은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갖는다. 라캉의 입장이 갖는 문제점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런 의구심의 출발점인 편지를 팔루스로 등치시키는 그의 표현 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포는 장관의 집에 놓인 편지의 위치를 기술하면서, “결국 나는 방안을 휘휘 둘러봤고 그러다 판지로 세공해서 만든 싸 구려 편지꽂이를 보게 된 걸세. 벽난로 중앙 부분 바로 밑에 달린 조그만 놋쇠 장 식에 ... 파란 리본으로 묶여 매달려 있는 편지곶이인데 ... 방문카드와 편지 한 통 이 들어있더라고.”42)라고 적고 있다. 이 장면에 대해 라캉은 “그와 똑같이 편지도 거대한 여성의 신체처럼 뒤팽이 대신의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을 때 길게 몸을 누 이고 있었다.”43)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처럼 편지가 놓인 장소는 여성의 성기를 떠올리게 하는 벽난로의 중앙부분에 있는 편지꽂이 통이다. 이 때문에 데리다는 편지가 여성의 다리 사이의 빈공간과 같은 벽난로의 한가 운데 있다는 점에서 편지가 놓인 장소가 여성의 음경을 상징하고, 편지는 이 음경 의 결여를 채워주는 팔루스의 역할을 한다고 본다.44) 그에 따르면 결국 라캉의 독해는 편지만이 거세의 장소, 페니스의 결여manque de penis를 충족시킬 수 있 음을 주장한다.45)
41) 데리다는 라캉의 해석에서 편지가 결국에는 파괴될 수 없다는 점에서, 그것은 관념적 존 재로 해석되고 있다고 본다. (J. Derrida, La Carte postale, p. 494. 참조)
42) 에드거 앨런 포, 에드거 앨런 포 전집 1, p. 243. 또한 자크 라캉, 세미나, p. 47에서 이 구절을 라캉은 “벽난로를 두른 문설주 사이 그것이, 약탈자가 손을 뻗기만 해도 닿을 거리 에 있네.”라고 나름의 방식으로 표현한다. (필자 부분 수정)
43) 자크 라캉, 세미나, p. 47.
44) J. Derrida, La Carte postale, p. 467. 데리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편지는 여성의 다리 사이의 구멍과 같이 열려진 곳으로, 존재이며 무인 곳으로 되돌아온다. 여기가 편지 가 있는 고유한 장소다.’
결국 라캉의 욕망론은 여성은 페니스를 결여한 존재이며, 이런 존재의 결여를 충족할 수 있는 것은 팔루스밖에 없음을 전제하고 있다.46) 그런데 이렇게 편지를 여성의 결핍과 남근의 필요성으로 해석하는 것은 남성중심주의 androcentrisme적인 접근이라 하겠다. 이 때문에 데리다는 라캉의 사유를 로고스 중심주의만큼이나 심각한 문제를 가진 팔루스중심주의로 규정한다. 이런 팔루스 중심주의는 팔루스를 상징하는 편지를 이상화된 남성성, 물신숭배fétiche의 대상 으로 만든다.47) 이를 통해 여성과 남성사이의 위계적 질서를 정당화한다. 또한 우리는 편지의 운동의 최종 종착지에 대해서도 살펴보아야 한다. 라캉은 “내가 말한 대로 송신자는 수신자로부터 자기 메시지를 전도된 형태로 되받는 것 이다. ‘도둑맞은 편지’, 나아가 ‘보관중인 편지lettre en souffrance’가 의미하는 것 은 편지가 항상 목적지에 도달하기 때문이다.”48)라고 말한다. 여기서 팔루스를 상징하는 편지는 자기 회귀, 자기 동일성, 자기 고유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방향으 로 움직인다. 이런 점에서 데리다는 편지의 운동을 목적론적인 운동이라 하여, 라 캉의 주요 개념인 팔루스, 진리, 법등의 개념도 최종적으로는 자기 동일성을 확보 하는 쪽으로 방향 지워져 있다고 본다.49) 편지의 운동이 비록 다양한 소유주를 거치지만 결국에는 결여의 충족이라는 목적지, 현전의 완성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있다는 것이다.50) 이런 편지의 독특한 위상에 대해 라캉은 「도둑맞은 편지에 대 한 세미나」의 말미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편지를 조각내어보아라. [하지만] 그 것은 그것인 바로 머물 것이다.”51) 이렇게 편지로 대표되는 기표의 물질성은 구 조주의적 진리가 말하는 구조의 동일성을 지탱케 해주는 중심축과 같은 역할을 한다.52)
45) ibid.
46) 여기서 데리다는 프로이트의 제자인 보나파르트의 해석을 참조한다. 보나파르트는 포의 여러 저작을 전기적 관점에서 분석하면서, 포의 작품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문제에서 기인한 것으로 단정하여 해석한다. 이런 맥락에서 편지가 놓여진 이 장면을 음경 속에 놓인 남근으로 설명한다. 보나파르트는 소설의 다양한 장치들이 결국 여성의 결여를 채우고 자 하는 남근과 연결시킨다. 이런 점에서 그녀는 팔루스중심적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 겠다. (J. Derrida, La Carte postale, p. 487)
47) 데리다는 “왕비는 물신숭배인 편지la lettre-fétiche를 자신에게 돌아오게 만들길 원하고, 이를 위해서 하나의 물신숭배를 다른 것으로 교체하고 교환하고자 한다”라고 말한다.(J. Derrida, la Carte postale, p. 469)
48) 자크 라캉, 세미나, p. 54.(필자의 강조)
49) J. Derrida, La Carte postale, p. 467. “편지의 단일성은 바로 이런 진리의 자기계약성 le contract de la vérité avec elle-même과 같은 것이 된다.”
50) Richard, Claude. “Destin, Design, Dasein: Lacan, Derrida and “the Purloined Letter"", The Iowa Review, 12.4, 1981, p. 5.
51) 자크 라캉, 세미나, p. 49.
52) 편지의 통일성과 관념성을 강조하는 라캉에 대해서 데리다는 편지의 비파괴성이 의미의 관념성으로까지 격상될 수 있다고 보았다. 특히 데리다는 편지의 이런 비물질성을 강조하 면서, 라캉을 인용하면서 헤겔적 지양Aufhebung의 특성을 부각한다. (J. Derrida, La Carte postale, p. 492, 495.)
그런데 데리다는 바로 이와 같은 구조의 현전성, 편지의 관념성으로 대표되는 자기동일성에 대해서 비판적이다. 오히려 그는 라캉과 달리, 「도둑맞은 편지」 라는 작품의 독특성을 닫힌 구조, 원환적 운동으로서의 기표의 운동에서 찾는 것 이 아니라 안정화된 구도를 깨는 의미의 운동, 즉 인물의 다양한 해석가능성, 이 야기의 상호텍스트적 해석가능성에서 찾는다. 이 때문에 데리다는 라캉이 강조한 구조화된 장면의 협소한 차원보다 좀 더 넓은 차원에서 해석의 다양성, 복잡성을 부각시키면서, 텍스트 해석의 일의성을 해체하고자 한다.
2. 욕망의 삼각형의 해체와 소설의 다양한 계기들
라캉은 포Poe의 「도둑맞은 편지」를 구조주의적 입장에서 해석하기 위해서 포의 단편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사상捨象하여 구조에 적합한 요소들만을 추출해서 중심이야기로 다룬다. 그런데 이런 구조화는 이야기의 다양한 구성요소 를 제거한다는 점에서 이야기의 다양한 차원을 욕망의 삼각구도로 환원하게 된 다. 즉 라캉의 독해는 포의 소설에서 욕망의 구도 외에 다양한 서술narration이나 화자narrateur등을 자연스럽게 논의에서 배제한다. 이처럼 라캉의 독해는 포의 소설에서 펼쳐지는 복잡한 이야기와 해석을 단일화하여 안정된 구조로 만드는 장 점이 있지만, 구조를 벗어나 있는 소설의 다양한 계기들을 단순화하고, 환원하여 하나의 구도frame로 고착시키는 문제점도 있다.53) 우리는 「도둑맞은 편지」를 통해서 라캉의 해석이 얼마나 구조주의적인지 살펴보고, 데리다의 독법을 통해서 이런 구조주의적 해석 외에도 다른 방식으로 이 소설을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검토해보고자 한다. 먼저 데리다는 라캉과 달리, 라캉이 절개해놓은 이야기의 장면들이 놓치고 있 는 것에 관심을 갖는데, 이를 위해서 라캉이 제시한 구도를 문제시한다.54) “여기서 틀거리encadrement. 테두리bordure 한계지음의 문제가 있다. 이런 분석 은 매우 세밀해야 한다. 그것이 픽션의 결과를 인정해야 한다. 라캉은 텍스트의 픽션 을 제거한다. 텍스트의 픽션의 내부에서 그는 서술을 잘라낸다.”55)
53) Jacques de Ville, “Derrida’s The Purveyor of Truth and Constitutional Reading”, International Journal for the Semiotics of Law, 21 (2), 2008, p. 123.
54) ibid.
55) J. Derrida, La Carte postale, p. 459.
말하자면 라캉은 포의 소설을 욕망의 삼각구도라는 형식적 측면에서만 해석한 다. 이 때문에 그의 해석은 소설의 주된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의 구도를 설정하 면서, 사건 이외에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서술narration을 간과했었다. 그래서 데 리다는 틀거리 자체를 언급하면서 「도둑맞은 편지」 의 이야기를 편지의 이동과 관련된 장면으로 한정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그는 「도둑맞은 편지」를 단순히 두 장면으로 축소하거나 삼각구도로 분절될 수 있는 구조의 형태로 보는 것이 아 니라 이 장면의 외곽에 관심을 갖는다. 그에게 서술은 소설 전체를 둘러싸는 틀거 리 역할을 한다. 말하자면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둘러싸는 것이 서술의 역할이다.
소설의 첫 부분을 보자.
“18xx년 가을 폭풍우가 몰아치는 어느 날 해가 진 직후, 파리 포부르 생제르맹 뒤노 가 33번지 3층 뒤쪽에 있는 조그만 서재에서 나는 친구C. 오귀스트 뒤팽과 함께 메르샤움 파이프를 피우며 생각에 잠겨 있는 이중의 사치를 누리고 있었다. ... 하지 만 나는 초저녁에 친구와 함께 나누었던 어떤 이야기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 다. 모르그 가 사건과 마리 조제 살인 사건에 관한 수수께끼 말이다. ... 바로 그 순간 아파트 문이 벌컥 열리고 오랜 지인인 파리 경찰국장 G가 들어온 것이 뭔가 우연의 일치처럼 여겨졌다.”56)
자세히 살펴보면, 「도둑맞은 편지」는 편지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화자의 서술narration로 시작한다.
화자는 작품의 서두에 ‘나’라는 일인칭의 형태 로 등장한다. 화자는 일인칭으로 이야기의 외부인으로서 서술을 전개하다가 이야 기 속의 등장인물이 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일견 화자는 일견 객관적이고 투명한 관찰자로서 존재하는 듯이 보이지만, 그는 서사를 이끌어가는 자로서 작품의 외 부와 내부에 개입하고 있다.57) 물론 화자의 주된 역할은 작가처럼 작품에 등장하 는 기록자의 역할이다. 화자는 기록자로서 이야기의 전체의 흐름에 대해서 설명 하면서 편지의 이동이라는 이야기틀의 외부에 있는 서사적 공간을 제공한다. 그 래서 데리다는 화자로 인해 이야기의 “서술narration이 장면을 제공”한다라고 언 급한다.58)
56) 에드거 앨런 포, 에드거 앨런 포 전집 1, p. 222.
57) 화자는 이야기하는 화자와 이야기되어진 화자로 이중화dedoubler된다.(J. Derrida, La Carte postale, p. 459)
58) J. Derrida, La Carte postale, p. 456. 또한 “화자가 하는 서술은 소설의 사건들을 이중화dédoubler하고, 장면화하여 가시적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J. Derrida, La Carte postale, p. 459)
요컨대 라캉은 욕망의 구도에 따라서 이야기의 틀을 만들기 위해서 소 설의 서사적 부분, 서술의 부분을 재단했었다면, 그의 절개가 결국 텍스트의 심연적 구조를 간과하게 만드는 주된 이유가 되었다.59) 데리다는 이렇게 간과된 텍스 트의 복잡성을 복원하고자 한다. 우리는 소설의 심연적 구조를 상호텍스트적 계기들에서 찾을 수 있다. 소설의 화자를 살펴보면, 화자는 지금 어두움 속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포의 다른 소설을 암시하는 ‘모르그 가의 살인사건’과 ‘마리 조제의 살인 사건’에 대해서 언급한 다.60) 이것은 분명 포가 「도둑맞은 편지」라는 소설 속에 은폐시켜 놓은 다른 소설과의 연관성의 표식이다. 그래서 데리다는 이 소설을 해석함에 있어 단일한 텍스트라는 틀이 아니라 텍스트 상호간의 해석가능성을 열어두고서 소설들 간의 상호직조성에 관심을 갖는다. 말하자면 「도둑맞은 편지」의 화자는 뒤팽이 등장 하는 다른 소설내용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기실 다른 소설 의 이야기를 작품 속에 끌어와서 작품 간의 경계를 혼란시키고 있다. 이점에서 데 리다는 포의 「도둑맞은 편지」를 단지 한 작품이 아니라 포의 추리삼부작 Triologie들로 확장하여 작품들 사이에 상호독해의 방식으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 한다.61) 그러기에 라캉처럼 「도둑맞은 편지」의 내용을 단지 편지에 집중해서 분석할 것이 아니라 ‘모르그가의 사건‘과 ’마리 조제 살인 사건‘과 연결해서 풀어 야 한다는 것이 데리다의 생각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의 작품 내에 서로 다른 작품을 언급하고 연결시키는 것은 한편으로는 작품의 해석의 경계에 대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이를테면 작품의 해석을 한 작품의 단일한 경계를 넘어서 다른 작품과 상호해석적 관계에 둔다면, 해석의 경계에 대한 문제가 발생하며 해석의 다양성이 무한히 확장될 수 있기에, 결과적으로 소설의 구조적 안정성을 파괴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데리다의 입장을 보나파르트의 해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를테면 보나파르트Bonapart는 라캉과 다르게 「도둑맞은 편지」를 다른 작품 들과 연관지우면서, 「도둑맞은 편지」는 「로제마리의 수수께끼」라는 작품을 포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62)
59) J. Derrida, La Carte postale, p. 458.
60) J. Derrida, La Carte postale, p. 521.
61)에드거 앨런 포, 「도둑맞은 편지」, p. 222와 「모르그 가의 살인」 p.11 사이의 유사성은 충분히 비교해볼 만하다. 데리다는 도둑맞은 편지라는 작품의 내재적 해석이 아니라 작품 간의 연관성의 중요성을 의식하고서 해석한다.(Jacques de Ville, “Derrida’s The Purveyor of Truth and Constitutional Reading”, International Journal for the Semiotics of Law, 21 (2), 2008, p. 125. 또한 J. Derrida, La Carte postale, p. 493 참 조)
62)그럼에도 보나파르트의 해석은 작품의 독립성과 무관하게 포의 모든 작품을 오이디푸스콤 플렉스의 단서를 찾기 위해 작품들을 상호연관시켜 분석한다는 점에서 데리다의 관점과는 다르다.(Jacques de Ville, Derrida’s The Purveyor of Truth and Constitutional Reading, p. 123.)
물론 데리다의 해석의 지향점과의 차이는 간과할 수 없겠지만, 보나파르트의 해석은 작품들 간의 연관성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나 름의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또한 우리는 이 작품의 해석이 심연적 구조를 밝히기 위해서 여러 등장인물의 이중성과 중첩성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다. 라캉은 편지의 이동을 두 장면으로 나 눠서 각 장면에 나오는 인물들이 자신의 역할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고 본다. 하지 만 자세히 살펴보면 등장인물들은 욕망의 삼각구도 위에 동일한 자로서 있지 않 다. 우선 뒤팽을 보면, 그는 욕망 삼각구도의 외부와 내부에 동시에 속해있다.63) 그는 사건과 연관된 인물의 심리를 이해하고, 이들이 어떻게 편지를 옮겨서 숨겨 놓는지를 명쾌히 풀어낸다. 말하자면 “뒤팽은 편지를 그것의 고유한 경로에 다시 놓는 것에 성공했다.”64) 그러기에 그는 사건의 관찰자이자 분석가로서 이 사건과 연루되지 않은 채 외부에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인물로 보인다. 하지만 다른 편 에서 그 또한 장관을 미워하면서 사건의 해결 이후에도 그에게 복수를 하고자 한 다.65) 그 또한 욕망의 구조의 한축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서 장관을 보자 면, 그는 수학자이면서 시인이라는 이중성을 갖고 있으며, 뒤팽처럼 편지의 존재 를 눈치 채고 잘 탈취하지만, 왕처럼 편지의 탈취를 모르고 있으며, 왕비처럼 편 지를 빼앗기고 있다. 장관은 다양한 인물들과 겹치고 있다. 마지막으로 화자에 주 목할 필요가 있다. 화자는 이야기의 외부에서 이야기에 대한 서술을 이끌기도 하 지만, 이야기에 직접 참여해서 자신의 입장을 표하기도 한다.66) 특히 화자는 뒤팽 에게 깊이 매료되어서, 자신을 뒤팽의 후원자라고 스스로를 밝히고 있다. “그[뒤 팽]의 방대한 독서량도 놀라웠고, 무엇보다 열정적이고 생생한 상상력이 내 안의 영혼을 불타오르게 했다.” 또한 “나[화자]는 그[뒤팽]의 다른 모든 면들에 그랬듯 이 이 기괴한 취향에도 물들어 갔고, 마침내 ... 완전히 추종하게 되었다.”67) 여기 서 데리다가 주목한 것은, 화자와 뒤팽이 완전히 무관심한 두 존재가 아니라 서로 닮아있는 존재, 즉 쌍둥이le double처럼 변해간다는 것이다.68)
63) J. Derrida, La Carte postale, p. 479.
64) J. Derrida, La Carte postale, p. 471. 라캉, 세미나, p. 38.
65) 뒤팽은 자기 손으로 위조한 편지에 ‘곧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라는 잔인한 시구를 장관 에게 남긴다. 이점은 라캉도 지적한다.(자크 라캉, 세미나, p. 49.)
66) “사람들은 예컨대 이야기하는 자le narrant와 이야기된 것le narre을 대립하는 것처럼 서술의 조건과 내용을 대립시킨다.” (J. Derrida, la Carte postale, p. 460)
67) 포,「모르그 가의 살인」, 애드가 앨런 포 전집 1, p.11, 12. Jacques de Ville, “Derrida’s The Purveyor of Truth and Constitutional Reading”, p. 123.
68) J. Derrida, La Carte postale, p. 518.
화자는 뒤팽에게 매료되어 그를 욕망하면서 그를 닮아가고, 이로 인해 뒤팽과 가져야 할 관찰자적 거리를 상실한다.69) 하지만 라캉은 화자가 갖는 위상에 대해서는 「「도둑맞은 편지」에 관한 세미나」에서는 어떤 언급도 없다.70) 이렇게 편지를 둘러싼 세 명의 등장인물 외에 제 사의 인물, 즉 화자까지 자신 의 동일성을 잃고서 다른 인물과 혼동되는 상황에 이른다. 데리다는 이런 점을 통 해서 라캉의 욕망의 구도가 결코 유지될 수 없으며, 다양한 인물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해석에 열려있음을 지적한다. 이처럼 그는 「도둑맞은 편지」가 다양한 독해에 열려진 픽션임을 강조한다. 즉 이 소설은 ‘도둑맞은 편지’를 최종적으로 되찾음으로써 이 편지의 진리에 도달하는 것 같이 구성되어 있지만, 「도둑맞은 편지」작품의 제목 자체가 허구이며, 이 제목 하의 이야기도 허구라는 것이다. 그 래서 데리다는 “「도둑맞은 편지」는 텍스트의 제목이자 텍스트의 대상에 대한 제목이다.”라고 말한다.71) 이는 「도둑맞은 편지」는 텍스트 내의 내용만이 아니 라 텍스트 자체가 이미 잃어버린 편지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 편지 의 진리는 언제나 상실된 채로 있다. 이것은 라캉이 생각한 편지의 진리가 욕망의 기표이며, 욕망의 기표의 진리는 최종적으로 확보될 수 있다는 해석과는 정반대 에 위치한다. 기실 데리다는 라캉의 언어적 진리나 기표도 그것이 표현되기 위해 서는 이런 허구 위에서, 허구의 옷을 입으로써만 가능하다고 본다.72) 이처럼 진리 는 허구의 이야기 속에서만 가능하고 허구와 진리는 완전히 분리할 수 없을 정도 로 서로 얽혀있다는 것이 데리다의 해석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도둑맞은 편 지」이야기의 해석이 다양하게 산포하는 구도를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요 컨대 허구의 외피를 입고서 진리를 말하는 방식은 기표의 누빔점과 같은 정박지 를 찾지 못하고 해석의 다양화에 열려있는 것이 편지의 진실이다.73) 이런 이유로 데리다는 편지는 결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74)
69) J. Derrida, La Carte postale, p. 519. Kennedy, J. Gerald. 1996. “The Violence of Melancholy: Poe against Himself‘. American Literary History 8 (3) p. 547에서 저자 는 뒤팽 자체가 이중적이며, 뒤팽과 화자는 닮은꼴임을 주장한다.
70) J. Derrida, La Carte postale, p. 457.
71) J. Derrida, La Carte postale, p. 514. 필자강조.
72) “사람들이 철학적 전통에서 그러하듯이 진리와 실재를 구분했다면, 진리는 허구의 구조 내에서 스스로를 알린다는 것이 관건이다.” 또한 “진리는 허구를 통해 알려진다.”라는 데 리다의 전언은 기억할만하다.(J. Derrida, la Carte postale, p. 496, 497)
73) 라캉은 진리와 실재의 대립을 강조하면서, 이때의 진리를 적확성, 탈은폐, 재전유, 현전 등으로 규정하지만, 이런 진리의 가치들이 해명되기 위해서 라캉은 다양한 문학작품을 활 용한다. 그런데 정신분석의 진리를 해명하기 위해서 허구에 의존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도 둑맞은 편지에 대한 세미나 」에서 허구 자체의 의미에 대해서는 크게 주의하지 않는다. (J. Derrida, La Carte postale, p. 496) 74) J. Derrida, La Carte postale, p. 472.
Ⅳ. 정신분석과 해체론
철학자로서 데리다는 정신분석이론의 세세한 내용보다 정신분석이론의 가장자 리에 있는 그것의 한계에 많은 관심을 갖는다.75)
그러기에 데리다는 라캉의 정신 분석에서 상징계가 제시하는 욕망구조의 한계, 상징계 내에서 상징화할 수 없는 것, 상징계의 외부에 지속적인 관심을 표한다.
우리는 라캉의 사유에서도 이와 유 사한 예를 볼 수 있는데, 상징계의 질서를 벗어나 있는 것으로서 사물chose 혹은 충동등이 대표적이라 하겠다. 특히 라캉에게 충동은 욕망의 원인이면서 동시에 목적이다. 그것은 욕망의 운동을 유발시키는 것이지만, 동시에 이런 욕망이 향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처럼 충동은 언어의 질서에 의해 완전히 포섭되지 않으며, 그것의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라캉은 언어가 사물 혹은 충동을 살해 한다고 말한다.76) 하지만 언어에 의해 살해된 사물은 사라지지 않고, 언어의 주변 을 타고 돌면서 언어의 질서에 균열을 낸다.77) 충동은 상징계의 내부에 숨어있으 면서, 이 질서에 파열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라캉은 상징계가 포섭하지 못하는 이 충동에 대해서 상징적 질서가 가하는 폭력을 ‘죽음충동’이라고 한다. 죽음충동은 프로이트가 반복강박을 연구하면서 기존의 쾌락원리로서는 설명할 수 없는 증상 을 표현한 개념이다. 이 개념은 프로이트가 자신의 정신분석의 이론을 재구성할 정도로 중요하게 다뤄진 개념이다. 특히 죽음충동이 알려주는 ‘쾌락원리 너머’는 하나의 이론으로 정식될 수 없는 이론에 대한 어떤 저항을 지시한다. 이런 저항은 정신분석의 경계, 즉 분석가능한 것과 가능하지 않은 것의 경계에 대한 단초를 제 공한다. 이점들과 연관해서 우리는 사유의 경계를 탐구하는 정신분석과 데리다의 해체 론 사이의 연관성을 상정해 볼 수 있다. 물론 데리다가 정신분석에 관심을 표명한 것은 Résistances이 아니라 L'écriture et la différence로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L'écriture et la différence에서 데리다는 사후성의 개념의 분석을 통해 정신분석 과 해체론 사이의 유사성을 찾고자 하였다.78)
75) 우리는 데리다의 저서의 제목인 Résistances에서 정신분석 이론의 한계에 대한 그의 관 심을 읽을 수 있다. (J. Derrida, Résistances, Gallile, 1996.)
76) “문자는 살해한다La lettre tue. 하지만 우리는 문자 그 자체로부터 그 사실을 알 수 있 다. 바로 이것을 통해서 모든 충동은 잠재적으로 죽음충동이 된다.”(자크 라캉, 에크리, p. 1001. 필자 부분수정.)
77) 라캉의 사유에서 균열개념은 중요한 계기 중의 하나이다. “주체가 자신과 관련된 첫 번 째 타자의 담화를 경험하면서 탐지해낸 욕망이 기거하게 되는 곳은 이 두 사이의 벌어진 틈이다.”(Lacan, Le seminaireⅥ, p. 482참조)
78) 데리다는 자신의 논문 “Freud et la scène de l’écriture”, L'écriture et la différence 에서 프로이트의 저작들을 면밀히 독해하면서 정신분석에서 사용된 흔적과 차연 등 개념 들에 주목하는데, 특히 그는 이런 개념들과 자신의 해체론 사이의 유사성을 지적한다.
이를테면 사후성의 개념은 의식의 현전이나 기원으로 회귀되지 않는 시간적 간격을 지시한다는 점에서 데리다의 흔 적이나 차연의 성격과 닮아 있다. 이런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데리다는 자신의 철 학이 철학에 대한 정신분석으로 읽히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를 한다.79) 이렇게 경 계를 한다고 해서 정신분석이 서구의 형이상학의 자장磁場 속에 있다고 단정 짓 기는 어렵다. 이를테면 정신분석에서 저항이라는 관념과 연관된 개념적 정의를 살펴보면 비 형이상학적 성격을 잘 알 수 있다. 우선 정신분석은 의식에 대한 저항을 분석하는 것에서 시작했었다. 그리고 의식에 대한 저항에 무의식이라는 이름을 부여함으로 써 무의식에 대한 학문, 의식과 그것의 하부에 숨겨진 것을 검토하는 분석으로 발 전해왔다. 그렇다고 정신분석을 의식에 대한 저항이라는 개념으로 단일화해서 정 리하기는 힘들다. 이는 의식, 전의식, 무의식의 각 단계에서 드러나는 저항개념들 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데리다는 정신분석은 단일한 개념적 틀로서 한 정짓기보다, 정신의 다양한 국면을 다양한 이론적 장치로 설명하는 학문이라고 말한다.80) 이런 관점에서 데리다는 ‘정신분석은 하나의 개념, 이론적 과제로 단일 화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81) 이처럼 정신분석은 자신의 이론적 정체성, 달리 말 해서 스스로를 정의하려고 시도하면 할수록 이런 규정에 저항하는 요소들에 직면 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정신분석은 자기 분열적이며, 단일한 개념체계로 포섭 되지 않는 다양한 실천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정신분석의 이런 분열적 모습은 해체론과 매우 유사해 보인다. 그런데 우리는 단일한 규정성에 대한 저항의 가장 핵심적인 지점을 정신분석 에서 분석 자체에 대한 저항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첫 예는 프로이트의 『꿈의 해 석』에 나오는 해석에 대한 저항이고 두 번째는 죽음충동과 연결된다. 우선 첫 번 째 예를 살펴보면,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에서 이르마의 주사에 대한 꿈을 분 석하면서, 자신의 꿈조차도 해석될 수 없는 지점이 있음을 고백하고, 해석의 잔여 로서 남겨진 꿈의 내용을 ‘꿈의 배꼽’이라 부른다.82)
79) 데리다는 자신의 해체론과 정신분석을 동일시하는 시도를 의식인지, “로고스중심주의의 해체는 철학에 대한 정신분석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J. Derrida, Freud et la scène de l’écriture, p. 293)
80) 이로 인해서 데리다는 정신분석을 대명사로 표시할 수 없다고 한다. (J. Derrida, Résistances, p. 140.) 81) J. Derrida, Résistances, pp. 33-35.
82) 프로이트는 자신의 환자인 이르마의 치료의 실패와 관련된 꿈을 꾼다. 꿈에서 이르마 부 인이 프로이트의 꿈에 나타나 자신의 통증에 대해서 호소한다. 그리고 이런 호소를 들은 프로이트는 그의 목에 있는 하얀 딱지가 문제의 원인으로 생각한다. 이 하얀 딱지의 발생 원인을 프로이트 자신이 주사한 트레메탈민이라는 약물과 주사기의 불결함에 있다고 판단 한다. 이후에 프로이트는 이런 꿈의 원인을 이르마 부인에 대한 성적인 관심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그리고 트레메탈민이라는 약품도 성적신진대사의 물질로 젊은 나이의 과부인 이르마의 성적인 욕구를 자기가 주사를 통해 충족시킬 수 있다고 해석했지만, 이후에 자신의 해석이 적절하지 않다고 프로이트는 생각한다. 이르마의 꿈해석은 해석의 미결정성을 알려 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프로이트, 『꿈의 해석(상)』, 열린책들, 1997, pp. 159-176.
말하자면 프로이트는 스스로의 꿈에 대한 분석조차도 어떤 저항, 한계에 부딪힌다는 점을 고백한다.
철학적으로 이르마의 예는 우리에게 정신분석의 모든 해석을 일거에 근거지을 수 있는 그러한 초월론적 지점은 정신분석에는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데리다는 프로이트의 이런 해독불가의 지점에 주목해서 이와 같은 해석불가능성을 일종의 “ 풀리지-않 는in-solvable 매듭noeud” 혹은 “의미의 직조물83)로 규정한다. 무엇보다 이 해독 불가해성과 관련해서, 데리다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잘 분석된 꿈에서 조차도, 어떤 영역은 어둠에 두어야 한다.”는 프로이트의 지적이다. 이는 “우리는 해석에 과정에서 꿈의 사유의 적층들이 서로 뒤얽히기지 말아야 한다는”84) 프로이트의 꿈해석의 원칙에서 기인한 것이다. 요컨대 프로이트는 자신의 정신분석이 꿈의 내용을 완전히 해석할 수 없다는 해석의 한계를 인정한다. 하지만 그는 『꿈의 해 석』에서는 해독할 수 없는 것과 해독할 수 있는 것이라는 구분점을 지적하는 정 도에 만족한다. 그럼에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한편에서 합리적으로 인간의 욕 망과 무의식을 해명하려고 하기에 서구의 합리주의 전통 내에 여전히 있지만, 다 른 한편에서 계몽주의자와 같이 이성에 대한 절대적 신뢰는 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신분석은 자신의 해석작업이 분석불가한 것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다.85) 이런 정신분석의 성향에 대해서 데리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성의 역사 속으로 옮겨진 ... [앞의] 전제들은 계몽의 진보성과 같은 분석의 희망 과는 구분된다.” 오히려 정신분석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꿈에서 드러난 욕망 은 해석에 열려있는 것이 아니라 “어두움에 빠져있다.”는 것이다.86)
83) J. Derrida, Résistances, p. 29.
84) J. Derrida, Resistances, p. 27에서 재인용.
85) 박찬부, 「상징과 실재의 변증법」, 『라캉, 사유의 모험』, 홍준기 엮음, 마티, 2010, pp. 67-68)에서 저자는 꿈의 배꼽과 같은 현상이 생기는 것은 해석의 불충분성이 아니라 무의 식 자체의 문제, 즉 결코 해석할 수 없는 것의 존재 때문이라고 말한다. 무의식은 해석에 저항하는 불투명한 부분은 해석의 잔여로 남겨진다.
86) J. Derrida, Résistances, p. 29.
“이런 분석[정신분석]은 모든 분석이 그렇듯이, 지속적으로 저항을 제거하면서 최초의 어두움을 이겨내고자 한다. [하지만] 이런 분석은 저항의 자유를 제공하고, 풀어주고, 해방시키는데, 이는 어두운 면을 함께 고려하는 것이고 분석불가능한 것을 욕망의 원천으로서 자리매김하는 욕망의 체념주의fatalisme이거나 비관주의와 같은 것으로 서다.”87) 욕망의 근원적 장소는 인간의 이성의 빛이 도달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어두움 속에 있으며, 합리적 분석에 대해 저항하고 있다. 하지만 무의식적 충동에 대해서 정신분석은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그 한계에 도전하는 양가적인 태도를 취한다. 우리는 이런 저항에 대해서 두 번째 예를 통해서 정신분석에 대한 저항을 더 심 화할 수 있다. 정신분석에서 분석에 대한 저항이 본격적으로 논의되는 것은 ‘죽음 충동’과 관련해서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자극보호를 돌파할 정도로 강력한, 외 부로부터의 흥분”이 발생할 시에, “외부로 부터의 외상과 같은 사건은 확실히 유 기체의 에너지 기능에 막대한 규모의 교란을 초래해 모든 방어수단을 가동케“ 만 든다.88) 이처럼 유기체는 자신의 에너지를 항상성의 원리, 즉 쾌락원리를 따라서 불쾌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어떤 환자의 경우 쾌락원리를 따르 기보다 오히려 죽음충동으로 향한다. 우리는 죽음충동의 구체적인 예를 반복강박 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반복강박은 주체가 정신적 외상으로부터 빠져나오길 원 하지만 빠져나오지 못하는 어떤 상황을 의미한다.89) 또한 이 강박은 과거의 기억 이 현재에도 영향력을 발휘하여 과거의 정신적 외상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만드 는 것이다. 이처럼 반복강박 속에서 환자는 고통을 받지만 분석을 통해 이런 증상 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외상 속에 머물고자 한다. 쾌락원리에 의하면 불쾌는 감소키시고 쾌락은 감소시키는 형태로 인간의 심적기제가 구조화 되어 있는데, 반복강박은 이런 쾌락원리로 설명하기 힘든 고통 속에 머물고자 하 는 인간의 욕망을 알려준다. 이는 환자가 고통에도 불구하고 치료를 위한 분석을 거부하고 정신적 외상의 반복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것에 볼 수 있다.90)
87) ibid.
88) 프로이트, 「쾌락원칙을 넘어서」, 『정신분석학의 근본 개념』, 윤희기, 박찬부 옮김, 열린책 들, 2004, p. 299.
89) 리쾨르가 말한 죽음충동의 분석에 대한 저항은 우리의 관점과 일치한다. “프로이트가 죽 음 중동으로 나아가게 된 결정적인 경험은 저항에서 나온 투쟁과 연관적 분석적 치료 속 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특정한 난점에서 기인한 것이다.”(폴 리쾨르, 해석에 대하여, pp. 413-414)
90) 리쾨르에 의하면 “반복강박은 환자가 억압된 대상을 하나의 과거의 기억으로 떠올리는 대신 최근의 경험으로 반복하는 경험에서 기인한다.”(폴 리쾨르, 해석에 대하여, p. 414)
반복강박의 발견으로 인해 더 이상 기존의 쾌락원리, 나아가 쾌와 불쾌의 관계는 유지되 기 힘들다.
결국 반복강박은 기존의 쾌와 불쾌의 항상성이라는 프로이트의 이론에 근본적 위기를 가져온다. 프로이트는 이와 같이 쾌락원리와 같이 정식화될 수 있는 원리를 넘어서는 충동의 계기를 설명하기 위해서 ‘쾌락원리 너머’라는 죽음 충동개념을 제시한다. 그런데 이런 반복강박의 특이성은 먼저 충동의 에너지가 스스로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향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독특하고, 다음으로 정신분 석에 저항하는 점에서 무질서의 힘이며 파괴적인 쾌락이라는 점에서 죽음으로 향 하는 충동이라 하겠다.91) 이와같은 ‘쾌락원리 너머’는 쾌락의 질서에 의해 해명되 지 않는 파괴적 쾌락이나 무질서한 충동에 의해 지배된다. 이런 충동은 쾌락원리 너머에 존재하는 미지의 것이다. 그런데 프로이트가 ‘쾌락원칙 너머’라는 표현에서와 같이 요령부득의 방식으로 산발적으로 언급하는 정도에 머물렀다면, 라캉은 기존의 욕망의 질서에 들어가지 않는 충동, 모든 개념화를 너머에 있는 것에 실재reel나 사물das Ding이라는 개념 적 위상을 부여한다.92)
91) 라캉에게 향유는 상징화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프로이트의 쾌락원칙에 나오는 쾌락과 구별되는 비상징적 쾌락이 ‘향락’이다.(슬라보예 지젝,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 이수 련 옮김, 새물결, 2017, p. 202참조.)
92) 지젝은 향락의 입장에서 사물은 다시 찾아야 할 대상이고, 전역사적인 어떤 것으로 설명 하고 있다.(슬라보예 지젝, 『향락의 전이』, 이만우 옮김, 인간사랑, 2002. p. 118. 참조.)
칸트처럼 사물이나 실재는 상징적 질서와 같은 현상에 의해 근거 지워지지 않으며, 상징적 질서로부터 도출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상징 적 질서가 포섭할 수 없는 한계적 존재와 같은 것이다. 라캉은 이러한 실재를 논리적 관념으로 논증하는 데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물 혹은 실재가 끊임없이 상징계 주위를 현상계를 작동하는 힘으로 규정한다. 이처럼 라캉은 상징적 질서에 외부를 개념적으로 규정하려고 한다.
하지만 데리다는 죽음충동이나 분석에 대한 저항개념을 실재나 사물과 같이 라캉적 개념화보다는 외재적 성격을 강조한다. 특히 그는 반복강박의 저항이 규정할 수 없는 ‘쾌락원리의 너머’라는 점에 관심을 갖는다.
죽음충동의 철학적 의미는 해체론적 입장에서 분석에 저항하며, 분석을 그것의 경계인 분석불가능의 지점을 해명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데리다에게 죽음충 동은 로고스중심주의나 팔루스중심주의의 형태에서 볼 수 있는 기원이나 현전에 저항하는 개념적으로 포착불가능한 존재와 연결되어 있다. 요컨대 그는 정신분석 에서 구조나 언어적 질서, 혹은 현전 등으로부터 벗어나 있으며, 구조화할 수 없 는 저항의 지점을 통해 개념불가한 외재성의 발현을 찾고자 한다. 이런 점에서 데리다는 죽음충동이나 반복강박을 통해서 단지 정신적 외상의 증후에 대해 지시 할 수 있는 정확한 명칭을 찾는 것이 아니라 정신분석과 같은 합리적 설명과 해 석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분석의 한계지점의 출현에 주목한다.
여기서 우리는 데리다가 이성중심주의logocentrisme라고 부른 이성의 욕망의 극한점을 보게 된다. 말하자면 이성은 자신의 체계 속에서 남김없이 해명하고자 한다면, 이성적 분석은 무의식적 욕망의 심연조차 남김없이 해명하는 것을 지향 한다. 하지만 정신분석에서의 저항은 언제나 분석될 수 없는 존재의 저항에 부딪 히는 것으로써 무의식적 심연과 마주해야 한다.93) 데리다는 이러한 저항을 쾌락 원리 ‘너머’에서 발견한다. 특히 데리다가 주목하는 ‘너머’는 개념화의 저항이며 분석의 경계의 다른 이름이다. 요컨대 분석의 경계는 분석에 의해 결코 완전히 주 제화하거나 개념화할 수 없는 이론의 외부라 할 수 있다. 결국 우리는 반복강박의 저항에서 해체론이 주장하는 비현전성과 타자성의 단초를 찾을 수 있으며, 정신 분석과 해체론 사이의 공통항을 발견할 수 있다.94)
93) 이러한 저항은 모든 합리적 설명과 이성의 빛으로 접근하고자 하는 시도에 대한 저항이 라는 점에서 어떤 의미에서 ‘악마적 저항’이라 할 수 있다.
94) 데리다는 명시적으로 해체론은 철학의 정신분석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데리다의 정신분 석에 대한 관심은 그의 일련의 논문과 저서인 “Freud et la scène de l’écriture”(1966), La Carte postale(1972), Résistances(1996), Mal d’Archive(2008)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지속적으로 표명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정신분 석이 서구형이상학의 자장磁場 안에 속하지만, 현전의 형이상학에서 벗어나는 지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Ⅴ. 마치며
데리다는 라캉의 정신분석의 삼각 구도를 욕망의 기본구도로 설명하는 것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의문을 제기하면서 이런 이론적 구조물의 현전, 체계성을 비 판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서 그는 「도둑맞은 편지」에 나오는 각 인물들의 다중 적 성격을 설명하는데, 등장인물들 마다 동일자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다 른 인물들을 모방하면서 인물들의 욕망도 서로 중첩된다. 이어서 데리다는 라캉 이 놓치고 있는 화자를 부각시키면서 「도둑맞은 편지」의 이야기 틀이 단지 편 지의 이동장면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장면을 둘러싸고 있는 좀 더 폭넓은 서술의 차원에 의해서 구성됨을 보여주었다. 이와 같이 데리다는 「도 둑맞은 편지」의 해석이 단일한 구조나 폐쇄된 체제 속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해석에 열려 있으며 지속적으로 산포하는 형태를 띠고 있음을 주장한다. 데리다는 이와 같은 독해를 통해 라캉의 욕망의 체계가 그가 생각하듯이 그렇게 안정적인 것이 아니라 해체론적 해석 속에서 이론적 구조의 동일성이 언제나 위 협받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것을 데리다는 ‘편지는 결코 목적지에 도달 하지 못한다’는 것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 우리는 정신분석의 한계의 문제를 다뤘다. 정신분석의 한계의 문제를 통해서 데리다는 정신분석 일반에 대해서 분석의 가능성과 불가능 성에 대해 질문한다.
이런 분석의 불가능성의 질문은 정신분석학의 분석에 대한 ‘저항’이라는 개념으로 우리를 이끈다.
이때의 저항은 프로이트의 ‘반복강박’ 개념 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프로이트는 이 개념을 임상에 있어서 문제의 상황정도로만 기술하였다.
하지만 데리다는 반복강박의 개념 속에서 정신분석이론에 대한 저항, 즉 이론의 한계를 본다.
이런 저항은 정신분석과 같은 이론이 실제적으로는 하나의 체계 속에 안착하는 것이 아니라 끝임 없이 구조성을 위협하는 이상기류dérive 혹은 해석의 산포적 구조에 노출되어 있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이런 사례를 통해 데리다는 정신분석의 대표적 이론이 자기완결성 속에서 이론적 통일성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이질적 요소에 의해 지속적으로 완결성이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음을 보 여주었다. 우
리는 이상의 논의에 기반해서 정신분석이론의 단일성보다는 지속적으로 이론 내의 해체론적 계기들이 정신분석이라는 이론에 저항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데리다의 이론적 유의미성은 전능한 위치에 이르려는 정신 분석의 이론적 시도에 비판의 입각점을 제공하는 것이라 하겠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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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A Deconstructive Reading on Lacan’s Psychoanalysis - In the Comparison between Derrida and Lacan
Son, Young-Chang (Korea Univ. of Technology and Education)
* This article aims to explain the positioning of Jacques Derrida on the psychoanalysis, by examining his lecture on Lacan‘s works. At first, Derrida characterized Lacan’s thought as phallocentrism by analysing his lecture on Poe’s “The Purloined Letter”, since Lacan’s understanding of the letter and its return to its sender would suppose a fixed structure within a totality and above all a fixed meaning. Lacan maintains that the letter is being elevated to the ‘ideal existence’ insofar as it comes back to its proper trajectory after each detour. According to Derrida, this fixed meaning and fixed destination have been the primary concern in Western metaphysic, since Plato. Thus, Derrida proceeds in the deconstruction of different moments in this story and put its unified structure in the complexity of Poe’s Dupin-trilogy. By doing so, Derrida affirms that the interpretation of the oeuvre dose not be accomplished on the stable structure, but is uncontrolled and disseminated unlike Lacan’s interpretation. With regard to the diversification of interpretation, Derrida expands his critic on Lacan’s reading on Poe’s novel toward the psychoanalysis itself. In Derrida’s perspective, there are the resistances in psychoanalysis that obstruct not only the return to the Phallus in the mouvement of desire-signifier, but also the attempt of psychoanalysis conquering psychic trauma of compulsive repetition. In the deconstructive view, we will consequently illuminate the relation of the philosophy to psychoanalysis through these resistances.
Key Words : Derrida, Purloined Letter, Death-derive, Signifier, Resistance
투고일 : 2020년 9월 15일 심사일 : 2020년 10월 20일 게재결정일 : 2020년 10월 25일
새한철학회 논문집 철학논총 제102집ㆍ2020ㆍ제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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